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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2014년~2017년 국가보안법 보고서 발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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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2014년~2017년 국가보안법 보고서 발간 안내

익명 (미확인) | 수, 2018/03/28- 16:03


국가보안법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에서 ‘2013년 국가보안법 보고서’를 발간한 이래 그 다음 발간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어 오다가 이번에 4개년 치를 한꺼번에 담은 ‘2014년~2017년 국가보안법보고서’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 보고서’를 발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주요 국가보안법 사건의 수사 및 재판의 과정과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국가보안법이 실제로 어떻게 해석·적용되어지고 있는지를 밝혀 위 법의 위헌 여부와 존폐에 관한 논의에 사실적·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발간에서는 위와 같은 첫 번째 목적에 보다 더 충실하고자 각 사건의 서두에 변호인뿐만 아니라 검사와 판사의 각 실명도 게재하였고, 내용 중 수사관 등 공무원이나 이에 준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그의 실명도 그대로 싣고자 하였습니다. 두 번째 목적을 위하여는 사건 당사자의 개인적인 내용을 최대한 덜어 내면서도 사실관계와 법원의 판시 내용 등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충실하고 풍부하게 싣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 있는 회사명 등 고유명사는 그대로 실었습니다.

    집필된 사건 원고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은 본인들의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보고서에 실린 사건의 당사자 분들 중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분들께 일일이 부탁을 드려서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느꼈던 소회, 현재의 근황 등을 담은 글을 작성 받아 당해 사건의 바로 뒤에 이어서 실었습니다. 사실 당사자 본인으로서는 뒤돌아보기에도 너무나 힘든 시기이었을 터입니다만, 실제로 부탁을 드렸을 때에는 어느 한 분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글을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총론에서 실은 “박근혜 정부와 국가보안법”에서는 소위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사건과 함께 취임하였다가 촛불 시민혁명으로 물러 난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사건이 발생하였던 양상과 그 실태 등을 조망해 보고, 대표적인 불법 수사의 종합세트라 할 수 있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서 국가정보원이 어떻게 사실을 왜곡·조작하고 증거를 만들어 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한편, 이 보고서가 대상으로 하는 2014년부터 2017년 동안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과 관련하여서는 각하 결정 외에 2건의 합헌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 2건의 합헌 결정, 즉 2015. 4. 30. 선고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조항(제2조 제1항), 이적행위 조항(제7조 제1항), 이적단체 가입 조항(제7조 제3항) 및 이적표현물 조항(제7조 제5항)의 위헌소원 심판청구에대한 합헌 결정[2013헌가26 외 10개 사건 병합]과 2014. 9. 25. 선고한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조항(제8조 제1항) 및 목적수행에 대한 편의제공조항(제9조 제2항 중 제4조 부분)의 위헌소원 심판청구에 대한 합헌 결정[2011헌바358]을 대상으로 한 평석을 실었습니다.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사건”은 이인모 노인이 북송되기 전까지 간병인을 자처하여 이 노인을 보살폈고, 이 노인이 북송된 이후 생전에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받게 되자 북한에 들어가 이 노인을 만나고 돌아 왔던 고 조영삼 선생의 사건으로서, 김일성·김정일의 각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현 금수산태양궁전)에 참배한 행위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일견 단순한 내용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제1심 유죄, 항소심 무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파기 후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던, 실제로는 단순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고 조영삼 선생은 미국이 휴전선 이남에 고고도미사일방어(TAHAAD, 사드) 체계를 배치하겠다 하여 많은 국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서던 때에 사드배치 반대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 분신하시어 2017. 9. 20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 땅에 남은 자들에게 남겼던 마지막 글을 사건에 관한 글에 이어서 실었습니다.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조작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 이어 무죄판결이 선고되면서 국가정보원의 탈북자 간첩조작 행위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제1심에서 간첩 등 국가보안법위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국가정보원이 실추된 위신을 만회하고자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이라며 대외에 공개함으로써 민변의 변호사들이 알게 되어 변호 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민변의 통일위원회 뿐만 아니라 여성인권위원회, 국제연대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등도 함께 변호인단에 참여하여 헌신하였고, 지금은 재심사건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도 당시 함께 변호하면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주인공인 홍강철씨가 보내 준 글을 뒤에 이어서 실었습니다. 워낙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라 아픈 시기를 회상하며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습니다. 전체적이고 더 자세한 내용은 곧 발간될 예정인 그의 책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겠습니다.

    “<세기와 더불어> 감상문과 학문의 자유”는 울산에 소재한 대학의 이◯◯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다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국문학과 교수로서 남북을 망라한 민족문학 수업시간에 <세기와 더불어> 뿐만 아니라 <벙어리새>, <태백산맥>,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제시하며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과제를 냈었는데, 세간에는 마치 피고인이 <세기와 더불어>만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던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서울에 있는 경찰 보안수사대의 출석요구에 따라 새벽에 기차를 타고 올라 와 조사받아야 했던 일, 보안수사대에서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았으나 그 다음날 오전에 다시 나오라고 하기에 근처에서 잠시 눈 붙일 곳을 찾다가 모친의 부음을 듣게 된 일, 집행유예 선고로 교수직 뿐 아니라 연금과 자식의 등록금 수혜권까지도 잃게 된 일 등 가슴 아픈 사연들이 사건의 글에 이어진 교수 본인의 수기에 절절히 담겨 있습니다.

    “코리아랜드 대북사업 사건”은 서울지검 공안부가 기소할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혐의사실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압수한 증거들까지도 대대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언론들이 앞 다투어 보도하였던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작은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요직을 지내고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것을 배경으로 삼아 일찍이 1990년 초부터 대북사업을 해 왔습니다. 진보적 통일운동 등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망해가는 대북사업의 끄트머리에서 어떻게든 한 건 제대로 성공시켜 반전의 기회를 갖고자 했던 사업가이었을 뿐입니다. 항소심에서 공소사실의 거의 절반이 무죄로 판단되었지만, 유죄로 인정된 부분도 쉽사리 납득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여러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리호남’이라는 이름이 이 사건에서도피고인의 대북사업 파트너로 나옵니다.

    “새시대 교육운동 사건”은 공안기관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만든 「변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에 대해 이적단체 구성죄를 적용하고, 위 단체 소속 교사들에 대한 이적동조죄와 이적표현물 소지죄를 더하면서 전교조에게 소위 ‘종북’의 굴레를 씌워 탄압하려는 의도라 하여 전교조 교사들의 규탄시위를 불러일으킨 사건입니다. 제1심 법원은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동조에 대해 각 무죄를 선고하였고, 일부 이적표현물 소지에 대하여만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제1심의 무죄 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죄로 인정되었던 이적표현물의 일부에 대하여도 추가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통일 토크콘서트 사건”은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자신들의 방북 경험담을 이야기하였다가 TV조선과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종북콘서트’로 매도당하고 사제폭탄 테러까지 당하는 등으로 조작된 여론과 종북몰이의 한 복판에 섰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재미교포인 신은미씨는 강제 출국을 당하고, 황선씨는 토크콘서트 개최에 의한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선전 외에 그동안 수사기관이 묵혀 두고 있었던 이적표현물 제작·반포·소지, 이적동조 혐의까지 더하여져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황선씨에 대해 2010년 1월에 있었던 실천연대에서의 활동 1건만을 이적동조 유죄로 판단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북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비난이 없으면 ‘종북’으로 매도당하는 현실과 또 그러한 ‘종북몰이’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건”은 1994년에 창립되어 한미연합 전쟁연습 반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 등을 기치로 그동안 한미간의 불평등한 SOFA 개정, 매향리 미군 폭격장 폐쇄, 방위비분담금과 미군기지 이전비용 전용 등의 문제 등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던 평통사의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의 굴레에 씌워져 법정에 서야 했던 8건의 사건에 대한 보고입니다. 7건은 제1심부터 각 무죄가, 나머지 1건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공안기관에 대한 평통사의 완벽한 승리로 끝이 났지만,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공안기관이 언제 또 싸움을 걸어 올런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이번 보고서를 읽으면서는 평통사 활동가 분들께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평화행동목자단 김성윤목사 사건”은 공안기관이 기독교 평화행동목자단에서 활동하는 김성윤 목사 등을 수 년동안 미행하고 도·감청을 해 오다가 박근혜 정부 시기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었던 대회입니다)를 하루 앞둔 2015. 11. 13. 서울 종로구 소재 기독교회관을 압수·수색하고 김성윤목사를 체포하면서 민중총궐기 대회 물타기용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법률적으로는 외국에 서버가 있는 외국계 이메일에 대해 수사기관이 국내 영장으로써 피고인의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서버에 접속하여 압수·수색할 수 있는지 여부가 눈여겨 볼 만합니다. 항소심 법원은 ‘우리나라 사법관할권이 미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방식과 효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영장 집행으로서 위법하다’고 판시하였고, 대법원은 이와 반대로 ‘형사소송법 해석상 허용될 수 있는 압수·수색’이라며 적법한 영장 집행으로 보았습니다.

