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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의요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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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의요구를 촉구한다

익명 (미확인) | 화, 2018/03/20- 17:18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의요구를 촉구한다.

 

광역시도의회의(시∙도의회)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시키고 있다. 시∙도의회를 독식한 거대 양당으로 인해 시∙도선거구획정위원회가(획정위) 제출한 3~4인선거구가 2인선거구로 대폭 쪼개졌기 때문이다. 

 

부산시의회는 획정위가 제출한 4인선거구 7개를 모두 2인선거구 14개로 쪼갰다. 인천시의회는 4인선거구 4개로 모두 2인선거구로 3인선거구 2개를 2인선거구 3개로 만들었다. 대구시의회는 4인선거구 6개를 2인선거구 12개, 대전시의회는 4인선거구 2개를 모두 2인선거구로 하는 수정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부산, 인천, 대구, 대전은 4인선거구가 0개가 되었다.  

 

중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2~4등까지 당선되는 제도이다. 자치구∙시∙군의회 중선거구제는 다양한 정치세력과 여성 및 청년 등 정치신인의 의회 진출을 가능케 하기 위해 2006년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2014년 지방선거 결과 서울 2인선거구 111곳, 인천 2인선거구 16곳, 대전 9곳에서 새누리와 새정치민주연합만이 당선됐다. 2인선거구는 거대 정당의 의석 독식을 가능케 해 중선거구제의 취지를 왜곡한다. 전국의 시민사회는 지방의회의 다양성과 풀뿌리 지방정치 발전을 위해 2인선거구 축소와 3~4인 선거구 확대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시∙도의회는 폭거 수준의 선거구 쪼개기를 자행했다. 이는 민심을 외면하고 기득권에 목매는 구태와 적폐 그 자체이다.

 

전국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시∙도의회의 선거구 획정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의를 요구한다. 시∙도의회의 결정은 지방의회의 획일화와 풀뿌리지방정치 발전을 현저히 후퇴시킬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3월 21일까지자치구∙시∙군의회 선거구 획정이 되어야 하므로 아직 시간은 있다. 

 

또한 이번 시∙도의회의 결정은 적법한 절차를 밟아 심사숙고한 획정위안을 존중하지 않았다. 획정위는 공직선거법에 근거를 두고 설치된 기구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을 대표하여 위원을 구성하고 인구·행정구역·지세·교통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를 획정한다. 또한 공직선거법에는 ‘시·도의회가 자치구·시·군의원지역구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는 때에는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획정안을 존중하여야 한다’ 고 되어 있다. 

 

우리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출하여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길 원한다. 또한 시민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진전시킨 민주주의의를 시∙도의회가 후퇴시키도록 두고 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민주주의와 풀뿌리지방정치 발전을 위한 민심을 받아드려야 한다. 다시 한 번 지방자치단체장의 자치구∙시∙군의원선거구획정에 대한 재의요구를 강력히 촉구한다.  끝.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경기북부참여연대 / 대구참여연대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 부산참여연대 /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 여수시민협/울산시민연대 / 익산참여자치연대 / 인천평화복지연대 / 제주참여환경연대 / 참여연대 / 참여와자치를위한춘천시민연대 / 참여자치21(광주) /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 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전국20개단체)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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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찰 신고 거부한 강용주 무죄 환영

검찰은 항소 포기하고 법무부는 이중처벌 논란 보안관찰법 폐지 나서야

 

지난 2월 21일,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강용주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법원은 강용주씨에게 신고의무가 생기는 보안관찰 갱신처분에 대해, 재범의 위험성이 높아 보안관찰 처분을 갱신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이 보안관찰제도가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제약하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재량적 판단만으로 보안관찰 처분을 남발해온 법무부와 신고의무 위반만으로 기소를 해온 검찰에 다시금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무엇보다 검찰이 1년을 구형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의 이와 같은 판단을 존중하고 항소를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 

 

강용주씨는 1985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99년 석방됐다. 하지만 보안관찰법에 따라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 18년 동안 보안관찰 처분을 받아왔다. 보안관찰 대상자가 되면 3개월마다 소득, 재산, 가족상황은 물론이거니와 여행, 이사, 교우관계, 단체가입을 비롯하여 주요 사생활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만 한다. 강용주씨는 이러한 신고의무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기소된 것이다.  

 

검찰은 “강씨가 받은 고통에 공감한다”면서도 “보안관찰 갱신 결정은 재범 위험성 등에 따른 적법한 처분”이라며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은 바로 이와 같은 법무부와 검찰의 관행적이고 습관적인 보안관찰 처분에 경종을 울리고, 보안관찰 사유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무부는 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보안관찰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을 남용하여, 그러한 구체적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보안관찰 처분을 남발해왔다. 보안관찰 처분 판단 또한 법원이 아닌 법무부가 2년마다 갱신을 판단하고 있어, 이중처벌, 양심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강용주씨 판결을 계기로 보안관찰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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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2/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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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실사, 노동자 측 참여 보장하여 
GM본사의  부실경영 의혹 제대로 밝혀야

GM측에 면죄부 주는 형식적이고 짜맞추기식 실사 되선 안 돼

인건비 제외해도 한국GM 원가율 높아, 노동자에게 경영위기 책임 전가 안 돼 

이번 사태 계기로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원칙과 방향 재정립하고 
민간기업 지분 다량 보유한 산은의 반복된 직무유기 해결방안 모색해야 

 

한국GM이 2018.2.13.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한 뒤, 2018.2.22. 정부가 발표한 한국GM 관련 관계기관 면담 결과(https://goo.gl/WQhFrR)에 따르면, 정부는 GM측에 한국GM의 경영정상화 지원여부 검토를 위한 3대 원칙을 제시하고, 경영정상화 방안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GM은 이에 동의했다. 또한 양측은 한국GM의 경영상황 판단을 위해 재무실사를 실시하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같이 정부와 GM본사가 GM문제 해법 마련에 함께 나선 것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고려가 앞서 제대로 된 실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기업부실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온 기존 구조조정 관행을 다시 답습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GM의 재무구조 부실화 원인과 관련하여 ▲고금리 대출 압박, ▲높은 납품가격 전가, ▲과도한 연구개발비 징수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실사를 통해 이번 GM사태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실사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특히 이번 실사를 통해 GM본사가 이른바 ‘본사 배불리기’를 하다 한국GM을 부실화시켰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한국GM 부실 의혹의 구체적 측면은 매우 다양하다.

첫째, GM본사 주도로 이루어진 과다한 차입금 부담 문제가 있다. 언론(https://goo.gl/3C4Ji4)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GM은 GM관계사에 5%대 연이율로 4,620억 원의 이자를 지급했다. 이는 일반적 국내 완성차업체 차입금 이자율의 2배가 넘는 수치로, 고금리대출 의혹의 논거가 되고 있다.

둘째, 한국GM과 GM관계사 간의 비정상적인 이전 가격(transfer price)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GM이 GM본사로부터 필요부품을 비싼 값에 수입해 반조립식 차량을 제조한 뒤, 해외계열사에 원가 수준의 가격을 받고 재수출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GM의 매출원가율(매출액중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공장 가동률이 높았던 2013년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90%대였다. 한국GM의 매출원가율이 높은 이유로 인건비가 지목되기도 하지만, 한국GM의 원가율은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현대자동차, 기아차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최근 5년 평균 인건비 제외 원가율은 한국GM 83.1%, 현대자동차 66.2%, 기아차 69.2%이다.

셋째, 과다한 각종 비용의 전가 문제다. 한국GM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5년 간 기아차와 비등한 7조 2,026억 원을 연구개발비용으로 지출했으나 무형자산은 0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GM본사에 대한 연간 수백억 원의 업무지원비 부담, 한국GM 자회사인 ‘쉐보레 유럽’ 철수 부담 전가 등 한국GM이 경영악화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GM측은 한국GM의 인건비 등 이른바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이번 경영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GM측이 의도적으로 한국GM의 손실을 부풀렸다는 논란이 있으며,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14년 GM대우 회계장부를 보면, 과거 쌍용차 대량해고 사건에서 회계조작의 주된 수법으로 지목받은 ‘유형자산 손상차손’ 항목이 급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회계실사를 통해 한국GM의 불공정한 매출원가 및 이전가격 압박, GM본사와의 고금리대출 의혹 등이 반드시 해명되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손실 부풀리기’로 인한 고의적인 법인세 포탈 의혹 역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GM의 경영 위기를 공정하게 진단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만큼, 이번 경영위기의 가장 큰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동자 측을 대표하는 전문가 등이 이번 실사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또한, 이번 GM사태의 진행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산업은행의 직무유기 문제도 정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2대주주임에도 이번 군산공장 폐쇄 결정 과정에서 최근까지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지난 대우조선해양 및 성동조선 등의 부실화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 그간 정책금융기관들은 부실기업의 관리와 회생에 적극적 역할을 하기보다, 눈앞의 위기를 뒤고 미루면서 부실기업을 퇴직자들을 위한 낙하산 인사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태도만을 보여 왔다. 따라서 민간기업의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이번 기회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확한 원칙과 방향을 수립하고, 구조조정이 경제 전반 및 노동자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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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2/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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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회원여러분들께 안녕하세요. 2016년 2월말부터 참여연대 사무처에서 사무처장직을 수행해왔던 박근용과 안진걸입니다. 

그동안 <통인동편지>와 <참여사회> 등을 통해 참여연대 활동 소식을 전해왔는데, 오늘은 저희 두 사람이 임기 2년을 마치고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소식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저희 두 사람이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직의 임원으로 상근한 3년까지 하면 5년 동안의 협동사무처장-사무처장으로서 상근 처장직을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가 사무처장직을 맡았던 2016년과 2017년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국민들의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박근혜 탄핵에 이은 조기 대선이 실시되었고, 새 정부 출범 후 적폐청산과 개혁정책 추진이 이어진 기간이었습니다. 한국 사회 변화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남을 지난 2년 동안 저희 두 사람이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수행하며 변화와 개혁의 흐름속에 있었던 것 자체가 큰 행운이자 행복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랬겠지만 지난 2년 동안, 참여연대는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 힘과 회원님들이 계셔서 참 든든했고, 그래서 저희들도 시민활동가로서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비상근 임원님과 상근자들의 열정과 수고, 그리고 1만 5천여명 회원님들의 성원과 참여 덕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2월 24일 열린 참여연대 운영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신임 사무처장으로는 지난 4년동안 협동사무처장으로 수고해 온 박정은님이 선임되었습니다. 박정은 신임 사무처장은 참여연대 활동경력이 18년에 이르고 많은 장점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에 저희들 마음이 든든합니다. 앞으로도 참여연대는 박정은 새 사무처장과 함께 흔들림없이 회원님들과 함께 더 좋은 진보와 개혁을 길, 민주와 민생과 평화가 골구루 안착되고 발전하는 여정을 힘차게 걸어갈 것입니다. 

