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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앰네스티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줄 7가지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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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앰네스티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줄 7가지 성취

익명 (미확인) | 월, 2018/12/10- 09:31

2018년 올해 지금까지 일어난 변화


Release

불공정하거나 부당하게 수감된 최소 100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풀려났습니다

엘살바도르 2018년 2월

엘살바도르의 낙태 전면 금지법에 따라 2008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었던 테오도라는 2018년 2월 15일 석방되었다.

2월, 우리 모두가 수 년 간 기다리던 소식을 들었습니다. 테오도라Teodora del Carmen Vasques가 30년형을 감면받아 마침내 석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테오도라는 유산을 한 뒤 엘살바도르에서 불법인 낙태 혐의를 받아 철창 뒤에서 이미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였습니다. 우리는 테오도라의 자유를 위해 2015년부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멕시코2018

여러분과 같은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그의 석방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맥시코에서는 세르지오 산체스Sergio Sánchez가 조작된 증거와 불공평한 재판에 의한 살인 혐의로 8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풀려났습니다. 그의 변호인단은 ”여러분과 같은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그의 석방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중국2017

중국에서는 구금된 인권변호사 왕 쿠안장Wang Quanzhang의 부인 리 옌주Li Wenzu가 1000일 넘게 연락이 불가능했던 남편을 찾기 위해 그녀를 돕는 사람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톈진으로 행진하던 중 위협을 받고 베이징으로 강제 호송되었습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뒤 30명이 넘는 인원이 밖을 지키고 있어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았지만, 그들이 떠난 후에는 그녀를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었고 더 이상의 괴롭힘은 없었습니다. 리Li는 앰네스티의 국제적인 지지에 감사를 느끼며, 덕분에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2017년 11월

북한에서는 2017년 11월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어 수용소에 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구정화씨가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한에 있는 구정화씨의 남편은 앰네스티를 포함한 국제적 압력이 가능성이 희박했던 그녀의 석방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미얀마2018년 4월

또, 우리는 4월달에 미얀마에서 새로운 대통령 윈 마인트Win Myint의 사면으로 8,000명의 양심수가 석방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앰네스티는 미얀마 카친Kachin 지역의 목회자 덤다우 나응 랏Dumdaw Nawng Lat, 랑자우 감 셍Langjaw Gam Seng, 그리고 라파이 감Lahpai Gam의 석방을 위해 캠페인을 진행해 왔습니다.

에티오피아2018년 2월

같은 달, 에티오피아에서는 7년 만에 석방되었다가 다시 몇 주만에 체포되었던 국제앰네스티 양심수 에스킨더 네가Eskinder Nega를 포함한 활동가, 언론인, 블로거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자인 에스킨더 네가는 정부를 비판하고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기사를 썼다가 ‘테러’ 혐의를 뒤집어쓰고 징역 18년형을 선고 받았었습니다.

수단2018년 2월

2월, 수단에서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 도중 체포된 140명 중 80명이 국제앰네스티와 시민들의 강력한 캠페인으로 풀려났습니다. 이어 4월에는 야당 인사를 포함한 인권옹호자와 활동가 등 56명이 무혐의로 석방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아메드 파리드 엘 타옙Amjed Farid El-Tayeb은 “여러분의 연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노력, 활동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해 주었고 구금 상황을 개선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라며 앰네스티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터키2018년 3월

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노력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기여해주신 덕분에 제가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컴후리예트Cumhuriyet 신문사의 기자 아흐멧 식Ahmet Şık

3월, 터키에서는 컴후리예트Cumhuriyet 신문사의 구금된 세 명의 직원들 중 무라트 사분쿠Murat Sabuncu편집장과 기자 아흐멧 식Ahmet Şık이 각각 494일, 435일만에 풀려났습니다. 앰네스티의 ‘터키 미디어 해방(Our Free Turkey Media campaign)’ 캠페인은 2016년의 실패로 끝난 쿠데타 이후 부당하게 수감된 다른 많은 미디어 종사자와 언론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아흐멧 은 앰네스티에 “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노력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기여해주신 덕분에 제가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라며 메세지를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무라트 사분쿠는 “제 가족과 변호사들을 통해서 국제앰네스티가 어떻게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였는지 보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터키와 전 세계의 언론인들의 자유를 원합니다. 연대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고 덧붙였습니다.

카자흐스탄2018년 4월

4월 28일, 인권옹호자 탈갓 아얀Talgat Ayan이 카자흐스탄 북서쪽 아타이라우Atyrau에 있는 유형지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는 밤새 기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인권옹호자들은 “집으로 돌아온걸 환영해요!” “탈갓 은 우리의 영웅이예요!” 라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필리핀2018년 3월

필리핀 지부는 제림의 가족들과 함께 제림을 접견했다. 전 세계에서 온 연대 편지와 선물을 전달한 모습. 잘 찾아보면 한국지부 인권친화학교 어린이들이 보낸 엽서 뭉치를 발견하실 수 있어요!

버스기사 제리메 코레Jerryme Corre가 2012년 필리핀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한 뒤, 마침내 3월에 석방되었습니다. 제리메의 사례는 앰네스티의 2014년 Write for Rights캠페인과 고문중단 캠페인의 일환이었습니다. 제리메를 고문한 경찰 한 명은 2018년 3월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다른 사람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기니2018년

적도 기니에서는 만화가이자 활동가인 라몬 이발레Ramón Esono Ebalé가 5개월이 넘는 재판 끝에 석방되었습니다.

