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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 위기’와 사측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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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 위기’와 사측 전략?

익명 (미확인) | 월, 2018/12/31- 12:53

[목차]

  1. 진짜 경영위기 맞나?
  2. 일시적인 위기인가, 근본적 위기인가?
  3.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나?
  4. 사측의 예견되는 전략
  5.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대차의 일부 현장 활동가들은 작금의 현대차 위기를 아직도 다소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껏해야 몇몇 악재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경영악화 내지는 인위적인 수치조작을 통한 회사 측의 의례적인 ‘엄살’ 정도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현대차에 있어선 앞으로도 당분간 지난 1998년과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그 근거로 사측과 노조는 이미 단체협약을 통해 대략 매년 2천 명씩 발생하는 정년퇴임을 통한 자연감축 방식으로, 향후 10년간 2만 명을 줄이기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6만여 명의 인력이 4만 명 정도로 축소되게 되어, 미래차 보급에 따라 엔진이나 변속기 등 기존 부속품이 없어지게 되는 것에 따른 인원감축 분을 얼추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공연히 대규모 구조조정 운운하는 것은 현장에 불안감만을 조성하고, 오히려 ‘고통분담’을 호소하는 회사 측에 좋은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지금의 현대차 위기는 이렇듯 대규모 구조조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낙관적’인 것일까? 일부 활동가들의 이 같은 판단과는 달리, 현장 내 30~40대 비교적 젊은 층의 정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감도는 것 같다. 50대 이상의 고참 들이야 이제 곧 정년퇴임할 것이기에 걱정이 덜 하겠지만, 아직도 창창하니 현대차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젊은이들로서는 그렇지가 않은 가 보다. 그들은 아마도 정년을 다 채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강하다.

이들 젊은 노동자들의 걱정은 사실 공연한 것이 아니다. 사측 경영진 스스로가 현재 현대차의 미래에 대해 별로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인용문을 한 번 보도록 하자.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최근 판매량 회복 시점을 전망한 내부보고서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 이 보고서에는 미국과 중국시장 판매량 회복이 단기간에 불가능해 최대 판매량(801만대)을 기록했던 2015년 수준으로 올라오는 시점을 5년 뒤인 2023년으로 봤다. 2023년 판매량이 회복되더라도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5년 8%대에서 7%대로 떨어진다. 이 같은 전망도 신차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신흥시장에서도 견조 한 성장을 지속한다는 전제에서다.” ([현대차 大해부]② “美·中빅마켓서 고전… 판매량 회복까지 최소 5년”, 조선닷컴, 2018.05.30.)

다소 비관적인 이 같은 판단은 학계와 자동차업계, 증권업계 애널리스트 등의 주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이들은 현대차가 내년까지 미국과 중국시장에서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최소한 “새로운 신차 사이클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는 고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판단 역시도 아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측면이 있다. 이들은 지금 현대차의 경영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그 근원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다. 또 현대차가 향후 부딪치게 될 자동차업계의 대변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지금의 위기는 현대차의 존폐와 관계될 뿐만 아니라, 조만간에 한국경제 전반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생각은 필자의 기우에 불과할까?

본인이 그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지금 불행하게도 현대차는 ‘3중 위기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제 자본주의 위기, 한국경제의 위기, 그리고 현대차의 자체 경영위기다. 이하에서 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국제 자본주의 위기

먼저, IMF 외환위기 때와 지금의 국제적 상황이 크게 달라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국제적 패권 지위가 크게 흔들리는 중이다. 이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는 지난 금융위기 이후 수습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 일국적 차원을 벗어나 지구화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누군가가 나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경제의 균형자적 역할을 해줄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신자유주의가 한창 기세를 떨칠 무렵인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 같은 역할은 미국의 몫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달러패권을 이용하여 세계경제에 있어 ‘소비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세계 자본주의는 자신의 과잉생산 압박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맞이한 이후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은 제 살 궁리에 급급한 실정인데, 현재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의 열풍은 신자유주의 이후 방향을 찾지 못하는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 ‘일국주의’로 후퇴하느냐, 지구화를 향한 전진을 계속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으며, 현재 횡행하는 보호무역주의는 세계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자본주의 전반의 모순을 한층 격화시킬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중미 간 무역전쟁은 미국의 대중 억제전략, 그리고 미국경제 자체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온 사정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발하였다. (필자의 레디앙 발표 글, “중미 무역전쟁―패권국가 미국의 최후 공세” 참조) 자력만으로는 자국 경쟁력의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충분히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미국은 자신의 패권국가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다른 나라에 자신의 부담을 전가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간의 중·미 간 무역전쟁의 진행과정이 보여주었듯이, 중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다른 동맹국들에게 부과되는 ‘고통 분담액’은 반대급부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점이 미국이 전통적인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연합과 일본, 그리고 멕시코·케나다 등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적과 우군을 가리지 않고 지금 무차별적인 무역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이다.

