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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 칼럼] 시대의 과제, 재벌과 고장낸 투기근절제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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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 칼럼] 시대의 과제, 재벌과 고장낸 투기근절제도 개혁

익명 (미확인) | 월, 2019/01/28- 14:48

[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시대의 과제, 재벌과 고장낸 투기근절제도 개혁

윤순철 사무총장

 

‘경제정의실천 시민운동으로 민주복지사회’ ‘부동산 투기 뿌리 뽑아 주거안정’

1989년 11월 4일 정동문화체육관에 내걸린 <경실련 창립총회 및 제2차 토지공개념 강화입법과 주택문제 해결 촉구 시민대회>에 내걸린 구호입니다. ‘경실련’의 원래 이름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인데 이 긴 이름은 경실련 준비모임에서 오랜 논쟁 끝에 채택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동산 투기와 싸우는 시민의 모임’의 제안이 있었으나 부동산 투기는 해결해야 할 과제중의 하나일 뿐이지 근본적인 목표로서는 너무 협소하여 ‘경제정의’가 운동의 목표로 채택되었고 이를 이름으로 걸었습니다. 경제정의는 당시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원인이 경제 불의였고, 경제분야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포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로 정치적 문제를 다루던 사회단체와는 다른 영역에서 운동의 확장성을 가질 수 있었고, 실사구시 원칙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여 대안을 만들고 제시한다는 새로운 사회운동 방식의 적용, 그리고 민주적 절차와 질서를 지켜가면서 불평등구조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부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실련은 경제 불의 중 시급한 해결과제로 땅과 집의 정의로움 실현에 큰 비중을 뒀습니다. 1989년 7월 8일 서울YWCA 강당에서 열린 발기인대회 선언문에서 “인위적으로 생산될 수 없는 국토는 모든 국민들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생산과 생활에만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토지소유의 극심한 편중과 투기화, 그로 인한 지가의 폭등은 국민생활의 근거인 주택의 원활한 공급을 극도로 곤란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가폭등 및 노사분규의 격화, 거대한 투기소득의 발생 등을 초래함으로써 현재 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과 부정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리사회의 문제를 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천과제로 “1) 모든 국민은 빈곤에서 탈피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2) 비생산적인 불로소득은 소멸되어야 한다. 3)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회균등이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4) 정부는 시장경제의 결함을 시정할 의무가 있다. 5) 진정한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금권정치와 정경유착은 철저히 척결되어야 한다. 6) 토지는 생산과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며 재산증식 수단으로 보유되어서는 안 된다.”를 제시하였습니다. 초대 공동대표를 맡으신 변형윤, 황인철, 이효재, 송월주님의 지휘로 재벌 개혁, 재벌과 정권의 유착 근절, 토지공개념 조기 입법화, 부동산 과세표준 현실화, 국공유지 확대, 영구임대주택 확대, 임대료 인상 규제, 한국은행 독립, 금융실명제 실시를 정책 대안으로 내놓으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정책 개혁운동은 시민들과 현장에서 이뤄졌는데, 서초동 검찰청사 앞 꽃마을에서 철거민들과 성탄절 촛불예배를, 재벌과 자산가 5%의 로비에 맞서 95% 시민의 역로비를 선언하고 의정감시단을 국회에 보내 지연되는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 도입을 촉구하고, 폭등하는 전․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두 달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17명의 세입자를 위해 합동추모제 열고 위패를 들고 가두행진을 하며,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실태 공개와 재벌에 대한 감사 중단 압력을 폭로한 시대의 양심 이문옥 감사원 감사관의 석방 운동 등 다양한 현장이 개혁의 공간이었습니다.

