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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민변회원들과 함께하는 공익단체를 소개합니다

지역

[인터뷰]민변회원들과 함께하는 공익단체를 소개합니다

익명 (미확인) | 화, 2017/11/28- 13:48

공익단체소개

 

 

민변에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더 나은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권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공익단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감’에서부터, 최근 경제적 약자 권리보호를 위해 활동을 시작한 ‘벗’ 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활약하고 계신 회원님들의 모습. 한번 살펴볼까요?

 

1.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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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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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소리 없는 아우성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장애인과 난민, 이주여성과 성소수자, 청소노동자와 홈리스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함께해 주기를 오늘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법은 테두리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법이 해야 할 일입니다. 테두리 밖에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법의 테두리를 넓혀야 합니다.

한편 저희 공감은 공익소송 뿐 아니라 찾아가는 법률교육, 공익단체 법률지원, 법제도개선 및 연구조사, 공익활동 프로그램 개발 및 중계활동을 통해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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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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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처음 광주에서 공익인권전업변호사가 일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무모한(?) 계획을 시도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말렸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냥 지금처럼 부업으로 할 수도 있지 않나?”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려 해?” “광주가 얼마나 후원이 박한 동네인데”……

반상근 활동가 등이 그만 두는 등으로 해서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년이 지난 지금은 원로 김용채 변호사님을 대표로 모셨고 상근변호사도 2명(이소아, 김춘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회원 수 200여명에 이르는 비영리민간‘단체’가 되었다.

연수원을 수료할 때 즈음(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년 전이라니…)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님을 찾아 뵙고 공감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여 황 변호사님으로부터 집중 면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황변호사님께 “공감도 지역 분사무소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요?”라는 비슷한 말씀을 드렸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이 말은 그저 공감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신입변호사의 치기어린 질문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광주 전남 지역에서 동행의 상근변호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지역에도 정말 공감 같은 공익전업변호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역에도 해야할 일들이 많다. 오히려 지역이기에 더 많다. 문제는 지역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같은 공익전업변호사를 위한 펀딩이나 인큐베이팅을 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

동행이 내는 모든 목소리, 서면은 200명이 넘는 후원자분들의 관심과 응원을 바탕으로 한다. 동행의 활동은 단순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구체적 개인의 인권을 실현해나가는 ‘모두’의 문제이다.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인권의 경계를 허물어나가는 바탕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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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희망을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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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망법

2012년 2월 창립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약칭 희망법)은

인권침해적이고 차별적 법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나가는 비영리, 풀뿌리 후원 기반

전업 공익인권변호사 단체입니다.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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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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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bout

 

인종차별적인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이주민, 그 가운데서도 특히 취약한 사람들인 난민, 무국적자,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이고, 다국적 기업이 세계화 시대에는 잠재적 인권 침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국적 기업이 법의 지배를 받고, 취약한 이주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별소송 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일까지 나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위해 어필은 소송과 신청, 연구와 입법운동, 교육과 홍보, 국내외 단체와의 연대,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 등을 통해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를 감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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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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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주 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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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꼭지’라고 들어보셨나요?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집안에서 딸 좀 그만 낳자고 붙여준 이름이랍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어머니, 할머니들의 슬픈이름이었지요. 지금도 많은 ‘꼭지’들이 있습니다. 언제 잘릴지 불안한 계약직 노동자, “이놈저놈”, “빨리빨리”를 제일 먼저 배운다는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도 언감생심인 장애인 노동자, 달면 삼키고 쓰면 버려지면 흔하디흔한 우리 노동자들. 청주노동인권센터는 아직도 흔한, ‘꼭지’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좋은 벗이 되려고 합니다.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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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주민센터 친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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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주민센터 친구>는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외국인들과 함께하는 비영리단체 입니다. <친구>는 “평화/인권/공존” 의 철학으로 1) 이주민 인권·법률지원활동, 2) 이주민 네트워크 구성 및 자립지원활동, 3) 이주민 문화예술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인권/법률지원활동 : 상근 변호사를 비롯한 20여명의 법률전문가들이 대표적 법률취약계층인 이주/외국인들이 머무는 곳을 직접 찾아가 법률 상담을 하고, 소송을 비롯하여 권리구제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형편이지만 <친구>자체적으로 소송 구조기금을 적립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이주민들의 소송비용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매주 화/목/금요일에는 대림동 친구센터에서 상시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매주 목요일에는 서울시 외국인 생활지원 기관인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공익/인권분야 법률상담을 격주 진행합니다. 매주 일요일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혜화동 라파엘클리닉에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 함께 무료 법률/인권상담을 4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활동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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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센터 친구 문화체험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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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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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재 우리사회는 심화되는 빈부격차 속에서, 부의 분배 과정 역시 매우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의 불균등과 불공정한 시장구조에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계층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 이른바 경제적 약자들입니다.

한편, 이들에게 법적・제도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 회계사, 가맹거래사, 교수 등 이른바 전문가 그룹은 시장경쟁의 심화와 장기적인 불황으로 인해 안정적이고 높은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대기업 등 이른바 경제적 강자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는 경제적 약자가 경제활동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에 대해, 이들의 편에 서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단체나 전문가의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경제적 약자들을 부당하고 불공정한 횡포로부터 보호하고, 이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지원하는 한편, 장기적으론 이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경제적 약자들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데 시민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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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개

1.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률자문 및 소송 수행 변호사에 대한 지원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법률상담, 자문, 소송 등을 수행하는 변호사에 대한 지원사업을 전개합니다.

2.사회문화 및 제도 등의 개선방안을 연구하는 전문가에 대한 지원
 경제적 약자의 권리증진을 위한 사회문화 및 제도 등의 개선․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에 대해 개별 프로젝트별로 지원합니다.

3.좋은 법안 선정 및 소개
사단법인 벗은 법을 읽어주는 친절한 도우미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 함께 매주 경제적 약자들을 부당하고 불공정한 횡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좋은 법안’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경제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소개합니다. ‘좋은 법안’시리즈 연재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이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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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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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는 아시아 곳곳의 분쟁 및 재난, 인권침해 지역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며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현장 활동가와 피해자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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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미 프로젝트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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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북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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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북노동인권센터는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면서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센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센터는 지역 현안 문제들에 대해 적극 참여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상담과 소송등 다양한 법적 지원 활동을 함께 진행하고자 합니다. 차별과 배제를 넘어 정의롭고 평등한 경북을 만들어 가는 데에 함께 해주십시오.

 

-경북노동인권센터 창립대회 영상(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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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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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의 힘을 깨닫다 >

서기호 변호사 인터뷰

 

심재섭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기호 안녕하세요, 서기호변호사입니다. 사법연수원 29기이구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예비판사 2년을 포함한 12년간 판사로 근무하던 중 2012년 2월 재임용 탈락사건을 겪었고… 12년 7월경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 받게 되었다가 정의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서 4년간 활동한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16년 7월경 변호사 개업하면서 민변에 가입하였습니다. 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있긴 했는데 2년 여 동안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사 업무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고요. 심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최근 사법농단 TF 구성원으로서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사법위원회 회의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두 달 여전에 민변 사법위원회 김지미 위원장님으로부터 부위원장 맡아달라는 말씀을 듣고 수락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정기회의에 빠지기 어렵게 되었네요 ㅎ

2년여 동안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정리하고, 올해 8월부터 법무법인 상록에 구성원 변호사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민변 사법위원회 소속 변호사 두 분이나 계시는 법무법인 상록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개인으로 하실 때 고용변호사님도 계시지 않았나요?

서기호 개인변호사 사무실 운영할 때, 고용변호사님도 두고 운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의뢰인분들이, 억울한 사연을 갖고 계시면서도 증거부족 등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사무실 유지가 쉽지 않았어요. 전반적으로 수임료가 낮은 편으로. 그래서 올해 초부터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님들과 사법위원회 활동으로 친분도 있었고, 사무실도 바로 옆 건물이다보니 점심식사를 자주 같이 하면서 포섭되었다고나 할까요?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포털에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변호사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판사 시절 이전은 잘 안보이더라고요. 학생 때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서기호 학생 때 평범하고 공부만 주로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중고 동창생들이 가끔 저에게 학생 때랑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대학시절에 학생운동(가톨릭학생회 소속)에 깊이 관여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제 안에 지킬과 하이드 같은 양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자신에 대해 헷갈릴 때가 있어요.

심재섭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서기호 세례명은 베네딕토인데요, 2012년 이후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겪으면서 바쁘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해서 신앙생활에 소홀한 상황이고요. 현재는 냉담자입니다.

2016년 2월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시간적으로 3개월 여유가 생겨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35일 정도 다녀왔는데요. 그때 하루종일 걸으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과연 신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아직까지 냉담 중입니다.

심재섭 ‘가카빅엿’ 사건과 이후 판사 재임용 탈락 뉴스로 일약 대중의 시선에 들어온 것으로 압니다. 재임용 탈락이라는 상황에 대해 당시 소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기호 너무 길게 이야기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짧게 넘어갈 수도 없는 질문이네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와서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법원행정처에서는 당시 저에게 10년 간 ‘하’등급 다섯 번 받았다는 이유를 제시했지만, 그 중 2009년 이후 3년 연속 받은 ‘하’등급은 신영철 대법관 촛불집회재판 개입 당시 제가 판사회의 주도하고 법원게시판에 신영철 대법관 사퇴 주장하는 글 등을 올려서 보복성 ‘하’등급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 객관적 통계 3년치 자료에 따르더라도 평균 정도였지 결코 최하등급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법원장 1인에 의한 주관적 자의적 근무평점 시스템 때문에 부당하게 3년 연속 ‘하’등급을 받으면서 재임용 탈락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그러한 점들에 관해 법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판사들에게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지요.
그런 점들 때문인지 몰라도 저에 대한 재임용탈락처분 이후 판사들이 2주 연속 전국적으로 판사회의를 열어서 판사 근무평점 제도 및 재임용심사 제도의 개선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 의결이 잇따랐습니다. 이처럼 법원행정처의 재임용탈락 사유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에 많은 국민들께서는 그건 법원의 핑계에 불과하고 약 두 달 전 제가 SNS에 ‘가카의 빗엿’이라는 표현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재섭 재임용 안 됐다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 있다가 출근 못하게 되신 건가요?

서기호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은 후 일주일 뒤에 바로 법원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2년간 판사생활 정리하기엔 1주일이란 기간이 굉장히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습니다. 1주일동안 굉장히 많은 기자분들이 북부지방법원에 찾아와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동안 정들었던 분들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등, 그로인해 당시 진행되던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후임 판사님께 떠넘기게 되어서 당사자분들에게도 너무 죄송했습니다.

심재섭 ‘하’등급을 받아왔던 것은 알고 계신 거였나요?