사무처장 임기는 공식적으로 종료하게 되었지만, 저희 두 사람 모두 참여연대 상근자이자 건강한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시민사회운동을 이어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회원님들이 모이시는 곳, 참여하시는 현장 곳곳에서 계속 반갑게 뵙게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3월 3일 참여연대 정기총회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족했던 저희들을 늘 성원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근용, 안진걸 드림
 
 

"박정은 신임 사무처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안진걸, 박근용 공동사무처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신임 사무처장 박정은입니다.

두 처장을 포함해 역대 참여연대 사무처장들이 보여주었던 책무와 헌신에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참여연대를 응원해주시는 많은 회원님들과 임원들 그리고 누구보다 든든한 상근자들이 함께하기에 그 무거운 자리를 이어 받습니다.  당연하게도 참여연대가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매섭게 감시하는 활동에는 중단이 없습니다. 때로는 더 적극적으로, 때로는 긴 호흡으로 활동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박정은 드림
화, 2018/02/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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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가 옥상옥? 야당의 반대가 안타깝다

 

[공수처 수첩①] 공수처 설치, 국민의 명령이다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답은 공수처 밖에 없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고, 없는 이들에게 가혹한 한국 검찰.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정권에 따라, 입맛에 따라 휘두를 때마다 시민들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수사기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요구해왔습니다. 현직 검사의 성추행 폭로와 수사 외압 의혹까지 제기된 지금, 검찰의 '셀프 수사', '셀프 개혁'은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공수처 설치를 막고 검찰개혁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공수처 반대 입장을 바꾸고 20년 간 묵혀왔던 사회적 과제인 공수처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경실련, 민변, 참여연대, 한국투명성기구, 한국YMCA전국연맹, 흥사단)>은 공수처 법안을 논의해야 할 국회 사법개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모니터링하고 국회를 압박하는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바로가기).

 

 

지난 1월 초 구성된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가 사실상 멈추어 서면서 촛불혁명의 여망이 담긴 사법개혁의 시계가 갑자기 흐려졌다. 입법권까지 부여받으며 기대어린 시선을 받으며 출발하던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여야정쟁이라는 불쑥불쑥 나타나는 괴물이 또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새 정부 초기로 골든타임의 시기인 만큼 개혁법안들이 줄지어 서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서로 협력하여 개혁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책무를 진 시기이다.

 

사개특위는 검찰개혁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검찰개혁은 검찰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제받지 않은 권력기관으로 급성장해 온 검찰을 제 자리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비위만도 자동차검사사건, 성추문검사사건, 전관예우사건, 주식대박검사사건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검찰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좋은 예다.

 

문제는 이러한 비위행렬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검찰은 인권의 보루로서 자임해 왔기에 최근 드러난 검찰 내 성폭행사건으로 참으로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검경의 관계에서 인권의식은 검찰의 생명선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작 검찰 내부에서는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용기 있는 한 여검사의 폭로로 세간에 알려지게 되면서 미투(Me too)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일로 현직부장검사가 구속되었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에 한 없이 약한 검찰의 모습이 연일 언론 주요면을 차지하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BBK 주가조작사건, 다스 실소유자사건 등 줄줄이 무혐의 처리되었던 MB 관련 검찰수사 결과가 그것이다. 당시 검찰수사의 불신에서 비롯된 특검조차도 부실수사의 주범이었다니 도대체 믿을 구석이 없는 것이 우리 사법의 현주소다. 급기야 지난 해 12월 참여연대는 당시 BBK 의혹을 수사한 정호용 특별검사를 특가법상의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로서는 "이게 사법이냐?"고 반문할 만하다.

 

인권지킴이라는 검찰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 행위를 경험하고, 검찰을 못 믿어 구성한 특검이 검찰에 고발당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총체적 사법난국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하여 왔던 검찰에 대한 개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특검조차도 검찰의 수사대상이 된 것을 보는 국민은 허탈한 심경이다. 특검무용론이 종종 대두되어 왔지만 이 지경에 이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공수처 논의 제자리걸음, 조직이기주의 때문

 

공수처는 2006년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차례나 입법발의 되면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이는 그만큼 검찰개혁에서 공수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의미한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공수처 설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은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한다는 각종 여론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국회에서만 6개의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 여전히 공수처를 옥상옥으로 보기도 하나 검찰의 권한을 떼 내어 새로운 기구를 설치한다는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까지 공수처 논의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은 관계기관들의 조직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특히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수사권조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검찰은 최악의 경우 공수처를 받아들이고 수사권조정에는 반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반하여 경찰은 수사권조정을 관철시키려는 욕심에서 공수처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검경간의 제각각 셈법에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까지 맞물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공수처는 수사권조정과 함께 검찰개혁의 하나로 주장되고 있지만 서로 별개라는 사실이다. 국민이 원하는 검찰개혁의 방향은 "수사권은 경찰이, 기소권은 검찰이" 각각 행사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공수처는 단순히 검찰개혁만의 문제에서 나아가 장차 비대한 수사권을 행사하게 될 경찰에 대한 견제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검찰이 공수처로서 수사권조정을 견제하고 경찰이 수사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공수처를 경계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는 공수처와 수사권조정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여기다 자치경찰까지 끼어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자치경찰 실시를 공식화하고 게다가 최근 서울시가 완전한 자치경찰을 들고 나오면서 검찰로서는 수사권조정에 대한 방패막이 생긴 형국이다. 하지만 수사권조정이나 자치경찰 모두 국민을 위한 권력구조의 재편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이는 제도 서로 간에 선후나 전제조건이 아님을 분명히 해 준다. 검찰은 행여 자치경찰을 빌미로 수사권조정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경찰 또한 수사권에만 관심을 가지고 공수처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현재 공수처는 그 설치 여부를 결정만 하면 되는 단계에 와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미 6개의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으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 및 법무부안도 제시되어 있는 상태다. 이들을 국회에 펼쳐놓고 적정한 법안 내용을 가려 채우면 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일부 야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음이 안타깝다. 옥상옥이라는 이유를 들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방안을 강구하자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그 대안으로 공수처가 주장되어 온 점을 고려하면 순환론적 오류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법개혁특위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타개책으로 여야합의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설치 1개월이 지나도록 구체적으로 논의할 소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의 뭇매에 못 이겨 우선 기관업무보고를 받은 후 소위를 구성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국정농단 사태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공수처 설치는 절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국민의 명령이다. 더 이상 머뭇거려서도 안 되고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화, 2018/02/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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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의 발전사
: 87년 이후 30년의 교훈

글.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적폐’. 오랜 시간에 걸쳐 겹겹이 쌓인 폐단을 뜻한다. ‘적폐청산’. 두터운 층위를 이룬 폐단을 들춰내고 이로부터 단절하는 것을 말한다. 그 적폐의 지층이 깊고 전반에 걸쳐 스며있다면 이를 폐절(廢絶)하는 것은 부단한 일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 적폐를 인식하기조차 싶지 않을 것이다.

 

공통된 인식하에 즉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적폐들, 즉 권력집단과 그들의 강고한 동맹은 미약하게나마 해체의 과정을 겪고 있다. 저항이 빈발하지만, 촛불 이후 ‘국가의 정상화’에 대한 국민적 상식은 그들을 명확히 부패동맹으로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적폐의 잔뿌리라면? 심연의 근본적이고 역사적인 거대한 한계 또는 모순이라는 원뿌리의 파생물이라면?

 

촛불이라는 단절적 계기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실재적인 내용으로 채우려면 수동적인 청산이 아닌 그 원뿌리 즉, 구조적 원인을 발견해야 한다. 이는 한국 발전모델의 역사적 경로를 추적하고 그로부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저개발국가로서 한국이 걸어온 압축적 발전 경로를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적폐의 원뿌리를 발견하고 민주적 자본주의 모델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지난 23일, 이병천 강원대 교수를 모시고 <참여사회포럼 :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한국 모델의 교훈>을 개최했다.

 

이병천

 

‘다원적 개발주의’라는 보수적 대안

이 교수는 한국의 경제발전사를 유형화하며 한국모델의 보수적 경로와 민주적 경로를 추적했다. 우선 보수적 경로로서 권위주의적 근대화체제의 박정희 모델을 살펴봤다. 이 모델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압축·고성장의 국가주도 후발 추격발전, 독일과 일본의 계보를 잇는 ‘반동적 근대화’(국가-재벌동맹), 6·25전쟁 경험과 남북 대결주의의 응축으로서 극우적 반공안보국가라는 삼중의 속성을 띄고 있다. 이른바 극우반공적 개발주의라는 예외주의적 체제가 성장 ‘기적’과 적폐 축적의 이중주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국가와 재벌의 지배복합체가 주도하는 개발주의 체제하에 한국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성취했지만, 그 이면엔 국가의 의한 특혜적 지원, 노동자 및 국민의 희생, 재벌에 의한 국가 포획과 정경유착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국가 공공성의 붕괴를 낳았다. 이는 곧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타락하는 퇴행적 경로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를 계승·발전한 노태우 정부는 개혁적 보수의 가능성의 길로서 새로운 대안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는 다소 도발적인 해석인데, 성장지향 개발주의가 국가 재벌의 수직적, 폐쇄적 동맹 틀을 일정하게 벗어나 민주화 시대에 표출된 다양한 이해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개발주의의 다원주의적 진화 경로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 시기에 사회경제의 제도적 조절양식, 노동체제 형성, 재벌에 대한 규제력 획득, 토지공개념 3법 입법·시행, 대외개방 관리의 결과로 소득분배 개선, 소비구매력 증대, 실질임금 상승, 노동시장 유연화 억제 등 국민경제의 안정을 이루었다. 이로부터 [수출 내수의 공진-고투자 성장-유연화가 규제된 고용확대-가계저축]의 거시회로가 선순환을 이루는 축적체제가 작동했고 이 교수는 이를 한국 경제발전사에서 보기 드문 경로라고 평가했다. 물론 다원적 개발주의는 효과적인 재벌규율체제의 결핍, 경영권의 과잉보호와 재벌의 금산복합체적 성격, 자본에 대한 노동의 견제력 미약,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등 한계점이 있었지만 보수적 대안 경로로서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폴라니적 모순에 처한 ‘자유·복지주의’ 대안

그렇다면 민주적 경로는 어떤 경로를 밟아왔을까? 이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중도자유주의적 대안을 ‘자유·복지주의’라 명명했다. 이는 시장지향과 복지확대, 관치경제 폐해 및 규율공백 상태로부터 탈피, 정치적 노동기본권 신장, 노동부문의 확대(민주노총의 합법화, 노사정위원회)를 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기업-은행, 대-중-소기업, 완제품-부품 생산관계 등에서 위험공유와 자기조정시장의 양식이 해체되면서 노동 유연화, 고용불안, 고용정체를 가져왔고 부동산 규제 정책들이 전면적으로 완화되거나 폐기되었다.

