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획] 서촌역사기행3 - 서촌, 근대를 넘어

지역

[기획] 서촌역사기행3 - 서촌, 근대를 넘어

익명 (미확인) | 수, 2018/01/03- 16:58

서촌역사기행 3

서촌, 근대를 넘어

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조선왕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서촌은 또렷하게 관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타의와 자의로 변화된 현실 속의 대한제국 아래 서촌 역시 급격한 도시변화가 일어난다. 경복궁 옆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터를 잡았던 사대부 집안의 대저택이 사라지고 분할되어 작은 형태의 한옥과 집단주거지 형태의 상업적(집장사) 한옥 건축이 발생한다. 이 시기 서촌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이사, 구직 등의 필요에 의해 많은 서민들이 이주하게 된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산 토박이들과 서울로 이주한 주민들이 혼재된 삶의 방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일제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조선 땅은 엘도라도(El Dorado,낙원)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일본인 이주정책을 펼치게 된다. 철도, 광업, 은행업, 어업, 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인들의 이주를 독려하며 당근을 제공한다. 즉 철도를 건설하며 자본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한편으론 수탈을 용이하게 하였다. 광업권을 가져가서 조선 땅 곳곳을 파헤치고 수탈해갔다. 근대적 은행업도 최대 주주는 일본인들로 조선의 자본까지 독식했으며, 독도의 강치 멸종사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이 되는 어업권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 질 좋은 쌀 수탈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겠다. 

 

이러한 수탈과정에서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거주지를 형성했는데, 지금처럼 명동 회현동이 일본인들의 영역에 들어간 이유는 종로처럼 구 도심권은 아직까지 조선인들의 자본과 힘의 영역에 있기에 명동 쪽이 그만큼 저항이 덜 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사직단의 변천사 

또한 서촌부터 서대문, 아현동일대에 광업, 철도, 은행업, 증권 등 상업경제인들의 거주지를 형성하면서 경복궁 옆 효자동 백송 주변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의 관사가 들어오면서 한옥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관사에는 고급관리들의 저택이었던 칙임관(勅任官)① 저택과 일반 직원들의 주임관(奏任官) 건물들로 나뉜다. 현재도 칙임관 건물 한 채와 주임관 건물 수십 채가 남아있다. 

 

동양  

동양척식주식회사 칙임관 관사 ⓒ황평우

 

동양1

효자동 동양척식주식회사 주임관 관사 ⓒ황평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당연히 교육시설이 필요했다. 일제는 필요한 공간이 부족할 때 조선왕실의 재산과 토지를 이용했는데 이용이라기보다는 강제 처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선왕조는 건국과 동시에 사직(社稷)과 종묘(宗廟)를 세웠다. 종묘는 조상에게 감사하고 조상들로 하여금 후손을 지켜달라는 의미이며, 사직은 전통적인 농경국가였음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이에 따라 땅 신과 농사를 관장하는 신에게 항상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을 올렸던 곳이다. 즉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은 정권의 안위인 위계질서와 최대의 산업인 농업에 대한 국가적 예의와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일제는 종묘와 창덕궁의 맥을 끊어버리고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로를 내버렸다. 현재 후손들은 이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무진 고생을 하고 있다. 또 사직단을 이리저리 도려내서 공원처럼 놀이 공간을 만들어 버렸다. 또한 반드시 일제가 행한 행위라고 볼 수 없지만, 1895년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를 세운다. 일제는 1920년 사직단 뒤 언덕에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도서관인 종로도서관을 세운다.

 

배화여고도 마찬가지다. 근대 시기 여성교육이 필요했는데 1898년에 개교한 후 1916년에는 생활관도 지었는데 이 건물은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이 건물은 원래 선교사들의 숙소였다. 붉은색 2층 벽돌집에 기와지붕을 얹은 모습, 정면 가운데 현관 바로 위에 발코니를 꾸민 모습이 이색적이면서 아름답다.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숙소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사직단! 패망한 조선에서 백성을 생각했다는 권력자들의 자기만족이라고 비하할 수도 있겠으나, 종묘와 사직은 한 국가의 자존심과 같은 공간이었다. 이러한 엄숙한 공간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파괴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화여고

배화여고 생활관 ⓒ황평우

 

도서관

사직단 터를 침범한 옛 사직동팀 건물. 현재 어린이도서관 ⓒ황평우

 

사직단은 권위주의 정권 때는 청와대 민정실의 부속기관인 사정기관으로 있으며 온갖 폐악질을 다했었다. 이른바 ‘사직동팀’은 온갖 권력의 잔심부름을 맡았던 곳인데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폐지되었다. 사직동팀이 사용하던 건물에는 현재 ‘어린이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터도 사직단 경내에 들어가 있는데, 사직단을 복원하며 지역주민들과 갈등이 있었다. 사직단 복원 전에 어린이 도서관의 새로운 자리를 먼저 만들고 사직단을 복원한다고 했으면 갈등이 없었을 텐데 문화재청, 서울시, 종로구의 안일한 태도가 아쉬울 뿐이다.

