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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게, 더 대담하게, 더 포용적으로” 인권 비전 제시한 쿠미 나이두 신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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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게, 더 대담하게, 더 포용적으로” 인권 비전 제시한 쿠미 나이두 신임 사무총장

익명 (미확인) | 목, 2018/08/16- 17:12

국제앰네스티 최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무총장이 탄생했다. 요하네스버그 방문으로 임기 첫 직무를 시작하는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이 16일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자신만의 비전을 제시했다.

인권 운동이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크고, 대담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이 밝혔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인권은 인류가 마주하는 일부 불의와 관련된 것일 뿐 다른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세계가 맞닥뜨린 복잡한 문제는 그래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현재 겪고 있는 억압의 유형은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후변화 위기가 불평등과 인종에 관한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해 논할 수 없으며, 성차별이 여성의 경제적 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에 대해 다룰 수 없다. 기본적인 경제 정의를 요구하려 할 때 정확히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탄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현재 인류가 현대 역사상 가장 분열된 시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증오와 공포에 눈이 먼 사회에 악몽처럼 끔찍한 비전을 제공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인권과 같이 인류를 하나로 묶는 공통된 가치 아래 하나가 될 때에야 비로소 이러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역설했다.

“사무총장으로서 가장 먼저, 국제앰네스티는 전세계 구석구석, 특히 남반구까지 뻗어 나가는 순수한 의미의 글로벌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음을 분명히 전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더욱 포용적인 인권 단체로 나아갔으면 한다. 2018년에는 인권옹호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는 노동조합, 학교, 종교단체, 정부, 기업체까지 삶의 각계 각층 어디서나 탄생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더 나은 활동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이의 제기와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일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이곳에 필요한 리더이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아헤드 타미미, 엘린 에르손, 시본길레 은다쉬처럼 시민 불복종에 나서거나 ‘순진하고 이상적’이라고 손가락질 받기를 서슴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용감한 롤모델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닥친 불의를 출신과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처럼 여긴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지구 반대편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낯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싸울 때, 변화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실은 더욱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모두 힘을 합쳐 압제자에 맞서야 할 시기다.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 자녀와 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 불의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면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국제앰네스티는 여러분의 목소리와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인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운동에는 여러분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임 사무총장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릴 셰티 전 사무총장이 지난 8년간 국제앰네스티에 공헌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살릴 셰티 전 사무총장이 남긴 업적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확장시켜, 세계적으로 단합된 운동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규칙을 깨고 변화를 만들다

쿠미 나이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사회정의운동에 바친 활동가다. 1965년 더반에서 출생한 쿠미는 15세 때 처음으로 액티비즘에 발을 들이게 된다. 당시 그는 반 인종격리 정책 시위를 조직하고 이에 참여했다가 결국 퇴학을 당했다.

1985년, 시위 도중 끌려나가는 쿠미 나이두

그때부터 쿠미는 지역사회 액티비즘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됐고, 인종차별적 정권에 맞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86년, 21세가 된 쿠미는 비상사태 관련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어쩔 수 없이 도피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결국 영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정하고,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어 해방운동에 관한 금지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인종차별 정권이 붕괴되자, 쿠미는 1990년 남아공으로 돌아와 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교육이었는데, 특히 성인의 문맹률 낮추기 운동과 선거 교육 운동 등을 통해 그동안 역사적, 제도적으로 외면당했던 지역에 힘을 불어넣었다.

쿠미는 여러 차례 대표직을 역임했지만, 그 중에서도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이사장 재임 시절은 시민 불복종 운동을 대표하는 용감한 활동가로서 그의 명성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시기였다. 특히 2011년 북극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탄원서명을 직접 전달하고자 그린란드의 석유굴착장치를 오르다 체포된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러시아 북극의 바렌츠해에 있는 러시아 석유굴착장치를 점거하기도 했다.

쿠미가 가장 최근 맡았던 직책은 범아프리카단체인 정의, 평화, 존엄을 요구하는 아프리카 궐기(Africans Rising for Justice, peace and dignity)의 공동설립자 겸 임시 의장이었다. 노동조합과 종교 및 시민사회단체간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 이 단체는 아프리카 대륙 자체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프리카인들은 늘어나는 부와 권력을 분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62년 국제앰네스티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재판에 감시대표를 파견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쿠미가 앰네스티의 세계적 대표직인 사무총장에 지원하게 된 것은 그 편지 덕분이었다.

