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지금은 ‘개벽학’이 필요한 때

지역

지금은 ‘개벽학’이 필요한 때

익명 (미확인) | 금, 2019/02/08- 11:41

근대라는 용어에 대하여

설 연휴 잘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번 편지에서도 많은 문제제기를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쓸 내용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논의의 범위가 방대해서 제 생각을 다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저는 ‘한국사상사’라는 제한된 문맥에서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개벽’이라는 자생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근대’라는 번역어를 빌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세계 근대’나 ‘동아시아 근대’가 아닌 ‘한국 근대’라고 한 것이고요. 부제를 “개화에서 개벽으로”라고 했던 것은 종래에 개화 중심으로 근대를 생각했던 관점에서 개벽 중심으로 근대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분들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중국’이나 ‘세계’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근대’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근대의 대상도 사상이나 철학보다는 ‘체제’(관료제)나 ‘시스템’(자본주의)과 같은 제도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고요. 반면에 저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한국사상사를 서술하는 범주로서 ‘근대’라는 개념을 빌려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실학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고, 동학이라는 새로운 ‘학’에 주목하였던 것입니다.

실학담론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실학담론을 주창한 1930년대의 조선학운동가들은 “전통으로부터 근대(=지금과 ‘가까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 사상가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벽파와 문제의식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요. 다만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조선학운동가들이 유학이라는 틀을 유지한 채로, 즉 유학 안에서 새로운 시대를 찾고자 했다면, 개벽파는 말 그대로 유학을 개벽해서, 유학과는 다른 ‘학’을 창조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똑같이 유학을 사상자원으로 활용하고는 있지만 개벽파의 경우에는 ‘학’ 자체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조선유학 500년이 끝나는 하나의 사상적 전환점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을 저는 ‘근대’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한된 범위에서 ‘근대’라는 개념을 쓰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처럼 동아시아사나 세계사와 같은 거시적 시각에서 ‘근대’를 논하는 분들에게는 혼란스럽고 납득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왜 굳이 그런 혼란스런 ‘근대’ 개념을 고집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벽’의 사상적 획기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근대’라는 용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곧바로 ‘개벽’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우리에게 ‘개벽’은 낯설고 ‘근대’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익숙한 용어로 낯선 용어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벽에 담긴 사상적 획기성으로 말하면 사실 ‘근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근대’는 고대나 중세와 같은 단계적 시대구분론에서 나온 개념인데 반해, 개벽은 ‘개벽 전’과 ‘개벽 후’로 양분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 이전과 이후로 나누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사상사는 크게 동학 이전과 동학 이후로 양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사상의 ‘작’입니다. 개화파는 중국으로부터의 탈피는 했을지언정 여전히 ‘술’의 관행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1876년 강화도조약, 개항을 시발로 삼는 ‘개화기’라는 시대구분”을 탓하시면서 “1860년 동학 창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개벽기’라는 시대인식을 바로 세워야겠다”고 설파하신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동학에서 시작되는 한국사상의 ‘근대기’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개벽기’와 상응합니다.

이와 같이 ‘한국’ 근대의 기점을 동학으로 잡는 것은 저의 개인적인 한국사상사 서술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코 이 구분이 다른 나라나 인류 문명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과는 다른 한국사상사 서술방식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최제우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최한기도 근대를 준비한 사상가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기’ 개념을 중심으로 서양의 천문학과 정치체제 등을 수용하여 ‘기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최한기 기학의 선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홍대용도, 『의산문답』을 보면, 서양의 천문학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적인 유불도 삼교와 성인의 권위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한기처럼 새로운 학문체계를 수립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흔적이 뚜렷합니다. 이 두 사람만 보아도 확실히 조선후기는 뭔가 새로운 사상의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아직 저의 역량이 부족해서 이런 사상가들을 본격적으로 논의에 포함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학과 동학이 동시대에 나왔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김태창선생님께서 “앞으로 한국철학의 과제는 기학과 동학을 융합‧접목시켜 새로운 ‘학’을 만드는 일이다”고 하셨다고 들었는데, 탁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이야말로 21세기 한국에 필요한 새로운 ‘개벽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근대’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실천적인 관심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인들은 ‘근대’라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편지에서 소개한 중국인 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근대화’되지 못해서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을 부정하면서 서구를 추종하고, 한편으로는 일본을 도덕적으로 미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근대화를 평가하는 상반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철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노자는 노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근대는 근대로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근대로 상처받은 영혼을 근대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동학을 비롯한 개벽파를 ‘자생적 근대’나 ‘토착적 근대’로 규정하는 이유입니다.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비어 있는 ‘전통’과 ‘현대’의 사이를 ‘개벽’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유학중심)-근대(개벽중심)-현대(서학중심)”의 구도로 한국사상사를 나름대로 균형있게 서술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이러한 저의 문제의식(‘치유로서의 개벽근대’)에 공감해 준 서평이 하나 나왔는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박지영(인전) 교무님이 쓰신 「근대의 재발견으로 개벽종교를 치유하다」(『개벽종교』 80호)입니다. 저보다도 제 마음을 더 잘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개벽사상’과 종래의 ‘탈식민주의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종래의 탈식민주의론은 또 하나의 ‘술(述)’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상을 빌려다가 거기에 기대어서 자신이 처한 사상적 곤경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선생님이 맑시즘 역시 개화좌파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중심주의에 갇히거나 그냥 공부로 끝날 뿐입니다.

반면에 개벽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습니다. 최근에 유상용선생님이 “개벽은 나로부터 세계를 보는 눈을 여는 것”이라고 했는데, 탁월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편협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에 빠진 것도 아닙니다. 유학과 서학을 시야에 넣으면서 ‘한울’이라고 하는 세계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개벽 이전에도,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상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홍대용이나 최한기는 예외라고 하고). 물론 개벽이 사상적으로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유학과 동학의 관계

유학과 동학의 관계는 저로서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동학은 거의 대부분 유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 왔습니다. 확실히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유학자였고, 이 점은 증산교의 교조로 알려져 있는 강증산이나 대종교를 창시한 홍암 나철, 그리고 원불교를 이론화한 정산 송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증산은 동학을 평가하면서 “유학을 버리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하였고, 실제로 동학 통문(通文)에는 ‘도유(道儒)’라는 표현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전봉준과 같은 동학접주의 대부분이 서당 훈장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의 탄압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겠고요.

그런 점에서는 분명 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동학과 개벽파는 유학이나 불교와 같은 전통사상의 자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학’을 ‘개신유학’이나 ‘급진유학’ 또는 ‘민중불교’라고 하지 않고, ‘동학’이나 ‘증산교’ 또는 ‘원불교’라고 새로운 이름을 붙였던 이유는 ‘학’의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전통을 자산으로 삼고는 있지만, 그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학’을 만든 것입니다. 최제우가 ‘다시 개벽’을 주창하거나 강증산이 ‘묵은 하늘’을 뜯어고치자고 한 것은 이런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학’이 나오게 된 이유는 종래의 유학적 세계관으로는 더 이상 시대적 전환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이 제가 동학을 말할 때 유학과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도 유학 경전을 버리고 독자적인 경전을 만든 이상 이미 유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유학을 유학이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시서(詩書)』라는 경전을 신봉하는 것인데 – 마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경』을 신봉하듯이요 – 동학교도들은 『시서』나 『논맹』이 아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경전으로 받들었습니다. 물론 교양으로는 유교경전도 공부했을 수 있습니다만, 농민들이 사서삼경이나 성리학 문헌을 공부한 경우는 드물었다고 생각됩니다. 전봉준과 같이 유학자의 신분에서 동학에 입도한 경우라면 당연히 유교경전은 기본소양이었겠지만요 -.

그래서 이들에게 ‘유학’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천도교인인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대표님에게 “당신은 유학자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마 “아니다”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그냥 “천도교인이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원불교 성직자도 마찬가지고요(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학을 배척하거나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런데 ‘개신유학’이나 ‘급진유학’이라고 규정해 버리면 여전히 유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주자학이나 양명학을 신유학이라고 하듯이요. 그래서 제가 이 표현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산교가 선도(仙道)를 개벽하고, 원불교가 불교를 개벽한 것처럼, 동학이 유학을 개벽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입니다. 유교에서 중시하는 제사를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제사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큰 불경죄를 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벽’으로 상징되는 성인이나 조상보다 ‘나’를 더 존귀한 존재로 설정하고 있으니까요. 동학이 당시의 유학자들에게 ‘사교’로 지목당하고 최제우나 최시형이 처형당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유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명분(名分), 즉 예적(禮的) 질서를 무너뜨렸으니까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동학은 ‘개신유학’이라고 하기보다는 ‘개벽유학’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원불교를 ‘개벽불교’라고 부를 수 있듯이요. 요즘에 저는 원불교를 ‘동학불교’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개벽/동학’과 ‘불교’를 다 알아야 이해될 수 있는 사상체계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동학도 개벽과 유학을 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사상체계라는 뜻에서 ‘개벽유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신’이나 ‘급진’은 하나의 독립된 사상체계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새롭거나 과격하다는 수식어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개벽’은 하나의 역사적인 사상조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개벽유학’은 ‘개벽’이라는 사상과 ‘유학’이라는 사상의 합성어를 의미합니다. 마치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이 한편으로는 최제우를 개벽의 선지자로 존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을 주체로 한다고 말하였듯이 말입니다. 아일랜드의 젊은 한국학자인 캐빈 콜리는 정약용의 사상체계를 ‘개신유학’이라고 하지 않고 ‘기독유학’(그리스도교+유교)이라고 규정하였는데, 이것도 비슷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개신유학’이라고 하면 사상적 아이덴티티가 ‘유학’ 하나로 한정되지만, ‘개벽유학’ 또는 ‘기독유학’이라고 하면 사상적 아이덴티티가 두 개로 늘어납니다. 이 중에서 ‘유학’을 강조하면 유학과의 연속성이 강조되고, ‘개벽’이나 ‘기독(교)’을 강조하면 유학과의 단절성이 강조됩니다(물론 정약용의 사상은 유학적 요소가 그리스도교적 요소보다는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동학에는 두 측면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동학이 유학의 연속선상에서 논의된 측면이 강했다면, 저는 단절성을 강조해서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고요.

아울러 어떤 A라는 사상을 만들기 위해서 B라는 사상자원을 활용했다고 해서, 새로 만들어진 A라는 사상을 반드시 B라는 사상 계열로 분류해야 하는 필연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자원으로만 활용할 뿐, 내용 자체는 전혀 다른 사상체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동학과 서학의 문제

제 생각에 동학은 단지 서학의 도전에 대한 대응일뿐만 아니라 전통적 세계관의 붕괴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였습니다. 최제우는 『동경대전』에서 “인의예지는 성인의 가르침이지만 수심정기는 내가 새롭게 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학뿐만 아니라 분명히 유학도 의식하고 있습니다. 동학이 유학도 아니고 서학도 아닌 제3의 길을 갔다고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동학의 ‘동’에는 ‘서’에 대한 ‘동’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동’의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이러한 ‘용례’는 일찍이 신라시대의 최치원에게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최영성교수님의 선행연구에 의하면, 최치원은 신라는 ‘동국(東國)’이고 중국은 ‘서국(西國)’이라고 하면서, 신라인을 ‘동인(東人)’이라고 하고, 한반도를 ‘동방(東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에 고려시대든 조선시대든, 한반도에 사는 지식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할 때에는 ‘동방’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동인, 동국, 동방은 모두 서세동점이 시작되기 이전의 개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학’은 ‘동양학’이 아니라 ‘한국학’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어떤 분들은 동학은 서학, 즉 천주교의 영향으로 탄생했다고들 말합니다. 『동경대전』에 나오는 ‘천주’나 ‘상제’ 개념을 예로 들면서요. 주로 그리스도교신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의 주장이라고 생각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학은 서학의 ‘자극’을 받아서 탄생했다고 할 수는 있어도,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로는 ‘상제’나 ‘천주’라고 쓰고 있지만 한글로는 ‘하늘님’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 ‘하늘님’은 전통적인 한국인의 하늘신앙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상제나 천주는 그것을 한자로 표현하기 위해서 빌린 말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천주교의 신관이 이런 토착적인 하늘신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하고, 동학도 마찬가지로 그런 토착적 신관 위에서 성립한 신종교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학의 자극을 받았을 수는 있는데,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다산 정약용이 서학적 신관을 수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부족하지만 ‘근대’와 ‘유학’의 문제에 대해 제 나름대로 답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기하신 문제의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벽학의 모색

 마지막 부분에 제시해 주신 “술이 아닌 작의 필요성,” “개벽기에 대한 시대인식,” “밖보다는 안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개벽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개벽문화와 개벽학을 만드는 일이라고 보고요. 지난주부터 페이스북에 『개벽일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개벽에 대해서 남에게 들은 이야기나 자신이 생각한 단상 등을 글로 남겨두고 있는데, 이것이 죽을 때까지 쌓이면 개벽학의 얼개가 대충 짜여질지 모르겠습니다.