 

이로써 [수출독주-투자양극화-저성장-불안정노동확대-가계부채폭등-부동산투기]의 악순환에 빠진 축적체제가 등장했고, 이러한 ‘과잉’ 시장자유화의 부정적 결과를 방어하기에 생산적 복지는 턱없이 ‘과소’했다. 민주정부 하에서 벌어진 이러한 실패를 이 교수는 ‘폴라니적 모순’(과잉시장과 과소복지간의 모순)이라 표현했다. 이후 자유·복지주의 노선은 5년간 지속되었지만, 이전 시기 개혁의 경로 의존적 성격으로 도리어 저임금, 고용불안이 만성화되었고 자본의 고삐는 한층 더 느슨해졌다. 

 

민주화의 역설, 불편한 진실

한국의 근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중혁명을 꽤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절반의 진실만 보여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의 극우반공 개발주의라는 유산과 민주화 시대의 시장주의/신자유주의가 낳은 이중적폐 유산의 공존 위에 서 있다. 이 교수의 분석대로 97년 이후 10년, 자유복지주의 대안이 87년 초기 다원적 개발주의 대안을 능가한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화의 중대한 역설이자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이러한 뼈아픈 진실 앞에서 민주개혁세력은 어떤 발전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한국은 자신의 역사에서 민주적 자본주의의 준거점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은 포럼 전체를 관통하는 무거운 질문이다. 아직 민주개혁세력은 역사에서 대안적 경로를 성공적으로 보여준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은 민주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에 곧바로 향한다. 적폐청산 이후의 사회를 구성하려는 진보적 시민운동 진영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역설적 진실이라는 적폐의 원인에 해당하는 원뿌리를 마주하고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안적 경로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이라는 수동적 개혁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며, 지난 광장의 항쟁이 ‘혁명’으로 명명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수, 2018/02/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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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참여연대 회원토론회

와글와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출발

 

글/사진. 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단체샷

 

참여연대의 힘은 회원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회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1월 20일, ‘2018 참여연대 회원토론회 와글와글’을 열었습니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날씨에도 어렵게 시간을 낸 70여명의 회원이 함께 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찼습니다. 지난해 1월 회원토론회는 어두운 시대에 머물러 답답한 마음이지만 이제 시민의 힘으로 새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냈다는 자부심,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찬 시민들, 그 속에서 참여연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회원들은 다섯 가지 토론 주제 가운데 관심 있는 주제 두 가지를 정하고, 각각 두 번의 모둠토론을 가졌습니다. 적폐청산, 사회안전망, 한반도평화,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일, 그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토론은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회원들은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립,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사회, 교육 개혁 등 여러 분야에서 의견을 냈습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았고,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참여연대가 더 많이 활동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한 집권 2년차를 맡은 문재인 정부는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개혁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재계, 보수언론 등은 국정원과 검찰개혁, 최저임금을 시행하는 데 저항하고 있습니다. 개헌과 함께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참여연대는 회원들의 의견을 듣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참여연대의 2018년 활동방향은 매년 3월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결정되며, 이날 회원들이 내주신 의견은 정기총회에 반영될 예정입니다. 참여연대 상근자와 임원들은 언제나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민과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토론2 토론

 

회원토론회에 나온 소중한 의견 

 

주제 1 적폐청산과 국가기관 개혁을 위해 집중 

감시해야 할 국가기관이나 개혁 과제

 

“촛불시민의 목소리가 정치에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법개혁의 첫 단계 공수처라고 봅니다. 이때 권력기관끼리 힘겨루기가 일어날 것 같은데요, 서로 포용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기관 간의 의견 충돌이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데, 이때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의 역할이 필요할 것입니다.”

“국정원특활비, 국회특활비 등을 감시하고 제도개혁을 해야 합니다.”

“김영란법을 강화하고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합니다.”

 

주제 2 사회 안전망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개선해야 할 과제

 

“최저임금이 올라서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 떠는 여론 너무 황당해요. 사실 문제는 카드 수수료, 임대료인데 이 부분은 왜 말하지 않죠?”

“청년기본법이 몇 해째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청년의 팍팍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올해는 국회 통과를 기대해 봅니다.”

“돌봄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한순간도 쉴 수 없죠. 가사노동자에게도 4대보험이 적용해야 합니다.”

 

주제 3 개헌과 지방선거에 대한 참여연대의 대응과제

 

“헌법 개정에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시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한 개헌이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과도한 임명권을 축소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무원의 정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기초의회 3~4인 선거구가 확대되어야 하고, 18세 투표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주제 4 한반도 평화와 외교안보 분야 민주화를 위한 주요 과제

 

“한때 남한과 북한은 많은 우편물을 서로 교환했습니다. 남북한 이산가족이 교류했고, 남북철도도 이어지는데 우편물 교류도 되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는 1,500개의 우체국이 있다고 합니다. 편지도 오가고, 물자도 우편으로 주고받고 하다 보면 경제적 지원, 물자지원을 통해 장차 있을 통일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통일과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통일의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통일은 나에게 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 많아서 걱정스럽습니다. 세대 간 통일에 대한 시가의 차이 참여연대가 나서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주제 5 더 많은 시민, 회원과 함께하는 참여연대 만들기

 

“청소년 회원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에게 맞게 홍보물을 제작하실 수는 없을까요?”

“지역별 직종별 모임을 조직하면 회원들끼리 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티셔츠, 기념품 등 굿즈 제작 판매해봅시다, 참여연대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많이 살 것 같아요. 참여연대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일 듯합니다.”

“『참여사회』가 시사성 있는 이야기를 잘 다루고 기획도 좋습니다. 혼자서 읽는 것도 좋지만 같이 모여 읽는 공부 모임 같은 것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회원들끼리 모여 읽으면서 토론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수, 2018/02/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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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대통령만 바뀌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직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찾아보다 사법 권력을 감시하는 참여연대를 후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 소식을 듣고 가입을 결심한 회원이 남겨주신 한 마디입니다. 아직 시민의 힘이 더 필요한 때입니다. 적폐청산과 공수처 도입 등의 개혁입법, 시민참여 개헌, 지방선거 등 2018년에도 참여연대는 비상한 각오로 뛰어가겠습니다. 

 

지금, 참여연대 회원은 14,733명!

 

참여연대는 더 많은 회원들과 함께 ‘함께 만드는 꿈’을 실현 해 나가고 싶습니다. 정부지원금 0%, 참여연대가 꿋꿋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는 회원님들을 소개합니다.

※ 2018년 2월 19일 기준 회원 수

 

 

한결같은 10년지기 회원님

김남일 김수겸 김신영 김영재 김은경 김인희 김재경

김종득 김중훈 김진용 김태진 김형준 김희식 나영희

노현웅 박미란 박일형 배대현 백승호 오형민 우현욱

윤희석 이녹석 이명훈 이상길 이성로 이승훈 이인규 

장용진 정성섭 정준호 최병호 최세규 최우락 하윤빈

한경수 한대희 한만우 한희구 황성기 황지영 황진하 

2008년 1월 1일부터 2008년 2월 28일 사이에 가입하여 현재까지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42명. 가나다 순

 

김재경 회원 (2008년 2월 21일 가입)

경북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시도 목장을 비울 수 없어요. 정치 상황을 보면서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힘이라도 보태려고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참여연대가 꾸준히 검찰, 사법개혁 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상황이 바뀐 만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사는 동안 참여연대 회원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든든한 버팀목, 20년지기 회원님들

김동훈 김명구 김명환 김영균 김영호 김진방 안연화

양선영 유정근 윤여동 이상경 이재관 정원오 조형곤

한정훈 허    선 허영판 홍수옥 

1998년 1월 1일부터 1998년 2월 28일 사이에 가입하여 현재까지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18명. 가나다 순

 

한정훈 회원(1988년 1월 22일 가입)

옛날 참여연대 사무실이 용산에 있을 때, NGO 학점을 이수 했었어요. 그때는 학생이라 회원 가입을 못하고 취업 후 바로 회원 가입했어요. 예전에 비해 시민단체가 다양해지고 역할도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는 활동을 참 잘해요. 예전엔 안국동 사무실에 가끔 방문하고 통인동으로 이사했을 때도 갔었는데 최근에는 방문하지 못했네요.

 

친구나 이웃을 회원으로 이끌어 주신 회원님

고정흡 김남희 김선휴 김은정 김현우 박호성 송상윤

심현덕 신철식 안진걸 오지연 이상준 이선종 이은미

이재은 이종희 이충호 이헌욱 임세은 임지봉 장운기

조희원 주은경 홍정훈

2017년 12월 21일에서 2018년 2월 19일 사이에 신입회원을 추천한 24명. 가나다 순

 

이재은

이재은 회원 (2014년 11월 15일 가입) 

오랜 친구인 유미와 영화 <1987>을 함께 봤어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미에게 권력감시를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라며 참여연대를 추천했어요. 유미는 그날 바로 참여연대에 가입했고요. 제가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쌓은 좋은 경험도 많아서 친구에게 더욱 자신 있게 참여연대 가입을 추천할 수 있었네요. 

 

이충호

이충호 회원 (2017년 2월 6일 가입) 

2016년 겨울 문턱에서 주말마다 세종로에서 효자파출소로, 종로경찰서 앞을 함께 누비며 목이 터져라 탄핵을 외친 우리는 촛불 동지입니다. 험난한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열사들의 질곡을 보았고, 조직되지 못한 시민들의 미완의 역사도 함께 경험했지요. 그래서 또 예전처럼 실패해선 안 된다고, 이제는 조직된 시민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동네 참여연대’ 관악동작 모임에서 제 초등학교 동창이 회원으로 함께하게 되었네요. 

