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응원영상] – 13. 심정섭 선생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13번째! 심정섭 선생님의 응원영상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기적을 이어 2018년 8월 29일,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응원영상]
☞응원영상 – 4. 박주민 의원과 김광진·정청래 전 의원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13번째! 심정섭 선생님의 응원영상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기적을 이어 2018년 8월 29일,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릴레이 응원영상]
☞응원영상 – 4. 박주민 의원과 김광진·정청래 전 의원

이순우 책임연구원

▲ ‘구용산’ 종점과 ‘신용산’ 종점이 구분되어 있는 전차정류장일람도의 일부(『경성번창기 』,1915)
흔히 용산(龍山)이라고 하면 용산역 앞이거나 미군기지 일대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원래 용산은 마포 바로 상류에 위치한 포구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단위의 하나인 ‘방(坊)’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용산방’은 청파역, 공덕리, 마포나루 등에 걸쳐 있으며 대개 만초천(蔓草川)을 경계로 서쪽 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해가 쉽다. 이 물길의 동쪽에 해당하는 구역으로는 한강 모래펄에 자리한 사촌리와 신촌리 등이 살짝 포함된 것이 전부이다.
애당초 용산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1899년 12월 ‘용산행’ 전차가 처음 개통되었을 때의 종착점이 지금의 원효로 끝자락인 한강변에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와는 달리 용산역 방향으로 전차선로가 부설된 것은 1910년 7월에 가서야 이뤄진 일이며, 그나마도 이곳에는 종전의 용산과 구분하기 위해 ‘신용산(新龍山)’ 종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경인철도 개통 당시 만초천 물길의 동쪽 지역에 ‘용산정거장’이 개설되면서 위치관념이 약간 변경된 탓도 없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용산 주변의 지리적 위상관계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러일전쟁 직후 일본군 병영지의 건설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이 당시 일제가 이른바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1904년 2월 23일)’에 근거하여 서울지역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한 대상지로 정한 곳은 갈월리, 이태원, 둔지미, 서빙고 일대였는데, 이곳은 원래 ‘둔지방(屯芝坊)’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편의상 ‘용산군영지’로 명명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일본군영지는 곧 ‘용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한국주둔(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의 편제 변동 연혁

▲ 이태원 방향에서 담아낸 용산보병연대 일대의 전경사진 가까운 쪽이 보병 제78연대, 먼 쪽이 보병 제79연대
당초 이 지역을 대상으로 일본 측이 징발을 요구한 면적은 무려 300만 평에 달하였다. 이 가운데 철도용지와 중복되는 51만 평은 제외되고 과다하게 설정된 후보지 134만 평이 한국정부에 환부됨에 따라 실제 군용지 건설에 소요된 땅은 115만 평 규모로 최종 낙착되었다. 하지만 한국정부에 되돌려졌다고 알려진 곳 역시 상당수는 일본인들에게 불하처리되면서 일본군영지의 배후공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용산 일대의 징발지에서 군영지 건설공사가 개시된 시점은 1906년 4월이다. 사격장(1907.4), 매장지와 화장장(1907.7), 군용도로 (1908.3), 연병장(1908.5)과 같은 기반시설이 우선 건설되었고, 보병연대 본부 및 병영(1908.6)과 더불어 군사령부 청사(1908.7)가 속속 완공됨에 따라 1908년 10월에는 필동군영지(지금의 남산골 한옥마을 자리)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가 용산으로 자리를 옮겨오기에 이른다.

▲ 용산에서 창설된 제19사단사령부의 개청식 광경 『조선사단창설기념호(조선사진화보특별호)』,1916년11월
이와 함께 오포대(1908.9), 위수병원(1908.9),사단장숙사(1908.10),병기지창(1908.10), 육군창고(1908.11),사단사령부 청사(1908.12), 군악대 청사(1909.4), 기병중대 병사(1909.9), 야포병중대병사(1909.9),위수감옥(1909.9),군사령관숙사(1910.4) 등이 곳곳에 건립되었고 1913년 11월에는 기타의 부속건물이 모두 완공됨에 따라 용산 신군영지는 하나의 거대한 군사도시로 탈바꿈하였다. 이 가운데 군사령관 숙사는 1912년 5월에 조선총독부가 새로 지은 건물과 맞교환되어 용산총독관저(龍山總督官邸)로 변신하였는데, 이로써 용산은 공간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식민통치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용산 일대의 군영지 건설공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었다. 1915년 6월에 종래의 주차군(駐箚軍; 일본 본토에 주둔지를 둔 사단병력을 주기적으로 교대하여 파견하는 방식) 체제를 바꿔 조선 내에 2개 사단을 증설하여 상주군(常駐軍)으로 전환하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270여만 평(여의도연습장 138만 평 포함)의 땅이 추가되어 다시 대규모의 기지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 조선주둔 일본군 사단 배비표 (『소화8년조선요람』,1932)
이때 용산 주둔지에는 사단장 숙사(1916.12), 여단장 숙사(1918.3), 79연대 본부 및 병영(1920.3), 기병연대 본부 및 병영(1920.3), 야포병연대 본부 및 병영(1920.4), 공병대대 본부 및 병영(1920.3), 사격장(1921.12), 연병장(1921.12), 매장지와 화장장(1922.3) 등의 증설 또는 이전이 속속 이뤄졌다.
