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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사회주의’ 중간발표, 많은 성과를 얻으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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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사회주의’ 중간발표, 많은 성과를 얻으며 마무리

익명 (미확인) | 월, 2017/12/04- 19:01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11월 30일 신촌 히브루스에서 ‘포스트 사회주의 –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학술 발표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다른백년에서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진행된 사회주의 실험을 평가하고, 이를 기초로 향후 전개될 포스트 사회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탐색을 목표로 관련 연구사업을 6개월 여의 기간 동안 진행하였습니다.

   본 발표회는 기간에 진행된 ‘포스트 사회주의’ 연구사업의 최종 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보고서의 최종점검 및 대중적 검증을 목표로 기획되었습니다. 발표회는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성공회대 교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구갑우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다른백년 연구기획의원)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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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러시아 혁명 이후 진행된 100년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간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문제 삼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으며,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사회주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본 발표는 현실사회주의를 대표했던 러시아, 중국, 쿠바, 베트남, 북한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국민대 전재원 교수(국민대)는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체제전환’을 주제로 러시아(구 소련) 사회주의에 대해 발표하였습니다. 정재원 교수는 과거 구소련 체제의 붕괴요인을 중앙계획경제의 비효율성과 생산자 직접 민주주의의 실패에서 찾으면서,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사회는 급속하게 주변부 자본주의화 하면서, 신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두번째 주제인 ‘중국사회주의의 역사적 전개: 소련 모델, 현실, 제체전환’을 발표한 박철현 교수(국민대)는 중국 사회주의가 초기에 소련모델을 수용하면서 시작하였지만, 서서히 중국적 현실에 맞는 ‘중국식 사회주의로 발전해 나갔다고 한다. 중국 사회주의는 소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분권적 성격이 매우 강했는데, 이는 중국사회가 처한 역사적, 물적 조건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적 성격이 중국 사회주의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하였다.

   세번째 발표는 ‘제3세계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소고: 쿠바사회주의를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정이나 교수(부산외대)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이나 교수는 쿠바 사회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보건의료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며서, 쿠바 사회주의가 이룩한 보건의료체제의 위대한 성과를 소개하였습니다. 쿠바 사회주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운동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네번째 발표는 ‘베트남의 사회주의와 탈사회주의’를 제목으로 이한우교수(서강대)가 진행하였습니다. 이한우 교수는 현재 베트남 경제에서 국유경제부문이 GDP 대비 30%까지 쪼그라들었으며, 이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민족주의 운동과 통일과정에서 획득한 정당성에 필연적으로 위기가 도래할 것이며, 이는 엘리트 중심의 베트남 사회주의 체제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사회주의의 변화: 이데올로기와 사회사회구조’를 제목으로 정영철 교수(서강대)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영철 교수는 발표문에서 북한의 사회주의가 ‘주체’사회주의이며, 주체사회주의는 외적으로는 주체사상을 앞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실리주의적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공산주의를 먼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체제라는 인식하에 실리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향후 북한사회가 더욱 개방적인 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발표회에는 50여명이 플로워를 메우며 발표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발표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여전히 의미 있는 성찰과 고찰의 주제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포스트 사회주의’ 보고서에 세미나에서 논의되었던 제안들을 반영하고 보완하여 최종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겠다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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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에서 현재 한국산업구조의 근육질적 경직성을 지적하고 격변하는 외부환경에 응동할 수 있는 유연한 연성구조로 전환하여 급작스런 실패와 외부적 충격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였다.

경직성과 더불어 한국경제가 지닌 심각한 위험요소는 주요재벌 그룹에 지나치게 편중되거나 의존되여 있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봉건영주처럼 군림하는 한국경제의 위험한 현실은 2015년 기준으로 상장된 싯가총액의 약 45%를 10대 재벌이 점하고 있고, 특히 삼성전자과 현대자동차 계열 양대그룹이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30%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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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그 중에서도 삼성, 현대 등 일부 재벌의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자료: 홍종학 경제정책연구소)

삼성, 현대가 무너진다면?

우리가 매일 북한문제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지마는 오로지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남한 경제규모의 5%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북한경제수준이다. 자연히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그룹이 실패하여 파산될 경우 한국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파장과 부담은 북한붕괴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판단된다.

사정이 이렇게 중차대함에도 불구하고 양대그룹의 주요 결정이 소수의 총수가족들에 의해 족벌경영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대한민국 5천만 국민들의 운명을 이씨와 정씨 가문들이 사실상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이 이런 모습의 한국을 ‘기업(영주)국가’로 명명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며, 이러한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는 박근혜정부 관료들은 이들 재벌가문의 마름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정부가 북한의 붕괴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듯이, 당연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룹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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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가 망하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한국경제가 통째로 망하진 않아도 워낙 이들 기업의 비중이 커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들 기업의 혁신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ilyoeconom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58)

혹자는 필자가 일어나지도 일을 침소봉대 과장하여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킨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난이 맞기를 바라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불과 수 년전까지 핸드폰 분야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의 몰락과 현재 선진국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창조적 단절적 격변과정을 지켜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현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보다 책임있는 자세다.