이란2018년

이란에서 양심수 모하메드 나자리Mohammad Nazari가 UN 특별조사위원의 주목을 받은 뒤 감옥에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수감자들이 처벌로써 의료 조치를 받지 못했던 것을 바꾸기 위한 앰네스티의 꾸준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중국2018년 1월

1월 중국에서는 우리의 캠페인의 결과로 세 명의 인권옹호자가 석방되었습니다. 작가 리 슈옌Li Xuewen과 쟝 후이동Zhan Huidong은 류 샤오보Liu Xiaobo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금되었고,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인권변호사 왕 유Wang Yu의 18살 아들 바오 쥬오슈안Bao Zhuoxuan은 2015년 7월부터 중국을 떠나려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호주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티벳2017년 12월

작년 12월 말, 티벳의 영화 제작자이자 전 양심수인 돈덥 왕첸Dhondup Wangchen이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가 티벳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죄로 중국에 구금된 지 10년만이었습니다.


Governments

정부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들었습니다

아일랜드2018년 5월

2015년 9월 2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낙태금지법 개정을 요구하며 사람들이 모여 행진했다. ⓒAmnesty international

안전하게 낙태를 받을 권리에 대한 오랜 캠페인의 결실을 맺고 있는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에 축하를 전합니다.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상의 낙태 금지를 뒤집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고 이는 여성들의 큰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이며, 이 과정에서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가 한 중대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총 투표 인구 중 66.4%인 1,429,891명이 낙태법 폐지에 찬성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몇몇 문제들에 대해 전통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던 사회도 진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2018년 4월

4월,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총리 아비 아흐메드Abiy Ahmed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사건과 구금조치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호주2018년 4월

같은 4월, 호주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참여하여 자칭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앰네스티가 해온 활동에 대한 작지만 큰 한 걸음입니다.

이라크2018년

앰네스티는 이라크에서 IS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여성과 어린이에게 행해지는 연좌제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이라크 당국이 해당 사건들을 조사하기 위해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멕시코2018년

멕시코에서는 연방법원은 당국에 강제실종된 희생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헌법 보호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멕시코의 사법 체계 안에서 드문 일이며, 앰네스티가 2017년 보고서를 통해 제기한 권고사항이 수용된 사례입니다.

스페인2018년 3월

3월, 스페인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앰네스티의 ‘감히 트윗할 수 있다면 해보세요’가 유행했습니다. 스페인에서 “테러리즘을 찬양”한다며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표현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는 스페인을 넘어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용감하게 트윗’을 했습니다. 3일 후, 스페인 정당연합은 앰네스티의 브리핑을 길게 인용하여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의를 상정했습니다.

나이지리아2018년 2월

2월, 나이지리아 공군이 집단폭력 발생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마을에 무장 전투기를 파견한 것을 앰네스티가 찾아낸 것에 대해 법무부와 공군이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차드2018년 4월

차드 운동가인 마하딘 바부리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앰네스티 회원들로부터 연대 편지를 들고 있다.받은 것을 보여준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마하마트 바부리Tadjadine Mahamat Babouri

차드에서는 또 다른 Write for Rights 캠페인 사례 중 희망적인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차드 법무부가 마하딘Mahadine을 은자메나Ndjamena 감옥으로 이송하고 사건을 더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마하딘은 2016년 9월 30일부터 구금되었다가 4월 석방되었습니다.

필리핀2018년 2월

2월 8일, 국제사법재판소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초기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앰네스티는 이 사건의 정의와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 조사, 캠페인, 검찰의 수사 착수를 촉구하는 로비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런 진전은 필리핀 정부가 주도한 군사작전에서 희생당한 가난하고 차별받는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러시아2018년 1월

앰네스티가 2017년 10월에 발표한 러시아의 비인도적인 수감자 이송에 대한 보고서는 대중의 우려와 당국의 개혁 의지를 이끌어 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올해 초, 러시아 교도소 시스템은 휠체어가 필요한 수감자들을 앰네스티가 비판한 “특별한” 객차을 이용해 이송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것은 수감자 인권 개선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입니다.

우크라이나2018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처음으로 인권 관련 요소가 포함된 새로운 초등 교육과정을 승인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꾸준한 지지와 참여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몰도바2018년

몰도바 교육부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앰네스티 몰도바지부가 개발한 인권 교육 커리큘럼을 채택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최초인 몰도바의 인권교육은 이번 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운영, 22개 학교의 7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육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2018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예멘 공격으로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앰네스티와 다른 NGO들은 사우디로의 무기 수출을 중단하라는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그 성과로 노르웨이는 지난 1월 3일 예멘 분쟁에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아랍에미리트에 무기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독일도 같은 달 19일에 이 분쟁에 관여하는 모든 국가에 대한 무기 공급을 “즉각”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말레이시아2018년

말레이시아의 현직 대통령 나지브 라자크Najib Razak의 정치적 스승인 마하티르 모하메드Mahathir Mohamad의 예상치 못한 선거 승리로 인해 말레이시아의 야당 지도자이자 양심수인 앤워 이브라힘Anwar Ibrahim이 석방되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석방은 말레이시아 인권의 획기적인 순간이자 이제부터 일어날 더 많은 개선의 신호탄입니다.