그 사이에 1916년 4월 제19사단이 용산에서 창설되었고 부대편성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자 1918년 6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조선주차군사령부는 ‘조선군사령부(朝鮮軍司令部)’로 개칭되었다. 곧이어 1919년 4월에는 제20사단을 용산에서 새로 창설하는 동시에 먼저 생긴 제19사단은 함경북도 나남(羅南, 지금의 청진)으로 이동 배치하였다.
용산과 나남 등지에 터를 잡은 조선주둔 일본군대는 일제의 무력통치를 뒷받침하는 힘의 근원인 동시에 식민지배에 맞선 일체의 민족적 저항을 압살하는 직접적인 주체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른바 ‘시베리아출병’을 비롯하여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침략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선봉 노릇을 자처하였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촉발된 이후에는 전황이 길어질 조짐이 일자 방향을 바꿔 남방전선으로도 속속 투입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지원병제도와 징병제 실시를 통해 다수의 조선인들도 현역병으로 징집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전투지원을 위한 노무인력으로 강제 동원되는 등의 고초를 겪게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당시 제20사단(용산) 병력이 우선 뉴기니아 방면(1942.12)으로 이동하였고, 계속하여 제30사단(1943년 8월에 평양에서 신규 편성) 병력이 필리핀 민다나오섬(1944.5)으로, 제49사단(1944년 2월에 용산에서 신규 편성) 병력이 버마 전선(1944.6)으로, 제19사단(나남) 병력 또한 필리핀 전선(1944.11)으로 추가로 재배치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1945년 2월에는 종래의 조선군사령부가 폐지되고 조선군관구사령부(朝鮮軍管區司令部)와 제17방면군사령부(第17方面軍司令部)의 편제가 생겨났으나, 오래지 않아 일제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해방과 더불어 일제의 속박이 종결되고 용산군영지도 당연히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이러한 바람은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전승국 미국(제24군단)에 의한 미군정 실시와 더불어 옛 일본군 주둔지들은 그대로 미군의 수중으로 접수되었기 때문이었다. 1949년 6월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소규모의 주한미군사고문단(KMAG)만 잔류한 시절도 있었으나 불과 1년 이후에 발생한 6.25전쟁은 모든 것을 예전 상태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 조선주둔 일본군대가 침략전쟁 때마다 이른바 ‘출정’과 ‘귀환’ 통로로 사용한 용산역 구내의 전경
용산기지는 이제 미군이 주역인 상태로 전환되어 미8군사령부(1953년 9월 동숭동에서 이전), 유엔군사령부(1957년 7월 일본 동경에서 이전), 주한미군사령부(1957년 7월 창설), 한미연합군사령부(1978년 11월 창설)가 터를 잡는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그리고 냉전과 남북분단의 산물로 남아 용산기지 일대는 무려 한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이방인이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땅으로 남게 된 셈이었다.
그나마 지난 2004년에 이르러 간신히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에 용산기지 반환협정이 체결되는 단계가 되었고, 2009년에는 법률 제9600호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마련됨에 따라 약간의 변화 조짐이 일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당초 협정문안에서 2008년 말로 명기된 반환시한은 무려 10년 가까이 넘기고도 언제 반환절차가 종결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장차 ‘용산공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날 용산미군기지 내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옛 일본군 병영의 흔적들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용산병영지 외곽에 자리한 배후 시가지에도 군사도시의 기능을 가늠케 하는 여러 가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일제 침략의 총본산인 용산군영지와 배후 시가지 일대가 잘 포착되어 있는 항공촬영사진 『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0
해방촌을 끼고 있는 남산 자락에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분사라고 할 수 있는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 터가 있고, 청파동 철길 옆에는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신광여고)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군대의 관병식(觀兵式)이 벌어지던 용산연병장 자리는 그 일부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해있고, 용산고등학교, 삼광초등학교, 수도여고 터, 용산초등학교, 선린상고 등 옛 일본인 학교들은 여전히 용산군영지를 감싼 듯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이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용산역도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 그대로이다.