서기호 법원에서는 판사들의 매년 근무평정을 모두 비밀로 하고 있어서 당사자에게도 전혀 통지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2월 초 어느 날 행정처 심의관으로부터 재임용심사 대상이라는 전화 통보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도 5년간‘하’등급 받았다라는 점만 알려줄 뿐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설명 받은 바 없습니다. 그러면서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소명할 기회 있는데 참석하겠느냐 물어보길래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답변하였고 법관인사위원회에 소명자료를 충분히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법관인사위원회에 참석해 보니 위원들 사이에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었고, 인사위원들 1 ~ 2명 정도가 형식적으로 몇 마디 물어보고서 끝내버리더군요. 제가 제출한 소명자료에 대하여는 아무도 물어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안 읽어보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행정소송으로 재임용탈락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재판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구체적 통계자료, 서술형 평가 등 세부 근무평정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피고인 법원행정처에서는 비밀이라면서 별 도움 안 되는 몇 가지 자료 외에 핵심적인 자료들을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1심 재판장도 문서제출 명령 신청을 기각하고, 항고, 재항고심에서도 기각해버리더군요.

심재섭 그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셨나요?

서기호 판사들 사이에서는 그 전까지도 재임용 심사는 형식적이라고 내부에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판사로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잘못을 했거나 사건해결 능력이 부족하다고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법원행정처에서 구체적인 자료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황당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당시 많은 기자들이 인터뷰하러 왔을 때 기자분들 하시는 말씀이, 자기들도 언론사에서 근무평정을 받는데 그 결과를 공개해줘서 알고 있고. 이의제기할 기회도 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가장 투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법원에서 오히려 비밀스럽게 근무평정이 진행된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고들 하였습니다.

심재섭 판사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이 되십니다. 통합진보당에 입당을 하는데 비례대표 14번을 받으시지요. 이 숫자가, 국회를 가겠다고 마음먹으셨는지 아니어도 상관 없다였는지 애매한데, 어떠신가요? 정치를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치권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재임용탈락 이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sns에 가카빅엿 글을 올릴 때에도 정치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이유로 해서 재임용 탈락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스스로 제 자신이 정치에 맞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정치하려고 사직한 것도 아니죠.
그런데 막상 재임용에 탈락되고 보니, 주변에서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기 위해 비례대표직을 알아보는 게 어떠냐라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 쪽으로 계속 나가라는 것보다는 사법개혁이라는 이슈로 비례대표을 알아보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재임용 탈락 사태는 대법원과 맞서는 것이라서 그냥 평범한 변호사가 된 뒤에는 이 상황을 뒤집거나 지속적으로 이슈화시키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변호사 한 명의 권한은 거의 없기에 결국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제가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서 특별히 정치권과 인적 관계를 쌓아둔 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오로지 단 하나,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의 대학시절 개인적 친분(대학 1년 선배)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정치권의 동향을 전혀 몰랐고 통합진보당 내부의 정치 세력 간 갈등도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이 전 대표의 진정성 하나만을 믿고 들어갔던 것인데, 뜻밖에도 통합진보당 내부의 분열 사태 등 이후 전개되었고,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는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던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 정의당 분들과 4년간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법사위 활동은 제가 아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나았지만, 정의당 소속으로서의 활동 부분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심재섭 진보정당에서는 판사출신 의원이 없던 걸로 아는데. 민주당에서의 제안은 없었나요?

서기호 당시 민주당에서의 비례대표직 제안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는 2012년 2월 하순경으로서 4월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던 상황이라서 이미 자리가 차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판사출신이 진보정당에 맞느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당시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등 3개 주체가 통합을 한다고 하니 그렇게 진보정당이 커지는 흐름에 제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한계, 특히 현행 소선구제 하에서 진보정당의 외연이 확대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잘 몰랐는데, 4년간의 경험을 통해 특히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면서 장벽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심재섭 14번이면 당선되기 힘든 번호였을텐데 안 되도 된다의 마인드였나요?

서기호 원래는 6번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거치면서 14번을 받고서라도 백의종군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로서는 일단 사법개혁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심정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마당인지라, 국회의원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구요. 어찌보면 바보 같은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마음을 비웠기에 2012년 7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비례대표직을 승계 받는 기회를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재섭 5시간의 필리버스터까지 한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에, 진짜 만약에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스스로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 하겠다고 막연하게나마 설정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서기호 근본적으로는 돈과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구 선거를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현실정치의 높은 장벽을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또한 체력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준비부족, 한계를 느끼면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체력과 그리고 재력,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이 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다 갖춰지려면 20 ~ 30년 걸릴까요. (웃음) 어쨌든 지금 돌이켜보면 판사생활만 하다가 갑자기 곧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굉장히 무리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재섭 2000년 연수원 수료 이후 공직생활 16년을 지나고 변호사가 되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전관 개업, 인지도 좋고, 전관은 아닌데.. 어려움, 아쉬움?

서기호 판사로 12년 근무를 했다고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적어도 적응기간이 1년 ~ 2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판사는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이지만, 변호사는 처음부터 의뢰인과 만들어가는 역할이라서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사자에 동화될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기에 그 사이에 균형을 잡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심재섭 예상과 다른 결과가 많이 있던 때도 있었나요?

서기호 그렇죠. 가장 많은 사례가 처분문서가 있는 사건에서 저는 주로 처분문서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상대방의 의뢰를 받은 적이 많습니다. 물론 제가 판사였다면 당연히 처분문서에 반하는 주장을 배척하고 의심해서 판결을 선고했을 것 같은데, 막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대변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처분문서 대로 판결을 선고하는 법원의 경향이 과연 맞는건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3자 위치의 판사는 증거에 의해 판단해야 하니 객관적 서면, 처분문서의 내용을 중시할 수밖에 없겠지만, 실제 그것이 과연 진실에 부합할 것인가라는 점은 의문이 자꾸 들게 되더군요.

심재섭 민변 활동에 열심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변에 가입하게 된 동기 내지는 민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서기호 사법위원회 소속으로 가입했는데요. 사법위원회는 사법개혁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저의 핵심 관심분야기도 하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2 ~ 3 차례 사법위 회의에 참석하기도 해서 친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사법위 소속이신 장주영 변호사님은 목포고 선배이고, 민경한 변호사님은 국회의원시절 민변 사법위 회의에 참석했을 때 저에게 좋은 격려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민변활동에 적극적이신 분들과 친분이 있고 사무실도 같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몇 달 전 최영도 변호사님 추모행사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유신정권 시절 부당한 재임용 탈락 사건을 겪으셨으면서도 그 이후 민변 참여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셨더라구요. 그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판사출신 중에 민변 회원으로 가입한 분들은 좀 있지만 적극 활동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잖아요. 성창익, 오지원 변호사 같은 예외적인 분도 계시지만, 아무래도 판사로 근무했던 기간이 오래될수록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무튼 최영도 변호사님이 걸어오신 길은 그런 점에서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심재섭 최근 사법농단 TF에서 활약이 눈부십니다. 사법농단 대응이 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서기호 활약이 눈부시다는 과찬이시구요. 단지 제가 관심이 가장 많이 가는 분야이고 잘 알고 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함께 참여하시는 다른 민변 회원님들과의 여러 차례 회의 등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고 조직적 대응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그날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심재섭 변호사님 사건도 같이 대응하기로 했지요.

서기호 최근 사법농단 TF 회의에서 저의 재임용탈락 취소소송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사건도 함께 다루어서 이슈페이퍼 만들고 고발하는 등 다른 사법농단 피해자들 사건과 함께 포함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볼 때 제 사건이 기존 긴급조치,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반대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고 직접적으로 재판거래에 활용된 사건이고. 하지만 저는 그런 차원은 아닌데다 앞의 피해자분들의 아픔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 사건에 우선적으로 집중해도 바쁘고 모자랄 판인데, 제 사건까지 포함시키기에 죄송한 측면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뒤에 여러 분들로부터 제 사건이 개인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다수의 다른 판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예방적 성격도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함께 다루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의견을 주시는데 혼자 반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 조직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이 점은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그동안 제 스스로도 혼자만의 활동에 초점을 맞췄던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여러 경험을 통해 보니 12년 재임용 탈락사태 이후 거대한 사법권력에 맞서서 모순점들을 풀어나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의견이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이번에 법원 앞 1인시위에서 첫 주자를 하셨습니다. 과거 근무지, 혹은 동료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을 때의 그 느낌을 전해주셔요.

서기호 처음 1인시위 이야기가 TF 회의에서 나온 뒤에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 부분이 현 단계에서 무척 중요하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더기 영장 기각 사태를 통해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어서 수사방해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가 극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대폭 받을 수 있는 1인 시위이고, 말없는 다수의 판사들조차도 속으로는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단지 동료 판사들의 재판에 관한 영역이라 비판적인 말을 못할 뿐이지요.

그런데 마침 첫 주자인인 김호철 회장님이 예정했던 시간에 급한 일정이 생기셨다고 해서, 이때다 하고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인시위를 하는 동안 알고 지냈던 동료 판사, 직원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어떤 분은 격려를 해 주고, 어떤 분은 그냥 못 본 척 지나기도 했습니다. 그냥 지나간 판사들도 속으로는 부끄럽고 뜨끔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1인시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잘못된 영장 재판을 바로잡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재섭 나중에라도 법원에서 일하실 것인가요?

서기호 기본적으로는 법원조직이 소위 법적안정성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향후 사법농단이 바로 잡힌다 해도 제가 판사로 복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주시는 분도 있지만, 제게 주어진 소명을 감안하여 볼 때 법원 밖에서 할 일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설령 복직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현재로서는 다시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법원 밖에서 민변활동과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님 등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The post [회원인터뷰] 연대의 힘을 깨닫다 – 서기호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09/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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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혁1

 

대설주의보가 내린 빙판길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변호사. 민변 언론위원장 이강혁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9년 경력의 기자였던 그는 지금 법조인으로서 언론의 영역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7년 만에 파업에 마침표를 찍은 MBC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동시에 여전히 아픈 손가락인 KBS와 언론 생태계 전반을 걱정하는 그의 솔직한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반쪽짜리 성공으로 끝날 수 없는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파티의 아름다운 피날레를 위해 오늘도 이강혁 변호사는 달린다. 아이스 스케이팅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 지킴이 이강혁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강혁최종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특히 언론위원장으로서 맡은 직무는 무엇인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언론위원회는 영어로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committee on media’, 즉 ‘언론매체에 관한 위원회’예요.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좁은 의미의 언론매체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표현의 자유 전반으로 이해되기도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잠재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역사적으로 언론위원회는 언론 매체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어요.
처음 언론위원회 조직을 만든 안상운 변호사님께서 언론매체의 문제, 그중에서도 언론의 왜곡·과장 보도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작했어요. 이걸 중심으로 오긴 했지만, 활동 영역을 넓혔어요. 언론보도 피해자 구제에서는 언론이 대상화되어있지만, 언론을 중심에 놓고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활동영역의 기본은 언론 보도의 피해자 구제 지원이에요. 그 유관분야로 우리 민변을 언론과의 관계에서 수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민변 회원들도 언론 보도의 피해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조·중·동에 의해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공격받기도 해요. 그때 언론위원회가 소송을 대리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언론매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언론매체 내부에서의 개혁운동 같은 것을 지원하기도 해요. 대표적인 예로 현재 방송개혁을 위한 양대 공영방송 파업에 결합하여 지원하는 활동을 들 수 있고요. 조금 더 나아가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언론의 자유 개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더 폭넓게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다양한 관심을 두고 추가의 활동 영역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들이 오셔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위원회입니다.