우크라이나2018년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앰네스티 주도의 LGBTI 행사를 놓고 살인 협박을 포함한 강제적 방해에 대해 앰네스티 우크라이나지부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우익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다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해당 행사는 보호 속에 이루어졌고 50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성공적인 토론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Corporates

기업들도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들었습니다

쉘(Shel)l / 애니(Eni)2018년

우리는 “석유 유출 해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로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Niger Delta 지역에서 일어난 과실>을 발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전세계 142개국의 3,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석유 유출과 관련이 있는 석유회사 쉘Shell 과 에니Eni가 발표한 데이터 분석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획기적인 프로젝트는 석유 유출의 심각한 증거를 드러내어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쉘과 에니는 사건에 대한 연루된 것을 부정했습니다.

르노(Renault)2018년

코발트 채굴 산업에서 아동 노동 착취와 학대를 뿌리뽑기 위한 앰네스티의 노력이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공급 받고 있는 코발트 광산 명단을 공개하도록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앰네스티 보고서 <재충전할 시간 Time to recharge>에 의한 성과로, 보고서에 언급된 전기차 회사 중 최악의 아동 노동착취 및 학대에 연루된 르노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르노의 새로운 노력은 인상적이며 환영할만한 변화입니다.

다임러(Daimler)2018년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들과 첨단기업들에 코발트를 공급하는 광산은 콩고민주공화국에 위치해 있습니다. CNN은 이 광산에서 일하는 아동과 성인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는지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CNN의 조사는 2016년 발표된 앰네스티의 보고서를 조명한 것으로, 이 보도에 대한 반향으로 메르세데스 벤츠를 소유하고있는 다임러Daimler가 코발트 공급망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Death penalty

사형제 폐지를 위한 더 많은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베닌2018년 2월

지난 2월 사형제와 관련된 좋은 소식이 아프리카에서 있었습니다. 베닌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14명의 사형수들이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감형된 것입니다. 이것은 감비아에서 사형집행을 멈추겠다는 발표와 함께 기니에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이 폐지되는 등의 긍정적인 발전에 연이은 성과였습니다.

이란2018년

Write for Rights의 사례 중 한 명이었던 사만 나심Saman Naseem이 사형의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추후 풀려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란2018년

사형을 선고받을 당시 18세 미만이었던 아볼파즐 사라히Abolfazl Chezani Sharahi의 사형집행을 연기하기 위한 국제적인 압박을 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란은 마약 관련 혐의로 수천 명을 처형해 왔습니다. 이란은 마약 관련 범죄에 대한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마약금지법 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개정 이후, 이란 정부는 일시적으로 사형집행을 중지하고 개정된 법에 따라 15,000명의 사형수가 새로 감형 심사를 받을 것을 예고했습니다. 만약 이 법이 잘 정착된다면, 사형집행의 큰 감소에 기여할 것입니다.

부르키나파소2018년 5월

5월 말, 부르키나파소의 입법부는 사형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새로운 형법을 채택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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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세상은 진실을 원한다:
내 딸 마리엘 프랑코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마리네테 다 실바

6개월 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내 딸, 마리엘 프랑코가 3월 14일 리우데자네이루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의 삶에서 마리엘이 차지하던 존재감만큼이나 엄청난 공허감을 남겼다. 그날 밤 이후, 가족들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마리엘과 함께 목숨을 잃은 운전기사 안데르손 고메즈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딸을 잃은 슬픔을 그 누가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의원이자 저명한 인권옹호자였던 마리엘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처럼 끔찍한 폭력을 당해야 했는지 날마다 고민해 보지만, 여전히 그 답은 알 수 없다.

온라인액션
브라질: 누가 마리엘 프랑코를 죽였는가
1,748 명 참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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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엘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도 타고난 지도자의 기질을 발휘했다. 마리엘은 언제나 남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마을 텃밭을 일구거나 소외계층을 위해 대학 입시 과정을 열고, 폭력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연대를 기반으로 구성된 집단 조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마리엘은 남을 돕는 일에서 보람을 느꼈다. 마리엘이 느끼는 책임감과 그녀가 꾸는 꿈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결국 2016년 마리엘은 브라질 제2의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시의원직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마리엘의 선거 운동은 리우데자네이루 정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는 흑인 여성과 페미니스트, 젊은이들, 빈민가 주민들이 모두 포함됐다. 마리엘은 총 득표수 5위를 기록했고, 당 내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마리엘은 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활동한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했다. 인권옹호자로서는 자신이 옹호하는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브라질 국민들이 제도권 정치에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마리엘은 자신의 활동을 국회에서도 고스란히 이어갔고, 그것이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내 딸 마리엘의 삶은 느닷없이 끝나버렸다. 마리엘의 공적 활동이 순식간에 차원이 다른 규모로 성장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마리엘이 곧 수도 브라질리아로 진출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리엘이 그렇게 쉴 새 없이 주장하며 신봉했던 집단의 이익을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엘이 피살된 이후에도 그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며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도에서 수천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양한 경로와 다양한 언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내 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됐다.