더구나 마른날에 폭우와 장마를 대비하는 것이 위기관리대책의 기본원칙이다. 요즘처럼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삼성은 안전한가

국가 또는 정권이 해야 할 가장 주요한 책무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들은, 오로지 정권유지를 위해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여 사드배치 등 온갖 분란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1)기후변화에 따른 전력 및 에너지정책, 2)자연재난 방지대책, 3)외생 바이러스가 가져올 대규모 질병위험에 대한 검역과 의료체계, 그리고 4)불안정한 재벌 독과점에서 오는 금융과 산업적 위기(contingency)을 예측하여 사전적 예방적 점진적으로 위기요소들을 분산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의 박근혜 정권은 무능한 정도를 넘어서 한국의 미래를 자해하는 재앙적 집단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를 들여다 보자. 2015년 기준으로 계열사를 제외한 전자사업 분야만 연 200조 매출에 25조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는 세계적 규모의 매머드급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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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포트폴리오는 거의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색가전,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이 경기변동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상호 완충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삼성도 극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안심할 수 만은 없다.

사업분야도 백색가전, 반도체와 액정판넬, 모바일통신기기(IM)와 관련전자 부품 등으로 4-5개 영역으로 다변화되여 있고, 생산거점과 수요시장도 국내외를 포함하여 지역별 권역별로 균형적으로 잘 배치되여 있다. 겉으로 보면 난공불락의 요새로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간판 기업임에 틀림없다.

가전분야

사업분야별로 내용을 개략적으로 들여다보면, LG와 함께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가전분야는 다양한 제품과 디자인의 구성으로 당분간 위험요소가 없어 보인다. 가전제품 수명과 시장의 수요특성상 단기적이기보다는 3-5년 단위로 중기적 변동과 충격이 예상되며 핵심은 일상적인 기술개발과 혁신역량을 유지하는데 달려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절 절대 강자이였던 일본의 소니와 유럽의 필립스 등이 지금은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장기적 몰락은 삼성과 LG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디지털시대의 쌀이라고 할 반도체와 액정판넬은 천문학적 투자규모와 세계일류수준의 생산기술을 강력한 보호막으로 내세워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아마도 한나라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독점할 수 있는 한국적 재벌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거대한 자국 수요를 기반으로 삼성을 능가할 수 대규모 투자를 암시하고 있고, 일본과 대만이 손잡고 기술과 규모의 양면에서 한국업체들을 항상적으로 협공하고 있다. 액정판넬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비메모리 반도체분야에서 경쟁적 입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즐겼던 위치에서, 조만간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시장점유률 방어에 급급한 형세로 바뀔 수 있음을 예고한다.

조선분야에서 경험했듯이, 잘못되면 천문학적으로 이루어진 고정자산에서 발생하는 과다한 관리비용이 삼성전자라는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전반에 역풍을 불러올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할 것이다.

모바일과 부품분야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분야는 역시 모바일통신기기와 부품사업 분야이다. 삼성내 부품사업 분야의 수요는 대부분 삼성전자 자체수요이다. 따라서 모체인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부품사업 분야는 대부분의 판로를 상실하고 파산할 수 밖에 없다.

협력사들의 기술을 편법으로 갈취하는 등 많은 전문기업들의 희생위에 자신들만의 계열자회사를 일방적으로 밀어주며 성장한 재벌들이 국민경제에 매우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지점이다. 잘 나갈 때는 사업수익을 사적형태로 독점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계열전체가 동시에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공적 영역인 금융과 재정 등이 동원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여 국민경제의 또 다른 폐해와 부담을 요구하게 된다.

IM분야는 항상 창조적 기술이 급작스레 단절적으로 적용되는 영역이다. 1년 미만 단위의 초단타 혁신으로 기업의 생사존망이 결정되는 항상적 전투지역이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 선방하고 있는 삼성의 IM사업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노키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때 핀란드 경제의 4-5% 비중을 차지했던 한 기업체의 파산으로 혁신과 교육의 일등국가로 알려져 있는 핀란드가 지금까지 수년간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안심할 수 없어

현대자동차그룹은 규모면에서는 삼성전자의 절반도 안되지만 수천개 부품들의 조립으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화학 등 여러 산업분야의 종합적 협력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 산업의 특징을 감안하면, 제조업분야에 대한 파급력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오히려 삼성전자그룹보다도 크고 중요한 기업군이다.

IMF 위기 당시, 전세계 자동차산업 환경속에서는 BIG 3 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발표한 보스톤 컨설팅의 예측보고서(미국의 기업사냥꾼을 위해서 준비된)를 비웃기나 하듯이 세계시장의 강자로 우뚝 선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국 국민의 자존심이다.

현대차의 고전을 예상했던 필자에게도 현대차의 선전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러나 현하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술혁신과 사업모델의 변화는 조만간 자동차산업 분야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미국의 테슬라 사를 필두로 전기자동차가 실제로 양산되여 도로를 달리고 있는 현실은 지난 백여 간 자동차 동력기술의 중심였던 내연기관이 전동기 또는 Fuel-Cell(수소에너지)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산업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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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동차산업은 전기차로 넘어간다는 전망이 많다. 현대차도 이에 대비하고 있지만, 과연 경쟁에서 살아남을지 불확실성이 크다. 사진은 테슬라의 전기차 모습. (사진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10710594973854)

새로운 동력기술에 대해서 한국의 산업계는 별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설령 현대자동차 측에서 R&D 수준의 차량을 개발한다 해도 이는 주요 기능품들을 외국의 선진기술업체에서 도입하여 껍데기만 씌운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미래의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무인운전차량이 시장에 보급되고 확산되기 시작하면, 우버 등이 시작한 콜택시 사업에 더하여 미국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한 차량공유시스템인 집카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공유 자동차