9년 넘게 신문기자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신문기자가 된 것 자체가 투철한 계획이나 적성이라든가 장래 진로와 전망을 확실히 정리한 상태에서 되었다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불가피하게 된 면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보편적으로 민주화운동·학생운동에 많이 참여하는 분위기였고, 저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에 참여했어요. 그 과정에서 감옥에도 다녀오다 보니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 대상자가 되었고요. 그래서 다른 분야로 갈 수는 없었고요. 노동운동을 하거나, 언론사도 다른 언론사가 아닌 ‘한겨레신문’ 밖에 대안이 없었어요. 이 두 가지의 선택지 가운데에서 고민했는데, 나름대로 학생운동도 하고 그 당시에는 투철한 혁명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백면서생 스타일이고 미국식 자유주의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고 급진주의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한겨레신문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사실은 직업으로서의 기자 생활이 아주 잘 맞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언론사들에서는 제도의 틀에 맞서 소위 ‘곤조’, 즉 근성을 부리고 거칠게 싸우며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권장되는 분위기거든요. 그래야 특종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 중국 방문 과정에서 중국 경호원들과의 충돌과정에서도 (관련 기자님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편린이 드러났죠. 이것이 제 서생적인 기질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 동료들이 인간으로서, 그리고 우리 시대에 살면서 품는 지향성 면에서 굉장히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안 맞는 부분들 때문에 계속 고민을 했죠.
그러다 정권 교체(김대중 대통령 당선)가 이루어지고 (표현이 왜곡되어 들릴 수 있고 한겨레에 계신 분들이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한겨레신문이 일종의 여당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굳이 그곳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고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일, 더 맞는 것을 찾아도 될 것 같아서 다른 직업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퇴직하고 처음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건강 문제 등으로 실패했죠. 그 후 생계를 위해 고등학생 대상 논술학원 강사를 몇 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다 안정적인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마무리 짓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로스쿨 1기로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고, 이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직업으로서 맞지 않은 것 외에 구체적으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 그 점에 관해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했던 점이 있어요. 한겨레신문이 좋은 선·후배가 모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사를 쓰기 싫은데도 써야 하는 것 등이요. 타사처럼 위에서 억압하거나 안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어요. 제가 워낙 개인주의적이고 못된 성미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면에서 ‘나 혼자 간섭받지 않고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을 때 변호사가 떠올랐어요.
또, 언론사 기자 생활이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자기계발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학문 공부를 하는 것이 제일 좋겠습니다만, 생계에 대한 압박이 있어 도저히 그 나이에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법학을 다루는 변호사를 선택했는데, (신문사의 동료들에게 죄송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지금이 기자 때보다 더 맞는 것 같아서 후회 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6

 

변호사가 된 후에 여러 소송을 수행하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소송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작년에 신문법시행령에 대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얻어낸 헌법소원 사건(2015헌마1206)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정권이 (이미 드러난 공영방송 등에 대한 개입 외에) 인터넷언론 쪽에도 개입을 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5년 당시에도 이런 정황을 포착하여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요.
인터넷신문의 기준은 신문법과 신문법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데, 기존에는 상시로 고용해야 하는 취재 및 편집 인력을 3인 이상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문체부에서 기업들 대상의 신뢰하기 어려운 설문조사 결과 등을 내세워 ‘인터넷신문들이 기업체를 공갈하고 안 좋은 쪽으로 쓴다, 언론계의 물을 흐리고 질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논리를 펴면서, 신문법시행령의 인터넷신문 인력 기준을 3인에서 5인으로 개정했어요. 인터넷신문 업계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인 미디어나 2인, 3인 미디어 수준이 많은 것이 인터넷신문의 현실이거든요. 당장 사람을 더 고용한다는 것은 인건비가 들어간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이런 매체들은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그때 당시 조사한 바로는 절반 이상의 기존 인터넷매체가 폐업을 고민했었고, 그래서 충격이 컸죠. 이 시행령 개정 배경으로는 앞서 언급한 나름 내세운 명분은 있었지만, 사실은 인터넷 언론을 완전히 장악해나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봤습니다. 신문 쪽에서는 ‘한경오 진영’이 있긴 합니다만 조·중·동이 꽉 잡고 있고, 공영방송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물론 종편에서도 JTBC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통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인터넷’ 언론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준 요건 강화를 통해 많은 인터넷신문사들의 문을 닫게 하고 시장 자체를 재편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1인 미디어가 가능한 시대잖아요. 소수의 인력으로 하더라도 특정 전문 분야를 성실하게 지속해서 취재하고 보도한다면 기존의 대형매체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룰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물론 영세한 업체 중 문제가 있는 업체도 있긴 하지만,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면 안 되듯이 당시 개정한 시행령처럼 과도한 기준을 요구해서 이에 미치지 못하는 매체들은 모두 없어지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너무 획일적이고 지나친 입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어요.
사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기존 정권에서 임명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최소한의 자유주의적인 언론관에 입각해서 이건 너무 심하다고 인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7:2로 위헌이라는 판단을 받았고, 덕분에 많은 인터넷신문들이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종사자 분들한테도 그렇고, 무엇보다 언론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시도를 막아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현재까지 KBS는 파업 중이지만, MBC는 최근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해직된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내정됐습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남다른 감정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저 자신도 그렇고, 많은 분이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언론인들에 대해서 많이 실망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2012 MBC 파업이라든가 열심히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한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방송이 엉망으로 왜곡돼 갈 때 무엇을 하셨는지, 더 적극적인 노력이나 저항을 할 수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의심이나 약간의 불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업을 MBC는 마무리했지만, KBS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잖아요. 소위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의해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러 달 파업을 하고 계시는데,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KBS 같은 경우에는 최근에 사태의 분기점으로 강규형 이사 해임 사전통지가 되면서, 저도 파업을 이끄는 새노조 위원장께 “이젠 파업을 접으시라, 너무 힘드니까”라고 그렇게 권유를 많이 했는데 “힘들더라도 끝까지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교훈이 남는다.”라며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들과 아울러,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 2012 MBC 파업 이후 지속해서 싸워오고 고통받아온 뜻 있는 방송인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면서, 적어도 이런 움직임과 운동을 주도하는 분들은 나름대로 다시 기회를 가질 자격과 어떤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파업에 참여하는 분 중에는 대세를 따라서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꾸준하게 싸워오고 지금도 절절하게 실천하는 분들은 정말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이 개혁되고 제자리를 찾아갈 희망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5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동안 공영방송 장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무섭게 했죠. 국정원까지 동원해서요. 특히 노조가 저항하니까 플랜을 만들고 그 플랜에 맞춰 해바라기 언론인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노조 활동을 하거나 뜻있는 언론인들을 한직으로 부당인사를 하는 등의 식으로요. 물론 정권이란 가해자가 있고 이것이 핵심이지만, 이외에도, 주체적인 반성이란 면에서 본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언론사 내부에서 양지를 좇은 해바라기 언론인들의 문제이겠죠.
정권이나 자본 등 외부의 유혹이나 압력은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거든요. 그래서 내부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주체의식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타락한 해바라기 언론인들이 호응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악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결과적으로는 비슷했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가지게 됐던 부분이 그런 것들 때문이었으리라는 면에서 굉장히 그 문제가 컸죠. 노조 파업 하시는 분들도 주목하고 있는 사안인데, 정권의 언론장악을 내부에서 협조해주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한 분들에 대해서 법적인 차원이든 도덕적이고 직업적인 차원이든 확실한 책임추궁과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론인들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중요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렇게 처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파업에 연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매주 금요일에 불금파티라고 외부 지원 단체 연대 집회가 있습니다. 저나 위원님들이 참석하면서 연대를 꾸준히 했죠. 개별적인 법률 지원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예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해임통지를 한 KBS 강규형 이사 사안을 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애견 동호회 활동을 하는데, KBS 법인카드로 동료 동호인들에게 밥을 사주는 등의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KBS 이사들 문제가 제기되니까, 애견 동호회 분들이 KBS 노조에다가 제보를 한 거죠. 그런데 그걸 알고 그분이 제보를 한 사람들에게 협박성 문자를 여러 날 보냈습니다. 모 유명 사립대 교수님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수님의 말이라 생각하기 힘든 폭언적 내용이 가득한 채로요. 그래서 언론위 소속 위원이신 서창효 변호사님이 KBS노조를 대리해 강부영 이사를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업에서 내용으로 봤을 때 제일 크게 쟁점으로 부각됐던 것은 ‘공공기관 경영진의 임기를 정권교체 과정에서 보장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08년도에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KBS에 정연주 사장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을 이명박 정권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는 지금과 비슷하게 KBS 이사를 바꾸고 이어 사장을 바꾸는 수순을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판결을 통해서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긴 했습니다만, 이미 임기가 지난 뒤라 원상회복은 못 했죠. 당시 사태와 이번 투쟁이 외형적으로는 비슷하기 때문에 뒤집어서 보면 우리가 그 과오를 또 범하는 것이 아니냐, 안 좋은 전례를 남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문제에 대해서 다른 언론단체들은 상대적으로 깊게 고민을 하지 않고, 적폐 세력이 말도 안 되는 얘기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우리는 어떤 논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지지한다는 식으로만 대부분 정리를 했죠.
하지만 우리 민변 언론위원회 같은 경우는, 특히 법률적인 문제도 많이 깔렸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죠. 역으로 저쪽에서 소송한다고 큰소리치며 이미 법정공방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이고, 당장 정연주 사장님 판결 때 우리가 이겼던 것처럼 소송에서 우리가 질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지게 된다면 역사적으로 그 과오에 대한 책임 문제, 또 나아가서 사회 전체의 적폐청산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그래서 그 부분을 나름대로 언론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공영방송 경영진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예외적으로 해임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기 보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임 절차 규정이 대통령 탄핵처럼 세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이전의 판례나 일반적인 단체법 법리를 적용해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는 등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가장 먼저 성명으로 발표했고 위원장 명의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해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당장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정당화 논거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4

 