국제앰네스티의 신임 사무총장직 임기가 시작되기 전날 밤, 쿠미는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장소인 더반의 채스워스 중학교를 방문했다. 1980년 퇴학당한 이후 처음으로 찾은 모교였다.

아침 조회 시간에 모인 아이들에게 쿠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납득하지 마세요. 리더십은 내일 발휘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인류에 대한 봉사는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배경

사무총장은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의 대표자이자 주요 대변인이며, 국제이사회의 이사장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권 단체로, 전세계 70개국 이상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직원 2,600명, 회원과 자원봉사자, 지지자 총 700만명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사무총장은 국제앰네스티 국제이사회가 임명하며, 4년간의 임기를 수행한다. 임명은 세계적으로 폭넓게 후보를 물색한 결과에 따라 이루어진다.

쿠미 나이두는 기후대응을 위한 세계캠페인 의장, 빈곤퇴치행동을 위한 세계캠페인 초대의장, 세계시민단체연합회(CIVICUS) 사무총장 및 최고경영자 등 다수의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쿠미 나이두의 전임자인 살릴 셰티 전 사무총장은 지난 2010년부터 사무총장직을 연임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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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가 현재 진행 중입니다.
경실련은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캠페인을 SNS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오늘(27일) 11시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기자회견에 맞춰 충북·청주경실련을 비롯하여 전국 30여개 경실련은 동시 성명을 발표하여 동참합니다.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단을 촉구한다!

<경실련 최저임금 운동 집중행동주간 캠페인 실시>


20대 총선 기간 중 주요 정당들이 대폭적인 최저임금 인상을 경쟁적으로 공약하면서 최저임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이다. 양극화의 심화와 근로빈곤층의 확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은 소득불균형을 바로잡고, 내수 진작에 보탬이 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이 여소야대로 귀결되면서 최저임금 1만원 실현에 대해서는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도 불구하고 근간의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23일 오후부터 24일 오전까지 장시간에 걸친 제5차 전원회의에서 노·사 위원 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노·사 양측의 계속적인 대립으로 최저임금위원회가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전 국민에게 미치고 말 것이다. 경실련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적 심의 기한인 내일까지 1만원 수준을 향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걸음을 내디딜 것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의견을 개진한다.

 

첫째, 1만원 수준으로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양극화의 심화와 근로빈곤층의 확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최저임금은 소득불균형을 바로잡고, 내수 진작을 기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최저임금(시급 6,030원, 주40시간 기준 월급 126만원)은 단신가구생계비(시급 7,200원, 월급 1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시급 1만원(월급 209만원)이 달성되더라도 여전히 2인 가구의 월평균생계비(220만원)에 미달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효과는 가구 단위를 넘어 한국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경제성장 둔화와 경기불황은 소비부족에 기인한 바가 크다. 임금소득 인상으로 구매력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의 매출도 증가되어 경제는 회복을 기할 수 있다.

독일이 지난해 시간당 8.5유로(약 1만1000원)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이래 청년 실업률을 포함한 전체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노동자의 사회보험가입률도 높아져 안정적 일자리 확대에도 기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미국도 예컨대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간당 10달러인 최저임금을 2022년까지 15달러(약 1만700원)으로 인상하기로 하는 등 최저임금 효과는 현재 미국이 직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인상을 위해 전향적인 태도로 논의에 임하라.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은 업종별로 지급 능력이 다른 만큼 업종별 특수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노동자 측 위원들과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저임금 업종에 더 낮은 최저임금액을 적용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차등지급 적용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노·사 위원의 대립이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으로 이어져 공익위원의 중재안이 최저임금으로 결정되는 것은 경계되는 상황이다. 공익위원의 최저임금안은 보수적인 결정으로 일관되어왔는데 이는 정부의 결정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익위원들은 사회적 요구를 잊지 말고 현명한 결정에 나서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해 내년 최저임금인상률은 최소 13% 이상이 되어야 한다.
내년도 최저임금인상률은 20대 총선의 사회적합의의 의미와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소 13% 이상이 되어야 한다. 13% 이상 인상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하자는 총선공약에도 부합하며, 환산액도 784원으로 최근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액보다 낮아 사회적인 부담도 크지 않다. 13%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안정적으로 실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까지 오늘과 내일만을 남겨놓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내년도 인상수준에 대해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적 합의이자 국민적 관심과 열망이 집중된 사안임을 명심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단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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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6/2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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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재 요 청 서]