올해는 경실련 창립 30년입니다. 경실련은 경제정의와 사회정의가 실현될수록 역사에서 사라져야할 소명입니다. 어느 단체이든 20년, 30년을 기념하고 성과를 자축합니다. 그러나 경실련은 부끄럽습니다. 경실련의 회원, 전문가, 자원봉사자, 상근활동가들은 나름 헌신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만 30년 전 목소리 높여 외쳤던 경제 불의 해소는 더 심화되었습니다. 경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는 각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들을 관철시키고 있고,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빈곤과 양극화는 더 커졌으며, 기업들의 창의력과 투자의욕을 소멸시킴은 물론 땀 흘려 일하는 근로소득자들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드는 투기와 불로소득의 비윤리적 자산 축적이 만연합니다. 2018년 기준, 0.3% 재벌대기업은 매출액의 48%, 영업이익의 61%를 차지하였습니다. 번창한 재벌대기업의 친족들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골목 빵집과 커피집까지 장악하였습니다. 최근 10년, 재벌대기업들은 10억 평(8억 평→18억 평)의 토지 사재기를 통해 약 1500조원의 자산을 늘렸습니다. 다주택자 상위1%(14만 명)은 2배 이상(3.2채→6.7채)의 주택을 늘렸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컵라면을 먹으면서 지옥같은 노동현장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현실이 엄중함에도 촛불정신을 실현한다는 정부는 재벌의 터럭 한끝조차 손대지 못하고, 고의로 고장 낸 부동산 투기근절제도의 정상화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경실련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초심을 돌아가,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해소와 혁신 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중심이 되는 경제생태계를 구축하고,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의 탈세를 근절하는 문제에 전력하겠습니다. 현장에서 정부의 개혁 정책을 이끌며 시민들의 개혁 소리를 힘차게 밀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함께 해 주십시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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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단상

 

김철환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새안산상록의원 원장

 
1. 질병의 대유행을 막을 수 있을까?

1347년부터 3년간 유럽인 1/5의 생명을 앗아갔던 흑사병(黑死病: Plague)은 야생의 설치류(齧齒類:다람쥐·쥐·비버 등)의 돌림병이었다. 벼룩에 의하여 동물 간에 유행하는데, 사람에게 전염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환자로부터의 비말감염(飛沫感染:환자가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튀어나온 병원균에 의하여 감염됨)과 보균동물을 흡혈한 벼룩에 물려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유럽의 대규모 인구 손실은 유럽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장원제도와 봉건제도를 뒤흔들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하였다. 이후에도 페스트에 버금가는 대유행이 독감,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페스트를 일으킨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20~400나노미터의 작은 생물체로 정의한다. 나노미터(nm)가 천만분의 1mm이니 얼마나 작은 지 상상이 가능한가? 바이러스는 너무나도 작아서 전자현미경으로만 관찰 가능한 생물체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고 동물, 식물, 세균 등 살아있는 세포에만 기생하고 증식 가능하다. 즉, 세포 밖으로 나오면 수 분 내지 수 시간 내 사멸되는 미생물체이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 직접적인 접촉이나 가래, 침, 성관계 등 매우 긴밀한 접촉이 아니면 옮길 수 없다.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세포벽에 붙어서 유전체의 DNA 혹은 RNA를 세포 내로 들여보낸다. 이후 세포 내에서 끝없이 분열되고 증식해서 병을 유발한다. 현재 인류가 알고 있는 바이러스 종류는 수 만 가지이지만, 그 중 인류에게 병을 일으키는 것은 많지 않다. 코로나-19는 평소에는 심한 병을 일으키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켜서 대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세계의 경제 교류와 인적 교류가 이처럼 활발하고 앞으로는 더 활발해질텐데 감염성질환의 대유행을 막을 수 있을까? 밀접접촉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바이러스의 유행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변종은 아무도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밀접접촉을 통해 국내와 국외로 대유행을 일으킨다. 변종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와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하는데 수 개월에서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유행은 끝난 후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질병의 대유행을 막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2. 바이러스를 이기는 면역체계는 있는가?

우리 몸 면역체계의 컨트롤 타워는 T 림프구이다. T 림프구는 우선 인터페론이라는 천연 방어물질을 만들어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 또한 T 림프구는 특정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적으로도 공격할 수 있는 감작세포로 변화도 하고, B 세포로 하여금 항체를 생산하도록 지휘해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고 퇴치한다. 한 번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온 후 없어지더라도 우리 몸 면역체계는 오랫동안 같은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이겨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면역력이다. 이러한 면역력을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갖추도록 하는 것이 예방접종이다. 현재 홍역·볼거리·소아마비·풍진 등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을 막는데 이용된다. 독감 예방접종도 이런 방식으로 항체를 형성하도록 해서 예방하고 있다. 다만, 독감 바이러스는 변이가 심해서 매년 4가지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유행을 예상해서 백신을 생산하고 있고, 예방접종도 매년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바이러스를 막는 면역체계는 예방접종을 통해서 미리 갖추는 것이 최선이고, 그럴 수 없다면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우리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차선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서 접종을 받으면 예방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독감백신도 예방효과가 60% 정도에 불과해서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변이가 심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소 개인위생관리로 전염성질환을 예방하고, 건강관리를 통해서 만성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혹시 만성질환이 있다면 잘 관리해서 최대한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화하여 바이러스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3. 가장 강력한 방역은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다.

