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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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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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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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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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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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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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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산을 위해 일하다 보면 언젠가 산이 내 옆에 있을 것

– 최재홍 변호사 인터뷰

 

 

2016년 이후 햇수로 3년째 환경보건위원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재홍 변호사를 출판소통팀의 심재섭 팀장과 허진선 간사가 만났다. 인터뷰는 서초동 대로변에 위치한 법무법인 ‘자연’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심재섭 변호사 (이하 “심”) :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재홍 변호사 (이하 “최”): 예. 민변 환경보건위 위원장을 2016년도부터 맡고 있고요. 최재홍 변호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심 : 변호사, 내지 환경문제에 관해 일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최 :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산에 가는 거 이런 거 좋아했는데, 학생 신분이라서 많이 자유롭진 않았고, 대학교에 와서 산에 자주 다녔죠. 북한산 등반부터 시작해서 중앙도서관에 있는 ‘월간 산’같은 잡지들을 혼자 보면서 산에 대해서 공부하고 또 올라가곤 했어요. 공부하다 보면,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개발에 의해서 산이 파괴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생기게 되지요. 선배들에게 ‘노동운동으로 인한 사회 개혁과 변화에 한계는 있지 않겠냐, 환경 문제에 대한 운동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가장 유효적절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가, ‘이 회색분자 새끼’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법대이긴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직접 계기는 있어요. 93년도 12월 24일 날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니까, 혼자 치악산을 갔어요. 치악산 비로봉 정산에 가면 그 당시에는 공군 텐트가 하나 쳐져 있고, 인명구조대 대장분이 거기 혼자 계셨는데, 딱 산(山) 사람 이미지였어요. 머리도 길어서 묶고, 수염도 기르셨는데 본인이 담근 술을 주시면서 퉁소도 불러주셨죠. 한창 어린 마음에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멋있었어요. 그날 밤 그 형한테 그때 물어봤던 게..

 

심 : 바로 그냥 형이 되신 건가요.

최 : 예, 그렇게 부르는 거죠. 그 형님한테 “나는 이렇게 산이 좋은데 산이 가깝게 다가가려고 하면 얘들이 항상 도망가는 것 같고 어떻게 하면 산이랑 친해질 수 있냐”라고 물어봤어요. 그때 형님이 하셨던 얘기가 “동생이 산에서 산을 위해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동생이 법대라고 하니 산 밑에서 산을 위해서 일하다 보면 언젠가 산이 동생 옆에 있을 거다”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이왕 법대 왔으니 변호사가 되어서, 지역주민들을 잘 조직화해서 소송도 진행하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환경보존 이슈들을 만들어 나가 보자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가 1학년 말.

 

심 : 그 뒤로 시험 준비를 하신 건가요?

최 : 군대를 가게 되죠. 일병 휴가 나와서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환경법 교과서를 사서 가지고 갔습니다. 혼자 괜히 목차 정리 한번 해봤던 기억도 나요.

97년도에 제대를 했어요. 그리고 그 해 여름 방학에 공부를 하려고 남해 염불암이라는 암자에 들어갑니다. 그때 산 생활을 해 보았고, 98년도에는 본격적으로 시험준비를 위해 1년 휴학을 하고 들어갔어요. 거기에서 한겨레신문을 매일 받아 봤는데, 녹색법률센터를 설립한 변호사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립니다. 미국에서 환경법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국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센터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이었지요. ‘어?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라고 알게 되었어요.

98년 6월에 하산한 후 학교 고시반에 들어갔고, 그 다음 해 1차 시험 보고 나서 녹색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을 합니다. 시험공부하는 중간 중간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처음 들어갔을 때 새만금 미래세대소송을 자료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환경 쪽에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해서 자원봉사를 하며 시험을 준비했는데 당연히 어렵죠. 안 되더라고요. 2000년에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재시에 떨어진 후 2003년에 다시 1차를 합격할 때까지 녹색연합에서 자원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활동방향을 계속 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3시까지만 하고 그만하려고 했었어요. 안 되면 환경단체 들어가서 활동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때 스물아홉인가, 그런데 2003년 3시 결과도 불합격했다는 걸 알고, 일단 전국일주를 하고 나서 4시를 볼지 말지 정하기로 하고. 여행을 갔습니다. 사실 여행 명분이었지요.

14박 15일 해서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 영월 들렀다가 동강 근처에서 트래킹하고 다시 기차 타고 동해시로, 그리고 울산이었나 부산이었나 여튼 울릉도에 들어가서 한 4박 5일 동안 울릉도 일주하고, 가야산 갔다가 해남저수지 쪽에 철새들이 100만 마리 이상 온다는 말을 듣고 그리고, 그다음에 변산, 꽂지 갔다가 서울로 올라왔지요. 그리고 운 좋게 다음 해에 합격이 되었어요.

 

심 : 연수원에 들어간 이후의 환경 관련 활동은 어떠셨나요.

최 : 제가 36기였는데, 연수원 환경법학회가 34기에서 끝이 났어요. 35기가 없었고 36기가 다시 이제 구성이 되려고 하는데, 저는 녹색연합 쪽에 자봉도 했었고, 학회 재건 모임에 참여를 했습니다. 녹색법률센터 쪽이랑 연계해서 그때도 전국에 있는 환경분쟁지역을 1년차 한번 방문했고, 2년차 때는 오사카나 도쿄 변호사회랑 연계해서 일본의 환경분쟁지역 답사와 관련 판례 연수를 기획해서 일본에 다녀왔어요.

 

심 : 이제 드디어 환경법을 파고드는 변호사가 되시는군요.

최 : 사실 처음에는 수료하고 나서 녹색법률센터 상근 변호사로 지원하려고 했었어요. 연수원 때도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좀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수료 직전에 확인해보고 진로가 막막하게 되었던 것이, 그 당시에는 환경운동연합 환경법률센터는 상근 변호사 체제로 구성이 돼 있었는데, 녹색연합 녹색법률센터 같은 경우에는 상근 변호사 체제는 없었고, 상근 변호사를 채용할 계획도 없다, 운영위원 체제로 계속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진로를 급하게 그때 알아본 결과, 신혼집이 목동 쪽이어서요, 남부법원 앞에 개인 변호사분이 고용을 뽑으셨는데 거기에 들어갔었죠.