 

반가운 새얼굴, 신입회원님

강석진 강우석 강진석 강혜미 강혜빈 고범준 고우현

고윤희 고재훈 고현호 공현주 곽희신 구영규 구희철

권영이 권오범 권창섭 김가임 김갑수 김경환

김기성 + 이영숙 김대하 김대희 김덕우 김도연 김동립

김동욱 김두섭 김명수 김명지 김미선 김미자 김민경

김민수 김석준 김선욱 김성철 김성희 김소엽 김솜이

김수연 김수진 김언경 김영근 김영복 김옥수 김용진

김원식 김은경 김은주 김정숙 김종명 김종성 김종휘

김준형 김준호 김지원 김진규 김춘희 김치연 김태희

김형철 노승현 당효준 류영숙 류호식 문정희 문지영

민병준 박광진 박동철 박미애 박범일 박병현 박선아

박세증 박소영 박수진 박안상 박용찬 박원식 박은정

박은향 박은환 박준희 박진수 박진우 박철수 박홍배

배진수 배혜미 백성철 변형준 서봉원 서영준 서진웅

성도현 손성배 손종진 송    승 송정숙 송정오 신유한

심홍주 안예슬 안정현 안준연 안휴대 양미라 양순애

양재천 양혜원 엄인범 여인수 오유미 오윤경 오지윤

우덕주 원경재 유명숙 유성균 유용수 유진현 윤세라

이경미 이경석 이다영 이동훈 이두성 이명재 이범석

이상준 이소영 이애형 이연주 이영준 이용신 이유진

이윤상 이인규 이자원 이정은 이정화 이정훈 이종우

이지연 이지혜 이진아 이진영 이철우 이치홍 이태기

이혜숙 이희예 임세은 임승현 임승희 임재민 임재은

임채호 장보현 장유선 장은경 장해영 전미라 정미현

정병옥 정서윤 정세희 정종인 정지윤 정찬수 정창열

정한교 정해남 정헌철 정형범 정환봉 조수행 조영남

조영철 조영철 조예선 조윤아 조해인 준텍(주) 채미현

채분옥 천필홍 최경숙 최명희 최병철 최성락 최성영

최은주 최진경 최현수 최호걸 하종우 한상길 한은희

함선호 홍순태 홍영두 홍영희 황윤희

2017년 12월 21일에서 2018년 2월 19일 사이에 가입한 207명, 가나다 순

 

임재민

임재민 신입회원 (2018년 1월 3일 가입) 

일반 소시민인 제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시민단체라고 생각해 함께할 곳을 찾다보니 행동하는 분들의 뜨거운 열의와 올바른 방향성, 투명성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이 참여연대였습니다. 저도 함께 발맞춰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회비를 증액해 주신 회원님

강태리 강혜수 구남삼 김동엽 김문희 김상호 김성희

김재환 김준형 김찬형 김효주 민선영 박태석 배연희

안미성 양순애 염승민 유재민 이중희 이태호 임석규

전찬영 정다운 정은식 조남주 조성종 조영인 채덕성 

최홍섭 홍랑기 홍성호

2017년 12월 19일에서 2018년 2월 19일 사이에 회비를 증액해 주신 31명. 가나다 순

 

민선영

민선영 회원 (2015년 7월 21일 가입)

저는 청년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민선영입니다. 아직 수입이 없어 마음만큼 후원하지 못해 늘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최근에는 ‘잘 살고, 잘 사자’라는 문장에 꽂혀있어요. 과연 가치있는 소비란 뭘까 고민하고 있는데요. 참여연대 후원이 그 중 하나란 생각에 증액을 했습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안전해지는 삶을 선물해주는 참여연대, 고맙습니다. 

 

신입회원 한마디!

강석진 정치, 사회에 관심이 1도 없다가 최순실 사건 후로 너무 충격이 커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던 중 알게 되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진석 삼성 재판을 보고 가입했습니다. 사법적폐를 없애기 위해 다시 광화문으로 모입시다.

고재훈 지금까진 나와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사회와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이 사회가 더 건전하고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가 되도록 일조하고 싶고 그 의지를 이제 실천하려 합니다.

공현주 열렬히 응원합니다.

구희철 어떤 자리에서 참여연대가 정부와 국회가 일을 잘 하는지 감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입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권영이 소시민의 억울함을 대변해 주는걸 보고 가입을 결심했습니다. 

김도연 종교와 무관한 단체를 찾다가, 그리고 다스뵈이다를 보고 가입합니다. 

김동욱 꼭 공익제보자지원센터 전용으로 후원 부탁드립니다.

김명지 좋은 활동 잘 부탁드립니다!

김수연 국가 정책에도 관심 갖고 시민단체 활동도 해보고 싶어서 시민단체 중 가장 유명한 참여연대 회원이 가입했습니다.

김언경 연대!

김용진 민주노동당 당원일 때부터 참여연대 활동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제 가입했습니다.

김종성 좋은 사회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종휘 참여연대 화이팅!!

김준형 드디어 새로운 장을 열고 첫발을 내디디는 심정으로 참여연대에 가입한다. 바름을 바르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만드는 일에 조금이나마 참여하고자 한다. 참 세상을 위하여. 

김준호 임지봉 교수님 경향신문 칼럼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가입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김춘희 『복지동향』 보고 싶어요. 수고 많으십니다.

김형철 촛불집회 때 안진걸 처장님 많이 봤는데 참여연대 소속인 줄 모르다가 최근 다스 관련 방송 보고 알게 됐습니다.

당효준 과거에 가입했다가 재가입합니다.

류영숙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참여연대에 지지의 박수를 보냅니다.

문지영 참여연대를 응원합니다.

박광진 적은 돈과 한 개인이지만 사회를 바꾸는 데 힘이 되기를 바라요. 

박미애 적극적인 사회 어둠을 밝히는데 앞장서 주시길 바랍니다.

박소영 민중의 힘!!

박안상 가산디지털단지역사에서 매점을 하고 있는데 공기업 횡포가 심해서 참여연대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원식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도록. 

박은환 참여연대 활동에 관심 갖고 지켜보다 가입하게 됐습니다.

박철수 참여연대 활동을 최근 많이 접하게 되었다.

배진수 함께해요~

배혜미 사회의 정의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참여연대를 지지합니다.

변형준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 참여연대가 주축으로 열심히 활동해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송   승 참여연대의 활동이 마음에 듭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예슬 신중하고 균형 있는 활동, 궁극적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활동 기대할게요. 응원합니다. 소액이라 미안합니다.

안정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안휴대 금액이 너무 적어서 미안합니다.

양재천 만나서 반갑습니다.

엄인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사회정의를 지켜냅니다. 광화문 촛불정신의 완성은 국민주권적 헌법개정입니다. 

오윤경 기대됩니다.

우덕주 파사현정

원경재 좋은 활동 지속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성균 참여연대 활동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유용수 장애인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자 합니다. 

윤세라 반갑습니다. 

이경미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보다 멍청한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상준 참여연대 화이팅!

이소영 참여연대의 활동에 항상 감동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후원하게 돼서 감사합니다.

이연주 참여연대 화이팅!!

이용신 수고하십니다. 항상 생각은 하다가 지금 가입합니다.

이윤상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참여연대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자원 청년참여연대와 공익활동가학교 후기를 읽고 가입하게 됐습니다.

이지연 설레요.

이혜숙 참여연대가 있어 든든합니다. 모두 멋있어요!

임재은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장해영 항상 감사드립니다.

정미현 성실한 시민으로 참여합니다.

정병옥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교정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정종인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응하는 참여연대 활동을 보고 가입했습니다.

정찬수 이제야 가입하게 되어 미안 합니다.

정한교 평소 참여연대 활동 모습을 지켜보다가 올해 가기 전에 후원 시작하고 싶어서 가입했습니다.

정해남 하나의 밀알로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정헌철 촛불이여 영원하라! 물의 사유화를 막아내자!

조수행 참여연대의 활동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조영철 정의가 바로 서는 국가와 사회가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준텍(주) 정의를 위해!!!

채미현 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에 관한 감시 활동 부탁드립니다.

최성락 시민의 관심이 세상을 바꾸길 바랍니다. 

최진경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가 민주주의를 앞당긴다!

하종우 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입을 신청합니다. 

 
수, 2018/02/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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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항쟁을 넘어 혁명으로 기억하다

박시백 역사만화가

 

인터뷰. 황미정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박시백

 

나의 남편은 책을 정말 안 읽는다. 더욱이 역사책은 한 권 사주면 10페이지를 못 넘긴다. 그런 남편이 스무 번도 넘게 읽은 역사책이 바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박시백 만화의 특징은 애든 어른이든, 한 번만 읽는 경우는 드물다는 거다. 십여 년간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푹 빠져 지냈던 그가, 이번엔 일제강점기 35년을 그려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35년』 시리즈 7권을 완간하겠다는 계획이다. 명실공히 ‘역사만화’의 대명사가 된 그를 지난 2월,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아직 독립운동사의 굴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그의 손에는   『조선공산당평전』이 들려있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후 약 5년 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후속작업을 하면서 지냈다. 개정판도 냈고, 무엇보다 연표 작업에 오래 매달렸다. 20권까지 완간하고 나니 100여 권이 넘는 노트가 나왔는데 너무 아깝더라. 이걸 축약해놓으면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드라마를 쓰건, 소설을 쓰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핑을 A4용지로 600~700장 정도는 한 것 같다. 그동안 후속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설렁설렁 쉬엄쉬엄했기 때문에 사실상 휴가 기간이었다. 

 

예전 인터뷰에서 “역사에서 빨리 벗어나서 본연의 만화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는데, 다시 역사만화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이 작업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딱 1910년으로 마무리됐는데, 원래 조선왕조실록은 보통 철종실록까지다. 왜냐면 고종, 순종실록은 조선왕실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편찬됐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지고 그래서 고순종 실록은 따로 묶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왕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고 그러면 왕조가 망한 날까지 조선왕조실록이라고 생각해서 1910년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이후 이야기는 부록처럼 덧붙이는 정도로 작업했는데 아마도 그때 일제강점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려사나 창작극화를 할 생각도 있었지만 가다 보니 이렇게 됐다. 

 

『35년』 시리즈를 작업하는 동안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늘 하는 얘기지만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 공부를 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도 조선왕조실록은 기본 텍스트가 있어서 공부하기 편했다. 조선왕조실록이 워낙 방대하고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다 읽는 게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하나의 확실한 텍스트가 있다는 건 작가로서 큰 위안이었다. 그것만 제대로 봐도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충분히 확신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35년』은 기본 텍스트가 없다. 당시 일본 경찰들에 의한 심문조서, 취재서, 정보부 자료, 신문자료 등을 살피면 좋았겠지만 접근도 쉽지 않고 문투도 지금과 달라서 굉장히 읽기 불편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고 기존학자나 교수들의 연구 자료, 그중에서도 특히 단행본을 중심으로 많이 참고했다. 