2020년 들어서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독감 바이러스가 크게 유행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에는 극히 일부만 차지한다. 그동안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로 사망한 숫자는 담배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한국인이 한 해 5만 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이 중 간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수 천 명인데 사람들은 담배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를 무서워한다.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나도 가볍게 지나간다. 폐렴까지 진행해서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는 건강한 사람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과도할 정도로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새로운 균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 무의식에 존재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바로 제노포비아(xenophobia)이다. 나와 다른 것, 특히 새로운 것(사람, 환경, 먹거리 등)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무의식 깊이 숨어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을 경계하고 조심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면 득보다 실이 크다. 예로부터 전해온 지혜와 의과학의 합리적인 대처방법으로 이겨내면 되는데 지나친 걱정이나 혐오는 불행한 일이다. 바이러스 결벽증이 사람들에게 퍼져있으면 마스크를 아무리 공급해도 모자란다. 청주시에서 택시기사가 감염되어 승객감염이 걱정되었는데 가족 감염은 있었지만 승객 감염은 없었다. 그 기사가 운행 시에 마스크를 잘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쉽고 상식적인 방법인 개인위생을 지키면 된다.

– 마스크 잘 쓰기(폐쇄된 공간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 손씻기(30초 이상, 손 세정제로 대신할 수 있다.)
– 손씻기 전에는 얼굴(눈, 코, 입) 만지지 않기

이런 예방 수칙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만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독감 바이러스와 감기 바이러스 등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을 예방하는 수칙이다.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지켜야할 에티켓이다. 인간이 그 작은 바이러스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강력한 자연의 힘이고 현상이다. 겸손하게 자연현상을 받아들이되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연대의식과 공동체 정신으로 재난을 이겨나가는 길만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이다.

금, 2020/03/1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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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7,8월호 – 특집. 오늘도 무사히(3)]

노동자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상은 오는가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에 즈음하여 –

오세형 경제정책국 팀장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시행은 내년 1월이다. 시행을 앞두고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지난 7월 12일 입법예고 되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여 노동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법의 ‘뼈와 살’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럼 이제 노동자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황유미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공정에서 일한 지 1년여 만에 백혈병에 걸렸고, 이후 2년 가까운 투병 끝에 2007년 3월 6일 목숨을 잃었다. 독성이 강한 화학약품 등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노동 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청년 노동자의 안전은 없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김군’은 승강장에 진입하던 열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목숨을 잃었다. 스크린도어 정비관리 업무는 외주화되어 있었고, 장비도 급여도 열악한 영세업체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안전은 없었다.

2018년 12월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 씨는 작업 도중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목숨을 잃었다. 역시 위험은 외주화되어 있었고, 업무를 시작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안전은 없었다.

2021년 4월 22일 경기평택항만공사에서 관리하는 평택항에서 물류를 담당하던 ㈜동방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이선호 씨는 개방형 컨테이너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2021년에도 여전히 청년 노동자의 안전은 없었다.

위에 언급한 죽음들이 그나마 언론에서 조금이라도 다뤄지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사례들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있었고,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도 있었는데, 여전히 제자리인 노동자들의 안전은 왜 그런가.