모교에 이계수 교수님이라고 계신데,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어떤 기회에 “사회과학의 정점이 법학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회 이슈가 있을 때 운동을 통화여 변화의 기미가 보이더라도 종국에는 법률이라는 것을 통해서 제도화 되고 시스템이 정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을 제정하거나 해석하거나 지탱하는 일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드렸었나봐요. 나중에 그 대화가 인상 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수원 가기 전부터 녹색연합 자봉활동을 하고,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녹색법률센터활동과 연수원에 환경법학회 만들고 하는 것들을 보시고, 수료 후에 교수님이 학부 강의를 같이 하자고 하셔서 환경법 강의도 하게 됐습니다. 그게 변호사 1년차 때였어요.

고용으로 달에 70개의 사건을 처리하고, 강의도 하면서 정신없던 와중에, 녹색법률센터를 통해 안성에 신미산 골프장 사건에 대한 지원요청이 들어왔어요. 10여년 동안 천주교에서 반대운동을 했던 사항이었는데, 법률자문역할을 수행하여고, 다행히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경기도지사가 사업취소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골프장 사업이 좌절이 되었지요.

그 뒤에 또 안성에 스테이트월셔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지원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주민들도 모른 상태에서 공사가 시작이 됐고, 알고 보니까 실시계획인가처분이 이미 내려진 상황이었어요. 이론적으로는 행정처분이 있고 나서 90일이 지났으니 무효확인소송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우니까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요. 조리상 신청권을 행사해서 안성시장에게 직권취소를 요청을 하고, 이걸 거부하면 그럼 거부처분취소소송을 하자고 주민들, 단체와 함께 계획을 합니다. 안성시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시장한테 민원서류를 제출하지요. 이러이런 문제가 있으니 스테이트월셔에 대한 실시계획인가를 취소해 달라고요. 당연히 안성시장은 답변도 안 했고, 이론상 답변을 안 했으니까 거부로 간주해서 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수원지법 행정부의 사건 담당 재판장님도 골프장의 수용 문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보통 환경이나 주민에 피해가 있느냐가 쟁점이 되는데, 그러한 내용의 감정은 비용도 결과도 쉽지 않아서 애초부터 환경 피해가 아닌 사업의 필요성과 수용권 행사에 대한 재량일탈남용을 쟁점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민간기업의 영리 목적 사업에 수용권을 발동할 수 있냐 하는 점입니다. 열심히 소송을 진행했지만, 결국 거부처분취소소송이라는 절차상의 한계가 있었지요. 이후 수용재결처분이 내려진 후 수용재결취소소송도 했고, 땅이 수용당한 후 건물이 철거되면서 주민들이 계속 SOS를 치는데, 관련 가처분신청에도 주민들을 대리해서 들어갔지만, 전부 다 기각, 수용재결이 있는 이상 가처분을 막아낼 방법이 없더군요. 더 이상 방법이 없는데, 그날 할머님 한 분이 전화를 했어요. 저놈들이 다 집을 부순다고 어쩌면 좋냐고. 그런데 드릴 말이 없는 거죠. 그때 저도 이제 막 변호사 1년차 갓 넘은 상태였었고.

 

심 : 이 사건이 1년차 때 하신 것들이시라는..

최 : 예. 그 사건이 1년차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이제 가만히 있기가 뭐한 거예요. 사무실에 일은 다 끝내놓고 저녁에 혼자 차타고 마을 앞에까지 한번 가봤어요. 가서 그냥 마을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데, 그런데 약간 자괴감, 변호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주민들한테 뭐가 있을까, 정말 이 방법이 맞을까.

그 집은 노부부가 전원생활을 한다고 지었던 차타고 마을 언저리에 가면 보이는데 보이지 않더군요.

 

심 : 이미 철거가 끝난 겁니까?

최 : 예. 철거 끝난 거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물론 저는 그 사건을 하면서 실시계획인가 거부처분취소소송, 그 다음에 수용재결취소소송, 거기에 따른 헌법소원, 그리고 사업자가 제기한 건물 철거 및 토지인도가처분, 분묘굴이 및 토지인도가처분에 대한 바로 직접 대응, 그에 따른 항고 절차 또는 집행 단계에서 이의, 재항고 이런 걸 한번 싹 다 해봤어요.

그런데 이 사건들이 언론에 이게 나가면서 안산 대부도 쪽의 주민들이 사건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그분들은 실시계획인가가 나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드디어 실시계획인가를 직접 다툴 수 있는 사건이 온 거에요. 그 사건에서도 핵심적으로 주장한 것은, 실시계획인가 처분으로 인해서 국토계획법상에 의하면 사업시행자에게 수용권이 부여가 되는데, 어떻게 사업인정절차가 의제되는 실시계획인가를 하면서 수용과 관련된 부분을 공익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수용권을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지요. 지난 사건과 같은 재판장이셨어요. 그때 저희들이 조사한 바로는 대부도 골프장의 반경 50km 내에 거의 한 40개 정도의 골프장이 있었거든요. 결국 1심을 저희들이 이깁니다. 그날 사무실 앞에서 같이 축하파티 하면서 우리 사건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주민들과 같이 보고 그랬었죠.

그런데 고등법원 갔더니 원고들이 패소하였습니다. 패소이유는 골프장을 할 때 처음에 있는 처분이 도시관리계획처분입니다. 그런데 공익성에 대한 검토는 일개 인가권자인 안산시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관리계획권자인 경기도지사가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경기도지사가 판단한,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을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는 이상 안산시장이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겁니다.

