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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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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익명 (미확인) | 수, 2017/11/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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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사진=tbs 공혜림 기자>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은 현 정부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비판의 뿌리도 ‘친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8주년을 앞두고 t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친일은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파시즘 철학”이라며 “적폐청산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파시즘적인 철학을 가진 자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다”며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임헌영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

–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공식적으로 펴낸 지 오는 8일 8주년을 맞습니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가 과거사 청산의 일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일파 청산에 관대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8년에 걸쳐서 친일인명사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 18년 동안의 온갖 연구 축적을 모아서 낸 것이 친일인명사전인데, 이것을 2009년에 저희가 냈습니다. 이 사전을 낸 지가 벌써 8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이 사전을 내고 나니까 국민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성원으로 이런 사전을 냈습니다, 약속 지켰습니다’ 하고 신고식을, 쉽게 말하면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모 여자대학교 강당을 다 빌려서 계약을 해놨는데 하루 전에 못한다고 장소를 못빌려준다고, 대여 못해준다고 취소 통보가 왔어요. 할 수 없이 거기서 못하고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출판 기념회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친일인명사전을 대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열렬한 환영을 한 데도 불구하고 권력층, 집권세력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냉대하는 구나, 출판 기념회 장소까지도 강제 취소시켜서 못하게 하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친일인명사전입니다.

– 기자: 18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 임헌영: 거의 한 100여건의 각종 소송들이 있었고. 그 많은 소송을 1건도 우리가 진 게 없어요. 다 이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고. 특히 가장 고비를 겪었던 것은 인쇄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사전에 들어가 있다고, 박지만씨가 발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그땐 정말 우리도 위기를 느꼈어요. 그랬는데 아무리 권력의 압력이 있어도 결국은 재판장에서 친일파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우리 사전에 실린 기사를 보고 판결 나서 바로 발행할 수 있었던 거죠.

– 기자: 왜 박지만씨가 소송 냈을 때 가장 큰 위기를 느끼셨습니까. 

= 임헌영:  인쇄도 다 해놓은 상태에서 내놓을 판인데. 박지만씨가 가처분 신청 내면 만약에 받아들여지면 다 찍어놓은 책을 못 내는 거예요. 정권도 이명박 정권 때니까 굉장히 위기를 느꼈죠. 다만 우리는 학술적으로 박정희가 썻던 혈서, 우리가 찾았잖습니까. 일본에 있는 국회 도서관에서 우리 연구원이 찾아서. 누구도 아무리 박정희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도 그걸 보고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죽하면 우리가 이겼겠어요, 재판에서.

그 후손들이 다 자기 조상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 사전에 들어가면 안 된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고 소송 걸었는데 우리가 친일했던 거 다 해명해주고 다 해결됐죠. 실제로 후손들 중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고,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해당자가 대단히 억울한 측면들도 참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민족사적인 전기를 볼 때,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과거사 청산해야 하고 우리 정치 개혁을 위해서도 이건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이다. 이래서 우리도 참 냉험하게도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만 가지고 한 것이 친일인명사전이었습니다.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거고 후손들이 여기 와서 처음에는 분노해서 왔다가 나중에는 차근히 우리 취지를 설명 듣고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연구소 후원을 해주거나 회원이 된 분들도 있어요. 이게 정말 우리 민족사를 위해 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후손들로서는 우리 조상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이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옳았다, 그땐 다 친일했다, 친일이 뭐가 나쁘냐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은 대단히 곤란하고.

– 기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란 말씀이네요. 

= 임헌영: 이 사전을 보시면 저는 이게 쉽게 말하면 광복 8.15 이후에 우리나라 학문 연구의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 학문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권력은 아주 나쁘게 온갖 독재자와 쿠테타를 거쳐 갔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를 축적해왔습니다. 그 많은 축적돼온 학문 연구를 우리가 다 종합한 겁니다. 우리가 뭘 새롭게 연구한 게 아니고 그동안 나온 신문, 잡지, 논문, 학술지에 실린 각종 조사들, 기록들, 증언들 다 종합해서 객관적으로 그대로 썼습니다. 우리 사전 서술하는 방법이 ‘친일한 사람들 이렇게 해서 나빴다’ 이런 구절은 하나도 없어요. 행위 자체를 아주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냉철하게 그야말로 냉철한 하드보일드라는 냉철한 문장으로 딱딱 객관적인 기사체처럼 역사에서 말하는 기전체처럼 그대로 쓴 겁니다. 8.15 이후에 산 분들은 이후 행적까지도 그대로 써줬어요. 후손들도 자기 조상이 그렇게 활동한 건 전혀 몰랐을 거예요. 이력서가 가장 자세하게 나온 겁니다. 8.15 이후 자기의 업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다 써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사전 나온 뒤에는 이걸로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기자: 정치적인 색깔로 보는 분들도. 

