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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냐 이상가냐, ‘미스터 에브리싱’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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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냐 이상가냐, ‘미스터 에브리싱’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익명 (미확인) | 수, 2018/01/03- 17:56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권력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진원지다. 32세의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왕자가 2017년 6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현 국왕이 80세 나이로 왕좌에 오른 지 2년 만에 형제세습이라는 왕가 내 신사협정을 깨고 부자세습에 나선 충격파는 예상 밖으로 커 보인다.

무함마드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반년 사이 사우디에서는 왕세자의 점재적 경쟁자인 11명의 왕자가 부패 혐의로 체포ㆍ구금 되는 등 사실상 숙청됐다. 강력한 정적으로 꼽혔던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는 의문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졌다. 예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우디 남서부의 아시르주 부지사였던 만수르 왕자는 왕세제(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동생)였던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의 아들이다. 무크린은 앞서 사우디 전통에 따라 살만 국왕이 2015년 1월 왕위를 물려받을 당시 왕세제에 책봉됐지만 석 달여만에 살만 국왕에 의해 폐위됐다. 아라비아반도 20여개 부족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1927년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초대 국왕이 ‘왕자의 난’을 우려해 남겼던 “왕위를 형제끼리 연장자 순으로 상속하라”는 형제세습 유훈이 깨지면서 우려했던 피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왕좌를 넘어 중동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에 잇따라 개입하며 시아파 맹주 이란과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블록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전략 탓에 아랍 민중들은 피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알리 압둘라 셀레 전 예멘 대통령 피살,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의 사임 발표와 번복,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공식 선언까지 일련의 사건 또한 무함마드 왕세자의 부상과 떼놓고 볼 수 없다. 사우디와 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트럼프 미 행정부까지 엮여 중동의 새 질서를 만들기 위한 파워게임이 본격화하는 중심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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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우디 왕좌 목전 둔 32세 왕세자…”나이에 비해 영리

무함마드 왕세자는 1985년 사우디 남서부 제다에서 태어났다. 홍해안의 항구도시 제다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향하는 관문으로 순례자 대부분이 거쳐가는 상징적 도시다.

시작은 비슷했지만 사우디 왕가의 여느 왕자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초등학교부터 줄곧 사우디에서 공부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유학한 대부분의 사우디 왕가 왕자들과는 다른 선택이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수도 리야드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왕국 상위 10등 안에 드는 수재였다. 대학도 초대 국왕의 이름을 딴 국립대 킹사우드대(KSU)로 진학해 법학박사 학위를 딴다.

졸업 후에도 사우디를 떠나지 않았다. 정부 관련기관에서 일하기 전까지 몇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민간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리야드경쟁력위원회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킹압둘아지즈재단 이사회 의장 특별보좌관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자신이 만든 비영리단체 미스크(MiSK)재단 활동에도 공을 들였다. 국제 포럼 등을 통해 사우디 청년들의 리더십을 키우고,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스타트업 창업 의지를 심어주는 일이 재단의 주된 활동이었다. 이를 토대로 무함마드 왕세자는 포브스 중동판이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우디 국내에 머물면서 이른 나이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2007년 사우디 정부 내각의 전임고문 자리를 꿰차며 정치에 입문한다. 만 21세부터 후계자 수업이 본격화한 셈이다. 2009년에는 당시 리야드 주지사를 맡고 있던 아버지 살만 국왕의 특보로도 이름을 올리며 행정가로서의 경력까지 덧입힌다. 이때부터 사실상 “아버지의 그림자”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리고 2015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살만 국왕이 즉위하면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버지의 자리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만 29세의 세계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방장관으로 지명되면서 왕좌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사우디 내부 정치에 공을 들이는 선택은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오랜 시간을 두고 내부 지지세력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살만 국왕의 장남인 술탄 빈 살만 왕자 등 배다른 형제들을 후계경쟁에서 제칠 수 있었던 주요한 배경이다. 술탄 왕자는 미 시라큐스대학을 졸업하는 등 주로 서방을 무대로 활동했다. 198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해 아랍인 최초 우주비행사로 한때 국민적 영웅이 되기도 했지만, 동생에 밀려 관광국가유산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우디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학자로서 명성이 높은 파이잘 빈 살만 왕자도 무함마드 왕세자의 벽을 넘지 목한 채 메디나 주지사에 머물러 있다.

외가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살만 국왕의 세 번째 부인인 파흐다 빈트 팔라흐 반 슐탄 빈 히탈라인은 아즈만 부족 출신으로 19세기 명성을 떨쳤던 아랍 지도자 라칸 빈 히탈라인의 손녀다. 아즈만 부족은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의 하나일 정도로 이슬람 내 세력이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 외교관들의 입을 빌어 “파흐다 부인이 자신의 장남인 무함마드 왕자에게 대권을 안기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고 사우디 왕가 내부 분위기를 전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방장관에 오른 뒤 보여준 호전성이 외가의 혈통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아즈만 가문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손에 꼽히는 호전적 집단으로 악명이 높다.