내 딸의 목숨을 앗아갔던 잔인한 범죄 사건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마리엘의 이야기를 전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우리의 입장을 재차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수사 책임당국에 매번 대상을 바꿔가며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호소하고도 있다. 그러는 동안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정하게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마리엘을 롤모델로 여기는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어디서든 내 딸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나 스티커를 가슴에 달고 다녔다. 브라질에서, 세계 각지에서 보내주는 성원이 우리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줄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정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엘의 생애는 가장 절실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마리엘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식을 잃은 고통에 시달리며 생애 가장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 어머니들을 지원하는 데 헌신했다. 피해자들은 보호를 받아야 할 정부 요원들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허술한 치안 정책으로 매년 수천 명의 흑인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마리엘은 그 허술한 정책들에 맞서 싸웠다. 지금, 나는 그 어머니들과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 나의 고통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슬픔의 크기는 그들 못지 않다. 피해자 어머니들은 매일같이 나를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나의 안부를 묻고, 내가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해주고 있다. 내 딸이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내게 같은 일을 해 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받은 온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연대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마리엘이 곁에 있음을 느낀다. 이 연대에는 그날 밤, 범인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마리엘은 제도에 책임을 묻기 위해 활동을 벌였고, 빈민가 출신의 흑인 여성인 주제에 지금까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차지한 역사가 없었던 지위를 감히 차지하려 들었다. 사람들은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고 느낀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전 세계의 활동가들과 함께 저항하며 결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내 딸 마리엘의 모범적인 행보가 국제적으로 더욱 인정을 받았고, 그것이 곧 정의를 요구하며 브라질 정부에 책임을 묻는 투쟁으로 변화했다. 마리엘은 다정한 사람이었고, 사랑으로도 투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 같은 존재였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영감을 제공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권옹호자였다. 우리 가족은 이 범죄의 원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내 딸을 죽였는지, 누가 살인을 지시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리네테 다 실바는 변호사이자 마리엘 프랑코의 어머니입니다.

수, 2018/09/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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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카리스마 있는 학생 굴리게이나 타시마이마이티Guligeina Tashimaimaiti는 굴곡 없이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굴리게이나는 최근 말레이시아 공과대학(UTM)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했고, 박사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까지 들은 참이었다.
총명한 학생이었던 그녀는 영예롭게 졸업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말 못할 어려움

굴리게이나 타시마이마이티(31)는 말레이시아 공과대학에서 유일한 중국 위구르 출신 학생으로, 2010년부터 이곳에서 학부 과정을 시작했다.
굴리게이나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 북부의 일리 지역에서 태어났다. 7년간의 말레이시아 유학 생활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학비를 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굴리게이나 역시 틈틈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사로 일하며 돈을 보탰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일리로 돌아갔을 때, 굴리게이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경찰에 불려가 기나긴 심문을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굴리게이나와 독일에 사는 그의 언니 굴지레까지, 가족 중 2명이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표적이 된 것이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새미(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함)”는 굴리게이나의 절친한 친구다. 그녀는 일리 경찰이 굴리게이나에게 여권과 학위증명서 사본은 물론 혈액과 DNA 샘플까지 요구했으며, 그 사실을 굴리게이나에게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학업을 마치면 중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친필 각서까지 요구했다.

굴리게이나의 아버지는 중국 정부로부터 딸이 졸업 이후 귀국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위협을 당했다고 굴리게이나에게 말했다. 복잡한 심정으로 말레이시아에 돌아온 굴리게이나는 학업에만 매진했고, 기록적인 시간 안에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새미는 굴리게이나가 성실한 태도와 우수한 성적뿐만 아니라 봉사활동까지 참여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새미는 굴리게이나가 밤낮 없이 쉬지 않고 학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걱정된다고 말을 꺼냈지만, 굴리게이나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가족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만을 남기곤 했다. 새미는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점차 친구가 말 못할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굴리게이나의 언니 굴지레는 20년째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결혼해 자녀 두 명을 뒀다. 굴지레는 중국 정부가 가족이 외국에 있는 위구르 사람들을 집중 탄압하고 있다는 소식을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굴리게이나가 석사논문을 마친 후 일리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자, 굴지레와 새미는 그녀를 만류하려 했다. 새미는 중국에서 수많은 위구르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굴리게이나의 안위를 걱정했다.

강제실종 전의 굴리게이나가 보낸 사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다

굴지레는 굴리게이나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재교육 캠프”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2016년부터 위구르 자치구역에는 “반극단주의센터” 또는 “교육변화센터”라 불리는 구금시설이 대량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을 정해지지 않은 기간 동안 임의로 구금하고, 이들에게 중국의 법과 정책을 강제로 교육시키는 시설이다.

굴리게이나는 자신은 정치 활동이나 “분리주의” 활동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으니 중국 정부에 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굴지레와 새미에게 말했다.
굴지레는 전화 및 위챗(중국의 인기 소셜미디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부모와 연락하는 것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많은 친구들이 위챗에서 두 자매를 조직적으로 차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굴리게이나는 일리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금방 말레이시아로 돌아올 것이라고 친구들을 안심시켰다.
새미가 마지막으로 굴리게이나를 본 것은 세나이 국제공항에서였다. 새미는 비행기까지 그녀를 배웅하며, 안전하다는 신호로 매주 위챗의 프로필 사진을 교체해 달라고 부탁했다.

굴리게이나는 2017년 12월 26일 말레이시아를 떠났다. 그 뒤로 그녀의 소식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굴리게이나는 일리에 도착하고 일주일 뒤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이후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수 주간 변화 없이 유지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경 사진이 감방처럼 보이는 어둡고 우울한 흑백 사진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바뀐 굴리게이나의 프로필 사진

언니인 굴지레는 위챗을 통해 굴리게이나와 연락을 취하려 했고, 말레이시아의 친구들 역시 메시지를 보냈다. 현지의 이웃 주민들과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 이웃 주민은 굴지레가 끈질기게 추궁하자 굴리게이나가 “교육 수용소”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는 힌트를 남긴 후 위챗에서 그녀를 차단했다. 이웃 주민, 친구, 가족들까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차례로 굴지레를 차단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제 위챗에 남은 연락처는 하나도 없어요. 모두 저를 차단했거든요.” 굴지레는 그렇게 말했다.

