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이트의 미즈넷
다음 사이트의 미즈넷, 미즈토크, 50대들의 쉼터 방에 올라온 글입니다.
너무 민망해서
안중근 의사 숭모회 사이트에 비밀글로 올리고 처벌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숭모회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의사님 본인은 물론이고,
그분의 어머님까지 모욕하고 있습니다.
……………………….
우리 응칠이는 호로자슥이다. [1]
- 579921| 처음과끝 (sogep****)
- 공감 4 | 조회 199 | 2017.11.02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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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직업의 수는 약 20,000개요, 세계적으로 볼 짝에는 약 400,000개의 직업이 있답미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고 나아가 생각하는 방식은 더욱더 다양한 것이지여. <!–[if !supportEmptyParas]–> <!–[endif]–> 떼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 민주공화국 최고의 가치는 바로 ‘自由 자유’람미돠.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남에게 구속 받거나 그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종교와 철학과 이상과 이념을 주장 할 수 있는 것…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러한 자유는 절대적으로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가치인 거져. <!–[if !supportEmptyParas]–> <!–[endif]–> 미 수정헌법 1조를 보자면, <!–[if !supportEmptyParas]–> <!–[endif]–>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흔히 말하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조항인 것이져.
이와 관련된 ‘래리 플랜트’라는 영화가 있었져.
악명 높은 포르노 잡지 ‘허슬러’ 의 래리 플랜트. 속물이자 선동가이기도 한 래리 플랜트의 인생역정과 미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법정투쟁.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극중에서 래리 플랜트가 이런 말을 했져. <!–[if !supportEmptyParas]–> <!–[endif]–> “살인은 불법이지만 그것을 촬영, 뉴스위크誌에 실으면 퓰리쳐상을 받고 섹스는 합법이지만 그것을 촬영하면 감옥에 가야한다. 어떤 게 더 유쾌한가.” <!–[if !supportEmptyParas]–> <!–[endif]–> ” 난 미국의 삼등시민이다. 나같은 쓰레기가 보호받는다면 여러분 모두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또한 변호사 아이삭 맨은 “포르노는 싫어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며 소송을 맡았져.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상사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의 머리속에 존재하는 고정관념과 일반상식에 테러를 가한 영화, 이른바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통렬한 해석이 백미져.
우리는 우리 응칠이를 의사요 열사라고 하는 것을 탓하진 않슴미돠. 기건 바로 니들의 생각이고 표현이고 자유니깐 말이져. <!–[if !supportEmptyParas]–> <!–[endif]–> 반면, 응칠이가 테러리스트라 하는 것을 탓해도 안 됨미돠. 기건 그들의 생각이요, 양심이요, 자유니깐 말이져. <!–[if !supportEmptyParas]–> 기실 우리 응칠이가 의사요 열사라덩가 테러리스트요 호로아해라는 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저마다 다 생각과 주장이 다 다를 수 있고 그 생각과 주장이 다 옳거나 틀린 것도 아니니 말이져. <!–[if !supportEmptyParas]–> <!–[endif]–> 정작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종교와 사상이 다르다 해서 남들의 주장과 생각을 배척하고 방해하는 작태임미돠. <!–[if !supportEmptyParas]–> <!–[endif]–> 네 종교와 사상과 자유를 인정 받으려고 한다면 당근 남의 것도 인정해야만 하는 건데 말이져. <!–[if !supportEmptyParas]–> <!–[endif]–> 첨님은 이런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자질도 없는 것들이 나오는 대로 아가리질 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곰미돠. 니들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과 표현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곰미돠.
<!–[endif]–>우리 응칠이는 아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요 열사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테러리스트요 호로아해의 얼굴도 가지고 있담미돠. <!–[if !supportEmptyParas]–> <!–[endif]–> 제 신념이라며 사람에게 총질을 하였으니 테러리스트요, 나이 30에 사형을 당해 오마니 가심에 못을 박았으니 호로아해인 거지요.
그리고… 응칠이의 오마니의 편지… 구차하게 목숨 구걸 말고 기꺼이 디지라는 그런 편지… (실은 조마리아는 그런 편지를 쓰지 않았다지만) 그런 편지질을 한 에미라면 기건 바로 미틴뇬이 맞구요.
세상사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결정하는가? 첨님은 바로 이 소리를 하고픈 거지요. 어험! |


시민사회, 국정 역사교과서 저지
작년 4월 새벽 1시쯤 연구소가 위치한 동대문구 사무실을 찾아온 김모씨는 연구소 현판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출입문에 엑스(X)자 모양의 낙서를 한 후 도주했다. 스프레이 테러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CCTV를 토대로 수사에 들어간 동대문경찰서는 11월에 김모씨를 붙잡아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형사조정에 참석한 김모씨는 모든 것이 가짜뉴스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말하면서 수차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연구소도 김모씨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만큼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래의 사과문은 김모씨가 형사조정의 결정에 따라 작성하여 연구소로 보내온 것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임국희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 부산지역에서 청년운동을 하였고, 주로 부산청년동맹에서 활약했다. 부산청년동맹은 조선청년총동맹 산하 단체로 부산에서 결성된 항일청년단체로 1927년 12월 창립 이후 부산지역의 청년운동 및 각종 사회운동을 지도하며 일제의 지배정책에 저항했다. 주요 활동은 당시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기반한 노동운동이었으며, 각종 강연회와 음악회·운동회 등을 열어 대중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임국희 선생은 부산청년동맹 집행위원 및 조사・연구부 부원, 부산청년동맹 서부지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신간회·근우회 등 부산 지역의 각종 단체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와 연설회에서 연사로 활약하였다. 같은해 부산조선방직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노동자파업을 지지·후원했던 일본인 사회주의자 쓰지(辻登喜吏)와 나카무라(中村忠)와 협력하여 파업 전말을 알리기 위한 격문 수백 매를 인쇄하여 조선과 일본 각지로 우송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구금되었다. 석방 후에도 꾸준히 부산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1931~1932년 일제에 의해 수차례 예비 검속당했다.]


스프레이 테러로 불그스름하게 물든 연구소 현판도 챙기고, 먼지 쌓인 연구소의 옛 추억들도 차곡차곡 상자에 담았다. 책이 예상보다 너무 많았는지 이사업체는 지하서고에 자동 밴딩 기계까지 설치하고 이틀 전부터 포장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무실은 일상 업무를 진행해야 해서 이사 전날 새벽까지 개인 짐을 싸는 상근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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