집카의 개념은 자신의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도 대규모의 공유시스템을 통하여 필요한 시점에 차량을 요청하면 언제라도 요청지점 근처로 편하고 신속히 차량이 배치되고, 사용한 후엔 하차지점을 통보하고 주차시키면 다음 사용자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차량의 공유네트워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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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여러 명이 필요에 따라 공유하는 시대도 성큼 다가왔다. 사진은 공유차 비즈니스 모델인 집카. (사진 출처: http://www.wikitree.co.kr/main/ann_ring.php?id=48788&alid=67194)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차량의 운전점유시간을 생각해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대부분 하루 일과 중 차량운전시간은 2-3시간 뿐이다. 출퇴근을 공공교통기관을 이용한다면 이 시간은 더욱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콜택시와 차량공유시스템이 보편화되면 자동차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필요가 격감할 것이다.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이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이제부터 양적 생산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미래의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에서는 격변하는 기술 혁신의 경쟁을, 다른 한편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통째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어 나가야 한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속한 단일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계 금속 전기 전자 화학분야 등 한국산업 전체를 재구성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동차회사들은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에서 생산을 넘어서 공유자동차중심의 서비스 네트워크와 정비기술과 금융제공을 혼합한 새로운 사업모델로 변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예고편이기도 하다. 동시에 재료 및 부품 생산과 수송중심으로 편재되여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와 협력사들도 단절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전문기업을 수탈하며 독점이익을 형성한 재벌계열의 갇혀있는 구조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자동차운용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용해야하는 인프라와 규칙이 선결되어야 하며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급작스런 변화가 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점차적인 실행과정에 충분한 적응과 변신의 시간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두 기업의 혁신 이야기: 코닥필름과 후지필름

위에서 필자는 한국산업이 가지고 있는 재벌중심의 경직된 구조를 유연한 연성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와 독과점체계를 벗어나 협력과 공유를 중심으로 수많은 전문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산업클러스터적 조건과 환경조성이 시급히 필요한 배경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시각으로 국민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룹의 사업내용을 개략적으로 분석하여 보았다.

이제는 한물이 간 필름산업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던 미국의 코닥과 일본의 후지필름의 경험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참조할 만한 내용을 살펴 보려한다.

이들 기업들의 사례는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면 모두가 대충 알고 있는 내용으로, 후지필름사는 혁신과 사업모델의 변신에 크게 성공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는 반면에 코닥은 완전히 몰락한 퇴물로 취급되고 있다. 기업단위로 보면 위의 이야기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별기업이 아닌 지역경제라는 다른 시각으로 코닥의 새로운 역할과 지역사회에 보여준 남다른 기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지필름의 도약

필름이미지 산업은 1990년을 정점으로 디지털 카메라가 대량 보급되면서 세계시장규모가 급격히 축소하여 2000년경에는 매출규모가 1/10 이하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필름산업분야의 3대 업체로 불리웠던 독일의 아그파 필름이 2005년에 진즉 파산하고, 2012년에는 한때 세계시장의 70%까지 석권했던 코닥사가 재무불능상태를 선언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서 전설의 시대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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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코닥사 규모의 10% 수준에 머물러 줄곧 ‘코닥타도’를 외쳐 왔던 후지필름이 2003년에 평직원으로 입사하여 30년 넘게 자사 근무를 했던 시케시타 고모리를 회장으로 지명하고 회사전략을 ‘탈필름산업’으로 전환하면서 혁신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당시 회사 매출의 57%를 점했던 이미지 솔루션 사업부( 필름과 카메라 등 광학기기 )를 대폭 축소하고 15,000명 종업원 중 이미지솔루션 사업분야 직원을 중심으로 5000여명 해고 하는 등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필름산업을 통해 획득한 화학공정과 약품 그리고 광학 및 영상처리 기술 등을 기반으로 새롭게 정보솔루션( 화장품,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사업부를 대폭 확충해 간다. 이 과정에서 1962년 합자로 출발했던 후지제록스(다큐멘트솔루션 사업부로 매출의 40%를 담당했다)가 매우 중요한 사업적 재무적 기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이 정체되거나 축소되고 있던 2000년대 10여년 동안 후지필름은 40여개의 관련업체들을 인수합병하면서 2013년에는 매출규모가 두배로 늘어난 2.2조엔 그리고 종업원 8만명의 규모로 성장한다. 특히 적자기업인 도야마 제약회사를 인수하여 에볼라 치료제인 ‘아비간’을 개발하여 양산체제에 들어가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

2013년 기준으로 한 매출 2.2조엔의 구성에는 카메라중심의 이미지솔루션 사업부 비중이 13%로 축소되고 화장품과 의료중심의 정보솔루션 사업부가 급속히 확대되여 41%선을 차지하며 기존의 제록스사업부가 역시 45%선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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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후지 필름의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고모리 시게타카. 고모리는 필름 매출 하락을 상쇄시키기 위해 제약, 화장품을 자회사로 설립하는 등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세계를 주름잡던 필름산업의 주요 업체들이 파산하거나 몰락하고 일본경제가 축소일로의 어려운 과정속에 있었음에도 암울했던 10여년 기간에 매출을 두배 이상 신장시킨 놀라운 성과를 낸 것이다. 일본 경영계에서 고모리씨를 경단련(한국경총에 준하는) 회장으로 모시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에는 전문경영자의 탁월한 예측능력(risk-hedging), 후지필름사의 기본에 착실한 기술력, 다중적 기업을 지향하는 일상적인 혁신프로세스(open innovation hub 운용), 개방적인 기업문화와 선진적인 경영기법에 더하여 이해관계중심( 사회, 환경, 고객, 주주, 파트너 및 종업원의 균형적 배려, www.fujifilm.com 참조)의 기업철학도 큰 몫을 했다.

