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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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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1)

익명 (미확인) | 월, 2019/01/14- 10:17

필자 주: 모두 신년 벽두부터 북의 신년사를 분석하느라 무척 바쁘다. 격세지감이다.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북의 신년사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던가? 과거에는 주로 운동권이, 그것도 NL진영 정도가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런 신년사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정계, 언론계, 학계를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희한한’ 일이다. 왜 그렇게 북 존재가 180°로 확 바뀌었을까? 뭐니 뭐니 해도 그 중심에는 북의 핵무력 완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도 없다. 그 전제하에 이 글은 총 세 번에 걸쳐 2019년도 북 신년사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유는 많은 분들이 북 신년사를 분석해 내었지만, 본질을 제대로 짚은 신년사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본인 또한 제대로 된 신년사에 접근하기 노력할 뿐 ‘완전하다’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1부는 <2019신년사 제대로 읽기: 북 내부문제>이다. 2부는 <2019신년사 제대로 읽기: 남북문제>이다. 좀 의역하면 남북문제에 있어 2019년 북 신년사에서 오독하지 말아야 할 것들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 해당되는 제 3부는 미국문제(대외정책)에 해당되는 <2019신년사 분석: “새로운 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실리게 된다독자들의 많은 필독을 원하고, 문재인 정부에게는 제대로 된 이해에 바탕 해 2019년도는 남북, 북미관계 정책을 세워내는데 도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에게는 북 드려다 보기와 관련해 꼭 빠져나와야할 하나의 ‘악마의 늪’이 있다. 필자가 누누이 얘기하고 있는 ‘희망적 사고’이다. 단 한 번도 이제까지 예측이 맞지 않았지만 지금이나 예나 북이 언젠가는 자본주의적 방식의 개혁·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서는 체제전환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그 믿음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결론에는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체제우월주의를 그 근간으로 하여 현실적으로는 현실사회주의 붕괴경험이 우리 사회(대한민국) 전체에 사회주의체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붕괴된다는 확신과 환상을 심어놓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역사학자들(대표적인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차도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로 단언했고,(그러나 그도 지금은 자신의 과거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 획기적인 부의 재분배만이 오늘의 민주주의 후퇴를 해결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강조, 필자) 없다고까지 강조하여 말하고 있다.) 기정사실화되었다.

즉, 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체제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을 인식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회주의체제인 북이 자신들이 설정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뭔가의 조그마한 변화 시도조차, 또는 제도를 조금이라도 손질하면 이건 금방 ‘개혁· 개방’의 신호, 체제전환의 징조로 확대 해석되었다. 강성국가 앞에 ‘사회주의’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는데도 말이다.

역지사지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인데도 절대 역지사지 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인 우리가 사회양극화 현상 및 비민주적인 제도를 개선한다하여 이를 (사회주의에로의) 체제전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비록 정치적 논쟁은 있을 수 있으나, 절대로 체제전환과 (사회주의에로 진입하기 위한) ‘개혁·개방’을 상상해내지는 않을 것이다. 똑같이 북에게도 적용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해서 이번 신년사는 그 연장선상에서 쓰고자 한다. 철저하게 역지사지 할 것이고, 희망적 사고에 함몰되지 않을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북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할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증명되었으니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즉, 이 ‘빈곤한 상상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북은 이제까지 열 백번도 더 체제전환이 일어났어야 했고, 개혁·개방이 되었어야 했으나 그러한 본질적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 늪과 인식오류에서 벗어나야만 함을 안내하고 있어서 그렇다.

8-90년대 사회주의권이 멸망했을 때도, 90년대 초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김일성 주석사망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도 모든 언론과 정치권, (북)전문가들은 북은 이제 정말로 정권이 붕괴되거나 체제전환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그러한 현실은 방생하지 않았다.

또 그 사이에 수많은 제도의 변화들, 7.1경제관리개선조치, 6.28방침, 포전담당제, 기업책임관리제 도입 등 수많은 조치들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개혁·개방’과 연결시키려했으나 북은 여전히, 아니 더 소리 높여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의 정당성만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사회주의 강성국가’, ‘사회주의 완전승리’, ‘사회주의 문명국가’ 등 온통 ‘사회주의’뿐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변화’와 ‘조치’를 ‘개혁·개방’으로, ‘체제전환’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만 할 것인가? 그런 해석과 이해로는 절대 옳은 대북정책이 나올 수 없고, 옳은 남북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 제발 이제는 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자. 그 연장선상에서 ‘공존·공리·공영’에 입각한 대북관을 세워내자. 그렇게 북을 온전하게 보고, 그만큼 옳은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를 만들어내자.

칼럼_190114 중앙일보
사진: 중앙일보

 

이번 신년사 해석이 그런 북을 인식하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글쓰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전제는 깔고 가고자 한다. 우선은 일반적 의미에서 북 신년사가 항상 그러하였듯이 그 기본골격이 북 내부문제, 남북문제, 북미문제(대외정책)였다. 올해(2019)도 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음을 전제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신년사에서 필자가 눈여겨 본 단어가 네 개 였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첫째, “국가제일주의”, 둘째, “농장원”, 셋째,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 그리고 그 넷째가 “새로운 길”.(첫째와 둘째는 1부에서, 셋째는 2부에서, 넷째는 3부에서 주로 다뤄질 것이다.)

