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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정율성’ 보도, 독립운동을 폄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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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정율성’ 보도, 독립운동을 폄훼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8/17- 18:47

[김종성의 뉴스 팩트체크] 독립투사의 딸 초청한 주중대사관, 아무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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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주중 한국대사관 광복절 행사에… 6.25때 중공군 정율성 딸도 초청’ 기사. ⓒ조선일보 PDF

지난 15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독립투사 정율성의 딸인 정소제(75)씨가 초청된 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경축식에는 임시정부 비서였던 김동진의 딸과,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본명 장지락)의 아들도 초청됐다.

16일자 <조선일보>는 베이징 특파원 명의의 기사에서 정소제씨 초청 대목에만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주중 한국대사관 광복절 행사에… ‘6·25 때 중공군’ 정율성 딸도 초청”이란 제목 아래 정율성이 중국공산당원으로 가입했고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해 김일성에게 바쳤”으며 “6·25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해 서울까지 내려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주중대사관이 대단히 불순한 인물의 딸을 초청한 듯한 인상을 풍긴 것이다.

정율성은 나라 잃은 지 4년 뒤인 1914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오늘날 광주광역시에 정율성로라는 도로명이 있다. 또 해마다 10월에 사흘간 ‘정율성 국제음악제도 광주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광주 남구에 있는 정율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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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남구 양림동 휴먼시아 아파트 입구 정율성로(路)에 광주 출신의 중국 혁명 음악가 정율성 선생의 흉상이 조성됐다. 2009년 7월 15일, 흉상 조성을 축하하는 제막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단순히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광주 사람들이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해도 부족함 없는 인물이지만, 국가가 하지 않으므로 고향 사람들이라도 나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여는 취지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의 문화광장 코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면서도 중국에서의 항일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으로 중국 3대 음악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의 삶과 음악성을 재조명해 업적을 기리고…(하략)”

항일투쟁과 음악적 성과로 중국 3대 음악인으로 추앙받는 점이 정율성 국제음악제 개최의 결정적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대표작 <연안송>이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오늘날 그의 중국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중앙대 국악대학장 및 한국음악학회장 등을 역임한 고 노동은 교수가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항일음악 330곡집>은 이렇게 설명한다.

“<연안송>은 중국의 마오쩌둥(모택동)과 저우언라이(주은래)·주더(주덕) 등이 이끌었던 항일혁명의 성지 옌안을 찬양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중국인들에게 대표적인 항일가이자 서정적인 가곡으로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연안송> 외에 <중국인민해방군가>도 정율성이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그의 작품이다. 이렇게 바로 옆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인 작곡가가 정작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국제적 음악가라는 사실은 물론 열혈 독립투사였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운전자가 바로 옆에 있는 차량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딴 데 정신이 팔려 시야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에 대한 우리의 시야 역시 그렇게 좁아져 있기 때문에 정율성을 잘 모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율성의 기본 이력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이 그를 ‘6·25 때 중공군’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6·25 때 중공군’이라는 프로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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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음악 300곡>에 수록된 <연안송> 악보. ⓒ김종성

율성(律成): 오선지로 독립운동을 하다

정율성은 1914년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정부은이다. 율성(律成)은 ‘음율이 성취되다’라는 어의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에 지은 이름이다. 개명에 얽힌 이야기가 역사학자 이이화가 쓴 <천재 음악가 정율성>에 소개돼 있다.

“그의 아버지는 단순한 농부가 아닌 지식인이었다. 음악에 열중하는 어린 아들을 보고, 예전에는 외적을 물리칠 적에 북과 나팔로 사기를 돋우었던 일을 상기하며 우리에게 군가가 없다는 한탄을 들려주었다. 이에 그는 깊이 느낀 바가 있었고 또 그런 음악을 작곡하는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때 ‘음악을 이룬다’는 뜻을 지닌 율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 제92권에 실린 글 중에서