= 임헌영: 많았죠.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단 말이예요. 정치, 사회, 군부, 경찰, 사법, 입법, 재벌, 종교계, 교육계까지도 모든 기관에 그런 분들이 지배했단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볼 때는 이게 정치적으로 집권세력이었다가 민주화라는 게 불과 11년밖에 안 됩니다. 고작 민주화라는 시절을 보낸 게 4.19 뒤에 1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11년밖에 안 됐잖아요. 그 11년 동안에 있다가 친일 후손들이 또 집권해서 옹호해온 것 아닙니까. 국정교과서까지 만들고 추태를 보여주다 물러났지만. 그런 속에서 그 분들은 이걸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연구소는 어떤 정파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일파 청산에 찬성해주고 지지하고 도와주면 그건 우리 연구소 편이 되고.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비판하면 8.15 이후 제2의 친일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자: 후손뿐 아니라 정치적 압박도. 

= 임헌영:  많았고. 우리는 일체 모든 연좌제를 반대합니다. 조상이 친일파였어도 후손이 훌륭한 정치가면 정치가로서 봐줘야지. 우리 연구소에서는 그 조상의 후손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절대 공개 안 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었을 때 판단 요청이 오면 그 정치가 때문이 아니고 친일을 한 당사자의 행적은 판가름해주는 거죠. 후손에게 피해가 가기 위해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를 올바르게 판단해주는 역할만 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 기자: 학술적인 활동을 정치적으로 본 이유는 뭘까요. 

= 임헌영:  자기 조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죠. 친일을. 자기 조상만 친일파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니까 엉뚱한 사람들도 이 사람도 친일파다, 이렇게 함께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지용 시인이 그랬죠. 친일 후손 중에는 정지용 시인도 친일했다, 왜 사전에 안 넣었느냐, 이거 정치적이다. 어거지를 쓴 거예요. 정지용은. 여러모로 검토하거든요. 친일파가 아닌 사람을 넣은 건 한 명도 없습니다. 사전을 처음 만들 때 집필진들에게나 친일파를 선정하거나 심의할 때 제가 했던 말이 ‘여기 여러분들이 친일파를 선정해서 실을 때 우리 할아버지라고 생각해라. 나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생각해 달라. 만약 내 할아버지가 여기 들어가면 기분 좋겠나. 나쁠 거다. 되도록 적게,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 아무리 잘 봐줘도 이건 아무리 봐도 친일파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들만 소수로 해서 뽑아라’. 엄선한 겁니다.

– 기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가요. 

= 임헌영: 편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위원장이 학자들이죠, 국사학자들. 그 밑에 필진들은 200여명. 몇십명이 각 분야별로. 수십명의 편찬위원들이 각 분야별로 다 나눠서 수십 차례 회의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합동 심사를 해서. 그 다음에는 제1차 수록 예상자 명단을 국민들에게 다 알려줬어요. 그러면서 이의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친일 안 했고 독립운동 했다는 자료를 가지고 오라, 그러면 우리가 참고하겠다 해서 공고했죠. 한참 지난 뒤에 제2차 확정 명단을 또 발표했어요. 또 언제든지 이의 있으면 제기해 달라. 그동안에 각종 고소, 이의 제기를 한 게 100여건 됐다고 봐요. 그게 해결된 마당에서 책을 펴낸 겁니다.

사전이 나온 뒤에는 일체 말이 없어요. 그 전에 소송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해결됐지요. 오직 행위자의 팩트 자체만 가지고 학술적인 측면에서 넣었거든요. 그 참고 자료를 각자 각자 한 사람마다 다 넣어줬습니다. 이런 사전은 없어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사람 하나마다 참고자료를 다 넣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심지어는 우리나라 자료, 일본, 중국 자료 다 뒤졌거든요. 오죽하면 국가기관에서, 교육부니 법원이니 문제가 생기면 우리한테 자문해서 우리가 판단해 주거든요.

