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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의 여성 대표성

지방의회의 여성 대표성

익명 (미확인) | 월, 2018/03/12- 23:09

국회에서도 여성의원 비율이 17%에 불과하지만, 지방의회에서도 여성의원 비율이 낮다. 광역지방의회(·도의회)의 경우에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여성의원 비율이 14.3%에 불과했다. 국회보다도 여성의원 비율이 더 낮은 것이다. 기초의회(··자치구의회)의 경우에도 25.2%에 불과했다. 그나마 여성의원들은 비례대표를 통해서 의회진출을 하고 있다. 지방의회에서 여성들은 지역구 공천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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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조기 대선이 시작되었고 대통령이 바뀌었다. 선거철에만 유권자, 시민이라 호출되던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정치 현실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정치적 경험을 확장했다. 광장은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현장이었다.

반면, 거리가 아닌 국회 안에서 대의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직업적으로' 정치를 경험해 온 이들도 있었다. 국회 안에서 바라본 정치와 선거제도는, 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아니, 어떻게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안고 원내 정당 중 소수 정당의 정체성을 유력하게 가지고 있는 정의당, 보좌관 홍기돈 님을 만나봤다.

진지함이 뚝뚝 묻어나는 인터뷰 현장 ⓒ비례민주주의연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임기 말까지 지켜봐야 하지만, 당장 분위기는 매우 들떠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권이 바뀐 시점을 전후로 살펴보았을 때 국회 내부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다들 예상했겠지만, 정당별로 차이는 있다. 물론 박근혜가 워낙 불통의 정치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분위기가 좀 컸다. 국회라는 곳이 다양한 정책을 두고 정당 간의 협상과 타협이 존재하는 곳인데 지금까지 여당(당시 새누리당)은 그런 소통의 물꼬를 트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귀속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굉장히 답답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문재인 정부를 보는 시각이 다르긴 한데, 이명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이지 않았던 모습, 예를 들어 식후 커피 모임이 화보처럼 찍히는 모습 등을 보면 확실히 상징적이고 권위주의적 모습을 탈피할 거라는 기대는 있다.


일단 직업이 '보좌관'이다. 홍기돈 님은 언제부터 보좌관이었나? 

국회에 들어온 것은 18대 하반기 강기갑 의원실을 시작으로였다. 2002년부터 서울시 노원구에서 민주노동당 관련 활동이나 일을 해오면서 사무국장, 조직국장, 정책국장을 거치게 되었고 당시 이수정 서울 시의원(민주노동당)과의 인연을 거치면서 보좌관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2002년부터 정당 활동을 해왔다는 이야기인데, 왠지 정당 활동이 생애 정치적 첫 경험은 아니었을 것 같다.

대학교 때 학생운동을 했다. 내가 94학번이니까 첫 투표가 1997년 대선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한 투표라 솔직히 정치적 행위로 기억 남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애 첫 정치적 경험이라 할 만한 것은 2000년 대우차 구조조정 관련해서 벌어졌던 폭력적인 진압 사건이다. 그때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대우차 사건을 겪으면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권력자가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서 대중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2년 뒤인 2002년이 나에게는 중요했던 한 해였다.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나 스스로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감옥에서 평화, 통일,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나의 '운동'이 지나치게 선언적인 구호이자 이론적인 추상은 아니었을까.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도외시하고 이론적인 운동만을 고집한 건 아니었을까. 아마도 감옥에 있는 나를 면회 오셨던 어머니를 보면서 소위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맞닥뜨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정말 괜찮은 것이었을까를 고민하다가 출소 후 학생운동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은 컸다. 고민 끝에 언론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학생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활동도 한 축으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당원으로 가입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코앞의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라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운동을 했던 나에게도 상근 당직자 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솔직히 언론 시험도 잘 안 될 것 같기도 해서 냉큼 수락했다. 하하하. 그렇게 지역에서 7년 당직자로 있었다.


아, 그럼 실질적인 현실정치에는 보좌관이 아니라 당원이자 당직자로 시작한 셈이다. 기억에 남는 활동들이 있다면?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지역 시민단체와 구의회 모니터링 사업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 그리고 지역주민들과 학교 급식 조례제정 운동을 해서 주민발의에 성공했던 것이 진짜 뿌듯한 기억이다. 당시 12,000명 서명이 목표였었는데 23,000명의 서명을 받아내서 대대적인 성공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인 이론, 제도, 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교육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7년이라는 기간이 나에게는 지역이라는 현장에서 함께 학습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다 공부하고 실천할 대상이었다.


