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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선량한 본성’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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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선량한 본성’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익명 (미확인) | 화, 2018/10/23- 15:18

편집자 주: 더 이상 맹목적으로 탐욕과 경쟁 그리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제적 사회경제 시스템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명증해 지고 있다. 자본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많은 노력들이 제시되고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 US solidality Economy Network의 핵심 인물이자 매사츠세츠 주에 소재한 지역 협동조합 WellSpring의 책임자인 Emily Kawano 양이 매우 귀한 글을 제공한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천사적 본성 즉 연대, 협동, 상호성, 상보적 이타심, 나눔과 열정 등을 제도와 실천을 통하여 계발하면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연대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녀의 경험을 통한 신념과 원칙 7가지를 아래와 같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연대경제는 맹목적인 성장과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를 가장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전세계적 운동으로 하나의 계획이라기보다 연대, 참여 민주주의, 인종과 계급, 성별 등 모든 차원에서의 형평성, 지속 가능성 및 다원주의 등의 가치를 따르는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모든 상황에 일괄 적용할 수 있는 접근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운동에는 공통적으로 좋은 삶(buen vivir[1])의 개념이나 잘 사는 것, 자연과 그리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것의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실천에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 있으며, 주류활동과 ‘대안활동’이 섞여 있다. 공유경제 활동은 생산, 분배, 교환, 소비, 금융과 거버넌스 및 국가 등 우리 경제의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흔히 연대경제 하면 회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나 신용조합을 떠올리지만, 이런 조합은 수많은 가능성의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공동체토지신탁이나 시민참여형 예산, 소셜화폐, 시간은행, P2P대출, 구상무역, 선물교환, 마을정원 등 ‘공유’와 관련된 아이디어, 일종의 공정거래와 공유경제, 비영리적 돌봄서비스 등도 연대경제의 구성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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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선량한 본성’을 일깨워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연대경제는 자본주의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선량한 본성’을 촉진하고 장려하여 이러한 활동들을 확대하고 함께 결합하겠다는 것이다. 연대경제는 잘 계산된 자신의 이익과 이윤극대화, 경쟁 등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치들을 추구하는 대신 연대와 협동, 상호주의, 상호협력, 이타주의, 보살핌, 공유, 연민 그리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다. 점점 더 많은 분야의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은 원래 협동하도록 타고 났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생존과 발전은 함께 일하는 능력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생각과 비슷하다면, 연대경제 확립을 도울 수 있는 다음의 일곱가지 방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1. 자체공급과 공동체 생산 늘리기

역사적으로 공동체는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성장했다. 그렇게 도로와 관개 시스템과 집을 만들었으며, 살아가기 위해 약과 옷, 가구, 예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모든 것들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할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이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의 붕괴 후, 이런 형태의 경제가 가진 불안정성과 취약성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게다가 미국 내 일자리의 40%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어떻게 공동체가 곧 닥칠 경제 붕괴와 엄청난 일자리 소멸에 맞설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내는 것이 더욱 시급해졌다.

공동체 생산은 마을농장에서 농사짓고 닭을 키우는 것, 도시지역에서 ‘먹을 것’을 생산하는 것 등은 물론 중고시장과 상호협력, 재능공유 등 크게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식들을 포함한다. 나아가 최첨단 기술의 민주화에까지 미친다. 예를 들어, (수십년간 많은 마을이 대규모 실업상태로 버티고 있는) 디트로이트에서는 James and Grace Lee Boggs Center to Nurture Community Leadership과 Incite/Focus 등에서 최첨단 제조기술을 지역사회에 전달하는 ‘팹랩 (제작 실험실)’을 통하여 도시농업, 중고시장, 재능공유, 3D 프린터를 활용한 제조, CAD 기반 디지털 제작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생산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1. 돈 옮기기

대형은행에 계좌가 있다면 그 돈을 지역 신용조합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신용조합은 조합원, 즉 계좌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해당 조합원에 의해 운영되는 금융조합이다. 저소득 내지는 중소득 공동체를 위한 지역사회개발신용조합을 찾으면 더욱 좋다. 여느 은행과 마찬가지로 신용조합에서 보통예금이나 당좌예금을 개설하고, ATM/직불카드를 발급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용조합은 (대체로) 지난 2008년 경제를 무너뜨린 바 있는 약탈적 대출이나 다른 금융부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1. 새로운 경제단체에 투자 또는 후원하기