“개벽기에 대한 시대인식”은 삼일운동의 사상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삼일운동’하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것 역시 개화의 시선으로만 사태를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삼일독립선언서」의 사상적 내용들을 분석해 보면, 개척정신(“자가의 신운명 개척”), 도덕주의와 시대전환 의식(“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온다”) 등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요소들이야말로 개벽사상의 특징이었습니다. 개화파들은 쓸 수 없는 문장입니다. 이 개벽정신이 바로 삼일운동의 내적인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외적인 요인이었다고 한다면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삼일운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독립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독립은 물론이고 사상적 독립까지 아우르는 ‘독립’ 말입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독립한 상황이지만 사상적 독립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사상적 독립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이 개벽의 자세입니다. 삼일운동에서 만개했는데, 아쉽게도 해방 이후로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세대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깨어있어야 하겠지요.

선생님과 하자센터의 김현아 선생님이 기획해 주신 ‘개벽학당’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저로서는 10대 후반의 젊은이들과 함께 한국사상과 개벽정신을 얘기할 수 있는 첫 번째 자리이자 시험의 무대입니다. 아울러 원광대학에서도 박맹수총장님이 중심이 되어 개벽의 일꾼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사회를 이끌어 갔듯이, 한국사회도 개벽의 일꾼들이 진취적이고 창조적으로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개벽이 이처럼 하나의 사회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개벽학’이라는 체계적인 ‘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언문」으로는 아무래도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단발적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주자학이 동아시아를 700년 이상 이끌어 갔듯이, 그에 상응할만한 개벽학이 요청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민주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개벽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발표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배리 앵글(Barry Engle·53)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이다. 지난 19일 방한이 벌써 세 번째다. GM 본사에서도 한국GM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한국에 들어왔던 그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백운규 산업자원통상부 장관, 고형권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 이어 청와대 고위관계자 등과 잇달아 만나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한국GM 유상증자에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참여해준다면 신차 배정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자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배리 앵글은 지난 7일 다시 입국해 한국GM 노조, 유정복 인천시장과 면담했다. 1월에만 해도 비공개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점점 더 공개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여론 압박까지 염두에 둔 셈이다. 그럼에도 별 신통찮은 소득을 얻었는지 지난 13일 GM은 결국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했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아예 철수할 수도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 카드를 내민 격이다.

19일에 다시 방한한 배리 앵글은 국회 여야 의원들을 만났고, 또 다시 산은 회장, 산자부 차관, 기재부 1차관 등을 만났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에게도 다시 면담 요청을 했지만 백 장관이 일정 때문에 만날 수 없다고 하자 부산까지 찾아가겠다고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일보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가운데)이 2월 20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한국GM 대책 TF 위원장 등 의원들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한국일보)

■ 실질적인 GM의 해외전략 책임자

배리 앵글 사장은 브리검영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1992~1997년, 2000~2008년 사이에는 포드에서 근무하면서 미국, 멕시코, 일본, 브라질, 캐나다 등에서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브라질과 남미공동시장의 포드 사장(2005~2006)을 역임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살면서 일했을 정도로 남미 지역에 정통하다고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모두 할 수 있다.

큰 회사 경험만 있는 건 아니다. 1997~2000년에는 독특하게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크라이슬러 대리점에서 자동차 소매 영업을 하기도 했다. 2008~2010년에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농기계 업체 뉴홀랜드 사장을 지냈다. 2010~2011년에는 노르웨이의 전기차 업체인 싱크의 사장을 맡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미국 내에서 싱크의 전기차 판매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2011년부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Agility Fuel Systems의 CEO를 지냈다.

배리 앵글이 GM에 합류한 것은 2015년 9월이다. 총괄 부사장 겸 남미 부문 사장을 맡았다. GM은 본래 북미, 남미, 중국, 유럽, 그리고 한국·호주·인도 등을 포함하는 IO(International Operations)로 사업부가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철수하고 호주 공장을 폐쇄하고 인도에서 사업을 축소하는 등 해외 사업 분야가 급격히 축소됐다. 급기야 지난해 10월에는 북미와 중국 외의 모든 사업부를 묶어 GM International(GMI)로 통합했다. 기존 남미 책임자였던 배리 앵글이 이 사업부문을 총괄하게 됐다.

현 한국 GM의 사장인 카허 카젬이 취임했을 때 일각에서는 그가 인도에 있을 당시 내수시장 철수를 주도한 이력을 들어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 아니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바지 사장’일 뿐 실제 GM의 글로벌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배리 앵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하이차와 합작으로 진행하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북미와 GMI 뿐인데 둘 중 하나인 GMI의 책임자가 배리 앵글이기 때문이다.

■ 연 24만대 생산 공장은 어디에?

2010년 24만대에 육박하던 군산공장 생산량은 2017년 10분의1인 2만3000대 수준으로 줄었다. 2011년만 해도 군산공장의 수출액은 39억 달러로 전북 수출액의 30%가 넘었다. 불과 3년 뒤인 2014년 수출액은 반토막이 났다. 이번엔 공장까지 폐쇄한다고 하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00502834_20170307
전북 군산시 소룡동 한국지엠 군산공장(사진: 연합뉴스).

대우차 군산공장은 1997년 세워졌다. 당시 고건 총리가 처음 생산한 차 ‘누비라’의 보닛에 기념 사인을 했다. 불과 2년 뒤 대우그룹이 무너졌고 GM이 대우차를 인수했다. 2002년 GM대우가 탄생했다. GM이 67%의 지분을, 산업은행이 28%를 가졌다. 불과 5000억 정도의 금액으로 인수했는데 ‘공장 부지만 팔아도 그것보다 비싸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우차에 묶여 있던 12조원의 채권단 빚은 1조5000억원가량의 우선주를 대신 지급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거의 저리로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7년 동안 법인세, 소득세 면제 등도 뒤따랐다. 특혜였다.

한때 GM 전체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그뿐이었다.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수정되자 한국GM은 곧 나가떨어졌다. 임금이 높아서도, 효율성이 낮아져서도 아니었다. GM은 군산공장에서 제작해 수출하던 크루즈를 호주, 멕시코 등에서 현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갈 길조차 잃게 된다. GM은 ‘온 세상에서 팔리는 차’라는 전략을 버리고 되는 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차, 전기차에 초점을 맞추고 자동차 제조업이 아니라 GM이란 브랜드 가치를 팔아먹는 ‘자동차 서비스업’으로의 변신을 추구했다.

AKR20180223140000065_01_i
“군산공장 폐쇄 즉각 철회” 한국GM 노조 결의대회(사진: 연합뉴스)

GM 본사의 꼼수는 치밀했다. 한국GM은 2011년부터 국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본사에서 3조원 가까운 돈을 차입했다. 그것도 다른 완성차업계의 2배에 달하는 4.8~5.3%라는 고금리였다. 연평균 이자만 1343억원이다. 차입금의 상당수가 운영자금에 쓰인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인수 당시 지급했던 1조5000억의 산업은행 보유분 우선주를 되사오는 데 쓰였다. 2013년부터 7%의 배당을 해줘야 하자 다시 되사온 것이다.

2012~2016년 사이 영업이익은 5000억대 적자였지만 당기순이익은 2조 가까운 적자가 났다. 이런 쓸데없는 이자비용에 더해 모기업이 업무지원을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걷어가고 쉐보레 유럽과 러시아 철수 비용까지 떠넘긴 탓이다. 정말 한국GM의 장기적인 발전을 생각했다면 본사의 자금 대출이 아니라 출자 형식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저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군산공장을 폐쇄한다고 해서 당장 한국GM 전체가 철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GM으로서도 트랙스, 스파크 등을 제작·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당장 한국GM 외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이번 군산공장 폐쇄 발표는 이를 계기로 정부로부터 더 많은 특혜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요구조건이란 대강 이렇다. 우선 이달 말에 만기도래하는 본사 차입금 5억8000만달러(약 6200억원)에 대해 한국GM이 부평공장 부지 등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수용해달라는 것이다. 또 한국GM이 본사로부터 빌린 27억달러(약 2조9200억원)의 차입금을 출자전환할 테니 산은도 지분비율(17.2%·약 5000억원)만큼 참여해 달라고 했다. 두 가지 외에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요약하면 군산공장 폐쇄방침은 변함없고, 다른 곳은 잔류한다는 조건으로 1조원 이상의 지원과 세제 혜택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GM은 한편으로 미국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5만 명에게 1인당 1270만원씩, 모두 636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한다. 또 미국 현지 공장에 2800억원을 신규 투자키로 했다고 한다.

GM이 군산공장 폐쇄라는 카드를 들이밀기 전까지 수차례 경고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그동안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0년 산은은 한국GM의 독자적 생존기반을 만들기 위해 GM 본사와 ‘GM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GM이 철수하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기반을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정작 구체적 내용은 지금도 베일에 싸여 있다. 당시 산은은 GM으로부터 한국 자회사 물량 배정을 보장받으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이미 한국GM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 한국GM, 꼭 GM이어야 하나

일단 한국GM은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이달 말 만기인 차입금 회수를 정부의 실사가 끝날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차입금 보전을 위한 인천 부평공장 부지 담보 제공도 철회하기로 했다. 하지만 3월말까지로 예정된 실사를 마치고 정부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군산공장과 협력업체를 합해 15만5000명의 일자리가 달린 일이다. 군산공장 폐쇄에 따라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여론까지 악화될 판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운신의 폭은 더욱 좁다. 더구나 군산공장 폐쇄 자체는 거의 되돌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imagesA518F6FZ
(이미지: 연합뉴스)

GM은 늘 해외에서 경영난을 겪으면 해당국에 지원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면 매각하고 철수하는 일을 반복했다. 2009년 계열사 오펠이 경영난에 처하자 독일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 지난해 결국 철수했다. 사브 역시 스웨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자 매각했고, 호주 홀덴도 마찬가지로 호주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폐쇄의 길을 걸었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에 매각된 사업은 대부분 크고 작든 ‘먹튀’의 길을 걸었다. 대우차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정부의 지원과 특혜만 먹고 필요 없어지면 도망가는 사례를 지금껏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기업은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기업 자체의 힘만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한국GM, 과거 대우차와 같은 재벌 계열사는 정부의 엄청난 지원과 특혜를 먹고 자랐다. 국민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셈이다. 어느 정도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기업들을 그저 시장 논리에 내맡긴 채 해외 자본에 매각한 것 자체가 어쩌면 내 지갑을 통째로 남의 손에 맡긴 일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2009년 GM이 파산보호 신청을 냈을 당시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60%가 넘는 지분을 소유하며 사실상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했다. 한때 GM은 공기업이었던 셈이다. 한국GM의 주인이 꼭 GM이어야 하는 법은 없다. 당장은 철수하지 않겠지만 이대로 한국GM이 유지된다 해도 서서히 무력화될 것이 뻔하다. 배리 앵글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GM과의 협상에서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참고기사]

[이데일리 2018.2.21.]‘밀당의 달인’ GM 앵글 사장이 한국서 만난 사람들

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1193926619112816&mediaCodeNo=257&OutLnkChk=Y

[경향신문 2018.2.24.] 한국지엠 사태, ‘제3의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241646001&code=940100

[경향신문 2018.2.21.][GM 사태, 어디로](2)4년 전부터 ‘철수’ 경고음…제조업 재편 손 놓고 있다 ‘된서리’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802212209005&code=920501

[노컷뉴스 2018.2.26.] GM이 여전히 못 미더운 이유…돈만 받고 떠나는 ‘먹튀의 달인’

http://www.nocutnews.co.kr/news/4930322

[프레시안 2018.2.23.]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지나쳐선 안 될 GM의 논리와 주장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7033

[프레시안 2018.2.18.]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이 진짜 노리는 것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6436

[프레시안 2018.2.12.]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한국GM, 세무조사할 때가 됐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5909

[프레시안 2017.9.25.]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3년간 2조 손실? 해괴망측한 GM의 회계장부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0580

[프레시안 2017.9.21.]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 정말 자동차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 맞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0150

[한겨레21 2001.9.26.] GM은 대우차를 거저먹었다

http://h21.hani.co.kr/arti/3578.html

월, 2018/02/26- 15:44
278
0

“전쟁의 세계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2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백년포럼에 초청된 미셸 초서도프스키 교수의 발제문을 소개한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 경제학 교수로, <빈곤의 세계화>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초서도프스키 교수는 “1953년 정전협정은 휴전협정이지 평화협정이 아니다“면서 “일시적 휴전인 정전협정은 반드시 백지화 되어야 하며 남북 간의 포괄적인 양자 평화협정이 맺어져야 한다”고 말했다.(다른백년 편집자)

서론

“화염과 분노”는 도널드 트럼프가 만든 용어가 아니다. 미국의 군사 독트린에 깊숙이 뿌리를 둔 개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의 군사 개입을 성격지어 왔다.