현재 대선국면을 거치면서 사실 국회가 다채로워지고 있긴 하지만, 정의당이면 여전히 소수정당이다. 소수정당의 보좌관이기 때문에 다른 거대정당의 보좌관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면?

너무 많다. 사실 가장 큰 차이는 원내 20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섭단체가 되어 구조적으로 정보를 얻는 데 느리다는 점이다. 국회 일정이나 안건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교섭단체들끼리 협상하니까. 교섭단체인 정당들은 협상이 짧든 길든 무슨 이야기들이 이루어지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아예 협상에 못 들어가니까 그냥 계속 스탠바이 상태, 다시 말해 교섭단체들끼리의 뭔가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다. 같은 원내진출 정당이라고 해도 의견 자체를 낼 수 없는 구조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리하게 느껴진다.

반면 국회에서 소수정당으로 갖는 자부심이 있다면, 우리의 존재만으로 여러 가지 논의에 대한 출발점이 좀 더 진보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없었다면 모든 논의의 전제는 우리의 왼쪽이 아닌 민주당의 왼쪽에서부터 협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국회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수의 입장에서 조금 더 생각하면서 출발할 기회 자체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없었다면 성소수자 문제의 이야기 출발 자체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노동자,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자부심이 있다.

그렇다면 왜 정의당 같은 나름대로 규모 있는 진보정당이 계속 소수정당으로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가. 선거제도가 완전 엉망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우리처럼 계속 주장해 온 곳은 없다. 우리는 절실하다.

정의당 홍기돈 보좌관 ⓒ비례민주주의연대


소수정당의 설움이 사실 선거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 그런 깨달음을 언제부터 느꼈나?

2002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서울시 의원 1명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역구는 아니고 비례대표였다. 만약 비례대표가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은 후보 당선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비례대표의 필요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2명, 11.6%의 정당득표율로 8명의 비례대표를 당선시켰다. 사실 국회의원 300석 중 11%면 30석 아닌가. 정당득표율에 따라 우선적으로 정당에 의석수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면 많은 정당과 국회의원은 지역에 발목을 잡힌다. 물론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정치에서는 국회의원이 주민들의 요구에 발이 묶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역구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의원이 쪽지 예산을 신경 쓰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예산 낭비이자 비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왜 실현되지 않고 있을까? 물론 이번 대선후보 토론을 거치면서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선거제도 개혁에 관련한 약속을 받아내기는 했는데.

이제껏 선거제도 개혁이 안 된 이유는 단순하다. 기성 정당이 안 해주니까. 개인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해 받아낸 약속은 기대된다. 사실은 2012년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가 후보사퇴를 하면서 당시 문재인 후보와 정책협약을 맺었고 그 중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사퇴 조건에 있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민주당 내에서도 전혀 반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그 숫자가 적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통해서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의제는 더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봤을 때 정의당만이 아니라 이제는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선거제도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대통령 하나가 바뀌어도 이렇게 정치권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국회의원 300명이 달라지면 이 나라가 얼마나 달라질까. 내부 분위기는 대세가 굳어진 것 아닌가, 국민적인 의사와 여론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되다 보니 정치권이 반대할 만한 명분이 없어졌다. 다만 개헌 논의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숙제로 남아있다.


선거제도가 개혁되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진다고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정의당 입장에서는 많은 의석이 생기는데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일단 의석이 늘어나서 교섭단체가 되면 교섭단체의 보조금이 많아지므로 정의당이 정책역량이 커지는데 돈을 쓸 수 있어서 좋고. 또 교섭하면 우리 목소리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법안소위에 정의당 의원이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는 소위원회 인원수를 정당별로 배분하는데 우리는 비교섭단체니까 법안소위에서 빠져있다. 그런데 이 법안소위가 매우 중요하다. 법을 심사할 때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만 있어도 법에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을 풍부하게 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 소수정당으로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 당들은 국회 내에서도 뭔가를 시도해볼 기회 자체가 없다.