    “간첩 아닌 ‘PC방 간첩사건’”은 2016. 5.경 뉴스채널 YTN에서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어느 PC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성에게 달려들어 체포하는 장면을 CCTV 영상으로 방송하여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사건입니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피고인을 만 4년여 동안 미행하고 촬영하며 대화를 녹음해 왔는데, 피고인이 자주 이용하는 PC방에서는 수사관이 특정 PC에 데이터 초기화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자신들이 갖고 온 하드디스크를 설치해 놓았다가 피고인이 와서 그 PC를 사용하고 나가면 수사관이 다시 와서 그 하드디스크를 수거하고 다른 하드디스크로 교체하는 식으로 증거를 수집해 왔습니다. 공판과정에서 법원은 공안기관에 피고인에 대한 통신감청 영장을 만 3년여 동안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부해주었던 사실이 확인되면서 헌법재판소가 통신제한조치 기간 연장과 관련 하여 기간과 횟수의 제한을 두지 아니한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취지를 몰각시키는 행위라며 피고인 측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의 결과는 상대적으로 빈약하였고, 때문에 피고인이 유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그렇게 장기간 동안에 걸친 국가정보원의 미행과 촬영과 감청 등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국가보안법 사건의 법정에서 검사 측 증인으로 단골 출연하는 ‘곽인수’가 이 사건에서도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이 증인의 역할은 대개 ‘피고인이 만난 사람은 북한공작원이다’라고 증언하는 것이고, 이러한 증언 한마디로 법원은 그 사람을 북한공작원으로 인정해 버립니다. 모르는 북한공작원이 없어 보이는 대단한 곽인수입니다. 곽인수가 지금까지 법정에서 자신이 북한공작원이라고 지목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고는 있는지 의문입니다.

    “폐타이어 대북 수출사건”은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군부대에서 반출되는 폐타이어를 북한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해 오다가 5·24조치로 대북 수출이 막히자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여보내려다가 국가보안법에 걸린 사건입니다. 여기에는 마치 내란선동 사건에서 국가정보원의 프락치로 등장하였던 이성윤을 보는 듯한 뉴질랜드 국적의 교포 ‘사이먼 김’이 등장합니다. ‘사이먼 김’의 활약으로 경찰 보안수사대는 초기부터 피고인들의 행동
을 자기 손금 보듯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고, 폐타이어 수입을 금지하는 중국 당국에 적발되어 폐타이어가 부산항으로 되돌아 오고 피고인들이 이를 폐기물로 처분한 이후에서야 체포하고 일사천리로 공식적인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판결문에 나타나 있는 변호인들의 항변은 설득력이 있는반면, 유죄의 판시 부분은 상당히 작위적으로 읽혀집니다.

 

    이어서 4건의 이적표현물에 관한 사건을 실었습니다.

    “북한영화 전문가의 이적표현물 사건”은 대학원에서 통일학을 전공하였고 북한영화에 관한 책도 쓰고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 유영호 선생에 대해 보관 문서나 동영상 파일 등을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기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기소의 배경에는 유 선생이 소위 ‘왕재산 사건’의 피고인 중 1인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소위 ‘왕재산 사건’에서 가장 주목되었던 부분이 반국가단체 구성죄이었는데, 당시 국가정보원은 구속된 그 사건 피고인들의 지인 등 40여명을 반국가단체의 단원으로 대기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1심부터 법원이 조직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국가단체 구성의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그러자 국가정보원은 조사해 놓은 것이 아까웠던지 그 중 몇명을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죄로 기소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사건입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소회 등을 담은 유 선생의 글이 바로 뒤에 이어집니다.

    “이적표현물 소지죄와 이적행위 목적” 사건은 제대를 2개월여 앞둔 말년 병장 때 기소가 되어 제1심에서 7년여 동안 집시법 위반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었다가 결국 모두 무죄가 선고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제1심 법원이 이적표현물 소지죄에서 ‘이적행위의 목적’과 관련하여 판시한 부분입니다. 제1심 법원은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에 대해 이적단체로 판단하였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적행위의 목적’에 관해 반대의견을 냈던 김영란 대법관의 논설에 따라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있어서는 피고인이 이를 소지함으로써 의욕하는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즉 이적행위를 할 계획이나 의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거나 입증되어야 한다’며 피고인에게는 그러한 계획이나 의사가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무죄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 존재하는 현실에서 법원 내에서라도 위와 같은 전향적인 해석과 판단에 대해 널리 공감대가 형성되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편, 당사자 본인께서 보내 주신 글에서는 7년여 동안의 1심 재판이 끝났으나 검사의 항소로 다시 재판을준비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절절히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 글 중에 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기무부대의 압수수색 이후, 저는 소소한 일상 하나도 사회적 관계망으로 알려질까 봐 인증샷이나 제 얼굴이 나오는 단체 촬영을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기도 쓰지 않고 업무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는 메모도 꺼립니다….” 친구들 중 학생운동에 매진하였던 이들로부터 학창시절의 사진이나 일기 등이 없어 추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자기에게 일이 닥쳤을 때 사진에 나온 인물이나 일기, 노트에 적혀 있는 이름들이 수사기관에 불려가 고초를 받는 일이 없도록 일찍이 모두 태워버리는 등으로 없앤 것입니다. 수 십년이 지났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있고,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이렇게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간부의 이적표현물 사건”은 오랜 동안 노조 간부로 활동해온 피고인에 대해 제1심 법원이 인터넷 카페에 올린 북한 ‘로동신문’ 기사나 실천연대 발행 간행물 소지 등과 관련하여서는 “이적표현물은 맞으나 피고인에게 이적목적이 없다”는 이유로, 그 외 소지하고 있는 자료들은 “이적표현물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한 사건입니다. 결론만 놓고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로동신문’의 기사나 법원이 이적단체로 판단한 단체의 간행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만연히 이적표현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그 내용에 이적성이 있는지 여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등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부산청년한의사회 사건”은 한의사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였던 대학시절의 열정을 이어나가고자 동문들로 구성된 모임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학습자료를 만들었다가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죄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공안기관은 이들이 만든 모임에 대해 이적단체 구성죄를 적용하려고 애쓰다가 안되었는지 실질적으로 수사를 마치고도 3년 8개월여 동안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결국 이적표현물 제작과 소지죄로만 기소하였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사건은 북한에 거주하였다가 남한에 들어 왔으나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서, 사실 각 사건 자체와 이에 적용된 국가보안법의 해석·적용 등에 의미가 있거나 중요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처한 상황과 요구 등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도로 함께 실었습니다. 유태준씨는 재입북한 탈북자 1호로 알려져 있는데, 1998년경 탈북하여 남한에 들어 와 정착하였다가 2000년경 부인을 데리고 오겠다며 재입북하였고, 다시 남한에 들어 온 이후 2004년경 아들을 데리고 광화문 등에서 ‘나와 아들을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품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였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평양주민 김련희’는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북한 여권을 빼앗겨 당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탈북자들과 함께 남한에 들어왔다가 곧바로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하였고, ‘법적 근거가 없어 북송할 수 없다’는 정부 당국에 맞서 처절하고도 끊임없이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권철남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잇다가 남한 사회의 탈북자에 대한 멸시, 힘들게 노동해도 먹고살기 힘든 현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쌓이면서 재입북 할 것을 결심하고 주변에 그러한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가 국가보안법상 탈출예비죄로 처벌받고, 이후에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더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북송을 요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통일부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들의 북송 요구를 거부하고 있지만, 과거 이인모 노인에게는 방북 승인을 해 주어 북으로 보내고, 조업 중 기관 고장 등으로 예기치 않게 월경한 어부나 홍수 때 임진강 등지로 표류하여 떠내려 온 군인 등을 본인 의사에 따라 북으로 돌려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정부 당국의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응답과 조치가 요구되어집니다.