백악관을 거쳐 간 전임자들과 트럼프가 다른 점은 그의 정치적 언사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위험한 기로에 서 있다. 외교정책 상의 계산착오는 상상도 하지 못 할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실수”가 세계사의 진행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제기한 바, 즉 핵무기가 “평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허구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외교정책 상의 미친 짓은 상상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위 정책 결정자들은 그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어쩌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첫 번째 선제 핵 공격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1월이 커다란 전환점이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통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과 직접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평화를 지향한다던 그의 미사여구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군사 위협의 남발로 대체되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은 남북대화를 훼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언론에 보도되는 최근의 상황 전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내의 강력한 군사정보 파벌이” 동계 올림픽이 진행되는 와중 혹은 직후에 “북한에 대한 선제 군사타격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이 “코피(bloody nose)” 공격이라고 명명한 이 작전은 북한의 미사일 시설에 대한 재래 무기 공격 혹은 저강도 소형 전술 핵무기 공격으로 구성된다.

핵무기가 즉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공격 첫날 남한에서 발생할 사망자 숫자만 수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 충돌은 중국과 러시아 등 핵무장 국가들을 순식간에 끌어들일 수 있다.

20160918212231224710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B61-12 스마트 전술 소형 핵폭탄. 워싱턴이 “코피(bloody nose)” 공격이라고 명명한 작전은 북한의 미사일 시설에 대해 소형 전술 핵무기 공격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 고위층과 안보 및 정보기관에서 현재 논의되고 숙고되며 준비되고 있는 바가 바로 이러한 무모하고 야만적인 행동이다. 더욱 구체화된 계획이 알려지면서, 최고위급의 군사 및 외교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두려움과 반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피터 시먼즈,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코피’ 타격을 고려하고 있다.” wsws.org, 2018년 2월 6일)

트럼프의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는 북한에 대한 단호한 결의를 보여준다. 첫 번째 선제 핵 타격 독트린은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 공식화되었지만,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핵무기 프로그램과 연계되는 2018년 보고서는 핵무기를 지닌 국가 및 핵무기가 없는 국가에 대한 선제 타격에 활용할 수 있는 “보다 편리한” 저강도 소형 핵무기 개발에 집중한다.

“보다 편리한” 핵무기란 이른바 미니누크라고 불리는 소형 핵무기(B61-11, B61-12)와 관련되는데,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3에서 12배에 이르는 폭발력을 지닌다. 이들“보다 편리한” 핵무기란 핵탄두를 장착한 벙커 버스터로, 펜타곤과 계약한 기업들의 “과학적 견해”에 따르면 “폭발이 지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주변 민간인들에게 무해하다”고 한다.

동계 올림픽 초반에 미국과 한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이 구상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합동군사훈련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실재한다. 미국의 군사 및 정보기관 내에 이른바 “코피” 전략으로 나아가자는 압력이 존재한다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핵태세검토보고서에도 담겨 있는데, 이는 연막일 뿐이다. 미국은 지난 67년 동안 핵무기로 한반도 민중을 위협하여 왔다.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한 한반도 비핵화란 오로지 북한을 향한 것이다. 미국이 축적하여 온 대규모 핵전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핵무기를 금지하고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가기 위하여 법적 구속력이 있는 수단”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 소집을 규정한 유엔 결의안(L.41)에 의거하여 표결이 이루어진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 북한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강도 소형 핵무기

북한과 이란 양국을 상대로 하는 “코피” 전략의 옵션으로 고려되는 것이, 더욱 편리한 중재자로서의 벙커 버스터 미니누크이다. 미국의 군사 및 정보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위협이 북한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펜타곤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상대로 저강도 소형 핵무기를 시험해볼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중대한 군사작전에서 가까운 동맹국이 미국을 도와 행동하도록 시도하여 왔다.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행동에 미국이 홀로 나서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또 하나 위태로운 것은, 남한의 군사력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펜타곤의 지휘 아래에 두는 한미공동방위협력협정이다.

남한의 군사훈련 참여 거부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한미공동방위협력협정의 폐기가 대단히 중요하다. 남한이 군사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외교채널의 실패

우리는 55년 전인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을 기억한다.

1962년 10월이 오늘의 현실과 구별되는 점은, 양측의 지도자였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와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S. Khrushchev)가 핵무기에 의한 대량 학살의 위험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핵전쟁의 위험에 관하여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있으며, 민간인 대량학살의 회피에 관심을 두고 있지도 않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인 “로켓 맨”이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의 완전한 파괴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10월의 미사일 위기가 오늘의 현실과 구별되는 점들

 ■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핵전쟁의 결과에 관하여 최소한의 희미한 관념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 냉전 시기의 핵무기 독트린은 완전히 달랐다. 워싱턴과 모스크바 모두 상호확증파괴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날 펜타곤은, 히로시마 원자탄의 최소 1/3에서 6배의 폭발력을 지닌 전술 핵무기를 “지하에서 폭발한다는 이유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무기로 분류한다.
 ■ 외교 채널들이 붕괴하였다.
 ■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작된, 1조 2천억 달러를 상회하는 핵무기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이런 끔찍한 프로젝트에 추가 예산을 할당하였다.
 ■ 오늘날의 열핵탄은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100배 이상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미국과 러시아 모두 수천 개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남북한이 올림픽과 동시에 건설적 대화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 및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의미 있는 대화도 시작했다. 사드의 남한 배치가 북한이 아니라 주로 중국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을 중국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인가?

대부분의 미국인은, 북한이 1950년대에 미국이 주도한 폭격으로 인구의 30%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세계 평화에 대한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평가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미국의 군사 소식통 역시 북한 인구의 20%가 세 차례에 걸친 집중 폭격 시기에 사망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60130817173630(4)
한국전쟁 당시 폭탄을 투하하는 유엔군 폭격기들(연합뉴스 자료 사진)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장군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북한의 78개 도시와 수천 개의 마을을 파괴하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민간인을 죽인 후에 …… 3년여에 걸친 기간 동안 우리는 북한 인구의 20%를 대대적으로 죽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에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지 않은 가족이 없었다.

미국은 북한 인구의 30%를 죽인 사실에 관하여 사과한 적이 없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주요 주제는, 자국이 주도한 전쟁의 피해자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에 대한 배상도 전혀 없었다.
국제 사회는 한반도 민중에 대한 미국의 전쟁 범죄 이슈를 다룬 적이 전혀 없다.
한국 전쟁에서의 잔학 행위는 베트남 민중에 대한 미국의 전쟁을 준비하는 장이 되었다.

워싱턴은 반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북한을 정치적 고립으로 몰아넣었다. 나아가 미국이 뒷받침했던 평양에 대한 제재는 북한 경제의 와해가 그 목적이었다.

선전선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군사공격의 희생자였던 북한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 채, 전쟁 도발에 실패한 “깡패 국가”,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국가”,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되었다. 판에 박힌 이런 비난이 미국과 서유럽 언론의 일치된 견해가 되었고, 아무도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거짓이 진실이 되었다. 북한은 위협의 대명사가 되고, 미국은 이제 침략자가 아니라 “희생자”이다.

역사의 맥락 : 핵전쟁, 누가 침략자인가?

미군 문서에서 확인되듯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난 67년 동안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렸다.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파견한 중국의 인민자원군은 미국의 침략에 맞서는 북한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중국이 행동으로 보여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연대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지 불과 몇 개월 후의 일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 모두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는 특히 북한군과 함께 싸우기 위해 파견되었던 중국 인민지원군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에 대항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고 파괴하려는 냉전 시기 미국의 거대한 군사 목표의 일부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펜타곤이 주요 도시 지역에 대한 조직적인 핵 공격을 통해 소련을 폭파시키는 계획을 고려했다”는 1945년 9월 15일자 기밀문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66개의 “전략” 표적 목록에는 소련의 주요 도시가 모두 포함되었다. 아래의 표는 표적이 된 각각의 도시를 면적과 해당 도시 지역의 주민을 전멸시키는 데 필요한 핵폭탄의 개수로 분류한다.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타슈켄트, 키에프, 하르코프, 오데사 등 규모가 큰 각각의 도시에는 6개의 핵무기가 사용될 예정이었다.
“소련을 지도에서 지우기” 위해서 총 204개의 폭탄이 필요할 것으로 펜타곤은 추산했다. 핵 공격의 표적은 66개의 주요 도시였다.
이와 같이 끔찍한 군사 목표의 개요를 담은 문서가 발간된 것은 1945년 9월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1945년 8월 6일과 9일)이 있은 지 불과 한 달 후였고, (1947년) 냉전이 시작되기 2년 전이었다.

히로시마 독트린의 북한 적용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 독트린은, 대부분 민간인을 대상으로 했던 1945년 8월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 이후 확립되었다.

히로시마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히로시마 독트린”에서 핵 공격의 전략 목표는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낳는 사건”의 격발이다. 이 목표는 군사 침략을 수단으로 한 나라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세계는 첫 번째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군사기지에 떨어졌음에 주목할 것이다. 첫 번째 공격에서 가능한 한 민간인들을 죽이지 않기를 우리가 원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9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첫 번째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은 1945년 8월 6일이며, 두 번째가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은 트루먼이 라디오 연설을 했던 날과 같은 날인 8월 9일이다.]

미국의 반인권 범죄에 인간의 얼굴을 덧씌우려는 미국 정치의 미친 짓에는 긴 역사가 존재한다. 1945년 8월 9일에 했던 그 라디오 연설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에 관련하여 신이 미국 편이라고 결론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의 방식으로 그리고 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그것(핵무기)을 사용하도록 인도하셨을 것이다.”

트루먼에 따르면 이렇다. 신은 미국 편이고, 언제 폭탄을 사용할지는 신이 정할 것이다.

 “그것(핵무기)이 적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왔다는 점에 대하여 신에게 감사한다. 신의 방식으로 그리고 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그것(핵무기)을 사용하도록 인도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히로시마에서 나온 트루먼 독트린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배치를 위한 무대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은 핵탄두의 남한 배치를 시작했다. 의정부와 안양에 핵무기를 배치하려는 계획이 1956년에 이미 논의되었다.

남한에 핵탄두를 반입하려는 미국의 결정은, 교전의 당사자가 한반도에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금지한 1953년 정전협정 13항(d)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탄두의 실제 배치는 한국 전쟁이 끝난 후 4년 반이 지난 1958년 1월에 시작되었다. 미국의 핵탄두 남한 배치는 공식적으로 33년간 지속되었다. 배치된 핵무기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소련을 표적으로 삼았다.

남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미국의 핵탄두 배치와 동시에 그리고 미국과의 조율 속에, 남한은 1970년대 초반 자체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미국이 서울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분열성 물질을 생산하기 이전인 1975년 4월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서명”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야기다.(다니엘 A. 핑크스턴, “남한의 핵 실험,” CNS Research Story, 9 November 2004, http://cns.miis.edu.)

남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1970년대 초반 처음부터 미국의 감독 하에 시작되었고,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미국의 핵무기 배치의 일부로서 진행되었다.

남한핵

서방측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비난하고 있지만, 남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이슈가 된 적은 전혀 없다. 남한이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 국가로 지칭된 적도 없다.

남한의 자체 핵무기 프로그램은 1978년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지만, 미국은 핵무기 사용과 관련하여 남한의 전문 과학 인력을 양성하고 남한 군대를 훈련시켰다. 한미연합사령부에 관한 협약에 따라, 남한의 모든 작전 단위는 미군 장성이 이끄는 연합사령부의 명령을 따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군의 모든 군사 시설과 기지가 사실상 한미연합 시설이라는 의미이다.

미국 본토 및 전략 잠수함으로부터의 북한 핵 공격 계획

공식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1991년 12월 남한으로부터 핵무기를 철수했다.
남한으로부터의 핵무기 철수는 북한에 대한 핵전쟁 위협을 어떤 식으로든 전혀 바꾸지 않았다. 사실은 정반대로, 남한의 핵무기 철수는 핵탄두 전개에 관한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맞물려 있다. 북한의 주요 도시들은, 남한의 군사 시설이 아니라 미국 본토와 전략 잠수함에 배치된 핵탄두의 표적이 될 것이었다.

오늘날의 이중 잣대

한편에서 북한이 핵 위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터키 등 비(非) 보유국 5개 나라에는 미국이 제조하고 각국이 지휘하는 B61-11 전술 핵무기가 존재한다.

이들 5개국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는 4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그 지휘 권한을 지니고 있는 네덜란드나 벨기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10개의 핵무기를 지닌 북한을 서방 세계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칭하는 상황과 비교해보라.

미국 군사 침략의 희생자이지만 아무도 이를 언급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쟁을 도발하려고 안달하는, 미국 본토와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끊임없이 묘사되어 왔다. 판에 박힌 이런 비난이 언론의 일치된 견해가 되어 버렸다.

