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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 10년 회원을 만나다]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교사(前 좋은교사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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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 10년 회원을 만나다]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교사(前 좋은교사운동 대표)

익명 (미확인) | 화, 2018/07/31- 11:46

[회원인터뷰 – 10년 회원을 만나다]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교사(前 좋은교사운동 대표)

 

“아이들이 가진 고민이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과 연결돼있어요”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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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요. 이번 호에서는 10년 가까이 묵묵히 경실련을 지지해주신 정병오 회원을 만났습니다. 정병오 회원은 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오디세이학교 교사이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상임공동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 좋은교사운동 대표를 역임하시며 교사운동으로 교육을 바꾸는데 기여하는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종로구에 있는 오디세이학교에서 정병오 회원을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 오디세이학교 교사는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오디세이학교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오디세이학교에 대한 자세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디세이학교가 2015년 설립됐는데 저는 설립 때부터 참여했으니까 이제 4년차입니다. 오디세이학교는 고교자유학년제라는 제도로 설립된 학교인데요, 입시에 매진해야 될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국영수 같은 과목은 조금만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유로운 탐색과정을 거치는 학교에요. 일반 고등학교에 똑같이 진학한 뒤에 그 학교에 적을 두고 1년 간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는 겁니다. 그 후에는 다시 그 학교로 돌아가지요. 2학년으로 돌아가는데 원하는 경우 1학년부터 다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는 특정한 유형과 성향의 학생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학생들이 옵니다. 성적을 보더라도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일부러 그런 걸 지향하기도 해요. 특정 형태의 아이들만 오는 교육은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선발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성적은 안 보니까 주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당락이 결정됩니다. 학부모 면담도 해요. 혹시 이런 교육이 대학갈 때 스펙이 되지 않을까? 이런 분들은 저희가 받을 수 없고, 계속 입시를 시키면서 이것도 하겠다는 분들도 저희랑 맞지 않거든요. 저희는 학원도 다 중단하고 여기에 집중해달라고 하고 뜻을 물어요.

부모님들은 불안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고1이면 입시에 매진해야 할 시기인데 이 시기에 일종의 입시로부터 벗어난 교육을 시킨다는 건 결단이 필요한 거죠. 저희의 장점이면서 한계이기도 한 게 1년 후에는 다시 입시교육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학생들도 불안감을 계속 가지고 있거든요. 자기는 여기 와 있는데 친구들은 열심히 입시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라며 느끼는 불안감이 부모님들은 더 많거든요.

이런 것들에 대해 소통을 하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떨어지는 거 같지만 훨씬 더 주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고 소통하면서 하는 거죠.

 

  • 1년 동안 어떤 교육을 받나요?

1년에 90명의 학생을 모집하는데, 이 학생들은 모두 4개의 기관으로 흩어져 교육을 받습니다. 은평구의 <혁신파크>, 영등포의 <하자>센터, 정독도서관 1층에 위치한 <민들레>와 오디세이 본부가 있는 종로에 <꿈틀>까지 4개가 있습니다. 그렇게 4곳으로 흩어져 25명 정도의 학생들과 교사 3명이 1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는 거예요. 기숙은 아닙니다.

교육 내용은 기관별로 조금씩 다르긴 한데요. 주로 글쓰기나 인문학 수업이 많고, 자치회의와 여행 기획활동, 예체능, 실용기술 등을 배웁니다.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사회, 과학 등 보통교과 과정도 있구요.

계속 묻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너 생각은 뭐냐? 묻고 학생들이 결정하게 합니다. 폭력이나 교내에서의 술, 담배는 규제하지만 나머지는 다 스스로 하게 합니다. 여행을 많이 가는데, 어디로 갈지 왜 가는지 숙소, 예산 짜는 것 등 모두 학생들 스스로 합니다.

수업이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외부랑 많이 하니까 어른들을 많이 만납니다. 전태일 기념관도 가고 시민단체들도 만나고 계기마다 많은 분들을 만나니까 어른들이 우리를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들이구나 어른들에 대한 신뢰도 생기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꼭 입시 경쟁해서 이렇게만 살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 2015년에 개교했으니 그 당시 고1이었던 학생들은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했을텐데 졸업생들이 오디세이학교의 교육 목표에 맞게 진로를 찾아 가는지 궁금합니다.

네 1기 학생들은 올해 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하거나 대학을 안가고 다른 길을 가거나 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길을 가는데 1년의 기간들이 주체적으로 사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합니다.

한 학생은 중 3때까지 공부를 잘 해서 자사고에 갔는데 너무 학교에서 불안감을 많이 조성하는 거에요. 몇 등안에 못 들면 인 서울 못 간다 이러니까 쉬는 시간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하다가 오디세이에 왔어요. 여기 와서 많이 자유로워진거죠. 대학 안가고 여행 해보겠다고 해서 오디세이 마치고 1년 동안 여행도 다니고 검정고시 보고 논술 준비해서 철학과에 입학했어요. 얼마나 좋은 대학을 갔느냐보다 자기 삶에 대해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어떤 학생은 일반학교로 돌아가서 반장선거를 하는데 자기도 나갔는데 선생님이 유도해서 공부 잘 하는 애가 반장이 된 거죠. 학교에 건의했는데 안 들어주니까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서 결국 재선거를 했어요. 불의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된 거죠.

 

 

  • 좋은교사운동으로 더 많이 알려지셨는데, 교사운동을 통해 교육을 바꾸시겠다고 생각하신 이유와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좋은교사운동이 95년에 창립했는데 창립하기 전에 92년부터 소모임을 했었어요. 그때부터 같이 했었고 2012년에 대표를 맡았다가 학교로 복직을 했습니다. 대표할 때는 휴직하고 상근해서 일하고, 끝나면 복직 하거든요. 좋은교사운동은 원래 여러 개의 기독교사모임이 연합한 모임이에요. 전신이 될 수 있는 모임이 아까 말씀드린 92년부터 시작된 기윤실 교사모임이에요.

군대 다녀와서 91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사를 했는데 고민이 많았었어요. 그때 만해도 촌지가 많았어요. 채택료도 있었고요. 기본적으로 학교 내에 불법적인 관행들이 많았는데 초임 교사가 그런 것을 거부하다보니 고민이 많았던 거죠.

예를 들면, 촌지 같은 경우는 개인이 결단하면 거부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학교 내에 육성회나 임원들이 있었는데 일종의 불법찬조금처럼 한 학급에서 5~10여명의 임원들한테 10만원, 20만원씩 돈을 걷어서 발전기금을 학교에 내는 겁니다. 발전기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니까 회계에 잡히지 않는 돈이죠. 초기에 제가 담임을 맡았는데 우리 반 애가 반장선거에 안 나가겠다는 거예요. 똘똘한 아이였는데 자기는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학교에 기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가 반장이지 엄마가 반장이냐”며 나가라고 해서 그 아이가 됐어요. 근데 조금 있으니까 학급의 임원단을 구성해서 1인당 10만원씩 내라는 겁니다.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가난한 집 아이가 반장이 됐는데 어떻게 돈을 내라고 하냐, 이걸 걷는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안 걷었어요.

30학급이었는데 29학급에서 100만원씩 다 들어왔는데 우리반만 안 들어온 거에요. 교감선생님이 화가 난거죠. 뭐라고 하시고 저는 못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교감선생님이 직접 저희반 임원들한테 걷어가더라고요. 좌절했죠. 불법이고 불의인데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내 한계도 느끼고 선배 교사들과의 관계에서의 한계도 있었고, 초임교사니까 아이들 지도하는데 있어도 미숙함이 많았고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기윤실에서 당시에 촌지추방운동을 했었는데, 촌지추방도 하지만 촌지 외에도 학교 내에 많은 문제가 있고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많은데 풀어보자고 소모임을 시작한 거죠. 모임하면서 교육의 문제도 결국 교사가 풀어야 되는 구나 내부에서 풀어야 될 문제가 너무 많고 우리가 스스로 결단만 해도 풀 수 있는 문제도 꽤 있고 스스로가 공부하거나 노력을 통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은 힘을 합쳐서 이슈도 제기하고 하자 그렇게 모임을 하다가 우리 힘만으로 힘드니까 같은 크리스찬 성격의 소모임들이 더 있었으니까 같이 서로 묶어서 좋은교사운동이 만들어진 거죠.

좋은교사운동 하면서 그동안 기독교사 모임이 서로를 돌보는 건 좋은데 교육계에 기여한 바가 없구나. 전교조 같은 경우는 만 명 이상의 교사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당하면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고 기여한 바가 있는데 우리 기독교사들 그룹은 서로 돌보고 이런 건 했지만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으니 교육계에도 기여를 하자 그러면서 조직을 만들고 했어요.