 

일제강점기는 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고 복잡해서 내심 말랑말랑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교과서 같은 느낌이다. 의도한 건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 같아도,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 시대를 잘 요약하고 정리하고 배치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자는 게 이 책의 주목적이었다. 사실 독자들이 읽기 쉽게 드라마틱하게 만들려면 여러 사건을 쭉 다루는 것보다 한두 사건에 집중해서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게 훨씬 접근이 편하다. 대신 그만큼 정보량이 확 줄어야 하는데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또 ‘유관순1902~1920’만 남게 된다. 그래서 좀 복잡하고 재미없더라도 가급적 많은 인물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 역사서를 쓰는 것 자체가, 어떤 인물을 다뤄야지 하는 순간 이미 편애가 들어가고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다. 그래서 최대한 등장인물들의 이름 석 자라도 넣어주려고 노력했다. 다만 분명히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근현대사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접근하기 만만치 않고 좀 안다 해도 사람 이름, 단체이름 너무 많이 나오고 한꺼번에 정리가 어려울 거다. 그래서 그걸 보완하기 위해 책마다 맨 뒤에 인물사전을 실었다. 

 

그 수많은 인물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을 꼽는다면 누구인가? 

너무 많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거나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달라고 하면 ‘독립운동에 나선 모든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의병지도자, 의열단, 독립군….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쳐 싸운다. 고문받고 재판받는 과정, 형장에서 죽어가는 마지막까지 너무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이 하나같이 훌륭하고 드라마틱하다. 그나마 책에 거명된 사람들은 이름이라도 남겼지만, 그렇게 역사 속에 사라진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독립운동가들도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이광수, 최남선 같은 이들은 스스로도 그 재능이 기껍고 아까웠을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중에도 여운형1886~1947이나, 김규식1881~1950 이런 사람들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0대에 젊은 친구들과 일본에 가서 내로라하는 정재계 고위인사들을 만나고, 그들을 거의 깨우치듯이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김규식 같은 사람도 파리강화의회에서는 물론이고 민족대회에서 연설한 것만 봐도 대단한 인물들이다. 신채호1880~1936나 이회영1867~1932 같은 사람들이 무정부주의를 취해가는 과정을 봐도 그렇다. 이미 그때 꽤 나이가 많았음에도 자기가 그동안 가져온 것을 과감히 버린다. 이동휘도 러시아 혁명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게 살 길이라고 결정한 후 곧바로 선회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동시대에 이렇게 잘난 인물들이 많았던 나라인데, 어쩌다 식민지가 됐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들이 많다.

 

박시백2

 

독립운동사에는 유독 갈등과 분열도 많았다. 특히 ‘자유시참변’은 안타깝다고 느꼈다.  

김립1880~1922이라는 사람이 있다. 선각자였던 인물인데 김구1876~1949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당시 그런 이념적 갈등, 사상적 갈등은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나라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되찾은 다음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어 A는 이게 옳다, B는 저게 옳다고 생각한 것이고 이런 노선상의 차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유시참변은 그런 와중에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큰 앙금을 남긴 사건이긴 하지만 독립운동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약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지식인이라면 어땠을까, 감정이입하며 읽었다. 

당시 ‘인텔리’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사색의 결과로 인생을 결정짓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친일을 한 경우 대부분은 그런 걸 포장한 것이겠지만, 진짜로 친일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윤치호1865~1945 같은 인물은 독립은 말도 안 되고 일본 따라 배워서 민도(民度)도 개선하고 그들과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당시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혁혁한 차이였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더 이상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시대와 달리,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이야기에 유독 몰입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일제강점기를 우리 사회의 원형이라고 표현한다. 일제침략이라는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독립운동, 적극적인 친일, 그 외 다수는 침묵하거나 대세에 따르는 정도인데 지도자층이든 새롭게 자라나는 청년이든 친일을 할지, 반일을 할지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었을 거다. 생각해보면 친일을 선택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않나.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욕을 많이 먹지도 않았을 거 같다. 그때도 고등문관 시험 패스하면 동네에 플래카드가 걸렸고, 그냥 남들보다 출세한 삶을 사는 거였다. 그리고 그것조차 일본에 협력한 거고 반민족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전선에 뛰어든 거다. 

문제는 그런 시대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해방기로 넘어왔고 어느 순간 친일반역자들이 우리 사회 주류가 돼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는 거다. 지금이나 그때나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친일과 반일, 두 가지로 양분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더 밀접한 시대라는 거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다. 이 책에서 특별히 ‘3·1혁명’이라고 쓴 이유가 있나. 

이건 사연이 좀 있다. 원래는 ‘3·1항쟁’으로 하려고 했었다. ‘운동’도 틀리지는 않은데 좀 밋밋했다. ‘3·1운동’ 하면 태극기 들고 만세운동 한 걸로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야말로 전 민족적 항쟁이었고 각종 폭력이 난무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던 항쟁이잖나. 그래서 처음엔 ‘항쟁’이라고 잡았었는데 역사 선생님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근 일각에서는 ‘3·1혁명’으로 명명한다고 했다. 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혁명’이라고 하기엔 조금 망설여졌는데, 표지 나오기 직전에 마음을 고쳤다. 왜냐면 3·1 이후 사람들의 의식이 크게 한번 바뀌었고, 적어도 과거의 왕조적 사상은 사라졌고, 현 정부의 원류가 되는 상해임시정부도 3·1의 성과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4·19를 미완의 혁명이라고 하면서도 혁명이라 하는 것처럼 3·1도 완벽하진 않지만 혁명이라 불러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2권에 ‘3·1혁명’이 묘사된 장면은 작년 촛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3·1, 4·19, 6·10, 그리고 작년 촛불이 굉장히 유사한 흐름이지 않나 싶다. 전국적이었고 치열했고 그만큼 쌓였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했다는 거다. 4·19도 마찬가지이지만, 3·1도 당시 뚜렷한 지도부가 없었다. 민족대표 33인이 있었지만 금방 잡혀가고 그런 과정에서 저마다 통일성은 부족해도 각 지역별로 완강하게, 상당히 오랜 기간 유지됐다는 게 경이롭다고 생각한다. 변화된 조선인들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고. 그런 의미에서 3·1은 얼마 전 촛불이나 6월 항쟁과도 다르지 않은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본다. 

삼일운동

제공 비아북 ⓒ박시백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내걸며 등장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과거청산, 친일청산의 과제도 남아있는데.  

우리 사회 친일청산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은 주범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의 반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1930~1940년대, 엄혹한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고 일제에 협조한 게 부끄럽다며 반성했다면 그런 부분은 인정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 누구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물타기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였고 누구나 죄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논하지 말자고 한다. 반성의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과거를 반성하고 거듭 용서를 구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게 가장 아쉽다. 

 

진심으로 반성해야 제대로 된 ‘청산’이라는 건가. 

우리는 마치 용서하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 같다. 전두환한테도, 일본한테도 제발 반성만 해주면 언제든 용서해줄게 라고 하는데도 그들은 그것조차 안 하고 버틴다. 일본도 똑같다. 도저히 어쩔 수 없을 때 반성 비슷한 얘기를 아주 에둘러서 슬쩍 하고 넘어간다. 인간은 대체로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독일이 일본보다 착해서 반성했던 게 아니라 독일이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으면 유럽 사회에서 발붙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은 미국과 손잡으면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면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로, 친일부역자는 친일부역자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책을 가리키며)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역사가 제대로 알려져야 하고 또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왜냐면 해방 이후 친일부역자들은 모든 권력과 부와 지위를 다 누리고 살아왔다. 자기들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보니까 교과서 편찬도 맘대로 하고 자신들의 친일 이력을 세탁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심지어 친일반역자가 독립운동가로 포장되기도 하고, 애국자로 둔갑하고 그게 별거 아닌 양 살아왔다. 지금에 와서 이미 죽은 사람들을 단죄할 수도 없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기도 어렵지만, ‘당신은 친일파였다, 민족반역자였다’는 걸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올바르게 아는 거다.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역사 만화’는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만화는 정보를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어려움이 훨씬 순화되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를 그림으로만 기억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가령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사람은 정도전이 실제 만화 속 인물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다(웃음). 이렇게 고정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문제가 있지만 사실 역사를 옮긴다는 건 다 가공이고 허구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실록에 세종이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은 실제이지만, 그때 세종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필요하다. 또 칼로 찌르는 장면을 묘사한다고 하면, 그 찌르는 동작을 실제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구성되는 거다. 그런 걸 감안한다면, 만화로도 충분히 역사를 배울 수 있고 괜찮은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35년』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나.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나, 왜 배워야 하냐고 물으면 흔히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자만 그건 한 나라의 지도자나 기업체의 수장에게나 한정되는 것 같다.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이야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해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35년은 ‘역시 친일하는 게 짱이야,’ 이런 결론을 내려버리기 너무 쉽다. 반대로 대의나 정의를 쫓아 살았더니 경제적으로 어렵고 집안이 몰락하고 대대손손 고생하니까 나도 그들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가령 이동휘 같은 인물의 삶을 제대로 알고 기억해줌으로써 그들의 삶이 가치 있고 훌륭한 삶으로 자리매김 되는 거다. 그 시대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아는 것 자체가 그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애국자에 대해서도, 반역자에 대해서도. 

 

‘기록’과 ‘기억’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아무리 잘된 기록이라도 다시 꺼내보고 곱씹고 되새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도 엄혹했던, 그래서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기기 어려웠을 일제강점기 35년.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온몸으로 쓴 ‘기록’을 ‘기억’하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35년』은 바로 그 기억의 통로이며, 그래서 소중하고 귀하다. 4권이 어서 나오길 기대한다.  

수, 2018/02/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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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콩.

박열음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박열음

 

그녀가 우리 집 산타가 된 이야기다. 

몇 해 전 겨울,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 겸 공방 ‘마음은 콩밭’에서 벙어리장갑 두 켤레를 샀다. 정성스레 포장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트리 밑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누가 보아도 손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벙어리장갑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엄마가 만드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산타는 있다! 엥? 얘들아, 내가 산타는 없다고 이실직고했잖아….

일 년 전, 아이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커밍아웃을 당했던 우리 집 산타는, 그렇게 다시 부활했다.

 

카페통인의 그녀 

우리의 산타가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설마, 굴뚝을 타다 떨어진 건 아니죠? 

“작년 10월, 카페통인으로 출근하는 길에 다쳤어요. 25일에 다쳤는데, 29일이 결혼식이었답니다.”

 

종종 카페통인에 들러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왜 나는 그녀의 결혼 소식을 까맣게 몰랐을까. 아니, 그보다 아픈 다리를 하고 대체 결혼식을 어떻게 치렀을까. 지난 이야기를 붙잡고 뒤늦게 걱정이 태산이다. 