무함마드 왕세자 스스로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왔다. 방탕한 생활로 지탄을 받는 다른 왕족과 달리 술ㆍ담배를 일체 멀리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노출시키며 이미지를 관리했다. NYT 보도에 따르면 2015년 5월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담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난 뒤 “정말 아는 게 많고 똑똑하다. 나이에 비해 영리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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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선 확대하며 수니파 맹주 꿈… “미숙함과 성급함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5년 1월 국방장관이 됐을 때만 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로열패밀리의 일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개발위원장 등 요직을 독차지한 데 이어 3개월이 채 안돼 부왕세자로 전격 지명됐다. 왕위 계승서열 2위 자리를 꿰차자 그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 당시까지 국왕과 후계자들이 모두 초대 국왕의 아들들이었다. 3세대 왕자의 부왕세자 지명으로 왕실의 세대교체를 위한 첫 물꼬가 트인 사건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가만히 때를 기다리기보단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다. 시아파 맹주 이란과의 전선부터 확대한다. 수니파를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단시간에 쌓으려는 그의 전략적 선택에 따르는 대가는 아랍 민중의 피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국방장관에 임명된 직후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맞서고 있는 반군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다. 시리아 정부군이 시아파 맹주국 이란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우디의 참전 이후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러시아까지 뛰어들며 시리아 내전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해 3월에는 예멘 내전에 개입한다. 이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기 공습을 주도했다.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했다. 예멘 반군과 유엔에 따르면 사우디의 개입 이후 최근까지 예멘에서 9,000명이 사망했고, 5만명이 부상했다. 사망자의 60%가 민간인으로 추산된다.

사우디는 두 개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했다. 하지만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키워온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의 입지를 공공이 했다. 2017년 6월 친위부대를 동원해 무함마드 빈 나예프 당시 왕세자를 가택 연금한 뒤 폐위시킨다. 차기 국왕 자리를 차지한 뒤에는 또다시 이란과의 전선을 더 넓히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알카에다 조직을 지원했다는 명분으로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하며 고립 작전에 나선 것이다. UAE와 바레인, 이집트 등 수니파 국가들이 동조했다. 하지만 카타르가 이란ㆍ터키와 교역을 확대하며 버티면서 카타르 봉쇄 전략도 사실상 실패했다. 영국일간 가디언은 “빈살만 왕세자는 혈기왕성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라며 “최근 사태에서 그의 외교적 미숙함과 성급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혹평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폭주할 수 있는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밀월관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을 미리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뉴스위크는 “사우디는 이란보다는 차라리 이스라엘을 믿을 만한 국가로 여긴다”며 “트럼프의 유대인 사위 쿠슈너 선임고문이 여러 차례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전 교감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무함마드 왕세자의 부상은 미국의 중동 재편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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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빈 살만 왕자를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하는 자리에 모인 사우디 왕가의 왕자들.(사진: EPA=연합뉴스)

호전적 몽상가? 개혁적 이상가? 기로에 선 미스터 에브리싱

무함마드 왕세자는 호전적 외교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내부 개혁을 주도하며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여성의 운전 허용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슬람 강경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무릅쓴 결정이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여성 운전을 금지한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을 벗게 됐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 겸 자곡가인 야니의 사우디 순회공연장에서 남ㆍ녀 관객들이 같은 객석에서 공연을 감상해 아랍 현지에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영향력이 강한 사우디에서는 공공장소 남녀 합석이 엄격히 금지돼 왔다. 여성들은 외출 시 스카프로 머리와 얼굴까지 가려야 한다. 알 아라비야 방송은 “야니 콘서트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가개혁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라고 선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중장기 사회ㆍ경제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6년 선포한 ‘비전 2030’이 대표적이다.. 특히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사우디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건설ㆍ관광ㆍ기술 산업 등을 육성해 경제의 펀더멘탈을 탄탄히 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 강화와 정부 재정건전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사우디 서북부 홍해 연안 지역에 5,000억 달러(약550조원)를 투자해 서울보다 44배 큰 규모의 신도시 ‘네옴(NEOM)’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한 예다. 이 도시는 석유가 아닌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를 기반으로 세워질 계획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과 왕실의 사치 등으로 국고가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함마드 왕세자는 반부패위원회 위원장 지위를 활용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수환을 보이고 있다. 11월에만 아랍권 최대 부호인 왕족들을 포함한 기업가ㆍ정부 관료 등 200여명을 체포ㆍ구금하는 전방위적 사정 작업을 통해서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철퇴를 가해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편 과징금 등을 통한 재산환수로 국고를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부패 혐의로 왕족과 기업인 등을 체포한 뒤 보유 재산 상당 부분을 내놓는 조건으로 석방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사우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부패척결을 통해 최고 3,000억(약330조원)달러 규모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무함마드 왕세자가 부패척결을 포함한 개혁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2015년 러시아 보드카 재벌로부터 132m 길이의 호화 요트를 5억5,000만 달러에 사들인 사실과 같은 해 2억7,500만 유로(약3,500억원)를 주고 프랑스 파리의 호화 대저택을 구입한 사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부패하지 않은 개혁가로서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술품 경매 역사상 사상 최고가인 4억달러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수 초상화인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ㆍ구세주)를 구매한 실제 주인공 무함마드 왕세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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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15. 기금운용본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에서 상정된 안건에 대하여 동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찬성의결권행사 결정을 공시하였다.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 주총안건으로 올라온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기금본부 투자위원회를 통해 찬성 의결을 결정한 뒤, 일방적으로 찬성 공시를 하였다. 삼성물산 – 제일모직 합병사태에 일조한 이사의 선임에 찬성한다는 내용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에서 의결권을 포함한 주주권행사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을 부여받은 ‘수책위’에 주요 투자기업의 의결권 이슈들의 사전 공유조차 하지 않고 ‘수책위’를 패싱하였다. 심지어 단독 결정이 확인되어 동 안건을 수책위에서 논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수책위 위원 3인이 안건을 발의하였다는 것을 통보받은 뒤에도 그마저 무시하고, 찬성 의결 공시를 강행한 것이다. 실로 기금위의 의사결정구조를 송두리째 무시하는 만행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연금행동은 기금운용본부의 독선, 주무처인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관리소홀, 그리고 제도개선에 실패한 정부와 국회를 비판한다.

