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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섹타 경제론 – 인간품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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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섹타 경제론 – 인간품성에 대하여

익명 (미확인) | 수, 2018/08/08- 11:02

지난 2~3세기 동안 인간의 물질적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자본제 시스템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유주의 그리고 시장기제와 함께 출범했다. 그러나 성취한 풍요 뒤에는 1%의 소수를 위하여 대부분의 시민들이 극빈적 실업 상태 아니면 현대적인 노예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역설적 조건이 형성되었으며, 통제불능인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극심한 자원 낭비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자연 훼손이 심각해지면서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여름 지독한 더위는 이러한 위기를 피부로 생생하게 체험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팽창과 이익 실현이 주동력인 사회경제적 활동 범위가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영역은 국가 또는 지역 단위에 머물면서 패권 국가 간 또는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우려가 점증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라 이름 짓든 현재의 사회경제적 시스템과 이에 대응한 정치군사적 체제로는 결코 인류의 미래가 안전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의 한 축을 이루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난해 1월 9일 자 ‘다른백년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관련기사:  ‘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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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는 ‘정의론’이라는 저술에서 수요와 공급의 합리적 조정과 자원의 배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보와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는 시장기제는 체제와 상관없이 가치 중립적으로 적용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자본주의에서 역할을 하듯이 사회주의에서도 공히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현재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중국의 괄목할 경제발전의 성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핵심적 주제는 시장의 기제를 넘어서 배후에 존재하는 이념적 성격인 ‘인간 품성에 대한 견해’와 ‘부와 빈곤의 원인’에 대한 해석이다. 

소위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항상 인용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완벽하게 조작된 신화적 거짓말이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윤리학에 속하여 있던 경제라는 영역을 별도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한 스미스는 단순히 분업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설, 자본축척론, 특혜와 독점에 대한 비판 등을 주창하였고, 주 연구 분야인 윤리학 분야의 저작 ‘도덕감성론’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도덕과 정의, 질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원용된 표현과는 반대로 그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상당한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미스는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공동체의 도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곡간에 쌀이 가득해야 인심이 넘친다’는 판단으로 물질적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분업이라는 천재적인 발상을 저술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수공업적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다수의 가내 수공업적 공급체계라는 조건 속에서 이상적인 분업과 시장적 균형이론이 실제로 잘 작동하였다. 본디 애덤 스미스는 오히려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공의 ‘스미스’와는 정반대로 미래에 다가오는 공장제적 대량생산이 가져올 독점적 폐해를 매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만큼 잘못 와전된 또 다른 인물이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위대한 그의 진화론은 생명과 자연생태계를 상호관계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실천적 방법론이고,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두(話頭)였다. 그의 자연(환경) 선택론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상이 생물계의 개체에서 군락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로 영역을 확장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스펜서 등 일군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같이 저급하고 잘못된 이론으로 축소·해석하면서, 자본제 생성 시기에 맞불려 살인적 노동자 수탈구조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장기간 노동시키는 것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뼛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과 빈곤을 못 벗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못난 탓으로 돌려졌으며, 탐욕스러운 귀족과 자본가의 풍요 역시 적자생존의 자연스러운 법칙에 따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었다.

현대 생물학적으로 밝혀지는 내용은 인간의 DNA 대부분은 잠재적으로 불용상태에 있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에 따라 활성화되면서 부단히 다양하게 적응하고 진화한다고 한다(stochastic theory). 인간의 사회적 진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버드 대학의 거두 로베르토 M. 웅거 교수는 <주체의 각성(The Self Awakened)>(이재승 옮김, 앨피 펴냄)에서 인간은 고정된 품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환경과 제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가소적(plastic) 가능성의 존재임을 확인하고 있다.

‘경제적 동물’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규정과 천박한 이론이 자본증식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탈바꿈 등장하여 시장과 결합하면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를 오늘날 끝없는 수탈과 처참한 전쟁과 고통스러운 빈곤, 그리고 노동소외로 퇴행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하게 포장하는 논리와 실제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기제가 함께 맞불려 칼 폴라니가 표현했듯이, ‘악마의 맷돌’로 변질되면서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괴물이 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구호는 실상 잘못된 현실을 은폐하고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도구일 뿐이다.

오히려 최근의 현대적 게임이론 등을 통하여 밝혀진 바에 의하면, 도덕의 핵심인 인간의 이타성은 긴 역사를 통하여 공존의 규칙으로 수용되고 정착된 것으로 밝혀졌다. 예외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 논리인 탐욕적 인간이라는 가정은 18세기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기득권을 옹호하고 자본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되고 강제로 적용된 억압이자 이탈이다. 한마디로 대화적 언어를 공유하고 사회적으로 협동할 수 있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제도와 환경에 의해 유도되고 진화하며 성숙되는 신적(至誠)인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자연스레 산업사회 초기부터 자본의 탐욕에 대한 문제점과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프랑스와 영국에서 전개되었던 소위 공상적 사회주의를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한계를 드러낸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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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푸리에(왼쪽), 로버트 오언(오른쪽)