“깁스하고 결혼식 했어요. 예식장에서 한 결혼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죠. 지금은 목발을 짚진 않는데 아직 완치가 안 되어서 보호대를 차고 다녀요.”

 

아픈 다리 때문에 결혼식 이후에도 그녀는 카페통인에 복직하지 못했다. 계약직으로 있던 터라 계약 만료일과 동시에 사직했다고. 그러나 카페통인에서 일하기 전부터 그녀는 참여연대와 인연이 깊다. 

“느티나무의 강의 때문에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우쿨렐레 수업을 시작으로 사진 수업, 드로잉 수업도 듣고. 그러면서 수강생들하고 ‘그림자’라는 드로잉 소모임도 만들었죠. 지금도 인사동에서 ‘그림자’ 전시회 중이에요. 모임을 시작한 지도 거의 7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러니까 그녀는, 참여연대의 회원이었다가 카페통인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종의 내부자가 되었다가 다시 회원이 된, 조금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내부자는 아니고 약간 주변인 같은 처지였는데 그래도 회원이었을 때랑은 많이 다르긴 하죠. 내부 사정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고. 다사다난하더라고요, 여기도 사람들이 꾸려가는 조직이니까. 활동가들의 고충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촛불정국 때는 간사님들이 애쓰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엄청 감동을 받아서 회비 증액하겠다고 장담도 하고 그랬는데, 아직 실천을 못 하고 있네요.”

 

촛불혁명이 한창이던 지난겨울. 그녀는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집회에 나갔다. 그러다 한번은 주말에 카페통인 근무를 맡게 되면서 광장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카페통인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무척 많이 만났어요. 친구들한테도 집회에 오면 카페통인에 들르라고 막 연락도 하고 그랬죠. 카페 앞 계단에 커다란 보온 물통 갖다 놓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물 한잔을 나눠주고, 화장실도 개방하고. 여기서도 이렇게 우리가 같이 호흡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막 감정이 벅차오르더라고요.”

 

집회가 있던 날, 나도 카페통인에 잠깐 들렀던 적이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했던 그때, 카페를 지키고 있던 간사의 한 마디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집회가 있는 날에는 영업을 하지 않아요. 몰려드는 시민들에게 집중해야 해서요.”

평소 즐기는 ‘따자’(따뜻한 자몽차)를 마시지 못해 못내 아쉬웠지만, 역시 참여연대의 ‘클라스’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양쪽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던 날이었다. 서촌의 다른 카페들과 카페통인과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은, 그래서 하지 않았다. 

 

장갑

낡은 스웨터를 재활용해서 만든 ‘마음은 콩밭’의 벙어리장갑 ⓒ호모아줌마데스

 

노조

그녀가 참여연대노동조합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한 그림 ⓒ참여연대노동조합

 

갈팡질팡 중입니다 

예전에 그녀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모녀가 회원인 것도 드문데 모녀를 모두 인터뷰하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듯하다.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어머니, 그 밑에서 그녀는 갖가지 색깔의 물감, 붓, 종이, 가위들에 둘러싸인 채 유년기를 보냈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녀가 미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결국 정치외교학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터졌는데, 학교 선배의 동생이 효순이였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정부여고 선후배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어요.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미군부대 앞으로 몰려가 항의시위를 했고 그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죠.”

 

당시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월드컵 경기 때문에 시위에 갈 수 없다던 친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깟 공놀이가 뭐가 중요하냐!

“억울한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나니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 생기더라고요. 시사고발프로그램의 피디 같은, 진상을 밝히고 보도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죠. 그래서 정치학 공부를 하고 복수전공으로 언론학을 선택했어요.”

 

그러나 그녀가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은 정치, 언론 이런 것들과는 상관이 없다. 언론사 인턴, 대형서점 문구 코너의 MD(merchandiser, 상품화 계획, 구입, 가공, 상품진열, 판매 등에 대한 책임자)를 거치며 그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일은, ‘손작업활동가’이다. 

“MD로 일한 곳이 대기업이다 보니 이윤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를 조장하고, 물건을 제작해 납품하는 창작자나 제작자들에게 본의 아니게 갑질을 해야 하는 처지였어요. 그런 게 심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한편으론 소규모 창작자들의 작업에 자꾸 관심이 가고 그래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마음먹게 되었죠.”

 

몇 해 전까지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카페 겸 대안예술공간 ‘마음은 콩밭’을 운영했다. 그 아늑했던 공간은 문을 닫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마음은 콩밭’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창작물들을 생산, 유통하고 있다. 스카프나 가방 등 패브릭 소품을 만들고 바느질, 천연염색, 드로잉 등의 소규모 강의도 진행한다. 때로는 직접생산자들만이 판매자로 참여할 수 있는 ‘파머스 마켓(마르쉐)’에 창작물들을 가지고 나가 팔기도 한다.

“수익은 당연히 적고요. 그래서 카페통인에서 일을 했던 거예요. 돌아보면 후회는 없는데 그렇다고 지금 이 작업이 저한테 딱 맞는 옷이라 생각하지도 않아요.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할까,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죠.”

 

사람의 손과 오후의 햇살

“기본적으로는 지구환경을 덜 해치면서 쓸모가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근데, 마음 한편엔 쓸모는 없지만 예쁘고 귀여운 것들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죠. 요즘 사람들은 ‘효용’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모든 걸 규정하려 들잖아요. 사회적 약자나 반려동물들은 그런 기준에서 보면 무용한 존재들이 되는 거고. 그런 생각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어요.”

 

손작업의 특성상 작업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소량생산이다 보니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효율 면에서 보면 ‘손작업’은 무용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손작업’을 해나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녀가 이런저런 색깔의 옷감들을 가지고 어느 오후 내내 조몰락거리며 만들어냈을 작은 소품들.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람의 손과 오후의 햇살이 함께 빚어낸 따뜻한 위안과 평화로움은 결코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다. 

 

“손작업을 해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적은 수입을 가지고 언제까지 이 일을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특히 저처럼 손작업과 관련한 공부를 한 적이 없거나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원을 받기도 힘든 현실이에요.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공간과 장비가 절실한데, 공공작업실을 이용하려면 너무 많은 증빙서류와 결과물들을 요구하거든요. 학력, 전공, 경력 등과 상관없이 공공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작업을 위해 한쪽에 모아놓은 옷감과 조각 천들. 하나의 색도 아니고 하나의 질감도 아니고 하나의 패턴도 아닌, 그 색색의 자유로움을 그녀는 닮았다.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고, 이거 하다 보면 또 저게 하고 싶고. 뭐 하나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도 많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삶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추 같은 게 필요했던 거 같아요. 남편이 저한테는 그런 존재죠.”

 

서른을 몇 해 넘겼을 때,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이제는 결혼생활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날아가는 풍선과도 같은 그녀를 힘껏 잡아준 남자와 작년 가을, 작은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들이 시를 써주고 꽃장식을 맡아주었으며 사회를 봐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분명 오후 햇살의 따사로움으로 가득했을 거라고, 나는 상상했다. 

 

“결혼하기 전, 알랭 드 보통이 쓴 결혼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그 글에 상당히 공감이 가기도 했고, 일단 전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남편에겐 우애가 깊고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건강한 자존감이 있어요. 제 친구 중에 나이도 어린데 일찍부터 독립해서 야무지게 생활해나가는 녀석이 있거든요. 한번은 제가 너는 스물한 살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야무지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가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러는 거예요. 부럽기도 하고, 거기까진 힘들더라도 밖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평안함이 느껴지는,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1년 정도 이어진 낭만적 연애 기간이 끝나고 이제 그녀에겐 ‘그 후의 일상’만이 남았다. 비슷한 패턴으로 무한반복 되는 일상. 그 단조로운 조각들을 가지고 평범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것들을 만들어갈 그녀의 오후를 상상해 본다. 

 

콩.콩.콩.

“저를 정의하자면, 눈은 높은데 노력은 안 하는 스타일로 적어주세요. 그리고 너무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마음은 콩밭’이란 브랜드가 제 정체성인 거 같아요. 마음이 늘 콩밭에 가 있죠. 하나에 집중해야 그 분야에서 성과도 내고 돈도 벌고 그럴 건데, 너무 분산돼 있다 보니 경험은 많은데 깊이가 얕아요.”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둔 서랍을 연다. 뒤적뒤적, 밑바닥에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맞지 않는 벙어리장갑 두 켤레가 놓여 있다. 장갑이기 전에는 누군가의 등짝을 따뜻이 감싸주었을 두툼한 스웨터였다. 이것저것 하고픈 게 많은 그녀 덕분에 그 낡은 털실뭉치는 다시 누군가의 시린 손끝을 덮을 수 있었다. 그녀가 뿌린 무수한 콩알들. 그 중 하나가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 왔고, 산타는 다시 부활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무수한 콩들은 오늘도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노란 바늘땀으로 수놓인 앙증맞은 토끼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장갑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녀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만들고 있다.  

 

수, 2018/02/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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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했던 동학언니, 
스물두 살 이소사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감독

독립장편 다큐멘터리 <국가에 대한 예의>를 만들었다.

 

 

혁명을 새겨 넣은 기념탑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의 마지막 인터뷰 촬영 장소는 정읍의 이팝나무 숲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심은 이팝나무 숲이 두르고 있던 곳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처음으로 격퇴했던 황토현 전적지로, 그 숲길을 따라 비스듬히 난 오르막길을 돌아 걸으면 동학혁명기념탑이 버티고 있는 언덕 꼭대기에 닿을 수 있었다. 1991년 강경대 공권력 타살 사건에 맞서 최초 분신한 박승희의 병상을 지켰던 선배이자 시인인 인터뷰이는 탑의 주위를 함께 돌며 그 유래를 일러주었다.

 

1963년, 이 탑이 세워지던 날 대선을 앞두고 남부의 지지를 기반 삼으며 호남의 지지가 간절했던 유력 후보가 이 자리에 섰다. 자신의 아버지가 동학접주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동학란이라 불리던 갑오년의 일들을 동학혁명이라 고쳐 새겼다 했다. 덕분인지 그는 대선에서 1.5%의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는 그로부터 2년 전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명을 몰고 한강을 건넜던 군사혁명위원장 박정희였다. 

 

역사란 기억을 새기는 동시에, 또 다른 기억을 누락하는 기록 과정이기도 하다. 동학교도와 함께 갑오혁명의 또 다른 주체인 농민의 이름은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엉망인 나라를 고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인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덧댈 보(輔)’가 기념탑에는 ‘지킬 보(保)’로 바뀌어 새겨졌다는 이야기가 뒤를 따랐다. 

 

동학기념탑

정읍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동학혁명기념탑. 동학농민혁명의 구호였던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이 새겨져 있다. 