처음에 준비된 게 없으니까 잘 할 수 있는 거부터 하자해서 한 게 실천운동들이었어요. 촌지를 안 받는다든가, 아이들 가정방문을 통해서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한다든가, 학급에서 제일 어려운 아이들을 돌본다든가, 수업평가를 자발적으로 받자든지 그런 기본적인 실천운동들을 먼저 쭉 했고, 하면서 교육계 내에서는 조금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요. 이 단체는 기존의 전교조나 여타 단체들처럼 선명하게 제도개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나름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단체구나. 실력이 쌓이고 인지도도 쌓이고 하면서는 정책적인 대학입시 문제나 제도개혁 부분에서도 목소리를 냈구요.

 

  • 어떻게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선생님의 교육철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제가 80년대 학번인데 그때는 민주화운동이 많이 일어나던 시기잖아요. 저는 그런 운동권의 핵심이 있진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아픔이 많이 있어요. 그때 했던 생각이 저는 신앙인이니까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에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고백도 했었는데

시대 모순의 핵심이 어딘지,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 건지 20대 초중반 나이로 알기 어려웠는데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한 거에요.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게 아이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있는데, 이 고민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시대가 양극화 문제가 있으면 애들은 그 나이에 맞게 빈부차를 느끼고 있고, 우리시대가 대학입시 문제가 크면 그 나이에 맞게끔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고 아이들도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다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과 연결되는 거다! 여기에 헌신해서 이 아이들의 문제에 응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자 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교사라는 것은 아이들의 고통에 응답함으로서 우리 시대의 모순에 응답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교사운동하고도 연결됐다고 볼 수 있죠.

일단 기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시각 자체가 한명 한명이 다 귀하다는 겁니다. 집에서는 다 귀하죠.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성적으로 한 줄로 세워야 되는 구조기 때문에 성적 외의 변수들은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게 문제에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데 잘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야 되기 때문에 공부해야 되는 게 문제죠. 어떻게 하면 한명 한명이 각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은사와 재능과 소명을 발견해주고 키워줄 수 있을까? 그게 교사인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문재인 정부가 소위 말하는 적폐청산은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정교과서도 폐기한다든가 그 외 교육계 내 비리나 사립학교 비리 이런 걸 엄하게 하는 건 잘 하는데, 본질적인 개혁 있잖아요. 아이들을 입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상대평가 체계를 절대평가 체계로 한다든가 이런 입시개혁이 사실 쉬운 건 아니죠. 그렇지만 이 정부는 그거에 대해서 전혀 안하려는 거 같아요.

이해는 돼요. 왜냐하면 남북관계 문제라든가 큰 문제를 풀어가다 보니까 국민의 지지를 얻고 그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교육은 표 까먹는 정책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수능 절대평가라든가 했을 때 국민 절반은 반대를 할 것이고 이게 굉장히 논쟁이 많은 주제거든요. 지금 공론화위원회에 올라가 있는데 그거 하나만 봐도 공론화위원회까지 맡긴다는 게 정부가 실제로는 의지가 없다고 보이는 거죠. 그냥 욕먹을까봐 아무 결정도 안하고 공론화위원회 맡겨 놓고 그것도 되게 축소해서 디테일한 걸 맡겨놓은 거거든요.

 

 

수능 절대평가는 아직도 논쟁이 많아요. 국민들 중에서도 절대평가하면 학생들이 자유로워지지만 대학입시에 교사들이나 대학의 정성평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불공정 요소가 생기는 게 아니냐고 해요.

수능 점수로 한 줄 세우기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교육적으로 절대평가가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개인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점에 우려를 갖는 거죠. 그래서 기득권층이나 언론이 차라리 점수로 한 줄 세우는 게 공정하다는 논리를 많이 펴기도 해요.

이런 분들은 절대평가를 하면 이전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요. 보통 개천에서 용이 되신 분들이 이런 주장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사실 수능 점수 위주로 가게 되면 사교육 많이 하는 아이들이 유리해요. 냉정하게 데이터를 가지고 보게 되면 수능은 강남이나 특목고 아이들이 유리하다고 나와요. 결국 사교육 많이 하는 강남 아이들이 점수가 올라가거든요.

반면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표되는 수시제도는 다양한 요소로 학생을 평가하는 거에요. 다양한 요소의 역량을 키우려면 더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고도 하지만 이 제도 때문에 시골에서도 서울대 가고, 학교 내에 동아리 활동 많이 하거나 내신이 좋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는 거예요. 학교교육이 다양화되는 면이 있습니다. 시험성적만이 아니라 학생회 활동이라든지 다양한 활동으로 학생을 보는 거죠. 이전에는 반장도 동아리도 공부한다고 다 안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하려고 하거든요. 이런 게 학종의 힘이죠. 물론 한계가 있고 완벽하진 않지만 큰 방향은 그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지가 청와대 쪽은 방향도 못 잡고 전문성도 없고 한 거 같아 아쉽습니다. 청와대에 교육 담당 비서관이 없잖아요. 사회문화수석이 다 하고 있는데 현재 김수현 사회문화수석은 부동산, 경제 전문가이시지 교육쪽 전문가는 아니시거든요.

진보교육감이 상당히 많이 됐지만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거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이지 대학입시부터는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 사람들이 혁신학교를 하거나 초등학교 평가 제도를 바꾼다 이런 거는 할 수 있죠. 이 부분은 교육부가 해야 하는데 청와대의 의지가 없으니 교육부도 한계를 많이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  2007년에 가입해주셔서 10년 동안 꾸준히 경실련에 큰 힘이 돼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실련 회원정보에 보면 추천인이 서포터즈라고 나오시는데, 어떤 인연으로 경실련 회원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시대의 불의에 대한 아픔은 있었지만 학생 운동권의 운동 방식에는 다 동의를 할 수 없었어요. 물론 당시 군부독재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점은 이해를 하지요. 그런데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하고 있던 중 1989년 본격적인 시민운동단체인 경실련 창립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정말 원하던 방식의 사회개혁운동이었기에 1990년 제대하자마자 바로 가입을 했습니다. 경실련 주최 모임에도 함께 하고 경실련 내 교사모임을 만들려고 시도를 하는 등 10년 정도 꽤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경실련 임원들이 정치권에 많이 진출하면서 정치권과의 경계가 흐려지고 내부 노선 갈등이 심해지면서 탈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실련이 아파트 원가 공개 문제 등 경제적인 정의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여기에 힘을 싣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2007년에 다시 가입을 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 경실련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습니다. 경실련에 한 말씀 해주세요.

경실련이 원래 창립정신인 ‘경제정의’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30년과 비교하면 정치적 민주화는 많이 진전되었지만 경제적인 민주화는 더 퇴보를 했잖아요. 지금 양극화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봐요. 그래서 경실련이 경제정의 혹은 경제민주화 관련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급진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봐요.

 

교사로서의 소명으로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행동이 귀감이 됩니다. 대학입시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이야기해주셔서 그동안 헷갈렸던 수능개편안에 대한 주장들에 대해서도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다음 세대들이 입시라는 고통에서 벗어나 배움과 삶의 주체로 당당히 서 가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꿈틀꿈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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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내몰림 시리즈 1 궁중족발 인터뷰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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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고통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찾는 이가 늘어난 만큼, 쫓겨난 이도 늘고 있습니다.

바로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입니다. 동네는 떴지만 슬픈 이들이 있습니다.

서촌이 뜨자 서촌에서 궁중족발을 운영하시던 분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이들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지만, 세입자였습니다. 건물주인이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297만 원이던 가게를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200만 원으로 올렸습니다. 족발 팔아서 얼마나 큰돈을 번다고, 보증금도 아니고 어떻게 월세만 1,200만원을 내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경실련도 제작년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 마련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가 돼버린 젠트리피케이션!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소리를 잘 담아 알리고 싶어 둥지내몰림 시리즈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첫 인터뷰는 최근 법원의 강제집행 과정에서 왼손가락 네 개가 부분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서촌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님과 윤경자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Q: 어떻게 서촌궁중족발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서촌에서 분식점 2년하고 7년동안 실내포장마차 해서 번 돈에다 대출금 받아서 궁중족발을 차렸어요. 빚 좀 갚아나가며 장사가 좀 되겠다 싶었는데 건물주가 바뀐 거죠.

요즘 진짜 약삭빠른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가게 오픈해갖고 3~4년 하다가 팔고 나가요. 근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여기가 고향이란 말이에요. 독립문이 고향이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다 여기 있고. 다른 동네 떠날 생각을 아예 못 한 거에요.