정율성은 외적을 물리칠 때 북과 나팔로 아군의 사기를 돋우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항일 음악가가 돼 나라를 독립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음악을 통한 항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성가대가 교회 예배나 전도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선지로 하는 독립운동도 총으로 하는 독립운동 못지 않게 중요했다. 정율성은 오선지로 하는 독립운동만 한 게 아니라 총으로 하는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다만 오선지에 좀 더 비중을 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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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음악 300곡>에 수록된 정율성 사진. ⓒ김종성

정율성은 19세 때인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첫째형 정남근, 둘째형 정인제, 셋째형 정의근처럼 독립투사가 될 목적이었다. 열혈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독립운동단체 사무를 보면서 음악공부를 병행했다. 그 뒤 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서도 활동하고 뤼신예술학원에서 음악도 가르쳤다.

1941년부터는 화북조선청년연합회나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돼 항일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해방 뒤에는 북한에 가서 음악을 가르치며 인민군협주단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는 중국 국적을 취득해 중국인민지원군이 된 뒤 전선 위문활동을 펼쳤다. 1951년 4월 중국으로 돌아간 뒤 작곡 활동에 전념하다가 197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렇게 독립투사 출신의 음악가로 일생을 마감했다.

<조선일보> 논리의 문제점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주중대사관이 정율성의 딸을 초청한 것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하나는 그가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동진 지사와 김산은 정부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으나, 정율성은 아니다.” – <조선일보> 기사 중

이제껏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예우하지 않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제대로 대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누가 독립운동을 했는지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서훈을 받았든 안 받았든,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율성이 정부의 서훈을 받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서훈을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정율성은 아니다”라는 <조선일보> 기사의 표현을 “정율성에게도 서훈을 줘야 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독자들이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제기한 두 번째 문제점은 그가 북한 정권에 협력했다는 점이다. 해방 후 6년간 북한에 머물며 정치적 음악 활동에 종사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독립운동이 사상보다 상위에 있다는 엄중한 사실이다.

독립운동에는 사회주의자도 가담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가담했다. 이런 분들이 상호 경쟁하면서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민족의 독립을 최상위의 가치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독립 쟁취가 우리 민족의 공통 관심사였다는 점은, 서로 다른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진 불교·기독교·천도교·유교 교인들이 독립운동에 다 함께 동참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또 해방 뒤에 남으로 갔든 북으로 갔든,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부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절반 밖에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한민족 구성원과 모든 독립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을 받을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관할을 받고 싶어도 대한민국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왜 대한민국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냐?”고 물을 게 아니라, 대한민국정부 스스로 “왜 그분들을 모시지 못했나?”라고 자문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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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에 있는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 비석. ⓒ 위키백과

그리고 북으로 간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남으로 온 독립운동가 역시 북한 입장에서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게 된다. 백범 김구가 남으로 온 독립운동가라 하여, 또 <백범일지>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하여, 북한 정부가 김구를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우습고 모순된 일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북에서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남한 사람들은 부당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으로 갔다 해서 독립운동가를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똑같은 부당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으로 왔든 북으로 갔든,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다. 그런 사유를 갖고 독립운동가를 차별해서는 안된다. 사상과 종교는 물론이고 거주지를 갖고도 독립운동가를 차별해서는 안된다. 모든 유형의 독립운동가들을 다 받들고 존경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합과 탕평을 이루는 출발점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남이냐 북이냐 하는 거주지를 갖고 독립운동가를 차별하게 되면, 지금 진행중인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운동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면 그런 일로 분란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서 존경하는 분들을 북에서도 존경해주고, 북에서 존경하는 분들을 남에서도 존경해줘야 남과 북이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독립운동은 사상보다 위에 있다

독립운동이 사상·종교·거주지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점은 헌법 조문만 봐도 알 수 있다. 헌법 전문(서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했다. 3·1운동으로 상징되는 독립운동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 정신의 실천자들이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운동에 두고 있으므로, 이 이념에 입각해 독립운동을 한 정율성 같은 분들을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예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분들을 차별할 권리가 대한민국 정부한테는 없다. 주중대사관도 마찬가지다. 주중대사관에게는 정율성의 딸을 초청자 명단에서 뺄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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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 부르는 애국지사 후손들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15일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애국지사 김산의 아들 고영광 선생(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정율성 선생의 딸 정소제(왼쪽 두번째) 여사가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독립운동을 사상의 상위에 놓지 않고, 거꾸로 사상을 독립운동의 상위에 놓은 사람들이 이제껏 저질러온 잘못들을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친일청산을 훼방하고 지연시킨 점이다.