유토피아를 상상한 토머스 무어, 자연재의 공유개념에 기초하여 기본소득을 제시한 토마스 페인, 무제한적 사유제를 비판한 시몬 드 보부아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여 시종들을 해방시킨 귀족 출신 생 시몽, 그리고 아래에 언급할 사를 푸리에와 로버트 오언 등으로 연결되는 산업혁명 초기 시절의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는 일로 문제가 많은 현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에 와서 화려하게 재평가받는 사를 푸리에의 천재적 제안과 로버트 오언의 실천적 실험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푸리에의 시각에서는 가난과 실업에 시달리는 한 노동자의 권리라는 것이 단지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인민주권론의 원칙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의 개념은 생활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공격한다. 그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인 자유, 평등, 박애는 의미 없는 망상과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당대에 유행하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상들도 가난한 인민들에게 품위 있는 생활 수단을 제공해주고, 최고의 자연권적 권리인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시대적 명령에 무지하다고 반발한다. 가난한 인민들은 곧 정치철학에 의해 버림받은 존재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 그는 노동할 권리의 보장을 절대적인 요구라 주장하며, 이 노동할 권리 없이는 여타의 모든 권리가 무용지물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푸리에는 노동의 문제를 계급적 관점보다는 자연적 인간 존재라는 방식에 기초하여 고찰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열정을 쫓는 즐거운 노동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해방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한다. 참조로 푸리에의 열정과 즐거움에 근거한 노동의 개념은 후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진우 옮김, 한길사 펴냄)에서 다시 현대적 의미로 부활한다.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려는 시도로써 그는 ‘팔랑주(phalange, 적이 공격할 수 없는 잘 짜인 밀집 방어진)’의 건설을 꿈꾼다. 농업과 산업 활동의 결합체이며, 그 운용방식은 노동의 형태와 생산물의 분배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는 공동노동, 업적 및 도급에 의한 차등분배, 조직원의 최저생계보장, 생산단위 간의 업적 경쟁 등을 기초로 하여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팔랑주의 밑그림을 기획한다.

애초에 내면의 열정과 즐거운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나, 현실적으로는 힘들거나 쾌적하지 못한 노동이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생산공동체 체계 속에서도 사회적 차별, 임금의 차등, 사유재산제도 도입, 사적 자본의 공헌(일종의 기부금) 등 어쩔 수 없이 불평등적 요소가 존속함을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팔랑주 간에 생산물의 상호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공정성이 유지되도록 정치 경제적 최고의 권력이 개입하도록 제안하기도 한다. 규모에 대해서는 최소 80가정과 400여 명 수준의 개인에서 최대한도로 300가정과 1500~2000명 정도를 상정하고 이 단위가 점차 연방적으로 결합하고 궁극적으로 세계체제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유치한 상기 팔랑주의 구상에서 우리는 현대적 협동조합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푸리에는 자신의 글 ‘통일의 이론’에서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연대의 개념에 처음으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 보험의 원칙, 위험과 빚에 대한 공동의 책임 △ 재산의 공유원칙,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려는 자세 △ 사회적 집단적 연대, 공동체적 소속감을 위한 원칙 △ 공공부양의 원칙, 최저생계의 보장 등 역시 현대적 복지국가의 개념을 시도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모범적으로 잘 이루어진 팔랑주가 표본이 되어 결국 세계적 변혁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 않은 그는 이의 건설에 필요한 자금의 충당을 위해 여러 내각 대신들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나 아무도 그의 호소에 응대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을 누군가가 자신의 기획, 팔랑주의 실현을 지원하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자신을 찾아오리라 굳게 믿으면서 매일 정오에 자신의 집에서 기다리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푸리에가 몽상적 휴머니스트라고 조롱을 받는 배경이다. 

그러나 그가 제기했던 맹아적 주제들은 마르크스 등에 의해 ‘과학적 인간해방론’으로 되살아나고 20세기에는 정치적 권리를 넘어선 노동과 생활권 개념으로 발전하였으며,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개념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고, 현재에 일고 있는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적 동력을 미리 일깨운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푸리에 이후 이론보다는 산업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던 로버트 오언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기업가이며,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장인 역시 규모가 제법 되는 방직공장의 소유주였다. 

당시 산업계에는 기업가와 노동자 양측이 끙끙거리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한편으로는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규율이 무너진 노동자들의 불량하고 게으른 근무 태도였다. 이를 잡기 위해서 기업가들은 협박, 벌금, 해고 등 강압적 수단에 의지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장기간 노동, 열악한 환경, 저임금과 학대, 영양실조 등으로 노동자들이 생산성을 스스로 높이고 싶어도 높일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상황을 안고 있어서 앞뒤의 두 가지 문제들이 뒤엉키어 악순환을 이루고 있었다. 

장인인 데일 씨는 당대의 보기 드문 양심적인 기업인으로 뉴라니크 공장에 이미 소년소녀들의 기숙사를 각각 분리 제공하였고, 양호한 급식, 깨끗한 작업환경을 제공하며 야간학교까지 운영해 왔다. 오언은 이에 더하여 고임금 정책을 유지하고. 10세 미만의 아동노동을 금하고, 인원 감축 없이 최신 설비를 들여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또한 당시 평균 노동시간이 14시간 이상인데 반해, 10.5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장인이 기초를 만들었던 여러 가지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복지시설을 더욱 확대하였고, 근무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언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노동자들의 교육문제였다. 그는 개인의 행복이 공공적 보편적 행복으로 확대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고 교육이야말로 이성적 사회실현의 참된 지렛대라고 믿었다. 그의 이러한 교육의 지향은 한마디로 사회교육이었고 교육환경론이었다. 노동자들이 교육과 학습을 통해 스스로 자각하고 새로운 인간형으로 거듭나면, 노동의 주체로서 객관적 능력향상과 주관적 품성을 갖추는 것이 사업성공의 요체로 굳게 믿었다. 

실제로 20년간 오언은 자신의 믿음을 확실하게 실천하여 동일한 노동자 숫자로 생산량을 두세 배 증대시켰고, 순익도 두 배 이상 증대하는 등 대단한 성공을 이룩하였다. 이윽고, 뉴라나크 방적공장은 사회개량 운동의 산지로 각지에서 명사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생기는 법, 외부적 경영환경이 악화되자 다른 주주와 동업자들은 오언의 운용방식이 자본의 논리에 어긋난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파산의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동업자들과의 불화가 오언의 절절한 오랜 꿈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지분을 처분하고 1825년 홀연히 미국을 향해 떠난다. 