 

근대 예술가들의 산실, 서촌

또한 서촌은 화가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추정되는 곳과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을 다니며 잠시 하숙했던 집도 존재한다.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건축가 이상(1910~1937)과 행적과 작품에 논란이 있는 시인 모윤숙, 한국화가 이상범(1897~1972)의 집과 작업실도 서촌에 있다. 옥인동에는 한국화 분야의 원로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남아 있다. 박노수 가옥은 1937년 지은 한옥과 양옥의 절충형으로, 벽돌로 지은 1층은 온돌 마루 응접실 등을 두어 프랑스풍으로 꾸몄고 나무로 지은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만들었다. 현재 이 짐은 종로구청에 기증되어 미술관으로 일반 시민을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서촌은 조선조의 문화유산과 근대의 문화예술인들이 기거하거나 칩거하며 작품 활동을 한 산실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과 윤덕영은 서촌의 지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친일파 이완용이 700평이 넘는 대저택을 지었고 현재는 양옥이 건축되었는데 부지면적은 그대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대문 “독립문”의 현판은 이완용의 글씨다. 즉 중국의 예속하에 있던 조선이 독립하라는 의미로 친일파인 이완용이 독립문 건설에 가장 돈을 많이 내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친일파 윤덕영이 건축했던 프랑스형식의 대저택은 1975년까지도 존재했으나 도로 건설과 화재로 철거되었다. 다만 윤덕영이 딸의 집으로 건축했던 한옥과 일식, 서구양식이 결합한 집을 현재 화가 박노수가 소유했었다.

 

친일파 윤덕영의 집터는 현재 서촌의 20% 이상(옥인동의 50%)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대저택이었다. 후손인 윤평섭 씨가 당시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한 도면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윤평섭

1940년대 윤덕영 저택 ⓒ윤평섭 

 

윤덕영

사친일파 윤덕영은 옥인동당의 절반을 매입해서 송석원 터에 벽수산장이라는 대저택을 꾸몄다.

 

대저택

옥인동 윤덕영의 대저택 ⓒ김영상(서울 육백년)

 

소통의 공간, 통인시장과 마을 정자

시장은 옛 우리말로 ‘저자’라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시(市), 시사(市肆), 장시(場市) 등의 용어로 기록되었고 시장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으나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시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널리 사용되면서 오늘날 ‘시장’이라는 말로 자리 잡았다.

 

시장은 사람들이 모여서 갖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으로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생활 부대이다. 흔히들 ‘재래시장’이라고 폄하하는데, 이는 현대의 대형쇼핑몰과 백화점이 등장하며 만들어진 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다. 오히려 요즈음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도 매장 안에서 왁자지껄 호객 행위를 하는데 이는 전통시장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시장의 핵심 기능은 유통과 교환이다. 그 대상은 물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장은 한 날 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므로 여기에서 인적 교환과 정보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와 같은 소통으로 인해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므로 장터는 언제든지 축제의 장소로도 이용된다. 또한 씨름대회, 윷놀이 등과 같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서촌의 ‘통인시장’은 언제 개장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구전(口傳)으로 전해오기로는 17세기 서촌에 형성된 양반과 중인들이 생활부식과 의료제인 한약을 매매하면서 형성된 상설시장이라는 설이 가장 있다. 일반적으로 장은 3, 5, 7일을 기준으로 서지만 한양에는 육의전과 같은 시전이 연중 개설되었다. 육의전까지 갈 수 없는 틈새를 이용해서 통인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초기는 한양에 인구가 증가하며 성내 여러 곳에 매일장이 형성되었는데 관철동과 장교 일대인 장통방(현재 청계천 입구)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고 도성 내 문 인근에는 장이 형성되었는데 통인시장 인근에는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이 있어 세검정, 구기동, 고양군 일대에서 도성으로 진입하는 통로이기에 시장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 시대 장의 점포는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긴 집(場屋,장옥)에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팔기도 하며 공터나 길가에 자리를 잡고 파는 영세 노점상이 있었다. 세는 한 달에 한 번 내는 장옥세와 매 장마다 걷는 노점세가 있었는데 노점세가 더 비쌌다.