 

    부록으로는 첫째, 1991년 개정된 이후 8번째 위헌법률심판을 받게 된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및 제5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결정문”의 전문을 실었습니다. 위 법 조항은 간단히 말해 이적표현물의 제작이나 소지, 반포 등에 적용되는 규정입니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1단독 김도요 판사가 2017. 8. 4. 위 법 조항이 적용되어 기소된 사건의 피고인들이 신청한위헌심판제청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하였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2017헌가27호로 심리 중에 있습니다. 결정문에는 UN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가 그동안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해 표명해 왔던 견해들,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제19조의 국내 규범적 효력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위 법 조항이 왜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어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자세히 논증하고 있습니다.

    둘째,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입국 사건에 관한 중간보고서”를 실었습니다. 2016. 4.경 지배인 허강일과 함께 들어 왔던 북한의 식당종업원 12명에 관한 내용으로서, 국가보안법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분단체제로 인해 발생하게 된 기본적 인권의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현재진행형의 중요한 현안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보고서에 함께 싣게 되었습니다. 이 글이 북한 식당종업원들의 집단입국에 대해 어떠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는지, 또 그러한 의문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줄 것으로 보이고, 한편으로 이 사안을 위해 민변 내에 특별히 구성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대응TF’가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일들,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정보원, 경찰청, 통일부, 법원과 검찰의 소극적이거나 감추려고만 하는 행태들을 확인하는 것으로써 이 사안의 진실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록 편으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국가보안법 일지”를 실었습니다. 통일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장연희 전 민변 사무차장께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떠나시기 전까지 2014년과 2015년의 각 일지를 작성해놓으셨고, 조현삼 변호사께서 기꺼이 2016년과 2017년의 각 일지를 맡아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국가보안법 일지를 읽어 보시면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했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하게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오늘 날까지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왕성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보고서에는 주로 민변 통일위원회나 미군문제연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변호사들께서 변호하신 사건들 중의 일부만이 실려 있습니다. 처음부터 기획하고 집필자도 정하였지만 원고 완성이 늦어져 싣지 못한 사건도 있고, 꼭 싣고 싶었지만 자료 입수나 기타 여러 사정 등으로 싣지 못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군부독재 시대에 비열하고 잔인한 고문 등으로 만들어 냈던 여러 간첩조작 사건들이 이 보고서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간 동안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 역시 자료 입수 등과 시간적 한계 등으로 이번 보고서에 담아내지를 못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다음 발간 기회에는 이러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 당사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를 변호하는 변호사에게도 많은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무척이나 힘이 드는 사건입니다. 압수·수색영장 집행 단계부터 모든 것을 싹쓸어 담아 가려는 수사관들과 부딪히게 되고, 기소가 되면 며칠 밤을 새워야 다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수사기록과 마주하게 됩니다. 공판이 시작되면 ‘이적행위의 목적’을 입증하겠다는 등으로 뜬구름 잡는 듯한 검사의 주장·증거신청과 다투어야 하고, 북한에 소재하고 있을 증거자료를 탈북자의 증언으로 메꾸려는 검사와 재판부의 의도에도 맞서야만 합니다. 증인신문, 검증, 감정 등 증거조사의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변호인의 변호사 사무실에는 변호사 없는 날들이 한정없이 이어집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은 우리들이 아니면 어느 변호사가 변호하려
할 것이고 변호할 수 있겠는가 하는 소명의식이 없이는 맡아서 하기 어려운 사건인 것입니다. 때문에 국가보안법 사건을 변호하시는 변호사님들은 격려받고 칭찬 받으실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민변 통일위원회 내 ‘국가보안법 연구모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오시며 국가보안법 보고서 발간을 이끌어 오셨던 이광철 변호사께서 문재인정부의 요청을 받아 청와대로 떠나시고, 오랫동안 통일위원회 간사를 맡아 오시면서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셨던 장연희 전사무차장마저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스카웃 되어 떠나시면서 두 분의 부재가 상당히 큰 공백으로 남겨졌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현재 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 저의 부족한 역량과 게으름 등으로 이전과 같은 매년의 정기적인 국가보안법 보고서 발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4개년 치를 묶어 내기로 하면서 편집을 마치고 인쇄소에 넘기기 직전까지도 그 내용의 질과 양에 있어서 이전의 국가보안법 보고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번 발간하는 보고서가 이전의 보고서 수준에 미친다면 이는 이광철 변호사와 장연희 전 사무차장께서 각자 떠나시기 전까지 작업해 놓으셨던 것, 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고 수면과 휴일을 희생하면서 원고를 집필해 주신 변호사님들의 노고 덕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전의 보고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통일위원장인 저의 여러 부족함 때문일 것이지요.

    이번 보고서의 원고를 집필하셨던 양승봉 통일위원회 부위원장님, 조현삼 변호사님, 권오훈 변호사님, 신윤경 변호사님, 남성욱 변호사님, 김정인 변호사님, 김종귀 변호사님, 사건 당사자로서 아픈 기억을 되돌아 보며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홍강철 선생, 이◯◯ 교수님, 백창욱 목사님, 유영호 선생, 서◯◯ 선생, 원고 집필에 필요한 자료들을 열심히 챙겨주신법무법인 상록의 장태성 실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후배들에게 든든한 의지가 되어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통일위원회의 심재환 변호사님, 권정호 변호사님, 이석범 변호사님, 천낙붕 변호사님, 이오영 변호사님께서 이 보고서의 발간에서도 역시 큰 힘들이 되어주셨습니다. 항상 통일위원회를 응원해 주시는 우리 모임의 정연순 회장님과 강문대 사무총장님, 온갖 세세하고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하시면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시는 우리 모임의 사무처 간사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이번 국가보안법 보고서를 같이 읽어 보면서 하루빨리 이 땅에 온전한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가 누리어 지기를 함께 기원합시다.

    감사합니다.

 

* 위 글은  발간된 보고서에 실린 ‘안내의 글’입니다.