4월에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를 보자.1) 산재 사고사망자(882명)는 전년 대비 27명(3.2%)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전년 대비 사고사망자 수 30명 증가한 458명(51.9%)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제조업은 201명(22.8%)으로 뒤를 이었다.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714명(81%)이 사망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312명(35.4%), 5~49인 사업장에서 402명(45.6%)이 사망하였다. 재해유형별로는 ‘떨어짐’ 328명(37.2%), ‘끼임’ 98명(11.1%)이 순서대로 가장 큰 비중에 속했다. 인적 특성으로는 전체 사고사망자의 347명(39.3%)이 60세 이상이며, 외국인은 94명(10.7%)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과 사용자 측은 법령의 명확성이 부족하여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범위, 책임범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였어도, 사고가 발생되면 경영책임자 등은 수사와 재판 등으로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항변이다. 노동계는 경영책임자 등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래도 가야 할 방향성이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고단함과 무거운 책임감이 말해 줄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관련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 및 공무원 등의 처벌과 손해배상책임을 명확하게 하고자 법이 제정되었지만, 충분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법이었다. 그 법을 기초로 만들어진 시행령이므로 동일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시행령은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급성중독 위주로 한정 ▲2인 1조 작업·신호수 투입 의무화 등 핵심적 안전조치 누락 ▲안전보건 관리상의 조치를 외부 민간기관에 의뢰해 부실 점검·책임 회피 가능성 등의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법률 시행 전 시행령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 있다. 제대로 된 시행령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할 수 있기를, ‘사업 또는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이 원칙과 절차에 맞게 엄중하게 적용되기를 바란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상은 온다.

1)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 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 발표(21.4.15.)

수, 2021/07/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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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시사포커스4]

다시, 문제는 신뢰다

김일한 통일협회 운영위원 /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교수
[email protected]

 

1997년 6월,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의 대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회담 결과가 ‘결렬이 아니다’ ‘양국정상이 새로운 대화를 준비하기로 했다’ 등등의 관전평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합의’를 전제로 한 회담이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 결렬이 맞습니다. 양국간에 ‘구체적인 합의안이 있었다’ 그러나 ‘문턱이 높아졌다’ 등등의 이유도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합의안’에 사인이 없다면 역시 결렬이 맞습니다.

‘완전한 비핵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단계적 해결’을 제시한 북한의 입장이 결국 회담을 무산시킨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결국 문제는 다시 ‘신뢰’의 부족이었습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봅니다. 우리는 늦었지만 차분하게 북한과 미국의 신뢰문제를 다시 제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한의 중재자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22년 전인 1997년 6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호텔에서는 작은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일간에 걸친 회의는 전쟁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를 포함해서 양국의 책임자들이 모여 과연 전쟁은 피할 수 없었는지, 전쟁이 확전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는 자리였습니다. 미국측 대표 맥나마라는 다음과 같이 하노이 대화의 교훈을 강조합니다.

“하노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베트남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대화의 교훈을 바르게 배운다면, 미래에 이와 같은 전쟁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을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 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게을리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다시 북미협상으로 돌아오면, 둘 사이에는 여전히 건너지 못할 불신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해서 대량살상무기 전체를 폐기하라고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폐기할 것이라고 맞섭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과정을, 북한은 미국의 관계정상화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2년전 메트로폴호텔 대화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새로운 파국을 준비하기 보다는 오래된 미래를 다시 복기하는 것이 양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차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양국은 차분하게 서두르지 말고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절대적인 대화의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새로운 북미협상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집단제재에서 독자제재로, 외통수 정국의 새로운 상상력

완전한 비핵화를 신뢰하지 않는 미국과, 시간을 두고 관계정상화 이행 약속을 확인하겠다는 북한 사이에 대치상황은 퇴로가 없어 보입니다. 양국의 빅딜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UN의 대북한 집단제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제재해결 방법에 대한 양국간의 믿을 만한 약속과 이행 로드맵 없이는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UN 집단제재를 안보리이사국 각각의 독자제재로 전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만한 해법입니다. 견고한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가 손상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은 스냅백(snapback) 장치를 통해 조건부 해제가 가능할 겁니다. 대신 북한은 가시적인 비핵화 타임테이블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합니다.

이상의 조건에서 진행되는 비핵화와 관계정상화가 양국의 ‘신뢰대화’와 병행된다면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겁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한국역할론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면 어떻고, 트럼프의 푸들이면 어떻습니까. 이 땅에서 전쟁만 없앨 수 있다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 따위 말장난이 대수겠습니까.

중재자 없이 진행된 중국과 베트남의 대미 관계정상화 과정을 기억하실 겁니다. 분단 70여년 만에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과의 신뢰있는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책임있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어렵지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입니다.