또한 세부적인 내용은 많은 분들이 분석을 하였음으로 본 글은 주로 전략적 이해가 필요하거나 오독한 부분, 간과한 부분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참고사항은 다음과 같다. 영역별 총괄평가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그 전제를 깔고, 그 전제와 눈여겨 본 ‘네 개’를 중심으로 내재적 관점에서 해석풀이(혹은, 주석달기)를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다.

▶ 북 내부: 자강력 중심의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성 확인과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에 의거한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갈 데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표적 오독: 사회주의 국가인 북이 사회주의체제 방식으로 그 한해를 총화·결속하고, 그 방향에서 전망을 세워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울 텐데, 이를 죽자 살자고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희망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 남북관계: ‘사실상의’ 전쟁 없는 남북불가침시대로 진입했으며, 이를 토대삼아 ‘민족공조’의 새 시대 개척과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에 힘을 쏟는 한해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대표적 오독: ‘대가없는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재개를 2020년 국가발전전략 5개년과 연동하여 해석해내는 것, 민족공조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론으로 축소·왜곡하는 것 등이다.)

▶ 북미관계: 핵동결 확약과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및 ‘새로운’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표명, 그러면서도 북이 먼저 주동적으로 취한 선의의 행동에 대해 계속 미국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든다면 ‘새로운 길’모색이라는 엄중 경고를 날렸다. (대표적 오독: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불이해북핵만의 비핵화’, ‘새로운 길에 대해 병진노선의 부활이니, 중국과의 밀월 등으로 오독)

 

자, 그럼 한번 시작해보자.

“정세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신념으로 간직하고 우리 식으로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 있게 다그쳐나가며 세대를 이어 지켜온 소중한 사회주의 우리 집을 우리 손으로 세상에 보란 듯이 훌륭하게 꾸려나갈(중략)”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공식적으로 신년사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우리민족제일주의’, 국가의 근본이 인민에게 있음을 강조한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이어 2017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올해(2019) 신년사에 이렇게 등장시킨 것이다. ‘민족’, ‘인민’, ‘(사회주의)국가’를 3위 일체화 한 것이다. 좀 더 그들의 사상인 주체사상에 입각해 그 (철학적)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수령-당-대중의 3위 일체라는 논리구조와 맞닿아 있다. 그렇게 민족, 인민, 사회주의국가를 운명공동체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회주의체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최고야’라고 한 것과 같게 된다.

또한 주목해서 봐야할 지점은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기본에 아주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제7차 당 대회(2016)를 통해 밝힌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 그 연장선상에서 신년사가 발표되어 있어서 그렇다. 이유는 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 그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봐야한다.

“2018년은 우리 당의 자주노선과 전략적 결단에 의하여 대내외 종사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당의 자주노선’과 ‘전략적 결단’일 텐데 먼저, 당의 자주노선은 2016년 제7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을 일컫는 것으로 보이고, 다음으로 전략적 결단은 2017년도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 총집중노선(이하, 경제건설 총력노선)의 선포인 듯하다.

그러면서도 또 들여다봐야 할 것이 ‘사회주의 건설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이다. 어떤 의미일까? 2016년 제 7차 당 대회에서 채택한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과 경제건설 총력노선에 의거한 사회주의 강국건설 그 내용적 형태가 사회주의 문명국가로의 ‘새로운 단계’진입일 텐데, 그 문명국가가 철저하게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렇듯 이번 신년사에서의 독해핵심은 총괄적으로 북 체제가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해내어져야만 하는 그 어떤 내용도, 또 체제전환과 관련한 그 어떤 힌트도 유추할 수 없는 완벽한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원인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는 희망적 근거가 그 어디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북이 제아무리 수령제중심의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띄고 있다손 치더라도 수령 개인의 독단과 독선,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그런 이미지와는 아주 거리가 먼 모습의 확인이다. 신년사가 2016년에 채택된 사회주의 완전승리노선에 의해 발표되어졌다는 그 사실이 집단과 조직 속에 있는 수령임이 확인되어져서 그렇다.

더 불어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라는 총적구호가 그것인데, 여기서 우리가 해석해 내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최종종착지가 서방세계의 경제지원이라는 비(非)등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와 그 조건으로 확보되는 열린 ‘경제적 공간’에서 그 사회주의 방식의 자립, 자강, 과학기술혁명에 의거한 ‘새로운 진격로’가 만들어 가겠다는 그런 방침을 확약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북이 요구하는 대북제재완화와 해제를 자꾸만 경제적 지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이유가 그렇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첨언하자면 제재완화와 해제는 자신들이 설정하고 있는 ‘사회주의 경제적 공간’을 확장하는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음의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4월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는 병진 노선의 위대한 승리 하에 토대하여 우리 혁명을 새롭게 상승시키고 사회주의 전진 속도를 계속 높여나가는 데서 전환적 우위를 가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가 그것인데, 확인은 국가 핵무력 완성(2017.11.29.)에 따른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의 전략적 노선의 정당성과 ‘사회주의 전진 속도를 계속 높여나가는 데서 전환적 우위를 가지는 중요한 계기’에서 확인받는 것은 병진노선에 의해 마련된 그 예비, 즉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빈말이 아님을 증명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전환적 우위’로 말이다.

