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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교회, 정교분리인가 정교유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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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교회, 정교분리인가 정교유착인가

익명 (미확인) | 수, 2017/11/01- 20:22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심포지엄 ‘일제강점기 파시즘과 한국교회’ – 1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일제강점기 파시즘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정기 심포지엄을 열었다.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마련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일제의 종교통제와 전쟁 동원”, “전시체제기 가톨릭교회의 부일협력”, “일제강점기 가톨릭교회의 제도성에 대한 반성” 등을 토론했다.

“교회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다”

먼저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전시체제기 가톨릭교회의 부일협력’을 주제로 발표하고, 일제강점기, 특히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가톨릭교회가 일제 지배정책에 예속됐고, 협조했으며, 이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가톨릭 인사들에 대해 교회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밝혔다.

박수현 연구실장은 일제강점기 한국 가톨릭교회와 당시 교회를 관할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입장에 대해, “일제강점 초기부터 가톨릭교회는 일제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제의 지배를 환영하기까지 했다. 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선교권만 보장해 준다면 일제의 강점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에게 자주독립의 능력이 떨어지므로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제의 통치를 받는 것이 낫다고 인식했다며, “이와 함께 가톨릭 선교사들이 독립운동을 부정하며 내세운 논리는 ‘정교분리론’으로, 그러나 이 원칙은 일제의 강점을 인정하고 지배정책을 따르는 순간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정교분리’를 내세웠지만, 일제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도 ‘정치’였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가톨릭교회에서 이러한 방침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이 없었고, 이는 교계제도라는 가톨릭교회의 조직구조의 영향이었다며, 나아가 교회는 불가 방침을 고수하던 신사참배까지 허용하면서 이념마저도 일제에 종속되어 갔다며, “이 시기 가톨릭교회의 친일은 일제의 압박을 탓하기에는 너무도 적극적이고 노골적이었으며, 정세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전부터 계속되던 순응과 협력의 연장선상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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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0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일제강점기 파시즘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정기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경향잡지> 일제 협력을 위한 선전, 선동에 이용

박 실장에 따르면, 특히 이러한 친일 행태는 1937년 7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부터 본격화됐다.

“천주 10계 중 제4계에는 다만 부모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제왕과 국가에 대한 의무도 포함되어 있음은 우리 교우들이 누구나 다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국가에 대한 이 의무는 평상시에도 잘 지켜야 함은 물론이나 현금과 같은 국가의 비상시를 당하여는 그 의무가 더 한층 중하여짐은 장황한 설명을 기다릴 것 없이 명백한 것이다.” (<경향잡지> 1937년 7월호에 실린 7월 25일자 7개 교구 주교 성명서 ‘비상시에 처한 우리의 의무’ 일부)

박수현 실장은 이 당시 가톨릭교회의 친일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당시 발행된 <경향잡지>에 실린 교회의 공식 입장을 통해 증명했다. 당시 <경향잡지>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기관지이자 서울교구의 관보로 전시체제기에는 종교계의 대표적 친일잡지가 됐으며, 성명서와 사설 등을 통해 신자들에게 파시즘 체제를 미화하고 전쟁 협력을 촉구하는 선전, 선동지가 됐다.

그는 <경향잡지>를 통한 교회의 선전, 선동 대부분은 교회 상층부에서 신자들의 각성과 실천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며, “수직적 관계의 교계제도에 익숙한 신자들은 성직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경향잡지>를 접한 신자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보다는 승리의 기쁨과 새로운 희망, 황군으로서 죽는 것은 종교적 순교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한 신자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당시 한국교회의 중추인 서울교구는 중일전쟁을 지지한 지 1년 뒤, 일제가 만든 관변단체에 예속돼, 일제의 정책과 방침을 따른다.