굴지레는 2017년부터 “재교육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외국에 있거나 외국에서 막 귀국한 위구르 사람들은 표적이 되어 “재교육”을 위해 끌려갔다.
굴지레는 굴리게이나 역시 그런 곳으로 끌려간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요.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학력이 있고, 박사과정에도 합격했는데 갑자기 저나 말레이시아 친구들과 연락을 끊을 이유가 없잖아요.”

 

위구르인 집단 구금

이처럼 굴리게이나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을 대상으로 한창 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중국 정부는 “극단주의” 및 “분리주의”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위구르인을 비롯해 이슬람계 소수민족 구성원을 집단으로 구금해왔다.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본인이나 가족이 외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인 다수가 표적이 되어 위협을 당했고, 중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갖가지 구금시설로 끌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언론에서는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이루어지는 탄압과 관련해 계속해서 보도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관련 내용을 독립적으로 보도하려면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재교육 수용소”에 관한 특정 정보를 입수하고 확인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걱정에 빠진 학교 친구들과 교수진

굴리게이나는 말레이시아로 돌아와 2018년 2월 18일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도 언니인 굴지레는 물론 말레이시아에 있는 굴리게이나의 학교 친구들과 교수들 역시 그녀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굴리게이나의 학교 동료 및 친구, 지도교수들은 말레이시아 공과대학에 굴리게이나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콸라룸푸르의 중국 대사관에 서한을 보내, 굴리게이나가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다양한 국가 출신의 외국인 학생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호소했다.
이 서한에는 “그녀는 매우 사교적이고, 중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고 적혀 있다.

우리는 그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역경과 고난을 견딘 끝에 그녀는 마침내 말레이시아 공과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굴지레는 동생이 있을 만한 장소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 매우 괴로운 심정이라고 했다.

“굴리게이나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에요. 항상 주변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걸 좋아했죠.” 굴지레는 그렇게 말했다. “평생을 공부만 해 온 아이예요. 정치적인 활동 같은 건 한 적도 없어요. 재교육 수용소에서 지낸 경험은 그 아이에게 상처로만 남을 거예요.”

굴리게이나의 학교 친구인 새미는 그녀가 결국 받지 못한 석사학위와 학교에서 수여한 상장을 보관하고 있다.

어서 굴리게이나가 일상으로 돌아와서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공부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다들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월, 2018/07/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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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오늘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예멘 남부의 기밀 수용소가 세상에 알려진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예멘 수용소의 조직적인 강제실종과 고문, 전쟁범죄에 필적하는 다양한 학대 등 참혹한 인권침해 상황이 현재진행형임을 전하고 있다.

<그가 살아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God only knows if he’s alive” 는 제목의 이번 보고서는 예멘 정부의 통제 밖에서 활동 중인  UAE군 및 예멘군에 의해 임의 체포, 구금된 남성 수십 명이 실종된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이중 다수가 고문을 당했고, 일부는 구금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용자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가 UAE 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에 의해 강제 실종된 순간부터 끝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며  “가족이 어디에 수용되어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지를 문의해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위협 뿐”

– 국제앰네스티의 티라나 하산Tirana Hassan 위기대응 국장

 

하산은 “강제실종된 이들을 포함해 일부 수용자들이 최근 몇 주 사이 석방되었지만 혐의도 없이 수개월 , 길게는 2년까지 갇혀있던 끝에 풀려난 것”이라며,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에게 구제를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AE는 2015년 3월 예멘 분쟁에 개입한 이래 ‘시큐리티 벨트와 엘리트 포스Security Belt and Elite Forc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지역 보안군을 조직해 훈련과 장비, 자금을 지원해오고 있으며, 예멘 정부를 통하지 않은 채 치안 당국과 협력 중인 상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6년  3월부터 2018년  5월 사이 아덴, 라즈, 아비안, 하드라마트, 샤브와 지역에서 보안군에 의해 구금된 남성 51명의 사례를 조사했다. 이들 사례 중 대다수가 강제실종을 당했으며, 19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앰네스티는 과거 수용자와 실종자들의 가족, 활동가, 정부 관리를 포함해 총 75명을 인터뷰했다.

국제앰네스티가 확인한 임의체포, 강제실종, 고문 등의 사례를 기록한 예멘 남부의 수용소 현황. (공식 수용소와 비공식 수용소를 모두 포함하였다. 국제앰네스티가 확인한 사례가 있는 수용소만 표시하였으며 인권침해가 발생한 모든 수용소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추적도 수포로 돌아가

사라진 가족의 소식을 찾아 헤매는 이들은 국제앰네스티에 애타는 심정을 전했다. 강제실종된 남성들의 어머니와 아내, 누이들은 정부와 검찰, 치안 당국, 교도소, 군부대, 인권 관련 기관을 오가며 지난 2년간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2016년 말 아덴에서 체포된 44세 남성의 누이는 국제앰네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동생이 어디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살아있는지도 신만이 아시겠죠.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셔서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의 행방도 모른 채로요. 우리는 그저 동생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목소리라도 듣고, 어디에 있는지라도 알고 싶을 뿐이에요. 지은 죄가 있다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최소한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게, 가족들이 면회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법원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식으로 잡아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일부는 가족이 수감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으나, UAE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예멘군 지도부는 이를 부인했다.

