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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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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익명 (미확인) | 수, 2018/08/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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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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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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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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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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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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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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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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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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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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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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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가득한 전장의 참상 낱낱이 기록하다

<태평양실기집>을 남긴 고 장윤만씨.
만화사우곡’ 마지막 부분.

◇ 오키나와 전투, 전범 일본군의 ‘자살과 전멸’

오키나와 전투(1945년 4월1일~6월23일)는 태평양 전쟁 말기 전범인 일본군의 ‘자살과 전멸’이 유도된 대표적인 전투다. 미군은 전투보고서에서 “오키나와에서 인간신경이 무너지는 원인은 광적인 적과의 끝없는 근접전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광적인 근접전이란 “덴노 헤이카 반자이” 라며 달려드는 자살돌격을 의미했다.

당시 일본 군부는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온 국민을 세뇌시켰다. 일본인들은 ‘천황=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사후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다고 믿게 됐다. 이렇게 평범한 일본인들은 살인마로 둔갑됐다. 이미 수년전, 일본군은 1937년 난징 대학살에서 ‘100인 참수경쟁’을 벌였고, 이 사실을 신문에까지 냈다. 일본군은 1945년 패망 직전에도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며, 할복자살·자살돌격의 광란을 이어갔다.

1945년 미군은 전투보고서에서 “일본군 사상자는 6월 상반기 동안 하루 평균 1,000명 이었다. 하반기엔 6월19일 2,000명, 20일 3,000명, 6월21일 4,000명 이상이었다”며 6월19일 이후엔 대부분 자살한 일본군 사상자수를 보고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의 원주민들에게도 ‘미군이 강간하고 잔인하게 죽일 것’이란 거짓말로 겁을 줘, 적어도 9만5000여명의 집단자살을 유도했다. 미군측 추산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투에서 전사한 일본군은 77,166명이었다. 미군 14,009명이 전사했고 영국군도 82명이 전사했다.

1945년 4월 게라마 제도에서 미 제77사단에 나포된 자살공격보트. 섬 전체에 잘 흩어져 위장된 은신처에서 350척 이상이 발견됐다. /사진제공=USA-P-Okinawa
1945년 4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해병대와 동굴 등에서 나온 오키나와의 주민과 어린이. /사진제공=미국국립문서보관소

◇ 오키나와 게라마 제도에서 미군포로가 된 장윤만씨

미군은 오키나와 본섬의 전투를 앞두고 3월 26일 오키나와 24㎞ 서쪽 섬인 게라마 제도의 자마미도, 아카도에 우선 상륙했다. 미군은 이 섬들에 있던 350척의 자살특공보트(신요)를 제거했다. 게라마의 주요진지는 5일 만에 미군이 점령했다. 게라마 도카시키도의 산 속에 숨은 일본군 사령관과 패잔병 등 300명은 미군의 식량지원을 받으며 종전(9월) 까지 3개월간 무혈대치만 했다.

게라마 제도에는 ‘아리랑 비’가 세 군데나 있다. 도카시키도에는 故배봉기 할머니 등 조선인 위안부 7명이 끌려와 있었고, 오키나와 전체에는 60여개 위안소에 600여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끌려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사·발표한 ‘오키나와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피해실태'(책임연구원 김민영 군산대 교수)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은 아카도에서 도망가다 잡힌 조선인 12명을 총살했다. 총살 장면을 목격한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총살되기 직전에 쌀밥 한 공기씩을 받아들자 정신없이 밥을 퍼먹고는 자신의 키 길이만큼의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구덩이 앞에 서면 일본군이 총을 쏘아 구덩이로 떨어졌다. 아직 죽지 않아 구덩이에 덮은 흙이 움직이면 일본도로 몇 차례나 찔러서 죽였다고 한다.

장윤만씨는 1945년 6월8일 자마미도의 산에서 미군에 체포 됐다. 오키나와 제1포로수용소를 거쳐 1946년 11월20일 그리운 경북 상주의 집으로 귀환 했다.

오키나와 포로수용소에 도착한 조선인 노동자(군속)들.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며 2005년 5월 오키나와현 요미탄촌에 건립한 ‘부조’와 ‘한의 비석’. /사진제공=민족문제연구소

◇ 태평양실기집 징용거귀고생기 완성

귀환 후 장씨는 1948년 2월 ‘대동아전쟁 실기집’을 완성했다. 본문의 첫제목을 ‘왜정시대징용거귀고생기(倭政時代徵用去歸苦生記)’로 했다. ‘대동아전쟁실기집’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면서 ‘태평양전쟁실기집’으로 변경됐다.