– 기자: 친일이란 역사가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 임헌영: 몇 십 년 전 일을 지금 들춰서 뭐하느냐.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큼 자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세력이 오랫동안 집권한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말하면 인종 편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존중합니다. 인디언 추장들도 자기 종족을 하나라도 죽이면 추장이 안 돼요. 우리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없어요. 아무리 후진국이라도 이러지 않아요. 독재자, 군부 독재, 쿠테타 온갖 걸 식민지 이후에 겪어왔는데. 그 원인이 뭐냐 하다가 우리가 친일인명사전 만든다 하니까 옛날 거 아니냐 하다가, 그 사람들 명단을 보니까 우리가 그렇게 쿠테타, 독재, 부정부패에, 도둑이 큰 소리 치고 그걸 잡으러 가는 경찰들이 벌벌 피신해 가는, 독립운동가들이 되레 피신해가지고. 이 거꾸로 된, 착한 사람이 피해 받고 나쁜 사람이. 그 원인이 뭐냐. 온갖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단 말이예요. 뭐든지 그 뿌리를 캐면 친일인명사전하고 다 연결된다.

유명한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동학군은 독립운동가를 낳고 독립운동가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쟁이를 낳고. 친일파는 독재자를 낳고 독재자는 재벌을 낳고 재벌은 많은 사장을 낳고.’ 삼대째 가난하게 산다고 소설에 그렇게 딱 나와요. 물론 그런 식으로 두부 자르듯이 그런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뿌리가 친일이고. 우리나라 걱정보다 미국 걱정을 더 하는 사람들. 어떻게 성조기를 드록 시위합니까, 태극기도 아까운데. 그것도 정말 친일파적인 발상이다.

– 기자: 과거 친일 가치관이 아직. 

= 임헌영: 아직도 미완이라고 보고 있고. 우리나라는 특히 나쁜 사람들이 상대편을 공격할 때 종북 좌파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집권했잖아요. 자기 밑에 친일파들 배치해서 집권해서 독재하다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반공이었거든요. 자기 반대하는 건 빨갱이로 몰았단 말이예요. 친일인명사전이 나온다는데 ‘북한 사람 안 넣었다’. 너무나 무식한 소리입니다. 북한 사람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했던 시인도 들어가 있어요. 남북 가릴 것 없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 소위 민족을 팔아 먹었다, 그런 사람은 이데올로기, 남북에도 관계 없고 돈 많든 없든 종교에도 관계 없이. 오직 그겁니다, 민족과 조국이 어려웠을 때 배신했느냐 안 했느냐. 거기에 딱 초점 맞춰서 판단했습니다.

지금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숫자가 그 당시 전 국민 2천만명으로 쳐도 소수입니다. 반대파들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 조상이 대단한 친일파인 사람들은 뼛속까지 반대하는 거죠. 친일 옹호하고 우리를 빨갱이로 몰려고 작정한 분도 있고. 또 뭔지 잘 모르고 세상 그렇게 다 살았는데 그게 나쁘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방관자예요.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가 하는 행위가 뭔지 아는 똑똑한 사람들, 사회 지도급 인사, 판단력까지 가진 사람이 자기 행동으로 자기 하나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와 명예와 권세, 실세를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 우리가 넣은 거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교장, 면장, 우리 명단에서 다 뺐어요. 우리도 논쟁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생계형 친일, 먹고 살기 위해서 했는데 뭐 나쁘냐. 그런 사람들은 친일 행위를 안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계형 친일이란 말은 성립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친일파로 안 봅니다. 혹시 이 방송 들으신 분들은 전해주세요. 우리가 한 것을 우리가 앞으로 더 잘 살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평화 통일해서 우리 민족이 자주롭게 잘 살기 위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적인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 한 거지. 잘 사는 사람들 괜히 배 아파서 한 게 아닙니다.