탈원전 친환경 대체에너지 정책 공약 1호 조치

월성 1호기 폐쇄와 신고리 5,6호기 중단부터

가장 지지 많이 받은 에너지 정책 시행요구

1인 시위 시작

 

○ 제목: 탈원전 친환경 대체에너지 정책 공약 1호 조치,

월성1호기 폐쇄, 신고리 5,6호기 중단 요구 1인 시위

○ 일시: 2017년 6월 5일 점심시간(12:00~13:00)

○ 장소: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건물 앞

○ 참가자: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양이원영 에너지국 처장,

권력감시팀 장하나 팀장(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문재인 대통령 공약 중 ‘문재인 1번가’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공약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정책’, ‘탈원전, 친환경의 대체 에너지 정책’이다. 특히, 이 공약은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월성1호기 폐쇄와 같이 구체적인 계획이 적시되어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실현을 위한 100대 국정과제를 준비 중이다.

 

○ 그런데 지난 한 주간 원자력계의 준동이 소란했다. 언론사들은 마치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에너지 전환 공약이 좌초될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연일 보도를 이어갔다. 김진표 위원장이 “신고리 5·6호기는 전체 원전 안전성 등을 깊이 있게 논의·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한 것을 마치 탈핵에너지전환 공약의 후퇴처럼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 시행을 위한 검토를 계속하고 있으며 조만간 그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 환경운동연합은 오늘부터 문재인 1번가 제 1지지를 받았던 ‘탈원전, 친환경 대체 에너지 정책’ 공약이 실현되는 그 첫 번째 조치로 월성 1호기 폐쇄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국정기획위원회 건물 앞에서 이어나갈 계획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양이원영 에너지국 처장, 권력감시팀 장하나 팀장(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시작한다.

 

2017년 6월 5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권태선 박재묵 장재연 사무총장 염형철

문의: 양이원영 처장010-4288-8402 [email protected]

안재훈 탈핵팀장 010-3210-0988 [email protected]

월, 2017/06/0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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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xico

국제앰네스티는 멕시코에서 불법 벌목에 반대하며 평화적인 활동을 벌인 데 대한 처벌로 부당하게 수감된 남성을 ‘양심수’로 보고, 이 남성을 즉시 조건 없이 석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심수인 일데폰소 사모라 발도메로(Ildefonso Zamora Baldomero)는 2015년 11월 멕시코시티에서 동남쪽으로 80km 떨어진 산후안 아칭고의 선주민 틀라우이카족 마을에서 체포되었다. 지난 2012년 7월 벌어진 절도행위에 가담했다는 혐의였다.

에리카 게바라 로사스(Erika Guevara-Rosas) 국제앰네스티 미주국장은 “일데폰소 사모라는 자신이 속한 지역과 환경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수감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즉시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데폰소 사모라의 절도 혐의는 날조된 증언들을 근거로 적용된 것이다. 검사가 증인으로 신청한 목격자들은 마치 대본을 읽는 듯이 모두 똑같은 표현만을 사용해 증언했다. 범행 장소는 보존되지 않았으며, 증거 역시 적절한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체포되기 이전에도 일데폰소 사모라는 벌목 반대 운동을 벌인 것과 관련해 계속해서 위협을 받고 괴롭힘을 당했다. 2007년에는 괴한의 공격으로 아들 알도(Aldo)가 목숨을 잃고 미사엘(Misael)이 부상을 당했지만 지금까지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데폰소 사모라는 교도소에서 “불법 벌목 중단을 위해 활동했다는 이유로 아들을 잃고 자유를 빼앗기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우리 마을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미 불법 벌목으로 지구의 상당한 부분이 파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해왔다.

게바라 로사스 국장은 “일데폰소의 사연은 멕시코 각지의 많은 인권옹호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데폰소가 감옥에서 1초라도 더 머물러서는 안 된다. 멕시코 정부는 일데폰소와 그 가족을 공격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기소한 책임자들을 찾는 쪽에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심수는 폭력을 사용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기타 양심적인 신념이나 인종, 성별, 피부색, 언어, 국적, 사회적 신분, 경제적 수준, 출신, 성적 지향성 등에 기반한 이유로 구금된 사람을 말한다.