책자를 받아 보시고자 하는 회원께서는 사무처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4년~2017년 국가보안법 보고서> 목차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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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지마, 형사절차’ 김지미 변호사님 강연후기

– 14기 자원활동가 장현경

 

14기 자원활동가가 되어ㅡ 각자의 사연을 안고 편지를 통해 민변의 문을 두드리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강압적인 수사였노라고 호소하시는 분들, 교도소 내에서의 부당함을 호소하신 분들 등 많은 이야기를 접하며, 수사와 재판, 집행의 일련의 절차에 관해 많은 의문들 또한 생기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적절한 시기에(!) 민변에서 형사절차에 관한 강연을 마련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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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동안 국선 변호사로서 근무하셨던 김지미 변호사님께서 이번 강연을 맡아주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일련의 형사절차 과정을 세세히 짚어주셨습니다. 먼저,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공무 중이니 당연히 응해야 하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는데, 거절할 수도 있으며 임의동행 시에 경찰관이 본인의 소속 및 성명, 동행 이유와 장소를 밝혀야 한 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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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관련한 문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톡 대화는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것이 아니기에, 감청의 대상이 아니라 압수 수색의 대상임에도 수사의 편의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감청 영장으로 수집해 왔었습니다. 이를 카카오가 거부하자, 1년 동안 세무조사 및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을 들이대며 카카오의 옥줄을 죄어왔고, 결국 카카오는 최근 이에 굴복했습니다. 1년 동안 과연 무얼 한 것인가, 입법의 흠결이 아쉬웠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현재 발의된 법안 중에 격론을 벌이고 있는 두 가지 법안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구금서신에서도 많이 봤던 내용인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 허나 이를 실질적으로 피의자가 입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녹음 정도는 필요하지 않냐는 주장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녹음 정도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서는 수사관이 들은 내용을 정리해가며 적는 것이기 때문에, 녹음파일이 있다면 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식명령에서 정식재판을 청구할 때의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을 폐지하자는 법안도 발의되었다고 합니다. 상위의 재판부에 청구 할 때 적용되는 불이익변경금지를 약식명령에서의 정식재판 청구에도 적용, 정식재판 청구률이 높아져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 발의의 배경입니다. 법원의 업무경감이 필요하다는 측과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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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의 개괄적인 설명이 끝나고, 자원활동가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국민참여재판, 플리바게닝, 검경의 수사권 공조 문제 등 평소 궁금했던 사안들을 변호사님께 다 늘어놓았고, 변호사님께서 그 많은 질문에도 다 답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형사 재판 과정에 관해 정리할 수 있었으며, 형사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궁금증 역시 해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주신 김지미 변호사님, 그리고 강연을 준비해주신 사무처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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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0/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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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님과의 만남

- 이정선 회원

 

 영화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당시 14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위 사실을 접하고 미성년 아이들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기도,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여 이를 토대로 한 영화라는 소개만으로 도 선뜻 이 영화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저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느껴지는 죄책감과 가슴 저릿한 묵직함으로 한동안 힘들었고, 이러한 느낌이 채 가시기 전에 민변에서 주최한 이 영화의 감독님이신 이수진 감독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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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수진 감독님을 뵙기 전까지는 죄송스럽게도 당연히 여성 감독님이실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민변 대회의실에 등장하신 이수진 감독님께서는 멋진 훈남 감독님이셨습니다.^^ 2013년 최고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인 만큼 많은 변호사님들과 참석자분들의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님께서는 이번 모임이 영화 <한공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자리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공주>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연기한 한공주는 마치 그 순간, 그 시간에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죄책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공주를 못 본 척하며 자신의 아들(동윤)만 데리고 나오는 동윤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내 아들의 탄원서는 써 주지 않느냐며 공주가 꼬셔서 내 아들 인생을 망쳤다고 악다구니 쓰는 가해자 어머니의 모습에서, 웃는 얼굴로 가장 잔인하게 공주에게 탄원서를 받아가던 동윤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소름끼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랬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과 두려움, 죄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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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무엇보다 기존 성폭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과는 달리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상황을 한층 깊이있는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 잘못이 없는데요’라는 영화 포스터 문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공주가 가해자들을 피해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화 내내 2차 피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건 당시보다 사건 이후에 미성년자인 공주가 얼마나 힘들게 그 시간을 혼자 견디는 지를 보여줍니다. 돈 몇 푼에 딸에게 탄원서작성을 종용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삶에 흠이 생길까 딸의 상처를 들여다 볼 마음조차 없는 어머니를 둔 공주는 결국 고스란히 혼자 그 아픔을 짊어집니다. <한공주>는 가족도, 법도, 사회도 지켜주지 못한, 아니 지켜주지 않고 외면한 공주의 상황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운데, 이런 감정이 영화를 통해 너무 잘 전달되어 오히려 더 아픈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대해 이수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연출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공주가 왜 수영을 배우는지, 공주는 왜 후드티를 입었는지, 산부인과에서 공주는 왜 아무런 말없이 불편한 상황을 넘겼는지 등등. 감독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 주셨고, 결국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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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감독님께 이 영화를 대체 몇 번이나 보셨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후유증이 큰 영화를 볼때마다 갖게 되는 순수한 호기심인데, 저는 과연 이런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들은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고통을 감수하실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수진 감독님께는 ‘셀 수 없이’ 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수 없이 마주하며 만들어 주신 영화 <한공주>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했던 많은 순간들을 반성하며, 실제로나 영화속에서나 법과 사회가, 우리가 외면한 공주에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2004년이 아닌 2015년 현재에도 ‘우리’는 공주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한공주>가 아닌 <공주>라고 조금 더 당당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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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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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주전남지부입니다. 최근까지 우리 지부 사무처와 각 단이 주도하여 진행한 사업과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사무처

 

가. 지부 임시총회 – 신입회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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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는 우리 지부 임시총회가 4월과 6월 두 번 있었습니다. 신입회원 가입 승인을 위해서인데요. 4월에는 장효인 변호사 (변시 4회) 가, 그리고 6월에는 이광원 변호사 (변시 5회) 가 가입 승인을 받아 우리 지부 회원의 수는 48명으로 늘었습니다. 가입을 축하드리며,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나.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의 만남 (201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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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우리 지부 회원들과의 만남 행사가 2016. 4. 20. (수) 진행되었습니다. 김종률 사무처장은 본인이 쓴 곡들을 정리해 출시한 ‘님을 위한 행진곡’ 앨범을 참석한 지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드리기도 했습니다.

 

다. 5·18 민중항쟁 36주년 기념 망월동 합동참배 (201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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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중항쟁 36주년을 맞아 망월동 합동참배를 망월동 제3묘원 (구묘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구묘역은 항쟁 당시 사망한 사람들이 최초로 안장되었던 상징적 장소라는 점, 비록 신묘역으로 이장되었으나 가묘가 된 광주 희생자들의 묘역도 그들을 기리기 위해 아직 관리되고 있는 점, 5·18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산화하신 민족민주열사들이 안장된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 참배는 5·18 희생자들과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 참배한 회원들이 5월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참배 이후에는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품이 안치된 비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라.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지부 공부모임 (201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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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5·18은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너무 일상화되거나 박제화되어 어쩌면 너무 멀리 잊혀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에서 다시금 5·18을 이해해보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공부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5·16부터 서울의 봄까지 배경”에 대해 우리 지부 정다은 변호사가 발제를, “5·18 직전 ‘서울의 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김정희 변호사가 발제를, “5·17부터 항쟁기간 전투와 해방구 기간”에 대해 정채웅 변호사가 발제를, “5·18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박상희 간사가 발제를 진행하고 이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항쟁 당시 고3이었던 정채웅 변호사의 생생한 설명은 공부모임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2. 공익소송기획단

가. 농업법 연구회 – “뭣이 중헌디? 농업법 연구회가 중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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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적으로 광주, 전남지역은 농어촌 지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농민인구가 적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지역에 산재한 폭넓은 농업의 법적인 문제 – 예컨대 생산에서부터 식품가공, 재해, 농약 피해, FTA 분쟁, 농산물 유통 분쟁, 농가부채 문제 등 – 이 존재하지만, 이 분야를 표방하고 활동하는 변호사 그룹이 없으며 농업법을 전공하는 학자도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전문성을 갖추고 이를 표방하며 새로운 시장개척 및 공익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우리 지부에서 ‘농업법 연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농업법 연구회에 함께하는 지부 회원은 총 9명입니다.