실천적으로도 위 총화가 이제까지 증명해내지 못했던 퍼즐이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제까지 인민생활소비품에 있어 절대 다수(90% 이상)의 중국산에서 국산화비율이 높아진 이유확인이 그것이다. 즉, 북(조선)이 2018년 한 해 동안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 전환한 이후 자력갱생에 의한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얼마나 힘썼는가하는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집중 현지지도뿐만 아니라 ‘군수공업부문에서 군사장비만 생산한 것이 아니라 경제건설에 요구되는 각종 기계제품들과 인민소비품들을 생산한 사실’에서도 뚜렷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핵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가 보다 분명해진 것이다.

참고로 이 부분과 관련된 부가적인 설명을 다음과 같이 좀 하고자 한다. 농업부문인데, 아시다시피 북은 여전히 식량사정이 좋지 않다. 한 해 약 64만여톤(FAO발표, 2018년 기준)이 더 필요할 만큼 그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경제건설노선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에서 확인받듯이 관련하여 그 변화의 싹은 분명 보인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 비해 농업부분에서 지속적으로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종석 박사조차도 <한겨레신문>에 “요즘 북한이 굶지 않는 이유, ‘다수확 농민’”(2019.1.06.)이라는 칼럼을 기고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2019) 신년사에서 언급한 ‘다수확 농장원(농민)’에 주목한다고 하였는데, 정확한 문장은 “농업부문에서 알곡증산을 위하여 이악하게 투쟁한 결과 불리한 일기조건에서도 다수확을 이룩한 단위들과 농장원들이 수많이 배출되였습니다.”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박사의 분석에 아쉬움이 좀 남는 부분 때문이다. 그도 사회주의 경제조치의 일환으로 마련된(제도 개선된) 포전담당제를 누구나 유혹에 빠지고 싶었던, 그 예의 자본주의적 방식의 ‘개인농’으로 이해했다. 과연 그런가?

 

반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 첫째, 이 글을 쓰면서 대전제했던 그 수많은 제도개선과 같이 포전담당제도 농업부분에 있어 사회주의적 제도개선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6.28방침‘을 일컫는다. 그 방침에 따르면 기간 대단위 중심의 즉, 집단관리체제는 그 생산과 분배시스템에서 큰 약점이 발견되었는데 다름 아닌 평균주의(강조, 필자)가 농민들의 생산 열의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총화토대가 그것이다. 즉, ’필요에 의한 분배법칙‘이 작동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능력에 의해 분배‘되는 사회주의체제하에서의 평균주의는 생산성 저하를 빗겨나가지 못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15-30명 내외의 분조개념을 5명 이내의 포전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즉, 제대로 댄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재구축해 생산성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협동농장체제를 구축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북(조선)식 표현으로는 사회주의 경제법칙 내에서의 ‘개건’이 이고, 이는 자본주의적 방식을 도입한다는 의미에서의 ‘개혁’과는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다.(물론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둘째는 북의 자립경제노선에서 근본정신에서 해당되는 자력갱생의 정신을 간과한 부분이다. 북은 아시다시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립이후 단 한 번도 자력갱생노선을 포기해 본적이 없다. 사회주의 우방국인 중국과 소련과의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관되게 자력갱생, 자립경제노선의 끈을 절대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사회주의권 경제가 망하고, 곧이어 불어 닥친 제2차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또 이 지구상에서 유례가 없는 각종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은 자력으로 현존하는 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선 총합체라 할 수 있는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그런 국가가 되었다. 자력갱생의 위력을 충분히 입증주고도 남는다. 따라서 농업부분에서도 국제사회의 지원과 의존보다는 ‘주체’농법에 의거한 자력갱생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그 문제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셋째는 예의 그 “단위들과 농장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문제인데, 즉 국가계획경제의 통제범위를 벗어났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인데, 이 문제 역시 북이 이번 신년사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통제 하에 분명 있다. 그런 만큼 이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되는 점이다. 즉, 북은 사회주의 경제법칙에 따른 계획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 개념이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통제이다. 그 전제하에 집단주의체제의 형태가 과거의 15-30명 내외의 분조개념에서 지금은 5명 내외의 포전담당제로 바뀌었는데 이 또한 국가중앙의 통일적 지도와 통제 범위 안에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북이 취하고 있는 관리방법의 혁신, 사업체계의 정비 등 모두는 국가 차원에서 그 통제와 지도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내각의 기업(협동농장) 지도, 기업(협동농장) 경영 방식 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北 내부문제 분석 마지막 글로 북은 올해(2019) 그 총적구호로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를 내새웠다. 이는 누가 뭐래도 자강력제일주의와 자체의 과학기술혁명에 의거한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을 명확히 했음을 의미한다. 해석은 이른바 서방세계와 보수수구세력들이 갖고 있는 그 희망적 기대; 개혁개방 노선과 체제전환에 대한 명확한 반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제가 해제된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자강력제일주의와 자체의 과학기술혁명에 의거한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을 보완해주는 역할(보완재) 그 이상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즉, 북의 경제노선은 철저하게 자립경제노선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이론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개발도상국이 취하는 일반적인 방식 차관, 외자유치, 원조 등과는 확연히 다른 자립경제노선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경제특구를 통해 외자유치도 이는 말 그대로 제한된 특별구역에만 해당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국가 경제성장의 주요 변수가 못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 경제이론과는 완전히 다른 북의 경제노선이고, 이 노선이 과연 끝까지 성공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는 분명 지켜볼 일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북이 미국과의 관계개선 목적으로, 7.1경제관리개선조치 등 그 모두를 자본주의적 방식에로의 개혁·개방과 체제전환의 징조로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도 관성적인 희망적 사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자강력제일주의에 대해서도 ‘닫힌’폐쇄형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그렇게 폐쇄형 운운하기 이전에 미국과 국제사회가 언제 한번 북에게 기회를 준 적이 있었던가? 이것을 먼저 물어봐야 하고, 그 다음서야 국제사회와 유례없는 미국의 대북제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태에서는 북(조선)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주’ 사회주의 자립경제노선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닫힌‘자주적’은 대북제제와 그렇게 연동되어 있고, 열린‘자주적’은 대북제제 해제와 그렇게 연동되어 갈 것이다. 또한 1960-80년대까지 그러하였듯이 미국과 관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자주’개념은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다음의 신년사 문장이 정확하게 해석가능 해진다. “우리는 자체의 기술력과 자원, 전체 인민의 높은 창조 정신과 혁명적 열의에 의하여 국가 경제 발전의 전략적 목표를 성과적으로 달성하며 새로운 장성 단계로 이행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올해도(2019) 여전히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국가목표를 완수하려 하는 북이 보인다.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입니다.”

