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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듣고 정리한 3월 8일 소성리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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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성리로 올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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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그러니까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 성주에서 지방선거에 출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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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듣고 정리한 3월 8일 소성리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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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성리로 올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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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그러니까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 성주에서 지방선거에 출마를...

익명 (미확인) | 토, 2018/03/17- 21:44
<제가 듣고 정리한 3월 8일 소성리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모입니다. > . 1. 소성리로 올라가다. . 3월 8일, 그러니까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 성주에서 지방선거에 출마를 하고자 하는 네 명이 출마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소성리에 올라가 할머님들께 인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기자회견 마치면 소성리로 올라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자회견 후 그 자리에서 이재동씨가 저와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올라가야겠지요?” “올라가야지요.” “예 알겠습니다.” 그간 소성리와 성주 사이의 껄끄러운 감정들 때문에 다른 이들은 빼고 네 명의 출마자만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같이 있던 기자 분들 중 함께 올라갈 의사를 보인 이들도 있습니다만 취재를 하는 것이 마치 소성리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 저어되어 기자들 또한 올라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출마자 네 명은 2시 30분 까지 소성리로 올라가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 잠시 후 기자회견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열일곱 군데 언론사에서 다루었습니다. 그 중 평화뉴스에서만 소성리 소식을 한 줄로 짧게 언급했습니다. 이 부분도 소성리에서 투쟁하고 계시는 분이 성주 카톡방에서 문제 삼아 시끄럽게 된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 . 2. 할머니들을 만나다. . 이미 이석주 소성리 동장님께 올라가 인사를 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린 상태였습니다. 소성리로 올라가 이재동씨가 소성리종합상황실 분들에게도 왔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뭐 계신 분들의 반응이 좀 쌀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석주 동장님과 함께 마을회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소성리 대책위에서 공식입장이라고 내놓은 이야기처럼 네 명이 쳐들어 간 것이 아닙니다. 동장님과 함께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김상화씨와 김미영씨는 할아버지들 방, 그러니까 예전에 기자들이 쓰던 방으로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들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들어가자 도금련 할매가 부엌 쪽으로 가시더랍니다. 그래서 이재동씨가 금련 할매보고 “할매 저 왔습니다.”하고 불러 세웠는데 금련 할매는 이재동씨를 못 알아 본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려고 하셨던지 모르겠지만 부엌 뒷문 쪽으로 계속 가셨다고 합니다. . 이재동씨는 부엌에서 나와 이강태씨와 할아버지들 방에 잠시 들렸다가 할머니들 방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할머니들의 방문은 소성리 대책위의 이야기와 다르게 닫혀있는 상태가 아니라 조금 열려있었습니다. (소성리 대책위에서는 할머니들이 문고리를 잡고서 버티느라고 나중에 문고리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부분의 사실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마을회관 안에는 이석주 동장님이 같이 계셨습니다. 문을 강제로 밀고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인기척을 내느라고 문을 “똑똑” 노크를 하고 방안으로 이재동씨와 이강태씨가 들어갔습니다. 방안의 불은 꺼져있었고 할머니들은 다섯 분이 계셨습니다. 못 알아보신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려고 하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들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왜 제3부지로 사드가 들어오고 나서는 한 번도 오지 않더니 이제야 왔노?” 이 말은 두 사람이 들을 이유가 없는 말이기에 잘 못 알아보시나 해서 이재동씨는 자신을 확인 시켜드렸습니다. “할머니 저 농민회 회장하는 재동입니다.” 그 사이 이재동씨는 방안의 불을 켰고 그때서야 할머니들은 두 사람을 밝은데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강태씨도 할머니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강태씨는 성주에 있는 동남청년단 소속인데 소성리 상황실에서 성주와 갈등이 생기며 눈치를 주어 올라가지 못하게 될 때까지는 천막을 쳐놓고 소성리에 매일 저녁 올라가 밤을 새고는 했습니다. “할매 저 사드 들어올 때, 장비 들어올 때 싸우던 강태입니다. 같이 막 울고 그랬잖아요.” “….” 그때 한 할머니가 말 소리를 내셨습니다. “어 아니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로 착각을 하셨다는 것인지, 아니면 투쟁에서 함께 했던 것들이 기억 나셨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의 상황을 부정하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재동씨와 이강태는 할머니들에게 선거에 출마하게 되어 인사드리러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들은 당선이 되면 사드를 꼭 좀 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과 통장을 풀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할머니들은 통장이 왜 잠겼는지 아시는 분이 없습니다. 