 

2) 농업법 연구회는 총 3차례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세 차례 모임에서는 먼저 농업법 연구회의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민변 활동의 취지와 그 맥을 같이 해야 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공부와 연구에 중심을 두며, 지속가능한 농촌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농민들이 현실적으로 처한 문제에 대한 송무에 기본 방향을 두었습니다. 이에 따라 먼저 ‘한국농업법의 과제’ 라는 논문을 읽고 기초적인 스터디를 진행한 후 최근 지역 또는 전국적인 농업 관련 이슈에 대해 브리핑하고,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오는 7. 22. (금) 에는 본부 송기호 변호사님을 초청하여, 『“맛있는 식품법 혁명” 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 주요 공익소송사건

 

1) 한전 직접활선공법 관련 공익소송

 직접활선공법은 ‘살아있는 전선(活線)’을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만지면서 작업하는 노후전선 교체 기술 가운데 하나로 2001년 한전이 도입하였습니다. 작업 노동자들은 절연고무장갑만 끼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활선은 무려 22,900v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2014년 한전의 발표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직접활선공법으로 인한 사망자는 13명이나, 건설노조 측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대략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부상자 역시 2014년 공식 보고된 수가 140명이나 그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이 입은 부상의 정도 또한 심하여 부상 입은 노동자 대다수가 심각한 화상 및 팔, 다리 절단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는 이 공법으로 인한 백혈병 발병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6. 10. 한전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활선공법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되는 전형적인 산업재해 사건이며, 피해 규모에 비추어 보아도 대단히 심각한 사안에 해당되기에 우리 지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지역 건설노조, 학계 등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소식은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남영전구 수은유출 관련 피해 근로자 공익소송

 전구 및 램프제조를 업으로 하는 (주) 남영전구가 형광등 등에 들어가는 수은 사용이 2020년부터 금지됨에 따라 2015. 3. 부터 생산라인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20여 명의 노동자가 수은 유출로 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병명도 모르는 채 병원을 전전했고, 2015. 10. 경에야 수은중독 사실이 밝혀져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2015. 10. 이후부터 받았고, 그 전 6개월 동안의 치료비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둘째, 피해자 20명 가운데 9명은 수은중독 후유증으로 인해 현재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소변이나 혈액 속의 수은 잔류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산재처럼 후유장애가 유형화되지 않았으며, 기존의 의학적인 산재 신청방법으로는 후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입니다.

하여 우리 지부에서는 광주지역 피해자 6명을 대리하여 관련 사건에 대한 공익소송팀을 꾸려 이에 대응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다. 각종 성명 발표

 1) 한국전력공사는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직접활선공법을 즉각 폐기하라 (2016. 6. 15.)

앞서 적은 한전의 직접활선공법 문제 관련해 우리 지부와 본부 노동위원회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2)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 촉구 공동성명 (2016. 6. 26.)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에 함께 연명하였습니다.

 

3. 법률구조단

 가. 소송자료 DB 구축, 법률구조 사업의 지원, 법률구조 당직제 진행

 법률구조단에서는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법률구조사업을 위하여 우리 지부에서 진행했던 사건에 대한 소송자료 DB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이거나 지부에 요청한 법률구조 사업에 대한 지원을 수행하고 평일 회원 2인이 순번제로 법률구조 당직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 주요 법률구조 사건 경과

1) 故 진도경찰관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취소소송 승소 (2014구합73098)

2014. 4. 16. 발생한 세월호 사고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전남 진도경찰서 경찰공무원 김** 가 세월호 사고 이후 계속된 업무상 과로와 사고 관련해 지속된 업무상 스트레스로 2014. 6. 26. 투신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망인의 아내인 원고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망인의 사망이 공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청구에 대해 부지급 결정 처분을 내려, 이에 대해 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진행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2016. 6. 23.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2)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관련하여 (1) 2016가단51086 (안**) 사건의 경우 2016. 5. 17. 원고에게 6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2) 2015가소73649 (나**) 사건의 경우 2016. 5. 9. 원고에게 1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4. 회원사업단

가. 제29차 민변 정기총회 참석 (2016. 5. 28. ~ 29.)

 제29차 민변 정기총회에 우리 지부 회원 17명, 가족을 포함 총 3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우리 지부에서는 지부 공익소송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 변호사가 모범회원을 수상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나. 회원사업단 주최 제2차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예정 (2016. 7. 15.)

 회원사업단에서 주최한 첫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이상갑 변호사) 이후 두 번째 선배변호사와의 대화를 2016. 7. 15. (금) 진행합니다. 초청 변호사로 우리 지부 제7대 지부장을 역임한 임선숙 변호사 (연수원 28기) 를 모시고 선·후배 변호사들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다. 지부 여름 야유회 예정 (2016. 7. 23.)

 

우리 지부 여름 야유회가 2016. 7. 23. (토) 진행됩니다.

 

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

금, 2016/07/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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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

- 민변 노동위원회 1년차의 1년 이지영 변호사(변시 4회)

 

2015년을 되돌아보니 그 시작도 마무리도 민변 노동위원회와 함께였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법전원 게시판에서 민변 노동위 노동법실무교육 안내를 보고 눈이 번쩍 띄어 바로 신청, 3월 한 달 동안 부산과 서울을 오고 가며 민변 선배 변호사들의 열강을 들으면서 민변이라는 조직, 사무실 공간, 무엇보다 민변 사람들과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4월은 노동위원회 수요모임 참석과 그 전날 변시 합격 발표로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던 제주도에서의 민변 노동위원회 전체 모임이 기억납니다. 전체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회원들의 소회. 그 진지함과 자기 다짐에 ‘노동위원회에 잘 들어왔구나’ 생각했습니다. 4월 18일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에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뜻하지 않게(?) 집회 대오 선두에서 싸우며 민변 변호사로서 집회에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운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 경험했던 연행자 접견.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분들에게 경찰 조사 방법을 말씀드리니 한결 안도하시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독 연행자가 많았던 집회 이후 민변에서 모든 연행자를 파악하고 접견은 하는지 혹시 빠진 곳은 없는지 혼자 걱정했으나, 너무나 일사분란하게 대응하는 민변 조직을 보면서 신입 회원으로 건방지게(?) 괜한 걱정을 했구나 라며 부끄러웠던 기억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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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모임의 노동판례분석을 담당하게 되어 2주마다 한 번씩 노동판례를 읽고 정리하면서 2015년 한국사회의 노동판례 흐름을, 2015년 인권보고대회 발표를 위해 개별적 노사관계를 정리하면서 2015년 한 해 동안의 노동이슈를 일별하면서 어느덧 밥벌이 일(?)에만 매몰되고 있었던 제가 끊임없이 노동문제를 접하고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으로서의 민변 노동위원회 활동!

일상에 치이고 지쳐 헤매지 않게 끊임없이 과제를 내주는 것에 이어 송년회 모임에 2015년 신입모범회원 상까지 주셔서, 올 한 해는 민변에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뜻 깊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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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게 2016년도 다짐을 해 봅니다. (밥벌이) 일과 (민변 노동위) 활동의 양립을 위해,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나의 궤도’를 항해할 수 있게, 무엇보다 성실히, 꾸준하게!

