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세 번째 방북이 마무리되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고, 북의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두 당사가가 협상이 끝난 후,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의 ‘유감’ 표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서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내용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한국일보
그 유감의 핵심은 미국의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만이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종전선언, 나아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의 이런 태도를 ‘과거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위험만을 증폭’시킨 것이라고 한 대목이다. 그리고는 자신들 스스로를 가리켜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어리석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이 이처럼 어쩌면 위태해보일 정도로 강력한 비판이 담긴 담화문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담화문에서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내고 있고, 미국과의 합의와 협상의 틀을 깨기보다는 미국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런 점에서 이 담화문의 핵심은 바로 미국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것이다. 즉, 관계 개선,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세 가지 약속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잘 준비하고, 그것들을 잘 조율하여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중요한 문제가 놓여있다. 우리는 현재의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국면을 일방적인 북의 비핵화 과정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국 주류 언론와 정치권의 입장이 그러하고, 우리 내부의 언론 또한 그러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의 비핵화가 북이 떠 안은 ‘숙제’라고 한다면 – 사실,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가 정확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 종전·평화 체제 구축의 문제 등은 주로 미국이 떠 안은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은 자신들이 해야 할 숙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북의 담화문이 말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숙제를 하고 있는가?
북의 비핵화는 쉽고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기술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한 세대가 넘는 동안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마치 ‘신화’와 같은 한 가지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변치 않는 진리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북의 비핵화’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북에 있고, 문제의 해결 역시 북이 비핵화를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이 문제는 북-미간의 정치-군사적 대결·대립 구조가 중심에 놓여있고, 남북 관계, 미중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금방이라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북미 관계의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외에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지난 한 세대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가 올바르다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다. 모든 남북관계 합의문, 그리고 싱가포르 합의문 등이나 협상장에 있는 미국 관료들에게서 일관되게 나오는 발언은 바로 ‘한반도 비핵화’이다.
지난 싱가포르 회담은 바로 이러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큰 진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북미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났다는 것 이외에도, 지금까지 서로를 갈라놓고 있던 불신의 구조를 제거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등의 문제를 풀어가기로 한 합의가 이전과는 달라진 점을 확연히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싱가포르 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북과 미국이 동시에 풀어야 할 수 많은 숙제도 동시에 떠안게 되었다. 북은 당장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핵 시험장을 폐기하고, 나아가서는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폐기하겠다는 숙제를 안게 되었고, 미국은 이에 상응하여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밝혔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더 이상의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북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적인 발언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북도 반미 집회의 중단, 반미 구호의 중단 등 미국에 대한 호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많은 조치들이 서로 조율되어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나 미국의 주류 언론은 북의 비핵화, 비핵화 시간표 등의 일방적인 요구를 내놓고, 그에 대한 북의 반응만을 떠들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북의 비핵화’라는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북의 악마화’라는 불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주류 언론과 우리의 언론은 서로가 앞 다투어 낡은 틀의 보도에 매달리고 있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숙제는 하지 않고, 북에 대해서는 숙제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눈에 미흡할 때에는 모든 책임을 북에만 돌리는 과거의 낡은 사고의 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북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잘 보면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 눈에 띈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낡은 방식으로는 절대로 새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백전백패한 케케묵은 낡은 방식을 답습하면 또 실패밖에 차례질 것이 없다. 조미관계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싱가포르수뇌회담에서 짧은 시간에 귀중한 합의가 이룩된 것도 바로 트럼프대통령 자신이 조미관계와 조선반도비핵화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자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북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묻고 있는 것이다.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마땅히 해야 할 해야 할 숙제는 하고 있는가?
서구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출발하여 자아의 주체성과 진리의 절대성, 즉 자아와 이성의 실체성(여기서 실체라함은 타자와 독립된 존재로서 단일한 속성을 지니며 고정불변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로 대표적인 예로 플라톤의 이데아, 중세의 신, 근대의 자아 및 현대의 표상성을 들을 수있습니다)을 추구하였는데 그 근거는 자아는 이성적 존재이므로 이성과 과학에 의해 불변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뉴튼의 근대물리학 성과를 철학적으로 반영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아와 진리의 실체성을 증명하지 못하게 되자 칸트에 이르러서 선험적 주체와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진리를 주관화하면서 데카르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근대의 한계, 즉 자아와 이성의 실체성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플라톤도 인정하였듯이 자신이 제시한 실체 개념은 근원적으로 사유의 산물, 즉 관념이지 결코 현실적 실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여 근대의 자아와 이성은 중세의 신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복종 프레임을 벗어나기위해 초월적인 신을 우주밖으로 축출해버린 후 인간만의 자연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성적 존재인 자아를 실체로 인정하려했던 근대의 기획은 실패로 돌아가 버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해석해주는 실체론의 허구성을 버리지 못하고 현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근대는 이성을 지닌 인간만이 감성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지배할 수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정당화하기위해 이성과 자아를 절대적인 실체로 간주하였으나 그러한 이성은 인간만이 지닌 실체도 아니며 또한 이성(분별지의 한계는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의 한계로 인해 다시 신을 보증인으로 호출해야하는 한계 나아가 칸트의 이율배반에서 보듯이 이성으로는 절대로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현대에 이르러서야 직접 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성의 한계를 파악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며 과감히 실체론을 해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와 더불어 맑스는 기존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프로이트는 주체의 의식을 무의식의 산물에 불과 한 것으로 보며 근대의 주체와 진리의 실체성을 폐기하기 시작합니다.
니체는 서구철학의 뿌리인 플라톤의 정적이고 점적인 시간관을 영원회귀의 동적이고 선적인 시간관으로 전환시키면서 고정불변의 존재라는 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허상에 불과하며 모든 것은 영속적으로 변화, 생성하기에 고정불변인 실체는 이미 죽었으며 따라서 대표적 실체인 신 역시 죽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플라톤이 이데아를 인간의 사유에 의해 만든 허구의 관념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태동하여 니체를 계승한 푸코와 들레즈 그리고 데리다가 근대를 완전히 해체하게 되는데 이와는 별개로 하이데거와 화이트 헤드는 근대의 존재론을 바닥부터 의심하는 새로운 존재론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여 왔습니다.