흉물스런 철조망이,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이 국경선인줄 알고 살아온 남북한의 국민들에게 새로운 한반도의 희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수, 2019/03/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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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7,8월호 – 전문가 칼럼]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거리둔 협력’으로

 

박만규 아주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가 멈출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다행히 지금까지 방역이 가장 잘 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 요인들은 무엇일까?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감염원을 끝까지 추적하는 정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포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 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를 관리할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19의 출현을 염려해서 진단법을 준비했었고 출현하자마자 바로 키트를 만들었으며 정부는 긴급사용승인 허가를 내주었던 상호 협력, 즉 소위 3T, 즉 Test(진단), Tracing(추적), Timing(타이밍)의 3박자가 모두 잘 맞아떨어졌던 이유도 있었다.

왜 정부와 보건당국과 민간이 서로 협력할 수 있었을까? 이는 평소에는 서로 헐뜯고 싸워도 위기 때는 뭉치는 한민족 특유의 민족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손 씻기와 더불어 생활방역의 핵심 중 하나인 마스크 착용의 적극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양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스크 하나는 참 잘 쓰고 다닌다.

그렇다면 왜 서양인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할까? 이는 마스크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와 관계가 있다. 우리가 쓰는 ‘마스크’라는 말은 영어의 mask에서 왔다. 우리말에서의 ‘마스크’는 병균이나 먼지 따위를 막기 위하여 입과 코를 가리는 물건이라는 제한된 의미로만 쓰이지만, 본래 영어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의 일부뿐 아니라 전체를 가리는 물건을 두루 가리킨다. 그러니까 방독면, 검투사용 투구 등까지도 mask가 된다.

이 mask는 프랑스어 masque에서 왔고 이는 중세 라틴어 masca에서 왔다. 그리고 이는 프로방스어(provençal, 남부 프랑스 방언)의 mascarar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이는 ‘검게 만들다, 어둡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눈화장을 위해 칠하는 ‘마스카라’(mascara)도 바로 여기에서 온 말이다. 요컨대 얼굴을 ‘검게, 어둡게 한다’는 뜻에서 얼굴을 ‘가린다, 차단한다’는 뜻이 나온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비유적으로 ‘가장(假裝)하다’, ‘은닉하다’, ‘가리다’, ‘감추다’라는 뜻이 나왔다. ‘가장무도회’를 영어에서 masquerade(프랑스어 mascarade)라고 하는데 이것도 물론 mask와 같은 어원이다. 요컨대 마스크는 검게 만든다는 뜻에서 출발하여 가린다는 뜻이 되었고 얼굴을 가리는 물건을 가리키게 되었다.

반면 한국어에서 ‘마스크’가 차지하는 지위는 다르다. 우리말에는 얼굴을 가리는 ‘탈’, ‘가면’, ‘복면’, ‘마스크’라는 단어들이 다 달리 존재한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의 언어들에서는 이들이 모두 하나의 단어이다. 최초의 시작이 가리는 물건에서 시작했다가 연극용 가면으로 확장되었고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보건용의 의미를 추가한 것뿐이다. 만약 우리가 ‘마스크’라는 외래어 대신에 ‘탈’이나 ‘복면’(覆面), 혹은 ‘가면’(假面)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간단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도 부정적이었을 텐데 우리는 보건용만 ‘마스크’라고 하니까 부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미세먼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탈’이나 ‘가면’과 달리, 마스크가 생활에서 친숙한 물건이 되어 있다.