유럽핵
유럽 각국에 배치된 미군 핵무기의 숫자.

핵전쟁의 위협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부터 나온다

또한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과 잠재적 공격 행위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거대한 동아시아 군사 전략의 일부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미국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완충 국가로 간주한다.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방위협력협정으로) 남한 군사력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와 중국을 위협하는 것이다. 남북통일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더욱이 워싱턴의 의도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을 이간함으로써 동남아시아와 극동아시아를 지속적인 군사 충돌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서구 식민주의와 미국 군사 침략의 희생 국가들이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광범위한 인권 범죄가 자행되어 왔지만, 이들 국가가 오늘날 미국의 군사 동맹국이라는 점은 슬픈 아이러니다.

이들 지역, 미국, 그리고 서방 국가들의 민중 모두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 안보에 위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GYH2013041200020004400_P2

남북의 양자 평화협정을 위하여

1953년 정전협정

1953년의 정전협정 속에서, 교전의 일방 당사자인 미국은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한에 대한 전쟁 위협을 일관되게 지속해 왔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미국은 여전히 전시 조직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언론과 국제사회가 무심코 간과하고 있지만, 미국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북한을 겨냥하는 핵무기를 적극 배치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이른바 사드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 전쟁 중이다. 1953년 7월 서명되었고, 법적으로는 교전의 당사자인 북한과 중국 인민지원군 및 미국 사이의 “일시적 휴전”인 정전협정은 반드시 백지화되어야만 한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과의 평화 협상을 일관되게 거부하여 왔다. 남한에의 군대 주둔을 유지하고, 남과 북의 관계 정상화와 협력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현 단계에서 해결책은 남과 북이 평화 협상을 거부하는 미국을 무시하고, 양자 평화조약을 교섭하는 일이다.

남북 평화조약을 통하여 한반도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작전지휘권의 폐지가 필요하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작전지휘권의 폐지를 “2020년대 중반까지” 연기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충돌이 벌어질 경우” 남한의 모든 군사력이,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펜타곤이 임명한 미군 장성의 지휘 아래 놓인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60만 명의 한국군을 자국 통제 하에 두고 있다.
한미 연합사령부 구조와 작전지휘권 협약의 폐기 없이, 남한이 적절한 주권 회복을 이룰 수 없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1978년 한미 연합사령부가 창설되었다. (군사독재자이자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이었다. 사실상, 이른바 유엔의 지휘라는 명칭만 변경된 것이다.

 “한국 전쟁 이래, 미국의 4성 장군이 남한과 미군의 전시 ‘작전지휘권’을 갖는다는  데에 동맹국들이 합의해 왔다. ……  1978년 이전에는 유엔의 지휘권을 통해 실현되었다. 1978년 이후 한미연합사령부 구조가 되었다.” (브루킹스 연구소)

더욱이 1953년의 (법적으로는 일시적인 휴전을 의미하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2014년의) 작전지휘권 재협의에 기초하는 미군 장성의 지휘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 없이 기능 중이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 일방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바는 남북 간의 포괄적인 양자 평화협정이다. 이는 1953년 정전협정의 실질적 폐기로 이어질 것이다.
(정전협정 하에서 만연해 온) 미국과 북한의 “전쟁 상태”를 “우회”하고 이를 남북의 포괄적인 양자 평화협정 서명으로 무효화시키는 방안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남북의 협력과 상호교류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제안하는 서울과 평양 간의 포괄적인 평화협정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1953년 정전협상 서명 당사자의 평화협정 조인 실패를 적극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 우호조약을 합법적으로 공식화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양자 간의 합의는 워싱턴의 거부를 사실상 우회하게 된다. 이는 또한 외국의 개입, 특히 평화협정의 조건에 대한 워싱턴의 지시 없이, 한반도에 평화의 기초를 수립한다. 남한에서 미군의 철수와 작전지휘권 협약의 폐지도 함께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군사 기지의 건설 등 작전지휘권 협약 하에서 행해지고 있는 남한 군사화의 목적도, 큰 틀에서 보자면,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하는 군용 발사장으로 한반도를 이용하려는 것임이 지적되어야만 하겠다. 작전지휘권 협약 하에서는, “전쟁이 벌어질 경우” 남한 군사력 전부가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군의 지휘 아래 동원되게 된다.

워싱턴은 남한과 북한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 간의 정치적 분열 창출에도 열중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한의 미군 군사시설들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위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역설이다. 남북한의 양자 협약을 기반으로 규정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영구 평화를 위해, 미군 철수를 포함하는 정전협정과 작전지휘권의 폐지가 요구됨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남북의 양자 평화회담의 방향키를, 외부 세력의 참여나 간섭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에 부과된 경제제재의 해제는 물론 미 점령군의 철수에 관한 논의가 회담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미군의 배제와 점령군 28,500명의 철수는 남북의 양자 평화조약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통일과 향후 나아갈 길 : 오직 하나의 코리아가 존재한다.

오직 하나의 국가 코리아가 존재한다. 워싱턴은 통일을 반대하는데, 이는 통일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산업과 군사 측면에서 경쟁 세력이자 (선진 기술과 과학 역량을 지닌) 국민 국가의 출현이며, 이 국민국가는 스스로의 주권을 주장하고 워싱턴의 참견 없이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무역관계를 확립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외교 및 군사 계획가들이 미군의 남한 주둔 유지를 조건으로 “통일”에 관한 그들의 시나리오를 이미 작성해두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와 유사하게, 워싱턴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외국 투자자들”을 침투시켜 북한 경제를 약탈하는 것이다.

워싱턴의 목표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용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2000년 출간된 네오콘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a New American Century, PNAC)”는 “한반도 통일 이후의 시나리오”에서 (현재 28,500명 수준의) 주한미군을 증강해야 하며 미군 주둔 지역이 북한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통일 한국에서 확대 배치된 미국 주둔군은 이른바 “북한 지역의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통일에 따라서 한반도 주둔 미군의 감축과 역할 변경이 요구될  수도 있지만, 변화된 상황은 미군의 임무 종료가 아니라 미군 임무의 변화 그리고 변화되고 있는 기술적 현실을 실제로 반영할 것이다. 더욱이 통일 이후에 관한 현실적 시나리오를 모두 보더라도,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상당 정도의 안정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 이후 한국에 주둔할 미군의 정확한 규모와 구성에 관하여 추측하는 일이 시기상조일 수는 있지만, 미군의 한반도 주둔이 미국의 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전략 목표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빨라도 지나치지 않다.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역량의 어떠한 감축도 현재로서는 현명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과 북한의 대규모 포격 역량을 효과적으로 제한하기 위해서 특히 그러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혹은 한반도의 통일과 함께, 현재 주둔 중인 단위의 구성과 인력 수준은 등락을 거듭할 것이지만, 아시아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에서 미군의 주둔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새로운 세기를 위한 미국의 방어, 전략, 군사력과 자원의 재구축,” 18페이지)

bec48c625010d2b66defbbe2e1ec78fe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체결할 것을 촉구하는 한국 시민들의 시위 장면.

워싱턴의 의도는 두말할 필요 없이 명백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과의 전쟁이 한반도 전체를 휘감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워싱턴은 남한을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상황은 북한과 남한 모두를 향한 것이다.

이는 1945년 9월 이후 미국의 군사 점령 아래 있었던 남한을 위협한다.
한반도의 지형을 보았을 때,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에 남한도 어쩔 수 없이 휩쓸리게 된다. 미국의 군사 계획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해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한, 미국과 남한은 “동맹”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해야만 한다.

“진정한 동맹”이란 외부의 간섭과 공격에 대항하고, 대화를 통해 남북한을 통일하고 재결합하는 일이다.

미국은 한반도 전체를 상대로 하는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양자 “평화 협정”의 조건을 명확하게 하는 합의에 서명할 수 있도록, 남북 간 양자 대화를 확대해야만 한다.
이러한 합의를 통하여 미국의 한국 주둔을 배제하고 28,500명의 주한 미군 철수를 위한 장이 마련될 것이다.

나아가 양자 평화 협상에 의하여, 한국군을 미국의 지휘 아래 두는 한미 작전지휘권 합의는 폐기되어야만 한다. 이후 한국군 전체가 한국의 작전지휘권 아래로 북귀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자 협의는 향후 남북 간의 경제와 기술 및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의 심화된 협력을 추구해야만 한다.

작전지휘권 협약을 통한 미국의 배후조종이 없다면, 대화가 전쟁 위험을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작전지휘권 협약의 폐기이다.

남북통일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리라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무역 발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남북한의 과학기술 역량 통합 속에 8천만의 인구를 지닌 통일 한국이 강력하고 독립적이며 주권을 지닌 경제 강국이자 무역 국가로 변모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분단된 한국은 미국의 지정학적, 경제적 이익에 복무할 뿐이다.

월, 2018/02/26- 14:47
200
0

국제 여성활동가인 이파트 수스킨드(Yifat Susskind)가 미국의 진보 매체 <Common Dreams>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수스킨드는 경제제재는 윤리적인 문제와 함께 효과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이에 맞서는 국제적 연대활동을 촉구했다. ‘Sanctions on North Korea Will Not Lead to Peace. Just Ask Iraqis.’라는 제목으로 실린 그의 글을 번역해 게재한다(다른백년 편집자).

 

 세계가 평창올림픽의 친선의 분위기로부터 벗어나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을 향한 적의가 다시 배가되고 있다. 이번에는 지난 23일에 발표된, 북한의 교역 기능을 타깃으로 한 공격적인 새 경제제재안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C0A8CA3C000001535F1FFCF000020C69_P2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제재는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효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지금과 같은 핵전쟁의 위협이 짙어지는 때에 건설적인 또 다른 길을 찾아내는 것은 절박한 과제다. 그러나 경제제재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화적인 대안이 아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1990년대에 제재조치가 이라크인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그들에게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끄는 조직이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이라크에서 수십년간 활동해 온 풀뿌리 여성 조직을 통해 들은 말이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명백하게 제재는 결코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로, 제재조치는 분명 도덕적 논란이 있다. 어떤 나라가 경제적 공격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해 고초를 겪는 것은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시민들이며, 늘 비참한 인도적 결과를 낳는다. 유니세프(UNICEF)는 북한에서 6만명의 어린이들이 심각한 영양실조와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하에서 이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다.

경제제재, 가난하고 취약한 집단에 가장 큰 타격

반면 제재를 받는 정부와 가까운 이들을 포함한 엘리트 계층은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수 있다. 경제제재는 대개 표적이 된 정부들로 하여금 시장을 통제하고 독점권을 행사하게 한다. 또 제재를 가하는 국가들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시위를 통해 지지를 받음으로써 집권층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게 된다. 북한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증오에 가득찬 악한인 김정은이 주장하듯 미국을 악한으로 낙인 찍게 될 뿐이다.

1990년대에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행해졌을 때 우리는 지역의 여성단체들로부터 여성과 가족들이 직접 생활고로 힘겨워 한다는 소식을 직접 들었다. 병원의 선반에는 구명 의약품이 없다는 것이며 아이들을 먹일 충분한 양의 식량배급을 받지 못하는 절박한 사정의 가족들 이야기를 듣게 됐다. 당시 제재로 인해 사망한 아이들의 숫자는 가장 적게 잡아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은 이 같은 곤경을 자신의 정권을 선전할 수 있는 행운의 기회로 활용해 자신을 국민의 보호자로 내세웠다.

경제제재는 단지 비윤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외교적 수단으로서도 효과가 없다. 1990년대에 유엔안보이사회가 이라크를 비롯해 10여개 국가들에 대한 제재를 했던 이른바 ‘10년간의 제재기’ 동안 수집된 데이터를 보면 대상 국가들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데 별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에 나라 경제를 붕괴시키고 질병과 죽음을 유발했을 뿐이다.

제재가 효과적이면서도 윤리적일 수 있는 한 가지 경우가 있다. 그것은 1980년대 남아공처럼 제재를 받는 나라의 시민사회의 많은 대중들이 그 제재를 지지할 때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부가 변화하기를 바라고 압박을 가했기에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또 국민들이 기꺼이 경제적 곤경을 감수할 의사가 있었기에 윤리적이었다. 현재 북한에 대해 가해지고 있는 제재는 이 두 가지 면에서 다 그렇지 못하다.

54-1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제재에 맞서고 진정한 평화를 촉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과거의 제재 경험과 이라크전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3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범국제적 공조방안 찾아야

첫째, 국경을 넘어서는 굳건하고 효과적인 공조 방안을 찾아야 한다. 1990년대에 이라크에 대한 제재가 시행됐을 때 미국과 중동의 여성들은 힘을 모으고 함께 행동했다. 당시 우리는 트럭을 몰고서 암만과 요르단으로부터 바그다드까지 가서 수십톤의 우유와 의약품을 이라크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미국과 이라크 사람들이 양심으로부터 협력한 연대 행위였다.