저희도 부동산에서 나와서 부추겼어요. 팔 생각 없냐고?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몰라요. 서촌이라는 이름이 뜰 때부터요. 사장님네 가게 정도면 권리금 1억 5천에서 8천까지 받을 수 있다고 자기가 받아주겠다고 파시라고 했어요. 근데 저희는 이 동네가 고향이고 여기 떠나서 살 생각이 없어요. 그렇게 하고 나서 그 다음해에 건물주가 바뀌고 나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거에요.

 

Q: 강제집행은 언제 시작됐고, 최근 3차 집행까지 있었는데 지금까지 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10월 10일에 1차 집행이 있었어요. 법원, 사설용역 포함해서 100명 넘게 왔고, 저희는 60명 정도로 막아냈어요. 새벽 6시 반부터 4시간 대치해서 ‘집행불능’하고 갔어요. 2차 집행은 11월 9일에 야간집행이란 걸 신청하고 왔어요. 야간집행은 법원에서 판사가 허가를 내려야 되는 거고, 소수 인력으로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는 거래요. 20명 내외로 왔는데, 돈은 더 많이 들었다고 해요.

3차 집행을 또 해서 1월 15일 들어왔고 막아냈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집행관이 집행불능이 아니라 집행중지를 내렸어요. 둘의 차이가 큰데, 불능은 집행신청 다시 하려면 건물주가 다시 신청을 해야 해요. 그럼 또 돈이 들어가요. 근데 중지는 그게 아니라 중지된 상태, 말 그대로 휴전인 거에요. 그러면 언제든지 또 들어올 수가 있는 거에요.

집행관이 처음에는 불능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건물주가 집행관을 불러서 뭐라고 하니까 집행관이 다시 와서 중지라고 하더라고요. 건물주가 항의하니까 바꾸더라구요.

 

▲ 작년 11월 9일 왼쪽 손가락이 네 개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접합수술 후 회복중이신 김우식 사장님과 윤경자 사모님(왼쪽부터).

 

Q: 손가락 다치셨을 때의 상황을 좀 듣고 싶습니다.

2차 집행 때 사설용역이 사복차림에 손님처럼 가디건에 후드티 입고 모자쓰고 와서 여자들부터 끄집어 냈어요. 족발 꺼내려고 주방에 있는 남편도 끄집어 내려고 했는데 남자다보니 저항하는 게 틀리잖아요. 3~4명 사설용역이 붙잡고 빼는데 윗도리까지 다 벗겨지고 했는데도 죽을 힘 다해 싸우니까 힘을 못 당하니까 건물주가 용역대장, 제일 힘쎈 사람을 1명 더 불렀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확 낚아채니까 그냥 딸려 나온 거에요. 그 과정에서 조리대 밑에 홈을 잡고 버티다가 새끼 손가락이 제일 심하게 다친 거였고, 네 개 손가락이 거의 절단이 됐죠. 다행히 접합은 잘 됐지만 정말 끔찍했어요.

 

Q: 최근 JTBC 뉴스룸에서 궁중족발 집행관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강제집행 과정에서 잡행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집행관의 역할은 집행을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건물주가 동원한 사설용역은 인원수만 채우는 사람들이에요. 물건은 만질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손을 쓰면 안 됩니다. 일반화돼서 내려오다보니 합법적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경비법에는 분명히 명시돼 있어서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손을 대는 건 명백한 불법이에요.

2차 집행중에 손가락 다쳤을 때도 집행관은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원래는 인사사고가 나면 집행관이 정치시켜야 하는데, 이 사람은 자기 할 일만 하고 방관했던 거죠. 그래서 저희가 법원 집행처에 진정서를 넣었어요. JTBC 뉴스룸에서 취재나온 게 ‘집행관 위반’으로 법원이 과태료 200만원 처분을 내렸는데, 법원이 노무자 관리 감독을 제대로 안 해 집행관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린 건 우리나라 최초라고 하네요.

 

Q: 건물주는 어떤 분이신가요?

북유럽 수입가구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는데, 투기성 입대업으로 돈을 버는 걸로 알고 있어요. 주로 비어있는 건물을 통째 매매하는데, 세입자들이 가져가야 할 권리금 부분이 없어져서 시세차익에 플러스가 돼서 그런 걸 잘 하신다고 해요.

그 분은 집행할 때도 직접 나오세요. 집행나오기 전에도 가게 앞 현수막이나 신문기사 스크랩해놓은 거 다 와서 뜯어버리고, 문자로 “너는 범법자다” 다쳤을때도 “쇼한거지?” “너 진짜 죽으려고 했었냐? 죽지 그랬냐?”고 했어요. 사람 괴롭히는데 일가견이 있으시더라구요. 저희 건물에 다른 가게들도 있었는데 소송까지 간 건 저희뿐이에요. 다 지쳐서 떨어져 나갔어요.

남편이 손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고, 저랑 사람들 있는 거 뻔히 알면서 2주 동안 가스 2번 끊고, 전기 개량기 아예 통째로 떼어가고 수도 잠그고 화장실 폐쇄까지 시켰어요. 사업자등록증 말소시키고 통장 압류까지 다 해놨어요. 그걸 2주 동안에 다 했어요. 수도하고 전기는 생존권이잖아요. 사업자등록증도 본인 아니면 말소를 못 시키는 건데… 저희가 관공서 쫓아다니면서 다시 회복시키느라 진짜 힘들었어요.

저희가 다시 관공서 사람들 실사나오게 해서 복구시켰어요. 화장실은 앞에 사장님들이 두 군데나 키를 주셔서 사용하고 있어요. 통장 압류한 것만 아직 못 풀었어요. 그거는 또 다른 손해배상으로 넘어가는 거더라고요. 주택청약통장까지 다 압류당했어요.

10월 말에 투병중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10월 30일날 돌아가셨는데, 탈상하고 1주일 만에 2차 집행을 들어온 거였어요. 그리고 그날 손을 많이 다친거죠.

SNS 하는 젊은 분들이 한달에 1,200만 원 월세가 말이 되냐고? 막 댓글달고 비난하니까 이 분이 명언을 남겼죠. “족발가격은 족발집 사장이 정하는 거고, 임대가격은 임대인이 정하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왜 문제냐는 거에요.

 

▲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11월 9일 이후 한달 내내 매일 울었다고 하신 윤경자 사모님.

 

Q: 이런 일들 겪으시며 심정이 어떠셨어요?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건물주는 내 돈 가지고 내가 올리는데 뭔 상관이냐 이러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다쳤는데 더군다나 음식하는 사람이 손을 다쳤는데 그 당시에는 남편 손이 불구가 될 정도라고 병원에서 얘기했었어요. 회복이 빨라 정말 다행이지만.

지금은 웃으며 말하는데, 11월 한달 동안은 내내 매일 울었어요. 경찰서도 한번 안 가봤는데 생전 처음 관공서도 다 다니고 법원이며 경찰서며 혼자 다녔어요. 아이들은 다 커서 직장 다니고 군대 가있고 해요. 큰애가 아빠 병원에 있는 동안 병간호했는데, 다친 날 아빠 다친 걸 직접 보고 대성통곡하는데 그거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시세차익으로 돈 버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하지만 자기가 돈 버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이건 사람의 삶을 파괴시키는 거에요. 애들한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Q: 도와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은 많으세요?

저희가 3차까지 집행 막아내고 할 수 있었던 게 저희 도와주시는 분들 없으면 못 하는 거에요. 맘상모(마음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들의모임)는 저희처럼 다 장사하는 분들이세요. 저희처럼 이런 일 겪고 분쟁에서 합의봐서 다시 장사 시작하시는 분도 있고, 장사 아예 접고 회사다니는 분도 있고, 아직 분쟁은 안 일어났지만 이제 다음 다음 차례로 대기하고 계시는 분도 있어요. 맘상모가 법률자문부터 수요집회 등 저희와 항상 같이 해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그밖에도 기사랑 보도가 많이 되고, 뉴스, 인터넷 페이스북에도 많이 알려져서 분개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3차 집행 때는 새벽부터 모였거든요. 9시에 들어온다고 해서 새벽 6시부터 모였는데, 제가 처음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더라니까요. 우리가게 처음 오는 젊은 학생들이 집행을 막아내겠다고 왔어요. “사장님 힘내세요! 제가 보고 들어서 많이 알고 있어도 온 건 처음이에요. 많이 오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돼서 많이 못왔어요. 오늘 와 봤으니까 다음에 또 올게요”하고 가는 거에요. 그날도 건물주가 와서 행패부리고 하는 거 다 봤거든요. 두 달 동안 있으면서 저희한테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느껴요. 그러니까 버틸 힘이 돼요.

저희 가게 단골손님도 문이 항상 닫혀 있으니까 지나가만 갔었대요. “사장님 힘드시죠? 여기 지나만 갔었는데 항상 문이 닫혀 있어서 사장님 못 뵜어요. 저도 이 동네 살고 있지만 서촌이라고 뜨면서 이렇게 된 건데, 이제는 사장님의 싸움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됐으니까 사장님네가 쫓겨나면 여기 임대료 다 오르는 거에요. 사장님 꼭 이기셔야 돼요”하고 가시더라고요.