서양인들에게 마스크의 핵심적 의미는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부정적 이미지가 아주 강하다. 자기의 정체(identity)를 가리는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둑이라든지 테러범이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특히 이슬람의 히잡에 대한 거부감도 가세를 하면서 마스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 특히 프랑스가 19세기 말에 세계에서 제일 먼저 신분증을 도입할 때 사진을 붙인 나라인데, 이때 마스크나 히잡 등을 착용하지 못하게 한 역사도 있어서 유럽인들에게는 더욱 더 부정적인 의미가 강화되었다, 얼굴이나 신체를 가리는 의상을 가진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그것을 가속화한 것이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언어·문화적인 요인으로 마스크 착용을 꺼리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문화적인 이유로 마스크 착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덧붙여지는데, 이는 서양인 특유의 개인주의와 관련이 있다. 겸손이 미덕인 동양과 달리, 그들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강하다, 그러니까 굳이 내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일종의 자신감을 표현하려 한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심리적 경향의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영도력하에 있는 한 국민들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코로나19 자체를 폄하했었다. 그러다 막상 사망자가 너무 많이 발생하니 뒤늦게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회의나 행사 시에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도 한동안 본인은 쓰지 않았다. 그것은 ‘나는 강하다’는 자의식의 표출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자신감으로 퇴치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처럼 서양인들은 마스크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지만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의 코드로 접근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써야 감염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예의인 것이다. 이처럼 마스크 착용을 사회적인 예의로 접근하다 보니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방역은 마스크 착용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어서, 적절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감염원으로부터의 격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끈질긴 감염원 추적으로확진자를 조기에 찾아내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격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K-방역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격리’에 해당하는 영어 어휘가 quarantine(쿼런틴)인데 이 말의 본래 뜻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말은 40을 뜻하는 옛 이탈리아어 quarantina에서 온 말이다. 1660년대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베네치아 세관에서 페스트 발생국들로부터 입항하는 배들을 40일 동안 대기하도록 조처하였다. 40일이 지나도 특별한 증상이 없을 때 입항을 허가했는데 이는 당시에 잠복기를 40일(quarantina giorni, 즉 forty days)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40일’을 의미하는 quarantina가 1670년경부터는 아예 ‘격리 기간’을 뜻하게 되었고 이후 이 단어가 영어에 들어와 quarantine이 ‘격리’와 ‘검역’을 뜻하게 되었다.

현대 의학에서는 림프절 페스트와 패혈증 페스트의 잠복기는 1-6일이며, 폐 페스트의 잠복기는 1-3일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에 잠복기를 너무 길게 잡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항생제 치료 개시 후 48시간까지 격리를 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예전에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격리를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의학이 발전하여 코로나19의 잠복기를 14일로 잡고 있는데, 만일 이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면 40일 동안 격리를 하고 있을 테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잠복기 파악도 되어 있고, 의료체계도 비교할 바 없이 발전했는데도, 현재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각국이 손쉽게 대처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경제의 몰락 우려가 확산되는 등, 사회 전반에 더욱 큰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왜일까? 치사율이 예상보다 높은 측면도 있지만,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유럽으로 가는 데 단 하루가 걸리지 않는 초연결사회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좋든 싫든 전 세계가 톱니바퀴와 같이 서로 꽉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만을 실행해서는 결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협력’도 실천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우리 모두가 처해 있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소위 ‘책임지는 자유’, 즉 개인의 책임하에서 사회적 접촉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권리를 많이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는 경제 살리기 명분도 있지만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유럽 정부들도 경제를 손상시키기 싫어 많이 느슨하게 접근하는 바람에 초기 대응에 실패했었다. 특히 네덜란드나 스웨덴 같은 경우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서 개인의 권리를 더욱 우선시했다. 반면에 동양의 경우, 우선 중국은 봉쇄에 개인의 권리를 희생시켰다. 한동안 바이러스가 잘 잡혀가는 듯 하였지만 전문가들은 재확산의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수백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 내고 거주와 이동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면서 얻은 결과라서, 이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책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상당히 특이한 사례인데 봉쇄를 선택하지 않아 경제활동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자율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방역 조치를 따르는, 경제와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좋은 결과를 도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제는 바이러스와 공생해야 하는 시대에 돌입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제는 일상이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표준이 일상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가야 한다. 봉쇄를 해서 일상을 정지시키고 경제를 죽여서도 안 되고,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일시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만 만족해서도 안 된다.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일상화해면서 여기에 사회적 협력을 추가하여 이를 시스템화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위축되어 가는 경제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제 사회적 협력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거리 둔 협력’이라 부르고자 한다.

IMF 위기 때 보여준 금 모으기 운동 때처럼 다시 한번 우리 국민들이 단결하면 ‘거리 둔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보건, 의학, 과학기술, 사회적 시스템, 인문정신 모두!

인류의 역사를 보면 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전염병이 그 동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위기 때 위기로부터 잘 배우는 나라가 흥한다. 우리는 잘 배우고 있는가? 아직은 그런 것 같다.