그때 속으로 생각하기를, 도시관리계획 건만 들어와라, 그러면 반드시 깬다는 거였어요. 당시 전국 골프장 반대 피해대책위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는데, 얼마 뒤에 충주에서 도시관리계획 결정만 났던 사안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취소소송을 들어갔어요. 그래서 이것도 반경 한 50km 끊으면 한 40개 정도 골프장이 있어서, 동일한 이슈로 붙었는데 1심 패소, 항소심도 패소했어요. 재판 끝나고 내려오면서 충청북도 소송 수행자가 그런 얘기를, 자기들끼리 그런 얘기를 해요. “아씨, 젊은 사람이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하는지”..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죠.

그때 종중분들이랑 다시 대법원을 갈 것이냐 가지고 회의를 했어요. 해서 “지금까지 믿어줘서 감사하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다시 대법원 가서 꼭 한번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 여러분들도 느끼듯이 회원제 골프장 때문에 수용을 당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헌재 결정도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종중 분들이 “그래. 이미 수용도 됐는데 끝까지 한번 가보자”라고 했고, 대법원에서 그게 파기환송 됩니다. 그래서 청주고등법원 다시 내려가서 소송 수행자를 봤죠. 그때가 참 재밌었던 사안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계속 골프장 관련 소송을 이어왔고, 그러다보니 경향신문 같은 경우에 저승사자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랬었죠. 골프장 건으로 환경 소송쪽에 나름 자리를 잡게 되고, 그렇게 많이 외부에 알려지기도 했고, 녹색법률센터 내에서도 골프장 쪽으로 아예 특화가 돼버렸었기도 했었죠.

 

심 : 이게 몇 년 차 안 된 변호사가 다 커버할 수 있는 사건들이 아니잖아요.

최 : 당시 녹색법률센터에서 행정사건을 많이 안 했었어요. 선배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는데, 그땐 겁 없으니까 달려들었던 거죠. 그래도 선배 변호사님들의 다른 사건 소장이나 헌법소원신청서등이 도움이 되었어요, 막막한 가운데 등대같았죠

 

심 : 책 찾아보시면서 법률에 뭐라도 있으면 해 나가는 식으로..

최 : 그렇죠. 그냥 그렇게 부딪쳤었고, 당시 논점도 운 좋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수용 문제를 이슈화 했던 것이 그게 이제 유효했던 것 같고, 재판부는 그런 부분들을 캐치했고.

 

심 : 지금도 골프장 이슈가 많은가요? 법이 바뀌었는데..

최 : 아니요. 국토계획법만 안 될 뿐이고 다른 법으론 가능한 경유가 많아요. 헌재에서는 회원제 골프장 사건에서 판단한 것이고, 일반 대중제 골프장 같은 경우에는 공익성은 인정되는 것으로 보니까요. 한편, 회원제 골프장 같은 경우에는 어떤 법률에 의한다 하더라도 사실상 수용을 하기는 쉽지는 으니까, 이제 사업자들도 골프장 단일 시설로서는 잘 안 들어오고, 관광단지로 만들어서 오죠. 전체 관광단지로 하되 1단계 사업으로 골프장과 일단은 호텔 정도만 해놓습니다. 그 안에 보면 승마장, 산림욕장 다 하는데, 골프장 되고 나면 나머진 안 만들죠. 계속 분쟁이 진화해 가고 있습니다.

 

심 : 사건의 특성상 지방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계시지요?

최 : 사실 분쟁 지역 사진이야 위성사진이라든지 로드뷰를 통해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주민들과 같이 연대를 하려면 그분들한테 신뢰를 받아야 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현장을 봐야 주민들의 피해가 주관적 피해인지 객관적 피해일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장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 문제 이슈가 되는 현장이라는 곳들이 다 산 좋고 물 좋은 곳들이라 대중교통이 어렵죠. 그래서 제 지금 차가 2008년도에 뽑았던 차인데 이제 거의 한 34만 정도 탔어요. 다행히 한편으로는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재미에 갑니다.

 

심 : 지금 하시는 사건 중에서 공익사건 비율이 어떻게 되세요?

최 : 개인적으로 6 대 4 정도 비율을 맞추려고는 해요. 지금은 공익사건이 30% 그 정도인데, 명목상 부수적으로 제기된 것들도 있어서 실제론 더 적어요. 오색 삭도도 내일 선고입니다만 환경부장관 상대로 국립공원 계획변경처분취소소송이 메인 소송인 것이고, 지금 이건 부수적으로 문화재청장이 현상변경허가에 관한 것인데 실질적으로 심리가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숫자만 가지고 말할 수는 없고요. 여튼 공익사건 비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 : 제 동기인 친구의 궁금증이기도 한데, 자기는 어떻게 환경법을 배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지금 맨날 이혼만 하고 있다는 거죠. 아까 변호사님께선 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변호사 자격 갖추기 전부터 이미 환경 이슈에 가까이 계셨기 때문에 자연스러우셨던 것 같고요. 막연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변호사에게는 환경법이라는 분야에의 접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최 : 전문성이라는 게 참 설명하기 어렵지요. 저는 처음부터 운 좋게 환경법 강의를 학부에서 진행을 했고, 로스쿨이 생기면서는 또 환경법 특강들을 계속 하다 보니 강의안도 만들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환경법 자체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긴 한데요. 요즘엔, 환경법도 다 분야별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법률별로. 혹은 매체별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대기면 대기, 수질이면 수질, 아니면 폐기물이면 폐기물, 토양이면 토양 이렇게 다 나뉘고 있고, 소음, 진동, 악취도 다 이제 개별적인 것들이 있죠. 그래서 본인이 해당 법률을 볼 수도 있습니다만, 강의를 한다거나 토론회를 한다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 다양한 이슈를 아우르긴 쉽지 않아요.

