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초대] 제1회 사회혁신가포럼 in 광주

지역

[초대] 제1회 사회혁신가포럼 in 광주

익명 (미확인) | 수, 2018/03/21- 00:00
사회혁신, 익숙한 것 같지만 낯설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도통 모르겠는. 내가 하고는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싶은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각자 갖고 있는 물음을 이어, 변화의 물꼬를 전국에서 함께 만들어갑니다.

inno_forum_gwangju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근현대사아카데미 5월 현장답사는!
민주주의 함성이 타올랐던 5월, 뜨거웠던 광주로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방문한 광주.
올해에는 석가탄신일이 있는 때에 갔더니
광주까지 가는 길이 무지막지하게 막혔습니다......
자도자도 버스는 달리고 있고...ㅠㅠ

긴 시간끝에 드디어!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광주 첫번째 답사 장소는 5.18 자유공원이었습니다.
5.18 자유공원에는 상무대와 영창, 군사재판을 받았던 재판소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여성들이 시민군과 학생들에게 만들어 나누어줬다는
주먹밥 만들기 체험을 해봤습니다.
광주의 정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주먹밥'
밥과 김뿐인데도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는 주먹밥.
주먹밥을 만들어 앞과 옆에 앉은 사람들에게 먹여주고
나눠주며 그날의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광주의 나눔 정신은 따뜻했습니다^^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끌려와 고문과 조사를 받았습니다.
잡혀온 사람들을 조사를 통해 특A, A, B, C, D로 분류되었고
C와 D는 훈방, B는 삼청교육대로 보내졌고
특A와 A는 군사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영창에 수감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은 죄없는, 무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조사를 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고문을 가했고,
원하는 대답을 할때까지 그 고문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각본에 따라 만들어지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고문으로 거짓된 조사를 한 뒤 많은 사람을 영창에 가두어뒀는데
영창 안에서의 수감생활 역시 말도 안될만큼 잔혹했습니다.
움직여도 안되고, 마음대로 화장실을 갈수도 없었고
무조건적인 폭력이 수반되었던 영창 생활.
영창에서 6개월을 지내다 계엄이 해제된 후 일반 민간 수감실로 갔는데
지옥에 있다 천국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군사재판을 위해 만들었던 재판장 역시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사이사이에 함께했고,
조사했던 내용이 거짓이라고 말할경우 다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시는 분들은
5.18 당시 상무대로 끌려와 고문을 당하고, 수감생활을 했던 분들입니다.
시민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 한다는것이
쉽지 않은 일일텐데... 아니 고통스러울텐데도 당시의 광주를 잊지 않기 위해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해주시고 계셨습니다.



이후에는 오월지기 김용철 선생님께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먼저 5.18 민주묘역으로 향했습니다.

민주항쟁 열사들이 잠들어있는 구묘지에 들려 참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묘역에 놓인 투명한 함에 들어있던 편지를 꺼내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학생들이 남긴 편지들이 여럿 있었는데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열사에게 전하는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자신 역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행동하겠다는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광주 시민들이 잠들어있는 묘역이었습니다.
이곳에 잠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때마다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 언어장애가 함께 있었던 바람에 계엄군에게 가장 먼저 희생되었던 분...
이 분의 묘비에는 그 당시 1살이었던 딸이 17살이 되어 쓴 글귀가 새겨져있었습니다.

아빠! 늘 어디서든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은
저미게 뵙고 싶을때가 많아요.
한번만이라도 아빠를 불러보고 싶은 이 소망 아실련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나무 뒤에서 기다리다
군인의 조준사격에 그자리에서 사망했던 임신 8개월이었던 여성...

시민들을 위해 헌혈하는 짚차에 올라 헌혈을 하고
집으로 오던길에 계엄군 총탄에 사망했던 고3 여학생...

밖에서 놀고 온다더니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광주역에 아이가 죽어있다는 소식에 광주역으로 달려갔으나
시신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행불자로 남아있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까지.