공영방송 장악 금지와 관련한 여러 법률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독립된 언론을 위해 추진해야 할 법적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근혜 정권 말 즈음에 ‘언론 장악 방지법’이라고 당시에 야 3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같이 법안을 만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기존 KBS‧MBC 이사 구성이 일방적으로 여 쪽에 편향되어 있었다면, 이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7대 6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특히 사장 선출과 선임을 할 때는 편향성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사장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3분의 2 동의를 받는 ‘특별 다수제’가 있습니다. 결국엔 야 쪽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거죠. 이게 현 여권(옛 야권)의 기존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이 법안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여당 지위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 하는 압박감에 많이 시달리면서, 최소한의 보험용으로 이만큼의 견제선은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리되고 제시된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나온 이후에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촛불혁명에서 확인한 에너지와 요구는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지금 얘기한 언론장악방지법안은 여당이나 대통령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운 거리를 둘 수 있지만, 정치권 전반, 즉 기존 정당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입법부의 각 교섭단체가 추천해서 이사들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 법안을 시행하면 각 당의 세력 구도에 따라 이사회가 구성되고 제어되는 구조가 되거든요.
그래서 이게 과연 정답이냐는 문제 제기가 쭉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뒤 그런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죠. 언론사 노조들, 언론 단체들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요. 이런 맥락에서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등을 정치권에만 맡길 게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여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도록 하자는 대안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사를 전부 선출한다는 것은 어렵더라도 일부나마 선출해서 민의를 직접 대변하는 이들 국민 선출 이사가 여·야 추천 이사 간에 의견이 갈릴 때 캐스팅 보트가 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이미 이런 법안을 제출한 상태이고요. 대표적 언론단체인 민언련에서도 그런 방안을 낸 상태입니다. 심지어는 방송법 개정을 계속 반대하다가, 또 최근에는 언론장악방지법안 식으로 개정을 하자고 하던 자유한국당마저 지금 말한 새로운 근본적인 요구가 나오다 보니까 강효상 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이 강효상 의원 안은 직접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은 아닌데, 각 사회·직능단체들의 추천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서, 정치권에 그냥 맡겨놓는 것보다는 나름 진전된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안의 문제점은 명확한 기준 없이 추천 단체들을 아예 명시해놨는데, 속이 들여다보이게 교총이라든지 (조‧중‧동이 주도하는) 신문협회라든지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우호적이라 생각하는 단체들을 여럿 포함시켜놨다는 점이죠.
따라서 걸러서 보기는 해야 합니다만, 어쨌건 결국 언론장악방지법안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쟁점 구도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롤 플레이어로서 안을 내놓아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새로운 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측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지금 막 자문기구를 통해서 안을 만들어 내고 있고요. 새해 1, 2월 정도에 그런 안들까지 나오게 되면, 정권에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언론 독립을 법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논의가 각 세력의 안을 토대로 본격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적인 방향은 여야 정치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겠죠.

 

추상적인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 도입을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형태로써 도입되어야 할 안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결정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말하긴 그렇습니다. 다만, 얼마 전 운영됐던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처럼, 무작위로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선출과정에 참여하겠는지 의사를 물어서 의사가 확인된 분들을 상대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선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국민참여단’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세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더 연구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 2017/12/2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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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로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민변 사무실에서 이경재 변호사님, 조미연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뉴스레터 200호 특집을 핑계로 선배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컨셉에서 조금 벗어나, ‘후배(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변호사님’들을 대표할 수 있는 두 분을 뵙고 싶었지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후인정을 닮은, 최순실 변호인과 이름만 같은 이경재입니다.”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두어 시간, 우리 모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심재섭 출판소통팀장 : 요즘 변호사님들이 가장 관심가지고 계신 건 뭔가요?

이경재 변호사 : 돈 버는 거요. 하고 싶은 활동을 지금처럼 계속 유지하려면 물질적인 불안이 없어야 할 것 같아요. 개업하면서 지속적으로 민변과 함께하기 위해 내가 할 몫으로 돈을 벌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낀 거예요. 처음 민변에 가입했을 때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 사법농단이었습니다. 제가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법농단 이슈가 막 터졌어요. 내가 앞으로 민변에서, 혹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 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도 가까워서 농성장에 매일 상주하다시피 살다 보니 활동가분들, 변호사 선배님들을 많이 뵙고 좋았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지금은 취업이 가장 중요해요.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요즘 면접기간이거든요.

 

심재섭 팀장 : 두 분,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어떠한가요?

이경재 변호사 : 원래 노동법 및 공익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공감 등 사회단체를 쉽게 접했던 터라 민변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로스쿨 재학당시 이소아 변호사님 등이 학교를 방문하고, 특별회원 가입 등을 권하시기는 했는데, 변호사도 아닌데 ‘변호사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뭔가 불편해서 좀 미뤘어요. 변호사시험을 끝내자마자 마침 김준우 변호사님의 권유도 있었고, 로스클 때부터 알고 있던 최용근 변호사님이 추천도 했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입했어요.

 

심재섭 팀장 : 가입하기 전부터 민변을 좀 알고 계셨군요?

이경재 변호사 : 로스쿨에서 뵈었던 선배들, 민변 변호사님들이 있었어요.

조미연 변호사 : 한승헌 변호사님, 김선수 변호사님처럼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동경해 오던 분들이 있었으니까요. 민변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는 쉽지 않아요. 전 전북에서 로스쿨을 다녔는데, 당시 전주전북지부 민변에서 인권법학회 간담회를 하면서 특별회원을 모집했어요. 그 전에 당연히 가입해야하지 하다가 그 기회에 특별회원으로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경재 변호사 : 최근에 SNS에도 글을 올렸지만, MBC 파업 당시에 신인수 변호사님에 대해서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민석 피디가 ‘현실에서 영웅을 봤다’라는 내용의 글을 썼거든요. 제가 ‘따뜻한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김민석 피디가 소개한 신인수 변호사님 이야기에서 그런 점을 느꼈어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감정적으로 분노하면서 냉철하게 다가가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그런 모습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요즘 김종보, 류하경 변호사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요. 현장연수부터 저랑 가장 가까이 있는 선배이기도 하고, 활동력도 탁월하셔서 배울 점이 많아요. 사실 민변에서 변호사님들을 보면 꼭 하나씩은 배울 점이 있으시더라고요. 누굴 특정해서 닮고 싶다 할 것 없이 주위에 계신 분들 떠올려보면…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잘 살아가는 모습, 그 활동 자체가 홍보가 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심재섭 팀장 : 법조계에 들어오고자 했을 때 생각했던 모습하고 지금하고 얼마나 같은가요?

조미연 변호사 : 전 로스쿨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에 검사를 거쳐 10년 뒤에는 우리나라 프로보노 활성화에 앞장서는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고 썼었어요. 검사라는 조직과 직역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다니고 보다 진지하게 공부를 하게 되면서, 그쪽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변호사인데, 변호사가 되면 공익전담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경재 변호사 :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로스쿨 들어오는 애들 3분의 1은 인권, 3분의 1은 IP, 3분의 1은 M&A 하겠다고 한다는 거지요. 그만큼 공익이나 인권이라는 목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쪽 일을 계속 해나가지 못하는 현실이나 로스쿨 단계에서의 진로 설정이 막연하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 같아요. 공익변호사라는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전 공익인권의 분야를 놓지 않겠다는 정도의 결심은 꾸준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로스쿨에선 다들 불안하고 막연하긴 해요. 저도 로스쿨에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결정이 있었잖아요. 당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열 받아 있는데 주변 동료들을 보니 어느 누구도 분노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더라고요. 분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적인 변화가 없어 보였어요. 그런 점을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마냥 믿고 의지하는 방식은 아니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해야 될 일이 있을 것이고, 조금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소명이랄까, 그렇게 접근하기로, 실망을 덜하면서 꾸준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좀 외로웠어요. 저와 같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변호사가 되었고, 민변에 왔지요. 변호사라는 직업이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직업이라 좋았고, 천막농성하면서 만난 활동가분들, 당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길이 맞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민변에 가입하면서 기대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경재 변호사 : 동료들을 보면 다들 잘하시니깐, 모든 면에서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기대라는 말은 좀 어색하고, 특히 좋아하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민변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자진해서 감당하려는 자세였습니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민변 동료들은 그런 면에서 달랐던 것 같아요. 정치, 경제 이슈에 있어서 다수의 지지를 당장 얻지 못하는 주제라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다는 판단한 행동을 하는 것을 자주 봤어요.

조미연 변호사 : 인권변호사라는 말에서, 인권이란 말을 떼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굳이 인권변호사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이유는, 변호사라는 일에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공익 이슈, 인권을 수호하는 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어려운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이를 원하는 많은 변호사들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민변이잖아요. 여기에 들어와서 내가 무엇을 원한다, 하고 싶다 이런 생각조차 없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제가 색깔이 없어서 그런지 어떤 방향이나 기대를 말씀드리기가 좀 어색합니다.

▲ 2018. 11. 사법적폐청산 국민대회 참가 사진

 

심재섭 팀장 : 특별히 색이 없다고 말씀하시기에는, 지난 1년 가까이 민변의 많은 모임과 사업에 참여하셨어요. 엄청 특징적인 거잖아요. 어느 모임에 계시지요?

조미연 변호사 : 노동위, 민생위, 아동위, 여성위하고 사무처에서 회원팀을 하고 있어요. 봉변님(이경재 변호사님이 동기들 사이에서 불리우는 애칭)은 노동위, 소수자위, 환경위, 여성위 또 뭐 있더라…

심재섭 팀장 : 엄청 많잖아요.

이경재 변호사 : 철이 안 들어서 그래요.

심재섭 팀장 : 동기들은 다른 길을 찾아 가잖아요. 취직을 하든, 개업을 하든… 그런데 이렇게 민변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동력은 뭘까요.

이경재 변호사 : 그러니까 철이 안 들어서 그렇지요.

조미연 변호사 : 회원분들이 보면 진짜 쟤들 뭐하는 애들이냐 할 것 같기도 해요.

이경재 변호사 : 다들 가입하게 된 사연들이 있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그냥 재밌어 보이는 곳은 다 한 거예요. 이렇게 오래 유지될지는 몰랐어요. 제가 취업하고 싶은 곳의 채용이 최근까지 없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있어요. 사실 변호사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어렵다는 현실을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도 얼마든지 어려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1년 정도 취업을 미루었다고 하여도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훌륭한 경험을 민변에서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것을 포기하고 민변에 있었다, 이런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경재 변호사 : 저는 변호사를 하면 당연히 생계와 공익 활동을 병행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민변에 참여하는 것이 특별히 무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종교적인 것이든 아니든 마음속으로 얼마 정도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거요. 한 2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심재섭 팀장 : 수습 끝나고 10월 지나서 하나 둘 취업하게 되면 민변에서 뵐 수 있는 동기들 숫자도 줄어드는데 (변시) 7회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이유가 뭘까요?

이경재 변호사 : 첫째는 저 때문이죠.

조미연 변호사 : 와, 이거 진심이다.

이경재 변호사 : 농담이구요. 다들 서로 애정이 있어요. 독특한, 나름대로 특색 있는 분들이 있어요. 고시공부를 오래 한 분이 있고, 학생운동에 투신하신 분들도 있고, 오랫동안 나름대로 스텝을 제대로 밟아서 로스쿨 가신 분들도 있구요. 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긴 정말 쉽지 않고 동기분들과 만난 게 행운이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성인이 되어 만난 모임에서 특히 변호사 모임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받아주는 게 쉽지 않은데, 서로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잘 들어주더라고요. 운이 좋았던 거죠. 사법농단 때 농성장을 지키면서 많이 얼굴 뵙고, 농성장 해단하면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조미연 변호사 : 단체톡방도 소소하게 많이 있고, 오프라인에서도 그러니까 민변 행사가 있으면 자주 만나고 해요. 노동위원회의 경우 매주 회의를 하면서 매주 얼굴 보고 밥 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시기도 하죠.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특별히 나오라고 독려한 게 아니고 자율적으로 다들 결합하시는데 얼굴 한 번 더 볼 때마다 더 친밀해지는 기회가 되는 거죠.