우선 의결권행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권고사항 정반대의 결정을 기금운용본부가 독단적으로 내린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해명이 필요하다. ISS가 삼성전자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한 이유는 현재 후보로 나온 인물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 기생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의 찬반 여부를 떠나, 의결권 행사의 원칙과 내부 의사결정구조가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통상적으로 수책위에서 논의하지 않고 기금운용본부가 독단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안이 매우 경미하거나 근거가 확실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지난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정농단세력에 굴복한 기금운용본부의 원죄로부터 기인한다. 당시 박근혜-최순실-이재용이라는 정치·경제권력이 결탁하여 삼성그룹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국민의 자산인 국민연금을 이용하려 하였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합작하여 삼성물산-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이 이루어졌다. 국정농단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나아가 주주권 행사에 있어서 기금운용본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하였다. 대신 수책위와 기금위의 유기적 연계 아래 기금운용본부의 전체 행위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져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금운용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기금운용지침 제17조의3 제5항에서 공단(기금본부)에서 판단을 하기 곤란한 사항, 수책위원 3인 이상이 요구한 사안 등에 대해서는 수책위에서 결정한다고 모호하게 규정한 것 또한 문제로 드러났다. 기금운용본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같이 투자위원회에서 3월 10일 독단적으로 결정하였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일부 수책위 3인의 위원들이 15일자로 수책위에 정식 안건으로 발의하여 상정된 후 기금본부에 그 사실을 통보하였다. 기금본부는 수책위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이를 무시하고 같은 날인 15일 공시하였다. 사후에 이를 확인한 노동시민사회 수책위원 3인이 항의차원에서 16일 수책위 회의에서 퇴장하였으며, 2인의 위원이 사퇴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수책위에서 안건을 논의하기로 하였다는 변명성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연대에 기반한 기금이다. 이러한 기금이 자본의 이해에 충실하여 선량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기금운용본부의 판단이 객관적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 과정이 기금위의 감시와 통제 아래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과 방향이 이번 삼성전자 주총 의결권행사 결정과정에서 또 지켜지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 의결권 행사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향후에는 기금운용지침을 개정하여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투자대상기업의 주총 안건 결정의 주요 정보를 수책위에 사전 공유하도록 하고, 수책위에서 그 중 경미한 사안으로 분류한 것은 기금운용본부가, 나머지는 수책위가 결정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기금운용본부와 수책위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기금위 중심의 책임있는 논의와 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전문위원의 기금본부에 대한 자료제출 및 안건설명 요구권을 강화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 수탁자책임활동 관련 인력을 증원하여 수책위원과 전문위원이 실질적으로 기능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하여야 한다.

2021년 3월 17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The post [성명] 제2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사태’ 또 반복할 것인가 appeared first on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수, 2021/03/1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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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금융노조, 한국노총은 30일(화) 오후 2시,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2021 주목해야 할 국민연금기금운용 전망과 과제: 국민신뢰 회복방안과 수탁자책임 활성화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2. 국민연금기금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세력에 의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용당하는 등 국민적 신뢰가 상당히 훼손된 바 있습니다. 이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금운용체계 상설화 및 체계개편이 일부 추진된 바 있으나 여전히 개선되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상황입니다. 기금규모가 1,000조를 향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기금은 장기적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략적 자산배분 방식 개선 및 신규자산군 개발, 국내자본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조절하는 문제, 해외자산 및 대체투자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방안 마련, 수탁자책임 활성화의 기반이 되는 적극적 주주활동 강화 등 다양한 내용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이에 국민연금기금운용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 노동시민사회진영이 함께 참여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수탁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을 고민하는 자리로 토론회를 마련하였습니다. 기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끝.

 

[첨부] 토론회 개요

2021년 주목해야할 국민연금기금운용 전망과 정책과제
-국민신뢰 회복방안과 수탁자책임 활성화를 중심으로-

작성자: 한국노총 김정목 정책차장(21.03.15.)