그 말씀에 최대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말씀을 드리고 난 후 마을회관에서 나오는데 마을회관 현관에서 규란 엄니와 마주쳤습니다. 이재동을 본 규란 엄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고 반가워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모르것다.”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재동씨와 규란 엄니는 서로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강태, 김상화, 김미영도 모두 옆에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서로의 안타까운 심정을 나눈 후 헤어졌습니다. 나오면서 다시 상황실로 들려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 . 3. 쳐 들어 간 것이 아니다. . 이 상황 전 부분에 이석주 동장님도 같이 계셨습니다. 소성리 대책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뢰한처럼 쳐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성리 할머니들의 심정을 알고 올라와야 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로 그래서 동장님에게 묻고 상황실에 이야기 하고 할머니들을 만나러 간 것입니다. 할머니들 상황을 잘 아시고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는 분은 동장님 이십니다. 아마 할머니들에게 말씀도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성리 상황실은 할머니들을 만나라 마라 할 위치가 아니기에 이 네 명에게 조언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성리 대책위의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들의 심정’ 어쩌고 한 것은 사건 이후에 소성리 대책위의 몇몇 분들에 의해 쓰여 진 픽션일 뿐입니다. 서로가 사건을 다르게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소위 관점이나 시각차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성리 대책위가 작성한 입장은 이런 관점이나 시각의 차이에서 나올 수 있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내용입니다. 열려져 있던 문을 할머니들이 문을 닫은 채 문고리를 잡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소설의 필요에 의해 ‘할머니들의 심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 할머니들의 마음이 물론 아프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성리 대책위 분들이 자신들의 감정으로 이입시켜 가공한 것처럼 그렇게 명확한 상태는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규란 엄니의 상황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이런 감정이 혼재된 상태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것을 할머니들의 증오와 미움으로 가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발 할머니들이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고 당신들 이야기로 우리를 공격 하십시오. 할머니들 앞세워 당신들의 정당성을 만들지 말고 스스로 그 정당성을 세우십시오. 당신들은 주장을 항상 할머니들로 감춥니다. 할머니들이 당신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수단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그렇게 비판해 왔던 사람을 수단으로 만드는 짓입니다. 이런 짓거리에 말을 섞어야 하는 성주투쟁위도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걱정됩니다. . . 4. 투쟁의 중심은 천 개나 된다. . 그리고 소성리가 중심이라는 생각 또한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고립과 소멸은 필연적입니다. 소성리는 직접적 당사자고 성주는 이제 주변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주가 중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드와의 거리를 통해 그 투쟁하는 주체의 중요도를 측정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주장하고 인정합니다. 하나의 중심이 인정되면 나머지는 당연히 그것의 부차적인 것들임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 . 다양한 삶의 공간과 조건에서 사드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은 동일합니다. 그리고 평화의 희망도 또한 같습니다. 성주는 사드 때문에 생긴 성주지역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틈에 대해 아프게 느끼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소성리 주민들의 건강 문제나 안전의 문제만큼이나 제3부지의 찬성과 반대를 두고 성주지역 주민들에게 자리 잡은 미움과 증오의 문제 또한 저울의 추가 기울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중심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드를 반대하는 것은 같습니다만 서로가 처한 입장에 따라 싸우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 휴전선 부근의 주민들은 사드가 가져오는 안전에 대한 위협, 군대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 중국과 관련된 시장의 상인들 등 이들이 가지는 사드와 연결된 다양한 상태가 연대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연대는 동일해서가 아니라 달라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투쟁은 다채로워야 하고 소성리 한 곳이 아닌 천 개의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의 중요한 중심에 대한 생각은 소위 서구의 ‘선진국’이란 나라들이 자신들과의 거리로 문명과 미개를 나누던 방식과 똑같은 생각일 뿐입니다. 연대는 내가 중심이니 나를 중심으로 모리라고 하거나 그 중심의 불쌍함을 동정해서 모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중심의 사고를 전체에 강제하거나 강요해서 획일화시킴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소성리 싸움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 5. 성주투쟁위를 파괴하려던 자들 . 이 내용은 그동안 개별적으로 통장이 잠근 이유로 전했을 뿐 공개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공개적으로 언급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차이를 무시하고 소위 연대단위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성주투쟁위의 위원장에 대해 상욕을 하고 제거시키려고 했던 행위는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지금 행해지는 #MeeToo의 가해자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운동권 권력을 가진 이들의 짓입니다. 