– 기자: 요즘 ‘적폐 청산’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 임헌영: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입니다. 그걸 해결되면 상당수가 바뀌고. 그래야 정치가들이나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잘 사나 연구해야지. 결국 친일파 가치 철학. 사대 외세 의존하는 가치 철학이 그대로 유전되어서 유전만 되는 게 아니라 더 악랄한 수법으로 퍼져서 지금 그런 상황 아닙니까. 적폐청산 1호죠, 아니죠 0호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친일청산은 항상 먼저. 친일파는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입니다. 파시즘 철학입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싫어합니다. 절대 평등을 안 해요. 자기 가족한테도 자기가 어른이고 우리 가족은 내 부하. 직장에서도 파쇼적이고.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절대 민주주의를 싫어하죠. 그런 철학으로. 전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평화를 좋아하는. 가짜 간첩 만들고 탄압하고 이래야 자기들은권세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단 말이예요. 호혜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싫어 한단 말이예요. 그런 철학은 21세기 UN이 정한 세계시민에 위배돼죠. 아주 못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적폐청산을 그야말로 마약에 박근혜 정권이 그대로 있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지금 그 밝혀지는 세계 인류에서 볼 수 없었던 죄악입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최대 과제가 촛불 시민들이 바라는 적폐 청산입니다. 어떤 분들은 또 일부 권세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인 보복이다. 그야말로 파시즘적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적폐청산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8·15 이후 첫 기회입니다. 항상 해야 하는데 못했어요. 4·19 이후에도 적폐청산 못했기 때문에 5·16 일어난 거고요. 근대 우리 민족사에 장애물이었던 국민 복지의 장애물, 평화통일의 장애물, 모든 부정부패, 권력 남용 다 들어가는 거죠. 독재 찬양도. 지금은 국정원에서 돈 대서 시민단체들이 전부 그게 독재 옹호하는 거잖아요.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임헌영: 사전이 나온지 8년을 맞았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8년 동안 만질정도 나갔어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게 웬만한 가정마다 비치서로 집안 비치서로 집안 한 권 있어야 하고. 모든 학교, 기관, 하나씩 들어가야 해요. 다 가지고 기본 가치관 자체를 파시즘적 철학을,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없고 이 생각 가져야 합니다. 친일파라는 개념과 그 사람들이 저지른 작태, 범죄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잘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서서 압력행사하려고 하니까 민주주의가 불안하죠. 그런 것만 인식하면 ‘아, 이런 게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지금은요. 친일한 분들은 100% 돌아가셨습니다. 후손들은 아무 죄가 없어요. 자기 조상의 행위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 이렇게 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자꾸 옹호하려는 데서 파시즘적 생각을 부활시키려고. 그러니까 독재정권 자꾸 옹호해서 마찰이 일어나는 거죠 . 진짜 소수거든요. 지금 거의 청산됐다고 보고. 소수가…. 유럽이나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실현했던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구시대적 파시즘적 많은 편이예요.

우리 연구소는 지금 이제 새로운 사옥을 사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돈이 많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20억을 빚지고 갑니다. 지금 이 사무실은 너무 좁고 강좌도 할 수 없고. 교통 좋은 데로 가서 강좌도 열고. 식민지 역사 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거든요. 큰 기부를 해주시길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공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7-11-06> t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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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5회 “골프, 친일귀족의 신선놀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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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얼마나 되나

日사찰 보관 유골 2천770위…오키나와 등 미발굴 유골 2만2천구
2004년 유골봉환 합의에도 일부만 반환…日정부 외면에 韓정부는 소극 대응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해방 후 70여년이나 흘렀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숨진 징용·징병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일 행안부 과거사업무지원단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굴된 뒤 보관 중인 한반도 출신 징용·징병자의 유골은 2천770위에 달한다. 사찰이나 납골당 등 340여곳에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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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섬마을 사찰서 열린 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추도식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행안부가 일본 정부의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일본 사찰의 유골들은 홋카이도(北海道)·도호쿠(東北) 480위, 간토(關東) 560위, 긴키(近畿) 200위,주부(中部) 570위, 주고쿠(中國)·시코쿠(四國) 220위, 규슈(九州)·오키나와(沖繩) 740위 등이다.

유골 봉환 문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출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반환에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합의 후 도쿄도 메구로(目黑)구의 사찰 유텐지(祐天寺)의 유골 423위가 2008~2010년 4차례에 걸쳐 봉환되는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이와 관련한 양국 정부간 교섭이 중단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봉환된 유텐지의 유골은 모두 군인과 군속(군무원)의 것으로 강제징용 노동자의 유골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사이 유골 봉환은 양국의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5년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115명의 유골을 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시모노세키(下關) 등 강제로 끌려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경로로 한국으로 봉환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발굴이 안된 유골들을 찾아내서 한국에 봉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말 격전이 치러졌던 일본 남부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에는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이 최소 2만2천구가 발견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2차대전 당시 전몰자의 유골을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족의 DNA를 수집한 뒤 발굴한 유골과 대조 작업을 진행해 유골을 유족에게 찾아주고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는 대상에서 제외해 한국인 전사자들의 유골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찾아서 보관하고 있든, 아니면 앞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든 이들 두 부류의 유골 문제가 모두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외면과 한국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사찰에서 보관 중인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는 일, 전사자 유골의 발굴·대조 작업에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하는 문제 모두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히며 책임을 한국 정부에 미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실무선에서 일본 정부와 접촉을 하면서도 아직 유골 봉환이나 발굴에 대해 공식적인 요청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핑곗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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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조선인 전몰자 유골반환 촉구 요청서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가 8일 일본 정부에게 한반도 출신 전몰자의 유골 반환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사진은 보추협 사무국 역할을 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오른쪽)이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담당자(왼쪽)에게 요청서를 주는 모습. 2018.2.8 [email protected]