일본군영지를 조성할 당시 군사도로로 만들어진 길은 한강리(漢江里, 현 한남동)를 밀어내고 ‘한강’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채 ‘한강통(漢江通, 현 한강로)’이 되었고, 그 길의 중간 쯤에 일제가 만들어낸 ‘삼각지(三角地)’라는 지명은 지금도 버젓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또한 일본군대의 연병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연병정(練兵町)’은 ‘남영동(南營洞)’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채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지 오래다.
오랜 세월 외국군대의 주둔지로 각인되어 있는 용산 지역에는 군영지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일대가 온통 일제침탈과 분단시대의 유적지로 가득 찬 셈이다. 이러한 잔존물들은 그 자체가 일제침략의 유력한 증거품이자 식민지배의 고난을 상기시켜주는 역사교육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식민지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담아내고 또한 해방 이후의 치유과정을 그려내기에 적합한 곳을 찾는다면 그 으뜸은 마땅히 용산지역의 몫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대통령이 일하는 곳, 청와대를 보러 온 관람객들입니다.
<인터뷰> 홍영수(경기도 고양시) : “주말에는 6개월 치가 다 예약이 마감돼 있었고,(이것도 방학이라서) 평일 날은 좀 어려웠어요. 간신히 했어요.”
1시간 반가량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는 관람 코스.
제한된 장소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후원엔 관람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가 한 점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입니다.
<인터뷰> 신상빈(경기도 용인시) : “못 봤어요. 아예 못 봤어요. 코스에 없나 본데.”
<인터뷰> 홍순(인천시 서구) : “저희는 가족들이 놀러 다니면서 이런 불상도 많이 보는데 여기서는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이 불상은 최근 한 시민단체가 원래 위치로 되돌려 달라는 진성서를 청와대에 내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불상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통일신라 불상이 왜, 언제부터, 청와대 안에 있게 된 걸까?
청와대 직원들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보안구역에 있다는 불상.
직접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청와대 불상에 얽힌 길고도 복잡한 사연을 들여다봤습니다.
청와대 후원 숲 속, 보호각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석조 불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상의 높이는 1.16m.
석굴암 본존상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보물급 문화재로 꼽힙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양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이 볼륨이 있고 그다음 무르팍이 아주 크게 웅장하게 되어 있어서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어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상은 관람이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 관저에서 가까워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화면 역시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찍은 것으로,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촬영 허가가 난 적이 없습니다.
취재진이 청와대에 불상을 직접 찍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불상을 직접 본 사람은 없을까?
수소문 끝에 취재진은 문화유산 답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강대철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 씨가 청와대에서 불상을 직접 본 때는 2015년 11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불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진도 찍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불상의 옆 모습과 뒷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보존 상태가 좋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강대철(옛문화답사회 대표) : “딱 보니까 석굴암의 본존불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당당한 자세라든가 또는 조각기법, 그다음에 전체적인 느낌 같은 것이 상당히 가치 있는 문화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좋은 작품이 좀 더 대중들한테 보여졌으면 좋겠는데 외롭게 여기 계신가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죠.”
통일신라 불상이 청와대에 있게 된 이유는 뭘까?
불상 앞에 놓인 돌에는 경주 남산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옮겨온 거라고 적혀 있습니다.
불상이 처음 있었던 자리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논밭을 지나 마을 뒷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자, 산 아래 탁 트인 지형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신라시대에 ‘이거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1,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에 무너져 내린 석탑만 황량한 절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청와대 불상의 고향을 이곳으로 보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
는 1939년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문서.
당시 일본인이 남긴 경주 출장 보고서를 보면, 이 불상은 본래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거라고 돼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곳에선 도지마을, 도지동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근거는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조를 보면, 737년에 왕이 돌아가시자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성덕왕릉의 북쪽에 이거사가 있다는 건데 북쪽에 절터는 이곳이 거의 유일한 절 터이기 때문에 이거사가 정확한 걸로 보고, 이곳에서 청와대에 있는 미남 불상을 옮겨갔다, 이렇게 보고 있죠.”
이 불상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한일병합 늑약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이 된 데라우치 마사타케.
1912년 말 경주를 방문한 데라우치는 한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잘생긴 불상 한 점을 만납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조선총독부 문서를 보면, 데라우치 총독이 불상을 거듭 되돌아보며 유심히 살피자, 집 주인이 총독의 의중을 눈치채고 불상을 즉시 경성(서울)의 총독관저로 보냈다고 기록했습니다.