해방 직후에 반민특위의 친일청산이 무산된 것은 이승만 정권이 친일청산을 공산주의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입장에서는 독립운동보다 사상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잘못을 앞으로도 답습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과 친일청산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는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의 시대정신이 그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촛불혁명 때 우리 국민들은 사상을 독립운동의 상위에 놓는 구세력 핵심부를 청와대에서 끌어내 감옥으로 보냈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구세력은 독립운동이나 친일청산보다는 자신들의 낡은 이념을 최상위로 평가했다. 그들은 우리 국민들이 넓은 시야로 역사와 세상을 보는 것을 방해했다. 우리 국민들이 넓은 시야로 ‘운전’하는 것을 훼방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그들을 쫓아냈다. 그 겨울의 별빛 아래서, 마치 악귀를 쫓듯 촛불을 들고 그들을 쫓아냈다. 그런 마당에 <조선일보>가 ‘악귀들’의 행태를 답습하며 그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율성은 헌법으로 봐도 문제없고, 촛불 정신으로 봐도 문제없는, 명실상부한 독립투사다.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법제도로 봐도 이 분은 틀림없는 열혈 독립투사다. 그분의 딸을 공식 행사에 초청하는 것은 그래서 문제없는 일이다.

정율성 같은 훌륭한 독립투사를 허무맹랑하게 색깔론을 덧씌워 소개하는 일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는 일이다. 북과 나팔로 외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살리고자 애쓰신 분을 ‘6·25 때 중공군’으로 소개한 <조선일보>는 팩트를 제대로 보지 못한 보도를 자행했다.

<2018-08-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조선일보의 ‘정율성’ 보도, 독립운동을 폄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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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섬마을 사찰, 징용자 유골 거둬들이며 추도식
해방직후 귀국선 난파로 숨진 희생자 유골, 고향 못가고 日 곳곳 전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한때 일본 정부의 창고까지 가며 갈 곳을 잃었던 한국인 유골들이 일본 섬마을의 사찰에서 새로운 안식처를 찾았다.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는 31일 낮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이 절에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곤조인측이 내부 사정상 유골을 더 보관하기 어렵다고 밝히자 갈 곳을 잃었던 유골들은 덴코쿠지의 수용 의사 덕분에 이 절로 옮겨지게 됐다.

당초 일본 정부는 덴코쿠지 이전에 반대했지만, 일본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압박을 가하자 결국 이날 덴코쿠지에 유골을 전달했다.

이들 유골은 해방 직후 귀국선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다가 태풍으로 조난해 숨져 덴코쿠지가 있는 이키섬 등에 떠내려온 것들이다.

1976년 일본 시민들이, 1983년 일본 정부가 각각 이키섬과 인근 쓰시마(대마도·對馬島)에서 수습한 유골들로, 일본 각지의 여러 사찰을 돌며 보관됐다가 다시 이키섬으로 돌아와 덴코쿠지로 옮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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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로부터 강제징용자 등 한국인 유골 인계받는 한일시민들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에서 일본과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종교인들이 1945년 광복 직후 인근에서 숨진 강제징용자와 가족 등 한국인 유골 131위를 일본 정부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인계받고 있다. 이들 유골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로, 덴토쿠지에 안치돼 귀국 길을 기다리게 됐다. 2018.5.31 [email protected]

이날 추도식은 불경을 외우고 합장하는 불교식 법회와 유골 앞에서 술잔을 돌리고 두 번 절하는 한국식 제사 두가지 방식으로 열렸다.