 

통인시장은 현재 장옥 형태에서 각 점포마다 독립공간에 매장이 존재하는데 이는 근대 이후 개인주택과 점포들이 들어섰기 때문이지만 긴 통로를 이용해 시장이 형성된 것은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현대의 대형마트나 백화점처럼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감정이 있다. 이를 소통이라고 말하며, 인위적이지 않다. 시장에는 사람이 모이고 거래가 있고, 흥정이 있다. 돈은 벌지만 매정하게 벌지는 않는다. 서양에도 시장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앉아서 음식을 사먹거나 나누지 않는다. 나눔이 있다는 것도 서양시장과 우리 시장이 다른 점이다. 시장은 일방적인 상품의 거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나눈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소통의 인간미가 있는 곳이다. 

 


① 조선 말기 관료의 최고 직계, 현재 기준으로 장차관급 이상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꽃마중의 <너희를 담은 시간 - 스무살 선물전>

 

[전시연계 프로그램] 엄마들과 함께 만드는 꽃누르미
: 서촌노란리본공작소 특별 활동

 

<너희를 담은 시간전>은 세월호 어머니들이 그립고 그리운 아이들에게 꽃잎편지를 보내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전시와 연계하여 매주 수요일마다 노란리본을 만들어서 나누는 서촌노란리본공작소 참여자들과 세월호 어머니들이 함께 꽃누르미 엽서를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꽃누르미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신청은 20명까지만 받습니다.

신청을 서두르세요! 

 

일시 2017. 8. 9.(수) 저녁 19시  

장소 카페통인(참여연대 1층)

참가비 없음

문의 02-723-5304

 

신청하기 >>

전시살펴보기>>

 

금, 2017/07/21- 12:45
248
0

한반도 안보 딜레마, '쌍중단'이 답이다

한국 외교의 봄은 오려나?

이혜정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 여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말 폭탄'은 한반도를 전쟁의 위협으로 몰아넣었다. 한반도의 영구한 평화 체제를 건설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한미 동맹의 군사적 대응에 '올인'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미 동맹의 압도적 군사력에 맞서려는 데서 시작했었다.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에 절망한 이들은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변호도 강력했다. '대통령은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거다.'

 

가을은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시작되었다. 9월 중순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도 단행하였다.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고 연설했다. 김정은도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에서 "사상 초유의 초강경조치 단행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중국 공산당의 19차 전국대회가 열렸다. 시진핑 신시대가 선포되었다. 중국의 목표는 이제 신형 대국관계가 아니라 신형 국제관계였다. 이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문제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한중관계의 교착을 풀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분투가 결실을 맺었다. 10월 30일 한중 양국은 중국이 한국의 (사드 추가 반입, 미사일 방어망 가입,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 않는) '3불' 입장에 유의하며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11월 트럼프가 일본을 거쳐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공동체) 회의가 열리는 베트남과 아세안과 동아시아정상회담이 열리는 필리핀으로 향하는 첫 아시아 순방의 일환이었다.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대북 (최대의 압박) 정책 공조에 합의하고 미국산 무기 구입, '합리적' 방위비 분담, 한미 FTA 개정 등 미국의 다른 요구도 다 수용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할 때가 아니라고 밝혔다. 8일 트럼프는 한국 국회 연설에서 북한 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대북 압박과 제재 강화를 촉구하고 중국으로 건너갔고,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로 '신남방정책'의 여정을 떠났다. 시진핑은 자금성을 통째로 비우는 '황제의전'과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283조원)의 경협으로 트럼프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9일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원유 공급 중단 등 추가적인 대북 압박에 대한 중국의 동의는 없었다. 11일 베트남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청와대는 12월 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중국 외교부는 사드 문제에 대한 한국의 책임과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시진핑의 언급을 강조하였다. 13일 문 대통령은 필리핀에서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중 경제관계의 조속한 회복을 촉구했다. 이러한 희망은 모두 발언에서 인용한 명나라 시대 중국 격언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꽃이 한송이만 핀 것으로 아직 봄은 아니다. 온갖 꽃이 함께 펴야 진정한 봄이다."