연대경제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예컨대, ‘직접공모 (Direct Public Offerings 또는 DPOs)’는 조합의 자본조달을 위한 대중적이고 성공적인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DPO는 기업의 임무를 믿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투자자를 찾는 공동체에 손을 내민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왔으나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순환대출(lending circles)의 경우, 매달 일정 금액을 납입할 수 있는 사람들의 그룹을 구성하고, 그 그룹의 각 구성원은 자기 순서에 납입된 총액을 제로 금리에 받게 된다. 클라우드펀딩에 참여하거나 연대경제 단체와 네트워크에 후원 및 다른 형태의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1. 투기가 아닌 거주를 위한 주택을 생각하기

기존의 부동산 시스템은 비정상적인 결과를 낳았다. 낮잡아 추산해도 미국 내 50만명 이상이 매일 밤 노숙을 한다. (별장과 팔려고 내놓은 집을 빼고도) 580만채의 주택이 공실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택이 점차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상품이 아니라 투기성 상품, 즉 엄청난 잠재 이익을 얻기 위한 도박판 자산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는 시장에서 매물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주택부족과 가격상승을 부추길 뿐 아니라, 2008년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폭발하여 세계경제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지금 주택을 사려고 한다면, 토지신탁이나 주택조합, 코하우징 개발 등 주택을 투기시장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제한적 자본’ 주택을 고려해보자. 이러한 접근방식에서는 주택가격의 적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판매가에 상한선을 둔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저소득 및 중소득가구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부를 축적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부동산 가격을 이들이 구입할 만한 수준으로 만드는 게 바로 이 제한적 자본 모델이다.

 

  1. 노동자협동조합을 찾거나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노동자협동조합은 조합에 소속된 노동자가 소유하고 관리하며, 이들은 비즈니스를 어떻게 운영할지, 수익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즉 나눌지 재투자할 지 아니면 수익 일부를 지역사회 프로젝트에 배정할지 등을 스스로 결정한다. 기업의 소유주가 노동자의 노동으로 생성된 수익 모두를 차지하는, 말하자면 착취이자 계급투쟁의 과정인 자본주의형 비즈니스와는 대조적이다.

뉴욕, 매디슨, 위스콘신 등 일부 도시들은 저소득층 사회와 유색인종 거주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 축적 기회를 제공하는 포용적 경제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노동자 조합을 육성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경제민주화에 관심이 있다면 기존의 조합에 일자리를 찾아보거나 직접 조합을 꾸릴 수 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조합 훈련 프로그램과 기타 지원을 제공하는 지원시스템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 새로운 경제체제 내에서 타인과 연계하고 이야기하기

관심이 있다면 U.S. Solidarity Economy Network (미국연대경제네트워크) 또는 RIPESS (국제사회연대경제네트워크)에 가입하여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작가라면 관련된 글을 쓰고, 학생이라면 관련된 공부를 하고, 교사라면 연대경제를 가르치고, 활동가라면 소속된 단체에서 연대경제 프레임워크를 채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연대경제를 지지하는 정책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협동조합 같은 기관에 참여하고 있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연대의 원칙 하에 작동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할 방법을 찾아보자. 더욱 강력하고 뚜렷한 연대경제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수백만가지에 달한다. 연대경제에 대해 이야기만 해도 가치 있는 일이다.

 

  1. 원칙대로 살기

자본주의는 경쟁 중심의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가치와 행동을 옹호한다. 그러나 엘리노어 오스트롬 (Elinor Ostrom, 공공의 자산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 수상) 교수와 연구진은 몇몇이 불공정 이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규칙과 집행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숲, 어장, 목장, 물 등의 자원이 개인 소유일 때 보다 공동체가 관리할 때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평등하게 관리될 수 있는 지 문서화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전제로 하면서 위의 방식으로 연대를 추구하는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돈의 힘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 상호주의와 배려, 동정 등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아이와 노인과 이웃, 나아가 공동체를 돌보는 가치 있는 사회경제적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연대경제를 찾아보자. 이미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제 당신 안의 선량한 본성을 깨우자.