영어전문 보기

Mexico: Indigenous environmental activist named ‘prisoner of conscience’

A Mexican man unfairly imprisoned in what appears to be a punishment for his peaceful activism against illegal logging must be released immediately and unconditionally, Amnesty International said as it named him a “prisoner of conscience”.

Ildefonso Zamora Baldomero was arrested in November 2015 in the Indigenous Tlahuica community of San Juan Atzingo, 80km south-west of Mexico City. He is accused of participating in a burglary in July 2012.

“Ildefonso Zamora is being punished for speaking out against the damage being done to his community’s territory and environment. He should have never been imprisoned in the first place and must be released immediately and unconditionally. Protecting the environment and defending human rights are not crimes,” said Erika Guevara-Rosas, Americas Director at Amnesty International.

The burglary charges against Ildefonso Zamora are based on a series of fabricated testimonies. The prosecutor registered the testimonies of eyewitnesses who described the events using the exact same words as if reading them from a script, the crime scene was not preserved, and the evidence was not properly handled.

His arrest is part of a series of threats and harassment in relation to ahis anti-logging campaigns. In 2007, his son Aldo was murdered and his son Misael was injured in an attack which hasn’t yet been fully investigated.

Speaking from prison, Idelfonso Zamora said: “I work to stop illegal logging, and that has cost me dearly: my son’s life and my freedom. I want to continue working for my community because illegal logging is destroying large parts of the planet earth.”

“Ildefonso’s story represents the way many human rights defenders and grassroots activists are treated all over Mexico. He must not be made to languish in jail for a second longer. Instead, the Mexican authorities should re-direct their efforts to find those responsible for the attacks and political persecution against him and his family,” said Erika Guevara-Rosas.

Prisoners of conscience are people who have been detained because of their political, religious or other conscientiously held beliefs, or on the basis of their ethnic origin, sex, colour, language, national or social origin, economic status, birth, sexual orientation or other status. It is a distinction Amnesty International only gives to individuals who have neither used nor advocated violence.


월, 2016/05/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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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와 비선실세 최순실이 만들어낸 사상초유의 국정농단에 온 국민은 분노했다.

4개월에 걸친 검찰과 특검 수사로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드러났다. 수사결과, 대통령은 최순실의 영업사원에 불과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문제로 불거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의 딸 박근혜와 목사 최태민으로 시작된 관계가, 대통령 박근혜와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관계로 이어졌다. 그러나 박근혜는 마지막까지 의혹을 부인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두 달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를 추적했다. 이들의 관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확보했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모았다. 그 결과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얽히고 설켜 살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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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육영수 숭모회’ 회장을 지낸 이순희(89)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자다. 1937년 문경보통학교에서 박정희를 처음 만났다.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에도 참여했던 그는 스승인 박정희의 공적을 기리고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1990년에는 박정희 지지자 등을 모아 숭모회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씨는 박정희의 자녀들과는 그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1990년에는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을 재단에서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이 씨가 스승의 딸에게 등을 돌린 건 모두 최태민 목사 때문이었다. 그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했다. 이 씨에 이어 숭모회 회장을 맡았던 이영도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1980년대 최태민은 육영재단에 아방궁을 차려놓고 전횡을 일삼았다. 내부에서 반발이 많았다. 육영재단을 지키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유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태민을 박근혜로부터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숭모회를 만들었다.”

(이영도 / 전 숭모회 회장)

박근혜를 육영재단에서 쫓아내기 1년 전인 1989년 11월, 이순희 씨는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에게 최태민의 전횡을 지적하는 편지를 보냈다. ‘큰 영애님’으로 시작하는 6장 분량의 편지에는 박정희 유가족의 생활과 육영재단 문제를 걱정하는 이 씨의 간절한 마음이 빼곡히 담겼다.

“최 회장(최태민) 님에 대하여,

최 회장님이 큰 영애(박근혜)를 진실로 위하신다면, 표면에 나서서 누구하고든 큰 영애와 화합을 해 협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최 회장님이 큰 영애(박근혜)님의 막후인물로서 큰 영애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육영재단 직원들은) 생각들을 하고 별에별 말들을 다하고…”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의 편지 / 1989년 11월)