 

한국 외교의 봄은 올 것인가? 겨울이 지나야 봄이다. 한국 외교도 겨울을 견뎌야 봄을 맞을 것이다. 두 개의 겨울이 오고 있다. 하나는 트럼프의 미국과 시진핑의 중국이 부딪히는 패권의 인터레그넘(대공위시대, interregnum)이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트럼프의 미국은 여전히 패권의 물질적 능력은 있지만, 세계자본주의의 다자적 관리나 기후변화 등 지구적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진정한 리더십의 의지는 없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뿐만 아니라 클린턴도 TPP 탈퇴를 공약했었다. 트럼프는 미국패권의 정치경제적 멜트다운(meltdown)의 산물이다. 트럼프가 떠나더라도 미국의 리더십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미국은 약탈적이다. 시장의 힘과 압도적 군사력으로 적을 위협하고 동맹에게는 군사적 보호의 대가를 요구한다.

 

패권이기를 포기한 패권이 현재의 미국이라면, 시진핑의 중국은 미래의 패권이고자 하지만 아직 능력이 없다. 경제력도 그렇지만 군사력과 제도, 이념, 특히 (한미 동맹을 종교처럼 떠받드는, 친미를 이념으로 하는 한국의 보수와 같은) 초국적 지배연합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에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보여주듯, 미국이 시진핑 시대 신형 국제관계를 추구하는 중국을 규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상하는 중국은 거칠 것이다. 미중이 펼치는 진정한 리더십 아래 수준의 약탈적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 인터레그넘, 패권의 궐위 시대는, 중국의 희망대로라고 해도 적어도 2050년까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미중의 상반된 요구가 보여주듯, 미국의 가랑이를 긴다고 한국의 번영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외교의 '길고도 모진 겨울'이 시작되었다.

 

다른 하나는 평창 올림픽이 제공하는 기회의 겨울이다. 9월 이래 북한의 '도발'이 두 달째 중단되었으니,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것 아니냐는 희망적인 관측이 있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 주변 해역에 미국의 항모전단이 3개씩이나 동원된 무력시위가 '도발'이다. 올림픽의 평화를 활용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군비 증강을 동결하고 한미 연합 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쌍중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한반도 안보 딜레마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면, 한국 외교의 봄은 영영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화, 2017/11/21- 18:28
248
0

 

 

서울에 탈식민주의 기억공간을 만드는 꿈


 

서울에는 100년 넘게 식민의 땅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용산의 미군기지 지역이다. 제국 일본이 러일전쟁을 위해 군대를 파견, 주둔시킨 이래 이곳은 아직도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 온전히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동안 미군기지 내에서 80여 건의 크고 작은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다. 한국 정부와 정보를 공유한 것은 그 중 5건에 불과하다. 2015년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미군기지 내 지하수의 1급 발암물질 벤젠이 기준치를 162배 초과했다. 2012년 서울시 자료는 기지 주변 지하수에서 최고 1,311배의 벤젠 검출을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미군 측은 기지 내 조사요구나 자료제공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한국 땅이긴 하지만, 한국의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땅인 셈이다.

 

조감도

용산민족공원 국제공모전 1등작 조감도 <출처=국토교통부(전 국토해양부)>

 

서울에 남아 있는 만주사변 참전 일본군 전사자 충혼비
미군의 부지 반환이 2017년 말로 다가오면서 오염 정화 책임과 비용 문제를 비롯해 ‘민족공원’ 조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기지 내 문화재 문제다. 이미 문화재청은 2006년 고려와 조선 시기 유물 유적지 7곳, 일제시기 건물 226동, 교량과 석축 6개, 문인석 10여 기 등 250여 점의 문화재가 기지 내에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용산은 조선시대에 강을 통한 물산의 핵심 집하장으로 활용되던 곳이었다. 당연히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고 군량미 등의 물품을 보관하는 곳으로도 활용되었다. 황제가 산천에 제사를 지내던 곳남단, 南壇이 있었고, 이곳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사후의 거처이기도 했다. 러일전쟁을 핑계로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던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무덤을 파헤치고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한 것은 1905년 8월이었다. 강제 병합 조약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기 전의 일이었다. 


일본군은 그곳에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렇게 한반도에 상설 일본군 기지가 생겨났다. 일본군은 병영과 함께 그곳에 조선총독의 관저도 설치했다. 조선인들의 저항을 두려워 한 총독이 숨어든 것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헌병을 내세운 식민통치의 상징이기도 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1935년 이곳에 만주사변 전사자를 위한 충혼비를 세웠다.