심재섭 팀장 : 나오라고 두 분께서 독려를 하시는 거군요?

조미연 변호사 :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그냥 다들 시간 되시면 참여해 주세요. 그래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심재섭 팀장 : 두 분이 참여하는 사업, 소송, 행사들이 많잖아요. 전 처음에 초임인 내가 여기에 참여해도 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두 분은 어떠세요?

이경재 변호사 :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이제 막 변호사가 된 입장에서 내가 이걸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참여를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요. 저는 제가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집회나 회의에서 머릿수 채우는 역할만 하자고 맘을 먹는 것이에요. 저희도 두려움은 있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참여하는 게 맞으니까요.

조미연 변호사 : 머릿수를 채우다보면 어느 순간 긴 호흡을 함께할 수 있다고 김선수 변호사님이 말씀해주셔서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경재, 조미연 두 변호사는 지난해 사법농단 진상규명,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저지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위 사진은 릴레이 1인 시위 당시 모습.

 

심재섭 팀장 : 이런 것은 어때요? 집회나 회의를 참가하기로 했는데 나만 참석하게 되는 경우, 송무를 맡았는데 실제 같이 일을 하는 분들이 나와 같은 초임인 경우…

조미연 변호사 : 실제로 민변에서 미진한 부분들이 그런 점인 것 같아요. 사업에 들어갔을 때 맡게 되는 업무가 생각보다 무거운 업무인 경우도 있고, 역량 밖이라고 느껴질 경우가 있죠. 책임감 있게 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겠죠. 선배들의 약간의 도움이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아요. 신입설문조사에서도 그런 점이 많이 나타났죠.

심재섭 팀장 : 신입설문조사요?


조미연 변호사 : 네, 이번에 회원팀에서 신입회원들을 대상으로 민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저는 민변 회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회원팀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회원팀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회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신입의 입장에서 신입의 목소리를 모아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담으려고 설문조사를 시작했어요. 34분 정도가 설문을 해주셨는데, 지금 주제에 관한 것이 있어요. 신입 회원분들이 민변 활동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의 첫 번째는 바빠서이고요, 그 다음 이유로는 민변에서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민변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막연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 부족해서라고 해요. 첫 번째 바빠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머지 이유는 신입회원의 입장에서 새로운 조직에 들어오는 시점에서 기존 구성원들의 역할을 고민하게 해주는 유의미한 답변이라고 봐요.

이경재 변호사 : 바쁘다는 건 좀…….

조미연 변호사 : 그쵸, 바쁘다는 건 핑계일 수 있죠. 그런데 한정된 시간에서 민변을 우선할 수 있도록, 조금 접근하기 편하게 선배 회원들이 손을 내밀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두 분 변호사님께서 그간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으셨더라고요. 이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민이 있었고, 그런 점에서 감사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두 분의 의견은 어때요. 기존 선배 변호사님들이 이런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요.

이경재 변호사 : 저는 민변이 다른 법조조직에 비해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적인 양태가 가끔 보일 때가 있어요. 그게 활동의 방향에 관한 거라면,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 유연한 태도들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조미연 변호사 : 회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작은 단위에서의 관계요. 평등하고 대등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일을 같이 하는 데에 있어서 경력과 경험의 차이를 기초로 한 효율적인 협업을 잘 구분해서 둘 다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예를 들어 대등한 관계라는 점이 업무수행까지 적용되면 꼭 필요한 지시 내지 조언이 생략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실질적인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초임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방치되었단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경재 변호사 : 서면으로 된 산출물에 대해서, 선배들께서 어려워서든지 다른 이유에서든지 피드백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어떻게 보면 무관심으로 이해될 수 있겠죠. 애정을 가지고 후배들을 많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떠한 실수가 있을 때 확실하게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미연 변호사 : 신입 회원들에 대해서 계속 궁금해 하셨으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많이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경재 변호사 : 후배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성인이잖아요.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말했을 때 싫어하시는 선배 변호사들은 없으니까요.

조미연 변호사 : 그럼 서로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 정도로 하면 좋겠어요.

 

심재섭 팀장 : 뉴스레터는 많이 보셨나요? 어떤 파트가 가장 재미있으셨나요?

이경재 변호사 : 전 인터뷰를 주로 봐요. 인터뷰를 제일 좋아하고요.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우리 서로 개인적인 일들을 묻지 않는 편이잖아요, 그래도 궁금할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요.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더라구요. 그런 점들, 보통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개인의 인생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여서 좋은 것 같아요. 최근 인터뷰 중에 최정규 변호사님 편 정말 좋았어요. 업무적으로도 종종 뵙는데,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던 차에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니까 좋더라구요.

조미연 변호사 : 저도 최정규 변호사님 인터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뉴스레터를 잘 못 봐요.

심재섭 변호사: 안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미연 변호사: 음… 귀차니즘인 것 같아요. 다 글이니까. 일하면서도 글을 보고 글을 쓰는데, 대부분의 소식이 글로 오니까 더 핑계거리가 되지요. 같은 소식이라도 영상으로 오게 되면 더 먼저 보게 될 것 같아요. 정보를 수집할 때, 간단한 문자, 짧은 영상이 우선이고, 장문의 글은 그 다음. 만약에 하드카피 문헌이라면 가장 늦게 손이 가요. 그런데 이건 개인적인 문제라, 출판소통팀에서 내용이나 구성이나 부족한건 아니지요. 혹시 여력이 된다면, 출판소통팀에서 SNS나 영상 컨텐츠적으로 접근을 좀 더 한다면 회원들이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아요. 짧은 글이라던지, 짧은 영상들을 더 넣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경재 변호사: 민변이 해야 할 역할 중 진중함이 있을 텐데, 영상으로 할 땐 한계가 있을 순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작은 시도부터 하면 좋지 않을까요? 여전히 글이 길다는 느낌은 받고 있어요. 임팩트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입니다.

 

(뉴스레터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마치 우리 출판소통팀 회의 시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선배 변호사님께서 모임에 대한 애정으로 많이 읽어주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최신의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면)에는 좀 맞지 않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민변 회비는 부담이 되시나요?

조미연 변호사 :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절대적인 숫자가 크다고 할 수는 없는데, 변회(서울변호사협회) 회비도 있고요, 민변에 들어오는 변호사님들이라면 개별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꼭 민변 회비만 떼어서 보긴 어렵고 월 지출 총액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심재섭 팀장 : 앞으로의 계획은 어때요?

조미연 변호사: 첫 직장을 잡는 거죠. 꼭 가고 싶은 직장이 있어요. 민변에서 신입회원으로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직장에서 변호사로서의 처음을 제대로 다지고 싶어요. 거기에 하나 더 생각한다면 민변 회원으로서 긴 호흡법 연습하기가 있어요.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고 하지만 그걸 10년, 20년 머릿수만 채울 수는 없잖아요. 그것에 대한 고민들이 있어요.

이경재 변호사: 1년차 때에는 머릿수 채우기로 정신없이 보냈는데, 앞으로 더 많이 경험하고 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설프게 마음만 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도움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4월에 새로 합격하시는 변호사님들, 또 그 뒤의 변호사님들께 제가 선배님들에게 받았던 느낌을 똑같이 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춰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처음 민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1년을 넘겨서도 초기의 활동력과 애정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갈수록 변호사의 고용‘시장’이 어려워지고, 법률시장 자체가 팍팍해져 가는 현실에서 신입회원들이 빨리 방향을 달리 정하고 민변 활동에서 멀어지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 충분히 공감합니다. 오히려 탈회하지 않는 마음이 고맙지요.

이번 두 분 변호사님과의 대화에서 민변에 대한 사랑, 변호사 직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변호사님이 신입 회원의 모든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신입 변호사님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공감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8년 활동 사진 한 장을 달라는 출판소통팀의 요청에 이경재 변호사님이 아래 사진들을 보내왔습니다. 보낸 모든 사진을 실어달라는 이경재 변호사님의 요청에 답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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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03/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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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부의 박인동 변호사가 적극 추천한 정다은 변호사님. 사무실에 들어가자 맑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심재섭 (이하 심) :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정다은 (이하 정) : 세상살이는 32년차고요, 변호사는 5년차고, 결혼생활은 2년차, 그리고 애 엄마로는 1년차에요.

 

심 : 민변은 어떻게 가입하신 건가요.

정 : 시험 합격하고, 실무수습 하면서 가입신청했어요. 14년 10월경 정도였을 것 같아요. 로스쿨 다닐 때부터 민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혀 그러지 못했어요. 사실 제가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했었고, 그 전에 학생운동이나 사회 활동을 한 적도 없었거든요.

민변에는 꾸준히 운동을 해 오신 변호사님들이 많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 남편이 남들 할 때 좀 하지, 그때는 맨날 술 퍼먹고 연애질만 하고 다니다가 다 늙어서 활동하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 민변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던 거는 초등학교 때에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부모님 성향 때문이었나 봐요. 집 책장에 조영래 변호사님 책들이 꽂혀 있었거든요. 그렇게 민변을 알고, 그게 전부죠. 그 뒤로 민변은 잊고 살다가, 변시 붙고 나서 그냥. 주머니 넣어 놓았던 것 꺼내듯이, 그랬던 것 같아요.

전대 로스쿨에 유명한 ‘인연회’라는 메이저 인권 모임이 있었고, 그거 말고 마이너들이 모여가지고 만든 ‘서로’라는 동아리가 있었어요. 한 달에 한번씩 광주 YMCA, 이주여성센터 이런 곳에서 상담봉사를 했었어요. 이 친구들은 아주 소수정예, 아니 정예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소수였어요. 그 모임 멤버들이 민변에 꽤 가입을 했어요.
변호사 시험을 보고 발표하기 전까지 기간이 좀 있어요. 운이 좋아서 그 기간에도 지금 자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죠. 정식 변호사는 아니지만 그때 수습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이 사무실에 있어요.

저희 지부에서는 매년 신입변호사를 대상으로 행사를 합니다. 이게 대학교에서 동아리 모집하는 방식하고 비슷하기도 한데, ‘민변소개마당’이라는 행사에요. 수습변호사들이 수습을 하러 들어왔고, 고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민변 소개마당이라는 행사를 개최해서 1부를 하고, 2부는 이제 술 먹고 놀죠. 저같은 경우에는 그 행사 끝나고 바로 신청서를 냈었어요.

 

심 : 그런 행사를 하려면, 대상자에게 알려야 하잖아요. 수습기간 중에 있는 변호사님들의 명단 파악은 어떻게 한 걸까요.

정 : 저희 지부 특성일 텐데, 전남대 로스쿨이 대부분이잖아요. 전남대 로스쿨 기수 대표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제 7기가 나온다, 그러면 민변 6기 변호사님들한테 우리 행사하자, 이렇게 연락이 다 가는거죠. 연락처 확보는 문제가 아니에요. 오세요, 오세요 홍보를 하고 사전에 질문지를 받습니다.