니시타니 도쿠도(西谷德道) 덴코쿠지 주지는 추도식에서 “(1976년 수습 후) 42년간 떠돌아다닌 유골들이 귀국을 향한 큰 걸음을 걷게 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유골들이 고향에 돌아가도록 한국과 일본 정부에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골을 덴코쿠지에 모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 시민단체 ‘유골봉환 종교자 시민연락회’는 이날 추도식 후 일본과 한국 정부에 유골의 한국 봉환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락회는 “유골이 한국과 가까운 쪽인 이키섬에 모셔졌지만 귀향의 길로는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그간 역사를 거울로 보고 스스로 경의를 갖고 유골봉환에 적극 나서야 하며 한국 정부도 그동안 방치했던 유골봉환 문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단체들과 함께 유골을 덴토쿠지에 옮기는 일을 주도한 한국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팀장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기쁨과 함께 나선 길에 태풍을 맞아 돌아가신 분들이 해방 72년이 지나도 아직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이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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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가사키 사찰서 강제징용 한국인 유골 131위 추도식 열려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 법회를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2018-05-31> 연합뉴스

☞기사원문: 갈곳 잃은 韓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日섬에서 새 안식처 찾다

목, 2018/05/3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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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5회 “골프, 친일귀족의 신선놀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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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얼마나 되나

日사찰 보관 유골 2천770위…오키나와 등 미발굴 유골 2만2천구
2004년 유골봉환 합의에도 일부만 반환…日정부 외면에 韓정부는 소극 대응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해방 후 70여년이나 흘렀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숨진 징용·징병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일 행안부 과거사업무지원단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굴된 뒤 보관 중인 한반도 출신 징용·징병자의 유골은 2천770위에 달한다. 사찰이나 납골당 등 340여곳에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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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섬마을 사찰서 열린 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추도식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행안부가 일본 정부의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일본 사찰의 유골들은 홋카이도(北海道)·도호쿠(東北) 480위, 간토(關東) 560위, 긴키(近畿) 200위,주부(中部) 570위, 주고쿠(中國)·시코쿠(四國) 220위, 규슈(九州)·오키나와(沖繩) 740위 등이다.

유골 봉환 문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출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반환에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합의 후 도쿄도 메구로(目黑)구의 사찰 유텐지(祐天寺)의 유골 423위가 2008~2010년 4차례에 걸쳐 봉환되는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이와 관련한 양국 정부간 교섭이 중단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봉환된 유텐지의 유골은 모두 군인과 군속(군무원)의 것으로 강제징용 노동자의 유골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사이 유골 봉환은 양국의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5년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115명의 유골을 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시모노세키(下關) 등 강제로 끌려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경로로 한국으로 봉환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발굴이 안된 유골들을 찾아내서 한국에 봉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말 격전이 치러졌던 일본 남부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에는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이 최소 2만2천구가 발견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2차대전 당시 전몰자의 유골을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족의 DNA를 수집한 뒤 발굴한 유골과 대조 작업을 진행해 유골을 유족에게 찾아주고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는 대상에서 제외해 한국인 전사자들의 유골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찾아서 보관하고 있든, 아니면 앞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든 이들 두 부류의 유골 문제가 모두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외면과 한국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사찰에서 보관 중인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는 일, 전사자 유골의 발굴·대조 작업에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하는 문제 모두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히며 책임을 한국 정부에 미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실무선에서 일본 정부와 접촉을 하면서도 아직 유골 봉환이나 발굴에 대해 공식적인 요청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핑곗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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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조선인 전몰자 유골반환 촉구 요청서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가 8일 일본 정부에게 한반도 출신 전몰자의 유골 반환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사진은 보추협 사무국 역할을 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오른쪽)이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담당자(왼쪽)에게 요청서를 주는 모습. 2018.2.8 [email protected]

한국과 일본은 작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유골봉환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지만, 협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06-01> 연합뉴스

☞기사원문: 日외면·韓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는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관련기사

☞SBS: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일본의 외면과 한국의 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

☞연합뉴스: 갈곳 잃은 韓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日섬에서 새 안식처 찾다

☞한겨레: 바다가 삼킨 해방의 환희…일본 섬에 잠든 조선인 131명 유골

☞한겨레: [특파원 칼럼] 그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까 / 조기원

금, 2018/06/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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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6/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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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친일문제를 연구하던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가 선생에게 한 말이다.
선생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실었고,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임문호”를 실었다.
 