사실 선거제도가 바뀌고 나면 정의당도 교섭단체가 되고, 아직 원내 진출하지 못한 정당들 몇몇도 원내 진출을 하면서 국회의 구성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홍기돈 보좌관이 보기에 가장 눈에 띄는 정당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녹색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 하나를 뽑으라면 기독자유당. 녹색당이 기대되는 정당이라면 기독자유당은 두려운 정당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고 그것들이 국회라는 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의 전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언어를 출발점으로 한다. 내가 인정받으면 다른 사람도 인정해야 하는데, 몇몇 사람들이나 정당은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표현하고 행위까지 한다면 정치에서는 다당제를 통한 합의보다 충돌이 많을 것 같다.

독일에서는 여전히 극우 정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마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개혁된다면 기독자유당이 원내진입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데, 국회가 아무리 민심을 반영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극에 있는 정당이 다 들어온다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좀 고민해봐야 한다. 통계학적으로 봐도 사실 일반적으로 95% 신뢰도라고 하면서 양 끝은 버리는 게 일반적인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 용인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진입 장벽을 몇 %로 할 것인지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본다.

100인 인터뷰의 세번째 인증샷 ⓒ비례민주주의연대


지방선거가 당장 내년이다. 어떻게 흘러가리라 예측, 혹은 기대하는가?

예측은 참 어렵다. 민주당이 여전히 강세일 것이고 진보정당인 우리에게도 꽤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지역적으로 일부 성공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미지가 이번 박근혜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존 보수는 성공한 자, 능력 있는 자,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진보는 길바닥에서 떼쓰거나, 등산복, 분열, 말 많고 탈 많은 이런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이제는 진보가 오히려 세련되고 진정성도 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깔끔한 느낌. 보수는 홍준표 덕으로 성폭력, 여성혐오, 비하, 고리타분, 꼰대, 낡은 느낌이 생기는 바람에 이미지가 확 변했다. 세련되고 능력 있는 진보와 합리적 진보의 포지션을 잘 지키면서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나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보좌관이 바라보는 국회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일터, 노동현장, 회사이다. 그리고 동시에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18대 국회 때 어느 한 의원실에서 제안한 법의 취지가 나쁘지 않아 공동 발의를 해 통과된 적이 있었다. 법의 내용은 의도적으로 부채를 안 갚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채무자의 통장을 묶어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어떤 사람이 의원실로 전화해 마구 따지는 것이 아닌가. 내용을 들어보니 생계비가 단 하나의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게 묶여버리니까 쓸 수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국회의 결정이 공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심도 있게 검토해야겠구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공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결정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국회는 공적 결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곳이니까.


요즘 홍기돈 님의 삶 속의 화두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과 정치의 연관성은? 

요즘엔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18대, 29대, 20대 국회로 오면서 느끼는 건 시대는 계속 변하고 국민이 요구하면 다 바뀐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탄핵했고 정당의 시스템, 이념, 요구, 주장 등이 다 변해가고 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 가지고는 빠르게 변해가는 유권자의 인식을 쫓아갈 수 없으며 꼰대나 뒤처지는 사람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의원실 후배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민주주의자라는 평을 받는다. 제도는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실력과 능력에 따라서 크게 많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이번 촛불 보면서 시민의식이라고 하는 것, 국민의 역량이 축척되어 있고 성숙해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 고등 교육을 받은 수가 어마어마하고 대학진학률도 그에 못지않은데. 대부분 자기 삶의 영역에서 전문가이고 정보의 취합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문가가 상당수. 정치 제도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권만의 이해관계뿐 만이 아니라 국민과 토론하는 과정을 잘 만들면 좀 더 빠르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가르치려고 들지만 않으면.


진행|신나희, 정대망, 복코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재구성|신나희(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목, 2017/07/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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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 개최
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Change 2016!!

기억·심판·약속운동, 투표 참여,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 등 다양한 활동 전개

“기억, 심판, 약속”위해 전국 1,000개 시민사회단체 뭉쳤다!!

* 관련자료 자세히 보기 : http://www.peoplepower21.org/Politics/1392089

수, 2016/02/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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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재인 대표께서 직접 영입한 인사, 일명 더불어 어벤저스의 일원인 유영민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의 부산 해운대 갑 선거운동 현황.
화, 2016/03/2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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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와 새정치의 짬짜미, 이번에 끝장 내자!