우리 이웃들의, 평범함 일상생활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극적인 죽음입니다.



너무나 많은 시민들이 잠들어있는 이곳.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현재 진행중인 그 아픔과 고통을 대하는 시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흐릅니다.
다시한번 잊지말자! 기억하자!!
국가에 의해 희생되었던 이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망월동을 지나, 금남로에 있는 전남도청과 5.18 민주광장으로 왔습니다.
전남도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본부가 있었던 곳이며,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곳이었습니다.



아마 이 사진을 많이 보셨을것 같은데요. 이 곳이 바로 5.18 민주광장입니다.
중앙의 분수대를 기점으로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남도청은 새로운 모습을 준비중일까요.. 텅비어 있습니다.
광주의 상징!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홀로 덩그렇게 남아있는 모습이 외로워보였습니다.
 
도청과 5.18 민주광장을 뒤로하고 금남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하고, 차량시위를 했던 금남로.
그곳에서 청소년들이 모여 518페스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펄떡거리는 청소년들의 각자의 다양한 방식으로 광주를 표현하고 참여하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금남로를 따라 걸으며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도착했습니다.
35년만에 드디어!!!! 기록관이 생겼습니다.



작년에는 기록관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어서 방문을 할 수 없었는데
올해에는 기록관에 있는 전시물들과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광주의 시민, 학생들에게 보내는 손글씨, 그때의 사진들,
광주의 상황을 왜곡해서 전달했던 언론들,
그리고 사실을 전달했던 외국 언론 기사까지.

그 외에도 주먹밥을 만들었던 양은대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 등 많은 기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광주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
광주를 잊지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여서, 이런 기록관이 만들어진것 같습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며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가 광주를 기억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서울KYC 근현대사 아카데미 현장답사를 위해
애써주신 오월지기 김용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근현대사 아카데미 현장답사에 함께해주신

서울KYC 회원 및 지인분들, 감사합니다.

6월 근현대사 아카데미에도 함께해주세요!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5/06/02- 18:52
410
0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23명의 청소년들이 OO실험실에 모여 다양한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실험해봤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이 모여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궁금하시죠? 그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화, 2016/01/12- 10:55
400
0

2006년 3월 27일 희망제작소는 ‘21세기 실학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했다. 순수한 민간재정으로 움직이며 남이 잘 하고 있는 일보다는 아무도 관심이 없거나 소홀히 다루는 일들을 먼저 하는 시민의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다지며 첫 걸음을 시작했다.

그 후로 3년, 2009년 연례보고서에 당시 박원순 상임이사는 ‘이름을 잘못지어 웬 고생이람!’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다.

“처음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을 지을 때는 신이 났다. 그냥 OO연구소나 OO재단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따분했을까. 이제 ‘희망’의 ‘제작’은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시민의 희망을 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니 이제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따를 수밖에.”

2009년 ‘희망’이 위기를 만났을 때

3년 동안 희망제작소는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도 조금씩 성과를 쌓으며 시민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불만합창단, 시민창안대회 등 시민이 중심이 되는 사회혁신을 실험하고, 작은 기업을 지원하고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하며 사회적경제의 기반을 만들었으며,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서 활동했고, npo경영학교, 소셜디자이너스쿨 등 시민사회가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교육을 진행했다.

애초에 작정한 대로 ‘남이 하지 않은 일’만 골라서 하느라 고생이 심했지만 이런 것이 바로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굳게 믿으며 달려갔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더 큰 희망으로 확장하려는 즈음에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쳤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언의 압력이 희망제작소가 하고 있고, 하려는 일들을 모두 막아섰다. 당시 행안부와 3년간 위탁운영 협약을 맺고 시작했던 지역홍보센터는 1년 만에 하루아침에 협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와 맺었던 여러 사업계획도 모두 취소되었다. 밤샘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연구원들은 하나둘 일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출범 3년 만에 철저히 고사될 위기에 처했다.

희망을 품고 시작한 실험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좌초할 것인가. 과연 희망제작소는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시민’이었다.