결국에는 해당 분야의 활동, 특히 단체들과 결합한 활동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잘 모르는데 토론회를 나가야 되는 상황이 생기고, 그러면 토론회를 나가려고 하다 보면 보기 싫어도 법을 봐야 되고 논문들을 볼 수밖에 없게 되다 보니까 그렇게 조금씩 전문성이 쌓여지는 것이겠지요. 또 그런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되다 보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자꾸 사람들이 그 이슈가 나오면 저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유사한 분쟁이 사건으로 연락이 오니까 직접 송무를 하게 되고, 이렇게 계속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건 비단 환경 분야만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공통되는 방법이겠지요. 관련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이 전문성과 더불어 영업력을 갖추는 데에 제일 바람직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심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 아니면 환경보건위 홍보라든지.

최 : 그게 있는 것 같아요. 한분이 같이 사업을 하는데 본인 몸이 안 좋아가지고 그 사업에서 빠지겠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같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이 연대를 하는 입장에서는 상호 간에 신뢰랑 배려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몸이 아파서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그걸 굉장히 어렵게 말하는 것도 사실 하다 보면 그런 말도 못하고 어느 순간 열외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러다 보니까 다시 들어오기도 애매한 경우도 있고 한데, 제가 그때 그분한테 그 얘기를 드렸어요. 같이 하는 것은 상호 신뢰와 배려이기 때문에 몸 추스르고, 다만 이 채팅방에서 나가지는 말고 간혹 이제 어떻게 하는지만 보고 있다가 다시 좋아지면 언제든 돌아오시라고.

민변에서도 그런 게 제법 있을 것 같아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업무량은 더 많아지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 놔버리고 싶은 때도 있고, 뭔가 하고 싶었지만 막상 보니까 잘 몰라서 쭈뼛쭈뼛 회의만 참가했는데 어느 순간 내 역할이 없는 것 같아서 조용히 빠지는 경우도 있고.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같은 울타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격식이라든지 미안함, 그런 것 없이 동지적 관점에서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기다리고 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The post [회원인터뷰] 산을 위해 일하다 보면 언젠가 산이 내 옆에 있을 것 – 최재홍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월, 2018/10/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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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환경보건위원회는 최재홍 위원장과 김정욱, 김지은, 김혜원, 진재용, 이정일, 노승진, 이성규, 조영관, 안현지, 황정화, 지현영, 김경은, 손준호, 박애란, 이영기, 전종원 변호사 등 4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월성1호기 수명연장 취소소송, 4대강 수문개방소송 등 환경보건과 관련한 법적 쟁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70207_월성1호기수명연장무효

 

환경보건위원회는 당초 환경위원회로 출발하였으나, 보건에 관한 문제가 환경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환경보건위의 사업분야를 확대하기 위하여 명칭을 환경보건위로 개편한 이후 보건문제와 관련하여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메르스 피해 사건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환경보건문제의 특성상 환경보건위원회는 환경단체들과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으며, 4대강 사업, 탈핵, 유해물질 배출시설의 설치와 피해, 대기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환경단체들과 함께 현장에서 활동하고, 관련 법률안의 개정작업도 병행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70921_가습기살균제공정위

 

환경보건위원회는 매월 세 번째 주 목요일 저녁에 정기월례회를 진항하고 있으며, 정기 위원회 월례회 이외에 지리산 오색케이블카 현장답사, 4대강 현장방문 등 환경과 관련한 곳곳에 방문하거나 외부단체 연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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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도 환경보건위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위원회는 소송분야에서 4대강 사업취소소송, 월성1호기 수명연장취소소송, 갑상선 암 피해소송, 석면피해소송, 가습기살균제 피해소송, 메르스 피해소송, 송전탑 피해소송, 폐기물매립장 관련 소송, 석탄발전소 건설 관련 소송, 골프장 허가 취소 및 피해소송 등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구제와 예방을 위한 민형사, 행정소송등을 다수 진행하였습니다. 새해에는 그동안 위원회에서 진행했던 소송에 대한 연구작업과 함께 주요한 환경 판례에 대해 공부모임도 꾸려갈 예정입니다.

정책입법분야에서는 가습기살균제구제법, 환경권의 헌법개정안 연구, 환경영향평가법과 규제프리존법등 입법감시활동, 수용권의 남용과 관련하여 사업인정의 현실화 관련 정책입법연구등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최재홍2

 

환경보건 분야는 그 특성상 피해의 장기누적성, 광범성, 피해원인의 불명확성을 가지고 있기에 피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책임의 입증책임 문제로 인해 피해배상이 쉽지 않고, 가해물질의 배출을 차단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를 위해 환경보건위원회는 사안의 특성에 따라 대기, 토양, 수질 등 관련 전문가분들과의 협력을 통해 피해원인을 규명하고, 가해자를 특정하는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 특별위원회에도 참여하여 법률가로서 환경문제의 사전예방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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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리고 환경보건 문제를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시다면 다가오는 새해 바로 환경보건위에서 활동을 시작하세요. 환경보건위원회에 가입신청을 하고 그동안 모임에 함께 나오지 못해 어색한 상황이라면 다가오는 새해 첫 모임 (1월 18일 목요일 늦은7시 민변 회의실) 에서 새출발을 함께 해요!

2018년, 당신도 녹색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문의 : 위원장 최재홍 010-‭2698-7073‬ , 간사 조영관 010-8848-7828)

목, 2017/12/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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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국제통상위 활동소식

김솔아

 

지난 6월 7일 대한민국이 이란기업 엔텍합에 73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중재 패소 판결을 받은 소식을 모두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론스타, 하노칼, 엔텍합, 엘리엇 등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에 잇달아 국제중재를 제기하거나 또는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일반대중에게도 제법 알려진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에서 한국이 최초의 패소 판정을 받은 것이지요.

저희 국제통상위는 그간 위 ISDS 사건들에 대하여 중재의향서 등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기고 등을 통해 ISDS 사건의 실상과 제도적 문제점을 알리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통상위의 중요 관심 분야인 ISDS가 신입회원인 저처럼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ISDS를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ISDS?