통일뉴스, 2019년 1월 10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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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13대책 이후 거래량이 급감하고 일부 랜드마크 단지 위주로 가격도 급락했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올 여름 완연히 기운을 차린 듯한 모양새를 보이자 향후 서울 아파트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거의 모든 미디어들과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은 지금이 바닥이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먼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가격은 인구총량 및 생산가능인구의 변화, 도시화 정도, 산업구조의 변화 등의 요소, 각종 거시경제(금리, 환율, 경제성장률, 1인당 실질구매력, 실업률 등)지표, 수급 등의 요소에 의해 중장기적으로 규정된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정책- 공급(공급량-공급유형과 로케이션 등, 분양방식-원가공개, 후분양제, 청약제도, 실질주택보급율 등)정책, 수요(세제-취득세, 보유세 및 양도세 등)정책, 금융(주택담보대출-LTV 및 DTI- 관리)정책,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주거복지 정책, 개발이익환수장치(개발부담금, 재건축 규제 등)정책 등-도 부동산 가격에 중단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즉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장,중,단기적으로 허다하며, 경중과 선후가 있지만 지극히 복잡하다.

위에서 열거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에 호재는 찾기 어렵다. 인구 등의 장기요인, 성장률 등 거시 지표 등은 향후 서울 아파트 가격을 암울하게 만드는 요소이고, 서울에 신규로 공급되는 아파트 총량도 2024년까지는 충분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서울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강하게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격 상승에 친화적인 정책도 아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유일한 호재는 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인데, 이마저도 대출 관리가 엄격하게 되고 있는 점, 기준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다는 건 경제주체들의 체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호재라고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올 4월 이후 8월까지 거래량 상승을 동반한 전고점 회복을 보인 끼닭은 무엇일까? 부동산가격 상승을 주구장창 주장하는 미디어,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들,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의 여론조작과 그에 현혹된 시장참여자들의 가격상승기대감이 주범이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미디어, 자칭,타칭의 부동산 전문가, 대부분의 부동산 유튜버들은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다주택자들이 투기목적으로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지 않는 한 서울 아파트 수급이 문제 될리 없다)부족하니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화폐개혁을 하면 서울 아파트 가치가 더 올라갈거라고 주장하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하면 신규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갈 거라고 주장하고, 기준금리 인하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3기 신도시 토지보상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기승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론인 셈이다. 견강부회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서울 아파트 시장은 대세하락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장,중, 단기 요인들이 거의 모두 가격하락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 2014년 가을부터 시작된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세로 말미암아 강남과 마용성은 고사하고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의 신규 아파트 가격조차 평당 3천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가격 피로도가 극심하다는 점, 가격에 선행하는 지표인 거래량이 작년 8월을 정점으로 확연히 꺾였다는 점(올 8월 이후의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은 거래량이 줄면서 가격이 상승하는 장세인데, 이는 대세하락의 초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 반대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바닥이었던 2013년 같은 경우는 거래량이 상승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장이었는데, 이는 대세상승의 초입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등이 그 근거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는 사실, 서울 아파트도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시장을 지켜볼 때지 시장에 뛰어들 때가 아니다.