질문지 내용을 보면 ‘법정에서 인사는 몇 번 해야 하나요’ 같은 사소한 것부터 정말 다양해요. 행사를 하면 선배 변호사가 이 질문지에 대해 답을 하시죠.

 

심 : 선배로 오시는 분들은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

정 : 저희 또래부터, 아주 원로 변호사님들까지. 선배님들이 활동을 계속 해 주시는 것이 저희는 너무 좋거든요. 김정호 지부장님보다 선배인 변호사님도 정말 많아요. 법정에서 그런 변호사님들 뵈면 어떻게 편하게 인사하겠어요. 민변에서나 편하게 선배님, 선배님 하죠.

민변소개마당이라는 행사가 인상적이다. 회원유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스템.

심 : 우수변호사 상을 받으신 이야기도 해 주세요.

정 : 정말 제가 받을 상은 아니에요. 우수변호사 그거는 지방변회에서 추천을 받는데, 광주지방변호사회의 집행부 중에 민변 소속 회원이 과반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법조계 성폭력 실태 조사에 대하여 상을 주신 것이지요. 실은 이 상은 제 상이 아니에요. 실태조사단이 여성변회와 전남지부가 협력하여 이루어진 구조인데, 규정상 단체를 추천할 수 없어서 간사였던 저를 추천해 주신 것이지요.

 

심 : 에이, 이건 좀 겸손이 과한 것 같은데.

광주전남지역 법조계를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건데요, 광주에는 사무직원회도 있거든요. 법원, 검찰공무원, 물론 판검사 다 포함되어 있고요. 변호사, 변호사 사무원들까지 전부 대상이에요.

성폭력 상황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묻고, 가해자를 나누게 했어요. 답변인이 예를 들어서 사무직원회 소속 여직원 이었다면 자신들이 업무상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이고, 여자 변호사가 응답하였다면 업무시간 종료 후에 회식에서 만나는 판, 검사까지도 대상이 되겠지요.

 

심 : 이런 기획은 처음에 시작된 건가요.

정 : 시작은 미투운동이었고, 다음은 서지현 검사님의 고백이었지요. 그뒤에 사실 법조계에서는 잠잠했었잖아요. 그런데 저희 지변 소속에 여자 변호사님 한 분이 지역 일간지에 기고를 하셨었어요. 저보다도 연차가 낮으신 분이었는데 용감하게 자신의 경험도 드러내면서 우리도 각성하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기사가 나고 지변은 난리가 났죠.

임성숙 변호사님이 광주 여변들의 왕언니에요. ‘야, 우리 뭐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하셨고, 다행히 저희 지부에 실행력 있으신 분들이 많아서 일이 진행되었지요.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님도 민변 변호사님이고, 미국에서 활동하셨던 변호사님도 들어와 계시고, 구성이 참 좋았어요.

저희가 이 실태조사 하면서 미국 변호사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미국에서도 법조계 성희롱 실태 조사를 했었대요. 그 설문지의 설계를 참고해서 저희 설문지가 나왔습니다.

설문조사 기간이 사실상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도, 이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자체만으로 남자변호사님들은 굉장히..

 

심 : 굉장히..?

정 : 임변호사님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해주셨죠. 풍파를 막아주신 거에요. 원로 변호사님들은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이런 걸 굳이 하느냐는 말씀도 있으셨나 봐요. 광주가, 굳이 다른데도 아니고 광주가 왜.

광주에서 이 관련된 일을 하다보면 그 말 되게 많이 들어요. 광주에서 굳이. 518의 도시인 광주, 민주화의 성지에서 굳이 우리의 흉을 밝힐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거죠.

다른 지역에서 시도한 적이 없었고 처음이었고, 이후에 대한여성변호사회에서 하겠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실제로는 홈페이지에서 공고 띄워서 경험한 것 있으면 들려주세요, 하는 정도더라고요. 저희의 목표는 최종적으로 신고센터를 만들려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 우리의 실태조사완 좀 다르더라고요.

개방형 답변에 대해서는 사례보고가 굉장히 많이 됐는데. 이 내용이 실은 굉장히 충격적인 것도 있었죠. 그렇지만 이 내용을 오픈해버리면 피해자, 가해자가 특정되어버리니까 그럴 수는 없고. 지역사회가 워낙 좁거든요.

그래서 사례 공개는 못하고, 형사 처벌이 가능한 데이터를 뽑았어요. 법률에 저촉 되는 퍼센티지를 냈는데, 이걸로만 언론들은 난리가 났었죠.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어린 여자변호사들에게 변호사 이외의 사무직원이 가해를 한 행위도 굉장히 높았어요. 사실 우리 안에서는 대충 상황이 그려지는 상황인데, 밖에서는 상상을 못하는 내용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전문성, 직업, 학벌 다 필요 없고, 남자라는 자체만으로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했어요.

 

심 :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정 : 막아주신 임변호사님이 안계셨으면 기획 자체가 좌절될 수도 있었어요. 토론회에 발제하기도 쉽지 않았을테고.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허락을 받고 했어요. 회장님 저희 이거 하겠다 하고. 다행이 지역에 있는 변호사님들이 다 도와주셨어요.

그래도 응답률은 되게 낮았어요. 특히 사무직원은 정말로 낮았어요. 자기가 이직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저희가 이 설문조사가 끝나고 실제로 신고센터가 아니라 양성평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매해 실태조사를 하고 개략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첫 번째로 실시된 조사였기 때문에 익명보장에 대한 믿음이 없었는데, 이번 설문조사 결과 완벽하게 비밀이 보장되어서,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어요. 내년 응답률과 결과에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습니다.

이제 양성평등위원회, 저희 여변 차원이 아니라 지변 차원에서 마련되었으니까요.

 

실태조사에 대한 설명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배에 대한, 특히 왕언니에 대한 신뢰.

 

심 : 지만원이 쓴 책 이야기도 해 볼까요.

정 : 실은 이 지만원이라는 사람과 518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자 하는 세력, 그 세력들이 비슷한 시도를 계속 해 왔지요. 그런데 이번 책은 새로운 접근이었어요.

자기들 자체 내에서 최첨단 영상 분석기술을 활용했다. 518 당시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눈코입을 비교해서 지금 그 사람들이 북한 인사들이었다 하는 주장이지요.

사실 이런 정식 분석기술이 있긴 해요. 그렇지만 지만원이 사용한 것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거래요. 그러면서 프로그램 개발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하고 ID만 밝혀요. 그런데 지만원이 주장하는 518 당시 사진의 인물과 현재 북한 인사하고는 연령대부터가 전혀 안 맞아요.

소송에서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둘이 다르다는 점이 아니라, 이 사진 속 인물이 원고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거냐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형사소송을 먼저 진행해요.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으로요. 형사사건에서 증인신문 하잖아요. 증인신문에서는 왜 이 사진이 찍히게 되었는지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당신은 어디에 있었냐, 이 사진은 뭐하는 장면이냐, 날짜별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있잖아요. 진술과 역사적 사실들이 일치하는지 맞춰보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 증언을 증거로 하여 민사에서 당사자의 동일성을 밝히지요. 아직까지 당사자 동일성에서 문제 된 적은 없어요.

 

심 : 이게 전두환 회고록 하고 같이 진행을 하고 있는 건가요.

정 : 지변이랑 민변지부랑 인적구성이 굉장히 많이 겹치기도 하고 그에 따라 활동해야 하는 목적도 많이 겹쳐요. 지변에도 518위원회가 있고, 민변에도 518위원회가 있어요. 그래서 518위원회에서 지변이랑 민변이랑 같이 하고 있죠.

심 : 광주에서 민변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요.

정 : 민변이라고 해서 의뢰인들이 싫어하시거나 불편해하시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어요. 아무래도 지역색도 좀 있겠죠. 아니면, 제가 좀 사람 대할 때 차갑고 싸가지가 없다고, 그러다 보니까 의뢰인들이 그렇게 느껴서 말을 안 하는 거 일수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엔 좀 새로운 경험이 있었어요. 지난 주말에 광주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있었거든요. 이거를 민변에서 같이 하기로 하고, 조력하기로 하고. 이 과정이 되게 참, 뭐랄까요.

민변 내부에서도 당연히 성소수자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잖아요. 민변의 이름으로 결합하는 것도 의미있었죠.

되게 새로웠어요. 사실 민변이 일반 시민과 접촉하는 기회가 박근혜 탄핵하는 그 시국 말고는 없었잖아요. 그때에는 민변 변호사들과 일반 시민의 인식이 같았으니까 별 문제 없었고, 한 편이었는데, 퀴어 퍼레이드는 다르잖아요. 퍼레이드를 하는 장소가 518광장이었어요. 분수대를 둘러싸고 허가를 받았어요. 원래 그 분수대에 아무 통제가 없어요. 통제하지 않아도 누가 그 위에 올라가지는 않거든요. 어린애들이라도.

그런데 이번 행사가 이루어지니까 난리도 아니었어요. 기독교는 당연하고, 518단체들에서도 나와서 내 친구 가족들이 목숨 바친 곳인데 이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민변에서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받아입고 갔는데도, 그런 얘기를 들었죠. 니들 이런거 하라고 너희 부모가 공부시켰나 이런 이야기들.
그래도, 경찰이 연행하거나 하진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광주니까요.

심 : 민변 본부에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정 : 저는 저희 지부 구성원들끼리 워낙 스킨십이 많아요.
선배님들이 본부 행사가 있으면 많이 데려가려고 하세요, 분위기를 느껴봐야 한다고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민변 본부는 본부대로 일을 하고 있고, 저희는 저희대로 하면서 불만이나 부족을 못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심 : 스킨십이 많다?

정 : 수가 훨씬 적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다른 분이 무엇을 하는지도 꽤 잘 알고 있어요. 광주에서 전업 공익변호사로 이소아변호사님이 계시고, 이변호사님이 운영하시는 비영리단체인 동행의 구성원이 두 명 있어요. 너무 열심히 하시죠. 민변에서 하는 사업의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요. 퍼센티지로 따지면 60프로 될까?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면 서로 참여하고, 여튼 그렇게 자주 만나고 뭉치고 해요.

 

심 : 민변 변호사님이 몇 분이나 계세요.

정 : 우리 한 40명 되나? 월례회를 하면, 그래도 한 스무 명, 스물다섯 명 정도는 모이는 것 같아요.

 

40명 중 반 이상이나 참석한다니.

 

심 : 지부 특색이나 자랑은 뭐가 있을까요.

정 : 저희는 일단 잘 안 빼요. 일할 때도, 놀 때도요.

누구 한 명이 제안을 해요. 이거 한 번 해보자. 요새 이런 일이 있다는데 이거 한 번 해보자 라고요. 그것도 연차 상관없이 자유롭게 제안을 하고, 제안이 들어오면 집행부 회의 거치지요. 합시다, 결정하면 그날로 밴드에서 공지를 하고 자원자들이 댓글을 달아요. 그렇게 대리인단, 변호인단이 나오죠.