그것도 성주투쟁위의 부위원장이 듣는 앞에서 그랬습니다. 아마 그도 ‘운동권’이기에 당연히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아니면 들으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주투쟁위라는 하나의 독립적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런 일을 성주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공식적이진 않았지만 여러 통로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통장문제를 이야기 할 때는 이 이야기는 쏙 빠진 채 성주만 나쁜 놈이 되어왔습니다. 그들이 거리낌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성주투쟁위 내부에 자신들과 이야기가 통하는 몇 몇 운동권 출신 활동가들을 믿고 한 오만방자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충환 만 제거하면 성주투쟁위는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해방된 주민은 틀에 갇혀있는 그들보다 훨씬 세상을 잘 봅니다. . 아마 작년 5월경부터 소성리 집회에서 공식 발언순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충환 위원장을 발언에서 뺀 것도 그들입니다. 누군가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입장이 달라서 뺐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문제는 성주에서 6주체 회의에 파견된 이들도 이에 대한 항의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운동권으로 이미 6주체에 경도된 상태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발언을 해 달라고 해서 올라갔더니 사회자가 부르지를 않더랍니다. 이런 일이 성주투쟁위가 연대회의에서 나오기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투쟁에서 배제의 행위를 한 것은 성주가 아닙니다. 소성리에 있는 소위 ‘운동권적폐세력’들입니다. 성주투쟁위는 이들의 이런 작태 때문에 큰 내홍을 겪었습니다. 소위 ‘운동권’출신들 일부가 성주투쟁위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운동권’일부는 아직 주민들과 함께 남아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상황을 아는 성주의 주민들은 지금의 상태를 ‘주민파’와 ‘운동권파’로 칭하여 부른다고 합니다. 이는 지역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 이재동 부위원장의 경우 연대를 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강했습니다. 저 또한 이재동 부위원장의 이런 설득에 입장이 흔들려 둘 사이의 묘수를 찾고자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성주투쟁위의 입장은 급격하게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통장에 대해서도 지급정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통장지급정지를 할 생각도 없었고,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성주투쟁위를 파괴하고자 한 자들이 성주투쟁위 명의의 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성주투쟁위를 파괴하고자 한 그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 . 6. 이런 짓 좀 하지 맙시다. . 소성리 대책위의 글을 정리한 사람도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썼을 것입니다. 너무 성급했습니다. 증오가 당신의 눈을 가렸습니다. 위기의식이 신경을 둔하게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네 명의 당사자들에게도 물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네 명의 출마자가 겪은 상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소성리대책위의 입장이라고 공식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적어도 상대방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은 필요하고 그렇게 한 후 입장을 정리해도 늦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 시킨 것 같습니다. 이런 졸렬한 짓거리에 대응을 해야 하는 우리들 또한 모양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짓 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통장문제는 정식으로 재판을 받아서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이후 통장의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성주투쟁위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당신들을 믿고 소위 ‘평화회의’에 통장을 넘길 수 없습니다. 재판을 통해 정당하게 소성리 평화회의 것임을 판결 받으면 성주투쟁위 또한 이런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통장의 자금이 평화회의의 소유라는 법원 판결이나 성주투쟁위를 파괴하려던 이들과 단체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에 통장지급정지가 풀리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통장지급정지가 원인이 아니라 성주투쟁위를 와해시키려 한 행위가 원초행위 임을 분명히 아시기 바라며 그런 성주투쟁위에 대한 파괴행위는 이번 사건처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3월 8일 소성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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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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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날 (85) 집회 장소와 관련하여 군수와 두 차례 협상을 했고, (구)경찰서 주차장으로 이전한다는 합의를 했다. 합의내용에 대해 촛불집회에서 찬반 토론을 했다.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10:00 손소희 조직팀장, 김충환 위원장, 배윤호 위원장이 릴레이 항의농성을 했다. 16:00 김성혜 교무, 배윤호 위원장이 집회장소 협의차 성주문화원장을 만났다. 18:00 (구)경찰서 주차장으로 집회장소를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목, 2017/10/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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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KYC 공익성회원활동 도성길라잡이와 평화길라잡이 활동!
서울KYC 회원이 된지 쫌 되셨다~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거고
회원이 된지 얼마 안되신 분들께서는 잘 모르실텐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서울KYC 도성길라잡이와 평화길라잡이 활동 소개 타임!