총독 진상품 신세가 된 불상이 경주를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은 서울 남산의 총독 관저.
남산 북쪽 길을 따라 남산공원 방향으로 오르다가, 지난해 새롭게 조성된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통감 관저, 훗날 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 터 옆을 자세히 보면 절벽 아래 깎아지른 바위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불상이 옮겨졌던 장소입니다.
1913년 2월 데라우치는 자신의 일기에, 불상을 절벽 바위 아래 안치하고, 개안식을 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한 장의 사진.
일본 관리들 사이에 불상의 얼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그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래서 그 당시 위치는 사진 자료도 있습니다만 일단 총독관저 이웃한 절벽 아래쪽에 있다고 그랬거든요. 큰 나무면서 절벽 아래니까 저기 바로 보이는 저 위치라고 보실 수가 있는 거죠.”
이후 1927년 총독 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새로 지어지면서 불상도 함께 옮겨진 겁니다.
그 뒤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불상에 관한 기사가 실립니다.
불상을 ‘미남석불’이라 부르고, “오래전 자취를 감췄던 경주의 보물”이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뒤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까맣게 잊혔던 불상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건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기자인 이구열 소장.
1973년에 초판을 펴낸 <한국문화재 수난사>란 책에 통일신라 불상의 기구한 사연을 상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이구열(미술사학자) : “우리로선 문화재 수난의 참 하나의 사례죠.근데 어쨌든 그렇게 됐던 건데 그게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경주에 있다가 서울에 와서 지금 청와대에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에요. 그때 많은 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많거든.”
다시 세월이 흘러 청와대 불상이 세간의 이목을 끈 때는 지난 1994년.
구포역 열차 전복부터,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까지…
갖가지 대형참사가 잇달아 터지며 민심이 흉흉해지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불상을 치워버린 게 화근이 됐다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습니다.
급기야 청와대가 출입기자단에 불상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집니다.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지 시대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청와대 통일신라 불상.
그동안 제자리로 되돌려달라는 숱한 요구가 있었지만, 아직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불상이 청와대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전혀 없죠, 당연히. 그것은 뭐냐면 불상 자체는 워낙에 우리가 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죠. 그런데 우리 한국을 강제 병합했던 바로 그 당사자인 데라우치 총독의 손을 거쳐서 그 불상이 지금 총독관저에 옮겨지게 됐고, 바로 그다음에 총독관저 옮겨지는 거에 따라서 청와대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그거는 전형적인 일제잔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광복 72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단체가 또다시 문제 제기에 나섰습니다.
청와대에 있는 불상을 원래 자리인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낸 겁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과거사에 대한 청산,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대 청와대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적폐청산을 강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서 청와대 불상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과거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의 청와대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굳게 닫혀 있던 청와대 문을 활짝 열겠다고 약속한 새 정부.
여기에 맞춰 청와대 불상도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김석기자 ([email protected])
<2017-08-20> KBS
☞기사원문: ‘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관련기사
☞KBS: ‘아픈 역사’ 청와대 석조불상…경주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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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과후 자격증 소지자
3)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
4) 아동복지론 과목 이수자 및 이수 진행 중인 자
5) 민간자격증 소지자
6) 기타(문의주세요^^)
문재인대통령 초등학교 6학년까지로 연장, 돌봄교사 12만명 채용!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type=1&no=2017041416088026674&ou…
방과 후 지도사는 상담은 02-2675-2966입니다^^
보육.교사 2급 자격증 과정
보육.교사 자격증/1년6개월과정
온라인강의10과목 + 대면과목(오프라인수업)+ 실습1과목(240시간)=19과목
◎ 2013년까지 필수12과목→ 17과목으로 증가 ->18과목으로 증가
◎ 2018-년부터 국가시험으로 변경
(영역별과목변경, 대면과목(오프라인), 실습시간변경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필수18과목 중 8과목이 대면과목으로 개설되었습니다.
대면과목은 온라인수업이 아닌 오프라인기관으로 나가셔서 들으셔야합니다.
*실습시간이 160>>240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6주연속(평일만), 하루최대 8시간.