 

에밀리 카와노 (Emily Kaw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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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은 크게 아리안족 문명과 셈족 문명 그리고 한족 문명으로 니누어 볼 수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원적 2천년전 코카써스 산맥 북쪽에서 농경생활을 하던 아리안족Arya이 이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문명은 대융합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당시 서쪽으로 이주한 아리안족은 에게해의 크레타 문명을 몰락시킨 후 그리스와 터키로 연결된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서 해상국가로 거듭납니다. 한편 남하한 아리안족은 이란을 거쳐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러 기존의 드라비다족을 내쫓은 후 인더스문명의 뿌리를 내리게됩니다. 이후 이란을 거쳐 아라비아 반도로 내려온 아리안족은 수메르와 아카드문명에 뒤이은 셈족의 바빌로니아 문명을 패퇴시킨 후 독자적인 페르샤문명을 구축하게 됩니다. 결국 아리안족은 인류문명, 특히 서구문명의 주축을 이루는 그리스로마 문명과 페르샤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을 구축한 주인공으로 거듭나게됩니다.

사진: 서울신문

따라서 아리안 문명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무엇보다 여러 측면에서 발현되는 다양성을 들수 있습니다. 이는 신관에서도 나타나는데 최고신을 Deva, Jeus, Deus, Dei라고 부르는 다신론으로 표현되었으며 또한 다양한 삶을 살 수있다는 믿을을 전제로한 윤회사상을 믿어 왔습니다. 또 다른 특징을 살펴보면 특히 그리스로 이주한 아리안들은 주로 지중해 해안가 도시들에 살면서 바다를 상대로 교역을 해왔기때문에 항해시에 반드시 필요한 시각중심의 문명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에따라 그들은 눈에 보여진 것(파도, 현상)과 보여지게 만드는 것(바다, 본체)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본체를 인식하는 능력인 이성을 중시하게 되는 로고스logos형이상학을 발달시키게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뒤에서 보듯이 본체 중심의 사고는 파르메니데스를 거쳐 플라톤에 이르러 절대적 실체론으로 전개하게 됩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에서 미리 정착했던 셈족 문명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무엇보다 사막이라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했던 그들은 원초적으로 초능력자와 초월자를 요청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기에 초월성과 유일성 및 절대성을 문명의 본질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그들이 믿는 신은 아리안문명의 다양한 인격신을 배격하고 오로지 최고의 단일신, 예를들어 수메르의 엘, 바빌론의 마르두크, 가나안의 바알, 유대교의 야훼나 이슬람의 알라를 숭배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실았던 바빌론의 우르지역에서 믿었던 최고의 신은 마르두크였기 때문에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유대인의 유대교 야훼는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내용의 유일신이라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사막에서 살았기때문에 모래바람들이 내는 소리를 중시하는 청각중심의 문명입니다. 하여 야훼의 말씀이 창조를 이루고 율법(십계명)이 된 유일한 소리의 문명으로 남게된 것입니다. 따라서 시각을 배격하고 청각,즉 소리만을 유일신의 증거로 보았기에 신을 시공간속에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한편, 중국을 살펴봅시다. 중국인들은 인격신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독특하게 하늘을 신으로 상정하여 왔습니다. 즉 신에대한 설문해자를 보면 신은 하늘의 번개 모습을 띄는데 이는 하늘이 위력과 영묘함 그리고 길흉화복의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신은 인간의 삶의 주재자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신은 창조자나 구원자가 아니라 인간사를 좌지우지하는 주재자이기에 그의 명령을 잘 따르는 자가 인간사회의 주재자, 즉 (황)제가 된다고 보는 천명론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즉 하늘의 천명을 받는 자는 덕을 갖춘 자이어야하기 때문에 천명론은 인성의 수양론으로 연결되어 집니다. 따라서 중국사상은 심(인간 마음)과 성(우주의 본성, 즉 하늘, 천명)은 출발부터 일치를 지향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즉성 사상은 이후 인도로부터 들어온 불성사상(불성은 가능태로서 보통 실체인 여래장과 혼동되고 있습니다)을 심즉시불(마음이 곧 부처! 즉 불성은 현실태로서 본래성을 의미한다할 것입니다)의 사상으로 격의하여 점수가 아닌 돈오 중심의 6조 혜능의 돈오돈수 사상이 선불교의 정통으로 자리잡게 되어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의 모태가 됩니다.