한편 근대철학 입문서인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는 근대철학을 주체와 대상의 인식 그리고 진리라는 3가지 기준을 가지고 근대의 특징인 주체철학과 과학주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와 인식과 진리라는 삼각점을 이어가면서 근대철학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다보니 서구 근대철학을 ‘인식론’의 측면에서만 파악하고 비판하는데 그쳤으며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근원적으로 비판, 해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게됩니다. 즉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현대과학의 존재론에 입각하여 비판하다보면 서구 근대철학의 한계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인식론적 관점에서만 비판하다보니 현대철학의 정수와 흐름을 존재론적으로 이해시키기가 다소 어렵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여 필자는 근대물리학이 제시한 존재론인 실체론과 현대물리학이 제시하는 존재론인 비실체론(생성론,사건론,과정론,관계론)을 비교, 분석하는 차원에서 현대철학을 설명해야 현대철학의 흐름, 즉 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해보자면 푸코나 들레즈 및 데리다는 실체를 동일자라고 똑같이 호칭하고 있는데 다만 동일자에게 포섭되지 않거나 배제되어버린 ‘다름’을 푸코는 ‘타자’ 들레즈는 ‘차이’ 그리고 데리다는 ‘차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동일자, 즉 실체를 해체하고 ‘다름’의 고유성과 등가성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그 근거는 현대물리학은 고정불변의 실체를 부정하고 모든 존재는 시공간상 사건들의 인과적 과정이라는 과정론을 존재론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철학에 도입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됩니다.
한편 동일자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푸코는 동일자와 타자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없애자고 주장함으로써 비실체론 중에서 ‘관계론’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들레즈는 기존의 차이가 없는 동일성 개념을 해체하고 동일성의 의미를 차이의 반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주장합니다. 이는 ‘차이가 없는 동일성’을 ‘차이가 있는 동일성’으로 대체함으로써 기존의 차이가 없는 동일성 즉 실체를 해체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는 비실체론 중에서 ‘과정론’의 측면을 부각시킨 관점이라 할 것입니다.
들레즈는 동일성이라는 개념을 폐기하지 않고 굳이 유지한 이유를 지식담론의 생산적 효과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푸코도 평생 동일성을 해체하는데 전력을 다하였으나 말년에 이르러 해체해야 할 지식담론이 오히려 개체가 사회화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필요악이기에 그나마 지식담론 즉 동일성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라는 태도로 변경한 것과 동일한 입장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해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동일성’ 개념을 완전히 폐기해 버리고 ‘연속성’ 개념으로 대체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현대물리학에서는 존재는 시공간 사건들의 인과적 연속체이기에 들레즈가 언급한 차이의 반복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담아내는 개념으로서는 동일성보다 연속성이 훨씬 정합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써 지금의 내 몸은 태어나서 현재까지 차이의 반복 즉 현재의 몸은 태어날 때와 동일한 몸이 아닌 차이들이 연속된 몸이기에 동일성이 아닌 연속적 존재라는 개념이 더 실재와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연속성 개념은 생성과 연기의 일종인 윤회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유용하다 할 것입니다.
한편 데리다는 서구문명을 실체와 비실체의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의 계서적 문명으로 보았기에 아예 동일성 개념을 폐기함으로써 실체를 해체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사건과 사물은 모두 차연(차이의 연기라는 의미로 들레즈의 차이의 반복과 같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동일자 즉 실체란 인간이 만든 허상으로 실재 세계에는 있을 수 없으므로 소위 동일자인 텍스트를 직접 해체하여 동일자 뒤에 숨겨진 타자들의 진정한 차이 즉 타자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세상에 등가적으로 드러내어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 동일자와 타자로 가르는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비실체론의 ‘사건론’의 측면을 부각시킨 관점이라 할 것이며 푸코나 들레즈와 달리 동일성의 유용성(개체를 사회화시키고 질서를 유지시키는 효과성으로서의 유용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체를 해체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대철학은 크게 생성론의 과정철학과 해체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별되고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로지 해체만 언급하였기에 새로운 비실체론적 존재론을 재구성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들레즈는 자신이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하는 태도가 자신이 해체하고자하는 동일성을 재부활시키는 작업일지도 모르기에 이를 거부한다고 밝히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존재를 ‘동일성의 실체’가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으로 존재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된다면 우리는 세계를 전혀 새롭게 해석할 수있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차후 불교의 연기와 중도를 설명할 기회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동일성, 즉 실체를 해체만하는 입장이기에 대안으로 현대물리학의 존재론에 입각하여 비실체론적인 존재론, 즉 연속성의 생성론, 과정론의 존재론을 재구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과정론의 존재론을 받아들여 현대과학에 부합하는 철학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고정불변의 동일자(실체)가 아니며 노동 또한 항상 타자가 아니다. 하여 자본과 노동의 경계를 없애 버리자.‘
도널드 트럼프는 단호하며, 분노로 가득한 지도자이다. 자신이 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화염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전혀 없다. 합당한 존경을 받지 못 한다거나 충분한 제물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그는 심지어 세상의 종말에도 서슴지 않고 덤빌 것이 분명하다. 한편 트럼프는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에게, 권력과 막대한 부가 보장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보상할 수도 있다.
이번 달에 트럼프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이전에는 갈등과 불화 외에 아무 것도 없던 곳에 평화를 창조하며 미소 지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파괴자로서의 트럼프는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빠질 것임을 공언하면서 세계를 파멸로 한 걸음 다가서게 하고 있다.
대단히 위선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기이하게도 두 얼굴의 지도자에게는 일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합의는, 이란이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핵을 가질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부유한 국가인 이란은 원하기만 하면 상당량의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란은 지금까지 현행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준수하여 왔지만, 트럼프는 이를 “끔찍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뜯어 고칠” 수 있다고 실제로 믿는다. 이는 상당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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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핵무기 보유국 북한은 자국의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반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평화협정 그리고 미국이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맞바꾸는 조건에서 말이다.
미국의 약속?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미국이 이란에게 했던 이전의 공약들 그리고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워싱턴의 약속이란 그들이 트위터에 적은 140글자의 가치도 없다. 북한이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달 도널드 트럼프는, 최후의 억제 수단이었던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한 나라를 설득할 참이다. 핵 없는 국가로서의 새 출발을 허용하면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를 폐기하여 전쟁으로 향하는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으로 노벨 평화상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기성이 농후하고, 행정적으로 서툴며, 점점 성추행자임이 드러나는 미국 대통령의 동네 깡패 짓을 생각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더 이상 나아가지는 말자.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최고의 지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면서도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트럼프가 나타났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두 얼굴의 접근법을 가지고 말이다.
전쟁과 평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는 두 얼굴을 지녔다. 한 쪽 얼굴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또 하나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한다. 야누스는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를 관장하는 신이었는데, 이는 그가 전쟁과 평화를 책임지기도 했다는 의미였다. 플루타르크는 야누스에 관하여 이렇게 저술했다.
야누스는 로마에 신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양쪽으로 여닫는 문이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이 문을 전쟁의 문이라고 불렀다. 평화가 찾아올 때면 문이 닫히지만, 전쟁 중에는 신전이 항상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는 어려웠고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로마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주변 야만국들과의 충돌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거의 언제나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평화란 실제로 대단히 어려운 법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력 충돌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올바른 접근법을 우리가 채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강대국 중 가장 호전적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펜타곤이라고도 알려진 제국의 수도, 그 신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슬픈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분명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시기의 전쟁을 맹렬하게 비난하면서도 이슬람국가와 이란, 북한, 중국, 멕시코 등 다양한 적국들에게는 번개를 내리치듯 말 폭탄을 쏟아냈다. 미국이 해외에서 벌이는 모험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기습공격은 얼빠진 반 제국주의자들의 갈채와 실망한 일부 네오콘의 비판을 불러왔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트럼프는 막대한 군사예산과 더욱 강화된 드론 전쟁 그리고 전 방위적인 패권을 추구하는, 더욱 전통적인 안보정책을 신봉하여 왔다.