ISDS란 외국인투자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직접 국제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원래 외국인투자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다투려면 대한민국 법원 등 관할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ISDS는 외국인투자자가 ‘법원이 아니라’ 민간 중재인(주로 변호사나 교수가 많이 합니다) 3명 또는 1명에게 국제중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언론에서는 ISDS가 국제 소송쯤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소송이 아니라는 점이 ISDS의 가장 큰 특징인 것이죠.

ISDS는 대한민국이 외국과 체결한 양자간 투자협정(BIT)나 자유무역협정(FTA)에 삽입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이 투자협정상 또는 자유무역협정상 투자자 보호 조항을 어겼다고 투자자가 판단하는 경우 ICSID(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나 UNCITRAL(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 위원회)과 같은 중재기관을 통해 ISDS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ICSID나 UNCITRAL는 국제 법원이 아니라 ISDS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규칙을 제공하고 관련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이 ISDS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요?

ISDS의 문제점

ISDS의 문제점 중 우리 법률가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국가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위 엔텍합 사건의 경우를 보면, 한국이 ISDS에서 패소한 원인은 캠코가 2010년 엔텍합에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분을 팔기로 하고 받은 계약금 578억원을 계약 해제 후에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이미 관련 소송에서 캠코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실이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엔텍합이 ISDS가 아니라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면 한국 법원은 캠코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는 전제 하에 계약금 몰취 조항이 부당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엔텍합에 패소 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엔텍합은 한국 법원을 피해 ISDS를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백억대의 배상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ISDS는 법원 판결들 간의 조화를 통한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사법주권 침해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ISDS는 정책주권의 침해 문제, 중재 절차의 불투명성, 소송과 ISDS의 중복 제기, ISDS 포럼 쇼핑, 광범위한 보호 규정에 따른 지나친 외국인투자자 보호,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 국가 재정 부담의 문제 등 광범위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호주는 ISDS를 거부하고 있고, EU에서는 ISDS의 구조적 개혁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한국도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ISDS 조항을 개정한다는 기본원칙을 세운 배경에는 바로 이와 같은 ISDS의 광범위한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ISDS 사건들

ISDS가 한국에서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한미 FTA 협상 때인데요. 당시 우리 민변에서도 ISDS 문제의 공론화를 주도하면서 ISDS가 그나마 한국에 조금이나마 유리한 내용이 될 수 있도록 협정문 문구를 수정하는데 크게 기여했었죠.

그러나 우리가 ISDS의 가공할 만한 위험을 몸소 느끼게 된 계기는 모두 잘 아시는 론스타 사건입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2007년 HSBC와의 사이에서 2003년 매입한 외환은행 지분을 약 4조5,000억 원의 차익을 남겨 팔기로 계약했지만, 한국정부가 이 계약에 대한 승인을 미루는 사이에 세계금융위기가 왔고 결국 HSBC와의 계약이 무산되어, 2012년에서야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을 넘기게 되었는데요. 론스타는 정부가 이와 같이 계약 승인을 지연한 것 때문에 차익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2012년 한-벨기에 BIT에 기하여 한국에 5조5,000억원대의 ISDS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은 2016년 변론이 종결되어 판정만을 남겨둔 상태인데요, 우리 국제통상위에서는 이 판정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답니다.

또 최근에 불거진 엘리엇 사건은, 역시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이 한미 FTA에 기하여 한국을 상대로 ISDS를 제기하겠다고 중재의향서를 보내온 상태입니다. 이 사건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한국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여 주주인 엘리엇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가 쟁점입니다. 얼마 전 엘리엇과 한국 정부가 화상회의를 통해 ISDS 제기 전에 필수로 밟아야 할 협의절차를 밟았다고 하는데요, 협의가 잘 진행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에서는……

이처럼 ISDS 사건은 사법주권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막대한 국가재정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에 국제통상위는 한편으로는 정부에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전 국민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ISDS 제도를 개혁하는 데 있어 법률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또한 머지않아 론스타 ISDS 판정문이 나오고, 엘리엇도 곧 ISDS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우리 국제통상위는 각 개별사건에 대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그 내용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할 일이 많으므로 관심 있는 기존회원뿐만 아니라 신입회원들도 저희와 함께 참여하면 좋을 것 같네요! 관련하여 궁금한 내용이 있거나 함께 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 언제든지 우리 국제통상위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금, 2018/06/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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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고픈 변호사, 최정규 변호사의 이야기

신안염전노예사건, 고양동 풍등화재사건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정규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출판소통팀은 안산 원곡법률사무소를 방문하였다.

서예가 이완 선생께서 손수 써주신 ‘안산 법률사무소’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생의 다른 작품이 걸려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개방형 사무실과 독특한 회의실이 눈에 띈다. 최정규 변호사가 특유의 밝은 웃음으로 출판소통팀을 맞이해주었다.

 

 

심재섭 출판소통팀장 (심) : 인터뷰에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원곡 법률사무소엔 처음 와봤는데, 회의실이 특이하네요?

최정규 변호사 (최) : 회의실이라고 해서 만들어놨는데 회의할 일도 별로 없고 그냥 편하게 앉아서 영화도 보고 하자고 해서 꾸며놓은 거죠.

기타도… 기타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거죠… 연주는.. (웃음) 집에 애들 책이 생기다보니까,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서 제 책이 창고에 널브러져 있더라고요. 안 되겠다, 책을 사무실로 가져와야 겠다, 해서 모인 책들이죠. 법학책은 전혀 없죠. (웃음)

 

 

심 : 사무실은 세 분이서 같이 여신건가요?

처음에는 서치원 변호사님이랑 같이 열었어요. 안산역 건너편에 이주민들이 밀집한 원곡동에서요. 처음 1년은 둘이서 했고, 서치원 변호사님 연수원 동기분인 서창효 변호사님이 사무실에 놀러왔을 때 인연이 되어서 2년차엔 세 명이서 같이 운영을 하게 되었죠. 지금은 만으로 7년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셋이 동업하다가 작년에 고용변호사를 고용하자라고 이야기가 되어서 지금은 유승희 변호사님과 조영신 변호사님이 함께 일하게 되었어요.