⑴ 취지 및 배경
한국노총은 올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할 정책과제들을 묶어 ‘2021년 국민들이 주목해야할 정책개혁과제’ 연속토론회를 진행하려 함. 이 중 첫 번째 주제로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전망과 과제’를 다루는 토론회를 추진하고자 함. 지난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 이후부터 제기된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위해 그동안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국민연금기금운용의 상설화 및 체계개편 등을 추진한 바 있음.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는 상황임. 기금규모가 1000조를 향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기금운용의 장기적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략적 자산배분방식 개선 및 신규자산군 개발과 국내자본시장에 대한 파급효과를 조절하는 문제, 해외자산 확대 및 대체투자 확대 등 관련 리스크 관리 방안 마련, 수탁자책임 활성화로 소위 경영활동의 개선이 필요한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강화 등 다양한 영역의 개선방안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임.
상기된 내용을 다루고자 2021년 국민연금기금운용의 현재 상황을 전문가로 하여금 진단케하고 향후 노동시민사회진영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함.

⑵ 구성
ㅇ일시: 2021년 3월 30일(화) 14:00 ~ 16:30

ㅇ장소: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

ㅇ주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ㅇ공동주최 의원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김성주, 정춘숙, 강선우, 김주영, 최혜영

ㅇ좌장 : 정용건│금융감시센터 대표

ㅇ발제
① 국민연금기금운용 현황과 과제: 원종현│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
② 국민신뢰 제고를 위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활성화 방향: 이상훈│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ㅇ토론
① 박기영│한국노총 사무처장
② 류제강│KB금융노조 위원장
③ 정해식│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④ 조윤남│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
⑤ 최봉근│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ㅇ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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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3/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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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행동은 21대 국회 회기가 시작된 2020년 5월 30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발의된 기초연금법, 국민연금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3개 법안을 중심으로 현황을 제시하고 내용을 평가한 이슈페이퍼를 발행하였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주요 내용 요약 >

첫째, 점점 더 많은 연금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국민연금법 발의건수만 보더라도 지난 20대 국회는 16대 국회보다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21대 국회 역시 불과 1년이 지났지만 총 56개 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증가는 그만큼 노인 빈곤과 노후 불안의 심각성과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그러나 실제 법안 처리률은 다른 법안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1대 국회 역시 국민연금법 6.7%, 기초연금법 6.3%, 퇴직연금법 12.5%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셋째, 국민 노후를 위해 중요한 여러 개정안이 ‘발의와 임기만료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출산(양육) 및 군복무 크레딧 개선, ▷장애·유족 연금, 분할연금 개선, ▷국민연금 관리운영비 국고지원 확대,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 확대, ▷기초연금 국고 부담 확대, ▷1년 미만 단기간 노동자 및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퇴직급여 대상 확대 등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과제다.

넷째,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은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2020년 7월 1일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1년이 넘도록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기재부가 예비타당성 검토 등을 구실로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이 하반기부터라도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다섯째,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정부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기초연금 급여 인상에 대해서는 정부안을 발의했던 것과 대조적이며, 국민연금 강화에 대한 개혁 의지가 낮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슈페이퍼 첨부파일 참조
2021_이슈페이퍼_21대_연금법안_현황과_평가.pdf
2021_이슈페이퍼_21대_연금법안_현황과_평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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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7/0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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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심지어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에 비교되는 여성 정치인이 전 세계의 관심 속에 등장했다. 바로 7월13일 영국 총리로 취임한 테리사 메이(59·Theresa Ma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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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두 번째 여성 총리에 오른 테레사 메이가 취임연설 이후 남편과 함께 총리실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미디어는 테레사 메이가 신은 호피무늬 구두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흔들리는 영국 호의 새로운 선장이 됐다.  그런데 그는 ‘표범무늬 하이힐’로 대표되는 화려한 패션으로 먼저 주목을 받았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영국이 반으로 쪼개지고, 그 후폭풍으로 유럽연합이 흔들리는 엄중한 상황에서 총리 자리에 오른 그를 화려한 패션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하기는 너무 한가해 보인다.

성공회 신부의 딸…..최장수 내무장관 기록

일단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총리 취임 뒤 행보를 살펴보자. 메이 총리는 ‘제2의 대처’, ‘제2의 메르켈’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엿보인다. 그는 총리 경선 기간 중 “나는 테리사 메이”라며 대처와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다.

대처 이후 26년만의 여성총리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는 일찌감치 총리감으로 거론된 ‘준비된 정치인’이다. 1992년, 1994년 하원선거에서 두 번 낙선한 뒤 1997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발을 디딘 그의 정치경력은 20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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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가 성공회교회 신부인 아버지 허버트 메이와 어머니 제이디와 나란이 서 있다(왼쪽). 메이가 1992년 North West Durham지역에 출마했을 때의 모습(오른쪽). (사진 출처: BBC)

1999년 야당이던 보수당의 예비내각에서 문화·교육을 담당했으며, 2002년 영국 보수당 사상 최초의 여성 당의장으로 지명되며 주목받았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 5년 만에 영국 보수당의 최고위직에 오를 만큼 정치적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2010년부터 내무장관을 맡아 ‘최장수 내무장관’이라는 수식어도 가지고 있다.

1956년 영국 남부 이스트본에서 성공회 신부의 딸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은 일찍부터 가졌다고 한다. 옥스포드대 재학시절 보수당 모임에서 활동했고, 졸업 뒤에는 영국 중앙은행과 금융결제기관에서 일하며 실물경제를 익혔다. 