트럼프가 일반적으로 견지하는 호전적인 태도에 비추어, 북한은 기이한 예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애초부터 트럼프가 전임자들과 동일한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평양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높였고, 중국을 설득하여 이전 동맹국의 팔을 비틀도록 설득했으며,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지칭하며 무절제한 단어를 쏟아냈다.
그러더니, 자신의 울음 때문에 해가 떴다고 믿는 수탉처럼, 트럼프는 2018년 벽두에 일어난 북한에서의 반전이 온전히 자신의 공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정은이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상 미국의 행동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북한 내부의 상황(핵 프로그램의 진전과 정치권력의 공고화)과 2017년 취임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트럼프의 자기기만과 트럼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착각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우울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예컨대 간섭주의에 반대한다는 켄터키 상원의원 랜드 폴(Rand Paul)을 생각해보자.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식과 관련하여 요란스럽지만 모호한 발언을 내놓은 이후, 폴 상원의원은 마이크 폼페이오의 국무장관 지명을 지지하는 데 동의했다. (사실상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해 엄청난 숫자의 권력자들을 펜타곤에 보내왔다.)
트럼프를 가지고 놀면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트럼프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일련의 사람들 중 가장 최근의 인물이 폴 상원의원이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아직까지는 그저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충동적인 결정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에게는, 노벨상 수상이 트럼프로 하여금 한반도 통일을 영원히 지지하게 만들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있다.
트럼프가 아무런 조건 없이 지지하는 유일한 단 하나는 트럼프 자신밖에 없다. 대통령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거짓 신을 이런 식으로 달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란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뮌헨 협정의 교훈
이란이 핵무기를 향해 치닫지 않도록 차단하는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트럼프에게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이들 명단의 맨 위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떠난 전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있다. 전임 국가안보국 및 중앙정보국 책임자였던 마이클 헤이든(Michael Hayden)과 공화당 출신으로 전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리처드 루거(Richard Lugar)를 비롯하여 52명의 국가안보 최고 전문가들이 보낸 서한이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보다 최근에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자신의 전설적인 카리스마가 통하는지 보려고 워싱턴을 찾았다. 이는 트럼프를 구슬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이란의 구미에 맞도록 협상을 “타결”시키려는 분별없는 유럽판 유화전략의 일부였다. 일찍이 틸러슨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이란과의 현행 합의에 담긴 “우려 사항”을 지적하는 “실무단”을 조직하고, 이란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시도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마크롱은 “새로운 협약”을 꺼내들었다. 이는 유럽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마크롱의 일부 동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2017년 5월 25일, 미 대통령 트럼프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 AFP PHOTO / Mandel NGAN
그런데 이틀 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그리고 마크롱이 “새로운 합의가 다룰 이슈들”에 관하여 미국과 “긴밀하게”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유럽은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1938년 뮌헨 조약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아무 생각도 없는 트럼프의 방식과 좀 더 마음이 통하는 인물이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그는 이스라엘 총리로 재임하는 기간 내내 이란과의 전쟁을 독려하는 북을 두드려왔다. 이번 주 네타냐후는 방송을 통해,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글쎄, 그건 2007년쯤 뉴스 아니던가? 어쩌면 네타냐후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증거를 잔뜩 들고서 다음 방송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네타냐후와 함께 보는 지난 10년”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데 네타냐후의 “폭로” 시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란과의 핵합의를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서 결정타를 날리려는 트럼프 편에 서서, 프랑스와 독일이 그들의 몫을 했고 이제는 이스라엘이 그 뒤를 이었던 것이다.
트럼프를 진정시키려는 시도가 대단히 안 좋은 생각임을 사람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 것인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바싹 불타버린, 수많은 행정부 관료들을 생각해보라. 이처럼 불나방 같은 행동은 자신의 도덕적 잣대마저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가오는 충돌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상이 가져올 최선의 결과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트럼프가 내버려두는 것이다. 북한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군사전략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펜타곤에서 찾기는 힘들다. 어쩌면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인 트럼프도, 김정은과의 그럭저럭 성공적인 회담이 끝난 다음에는, 북한에 관해 까맣게 잊을 수도 있다. 북한이 더 이상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란에 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상황을 빨리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은 시리아에 주둔하는 이란 군사력에 제한되어 왔다. 폼페이오와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이란의 정권교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이란과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이란 자체를 “손보는 것”이라고 트럼프가 믿는 것 같다.
파괴자 트럼프는 2015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쟁에 정말로 능하다. 나는 특정한 방식의 전쟁을 좋아한다. 그러나 오직 이길 수 있을 때만 전쟁을 벌인다.”
이란과의 전쟁은 사실상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란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중국이 그들의 동맹국을 지원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미국 편에 설 공산이 크다. 이 충돌은 적어도 중동 전체를 화염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이 불길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옮겨 붙을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세계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란이 핵무기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상황이 이란 핵합의 와해의 더 나은 결과일 수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도널드 트럼프도 핵무기 보유국 이란과 비핵화협약을 타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점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북한과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 바로 아이를 잃는 일일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에 사는 우리는 유난히도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 곁에서 가슴 치며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먹먹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만한 크기의 아픔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표현대로 그저 ‘빈껍데기’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 슬픔을 딛고 자식의 죽음 속에서 다른 젊은이들의 그림자까지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죽음을 개인적 차원에서 닫아두기로 마음먹는다면 더 이상 괴로울 일은 적다. 그 죽음에서 사회적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쉽사리 구해지지 않는 답과 늘 싸워서 버텨내야 한다. 이유를 물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 그건 네 탓이라며 폭언과 저주까지 서슴지 않은 이들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삼성 직업병 사건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도 그랬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49)는 어렵게 그 길을 택한 듯하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나서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인터뷰한다. 어머니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너는 갔지만 엄마는 네가 원했던 그 뜻을 찾아 살 거야.” 바로 아들이 생전에 손팻말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자며 밝혔던 뜻이다. 비정규직을 없애는 일이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이 참혹한 환경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또 목숨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 자신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아직도 하나뿐인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비정규직 직접 고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차가운 아들 용균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며” 아들이 숨진 지 44일째 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 1월27일에는 49재를 지냈다. 도중에 어머니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옆에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뇌종양을 얻은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앉아 가만히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사진: 국민일보
■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김용균 씨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12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지난해 12월11일 용균 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3주 동안 한국에서는 하루 2명씩 최소 5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해마다 1000명가량이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최근 5년간(2012~2016) 노동자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에서 한국은 2위인 멕시코(8.5명)를 제치고 11.35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346건 가운데 97%가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51개 원청사에서 노동자 1만 명당 숨진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원청보다 8배가 높았다는 실태조사도 있었다. 멀게 갈 것도 없이 불과 1년 전에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비정규직 청년이 숨을 거둬 온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용균씨도 김군과 마찬가지로 먹지도 못한 컵라면을 남겼다. 그의 유품인 탄가루가 어지럽게 묻은 물티슈와 수첩을 바라보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이 먹먹했다. 금방이라도 풋내 나는 웃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미세한 석탄가루가 수없이 날려 미끄러운 그 공간은 잡을 난간조차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물웅덩이와 턱과 장애물을 피해 육중한 컨베이어벨트 사이로 수시로 머리를 디밀어야 했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사망한 지 4시간이나 지나 발견된 용균 씨를 구하러 갔을 때는 그가 떨어뜨린 휴대전화의 희미한 불빛이 간신히 그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했다.