 

거괴와 천녀로 불린 동학농민혁명가, 이소사

당도해야 할 시대가 오지 않았던 조선 말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백성을 수탈하는 부패한 관료에 맞서 ‘제폭구민’의 기치를 들었던 1차 봉기와는 달리,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빌린 외세를 척결하고자 ‘보국안민’의 기치를 들고 일어섰던 2차 봉기 때엔 조선의 조정이 휴전 협정을 어기고, 일본군만이 아니라 청나라까지 연합하여 동학농민군을 공격했다.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동학군은 한반도의 남서쪽으로 밀려 장흥의 동학군과 합류하여 3만이 넘는 대오를 이뤘다. 패배가 자명한 전투의 끝자락에 장흥 일대를 점령하고, 장흥부사 박헌양 등 장졸 96명을 전사케 한 장녕성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둔다. 일본군 대대장 남소사랑(南小四郞)이 쓴 토벌기록인 ‘동학당정토약기’ 중에는 이 전투에서 “부사의 목을 내친 사람이 여인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소사라는 그녀의 이름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정부 토벌군이었던 이두황의 ‘우선봉일기’였다. 이두황이 1895년 1월 남소사랑에게 보낸 편지에는 거괴(巨魁) 체포자 이소사가 소모관에게 허벅지 살을 베이는 문초를 당해 살이 썩어 문드러지고 숨을 헐떡이는 지경에 이르러 위태하므로 나주로 호송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다음 해 나주에 있는 일본군 감옥에서 심문 직전 옥사한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에 관한 당시의 모든 기록은 그녀를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들에 의해 남겨졌다. 당시 일제의 신문이었던 <국민신문> 1895년 3월 5일 자에는 “동학당에 여장부가 있다. 동학당의 무리 중 한 명의 미인이 있는데 나이는 꽃다운 22세로 용모는 빼어나기가 경성지색(傾城之色)이라 하고 이름은 이소사라 한다. 오랫동안 동학도로 활동하였으며 장흥부가 불타고 함락될 때 그녀는 말 위에서 지휘를 했다고 한다.”라고 적혀있다. 

이소사

동학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하고 민회를 소집하여 오지 않았던 다른 세상을 꿈꿨었지만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보름이 넘도록 최후의 항전을 한 뒤 무참한 살육 끝에 혁명의 막을 내렸다. 최근 발견된 일본병사 쿠스노키의 『종군일지』의 기록에 의하면 장흥의 건산이라는 산등성이를 눈처럼 하얗게 가득 채운 동학농민군들에 대한 묘사가 있다. 무명옷으로 겨울 추위를 버텨가며 지는 싸움에 임하고자 했던 그들과 이소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조일신문> 1895년 4월 7일 자에는 이소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가 있다. “장흥 부근의 동학도 무리에는 한 명의 여자가 있는데 추천으로 수령이 됐다. 우리 병사가 잡아서 심문을 했는데 완전히 미치광이가 됐다. 동학도가 귀신을 이야기하고 신을 말하는 것을 이용하여 천사 혹은 천녀라 칭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선동했다” 이소사가 죽기 직전까지 했던 말을 동학의 21자 주문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소사라는 호명조차도 이름이 아니라 남편이 있는 여인을 높여 일컫는 호칭으로 해석될 뿐이다. 그러나 봉건질서를 베어버리고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순간을 버티고 있었던 여인의 존재는 동학농민혁명 124년, 임시정부수립 99년째를 마주하는 지금 우리 역사에 대한 더 집요한 기억과 기록을 꿈꾸게 한다.  

 

 

 

수, 2018/02/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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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3·8’을 맞이하여 

 

글. 류진희 성균관대 강사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다.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소녀들』, 『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다.

 

남과 북, 서로 다른 3.8의 의미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975년 UN 공식기념일로 지정되어, 세계 170개국에서 이날을 축하한다. 작년부터 나 역시 지인들에게 생일 대신 이날에 장미꽃을 달라고 했다. 최근 몇 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떠들썩하게 통과하며, 새삼 ‘지금-여기’ 여성으로서의 삶을 서로 격려하는 날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성의 날은 세계적으로 110주년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어 올해 제34회를 맞이한다. 민족 · 민주 · 민중, 민주화, 평화, 성평등 등 해마다 시의적절한 이슈를 제기하며, 연인원 천 명이 넘게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일상의 차원에서 이날의 의미를 되짚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어버이날에 맘먹고 카네이션을 사고 안부전화를 하며, 밸런타인데이에 장난스레 초콜릿을 건네는 정도만큼의 실천이 없는 것이다.

 

반면 한반도의 또 다른 한쪽에서 ‘국제부녀절’은 공휴일이다. 하루 종일 관련 행사가 떠들썩하게 중계되며, 작업장에 따라 반나절의 휴식도 보장된다. 북한에서 이날은 1946년 남녀평등법 제정 이후 기념하기 시작해, 이번 2018년에 108주년을 맞는다. 이러한 차이는 세계여성의 날과 국제부녀절이 각기 다른 연원을 지목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은 1908년 미국의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했던 대대적인 시위를 이날의 유래로 꼽는다. 한편 북한은 1910년 사회주의 제2인터내셔널에서 여성혁명가 클라라 제트킨 등이 제안한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을 그 시초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3월 8일은 모두는 동등한 선거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시발점이 된 3월 8일 여성들의 페트로그라드 거리 시위 이후, 이제 ‘3 · 8’은 하층계급과 여성, 나아가 피억압 민족의 해방까지를 아우르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국제부인데이’나 ‘무산(無産)부인의 날’의 어떤 기념행사도 금지되고 관련 기사도 검열되기 일쑤였다. 

 

빵과장미

1908년 3월 8일, 루트리스 광장에 모인 1만 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We want bread but roses too”를 외치며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했다.

 

근대성에 도전한 집단적 여성들의 ‘국제부인데이’ 

그렇기에 1946년 해방 후 첫 ‘국제부인데이’는 좌우할 것 없이 여성단체들이 공통으로 기념했다. 단 하루가 아니라 3월 1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부녀해방투쟁기념주간으로 선포됐다. 민족해방에 이어 “우리(여성)는 완전한 해방을 위하여 한 번 더 돌진하자”는 다짐이 강조됐기 때문이었다. 강조컨대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근대성 자체에 도전하는 집단적 존재로서 여성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하층계급 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과의 연대가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과 전쟁, 그리고 분단과 냉전체제 하 한국에서 이 맥락은 희미해졌다. 반공아시아 초남성적 개발독재 정권에서 아예 사회주의적 근 기원을 가진 여성의 날은 삭제됐다. 대신에 5월 8일 어머니의 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애초 전쟁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들이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이날에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전통적인 효 사상을 강조하며 지정되어, 1973년에는 아예 노인공경을 아우르는 효행의 미덕을 강조하는 어버이날로 확대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에서 어머니의 날은 없고, 다시 세계여성의 날이 있다. 

 

이제, 다시 서로에게 장미꽃을 건네야 할 때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떠한 ‘3 · 8’을 맞을 수 있을까.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전개를 배경으로, 배타적인 혐오와 차별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다시 세계여성의 날이 주목되는데, 이는 작년 SNS 페이스북에서 최다 언급된 화제이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혼인평등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도 소리 높여 주장되는데, 작년 한국은 다른 풍경에 맞닥트렸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탄핵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장미대선에 승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성애가 ‘종북(縱北)’ 대신으로 종주먹을 대며 반대해야 하거나, ‘나중에’ 다뤄야할 이슈가 된 것이다. 

 

이제 2018년,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backlash)가 감지되고, 종종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른 소수자를 향한 혐오발화가 전략적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올해 ‘3 · 8’은 더욱 모든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주장했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수년간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주관해온 여성단체연합의 최근 성명을 인용하자면, 민주주의는 성평등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다”. 다시 또, ‘3 · 8’을 맞이하여, 우리 서로에게 장미꽃을 건네자. 

 

장미

 

수, 2018/02/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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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복이

혼자 살다가 짝꿍과 살다가 아기까지 셋이 사는 이 생활이 어리둥절한 만화가입니다.

 

이럴줄몰랐지019_01이럴줄몰랐지019_02

수, 2018/02/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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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학교가 문을 열고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는 때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3월이면 개학과 개강 등으로 1월 못지않게 새로운 기분이 든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고, 더욱이 학교에 다니는 자녀도 없지만, 이맘때면 출근길에 지나는 학교 정문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러려니 하고 지났던 일들이 (어른이 된 내가 이해하는) 사회라는 구조 속에 놓여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지금 학생들은 어떤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라날까. 문득 나는 어쩌다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품고 있다는 그 교육을, 현장과 현실에서 한참 멀어져 사건, 정책, 결과로만 접하게 됐지 궁금해졌다. 과연 오늘날 교육은 어떻게 달라졌고 또 무엇이 여전할지, ‘스스로 교육’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학교는 한 번도 민주적인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은 『학교 내부자들』이다. 제목에서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지만, 학교 내 관리자 역할을 맡는 현직 교감의 고백과 반성이라는 대목에서 기대가 더욱 커졌다. 교감이야말로 학교 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바꿔나갈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아닌가. 절실한 과제와 확실한 해결책을 함께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

 

“많은 사람은 학교가 가장 민주적인 곳이고, 학교가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고, 민주적인 학교 교육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는 그동안 한 번도 민주적인 적이 없었다. 학교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고 교실은 교사의 왕국이었다. 민주적이지 못한 교장에게서 민주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교사들은 교실에서조차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못했다.”

 

‘부끄러운 관리자’라는 고백과 ‘비민주적인 학교’라는 자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학교 바깥의 교육 주체인 교육청으로까지 이어진다. 교육청의 지원 아닌 지시를 지적하며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구체적이면서도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관리자가 아닌 지원자로서 교감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는 교감뿐 아니라 교육의 주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태도이자, 학교 바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관점이 아닌가 한다. 

 

학교내부자들

● 학교 내부자들_민주적인 학교를 위하여 / 박순걸 지음 / 에듀니티

 

대학 안에 개혁을 이끌 주체가 없다

초, 중등교육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고등교육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모든 교육이 대학 입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대학은 그야말로 한국 교육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최근 외부에서 논의되는 대학의 문제는 시장과 자본의 대학 침투다. 대기업이 대학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학의 구조와 교육의 내용까지 기업의 논리로 바꿔버렸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오지만, 대기업이 들어와 대학에 투자가 늘어났고 그 덕분에 대학평가가 높아져 입시에서 주목도가 올라갔다는 반론은, 늘 비판을 잠재우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전진할 따름이다.

