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벗] 국경을 초월한 기업범죄는 처벌받을 수 있는가?

다국적 석유회사 쉘은 석유생산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오고니족의 생존권‧건강권‧주거권‧환경권 등을 침해했으며 군을 동원해 이에 항의하는 이들을 죽이고 공격했다. 오고니족 켄 사로위와는 쉘의 석유개발 반대운동을 펼치다 사형 당했다. ⓒFriends of the Earth[/caption]
1296명 죽였지만 법적 책임 못 물어
우리나라 또한 기업범죄로 인한 끔찍한 피해를 경험한 바 있다. 침묵의 살인자, 가습기 살균제. 2018년 1월 기준, 정부에 신고 된 피해자 5,960명, 이 중 사망자 1,296명. 아직 전체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대참사. 국내법의 허점으로 기업들은 충분한 검증 없이 인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와 함께 약 17년간 판매했고 그 결과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기업범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관련법의 미비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로 인해 아직도 기업의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다.
이 참사의 중심에는 세계적인 기업 레킷벤키저(영국의 생활용품 업체로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제조한 대한민국 현지법인의 이름은 옥시 레킷벤키저이다)가 있다. 애초에 초국적 기업 옥시는 우리나라에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유럽에서의 기준을 한국에 적용할 필요가 없었고 제대로 된 독성검사 없이 문제의 제품을 약 450만개 판매했다. 가장 많은 제품을 팔았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불매운동을 필두로 한 전 국민적 질타 속에 옥시는 마지못한 사과와 소수의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한 면피용 배상을 내놓았을 뿐이다. 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의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의 원심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하며 감형하였고, 함께 기소된 존리 전 옥시 대표에게는 증거 부족으로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하였다. 죄를 지었으나 제대로 된 책임을 져도 되지 않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스스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리 만무하다. 2018년, 존리 옥시 전 대표는 현재 구글코리아 사장으로 앉아있다.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옥시 앞에 서있다.
이처럼 기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인권침해 등의 문제는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이를 감시하거나 규제하는 조약은 없다. 반면 해외 진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은 3,000개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투자유치국의 규제 혹은 정책 변경으로 경제적 피해를 보았거나 미래에 피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정부를 국제 민간 중재기구에 회부해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사법권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환경·노동·조세 등 다양한 공공 분야에서 국가의 정책 자율권을 침해한다.
기업을 규제하지 못하는 자율규제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가속화되자 초국적기업은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인권침해를 중심으로 한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양산했다. 이와 관련한 국제적 논의의 시작은 1972년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UN 연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초국적기업이 칠레의 정치•경제•사회를 흔들고 있어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국제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약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사회주의자 아옌데 대통령은 중요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해 칠레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기업의 영향력을 통제하려 했다. 초국적기업은 이에 거세게 반발하며 아옌데 정권을 위협했다. 1973년 9월 11일, 결국 미국과 결탁한 군부 쿠데타는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만다.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는 초국적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UN 차원에서 구속력 있는 조약을 제정하는 ‘법적규제’와 국제기구가 초국적기업이 준수해야 할 기준을 제시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행하도록 돕는 ‘자율규제’의 방안을 고안해냈다. 1974년 초국적기업위원회(CTC)가 설립되어 조약의 형태로 초국적기업의 문제를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UN 초국적기업행동규칙초안’ 작성을 시작했다. 1982년 초안이 완성되며 ‘법적규제’ 방안이 물꼬를 트는 듯이 보였으나 선진국의 지속적인 반대로 1994년에 초국적기업위원회와 함께 폐기된다. 이후 초국적기업의 인권침해 문제가 더욱 잦아들자 UN인권위원회의 소위원회는 2004년 ‘초국적기업 및 기타 사업체의 인권책임에 관한 규범 초안’을 작성해 인권위에 제출한다. 그러나 이 역시 정부 대표들의 강력한 반대로 채택되지 못한다.
‘법적규제’가 표류하는 한편 ‘자율규제’를 둘러싼 다양한 국제기준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1976년 OECD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체약국의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의 의무사항을 제시했고, 1977년 국제노동기구(ILO)는 다국적기업과 사회정책 원칙에 관한 삼자선언을 발표해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포함해 환경 및 인권 침해 등에 관한 국제기준을 준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기업의 자발적 준수에 의존한 자율규제는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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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벗 활동가들이 COP21 회의장 앞에서 2015년 인도네시아 산불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Friends of the Earth[/caption]
국경을 초월한 기업범죄 처벌 할 수 있는 단초 마련해야
이런 가운데 2014년 6월 26일, 유엔인권이사회는 초국적기업 및 기타 사업체의 인권준수 의무에 관한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을 논의하는 결의안 28/9호를 통과시킨다. 이달 말 정부는 정부간 실무그룹(IGWG) 4차 회의에 앞서 조약 관련 논의를 계속할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과거 한차례 반대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국제사회에서 함께 해결하려는 논의마저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는 해외 진출 기업이 따놓은 경제적 과실은 함께 취하지만, 기업이 해외에서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는 현지법에 따라야 한다며 자취를 감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경을 초월한 기업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함께 우리 정부의 대담한 결정을 기대해본다.
이 글은 <함께사는 길 2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토론회 썸네일]한강, 복원과 개발의 기로에 서다](http://kfem.or.kr/wp-content/uploads/2017/06/토론회-썸네일한강-복원과-개발의-기로에-서다.jpg)

