일례로, 서울교구는 1938년 중일전쟁 1주년을 맞아 일제가 조직한 관변 전쟁협력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하 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했으며 그 대표는 라리보 주교, 실무 책임은 장면이었다. 서울교구는 이어 1939년 5월 종교단체로는 가장 처음으로 총동원조선연맹 산하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경성교구연맹’도 조직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은 라리보 주교, 이사는 노기남 주교 외 사제 4명, 평신도 7명이 맡았다.

“폐하와 제국의 현명한 통치가 없었던들 우리가 오늘날 천주교회 신자로서 교회의 모든 본분을 안온하게 지켜 가고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대동아 건설의 대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억일심으로 만민익찬의 신체제를 강조하는 이 시기, 천주교 신자로서 국가정책에 적극 호응하기 위해” (1940년 매월 첫째 주일을 ‘교회 애국일’로 지정하며 이를 설명한 노기남 대주교 발언)

가톨릭교회는 1941년 비행기헌납운동과 노기남 대주교의 1만여 원 조선군사령부 헌납, 1942년 징병에 대비한 일본어 강습회 실시, 1943년 학도지원병 지원 독려 강연회 등을 이어 가며, 조직적으로 일제의 요구를 충실히 따른 것은 물론 자발적 충성을 과시한다. 그 중심에는 김명제, 김윤근, 노기남, 신인식, 오기선 등 신부와 남상철, 장면 등 평신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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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체제기 가톨릭교회의 부일협력에 대해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사목이라는 이름으로 선량한 신자들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몬 죄는 적지 않다”고 일제시기 교회의 잘못을 비판했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 인사 ‘친일명단’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 (2008년 가톨릭 성직자 등 친일인명사전 수록에 대한 서울대교구 입장)

문서상으로도 친일행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이들 7명(김명제, 김윤근, 남상철, 노기남, 신인식, 오기선, 장면)은 2008년 4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오른다.

이에 따라 교계 언론은 사설과 기사를 통해 이에 반박했으며, 서울대교구는 대변인 허영엽 신부의 이름으로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성명서에서 서울대교구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에 가톨릭 인사 7명이 포함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당시 각계 단체의 책임자는 일제 총동원 단체의 장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친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가벼운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실제로 그분들이 일제 치하에서 어떤 희생과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판단, 올바른 조사가 결여된 것 같아 심히 유감”이라며, “친일 인사로 발표된 가톨릭 인사들이 우리 민족에 어떤 해를 끼쳤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서울대교구는 성명 발표와 함께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노기남 대주교는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반민족행위자로도 이름이 올랐으며, 서울대교구는 이에 대해서도 이의신청을 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이에 대해 박수현 실장은 “가톨릭교회의 친일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며, 일부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친일이었다”며, “그럼에도 현재까지 교회는 반성은커녕 친일에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을 적극 옹호하고 구체적 증거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방 이후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거의 없으며, 친일 세력이 그랬듯이 일제가 패망한 뒤 공식적 반성과 참회 없이 새로운 정치권력과 타협하고 밀착했다며,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대응은, 나름 교회가 진일보한다는 기대를 갖게 했던 2000년의 반성과 참회조차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12월 3일 가톨릭교회는 새천년을 맞아 ‘쇄신과 화해’라는 문건을 통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참회와 쇄신, 민족과 화해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이들의 대열에 함께 하려한다며, 7개 항목에 대해 반성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내용이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것인데, 교회는 이에 대해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가톨릭교회는 호교라는 자신들만의 무기로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파시즘 체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며, “이는 어떤 명분이든 죄악이며, 그리스도교 정신에도 크게 반하는 것이다. 더욱이 신자들을 침략전쟁으로 내몬 행위는 전쟁범죄이자 반교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었다고 변명하거나 돌려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었다”며, “1970-80년대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노력, 불의에 저항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기억이 온전히 전통으로 남기 위해서는 원죄인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7-10-31> 가톨릭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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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5회 “골프, 친일귀족의 신선놀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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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얼마나 되나