사실 재무지표를 보면 별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영업이익율 8-10%, 자본이익율 ROE 4-5 % 등 일반우수기업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반면에 R&D 투자액에 영업이익에 접근하는 6-7% 선을 계속 유지하며 지속적인 혁신과 인수합병을 추구하는 점, 회장 자신이 8만명 종업원의 한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하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기업문화, 그리고 변하는 환경과 시장조건에 사전적으로 철저하게 대비하는 전문경영능력 등이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산업구조 조정기에 들어선 한국업체들이 당연히 본받고 깊이 연구할만한 내용이다.

코닥필름의 몰락

반면에 1881년 조지 이스트만이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설립된 코닥사는 2012년 법정관리신청에 들어갔고 한때 전세계에 종업원이 15만명을 거느렸던 대기업이 2015년 현재 종업원이 천명 이하로 추정되는 규모로 축소 몰락하였다. 한때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던 브랜드로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코닥 본사의 건물을 해체하는데 불과 18초가 걸렸다는 비아냥을 듣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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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의 몰락에 대해서는 많은 경영학 전문가들의 연구발표가 있어 왔다. 사실인즉 1975년에 세계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업체가 다름아닌 코닥사 자신이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핵심적인 몰락의 가장 큰 이유는 존속기술과 현재이익에 집착한 기득권의 함정(active inertia)이였다는 것이 중론이고, 중국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한 계약을 체결했다가 입은 상당한 손실, 회사의 내용에 익숙지 않은 연봉거액의 외부경영전문가 영입에 따른 잇따른 실책 – 후지필름은 자사에 30년 이상 근무경험이 있는 고모리씨를 회장으로 지명한 사실과 비교해 볼 것- 그리고 파괴적 혁신을 시도한 사업모델이 연속적으로 실패한 점 등을 이야기한다.

망할 때는 코닥처럼 망해라

필자가 전달하고 싶은 주제는 코닥이라는 전설적 기업의 흥망사가 아니라 코닥사가 위치해 있던 ‘로체스터’지역이 코닥몰락 이후에 보여준 남다른 모습에 관한 것이다.

대규모 제조업체가 몰락한 도시는 rust-belt 라 불리면서 황폐해져가는 것이 미국사회의 상식이였다.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 동부의 산업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아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한때는 6만명 정도가 코닥본사에 근무했다가 이젠 천명도 못미치게 된 ‘로체스터’지역도 당연히 rust-belt 로 전락하리라 쉽게 예상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닥이 몰락한지 십 여년이 지난 2015년 현재 ‘로체스터’의 경제지표가 미국내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우수한 지역에 속하며, 오히려 새롭게 9만여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실업률도 미국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못된 대기업의 몰락, 大馬必死가 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지역경제를 부활시키고 활성화시킨다는 轉禍爲福의 매우 소중한 사례이다. 어떤 요인들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 거제와 울산 등 현안 지역를 지닌 우리의 뜨거운 관심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몇몇 신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이 주제를 단편적으로 다루어 소개한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내용인즉 매우 상식적 수준으로 지역사회내 시민단체와 대학과 정부기관이 효과적으로 연대하여 대응했다는 정도로 소개되여 있다.

필자는 이 주제를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내용을 넘어서서 보다 깊이 파고들고 연구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 나름대로 조사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향후 추가적인 연구에 도움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1, NBN( Neiighbors Building Neighborhoods) 프로그램.

로체스터 시당국이 제안하고 추진한 내용으로 로체스터 지역을 10개 구역으로 세분하여 구역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참여하에 구역경제의 재건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도록 한다는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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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여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과정에서 행정당국은 직접적 개입은 자제하고 다만 프로그램을 촉진하고 필요한 자원과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구역내에 있는 기업과 학교(로체스터지역에는 20개가 넘는 직업대학이 존재) 및 전문단체들과는 협력적 파트너쉽을 구축하도록 유도했다.

처음에는 참여가 저조하고 실적도 미약하였으나 시장 등 지자체 관리들의 열정적 설득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점차 활성화가 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매우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지역분권과 자치의 중요성을 엿보게 한다.

2.EBP ( Eastman Business Park) 프로그램.

코닥은 그냥 몰락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회적 첵임을 회피하지 않았고, 뉴욕주정부와 협력하여 코닥본사가 소유했던 1,200 에이커(백오십만평)의 대지와 건물을 재개발하여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EBP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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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은 과거 공장 부지를 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공간을 내놓았다. 사진은 EBP 프로그램에 따라 활용된 옛 코닥공장의 모습.

코닥이 제공하는 대지와 건물위에 뉴욕 주정부가 5천만불을 제공하여 창업 start-up program을 지원하였고 이후 발생하는 추가비용은 주정부와 코닥이 공동부담하는 원칙을 세웠다.

3년이 지난 2015년 현재 55개 기업이 입주하여 6,500여명을 일하고 있으며 활발한 창업과 혁신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대부분 창업주와 해당 종업원은 기존의 코닥과 제록스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와 관리자들로 채워졌다고 한다.