‘시민의 힘을 믿고 가자!’

이 위기를 시민의 후원금으로 돌파하자고 결의를 하고 모든 연구원이 후원회원 모집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 당시 후원회원은 약 5백여 명이었다.

0505 0202 0404 0101 0303


희망에 투자하실래요?

목표는 시민 후원회원 1만 명을 모으는 것이었다. 시민 1만 명이 후원한다면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탄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시민참여라는 희망제작소의 취지에도 걸맞은 일이었다.

계획했던 사업이 엎어진 빈 시간은 후원회원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선뜻 지원을 약속한 시사 주간 잡지에 매주 다양한 콘셉트로 희망제작소 상황을 알리는 지면광고를 만들어서 실었다. 상임이사와 연구원들은 전국을 돌면서 강연을 하고 후원을 요청했다. ‘희망제작소를 아름드리나무로 키워 주세요!’라는 후원캠페인도 시작하면서 ‘희망’에 투자해달라고 호소했다.

5백여 명에서 시작한 후원회원은 시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서 2009년 말에는 약 6천여 명에 이르렀다. 계획한 1만여 명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연구원들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시민과 함께 했던 어떤 사업보다도 시민의 힘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제 희망제작소 곁에는 우리가 제대로 하는지, 나태하고 방만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6천여 명의 후원회원이 있다. 과연 ‘희망’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낼 것인가. 묵직한 책임감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도록 했다.


여전히 희망이 절실하다

2016년이면 희망제작소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한다. 1004클럽HMC, 강산애 등 희망제작소를 지키는 열혈 후원회원 그룹, 희망탐사대, 문화나눔, 감사의 식탁을 통해서 꾸준하게 만나 온 후원회원이 있어서 늘 든든하고 감사하다.

다사다난한 고비마다 시민 후원회원은 희망제작소를 지켜주는 다정한 벗이었고, 바른 길을 가도록 꾸짖는 준엄한 스승이었다. 가장 좌절했던 시련의 시기에 선뜻 손을 잡아주었던 시민 후원회원이 있었기에 지난 10년을 걸어올 수 있었다.

아직도 희망은 불안하고, ‘희망’을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로는 ‘도대체 희망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이냐’며 의문이 날아오고, ‘희망이 없는 시대에 제발 희망을 보여 달라’고 질책받기도 한다.

헤어날 줄 모르는 수렁에 빠진 경제와 불평등하고 불안한 사회는 점점 후원회원들의 발걸음을 돌아서게 한다. 2010년에 8천여 명에 이르렀던 후원회원은 약 5천여 명까지 줄었다.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재정 안정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희망제작소는 지난 10년이 그랬듯이 시민 후원회원의 힘으로 움직이는 싱크탱크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걸어 갈 희망의 길을 닦으려고 한다.

희망제작소는 시민 후원회원과 함께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힐 구체적인 정책으로, 더 깊이 있는 시민참여 활동으로, 후원회원과 밀착해서 소통하며 희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희망은 여전히 절실하다. 밤하늘의 별이 그렇듯이 어둠이 짙을수록 희망은 더 밝게 빛나는 법이다. 희망을 원하는 사회에 답은 여전히 ‘희망’이다.

우리 시대 희망이 간절한 분들께 한번 더 묻고 싶다. 희망에 투자하시겠습니까?

글_ 이원혜(시민사업그룹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화, 2015/08/04- 18:00
394
0
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까? 나에게 맞는 좋은 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좋은 일이 많아지려면 어떤 사회가 돼야 할까? 나에게 좋은 일, 우리 사회의 좋은 일 기준을 보드게임으로 찾아보자! 100%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에 의해 개발된 보드게임 ‘좋은 일을 찾아라’는 좋은 일의 다섯 가지 유형 중 내가 추구하는 유형을 알아보는 1부, 좋은 일이 많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알아보는 2부로 구성됐습니다. 청소년/취업준비생 진로교육, 직업 전환 교육, 노동인권교육, 평생학습, 시민교육 및 워크숍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 판매 수익금은 전액 희망제작소의 공익사업에 다시 사용됩니다.