둘째로, 추상적인 말들과 맞서야 한다. 이라크에서 우리는 ‘충격과 두려움’이나 ‘부수적 피해’와 같은 말들 뒤에 도사린 잔혹성을 드러내는 일을 해야 했다. 지금 북한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 행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자면 ‘코피 공격’ 같은 완곡어법을 사용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서 제재라는 미명 뒤에 북한의 어린이와 가정들이 기아와 추위에 신음하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민간인들을 기아의 위협 앞에 인질로 삼는 것을 정당한 외교정책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아주 섬칫해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제재조치가 바로 그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활동분야를 넘어서 조직을 만들어야 하며 북한 문제를 고립적 이슈로 대해서는 안 된다. 이라크 현지의 인권활동가들이 미국의 재향군인들과 짝을 이뤄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을 때 그 힘이나 파급력은 더욱 증폭됐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가령 기후정의운동으로부터 핵전쟁과 같은 당면한 위협들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지 않으면서 맞서도록 하는 방법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혹은 인종정의운동의 조직활동으로부터 북한 사람들이 비인간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iraq_sanctions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반대 시위를 벌이는 인권평화 활동가들(사진: EPA).

여성 평화운동가들은 이런 교훈들을 정립하고 적용하는 데 앞장서 왔다. 우리 여성들은 정치시장에서 체계적으로 소수로 분류되고 배제되고 있지만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감지하는 데 전문가는 다름아닌 여성들이다. 전쟁 중에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의 생존에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여성이다.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가족의 상실, 장애, 집을 잃은 이들을 위해 평생에 걸쳐 보살펴 주는 것은 여성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아직 가능하다. 여성 평화 운동가들의 연합이 시공을 초월한 교훈들을 통해 이미 그 길을 열고 있고 잘못된 해법, 예컨대 제재라는 형식의 경제 전쟁과 같은 잘못된 해법들을 격퇴하도록 해 준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진정한 개입을 하도록 우리를 떠민다. 지금은 모든 양심 있는 이들이 함께할 때다.

 

 yifatsusskind 이 글의 필자 이파트 수스킨드(Yifat Susskind)는 국제 여성인권 단체인 MADRE를 이끌고 있으며, 남미와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여성의 건강과 여성에 대한 폭력, 경제 환경 정의와 평화 활동 등을 펼쳐 왔다.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폴린폴리시 등 유력 매체에도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수, 2018/02/28- 15:08
94
0
  • 다른백년은 3월부터 The Centre for Research on Globalization (CRG, www.globalresearch.ca)과 칼럼, 논평을 상호 공동 게재키로 했다. CRG는 캐나다 몬트리얼에 근거를 둔 비영리 독립 연구 및 미디어 조직으로 사회경제, 지정학 및 환경 관련 이슈 등에 대해 논평과 기사, 연구 결과들을 활발히 내놓고 있다.
  • 이 같은 칼럼 공동게재 합의는 지난달 다른백년이 주최한 백년포럼 ‘전쟁의 세계화와 한반도 평화’에  발제자로 참여한 CRG 소장 미셸 초서도브스키(Michel Chossudovsky) 교수가 다른백년의 취지에 적극 공감, 양 기관 간의 상호 협력을 적극 제안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 다른백년은 그 첫 번째로 초서도브스키 교수가 2013년 3월 13일 최초로 게재한 뒤 5년 만인 2018년 3월 1일 수정 게재한 칼럼, ‘The Pentagon’s “Ides of March”: Best Month to Go to War’을 번역해 전재한다.(다른백년 편집자)

————————————————————————————————-

우연일까?

베트남 전쟁에서 현재에 이르는 최근 역사에서, 3월은 펜타곤과 나토 군사 전략가들이 선택해 온 전쟁을 벌이기에 “가장 좋은 달”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10월)과 1990-91년 걸프 전쟁을 제외하면, 1965년 3월 8일 벌어진 미국 지상군의 베트남 침공 이래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미국과 나토 및 연합국의 군사 작전은 3월에 시작되어 왔다.

로마력에 따르면, 이데스 오브 마치(Ides of March, 3월의 중간 날짜)는 대체로 3월 15일에 해당한다. 또한 이데스 오브 마치는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암살된 날로도 알려진다.

로마력에 따르면 3월이 로마의 군신(軍神) 마르스(마르티우스)를 기리는 달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로마인들에게 3월(마르티우스)은 “새로운 군사 작전을 시작하는 시점”을 의미했다.

전성기의 로마 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국방부는 군사작전의 정밀한 “시간표”를 수립하고 실행에 옮기는 권한을 지닌다.

로마인들이 새로운 군사 작전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3월이 현대의 군사 정책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겨울에서 봄으로의 이행 시기를 포함하는 계절이 군사작전의 타이밍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펜타곤의 군사 전략가들이 3월을 선호할까? 그들 역시 로마의 군신 마르스를 숭배하는 것일까?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라도 말이다.

3월 23일은 봄의 시작과 일치하는 날인데, “로마인들이 군사 작전과 전쟁 시즌의 시작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축제와 연회로써 군신 마르스를 경배했다. …… 로마인들에게 3월 23일은 투빌루스트리움(성스러운 트럼펫을 닦는 등 전쟁을 위해 군대를 훈련하는 의식)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축하 행사를 거행하는 날이었다.”

로마의 군신을 기리는 이러한 축제 행사 속에서, 3월의 대부분은 “군사적 기념과 준비에 바쳐졌다.”

FILE - In this March 1965 file photo shot by Associated Press photographer Horst Faas, hovering U.S. Army helicopters pour machine gun fire into the tree line to cover the advance of South Vietnamese ground troops in an attack on a Viet Cong camp 18 miles north of Tay Ninh, Vietnam, northwest of Saigon near the Cambodian border.  (AP Photo/Horst Faas, File)
미국 의회가 채택한 통킹만 결의안에 의해 미국 지상군이 남베트남에 투입돼 지상전이 시작된 것은 1965년 3월 8일이었다. (사진:AP)

 

3월에 일어난 군사 개입 일정 (1965-2017)

아프가니스탄(2001년 10월)과 1990-91년 걸프 전쟁을 제외하면, 1965년 3월 8일 벌어진 미국 지상군의 베트남 침공 이래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미국과 나토가 이끄는 군사 작전은 3월에 시작되었음이 최근 역사에서 확인된다.

베트남 전쟁

미국 의회가 채택한 통킹만 결의안은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538 지상군을 베트남으로 파견하는 것을 승인했다. 196538 3,500명의 미국 해병대가 남베트남으로 파병되었고, 이는 “미국 지상전”의 시작을 알렸다.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전쟁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1999324 시작되었다. 미국이 “고귀한 모루(Noble Anvil)”이라는 코드 네임을 붙인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은 3월 24일 시작되어 1999년 6월 10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라크 전쟁

이라크 전쟁은 바그다드 시간으로 2003320 시작되었다. 미국과 나토가 이끌었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구실로, 2003320 시작되었다.

(1991년의 이라크에 대한 걸프 전쟁은 1월 17일 시작했다. 2월 26일과 27일 바스라 도상에서 후퇴하는 이라크 군인들과 피난하던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난 직후, 2월 28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다. 그러나 미국 24 기계화 보병사단은 32 수천 명을 도살했다.)

201503260848_61130009275616_1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군들.

시리아를 개조하려는 전쟁

시리아를 개조하겠다는 미국과 나토의 전쟁은 2011년 3월 15일 시작되었다. 요르단 접경의 남부 도시 다라를 이슬람 용병과 암살단이 급습하면서였다. 민간인 학살은 물론 방화 행위에 테러리스트들이 개입되었다. 이러한 테러리스트의 습격은 애초부터 미국과 나토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페르시아만 동맹국들의 은밀한 지원 속에 이루어졌다.

리비아에 대한 나토의 인도적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내세운 전쟁

나토는 2011319일 리비아 공습을 개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1년 2월 26일 최초 결의안(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0)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연이어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이 2011317 채택되었다. 이 결의안은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것과 “민간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을 승인했다. 리비아는 2011319부터 거의 7개월 동안 나토 전투기들의 무자비한 폭격을 받았다.

예멘

2015325 미국의 지원 하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이 예멘의 후티 무장그룹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

(2018년 3월 현재)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이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레바논과 북한 그리고 이란에 대한 몇 가지 군사 시나리오가 현재 펜타곤에서 검토되고 있다.

2018년에 미국과 나토가 구상 중인 ‘이데스 오브 마치’에 대하여 추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가 자국 국민을 상대로 화학전을 벌일 수 있도록 북한이 돕고 있다는 최근(2월 27일) 뉴욕타임스의 “권위 있는” 분석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이 기사는 훌륭하고 허위가 아니며, 시의적절하고(이데스 오브 마치), 당연하게도 권위 있는 언론사에 의해 “세심하게 작성”되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기사의 일부이다.)

“미국과 여타 국가들이 시리아 정부가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는 혐의를 제기하면서, 북한이 이에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나온다.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 혐의는 다마스쿠스 교외의 동(東) 구타에서 발생한 염소가스로 추정되는 물질을 사용한 민간인 공격을 포함한다.

유엔 조사관들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은 내산성 타일, 밸브, 온도계 등을 공급했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시리아의 화학무기 및 미사일 시설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유엔 제재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에 의해 작성되었다.

보고서는 시리아와 북한이 거래를 통해,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지속적으로 보유하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한 현금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잠재적 위험을 강조한다.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은 40 차례에 걸쳐, 군사 및 민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금지된 탄도 미사일 부품과 물질을 선박으로 시리아에 보냈다. 여기에 화학무기 부품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이 보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가 이를 검토했다.”

 

일, 2018/03/04- 12:37
176
0

“우리 돈을 나눠주는 진짜 이유는, 그래서 얻는 이득은 뭐냐고요? 왜냐하면 이게 우리 삶이니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일을 하는 것이며 세계의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역할을 하는 것”, “우리는 이렇게나 많은 부를 소유한 반면 다른 수십억명이 그렇게나 적게 갖고 있다는 건 불공평한 일”, “우리의 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닫힌 문을 연다는 사실도 불공정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어떤 영향력이든 행사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전 세계의 공정함을 개선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 (‘자선가’ 게이츠 부부의 고백…”우리가 베푸는 이유는”, http://news1.kr/articles/?3236871)

d03-gates
세계 최대 부자이자 최대 자선사업가인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 이 같은 기부에는 자신들이 이룬 성취와 부는 인류가 함께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에 기대고 있어서 부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위의 발언들은 세계 최대 자선사업가인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가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발표한 2018년도 연례 공개 편지를 통해 지난 18년간 지속해온 거액의 사회환원 뒤에 숨은 속내를 밝히면서 한 발언들 중 일부다. 세계 최대의 거부이자 세계 최대의 기부자다운 인식이고 발언이다.

빌 게이츠 부부의 선행을 보면서 문득 빌 게이츠 아버지의 발언에 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하진 않지만 빌 게이츠 아버지가 아들의 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아들이 이룬 성취와 부는 인류가 누대에 걸쳐 축적한 지식과 기술에 압도적으로 기대고 있어서, 아들이 부의 대부분을 기부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천만번 지당한 말이다.

나는 우리가 정의의 원리에 입각해 과세의 원리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과 인간이 만든 걸 구분해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 등 천연자원의 가치는 사회화 하는 것이 맞다. 토지 등의 천연자원은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이며, 공급이 한정된 토지 등의 천연자원을 특정인이 소유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약하고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따라서 토지 등의 천연자원은 공공을 위해 사회화되는 것이 정당하며 효율적이다.

그 다음 인간이 만든 가치 중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금융과 인프라망, 특수직역 같은 것들과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만든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 인간이 만든 가치 중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금융과 인프라망, 특수직역 같은 것들의 경우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 등의 천연자원만큼은 아니지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사회화하는 것이 맞다.

image_readtop_2014_1074503_14074001271469754
한국의 조세체계는 소득불평등 개선효과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이미지:매일경제).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가치 이외에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만든 가치는 온전히 사유화하는 것이 옳을까? 결단코 그렇지 않다.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이룬 성취는 크게 인류가 누대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그 중 정부가 기여한 몫이 크다), 운(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 등이 운의 영역인데 이 영역은 통제할 수 없지만 규정력이 압도적이다), 노력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인류가 누대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 운, 노력 가운데 어떤 요소가 법인, 단체, 개인의 부 창출에 얼마만큼 기여하는지를 계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요소가 인류가 누대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 운의 합보다 크다고 강변하는 게 어리석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인이나 단체, 개인이 이룬 성취와 사회적 부조차도 크게 인류와 운에 빚지고 있는 셈이며, 따라서 고율의 법인세와 소득세가 정당화된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변수가 있으므로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창출한 부에 대한 사회화의 강도는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가치에 대한 사회화의 강도보다는 약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가치의 사회화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가치의 재분배 도구인 과세의 일반원리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에 가장 무겁게 과세하고,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것이 그 다음이며,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만든 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리고 과세의 일반원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대(특권)가 가장 적확하다. 지대 혹은 특권의 성격이 짙은 순서대로 과세하는 것이 가장 정의롭고, 공정하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일, 2018/03/04- 13:33
78
0

워싱턴 DC –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본인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며,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너희를 도울 수 없다. 아무도 너희를 돕지 못 할 것이다.” 