EBP 프로그램은 구조조정하여 잔류된 코닥사의 주요사업으로 start-up 기업을 상담하고 창업을 도우며 구매와 물류 등을 지원 관리해 주는 역할은 하고 있다. 크게 축소되기는 했지만 코닥사 자신도 130여년 역사가 남긴 다양한 고급기술에 기반한 수천종의 특허권을 중심으로 고수익의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EBP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기업이 창업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활동들이 승수적으로 로체스터 지역의 경제활성화에 크게 공헌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창업주 조지 이스트만의 발자취

1881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코닥사를 창립한 조지 이스트만(1855-1932)은 미국기업사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의 하나로 기록되여 있다. 대단히 인간미가 넘치고 개방적 성격으로 회사의 이익을 배분하는 임금배당제를 실시하였고, 실제로 자신 지분의 1/3을 직접 직원들에게 돌려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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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필름의 창업자인 조지 이스트만(사진 왼쪽)이 발명왕 에디슨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당시 미국내에서 가장 앞선 복리후생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기업경영을 통해서 자신의 사회철학을 실천하는 계기로 삼았다 한다. 마치 영국의 로버트 오웬을 연상시킨다.

매년 자신의 연봉에 80% 정도를 털어서 로체스터 기계연구소와 비영리기관 등에 지원하였으며, 특히 MIT를 높이 평가하여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거액인 2천만불을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기부하였다. 지금도 MIT 교가에는 가명 스미스라는 이름이 언급돼 있다 한다.

또한 지역내 치과의료시설을 지원하고, 이스트만 음악학원 등을 설립하여 현재의 로체스터 지역이 미국내 교육과 의료와 문화의 유력 중심지가 되는 토대가 되었다 한다.

기업 경영중에도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분명히 인지하여 유능한 엔지니어들를 육성하고 지원하는데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한때 6만명을 고용한 규모였으니, 코닥을 거친 수많은 전문기술인과 관리자들 그리고 그들 후손들이 훌륭한 인적기반이 되여 로체스터 지역을 미국전역이 부러워하는 창업과 혁신의 중심지로 부활시켰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지 이스만은 77세가 되던 1932년 어느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는 점이다. 

후지필름이라는 기업단위의 혁신이야기와 코닥의 전설적 역사를 기반으로 한 로체스터 지역의 성공담을 통하여 위기국면으로 진입하는 한국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금, 2016/08/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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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북동부 지역의 폭우 피해 소식이 심상치 않다. 이번 수해는 베트남 최대 탄광 지역인 꽝닌성 일대에 집중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일주일 가까이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에 있던 독성물질이 범람하면서 주민 안전은 물론 세계자연유산인 하롱베이까지 위협에 처하게 됐다.

 

탄광 운영사인 베트남 국유 탄광기업(Vinacomin)에 따르면 홍수에 떠내려간 석탄의 양은 수십만 톤에 달한다. 현지 언론은 석탄 찌꺼기에 범벅이 된 무릎 깊이의 진흙탕을 헤치며 여성과 아이들이 대피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재해 속에서도 일부 주민들이 위험 경고를 무릅쓴 채 석탄을 건져내느라 안간힘을 쏟는 모습도 포착됐다.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진 하롱베이 인근엔 5,736헥타르에 달하는 노천 탄광과 세 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다. 이 일대 탄광은 베트남 석탄 생산량의 약 75%를 공급한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침수로 인해 탄광 가동이 전면 중단됐고, 8만 명이 일손을 놓아야 했다. 화력발전소에 공급되는 석탄 생산과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전력 부족을 둘러싼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더 심각한 우려는 석탄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빗물에 휩쓸려 유입되면서 광범위한 건강과 환경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국제 환경단체 워터키퍼 얼라이언스(Waterkeeper Alliacne)는 “베트남 정부의 재해 구호팀이 배치되면서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피해 규모와 확산 속도는 매우 우려될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천 탄광의 범람으로 중금속물질을 비롯한 각종 독성물질이 유출됐을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과거 조사 결과 이 지역 토양에서 비소, 카드뮴, 납을 포함한 유해물질이 검출됐고, 이런 유해물질이 홍수에 의해 확산되는 일이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와 같은 기존 사례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폭우 피해 지역 지도. 세계자연유산 하롱베이 주변에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자료=워터키퍼 얼라이언스

 

하롱베이 주변 석탄화력발전소 중 하나인 몽즈엉 화력발전소. 이 사업은 현대건설을 비롯한 한국기업이 참여했다.

 

이와 관련해 아론 번스타인 하버드 의대 소아과 교수는 “심각한 수해로 인한 정식적 외상과 수인성 질병 또는 사망과 같은 일반적인 직접 피해 외에 꽝닌 일대의 홍수는 독성물질에 특히 취약한 아이의 발달 신경계에 영구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단체는 석탄 오염에 따른 하롱베이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와 유네스코 그리고 국제사회가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베트남 폭우 사태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서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경고가 나오게 된 온 대목이다. 이런 재난은 안전과 환경보호 조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기업에 의해 발생하지만, 피해는 사회와 생태계에 고스란히 전가되어 왔다. 이번에도, 석탄 산업계가 일으킨 끔찍한 피해를 무고한 주민과 자연 생태계가 뒤집어쓰게 됐다.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가 인접한 하천은 하롱베이로 직접 유입된다. 하롱베이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서 수천 개의 기암괴석과 동굴 그리고 수상마을을 보러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베트남 하롱베이 외에도 호주의 그레이트베리어리프, 방글라데시의 순다르반은 천혜의 물 생태계에 기반한 세계자연유산인 동시에 석탄 산업계에 의해 위협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석탄의 유해성을 염두에 두면 생태적으로 민감하고 식수 공급에 중요한 지역에 석탄 개발 사업을 허용해선 안 된다.