미국은 현재 거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그리고 빈부격차의 심화와 고용불안으로 인해 광범위한 저소득층의 불만이 폭발직전에 와있다. 이처럼 ‘자기 코가 석자’ 인 상황에서 다른 동맹국들의 형편을 봐줄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아닌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1997년 IMF 위기를 맞이할 때와는 상황이 분명히 달라졌다. 그 땐 미국이 소련의 붕괴로 인해 유일패권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으며, 국제 자본주의 지도자로서 나름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같은 미국이 이끄는 세계 자본주의는 당시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활로를 열어 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외환위기를 비교적 빨리 소화할 수 있었으며, 이후 세계경제의 확장기조와 인접국인 중국시장의 지속적인 확대, 그리고 엔고와 같은 유리한 조건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젠 그러한 조건들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며, 다만 엄중한 각국 간의 경쟁만이 남아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 직후 즉각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한 데서 보듯, 미국은 오히려 자국시장을 방어하고 한국시장을 공략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장 걱정되는 것이 미국의 ‘자동차관세 25%’이다. 얼마 전 GM이 미국 내 5개와 해외 2개 공장에 대한 폐쇄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 하자, 트럼프대통령은 “수입자동차 관세를 매기면 GM공장이 문을 안 닫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트럼프의 이 같은 위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 때문에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대미 자동차수출국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G20의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통해 중미 무역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카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이는 현대차를 포함한 전체 한국 자동차산업에 또 다른 커다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의 국내 생산량은 반 토막 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또 한 해 50만~60만 대 정도 대미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로서도 생산 공장 2개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된다. 이쯤 되면 현재 고사 직전의 부품회사들도 곧바로 직격탄을 맞고 무너질 공산이 크다. 현대차 노조가 “만약 미국의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폭탄이 현실화되면 대재앙 쓰나미로 다가와 한국자동차산업 몰락의 핵폭탄이 될 것” (현대자동차지부, 2018년12월10일자 성명) 이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경제의 위기

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신 과학기술혁명의 파도 한 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처 미래기술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한국은 자신이 그동안 자랑해왔던 제반 분야들을 하나 둘씩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처음 조선업종에 이어 지금은 자동차, 그리고 머지않은 장래에 반도체로 확대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재벌경영’의 구조적 족쇄에 갇혀 있는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물론이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별 다른 뾰쪽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기술혁명은 그 어느 때와 달리 개별 기업차원의 혁신능력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전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인 혁신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국가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체계 및 연구시설과 함께, 주택·의료·환경 등의 복지시설을 제공할 의무를 짊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튼튼한 사회보장체계의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취약한 재벌체제에 기초한 한국의 국가권력은 이런 면에서 볼 때 너무나도 부족하다. 능력과 의지 모두 결핍되어 있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지금 와서 이러한 것들을 갖추기에 이미 시기가 상당히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혀 그를 위한 사회적 합의조차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 역시도 이미 기존의 산업구조와 사회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안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전형적인 위기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는 그 대신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으로 인해,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은 날로 심화되고 인재는 고갈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더욱 황폐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미 15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이다.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가계부채는 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면서 도대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저신용·저소득자가 주로 몰리는 2금융권의 대출이 많이 불어난다는 소식은 매우 불길한 징조로 들린다. 그것은 벼랑 끝에 몰린 한계 채무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일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은행보다 훨씬 높은 보험·카드사·대부업 등 제2금융권의 대출은 올해 3분기까지 19조원이 늘어나서 대출 잔액은 이미 414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전체 가계대출의 27%를 차지하는 것이자, 2017년 한국 전체 GDP의 25%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처럼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국경제의 전반적 상황은 현대차의 경영위기탈피 가능성을 더욱 낮게 한다. 현대차가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내수의 뒷받침과 함께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향후 경제위기와 서민층 파산의 급증으로 내수의 급격한 위축이 예견되는데, 이는 현대차의 경영위기를 진일보 촉진하게 될 것이다.