 

심 : 안산에 연고가 있으셨던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법무관을 마치고 2006년도에 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되었는데 첫 발령지가 안산이었어요. 그때 마침 결혼도 하고, 집도 안산으로 구하면서 안산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주민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종교생활도, 이주민을 서포트하는 교회를 찾아보다가 원곡동에 있는 한 교회를 찾아갔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곳에서 한글도 가르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런 인연들이 있어서 안산은 제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어요. 그리고 3년 뒤에 서울중앙지부로 발령을 받았죠.

 

그러면서 나름대로 제가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계속 공단 변호사로 있을 것이냐, 나갈 것이냐 하는 거지요. 이주민 근로자들에게 밀접하게 법률지원을 해주면서 현장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법률구조공단에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법교육문화센터를 만들어서 다문화가정을 초청하여 강의를 했어요. 제가 사내 강사로 위촉되어 그분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데, 제가 너무 현장의 이야기를 모르는 거예요. 현장의 문제는 이것인데, 공단에서 사건을 진행하며 알고 있는 정보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던거죠. ‘내가 공단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과 그분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 이 간격을 메울 수 있을까?’ 변호사로서 그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가정도 있는 입장이라 공단을 그만두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죠. 2~3년 고민을 하다가 2012년 초에 공단을 그만두고 나왔어요.

제가 파산센터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서치원 변호사님이 마침 연수원을 수료하고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당시에 이주민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원곡동에서 서치원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심 : 그럼 이주민 관련 업무는 공단에 들어가셨을 때부터 접하셨던 건가요?

최 : 그렇죠. 각종 임금사건, 산재사건들을 했어요. 법률구조공단에서 하는 일들은 결코 작은 일들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아주 부분적인 일들이었어요. 이주민 근로자들이 체불임금확인서 한 장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근로시간을 인정받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경찰서, 출입국 등에 가는 일도 밀착해서 지원하고 싶었어요. 그런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 나왔는데, 실제로 기회는 무궁무진했어요. 여력이 안 돼서 다 지원하지 못하는 것뿐이더라고요.

 

심 : 그럼 연수원 시절이나 법무관 시절에는 지금 하시는 활동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은 없으셨던 건가요?

최 : 그렇죠.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있었는데 이주민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어요. 대학교 때 수화동아리를 했고 연수원에 다닐 때 시민단체에서 하는 ‘장애우대학’이라는 곳에서 야간 강의를 한 학기 동안 들었어요. 그 시민단체가 지금은 제가 소장으로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였어요. 장애인에 대한 관심에 비해서 이주민에 대한 관심은 덜했죠. 만날 접점이 없으니…….

 

심 : 원곡 사무실 간판 옆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간판이 함께 있던데요?

최 : 네, 함께 걸려있죠. 처음 사무실 시작할 때는 장애인에 관한 생각은 못했어요. 2012년 당시에 제가 아는 후배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함께걸음’이라는 잡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후배에게 예전에 장애우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법률위원단에 들어와 달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법률 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도에 ‘신안군 염전노예사건’이 터진 거예요. 목포까지 내려가서 법류지원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별로 없던 상황이라 저희에게까지 법률지원요청이 들어왔어요. 사무실을 개업한지 2~3년차 되던 해라 별로 안 바빴어요. (웃음)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할지 몰랐죠. 가해자들과 합의를 하려고 하는데, 피해자를 위해 조언해 줄 변호사가 없다는 거예요. 2014년에 시작했는데 그 법률지원 활동이 아직도 안 끝났어요.

 

심 : 아, 처음에는 합의로 끝내려고 하셨던 건가요?

최 : 네. 그런데 그렇게 끝낼 수가 없었어요. 그때 느꼈던 게 뭐냐면 법률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착수금, 성공보수도 없이 열심히 해서 결국 8천만 원을 합의금으로 받았는데, 1년 후에 피해자께서 노숙자로 다시 나타나신 거예요. 그렇게 받은 돈을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서 잃으신 거예요. 그때 법률지원이 끝이 아니란 것을 느꼈죠. 마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경기지소의 소장 자리가 공석이었어요. 연구소에서 이쪽에 학대피해자들을 위한 센터를 3년 동안 센터를 운영하려고 하는데, 지역 연구소가 없어질 상황이니 소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저희 사무실 절반 쓰면 되죠’ 라고 하면서 또 아무 생각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웃음) 지금은 3년이 지났고 다른 사업을 또 맡게 되면서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가 2년 더 운영되게 되었죠.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살아 있는 지원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염전노예피해자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돕기 위해서 활동가분들이랑 임대차계약도 같이 하러다니고, 가구도 같이 사러 다니고 했어요. 그 전엔 차라리 염전에 있었던 시절이 그분들에겐 더 행복하진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어요. 실제로 염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염주와 피해자들 사이에 양가감정이 있었던 거죠. 가족들에게 버린 받은 분들을 염주들이 일을 할 수 있게끔 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다해준다는 거예요. 염전 밖의 삶이 염전에서의 삶보다 더 나아야 할 텐데, 우리 사회가 염전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런 면에서 그분들에게 결국 돈은 의미가 없더라고요. 정말 그분들을 밀착지원해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드려야 했어요, 그러한 영역으로 저희의 활동영역이 확대될 수 있었어요. 법률지원에 멈추지 말고 시민단체와 좀 더 협업을 해보자는 것이 지금 저희의 법률지원 모토가 되었어요.

 

심 : 이주노조 등 이주단체 지원 활동의 경우에도 우연히 시작하신 건가요?

최 : 네, 그것도 우연히 그렇게 되었어요. 이주노조 일을 주로 하시는 마문 감독님이 문화 활동도 같이 하고 계세요. 그 감독님을 예전부터 친분을 갖고 있었는데, 나중에 감독님께서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 되셨더라고요. 작년에 ‘투투버스’ 관련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공식적으로 그때 처음 지원했어요. 작년 5월, 제주 바다 배 위에서 떠밀린 이주선원들이 있었어요. 그 피해자들을 대리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죠.