목, 2019/11/0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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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강화법안이 미통당의 몽니와 패악으로 20대 국회를 통과 못하고 사실상 주저앉았다. 종부세 강화 법안이 무산되자 시장에선 즉각 매물을 거둬드리는 소유자가 등장했다.

 

확실한 신호를 줘야 부동산이 제자리 찾을 것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할 일이 차고 넘치지만 무엇보다 먼저 처리할 게 종부세 강화 법안의 처리다. 시장참가자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줘야 부동산 시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시장참가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부의 신호는 보유세에 대한 태도다.

기실 2012~2013년 대바닥을 찍고 2014년부터 상승하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 가파르게 상승한 데에는 시장참여자들의 광기를 제어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 탓이 컸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는 시장안정 대책의 축차적 투입으로 인한 정책효과의 감소에서도 기인하지만, 보유세에 대한 극히 미온적인 태도 탓이 결정적이었다.

보유세 강화만큼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정책수단도 찾기 힘든데 문재인 정부는 한사코 이를 회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와 같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장장 6년 간의 상승랠리를 구가했다. 이는 역대 최장기간 상승기록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4년 9월 4억 6186만원에 불과(?)했던 서울아파트 매매중위가격은 올 4월 8억 3666만원을 찍었다. 무려 80%가 상승한 것이다.

그나마 이건 약과다. 신축아파트로 눈을 돌리면 정말 쇼킹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서초의 랜드마크 신축 아파트가 평당 1억원을 돌파했다느니 하는 소식은 그들만의 리그로 여기면 된다 싶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다. 마포의 랜드마크 신축 아파트가 전용 84제곱미터 기준으로 15억원을 넘고 영등포와 중구의 랜드마크 신축 아파트가 13억원을 넘는다. 교통이 그리 좋지 않은 뉴타운의 신축아파트가 전용 84제곱미터 기준으로 12억 내외이며, 변두리로 불러도 좋을 로케이션의 신축 아파트도 10억원 내외를 호가한다.

시간을 거슬러서 2014년 10월로 가보자.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고 불러도 좋을 한강변 서초 아크로리버파크가 2회차 분양을 했을 때로 말이다. 당시 아크로리버파크의 평당 분양가는 5천만원이었는데 이는 당시까지 역대 최고가였다. 이 분양가가 현재 마포의 대장 아파트 매매가격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불과 6년만에 ‘서울 아파트값의 강남화’가 진행된 것이다.

부동산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대오각성해야

부동산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는 무주택자들에게 악몽을 선사한 정부, 꿈과 희망을 앗아간 정부다. 반면 문재인 정부 아래서 서울에 신축 아파트(전용 84제곱미터 기준)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최소한 10억원대 부자로 비상했다. 투기에 가담하지 않은 무주택자들은 너무나 가난해진 반면 주택을 소유한 이들은 가치의 생산에 아무 기여도 없이 천문학적 부를 거머쥔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해선 정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맹성해야 옳다.

각설하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결자해지의 각오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서울 아파트값을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수준으로 돌리겠다는 목표를 천명하고 이를 달성할 정책수단들을 투사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종부세 강화임은 긴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에게 경제는 곧 부동산임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화, 2020/05/1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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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6.17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에 붙은 이상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 주요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들이 신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풍선효과 탓에 파주나 김포 등에 위치한 아파트들도 투기의 대상이 돼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6년 연속 대세상승을 이어와 6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격대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쇼크가 실물경제에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처를 입히는 중이다. 오를만큼 오른데다 미증유의 역병사태 탓에 실물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휘청대는 와중에도 서울 아파트 시장이 재차 꿈틀대는 이 기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 아파트값에 직접적이고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보다 기존 재고주택의 출회량

서울 아파트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수다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영향이 큰 요인은 기존 재고주택(신규 공급이 아니다)의 매물 출회량이다. 문재인 정부가 4번의 큰 부동산 대책들(2017년 8.2대책, 2018년 9.13대책, 2019년 12.16대책, 올해 6.17대책)을 연이어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기존 주택을 가진 사람들(특히 다주택자)이 자신들이 소유한 주택을 팔지 않고, 도리어 기존 재고주택 매매시장에 신규로 구매자들이 계속 유입되기 때문이다.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는데 구매자들은 많으니 거래가 될 때마다 가격이 계속 치솟는 것이다. 그럼 기존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왜 주택을 팔지 않는 것이며, 할 말을 잃게 많들 정도로 비싼 주택을 추격매수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주택을 사려고 아우성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적어도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부동산대책들은 나름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내리누르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그 대책들마저 취임 초기에 일괄투사된 것이 아니고 시차를 두고 축차적으로 투사되다 보니 시장을 내리누르는 건 고사하고, 기존 주택재고시장에 신규 구매자가 유입되는 걸 차단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재고주택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을 가해야 한다. 즉 다주택자들이 투매의 선두에 서고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조건의 1주택자들이 투매의 뒤에 서는 상황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게 만들 4종 정책패키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다주택자들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릴 1주택자들이 주택을 들고 가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다주택자들과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린 1주택자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을 4종 정책세트는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1주택자 양도세 감면 폐지+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강화+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전면적이고도 소급적인 폐지’다.