이 실기집을 감수한 반병률 교수(한국외국어대 사학과)는 ▲세남매의 아버지인 장윤만님이 거주지인 공성면 사무소에 징발·집결한 이후 오키나와에서 포로가 되기 까지의 전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희귀 자료다 ▲오키나와 현지로 수송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에서 한인·일본인 관리들과 군인들의 말과 행위, 노예선을 방불케 하는 수송선의 이송과정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자살특공보트의 준비와 계획, 조선인에 대한 감금·만행· 학대·살육 등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만화사우곡>은 죽은 동료에게 쓴 글의 형식을 빌어, 고국산천과 동료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심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점에서 특별한 문학적 가치가 있다. 드라마·영화·그림 등 문화 예술의 소재로서 활용가치가 높다고 분석했다.

/글·정리 김신호 기자 [email protected]

<2021-03-17> 인천일보

☞기사원문: “[일제 강제동원 피맺힌 증언] 오키나와, 그 지옥의 조선인 3

※관련기사 

인천일보: [일제 강제동원 피맺힌 증언] 오키나와, 그 지옥의 조선인 1

인천일보: [일제 강제동원 피맺힌 증언] 오키나와, 그 지옥의 조선인 2

금, 2021/03/1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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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홍콩대학교에서 인턴이 찾아왔습니다.
이 영상은 인턴들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브이로그 영상입니다.

토, 2021/03/2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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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회부는 지난 3월 1일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명단과, 그들의 적나라한 반민족 행위를 담은 일본 외무성 문서를 최초 발굴해 보도했다.

간도참변은 1920~21년 일제가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지역 한국인과 독립운동가를 다수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의 ‘공적’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학계를 포함해서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입장에서 이들 48명은 충실한 하수인이지만, 우리에게는 동족 학살에 가담한 반역자다.

48명의 한국인 경찰관들의 역할은 다양했다. 첩보 수집, 길 안내, 통역, 독립운동가 회유 등만이 아니라 직접 민간인 학살에도 가담했다.


[연관기사]

[단독] “동족 학살·독립군 체포”…간도참변 ‘한국인 경찰 48명 공적서’ 발굴

■ 100년 전 민족학살 가담한 한국인 경찰, 어떻게 발굴했나?

KBS는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사료 발굴을 기초로 한 탐사보도를 꾸준히 해왔고, 삼일절이나 광복절 등 시의성이 있을 때마다 단독 보도를 계속해 왔다. 이번 자료 역시 이런 꾸준한 추적 과정에서 발굴된 것이다.

KBS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일본 외무성(우리나라 외교부에 해당) 산하 자료실 ‘외교사료관’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과 관련된 고문서 다수를 복사해왔다.

이후 전문가들과 함께 해당 문서들에 대한 번역과 검토 작업이 꾸준히 이뤄졌고, 지난해 가을,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들에 대한 자료를 추려낼 수 있었다. 정확히 백 년 전인 1921년 3월 1일 일제가 이들의 공적을 결재한 문서였다.

KBS는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추가 취재에 돌입했고, 본격적인 분석 작업을 통해 3.1절에 맞춰 보도할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수록된 조선인 경찰관 9명. 순사 우경태, 구봉서, 김종섭, 백창돈, 김배인, 장국환, 김영후, 성빈, 서상순은 종군기장(일제가 전쟁에 참여한 군인, 경찰 등에 수여하는 상훈 중 하나)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 KBS 발굴 자료에 보훈처 “독립유공자 발굴에 활용”

보도 이후 남은 과제는 크게 2가지다. ▲문서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유공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고위 경찰관들의 친일 이력을 병기할 것인가다.

먼저 한국인 경찰관들로부터 체포를 당한 독립운동가들의 유공을 심사하는 문제다. 이번에 발굴한 문서에는 간도참변 과정에서 체포된 한국인이 17명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유공을 인정받고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KBS 보도 이후 국가보훈처는 해당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KBS에 요청했고 취재진은 이에 협조했다. 보훈처는 “자료를 분석해 그 결과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독립유공자 발굴과 공적 검증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강우범 선생(이명: 강구우)의 추가 독립운동 행적을 추정할 만한 내용이 자료에 등장한 것과 관련해서도, 보훈처는 “인적사항 및 활동내용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진행해 동일인이 확인될 경우 공훈록 내용을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경찰, 역대 기관장 친일 이력 전수조사…”왜 이리 소극적인지”

또 다른 과제는 친일 이력이 있는 고위 경찰관들의 이력 처리 문제다.