평등 선거 원칙 지켜지려면…

 

좌세준 변호사

 

머지않아 추석입니다. 도시로 갔던 자녀들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한 데 모이는 것만 생각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힘들고 팍팍한 살림살이 때문에 추석을 맞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취직은 했나", "결혼은 언제 하나"라는 친족들의 질문이 부담스러워 이번 추석도 귀성 대신 혼자서 지내고 싶은 청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의미의 '헬(hell)'이 앞에 붙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최근 유행어입니다. 청년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지옥' 같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기도 '지옥' 같은 요즘 우리나라를 빗댄 말입니다. 이런 청년들은 모두 추석을 앞두고 마음이 설레는 우리 부모님들의 자녀들입니다. 부모님들의 마음 또한 편치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치인이 던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을 개그맨 김학도가 성대모사를 해서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같은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내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됩니다. 추석을 맞아 지역구 활동에 나선 국회의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정치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정치를 보면 지역구에 내려가 유권자들에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질 용기를 가진 의원들은 몇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불공정한 선거 제도 : '평등 선거' 룰 위반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불공정'한 국회의원 선거 제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거는 공정해야 합니다. 선거를 운동 경기에 비유한다면 공정한 규칙(rule)이 필요합니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 선거의 기본 규칙으로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헌법 제41조 제1항) 이와 같은 4가지 규칙 중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평등 선거'의 원칙입니다.

 

'평등 선거'의 원칙은 "유권자 1인의 1표는 평등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이와 같은 평등 선거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2년 4월 실시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43.3%, 정당 명부 비례 대표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42.8%였습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전체 국회의원 300석 중 42%에서 43% 정도인 126석이나 129석 많아도 130석 정도만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지역구 127명, 비례 대표 25명을 합해 총 152석으로 국회 과반수 정당이 되었습니다. 제2당이 된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지역구 선거에서 37.9%, 정당 명부 선거에서 36.4%의 득표율을 얻었으므로 108석에서 114석만을 차지해야 하는데 지역구 106명, 비례 대표 21명을 합해 총 127석의 정당이 되었습니다. 반면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은 자신이 얻은 득표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석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정당이 선거에서 얻는 득표율은 운동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가진 능력과 다르지 않은데, 거대 정당인 두 정당은 능력 이상의, 나머지 두 정당은 능력 이하의 기록을 얻었습니다. 육상 경기에 비유한다면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의 기록을 재는 초시계는 느리게 가는 반면, 나머지 두 정당의 기록을 재는 초시계는 빠르게 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승자독식, '거대 양당 정치 카르텔' 해체가 필요한 이유

 

이와 같이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가 지역구에서 한 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 한 명만 당선되는 '승자독식(winner-take-all) 선거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1위를 하려면 아무래도 거대 정당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 후보가 유리하게 마련입니다. 선거 자금이나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군소 정당이나 신생 정당, 정치 신인들은 2위나 3위를 할 수는 있지만 한 표라도 모자라면 당선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우리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는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양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입니다. 한 마디로 거대 양당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카르텔을 우리말로 하면 짬짜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어느 마을에 빵집이 두 개 있는데 빵집 주인 두 사람이 빵 가격을 절대로 내리지 않기로 서로 짬짜미를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에 빵을 사 먹어야 할 것입니다. 빵값만 문제인 게 아니고 어느 순간 빵의 맛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빵은 팔리는데 빵 맛에 신경을 쓸 리가 없겠지요.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실제 지지율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가지게 되는 정당들은 게을러지지 마련입니다. 선거 때만 반짝 유권자에게 다가가면 그만이요, 한 표만 더 얻어도 당선 보장이니, 유권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은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례 대표 선출을 위한 소중한 한 표, 절대로 양보해선 안 됩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거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지역구 선거에서의 1위를 할 수 없는 후보나 정당들도 자신이 얻은 득표율만큼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그 보완책이 바로 '비례 대표 의석 확대'입니다.

 

2004년 4월 실시된 17대 총선 때부터 유권자들은 지역구 후보에게 1표, 각 정당 비례 대표 명부에 1표씩 투표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의원 300석 중 54석을 비례 대표로 선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비례 대표제를 어떻게 알고 계신지요. 우리 헌법재판소는 비례 대표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비례 대표제는 거대 정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다양해진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며, 사표를 양산하는 다수 대표제의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으로 고안·시행되는 것이다. 비례 대표제는 그것이 적절히 운용될 경우 사회 세력에 상응한 대표를 형성하고, 정당 정치를 활성화하며, 정당 간의 경쟁을 촉진하여 정치적 독점을 배제하는 장점을 가질 수 있다."