전 박정희 숭모회장이 남긴 4시간 30분 육성증언

초등학교 시절부터 박정희와 인연을 맺고, 또 그 자녀들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순희 씨는 2012년 대선 직전, 4시간 30분 분량의 육성 증언을 남겼다. 이 씨가 보고 들었던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육영재단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고스란히 담겼다. 처음 공개되는 이 증언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이 씨는 1989년 경 최태민을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박근혜와 최태민이 육영재단에서 같은 방을 썼다. 그 방에서 최태민을 처음 만났다. 방에 들어가니 최태민은 다리를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자빠져 있었다.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 육성 증언)

이씨의 눈에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절대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최태민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했다. ‘최태민이 대체 뭐냐’고 따져 물었더니, 박근혜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 말을 안 들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 육성 증언)

이 씨는 경북 문경에 소재한 박정희 기념관 ‘청운각’ 문제로도 박근혜, 최태민과 갈등을 빚었다. 청운각은 1930년대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교사 시절 하숙했던 집이다. 1983년경 이순희 씨가 사비를 들여 사들여 박정희 대통령의 영정과 제단을 설치한 뒤 일반에 개방했다.

 그런데 1989년 8월, 박정희 육영수 추모사업회가 보낸 한 장의 통고문이 갈등을 일으켰다.  통고문을 보낸 사람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다. 통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청운각에 걸린)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정과 제단을 철거하고, 이 통고를 무시하면 청운각에 대한 폐문조치를 하겠다.”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 통고문/ 1989년 8월)

박근혜는 왜 기념관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을 치우라고 했을까. 통고문을 받은 뒤 화가 난 이순희 씨는  박근혜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놀라웠다. 박근혜는 모두 최태민의 뜻이니, 그냥 시키는대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한다. 우상숭배이니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최태민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이순희 씨는 느꼈다.

“(박근혜가 하는 말이) 저기 최태민이 기분이 상해가 있으니까 그냥 시키는대로 하라고 했다. 최태민의 기분이 좀 좋아지면 다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우상숭배니까 하지 말라고…”

(이순희 전 숭모회 회장 증언 / 1989년)

이 씨의 주장은 다른 육영재단 관계자의 증언과도 유사했다. 겉으로는 박근혜가 이사장이었지만, 육영재단이나 박정희 추모사업회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건 최태민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이사장은 아무 것도 몰랐어요. 최태민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조OO 전 육영재단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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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 서울 신당동의 박정희 대통령 자택. 5.16 쿠데타가 기획됐고

대통령이 되기 전 박정희 일가가 살았던 집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청와대를 떠난 20대의 박근혜는 두 동생과 함께 이 집으로 돌아왔다. 1982년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이 집에 살았다. 그런데 그 후 이 집을 지키고 관리한 건 최태민이었다. 최태민은 조카인 최용석 씨에게 관리를 맡겼다. 최용석 씨는 1989년 4월부터 1990년 11월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신당동으로 이사하기 전인 1986년, 최용석 씨는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에서도 일했다. 역시 큰아버지인 최태민이 시킨 일이었다. 그가 맡았던 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 관리. 대부분 박근혜가 영남대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었다. 박근혜에게 최태민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까지도 맡길 수 있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최태민과의 관계 때문에 여러번 곤욕을 치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 때는 최태민과의 사이에 자녀가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박근혜는 발끈했다.  

“(최태민과의 사이에) 만약 애가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제가 DNA 검사도 다 해 주겠어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

그러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계속됐다. 박근혜와 최태민이 의심을 살만한 관계를 가져왔다는 목격담이 쏟아졌다. 모두 1980년대 후반,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던 때의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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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 청문회에서 박근혜는 최순실과의 관계도 부인했다. 최순실 씨가 소유한 수백억원 대 재산이 육영재단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자, “천부당만부당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이 공모한 국정농단이 확인되면서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와의 끊을 수 없는 40년 인연은 결국 베일을 벗었다. 지난 1월 16일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최순실은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재판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한때는 대학시절에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했고, 많이 좋아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옆에 있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순실 헌법재판소 증언 / 2017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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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태민이 처음 만난 건 1975년경이다.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직후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안 돼 대한구국선교단이란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이후 이 단체를 모태로 구국여성봉사단(새마음 봉사단)이 만들어졌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총재, 명예총재 같은 직함을 가지고 활동했다.