“….1937년 4월 이후에는 청년당 당두로서 천도교중앙종리원 관정(觀正)에 선출되어…….일제 침략전쟁과 황민화 정책을 적극 후원하고 지원할 것을 독려했다…..”-친일인명사전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아들

진실을 밝힘에 있어 그 어떤 이해관계(비록 아버지일지라도..)도 철저히 배척하는 원칙주의자가 임종국 선생이다.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써 내려갔던 그 날
임종국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 2018/06/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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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엔 100주년 기념식 개최 거절…현 정부 들어 재평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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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 300kg으로 만든 독립영웅 흉상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2018.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의 산실이던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다.

3일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와 육군사관학교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오는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과 을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연다.

기념사업회는 설립 100주년이던 2011년 처음으로 기념식을 열기로 하면서 육사에 개최를 요청했지만, 당시에는 제안을 거부당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연 기념사업회는 올해 2월 다시 육사의 문을 두드렸고, 올해 처음으로 육사 교내에서 기념식을 열게 됐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발했다. 항일비밀조직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당시에는 ‘강습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군의 효시라는 주장이 있지만, 여태껏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변화 움직임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는 육군의 초기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열린 것으로, 당시 육사가 독립군과 광복군 활동을 주제로 학술 행사를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 3월에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교내 충무관에 설치했다. 흉상은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을 녹여 제작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최근 들어 육사는 학술회의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를 자신의 뿌리로 재정립하려고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군·공군사관학교, 더 나아가 전군 차원에서 이러한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육군 관계자는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항일의병, 독립군·광복군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3> 연합뉴스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첫 개최…’軍 효시’ 자리 잡나

월, 2018/06/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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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의원,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금지 및 이장 규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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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바라본 도심에 빌딩들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오는 6일 제63회 현충일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밖 이장을 강제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병)은 5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무려 63명이나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사람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에 7명(김백일, 김홍준, 백낙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이, 국립대전현충원에 4명(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이 각각 안장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인사 중 서울·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경우까지 합하면 63명이 된다.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 안장돼 있다.

그동안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이들의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지만, 이장을 강제할 법률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논의만 공전을 거듭해 왔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현행법이 유지될 시 향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이장을 명할 수 있도록 하여 국립묘지의 영예성과 국민들의 자부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김홍준은 2015년9월3일 63명 중 가장 최근에 안장됐다. 그는 만주군 상위, 간도 특설대에서 복무했고,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순직해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위패만 안장돼 있다.

백낙준은 연희전문학교 교수이자 기독교 신문 이사 및 편집위원의 친일행위를 했다.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국가사회공헌을 이유로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심응균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좌로 활동했다. 광복 이후 육군 중장을 지내며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신태영 역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중좌로 활동한 친일인사다. 한국전쟁에서 전북편선관 구사령관으로 참전하고 이후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수원지구 방위사령관으로 참전했으며, 이후 체신부 장관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종찬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금치훈장까지 수여받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육군 수도경비 사령관으로 참전,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김석범은 만주군 상위 출신으로 만주국 훈6위 주국장을 수여받았고, 백홍석은 경성 육군병사부 과장 출신으로 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송석하는 간도특설대 중대장 출신으로 만주국 훈5등 경운장을 수여받았으며, 신현준은 간도특설대 창설기간 장교를 지내고 만주국 훈6위 경운장을 수여받았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행위를 저질렀지만 육군 특무대장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권 의원은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장하는 것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모욕이자 무원칙의 표본”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06-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아직도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63명, 강제 이장 추진된다

※관련기사

파이낸셜뉴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무려 ’63명’

노컷뉴스: 권칠승 “현충원 안장 친일 63인 이장시켜야”..국립묘지법 개정안

화, 2018/06/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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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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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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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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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6 –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이후 동북아시아의 질서 변화?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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