먼저 특례와 공제를 대거 없앤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을 최대한 신속히 발표해야 한다. 예컨대 현재 실효세율 0.16%에 불과한 보유세 실효세율을 10년 내 1%수준까지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싶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혁명적으로 높이기 위해선 보유세의 과표가 되는 공시가격의 현실화, 과세기준과 구간의 획기적 강화, 세율의 대폭 상향 등이 망라되어야 한다. 혹시 조세 저항이 우려되면 기본소득과 결합시켜도 좋을 것이다. 빠져 나갈 구멍이 거의 없게 설계된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는 기존 주택 소유자들과 주택 구매희망자들의 기대수익률을 큰 폭으로 떨어뜨려 기존 주택 소유자들은 주택 매도를, 주택 구매희망자들은 매수 의사 철회를 각각 결심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의 기본원리에도 정면으로 반하고 투기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혜택을 폐지하여야 한다.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는 똘똘한 1채를 비롯해 온갖 부작용의 온상이다. 이제는 실수요 1주택자라는 신화와 작별해야 한다. 1주택자라도 가격에 상응하는 보유비용을 응당 부담해야 하고,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당연히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아울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지금 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향유하는 양도차익은 최악성의 불로소득이다. 이런 최악성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차익의 대부분을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환수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 다만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강화를 앞두고 5개월 남짓의 유예기간을 줘서 다주택자들이 시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정도의 정책적 배려는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조세회피처와 투기의 소굴 역할을 하는 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전면적이고도 소급적으로 철회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자, 만약에 이 4종 정책패키지가 발표되고 추진된다고 가정해 보자. 다주택자들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1주택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응당 보유 매물을 시장에 급매로 던지고 시장을 빠져나가려 아우성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보유세 고지서가 날아오고, 5개월이 지나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강화가 시행되며, 1주택자도 양도차익을 온전히 사유화할 수 없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대부분이 소급적으로 폐지될 판에 어떤 간 큰 소유자들이 소유 주택을 들고 가겠다고 마음을 먹을 것인가? 시세차익은 고사하고 손해를 볼 마당에 말이다.

시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다주택자들과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린 1주택자들이 던진 매물들이 눈사태처럼 시장에 출회되면 추격매수세는 눈 녹듯 사라지고, 투매가 투매를 부르는 시장이 펼쳐질 것이다. 시장의 기조는 완전히 바뀌고 대세하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투기꾼을 쫓을 것이 아니라 투기꾼이 발붙일 공간을 없애야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투기꾼들을 쫓아왔다. 그리고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는 유능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은 투기꾼을 쫒는 것이 아니라 투기꾼이 발 붙일 공간을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파르티잔들을 소탕하는 최고의 방법은 파르티잔들을 직접 토벌하는 것이 아니라 파르티잔들이 운신할 촌락을 소개하고 양도를 끊으며 동선을 차단하는 것이다. 성벽을 굳게 지키고 곡식이 자라는 들을 태우면(堅壁淸野) 파르티잔들은 스스로 시들어 없어진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총선 압승을 통해 서울 아파트 시장에 매물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게 만들 4종 정책패키지를 입법화하고 추진할 힘을 지녔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의지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가 서울 아파트 시장을 확실히 하향안정화시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몫이다. 서울 아파트 시장을 못잡으면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월, 2020/07/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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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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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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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나는 이제 표층에서 심층까지,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발전하고 확산될 때에만 드러나는 세 가지 특성들을 논의하겠다. 지식경제가 현재 프린지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경우 지식경제는 그 본성을 숨긴다. 우리는 현재의 고립적인 지식경제가 제공하는 파편적인 증거에서 지식경제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더 심층적인 첫 번째 특성은 한계수확체감(다른 요소들이나 투입물들이 불변적인 상황에서 하나의 요소나 투입물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한계산출에서 수확체감)의 제약조건을 완화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키겠다는 약속이다.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생산성은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감소하기 시작한다. 경제생활의 어떤 특징도 한계수확체감의 제약만큼 경제생활의 보편적이고 초시대적인 법칙으로 여겨질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과 그 가능한 수정이나 대체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법칙과 종종 혼동되는 다른 관념, 즉 규모수익(returns to scale)을 구별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상이다. 규모수익이란 두 가지 정량의 관계를 말한다. 첫 번째 정량은 생산에서 모든 투입물이나 요소들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에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요소나 투입물의 증감이다. 두 번째 정량은 장기간에 걸쳐 표시된 산출물의 결과적인 증가 또는 감소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투입물의 증감에 비례하여 산출물이 증감할 때 규모수익은 불변적이다.