때는 2000년 6월이었고,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 깊은 대화를 나누던 시기였다. 미국과 북한의 기본 합의가 마련된 지 거의 6년이 지났고, 각 동맹국은 북한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동시에 남한 및 국제사회와의 점진적 경제교류 확산으로 북한을 이끄는 중이었다.

4개월 후 조명록 장군이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했고, 양국 정부는 “어떠한 적대 의사도 없으며 …… 향후에는 과거의 적대감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당시 북한에는 핵무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있었다.

»çÁø-00>¾Ç¼öÇÏ´Â ³²ºÏÁ¤»ó     ³²ºÏÁ¤»óȸ´ãÀ» À§ÇØ 13ÀÏ ¿ÀÀü Æò¾ç¼ø¾È°øÇ׿¡ µµÂøÇÑ ±è´ëÁß´ëÅë·É°ú Á÷Á¢ ¿µÁ¢³ª¿Â ±èÁ¤Àϱ¹¹æÀ§¿øÀåÀÌ ¹àÀº Ç¥Á¤À¸·Î ¿ª»çÀûÀÎ ¾Ç¼ö¸¦ Çϰí ÀÖ´Ù.        2000.6.13   (Æò¾ç=»çÁø°øµ¿ÃëÀç´Ü)

18년 후 무언가 가능성과 기회를 창출하는 데 남한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탐색하기 위하여,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특사를 보낸 일은 타당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 상대인 북한으로부터 의미 있는 제스처를 끌어내어, 북미 대화가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또한 남북 대화와 동시에 관계 회복의 심화에 필요한 국제 사회의 단결을 자신이 이끌어야만 한다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위치 뒤바뀔 것인가

그러나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다면, 문 대통령은 마침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운전석”에 비집고 들어가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아베 신조와, 한반도 정책이라는 자동차의 트렁크 속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까지 있던 자리에 말이다.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은 앞 다퉈 뒷자리로 물러나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옆 자리 조수석에 앉는다. 차에 오른 사람들 모두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일이다.

북한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스처는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세 명의 미국인을 석방하는 일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향후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한다는 선언이다. 북한의 이 같은 제스처가, 안전보장과 경제개발 이슈를 무시하고 오로지 핵무기 프로그램에만 집중해 온 미국의 공허한 입장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스처를 통해, 남북의 두 지도자는 다가올 4년 동안 가능한 일들을 탐색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제 정의용 안보실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미국과의 조율을 담당했던 정의용 실장은 이제, 미국을 달랠 제스처와 상징적 표현을 찾아내고 미국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세심한 작업을 맡게 되었다. 한편 서훈 국정원장 역시, 10년에 걸친 보수 정권의 무관심 속에 위축되어 온 남북의 경제 및 정치를 다시 연결하는 민감한 역할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개월 동안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고자 했지만 혼자서 이를 이루어 낼 수는 없었다. 문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두 명의 파트너는 시진핑과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될 것이다. 남한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는 언제나 시진핑과 문 대통령의 관계이다. 무엇이 되었든, 이번 주 이루어진 청와대의 평양 특사 파견에서 도출되는 어떠한 추진 계획이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일이 이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00500199_20180306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가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있다. 뒤로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보인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문 대통령과 구테헤스의 대화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거나, 아니면 두 사람은 트럼프를 진정시키기 위해 매우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이 보다 현실적인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말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최대의 압박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 들였다”라는 대단히 해로운 (그리고 십중팔구 틀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여 왔다. 미국의 최대 압박과 이를 실행에 옮긴 다양한 수단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대단히 설득력 있게 제기될 수 있다. 미국의 최대 압박이 지난 10년간 생산적 외교를 가로막아 왔다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이다. 다각적인 제재와 미국의 어마어마한 군사 위협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의미 있는 양보를 내놓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제재들을 조속히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문 대통령은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난달 평창에서 두 사람이 이 문제에 관하여 논의했기를 바란다.

***************************************

남한에게 주어진 기간은 약 3년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국내 정치 갈등이 한반도 정책에 관한 이슈를 덮기 전까지 말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에 묶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내 트럼프의 백악관을 상대해야 한다고 가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여유가 없다. 문 대통령이 이전에 보좌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허약했고, 지금보다 훨씬 유능한 미국 정부를 상대해야만 했다. 두 요인으로 인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성과는 치명적으로 제한되었다.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큰 도전은, 기존에 서울과 워싱턴의 진보적인 시도를 좌절시켰던 그 장애들을 회피하는 일이다. 왜 진보적 시도를 콕 집어서 지목하는가? 북한의 비핵화와 안전보장 및 경제개발, 남한의 중견국가 역량 확보 등 상호 연관된 이슈들이 근본적으로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정치적 편의에 의하여 이들 이슈가 이데올로기와 정파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서울과 워싱턴 모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외교에 반대하고 강압을 지지해왔다. 결과는 한 세대에 걸쳐 벌어진, 다양한 수준의 정책적 재앙이었다. 이 재앙은 주로 동북아시아에 해당되지만 미국의 국익에도 마찬가지 결과였다.

양국 정치권에서 외교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외국 정부 및 국제기구와 맺은 협상결과,그리고 이들과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오랫동안 보수 정당이 지녀 온 단순한 세계관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 보수정당이 명확하고 일관된 세계관, 혹은 전략적인 모든 세계관으로부터 동떨어져 왔다는 사실 역시 우연이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오바마의 민주당 백악관이 보여주었듯이, 전문성을 무시하고, 기대 수준을 낮추고, 전략적 기회보다는 눈앞의 국내 정치를 우선하는 결정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의 혼동을 17년 동안 겪은 결과, 대부분의 주류 정책결정자 사회에서는 지금 가용한 현실적인 대안들이 혼란스럽다. 학자와 싱크 탱크, 대학 연구소, 전통 미디어와 최근 확산되는 디지털 미디어 모두가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와 정책 시스템의 극단적인 양극화 및 와해를, 선택 가능한 현실의 전략 전술적 기회로부터 구분하라고 이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이들이 해야 할 일임은 당연하다.

 

 

화, 2018/03/06- 14:52
81
0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지독한 비극을 목격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주제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두고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에서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애써 외면된다.

서울의 모든 동네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식료품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해 왔는데 대단히 걱정스럽다. 이전에 동네에서 빵집을 시작하려고 했던 용기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 했고, 가족이 운영했던 빵집들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무엇을 사고팔아야 할지,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가게들은 최후의 기댈 언덕이다. 이런 사람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중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민주주의의 종말이다. 이제 지역사회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SONY DSC

이런 가게들이 왜 이리도 빨리 문을 닫고 있는지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사정을 알고 있는 분들이 논의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유통 시스템이 이들을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청난 자본을 배경으로, 경쟁 상대를 시장에서 몰아내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간 적자를 견딜 수 있는 편의점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는 아마존 모델이자 구글 모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오래된 모델이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 게임이 과거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 게임을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결과는 뻔하다.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택시를 몰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일을 하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관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고 위에서 시키는 규칙을 그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수입 수준이라는 면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웃 문화의 상실이라는 면에서도, 그 결과가 빈곤이 될 것이란 점은 명확하다. 도시가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과 은행의 멋지고 깔끔하며 널찍한 내부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대기실의 호화로운 좌석이 많이 비어 있는 일이 자주 있다. 일반 계좌를 가지고 외국에 송금하기 위해서 길게 줄 서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바로 옆 사무실에서는 상냥한 젊은 여직원이 이른바 VIP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다. 어쩌다 한 번 들르는 기업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은행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은행들은 몇몇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가.

상위의 중산층에게 경고하고 싶을 뿐이다. 엄청난 경제적 균열을 만들어 낸 금융 중심의 우리 경제 속에서, 자신의 경제생활은 결코 똑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상위 중산층에게 말이다.

이윤이 좌우하는 경쟁적 시장경제에는 한계가 없다. 주식시장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자신이 너무 나간 것은 아닌지 곰곰 돌이켜보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사회의 철저한 붕괴가 훨씬 빨리 다가올 것이다.

수, 2018/03/07- 10:03
146
0

 “문재인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국군 뒤통수를 치는 ‘국군 뒤통수권자’라고 한다. 청와대 주사파 물러가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냐, 북조선 인민민주주의 김정은의 친구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유한국당은 지난 2월26일 오후 3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김영철 방남 규탄집회’를 열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비난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을 향한 두 사람의 발언은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지난해 12월12일 ‘친홍계’ 김성태 국회의원(3선·서울 강서을)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108표 중 55표를 얻어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당선 뒤 “대여 투쟁력을 강화해서 문재인 정권의 폭정과 전횡, 포퓰리즘을 막아내는 전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거친 말로 투쟁력을 높였다. 1월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이면계약 논란을 두고 “UAE 게이트는 본질은 문재인 정권의 과도한 정치보복이 초래한 외교적 위기”라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정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2월21일 권성동·염동열 의원에 대한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로 자유한국당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실랑이를 벌이던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전사’로서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이 청와대에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자신의 말에 청와대 실무자가 웃었다며 따지다가, 임 비서실장에게 “발언대에 서 보십시오. 발언대에 서세요!”라고 호통을 쳤다. “최대한 시간을 달라. 화를 왜 저한테 푸는지 모르겠다”던 임 비서실장에게 김 원내대표는 “국회를 무시하고 협조 안 한다면 심각한 상황으로 본다”, “여기는 국회다”라고 답했다.

2월26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을 재차 비판하며 “상황이 이토록 엄중하고 국민적 갈등이 깊어지는 마당에 컬링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는 딴 소리를 하는 대통령을 보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컬링이 그렇게 재밌는지 몰랐으면 감당 못할 나랏일을 덮어두시고 이참에 컬링을 배우는 건 어떤지 권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IE002267333_STD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 탄핵 반성했던 한 새누리당 의원

대통령 견제는 야당의 권리이자 의무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대여 투쟁력을 강화하겠다”던 지향 자체를 비판하긴 어렵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김성태 원내대표의 투쟁법은 홍준표 대표와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제기됐던 때 그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 시절 2016년 11월17일부터 2017년 1월15일까지 60일 동안 활동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최순실씨, 최순득씨,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무더기로 국정조사에 출석하지 않자 “인권이란 명분 속에 서슴없이 몸을 숨기는 행위야말로 국정농단 인물들이 얼마나 후안무치·안하무인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잠적’하자 <TV조선>에 출연해 100만원 현상금을 내걸었고, 국정조사에 출석하고도 자세가 나빴던 우 전 수석에게 “자세가 그게 뭐에요! 자세 똑바로 하세요”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여당 의원이었지만 국정조사에서 보여준 속 시원한 모습에 ‘MC성태’, ‘호통성태’라는 ‘애칭’도 생겼다.

 그의 쓴 소리는 국정농단의 최종 책임자인 박 전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2016년 12월9일 그는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드린다’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역사의 죄인으로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소멸되어야 할 것임을 천명한다. 새누리당은 해체하고 박근혜 정권의 구태는 역사 속으로 소멸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같은 해 12월27일 비박계 의원 29명과 함께 “진정한 보수 구심점이 되겠다”며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 창당까지 선언했다. 2017년 1월24일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과오를 사죄드린다’면서 무릎 꿇은 의원들 중에는 김 원내대표도 있었다.

images

 ■ 돌아온 탕자? 개혁보수 코스프레였나

 하지만 김 원내대표가 탈당 126일일 만인 2017년 5월2일 ‘친북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대동단결해야 한다’며 바른정당을 버리고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수많은 정치인이 앞서 걸었던 ‘철새’, ‘박쥐’의 길을 택했다. 김 원내대표 등 바른정당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그리던 ‘새로운 보수’, ‘보수의 새 가치’를 126일 만에 찾았을 리 없었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7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었다.

2017년 5월1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 원내대표는 “병든 보수,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유한국당을 나름대로 고쳐보겠다고 뛰어들었다”고 ‘자유한국당 회군’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지방선거도 얼마 안 남아서 하부조직이 무너져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 이게 훨씬 명쾌한 답변 아닌가요”라고 묻는 김어준씨에게 “그런 답변을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고 에둘러 인정했다. 그렇게 그는 1년간의 ‘개혁보수 코스프레’를 마치고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가 돼 홍준표 대표와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김 원내대표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195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83년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건설노동자로 2년간 일했다. KT 자회사에 1985년 입사한 뒤 노조위원장을 거쳐 1994년 전국정보통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에 당선됐고,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임기를 마치고 2002년부터 한국노총 사무총장,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근로자위원 등을 맡으며 노동운동을 이어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2007년 대선에서 한국노총이 ‘친기업·반노동’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공식 지지해 노동계 안팎의 비판을 받은 직후였다. 한국노총은 18대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한나라당을 지지했는데, 김 원내대표는 이 선거를 시작으로 2016년까지 서울 강서을에서 계속 당선됐다.