영국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경험 중에 최신기계와 기술을 도입하면서 증대된 생산물과 성과가 생산물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그는 증대된 생산물을 선순환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단기적인 자본주의 이익에 매달리는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인 모순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증대된 생산물과 성과를 온전한 기여자인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해결된다는 취지로 푸리에가 구상한 팔랑주와 비슷한 생산협동의 공동체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구상을 실현시키기에는 조국인 영국은 너무나 전통적 보수적 관행에 젖어 있었고 경제 불황과 실업의 확대 속에 처해 있었다. 동시에 동업자 간 불화가 그를 동요하게 한다. 선천적으로 낙관적인 오언에게 미국은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신천지로 등장한다. 그는 독일인 목사가 인디애나 주에 창설한 종교공동체인 ‘뉴하모니’를 사들이고 푸리에가 이상적인 숫자로 제시한 900여 명의 주민들과 새로운 사회건설에 대한 예비실험에 들어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실험은 4년만인 1829년에 실패로 끝나고, 그는 다시 영국 사회로 돌아온다. 

뉴하모니 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그의 신념과 구상을 홍보해냈고 1836년 다시 햄프셔에 퀸즈우드라는 공산적 공동체를 건립하였으나 이도 18년 뒤인 1854년에 와해된다. 2년 뒤, 그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세계에 중요한 진리를 가져왔다. 세상이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

여기서 섣불리 오언의 다양한 시도에 대한 실패 원인을 쉽게 언급할 수는 없다. 혹자는 그의 관념적 성급성을 비난할 수 있고, 또는 기존 조직원의 종교적 관행과 오언의 사회경제적 신념의 충돌과 부조화를 지적할 수도 있고, 그의 철저하지 못했던 공동체적 방법론을 탓할 수 있다. 사회 전반적 변혁 없이 부분적 지역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명백한 한계도 언급될 수 있다. 혹은 기회의 땅이었던,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주의에 의존하던 미국적 풍토에 오언의 공동체적 이상은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오언의 변혁적 운동에 대한 실패에 대해 어떠한 단정적인 판단은 유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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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로, 우리에겐 고전적 교과서가 된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의 저자 칼 폴라니는 실패한 오언을 근대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의 한 사람이며 인본적 실천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언의 실험적 시도가 실패한 후에 뒤따라온 것은 19~20세기를 장식한, 강철 같은 조직을 통하여 노동계급 주도의 투쟁과 혁명,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20세기 후반 인간 품성을 무시한 소련 연방의 참담한 실패를 목격한다. 

푸리에와 오언의 주요 활동은 한마디로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것, 물질적 생산 기반과 인간의 해방적 공간을 정합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인본주의적 상상과 헌신적 노력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조롱하기 위하여 붙인 ‘공상적’이라는 형용사는 이제부터 ‘인본적’ 사회주의자라는 찬사로 바뀌어야 한다.

사유재산의 무제한적 허용, 기득권 방어적 거래의 일방적 제도화, 자본만을 중심축으로 하는 회사의 설립과 계약에 관한 법, 이들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제도와 서민적 참여를 제어하는 복잡한 우회 구조, 평범한 사람들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문화적 흐름과 사회적 관행 등에 대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방법으로 비판과 대안을 찾으려 했다면 인본적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의 도덕적 품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인간과 사회의 해방적 조건을 모색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과학이 발달하고 정책적 경험이 누적된 현재, 우리는 가난과 빈곤 그리고 질병에 고통을 받는 힘없는 서민들의 입장에 서서 현안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천 의지가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제3섹터 경제론은 유용한 도구로서 과학적 방법론을 뼈대로 삼고, 전망적 좌표로서 인본적 사회주의자들이 지녔던 도덕적 의지를 신경줄 삼아 새로운 모색의 길로 나서고자 한다.

(푸리에와 오언의 이야기는 서강대 박호성 명예교수의 ‘공동체론’에서 원용하였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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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연속 보도하고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의혹과 관련, 김 회장이 당시 구치소 대신 입원한 서울대병원 특실에서 흡연을 하고, 샤브샤브와 즉석 불고기를 조리해 먹는 등 구속집행정지를 받을만큼 건강이 심각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들이 추가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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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곤란으로 구속집행정지 받았는데 병실에서 흡연?

김승연 회장이 서울대 병원 특실에 입원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던 2013년 11월 6일, 서울 고등법원 404호 법정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또 한 차례 연장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심문이 열렸다. 이 시점까지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은 이미 3차례나 연장됐는데, 이날 심문은 4번째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법정에는 5명의 서울대 의사가 출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뜻밖의 문답이 벌어진다. 증거로 제출된 김 회장의 간호기록 가운데 흡연의 흔적이 발견된 것. 당시 법정 기록에 따르면, 2013년 10월 22일자 김승연 회장의 간호일지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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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03:47 금연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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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그룹이 12월 19일 언론사들에 발송한 “뉴스타파 보도내용 중 사실관계 확인” 중

▲ 한화그룹이 12월 19일 언론사들에 발송한 “뉴스타파 보도내용 중 사실관계 확인” 중

한화 그룹의 해명대로라면 호흡기 내과적 병력은 여전히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사유 중의 하나였다. 호흡기 내과적 병력으로 구속집행정지까지 받은 김 회장이 병원 특실에서 흡연을 했다면 그 증상이 정말로 심각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산소통 있는 병실에서 샤브샤브와 즉석 불고기 요리… “위험한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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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이 문제가 됐어요. 병실에 O2(산소) 있으니 금연하라고 설명한 적이 있었어요. 병실에서 불고기도 해 먹어서 취사는 안된다고 주의를 줬어요.