서울KYC 도성길라잡이는 매주 일요일 한양도성을 찾는 시민들에게
역사, 문화, 생태도시 서울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한양도성을 통해
해설하는 시민자원활동가 입니다.

서울에 한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한양도성이 지금도! 있다는 사실 다들 알고 계신가요?



조선의 수도였던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한양을 둘러싼 네개의 산인 백악, 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능선을 따라
약 18.6km에 달하는 성곽을 축조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도성 안과 밖을 드나들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4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보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성곽 바로 옆에 집이 생기고, 마을이 생기며
지금은 우리 삶 속에 한양도성이 들어와있습니다.

한양도성이 널리 알려지며 시민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서울시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도성길라잡이의 시민안내에 오시면
한양도성도 만나고, 한양도성에 대한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가족들과 와도 좋고, 친구와 함께와도 좋은 한양도성~
일요일 한양도성에서 도성길라잡이와 함께 만나요!

7월 5일(일) 오후 1시 30분  - 백악구간/ 목멱(남산)구간
7월 12일(일) 오후 1시 30분 - 낙산구간/ 인왕구간
7월 19일(일) 오후 1시 30분 - 백악구간/ 목멱(남산)구간
7월 26일(일) 오후 1시 30분 - 낙산구간/ 인왕구간

신청하기 ==> http://tour.jongno.go.kr/tour/main/contents.do?menuNo=110428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활동은 서울KYC 평화길라잡이 입니다!
서울KYC 평화길라잡이는 매주 일요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입니다.

일제가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1912년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꾼 이곳은
1987년까지 교도소로 활용되며 독립운동가들이, 1900년대 중,후반에는 민주 인사들이
탄압받고 옥고를 치뤘던 장소입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그들을 도왔던 외국인의 이야기,
해방 후 찾아온줄 알았던 자유가 독재로 인해 억압이 되자
그에 대항하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이들의 목소리까지.

실제로 서대문형무소하면 독립운동가와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더 오랜시간, 평화와 인권이라는 단어와는 동떨어져있었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시민들에게 평화와 인권이 무엇인지 다시끔 생각해볼 수 있도록
안내를 하는 평화길라잡이! 만나보고 싶으시죠?



평화길라잡이 안내는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1시 30분, 2시, 2시 30분
전시관(보안과 청사) 표지판 앞에서 시작합니다.
(위에 있는 사진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라 적힌 판넬 보이시죠?
사진에 있는 장소에서 시작합니다!)

별도의 신청없이 해당 시간에 오시면 안내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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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가족 손을 잡고 서울KYC 도성길라잡이와 평화길라잡이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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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0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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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1081일만에 뭍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겨우내 들었던 우리의 촛불은 국정농단과 헌법 파괴자 박근혜를 구속시켰고,
세월호를 들어올렸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허다윤 학생 (단원고 2학년)  고창석, 양승진 단원고선생님
그리고 이영숙씨와 권재근 권혁규 부자가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4월15일 서울KYC 회원들과 [진실을 향한 걸음 서울KYC 봄순성]을 하였습니다.

지난 겨울 매주 토요일 촛불을 들고 만났던 광화문 광장은 이제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봄기운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세월호 분향소에서 추모의 시간을 갖고
진실을 향한 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세월호의 진상규명!   모든 책임자 처벌!  국민의 권리인 안전사회 건설! 을 생각하며,
숭례문을 거쳐 한양도성의 남쪽 자락인 목멱구간으로 접어드니,
목멱자락도 완연한 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걷는 동안 도성길라잡이 정창영 선생님의 해설도 있었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세월호의 아픔처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짚어주셨습니다.

벚꽃과 연두빛으로 둘러쌓인 목멱을 걸으며, 지난 겨우내 들었던 촛불이 생각났습니다.
국정농단과 헌법파괴를 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며 들었던 촛불들...
그 촛불들의 힘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맞이한다는 생각에 감격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이 봄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미안함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걸으며 생각을 합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또 미수습자분들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끝없는 계단, 가파른 언덕...숨도 차고 땀도 흐르고...
그럴때 나도 모르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흥얼흥얼, 몇차례 부르고 나면, 어느덧 정상
그렇게 오르고 내리고 걷고 또 걷고 하니, 남산에서 시작한 봄순성은 낙산을 돌아 백악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봄순성을 마치고 회원분들과 광화문 광장으로 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수습과 철저한 선체조사, 책임자 처벌,
박근혜 철저한 수사와 처벌, 공범자 구속 그리고 적폐청산을 위한
[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 날]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도 만났습니다.
하준태 선생님의 2세 하사과군을 만났습니다.
우리 하사과군이 살아갈 세상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진실을 향한 걸음 서울KYC 봄순성]은 이렇게 세월호 추모문화제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가 가족품으로 돌아오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 더불어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때까지
[진실을 향한 걸음]은 계속 될 것입니다.