그리면 이제부터 아리안문명이 서쪽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에 터잡은 셈족 문명과 한족 문명에 끼친 영향을 알아봅시다. 먼저 아리안족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만나게된 셈족 문명,특히 기독교와의 만남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만남에서 촉매역할을 한 사람이 로마 시민권자이자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라할 것입니다. 그는 아리안 문명에 속한 로마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회심한 후에 셈족의 유대교를 벗어나서 예수의 가르침을 기독교로 보편 종교화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신의 말씀인 율법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인만의 종교틀을 벗어나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있기에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있다는 보편종교로서 기독교 사상을 구축하였는데 이를 이신득의,이신칭의라고 부릅니다. 이신칭의는 그 자신이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에 기독교를 본토 유대인만의 민족종교가 아니라 그 밖의 유대인 나아가 인종을 초월한 보편종교를 만들기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이를 뒷받침한 사상이 로마의 만민법사상과 스토아의 사해동포주의라할 것입니다. 하여 바울이 기독교 구축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할 것이나 근원적으로 당대의 그리스,로마의 존재론은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실체론이었기 때문에 결국 기독교는 바울을 만나 철학적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이데아와 현상으로 세계를 이분법적이고 수직적인 질서로 보는 실체론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실체론은 실체를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로 보기에 단일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있으므로 후행존재의 원인이 되는 선행존재는 존재근거인 실체가 되어 상대방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를 도구로 지배하고 이용하게됩니다.

(그러나 실체는 인간이 대상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기위한 언어적 허구개념이라는 점은 수차례 지적하였습니다만 이런 실체 개념으로 2천년동안 지구를 지배해왔으나 이런 허구적 개념으로는 현대의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없기에 새로운 존재론, 즉 생성론을 구축하여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을 제1원인의 실체, 즉 플라톤의 이데아로 간주하는 기독교는 피조물인 인간에 대해 초월적인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지배할 권한을 갖게되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수직적 계서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질서는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인간과 자연을 무자비하게 지배하게되는 제국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또한 선과 악 또한 실체로 간주하기때문에, 즉 악은 박멸해야할 실체이기때문에 중세의 대표적인 악인 마녀를 불에 태워죽이는 끔찍한 행위를 도리어 정의로 간주하는 비정상의 행태를 보입니다. 따라서 만일 바울이 그리스,로마가 아니라 인도의 불교문화를 찾아 동쪽으로 나아갔다면 상호의존의 연기법과 얽힘의세계로 이루어졌다는 화엄사상, 즉 상입상즉의 사상을 예수의 해방과 구원의 사상에 결합시켰더라면 오늘날 예수의 가르침은 어떻게 구체화되었을까요?