A 간호사/김승연 회장 입원 당시 서울대병원 특실 근무

첫 번째 증언은 “김 회장이 병실에서 불고기 등을 조리해서 먹었다”는 것. 또다른 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김 회장이 자체 조리한 메뉴에는 불고기 뿐 아니라 샤브샤브도 있었다. 서울대 병원 특실에서는 환자의 질환과 몸상태를 고려한 환자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사적인 조리가 금지되어 있다. 앞서 인용한 해명자료에서, 한화그룹은 김 회장이 구속집행정지를 받은 사유 가운데 하나로 “내분비내과적 병력(당뇨)”를 꼽고 있다. 당뇨 증상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은 환자가 병원식을 거부하고 병실에서 직접 고기류를 조리해 먹은 것이다. 그의 당뇨는 구속집행정지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을까? 그는 하루라도 빨리 몸 상태가 호전될 수 있도록 성실하게 치료를 받았으며, 서울대 병원의 의료진은 이를 철저히 감독했을까?

병실 안에서 흡연을 하거나 음식을 조리해 먹으면 안되는 이유는 환자의 건강 문제 말고도 더 있다. 김 회장의 경우에는 호흡기 질환이 있었기 때문에 병실에 산소통이 비치되어 있었다. 해당 간호사들은 “만에 하나 담배나 조리기구에서 나오는 불씨가 산소통에 옮겨붙을 경우 폭발이 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김 회장 측에 흡연이나 조리 및 취식 행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회장 측은 이러한 권고를 무시한 셈이다.

“하루 종일 약 먹고 잠만 잤는데.. 퇴원하더니 멀쩡”

또 다른 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김 회장은 정신과 약을 많이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정신과 전문의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정신과 약, 특히 신경안정제는 호흡을 억제시키고 인지기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수면무호흡과 치매, 섬망 환자에게는 많이 쓰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의료 기록을 보면 수면무호흡과 치매, 섬망이 모두 등장한다. 이 전문의는 “의료진이 김 회장을 진정으로 치료할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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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못하고 항상 자고 있어서 몸무게가 엄청 나갔었는데 미국 갔다와서 살 쫙 빠졌고 멀쩡하게 다니는 게 신기했죠.

B 간호사/김승연 회장 입원 당시 서울대병원 특실 근무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의 상태에 대해 증언한 간호사는 “김 회장이 퇴원 이후 미국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봤는데 입원 당시와는 달리 살도 빠지고 멀쩡해진 것을 보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승연 회장은 서울대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날인 2014년 3월 27일 곧바로 미국으로 출국해 5월 2일에 귀국했다.


취재 : 심인보
그래픽 : 하난희

수, 2017/12/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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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7/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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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김장겸’, ‘기자 고대영’. 두 사람은 취재기자로 <MBC>, <KBS>에 입사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도본부에서 보냈다. 현장을 누빈 기자들이 주요이력을 쌓고 사장 자리에 오르는 동안 거꾸로 MBC, KBS 뉴스는 시민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이 ‘성공’할수록 두 공영방송은 침몰하는 배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제 두 공영방송의 구성원들과 시민들은 외친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고대영은 물러나라” 두 공영방송사의 노조가 두 달이 다 되도록 파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거취에 한국 공영방송의 미래가 통째로 달려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두 사람의 성공과 공영방송사의 추락이 맞물리는 아이러니는 왜 일어났을까. 신입 기자들이 접하는 언론의 윤리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된다”는 이 말은 기자와 취재원, 언론과 관력 사이의 불문율처럼 쓰이는 말이다. 최근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기자 김장겸, 기자 고대영은 이를 쉽게 저버렸고, 방송을 입맛대로 통제하고 싶은 권력은 두 사람을 활용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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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김장겸 사장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든 조합원 앞을 지나쳐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러 이동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 ‘기자 김장겸’과 ‘사장 김장겸’

 경남 마산 출신인 김장겸(56) 기자는 고려대 농경제학과, 신문방송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1987년 11월 MBC 공채 24기 기자로 입사했다. 같은 해 12월 MBC에 방송사 최초로 노동조합이 탄생했고, 김장겸 기자를 포함한 신입 기자들은 전원 노조에 가입했다고 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땡전뉴스’로 불리며 권력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방송사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하지만 김장겸 사장은 노조 활동에는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9년 4월 노조를 탈퇴했다. “그는 MBC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편파적이고 친민주당 보도를 한다”는 비판을 자주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MBC 기자들은 이런 기자 김장겸의 인식을 지역주의에서 비롯한 보수적 성향 탓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8월26일, 탄핵 정권 마지막 ‘알박기 사장’ 김장겸의 ‘퇴진 거부’ 투쟁 https://goo.gl/H9Z7Ks)

 그가 결국 성공의 길로 접어든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였다. 이명박 정권 들어 처음으로 보직 부장에 오른 뒤, 6곳의 부장 자리를 거쳤다. 당시 MBC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보도 이후 <PD수첩>제작진이 검찰의 체포·압수수색 등을 겪었고, 2010년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으로 4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무더기 중징계를 받았다.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로 이름을 날렸던 MBC가 권력 앞에 수난을 겪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기자 김장겸은 두각을 나타냈다. 2011년 정치부 현장 경험 2년이 안 된 그가 정치부장 자리에 올랐다. 김장겸 정치부장이 지휘하는 MBC 정치부는 2011년 5월23~26일 4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보도를 모두 외면했다. 2011년 10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은 단순한 사실만 짧게 전달했다.