설명서 구입신청 강사교육과정

금, 2017/05/12- 11:03
383
0

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동작구 대방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그 동네에서 삽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우리 동네 사는 맛에 흠뻑 빠졌습니다. 동네 한 켠에 자리 잡은 ‘동작주말농장’ 텃밭 덕입니다.

주말이면 텃밭에 나가 김을 매고 물을 주면서 동네 사람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군요.
상추와 옥수수, 고추가 자란 텃밭은 녹색의 쉼터가 되었고요. 같이 일구는 공간이 생기니
아파트로 빽빽하던 동네에 숨통이 트인 듯합니다. 이곳은 과거에 미군 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담장은 높고 정문은 굳게 닫혀 있던 땅입니다.

문득 대학 시절 활동하던 서울 성동구 행당동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그때의 행당동은 낡은 집들이 이어진 산동네였습니다.
대학생이던 저와 동료들은 그곳의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소풍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세입자였던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저항했지만,
건설회사 용역을 앞세운 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와 동료 교사들은 아이들과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로 시작되는 노래 ‘땅’을 기타를 치며 불렀습니다.

땅이 문제입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이 ‘땅’과 관련해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원래는 영국의 전통적 중간계급인 ‘젠트리’(gentry)에서 나온 말인데요.
도심 노후 주택 지역에 중산층 이상이 유입되어 고급화되면서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홍대∙삼청동∙가로수길 변화시키는 이것⋯‘젠트리피케이션’의 뜻은?)

그 예로 서울의 홍대 앞, 북촌, 서촌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인이나 사회혁신가들이 모여들면서 지역의 가치가 높아진 뒤, 땅값과 임대료가 올라
정작 처음 이 지역을 일구었던 토박이들은 떠나고 수익성 높은 상점들이 빈 자리를 매꾸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요.
땅을 가진 이들에게는 좋은 현상이겠지만,
땅이 없는 이들에게는 땀 흘려 일군 가치를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가혹한 일입니다.

최근 젊은 사회혁신가들이 모여들어 소셜벤처, 사회혁신단체 등을 만들면서 화제가 된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오고 있나 봅니다. 화제가 되면서 이미 땅값이 많이 올랐다는데요.
성동구청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례제정을 통한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지역의 진정한 가치는 지역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이 가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어 눈여겨볼 만합니다.
(관련 기사 보기:“토박이 밀려난 서촌처럼 되지 말자”…‘뜨는 동네’ 성동구의 실험)

깨알 같은 홍보를 하자면,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 ‘목민관클럽’ 회원입니다.

내친김에 더 소개를 드리지요. 희망제작소는 ‘도심 속 공동체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연구와 실행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서울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도서관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target="_blank">내 아이만 생각했던 마음이 공동체 전체로 ‘활짝’)

‘땅’은 이중적 공간입니다. 사익을 위한 투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함께하는 삶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텃밭이나 작은도서관, 놀이터 같은 공간은 공동체의 기반을 다지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대방동 텃밭 옆에는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의 청년 활동 공간도 자리 잡았습니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사무실에 입주한 청년 혁신가들은 오늘도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지에 대해 궁리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 건축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텃밭 옆 공터에 1인 가구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저밀도 주택’을 지으면 좋겠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텃밭 옆 땅 덕분에 동네에는 청년들의 젊음과 혁신적 아이디어도 넘칩니다.
한국 사회 미래를 꿈꾸며 잠시나마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일구는 공간이 꿈을 주고 도시의 숨통을 틔워 줍니다.
우리의 도시가 시민이 함께 일굴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곳이 되도록, 희망제작소가 힘과 지혜를 보태겠습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는 길을 고민하며 쓴 ‘이원재의 희망편지’는 2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발송됩니다.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이원재의 희망편지’에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수, 2015/07/15- 14:00
38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