함께 걸어주신 서울KYC회원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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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4/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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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48486925614364&id=10001359… 성주촛불 467회차 라이브 방송입니다.
화, 2017/10/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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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예고된 폭주와 충돌, 지켜만 볼 것인가

모든 수단을 활용해 대북 대화 재개해야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국제팀장
 

 

오랜만에 운전대에 앉았다. 모든 것이 낯설다. 차도 사양이 바뀌었고 도로는 더욱 복잡하다. 건너편 차선의 운전자는 왜 이렇게 난폭하고 거친가. 불만족스러운 표정과 언사로 훈수를 두는 옆 자리 앉은 사람은 또 어떤가. 한미정상회담 이후 '운전석'에 앉게 된 문재인 정부의 상황이 딱 이렇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 정부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권을 행사해 나가겠다고 천명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한편 한미 동맹 강화와 군비 증강, 대북 제재 유지 및 강화 방침을 재확인한 자리가 아니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의 "모든 국가 역량을 활용하여" 북한에 대한 확장억제력 강화 방침을 밝히면서 북한에는 도리어 핵미사일을 포기하라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접근법이냐는 질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 기간조차 없이 당선 직후 출범했다는 점,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이뤄진 조기 정상회담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평가가 성급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 직후 이어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는 '운전수'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당면할 한반도의 위기가 먼 훗날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북한에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과 신베를린구상에서 일관되게 대화를 강조하는 만큼 제재와 압박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한미 정상은 대화와 제재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신베를린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화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강조하는 한편 "북한이 핵 도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화를 우선시하고 강조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제재와 압박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 7월 10일 한미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맞대응해 전략폭격기 B-1B를 동원해 연합 무력시위에 나섰다. 북한의 도발에 압박으로 맞대응하겠다는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한반도 상황은 강대강 대결국면으로 치달았고 이 땅에 사는 주민들은 일촉즉발의 가능성을 걱정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첨단 무기를 동원한 군사 훈련과 무력 시위가, 또는 한미의 압도적인 핵 억지력이 일찍이 북의 핵미사일 개발 의지를 좌절시킬 수 있었던가? 아마 그랬다면 한반도 핵갈등은 일찌감치 종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다 알 듯이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확실한 억지력을 구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북 선제타격 내용까지 포함하는 킬체인(Kill Chain) 등 군사력 강화를 조기에 완성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묘안은 무엇인가? 중국과 러시아까지 지지를 표명한 일명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스스로 한미군사훈련 축소와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이 전에 청와대는 문정인 특보가 방미 당시 한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을 두고 개인적 발언이라며 선을 긋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인할 다른 방안이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한미의 가공할 만한 군사력이 주는 위협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면 무엇보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을 감소시켜야 한다. 북한이 지난 20년 간 온갖 제재와 압박, 시련에도 불구하고 획득한 핵미사일 능력을 동결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 혹은 조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북한도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을 몰아치는 트럼프 정부만큼이나 북한 역시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를 대신할 만한 돌파구를 찾아내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북한과 주변국들을 설득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 소요는 필수적이다. 만일 그 사이 북한이 한 걸음 더 나아가 핵미사일 능력을 완성 궤도에 올리고 미국 본토에 대한 2차 타격능력까지 확보한다면 더 이상 한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없어진다. 아직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레드라인'을 설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이 악화된다면 핵능력 동결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문재인 정부가 지난 17일 북한에 남북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정전협정 64주년인 7월 27일을 기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자고 북한에 제안한 바에 따른 것이다. 군사 핫라인을 복원하는 최소한의 조치는 남북 대화를 재개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급성 때문이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현재 남북 간에 위기 상황을 관리할 어떠한 군사적 채널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북한의 황강댐 방류로 물이 불어나 정부는 급히 임진강 일대 행락객과 낚시객 등에게 긴급 대피령을 내린 바 있다. 남북 군사채널이 복원된다면 이러한 위기 상황은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대담하고 과감한 제안도 그 시작은 작고 간단한 시도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핵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최소한의 조치를 발전시켜 남북 대화를 재개하는 선제적 조치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모든 수단을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진심이라면 협상을 재개할 방안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8월 말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도 도발과 제재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미국과 한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경적을 울리는 사이 북한은 어김없이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로 무섭게 폭주했다. 최악의 충돌이 예고되는 지금, 9년 만에 운전석에 앉은 한국은 브레이크를 밟든 핸들을 틀어야 한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 내지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목, 2017/07/2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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