이민문제에 강경 태도…현실적 실용주의 성향

메이가 대처에 비교되는 이유는 그의 강성 이미지와 안보 및 이주민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 때문이다. 그는 2002년 자신의 당의장으로 지명된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보수당 의원들이 형편없는 정당의 조직원들처럼 보인다”고 독설을 퍼부으며 보수당 개혁을 촉구해 주목받았다. 

또 총리가 되기 전 보수당 중진인 켄 클라크 의원이 인터뷰 촬영이 이뤄지는 것을 모른 채 메이를 향해 “빌어먹게 어려운 여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 “영국 정치권에 빌어먹게 어려운 여자가 더 많아야 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어려운 여자라는 것을 다음으로 깨닫게 될 사람은 장 클로드 융커(유럽연합 위원장)”이라고도 말하며 유럽연합 브렉시트 협상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이런 성정 때문에 그의 이름에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대처가 항상 따라붙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영국의 이민자 수용 규모를 연간 10만명 이내로 제한하고 유럽인들의 자유 이동을 억제하는 국경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극단주의자 추방 및 처벌에 제동을 거는 유럽인권협약 협약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등 대처를 연상케 하는 강경 노선을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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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가 지난 7월 20일, 취임 이후 첫 총리답변(PMQ)에 나서 야당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메이는 이민자를 10만 명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belief)이지만, 당장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는 영국 언론에서 ‘실용주의적 개혁가’, ‘유연한 대처’, ‘현실적 보수주의자’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과 개인의 자유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자였던 대처가 노동조합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등 노동과 인권 문제에 극단적인 입장을 보였다면, 메이는 노동과 인권, 젠더 이슈에 개방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메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대처 전 총리)가 아닌 사회질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총리로서 한 첫 연설에서 “특혜받은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보수당은 완전히, 전적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을 위한 당이 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들의 회사경영 참여와 주주총회 의결권 부여를 권고가 아닌 의무사항으로 하는 등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정책들을 약속했다. 노동당에 어울릴 법한 정책들이다. 그가 초선 의원 시절 최저임금제를 반대했던 것과 180도 다른 행보로 보수당의 ‘좌클릭’을 선언한 셈이다. 

이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민낯이 드러난 영국의 심각한 빈부격차와 빈곤층의 분노를 풀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메이의 실용주의적 스타일은 대처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사람은 앞으로 진행될 브렉시트 협상에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전망이다. 

27년 만에 ‘힐스버러 참사’ 진상 규명 

사실 나는 그의 총리 첫 연설을 보며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다.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진영의 의제를 가져와 당선된 그의 모습이 ‘노동자들을 위한 당’을 부르짖은 보수당의 여성 총리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한 오랜 준비과정을 거쳤고 국민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는 등 개인사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당선 뒤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폐기됐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률 증가 등으로 대표되는 ‘헬조선’에 박근혜 정부는 뾰족한 해결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디언>은 7월13일 사설에서 “사람과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난 6년간 캐머런(전 영국총리)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은 메이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이가 박 대통령과 다르게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키며 영국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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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셰필드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가 맞붙은 FA컵 준결승에서 경기가 시작하기 전 수 천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96명의 팬이 압사한 사고이다. 메이는 내무장관 시절, 27년 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이뤄냄으로써 유족들의 한을 풀어줬다. (사진 출처: BBC)

 그러나 지금도 뚜렷이 드러나는 메이와 박 대통령의 차이점이 있다. 메이는 내무부장관 시절, 영국 셰필드의 축구경기장에서 관중 96명이 압사한 힐스버러 참사(1989년)의 진상을 규명해 27년 만에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준 바 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금지한 것도 그의 장관 재직 시절 이뤄졌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세금도둑’으로 몰아세우고,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유연한 보수주의자’ 메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월, 2016/07/2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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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쟁취한 ‘트럼프 대통령직’은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스티브 배넌(64)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지난 18일(현지시각) 한 말이다. 수석전략가에서 경질된 뒤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회장으로 복귀하자마자 내놓은 일성으로 그는 “난 이제 자유로워졌다. 무기를 다시 내 손에 쥐게 됐다. 반대하는 것들은 철저하게 박살내겠다”고 했다.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브바트> 이끈  ‘온라인 우익 전사’

 극우 성향의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를 운영하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돕고 백악관에 전격 기용된 그는 출발부터 최근 경질까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섰다. 미국의 대안우익(alt-right)을 바탕으로 부상한 인물로서 우리로 치면 ‘미국판 일베’인 그가 권력의 중심까지 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온 과정도 그 자체로 극적이다. 하지만 미국과 전세계가 그에게 촉각을 세우는 것은 ‘롤러코스터’ 같은 배넌의 이력 때문이 아니다. ‘좌충우돌’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론적, 정치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변화가 찾아올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배넌-발언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스티브 배넌이 백악관 수석전략가직에서 경질된 뒤 극우 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회장으로 복귀했다. ‘어둠이 선’이라는 그의 말에서 극단적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jtbc)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은 미국 정치의 비주류와 아웃사이더들로 채워진 ‘트럼프의 사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 인물로 꼽혔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와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레이트바트>를 중심으로 한 ‘대안우익’ 활동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브레이트바트를 이끌면서 인종 차별과 여성, 이민자 혐오가 깔린 극단적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온라인 언론은 “피임은 여성을 비호감으로 만들고 미치게 한다”, “기술 분야의 채용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없다. 그들이 면접을 망칠 뿐이다”, “당신은 아이들이 페미니즘을 배우느니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게 낫다” 같은 막말에 가까운 헤드라인을 거리낌 없이 내보냈다. 또 “남성의 관심을 끌려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망치고 있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질병을 갖고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동성애자들은 다시 벽장 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등의 차별과 혐오의 시각도 노골적으로 보였다. 