(3) 현대차 자체의 경영위기

현대차는 지금 전통 내연기관차 부문에서는 중국의 급속한 추격으로 인해 기존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으며, 미래차(친환경차, 지능형차)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그룹들과 비교해 추격이 쉽지 않을 만큼 거리가 생긴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이하 두 가지 사실은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a) 이미 급락한 영업이익률을 단기간에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영업이익률은 연구개발비 규모와 비중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제약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연구개발투자가 크게 제약될 것이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폭스바겐, 도요타, GM 등 세계 주요 메이커들은 하나 같이 기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아직 수익이 나지 않는 미래차의 연구개발비로 쏟아 붓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내연기관차 분야에서 일정한 영업이익률이 올라주어야 미래차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이제 적자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는 현대차의 경영성적은, 향후 연구개발투자를 근본적으로 제약하게 만들어 선두주자와의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

(b) 여전히 ‘후계승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불안한 리더쉽.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먼저 고려해야하는 한국의 재벌경영은 위기 극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핵심 사업으로의 집중을 위해 비업무용 부동산, 세계 각지에 편재한 생산기지, 관계회사와의 복잡한 거래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은 한국 재벌의 속성 상 쉽지가 않다. 이 점은 GM이 위기 극복을 위해 취했던 태도와 좋은 대조가 된다. GM은 지난해에 독일 자회사 오펠과 영국 복스홀을 매각하면서 유럽 시장에서 과감히 손을 뗐다. 이어서 인도나 남아공 등에서도 잇따라 철수하여, 미국과 중국 등 돈이 되는 거대 시장에만 집중하는 전략으로 수익을 늘렸다. 이렇듯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한 비용과 자산은 대부분 자율주행차와 카셰어링 등 신사업에 투자하였다. 그 결과 올 초 미국의 기술평가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로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기업들에 대한 기술력과 비전, 상용화 전략, 생산력 등 10개 지표에 대한 종합 평가에서 GM이 가장 앞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 大해부]①’800만대의 저주’에 갇힌 현대차‘)

재벌경영으로 얽히고설킨 현대차가 이렇듯 오직 회사만의 발전을 위한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향후 현대차 위기와 한국경제의 위기는 서로 맞물리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위기는 그 자체로서 한국경제 전반의 위기를 촉진 할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생산액과 부가가치, 수출액, 종업원 수 모두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10%로 단일산업 중 규모가 매우 크다. 산업네트워크 분석을 통해서 보면, 자동차산업 및 1차 금속제품 산업이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들 산업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보다도 국민경제에서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i-KIET산업경제이슈, 제6호, 2017년2월6일) 이 같은 국민경제에 있어 핵심적인 지주산업의 몰락은 기존 조선업 불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8800여 곳에 달하는 협력업체가 직접 고용한 인력은 35만5000명이다. 판매 및 물류, 서비스 등 간접고용 인력까지 더하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용 인력은 17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도처에 인화물질로 겹겹이 둘러싸인 현대차는 사실상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현대차의 예견되는 앞날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필자가 보기엔 근본적 전환의 계기를 지금 마련하지 못한다면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본다. 기존의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나름대로 틈새시장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완전자율주행과 차량공유의 시대가 오면 어차피 세계 자동차시장은 플랫폼 경쟁에서 앞서있는 소수의 업체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술혁명은, IT와 기존 고급 기술력을 가진 두 선진 부분의 연합에 의한 소수 몇 개의 메이저를 중심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을 재편하게끔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가다가는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은 이들의 하위 파트너 내지는 심지어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기술종속과 플랫폼 의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금 애플이 대부분의 핸드폰 제조회사로부터 높은 사용료를 받아 가듯 상당히 높은 특허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하청업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대형악재 하나가 현대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의 이 같은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그것은 ‘대형 리콜사태’인데, 지난 2015년9월과 2017년3월 미국에서 실시된 현대차와 기아차의 세타2 엔진 결함 리콜에 대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적정성 조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포쓰저널>의 김성현기자가 쓴 기사에 따르면, NHTSA는 이미 조사를 마무리한 채 현대 기아차 측과 벌금 액수 등 후속조치에 대한 합의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며, 최종 결과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초에는 나올 전망이다. 조사 대상은 2011년―2014년 식 세타2 엔진을 장착한 현대차와 기아차 등 총 6개 차종인데, 이들을 모두 합치면 대략 290만대나 되는 규모이다. 해당 차종에서 이미 ‘미충돌 발화 사고’로 사망자까지 발생한 상태인데, 미국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 소나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엔진 교체 비용은 대당 300만원 안팎으로, 총 8조5천억 원 가량이 소요 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현대차 2년간의 순이익에 해당되는 액수이다. 여기에다 만약 현대·기아차가 엔진 결함을 속인 것으로 판정되면 형사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이 더해지게 되며, 미국 시장에서의 이미지 실추와 신뢰도 추락까지 감내해야 한다.(“현대차·기아차 세타2 엔진 발화원인 ‘거짓보고’ 의혹 NHTSA 조만간 결론”, 포쓰저널, 2018년11월20일자)