용균 씨가 사망하자 업체에서는 “용균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며 뒤집어씌우기부터 했다. 그러나 용균 씨는 긴 죽음의 터널에서 그저 발을 헛디뎠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던 탓이다.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하고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처 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흐지부지됐다.
용균 씨의 죽음 이후,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다. 법이 통과되는 순간 어머니는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뒤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그 법 통과를 위해 연말 내내 국회에 있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만나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사흘 동안 국회에서 꼬박 논의 과정을 지켜봤다. “왜 이렇게 뭉그적거리냐”고 호통도 쳤다. “누가 이 법을 가로막는지” 똑똑히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이 통과되고서야 어머니는 태안에 다시 와서 아들 사진 앞에 서서 말했다. “28년간 늘어진 법인데,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용균이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게 됐다고…. 그래서 엄마가 너한테 조금은 할 말이 생겼다고. 용균이 네가 좋은 일을 했다고.”
용균 씨가 피켓을 든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좀 더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거기서 헤어 나오고 싶었으면 저 피켓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용균 씨 잘못이라는 말에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사진이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는 사고 현장을 둘러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꼭 옛날 탄광 같았는데, 탄광은 무너져야 사고가 나지만 그곳은 들어가면 금방 사고가 날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10명이 넘게 죽었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걸 보면 “서부발전소 최고 관리자는 연쇄 살인범과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용균 씨의 죽음으로 9~10호기는 멈췄지만 여전히 1~8호기에서 용균 씨의 동료들이 똑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친구들도 죽을 것만 같아서 그 친구들을 살려야만 용균이한테 조금이라도 얼굴을 들고 죄를 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비정규직에게도 법은 있었고 안전규정은 있었지만 적용되는 건 없었다. 용균 씨가 소속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지난해에만 28차례에 걸쳐 안전설비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3억 원이 든다며 거부했다. “그냥 인간으로 안 보는 거죠. 그냥 일회용이고 물건인거죠.” 어머니는 말한다. “사람들은 왜 정규직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은 인간 취급을 안 합니다. 노예 취급 받고 삽니다. 그래서 생명이 위태로워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일하라고 하면 해야만 합니다.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회사(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들 회사를 나가지 않는 한 일해야 된다고 용균이 동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너는 살아야 한다”
사고가 나고 사흘 만에 용균씨의 어머니는 현장조사 공개브리핑에 나와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라고 말했다. 일하던 현장을 가보니 놀고먹는 한이 있어도 보내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비상시 운전을 정지할 수 있는 안전줄이 있었지만 홀로 근무하던 용균씨를 위해 당겨줄 사람이 없었다. 당겼다 하더라도 평소 느슨하게 늘어져 있어 반응속도가 느렸기에 제대로 작동했을지도 의문이었다. 용균 씨가 숨지고 난 뒤 안전줄은 팽팽하게 고쳐져 있었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원청회사를 향해 “너희들은 인간쓰레기”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분노했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악하고 험악한 곳에서 일 시킬 수 없어. 최소한의 인간성만큼은 지킬 수 있게 해야 했잖아. 할 수만 있다면 니들도 내 아들처럼, 똑같이 일하고 컨베이어 속에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 그래야 부모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을 느낄 테니까.”
어머니는 “열심히 일하라”고 얘기했던 게 후회된다고 했다. 구의역 사고 때 숨진 김군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책임감 있게 키운 게 미칠 듯이 후회된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시킨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이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서민은 아이를 낳아도 돈 있는 사람들의 노예로 살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도 않는 이런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분노에 그치지 않았다. 아들의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끌어안고 “너는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방노동청을 찾아가 1~8호기의 작업도 전면 중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빈소에서 어머니는 세월호 가족협의회 사람들을 만났다. 산업체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었던 특성화고생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도 만났다. 어머니는 말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라 가슴에 와 닿았다. 자식을 잃고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했는데 이분들을 만나 살아야 할 목표가 생겼다. 대통령을 만나 아들의 소망을 전하고 억울한 누명 벗겨주고 목숨을 앗아가는 외주화를 막기 위해 싸우고 싶다.”
어머니는 400일이 넘게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에서 굴뚝 농성을 벌이던 파인텍 노동자들도 찾았다. 좌절하던 노동자들은 어머니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중에 굴뚝을 내려온 그들은 “우리 싸움의 돌파구는 김용균 동지가 그렇게 되고 나서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텨주셔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열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했던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앞두고 김 지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말한다. “하루에 6~7명, 1년에 2000명가량이 안전장치만 갖추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줄 아십니까? 자본가들과 일부 정치가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입과 귀를 먹게 하고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고 아무런 대항도 못 하도록 해서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용납하면 안 됩니다. 용서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나서서 싸워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 아들에게 전해 줄 반지
“신기해 가지고요. 작년에 3호기에서 사고가 났을 땐 기사가 조금 뜨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이렇게 많이 떠서….” 용균씨의 동료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균씨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등은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벌여 1000건이 넘는 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발전소에 과징금 6억7000만원을 부과하고 태안화력발전소와 하청업체 책임자를 형사 입건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통과됐지만 정작 용균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상이 아니다. 하청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 업종에 발전사의 컨베이어벨트 점검 노동자는 빠져 있다. 책임자 처벌도 상한선은 있지만 하한선은 없다. 정규직 전환 역시 갈 길이 멀다. 정부는 갑작스럽게 정규직 전환이 진행되면 전까지 민영화됐던 영역들의 회사에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신중한 입장이다. 설 전에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원은 현재까지로는 이루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어머니는 “내가 사는 날까지 싸우고 이겨낼 테니 부당한 나라를 반듯하게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집과 회사밖에 모르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구의역 사고 이후 작업 환경이 나아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은 것처럼 내가 싸워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용균 씨가 숨지고 나서 찾은 그의 기숙사 방문 앞에는 생전에 갖고 싶어 했던 ‘반지의 제왕’ 반지가 택배로 배달돼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용균 씨가 그 반지를 사 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어머니는 또 마음이 아팠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다면 그 반지 끼워봤을 텐데… 죽은 아니 손가락에 끼워주면 아이는 알까요? 좋아할까요? 가슴이 미어집니다.” ‘반지의 제왕’ 반지를 사 주진 못했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용균 씨에게 반지만큼이나 좋아했을 값진 선물을 이 세상에 남기려고 한다.