 ‘트럼프의 사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

온라인에서 ‘우익 전사’였던 배넌은 지난해 8월 당시 트럼프 캠프의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가 러시아 로비 관련 의혹으로 물러 난 뒤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네가티브도 주도했다. 미국 대선이 치러진 2016년 11월 <브라이트바트>의 페이스북 계정 접속자 수는 <CNN>, <폭스 뉴스> 등 기성 언론의 4배를 넘는 등 여론전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일등 개국 공신’이 됐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자신의 고수해온 철학과 가치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시켰다. “국익을 침해하는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는 구호 아래 미국의 군사개입 축소는 물론 유엔, 유럽연합(EU) 등 다국적기구 무용론을 제기했고, 세계화에 선을 긋고 철저한 보호 무역주의를 주장했다. 난민과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혐오를 보였다.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는 반이민행정명령,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파리기후협약 탈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온갖 갈등과 논란을 불러온 트럼프의 대표적 정책들은 배넌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외교정책에도 목소리를 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2월 배넌을 ‘위대한 여론 조작자(Great Manipulator)’라고 비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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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자로 유명한 미국 헐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는 최근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배넌에 대해 “자신의 각본을 팔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얼간이'(schmuck)다”고 조롱했다.(사진 출처: AP)

하지만 개국 공신으로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그의 권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전 비서실장과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반이민 행정명령이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리는 등 백악관 내 입지가 흔들렸다. 전통적 개입주의 외교·안보 노선을 추구하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자주 충돌하기 시작했다. ‘실세 사위’인 온건파 제러드 쿠슈너 선임 고문과도 노선을 두고 갈등했다. 결국 배넌은 지난 4월  NSC 상임위원직을 내놓았다.

트럼프의 눈 밖에 나 수석전략가에서 경질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것이 그가 백악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일등 공신으로 평가되는 데 불쾌감을 드러내 왔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종종 배넌에 대해 질문 받으면 “그는 나의 대선 운동 때 나중에 합류했을 뿐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측근들 말을 인용해, 트럼프는 여론이 배넌을 “배넌 대통령”으로 부르며 마치 자신을 조종하는 것처럼 비판하는 데 불쾌감을 내비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블룸버그 기자가 출간한 ‘악마의 거래’에서 배넌을 트럼프와 동등한 관계인 양 묘사하고 책 표지 사진도 트럼프와 배넌이 마주 보고 있어 트럼프의 격노를 샀다”는 분석도 내놨다.

 

 결국 배넌은 최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혈 사태와 관련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심하게 비난하지 말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못된 조언을 해 인종주의 논란을 키우고, 지난 8월16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에 대해 “군사적 해법이란 건 없다. 그런 건 잊으라”, “주한미군 철수도 고려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트럼프의 분노를 샀다. 이틀 뒤인 8월18일 배넌은 전격 경질됐다. 

배넌, 여전히 “트럼프의 반대파와 싸우겠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는 배넌 경질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변화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일단 미-중 관계를 패권 경쟁으로 바라본 배넌의 퇴장으로 대중 강경기조는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배넌의 고립주의와 달리 북핵·미사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맥매스터 보좌관 등 군 출신들이 백악관에서 입지를 넓히며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US President Donald Trump (L) congratulates Senior Counselor to the President Stephen Bannon during the swearing-in of senior staff in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on January 22, 2017 in Washington, DC. / AFP PHOTO / MANDEL NGAN
트럼프는 배넌을 경질했지만 자신의 트위터에 “배넌이 브레이트바트에서 터프하고 영리한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며 자신을 위한 역할을 주문했다. 배넌도 “트럼프의 반대파와 싸우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사진 출처: AFP BBNews)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근본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다수다. <CNN>은 지난 8월19일 “배넌 이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 문제점의 근원은 트럼프 자신에 있고, 배넌은 그런 트럼프의 원인이 아니라 징후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스티브 배넌은 브레이트바트에서 터프하고 영리한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가짜뉴스는 경쟁이 필요하다”며 자신을 위한 역할을 주문했고, 배넌도 “트럼프의 반대파와 싸우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분명한 건 배넌의 퇴장과 상관없이 여전히 ‘트럼프 리스크’는 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 2017/09/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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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카슈끄지의 죽음을 둘러싼 국제정치 야합

[아시아생각] "중동 민주화? 언론자유? 이익 챙기기가 먼저다"

 

김재명 / 국제분쟁전문기자 

 

 