이에대해 BuddistChristian이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아리안족이 동진하여 인더스강에 독자적인 인더스문명을 개척하여 다신교인 힌두교를 낳았으며 이후 부처라는 걸출한 각자를 만나 힌두교의 존재론과는 전혀 다른 종교인 불교를 성립하게 됩니다. 힌두교와 불교의 큰 차이는 힌두교는 실체론에 근거한 사상이고 불교는 비실체론,즉 생성론,사건론,과정론 에 근거한 자연철학이라할 것입니다. 하여 힌두교는 범(Brahman)아(Atman)일여에서 보듯이 불교와 유사하게 보입니다만 힌두교는 브라흐만과 아트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고 불교는 존재를 실체가 아니라 사건들의 연기적 과정이라고 보고 있으므로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의해 내재적으로 서로 생성과정에 참여하기에 우주의 뭇 존재는 연기로 촘촘히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존재는 상호 내재하므로,즉 상입하기에 서로 남남이 아닙니다(즉 자기언급self reference). 또한 같이 참여하기에 서로 등가적 존재로서 평등하므로, 즉 상즉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서는 지배복종의 계서적 구조는 사라지고 오직 수평적 상호관계만 존재하므로 강자에 의한 약자를 배제하는 변증법이 아닌 강자와 약자가 중첩하여 제3의 대안을 제시하는 창발적 중도법을 따르게 됩니다. 하여 비록 아리안문명이 인도에 다신론과 실체론에 기반한 힌두교를 낳았으나 그럼에도 석가모니라는 위대한 각자를 만나 불교라는 비실체적 존재론을 통해 아리안의 실체는 허상에 불과하고 연기론이 실상의 법칙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제 인도불교가 중국에 미친 영향을 알아 보도록하겠습니다. 인도의 대승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연기사상외에 유가행 중관학의 공사상과 세친의 유식사상 그리고 화엄사상이 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인도 고승인 달마대사가 중국 남부 양나라에 들어갔을 당시 중국불교는 호국불교 또는 기복불교로 전락되어 부처 본연의 가르침이 쇠락되어 버렸으며 이를 알고난 달마태사는 부처 가르침을 신도들이 직접 깨닫게 하기위해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행을 하게됩니다. 하여 달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중국은 자신의 고유사상과 융합 convergence 또는 자신의 고유사상으로 격의 transformation한 중국만의 독자적인 선불교를 만들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중국의 고대 유교의 심성론은 심과 성 (본성,자성)은 일치한다고 (심즉성) 보았으며 또한 본성은 하늘로 부터 부여받았기때문에 부지런히 수행을 하여 마음의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성은 부처가 될 가능성을 의미하기에 자신이 불성의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고 이후 수행을 통해 불성을 깨우쳐 우주의 실상을 깨닫는다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여 중국의 심즉성 사상과 인도의 심즉시불 사상(이는 이(불)사(심)무애사상에도 나타납니다)은 서로 유사성을 띄기에 인도의 점수돈오 사상이 중국에서 선불교로 정착하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인도의 점수돈오 사상이 중국의 심즉성 사상에 힘입어 선불교로 격의하게되었다할 것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인도 불교는 불성을 여래장처럼 ‘가능태’로 보았기에 요가처럼 점수의 수행이 필요하였다고 본 반면 중국은 본성,즉 자성을 ‘현실태’로 보았기 때문에 찰나심에의해 돈오할 수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중국인들은 불성이 현실태이기에 즉시 알아차리기만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선불교는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나뉘게 되는데 남종선의 좌장인 신수대사는 인도불교처럼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야한다고 본 반면 6조 혜능은 본성 또한 본래무일물이므로 수행한다고 반드시 알아차릴 수있는 것만은 아니기에 수행이 의미없고 오직 찰라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는 위에서 본 중국 전통의 심즉성 관점을 온전히 따르고 있는 입장이라할 것입니다. 즉 신수는 점수돈오이고 혜능은 돈수돈오라할 것인바, 이런 관점은 기존의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과는 내용이 다른 문제이니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편 달마의 영향으로 중국인은 종래의 심성론을 불교적인 심즉시불 사상으로 다시 격의하게 되었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심즉성과 심즉시불은 같은 의미라고 보았으며 결국 마음과 우주 본성은 일치한다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금나라로부터 송나라가 남송으로 쫒겨나가게 되자 주희는 중화의 부흥과 사회기강의 확립을 부르짖게 되는데 이의 근본원인을 불교의 반사회성에 있다고 보았기에 불교를 척결하고 새로운 유교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는데 이 것이 신유학, 즉 주자학, 성리학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도는 불성을, 중국은 자성을 본성으로 보고 주객미분 이전의 본래면목이라하여 심즉성과 심즉시불 사상에 의해 본성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희는 우주의 본래면목(본성)을 주객을 번별하는 인간의 도덕성으로 격하시킨 후 성과 심은 일치하지가 않다며 이를 이원적으로 분리시킨후 성이 심을 수양하는 존재, 즉 (도덕)성 의 함양을 위해 성이 심을 양성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성이 아닌 심의 덕을 쌓기위해,즉 천명을 받기위해 심을 수양해야한다는 유학의 정신과도 배치된다할 것으로 주희의 신유학은 마음과 분리된 성중심의 실체론적 계몽주의라할 것으로 뒤에서 보듯이 실체론이 갖는 문제점을 모두 노정하고 있다할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그는 성을 도덕성으로 축소시킨 다음 이를 ‘성’이 아닌 ‘리’라고 칭하였으며 성으로부터 분리된 ‘심’, 즉 마음을 지닌 존재를 ‘기’라고 격하시켰습니다. 이는 불교의 ‘이’와 ‘사’의 사상의 본 뜻(자연과 인간의 일치!)을 완전히 배격해버리고 단지 형식적 이원적 구조만을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즉 그는 불교의 우주 원리를 인간의 윤리로 도용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하여 그가 불교의 우주원리인 이사무애를 형식상 차용하였지만 실상은 이를 이용하여 인간사회의 윤리기강을 잡으려하였기에 실제로는 그는 이사무애,즉 이기무애가 아닌 이선기후를 추구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즉 중화를 중심으로 그틀의 가치나 제도를 보존하기위해 타 민족을 도덕적으로 계몽하고 훈육하고자한 것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불교의 존재원리를 인간의 규범(도덕)원리로 격하시킨 후 선험적인 ‘리’에 경험적인 존재인 ‘기’가 복종해야 사회질서가 살아난다는 지극히 인간중심주의, 중화중심주의의 폐쇄적인 사상으로 유교를 전락시켰는데 이는 서구의 실체론 못지않게 리를 실체화시켜 못 존재를 그에 복종시키는 계서적 구조(3강5륜), 경직성(예론), 폐쇄성(중화사상), 인종차별(호론과 낙론) 등을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중국은 근대의 과학화, 민주화, 산업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퇴행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계 문명은 항상 상호 작용에의해 생성된다는 것을 알 수있으며 나아가 실체론적 존재론(유일신사상과 신유학등)으로 무장한 문명은 개방성, 역동성, 창발성이 부족하기에 새로운 문명의 대안을 찾는 중도적 자세가 결여되어 반자연, 반인간, 반문명으로 흐른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있다할 것입니다.