“동생의 생사 여부만이라도 확인해 주고,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답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 백번씩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들은 우리의 심정을 몰라요.” 2016년 9월 체포로 실종된 후 사망했다고 알려진 남성의 누이가 호소했다.

2018년 6월 19일, 강제실종된 수감자들의 어머니, 누이, 아내들이 아덴의 대통령 궁 밖에서 불법 구금에 항의하고 있다.

UAE가 지원하는 보안군에 의한 수감자 고문

국제앰네스티의 이번 보고서는 예멘과 UAE의 수용시설에 만연한 고문과 각종 학대를 기록하고 있다.

전, 현 수감자와 그 가족들은 수용소에서 구타와 전기고문, 성폭력 등 끔찍한 학대가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아덴 지역 반테러 부대가 비공식적으로 운용중인 악명 높은 “와다 홀Waddah Hall”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한 남성은 동료 수감자가 반복적으로 고문을 당한 끝에 시신 운반용 부대에 담겨 끌려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서는 햇빛도 못 보고 지냅니다. 제게 온갖 혐의를 씌우고 구타했죠. 그러더니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저를 풀어주면서 다른 사람과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신원 조회 착오였다, 미안하다’라고 하면서요 . 저는 내내 전기고문으로 고통 받으며 지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말투였어요.”

아덴 지역 연합군 부대 소속  UAE군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항문에 물체를 삽입하는 고문을 받았다는 전 수감자도 있었다.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가 땅에 묻힌 채 그 자세로 대소변을 본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문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고 말했었죠. 제가 실제로 당하기 전까지는요.”

– UAE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한 남성

앰네스티의 보고서에는 자택에서 엘리트 포스에 의해 체포된 지 몇 시간 만에 가족의 집 근처에 버려진 채 발견된 남성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 남성은 발견 당시 위독한 상태였고 몸에는 뚜렷한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숨을 거뒀다.

티라나 하산은 “예멘 남부에서 암암리에 활동 중인 UAE가 법 밖에 존재하는 평행 치안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곳에서 끔찍한 폭력이 걷잡을 수 없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산은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책임성의 공백 때문에 구금의 적법성을 따지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멘 검찰이 일부 수용 시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UAE군이 이를 무시하거나 석방 명령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표적이 되는 사람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에 참여 중인 핵심 국가로, 연합군은 2015년 3월 이래 예멘 분쟁에 개입 중이다.

‘시큐리티 벨트와 엘리트 포스’의 개입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이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와 자칭 ‘이슬람국가IS‘의 조직원들을 검거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다수의 체포가 근거 없는 의심이나 사적인 보복에서 비롯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역사회 인사, 활동가, 언론인, 무슬림형제단 예멘 지부인 알-이슬라당의 당원 및 지지자들과 같이 연합군과 UAE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 검거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AQAP와 IS 단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가족, 처음에는 연합군과 함께 후티스 반군에 맞서 싸웠지만 이제는 연합군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된 이들 역시 표적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직장이나 거리에서 체포되어 끌려가고, 그 과정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복면을 쓴 자들”로 불리는 무장 보안군에 한밤중에 자택을 기습당하고 체포되는 사람들도 있다.

당국은 지난 2년 간 아덴과 알-무칼라에서 시위를 이어온 수감자 및 실종자들의 여성 가족들을 위협하거나 공격하기도 했다.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UAE는 예멘 내의 불법 체포 관행에 개입하고 있다는 혐의를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한편 예멘 정부는 UN 전문가 패널에 UAE가 훈련과 지원을 제공한 보안군에 대해서는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렸다.

예멘의 무력 분쟁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침해 행위를 전쟁 범죄로 조사해야 한다. 예멘 정부와 UAE 정부는 즉각 현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남편과 아버지, 형제와 아들을 잃은 가족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 국제앰네스티의 티라나 하산Tirana Hassan 위기대응 국장

하산은 또 ”미국을 포함한 UAE의 반테러 파트너들도 고문 관련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예멘 내 수용시설에서 미국인들의 역할을 수사하고 고문이나 학대를 통해 얻은 정보를 활용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 2018/07/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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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이 글은 The Diplomat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과거의 잔혹행위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늘날 일본 사회의 여성관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소속된 중국인 소녀가 미얀마 랑군(양곤)의 한 캠프에서 들것에 앉아 심문을 기다리고 있다. (1945년 8월 8일)

선명하지 못한 흑백 화면 속, 커다란 구덩이에 여성 시신 수십 구가 버려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과 19초에 지나지 않는 영상이지만, 정의를 요구하며 수십 년간 계속된 투쟁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중국 운남성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상은 1932년부터 2차대전 종전까지 지속된 일본군 성노예제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이 영상은 2018년 2월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공개한 이후 전 세계 언론에서 널리 보도됐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자국의 전쟁 기록에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보상 문제에 대한 합의는 끝났다고 주장하며 잔혹행위가 자행됐다는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잔혹행위, 특히 여성에게 저지른 잘못을 적절하게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는 오늘날 일본 사회의 여성관에도 스며들어 있다. “위안부”라는 조직적인 전쟁범죄의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정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생존자들을 “직업적 창부”로 지칭하거나 증언 및 증거의 타당성을 공격하는 등 이를 부인하고, 비하함으로써 (성노예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군 성노예제에 대한 보도가 아직도 이러한 부당함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일본군 성노예제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그 뿌리는 일본의 분쟁과 점령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기원한다. 당시 일본이 성노예제를 고안하고, 운영하고, 확장시킨 방식 역시 일본의 뿌리 깊은 젠더 불평등과 타국민 차별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도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70년 동안 일본에서 여성의 지위는 극적인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가 갈 길은 멀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 조사 결과 일본은 성평등에 있어서는 144개국중 114번째로 최악 수준에 꼽혔다. 정부 및 공공, 민간기관에서 여성이 요직을 차지한 경우는 충격적이리만치 드물다. 일본 여성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상적으로 성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며, 세계적으로 여성 운동이 힘을 얻고 있는 지금도 이 문제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최근 오사카국제대학교 조사 결과 정부부처, 경찰, 언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힌 사례도 150건에 이르렀다.