KBS는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 등 274곳의 홈페이지를 전수 조사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실린 역대 청장과 서장 70여 명(중복 포함)을 확인해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친일 이력에 대한 병기 또는 언급 없이 재직 사실만 기재돼 있었다.

KBS의 보도 이후 경찰은 ‘친일인명사전’ 및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역대 경찰 기관장 명단 간 대조 작업에 착수했다.

친일 이력을 병기하는 문제와 관련해 경찰은 “정부 부처 전체가 동일 기준에 따라 공통 적용할 사안”이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기도는 역대 도지사 가운데 친일 이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그 사실을 병기하고 있다.

경찰은 또 1949년 6월 6일 경찰이 친일파 조사를 위한 헌법기구였던 반민특위를 습격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말 출범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라 경찰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찰의 입장에 대해 역사단체들은 대체로 아쉽다는 반응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일제강점기 경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기구였고, 그 당시 조선인 친인 경찰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다”며 “해방 후 대한민국 경찰이 친일 경찰을 청산하자는 데 왜 이렇게 소극적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2019년 임시정부 초대 경찰청장인 김구 선생의 동상을 경찰청 청사 안에 세우며 과거사 청산 의지를 다졌다.

이후 독립운동가 출신의 경찰을 발굴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유독 친일의 역사, 다시 말해 자신들의 ‘그늘’에 대해선 뚜렷한 입장 표명을 미루고 있고 청산 작업의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송락규 기자 ([email protected])

<2021-03-20> KBS 

☞기사원문: [취재후] 동족학살 가담한 한국인 경찰, 어떻게 발굴했나?

일, 2021/03/2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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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일본군이 한국인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 이른바 ‘간도참변’ 당시, 일제에 협력해 동족을 학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 그리고 이때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KBS가 최초 발굴해 보도해 드렸는데요.

보훈처가 이 자료를 제공받아 독립유공자 발굴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경찰도 역대 기관장들의 친일 이력을 전수 조사하기로 했는데, 친일 이력을 병기하는 문제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송락규 기잡니다.

[리포트]

100년 전 일본이 간도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을 학살한 간도 참변.

일제는 전국 각지에서 차출돼 학살 현장에 가담했던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이름과 공적을 기록했습니다.

간도에 파견된 한국인 경찰들은 무봉촌과 의봉촌 등 간도지역 각 부락의 초토에 종사하는가 하면, 장암촌 부근을 소탕하는 동안 한국인을 조사하고 가택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간도참변 당시 한국인 경찰관에 의해 체포된 독립운동가는 17명.

이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사람은 4명뿐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KBS 보도 이후 자료를 제공받은 국가보훈처는 자료 분석 결과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독립유공자 발굴과 공적 검증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사를 해서 발굴하는 사업들을 반드시 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도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70여 명의 역대 청장, 서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라는 KBS의 보도와 관련해 역대 기관장들의 친일 이력을 전수 조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친일 이력을 병기하는 것에 대해선 정부 부처 전체가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해야 할 사안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방 뒤 친일파 처벌을 위해 구성된 반민특위를 습격한 것에 대해서도 나중에 공식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일제강점기의 경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기구였거든요. 해방 후에 대한민국 경찰이 조선인 친일 경찰을 청산하자는데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소극적인지…”]

경찰은 2019년 임시정부 초대 경찰청장인 김구 선생의 동상을 청사에 세웠지만, 친일 역사에 대한 성찰 노력은 여전히 더디기만 합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촬영기자:유성주/영상편집:이재연/그래픽:최창준

송락규 기자 ([email protected])

<2021-02-23> KBS 

☞기사원문: 보훈처 “간도참변 유공자 발굴”…경찰 과거사 반성 또 미루나?

※관련기사

☞KBS: [취재후] 동족학살 가담한 한국인 경찰, 어떻게 발굴했나?

☞KBS: [단독] “동족 학살·독립군 체포”…간도참변 ‘한국인 경찰 48명 공적서’ 발굴

화, 2021/03/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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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뭐하니] Ep.2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① 미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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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1 인턴은 뭐하니 VLOG 

목, 2021/03/25-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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