장애인 분야 지원만 하다 보니 이주민 분야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던 시기였어요. 마침 ‘이주인권사례연구모임’이 생기면서 이주분야의 일들을 더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에서 열었던 강연의 초청 강연자분들과 명함을 주고받고 며칠 후에 그분들이 일하시는 단체에 찾아가서 법류지원을 해드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주민분야와 관련하여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기회가 있으면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게 제주도라도. (웃음) 앞서 말한 제주 이주선원들 피해조사를 받으려고 제주도에 네 번을 갔어요. 새벽 6시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면 공항에서 피해자분들을 렌트카로 모시고 서귀포에 있는 경찰서까지 가요. 통역이 필요하다 보니까 조사가 저녁 7시쯤에나 끝나요. 당일에 올라가야겠다는 일념 하에 조사가 끝나면 밤 9시 반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죠. 그런 미친 짓을 했죠. (웃음)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과하게 활동했죠.

 

 

심 : 어떤 계기가 있으신 건가요? 보통은 연차가 있으신 분들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신데…

최 : 제가 그 일에 맞는 것 같아요.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일하는 게 재미있고요. 이주민 분야나 장애인 분야의 경우에는 활동가분들과 주로 활동을 하는데, 그분들이랑 함께 활동하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활동가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상식적인 이야기예요. 법률가들이 봤을 땐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어요. 법률이 상식에 못 따라가면 해석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게 법률가이지, 법이 이렇고 판례가 이래서 안 된다고만 하는 게 우리의 도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법률적인 판단이 맞느냐’, ‘네가 하는 이야기는 활동가들 이야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은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배우는 법들은 이미 기득권들의 논리가 반영된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판례를 먼저 찾아 볼 일이 아니라 이게 상식적인지 아닌지부터 먼저 판단하고 소장을 내고, 만약 상대편이 판례가 있다고 하면 그 판례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걸 밝히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많이 활동하려고 하려고 해요. 그게 제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은 참신한 생각을 많이 해요. 신안염전노예 사건 당시에 저희는 임금을 정해둔 것이 없으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청구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활동가들이 노동행위로 착취를 했으면 최저임금 이상을 줘야하고, 농촌에서는 사람구하기도 힘들고 농촌 노임이 도시의 노임보다 높은데 왜 최저임금을 줘야 하느냐는 거예요. 다른 사례를 아무리 찾아봐도 다 최저임금이 기준인거예요. 검사 공소장도 최저임금이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활동가들 이야기가 맞거든요. 노동행위로 착취를 했으면 그것으로 이득을 본 것이고, 노동의 가치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보기 위해서 피해자들을 이용한 건데, 적어도 평균임금은 줘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건 저희가 생각한 게 아니고 활동가분들이 생각한 거였죠.

처음엔 소멸시효 관련해서도 20년 동안 착취를 당했는데 소멸시효가 10년이에요. 그런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신의칙위반을 주장했는데 다 인정이 안 됐죠. 대법원 판례에서 신의칙 위반으로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제한되는 경우는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그래서 헌법소원을 했죠. 과거사 사건에 관한 국가배상 소멸시효가 헌법불합치가 나와서 이 논리를 적용하자고 했어요. 20년을 착취하고 임금은 10년분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당연한 상식의 논리로 접근했던 거였죠.

우리가 배웠던 알고 있던 법률 지식과 판례에 의심을 갖고 접근하다보니 재밌었어요. 그것이 제가 활동하는 에너지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랑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뭐라도 하나씩 더 건지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현장의 최전선에 있고, 피해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상식적이잖아요. 또 그분들의 이야기가 법으로 되어야 하고요.

전 활동가분들이 편하게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변호사란 어떤 자격 중 하나에 불과한데, 활동가가 훨씬 뛰어난 식견을 가질 수 있고 전 법률 안에서의 식견만 가질 수 있으니, 부단하게 그분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따라가기가 너무 버거워요. (웃음) 우리나라 판례는 제한되어 있어서 연수원, 로스쿨 나오고 나면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활동가분들의 생각은 굉장히 진보적이라 따라잡을 수가 없을 정도예요. 그런 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심 : 그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할 시간이 되시나요?

최 : 저희가 시간이 항상 부족한데……. 일반사건도 하거든요. 직원은 있지만 사무장은 없고요.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직원도 없이 (최정규, 서치원, 서창효 변호사) 셋이서 다 했어요. 최저비용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2018년 전까지는 변호사 셋이서 전화 받는 것부터 다 했죠. 그렇게 만 6년이 넘어가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웃음) 작년에 사무보조 하시는 실무관님과 고용변호사 두 분을 채용했죠. 전자소송이 생겨서 사무보조해 줄 사람이 많이 필요 없기도 했고, 구조공단에 있을 때도 변호사 두 명당 보조자 한 명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업무를 처리하는 게 익숙했어요. 나머지 두 분은 변호사 시작하실 때부터 직접 다하셨죠. 그 분들은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하신 거고요. (웃음) 처음부터 직접 다 하면서 바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심 : 그럼 저녁식사는 집에서 못 하시는 건가요?

최 : 아뇨, 전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 반대예요. 전 밤 9시에 자서 새벽 3~4시에 일어나요. 아이들이 많이 어려서 같이 자거든요. 오늘도 이 인터뷰 끝나면 바로 집에 갈 거예요. 집에 가서 밥 먹고 아이들이랑 놀다가 9시쯤 자죠. 물론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제 라이프스타일이에요.

심 : 그럼 사무실에 오는 시간은 언제이세요?