행간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비례 대표제는 현재의 승자독식 지역구 선거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역구 선거에서 발생하는 유권자 지지도와 의석 확보 사이의 불균형을 보정(compensation)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비례 대표제입니다. 비례 대표제는 말 그대로 각 정당의 능력, 즉 득표율에 비례하는 만큼만 의석을 갖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다양해진 목소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지역구 선거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례 대표 선거는 이와 같은 지역구 선거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더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지역구 의원 한 명만으로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니, 비례 대표 의원을 가질 권리를 유권자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례 대표 의원 선거는 지역구 의원 선거와는 별도의 선거"입니다.

 

우리 국회의 비례 대표 의석수는 전체 의석의 18%인 54석으로 세계 최하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최근 "지역구 의석을 더 늘리고 비례 대표 의석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유권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비례 대표 의원 선출을 위한 소중한 한 표를 침해하는 위헌적 주장입니다. 지역구 의원 한 명만이 아니라 나를 대표할 비례 대표 의원을 가질 권리! 우리 헌법이 국민들에게 보장하고 있는 소중한 권리입니다. 이러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려면 현재의 비례 대표 의석수를 더 늘려야 하지 결코 줄여서는 안 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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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9/0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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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촛불 시민은 무엇을 위해 투표할 것인가?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벚꽃도 이제는 다 지고 다녀간 흔적만 거리에 남아있다. 너무 추웠지만 그래서 더욱 뜨거웠던 지난 겨울의 광장도 간헐적인 집회가 있긴 하지만 쉬어가는 분위기다. 2017년 그 겨울 우리 국민은 무려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던 박근혜 정부 4년의 지난한 과정을 뒤로하고 대통령의 탄핵 및 구속수감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사를 통틀어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의 동조 세력이자 국내 최대 재벌 기업인 삼성의 이재용 씨도 수감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이런 상황적 배경에서 치러지는 선거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장미 대선' 이라 하지만 광장 민주주의의 진화 과정에서 1700만 이상의 촛불 시민의 위대한 힘으로 만들어낸 대선의 이름치고는 너무 편안하고 한가로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히려 '탄핵 대선' 혹은 '촛불 대선' 이라는 이름이 그 역동적 탄생배경에 걸맞은 이름이 아닐까?

 

박근혜 정부 4년의 무기력

 

박근혜 정부 내내 온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대형 사건들은 백화점 세일 시즌 돌아오듯 꼬리를 물고 품목을 바꾸어 찾아왔다. 출범 초기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기둥 뿌리를 뒤흔드는 심각한 사건이지만 헌법상의 법치주의를 간단하게 비웃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기회만 되면 이민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지만 이어지는 대형 사고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치도 않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는 그저 헌법안에나 존재하는 공허한 문구였다. 취임 2년째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바로 그 다음해에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에게 국민은 없었다. 모두가 안전하게 구조되길 바라며 각자가 믿는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던 국민에게 세월호와 함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이후 메르스 사태에 속수무책인 정부는 또 다시 세월호 앞에서의 그 모습을 반복하였다. 확산의 원인을 감추고 정부의 무능을 은폐하는 모습이 불과 1년 전의 그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국민의 바람과 달리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국민이 분노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의 무능도 무능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감추고 왜곡하는 것에 있음을 모르는 건 정부밖에 없었다. 국민은 이제 우리 사회 도처에 또 다른 세월호와 메르스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없음 또한 알게 되었다. 국가적 재앙과 공포의 근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보호의 주체인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은폐되고 왜곡되는 상황에 노출되는 경험은 국민으로 하여금 심각한 집단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심각한 퇴행 현상 또한 박근혜 정부 4년의 주요한 특징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시도, 국가폭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피해자의 입장을 배제한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의 일련의 사건과 그때마다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단지 헌법질서 내에 존재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절차에 장애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반적인 민주주의 감수성을 크게 후퇴시켰다.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감수성의 후퇴는 급기야 '일간베스트' 라는 괴물 사이트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혐오라는 패악의 바이러스를 강화시키고 확산시켰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과 혐오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갈등을 낳거나 혹은 더 깊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의회 정치의 실종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무기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에 근거한 정치만 하는 여당과 수적 열세를 핑계로 무력한 모습만을 반복했던 야당은 더이상 국가와 국민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얻어진 4.13 총선 결과는 예상하기 힘든 놀라운 결과였다.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다종다양한 사고들로부터 치유되지 못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성난 여론의 밑바탕에 누적되어 있었고 이것이 국민의 징벌적 투표 행위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상황은 전혀 효능감을 주지 못하고 고구마같이 팍팍한 국민의 일상에도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판과 견제 및 감시 기능도 총선 이전과 다르지 않았고 국민과의 소통 또한 변함없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게 나라냐!"