日사찰 보관 유골 2천770위…오키나와 등 미발굴 유골 2만2천구
2004년 유골봉환 합의에도 일부만 반환…日정부 외면에 韓정부는 소극 대응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해방 후 70여년이나 흘렀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숨진 징용·징병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일 행안부 과거사업무지원단에 따르면 일본에서 발굴된 뒤 보관 중인 한반도 출신 징용·징병자의 유골은 2천770위에 달한다. 사찰이나 납골당 등 340여곳에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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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섬마을 사찰서 열린 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추도식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31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가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을 열고 징용 희생자와 가족 등을 포함한 한국인 유골 131위를 안치했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까지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있다가 일본 후생노동성의 창고와 다름 없는 보관 시설로 옮겨지며 안타까움을 샀던 것들이다. 2018.5.31 [email protected]

행안부가 일본 정부의 정보 제공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일본 사찰의 유골들은 홋카이도(北海道)·도호쿠(東北) 480위, 간토(關東) 560위, 긴키(近畿) 200위,주부(中部) 570위, 주고쿠(中國)·시코쿠(四國) 220위, 규슈(九州)·오키나와(沖繩) 740위 등이다.

유골 봉환 문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출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반환에 합의한 뒤 한때 급물살을 타기도 했다.

합의 후 도쿄도 메구로(目黑)구의 사찰 유텐지(祐天寺)의 유골 423위가 2008~2010년 4차례에 걸쳐 봉환되는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이와 관련한 양국 정부간 교섭이 중단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봉환된 유텐지의 유골은 모두 군인과 군속(군무원)의 것으로 강제징용 노동자의 유골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사이 유골 봉환은 양국의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성사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5년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115명의 유골을 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시모노세키(下關) 등 강제로 끌려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경로로 한국으로 봉환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발굴이 안된 유골들을 찾아내서 한국에 봉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말 격전이 치러졌던 일본 남부 오키나와(沖繩)를 비롯해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 등에는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이 최소 2만2천구가 발견되지 않은 채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6년 3월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법’을 제정해 2차대전 당시 전몰자의 유골을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족의 DNA를 수집한 뒤 발굴한 유골과 대조 작업을 진행해 유골을 유족에게 찾아주고 있지만 한반도 출신자는 대상에서 제외해 한국인 전사자들의 유골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찾아서 보관하고 있든, 아니면 앞으로 발굴해야 할 것이든 이들 두 부류의 유골 문제가 모두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외면과 한국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사찰에서 보관 중인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는 일, 전사자 유골의 발굴·대조 작업에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하는 문제 모두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히며 책임을 한국 정부에 미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실무선에서 일본 정부와 접촉을 하면서도 아직 유골 봉환이나 발굴에 대해 공식적인 요청을 하지 않고 있어 일본측의 핑곗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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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조선인 전몰자 유골반환 촉구 요청서 (도쿄=연합뉴스)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가 8일 일본 정부에게 한반도 출신 전몰자의 유골 반환을 촉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사진은 보추협 사무국 역할을 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오른쪽)이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담당자(왼쪽)에게 요청서를 주는 모습. 2018.2.8 [email protected]

한국과 일본은 작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유골봉환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지만, 협의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06-01> 연합뉴스

☞기사원문: 日외면·韓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는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관련기사

☞SBS: 일제 징용·징병자 유골, 일본의 외면과 한국의 무관심에 죽어도 고향 못가

☞연합뉴스: 갈곳 잃은 韓강제징용자 유골 131위, 日섬에서 새 안식처 찾다

☞한겨레: 바다가 삼킨 해방의 환희…일본 섬에 잠든 조선인 131명 유골

☞한겨레: [특파원 칼럼] 그들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까 / 조기원

금, 2018/06/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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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6/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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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친일문제를 연구하던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가 선생에게 한 말이다.
선생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실었고,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임문호”를 실었다.
 