1) 고졸
– 온라인 수업 26과목 + 실습 1과목(240시간)
– 아동전문학사 졸업장 + 보육.교사 2급 자격증 동시 취득
– 취득기간 : 1년 6개월 ~ 2년 과정
◆ 자격증 또는, 독학사 병행 여부에 따라서 학위 취득기간 단축이 가능합니다◆
2) 전문대졸, 4년제 대학 졸업자
– 온라인 9과목 + 대면수업 8과목 + 실습 1과목(240시간)
– 보육.교사2급 자격증 취득
– 취득기간 : 1년 6개월 과정
보육.교사 전망
정부에서는 보육료 지원이나 각종 교육과정의 신설도입과 보육.교사 시설에 대한 지원 증가로 보육.교사의 전문성이 강화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향후 약1만 명의 신규채.용이 전망되고 있다고 하니 취업에 수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보육시설들이 경험 많은 주부들을 선호하여 더욱 쉽고 편하게 일하실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장점입니다. 주.부님들 뿐만 아니라 요즘 현대인들에게 있어 필수적으로 자격증 하나씩 획득을 원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③대학교 학위 과정 (2년제 전문학사 / 4년제 학사학위)
모집분야 : 대학교 학위 과정
모집대상 : 최종학력이 고졸이라 대학교 학위가 필요하신 분, 2년제 대학 나왔지만 4년제
학사학위가 필요한 분, 대학교 학위가 필요한 자 , 학력 나이 상관없이 관심있는분
– 전문학사 취득하시는 과정!
과목 : 27과목(3학기)
– 학사학위 취득하시는 과정!
과목 : 47과목(5학기)
(독학사 자격증으로 인하여 과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밑에 자격증은 민간자격증이며 위에 과정을 진행하실 경우 무료로 도와드립니다)
아동심리학2급
지원자격
1.사회복지학, 아동학 및 관련학과 전공자
2.유치원 및 어린이집, 초등고등학교, 지역아동센터 교사
3.청소년상담실 및 학습지교사 등 교육관련 교사와 각 교육기관 임직원
4.재할기관, 상담센터 임직원 및 개설희망자
5.자녀 양육에 도움을 받고 싶은 학부모
6.고등학교 졸업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심리상담에 관심있는 누구나
활동분야
아동심리상담 전문가 및 아동심리상담 프로젝트 활동강사
영유아 및 초,중,고등학교 아동심리상담사 활동
청소년상담실 상담사 및 상담원 활동
사회복지사, 교육복지사, 평생교육사 등 강사 및 상담사
사회복지관, 의료기관, 종교기관의 아동심리관련 상담사
사설 아동교육기관 운영 및 강사
심리상담사2급
지원자격
1.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심리상담 이론에 관심 있는 자
2.사회복지학, 아동학 및 관련학과 전공자
3.교육관련 교사와 각 교육기관 임직원
4.심리관련 직업종사자
5.기업, 바이어미팅 등 이 잦은 직업 종사자
6.고객상담, 응대 관련 업무 종사자
7.고등학교 졸업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심리, 상담에 관심 있는 모든 분
활동분야
심리상담 전문가 및 심리상담 프로젝트 활동 강사
초ㆍ중ㆍ고등학교의 심리상담사로 활동
교육관련 기관 임직원 및 청소년 상담실 상담사 또는 상담원
사회복지사, 교육복지사, 평생교육사
사회복지관, 의료기관, 노인복지관, 종교기관 관련 상담사
사설교육기관 운영 및 강사
고객 응대관련업 취업 우대
!노인심리상담사2급!
지원자격
1.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노인복지사 등 노인심리상담에 관심 있는 자
2.실버타운, 요양보호시설, 노인복지관 종사자
3.노인전문병원, 노인보호시설, 양로원, 노인그룹 운영자 및 종사자
4.가정상담소 및 노인상담관련 종사자
5.종교, 봉사단체, 노인관련 기업체 등 각종단체 종사자
6.노인교실, 노인교육을 진행하는 시설 종사자
7.고등학교 졸업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노인건강심리상담에 관심있는 누구나
활동분야
노인복지사, 사회복지사, 요양복지사 등 복지관 상담사
실버타운, 요양보호시설, 노인복지관 등 노인전문 요양시설 상담사
노인전문병원, 노인심리치료 상담사 활동
노인관련 상담소 상담사 활동
노후설계 및 노인교육 등 노인관련 업체 강사활동
직업상담 및 사회봉사단체, 종교단체 노인건강심리 상담사 활동
*상담은 24시간 언제나 가능하며
추가비용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간편상담 : https://goo.gl/0xrf2P
E-mail: [email protected]
카카오톡 : jsmtnaud (아이디검색)
오픈카톡 : https://open.kakao.com/o/sFszvZo
Mobile : 010-2 2 0 6 -3 1 7 0
대표전화 : 02-2675-2966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노래손님 : 가수 이소연, 김성헌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①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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