그렇잖아도 경영위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대차에게 있어 이 사건은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국제 독점자본은 그때쯤 가면 아마도 각종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진 현대차를 헐값에 인수하거나, 지배주주 자격으로 자본 참여를 통해 자신의 글로벌 생산체계에 편입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 재벌과의 연합은 그들에게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직접 표면에 나서지 않고서도 한국의 잘 정비된 ‘비정규직제도’와 국가의 특혜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초과착취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위기 시나리오’가 지금 당장 실현되기 보다는 향후 몇 년 간에 걸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명색이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의 하나면서 국내에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현대기아차그룹은 향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쇠락해 갈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3중 위기’에 직면한 현대차는 ‘주관적 의지’만 가지고서는 지금의 하강 추세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회사는 가능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위기의 전면적 폭발을 누르려 할 것이지만, 그러나 위기의 점진적 진척을 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고찰로부터 우리는 현대차 경영진이 들고 나올 카드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기술적 변화를 감안 하고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염두에 두면서, 결국 가까운 시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회사 측은 오히려 ‘어차피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대차 경영위기를 역공의 기회로 삼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마침 지금은 문재인정부가 경제위기로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며 구석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자신의 경영위기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차츰 구조조정 전략을 구체화한다면, 추가적인 다음과 같은 이득도 기대할 수 있다. 즉 경영위기는 현대차 개별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또 ‘재벌경영’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 전반의 거시경제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덮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며, 거기에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문재인정부에게 돌림으로써, 이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예봉을 꺾어 ‘타협적’이게 만들 수 있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현대차 정규직노동자와 사측의 지금까지의 일종의 잠정적 타협과 휴전의 시기는 점차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현대차는 이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여 기존의 경영전략을 일대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있다. 현대차의 운명에 있어 남은 것은 두 가지 방향밖에 없다. 자본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구조조정이든지,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재벌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분명한 것은 그 어느 쪽이든 지금까지의 ‘산업평화’는 깨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며, 그에 따른 상호간 ‘위기’의 책임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회사는 벌써부터 현장규율 강화를 들먹이며 현장의 주도권을 탈환하려는 움직임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예년과 다르게 금년 초부터 관리직 200여명에 대한 권고사직을 실시하였고, 그밖에도 노조 감시용 혐의를 받고 있는 ‘담장 감시카메라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사측은 또 지난 11월16일자로 의장3부 B조 도아반원 대부분에 대해 ‘작업표준 미준수(변칙근무)’를 이유로 중징계(감봉)하는 조치를 내렸다.