 세월월 참사 당시 MBC의 전원구조 오보 당시 보도국장은 기자 김장겸이었다. 편집회의에서 유족들을 “완전 깡패네”라고 지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됐고,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권의 책임론으로 옮겨붙자 MBC의 세월호 보도는 정부 편향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게 됐다. 결국 MBC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친박세력’인 ‘애국시민’들에게만 응원받는 방송으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MBC는 만신창이가 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제출받은 ‘MBC 퇴직자 현황(2007.10~2017.10)’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낙하산 사장’을 통해 MBC를 장악한 지난 8년간 해고자가 27명 퇴직자가 166명으로 집계됐다. 기자들이 스케이트장 등 수시로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곳으로 발령 났고, MBC는 김장겸 사장의 말만 듣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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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영 KBS 사장. (사진: 노컷뉴스)

■ ‘기자 고대영’과 ‘사장 고대영’

 서울에서 출생한 기자 고대영(62)은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후 1985년 공채 11기 기자로 KBS에 입사했다. 기자 김장겸과 마찬가지로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바람 속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모스크바 특파원과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KBS미디어 감사 등을 거친 뒤 2014년 9월부터 KBS 비즈니스 사장을 맡았다. 

 그는 2015년 10월 사장으로 임명될 때부터 KBS 구성원들로부터 ‘부적격’으로 찍혀 있는 인사였다.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은 보도국장 시절 이미 기자협회 신임투표에서 93.5%의 불신임을, 보도본부장 재직 시절 84.4%의 불신임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고대영 후보자가 KBS 보도를 망친 주범으로, 대기업으로부터 골프와 술 접대를 받았으며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KBS 보도를 청와대에 헌납할 인물”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꾸린 검증단에서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만 봐도 그의 민낯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용산참사 축소·편파 보도 (2009.1·보도국장)/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보도 축소 논란 (2009.5·보도국장)/4대강 시리즈 방송 중단 (2009.9·보도국장)/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실 보도 (2011.10 / 보도본부장)….”

 언론인의 기본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도 다수 폭로됐다. 2011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고위급 KBS 기자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전망하고 있다’는 제목의 전문으로 미 국무부에 보고된 문건이 있다. 이 고위급 KBS 기자는 바로 고대영이다. 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그가 대기업에 골프접대를 받고, 후배 기자들을 폭행한 의혹이 있다고 폭로 한 바 있다.

 기자 김장겸과 마찬가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성공가도를 달린 그가 정권의 눈치를 본 정황은 곳곳에 존재한다. 사장 김장겸은 2016년 7월 사드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뉴스에 불만을 제기하며 “안보에 있어선 다른 목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혀 ‘보도지침’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선 고대영 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 자제를 국정원으로부터 요청받고 200만원의 돈을 받았다는 정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고대영 사장은 “허위사실이다”며 서훈 국정원장과 정해구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30일 냈다.

 분명한 건, 그가 보도국장·보도본부장·사장을 거치는 동안 KBS 구성원들은 외압으로 인해 특종을 하고도 보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그동안 보도하지 못했던 특종을 9시 뉴스가 아닌 유튜브를 통해 하고 있는 ‘웃픈’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 두 사람의 성공이 남긴 그림자

 두 사람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일단 방송통신위원회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보궐인사 2명을 새로 선임하며 김장겸 사장의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고대영 사장은 각종 의혹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방송 장악”이라며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강수까지 두며 두 사람을 방어하려 하지만, 30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5.6%가 ‘불공정 방송의 정상화’라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이라는 응답은 26.8%였고, ‘잘 모름’은 17.6%였다.) 국민들은 두 공영방송의 사장과 자유한국당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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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새정부의 탄압에 시달리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취하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임기를 마치든, 교체되든 그들이 성공이 남긴 그림자는 너무나 짙다.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땅으로 떨어졌고, 세월호 유족들은 두 방송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기자들은 징계와 해고 압박에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졌다. 공영방송이 과거의 영광은 고사하고 제 역할을 다시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사회와 국민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다. 

수, 2017/11/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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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지난 3월 15일,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워싱턴 D.C.에 있는 후쿠야마 교수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3세로, 현재는 스탠퍼드대 민주주의ㆍ개발ㆍ법치주의 센터에 있다. 1989년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라는 논문을 통해 인류의 역사의 진보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최종 승리로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정치질서의 기원’ 등이 있다. 

페스트라이쉬: 청년들은 요즘 덫에 걸린 느낌입니다. 불리한 시스템에 갇혀 있고, 나갈 방법도 없어 보입니다. 청년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 심각한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청년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우선순위와 실제 정책 사이 격차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동시장의 변화…청년세대의 불안감 가중

후쿠야마: 그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청년 세대는 체제로부터 항상 소외감을 느껴왔습니다. 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할 만한 사회적 지위와 자격이 없습니다.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느끼는 청년들이 정작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역사상 항상 그랬고, 현대에 들어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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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러나 노동시장 자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국가는 미국이지만, 아시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기업이 내세우는 조건은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ematics)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일자리가 많아졌습니다. 원하는 전공이 아니면 이력서를 검토해 주지도 않는 세상이 된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서 청년들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혹시라도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종일 공부만 하는 청년도 생겼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 심하죠. 이에 더해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 변화와 격동이 몰아쳤습니다.

아직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만큼의 파괴적 정치 변화를 겪지 않았죠.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중의 참여가 제한되었고, 청년층 대부분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우선순위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탄핵 시위를 보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황도 빠르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정치에 관해 보편적 진실이 하나 있다면, 모두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느 순간 영감을 받으면 갑자기 열렬히 참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표면만 보고 아무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지난 두어 달 동안 정치 및 사회 흐름에 대한 한국 학생의 관심이 증가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자발적으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의지를 느꼈는데요.

후쿠야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그런 변화를 일으켰을 거라 확신합니다.

페스트라이쉬: 흔히들 ‘변화’라고 하면 정치적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러나 정치를 몰아가는 건 거침 없는 기술의 발전입니다. 정보를 기록∙이전∙조작하는 기술이 폭발적 속도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보편적 추세는 정치와 사회의 작동 원리에, 그리고 이와 관련해 기업과 가족이 기능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요?