아들 전태일이 죽은 뒤 노동자의 어머니가 돼 노동운동에 헌신한 이소선 여사가 그랬다. 딸 황유미 씨가 죽은 뒤 11년이 걸려서야 기어이 삼성의 사죄와 책임 인정을 받아낸 아버지 황상기 씨가 그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참사 유족들도 아직 고통 속에서 더 이상의 거대한 사회적 비극이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용균 씨의 동료와 친구들이 더 이상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길고 힘든 여정이 기다리는 벌판 위에 섰다.
어머니는 <시사IN> 인터뷰에서 두렵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가진 걸 다 잃었잖아요. 애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걸 잃었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한들 기쁘지도 않을 겁니다. 저를 위해 산다는 것보다 이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되겠기에 나섰습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자 미행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을 비난하는 글과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CIA와 국방성 산하 민간 업체가 제공한 엉터리 위성사진을 근거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아래 소개하는 칼럼처럼 미국의 패권주의와 호전성을 비판해온 글로벌 리서치는 대안 언론인 The Umz Review 기사를 소개하면서 미국내 조작과 허위선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중심이 되어 온갖 조작과 협박과 허위 언론을 통하여 베네주엘라 마두로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가 점차 밝혀지고 있듯이, 하노이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 네오콘들의 음모가 밝혀지길 기대한다.
여기 미국 언론이 북한에 대해 한 거짓말 중 가장 주요한 6가지가 있다:
1. 트럼프가 제재 완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북한이 하노이에서의 협상을 끝냈다?
이는 하노이에서 있었던 일이 전혀 아니다. 김정은은 모든 장거리 로켓실험과 핵실험을 멈추고 영변의 “핵시설들을 모두 해체하겠다”는 조건으로 북한인민을 대상으로 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자는 내용의 진지한 제안을 했다.
김정은의 제안에 타협이나 협상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이는 협상에 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논의의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협상팀은 김정은의 제안을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에 강성 네오콘인 존 볼턴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트럼프의 협상팀은 북한의 생화학무기 제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폐기에 추가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하여, “싫으면 그만 두라”는 식의 최후통첩을 내놓았다. 볼턴은 이러한 포괄적 타결안이 적용되고 미국측의 검증단이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제재 완화는 일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뜬금없는 요구사항들은 이전 논의 단계에서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합의문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바 없다. 이러한 요구들은 정상회담을 망치고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 질 수 없도록 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급조된 것이다.
2. 트럼프 행정부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사항을 존중하였는가?
아니다. 2018년 6월 12일,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사항에 동의하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미국과 북한은 평화와 번영을 희망하는 두 나라 국민들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미-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미국과 북한은 유지 가능하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한반도에 안착시키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해 나간다.
2018년 4월 27일에 있었던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북한과 미국은 포로/실종자 유해를 회수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미 신원이 식별된 유해들은 즉각 본국으로 송환한다.
김정은은 미-북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선의적 이행 단계들을 밟았지만 (여기엔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실험 중지, 핵 실험장 파괴, 55명의 한국전 미군 전사자 송환, DMZ 내 지뢰 제거, 남측과의 적극적인 문화와 경제 교류 참여가 포함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침공하고 북한 정부를 붕괴 시키는 과정을 연습하던 대규모 도발적 군사훈련을 중지시키는 것 말고는 한 일이 전혀 없었다. 트럼프는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 체제 정착”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수 주전에 싱가포르 협정을 위반하고 “동맹연습”이라는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서방 언론들이 해당 훈련을 애써 묵인하는 사이, 북한의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해당 훈련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행위” 라며 맹비난하였다.
3. 김정은은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완화가 있기 전에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에 동의했나?
일말의 여지도 없이 아니다. 2018년 9월 18일 김정은은 평양에서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두 지도자는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 경제적, 인도적, 그리고 문화적 협력 확대, 한반도 비핵화 추구에 협의하였다.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기를 약속했고 (이는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에 더해 영변 핵시설 폐기 같은 추가적인 절차를 밟아 나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의거하여 반드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All Take, No Give”로는 북한을 상대할 수 없다.
비핵화 협의는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포기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북한은 양측이 상응한 행동조치를 취하며 신뢰를 쌓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를 강화시키며 평양의 불신만 키웠다..”
비핵화와 관련된 평양의 모든 합의들은 관계 계선과 “항구적 평화 체제”의 구축 이후로 이어지는 점진적인 핵무장 해체를 암시했다.
4. 트럼프 행정부는 싱가포르에서 결론 낸 것과 비슷하게 “단계적” 혹은 점진적인 핵무장 해체에 동의했는가?
그렇다. 2019년 1월 31일, 대북 특사 스티븐 비건은 미행정부가 단계적으로 움직여 비핵화를 끝마칠 용의가 있으며, 동시에 한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뜻도 있음을 밝혔다. 또한 그는 미 행정부가 북한의 핵물질 신고를 연기하게 해 줄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비건이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했던 말들을 발췌한 부분이다.
“우리는 북한의 담당자들과 소통해왔고, 지난 여름 싱가포르에서 대통령과 위원장이 만들어낸 공동성명서에 명시된 노력들과 더불어 비핵화를 진행할 준비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비건의 이 같은 말은 2019년 1월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2019년 3월 7일, 미 국무부는 비건의 발언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성명을 내놓았다.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행정부 내의 누구도 단계적 접근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예상하고 있는 모든 경우를 통틀어서, 우리의 기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다른 단계들의 선행 조건으로써 우선되는 것입니다 (미 국무부)”.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트럼프가 고의적으로 본인의 행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김정은이 오해하도록 만들었는가? 혹은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트럼프의 입장이 강경해졌을 뿐인가? 대부분의 협상이란 일방통행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협상이란 “내가 원하는 걸 다 주면 제재를 완화시켜 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강경파 보좌관들이 원하는 것은 굴복이다. 평양이 미국의 지배자들에게 완벽하고 무조건적으로 항복하길 원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5. 트럼프 행정부는 남한에서의 합동훈련 취소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가?
그렇다. 하지만 미국의 대변인은 이러한 위반사항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해당 훈련들이 본래 계획보다 크게 “축소”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애초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연하게, 북한의 국영 방송은 분노에 차 이렇게 이야기했다:
“적대관계 해소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확약한 조미공동성명과 북남선언들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온 겨레와 국제사회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6. 김정은은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노력들을 모두 져버릴 계획으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려 하며, 미사일 실험 시설 재건은 이를 위한 포석인가?