 

여소야대 국면마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특권사회를 제대로 감시,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언론사를 통해 최순실, 박근혜의 국정 농단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끝을 모르는 이들의 욕망과 이를 위한 비상식적 일탈에 국민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국가 시스템 작동 불능의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게 나라냐' 라는 광장의 구호는 욕망의 금도를 넘어선 개인에 대한 외침이 아니다. 국가 통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며 국가 시스템 작동의 주체 모두에 대한 총체적 문제 제기이자, 분노이자, 경고였다. 사실 그 전까지 '정권 퇴진' 이라는 구호는 그야말로 선언적인 구호일 뿐이었지만 지난 겨울 광장의 퇴진 구호는 더 이상 선언에 그치는 구호가 아니었다. 실제로 어려운 순간마다 촛불은 더 많이 모였고 요구 또한 구체적이며 끈질겼다. 촛불이 경고하면 세상이 움직이는 꿈같은 상황이 촛불에 참여하는 국민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못했던 국민 앞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가 제도 정치에 반영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그간 참여하지 않았던 국민 또한 민주주의 역사의 순간을 함께하기 위하여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며 광장 인원은 회를 거듭할수록 기록을 경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선은 늘 악에 비해 강하지 못해 결국에는 악을 이기지 못하는 그간의 역사적 통념을 보란 듯이 깨버렸다. 광장에 모인 위대한 촛불들은 거악에 맞서면서도 끝까지 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폭력과 혐오에 대한 자체 정화능력까지 탑재한 광장의 촛불은 평등과 신뢰에 바탕한 평화를 끝까지 유지하였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헌재 결정을 얼마 앞둔 지난 2월, 장충체육관에 모인 1400여 명의 시민들은 새로운 2017 대한민국의 꽃길을 이야기하고 촛불권리선언문도 발표하였다. 부당한 권력을 탄핵 시키는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위한 여정의 시작임을 다짐하고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분노한 다음 날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특강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지젝이 남긴 말이다. 특강에서 그는 분노가 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가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지젝은 정치권과 시민 사회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중들이 기존 질서에 타협한 탓에 분노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분노의 다음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촛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대한민국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대선이다. 불과 6개월 전의 무기력했던 우리 사회를 기억해야 한다. 소중한 생명들이 세월호와 함께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도, 역사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왜곡되어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이 삭제당해도, 우리 농업의 미래가 물대포를 앞세운 국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던 우리 사회를 기억해야 한다. 지난 겨울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던져준 시그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주요인물 몇 명이 구속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 방식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끝까지 함께하겠다던 정치권의 목소리가 봄이 되니 사라지게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대통령 탄핵이라는 승리감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겨우 대통령 탄핵과 촛불 대선, 그리고 국가 개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첫 단계를 마쳤을 뿐이다. 광장의 개혁 열기가 대선과 이후 정치를 통하여 제도 개혁과 국가 개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광장의 개인이 아닌 유권적 시민의 총체인 국민으로서 국가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도 위대했던 촛불의 다음을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당선에만 관심을 두는 정치인들, 파렴치한 기업인들에게 강탈당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4.13 총선 결과에 따른 여소야대 국면과 대통령 탄핵 그리고 1700만 촛불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한국 사회는 장기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 주는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의 체제가 상당한 정도로 변화될 수 있는 결정적 국면이 바로 지금이다. 지금을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

 

벚꽃은 엔딩을 했지만 내년에도 분명히 다시 찬란한 봄을 장식할 것이다. 내년 이맘때 한국 사회 민주주의가 피워내는 꽃이 어떤 모습일지는 바로 지금에 달렸다. 부디 촛불이 보여준 긍정적 역동성이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번 대선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토, 2017/05/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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