ㅡ하여 바울이 서쪽으로 가지않고 동쪽으로 갔거나, 달마가 동쪽으로 가지않고 서쪽으로 갔으면 인류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 2019/04/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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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가 되자 일반 가정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인터넷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아직 전화회선으로 거액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한정된 시간에 인터넷을 사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독일에서 알게 된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독일의 슈퍼에서 사온 딱딱한 두부를 요리해서 둘이서 먹었다. 독일인 지인은 “두부는 인터넷 같다. 처음에는 볼 수도 없었고 먹어 볼 기회도 없었는데 지금은 없는 곳이 없어 모두가 두부를 먹는다” 며 인터넷과 두부가 사회에 침투하는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스마트폰의 보급도 그것과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정보화 사회라는 것은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편리함의 중독에 빠져 있는 사이에 어느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물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의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는지.

나도 아무런 악의 없이 단지 흥미위주로 성범죄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던 중에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기사에 ‘범인은 재일교포’ ‘한국과 북한은 성범죄대국’이라는 문자가 난무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가벼운 생각과 무지가 얼마만큼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한국인)들은 괴롭히고 한반도 사람들을 멸시하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유럽 등 서양을 동경했고 실제로 프랑스에 체류한 적도 있지만, 한반도에 대해서는 이웃나라임에도 불구하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 지인도 생기고 가끔씩 한국을 방문하면서 젊었을 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무지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북한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한국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한국인은 일본인을 아주 오픈 마인드로 대해주고 일본인이 한반도를 통치했던 역사에 대해서도 이를 아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일본의 TV 뉴스에서 보도하는 한일 간의 여러 가지 문제가 실은 전쟁 비즈니스를 획책하는 일본 정부가 이를 선동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가와나카 씨도 조선학교에 가보세요”라는 한국에 사는 페스트리치 씨에게 권유를 받았을 때, “네”라고 짧게 대답은 했으나 전혀 모르는 타인인 내가 조선학교를 찾아가면 과연 학교 사람들이 나를 반겨주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문의 목적이 인터뷰로 정해졌을 때 지금까지 품어왔던 거리감 같은 것이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나는 일본인이 갖고 있는 차별적 사고를 조금은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내가 방문했던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는 나라와 지자체로부터 차별을 받아 가나가와현 내의 외국인학교 가운데서 유일하게 수업료 무상화제도를 적용받지 못하고, 현은 이 학교를 포함해 다섯 개 학교에 다니는 아동·학생에 대한 학비보조를 2016년 이후 정지했다. 이에 대해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은 요코하마 시내의 모처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라와 자치단체에서 솔선해서 차별을 하고, 국민의 차별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관제 헤이트다.”라며 이를 비판했다.

내가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을 때 김찬욱(金燦旭)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넓은 교내를 구경시켜주며 wifi 배선 등도 졸업생과 학부형의 협력을 얻어 자신들이 직접 깔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높고도 넓은 천정에 저렇게 긴 배선을 깔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릴텐데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이것을 직접 해냈다.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에서는 특히 어학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데, 학생들은 모두 조선어, 일본어, 영어의 세 언어를 철저히 배운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각 언어의 검정시험의 자격보유를 목표로 하여 어려운 공부를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한다. 일본 학교가 도입하기도 전에 정보교육을 실시하고, 정보리터러시 등을 배워 스스로 정보를 발신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있는 것도 이 학교의 특징 중 하나라고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말했다. 그것은 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여러 과제 중 일부인데, 무엇보다도 이 학교의 교육방침의 기본 베이스는 서로 돕는, 무언가를 잘하는 학생은 그렇지 못한 학생을 돕는, 상조(相助)의 정신을 기조로 한, 조선민족으로서의 마음과 자부심을 제대로 잘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과의 잡담에서, “장래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라고 물으니 어떤 학생이 “이 조선학교를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수줍어하며 대답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김찬욱 교장선생님에게 들려주자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학생이 학교 걱정을 하다니, 이런 건 원래 안 해도 되는 건데요…”라고 했다.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는 많은 학부형과 졸업생들의 도움에 의해 운영되기도 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봤을 때 그건 당연하다고 의식하고 있는 걸까.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학생들의 의견은 김찬욱 교장선생님을 위시로 한 이 학교 선생님들의 교육 성과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조선민족의 상조 정신이 계승되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교내에서는 누구를 만나도 웃는 얼굴로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전철 안에서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살벌한 분위기는 이곳에서는 털끝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수업을 견학해보니 학생들은 지진재해에 대한 방비를 확실히 하자든지, 인사는 중요함으로 특히 손윗사람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든지 하는 주제를 자신들이 직접 정해 발표를 하고, 음악수업에서는 아카페라로 합창을 하며 서로 웃거나 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학교와는 조금 다르게 느낀 점은 발표 전에는 학생들이 다소 떠들거나 장난을 치더라도 선생님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같이 웃으며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너그러움과 관대함을 느꼈다.