아니다. 김정은이 이전 합의들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최근의 이 이야기들은 정교하게 준비되고 많은 자금지원을 투입한 심리전 작전의 일환이다. 미국인들에게 김정은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이다. 몇몇 기사들은 행정부가 미래의 협상을 고려조차 할 수 없도록 핵 학살의 망령을 들먹이고 있다. 이러한 선전은 미국인들 대부분이 김정은이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잔혹한 독재자”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한다는 점 덕에 크게 성공하고 있다 (이들은 김정은이 워싱턴의 만족할 줄 모르는 호전성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주류언론을 비판하는 대안미디어(The Unz Review)는 최근의 가짜 뉴스에 대한 수준급의 연구와 분석을 실행했다. (김정은의 “미사일 실험시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래의 내용은 해당 언론사가 “언론들이 소해(Sohae)발사장의 건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제목을 붙인 기사의 일부이다.
“2019년 3월 8일 NPR과 NBC 뉴스는 북한이 산음동의 발사기지에서 위성 발사 혹은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주장과 함께, 국방부와 연줄이 닿아있는 민간 기업에서 촬영한 위성 사진을 근거로 내놓았다. 해당 기사는 놀라운 내용임과 동시에, 여론을 호도하는 주장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사진들을 분석한 결과, 기사에서 언급했던 활동은 전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복)북한의 시설을 찍은 저해상도 사진 몇 장에 얼마간 움직인 사실이 없는 녹슨 차량 몇 대가 찍혔다고 해서 해당 시설에 움직임이 있다고는 절대 말 할 수 없다…”
NPR이 확보한 위성사진의 출처는 CIA와 국방성의 하도급 업체에서 제공된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시키려는 정보기관과 방산 사업자들의 개입이 있다고 해서, 근거가 부실한 NP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아니다. NPR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재적인 사실은 단 하나도 없다…”
산음동 기지의 위성사진엔 미사일이 발사되기 직전이라는 징후가 하나도 포착되지 않는다.
NPR의 주장은 해당 사진에 시설 주변의 “차량 활동”이 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해당 “활동”들의 실상은 멈춰있는 차량 몇 대 뿐이며, 소형 트럭 한 대와 대형 트럭 한 대가 강철 구조물을 쌓아둔 곳 옆에 주차되어있을 뿐이다. 이러한 장면은 구글맵으로 활동이 없는 공사장을 찾아보면 흔히 볼 수 있으며, 일반인들도 이러한 장면을 찾기가 특별히 어렵지 않다.
NBC 뉴스는 이번 일로 북한 이슈에 대한 언론의 공정성을 상실해 버렸다.
NBC 뉴스가 북한의 소해 위성발사 기지를 찍은 위성 사진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와전시키는 편향된 분석들을 기사에 담았다는 사실은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그들이 정보기관의 하도급 업자와 방산업체에서 얻어낸 소스를 “민간” 자료라고 주장했다는 사실 하나로,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나오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들로 시민들과 트럼프 대통령을 현혹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이는 평화와 경제적인 기회라는 잠재적 가능성을 약화시켜, 긴장을 유지하고 몇몇 특수 이익집단의 이익을 유지하려는 한심한 노력이다.
“언론이 소해 발사 기지 건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대안 언론의 기사들은 훌륭한 보도이며 전문을 읽을 가치가 있지만, 여기서 발췌를 멈추도록 한다.
요점은 이렇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도적으로 하노이 회담을 방해했고, 싱가포르 회담의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았으며, 한미 연합훈련 종결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며, “단계적 비핵화”를 약속한 특사의 말을 180도 뒤집었고, 또한 미-북 관계를 정상화하거나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도 일체 없었다. 거기에 더 해서, 관제 언론들은 또 한 번의 거대한 허위정보 캠페인을 벌이며 제재 강화와 추가적인 도발 그리고 끝없는 전쟁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려고 하고 있다.
작년 북한농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강연에 중국인민농업대학의 원로인 원톄쥔 교수를 초빙하게된 배경에는 이병한 다른백년 이사와 김유익선생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유익 선생은 농업과 농촌의 미래적 가능성을 바라보며 원교수가 추진하는 중국의 신향촌 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중국의 소위 삼농 사업은 실히 인류의 문명사적 대실험입니다. 생태문명의 실현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농민공을 합쳐 농촌에 적을 두고 있는 인구가 9억에 육박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과 ICT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기존의 산업에서 일자리가 새로이만들어 지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며 중국 지도부는 젊은 세대들이 농촌에서 미래를 찾도록 정책적 지원과 조언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측면에서 미패권주의의 말기적 패악에 대응한 근거지로 중국 농촌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以農村包衛覇權 이랄까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김유익 선생의 칼럼 ‘신향촌건설’에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베이징에서는 3월초부터 2주간에 걸쳐, 흔히 양회兩會로 불리는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어김없이 중국 언론 지면은 그 소식으로 도배된다. 올해도 2월18일에 나온 (2019년)중앙 1호 문건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대외 정치 메시지 발표 일정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 메시지에 공통적으로 작년과 올해, 제일 먼저 언급된 정책이 무엇일까 ? 중미무역협상, AI와 전기자동차, 5G같은 첨단기술개발, 아니면 홍콩, 마카우, 광둥 지역의 11개도시를 선봉으로 삼는 粤澳港大湾区 개발?
정답은, 한국말로 읽으면 다소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향촌진흥鄉村振興정책’이다. 이게 중국의 새마을 운동 같은 건가 ?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10년도 전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 ‘신농촌건설운동’ 정책을 추진했었고, ‘화끈한’ 재정투입을 통한 그 성과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순탄하게 넘기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원톄쥔, “토지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해온 중국” 녹색평론 2018년 1-2월호). 향촌진흥정책은, 어찌보면 중국 농촌 구석구석까지 도로, 전기, 수도, 전화, 인터넷 등의 ‘5통通’인프라를 완성한 ‘하드웨어판’ 신농촌건설 정책의 ‘소프트웨어판’ 후속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정부의 양회 공식 선전 웹사이트, 정책 심화 이해를 돕기 위한 문답식 설명 – 1번으로 향촌진흥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향촌진흥정책은 2017년 연말 세간의 화제가 됐던 19대 공산당 전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중 하나였는데, 한국을 포함한 해외언론은 주로 시진핑 장기집권 레짐을 위한 헌법개정논란에 치중하다보니, 소홀히 다루어진 감이 없지 않다.
중국을 논하다 보면, 최근의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아니면 경제나 외교정치영역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三農- 농민, 농업, 농촌)를 重中之重 – 가장 중요한 정책 현안으로 다룬 것이 이미 16년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흐름의 형성과 실천에는, 흔히 상상하기 쉬운,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과 같은 관제 프로파간다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신향촌건설운동’이라는 민간 사회운동의 개입이 존재한다.