어떤 분은 집에서 쿠키를 손수 구워가지고 그 앞에 메모를 붙여가지고 앞집에 쇼핑백을 맡겼어요. 자기네 온 가족이 우리네 족발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빨리 이기시라고…

그런거 보면서 참 세상이 진짜 나 혼자라고 느꼈는데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구나 실감나게 느꼈어요. 처음엔 죽을 거 같았거든요.

 

Q: 영업을 못하셔서 생활에도 어려움이 많으시겠어요.

장사도 못하는데다가 계속 나가는 건 생기니까 어렵죠. 여기 지켜주시는 분들 생활하고, 한번 오면 스무명에서 서른명씩 오시니까 그 사람들 먹거리며 돈이 계속 들죠. 그래도 돈으로 안 되시는 분들은 음식으로 연대를 해주시고, 김장철에는 자기네 김치 담그시면서 한통씩 갔다주기도 하셨어요. 인터넷에 후원계좌 열어가지고 십시일반 모이는 게 그게 꽤 큰돈이 되더라구요. 큰 돈 송금하는 게 아니라 1인당 5천원, 1만원 모아지면 그래도 꾸려는 나가겠더라구요.

 

▲ 궁중족발집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제 법정싸움하고 경찰서 조사만 남아있어요. 법적으로는 진 건데요, 아직 손해배상청구 건도 남아있고, 유치권 소송이 진행 중이에요. 강제집행은 중지된 상태라 또 들어올 수 있어요. 저번엔 법원인력 20명 내외로 적게 왔었는데, 이번엔 더 많이 올 수도 있어요. 보통 건물주가 3차 4차까지는 집행을 안 하거든요. 무리라고 생각해서 안 한 대요. 4차까지 하면 그때서 아 안 되겠구나 포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 상태에서는 일단 잘 버티는 게 중요해요.

24시간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고, 매일 요일별로 행사를 해줘요. 제일 고마웠던 게 옥바라지선교센터는 기도회를 열어주시고, 나머지 음악가들은 다른 음악가들 추천해서 공연, 시낭독회, 영화상영도 해줘요. 다양하게 문화제를 많이 해주시는 게 잡다한 생각하지 말고 기운 북돋아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안쪽에 테이블 4개 놓고 손님 받던 방은 이제 가게 지키는 사람들이 잠자는 곳, 공연할 때는 무대가 돼요. 가수분들이 이 무대를 되게 좋아하세요. 신발 벗고 양말 신고 공연해보긴 처음인데 웬만한 공연장 못지않고 좋다고 해요.

홍대입구에 있던 두리반 사례처럼 저희도 빨리 해결돼서 마음 편히 장사하고 싶어요.

 

인터뷰 갔는데 가자마자 사장님과 사모님이 저희에게 떡볶이를 한 대접 주셨어요. 분식집하신 경험 때문이신지 정말 맛있었습니다. 영업도 못하시고 투쟁장으로 변해버린 가게를 보며 안타까웠지만 지지해주고 함께 지켜주는 이들과 함께 꿋꿋이 싸우시는 두 분에게서 오히려 힘을 얻고 왔습니다.

소액이라도 후원해주시면 십시일반 모여 큰 힘이 된다고 하시니,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계좌로 후원해주세요.

[궁중족발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455-889687 (예금주:구자혁)

 

 

 

화, 2018/02/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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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내몰림 시리즈 2편] 노량진 카페 7그램인터뷰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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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 2월호(통권 161호) 서촌 궁중족발 인터뷰에 이어 이번에는 노량진의 카페7그램을 인터뷰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중족발 인터뷰 보시고,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생존을 위협당하는 상인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하시며 분노하셨습니다. 궁중족발은 개인이 건물주지만, 카페7그램은 기업이 건물주였습니다. 건물주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내쫓김을 당하는 억울한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둥지내몰림 두 번째 인터뷰는 건물주인 박문각과 소송을 진행 중인 노량진 카페7그램 박지호 사장을 만났습니다.

 

 

1.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2012년 1월부터 박문각 학원 1층 지금 자리에서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카페자리는 외진 곳이라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어요. 외진 자리에 아무도 안 들어오니까 학원측에서 저를 유치하려고 주차도 무료로 해주고, 홍보를 위해 간판 설치도 협조하겠다고 했어요. 1억 3천에 66만원이라는 임대조건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기간이 2년이라고 해서, 5년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할 수 있으면 오래 하라고 해서 그 말만 철썩같이 믿었었어요.

그런데 점차 손님이 늘고 장사가 잘 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박문각 측이 조금씩 갈등을 일으키더라고요. 2014년에는 학원 입구에 있던 홍보 배너를 강제로 이동시키고, 2015년에는 간판도 강제 철거하더니 급기야 2016년 6월 1일 매장을 비우고 나가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어요. 그 후 명도소송을 진행하더라고요. 저는 반소 안하면 변호사비, 원상복구 비용 등이 보증금에서 공제되기 때문에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서 권리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어요. 법원에서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 판결이 내려져 현재 감정평가 절차가 진행중이고, 간판 강제 철거에 대한 형사고소도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2.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이 열렸다고 들었는데 합의는 왜 결렬됐나요?

저희 가게에 1억 7천, 2억에 권리금 내고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내용증명 받고 나서 그러면 팔고 나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박문각 측에서 거절했어요. 재계약도 안해주고, 팔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무조건 나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의뢰했어요. 저는 합의금을 7천에서 6천, 5천, 4천까지 내려서라도 합의를 원했어요. 박문각은 처음에 1천 5백만원을 얘기하다고 1천만원으로 내리더라고요.

제가 처음에 인테리어에 투자한 비용만 1억 8천만원이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부동산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박문각과 싸울 자신도 없고, 좋게 마무리하고 끝내고 싶어 박문각이 제시한 1천만원에 매장을 비워주기로 하고 서울시 중재 합의서를 작성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박문각 측이 합의를 깨고 소송을 진행해버린 거예요.

 

3. 자리 잡기까지는 사장님이 노력한 부분도 많으실 텐데 억울하시겠어요.

저희가 처음 시작할 때 같은 1층에 있던 햄버거집, 피자집 1톤, 5톤 물류 트럭들이 항시 저희 카페 앞에 주차가 돼 있었어요.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관할관청에 신고하고, 불법주차 차주들 일일이 설득한 끝에 차 없는 인도를 만들고 구청의 협조를 얻어 주차봉을 설치하고 상권을 만들었어요.

영화이벤트, 뮤지컬이벤트도 하고, 손님들 끌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대로변 횡단보도 앞에 있는 약국에 한 달 동안 매일 찾아가서 홍보 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약사님이 감동해서 포스터도 정문에 걸게 해주고, 배너도 놓으라고 해주더라고요.

 

 

4. 박문각에서 간판은 왜 떼었을까요?

2015년 박문각 사무실이 2층에서 1층으로 이전하는 시점에 학원 입구에 카페 간판이 먼저 보이니 학원 이미지에 안 좋다고 철거했는데 잘못된 것이죠. 실제로 간판이 철거된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더군다나 간판 협조사항은 계약당시 특약사항에도 있는 내용이에요.

검찰에서 관리인이 나랑 합의해서 뗐다고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돈 들여서 특약까지 한 것을 제가 합의해서 뗄 리가 없잖아요. 제가 처음에 찾아갔을 때 관리인이 회장님 지시라고 했거든요. 특약사인을 직접 한 사람이 전무에게 찾아갔을때도 회장님 지시라 막을 수 없었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자기가 혼자 했다고 그러고 전혀 엉뚱한 감사가 시켰다고 말을 번복하며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돌출간판은 불법이라 동작구청 행정처분으로 저희 간판을 철거했다고 주장하더라고요. 동작구청에 의뢰해서 알아보니 행정처분 사실이 없대요. 그리고 그 건물의 모든 돌출간판 중 저희 간판만 철거한 것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박문각측에 확인해보니 회장과 전무는 그런 지시를 한 사실이 없고, 그 당시 모든 건물관리를 감사가 했기 때문에 관리인이 감사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노량진 학원가가 불법간판이 난무해서 동작구청, 경찰서, 교육청 관리자들이 모여 자정결의도 하고 그런 때여서 학원 담당자가 아마 구청에서 환경정화 차원에서 철거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답변했습니다.

 

5. 박문각이 이렇게까지 내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희 옆 분식가게는 주인분이 암투병하시다 돌아가셔서 아내 분이 혼자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변호사 비용, 생계,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두려워 함께 대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하시고 2016년 11월에 권리금 전혀 못 받고 나가셨어요.