 


민변 노동위에서의 1년

 

- 심재섭 회원

2014년 5월경 민변 가입원서를 쓰면서, 큰 고민 없이 노동위원회를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노동위인지는 지금도 명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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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생 신분으로 가끔 출석했던 수요모임이나 월례회만으로는 민변에서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다른 분들은 어떤 계기로 민변에 들어오는 것인지, 누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라도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다가, 작년 1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첫 해의 목표는 명료했습니다. 어차피 달리 바쁜 일도 없으니, 혹시라도 누가 시키면 어디든 참석해서 도대체 노동위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기회가 너무 빨리 왔습니다. 변호사로 처음 참석한 수요모임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얼떨결에 ‘공감대’에서 주최하는 오체투지행진 관련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 사실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는 친구들과 밤에 만나 놀기나 했지, 낮에 같이 집회에 나간 적은 손에 꼽습니다. 집회, 투쟁, 회의, 민가까지도 저에게는 어색한 일이었고, 그다지 내키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연대회의라는 것도 막연히 겁이 났습니다. 오체투지는 뉴스로만 접했던 제가 회의에 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고 와야 하는지 무얼 알았겠습니까. 하릴없이 저를 지탱하는 두 가지 신념, ‘난 대한민국 평균은 된다.’, ‘내가 못하면 시킨 사람 잘못이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일단 참석은 했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제게 묻지 않았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라, 자리만 채우면 되는 거였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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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노동법률가대회’도 있었습니다. 아마 수요모임 끝나고 지나가는 말로 이현아 간사님께서 ‘변호사님, 오실 거죠?’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늘 그랬지만, 간사님께서 하라시면, 일정이 안 되는 경우 말고는 대답은 ‘Yes’였습니다. 아는 변호사님들도 많지 않아 어색할 자리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딱 예상한 만큼만 어색하게 앉아서 5개 법률가 단체의 발언을 듣고, 사진을 찍고 뒤풀이 전에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세월호 관련 집회 대응과 관련한 모임에 참석하여 몇 분의 변호도 했고, 알바노조 분들과 만날 기회도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덜컥 마이크를 쥐어 주셔서 무어라 발언도 했지만,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결석한 수요모임에서 동양시멘트 진상조사단을 꾸린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역시 이현아 간사님께서 텔레그램으로 참여를 권유해 주셔서 알았습니다. 금요일 하루 태백에 바람 좀 쐬러 다녀올 겸 편하게 내려갔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논평이나 기사, 재판 자료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특별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 앞에 덜컥, 크고 중요한 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일 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석할 수 있었고, 고사리손이라도 보태면서 실제로 뉴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냥 살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일들에 얄팍하게나마 조금씩 몸을 적시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변호사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더군요. 어떻게 노동위 변호사가 되는 것인지를 알았으니, 이젠 아는 대로 살아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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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변호사님께서 수서경찰서에 체포되셨을 때, 아마 그때가 노동위 오길 잘 했다고 확신했던 날이었습니다. 새벽 2시 즈음에 나오신 권변호사님과 함께 20여 명의 동료들이 수서경찰서 앞에서 모여 동지가를 불렀었지요. 저는 물론 모르는 노래에 입만 뻥긋거렸지만, 이들 사이에 계속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처음 수요모임에서 아무와도 안부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던 때가 있었고, 4월 제주에서의 노동위 모임에선 몇 명의 동료 변호사님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으며, 지금은 적어도 노동위의 어떤 모임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노동위에 느리지만 조금씩 스며들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저는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 어떻게 좋은 변호사가 되는지 알아도 그렇게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옆에 계시는 멋진 동료 분들이 있고 이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면 그래도 앞으로는 더 괜찮은 변호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목, 2016/01/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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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이슈로 뜨겁다. 동성애와 동성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5월 동성애자 군인들은 군형법 추행죄로 대거 잡혀갔고, 이번 10월 제주퀴어문화축제와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지자체로부터 미풍양속이란 이유로 장소가 불허됐다.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포함해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은 10년째 캐비닛 안에 잠겨있다. 성 소수자와 전혀 친근해 보이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남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이자, 민변 6개월 차인 새내기 박한희 변호사를 민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차게 대화를 이어가지만, 수줍은 웃음이 돋보이는 ‘트랜스젠더 여성’ 박한희 변호사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최은빈 : 국내에서는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로서, 혹시 남다른 고충이나 보람이 있으신가요.

박한희 :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하리수씨 같은 연예인이나, 유흥업, 예체능 등이 대표가 됐어요. 변호사라는 전문직 또는 사무직에서는 대표가 안 됐고요. 그런데 제 기사는 그게 화제가 됐던 것 같아요. 페북에 알려지면서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한 친구는 기사를 보고 트랜스젠더도 변호사가 할 수 있다고 부모님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고 하더라고요. 퀴어문화축제에 갔을 때도 젊은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와서 기사를 보고 감동 받아서 주변에 얘기하고 다닌다고 하고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내가 한 선택이 어쨌든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제가 한 선택도 나이가 많은 분들로부터 롤 모델을 받았던 거잖아요. “저도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끼면서 보람이 된 것 같아요.

고충은 사실 이게 최초이자 지금은 혼자잖아요. 그래서 “저로서 과잉대표 되지 않을까?” 그런 부담이 있는 거 같아요. 이거는 꼭 트랜스젠더 변호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나가도 트랜스젠더를 실제를 본 사람이라고 질문을 하면 거의 손 드는 사람이 없어요. 한두 명 정도. 그 사람들은 살면서 제가 실제로 눈앞에 처음 보는 트랜스젠더인거에요.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나라는 존재 행동 하나하나가 트랜스젠더 전체의 문제로 해석되지 않겠냐는 조심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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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얀 : 성 소수자로서 사회에서 약자성을 깨닫고, 이것을 극복한 과정이 궁금해요.

박한희 : 저도 못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고, 무기력한 것도 많았어요. 남들과 다르다고 정체화한 건 중학생 때 13~14살 때였는데, 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한 28살부터였나 싶어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존재고, 이렇게밖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게 길었어요. 그에 따라 고충도 많았죠. 회사도 다녔지만,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중간에 다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바뀐 계기는 “더 이상 이렇게는 살기는 싫다”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제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건 29~30살 넘어가는 로스쿨 겨울방학이었는데,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서 의미가 있을까? 계속 숨기고, 감추고, 피해 다녀야 하나?”라는 억울함이 있었죠. 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내가 개인적으로 잘못한 건 사실상 없는데 왜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는 데는 나만의 결정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도움들이 있었어요. 두 명 정도가 있는데, 한 명은 저보다 6살 많은 트랜스젠더 언니에요. 그 언니는 남자로 회사에 입사해서, 회사에서 커밍아웃했어요. 휴직하고 수술을 받고 성별정정을 해서 여자로 복직했고요. 지금도 그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 언니를 지금까지 안 건 벌써 10년 정도 되는데, 그분을 알면서 저도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 커밍아웃하는 것과 회사 안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건 난이도가 천지 차이거든요.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해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지 않겠구나”를 느꼈어요.

다른 하나는, 로스쿨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법조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과연 나 같은 성 소수자가 받아들여질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때 상담을 했던 분이 희망법의 한가람 변호사님이었어요. 저는 희망법에 상담 메일을 보냈고, 한가람 변호사님이 저한테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변호사님은 자신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주변 동성애자 친구들과 후배들도 많이 있지만, 다 커밍아웃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있다고 얘기해줬어요. 오히려 운동하면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해줬죠. 그때의 대화가 지금 제가 희망법에서 하는 일이기도 해요. 성 소수자를 위해 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죠.

류태광 : 대한민국에서 MTF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여쭙고 싶어요.

박한희 :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MTF 트랜스젠더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운동적으로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말을 요즘 쓰고 있어요. MTF이라는 말 자체가 기정성별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안 쓰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많았어요.

그리고 사실 차별은 되게 개별적이에요. 똑같은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차별은 개개인에 따라 상황이 어떤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트랜지션(성별 이행)을 얼마나 했는지, 수술은 했는지, 성별정정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이런 차별을 겪는다’를 나를 기준으로 일반화할 수 없어요. 일단 제 기준으로는 저는 수술을 하지 않았고, 할 생각이 없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한국체계 내에서는 법성별을 바꿀 수 없는 상태고, 법적 성별은 남성이고 주민등록번호도 1번이에요. 지금으로서는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신분증적 차별인 것 같아요. 신분증을 내세울 때, 내가 어디에 뭘 적어야 할 때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은행을 간다든지, 병원을 간다든지, 인터넷에 무엇을 가입할 때도 남성이라고 적어야 가입이 되니까요. 주민등록증은 항상 갖고 다녀야 뭘 할 수 있잖아요. 번호도 항상 입력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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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다는 게 법적인 차별에서 큰 것 같고요. 특히 저는 다행히 하는 일 자체가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이게 취업이랑 연관이 되거든요. 취업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성별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취업이 많이 안 돼요. 자기가 여성적으로 보이지만 법정 성별이 남성이니까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면접에서 떨어지고, “당신은 왜 주민등록번호가 이래요?” 라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정규직 이런 곳은 사실상 취업하기가 아주 어렵고요, 서류에서부터 떨어지거나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실제로 붙은 다음에 알게 되어서 해고를 당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으로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용이 불안정해요. 또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판단하는 게 성별인 것 같아요. 가령 “남자야?, 여자야?”, “재 그거 아니야 그거?” 등. 제가 생각하기에 한 3~4개월에 한 번씩 겪는 것 같아요. 되게 비일비재한 것 같아요.