가짜 뉴스 판 치는 세상…정보 옥석 가리는 능력 갖춰야

후쿠야마: 인터넷의 정치적 영향을 살펴 보도록 하죠. 1990년대 인터넷이 대중화됐을 때에는 인터넷으로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어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란 낙관적 시각이 대다수였습니다. 정보도 일종의 권력이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확대되면 대중이 더 많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분명, 인터넷이 정치적 결집과 행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적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권위주의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했던 사례도 있었죠.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상하는 걸 보게 됩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바로 ‘가짜뉴스’죠. 정보를 걸러주는 문지기(gatekeeper)나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관, 전문 기자 등 중간 매체가 인터넷 때문에 자취를 감추면서 나타난 결과죠.

완전히 거짓인 글이 섞여 있는데도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면 다 타당하다고 믿어 버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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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mediatoday.co.kr)

특정 정치인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각국에서 등장했습니다. 이런 정치 공작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바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죠.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죠. 미국에서도 지난 1년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동시에 언론의 데스크나 정보를 선택하는 문지기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언론 권력이 사회적 논의를 제한하고 미국 국민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이 주장은 어떻게 보시나요?

후쿠야마: 문지기 없이 개인이 정보를 직접 생성하고 공유∙배포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인터넷 덕분입니다. 따라서 인터넷의 파급력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복잡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뉴스를 만들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죠. 그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뉴스 내러티브를 마음대로 조작하게 된 건 인터넷이 도입됐을 때만 해도 생각도 못한 부작용일 겁니다.

페스트라이쉬: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해줄 말이 있나요?

후쿠야마: 동시대의 흐름과 이 흐름이 내게 줄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웹서핑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보다 진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탐색하려면 정보의 신뢰도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 출처를 평가할 수 없고 독자를 조종하기 위해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일단, 정보의 출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고 어떤 정치 논리와 수사학을 이용하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사실 확인에 대해서는 대학교 때 받은 교육이 도움이 되죠.

그런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주에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고, 신뢰할 만한 인용구가 무엇인지 눈치채는 능력은 인터넷에 산처럼 쌓인 가짜뉴스를 마주쳤을 때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도 변화를 가져왔죠. 스마트폰은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데이트를 하면서 스마트폰만 보는 커플을 많이 봤습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로맨틱한 카페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더라구요.

기술이 인간 사회와 인간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 사람들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 변화는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분명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힘들 뿐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상당히 심오한 변화가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세계 최고의 대학에 가서 인문학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죠. 철학이나 역사, 문학, 예술을 제대로 공부하면 좋을 겁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시대 정치적 변화와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배움을 이어갈 방법은 무엇일까요? 배움이나 독학을 위해 필요한 태도나 전략이 있다면?  

후쿠야마: 요즘은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어느 때보다 많죠. 의욕만 확실하다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온라인 학습자료가 풍부합니다.

칸 아카데미와 에드엑스(EdX), 코세라(Coursera) 등의 온라인 프로그램은 수준이 아주 높고, 원하는 수업은 무엇이든 들을 수 있습니다. 단,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확인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목적의식이 확실하고 본인을 다잡을 수 있다면, 유튜브에도 도움되는 자료가 많습니다. ‘하우 투(How to)’ 동영상 시리즈도 꽤 도움이 되더라구요. 뭘 찾고 싶은지 확실히 안다면 인터넷에는 많은 보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혼자서도 배울 수 있는 길이 어느 때보다 많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상세하게 들어가는 정보는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하죠.

도전받는 민주주의…청년세대의 정치참여 중요

페스트라이쉬: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자주 쓰는 말인데,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지금의 지정학∙기술적 변화가 계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민주주의는 어떻게 규정될까요?

우리는 뚜렷한 정의 없이 ‘민주주의’란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선거를 한다고 민주주의는 아니죠. 스탈린도 선거를 했습니다만, 자유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았죠.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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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report.dbpia.co.kr)

후쿠야마: 구체적으로 말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다음의 세 가지 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선, 정부가 필요합니다. 현대적 의미의 정부죠. 어떤 성격도 없는 중립적 체제입니다. 정부는 사회를 보호하고 법을 집행하며, 기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권력 분배 제도입니다. 특정 정치인의 지배력에 대한 의존 없이, 모든 시민을 상대로 평등하게 해당 작업을 수행해야 하죠.

두 번째는 법치주의입니다. 행정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걸 막기 위해 권력을 제한하는 투명한 법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견제가 분명히 이루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거 등의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지도층이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민주적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만 빠져도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강력한 정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가 조합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입법 및 집행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과 역량을 가지되, 법과 민주 선거를 통해 제약을 받음으로써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균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균형점을 찾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개방적인 사회라도 끊임 없이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죠.

페스트라이쉬: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많은 도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우선, 현대적 정부를 구성하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경우 특히 그렇죠. 부패는 전세계 많은 정부의 정통성을 갉아 먹는 보편적 문제입니다.

동북아시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해서 조직적으로 부패한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이를 위해서는 수 세대에 걸쳐 장기적으로 정치∙문화적 투쟁을 이어가야 합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새롭게 부상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개도국의 부패 문제와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하겠습니다.

제가 설명했던 자유민주주의의 3대 요소를 다시 보자면, 요즘 서구에서는 정치 시스템 내에서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를 공격하는 새로운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선, 국수주의적 포퓰리즘 정치인이 정부를 시원하게 공격한다는 이유로 당선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시작한 포퓰리즘 논리는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과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이 뒤를 이어 사용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습니다. 모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정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유권자 층에서 폭 넓은 지지를 얻어 당선이 되긴 했지만, 이후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런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권력의 한계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를 이용해 정부의 권위를 끌어내릴 겁니다.