규모수익은 통상적으로 불변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규모수익의 체증이나 체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모든 투입물이 동일비율로 증가된 더 큰 공장은 더 작은 공장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덜 효율적일 수 있다. 규모수익불변의 발생은 결코 경제생활의 법칙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반박가능한 사실적 가정이다. 그러한 가정은 생산의 투입물이나 요소들 사이의 유익한 또는 유해한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그 가정을 부정할지도 모르는 무수한 상황 중 어느 것도 없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가정은 뉴턴 역학에서 불변적인 운동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의 허다한 경제분석과 마찬가지로 계시적 단순화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유용한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경제가 규모수익체증과 관련이 있고 이러한 추정을 정당화하는 원인을 이러한 생산방식의 일정한 특징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중 일부는 지식경제의 일부가 누리는 장점, 즉 플랫폼사업의 사용자 커뮤니티에 새로운 고객을 추가하는 데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러한 장점을 갖지 못한 지식경제의 다른 부분들이 어떻게 규모수익체증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기껏해야 지식경제의 특정 분야에 대한 주장이다.

다른 제안들은 지식경제의 기업들이 의존하는 통찰력, 기술, 인력들에 의해 발생되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실천적인 지식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다. 이러한 기업들이 판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그러한 지식을 풍부하게 구현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 지식기반 기술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지식경제의 기업들은 그들 주위에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 제도, 관행, 아이디어의 넓은 잠재 영역을 창조해야만 번창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육화되거나 암묵적인 모든 지식은 경제학자들이 “비경합적” 재화라고 부르는 유형을 대표한다. 지식재산법이 비경합적 재화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자 개입하여 이를 “배제적인” 재화로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비경합적 재화는 일부 사람들의 재화 사용이 다른 사람들의 재화 사용을 막을 수 없는 재화를 의미한다. 지식경제에서 공유된 암묵적 지식과 능력의 확산은 생산체계의 선진기업들과 선진분야들의 발전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 기업과 부문들(성공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선도성을 확장함으로써 번창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바로 이들은 (유형적 자원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축적에 의해) 지식경제의 비경합적이고 비배제적인 재화를 이용할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는 지식경제만의 특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비슷한 제한 아래서 이전의 생산형태들에서도 일상적이었다. 예컨대, 이전의 생산방식들이 19세기의 기계발명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발명가들을 지원한 과학, 문화, 제도들에도 의존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긍정적인 외부효과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의 전성기에도 일상적이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이나 긍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이러한 추측들이 과잉포섭이나 과소포섭 없이 그들의 주제(지식경제)를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추측들은 더 기본적인 결함을 가질수도 있다. 즉 이러한 추측들은 우선적으로 편의적이고 우발적이고 경험적인 가정에 불과한 표준(규모수익불변)에서 한계적인 이탈을 설명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산성의 미래에 대한 지식경제의 혁명적 중요성을 다른 부분에서, 즉 지금까지 사실상 경제법칙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진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을 완화하거나 역전시키는 지식경제의 잠재력에서 찾아야만 한다. 생산과정에 모든 투입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고 그 중 하나의 투입요소를 증가시켜보자. 그 투입요소의 증가에 대한 산출물의 수확은 증가하다가 한계에서 감소할 것이다.

산출물의 감소를 막고 회피하고 지연시키는 것은 개념적, 과학적, 기술적, 조직적 또는 제도적 혁신이다. 그러나 혁신들이 일련의 산발적인 일회성 조치들로 그친다면 각 혁신은 수확체감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투입요소와 등가적인 요소가 된다. 혁신은 산출물의 증가를 낳지만 이윽고 혁신이 가진 촉진적인 잠재력은 소진되고 혁신의 더욱 확장적인 사용에 대한 한계수확은 체감하기 시작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다른 투입물들이나 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생산에서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에 따른 생산성의 체감)은 규모수익불변과 모순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은 이 법칙이 적용되는 단기간에는 규모수익불변을 당연시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관행상 장기적이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이러한 법칙의 발생은 엄청나게 중요한 장기적 결론을 내포한다. 이러한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계수확체감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경제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근본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계수확체감의 기초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별로 없다는 사정은 주목할 만하다. 그 기초는 혁신의 일회적 또는 불연속적 성격이고, 이러한 성격은 생산체계에서의 진보가 생산체계 외부에 있는 과학적 기술적 (그 자체로 일회적인) 돌파구들에 의존함으로써 악화된다. 혁신은 한계수확체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다. 그러나 혁신이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회적이거나 불연속적인 것이라면, 각 혁신은 마치 동일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 아래서 새로운 투입요소 혹은 수정된 기존 투입요소인 것처럼 작동할 것이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 특히 지식경제의 바로 직전 형태인 공장제 대량생산과 그 선행 형태인 기계화된 제조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혁신들의 특성을 이루어온 세 가지 불연속 형태를 고려해보자. 첫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발견의 역사 자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의 발명과 이로부터 나오는 이론, 실험, 절차의 조직이나 규칙화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통찰을 과학기술적 발명에 적용하는 데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과학의 관행에 대한 과학기술적 발명, 특히 과학적 장비의 역(逆)작용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 불연속 형태는 생산체계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을 이용하는 데에서의 불연속이다. 이러한 중첩적이고 누적적인 불연속들은 생산 외부의 진보에 생산이 의존한다는 점과 결합하여 한계수확체감이라는 제약조건의 궁극적인 기초를 형성한다.