류태광 : 방금도 언급됐지만, ‘성 정체성’은 외관상 드러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박탈당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자연히 빈곤에 더욱 취약할 것 같고요. 트랜스젠더와 빈곤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한희 : 실제로 2014년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성 소수자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거든요, 전체적인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실제 트랜스젠더 집단의 평균소득이 가장 낮게 나왔어요. 일본에서도 성소수자 직장 환경 실태 조사를 하는데 항상 트랜스젠더 집단이 가장 수입이 낮고 이직률이 높고 근속기간이 짧은 것으로 나와요.

이게 악순환인데 우리나라는 수술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돈을 벌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했으니까 성별정정이 안돼요. 그래서 취업을 못 해요. 취업을 못 하니까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해요. 그러니까 취업을 못 해요. 이게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20대의 10년을 거의 돈 모으는 데에 쓰게 되죠. 비정규직이나 공장 일 하거나 알바하면서 모아야 하니까 5~6년, 길게는 10년, 이렇게 걸려서 그 일 하나만 하는 경우도 많고요.

트랜스젠더와 빈곤은 되게 복합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당연하고, 불필요하게 이력서에서 성별 표시를 안 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굳이 사람이 살면서 법적으로 성별이 요구되는 직장도 있겠지만 그게 꼭 필요하지 않은 직장도 있잖아요. 성별정정 요건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죠.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빈곤이나 취업, 노동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경원 :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요건과 관련해 법률이든지 판례든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지금 현재로선.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요건으로 허가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그보다 엄격하면 허가를 안 해주는 나라고요. 대법원의 경우 성별정정은 위에서 허가해주는 거고, 허가해주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판단 기준을 굉장히 엄격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가장 큰 틀은 이게 권리라는 걸 인식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법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권리, 거기서 도출되는 게 내가 나의 성별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다른 사람과 차이 없이 내가 원하는 성별을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요. 세계 인권 선언에서도 그렇고 우리 헌법에서도 반영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걸 권리라고 생각하고 출발하면 의문이 되는 거죠. “그러면 이게 내 권리인데,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이것도 수술하고, 저것도 수술하고, 이것도 고쳐야 해? 이게 정말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정당한 요건이야?“

결국, 프레임을 먼저 바꾸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애썼으니까 위에서 허가해주는 게 아니라, ‘너희 권리를 제한할 건데 이런 거로 제한하는 게 정당화될까‘라고 고민해야 하죠. 그래서 국제적인 추세는 최근에 아르헨티나 덴마크 몰타 등 6개 나라는 아무 조건이 없어요. 일종의 신고에요. 내가 ’성별을 바꿉니다‘라고 신고를 하면 ’바꿔줄게‘ 이런 식이에요. 가령 덴마크 같은 경우는 성별을 바꾼다고 하면 6개월 정도 숙련 기간을 둬요. 아일랜드는 이런 숙련 기간도 없어요. 아마 동성혼이 점차 늘어나는 것처럼 자기 결정권에 기반을 둔 성별정정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가 결정해서 하는 성별정정. 그쪽으로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우리도 언젠가는 한번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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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 외과 수술 자체가 되게 위험하고 평균 수명도 확 줄어든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이렇게 법이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박한희 : 수술이 되게 위험하진 않아요. 수명이 확 떨어지지도 않고요. 트랜스젠더 오해 중의 하나가 ‘오래 못 산다’가 있는데, 모든 외과수술이 당연히 위험성이 있고 신체적 부담도 있지만 죽는 수술은 아니잖아요. 그것과 비슷하죠. 그렇지만 국가가 그런 수술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돼요. 우리 헌법은 신체의 자유와 운전성을 보장하는데 내 신체를 국가가 훼손하겠다는 거죠. 네가 너처럼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너한테 수술을 강제해서 너의 신체를 훼손하겠다는 거니까요. 사실상 국가가 외과수술을 강요하는 거예요. 이게 생식기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옛날에 우생학적 절차처럼 국가가 불임수술을 강제하는 것과 같죠. 실제로 작년에 스웨덴 판결에서 트랜스젠더 수술 여건을 없애는 동시에 그동안 수술을 받았던 트랜스젠더에게 국가 배상을 해줬어요.

김민주 : 비교법적으로, 비교사회학적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성별정정과 관련해 특히 모자란 점이 어떤 지점이라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우리나라가 가장 특히 모자란 점은 이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요건인데, 우리나라는 미성년자가 성별정정을 못해요.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해요. 사실 이건 법적으로도 말이 안 돼요. 성인의 법률 행위가 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행위죠. 심지어 법원에 따라서 이건 판사 재량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곳은 10년 전에 이혼한 아버지의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해요. 다행히 최근 몇몇 법원들은 사유서를 제출하면 대체는 해줘요. 사람에 따라서 수술을 위한 돈은 사실 모으면 돼요. 그러나 부모님의 설득은 자기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부모님이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로 허가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요건 자체가 있는 건 정말 이상해요. 이건 정말 한국만 있거든요. 일본도 없는데 이게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최은빈 :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위해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하신건가요?

박한희 : 사실 변호사는 성 소수자 인권운동을 위해서 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법조인이 된 건 좀 두루뭉술해요. 들으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회사 다니기가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삼성엔지니어링 건설회사를 2년 다녔는데, 거기 규율이 되게 심하거든요. 항상 양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해요. 머리가 귀만 덮어도 선배가 지나가면서 “한희씨 머리 좀 잘라야겠는데? 미용실 좀 갔다 오지.” 이래요. 저는 그런 것들이 되게 싫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로스쿨이나 의전을 생각했어요. 전문직을 가지면 좀 자유롭잖아요. 그러면서 나 같은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 뭘까, 전문직이면서 동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은 뭘까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의사는 정신과 의사를 생각했고, 변호사는 법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의전과 로스쿨을 놓고 비교를 했는데, 의대를 다니는 친구가 의대는 규율이 빡세다 하더라고요. 의대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머리도 못 기르고, 슬리퍼도 금지하고, 반바지도 못 입게 하고요. 그래서 의대는 가면 안 되겠다, 회사랑 다를 바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로스쿨을 가자고 선택했어요. 당시에는 운동적인 차원까지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단지 내가 변호사를 직업으로 가지면, 사무실을 차렸을 때 어떤 형태로든 성 소수자 의뢰인에게 뭔가를 할 수 있겠다 정도였죠. 제가 이렇게 직접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던 것 같아요.

류태광 : 6개월은 짧으면 짧은 기간인데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소송을 수행하셨다면 소송이 있을까요?