 개혁을 버리고 김 원내대표가 선택한 자유한국당은 10%대 초반 지지율에서 고전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800명을 대상으로 2월27~28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이 44%, 자유한국당이 13%, 바른미래당이 8%, 정의당이 6%를 차지했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은 5일 “여론조사가 아닌 여론조작”을 한다며 한국갤럽 불신 캠페인을 하겠다고 밝혔다. 탄핵 때는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버리고, 대선 때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왔던 김 원내대표는 3개월 뒤 지방선거 결과엔 어떤 리액션을 내놓을까.

 

목, 2018/03/08- 13:19
146
0

얼마 전에 지인(知人)으로부터 내가 젊어서 한때 사회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나를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신문 칼럼이나 SNS(페북) 등에 ‘남북 두 국가의 평화공존’을 한반도 평화의 밑그림으로 제안하는 글들을 보면서일 것이다.

나는 통일을 지금 단계에서 거론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남남갈등과 남북대결을 극도로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내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면 나는 통일에 반대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립’을 가망 없는 것으로 보고 전향하던 시기에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 선열(先烈)들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한다. 한편 그것과는 별개로 ‘해방’이 분단과 동족상잔으로 이어진 역사에 대해서는 실사구시해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힘으로 이룬 해방이 아니다.

일제의 패망으로 왔다.

그리고 냉전을 맞았다.

분단과 전쟁의 외적 요인이다.

삼일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좌우 합작에 실패하였다.

분단과 전쟁의 내적 요인이다.

 

그리고 70년이 지났다. 남북은 각각 다른 길을 걸었고, 민족의 동질성보다 두 국가의 이질성이 훨씬 심화되었다. 그리고 지금 북핵을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까지 내몰리고 있다.

해방  

 

삼일운동 100주년 되는 내년까지가 한반도 운명의 갈림길 될 것

다시 이 땅이 핵무기까지 동원된 전장(戰場)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슬기롭게 살려 평화의 발원지가 되게 할 것인가? 절체절명의 물음 앞에 서 있다.아마도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가 운명의 갈림길이 될 것 같다.

한 쪽은 베트남식 통일을 걱정하는데, 좀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한국 우파의 기우(杞憂)이거나 한국 안에서의 권력 투쟁과 관련이 있을 뿐 실제로는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다른 쪽은 독일식 통일인데,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것 또한 권력투쟁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는 길이고, 최악의 경우는 내전(內戰)이다.

두 국가 체제로 민족의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맞게 남과 북의 기본법 등이 개정되어야 한다. 각각 ‘통일’이라는 이름이 붙는 부서가 ‘민족협력부’의 성격을 띠는 부서로 바뀌어야 한다.

핵 보유를 했다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북한이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의 국력 차이와 인류의 보편가치와 제도의 상대적 선진성 때문이다.

아마도 북미 간에 비핵화를 둘러 싼 치킨게임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그것에 심하게 말려들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있는 반북 정서와 반미 정서는 내부 갈등을 심화시키는 쪽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에 대해 전쟁방지를 위한 우리 외교의 주체적 입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활용하면 된다.

그 정도의 정치력은 이제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간 평화협정과 북미수교를 돕는 일이다.

북핵위기가 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임에는 분명하나, 그것이 대한민국이 집중해야 할 근본 과제는 아니다. 관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북핵에 함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최대 과제는 안정된 새로운 문명의 선진국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가장 튼튼한 보루이며, 언젠가 도래할지 모르는 통일의 확실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김 트럼프

 

북한의 미래, 핵무기가 좌우하지 않아

북한의 미래는 핵무기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생존하기 위해서 개혁 개방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순탄할지(연착륙) 아니면 거칠지(경착륙)는 북한 스스로에 달려 있다.

언젠가는 선진화된 한국과 민주화된 북한 사이에서 세계 인류의 지향에 맞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통일일 수도 있지만, 두 국가로 평화로운 아시아 공동체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북한 인민들이 가장 좋아하고 손잡고 싶어 하는 나라가 동족인 대한민국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일운동이 성공시키지 못한 합작(협치와 연정)을 성공시켜야 한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관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 올림픽을 통해 남북 간 대화와 북미 간 대화의 물꼬를 튼 것에 대해 진심으로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민족끼리’나 ‘통일’ 같은 말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의 책임 있는 당국자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은 것 또한 높게 평가한다.

오히려 개방에 약할 수밖에 없는 북쪽이 이 말들을 주로 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 만큼 그 진의(眞意)를 잘 파악해야 한다. 나는 실제로는 북한이 ‘통일’을 더 경계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래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복잡한 국제정세와 열강들의 이해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그만큼 정부의 고뇌가 깊은 면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추측일 뿐 문재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기를 바라는 몇 가지 사안들이 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터전 위에 지금 서 있다는 자각을 놓치면 엉뚱하고 위험한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산업화에 성공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우리는 민주화 분야에서도 제도적 민주주의를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했다. 그리고 이런 성과들이 민족적 정의(친일청산)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현 정부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보지만, 두 가지만 노파심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반일(反日) 친중(親中)이나 반미(反美) 친중(親中)은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한미동맹을 보다 수평적 관계로 발전시키면서 주변 열강과 점차 등거리 외교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친소(親疏)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의 정책은 냉철한 이해관계의 바탕 위에 서야한다.

또 하나는 이른바 ‘주류교체’에 대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정권에 의한 인위적인 주류교체 시도는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극도로 분열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런 시도는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교체는 정권의 인위적 노력이 아니라 ‘맑은 물 붓기’에 의해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이 나라의 주류가 건강하게 변하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그 토양과 여건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을 일이다.

사진2%20만세를%20외치며%20행진하는%20시위군중

삼일운동 100주년을 제2의 삼일운동으로 맞이하고 싶다.

지난 시기에 이루지 못한 ‘합작’의 성공을 통한 선진국 진입이 그 목표가 될 것이다.

※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조속한 만남을 희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오는 5월 안에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뉴스를 접한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단상이다. 

뉴스를 봤다.
대단한 진전이다.
아직도 뇌관은 많다.
평화가 정착되면, 근본적인 과제 즉 한국이 안정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ᆞ대미 노력이 성공하길 바란다.
남북 두 국가의 평화공존과 민족 협력이라는 바탕 위에서
그에 이어 우리 내부에 건강한 보혁 합작의 대담하고 획기적인 결단을 바란다.
국부의 유지, 양극화 해소의 두 목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는 대북ᆞ대미 관계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한반도 평화의 가장 튼튼한 보루이고, 새로운 아시아 질서나 언젠가 논의될 통일의 믿음직한 자산이다.

성공을 빈다.
이제 시작이다.

역사가 크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있다.

 

 

 

 

금, 2018/03/09- 11:13
177
0

  지난 3년간 적자에 시달리던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장의 노동자와 지역경제가 시름에 잠겼다.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예고된 수순이라는 분석과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이런 일이 대개 그렇지만,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가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잠시 뒤로 넘기고, 과거 GM이 경험했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번 사태를 곰곰이 곱씹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GM의 창업과 전성기

1908년 창업 이후, GM은 앨프리드 슬론(Alfred Sloan, 1875~1966)이 회장을 맡으면서 당시 업계의 최강자였던 포드를 뛰어넘게 된다. 이후 포드는 한번도 GM을 능가하지 못했다. 슬론 회장은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기능별 조직(U-form Organizatio)을 사업부제 조직(M-form Organization)으로 새롭게 개편하는 혁신을 선도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경영대학원(슬론 스쿨)이 MIT에 설립되어 있다.

noname01

초기의 GM은 기업 규모의 확대에만 관심을 두고 방만하게 운영되었는데, 1923년 슬론은 회장이 되자마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던 것이다. GM의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체제를 뜯어고치고, 분권화된 경영방식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사업부간 상호협력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최대한의 분권화와 적절한 중앙통제를 가미한 혁신적인 경영실험이었다. 이를 통해 GM은 자동차산업의 일인자로 등극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미국은 세계 산업생산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른바 빅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미국 전체 자동차시장의 90%를 점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이후 GM은 손익계산서에만 매달리는 재무 출신의 경영자들이 지배하는 회사가 되었고, ‘GM은 실패할 수 없다’는 오만한 인식에 젖은 채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1970년대의 위기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이미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 된 일본과 독일의 폴크스바겐 등 소형차들이 미국의 자동차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73년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미국 소비자들도 작고, 연비가 높은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GM은 여전히 대형차에 집착함으로써 작고 경제적인 세컨드 카를 원했던 소비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내부적으로도 노동자들을 로봇으로 대체하여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고 말았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될 문제에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의 인간적 측면을 소홀히 하고, 기술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그 기술의 효율성마저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에서 정립된 이론인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은 이처럼 기술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의 문제와 조직내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그 대상으로 함으로써 노동의 인간화(Humanization of work)를 실현하려고 했던 이론이었다. 그러나 당시 GM에게는 대서양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GM의 변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GM은 일본 자동차회사의 눈부신 성공(값싸고 품질 좋은 차)이 무엇에 기인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술우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계에서도 일본계 미국인 3세인 윌리엄 오우치 교수가 미국기업과 다른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여 ‘Z 이론’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일본기업은 종신고용을 통해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심어서 충성심을 유도하고, 품질분임조(QC)를 통해 작업의 구성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품질개선을 위한 공동작업을 하고, 자신과 회사를 위한 개선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우치는 미국기업과 일본기업은 조직관리와 경영관리방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 일본기업의 장점을 채용해서 미국기업에 적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결국 GM은 소형차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면적인 조직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1983년 GM은 도요타(Toyota)와 합작하여 ‘누미(NUMMI; 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라는 이름의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소형차를 생산하기 위해 경쟁자로부터 배울 건 배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새턴(Saturn) 프로젝트

경쟁력있는 소형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GM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혁신적인 회사를 설립하는 새턴 프로젝트가 계획되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이 계획에 따라 1985년 GM의 독립자회사인 새턴(Saturn Corporation)이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설립되었다.

noname1

새턴의 설립에는 공장관리자, 생산노동자, 숙련기술자, 노조대표, 그리고 GM과 UAW(전미자동차노조)의 스탭들로 구성된 ‘99인 위원회’라는 노사공동 프로젝트팀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다른 기업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50개에 달하는 GM의 다른 공장들과 60개의 다른 기업들을 방문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의 성공요인을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1985년 GM과 UAW 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에는 이러한 새턴의 혁신적인 경영철학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압축해서 말하면, 인간공학적이고 원가 효과성(cost effectiveness)을 가진 최첨단기술을 통한 생산, 새로운 인간관(인간에 대한 열린 태도)을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 통합적인 경영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혁신적인 소형차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사회기술시스템에 경영시스템이 가미된 신사회기술시스템, 즉 인간-기술-경영시스템에 의한 공동 최적화(Joint Optimization)를 이루어 혁신적인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새턴에서는 공동결정제도의 원조인 독일보다도 어쩌면 더 높은 수준의 노사파트너십에 의한 노사관계를 형성하였다. 현장자율 경영팀에 의한 노사 공동경영을 통해 새턴은 자동차 판매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993년에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하게 된다. 프레데릭 테일러(F. W. Taylor)에 의해 분리되었던 구상(Thinker)과 실행(Doer)이 GM 새턴 공장의 현장자율 경영팀에서 다시 통합된 것이다. 과학적 관리법이 출간된 1911년부터 계산하면 햇수로 74년 만이 된다. 세계 곳곳의 공장조직에서 여전히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기법이 대세를 이루는 점을 감안하면 새턴의 혁신작업은 가히 혁명적이라 부를 만하다.

그 후의 GM, 그리고 군산

2009년 파산신청까지 했던 GM은 이후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겨우 회생했다. 생존을 위한 글로벌전략을 수립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GM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인수했던 영국의 복스홀(Vauxhall), 독일의 아담 오펠(Adam Opel), 그리고 호주의 홀덴(Holden)을 최근에 모두 매각, 폐쇄했다. 굳이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는 앨프리드 챈들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GM의 글로벌 사업구조는 글로벌 사업전략을 따른 것일 것이다. 그리고 하버드 사회학 교수인 탤컷 파슨스의 말처럼 사업구조는 또 그 기업의 목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의 사태가 모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결과인지, 혹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결말인지는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아마도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군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noname3

새로운 노사파트너십의 탄생을 상상하며

나는 군산에서 1985년 테네시주 스프링힐에서 벌어졌던 극적인 노사파트너십이 재탄생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인간과 기술, 그리고 경영시스템이 통합된 신사회기술시스템(new socio-technical system)에 지역의 이해관계가 모두 통합된 새로운 개념의 사회기술시스템이 한국의 군산에서, 그것도 위기의 벼랑 끝에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통합 신사회기술시스템’에서는 아래와 같은 사항들이 주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중장년층의 고용연장과 기업의 비용 절감이 무모순적인 관계가 되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하고, 이를 위한 연결고리가 생산성 향상임을 직시하고, 교육훈련에 적극 투자한다.