박문각에서는 저에게 저희 매장자리와 옆 가게를 연구실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내부 관련자들 통해 들은 바로는 카페를 하려 한다고 했어요.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건물주가 1년 6개월간 비영리 사용시 보상 안 해도 된다는 법의 맹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꼼수를 쓰고 있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박문각측은 학원시설이 부족해서 1층 가게 2개를 자습실이나 연구실같은 학원용도로 쓰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무료북카페 계획은 없다고 했습니다.

 

6. 지금 가장 힘든 게 무엇이세요?

자식과 와이프, 어머니에게 제일 미안해요. 명도소송 당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어머니를 저희집 근처로 모시고 왔는데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데 죄송하죠.

저희 같은 세대는 부모님도 챙겨야 되고, 자식들도 챙겨야 되고 제 노후는 생각도 못해요. 장사도 안 되니까 다음 달 생활비 어떻게 할까? 여기 정리되면 나가서 뭐 해야 하나? 쫓겨나는 것보다 나가서 뭘 해야 하나가 걱정이에요.

건너편 테이크아웃 카페도 권리금 7천이에요. 권리금을 1억이든 2억이든 받아도 카페는 이제 자신이 없어요. 자리 찾기도 1년 걸렸어요. 죽기 살기로 했어요. 정말 새벽부터 올인하고 일했는데 건물주 욕심 하나에 모든 게 무너졌죠.

직장인의 마지막 보루가 자영업인데, 장사가 안되고 최저임금 오르고 이런 건 내가 극복이 돼요.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최저임금 오르고 하면 서로 공감대가 생겨서 열심히 하니까 잘 돼요. 그런데, 건물주에게 쫓겨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다른 데 가서 할 수도 없어요. 또 쫓겨나면 어떻게 해요? 트라우마가 생겨요.

 

 

7. 사장님처럼 억울한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할까요?

가장 좋은 것은 법 밖에 없잖아요. 최소한 10년은 보장해줘야 돼요. 임대료 빼고 초기 투자비용만 1억 8천 든 거 생각하면 10년은 돼야 기반잡고 넘어가는 게 가능해요.

10년 보장해주더라도 자영업자가 이미 너무 포화상태잖아요. 경쟁이 치열하고 장사가 안돼서 접는 거는 얘기 못해요. 자기 책임이니까. 근데 사회적인 환경 있잖아요. 상가임대차보호법 문제, 환산보증금 문제, 건물주 갑질, 법이 맹점을 이용해서 1년 6개월 비영리 조항을 이용해가지고 저희처럼 이렇게 내쫓는 것은 막아야죠. 비영리 1년 6개월 조항같은 것은 악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빼야 돼요.

권리금은 무조건 세입자가 받을 수 있게, 이럴 땐 주고 이럴 땐 안주고 하지 않도록 해야해요. 저 사람한테 하면 1억 받는데, 건물주에게 가면 천 만원도 못 받고 그런 상황이 생기면 안 되는 거죠.

 

8.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현재로선 언론에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기업인지라 언론플레이도 잘하고, 언론에 예민하더라고요. 간판 강제철거 형사 수사 관련 담당검사가 2017년 7월 이후 4번이 바뀌고 아직도 수사중입니다. 이런 일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하는데, 참 어렵네요. 지금으로서는 많은 시민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법적인 잣대보다 사회적인 여론을 잘 만들어주시면 큰 힘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건물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내 학원업계 굴지의 기업입니다. 더구나 경찰, 검찰 공무원 교육과 부동산 강의를 하는 학원입니다. 둥지내몰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법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시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기업이 가진 사회적 이미지에 맞게 문제가 잘 해결되길 기대합니다.

목, 2018/04/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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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원 회원 인터뷰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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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원 인터뷰는 1994년 KBS 기자로 입사해 아나운서, 앵커, 특파원 등을 거치며 20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약하시다 지금은 KBS 파업에 참여하며 언론 정상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계시는 임장원 회원님을 만났습니다.

 

방송국이 총파업 하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결방하는 것부터 생각해 아쉬워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또 파업하나보다 했지요. 하지만 최근 이명박, 박근혜 정권시절 권력과 결합되었던 국영방송의 파행이 드러나면서 언론적폐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KBS, MBC 언론인과 방송국 노동자들이 청와대 외압으로 민중의 눈과 귀를 멀게 한 KBS 고대영 사장, MBC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긴 시간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고생하며 투쟁하고 있는 언론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임장원 회원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지난 11월 8일 여의도 KBS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파업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파업의 목표는 고대영 사장의 퇴진입니다. KBS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또 내부 구성원이 공영방송에 기대하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집권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보도를 해왔고,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저항하는 제작진에게는 인사상의 보복이나 징계를 일삼아왔습니다. 그 결과로 조직의 토론 문화가 죽었고, 건강한 저널리즘은 실종됐습니다. KBS 뉴스는 ‘땡북’ 뉴스(북한 관련 뉴스가 많다는)라는 비아냥을 받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는 종편 채널들의 연이은 특종을 쳐다보기만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KBS 취재진이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의 야유를 받고, 쫓겨나고, 매체 신뢰도는 떨어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보수정권이 집권한 지난 9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져왔고, 특히 현 고대영 사장 체제에서 극에 달했다는 게 다수 KBS 구성원들의 평가입니다.

 

 

공범자들 영화를 보거나 투쟁하시는 과정들을 보면 통쾌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분들은 말 못할 아픔과 어려움이 많을 거라 예상됩니다. 파업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세요?

 

파업이 두 달을 넘기면서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고통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점은 KBS의 존재감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KBS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공영방송 파업이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방송 매체가 워낙 많다보니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않아요, 수신료를 JTBC에 주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KBS 뉴스에 대한 기대 자체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 나오는 양비론적 인식도 안타깝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코드 안 맞는 공영방송 사장은 어차피 쫓아내는 것 아니냐, 보수나 진보나 다 똑같다, 이런 거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수 KBS 구성원들이 월급 못 받는 파업을 하면서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결코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고 사장이 저널리즘의 본분을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해왔다면, 고 사장이 ‘보수 색채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현 정권이 쫓아내려는 시도를 할 경우 KBS 구성원들은 오히려 정권에 맞서 사장의 임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할 것입니다.

 

방송문화진흥회가 고영주 이사장 불신임건을 가결하면서 MBC 사태는 해결될 실마리가 보여 희망적인데, KBS는 전망이 밝지 않다는 언론기사들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난 9년간의 MBC는 워낙 ‘막장’으로 망가져왔기 때문에, 해직 언론인도 여럿 나왔구요, 정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망이 높았고, 그게 반영된 결과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MBC의 정상화가 더욱 시급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만, 상대적으로 KBS가 관심을 덜 받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KBS는 전망이 밝지 않다는 기사가 나오는 배경은 이런 겁니다. KBS와 MBC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거대 야당이 ‘정권의 방송 장악’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다 보니 현 정권 입장에서는 비록 그것이 공영방송 언론인 다수와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이라 해도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KBS의 경우 사장 임기가 1년 남아서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교체를 서두를 큰 실익(?)도 없으니, 내년 지방선거 등을 감안하면 야당의 ‘방송 장악’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는 정도로 발을 빼고 싶은 셈법도 나올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파업 투쟁 중인 다수 KBS 구성원들은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정권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시민사회의 관심과 성원입니다. 정말 KBS는 이렇게 1년을 더 가도 좋은 것인지, 정치적 셈법으로 주판알을 두드리는 정치권에 KBS의 운명을 맡겨놔도 되는 것인지… 수신료를 내는 시민들이 더 큰 관심을 갖고 ‘다음은 KBS 정상화다’를 크게 외쳐주셔야 KBS 개혁이 앞당겨질 거라고 봅니다.

 

▲ 임장원 회원은 투쟁의 최종 목표는 고대영 사장의 퇴진이 아니라 KBS가 ‘수신료가 아깝지 않은, 수신료를 내고 싶은 공영방송’으로 다시 정상화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업 이후의 방향과 투쟁계획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제가 노조 집행부가 아니라서 투쟁 계획은 드릴 말씀이 없구요,^^;; 중요한 건 고대영 사장의 퇴진이 투쟁의 최종 목표가 아니란 겁니다. 투쟁의 최종 목표는 리셋 KBS, 수신료를 내고 싶어하는 공영방송의 건설이구요, 리더십 교체는 그 수단이자, 디딤돌일 뿐입니다. 제가 기자이기 때문에 보도부문에 대해서만 말씀드린다면, 공짜로 볼 수 있는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 10대부터 노령층까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는 시대에 우리는 왜 수신료를 내고 KBS 뉴스를 봐야 하는가에 대해 답이 되는 뉴스를 생산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공공부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시장(민간부문)에 맡겨놓으면 나오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죠.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뉴스가 넘쳐나지만 검색을 해보면 쟁점이 되는 사안을 양비론적으로 늘어놓는 뉴스만 나옵니다. 양쪽의 주장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 검증하거나 의혹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뉴스는 가물에 콩 나듯 볼 수 있어요. 민영 언론사들은 기자들에게 기사 한 건을 오랫동안 취재할 시간을 줄 여력이 없고, 광고주들이 싫어할 만한 내용을 끝까지 파고 들게 할 수도 없거든요. 수신료가 중요 재원인 KBS는 구조적으로 ‘끝장 기사쓰기’가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언론사입니다.