7, 8년차를 기준으로 위, 아래 숫자가 반반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회의에는 오지 않고 다크템플러처럼 일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또 한편은 회의에 안 오시지만 술 먹고 노는 자리에 꼭 와 주시는 분들도 있고. 다양합니다.

아, 지부 자랑에 선배님들이 행사나 사건이 있을 때, 후원도 잘 해주시는 점도 있어요. 시간도 내 주시고, 돈도 내 주시고.

잘 놀고, 재주꾼들도 많고, 또 잘 싸워요. 연차 상관없이 잘 싸워요. 잘 싸우고, 잘 화해하고.

 

심 : 일상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본부는 보통 회의를 저녁시간에 하거든요. 6시 끝나면 퇴근은 하시나요?

정 : 네. 제가 운이 좋아요. 제 남편도 민변이고, 저랑 동기고, 이 친구도 지금 저랑 똑같이 고용으로 있거든요. 제가 운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저희 대표님을 만난 것도 있어요. 법원 출신이시거든요. 회사 안에서 당신이 의도하지 않은 일이 달갑지 않을 법도 한데, 그냥 저 하고싶은 일 하도록 허락해 주셔요.

업무 시간도 아주 힘들지는 않아요. 제가 출근시간이 좀 빨라요. 아홉시에서 아홉시 반 사이? 그래서 여섯시까지 바짝 하면 회사 업무가 거의 다 끝나요. 그러다보니 민변 활동하기가 좋은 편이에요. 고용 중에서도 일이 없는 사무실에 속해 있으니까요. 아이는 친정엄마 도움을 받고, 퇴근도 제 때 하고, 주말에 출근도 거의 없고. 그런데 이건 광주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당연히 차이가 있긴 할 것 같아요. 전 그냥 운이 좋다는 말밖에.

 

심 : 정말 하시고 싶었던 말씀, 지금 하세요.

정 : 민변 회원 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이기도 한데, 제가 처음 변호사가 되어 민변에 들어올 때 내가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는 것 하나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했던 사건을 돌이켜 보면 민변에 들어와서 하다못해 변호사님들 사이에 연락이라도 해야겠다, 돈 관리, 총무라도 해야겠다,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걸었던 사건들이거든요. 내가 뭐 법리에 능해서, 절차에 능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희 지부에서 실제로 1, 2년차 변호사님들이 일을 참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제가 무슨 선배인 것처럼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요. 저도 뭣 모르고 가입해서 정말 즐겁게 변호사 생활 하고 있어요. 두려워하지 마시고 일단 민변에 푹 들어와 보시면 좋겠어요.

민변 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이야기할 때, 아마 머릿속으로 동료, 선후배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는지 정다은 변호사님의 표정이 참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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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1/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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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산을 위해 일하다 보면 언젠가 산이 내 옆에 있을 것

– 최재홍 변호사 인터뷰

 

 

2016년 이후 햇수로 3년째 환경보건위원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재홍 변호사를 출판소통팀의 심재섭 팀장과 허진선 간사가 만났다. 인터뷰는 서초동 대로변에 위치한 법무법인 ‘자연’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심재섭 변호사 (이하 “심”) :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재홍 변호사 (이하 “최”): 예. 민변 환경보건위 위원장을 2016년도부터 맡고 있고요. 최재홍 변호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심 : 변호사, 내지 환경문제에 관해 일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최 :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산에 가는 거 이런 거 좋아했는데, 학생 신분이라서 많이 자유롭진 않았고, 대학교에 와서 산에 자주 다녔죠. 북한산 등반부터 시작해서 중앙도서관에 있는 ‘월간 산’같은 잡지들을 혼자 보면서 산에 대해서 공부하고 또 올라가곤 했어요. 공부하다 보면,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개발에 의해서 산이 파괴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생기게 되지요. 선배들에게 ‘노동운동으로 인한 사회 개혁과 변화에 한계는 있지 않겠냐, 환경 문제에 대한 운동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가장 유효적절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가, ‘이 회색분자 새끼’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법대이긴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직접 계기는 있어요. 93년도 12월 24일 날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니까, 혼자 치악산을 갔어요. 치악산 비로봉 정산에 가면 그 당시에는 공군 텐트가 하나 쳐져 있고, 인명구조대 대장분이 거기 혼자 계셨는데, 딱 산(山) 사람 이미지였어요. 머리도 길어서 묶고, 수염도 기르셨는데 본인이 담근 술을 주시면서 퉁소도 불러주셨죠. 한창 어린 마음에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멋있었어요. 그날 밤 그 형한테 그때 물어봤던 게..

 

심 : 바로 그냥 형이 되신 건가요.

최 : 예, 그렇게 부르는 거죠. 그 형님한테 “나는 이렇게 산이 좋은데 산이 가깝게 다가가려고 하면 얘들이 항상 도망가는 것 같고 어떻게 하면 산이랑 친해질 수 있냐”라고 물어봤어요. 그때 형님이 하셨던 얘기가 “동생이 산에서 산을 위해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동생이 법대라고 하니 산 밑에서 산을 위해서 일하다 보면 언젠가 산이 동생 옆에 있을 거다”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이왕 법대 왔으니 변호사가 되어서, 지역주민들을 잘 조직화해서 소송도 진행하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환경보존 이슈들을 만들어 나가 보자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가 1학년 말.

 

심 : 그 뒤로 시험 준비를 하신 건가요?

최 : 군대를 가게 되죠. 일병 휴가 나와서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환경법 교과서를 사서 가지고 갔습니다. 혼자 괜히 목차 정리 한번 해봤던 기억도 나요.

97년도에 제대를 했어요. 그리고 그 해 여름 방학에 공부를 하려고 남해 염불암이라는 암자에 들어갑니다. 그때 산 생활을 해 보았고, 98년도에는 본격적으로 시험준비를 위해 1년 휴학을 하고 들어갔어요. 거기에서 한겨레신문을 매일 받아 봤는데, 녹색법률센터를 설립한 변호사님의 인터뷰 기사가 실립니다. 미국에서 환경법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국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센터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이었지요. ‘어?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라고 알게 되었어요.

98년 6월에 하산한 후 학교 고시반에 들어갔고, 그 다음 해 1차 시험 보고 나서 녹색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을 합니다. 시험공부하는 중간 중간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처음 들어갔을 때 새만금 미래세대소송을 자료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환경 쪽에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해서 자원봉사를 하며 시험을 준비했는데 당연히 어렵죠. 안 되더라고요. 2000년에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재시에 떨어진 후 2003년에 다시 1차를 합격할 때까지 녹색연합에서 자원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활동방향을 계속 잡고 싶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3시까지만 하고 그만하려고 했었어요. 안 되면 환경단체 들어가서 활동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때 스물아홉인가, 그런데 2003년 3시 결과도 불합격했다는 걸 알고, 일단 전국일주를 하고 나서 4시를 볼지 말지 정하기로 하고. 여행을 갔습니다. 사실 여행 명분이었지요.

14박 15일 해서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 영월 들렀다가 동강 근처에서 트래킹하고 다시 기차 타고 동해시로, 그리고 울산이었나 부산이었나 여튼 울릉도에 들어가서 한 4박 5일 동안 울릉도 일주하고, 가야산 갔다가 해남저수지 쪽에 철새들이 100만 마리 이상 온다는 말을 듣고 그리고, 그다음에 변산, 꽂지 갔다가 서울로 올라왔지요. 그리고 운 좋게 다음 해에 합격이 되었어요.

 

심 : 연수원에 들어간 이후의 환경 관련 활동은 어떠셨나요.

최 : 제가 36기였는데, 연수원 환경법학회가 34기에서 끝이 났어요. 35기가 없었고 36기가 다시 이제 구성이 되려고 하는데, 저는 녹색연합 쪽에 자봉도 했었고, 학회 재건 모임에 참여를 했습니다. 녹색법률센터 쪽이랑 연계해서 그때도 전국에 있는 환경분쟁지역을 1년차 한번 방문했고, 2년차 때는 오사카나 도쿄 변호사회랑 연계해서 일본의 환경분쟁지역 답사와 관련 판례 연수를 기획해서 일본에 다녀왔어요.

 

심 : 이제 드디어 환경법을 파고드는 변호사가 되시는군요.

최 : 사실 처음에는 수료하고 나서 녹색법률센터 상근 변호사로 지원하려고 했었어요. 연수원 때도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좀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수료 직전에 확인해보고 진로가 막막하게 되었던 것이, 그 당시에는 환경운동연합 환경법률센터는 상근 변호사 체제로 구성이 돼 있었는데, 녹색연합 녹색법률센터 같은 경우에는 상근 변호사 체제는 없었고, 상근 변호사를 채용할 계획도 없다, 운영위원 체제로 계속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진로를 급하게 그때 알아본 결과, 신혼집이 목동 쪽이어서요, 남부법원 앞에 개인 변호사분이 고용을 뽑으셨는데 거기에 들어갔었죠.

모교에 이계수 교수님이라고 계신데,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어떤 기회에 “사회과학의 정점이 법학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회 이슈가 있을 때 운동을 통화여 변화의 기미가 보이더라도 종국에는 법률이라는 것을 통해서 제도화 되고 시스템이 정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을 제정하거나 해석하거나 지탱하는 일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드렸었나봐요. 나중에 그 대화가 인상 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수원 가기 전부터 녹색연합 자봉활동을 하고,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녹색법률센터활동과 연수원에 환경법학회 만들고 하는 것들을 보시고, 수료 후에 교수님이 학부 강의를 같이 하자고 하셔서 환경법 강의도 하게 됐습니다. 그게 변호사 1년차 때였어요.

고용으로 달에 70개의 사건을 처리하고, 강의도 하면서 정신없던 와중에, 녹색법률센터를 통해 안성에 신미산 골프장 사건에 대한 지원요청이 들어왔어요. 10여년 동안 천주교에서 반대운동을 했던 사항이었는데, 법률자문역할을 수행하여고, 다행히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경기도지사가 사업취소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골프장 사업이 좌절이 되었지요.

그 뒤에 또 안성에 스테이트월셔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지원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주민들도 모른 상태에서 공사가 시작이 됐고, 알고 보니까 실시계획인가처분이 이미 내려진 상황이었어요. 이론적으로는 행정처분이 있고 나서 90일이 지났으니 무효확인소송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우니까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요. 조리상 신청권을 행사해서 안성시장에게 직권취소를 요청을 하고, 이걸 거부하면 그럼 거부처분취소소송을 하자고 주민들, 단체와 함께 계획을 합니다. 안성시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시장한테 민원서류를 제출하지요. 이러이런 문제가 있으니 스테이트월셔에 대한 실시계획인가를 취소해 달라고요. 당연히 안성시장은 답변도 안 했고, 이론상 답변을 안 했으니까 거부로 간주해서 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수원지법 행정부의 사건 담당 재판장님도 골프장의 수용 문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보통 환경이나 주민에 피해가 있느냐가 쟁점이 되는데, 그러한 내용의 감정은 비용도 결과도 쉽지 않아서 애초부터 환경 피해가 아닌 사업의 필요성과 수용권 행사에 대한 재량일탈남용을 쟁점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민간기업의 영리 목적 사업에 수용권을 발동할 수 있냐 하는 점입니다. 열심히 소송을 진행했지만, 결국 거부처분취소소송이라는 절차상의 한계가 있었지요. 이후 수용재결처분이 내려진 후 수용재결취소소송도 했고, 땅이 수용당한 후 건물이 철거되면서 주민들이 계속 SOS를 치는데, 관련 가처분신청에도 주민들을 대리해서 들어갔지만, 전부 다 기각, 수용재결이 있는 이상 가처분을 막아낼 방법이 없더군요. 더 이상 방법이 없는데, 그날 할머님 한 분이 전화를 했어요. 저놈들이 다 집을 부순다고 어쩌면 좋냐고. 그런데 드릴 말이 없는 거죠. 그때 저도 이제 막 변호사 1년차 갓 넘은 상태였었고.