지난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둘러싼 논란은 한 달이 다 되도록 뜨겁다. 카슈끄지의 죽음은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사는 21세기가 '문명의 세기'가 아니라 '폭력의 세기'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아울러 △사우디와 터키를 비롯한 중동 독재국가들의 민낯 △중동 민주화나 언론 자유엔 관심 없는 미국과 서구 강대국들의 이해타산 등 국제정치의 더러운 모습들을 새삼 드러냈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카슈끄지 피살사건이 들춰낸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정리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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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 왕정을 정면 비판해온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 내에서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배후에는 사우디 최고권력자가 있다는 의혹이 사실처럼 굳어지고 있다. 터키의 독재자 에르도안 대통령이 겉으로는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카슈끄지의 죽음의 진상 규명은 미국 등 서구 강대국들의 무기 수출의 최대 고객 사우디와 이해당사국들의 야합으로 덮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AP=연합

 

 

먼저 한 통계 자료.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뉴스안전연구소(The International News Safety Institute, INSI)는 BBC, NHK 등 주요 언론매체들이 회원사로 가입해 언론인의 안전문제를 다루는 연구소이다. INSI의 집계에 따르면, 2018년 올해 들어 61명의 언론인이 업무와 관련해 죽었다. 반미 저항세력이 게릴라 활동을 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인 13명이, 마약 카르텔에 속하는 범죄조직원이 활개 치는 멕시코에서 9명이, 전쟁 막바지에 접어든 시리아에서 4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또 다른 통계 자료. 전세계 언론인들의 모임 가운데 하나인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홈페이지는 지난 15년(2003~2017년) 동안 1035명의 언론인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집계한다. 2017년 한 해 동안에만 65명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 26명은 공습을 비롯한 폭격 또는 이른바 자살폭탄공격으로 죽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에서 취재활동을 벌이다 사망한 언론인들이다. 65명의 희생자 가운데 60%에 이르는 39명은 '어둠의 세력'에게 그야말로 표적 살해당했다.  

 

"글을 함부로 쓰면 다친다"

 

앞의 통계들에서 보듯, 언론인이 자신의 일과 관련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다. 첫째는 분쟁지역(이를테면 시리아, 이라크 등) 또는 위험지역(이를테면 원자력발전소 사고 지역이나 화산폭발지역)에 취재를 갔다가 죽는 경우, 둘째는 그 언론인이 쓴 기사 (또는 쓰려고 하는 기사)에 불만을 품은 쪽에서 저지르는 범죄로 죽은 경우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위험지역에 취재를 갔다가 죽는 언론인들보다 더 많은 언론인들이 고의적인 표적 살해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인 살해는 미디어를 통해 이뤄지는 보도행위가 자신들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판단 아래 저질러지는 극단적인 폭력이다. 어떤 특정 언론인의 목숨을 노린 범죄 행위가 다른 많은 언론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짧은 글로 요약한다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글을 함부로 쓰면 죽는다"일 것이다. 한마디로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협박이 메시지에 담겨 있다.  

 

'사우디판 블랙 리스트'의 희생자 

 

지난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죽은 사우디 출신의 자말 카슈끄지(1958-2018)도 표적 살해당한 언론인이다. 사우디 독재왕정에 비판적 입장을 지녔던 그는 2017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워싱턴 포스트> 등에 칼럼을 쓰면서 사우디 왕정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를테면 카슈끄지는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의 무차별 공습으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것을 신랄하게 짚었다. 그는 특히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월권적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 과정에서 '사우디판 블랙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고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당하자, 터키 정부는 사우디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터키 정부도 언론인 탄압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03년부터 줄곧 1인 권력자로 자리매김해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빌미로 언론을 감시해왔다. 비판 성향의 언론 매체들이 문을 닫도록 하거나 친정부 성향의 언론사로 강제 합병했고, 눈에 벗어난 언론인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올해 4월 진보 성향의 일간지 <줌후리예트>의 편집국장과 기자 14명에겐 '테러조직을 도운 혐의'로 2년에서 7년 6개월 사이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사우디 독재왕정, 또는 19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에 버금갈 만큼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탄압을 일삼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어느 터키 기자의 절망어린 목소리("터키의 저널리즘은 깊은 혼수상태이며 나는 아무 것도 쓸 수 없다")는 터키의 언론 상황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터키와 사우디, 같은 '비자유(None-Free) 국가' 

 

그렇다면 사우디의 언론 상황은? 카슈끄지의 죽음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워싱턴 포스트>에 사우디 왕실에 대한 비판적 칼럼을 쓰던 카슈끄지가 터키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당한 보름 뒤인 10월 17일 <워싱턴 포스트>는 그가 죽기 직전에 보냈던 마지막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에서 카슈끄지가 남긴 마지막 외침은 "언론탄압을 중단하고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카슈끄지가 실종된 바로 다음날 그의 통역자로부터 칼럼 원고를 받았다. 하지만 칼럼 게재를 미루면서 그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었다고 한다).  