해방 후 미군은 군사기지를 그대로 ‘인수’해 사용했다. 한국 정부 수립 후 기지는 반환되었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다시 미군의 차지가 되었다. 미군은 전쟁으로 소실된 건물을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의 건물을 그대로 재활용했다. 심지어 미군은 일본군이 세운 충혼비를 토대와 주변 조형물을 그대로 둔 채 비석만을 교체해 6·25에 참전했던 미8군 전사자 기념비를 얹었다. 덕분에 1910년대 일제가 지은 건물 226동이 남아있게 되었다. 비록 점령자들의 식민 건물들이지만, 상당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110년 식민의 땅에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미군이 일본군의 충혼비를 그대로 이용한 것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만들면서 토착 민족이나 이교도들의 성전에 자신들의 교회를 세웠던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념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설은 미군의 기념물이기 이전에 식민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통쾌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크다. 독립기념관이나 새로 들어설 용산의 공원에 총독부 건물이 있고 거기에 독립운동과 식민피해를 기억하는 전시가 있는 상상은 반식민지 투쟁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용산공원 추진과 관련해 2008년 공원조성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12년엔 국제공모를 통해 공원 설계안도 마련되었다. 그렇지만 서두를 일은 아니다. 오염 제거 문제도 있지만, 110년 식민의 땅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지는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2016년 4월 정부는 박물관 등 각 정부부처의 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계획을 철회했다. 그렇지만 각 부처는 여전히 그 ‘꿈’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는 유엔사령부 부지가 1조 원이 넘는 금액에 팔리고, 그 자리에 최고급 주거지가 들어선다는 ‘놀라운’ 뉴스도 들린다.


세계 곳곳에는 20세기 혁명과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기념물과 박물관이 수도 없이 세워져 있다. 대부분 혁명과 전쟁의 승리를 기념한다. 가해자가 반성하고 피해자가 자신들의 피해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념물은 유태인 학살 관련 시설이 대표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이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카리브해 연안의 프랑스령 작은 섬에 노예제 경영을 반성하는 거대 기념관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같은 흐름은 서구의 많은 학자들이 오리엔탈리즘을 추구하고, 탈식민 이론가들이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정작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피해국이 직접 세운 반침략, 반전쟁, 반식민 박물관은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소규모이거나 민간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두 나라의 박물관도 자신들의 이야기에만 주목하고 있다. 식민 피해자나 피해국의 입장에서 세계사적인 의미를 아우르는 박물관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지만, 국가차원에서 그것을 반성하는 박물관을 건립할 의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식민지에서 독립국으로, 급기야 세계 10위권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세계적인 민주주의 혁명사를 새로 쓰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박물관을 세워야 할까? 제국의 시대에 맞선 세계 각국,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반식민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세계 곳곳의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이 110년의 식민 공간에 짓는다면 어떨까? 


물론 피해국 스스로 세운 세계적 탈식민주의의 상징, 새로운 가치와 학문, 그리고 교육의 거점, 나아가 지금도 식민의 유산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곳이 새로운 희망을 주는 메카가 되기를 바라기에는 아직 연구도 자료도 부족하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스스로 없애버린 건물과 조형물을 아쉬워하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 꿈을 같이 꿀 사람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글.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 데 관심이 많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등의 저서가 있다.

목, 2017/07/27- 14:46
247
0

20170925_채용비리 고발 기자회견 (2)

 

헬조선의 매관매직,부정채용의혹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 고발

 

청년단체 등, 공기업 부정채용 의혹 받는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 직권남용, 업무방해죄 혐의로 형사고발
자유한국당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 공기업 채용비리의혹 관계자 전면수사하고 관련자 엄벌해야
 

오늘(9/25) 오후 2시, 민달팽이유니온, 우리미래, 청년광장, 청년유니온, 청년참여연대,  참여연대,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강릉시민행동는 최근 자신의 인턴 및 지인을 공기업에 불법・부정하게 채용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권성동, 염동열 의원 등 공기업 채용비리 의혹 관계자들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습니다. 감사원이 지난 9월 5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 등 조직·인력운영 실태’ 및 언론보도에 따르면,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이 공기업 부정채용에 연루됐으며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의 죄 등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심각한 청년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구직자들은 최소한의 공정성도 결여된 사회에 깊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단체들은 자유한국당 권성동・염동열 의원 등 공기업 채용비리 의혹 관계자들을 전면수사하고 관련자를 엄벌할 것을 촉구합니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인턴비서를 포함해 총10명 이상의 인원을 강원랜드에 부정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강원랜드 관련자들에게 청탁하여 인사팀 직원들이 인턴비서로 일했던 하모씨가 지원한 일반직군의 서류전형 합격인원을 부당하게 늘리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모씨의 최종 성적은 17위 아래로 애초 채용계획선 밖에 있었음에도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도록 하게 하는 등 인사팀 직원들과 인사팀장, 카지노관리실장, 호텔관리실장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고, 채용청탁 행위로 강원랜드의 신입 직원 채용 업무를 방해했습니다. 이러한 권성동 의원의 행위는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 및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을 통해 강원랜드에 채용을 청탁한 이는 최소 80여명에 이릅니다. 이는 2012~13년 강원랜드 교육생 1,2차 모집에 응시한 5200여명의 1.5%이고, 이 가운데 최종 합격 인원은 최소 20~30명 여명으로 강원랜드 내부 감사 결과 파악됐습니다. 즉, 염동열 의원은 자신의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강원랜드 관련자들에게 청탁하여 인사팀 직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고, 채용청탁 행위로 강원랜드의 신입 직원 채용 업무를 방해한 것입니다. 