내가 재일조선인들을 차별하는 일본인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도 감정적인 발언이 아닌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그들의 사상을 분석하고 결코 비난하거나 하지 않는 태도는 김찬욱 교장선생님 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볼 수가 있어서 조금 놀랐다.

예를 들면 많은 일본인들이 종군위안부 문제라든지, 징용공의 문제라든지, 전쟁책임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왠지 우리들을 일방적으로 힐문(詰問)한다고 느끼는 건지, 이미 해결이 다 끝난 문제를 계속해서 반복해 문제시 삼는 조선민족은 질이 좋지 않다는 식의 감정적인 의견이 많다.

실제로 한국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속해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의 정치가가 계속해서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든지, 필요악이었다는 등의 실언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도 “한국 측 태도가 나쁘니 그런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정색을 하는 일본인들도 꽤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 학생이 “우리들은 사상이랄까, 우리들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도 제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갖고 서로 이야기를 한다면 편향된 정보에 현혹됨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을 듣고 그야말로 우리들 일본인은 우리 자신들의 생각을 잊어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여러 번 반복해서 무지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는데, 그것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무지 –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만연케 하고 있는지. 예전의 나는 단순히 인터넷에 실려 있던 정보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안다’는 것의 중요함조차 ‘몰랐던’ 것이다.

10대 때도 병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내 가족이 내밀어준 손도 보지 못하고 가족에 대해 못된 짓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야말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민족이 내민 손을 보지 못한 채 못된 짓을 계속하고 있는 구조와 겹쳐 보인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배려와 공정한 시선이라는 것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완고해져버린 사람의 마음은 실패를 실패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김찬욱 교장선생님과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의 학생들은 차별을 받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일본인과 평소와 같이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 ‘학교를 열린 장으로 해서 많은 일본인이 찾아와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안심하려 드는 사람들은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자기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받아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없다면 안정되게 서 있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자기들이 차별하는 상대인 재일조선인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그들은 차별을 용서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냉정하고 공정하게 대해줄 터이니.

학교를 떠날 때 “언제든지 또 오세요”라고 인사를 해준 김창욱 교장선생님과 밖에서 놀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또 인사를 해준 학생들을 보고 일본인들이 잃어가고 있는 마음을 그들이 ‘조선민족의 자부심’으로써 교육에 도입하여 끊임없이 계승하고 있음을 느꼈다.

따뜻한 그들을 만나보면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의 중단과 무상화제도에서 제외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모든 대응이 잘 짜여진 비지네스와 같은 차별의 실태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가와나카 요

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원

수, 2019/03/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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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나는 미국의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 주었으면 한다” 미국 전 FBI 수장이었던 제임스 코미가 NYT에 보낸 칼럼의 구절이다. 그는 트럼프로부터 대통령직을 보호해 달라는 간접적이고 부당한 압력을 거부한 대가로 모욕적으로 트윗터로 해임당한 트럼프 정권내 첫 번째 최고위직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트럼프의 자질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래를 위하여 진실이 밝혀지고 법치가 투명하고 흔들림 없이 공정하게 작동하길 희망하면서 담담하고 적어 내려가고 있다. 조폭 수준의 수많은 사건과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국이 여전히 위대한 국가인 것은 바로 뮬러와 코미 같은 강직한 공직자들이 미국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코미의 3월 21일자 뉴욕타임즈 기고문 :