물론 이와 함께 회사 측 말을 잘 듣는 어용 대의원과 노조간부의 양성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노조를 확실히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어야만 앞으로 경영위기의 진척에 따른 일감 줄이기, 인원감축, 노동강도 강화 등의 구조조정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용 대의원들에 대한 매수 작업도 사실상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2000년대 초 경기가 좋을 때와는 달리 이들을 돈으로 달랠 수 있는 재정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이 그간 정규직과의 타협을 가능케 했던 물적 조건은 지금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현대차가 위기 심화정도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다분한 가운데, 일부 활동가들이 아직도 사측과 노조가 향후 10년간 2만 명의 ‘자연감소’를 협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별반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상황인식이 대단히 느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문제는 그 ‘10년’ 이란 긴 세월에 있다. 지금처럼 4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지금까지의 내연기관 시대와 획을 긋는 자동차업계의 일대 혁명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시기에 있어 10년이란 세월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아주 긴 세월’이 된다. 그 동안 어떤 일도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 경제위기가 도래할 경우 자본가들의 약속은 반 푼 값어치도 안 되는 한 장의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안이하게 그들의 약속을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허약한’ 노조에 대해 자본가들이 신의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Redian, 12월 16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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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7/06/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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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년, 여전히 안전은 뒷전이었다 (프레시안)

전시 행정으로 일관해 왔던 지난 정권의 안전 대책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시민의 참여와 권한 강화가 필수적이다. 일터에서는 노동자의 작업 중지권 보장과 하청 노동자 예방활동 참여권 보장, 시민 안전의 각 영역에서는 노동자, 시민이 참여하는 상설적 대책 구조가 마련되고 위험에 대한 알 권리와 참여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무차별적으로 완화된 안전 규제를 원상회복하고, 박근혜표 규제 완화 대책을 폐기시켜야 한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4328

수, 2017/03/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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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역사적 변화가 일고 있는 거대한 흐름에는 분명히 70년간의 적대적 대립을 청산하고 정상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북미간의 대화 노력이 핵심을 이루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역사적 관점과 동포애적 포용으로 북한을 배려하는 문재인 정부의 중재 역할이 돋보인다.

반면에 지난 수개월 짧은 기간에 북중 정상이 세 번이나 회담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사실 여부를 떠나 한국 내 많은 언론과 일부 전문가 그룹에서는 끊임없이 중국 패싱론 또는 홀대론을 제기하는 등 중국의 북한에 대한 관여와 개입을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호불호를 떠나 60여 년간 형성된 한미 간의 의존적 동맹관계의 연장 속에서 그동안 북한을 일방적으로 악의 축으로 몰고 김씨 왕조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악의적인 이미지와 논리를 조작해온 워싱턴 그룹이 이제 공격의 대상을 중국으로 돌리면서 한국의 친미 동맹그룹이 덩달아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여전히 미국 주류 여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워싱턴 그룹의 주요 단위는 상황 전개에 따른 손익계산의 주판알을 튕기는 군산복합체들과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 정객 및 정책 입안자들 그리고 실제적 행동과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미군부와 정보기관들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허위 정보와 조작된 뉴스가 제2차 대전 이후 지구적으로 진행된 대부분의 전쟁의 유발 요인들이다.

이러한 배경을 깡그리 무시하며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대의 변종이자 돌출이며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역사적 기회인 동시에 향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고려해야 할 변수와 위험은 첫째로 트럼프 자신이 보여주는 변덕과 예상 못할 변칙적 행동, 둘째로 그가 국제 관계에서 보여주는 파괴적인 고립주의적 성격, 그리고 국내정치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의 불안정성 등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언급하듯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이미 비가역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트럼프 자신도 비핵화가 20% 정도 진행되면 비가역적으로 판단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의 국제적 공언을 취소하고 핵무장으로 되돌아선다면 이에 따른 후폭풍은 김정은 정권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반면에 이에 상응한 평화체제의 구축은 위에 언급하였듯이 대단히 유동적이고 예측이 어려운 주제이다. 한마디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쌍비적 주제는 대단히 비대칭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과 중국의 실용정치: 쌍중단과 쌍궤병행

이러한 맥락에서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평화와 번영의 프로세스의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는 분명히 오랜동안 대립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북한과 미국이라는 당사자 간의 주제이지만, 북한이 핵무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미국과 협상을 제안하고 진행해온 배경에는 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트럼프 역시 비핵화를 언급한 수많은 트위터의 글속에 당사자인 북한과 김정은 보다 중국과 시진핑을 더 많이 언급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그간 십여 년 간의 불편했던 북중관계를 반영하듯이 북한의 고위당국자가 북한 핵이 단지 미국 본토를 겨냥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고 부당한 중국의 간섭에 대응한 것이라고 밝혀 온 것에 대하여, 중국은 동아시아 정책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관리와 개입이라는 두 개의 축을 수단으로 삼고 첫째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둘째 북한의 핵무장을 비타협적으로 불용, 셋째는 모든 갈등과 대립 요소를 대화와 평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