이들이 같이 움직일 당시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이었다. 박근혜가 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 본부가 있던 곳이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이 곳에 노인전문병원인 새마음종합병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폐쇄등기부 등본을 확인해 봤더니, 1977년 구국여성봉사단이 이 땅을 증여받은 걸로 나왔다. 증여한 사람은 최태민. 최태민은 증여 한 해 전인 1976년 이 땅을 매입했다. 당시 이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은 10억 2천만원이었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무려 300억원이 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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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여성봉사단에 기증된 이후 이 땅의 소유주는 여러번 바뀌었다. 하지만 모두 박근혜, 최태민이 지배, 운영하는 법인이었다. 이 땅을 최종적으로 매각하면서 생긴 자금은 1985년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이 유치원을 설립할 당시 초기 자금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박근혜와 최태민이 공동 소유한 거액의 자금은 최순실 재산 형성의 종잣돈이었던 셈이 된다. 박근혜-최태민-최순실로 이어진 경제공동체를 설명해 줄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구국여성봉사단 자금이 최순실 재산의 시드머니?  

그렇다면 박근혜와 최태민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해 구국봉사단을 만들고 부동산을 사들였던 것일까. 그 단서는 1979년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의 일명 ‘최태민 보고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던 이 보고서에는 최태민이 돈을 모은 과정과 방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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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최태민 보고서

“1975년 4월 29일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 및 사이비 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 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징수 등 이권단체로 치부.”

1978년 7월 14일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대한통운 (주) 회장 최원석 등 10명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하여 1979년 10월에는 국내 재벌급 실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선에 육박, 1인당 입단찬조비 2000~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

(중앙정보부 ‘최태민 보고서’ / 1979년)

최태민의 비서였던 채병률 씨의 증언도 최태민 보고서 내용을 뒷받침한다. 채 씨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구국봉사단을 만들던 1975년 경, 최태민이 기업 대표들에게서 7억원이 넘는 거액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재벌기업을 협박해 700억 원 넘는 돈을 뜯어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을 설립한 뒤, 최순실이 운영케 해 막대한 이권을 챙겨준 것과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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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박근혜를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몰아낼 당시, 이순희 숭모회장은 전국을 돌며 최태민 일가의 재산을 조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는 최태민이 육영재단 이사장인 박근혜를 좌지우지하면서 육영재단 자금을 빼돌려 부를 축적했다고 의심했다. 이 씨는 최태민의 호적등본을 단서로 가계도를 만들었고,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확인해 가며 최태민 일가의 재산형성 과정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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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이 보고서는 최태민 일가의 재산관계를 추적한 첫 민간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씨가 만든 보고서에는 최태민과 부인 임선이 소유 부동산은 물론 최순득, 장석칠 등 최태민의 딸과 사위 명의의 재산목록도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이 씨는 보고서 말미에 “최태민 일가가 뚜렷한 소득원이 없이 강남 요지의 주택과 빌딩을 취득했다”고 적었다.

뉴스타파는 이순희 씨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최태민의 아들 최재석 씨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최 씨는 최태민과 그의 넷째 부인 사이에서 1954년 태어난 사람으로 최순실의 이복오빠다. 그는 최태민이 박근혜와 함께 운영한 구국여성봉사단, 영남대 등에서 많은 돈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구국봉사단을 운영하던 1970년대 후반이 최태민 일가에게는 그야말로 꽃 피는 봄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순희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구국여성봉사단에서 그 자산이 (우리집으로) 넘어왔다. 영남대학 같은 곳에서도 많은 돈이 들어왔다. 그 돈으로 땅도 사기도 했다. 1975년도부터 우리 집은 잘 살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꽃피는 봄날이었다. 아버지가 가져온 돈이 족히 1000억 원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재석 / 최태민 아들)

 최재석 씨는 최태민이 살아 생전 그 많은 돈으로 박근혜를 대통령 만드는데 쓰려고 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만들기 프로젝트가 가동됐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금고에 쌓아놓은 돈, 외화, 금덩어리들을 보여주면서 ‘박근혜를 대통령 만드는데  선거자금이 1조 정도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많이 하셨다.”

(최재석 / 최태민 아들)

최태민과 가까웠던 전기영 목사의 증언도 비슷했다. 전 목사는 1980년대 초부터 최태민과 10년 이상 교류했던 사람이다.  

“최태민 씨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됩니다. 전국에 있는 70만명 근화봉사단 단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 겁니다. 목사님이 총책임을 맡아 주십시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조흥은행 안국동 지점에 13억이 있으니 그 돈을 쓰면 된다고 했다.”