 

기자님은 방송기자인데, 최근에는 온라인에 주로 삼성 관련 심층기사를 써서 반향을 일으키곤 하지 않았나요?

 

현 고대영 사장 체제가 출범한 직후인 2015년 12월에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를 9시뉴스에서 다뤄달라는 기자협회장의 호소를 보도본부 간부들이 부당한 압력이자 편집권 침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낸 적이 있었죠. 저는 당시 경인방송센터장으로 부장급 간부였는데, 마지못해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성명 참여를 철회하고 보직을 사퇴해버렸어요. 그 이후 인천지국에 평기자로 발령받아 ‘유배’ 생활을 하다가 디지털뉴스부로 옮겼죠. 디지털뉴스부도 일종의 유배지라 ‘진보 성향’ 기자들이 모여 있는데, 온라인 쪽은 수뇌부가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 오히려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마감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었죠. 그래서 제도권 언론이 잘 안 쓰는 기사, 겉핥기만 하는 기사, 검증이 부족한 이슈를 들여다보고 1주일에 하나 정도만 심층적으로 썼습니다. 건수로는 40여 개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이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나 섹션별 주요 뉴스 코너에 노출되며 격려와 제보 메일을 많이 받는 등 개인적으로는 뉴스 앵커 시절보다 더 뜨거운 성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특출해서가 아니라 기자에게 시간과 자유를 주면 더 깊은 기사, 더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죠. KBS 기자 수백 명을 시청률과 제작 경쟁에서 풀어주고 성역을 없애주고 시간과 자유를 주면 수신료가 아깝지 않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 확신합니다.

 

이번 사태를 공영방송 이사회 선출 방식 구조가 문제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당 추천 이사들이 방송국 사장을 뽑고 중요 안건을 처리할 수 있는 지금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구조적 개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맞은 말입니다. 당연하고, 그래서 또 오랫동안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제기돼왔지만, 정치권이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입장이 달라서 여지껏 성사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배구조 개선이야 말로 공영방송 독립을 위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젭니다.

현재 KBS 이사진은 여당이 7명, 야당이 4명을 추천하고 MBC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진은 여당에서 6명, 야당에서 3명을 추천하지요. 현 여당이 야당일 때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은 이사 수를 각각 13명으로 늘리고 여당과 야당의 추천 이사 수를 각각 7대6으로 해 불균형을 최대한 축소하고, 이사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사장을 선임할 수 있게 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해서 사실상 야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했을 때의 문제점은 여야 타협의 산물로 무색무취한 사람이 공영방송 수장으로 선임되기 쉽다는 겁니다. 여야 모두가 ‘오케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여야 모두의 눈치를 보고 어느 쪽에도 날을 세우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사실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게 무색무취를 의미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아예 정치권의 영향력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이사들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시민들을 포함해 대규모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천위원의 2/3가 찬성하는 후보자를 사장으로 선임하는 등의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겠죠.

 

▲ 임장원 회원님은 수신료를 내는 시민들이 더 큰 관심을 갖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쳐주길 당부했습니다.

 

회원 인터뷰인만큼 2006년부터 경실련 회원으로 지금까지 계속 큰 힘이 되어주시고 계신데, 경실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경실련은 창립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87학번이에요. 6월 민주화항쟁 세대라고도 하는데, 제가 대학 다닐 때는 학교 출석하는 게 죄스럽고 출석하는 것보다 거리에 나가는 게 익숙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3학년 때 경실련이 생겼고, 군대 다녀와서 복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실련 활동들을 알게 됐는데요,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경실련 간사를 꿈꿨었습니다.

심정적으로는 동조했지만 운동권에 참여하지는 않고 변두리에 있었는데, 어쨌든 사회변혁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어요. 노동운동이라든가 야학에 참여할 용기는 못 내고 있는데, 마침 시민사회단체라는 공간이 좋아보였어요. 그런데 거기서 또 주저하게 된 거죠. 저희 집이 가난해요. 경실련 가면 가난할 거 같은데 솔직히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찾은 게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월급받는 게 뭘까 했을 때 ‘언론’일을 하게 됐어요. 실제 기자 생활 하면서도 시민단체 지향과 언론의 지향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사회변혁과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하는 역할들을 한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고 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언론이 조금 더 제도권에 있고 안정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겠죠. 그래서 비겁하게 조금 더 안정된 기반이 있는 곳으로 전향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시민단체 활동가들 늘 존경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언론활동 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경실련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경실련이 해 온 여러 가지 활동들은 박수를 보냅니다.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 아파트값 문제…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전문성을 가지고 경제정의 실천이라고 하는 설립 취지에 걸맞게 많은 사회적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을 하고 지금처럼 기조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단, 이제 경실련은 시민사회단체지만 갑입니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권위있는 시민단체의 행동이나 발언 하나하나는 이미 언론보다 더 사람들의 신뢰를 받거든요. 조선일보가 말하면 안 믿어도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말하면 믿는다는 거죠. 그래서 그 책임과 신중함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올 초에도 경실련 보도자료 관련해서 오류인가 의도적 과장인가 확인해보고 싶어 담당자와 한번 통화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볼 때는 분명 논리적으로 과장된 부분들도 보였거든요. 사실 이런 부분들은 진보언론에서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내세우는 주장이라고 해서 정치(精緻)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문가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기자로서 한 말씀 드려봤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책을 편집하는 과정 중에 방송문화진흥회가 임시이사회에서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을 가결했습니다. MBC 파업 71일만입니다. 임장원 회원님 말처럼 사장 해임이 최종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해 진실을 은폐하며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한 왜곡되고 망가진 것들을 다시 세워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언론을 통해 여러 소식을 접합니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해야겠습니다.

 

목, 2017/12/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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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이야기 – 학림다방 인터뷰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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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에는 학림다방이 있습니다. 학림다방은 대학로의 명소일 뿐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예술가와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곳입니다. 경실련이 창립된 1989년보다 33년 전인 1956년 옛 서울대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의 토론 장소는 물론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단골다방으로 지금도 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980년대 대표적 공안사건인 ‘학림사건’이 대학생들의 첫 모임 장소가 대학로 학림다방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요. 가까이 있었지만 특별한 인연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회원들에게 잘 소개하고 싶어 4대 학림지기인 이충열 사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학림다방은 부부 또는 자녀가 함께 오거나, 20대와 60~70대가 등을 맞대고 담소 나누는 풍경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4대 학림지기를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학림지기를 하게 되셨는지, 학림다방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1987년 학림다방을 인수해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저는 서울대 출신도 학생운동권 출신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에요. 일제시대 때 지은 원래 건물은 지하철 4호선 공사를 하면서 헐리고, 시에서 보상해줘서 다시 건물을 세웠어요. 원래 위치에서 조금 변화도 있었고, 학림이 학림답지 못한 시기(경양식 레스토랑처럼 나비넥타이 맨 웨이터들이 있고, 유선방송 연결해서 음악을 틀어주던)를 거치면서 주변의 권유로 나처럼 모자라는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학림다방 메뉴는?

– 손님들한테 맛있는 거 팔아야지, 맛없는 거 팔면 안 되죠. 다 맛있지만 학림만의 치즈케잌이 참 맛있지요. 비엔나커피가 유명한데, 비엔나커피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옛날에 강남의 사모님들이 대학로에서 연극보고 비엔타커피 마시고 가는 게 코스같은 시절이 있었죠.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속극에 비엔나 커피 마시는 신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비엔나커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지요.

 

찾아왔던 손님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손님은?

  • 30년 넘게 하면서 먹고 살았으니 돈도 벌었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 다 만날 수 있었다는 게 학림다방 운영하면서의 큰 행운이에요. 어느 특정인을 말하긴 어렵네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수도 없이 많아서.