이들은 언론과 야당을 공격해 손발을 묶으려 합니다. 자신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법부 권위를 훼손하고 타락시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사례였던 국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봐 두렵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그럼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언론을 통해 정치 뉴스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청년들이 일상에서 좀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요?

후쿠야마: 역사적으로, 학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학생 운동이 있었습니다. 국가 개혁과 민주화 운동에 학생들이 앞장 섰던 사례가 많습니다.

요즘 정치 참여절차가 정도를 벗어나는 건 학생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지지할 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면, 정치적 인식과 함께 효과적인 정치조직 구성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은 모래 속에 얼굴을 묻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척 하거나 출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선 안 됩니다. 끈을 놓지 않으면서 내가 참여해야 사회의 정치적 절차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취직을 하려면 경영이나 기술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납니다.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생존을 위해 관심을 접고 학문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일본과 한국, 중국에서) 생활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죠. 왜 우리는 점점 인문학과 멀어지는 걸까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회계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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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withzone.net/)

후쿠야마: 노동시장의 성격이 변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컴퓨터와 자동화 기술이 저숙련 일자리를 대체하며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보다 최근에는 자동화 기술이 한때 아주 안정적이었던 중산층 일자리까지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화 흐름 때문에 STEM 역량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게 된 거죠.

전반적인 일자리 부족 현상과 함께 특정 분야, 특정 기술에 대한 수요가 교육 체제를 뒤흔들었습니다. “어디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나?” 불안감에 휩싸인 학생들은 그 이상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40년 전만 해도 영어나 철학을 전공해도 졸업 후 기업에서 괜찮은 관리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량적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면, 설사 인문학이 최고의 대학 교육이라 해도 기업 문턱을 밟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전반적으로 STEM에 대한 집중은 한때의 유행으로 볼 수 있고, 지나치게 강조된 면도 있습니다. 수요의 원칙이 가지는 압박 때문에 학생들은 인문학을 외면했습니다. 동시에 인문학 교수진도 상황 개선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죠.

그 동안 인문학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여성학이나 민족학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정치적 편향이 작용하면서 문학과 철학의 해석은 학생들의 불안감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다른 세상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을 겁니다.

학생들이 17세기 스페인 연극에서 나타났던 퀴어 문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페스트라이쉬: 교수로서 저는 아시아연구 저널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고 싶은 논문이 별로 없더군요. 글이나 주제가 현실이나 일상적 경험과 너무 동떨어져서 학문을 업으로 하는 저 조차도 논문을 읽는 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후쿠야마: 그런 추세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학계는 자신의 학문 분야와 권위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기술적이거나 방법론적으로 굳어지고, 애매한 전문용어로 논문을 가득 채우죠.

그 결과 일반 대중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학자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심해지면서 교육에 큰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아적 가치는 대안이 될 수 있나

페스트라이쉬: 아까 말씀하신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개념과 관련된 서구 문화는 전세계 공통의 가치와 원칙을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경제학과 정치학 이론부터 호텔 장식과 기내식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는 그대로 글로벌 표준이 되었죠.

그러나 동아시아도 역사적으로 뒤처진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2000년을 보면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경제∙문화적으로 대부분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유교와 불교 전통 안에서 나름의 보편적 가치와 정치 원칙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일부 가치는 대단히 정교한 수준으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할수록 글로벌 기준 또한 변화할 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교나 유교 전통은 어느 정도까지 세계 공통의 기준 및 규범으로 통합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절대적인 한계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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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포린어페어’지에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리콴유 싱가폴 총리가 ‘문화는 운명’이라며 아시아적 가치의 특수성을 주장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반박하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병행발전’을 주장했다.

후쿠야마: 아시아 문화가 궁극적으로 어떤 지위를 누리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의 문화적 규범은 아시아 외 지역에서 영향력이 미미했습니다. 물론 인도 아시람으로 여행을 가거나 바둑을 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문화 담론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 아시아는 제가 있는 지역의 주류 문화에서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모호한 정체성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국가적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중국의 지도층이 19세기 백인 남성 두 명의 생각을 지도로 삼아 정책을 만드는 겁니다.

유교적 가치관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건성으로 하긴 했지만, 중국 지식인과 정치인은 유교적 가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엄청나게 간극이 큰 두 개의 지적 전통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거죠. 그래서 중국 문명에 대해 일관성 있는 시각을 제시하기 힘든 겁니다.

일본과 한국은 지난 60년간 미국 및 서구 제도와 훨씬 많이 접촉하면서 서구의 가치관과 관습을 중국보다 많이 흡수했습니다. 이를 자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결합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서구인들은 요즘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압니다. 이들 문화 장르에 일본적 요소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장르의 시작점 자체는 서구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죠.

이제 세계 어디에서든 100% 고유한 문화라는 건 더 이상 찾기 힘듭니다. 모든 전통이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했죠. 이제는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삼을 지에 대해 아시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들 가치가 전세계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지 여부는 그 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이고, 아직은 그 단계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미래

페스트라이쉬: 중국의 경제 발전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고, 비즈니스나 문화 상품에서도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중국과 중국의 의도에 대해 서구가 아직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보는데요.

어쨌든 전세계 인구의 1/6을 차지하는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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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권력의 이동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죠. 역사적으로 봤을 때 권력의 이동은 끝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신흥 강대국이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 평가하거나 ‘지는 해’가 된 기존 강대국이 힘을 잃지 않기 위해 버티면서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게임은 미묘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오판하기 쉽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면서도 새로운 강대국의 평화로운 부상을 수용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이 문제를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전의 신중함이 줄어들긴 했지만요.

페스트라이쉬: 최근 중국이 미국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미국이 다른 국가를 평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을 평가하겠다고 나섰는데요.