 

카슈끄지의 죽음을 둘러싼 터키-사우디의 설전은 10월 내내 국제뉴스를 달구었으나, 10월 하순 들어 대충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10월 24일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과 사우디의 실세 왕세자 빈 살만이 전화로 긴 얘기를 나눈 뒤, 사우디를 겨냥한 터키 언론의 비난수위가 급격히 낮아졌다. "카슈끄지 학살은 밑의 사람들이 벌인 일탈행위"라는 빈 살만의 꼬리 자르기가 먹혀들어간 것은 두 권력층 사이의 밀실 야합이 이뤄졌다는 것을 뜻한다. 

 

프리덤 하우스가 펴낸 <2018년 세계 자유보고서>를 보면 터키와 사우디는 민주주의의 규범을 지키는 '자유 국가'와는 거리가 먼 '비자유(None-Free)국가'들이다. 언론자유와 거리가 먼 터키-사우디의 권력자들이 한 언론인의 죽음을 놓고 신경전을 펴봐야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에르도안-빈 살만-트럼프의 유착 

 

에르도안-빈 살만 사이의 야합엔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쪽의 중재가 결정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터키는 앤드루 브런슨 미국 목사를 간첩혐의로 구금한 일로 미국과 외교적 마찰이 생겨났다. 올해 들어 미국의 경제제재로 리라화 환율이 대거 폭락했고, 경제도 어려워졌다. 에르도안의 입장에선 지배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경제지표의 원상복구가 절실했다. 

 

트럼프는 그런 에르도안의 마음을 도닥여주며 사우디 빈 살만과의 야합 쪽으로 다리를 놓았을 것이다. 탐욕과 노회라는 잣대로 보면 에르도안은 트럼프에 뒤지지 않는다. 에르도안이 사우디의 빈 살만 쪽을 강하게 압박한 것은 트럼프의 중재 손길과 주고받을 거래를 처음부터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도 그런 에르도안의 머릿속을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것이다.  

 

트럼프의 관심은 중동 민주화나 언론 자유가 아니다. 트럼프의 속성이라 할 배금(拜金)주의, 물신숭배에 바탕한 이익 챙기기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이 처음 나오고 그 뒤 계획적 살해였음이 분명해지는 흐름 속에서도 트럼프는 계속 말을 바꿔가면서 사우디 왕정을 감싸는 태도를 보였다. 사우디에 대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대해선 애써 못들은 척 했다. 무엇 때문에? 트럼프에겐 사우디 독재왕정이 안정적인 석유 공급처 일뿐 아니라, 엄청난 돈벌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2017년 사우디와 맺은 1100억 달러(약 124조 원) 규모의 무기수출 계약이 단적인 보기다.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해야 한다면 무기수출 계약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일자리 창출' 논리를 앞세운 트럼프는 물론 미 무기산업체도 그런 상황이 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미 거대 군수회사들의 로비단체인 미항공우주산업협회(AIA)는 혹시라도 사우디 무기 수출길을 막는 결의안이 미 의회에서 나올까 싶어 이즈음 막후 로비활동을 활발하게 펼친다는 소식이다.  

 

메이, 마크롱도 트럼프와 같아 

 

사우디는 오일 달러로 벌어들인 돈을 국방비에다 쏟아 붓는다. 2017년도 사우디 국방예산은 694억 달러로,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서방 군수업자들의 눈으로 보면, 사우디 왕정은 최대 고객이다. 무기 수입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미국에 기대왔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내놓은 <군비, 군축, 국제안보 연감,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3-17년) 사이에 사우디에 무기를 가장 많이 수출한 국가는 1위 미국(점유율 61%), 2위 영국(23%), 3위 프랑스(4%) 순이다.  

 

흥미로운 것은 카슈끄지의 죽음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미적지근한 태도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사우디를 겨냥한 발언 수위를 애써 조절하는 모습이다. 기껏해야 "카슈끄지의 피살사건에 관련된 용의자 가운데 영국 (또는 프랑스) 비자가 있는 이가 있다면 바로 취소될 것이다"라는 정도였다. 

 

마크롱은 한술 더 떠 "카슈끄지 피살과 사우디의 프랑스 무기 구매 사이에 도덕적 연관성을 맺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우디에 수출된 무기가 결국은 사우디 독재 왕정을 튼튼히 하는 물리적 기반이 되고, 한편으로는 이웃나라 예멘에 퍼붓는 공습에 쓰인다는 지적을 못 들은 체 하기는 트럼프나 메이, 마크롱 셋 다 똑 같다. 

 

기억해야 할 이름, 카슈끄지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의 죽음은 중동지역의 암울한 정치상황과 더불어 서구 강대국들의 민낯을 새삼 드러냈다. 카슈끄지를 잔혹하게 죽인 사우디나, 이를 비난하는 터키나 모두 절대 권력이 판치는 국가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강대국 지도자들이 필요에 따라 가끔씩 들먹이는 중동 민주화, 인권 문제는 그저 겉치레 수사학이라는 사실이 새삼 드러났다. 중동 독재국가들과 손잡은 서구 강대국 지도자들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챙길 뿐이다. 

 

이런 국제정치의 더러운 정치야합이 낳는 희생양은 앞으로도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게 틀림없다. 중동 독재자들이나 서구 강대국 지도자들은 카슈끄지의 죽음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길 바랄 것이다. 우리가 카슈끄지라는 이름을 잊지 말아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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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0/3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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