 

폭우와 홍수로 인해 꽝닌성 캄파시에 있는 최대 탄광 지역에서 석탄이 바다로 유입됐다. 사진=Vietnamnet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선 해안과 하천 주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늘릴 계획을 추진 중이다. 게다가 탄광 기업은 재해 수습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업 재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폭우 사태에서 나타났듯 석탄 화력발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기후변화로 인한 전력 공급의 불안정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 대부분 해안가에 입지한 석탄화력발전소는 기후변화에 의해 더 심각해지는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석탄은 기후변화의 최대 주범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7%를차지한다. 극심한 폭풍과 이상기후는 점점 더 빈번해지는 가운데, 석탄재 폐기물 처리장이 폭우에 견디도록 제대로 건설되지 않는다면 ‘시한폭탄’에 불과할 수 있다. 폭우가 시작되던 시점에 석탄을 싣고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다섯 척의 선박이 폭풍을 만나 침몰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 기업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시아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도 짚을 필요가 있다. 이번 재해 지역에 인접한 몽즈엉 석탄화력발전소는 포스코, 현대건설, 두산중공업이 참여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이 자금을 조달한 사업이다. 한국의 발전사와 건설업체들은 수출신용 지원을 통해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에 뛰어들어왔고, 대부분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이다. 세계가 위험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해나가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검은 황금’으로 이윤을 거두는 일에만 몰두해있다.

 

석탄 운송선 침몰

 

7월29일 베트남에서 출발해 중국으로 향하던 석탄 운송선이 침몰했다. 중국 남부 치샤항 부근에서 5척의 선박이 침몰했고 한 척은 좌초됐다. 선박은 계절풍을 맞딱뜨려 강풍과 5미터 이상의 파고에 휩쓸렸다고 보도됐다. 중국은 해상 당국은 6척으로부터 48명의 선원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치샤항은 베트남에서 중국 광시성으로 석탄, 광물, 해산물을 수입하는 주요 통로로 베트남 선박이 매일 운항하는 곳이다.

 
이지언
 
이 글은 <레디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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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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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월의 함성, 다시 한번 그 유월의 어깨동무로

  file_20170514225612   6월 10일은 민주항쟁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6월 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6월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4·13 호헌 조치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embedyt] https://www.youtube.com/watch?v=N5RVpLhNX1k[/embedyt]

  2017년 6월 9일(금요일) 저녁 6시부터 이한열 열사 30주기 기념 문화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립니다. 1987년 당시 직격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30주기를 맞아2017년 6월 9일. 시청광장에서 이한열 장례행렬을 재연합니다.
[6월 9일(금)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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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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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최규석의 100℃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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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은 왜 일어났을까요?
 
신군부의 12.12쿠데타
1979년 10·26 사건으로 17년간 독재정치를 펼치던 제4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 최규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서울의 봄)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전두환 등을 비롯한 신군부(하나회)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를 로봇처럼 조종했고,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집권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시위 규모는 커졌고, 시위 참가자들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였다.(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現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었던 박종운을 잡기위해 연행한 것이였다. 취조실에 연행해간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11시 45분 경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라고 사망원인을 발표하였다. 2월 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및 도심 시위가 열렸고, 이어 3월 3일에는 "박종철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과 함께 또 다른 시위가 열렸다. 이후 4월 2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130여 명이 건국대학교 사태 등 시국관련 구속학생의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정부의 개헌논의 유보(4.13 호헌조치)
하지만, 전두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1987년 4월 13일, 그는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 개헌(改憲)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내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자유 경선의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없이 실시할 수 있게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또 민정당의 후임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안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당헌 절차와 민주 방식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호헌 조치'라는 그 이름대로 현행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얻을 것이라 믿었으나, 기대는커녕 오히려 반발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이튿날인 4월 14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들이, 호헌 조치를 비판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경찰 최루탄에 의한 이한열 사망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광주항쟁 7주년 미사에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되었음을 폭로하였다. 이에 제5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옳지 못함에 크게 분노하였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자주 일어났다. 이후 5월 23일 "박종철 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6월 10일에 규탄대회를 갖기로 결정하였다(그날은 노태우가 민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날이기도 하다). 전두환은 후계자로 국무총리 노신영을 지명했으나, 5월 26일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신영 국무총리를 경질하였다. 이후 이한기를 신임 총리로 교체하였다. 이튿날 전국의 재야지도자 2200여 명이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였고, 한국 기독교 장로회 향린교회에서 발기인 대회 를 열었고, "호헌 조치 철회 및 직선제개헌 공동쟁취 선언"을 발표하였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7월 5일 사망)을 입었다. (6월항쟁 홈페이지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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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6/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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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포스코 비자금 수사가 6개월째를 맞고 있다. 그 동안 검찰은 포스코그룹 전현직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 10여 명을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실패한 수사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사법처리에 실패했기 때문. 비자금 조성의 주범으로 지목된 정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번이나 기각됐고, 정 전 회장은 부르지도 못했다. 호가호위하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온 동양종합건설 배성로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역시 기각됐다. 수사가 이대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포스코 수사가 계속돼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먼저 지난 6년 간 포스코건설의 수의계약 목록을 <뉴스타파>가 분석한 결과다. 수의계약은 포스코와 협력업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구조적인 비리가 만들어지는 시작점이다. 두번째, 포스코의 브라질 공사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형사 소송 취재 결과다. 한 토목협력업체가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인데, 100억 원 가까운 공사대금이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이 협력업체는 이 자금이 포스코건설의 비자금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한다.

  • 1.포스코건설, 의문의 수의계약 106건
  • 2.포스코 브라질 공사에서 사라진 100억

1.포스코건설 의문의 수의계약 106건

검찰 수사에 따르면, 포스코는 협력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포스코가 직접 비자금을 만든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협력업체는 비자금을 조성해준 대가로 하청을 받아갔는데, 대부분 수의계약이었다. 수의계약은 포스코와 협력업체를 이어주는 좋은 연결고리이자 구조적인 비리가 만들어지는 시작점이었다.