젠더 고정관념이 팽배하며, 성차별적 태도는 여성들의 일상 생활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일본 형법에서 규정하는 강간의 정의는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부부강간을 명확히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등 국제기준에 따르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2차대전 종전까지 한반도, 중국 등지에서 일본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후손 역시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소위 ‘자이니치’라 불리는 한국계 일본인에 대한 공격도 만연하다. 한국계 학교는 고등학교 학비 면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혐오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거의 매일같이 위협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벌어진 잔혹행위의 규모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일본군에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 처형된 여성이 총 몇 명인지도 결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 감금되어 있던 “위안소”의 위치와 수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모두 파기되었다. 최근 성노예제에 관한 문서와 영상자료를 공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항하고, 지금도 국가의 손으로 자행되는 불의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넓은 범위의 개혁과 재발 방지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지 않을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생존자 대부분이 현재 90대 노인으로 그 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으며, 생존자들의 증언도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므로 배상에 관한 문제 해결은 나날이 더욱 시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군 성노예제처럼 일정 기간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을 자행하도록 국가가 직접 조직한 제도는 유례가 없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조직적 폭력이 일본만의 특이한 역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과테말라 등 최근 역사를 통해 우리는 여성폭력이 불러온 암울한 결과를 여러 차례 목격해 왔으며, 오늘날 미얀마에서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피해자에게 전적이고 실질적인 배상을 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범죄의 기저에 있는 여성 차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포괄적인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를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거의 인권침해를 바로잡는다면 오늘날 여성과 소수자의 상황을 개선하고, 이처럼 끔찍한 범죄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 2018/07/1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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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위대한 귀환 대행진' 참가자들을 향한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대상으로 무장병력을 동원해,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은 시위 참여자를 살해하고 부상 입히는 등 잔인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고 국제앰네스티가 밝혔다. 가자지구에서 ‘귀환 대행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앰네스티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신규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3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이 시위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35명이 숨지고 5,500명이 다쳤다. 부상자들 중에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기 위해 고의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스라엘에 포괄적인 무기금수조치를 부과할 것을 전세계 국가에 재차 촉구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경계지역의 철책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과도한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 4주 동안 세계는 이스라엘의 저격수와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철책 뒤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향해 실탄과 최루가스를 발사하는 모습을 공포 속에 지켜봐야 했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이스라엘군은 비무장상태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번복하지 않고 있다”

막달레나 무그라비(Magdalena Mughrabi) 국제앰네스티 중동북아프리카지역 부국장

또한 무그라비 부국장은 “이제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한 비난 성명만을 내놓을 시기는 지났다.  국제사회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이스라엘로 무기와 군용장비가 더 이상 이전되지 않게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잔인한 가자지구 봉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수많은 남녀와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인권침해를 가하기 더욱 쉬워질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환경에 항의하고,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어버린 그들의 집과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군용장비와 기술을 가장 많이 수출한 주요 공급국으로, 향후 10년 동안 추가로 380억달러 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 등의 EU 회원국 역시 이스라엘에 대량의 군용장비 사용을 허가한 상태다.

 

등 뒤에서 총격을 당한 시위대

국제앰네스티 분석 결과 사망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머리, 가슴 등 상체에 총을 맞은 상태였으며 뒤에서 총격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목격자 증언과 동영상 및 사진 증거를 보면 피해자 다수가 전혀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군인들은 고의로 이들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피해자 중에는 23세 축구선수 모하마드 카릴 오베이드(Mohammad Khalil Obeid)도 있었다. 그는 3월 30일 알브레이지 캠프 동부의 경계 철책 쪽을 등지고 서서 자신을 촬영하던 도중 양쪽 무릎에 총을 맞았다.

그가 총에 맞는 순간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 상에 공개됐다. 이 영상에서 그는 철책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위협적인 태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다시 걷기 위해서는 무릎 대체 수술을 받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선수로서의 내 삶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어요. 외국에서 선수로 뛰면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걸고, 우리는 테러리스트 집단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제 꿈이었죠.” 그는 앰네스티에 이렇게 전했다.

“전 세계 모든 단체와 국가 정부, 지도자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하고, 우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일은 세계 어디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전쟁 이래로 찾아볼 수 없었던 부상

가자지구 병원의 의사들은 국제앰네스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목격한 중상 환자 중 다수가 무릎 등 하반신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이는 2014년 가자지구 분쟁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던 전쟁 부상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전했다.