작년 가을 열핵폭탄으로 알려진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화성 14호 및 15호의 연이은 발사에 대응한 유엔의 유례없는 강경한 제재와 압력에 중국은 망설임 없이 참여하였다. 북한의 대외 무역의 80-90%를 차지하고 에너지와 주요 생필품을 제공해 온 중국의 비타협적 제재 동참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끈 결정적 배경이었다. 물론 북한지도부에서는 핵무장선언 전후에 이미 대미접촉라인을 통하여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무자비한 경제적 차단과 포위라는 저강도의 실제적 전쟁에 중국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북미간의 협상 여부와 일정표는 지금처럼 신속하게 진행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은 일체의 미사일 추가 발사를 중지히고 핵실험장을 폭파시켰다. 또한 조만간 북의 주요 미사일 발사장치의 폐기가 예측되는 가운데 미국은 한미군사훈련의 잠정적 중단을 발표했다. 중국이 지난 수년간 제안해 왔던 소위 쌍중단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이에 더하여 첫 방문한 북경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단계적 동보적 (steps in syncronization) 비핵화를 천명하면서 중국이 제안한 쌍궤병행(双軌竝行)의 방법론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고, 일괄타결과 리비아식을 검토했던 트럼프 역시 이를 수용한 모양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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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이에 필자는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과 전문가 집단에게 진지하게 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방안으로 중국이 제시한 상기의 두가지 방식 이상의 해결책이 있었는가? 이를 대체하는 다른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었는가? 넋놓고 워싱턴만 바라보며 눈치를 보지는 않았는가? 필자의 솔직한 심경을 말하자면, 두가지 방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준 이웃나라 중국당국에 감사하고 싶다.

평화체제 과정이 불안정하고 예측이 어려운 (unstable & unpredictable) 상황에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과정에 진입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안전과 평화를 보장해줄 확실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때 북미 실무협상과정에서 미 연방의회가 승인하는 수준의 국제조약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트럼프의 정치적 위상에 부담을 주고 역풍을 초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조약의 체결이 이루어 진다해도 종잇장의 서명은 미국 대외정책의 실제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 내 정치변화와 필요에 의해 언제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평화와 관계정상화 협상과정을 진행하는 동시에 별도로 안전장치로서 그동안 군사적 우호조약 수준에 머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핵우산 보장을 포함하는 한미군사 동맹수준의 약속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김영철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당시 한미동맹의 부럽다고 피력한 언급의 일단에서 읽을 수 있다. 한걸음 더 나가면, 한반도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중국이 함께하지 않으면 실제적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현하 목격하듯이 미국과 중국은 통상무역의 갈등 영역을 넘어서, 남중국해 및 동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동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고,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의 역사와 주권의 문제를 건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미중 대국이 전면적 대립관계로 진입하면, 한반도의 평화가 남북미간의 선언과 협정만으로 보장될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교와 문서적인 절차를 넘어서 중국이 진심을 담아 실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사상누각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상호 신뢰적 실행조치가 순항하고 있고 트럼프 자신도 북한핵이 더 이상 위협요소가 아니라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일 년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북한핵은 선제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자위용 무기이자 협상용 자산이었다. 유엔 안보리이사회의 제재결의의 핵심적 취지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과의 협상회담에 응하라는 압력이었고, 북한을 이를 성실히 이행하였다.