 

심 : 이 사건이 1년차 때 하신 것들이시라는..

최 : 예. 그 사건이 1년차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이제 가만히 있기가 뭐한 거예요. 사무실에 일은 다 끝내놓고 저녁에 혼자 차타고 마을 앞에까지 한번 가봤어요. 가서 그냥 마을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데, 그런데 약간 자괴감, 변호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주민들한테 뭐가 있을까, 정말 이 방법이 맞을까.

그 집은 노부부가 전원생활을 한다고 지었던 차타고 마을 언저리에 가면 보이는데 보이지 않더군요.

 

심 : 이미 철거가 끝난 겁니까?

최 : 예. 철거 끝난 거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물론 저는 그 사건을 하면서 실시계획인가 거부처분취소소송, 그 다음에 수용재결취소소송, 거기에 따른 헌법소원, 그리고 사업자가 제기한 건물 철거 및 토지인도가처분, 분묘굴이 및 토지인도가처분에 대한 바로 직접 대응, 그에 따른 항고 절차 또는 집행 단계에서 이의, 재항고 이런 걸 한번 싹 다 해봤어요.

그런데 이 사건들이 언론에 이게 나가면서 안산 대부도 쪽의 주민들이 사건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그분들은 실시계획인가가 나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드디어 실시계획인가를 직접 다툴 수 있는 사건이 온 거에요. 그 사건에서도 핵심적으로 주장한 것은, 실시계획인가 처분으로 인해서 국토계획법상에 의하면 사업시행자에게 수용권이 부여가 되는데, 어떻게 사업인정절차가 의제되는 실시계획인가를 하면서 수용과 관련된 부분을 공익사업이라고 판단해서 수용권을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지요. 지난 사건과 같은 재판장이셨어요. 그때 저희들이 조사한 바로는 대부도 골프장의 반경 50km 내에 거의 한 40개 정도의 골프장이 있었거든요. 결국 1심을 저희들이 이깁니다. 그날 사무실 앞에서 같이 축하파티 하면서 우리 사건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주민들과 같이 보고 그랬었죠.

그런데 고등법원 갔더니 원고들이 패소하였습니다. 패소이유는 골프장을 할 때 처음에 있는 처분이 도시관리계획처분입니다. 그런데 공익성에 대한 검토는 일개 인가권자인 안산시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관리계획권자인 경기도지사가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경기도지사가 판단한,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을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는 이상 안산시장이 이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겁니다.

그때 속으로 생각하기를, 도시관리계획 건만 들어와라, 그러면 반드시 깬다는 거였어요. 당시 전국 골프장 반대 피해대책위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는데, 얼마 뒤에 충주에서 도시관리계획 결정만 났던 사안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취소소송을 들어갔어요. 그래서 이것도 반경 한 50km 끊으면 한 40개 정도 골프장이 있어서, 동일한 이슈로 붙었는데 1심 패소, 항소심도 패소했어요. 재판 끝나고 내려오면서 충청북도 소송 수행자가 그런 얘기를, 자기들끼리 그런 얘기를 해요. “아씨, 젊은 사람이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하는지”..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죠.

그때 종중분들이랑 다시 대법원을 갈 것이냐 가지고 회의를 했어요. 해서 “지금까지 믿어줘서 감사하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다시 대법원 가서 꼭 한번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 여러분들도 느끼듯이 회원제 골프장 때문에 수용을 당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헌재 결정도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종중 분들이 “그래. 이미 수용도 됐는데 끝까지 한번 가보자”라고 했고, 대법원에서 그게 파기환송 됩니다. 그래서 청주고등법원 다시 내려가서 소송 수행자를 봤죠. 그때가 참 재밌었던 사안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계속 골프장 관련 소송을 이어왔고, 그러다보니 경향신문 같은 경우에 저승사자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랬었죠. 골프장 건으로 환경 소송쪽에 나름 자리를 잡게 되고, 그렇게 많이 외부에 알려지기도 했고, 녹색법률센터 내에서도 골프장 쪽으로 아예 특화가 돼버렸었기도 했었죠.

 

심 : 이게 몇 년 차 안 된 변호사가 다 커버할 수 있는 사건들이 아니잖아요.

최 : 당시 녹색법률센터에서 행정사건을 많이 안 했었어요. 선배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는데, 그땐 겁 없으니까 달려들었던 거죠. 그래도 선배 변호사님들의 다른 사건 소장이나 헌법소원신청서등이 도움이 되었어요, 막막한 가운데 등대같았죠

 

심 : 책 찾아보시면서 법률에 뭐라도 있으면 해 나가는 식으로..

최 : 그렇죠. 그냥 그렇게 부딪쳤었고, 당시 논점도 운 좋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수용 문제를 이슈화 했던 것이 그게 이제 유효했던 것 같고, 재판부는 그런 부분들을 캐치했고.

 

심 : 지금도 골프장 이슈가 많은가요? 법이 바뀌었는데..

최 : 아니요. 국토계획법만 안 될 뿐이고 다른 법으론 가능한 경유가 많아요. 헌재에서는 회원제 골프장 사건에서 판단한 것이고, 일반 대중제 골프장 같은 경우에는 공익성은 인정되는 것으로 보니까요. 한편, 회원제 골프장 같은 경우에는 어떤 법률에 의한다 하더라도 사실상 수용을 하기는 쉽지는 으니까, 이제 사업자들도 골프장 단일 시설로서는 잘 안 들어오고, 관광단지로 만들어서 오죠. 전체 관광단지로 하되 1단계 사업으로 골프장과 일단은 호텔 정도만 해놓습니다. 그 안에 보면 승마장, 산림욕장 다 하는데, 골프장 되고 나면 나머진 안 만들죠. 계속 분쟁이 진화해 가고 있습니다.

 

심 : 사건의 특성상 지방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계시지요?

최 : 사실 분쟁 지역 사진이야 위성사진이라든지 로드뷰를 통해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주민들과 같이 연대를 하려면 그분들한테 신뢰를 받아야 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현장을 봐야 주민들의 피해가 주관적 피해인지 객관적 피해일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장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 문제 이슈가 되는 현장이라는 곳들이 다 산 좋고 물 좋은 곳들이라 대중교통이 어렵죠. 그래서 제 지금 차가 2008년도에 뽑았던 차인데 이제 거의 한 34만 정도 탔어요. 다행히 한편으로는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재미에 갑니다.

 

심 : 지금 하시는 사건 중에서 공익사건 비율이 어떻게 되세요?

최 : 개인적으로 6 대 4 정도 비율을 맞추려고는 해요. 지금은 공익사건이 30% 그 정도인데, 명목상 부수적으로 제기된 것들도 있어서 실제론 더 적어요. 오색 삭도도 내일 선고입니다만 환경부장관 상대로 국립공원 계획변경처분취소소송이 메인 소송인 것이고, 지금 이건 부수적으로 문화재청장이 현상변경허가에 관한 것인데 실질적으로 심리가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숫자만 가지고 말할 수는 없고요. 여튼 공익사건 비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 : 제 동기인 친구의 궁금증이기도 한데, 자기는 어떻게 환경법을 배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지금 맨날 이혼만 하고 있다는 거죠. 아까 변호사님께선 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변호사 자격 갖추기 전부터 이미 환경 이슈에 가까이 계셨기 때문에 자연스러우셨던 것 같고요. 막연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변호사에게는 환경법이라는 분야에의 접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최 : 전문성이라는 게 참 설명하기 어렵지요. 저는 처음부터 운 좋게 환경법 강의를 학부에서 진행을 했고, 로스쿨이 생기면서는 또 환경법 특강들을 계속 하다 보니 강의안도 만들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환경법 자체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긴 한데요. 요즘엔, 환경법도 다 분야별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법률별로. 혹은 매체별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대기면 대기, 수질이면 수질, 아니면 폐기물이면 폐기물, 토양이면 토양 이렇게 다 나뉘고 있고, 소음, 진동, 악취도 다 이제 개별적인 것들이 있죠. 그래서 본인이 해당 법률을 볼 수도 있습니다만, 강의를 한다거나 토론회를 한다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 다양한 이슈를 아우르긴 쉽지 않아요.

결국에는 해당 분야의 활동, 특히 단체들과 결합한 활동이 중요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잘 모르는데 토론회를 나가야 되는 상황이 생기고, 그러면 토론회를 나가려고 하다 보면 보기 싫어도 법을 봐야 되고 논문들을 볼 수밖에 없게 되다 보니까 그렇게 조금씩 전문성이 쌓여지는 것이겠지요. 또 그런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되다 보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자꾸 사람들이 그 이슈가 나오면 저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유사한 분쟁이 사건으로 연락이 오니까 직접 송무를 하게 되고, 이렇게 계속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건 비단 환경 분야만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공통되는 방법이겠지요. 관련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이 전문성과 더불어 영업력을 갖추는 데에 제일 바람직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심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 아니면 환경보건위 홍보라든지.

최 : 그게 있는 것 같아요. 한분이 같이 사업을 하는데 본인 몸이 안 좋아가지고 그 사업에서 빠지겠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같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이 연대를 하는 입장에서는 상호 간에 신뢰랑 배려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몸이 아파서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그걸 굉장히 어렵게 말하는 것도 사실 하다 보면 그런 말도 못하고 어느 순간 열외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또 그러다 보니까 다시 들어오기도 애매한 경우도 있고 한데, 제가 그때 그분한테 그 얘기를 드렸어요. 같이 하는 것은 상호 신뢰와 배려이기 때문에 몸 추스르고, 다만 이 채팅방에서 나가지는 말고 간혹 이제 어떻게 하는지만 보고 있다가 다시 좋아지면 언제든 돌아오시라고.

민변에서도 그런 게 제법 있을 것 같아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업무량은 더 많아지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지쳐서 놔버리고 싶은 때도 있고, 뭔가 하고 싶었지만 막상 보니까 잘 몰라서 쭈뼛쭈뼛 회의만 참가했는데 어느 순간 내 역할이 없는 것 같아서 조용히 빠지는 경우도 있고.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같은 울타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격식이라든지 미안함, 그런 것 없이 동지적 관점에서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기다리고 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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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0/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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