미국은 지금 로버트 뮬러 특검의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보고서에서 그들이 원하는 특정한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탄핵당해 마땅한 범죄자라는 결과 혹은 그에게 기본적으로 죄도 없다는 결과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사람들 모두가 보고서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와야 “맞는지”는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트럼프씨가 미국 대통령직을 맡기에 도덕적으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뮬러 특검이 트럼프를 범죄자라고 발표하는 것을 지지하진 않는다. 나는 또한 뮬러 특검이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지지하지 않지만, 특검이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게, 그리하여 기소할 일은 기소하고 그가 조사한 내용을 보고서에 그대로 적을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했고, 연방수사국과 법무부는 지난 2년간 대통령이 특검에 개입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의 대통령이 사법부에 불을 지르는 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이러한 행태는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뮬러 특검의 수사를 막기 위해 그의 권력을 사용하진 않았다(만약 실제로 그랬다면 다른 차원의 비상사태였을 것이다. 수사의 신뢰도를 무시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수사자체를 막는 시도일 테니). 그러므로 우리는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궁금해하고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특정한 답이 나오길 희망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법치주의는 편파적이지 않고 완전한 수사에 기반을 둔 공정한 법집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수사가 관련된 모든 의혹을 제대로 밝히고 사건의 진상에 가장 근접하는 것만이 사법정의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나는 트럼프씨가 러시아인들과 고의적으로 공모하여2016년 대선에 개입하였는지, 혹은 그가 충분히 부패한 의도를 가지고 재판을 방해하려 하였는지에 대해 특검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알지 못하며, 그러한 결과에 대한 관심 또한 없다. 나는 오직 수사가 제대로,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졌는지 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는 정리의 승리가 될 것이며, 국가의 지도부가 진실과 법치에 대한 책무를 저버린 이 시점에도 가장 중요한 미국적 가치들이 보호되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나는 전세계에,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과 의문고리의 권력들에게, 미국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사법체계가 있으며, 이는 사법체계를 믿고 개인적 당파적 이익 이상을 생각하는 사람들 덕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체계가 도달하는 결론을 사람들이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정치와 무관한 법집행은 이 나라에 있어 맥동하는 심장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특검이 하는 수사에 대해 최대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일이다. 나는 수사의 종결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또 언제 이야기를 꺼낼 지에 대한 고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언제나 공익을 위해서만 행동해야 하며, 전통적으로 그래왔듯이, 종결된 수사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공공이 필요로 할 때 제공해야 한다.

나 스스로도 희망 하나를 품고 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트럼프씨가 탄핵을 당해 임기전에 집무실에서 물러나야 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의회에서 보기에 입증가능한 사실들이 있다고 할 때 의회가 헌법에 명시된 탄핵절차를 진행해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럴만한 일이 없었으면 할 뿐이다. 만약 의회에 의해 트럼프씨가 집무실을 나가야 한다면, 트럼프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쿠데타로 볼 것이며, 이로 인해 그들은 미국적 삶의 보편적인 가치에서 멀어지고, 결국 국가를 분열시키고 말 것이다.

트럼프씨를 비판하는 이들은 왜곡하기 어려운 무언가, 혹은 불만을 해소할 무언가가 나오길 바랄 것이다, 적어도 탄핵보단 나은 결과여야 한다. 2020년 대선은 완전하게 치러져야 한다. 비록 주요한 정책문제 – 이민, 총기, 임신중절, 규제, 기후변화, 세금과 같은- 에서는 이견을 보일지라도, 국민들이 잠시 시간을 내 더 큰 무언가를 위한 통합을 이뤘음을 보여줘야 한다. 더 큰 무엇은 미국의 대통령이 거짓말을 일삼고 법치주의를 연신 공격하는 사람이어서는 안된다는 믿음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정책에 대한 시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우리가 그러하기를 바랄 뿐이다.

 

James Comey

미국 전 FBI 국장

월, 2019/03/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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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 2020/03/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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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7시, 서울 북촌의 은덕문화원에서 다른백년 친교의 밤, ‘당신과 나와 다른백년’ 행사가 열립니다. 

이번 행사는 지난 6월 16일 창립대회 이후 다른백년의 창립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분들을 모시고 여는 첫번째 행사입니다. 

행사는 총 2부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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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행사는 실내에서, 2부 행사는 은덕원 내정에서 이뤄집니다. 가을밤, 서울 북촌의 멋과 정취를 만끽하실 것입니다.

1부에서는 다른백년의 정체성과 지향을 소개합니다.  2부에서는 참석하신 분들이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저녁식사와 다과가 마련돼 있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서울 북촌의 은덕문화원은 원불교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입니다.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멋과 정취가 넘치는 곳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은덕문화원은 현대건설 계동 사옥과 창덕궁 사잇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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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9/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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