권성동, 염동열 의원의 고발 사실은 모두 강원랜드 내부감사 결과와 검찰조사를 통해 이미 모두 확인됐고, 이후에도 관련 언론보도를 통해 일부 내용이 추가로 드러나는 등 권성동과 염동열의 범죄 의혹과 이에 대한 은폐 관련 사실들이 연달아 밝혀지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라 강원랜드의 채용 실무 담당자들은 피고인의 지위에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공무원 지위를 이용하여 채용청탁을 한 장본인인 권성동 의원과 염동열 의원은 관련 행위에 대한 조사는 물론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지난 9월 5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 등 조직·인력운영 실태’를 통해 공기업 35개 기관을 포함한 주요 5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감사한 결과, 부정사례가 100건 적발됐습니다. 대규모 공공기관 채용 비리에 청년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헬조선의 매관매직이라고 불리는 이번 부정청탁행위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성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청년단체들은 이번 고발을 통해 최소한의 사회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권성동 ・염동열 의원 등 공기업 채용비리 의혹 관계자들의 청탁・개입이 있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며, 관련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중히 처벌할 것을 촉구합니다. 끝.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고발장 [원문보기/다운로드]

월, 2017/09/25- 18:41
247
0

북 미사일 발사 못막는 군사적 대응만 반복할 것인가

남북미, 을지프리덤가디언 계기로 쌍중단 협상과 대화의 물꼬 터야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한미의 무력시위가 반복되고 있다. 어제(28일) 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남북간 상호비방과 적대행위의 중단을 위한 한국 정부의 대화제의에 응답하지 않은 채 한반도 위기를 가중시키는 북한의 군사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 동시에 지금의 사태를 군사력 과시로 대응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 역시 매우 우려스럽다. 오늘 정부는 미 전략자산을 동원한 무력시위와 사드 잔여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결코 문제해결 방안이 아니다. 특히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는 철회되어야 한다.


이번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로 북한은 언제, 어디서든 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밤중에 그것도 한미 정보당국이 발표했던 평북 구성이 아닌 자강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거리 기준으로 7월 4일보다 더 진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한미가 그동안 취해 온 미사일 요격훈련, 전략자산 전개와 같은 무력시위와 대북제재 강화가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능력 강화 의지를 꺾지 못했음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내놓은 대응방안은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우리 군의 입장’을 발표하며 전략자산 전개와 더불어 “추가적인 사드 발사대 4기 배치”와 “한미연합 확장억제력과 함께 우리의 독자적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 체계”를 빠른 시일 내에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남측에서 미사일 방어능력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 바로 어제 사드 부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던 정부가 오늘은 추가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정부 스스로 내세운 원칙과 입장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사드를 추가 배치한다는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구실로 미국의 동북아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보 능력을 기반으로 대북 선제타격까지도 상정하는 한미의 미사일 대응 체계는 북한의 기습적인 미사일 발사 능력이 확인된 상황에서는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없다. 결국 정부가 내놓은 군사적 방안은 문제해결 보다는 중국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북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해결의 제1의 원칙은 한반도 내 군사충돌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군사적 해법이 아니라면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의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껏 한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라는 예측되는 행동에 '상호위협감소'라는 확실하고 실효성있는 해법을 두고도 이를 우회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훈련의 동시 중단을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 북한의 폭주를 막고 한반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화의 입구에 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8월에 또 다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8월 한반도에 군사적 갈등이 아닌 대화 모드가 조성되도록 정부가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논평 [원문보기/다운로드]

 

 

 

 

토, 2017/07/29- 13:24
24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