최 : 오늘처럼 일정이 있는 게 아니면 사무실엔 안 와요. 괜히 전기세만 더 나온다고. (웃음) 컴퓨터도 노트북을 써요. 오늘 같은 경우는 아침 9시에 미팅이 있어서 새벽 5시쯤 여의도 24시간 카페에 가서 일을 하다가 미팅에 갔어요. 의뢰인 분들이 본인이 있는 곳에 변호사가 와주기를 많이 원하시기도 해요. 특히 저는 장애인분들을 주로 상대하다보니 안산까지 오라고 하기 힘들죠. 저희는 재판도 안산에서 많이 없고 거의 전국이기도 하고요, 전국이 저희 사무실이에요. 또 요즘은 메신저도 있으니까 한국에 있을 필요도 없죠. 만나면 괜히 얼굴만 붉히지.(웃음) 그리고 오히려 사무실이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사무실에 변호사방도 없어요. 처음부터 변호사 세 명이서 좀 더 소통하자는 의미에서 방을 안 만들었어요. 장단점이 있죠.

▲ 원곡 법률사무소 사무실. 회의실은 있지만 변호사 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함께 일하고 있다.

 

심 : 최근 민변 가입하신 신입회원 분들은 막연하게나마 자신이 변호사로서 원하는 바를 가지고 오시는 경우가 많고 실현할 방법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점들에 관해서 조언해주실 만한 것이 있을까요?

최 : 만약 경제적 안정을 생각한다면 고용변호사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공익소송을 하면서 개업변호사가 안정됐다, 이러면 이상한 거죠. (웃음) 안정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굶어죽기야 하겠어요? 의뢰인이 돈이 없다고 한다면 법원소송구조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저희(세 변호사)의 처음 생각은 3~4명 정도의 의뢰인을 만난다면 사무실 운영을 최저로는 할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우리는 소매잖아요, 도매가 아니라. 기업을 대리하면 도매를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지금 보험사 상대로 소송을 많이 해요. 보험 회사가 아닌 보험 소비자 대리를 하려니까 힘든 거죠. 소매를 하면서 안정을 찾기는 힘들어요. 의료소송도 의료법인이 아닌 소비자를 대리해요. 의료법인을 대리하던 곳이 환자를 진정으로 대리하긴 힘들겠죠. 보험회사를 대리하던 변호사가 보험 소비자를 대리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이게 왜 불공정하냐면 의료법인이나 보험회사는 저가의 비용으로 그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요. 그런데 소비자는 돈을 더 주면서 전문적인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힘들어요. 소수자를 대리하려면 소매로 사건을 가져와야 해서 사건 찾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이게 광고를 한다고 해서 유명해질 수도 없는 거에요. 소매로 사건을 가져오면서 안정을 찾기는 힘이들죠. 그래도 안정적이니까 고용변호사 쓰는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저희는 매달 적자가 나지 않을까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해요.

그래서 처음 목표한 것들을 실현하는 데에 경제적 안정의 고민이 문제가 된다면, 원래 그 둘이 같이 가기 어렵다고 처음부터 생각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결국 선택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공익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약자’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있었는데, 개업변호사를 하면서 그런 고정관념을 깨게 된 것 같아요. 매우 다양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심 : 출판소통팀에서 하는 새해 첫 인터뷰인데요, 혹시 변호사님의 새해 소망이 있다면요?

최 : 그러게요. 뭐가 있을까요? 새해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을 정한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 이제까지 제가 너무 ‘일’을 중심으로 지냈어요. 일에 있어서 제가 너무 일 중심으로 한 것 같아서, 관계중심으로 활동하지 못했죠. 최근에 친한 활동가 분이 둘째를 낳으셨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둘째를 가지셨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좀 더 인간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제한되다보니 쉽지는 않아요. 올해에는 좀 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중에 남는 건, 사람 밖에 없잖아요.


의미있는 길을 걷고자 하는 동지들과 함께 읽고 싶다며, 최정규 변호사가 평소 힘이 들 때 가끔 꺼내어 본다고 말했던 시를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나를 위로하며

                      –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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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2/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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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문제연구위원회 활동 소식

– 송봉준 변호사

 

1. 신입회원 환영회 및 8월 월례회

미군문제연구위원회는 8월 16일 신입회원 환영회 및 8월 월례회를 진행하였습니다. 해방촌의 한 루프탑에서 개최된 신입회원 환영회는 기록적인 폭염의 끝자락에서 회원들에게 시원한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답답한 회의실을 벗어나 탁 트인 곳에서 오랜만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신입회원들을 환영하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고, 맑은 하늘에 떠오른 작은 달과 서울의 야경이 어우러진 이날은 회원들 모두 더위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 문정인 교수 강연 :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9월 7일에는 국제정치전문가이자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를 초정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라는 주제로 미군위 두 번째 강연이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미군위는 지난 7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조성렬 박사를 초정하여 <종전과 한미관계>라는 주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 이후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 강연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후 기대가 높아졌던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전선언과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팽팽한 힘겨루기 속에 교착상태에 빠져들게 되었고, 정부는 9월 5일 특사단을 북한에 파견하여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세에서 이번 강연은 참가자들의 활발한 질의와 이에 대한 문정인 교수의 응답으로 진행되어, 2018년 급변하고 있는 현 시기를 바라보는 안목을 한층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 긴급토론회 : 유엔군 사령부, 무엇이 문제인가

8월 30일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을 준비하기 위한 방북을 유엔사가 승인을 하지 않아 남북 철도 점검 및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군위에서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를 기회로 미군위에서는 <유엔군 사령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9월 13일 긴급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진행되고, 한반도가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가는 길에서 유엔군 사령부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유엔군 사령부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4. SOFA 강독모임,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의견 준비

미군위에서는 SOFA 강독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인 주한미군지위협정과 합의의사록, 양해사항 등 3개의 문서를 중심으로 위원들이 나누어 발제하고, 그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 진행되고 있는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체결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Special Measures Agreement)은 주한미군지위협정 제5조에 대한 특별협정으로 주한미군의 주둔비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며, 앞으로 5년 동안의 방위비분담금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으로 미군위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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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9/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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