“….1937년 4월 이후에는 청년당 당두로서 천도교중앙종리원 관정(觀正)에 선출되어…….일제 침략전쟁과 황민화 정책을 적극 후원하고 지원할 것을 독려했다…..”-친일인명사전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아들

진실을 밝힘에 있어 그 어떤 이해관계(비록 아버지일지라도..)도 철저히 배척하는 원칙주의자가 임종국 선생이다.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써 내려갔던 그 날
임종국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 2018/06/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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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엔 100주년 기념식 개최 거절…현 정부 들어 재평가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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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 300kg으로 만든 독립영웅 흉상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2018.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의 산실이던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다.

3일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와 육군사관학교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오는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과 을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연다.

기념사업회는 설립 100주년이던 2011년 처음으로 기념식을 열기로 하면서 육사에 개최를 요청했지만, 당시에는 제안을 거부당했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연 기념사업회는 올해 2월 다시 육사의 문을 두드렸고, 올해 처음으로 육사 교내에서 기념식을 열게 됐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발했다. 항일비밀조직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당시에는 ‘강습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군의 효시라는 주장이 있지만, 여태껏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변화 움직임이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학술대회는 육군의 초기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열린 것으로, 당시 육사가 독립군과 광복군 활동을 주제로 학술 행사를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 3월에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교내 충무관에 설치했다. 흉상은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을 녹여 제작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최근 들어 육사는 학술회의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를 자신의 뿌리로 재정립하려고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군·공군사관학교, 더 나아가 전군 차원에서 이러한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육군 관계자는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항일의병, 독립군·광복군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3> 연합뉴스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첫 개최…’軍 효시’ 자리 잡나

월, 2018/06/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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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칠승 의원,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금지 및 이장 규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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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바라본 도심에 빌딩들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오는 6일 제63회 현충일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밖 이장을 강제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병)은 5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친일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무려 63명이나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사람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에 7명(김백일, 김홍준, 백낙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이, 국립대전현충원에 4명(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이 각각 안장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인사 중 서울·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경우까지 합하면 63명이 된다.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 안장돼 있다.

그동안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이들의 묘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지만, 이장을 강제할 법률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논의만 공전을 거듭해 왔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현행법이 유지될 시 향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이장을 명할 수 있도록 하여 국립묘지의 영예성과 국민들의 자부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김홍준은 2015년9월3일 63명 중 가장 최근에 안장됐다. 그는 만주군 상위, 간도 특설대에서 복무했고,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순직해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위패만 안장돼 있다.

백낙준은 연희전문학교 교수이자 기독교 신문 이사 및 편집위원의 친일행위를 했다.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국가사회공헌을 이유로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심응균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좌로 활동했다. 광복 이후 육군 중장을 지내며 안장자격을 취득했다.

신태영 역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중좌로 활동한 친일인사다. 한국전쟁에서 전북편선관 구사령관으로 참전하고 이후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시베리아 간섭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수원지구 방위사령관으로 참전했으며, 이후 체신부 장관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종찬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금치훈장까지 수여받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육군 수도경비 사령관으로 참전,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김석범은 만주군 상위 출신으로 만주국 훈6위 주국장을 수여받았고, 백홍석은 경성 육군병사부 과장 출신으로 재향군인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송석하는 간도특설대 중대장 출신으로 만주국 훈5등 경운장을 수여받았으며, 신현준은 간도특설대 창설기간 장교를 지내고 만주국 훈6위 경운장을 수여받았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행위를 저질렀지만 육군 특무대장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

권 의원은 “독립유공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장하는 것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모욕이자 무원칙의 표본”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06-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아직도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63명, 강제 이장 추진된다

※관련기사

파이낸셜뉴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무려 ’63명’

노컷뉴스: 권칠승 “현충원 안장 친일 63인 이장시켜야”..국립묘지법 개정안

화, 2018/06/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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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8/06/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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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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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6/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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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1 – ‘4.27 판문점 선언’, 그날의 소회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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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6/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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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6 –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이후 동북아시아의 질서 변화?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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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5 –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현실 국제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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