 

▲ 전직 사진가셨지만, 정작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서 말씀 도중 어렵게 한 컷 찍은 이충열 대표님(왼쪽)

 

 

자체 커피공방에 로스터기를 설치해 생두를 선별조합해서 커피를 볶아내고 하루에 스무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가며 연구한 끝에 학림만의 독특하고 변함없는 맛을 찾아냈다고 들었습니다. 현대인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변하지 않을 것도 있고 변해야 할 것도 있어요. 메뉴랄까 이런 것들은 새롭게 변해야지 옛날에 이랬으니까 계속 이것만 하면 망해요. 커피는 로스팅을 일찍 시작했어요. 대학로 스타벅스가 우리나라 2호점인데, 2호점 들어오기 전에도 로스팅을 하고 있었으니까. 글쎄, 커피철학까지는 모르겠고, 요사이 커피를 많이 마시면서 커피가 너무 유별나지는 거 같아요. 음식들도 경제가 나아질수록 퀄리티 좋은 것들 찾게 되듯이 커피도 똑같은 거 같아요. 인스턴트 먹다가 원두커피 먹고, 더 스페셜한 걸 먹게 되는데 음료고 기호식품인데, 너무들 유난을 떤다는 느낌이 들어요. 커피도 농산물이기 때문에 음식처럼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면 그게 좋은 거지요.

 

▲ 이충열 대표님은 학림다방 뒤편에 자리한 학림커피에서 커피 로스팅도 하고 손님들에게 커피를 판매하기도 한다.

 

대학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점포들을 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대학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쉽게 빨리 돈 벌려고 하는 거 같아요. 저게 될 거 같으면 금새 바꾸고 조금만 유행에 지나면 다른 거 다른 거, 대학로가 그렇게 바뀌어가는 거 같은데 글쎄 별로 썩 좋아보이진 않아요. 나는 유행에 민감하게 기웃거리지 않다보니 대학로에 30년 넘게 있어도 주변에 가게하는 사람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이제는 좀 차분해졌으면 좋겠어요. 욕심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욕심이 있어야 추진력도 생기고 장사라는 게 항시 수익을 생각해야 하지만 마이너스 크게 안 되면 자기 만족하면서 해야 가게들도 오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너무들 다 들떠 있어요.

 

학림다방도 임대료가 오를 거 같은데 괜찮으신지 궁금합니다.

  • 지금까지 30년 동안 하면서는 어떻게 운 좋게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버텼는데, 앞으로는 사회가 그런 것들을 지켜갈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해요. 이제는 개인이 지키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우리도 집주인이 지금은 나이도 많으시고 돈도 있고 하셔서 괜찮은 거지, 돌아가시고 상속되거나 주인이 바뀌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겠어요. 다른 나라가 가게를 100년, 200년 할 수 있는 건 사회가 그렇게 지킬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봐요. 자영업자들이 해보니까 99%는 망하는 거 같아요. 임대료내고 하면 사람 쓰고 그런 건 못해요. 가족들이 하고, 자기 인건비 까먹고, 그러다보면 뭔가 재료에 부실해지고 그러다보면 손님들 안가고 계속 악순환인 거죠.

 

2014년 서울특별시로부터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건물 전체가 영구 보존구역으로도 지정되었는데, 역사와 전통을 보전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미래유산 선정됐다고 하는데, 치적쌓기식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돈이나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라 어렵게 해가는 것들을 계속 지켜갈 수 있도록 해주거나 다른 가게들도 그렇게 노력할 수 있게 뭔가 제도개선 이라든지 뭐가 있어야 되는데 너나없이 다 지정해놓는 느낌이 들어요. 나도 모르는데 지정해놓고, 동판 하나 세워주고, 계속 인터뷰 하자고 연락오고 하는데 뭔질 모르겠어요. 아직은 홍보용 수준 같아요. 예전같은 경우는 음식점에 모범음식점이 있어요. 그 집은 진짜 모범음식점이었는데 지금은 다 모범음식점이래요.

 

경실련 또는 시민단체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 정말로 집주인들이 부담감 가지고 마음대로 가게를 바꿀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여기는 정말 소중하다, 이거 없으면 안 된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집주인들도 자제가 되겠지요. 사회가 지켜야지 이제 개인이 열심히 해보려고 소신을 갖고 해도 안돼요. 모든 사람들이 문화적인 것들을 소중히 지켜가고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해요.

 

▲ 학림다방은 음악파일로 음악을 재생하지 않고, LP판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오래된 LP판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운영하시면서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시면 나눠주세요.

– 별그대 같은 경우도 우리는 부수입 올릴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나중에 촬영하고 나서 저가여행상품 만들어가지고 중국관광객들이 관광버스 쭉 세워놓고는 무대기로 와서 사진찍고 가고 아주 곤란했어요. 관광공사랑 서울시에 전화해서 따지고 그랬죠. 물건 파는 거였으면 대박났을텐데. ㅎㅎ 차를 한잔씩 마셔야 하는데 사진만 찍고 우르르 가버리고. 아주 난리였죠. 드라마나 언론이나 이런 게 별로 안 좋은 게 막 띄우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절대 인터뷰 안하고 있는데. 에이. 경실련 뭐 이런 거창한데서 와가지고. 민주화의 상징이라고도 많이 하는데, 데모가 끝나는 시점에 대학생들이 굉장히 개인주의로 바뀌잖아요. 그러면서 운둥권이나 민주화의 장소로서의 이미지는 많이 없었는데 나중에 검색기능이 발달하면서 여기가 어떤 곳이다 이런 걸 알게 되면서 다시 알려졌죠.

 

새로운 계획들 있으세요?

  • 그전 같은 경우는 50주년 때 김정환 시인이 서두르고 그래서 1주일 동안 예술가들이 일일사장 하는 행사도 하긴 했었어요. 그 이후로는 안했어요. 지금은 이제 다들 나이들어서.. 학림 마지막 세대들이 60대 후반들이니까. 이제 조금 젊은 친구들로 계승이 돼 가야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뭔가 전문성과 열정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계속 해나가야 학림도 100년 가고, 계속 갈 수 있어요. 대충 해가지고는 오래 못 버텨요. 자생력을 항시 가져야지. 학림의 브랜드가치 같은 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너무 장삿속 아니고 잘 이어갈 수 있는 친구들이 하면 좋겠어요.

 

순박하고 선한 어르신을 만나뵐 수 있어 마음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르르 몰려간 간사들에게 손수 내리신 커피도 대접해주셨습니다. 무엇이든 돈이 된다 하면 어느 도시든 똑같은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서는 시대에 학림다방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이웃으로 역사와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자는 마음 나누고 왔습니다.

목, 2017/12/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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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회적기업상 최우수기업 공감씨즈 인터뷰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mail protected]

 

경실련은 재벌과 기업을 날카롭게 감시하는 활동도 하지만, 비판만하지 않습니다. 윤리적 경영,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은 발굴해 격려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상을 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좋은기업상, 좋은사회적기업상을 선정하여 시상을 하는데, 올해는 특별히 회원들에게 조금 더 소개하고 싶은 사회적기업이 있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지역사회공헌 및 사회서비스 제공부문 최우수기업에 선정된 공감씨즈입니다. ‘여행, 북한, 통일’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이 기업은 대구에서 북한 이주민 지원센터로 시작해 NGO에서 게스트하우스로 확장하며 사회적기업이 되었습니다.

여행사로 영역을 확장해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정적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관광산업 부가가치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성장 계획을 갖추고 있어 현재보다는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 인터뷰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 공감게스트하우스 본점 건물 전경

 

▲ 공감호스텔(공감동성로게스트하우스) 건물 전경

 

Q: 대구에서 북한 이주민 지원센터로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분들이 어떻게 모여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데요, 2002년 당시 제가 몸 담았던 기관은 자원봉사운동 NGO로, 홈리스를 사회복지 차원에서 지원하는 부설 대구쪽방상담소를 복지부와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2002년 하반기에, 우연히 대구지역에 북한에서 오신 우리 동포들이 100여명이나 정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들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이들을 위한 지역의 지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체계가 지금보다 많이 미비했던 상황이라, 이들을 위한 정착지원이 시급했습니다. 이후 2003년에 ‘북한이주민지원센터’를 개소하고 공식적으로 북한이주민을 위한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Q: 여러 사업 중에 숙박업을 하신 계기는?

저희는 원래 당시 회자되기 시작했던 공정여행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백두산이라든지 북중국경지역 연수도 가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대구지역 시민들과 금강산 여행도 가보는 그런 여행사를 꿈꾸었습니다. 이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컨설팅을 받게 되는데요. 그 컨설팅과 내부토론을 통해서 게스트하우스를 먼저 설립하여 사업을 안정화 시킨 다음에 여행사를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대구지역에도 게스트하우스처럼 건강한 숙박시설이 들어서면, 많은 관광객이 불러 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대구지역 청년, 탈북 청년, 외국 청년, 전국에서 대구를 찾은 청년이 함께 ‘공감게스트하우스’란 공간에서 만나 얘기하는 것을 꿈꾸며 시작했습니다.