후쿠야마: 전반적으로 중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면 격한 반응이 나올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태가 어떻게 흐를 지는 일단 지켜봐야겠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청년들이 국수주의 논리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이전 세대보다 많아졌습니다. 걱정되는 현상입니다.

국가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과 타국에 대한 적대감을 일깨워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결과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국수주의적 미사여구와 정치 논리를 앞세운다면, 다른 국가도 이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럼 논의는 엉망이 되고 비생산적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국수주의적 주장을 통제할 의무를 가집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밟아나갈 단계들은 분명합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한 독일과 폴란드의 노력이 가장 좋은 예입니다.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이후 폴란드를 점령하며 곳곳을 파괴했죠. 복구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고, 공산주의 지배를 받으며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인 시간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폴란드는 드디어 온전한 독립국이 되어 유럽연합에 가입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는 과거의 슬픈 원한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죠. 양국의 역사 교과서 공동편찬위원회를 설립한 겁니다. 양국의 동의를 바탕으로, 당시 있었던 사건의 순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설명해줄 공통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함께 모여 역사를 연속적으로 논의하는 일이 불가능할 겁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은 공통의 역사 논의를 위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페스트라이쉬: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도 공통의 역사 교과서 편찬을 논의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후쿠야마: 물론 있었겠죠. 그러나 중국과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편찬∙감수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동북아시아에 필요한 일이 바로 이거죠. 지금 각국은 자신의 편향적 시각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맞춰가기 위한 노력 없이는 3국 간에 어떤 실질적 이해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역사적 담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베 행정부는 역사적 사건의 상당수를 은폐하는 교과서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기존의 역사 교과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벌인 일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은데 말이죠. 

다른 국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 또한 지난 15년간 역사적 내러티브에서 일본을 공격하는 표현을 늘려왔습니다. 

간극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요. 어떤 국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촛불시위,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

페스트라이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탄핵 결정으로 한국에서는 희망적 분위기가 생겨났지만, 국내 사태에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까지 더해지면서 불안이 가중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한국 청년에게 줄 조언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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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YTN)

후쿠야마: 저는 한국을 지켜보며 큰 희망을 얻었습니다. 2016년 11월 한국을 방문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던 대규모 거리시위를 직접 봤습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민이 참여를 해야 합니다.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부는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안정을 회복할 절차는 이미 제자리에 있습니다. 대선을 진행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고, 개혁안도 새로 마련될 겁니다.

한국 국민은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지,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정부는 엄청난 부패 사건에 휘말렸지만, 결국 의미 있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나갔으니까요.

그것보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더 걱정입니다. 아직 어린 김정은은 아주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 받지 못하고 동북아시아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부가 취임했죠.

이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 개월간 침착하게 상황을 유지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청년을 위한 글을 쓸 때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청년을 위한 글을 쓸 때 제가 좋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청년을 위한 글을 잘 쓰지 못했거든요. 아무래도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년들은 이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가 했던 방식대로 정보를 소화하지 않죠.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성공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아서 전달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책의 내용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 2017/04/0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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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경환의 죄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많지만 그 중 손에 꼽히는 게 대한민국을 투기공화국으로 만든 것이다. 박근혜와 최경환은 빚 내서 집 사라며 시민들의 등을 떠밀었다. 박근혜와 최경환 덕분에 청약시장은 투전판이 되었고, 대출 규제는 완전히 형해화됐다. 여기에 유례 없는 초저금리가 계속되며 금융위기 이후 소강상태이던 부동산 시장은 2014년 이후 본격적으로 상승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했다. 이젠 강남진입은 고사하고 서울에 변변한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도 중상층 이상이나 가능한 상황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만신창이로 만든 대한민국을 인수받았는데 투기공화국도 인수받은 셈이다. 본디 투기는 예방이 최선이다. 투기라는 괴물이 잠을 깨면 다시 잠재우기가 지난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상황 정확히 진단하고 스마트하게 대응하는 문재인 정부

투기라는 괴물의 발호에 맞서 문재인 정부는 영리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8.2부동산종합대책을 통해 투기심리의 예봉을 무디게 했고, 10.24가계부채대책을 통해 과잉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걸 관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거기에 11.29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공공임대 및 공공분양 100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수요가 집중되는 수도권에 공적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정책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일련의 대책을 통해 청약시장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하고, 양도세를 중과하며, 부동산 시장 급등의 주된 원인인 과잉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을 관리하고, 공적 주택을 대거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인상에 나선 한국은행

한편 한국은행이 11월 30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한은의 금리인상은 6년 5개월만의 일인데 시장에서는 한은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측하고 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이자율이 상승하면 자산가격은 하락압력을 받는다. 즉 부동산 시장 안정에 필요한 정책수단들을 총체적이고도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주효할 가능성이 한결 커진 것이다.

고율의 보유세를 제외하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에 있어 기준금리 인상에 필적할 만한 정책요인을 찾기 힘든데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초저금리 기조가 종식된만큼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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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때 내건 부동산 관련 공약들. (이미지: 매일경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 공급폭탄 등의 재료 대기중인 부동산시장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제도만 있었지 실행한 적은 없었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내년부터 시행되는데, 이러면 투기의 뇌관 역할을 했던 강남의 재건축단지들은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게다가 내년엔 45만 가구, 2019년엔 41만 가구의 아파트 입주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 물량은 10년 평균 입주량의 두배씩에 해당될 만큼 엄청난 규모다.

결론적으로 말해 부동산 가격 상승에 유리한 조건은 찾기 힘든 것이다. 수도권 등의 주택시장은 안정을 찾을 확률이 높다. 다만 실탄이 풍부한 부유층이 밀집한 강남 등 서울의 부촌은 소강상태에 빠질 뿐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보유세가 현실화 되지 않는 한 말이다.

월, 2017/12/0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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