한국과 일본은 작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유골봉환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지만, 협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06-01> 연합뉴스

☞기사원문: 日외면·韓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는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관련기사

☞SBS: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일본의 외면과 한국의 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

☞연합뉴스: 갈곳 잃은 韓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日섬에서 새 안식처 찾다

☞한겨레: 바다가 삼킨 해방의 환희…일본 섬에 잠든 조선인 131명 유골

☞한겨레: [특파원 칼럼] 그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까 / 조기원

금, 2018/06/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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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6/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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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친일문제를 연구하던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가 선생에게 한 말이다.
선생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실었고,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임문호”를 실었다.
 
“….1937년 4월 이후에는 청년당 당두로서 천도교중앙종리원 관정(觀正)에 선출되어…….일제 침략전쟁과 황민화 정책을 적극 후원하고 지원할 것을 독려했다…..”-친일인명사전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아들

진실을 밝힘에 있어 그 어떤 이해관계(비록 아버지일지라도..)도 철저히 배척하는 원칙주의자가 임종국 선생이다.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써 내려갔던 그 날
임종국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 2018/06/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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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엔 100주년 기념식 개최 거절…현 정부 들어 재평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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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 300kg으로 만든 독립영웅 흉상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2018.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의 산실이던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다.

3일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와 육군사관학교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오는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과 을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연다.

기념사업회는 설립 100주년이던 2011년 처음으로 기념식을 열기로 하면서 육사에 개최를 요청했지만, 당시에는 제안을 거부당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연 기념사업회는 올해 2월 다시 육사의 문을 두드렸고, 올해 처음으로 육사 교내에서 기념식을 열게 됐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발했다. 항일비밀조직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당시에는 ‘강습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군의 효시라는 주장이 있지만, 여태껏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변화 움직임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는 육군의 초기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열린 것으로, 당시 육사가 독립군과 광복군 활동을 주제로 학술 행사를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 3월에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교내 충무관에 설치했다. 흉상은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을 녹여 제작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최근 들어 육사는 학술회의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를 자신의 뿌리로 재정립하려고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군·공군사관학교, 더 나아가 전군 차원에서 이러한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육군 관계자는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항일의병, 독립군·광복군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3> 연합뉴스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첫 개최…’軍 효시’ 자리 잡나

월, 2018/06/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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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의원,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금지 및 이장 규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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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바라본 도심에 빌딩들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오는 6일 제63회 현충일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밖 이장을 강제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병)은 5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무려 63명이나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사람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에 7명(김백일, 김홍준, 백낙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이, 국립대전현충원에 4명(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이 각각 안장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인사 중 서울·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경우까지 합하면 63명이 된다.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 안장돼 있다.

그동안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이들의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지만, 이장을 강제할 법률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논의만 공전을 거듭해 왔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현행법이 유지될 시 향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이장을 명할 수 있도록 하여 국립묘지의 영예성과 국민들의 자부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김홍준은 2015년9월3일 63명 중 가장 최근에 안장됐다. 그는 만주군 상위, 간도 특설대에서 복무했고,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순직해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위패만 안장돼 있다.

백낙준은 연희전문학교 교수이자 기독교 신문 이사 및 편집위원의 친일행위를 했다.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국가사회공헌을 이유로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심응균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좌로 활동했다. 광복 이후 육군 중장을 지내며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신태영 역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중좌로 활동한 친일인사다. 한국전쟁에서 전북편선관 구사령관으로 참전하고 이후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수원지구 방위사령관으로 참전했으며, 이후 체신부 장관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종찬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금치훈장까지 수여받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육군 수도경비 사령관으로 참전,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김석범은 만주군 상위 출신으로 만주국 훈6위 주국장을 수여받았고, 백홍석은 경성 육군병사부 과장 출신으로 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송석하는 간도특설대 중대장 출신으로 만주국 훈5등 경운장을 수여받았으며, 신현준은 간도특설대 창설기간 장교를 지내고 만주국 훈6위 경운장을 수여받았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행위를 저질렀지만 육군 특무대장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권 의원은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장하는 것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모욕이자 무원칙의 표본”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06-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아직도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63명, 강제 이장 추진된다

※관련기사

파이낸셜뉴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무려 ’63명’

노컷뉴스: 권칠승 “현충원 안장 친일 63인 이장시켜야”..국립묘지법 개정안

화, 2018/06/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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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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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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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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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6 –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이후 동북아시아의 질서 변화?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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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5 –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현실 국제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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