그런데도 미국 측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장사꾼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카드인지, 또는 미국 국내의 반대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네오콘들이 뒤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지 불분명한 사안이다. 미국 내 일부 기사에 의하면, 협상의 핵심 인물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실제적인 배후는 미국의 보수정객을 좌지우지하는 석유재벌 코크 형제들이며 이들 형제의 북한에 대한 일차적인 주요 관심은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수조 달러 상당의 지하 광물자원이라는 소문이 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미국의 경제적 제재와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사실상 제재를 비공식적으로 이미 해제한 것으로 보이며, 김정은의 연이은 방중 과정에서 상당한 금액의 재정지원과 경제개발에 필요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제공해 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개방과 경제 개혁의 총지휘를 맡고 있는 박봉주 내각총리가 동행한 사실과 노동당 및 정부의 책임자급 인사들 수백 명이 중국의 요지와 요소를 방문시찰하고 있다는 보도에서 향후 북중 간 경제협력의 큰 방향을 읽어볼 수 있다.

지난 6월 20일자로 세계적인 ‘파이낸스타임지’는 특별 기사를 통해 북한은 이미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또는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를 개발 모델로 삼고 중국의 농업과 향진기업의 발전 과정을 소상히 살펴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의 입장을 포장하는 유엔의 결의와 상관없이 이제 북한과 중국은 정치외교군사의 영역을 넘어서 산업과 경제의 발전을 향한 실제적인 협력적 동반자로 급속히 전진할 전망이다. 세 번째로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진핑과 김정은이 교환한 표현대로 ‘두 나라 관계의 불패성을 전세계에 과시하며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특별한 관계’’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의 평화라는 전망하에 북중 간 상보적이고 융합적인 공영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그간의 조심스러운 행보를 벗어나 ‘평화는 경제에서’라는 인식하에 동북아 평화체체를 위한 경제협력을 언급하면서 유라시아 철도 연결와 시베리아 PNG의 한반도 공급 그리고 전력의 동북아 수퍼그리드 실현 등에 러시아에 협력을 구하는 담대한 구상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하루가 시급한 실정에 처한 북한 주민들을 돕자는 유엔의 원조조정국이 요청하는 수백만 달러 수준의 인도주의적 북한지원 할당금조차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아직도 집행하지 않는 자기모순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이다. 미국의 결정과 유엔의 결의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타개하고 이끌어 가면서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동참을 요구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한반도라는 역사적 차량을 미국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대리운전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 간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목적지를 정해가는 자가운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북미 간의 협상은 철저하게 자기타산과 공존적 이해에 기초하여 전개해 온 보여주기식 극장정치(Theater Politics)이라고 볼 수 있으며, 북중 관계의 전개는 역사적 사실과 현실적 필요에 기초한 실용정치(Real Politics)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남북 간 포용과 화해에 기초한 정치가 담아내야 할 내용은 문재인 정부와 남한 시민사회에 던져진 숙제로 남겨졌다.

금, 2018/06/2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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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여러분과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 책은 오래된 책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세상살이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볼까요?


스물한 번째 책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국제노동기구 이코노미스트 이상헌이 전하는 사람, 노동, 경제학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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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고 냉정하다. 경제를 구성하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개념은 수치와 그래프 거기에 정교한 모델까지 더해져 높디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성과 같다.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 성을 허물어뜨린다. 저자의 대학 동기는 그에게 경제학이 아니라 문학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그만큼 그의 글은 인간적이고 성찰적이며 때론 말랑말랑하고 울컥울컥하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물론 경제현상을 냉철히 바라보는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무엇보다 필요한 영역이 경제와 노동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확고해진다.

시작은 소소하다. 노란 월급봉투, 우유배달, 화장실과 같은 일상적인 키워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단어들이 사람, 노동자와 만나 조금씩 비틀린 우리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우리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와 같은 의문이 한숨에 섞여 토해진다.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를 이야기하는 그 바탕이 저자가 스스로 말하듯 ‘성장과 주류’라는 경제학의 중심 프레임과 불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불화는 아름답다. 그는 경제 성장 뒤에 숨겨진 땀내 나는 노동을 기억한다. 주류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칼질에 피폐해진 다수의 삶에 눈물 흘린다. 막무가내 경제논리에 가라앉은 이 땅의 아이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현실에 분노한다.

그는 노동만을 이야기하지도 경제학만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건조한 숫자 안에 담긴 인간의 삶을 바라보며, 번번이 어긋나는 노동과 경제학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 길을 어떻게 맞닿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 수는 없을까?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덮자,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가 반드시 가져가야 할 질문이 남았다.

글 : 조현진 | 시민사업팀 연구원· [email protected]

금, 2016/0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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