계속 잘하자! 더욱 잘하자!!

금, 2020/07/3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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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1,2월호 시사포커스(1)]

기득권 정당에 놀아난 선거제도 개혁 운동

서휘원 정책실 간사

2019년 12월 27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둘러싼 지난했던 협상과정이 끝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은 의석을 지역구 253석에 비례대표 47석으로 하고, 이 중 30석에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법 개정안은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총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단 한 석도 늘리지 않는 수준에서 그 수준을 50%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국한하고, 그 마저도 30석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경실련은 27일, “‘반쪽짜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의미 있지만 아쉽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낸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이 훼손된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선거법 협성과정에서 기득권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셈법 굴리기에 급급한 것에 더해 경실련을 포함한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이 더불어민주당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휘둘렸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연동형 비례제 원칙의 도입을 위해 그간 엄청나게 많은 기자회견, 집회, 성명 발표 등을 했지만 결국 그 결과는 반쪽짜리에 불과했고, 더불어민주당에 좀 더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 통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와 훼손

경실련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운동에 뜻을 모았던 것은 비례성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 최다득표자만을 당선시키는 단순다수대표제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4년에 도입된 전국구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골간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정당지지율과 실제 의석 수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해 비례성이 매우 낮다는 문제가 지적되어져 왔다. 2016년 제20대 총선의 경우 새누리당이 33.5%, 더불어민주당이 25.5%, 국민의당이 26.7%, 정의당이 7.2%의 정당득표율을 받았지만 실제 의석 배분의 경우 새누리당 122석(40.7%), 더불어민주당 123석(41.0%), 국민의당 38석(12.7%), 정의당 6석(2%)으로 되어 정당지지율과 의석 점유율 사이에 많은 괴리가 있었다.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한 기득권 정당의 경우 정당지지율은 적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대결 구도에 편승해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본적으로 정당득표율과 의석수를 연동하여, 정당의 실력만큼, 정당이 지지받는 만큼 의석을 갖게 하자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총 의석수가 100석인 상황에서 A정당이 정당득표율로 30%를 얻었다면 A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 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30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역구 당선자가 10명이면 나머지 20명을 비례대표제로 채워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동안 지역주의에 편승해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했던 기득권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감수하게 하고,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던 소수 정당들은 더 많은 비례대표 의석을 가지게 해 정당지지지율만큼 총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지역구의원 선출제도의 장점인 지역구 대표성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비례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행 선거제도의 대안으로 주목 받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은 의원정수 확대 논의에 선을 그어 비례의석을 최저 수준에 머무르게 하고, 준(準) 연동형을 주장하며 연동률을 50% 줄이고, 여기에 연동형 방식으로 배분되는 의석에 상한선을 씌웠다. 사실상 비례성 확대라는 원칙이 대부분 소실된 것이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협상 과정

그렇다면 왜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이 훼손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기득권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셈법 굴리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온전히 도입되기 위해서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과정에서 기득권 정당이 지역구에서 정당지지율보다 과대 대표되는 의석만큼을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본다는 합의, 소수 정당이 과소 대표되는 의석만큼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완해줘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에서 수혜를 보고 있는 기득권 정당은 더욱 공정한 선거제도로의 합의를 포기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자유한국당은 대안 제시 없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 일체에 반대하다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및 비례대표제 폐지라는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안을 가지고 나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을 뺀 4개 정당을 위주로 선거법 협상이 본격화된 2019년 3월 10일에 와서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축소하고, 비례대표를 완전 폐지하는 방안을 협상안이라고 고려 중이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후에는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은 모든 정당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지연시켜왔다.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갑자기 선거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선거법 협상 과정에서는 선거제도 개혁법안을 후퇴시켜 나갔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은 2018년 11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국회의장과 여야5당 대표회담에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을 고려할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 더불어민주당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부터였다. 2019년 1월 21일에는 정책의원 총회에서 선거제 개혁안으로 ‘한국형’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이는 정당지지율 전체가 아니라 정당지지율의 절반만을 의석수 배분에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2019년 3월 7일에는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 정수 유지(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 ‘한국형’ 연동형 비레대표제, 석패율제 도입 등을 내놓았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온전히 비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례대표 의석이 필요함에도, 의석정수 확대에 선을 긋고,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협상 과정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가면서 부터였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지역구 225석 대 비례대표 75석’의 개혁안은 ‘240대 60’으로, ‘250대 50’으로, 결국 ‘253석 대 47석’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기 어려워지자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나아가 ‘최저이익’을 주장하며 ‘연동형 캡’ 30석을 씌우는 안을 제안했다. 이것은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즉,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한국당과 같이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을 점점 훼손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정안이 후퇴한 두 번째 이유는 정치개혁공동행동이 협상 과정에서 적절한 개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정서를 고려해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큰 소리로 주장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수를 축소하고, 이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손해를 볼 수 없는 상태에 봉착해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을 훼손해 나갈 때에도 협상의 판이 깨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협상안으로 제시했을 때, 아무런 압박을 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는 소극적이었던 반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공수처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던 터라, 여야 4당이 선거제도 개정안과 공수처법을 이해타산에 따라 묶어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패스트트랙안으로 지정되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의미가 있다는 워크숍을 개최해 운동을 이어나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뮬레이션