<뉴스타파>는 포스코건설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발주한 3857건의 수의계약 목록 전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포스코건설 토목·플랜트·건축사업본부가 발주한 전체 수의계약 목록이다. 자료엔 수의계약 내용과 방법, 금액과 공사 기간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자료 내용 중 가장 눈에 띈 건 수의계약을 한 이유를 기재한 항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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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기업처럼, 포스코건설도 수의계약 관련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특허업체거나 독점업체, 성능이 보장된 거래처에 금액과 관계없이 수의계약을 줄 수 있다. 사회공헌 차원의 수의계약도 허용한다. 포스코측은 “수의계약의 첫번째 기준은 업무의 효율성”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입수한 수의계약 목록을 보면, 포스코건설이 수의계약을 주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았다. 예를 들어 ‘경영상 필요’나 ‘수주 기여’ 라고 적힌 것들이다. 이것은 대체 뭘 말하는 것일까. 포스코건설에 질의서를 보내 이 부분을 물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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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한 전직 포스코건설 임원에게서 의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경영상 필요’라고 적힌 수의계약은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수의계약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장애인 고용기업에 하청을 주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런 사례는 별로 없어요. 그냥 경영진의 지시에 따른 계약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특허기업이나 우수기업처럼 수의계약 사유가 명확한 경우가 아닐 때 계약 사유를 그렇게 적어요. 실무자는 왜 하청을 주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정리하면 ‘경영상 필요’에 따른 하청은 대부분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하청’이란 것이다. 뭔가 이유가 투명하지 않은 하청이란 의미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이런 사례는 얼마나 될까.

▲ 검찰에 출두하는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 검찰에 출두하는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2008년부터 6년간 포스코건설이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발주한 수의계약은 총 136건이었다. 금액으로는 7000억 원이 넘었다. 그 중엔 포스코플랜텍이나 포스코아이씨티 같은 관계사에 몰아준 일감도 30건이나 됐다. 나머지 106건은 30개 정도의 협력회사가 받아간 걸로 확인됐다.

흥미로운 건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하청을 받아간 회사들 중에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 의혹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이번 포스코 비자금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베트남에서 200억 원대 비자금을 만들어 원청인 포스코건설에 건넨 사실이 드러난 흥우산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포스코건설의 수의계약 목록을 분석한 결과 흥우산업은 총 5건, 금액으로는 100억 원이 넘는 수의계약을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받아갔다. 흥미로운 건 계약시점. 흥우산업이 국내에서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수의계약을 받아간 건 모두 베트남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던 2009년 직후였다. 비자금 조성이 수의계약의 대가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흥우산업이 수의계약을 따낸 공사는 주로 영흥화력발전, 포항신항, 새만금 신항만 토목공사 같은 관급공사였다.

흥우산업의 수의계약 목록 중엔 ‘수주 기여’라고 기재된 것도 여럿 있었다. 말그대로 원청인 포스코건설 사업을 도운 대가로 흥우산업이 수의계약을 받았다는 뜻이다. 비자금이 만들어진 새만금 방조제, 낙동강 사업 등에서 이런 내용이 발견됐다. 흥우산업은 2008년 세종시의 한 도로공사에서도 230억 원이 넘는 하청을 받아 갔는데, 이때 계약 사유도 ‘수주 기여’로 되어 있다. 흥우산업이 이 같이 ‘수주 기여’ 명목으로 수의계약을 받은 규모는 620억 원이 넘었다. 흥우산업이 포스코건설에 어떤 ‘수주 기여’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흥우산업의 지난 수주 실적을 보면, 이 회사가 그 동안 포스코건설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베트남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이후, 더 정확히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부터 포스코건설 하청 물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7년까지만 해도 흥우산업의 포스코건설 하청 실적은 미미했다. 2000~2007년까지 8년 간 따낸 게 총 11건으로 연간 1건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2008년부터 수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008년 6건, 2009년엔 5건을 수주했고, 2010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3년 간 총 18건의 하청을 받아냈다. 2008년 이전보다 최소 6배 수주량이 는 것이다. 수주 패턴도 눈에 띄게 바뀌었다. 2008년 이전에는 흥우산업의 본사가 있는 부산에서 주로 하청을 수주(11건 중 9건)했는데, 2008년 이후엔 수주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부산 회사가 일약 전국구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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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이동조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제이엔테크도 ‘경영상 필요’에 따른 수의계약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제이엔테크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총 12건, 114억원 가량의 기계설비 관련 수의계약을 포스코건설에서 따냈는데, 그 과정이 특이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포스코건설 협력회사가 된 제이엔테크는 같은 달과 다음달 2건(약 35억원)의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계약 이유는 모두 ‘경영상 필요’. 일단 이렇게 작은 공사를 수주한 제이엔테크는 이후 공사 진행 과정에 맞춰 연속적으로 같은 공사를 수주하며 매출을 늘렸다. 수의계약 목록에는 이것들이 모두 ‘연속 수의’라고 기재돼 있다. ‘경영상 필요’에 이은 ‘연속 수의’ 방식의 물량 가져가기 행태는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4월, <뉴스타파>는 제이엔테크의 매출이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급증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2007년 26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매출이 2008년엔 100억, 2010년 226억, 2013년 231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회사 규모가 10배 가량 커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변변한 공장도 없는 제이엔테크는 2011년부터는 베트남, 브라질 등 포스코건설의 해외사업에도 진출해 1000억 원 가까운 하청물량을 받아냈다. 특혜 말고는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 명제산업 주지홍 대표(오른쪽) (사진출처: 경북매일)