 연공급이 우리사회의 구조에 적합한 임금체계였으나, 연공급의 전제인 근속기간 증가에 따른 숙련향상, 이를 위한 교육훈련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함으로써 연공급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던 측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져온들 운용에 실패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니 그 제도의 전제와 내용을 철저히 분석하여 파악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도입’보다 더 중요하다. 이는 독일식 직업학교제도와 공동결정제도(노동자대표이사제)를 도입할 때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노동조합은 정치적조합주의, 경제적조합주의를 넘어 국민적조합주의로 나감으로써, 노사관계를 공동이해를 가진 사회적 파트너 관계로 만들어야 하고, 생산성 향상의 주체로서 회사의 하이로드 전략(고숙련-> 고부가가치 -> 고임금)에 파트너로서 참여해야 한다.

 노동의 목표인 임금인상과 경영의 목표인 생산성향상을 무모순의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trade-off 관계가 아니다. 노동의 합리화(사측)와 노동의 인간화(노측)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노사간 파트너십의 형성이란, 각 동업자(파트너)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서로 제휴하여 협력할 때, 각자가 따로 했을 때보다 더 큰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의 글로벌 경영에서는 해외에 값싼 노동력이 항상 대기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원하청간 노동조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지역의 이해관계를 기업의 사회기술시스템에 통합시키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공포에 의한 관리(Management by Fear), 테일러식 과학적 관리법에 따른 구상(Thinker)과 실행(Doer)의 분리 등 한물간 경영방식에 따르는 필연적인 노사갈등 대신에, 조직내 기술체계와 사회체계(인간)가 공동 최적화를 이루고, 여기에 TPS(도요타생산시스템)와 같은 첨단 경영시스템과 새로운 차원의 통합적 이해관계자모델을 접목하여 한국형 노사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기업은 지나간 산업화모델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람=비용이라는 협소한 인간관을 수정하여 사람에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자율성, 창의성이 창발되고, 이것이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영관리방식을 만들고, 작업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결국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일대 각성을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없는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 전환부터 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이를 체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선진사례들로부터 배운 새로운 노사관계와 새로운 경영 혁신안들을 우리 방식으로 맞추어 나가야 한다. 한방에 이루겠다는 기대부터 접어야 한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야말로 흔들림 없는 우리만의 제도와 규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한국GM 사태가 가리키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 .

금, 2018/03/09- 16:31
228
0

2018년 첫 백년포럼 행사가  2월 21일(수), 오후 2시~5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전쟁의 세계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발제 : 캐나다 오타와대학교 미셸 초서도브스키 교수

사회 :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토론 : 동국대 박순성 교수, 다른백년 이래경 이사장, 민플러스 이정훈 편집기획위원

 

 

월, 2018/03/12- 13:41
106
0

20180223133030658cibq
(이미지 출처:세계일보)

    “이렇게 잘 나가도 되는 거예요?” 요즘 전화나 sns를 통해 받는 질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곧 한다더니(3월 6일 평양 발 뉴스), 이제 북미 정상회담도 목전에 왔다(3월 9일 워싱턴 발 뉴스). 질문에 붙는 말이 있다. “갑자기 너무 잘 풀리니까 어쩐지 불안하네요 …” 뒤에 붙은 무언, 침묵이 꽤 심각하게 들렸다.

믿기지가 않아서였겠다. 작년 하반기 내내 북미 간에 오간 그 험악하고 아슬아슬했던 막말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뿐인가. 평화의 물꼬가 트이는가 싶었던 평창 올림픽 기간에도 펜스 부통령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 대표단에 대해 ‘투명인간’ 취급과 ‘코피(bloody nose) 전략’ 으름장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수 있나. 그렇다 보니 왠지, 뭔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난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자신을 가집시다”라고 답한다. 분명히 기분 좋게 웃을 일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이따 밝히기로 하고, 우선 놀랄 일 하나를 더 들어보자. 지난 토요일(3월10일) 조선일보는 “트럼프는 북한과 수교하고 김정은은 핵 폐기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인용할 만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로 북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나서고 북한 체제 안전은 유엔과 한·미·북·중·러 등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안전보장 체제로 푸는 것이다. 북이 핵만 버리면 이 세계에 북을 공격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경우 대북 제재 해제와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단기간에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김정은이 핵을 버리고 미·북 수교와 제재 해제를 얻는 것이 살길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

그 동안 모든 문제에 대해 북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조선일보고, 그 사설이다. 그 조선일보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를 주장하고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북한 체제 안전보장”을 말하다니! 상전벽해로다! 가히 ‘역사적인 사설’이라 치하해주고 싶다.

물론 북이 궁극적으로 핵폐기를 결단할 정도의 확실한 체제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는 북미, 미중 관계의 장기적 안정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남북 양국 간 두터운 신뢰에 기초한 평화공존체제, 즉 한반도 양국체제의 정착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그 길로 가는 첫 고리가 대한민국이 주도하여 성사시키는 북미·북일 수교다.

<다른백년>이 출범 이후 줄곧 주장해 온 바다. 이제 조선일보조차 <다른백년>의 합리적 주장에 공감하게 된 것이라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부디 일회성 주장으로 그치지 말고, 조선일보의 사시(社是)로 확정해주기 바란다.

조선일보의 이 입장이 평지돌출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그 동안 ‘한반도 양국체제’는 이미 1991년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에서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음을 밝혀왔다. 그때 한국이 러시아,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도 그런 취지에서 채택되었고, 그 정신에서 92년에는 ‘한반도비핵화(남북)공동선언’도 나왔다. 합리적 보수라면 당연히 이 취지를 이어 받아야 한다.

이제 조선일보까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대열에 나섰으니 “지금 세계에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베와 홍준표 딱 두 사람뿐”이라는 모 정치인의 재치있는 코멘트는 정곡을 찌른 말이다. 여러 나라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자기나라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단지 북미 간,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평화의 문제임을 온 세계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세계적 경사에 진심으로 일익을 맡고 싶은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아베씨와 홍씨도 속 보이는 쪼잔한 짓을 그만하고 세계적 경사를 환영하는 세계인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untitled
(이미지: 연합뉴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불안한 이유는 사태의 흐름을 짧은 시각, 짧은 기억 속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작년 북에서 수폭 규모의 6차 핵실험을 하고, 그 전후로 연이어 ICBM 실험을 감행했을 때, 그리고 미국에서는 정말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위협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북·미를 향해 대화와 평화를 내세우고 요지부동 밀고나갈 수 있었던 힘, 그 지속성, 일관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거꾸로, 지금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작년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면 대대적인 반북·종북 소동이 정말이지 요란하게 벌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박근혜가 그토록 꿈꾸었던 제2의 유신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과 같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은커녕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평창 올림픽의 정상적 개최조차 불투명했을 것이다. 이미 그 때 한반도는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전화(戰禍)에 말려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정부 외교 저력의 원천은 촛불혁명

지난 1년여 대한민국 외교는 바른 방향으로 잘 왔다.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갈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된다. 좀 돌아가더라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왜 어떻게 그렇듯 ‘물가에 선 나무처럼’ 흔들림 없을 수 있었던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밀고가는, 밀어주는, 거대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위대한 힘이다.

큰 문제일수록 큰 변화를 못 읽을 수 있다. 촛불혁명의 실체적 존재감은 시종 지지부진하다 실패로 끝난 6자회담 5년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국제관계상 당시와 지금은 여러 기본 변수들에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 대한민국 촛불혁명의 동력이라는 새 변수다. 북의 핵과 발사체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새 정부가 기존의 미국 대외정책 패턴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보려고 한다는 점도 물론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그 변화들은 그 동안 트럼프-김정은 충돌에서 보아 왔듯 긍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직 대한민국 민의의 가히 혁명적 변화, 그리고 그러한 민의를 충실히 받드는 새 정부의 출범만이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킬 힘으로 작용했다.

정상회담은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정상회담은 상징적 큰 합의 정도가 나오면 된다. 북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미리 재 뿌리기’ 식의 추측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94년 북핵 위기 시 김일성과 카터가 만났을 때, 김일성 자신이 그런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북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유훈(遺訓)이란 신성한 것이다. 북미든 남북이든 상호 불신과 의혹을 남길 요구를 들고 나올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남북·북미 관계가 정상화됨으로써 생기는 장기적 이점에 당사자 모두가 집중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집중해야 할 점은 남북 평화관계를 장기적 구조로 굳히는 데 있다. 남북 간의 깊고 두터운 신뢰의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 간 신뢰에 균열이 가면 북미·북일 수교는 물 건너간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깊고 두터운 신뢰’의 핵심은 무엇일까? 남북 상호의 주권과 존재를 확실히 인정해주는 데 있다. 바로 양국체제다. 양국체제만이 남과 북 주권의 존립을 장기적·안정적으로 보장해준다. 실은 미국의 북 체제보장보다 더 실질적인 요점이다. 양국체제가 확실히 굳혀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북도 북미·북일 대화에 보다 큰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나설 것이다.

남북 평화관계 굳히기와 양국체제

한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니 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 북방정책 시 잠깐 반짝했을 때를 빼곤 도대체 제대로 존재했던 적이 없었던, 한국 외교가 갑자기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다. 이어질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세 나라 정상이 올 노벨 평화상의 공동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1년간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줄곧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견지했던 쪽은 오직 대한민국 정부였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즐거운 변화 속에서 필자는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생각해본다. 필경 이 말에 물음표를 다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팍스(Pax)라니? 그건 힘에 의한 평화, 초강대국, 제국들이나 하는 폭력적 평화 아닌가? 우리 코리아가 그런 식의 팍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팍스

그렇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부터가 그러했다. 그 계열의 팍스 브리태니카,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다 그러했다. 모두 힘과 정복을 전제한 평화였다. 제국에겐 평화였으되 약소국엔 지극히 괴로운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팍스였기도 하였다.

동양에도 팍스가 있었다. 세계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팍스는 바로 몽골 대제국 시대,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였다. 몽골제국만이 아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의 중화제국, 팍스 시니카(Pax Sinica) 역시 그렇다. 한때 일본도 제국을 꿈꾸었으니 팍스 자포니카(Japoinca)였다 부를 수도 있다. 그런 동쪽의 팍스 역시 힘과 정복을 전제한 평화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럼에도 팍스의 주체가 되었던 나라들, 그리고 그 후예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이 인류문명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복속해야 했던 나라들에서는 사정이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팍스 시선
한반도 발 세계평화, 한반도가 주도하여 이룩해가는 세계평화, ‘팍스 코리아나’를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시선 뉴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팍스 코리아나’가 더욱 특별하다. 우선 기존의 모든 팍스가 그랬던 것처럼 ‘팍스 코리아나’도 분명 세계평화를 만들어낸다. 지금 남북·북미 정상회담부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양국이 평화공존체제를 이루어, 미중, 중일 간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간다면, 이것이 바로 팍스 코리아나의 진면목일 것이다. 한반도 발 세계평화, 한반도가 주도하여 이룩해가는 세계평화다. 더구나 폭력의 절대적 반대명제인 촛불혁명, 즉 순수한 평화의 힘, 위력으로 말이다.

또 하나 ‘팍스 코리아나’가 특별한 것은, 그 ‘팍스’는 코리아 내부의 깊은 폭력적 분열과 적대의 상처를 성숙하게 이겨낸 팍스일 것이기 때문이다. ‘팍스 코리아나’의 시작은 한반도 양국체제다. 한반도 양국체제란 상호 서로를 부정하고 적대하면서 처절한 전쟁을 벌였던 남과 북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내부에서 고난 속에서 싹튼 성숙한 평화의 힘이 세계평화의 밀알이 된다.

한국전쟁(Korean War)은 힘 대 힘의 극한 상황, 극도의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2차대전 이후 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과연 힘 대 힘을 신봉하다 또 다시 세계 3차대전의 불쏘시개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오직 평화의 위력으로 세계평화의 선도자가 될 것인가.

기존의 제국 중심의 팍스(Pax)의 세계사에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진정으로 평화로운 팍스의 시대가 가능한가.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바로 이곳, 코리아에서 열어갈 길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이 길을 필자는 ‘팍스 코리아나’라 부르고 싶다.

화, 2018/03/13- 11:52
12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