신(新)향촌건설운동이라 했으니, 앞서 향촌건설운동이 있을법한데, 그렇다면 역사공부부터 해보자. 올해가 삼일운동 백주년이라 새로운 다음 백년에 대한 다짐이 꼭 필요한 곳이 이 지면인데, 바로 그 당시, 굴곡많은 동아시아 근대화 여정의 초입에 벌어졌던 이웃나라의 이야기이니 우리의 역사 회감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도 100여년전에 근대화를 고민하던 기라성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마지막 유학자’로 불린 량슈밍(梁漱溟 1893~1988) 선생이 있다. 그는 약관의 20대에 명문 북경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됐는데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농촌으로 갔다. 그 핵심문화가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농민의 나라 중국에서, 자주적 근대는 농민의 자각과 농촌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불교철학과 신유학의 대가로서, 제(諸)문명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서구사상, 인도철학, 중국의 사유를 비교한 역저 ‘동서문화와 철학’을 남긴 국학대사(國學大師)답게, 동양 고유의 정신과 문화, 제도와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어떻게 중국의 근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상아탑안에만 안주할 수 없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직접 농촌으로 들어가, 향촌의 문화와 자원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 개혁 실험을 진행했다. 량슈밍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과 계몽청년들이, 향촌을 기반으로 저마다 중국의 전역에서 벌였던 실험이 시작된 계기가 된 것은, 동아시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특히 한국과 중국에게는 감격과 통한이 교차하는 사건이었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과 바로 이어진 청일전쟁이다. 굴욕적인 패전과 전쟁부채 배상 등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 중국인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 당시에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위로부터의 계몽을 통한 서구적 민주, 과학의 근대 혁명을 역설하고 있을 때, 또다른 일군의 지식인들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며, 향촌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허베이河北성 딩定縣현 쟈이청翟城村마을은 1904년에 지역엘리트였던 미춘밍米春明, 미디강米迪刚 부자의 마을자치 실험이 시작된 곳으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향촌건설운동 실험지로 알려져 있으며, 1926년, 대표적인 향촌건설운동 지식인/활동가 중 하나인 옌양추晏陽初가 이를 이어받아 딩현에서 평민교육 운동을 펼쳐나가기도 했다. 또, 아들 미디강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의 농촌자치 실험을 공부하고 돌아왔다하니, 동아시아 삼국의 향촌건설과 농촌공동체 운동은 그 역사적 연원이 서로 몸을 섞고 있음에 틀림없다.
20년~30년대에 황금기를 맞았던 향촌건설운동은 중국 전역의 600여개 단체 1,000여개가 넘는 실험마을을 헤아릴 정도로 활성화됐다고 한다(中國鄉村建設 百年圖錄, 西南師範大學出版社,2018).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부분 중단되었고, 일본의 침공을 피해 국민당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충칭重慶에서 명맥이 유지되는 정도였다. 이곳 지역의 기업가인 루쭈어푸魯作孚의,항일활동과 병행된 향촌건설사업은 마침 이곳으로 피난왔던 량슈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됐을 때, 량슈밍과 같은 일부 향촌건설운동 활동가들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는 마르크스/레닌이 서유럽의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설파한 것과 같은, 도시 노동자가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량슈밍선생 (사진: 바이뚜백과사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중국 공산당의 향촌혁명파와 향촌건설파는 마오쩌뚱과 량슈밍의 관계가 협력과 긴장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과 같이, 실천방법과 핵심주제차원에서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전자가 주로 무력투쟁에 의한 토지혁명과 그 운용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면, 후자는 문화와 교육을 통한, 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하여, 기실 상당수의 향촌건설운동 참가자들은 대륙을 떠나 대만 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제 현재형 향촌건설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필자는 2015년부터 매년, 중국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공동체지원농업)대회를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국여성농민연합회, 한살림협동조합, 홍성의 풀무학교 공동체와 같은 단체들이 이 대회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참여하는 데, 다리 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에도, 중국 각지에서 1,000여명 이상의 국내외 농민과 활동가, 학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이번 행사가 10회차였고, 중국 최초의 CSA 농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베이징 교외의 작은당나귀 농장도 마침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국내에는 ‘채소 꾸러미’로 더 잘 알려진 CSA 개념을 실천하는 농장들이 이미 중국 전역에 2,0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이들이 이런 농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이 바로 중국에서는 반향청년(返乡青年)이라 불리는 귀농청년들이다. 또 이들중 대다수는 소농이자 가족농장, 혹은 우리로 치면, 영농조합법인 정도의 중소농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가 얼굴을 아는 생산자를 만나는 것이 CSA의 핵심요건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 필연적으로, 친구나 가족같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꼭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고, 그래서 생태농업, 즉. 유기농 혹은 자연농을 경작방법으로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향촌건설운동’의 성과인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왜 ‘신향촌건설운동’을 제창하고 참여해왔을까? 그것은 민간 조직의 NGO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깨인’ 생산자와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100년전 향촌건설운동에 량슈밍이 있었다면,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중국 삼농문제의 최고 권위자중 한명이며 스스로를 역시 이 운동의 견결한 자원활동가로 칭하는 인민대학의 원톄쥔(溫鐵軍)선생이 있다.
중국인민대학교 원톄쥔(Wen Tiejun) 교수
원톄쥔은 중국을 연구하는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중국 근대화에 대한 독창적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중 한명이다. 그런데, 량슈밍이 그러했듯, 단순히 뛰어난 학자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의 활약이 적지 않다. 국내에도 그의 대표적 저작인 ‘100년의 급진’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시진핑 시대에, 관변화되어 가거나, 독립적인 목소리를 잃어가는 중국의 ‘지식인’들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음에도, 정부와의 마찰은 피하면서, 계속 중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대학에서 출발한 학자가 아니라, 연구관료 출신이었던 그는 80년대부터 현장을 발로 뛰면서 농촌문제를 연구하다가, 2001년부터 ‘신향촌건설운동’의 기치를 내걸게 된다. 정책제안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목표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민과 연대하기 시작한다. 청소년 시절 문화대혁명기의 상산하방 경험을 통해, 11년간 기층 농민의 생활을 체험했던 그였지만, 이를 개인적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자기수행과 사회변혁의 재료와 동기로 삼아, 향촌과 중국의 변화에 헌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대학에서 이루어진 방학중 농활과 정기적인 교내 독서모임 등으로 유지되던 산발적인 참여활동은, 향촌건설운동의 효시가 됐던 허베이성 딩현에 2003년 만들어진 ‘옌양추농민학교’와 2004년 베이징에 만들어진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게 된다. 옌양추농민학교에서는 의식이 있는 전국의 농민을 모아서, 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을 무상으로 교육하였다. 량슈밍센터에서는 매년 10~20여명의 젊은이를 선발, 농민학교에서 수학한 농민들이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등을 진행하는 실험지로 1년 이상 파견하여 생활과 학습, 향촌건설 사업을 병행하게 하였다.