▲ 명제산업 주지홍 대표(오른쪽) (사진출처: 경북매일)

▲ 동하이엔씨 박용선 대표(왼쪽 첫 번째) (사진출처: 브레이크뉴스)

▲ 동하이엔씨 박용선 대표(왼쪽 첫 번째) (사진출처: 브레이크뉴스)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수의계약을 받아간 회사 중에는 유독 포스코 출신 인사가 대표인 기업이 많았다. 2009년 3월 포스코건설 철구조물 관련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낸 J산기, 2008년 1월 140억 원대 크레인 설비 하청을 받은 H중공업, 제이엔테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H중공업은 제이엔테크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포스코건설 협력회사가 된 뒤 곧바로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하청을 받아간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정치인이 대표를 맡고 있는 기업도 여럿 확인됐다. 모두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이었다. 2010년 2월 전기설비 수의계약을 받은 동하이엔씨의 대표는 경상북도 도의원인 박용선 씨다.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하청을 받을 당시 박 의원은 한나라당 경북도당 청년위원장이었다. 2010년 8월 수의계약을 받아간 광명에스지는 대북 사업 관련 기업으로 유명한 광명전기의 자회사다. 이OO 광명전기 회장은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이 추진됐던 인물이다.

지난 5월, 검찰은 포항에 본사를 둔 중소기업 명제산업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 회사는 2011년 청송 성덕댐 주변 도로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하청 대가로 비자금을 조성해 포스코건설에 건넨 의혹을 받았다. 30억 원으로 시작한 공사비가 설계변경을 거쳐 70억 원대로 늘어난 경위도 수사대상이 됐다. 이 공사를 수주하기 전 명제산업의 연매출은 20~30억 원에 불과했다. 연매출의 3배 가까운 하청을 포스코건설에서 한 번에 받은 셈이다. 그런데 명제산업이 수주한 공사 역시 수의계약 목록에 ‘경영상 필요’라고 기재돼 있다. 한국 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 출신의 명제산업 주지홍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경북도당 청년위원장을 지냈고, 포스코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던 지난 4월에는 새누리당 자문위원에 위촉된 바 있다.

수의계약 자료를 보면, ‘경영상 필요’ 만큼이나 많은 계약사유는 ‘긴급수의’였다. 공개입찰을 할만큼 시간이 없는 경우의 하청이었다는 뜻이다. 최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포스코건설 조경협력업체인 대왕조경(인천 소재)이 받아간 하청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2013년까지 6년 간 대왕조경이 받아간 수의계약 23건(약1300억원) 중 6건이 ‘긴급수의’에 의한 수의계약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가 ‘긴급수의’를 이유로 받아간 조경공사는 주로 인천시 홍보관이나 세계도시축전 기념관 같은, 긴급을 요하는 공사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대왕조경은 오랫동안 각종 공사현장에서 비자금을 만들어 포스코건설측에 상납해 왔다.

검찰이 왜 이 회사에 주목하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먼저 대왕조경은 지난 수년간 합당한 이유 없이 포스코건설 공사현장의 조경사업을 수의계약으로 싹쓸이했다. 게다가 대주주이자 대표인 이모(64) 씨는 2009년 2월 포스코를 떠난 이구택 전 회장의 조카다. 내부 부정이 의심된다. 수년 간의 성장과정을 보면 의혹은 더 굳어진다. 2002년 설립된 대왕조경의 매출은 2007년까지는 연간 80억 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8년 100억여 원, 2009년 180억 원으로 늘더니 2013년엔 300억 원이 넘었다.

대왕조경의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8~2009년은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직후이면서 이 전 회장이 포스코를 떠난 때와 겹친다. 정준양 전 회장, 정동화 전 부회장의 재임기간과는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경영 행태는 그 동안 검찰 수사 대상이 된 포스코 하청 기업들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되던 현상이다. 이처럼 포스코건설의 수의계약 내부자료만 분석해 봐도 포스코 수사가 흐지부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금, 2015/08/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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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사무처(회원팀)에서 준비한 8월 월례회는 연극관람입니다. 덥고 힘든 여름철,회원들과 함께 경쾌하고 신나는 연극관람하고 이후 시원한 맥주도 한잔하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재충전도 하기 위해서 8월 월례회를 단체연극 관람으로 준비하였고,이번 연극관람은 대학로에서 아주 Hot 하고 인기리에 공연중인 “옥탑방 고양이”를 고심 끝에 선정하였습니다.

옥탑방 고양이” 공식 블러그 http://blog.naver.com/roofhousepat

이 “옥탑방 고양이”는 저도 아직 못 봤지만 연예관련 코믹 연극이고, 대학로에서는 꽤나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도는 연극입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들 말로는 4년 연속 예매율 1위라고 하네요. 법조문에 파묻혀 지내는 저희 민변 회원 분들에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연극으로 제격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경쾌한 연극을 회원에 한해서선착순 30명 무료 관람(선착순 이후부터는 개인당 12천원, 가족과 지인 대동 시에도 12천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공지하니어서들 신청해야겠죠?^^

자세한 문의는 회원팀(이동화 팀장, 010-9947-9920, [email protected])에게 하시면 되고, 신청은 메일로 받겠습니다.^^

많은 회원들과 함께 즐거운 연극 단체 관람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어서들 메일로 신청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월, 2015/08/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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