 

▲ 공감게스트하우스 1층에 위치한 ‘카페공감’

 

Q: 일반기업이 아닌 사회적기업을 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사실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많은 증빙서류와 행정절차가 있는 사회적기업 지원기간을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회적기업 지원을 받기보다 독자적으로 살아 남아보자라는 의지가 왕성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보니, 이 업종이 생각보다 훨씬 노동집약적이었습니다. 예약전화 응대, 해외예약사이트 관리, 객실청소, 손님응대, 지역관광 안내자로서의 역할까지. 임금을 지원해주는 사회적기업이 되는 것이, 기업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 되겠구나라고 판단했고, 결국 사회적기업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고객 입장에서 세계적인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와 비교해서 공감씨즈만의 차별성이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에어비앤비는 사실 저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업이지요. 에어비앤비의 기본개념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집 안에 남는 방을 공유공간으로 싸게 빌려주자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실제로 한국에서는 임대료를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게 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유숙박을 하시는 분들이 게스트하우스(외국인도시민박업) 허가를 많이 신청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저희 공감게스트하우스는 6인실, 8인실, 10인실과 같은 도미토리 공간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숙박하며 만나는 공간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에어비앤비는 개인이나 소규모의 그룹이 집주인의 객실을 자기 집처럼 빌려서 프라이빗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죠, 저희 같은 게스트하우스는, 보다 다양한 곳에서 온 여행자들끼리 서로의 삶을 얘기하고 친구가 되는 공간으로 보시면 됩니다.

 

▲ 공감게스트하우스 객실(8인실) 내부

 

Q: 북에서 탈출해 남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부르는 말로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자등 여러 가지 표현 중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기관은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북한이주민’이라고 사용해왔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이 용어가 우리나라 법에 명시된 공식적인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단체는 북에서 온 동포들이 통일이 되면 다시 고향에 가서 살수도 있고, 또 이곳에 북한의 가족들을 초대해서 살 수도 있다는 관점을 주요하게 생각해서 북한이주민이라고 사용해왔습니다만 한국사회에서 명칭과 용어와 관련해서 워낙 곡해와 다툼이 많은 관계로 법적인 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사용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Q: 북한이탈주민들은 앞서 찾아온 통일이라는 마음으로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시는데, 통일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하고 계시는 게 있으신가요?

저희 사회적기업 공감씨즈는 지난 5년간 한반도와 북한이탈주민들을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한반도와 북한이탈주민에 관심 있는 내외국인 자원봉사아카데미에 북한전문가를 모시고 특강을 듣기도 했고요, 북한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제, 북한음식 함께 만들어 먹는 행사 등, 문화적 차원에서 북한을 알아가기 위한 활동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대구란 지역에서 향후 통일을 준비하는 작은 역할들을 늘 고민하고 담당하고자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개선된다면 북한의 금강산, 백두산을 상품으로 하는 여행사가 되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일에 더 기여하고자 합니다.

 

Q: 수익금을 북한이탈주민 지원을 비롯한 사회 공익사업에 20% 이상 지원하실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업들에 쓰이는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2016년 결산결과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났습니다. 저희는 정관에 순이익이 발생했을 때 사용처를 명시해놓고 있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순이익의 50%는 사업확장을 위한 재투자 및 자부담 급여적립에, 20%는 북한이탈주민 관련 기부나 사업에, 20%는 취약계층의 고용창출과 직원복지 및 후생관리에, 10%는 소외계층과 사회공헌을 위한 기부활동에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 당기순이익이 발생하였을 때 아직 정부지원을 받고 있고 대출금도 있는 재정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의 원칙을 정확히 실현해 나가기 위해 통일부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에 북한이탈주민들의 취업역량강화에 써주시라고, 당기순이익의 20%인 512만원을 공식 기부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기업은 처음 설립 때의 초심을 유지하며 정관에 의거한 대로 사회공헌활동과 고용창출을 위해 지원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 공감호스텔(공감동성로게스트하우스) 내부 사진

 

▲ 공감호스텔(공감동성로게스트하우스)에서 내외국인 손님들과 함께

 

Q: 그동안 만나온 북한이탈주민들 중에 소개해주고 싶으신 분들 있으면 한 두분 소개 부탁드리고, 계속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는지 궁금합니다. 그밖에 에피소드나 인상깊은 사건들 있으면 들려주세요.

저희 기업은 북한 출신 청년뿐 아니라 남한의 청년도 함께 일하는 기업입니다. 오랜 세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활동을 해오면서, 해외의 난민정착사례와 이주자들의 정착현황을 알아보고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바로 사회통합형 프로그램이란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너무 많이 구분 짓는데 익숙합니다. 다문화, 탈북자, 결혼이주여성, 경력단절여성 등등,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제도는 결국은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또 다른 낙인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저희 기업은 출발부터 남북의 청년들이 함께 적응하고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설계하고 함께해 왔습니다. 지금은 1명의 북한출신 청년이 일하고 있고, 그동안 저희 게스트하우스를 거쳐 간 북한출신 청년은 10여명에 달합니다.

게스트하우스는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입니다. 업종의 특성상 다른 직장보다 훨씬 더 사회와 인간관계를 배우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공감에서 일했던 탈북 청년들은 이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기를 얻어 해외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거나, 수도권에 취업하고, 공공기관에 취업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기업은 이 친구들이 더 성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그 전까지는 이들의 디딤돌 직장으로서 기능을 해나 갈 계획입니다.

실은 이들의 삶이 너무 전쟁터이기에 특별한 에피소드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남한에 와서 의대에 진학하고 인턴과 전문의 수련을 잘 거쳐, 당당히 의사가 된 친구입니다. 의사가 된 후에 저희를 찾아와서, “저도 후원하고 싶습니다. 후원카드 주세요.”라고 하더군요. 왠지 모르게 눈물을 났습니다. “저처럼 남한에 와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후배 탈북자들을 열심히 도와주십시오.”라고 그 친구가 적은 후원문구를 보았을 때, 이 일의 보람을 느끼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Q: 대구의 명소를 소개해주신다면?

몇 달 전 KBS <배틀트립> 프로그램에서 구구단 김세정씨가 저희 공감게스트하우스를 베이스캠프로 대구여행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대구는 아주 핫한 먹방투어지로 인기를 얻고 있답니다. 여전히 대구에 볼게 뭐 있어 라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시겠지만 대구 구도심에 조성된 근대골목투어는 연간 200만명이 찾아오는 관광지이며, 전국지자체에서도 도심재생의 선진지로 찾아올 정도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근대골목투어 외에도 누구나 한번은 오고 싶어 하는 김광석 거리, 조선시대부터 평양시장, 강경시장과 더불어 조선3대 시장으로 불리던 명성을 느낄 수 있는 서문시장, 서울 명동보다 넓고 홍대클럽거리에 이어 2번째라고 불리는 클럽거리를 보유하고 있는 대구의 도심 동성로는 대구가 자랑할 만한 관광지입니다. 근대골목투어, 김광석거리, 서문시장, 동성로 이상 대구관광 탑4는 독자 여러분들이 대구에 오시면 꼭 들려보셔야 할 곳이랍니다. 게다가 이 네 곳과 저희 게스트하우스는 걸어서 20분 거리입니다.

 

▲ KBS 배틀트립 촬영 차 공감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구구단 세정, 나영과 공감씨즈 직원들

 

Q: 경실련에서 이번에 좋은사회적기업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사업적기업을 이미 일구어가시는 분들, 또 새롭게 사회적기업을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나눠주세요.

초기설립과정의 어려움을 딛고 정착해나가는 과정에서 수상하게 된 이번 경실련의 좋은사회적기업상은 저희 기업과 구성원들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저희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경실련에 큰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에게 사회적기업은 도전입니다. 새롭게 준비하시는 분들, 꿈을 꾸고 계시는 분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며, 아프지 않고 하는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어느 외국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려봅니다.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보다 따뜻하게 살아가는 길, 그래서 우리 사회가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사회로 나아가는 길, 저희는 바로 사회적기업을 비롯한 사회적경제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함께 도전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서로 배려하는 사회를 우리들이 함께 만들어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읽어보시니 왜 더 소개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시죠?

‘통일이 되겠어?’라는 체념이 가득한 시대에…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며

묵묵히 희망을 꽃 피워가는 아름다운 기업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머지 않은 시기에 대구에 놀러 가 추천해주신 명소들도 둘러보고 공감게스트하우스도 꼭 이용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공감여행사의 금강산 여행상품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감씨즈가 2000년 초반 품은 꿈이 지금의 공감씨즈를 이뤄냈습니다. 이 소중한 성과를 토대로 더 많이 나누고 더 아름다운 만남들이 이어지기를 경실련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월, 2018/02/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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