엔양추 농민학교는 지역 정부의 간섭으로 결국 2006년에 문을 닫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들은, 농촌의 변화를 위해서는 도시 소비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농민학교 운영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가 베이징으로 집단 이주하여, 유기농재배쌀과 같은 생태농업 생산물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소비자 협동조합 실험을 시작하는 동시에, 2008년 작은 당나귀 시민농원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의 ‘빠링호우’(80년대 출생) 대학생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젊은 농민들이 지금은 중국 각지의 농촌으로 들어가, 유기농 농장운영과 마을자치 실험을 하고, 도시에서 학계, NGO,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역할을 하며 신향촌건설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30대의 핵심일꾼들이다.
중국의 귀농청년들
이들이 사명감으로 이 운동에 임하게 된 것은 중국 농촌이 90년대에 겪은 파괴적 변화를 당사자로서 경험한 때문이다. 78년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의 시발점은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북경이나 상해가 아니라, 농가책임경영제(大包干)를 처음 실시한 안휘성 봉양(鳳陽)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국가가 더 이상 개별 농가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대신, 개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해주겠다는 계약에, 18명의 농민이 수결로써 합의한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이 향상된 농업은 당시 농촌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중소규모 마을기업인 ‘향진(鄕鎭)기업’ 육성과 함께, 농촌과 도시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하여 80년대 중국 농촌의 르네상스를 가져온다. 하지만, 88~89년의 인플레이션에 동반한 거래수단의 화폐화,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수출 제조업 중심의 공업화, WTO가입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금융화 흐름이 강화된다. 이에, 농촌은 환경파괴와 더불어, 인력과 자본의 심각한 유출로, 공동체가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국가 현대화의 비용을 농업, 농촌, 농민에게 전가하는 ‘삼농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것이다. 결국 앞서 언급한 젊은이들은, 유년기에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만하고 아름다웠던 농촌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쇠락의 과정을 생생히 지켜 본 마지막 세대였던 것이다.
공동화되어가는 중국 농촌
중국이 농민들의 지지속에 성공한 공산혁명후에도 농민과 농촌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49년 신중국 건국직후 발생한 한국전쟁의 참화속에 적대국인 미국과, 공산권의 라이벌 맹주인 소련에 맞서기 위한 전쟁무기 생산기술과 자본이 긴요했던 마오쩌뚱은 농민 노동력을 시초자본 축적의 도구로 삼았다. 량슈밍이 이때 공식 회의석상에서, 농민을 배신하지 말라며 마오쩌뚱에게 항의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원톄쥔 등은 21세기에, 현대화를 추구하는 발전주의가 농민들의 삶과 농촌을 피폐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2000년 농촌지역 당간부였던 리창핑李昌平이라는 이가 당시 주룽지 총리에게 공개서신을 보내, “농민의 삶은 진정 고통스럽고, 농촌은 심각한 빈곤에 찌들어 있으며, 농업은 매우 위험합니다(农民真苦、农村真穷、农业真危险)라고 표현한 것이 ‘삼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수용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신농촌건설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생태문명 건설이라는 목표를 헌법에 명시했으며, 2018년부터 앞서 언급한 ‘향촌진흥’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 안에는, 생태농업과 6차산업(6차산업은 1차 (농업생산), 2차 (가공), 3차 (서비스 산업)이 결합된 농촌의 융복합 산업을 지칭한다) 육성등을 통한, 농촌의 환경과 경제적 삶의 질 개선정책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인프라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고 절대빈곤을 벗어난 지금 시점부터 농촌과 도시의 문화적 생활수준 격차와 실질적 경제능력 격차를 줄이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를 중시하게 된 것은, 농민혁명정부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니라. 환경오염문제, 먹거리 주권과 안전문제, 도시화의 문제가 체제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7년에 중국의 제1환경 오염원은 도시나 공업이 아니라 농업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항생제와 촉진제, 그리고 첨가물 범벅인 중국의 농축수산물 문제는 더 이상 스캔들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미 60%이상 진행된 도시화를 감당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미 실제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은 2~3억도 안될지 모른다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등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환경파괴를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관행농이 아니면, 소수의 농민이 그 많은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 이전 세기 서구열강처럼 해외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한국같이 농민인구가 5% 미만으로 줄어들거나, 식량 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강대국’은 역사속에 존재한 적이 없다.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원톄쥔교수뿐 아니라 많은 대학과 연구소에 재직하는 상당수의 지식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긴밀하게 조직화된 형태는 아니지만, 그들은 소위 ‘대향촌건설운동’이라는 기치하에, 다양한 학술포럼이나 활동가, 농민들, 소비자들도 참여하는 행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 기반한 정책 연구와 제안, 향촌건설운동의 역사와 이념 정립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중들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톄쥔 교수의 활동과 연구가 중앙과 각급 지역정부와의 일정한 긴장관계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됐듯이, 이들 그룹의 연구 성과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중국 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촌진흥정책의 얼개와 세부 내용을 살펴 보면, 소농/가족농 중심의 생태농업, 도농교류, 시민하향, 전통문화와 생태자원에 기반한 향촌의 6차산업 발전 등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신향촌건설운동의 15년에 걸친 실험 성과나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권위주의 정부의 성격상, 여전히 자본투하와 상명하달 지시를 통한 대중 동원이 정책의 주요한 실행수단인 반면, 신향촌건설 진영의 학자들은, 농민들의 재조직화를 통한 자발성과 주체의식 배양이 최우선 과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 방법상의 이견이 존재한다.
또, 이런 정책 흐름에 발맞춰 시민하향과 동시에 진행되는 자본하향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지점이다. 제한된 정부자원과 중앙, 지방정부의 급격한 채무 증가를 신경써야할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민간자본의 참여가 요구된다. 또, 도시의 부동산 개발에 의한 초과 이윤이 더 이상 녹녹치 않은 상황에서, 민간자본도, 투자처를 물색하며, 향촌진흥정책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편으로 물적 자본뿐 아니라, 문화자본을 갖춘 도시 중산층과 고학력자, 전문가 그룹의 참여가 향촌진흥 성패의 관건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도시 생활의 경쟁적 환경에 지친, 젊은 중국인들이 귀농귀촌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거나, 향촌생활경험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혹은 소비트렌드로 받아들이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중국의 국내농촌관광 매출액이 이미 2018년 연말 기준으로 8천억 위안, 즉 한화 135조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인민망 기사).
이때, 정부와 자본, 다양한 유관활동에 참여하거나 귀농귀촌한 중산층 시민 그리고, 현지 농민들이 협치를 이루고, 공정하게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향촌건설 연구자들은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 다양한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는데, 필자는 매달 한편씩 이들의 연구 성과를 번역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들이, 국내 독자들의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범위 편향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고, 더불어, 양국 연구자와 활동가, 그리고 인민들의 보다 폭넓은 연대 및 교류의 출발점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대산농촌문화] 통권 101호(2019신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고 대산농촌재단의 허락을 득하여 본지에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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