한강의 흐름을 막고 선 작은 댐, 신곡수중보. ⓒ박평수[/caption]
얼마 전에는 상괭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상괭이는 한강에서 볼 수 있었다는 토종 돌고래의 이름입니다. 일반 돌고래와는 달리 등 지느러미가 없고, 입이 웃는 상이라 얼굴에서 감정이 느껴져요. 가까운 바다에 주로 살지만, 썰물 때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그 물살을 따라 상괭이도 강으로 들어오곤 합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한강에서 상괭이가 죽은 채로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88년에 댐이 생기고 나서는 한강에서 상괭이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채로 모습을 드러낸 거예요. 이유 중 하나로 썰물 때 물에 잠긴 댐을 넘어서 강으로 왔다가 밀물이 되어 다시 드러난 댐을 넘지 못해 한강에서 표류하다 죽은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알고 더 이야기해줄 수 있는 상괭이 프로젝트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엇지’라는 이름으로 환경 운동을 하시는 활동가예요.
신곡보 바깥의 습지에서 ‘점박이물범’ 발견 기사. 인터넷 뉴스 캡쳐 ⓒ쿠키뉴스[/caption]
1961년의 한강. 보가 설치되기 전 한강에는 좋은 모래밭이 많고 물이 깨끗해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겼다. ⓒ조선일보[/caption]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caption]

한강 하류 전류리 포구 입구ⓒ김준성[/caption]
한강 하류의 신곡보를 기점으로 위에는 고양시 어촌이 아래에는 김포시 어촌이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김포시 어민 한 분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백성득 님은 김포시 어촌에서 계장을 지냈던 어부입니다. 한강에서 고기 잡는 걸 보고 자라 여태까지 어업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 시간만 이제 50년이 되었습니다. 50년을 강에서 보낸 사람에게 제 첫 질문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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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전류리에서 잡힌 바다물고기 숭어ⓒ김준성[/caption]
한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직접 판매하는 어민들ⓒ김준성[/caption]
한강 어업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 백성득 님은 부족한 수량을 꼽습니다. 서해가 몰고 온 펄을 씻을 강물이 흘러야 하는데, 신곡보가 상류에서 흘러오는 물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폭파되기 전의 밤섬ⓒ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밤섬은 본래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업으로 유명한 곳이었죠. 한강을 오가는 목조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뛰어난 기술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강에 떠다녔던 배의 95%는 거진 밤섬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밤섬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밤섬에서 태어나 폭파되기 전까지 사셨던 유덕문 밤섬보존회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얼어 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밤섬 실향민들이 이주했던 와우산 자락ⓒ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한편, 폭파되어 수면 아래로 잠겼던 밤섬은 1980년대 중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회복했습니다. 지금은 원래 밤섬보다 더 커졌습니다. 강이 옮기는 모래와 펄이 밤섬에 쌓이고 떠내려온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워 초목을 이뤘습니다. 되살아난 밤섬은 새들의 쉼터가 되었고 99년에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2012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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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으로 되살아난 밤섬 ⓒ 뉴스토마토[/caption]
밤섬보존회 회장님과 밤섬부군당 사당ⓒ김준성[/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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