 

한국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김정인 교수의 『대학과 권력』은 오늘의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밝힌다.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대학정책과 운영을 중심에 두고 대학교육에서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에 주목하는 이 책은, “대학-국가-시장의 공고한 연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대학 상품화의 현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은 이러한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대학 안에 개혁을 이끌 주체가 없”다고 지적하며, 대학교육 개혁과 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책 방향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데, 여기서도 핵심은 개혁의 주체와 동력이다. 이 책에서 반복하여 보여주듯 “대학의 위기는 대학이 외풍에 밀려다니며 자기 방향성을 잃어버린 100년의 궤적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학과권력

● 대학과 권력_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 김정인 지음 / 휴머니스트

 

방법은 쏟아지는데 목적과 방향이 없다

교육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교육 개혁의 방향을 이야기할 때면 늘 외국 사례가 등장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주인공은 핀란드였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핀란드 교육은 언뜻 보아도 경쟁 일변도의 한국 교육에 꼭 필요한 이야기 같다. 그런데 숱하게 쏟아진 핀란드 교육 이야기 가운데 어떤 부분이 한국 교육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현실에 적용되었는지는 (내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비교교육학 박사 김선의 『교육의 차이』는 그 이전에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해 주는 독일, 배려하는 교양인으로 성장시키는 영국, 도전하는 창조적 리더를 키우는 미국,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싱가포르, 그리고 앞서 언급한 핀란드까지 다섯 나라의 교육을 소개한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논의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은 각 나라의 교육이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 그리고 현실적 필요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나라마다 필요한 인재의 모습이 다르니, 그에 따라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설계하고, 그것이 실현될 구체적인 정책을 세워 실현하게 된 결과가 각 나라 교육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물론 교육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여러 나라의 교육에는 기회, 토론, 자유,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선 한국이 원하는, 한국에 적합한 인재상이 무엇이고 그에 적합한 교육이 어떤 모습인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이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으로서 교육을 인식하게 하는가? 지금 나의 모습이 아직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제라도 시작해보자. 3월, 개학이니 말이다. 

 

교육의차이

● 교육의 차이 / 김선 지음 / 혜화동

 

 

수, 2018/02/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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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지상의 삶Das Irdische Leben>, 배고픈 어린이와 어머니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된 노래다. 

 

1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옥수수를 딴단다.

2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타작을 한단다.

3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빵을 굽는단다.

4절 빵이 구워졌을 때 아이는 죽어서 관에 누워 있었다. 

 

말러 <지상의 삶>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ahler Irdische Leben Ludwig를 검색하세요.

 

 

우리네 ‘지상의 삶’은 늘 이런 걸까? 굶주린 아이들뿐 아니다. 형제복지원 희생자 한종선 · 최승우 씨가 겨우내 국회 앞 농성을 벌였지만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외노조의 굴레를 풀어달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단식농성도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113명의 선배 언론인 중 29명이 세상을 떠났고, 살아계신 분들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촛불 1년을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전혀 정의롭지 않다. 

 

<지상의 삶>의 노랫말을 쓴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1788~1866는 마흔다섯 살 되던 1833년 두 아이를 잃었다. 그는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 한 편씩 시를 썼고, 2년 동안 눈물처럼 고인 시(詩) 428편을 묶어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펴냈다. 죽음과 이별에 대해 남달리 민감했던 말러는 이 시들에 깊이 공감했고, 이 중 다섯 편을 골라 연가곡을 만들었다. 태양 아래 정의는 없는 걸까? 죄 많은 나는 여전히 눈을 들어 빛을 바라보는데, 어째서 순결한 아이는 먼저 눈을 감았을까? 자책과 회한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돌이킬 수 없다. 이게 꿈일 뿐이라고 상상해 보지만 소용없다. 

 

아이들은 잠깐 놀러 나갔을 뿐이야. 나는 생각하곤 하지, 곧 돌아올 거라고. 햇살 화창하니 걱정하지 말자, 아이들은 잠깐 산책을 간 거야. 저 언덕 너머 잠시 여행 중이야.

-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말러는 19살 연하의 아름다운 알마와 결혼하고 빈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이 될 무렵인 1901년~1904년 사이에 이 연가곡을 작곡했다. 하필 가장 행복한 시기에 이렇게 어두운 곡을 썼을까? 알마는 남편이 이 곡을 쓰는 걸 불길하게 여겼는데, 이 곡이 예언이라도 한 듯, 1907년 큰딸 마리아 안나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은 말러 자신의 죽음이기도 했다. 말러는 뤼케르트의 시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에 선율을 붙였다.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이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네.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사실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 나는 이 세상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한 평화를 누리고 있네.

 

지금 이 땅에서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를 자기 노래로 느끼는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좌절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간다. 말러는 <지상의 삶>과 대비되는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도 작곡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곡은 어린이가 상상하는 천상의 행복을 소프라노가 노래한다.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니 세속의 것은 필요치 않네. 만물은 평온하고 우리는 천사의 삶을 누리네. 우리가 뛰며 춤추고 노래하니 하늘에서 베드로가 지켜보네. 

 

말러 교향곡의 엄청난 규모에 질린 분들은 이 <천상의 삶>이 피날레로 들어간 4번 G장조를 먼저 들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부드럽고 유순하다. 연주시간도 비교적 짧고(55분!) 오케스트라 규모도 작은 편이다. 

 

말러 교향곡 4번 G장조

지휘 게오르크 숄티 / 연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ahler 4 Solti Chicago를 검색하세요.

 

 

1901년, 말러는 결혼을 앞둔 알마에게 이 곡의 1악장 주제를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링크 00:13). 알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곡이 하이든과 뭐가 달라요?” 말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요.” 하이든의 교향곡을 별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는 분이라면 말러 교향곡 4번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1901년 뮌헨에서 초연했을 때 청중들은 말러가 이 단순하고 유쾌한 음악으로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장난스런 방울 소리와 하이든 풍의 주제 선율에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라는 중얼거림이 나왔다. 특히 피날레 <천상의 삶>은 충격적이었다(링크 46:12). “교향곡은 뭔가 거창한 피날레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하찮은 피날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밝혔듯, 이 곡은 심한 산고 끝에 탄생한 진지한 작품이다. 말러는 이 곡에서 ‘영원한 현재로서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아주 파란 하늘을 연상해 보자. 하늘ㄹ은 가끔 어두워지거나 유령이 나올 듯 소름 끼치게 변하기도 하지만 천국 그 자체는 결코 어두워지지 않으며, 언제나 푸르게 빛난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천상의 삶’을 묘사한 이 교향곡에서 깊은 고통과 어두움을 보여주는 대목들은 ‘지상의 삶’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말러알마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지휘자 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연인, 알마 

 

수, 2018/02/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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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스페인인 듯, 아닌 듯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고, 현재 ‘채널예스’에서 <남녀, 여행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날씨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파고든다. 한 달씩 머무는 여행을 통해 그 지역 날씨, 지형, 생활 방식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 바람과 비가 많은 북쪽의 바스크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 특유의 활기찬 DNA보다 근면 성실함이 몸에 밴 듯싶다. 스페인 내에서도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곳도 바스크이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과일이 떨어지는 축복 받은 태양이 없으니 부지런히 일할 수밖에! 그래서 오래전부터 바스크의 주도(主都), 빌바오는 조선, 철강 산업 등 공업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작은 도시 빌바오만의 투박한 매력

빌바오를 소개할 때 ‘모더니즘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서유럽의 어떤 세련됨이 이곳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만의 투박함과 정겨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빌바오의 첫인상은 쌀쌀맞을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들이다. 눈이 마주치면 ‘올라Ola부터 외치던 버릇이 무색해지게 상점 외에는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도 많고 자리를 양보해도, 문을 열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깨를 부딪쳐도, 길을 방해해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안 한다. 종민은 경상도 어디에 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태도가 투박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 투박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겉으로 살살거리는 친절함만 없을 뿐 말을 걸어오는 현지인들은 어느 도시보다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혹자는 어느 도시를 가리켜 ‘반나절이면 다 보는 도시’, ‘하루면 끝나는 도시’라는 표현을 쓴다. 안타깝게 ‘빌바오’도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선 그런 불명예를 안고 있는 도시인가 보다. 기껏해야 올드 시티를 돌아다니거나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보는 게 전부인 걸 보면 말이다. 천천히 동네를 거닐면서 시내 그리고 범위를 근교까지 확장시키는 달팽이 여행법을 선호하는 우리도 생각보다 작은 도시 규모에 당황했다. 

 

가까이 보아야 더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빌바오 구석구석 바스크인의 섬세한 손길이 닿는 건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내부에 들어서면 차가운 무채색의 콘크리트 벽이 승객들을 맞이한다. 유럽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오줌 냄새도, 뉴욕 지하철의 상징과도 같은 큰 쥐도, 하다못해 어지러운 광고판도 없다. 빌바오의 첫인상과 닮아 있는 깔끔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바스크인의 세련되고 모던한 감각임을 눈치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람도 건축물도 빌바오의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 가까이 보면 감흥이 덜 하나 멀리서 보면 속뜻을 품고 있다. 바스크의 지형도 비슷하다. 가까이 보면 대서양과 면한 항구 도시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들이 바다를 이용해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에 힘쓴 역사보다 산에서 목축을 하고 땅을 일구며 산촌 사람으로서 살아간 세월이 훨씬 길다. 그래서인지 해산물만큼이나 많이 먹는 음식이 출레타(chuleta)①라고 하는 구운 고기 요리다. 

 

지하철

 

산으로 막혀 있던 바스크는 나름의 언어로 자신들만의 고립된 세상을 만들었고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갈 길 가겠소’라는 뚝심 혹은 고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성격을 지니게 된 듯하다. 가까이 보면 무뚝뚝하고 멀리서 보면 속정이 깊은 바스크인의 성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만나다 

이렇게 고립된 세상에 독일 나치군이 폭격을 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게르니카,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작은 강줄기가 바다로 흐르는 평화로운 바스크 마을 중 하나이다.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군을 지원하던 독일 콘도르 군단이 게르니카를 폭격한다. 1,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사망한 이 비극적인 참상을 전해 들은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그리는데 우리에게는 이 작품으로 유명하다. 비록 모조품이라도 실제 참상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마주한 그림이라 더 참혹하게 다가온다. 

 

프랑코 군이 하필 게르니카를 지목한 건, 그곳이 바스크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스페인 정부로부터 독립을 외치고 고집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픔을 간직한 곳의 사람들은 그 아픔이 치유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게 된다. 가까이 보이는 바스크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에 상처는 어디까지 아물었을까? 

 

게르니카

 


① 많은 바스크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아사도가 바스크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질이나 굽는 방식이 흡사하다.

수, 2018/02/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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