많은 부상자들이 극심한 골절 및 조직 손상은 물론, 10~15mm에 이르는 커다란 관통상을 입었다. 또한 향후 합병증 및 추가 감염이 발생하거나, 마비나 절단 등 신체적 장애가 생기게 될 가능성도 높았다. 무릎 부상자들의 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은 총탄으로 인한 파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이 점이 특히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군이 의도적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려 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또한 장기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부상자들도 다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상자들은 체내에 플라스틱 탄환이 남아있고 사출구는 찾아볼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이었다.

군사 전문가 및 법의학 병리학자들이 국제앰네스티가 수집한 부상자들의 사진을 검토한 결과, 가자지구 의사들이 목격한 부상 중 대부분이 5.56mm 탄환을 사용하는 이스라엘제 고속 군용소총 타볼(Tavor)로 인한 부상과 일치했다. 이외에도 구경 7.62mm의 미국제 수렵용 저격소총 M24 레밍턴으로 발포한 탄환의 흔적도 있었는데, 이 총탄은 체내에 파고들어 급속히 팽창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치료소를 찾은 500여명의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총탄에 의해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진 후 세포 조직까지 파괴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었다고 인정했다. 이 정보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들이 수집한 의사들의 증언은 물론 인도주의 비정부기구들의 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막달레나 무그라비 부국장은 “이러한 부상의 성질을 보면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이스라엘군은 이들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기 위해 고속 군용무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생명을 빼앗거나 불구로 만들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은 여지 없이 불법일뿐더러,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례 중에는 고의적인 살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심각한 제네바협약 위반이자 전쟁범죄”라며 “이스라엘이 효과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해 관련 책임자들을 형사 기소하지 못한다면, 국제형사재판소는 이처럼 살인을 하거나 중상을 입힌 사례에 대해 전쟁범죄가 성립할 가능성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조사에 착수하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보건부의 발표에 따르면 4월 26일 현재 부상자는 어린이 592명, 여성 192명, 남성 4727명으로 총 5511명에 이르며, 그 중 1738명은 실탄에 의한 부상자였다. 병원으로 이송된 부상자 중 약 절반 가량이 다리와 무릎에 부상을 입었으며, 목과 머리를 다친 사람은 225명, 배와 골반에 총을 맞은 사람은 142명, 가슴과 등에 맞은 사람은 115명이었다. 부상으로 신체를 절단한 경우는 지금까지 18건이었다.

시위 도중 당한 부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중 4명은 14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이었다. 기자 2명은 기자임을 명백히 알 수 있는 방탄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총에 맞아 숨졌고, 이외에도 많은 기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가자지구 병원에서는 이스라엘의 봉쇄조치로 의료품과 전기, 연료 공급이 부족한데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모두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의 다른 지역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특수 환자들의 이송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앰네스티가 기록한 사례 중, 20세의 기자인 유세프 알 크론즈(Yousef al-Kronz)는 결국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긴급한 치료를 위해 서안지구의 라말라로 이송해야 했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권단체가 법적으로 개입하면서 유세프는 무사히 이송 허가를 받고 남은 한쪽 다리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자지구의 응급구조사들은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에게는 물론 야전병원 인근에서도 최루가스를 발사하는 탓에 부상당한 시위대를 대피시키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불법적 살해, 회복불가능한 부상

‘귀환 대행진’의 주최측은 평화적인 행사를 의도했으며, 연좌농성과 콘서트·스포츠 경기·자유발언 등 평화적인 활동을 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거듭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철책 주변에 탱크와 군용차량, 군인 및 저격수를 배치하며 병력을 강화했고, 철책 주변 수백 미터 이내에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부 시위대가 철책에 접근을 시도하며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타이어를 불태우기도 했지만,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된 동영상과 국제앰네스티 및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인권단체가 수집한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철책에서 약 150~400m 떨어진 곳에 있던 비무장상태의 시위대, 행인, 기자, 의료진이 전혀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에게 실탄을 발포했다.

인권단체 아달라(Adalah)와 알 메잔(Al Mezan)은 이스라엘 대법원에 시위 해산을 명목으로 한 실탄 사용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동영상 12건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이 동영상에는 비무장 상태의 시위대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 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펄럭이거나(관련 영상) 철책에서 멀리 달아나던 도중 총에 맞은 경우(관련 영상)도 있었다.

지난 3월 30일 19세의 압드 알 파타흐 압드 알 나비가 철책에서 멀리 달아나던 도중(관련 영상) 이 소셜미디어에 게재되어 큰 화제를 일으켰다. 타이어를 들고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등을 돌린 채 도망치던 그는 뒤통수에 총을 맞고 결국 숨졌다. 4월 20일 금요일에는 14세 소년 모하마드 아유브 역시 뒤통수에 총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배경정보

지난 11년 동안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불법 봉쇄조치와 세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 결과 가자 경제는 급격히 쇠퇴했고, 주민들은 국제 원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가자의 실업률은 44%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 분쟁 이후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약 22,000명은 보금자리 없이 떠돌고 있다.
2015년 1월 국제형사재판소 소추부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상황의 예비조사에 착수했으며, 특히 2014년 6월 13일 이후의 범죄 의혹을 집중 조사 중이다.
국제앰네스티 역시 모든 분쟁당사자의 국제인도법 및 인권법 위반행위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대상으로 포괄적인 무기금수조치를 부과할 것을 전세계 국가에 촉구한다.
3월 30일 이후 이스라엘의 공습과 포격 및 실탄 발사로 시위대 이외에도 팔레스타인인 7명이 목숨을 잃었다. 1명은 철책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농지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던 농부였으며, 6명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소속 대원이었다.

수, 2018/05/0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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