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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탄력편성이라는 이름의 정원초과보육

월, 2018/03/19- 13:45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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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실칼럼]  ‘아직도’ 어린이집 초과보육 허용하는 보건복지부

: 반별 ‘탄력편성’ 지침 폐지 없이 시작된 어린이집 새 학기

 

 

 

오승은(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차장)


 

어린이집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다. 전국의 25만 보육교사들에겐 올해 노동조건이 또 얼마나 열악할지를 씁쓸히 예감하는 시기기도 하다. 새로 맡은 반의 아동 수가 영유아보육법(시행규칙 제10조)과 보건복지부령(제559호)이 정한 보육교직원 배치기준(‘교사 대 아동’ 비율)을 초과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반별 정원 원칙을 정해놓고도 ‘탄력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초과보육을 보장하고 또 종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혜 정부 때 개악된 정부 지침, 문재인 정부도 제자리걸음

 

 

정부의 ‘탄력편성’ 지침은 초과보육에 대한 정부의 조치가 2013년 ‘원칙적 금지’, 2014년 ‘전면 금지’로 진전되던 추세를 거슬러 박근혜 정부 막바지인 2016년에 돌연 시행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 그대로 보육환경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이 지침부터 폐지해야하는 이유다. 그동안 한목소리로 초과보육 금지를 촉구한 보육교사들, 보호자들, 시민사회단체들도 대한민국 보육현장의 청산 1순위 적폐로 ‘탄력 편성’ 지침을 지목하며 폐지의 기대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보건복지부는 매년 전국 어린이집들에 내려 보내는 ‘2018년 보육사업안내’를 통해 ‘탄력편성’ 지침의 조건부 유지를 통지했다. 얼마 후 공문을 통해서는 ‘탄력편성’ 허용 사유를 광범위하게 안내했으며, 허용 심의 절차나 위반 시 처벌 계획은 아예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눈을 감겠으니 알아서들 초과보육을 하라는 메시지다.

 

 

‘탄력편성’을 조건부로 허용하겠다는 정부가 그 기준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지자체들에 내맡기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최악의 결과로 경기도는 2017년에 담임교사 1명을 덜 채용해도 되는 근거인 ‘원장 담임 겸임’ 허용 조치를 아동 수 20명 이하 어린이집까지 적용한다는 본래 법 규정을 39명 이하 시설까지로 자체 확대했으며, 최근에는 ‘탄력편성’을 확대하는 특례까지 만들었다.

 

 

 

 

 

 

‘탄력편성’은 원장 수입과 보육의 질을 맞바꾸라는 시장 논리 지침

 

 

애초 어린이집 반별 정원 원칙이란 게 왜 만들어졌는지부터 곱씹어야한다. 어린이집 반은 보육 현장의 기본 단위고 그 반의 교사와 아동의 수는 모든 보육 활동의 밑그림이 된다. 그러니 엄격한 기준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을 터고, 그 결과 정원 원칙이 법으로 규정되었을 터다. 그런데도 이 합의와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왜 자꾸 일어날까? 지금 대한민국 보육현장은 시장논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육교사를 영리사업의 인건비로만 보고, 아이들을 수입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핑계가 무엇이든 아이들의 승급과 전출입이 많은 새 학기를 틈타 2개 반을 합쳐서라도 반별 정원을 초과시키라는 것, 그렇게 해서 교사 인건비를 아끼고 원장의 수입을 늘리라는 것이 ‘탄력편성’ 지침의 핵심이다. 실제로 복지부의 ‘탄력편성’ 허용 사유 공문은 정원을 초과하더라도 2개 반을 합치거나 신규 아동을 더 받아 보육료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니 어린이집 원장 단체들은 “초과보육을 통해 겨우 운영에 숨통이 트였다”고 서슴없이 말하며, 회계규칙 준수는 거부하면서도 “초과보육 금지하려면 보조금을 더 달라”고 당당히 흥정하고 있다.

 

 

결국 ‘탄력편성’은 새 학기마다 돈을 위해 아이와 교사는 더 열악해진 환경을 견디라는 정책이다. ‘탄력편성’ 자체가 아동학대고 노동권 탄압이다. 이 나라에서 어린이집은 ‘장사’라는 선언이고, 정원 원칙에 맞게 담임교사를 충원하면 ‘손해’라는 지침이다.

 

 

 

 

 

 

‘탄력편성’ 폐지조차 못 시키는 민간 중심 보육, 사회서비스공단으로 리셋해야

 

 

새 학기는 아이와 교사 모두에게 정원 원칙을 더 철저히 지키거나 개선해도 모자란 중요한 때다. 매년 3월마다 찾아오는 이 시기도 감당 못해서 ‘탄력 편성’을 최선으로 통보하는 보육 정책은 제대로 된 공보육 정책이 아니다. 이제 더는 눈감지 말자. 규모 있고 일관되게 보육 정책을 실행하고 보육 인력을 운영하기 힘들다면, 그 원인은 인건비와 수입만 따지는 지금의 민간 중심 판도에 있다. 이 판도를 전면 재편하여 공적 책임이 있는 기관이 어린이집들을 통합적으로 직영하고 보육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때 공보육에도 길이 열린다. 이러한 방향성 없이는 무엇을 시도하든 시장 논리에 매몰되고 현장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유물인 ‘탄력편성’ 지침조차 폐지 못하면서 ‘국가보육책임 강화’를 공약하는 정부에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하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을 슬그머니 사회서비스진흥원 설립 계획으로 바꿔치기하고 후퇴시키고 있는 정부에 과연 제대로 된 공보육 강화 정책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는 허황된 구호만이 아닌 실질적인 정책 변화와 이를 위한 논의 테이블이 필요한 때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어린이집 반 편성 원칙부터 확고히 하고 또 개선하는 것이 보육환경 개선과 ‘일‧생활 균형’에 대한 정부 의지의 시험대이자 출발점이다. 보육노조인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는 2018년에도 ‘초과보육 전면 금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보육 공공성 강화’ 목소리를 늦추지 않으며 모든 아이, 보호자, 노동자를 위한 보육현장을 만드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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