(전기영 목사 / 최태민 지인)

최태민은 199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뒤인 1997년, 박근혜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정치인이 된 뒤에도 박근혜 곁에는 언제나 최태민의 그림자가 있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그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선거를 도왔다. 최순실의 모친인 임선이 씨도 대구로 내려가 선거를 지휘했다. 선거 자금은 최순실 측이 마련했다. 임선이 씨의 운전기사였던 A 씨는 지난해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임선이의 지시를 받고 박근혜 쪽에 돈을 실어 날랐다. 2억5000만 원 정도를 가방에 나눠 들고 가지고 갔다. 박근혜와 임선이 씨가 같이 쓰던 아파트로 돈을 갖다 줬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들의 증언은 모두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가 사실상 한 몸처럼 경제공동체를 꾸려왔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1975년 구국선교단을 만들 때부터, 또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 사이의 재산공유가 계속됐음을 확인시켜 준다.  

대통령 박근혜는 최태민의 딸 최순실에게 국가기밀을 유출했을 뿐 아니라, 서로 공모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박근혜가 주도한 미르와 K스포츠 두 재단에 200억 원 넘는 돈을 출연하고, 추가로 최순실 측에 236억 원을 갖다 바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제3자 뇌물) 혐의로 구속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와 최순실 일가의 경제공동체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뇌관이었다. 사건의 본질을 관통하는 혐의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결정적인 혐의가 됐다. 특검이 수사기간 내내 이 문제에 매달려 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최순실은 여전히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마치 입을 맞춘 듯 움직였다. 지난달 25일, 박근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 헌재에 제출한 서면 최후변론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희한하게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특검이) 만들어 냈는데, 모두 거짓말이다. 엮어도 너무 어거지로 엮었다.”

(박근혜 대통령 / 1월 25일 정규재 인터뷰)

“최순실은 지난 40년간 옷가지 등 소소한 일 도와준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 등 치르며 저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 2월 27일 헌법재판소 최후변론)

그러나 박근혜가 최순실과 공모해 각종 이권에 개입한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대통령의 주장은 설자리를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뇌물을 받은 사람, 즉 대통령 박근혜를 처벌하는 것이다. 수사기간의 한계로 특검이 못했다면, 검찰이 다시 해야 한다. 박근혜-최태민-최순실로 40년 간 이어져 온 기괴한 혹세무민과 사상 초유 국정농단의 뿌리와 그 비호세력도 철저히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다시 정의가 설 수 있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취재·연출 : 한상진 강민수

내레이션 : 안종덕

촬영 : 최형석 김기철 신영철

편집 : 박서영

수, 2017/03/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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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협조요청]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국제인권기준과 유엔권고 부합여부를 확인하는 유엔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

 

 

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한택근, 이하 민변)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0명은 유엔 인권조약기구와 특별보고관에게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청원서에서 민변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에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가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일본의 법적책임 인정과 공식사과로 볼 수 없고, 그간의 유엔인권기구들이 일본 정부에 내린 권고사항들과 부합되지 못한 점을 비판하며 유엔의 인권조약기구와 특별보고관에게 이번 합의가 국제인권기준과 권고사항에 미치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청원서를 준비하였고, 유엔에 직접 제출하고자합니다. 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인권담당 고위담당자에게도 향후 전달될 예정입니다.

 

 

3. 이에 민변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0명은 오는 1월 28일(목) 오전 11시, 평화의 우리집(정대협 쉼터)에서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자하니, 많은 취재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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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1.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국제인권기준과 유엔권고 부합여부를 확인하는 유엔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

 

 

 

○ 일시․장소: 2016. 1. 28.(목) 오전 11시, 평화의 우리집(정대협 쉼터)

 

○ 주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0명 – 김복동, 이용수, 길원옥, 이옥선, 강일출, 유희남, 김군자, 박옥선, 김순옥, 이수산)

 

 

○ 기자회견 순서

 

*사회: 이상희 변호사

 

- 여는 말 1 / 조영선 (민변 사무총장)

 

- 발언1.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발언 / 미정

 

- 발언2. 한일외교장관회담 이후 현재 대응활동 등 / 윤미향 (정대협 대표)

 

- 발언3. 유엔 청원서 요약 발표 및 향후 방향 / 김기남 변호사 (민변 국제연대위)

 

- 질의응답

 

 

[취재협조요청] 일본군’위안부’- 유엔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 160127

수, 2016/01/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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