이렇듯 선거법 개정안이 협상과정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음에도 그 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라는 믿음이랄까, 자기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0대 총선 결과에 도입해보면, 비례성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매우 역부족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라는 믿음이, ‘이러려고’라는 한숨을 동반하게 됐다.

정의당의 경우 정당득표율에 100% 비례했을 때 얻어야 하는 의석은 22석이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 당선자 2석을 빼고 남은 수에 준연동형 비율인 50%를 적용하면 10석을 배당받게 된다. 하지만 연동형 캡을 적용하므로 다시 2석을 빼야 한다. 여기에 병립형 방식으로 1석을 추가하면, 최종적으로 얻게되는 의석은 총 11석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성과와 한계

따라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놓고 보았을 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여전히 정당득표율과 개정안 적용 의석배분율 사이에는 괴리가 크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36.01%와 27.46%의 정당득표율을 가지고, 37.0%, 8.33%에 해당하는 의석을 가져가는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75%, 7.78%의 정당득표율을 가지고도, 17.33%, 3.66%의 의석밖에 차지할 수 없다.

차라리 이럴거였으면, 병립형 방식을 고수하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수라도 확실히 증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지난 2018년 2월 12일 경실련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정개특위 간사와 면담을 가졌다. 이 날 김종민 의원은 우리에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월 21일 제안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그 내용은 국회의원 정수를 고정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자면, 당시 김종민 의원은 “이번에 선거법 개정 됩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했고, 가만히 들어보니 그 복안은 비례대표 정수를 찔끔 늘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추측컨대 더불어민주당은 이때부터 캡 상한을 두어 조정의석을 통해 병립형 방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받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바에야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도 방식을 고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내가 운동했던 이슈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운동이 기득권 정당에 처음부터 끝까지 놀아났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과한 혹평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의 기득권 지키기에 아무런 압박을 하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그동안의 정치개혁공동행동의 운동 과정이 무색하게, 민주당의 정개특위 간사가 당당하게 밝힌 그 안이 통과된 것을 나는 목격했다.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운동이 전개된다면, 다시는 이러한 과오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득권 정당이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은 예측가능한 당연한 시나리오이므로, 국민들을 설득해 비례대표 의석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수를 보완한 이후에도 거대 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석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비례대표 의석 대폭 확대를 주장해야 한다. 또, 협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타협이 생긴다면, ‘이것이라도’ 라는 자세가 아니라, ‘반드시 이것이어야만 한다’라는 자세로 협상안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해야 한다.

참고자료
• 서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7가지 쟁점. 월간경실련, 2019. 01. 28.
• 서휘원,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퇴색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미, 월간경실련, 2019. 03. 27.
• 서휘원, 패스트트랙 정국이 던진 화두, 월간경실련, 2019. 05. 24.
• 강지헌, 비례대표제 선거개혁, 이제 다시 시작이다. 프레시안 2019. 12. 31.
• 박효영 선거제도 개편 80 ‘헌신한 사람들’ 선거제도 개혁 관철되기까지, 중앙뉴스 2019. 12. 28.

화, 2020/02/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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