박한희 : 제가 처음 희망법에 들어와서 했던 게 기지국 수사에 대한 위헌 소송이에요. ‘통신비밀 보호법 제13조’ 또 ‘기지국 수사’라고, 소위 말하는 검찰이나 경찰이 사건 현장 인근에 일어난 모든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수사가 있어요. 이게 희망법에서 2013년 첫 헌법소송을 했던 건데, 사실상 헌재에서 계속 묶어두고 있다가 이번에 공개변론을 열었어요. 제가 들어온 7월에요. 주심은 한가람 변호사님이었는데, 변호사님이 이거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 간지 일주일 됐는데, 헌법 소원 변론 요지서를 써오라고 했어요. 정말… 변시할때도 그런 건 안 쓰거든요. (일동웃음) 헌법재판소 변론 요지서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써오라고 해서 써와서, 첨삭 받고 고치고 고쳐서, 어떻게 했어요. 성 소수자 인권은 저도 알고 있고 활동하면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건 정보 인권적인 내용이니까 개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7월이면 대통령을 탄핵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인데, 말로만 듣던, 그 대법정에 공개변론을 하러 간 거예요, 제가. 저는 아직 수습이니까 방청석에 앉아 있었지만, 어쨌든 2개월 만에 거기 간 거니까, 엄청 떨렸죠. 그래서 가족들한테 전화하니까 너 벌써 거기 가냐고 하더라고요. (일동웃음) 왜냐하면 헌법 소송은 안 하면 정말 안하거든요. 본인이 의도하지 않으면 안 하게 되니까요.

류태광 : 정치, 경제, 언론 등 산적한 적폐가 많기 때문에 성 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는 주장도 일각에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주장에 하시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박한희 : 성 소수자 인권이라는 게 마치 성 소수자만 챙기는 것 같지만, 어떤 인권이 하나의 인권으로 분리 돼서 떼놓고 단계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인권은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차별도 사회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죠. 소수자 인권이 말하는 건 결국 차별이에요, 사회적인 차별. 사회적으로 누군가가 차별을 받고 있는데, 여기에 왜 나중이 있고 지금이 있죠? 오히려 그게 가장 큰 적폐가 아닌가. 권력적 차별이나 경제적 차별, 노동 차별 등이 다 복합해서 일어난 게 이전 정권의 문제였는데, 그 차별이라는 적폐를 무시한 상태에서 사회적 경제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겠느냐 싶어요. 사실 그건 당연히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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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 법조인으로서 성 소수자 인권 실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한희 : 성 소수자 운동 전체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저번 제네바 UPR(Universal Periodic Review)에 가서 얘기한 건데, 일차적으로는 군형법 추행죄죠. 우리나라는 징집국가로써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고 그 군대 문화의 영향이 사회 전체에 미치고 있기 때문에 군형법 추행죄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징적인 사회적 조항이에요. 군형법이 지금은 처벌하고 있지만, 처벌을 안 한다고 해도 성 소수자는 언제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고, 이등 시민이 될 수 있는 상징적인 조항이기 때문에 이거는 무조건 없애야 할 조항이에요.

두 번째로는 입법과제로써 얘기할 수 있는 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에요. 이건 벌써 10년째 얘기되고 있지만 아직도 제정이 안 되고 있어요.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은 기본 틀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누군가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아니라는 걸 약속받고, 동시에 누군가가 누군가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틀이 깔려야지, 그때부터 최소한 구체적인 제도적 보장으로 무엇이 필요할지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평등이라는 틀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뽑자면, 과제로써 하고 싶은 건 교육. 교육부에서 만든 국가 수준의 성평등 성교육 표준안은 성 소수자 얘기가 전혀 없어요. 사실 우리는 교육부에서 만든 교육안에 대해 계속 폐지 운동을 하고 있어요. 표준안은 ‘동성애는 인권의 문제이므로 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음’이라고 앞에 써놨어요. 동성애는 인권과 사회 이런 데서 가르치지 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고 있죠. 교육현장에서 교육이 되어야지, 그 사람들이 나중에 더 자라서 어떤 의견을 실제로 낼 수 있고, 사회적으로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김민주 :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십 년 째 공회전하고 있는데 이 제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박한희 : 되게 복합적이겠죠. 사실 처음에 가로막은 건 재계와 교회의 반대였어요. 교회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까지 아니었죠. 오히려 재계의 반대가 최종적일 거라 생각해요. 비정규직 차별 금지나 학력 차별 금지 등 지금 나오는 블라인드 채용처럼 이런 걸 하면 저항감이 있으니까요.

정부랑 국회가 의지가 없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해요. 사실 필요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부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차별이라는 게 지금 되게 복잡한 문제라서요. 사회적으로 우리가 평등이 아직 확산이 안 됐을 수도 있어요. 또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는 동의하지만, 어떤 게 정말 차별받지 않는지에 대한 의식도 필요한 거니까요. 사실 그걸 끌어올려야 하는 정부는 사회적 논란, 사회적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동력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 노동, 장애, 이주, 성 소수자, 거의 모든 분야의 114개 단체가 연대하고 있어요. 전방위적으로 캠페인과 서명운동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대중인식 개선과 차별이 뭔지에 대한 간담회도 하고, 정부 대상으로 법안을 만드는 것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공회전하는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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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광 : 얼마 전 지자체가 제주퀴어문화축제나 퀴어여성체육대회를 위한 장소를 불허한 사건이 있었는데, 성 소수자 차별은 아직도 가시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박한희 :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오늘이 집행정지기일이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건 제가 직접 하지는 않았고요.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제가 기획단이에요. 제가 차별받은 당사자에요. (일동 웃음) 불허 통보를 받고 실제로 면담도 갔어요. 이건 지금 인권위 진정을 써서 내서 인권위 진정에 들어가 있는 상태고요. 얼마 전에 궐기대회도 했었는데, 그것도 항의하는 것이었죠. 고민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퀴어여성체육대회는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살면서 너무나 편하게 가는 체육대회가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허를 당한 것은 일상에서 차별을 잘 보여줬던 것 같아요. 체육대회는 학교 운동회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 열리거든요. 이런 것들을 좀 더 의미를 살리고 얘기하면 우리가 지금 어떤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건지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일을 당하니까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내가 무슨 차별을 받는지 확 깨닫게 되었다는 거예요. 넓은 권리에서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와 닿지 않는데, ‘내가 공을 차고 싶은데 못 차게 한다.’라고 하면 피부로 느껴지니까, 좀 더 얘기할 수 있고 의미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도 있는 것 같고요.

최새얀 : 로스쿨에서도 LGBTQ를 삶으로 사는 법조인들도 많을 텐데, 미리 경험한 입장에서 예비 퀴어 법조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한희 : 할 말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로스쿨이 생기면서, 로스쿨이 LGBT퀴어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실제로 많이 가거든요. 일종의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거죠. 전문직이라는 직업적 안정성, 사무직을 가졌을 때 비해서 전문직을 가졌을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로스쿨을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도 이 법조에서 끝날 것으로 생각했어요. 로스쿨을 들어왔지만 들어와서 커밍아웃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로스쿨 들어온 이유는 그냥 커밍아웃 안 하고, 남자 변호사로 살면서 성 소수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왔어요. 실제로 저 주변에 그냥 법조인이 아닌 커뮤니티의 트랜스젠더분들도 “너 커밍아웃하면 끝난다, 너 법조계에서 대체 어떻게 커밍아웃할 것이냐, 말이 되냐“라고 했는데, 끝나진 않더라고요. 당연히 그게 항상 좋은 결과로 나온다고 볼 순 없지만, 그냥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게이 같은 경우에는 게이 법조회라고 있어요. 퍽퍽한 법조계 현실에서 게이다움을 잃지 말기 위한 게이 법조회가 있거든요. 한 오십 몇 명 있어요. 혹시 게이분이면, 거기를 가입해도 좋고. LGBT 법조회도 만들고 싶은데 아직 못 만들고 있지만, 아마 점점 만들어질 거예요. 현재 로스쿨생이나 현직 법조인을 대상으로 여름마다 ‘LGBTI 법률가대회’도 있어요. LGBTI 법률가들도 법조회의 형태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고요. 어쨌든 본인이 항상 모든 걸 드러내고 살 순 없지만, 어떻게든 숨을 틀 수 있고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 그런 것들이 점점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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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빈 :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따로 있으셨나요? 질문지에 없어서 아쉬웠던 점, 말하고 싶었던 게 있으신가요?

박한희 : 저희 희망법은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일동 웃음) 민변 회원분들 많이 후원해주세요.

월, 2017/11/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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