지식경제는 한계수확체감의 궁극적 기초를 무너뜨리고 따라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극복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잠재력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하여 한계수확체감의 완화 또는 역전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왜 규모수익체증을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원용된 이유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동시에 더 특수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다음 절에서 논의하게 될 지식경제의 더 심층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우리의 협력방식을 상상력의 작동방식과 더욱 유사하게 만들고 노동자가 기계의 거울이라기보다는 기계의 대립물이나 보완물이 될 수 있게 하는 과학적 실험주의의 모형에 따라 생산을 쇄신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불연속적인 상태에 머물지 모른다. 그러나 지식경제를 특징짓는 실험주의적인 생산은 과학적인 발견과 기술적 발명을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또한 더 지속적으로 생산활동으로 변형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주는 결과물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관행과 제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들에서도 스스로 끝없는 혁신의 원천으로 변한다.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을 더욱 닮아가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창조한 것을 더 기꺼이, 더 완전하게, 더 항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혁신이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띨수록, 혁신이 생산체계 외부에서 발전된 아이디어와 기계의 이용뿐만 아니라 생산체계 내부에서도 더 많이 일어날수록,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시키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가능성은 그 만큼 더 커진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기술 속에 구현된 지식과 관련해서도 나아가 노동과 자본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모든 투입요소와 관련해서도 완화되거나 역전될지도 모른다. 각 요소와 각 투입물의 성격과 그 생산적 잠재력은 지식경제의 일부가 됨으로써 변화된다.

이러한 사변적 명제들은 반증가능한 가설을 낳는다. 우리는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에 비례하여 그러한 완화가 발생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약의 극복에서의 성패는 한가한 호기심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성패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물질적 도덕적 이익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하거나 극복하는 것은 생산의 성격에 중대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경제사는 대체로 세 시기로 구분된다.

가장 원시적인 조건에만 해당하는 경제사의 제1기에서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제약은 현재의 소비를 공제한 잉여의 규모, 즉 마르크스가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라고 불렸던 바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본원적 축적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요한 연구대상인 그 시대의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한계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서 매매상품으로서 노동력의 취급에 대해서도 지배적인 설명은 잉여의 강제추출을 확보할 필요성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기술적인 노동분업의 계층적이고 전문화된 형태 아래서 노동자의 비인간화는 경제적 진보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미래 성장에 필요한 자본 스톡을 증가시키기 위한 조건의) 일부를 형성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오류를 범했다. 그들의 시대에도 이미 잉여의 규모가 아니라 관념적,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혁신이 성장에 대한 결정적인 제약이었다. 영국은 꽤나 높은 수준의 국내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농업적-관료적 제국들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적 연구는 영국이 도리어 다수의 아시아 제국들보다 낮은 저축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영국은 혁신과 이에 적합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서 이러한 아시아 사회들과 달랐다.

문명의 시작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역사 전체에 해당하는 경제적 진화의 제2기에는 혁신의 수준, 범위, 속도 나아가 생산기술과 생산안배에서의 혁신과 제도, 과학, 문화에서의 혁신의 관계가 경제성장의 주요한 제약조건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혁신은 성장의 주요한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저축은 성장의 원인이기보다는 성장의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혁신에 의해 촉발되고 지속된 성장은 희소성과 한계수확체감의 이중적인 비호 아래서 일어났다. 혁신은 비록 다면적이지만 단속적이었다. 혁신은 여타지속적인 관행과 안배에서 일련의 불연속적인 변화였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사람들의 협력방식과 인간의 편익을 위한 자연의 변형이나 자연적 요소들의 동원과 관련된 혁신이었다. 기계의 설계와 사용은 두 가지 유형의 실험(자연에 대한 실험과 협력적 관행에 대한 실험)의 흔적과 이러한 실험을 연관시키는 방법의 흔적을 간직하였다.

경제사의 제3기는 혁신이 그 단속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되거나 심지어 역전되는 때 시작된다. 희소성과 부족한 자원의 분배와 이용에 관한 다양한 방법들의 불평등한 결과는 계속해서 경제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혁신은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갖는다. 혁신은 생산체계 외부에서 도입된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게될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 내부적으로 된다. 좋은 기업이 좋은 학교를 닮기 시작하고 생산의 발전이 지식의 발전을 닮기 시작하는 까닭에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은 이완된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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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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