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의 진로에 중대한 장애가 생겼다. 지난 9월 3일 북의 6차 고강도 핵실험 이후 날로 높아지고 있는 북미-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탓이다. 촛불혁명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세력들이 이러한 상황을 반기기라도 하듯 아연 활기를 띠고 촛불혁명을 역공하기 시작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8월 22일자 칼럼에서 촛불혁명은 한반도 양국체제를 통해서 완성될 것이라 했다(링크, “촛불혁명과 한반도 양국체제” http://thetomorrow.kr/archives/5628). 양국체제란 한반도 남북의 두 국가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로 성공적으로 진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촛불혁명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뜻이었다.
명제는 흔히 먼저 역순으로 입증되곤 한다. 예를 들어 A는 B를 통해 C로 간다는 명제는 물론 이 명제가 순서대로 진행되었을 때 증명된다. 그러나 흔히 현실에서 이러한 명제의 증명은 먼저 거꾸로 이루어지곤 한다. B를 틀어막았을 때 A가 C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먼저 분명해지는 것이다. 촛불혁명(A), 양국체제(B), 촛불혁명의 완성(C) 간의 관계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혁명은 한반도 양국체제를 통해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북의 6차 핵실험 이후의 비상한 위기 상황을 마치 왕가뭄에 단비라도 만난 듯 달갑게 맞이하는 쪽은 촛불혁명 이후 침묵해왔던 냉전대결세력들이다. 그들은 이제 한국이 ‘핵 갑(甲)질의 인질’이 되었고, 북의 ‘남조선 혁명 프로세스’는 현실이 되었다고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틀어대고 있다(9월10일. 류근일, [주간조선]). 통일이 눈앞에 왔다면서 박근혜의 ‘통일대박’ 타령에 장단을 맞추어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갑자기 곡조를 바꿔 ‘적화통일’이 눈앞에 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바뀌나? 북이 그 핵을 다 만들어가는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네 차례의 핵실험) 난 몰라라 방관하면서 큰 소리만 쳐왔던 것이 오늘 이 순간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였나? 대결국면을 강경 일변도로 몰아가 김정은의 주가를 한껏 높혀 준 것이 트럼프라면, 그 결과 만들어진 위기 상황을 가장 즐기는 쪽, 즉 가장 큰 이득을 취하는 쪽은 이 나라의 냉전대결세력이다.
따라서 촛불혁명이 호명했던 ‘적폐세력’이란 바로 그 냉전대결세력이 아닐 수 없다. 그 세력이 한국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떵떵거렸던 터전이 남북 간 대결체제였다. 이제 미사일이 날고 죽음의 백조가 뜨고 북미 간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니 이 세력은 비로소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이고 있다. 작년 가을 촛불 이후 크게 위축되었던 세력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세력이 다시 힘을 얻는 만큼, 촛불혁명 앞의 장애물은 높아져 간다.
따라서 적폐청산이란 결국 냉전대결세력의 청산이다. 촛불이 ‘적폐세력’을 청산대상으로 지목한 이유는 이 세력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더 이상 하등의 기여를 하지 못하는 세력이 되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들은 독재는 해도 산업화와 안보에 기여했다고 자임했다. 그러나 이제 알고 보니 이들의 이익은 대한민국의 포괄적 이익에 어느 하나 기여하는 게 없다. 오히려 죄다 거꾸로 서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헬조선을 조장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안보상황까지를 오히려 위태롭게 만들어왔다. 통째로 적폐요 민폐다.
2. 양국체제는 30년 전 이미 초석 놓여진 것
한반도 양국체제의 정착은 ‘대한민국의 포괄적 이익’과 합치되는 길이다. 그렇다면 이 경로가 한반도 상황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조성되기 시작했던 시점을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로써 양국체제로 가려 했던 힘과 그 길을 가로막는 힘의 연원과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그 시기는 1987년 민주항쟁과 1989-1991년 간의 냉전해체 기간이다. 이 시기는 민주세력 내에서도 분열이 생기지만, 냉전세력 내부에서도 일정한 분열이 생겼던 시기다.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우선 87년 민주화 세력은 분열하여(양김 분열) 노태우 정부에 정권을 헌납하는 우를 범했지만, 노태우 정부는 동서냉전종식의 기류 위에서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펼쳤다. 남북화해 정책도 펼치기 시작한다. 이것을 두고 ‘3당합당=보수대연합으로 몰아가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했다’라 하고 만다면 이는 사태의 절반만을 짚은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해체의 세계적 흐름에 나름 적극적으로, 민감하게 대응했다. 아울러 이는 87년의 여파가 여전히 컸기 때문에 정권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이러한 기조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87년 민주세력의 분열이 없었다면 민주통합정부의 북방정책은 남북의 더 깊은 신뢰 속에 진행되었을 것이고, 유엔동시가입은 필시 양국체제로 결실을 맺었을 것이다. 유엔동시가입 체제란 2국가체제다. (사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런 배경 위에서 노태우 정부는 집권 초기인 88년부터 7·7 선언을 통해 남북 간 대결노선을 끝낼 것을 제안하게 된다. 한국은 소련, 중국과 관계 개선하고, 북한은 미국, 일본과 관계 개선하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 역시 단순히 수사적 기만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당시 냉전해체기의 대세 속에서는 상당히 실현성 있어 보이는 제안이었다. 실제로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연장선에서 1991년 9월 남북이 유엔에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하고,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교환했다. 이로써 남북이 최초로 두 개의 주권 국가임을 국제적으로 그리고 남북 상호 공식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가 한반도 양국체제의 시발점이었다. 필자가 주장하는 양국체제는 새로운 무엇이 전혀 아니다. 30년 전인 그 때 이미 초석이 놓여졌다.
양국체제는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고, 남과 북도 두 개의 정상국가로 수교하면 되었다. 남과 북이 먼저 수교하고 이를 발판으로 북과 미국, 일본의 수교를 이끌어가는 수순이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당시까지 남북대화의 상황은 여기까지의 거리가 실제 한 발짝이었다. 진실로 큰 정치를 하는 정치세력, 지도자라면 진보·보수를 떠나, 남과 북을 떠나 이 방향으로 밀고 나갔어야 했다.
바둑을 복기해 보면 결정적 패착 지점이 있다. 87년 민주항쟁을 결국 박근혜 신유신 체제로 귀결된 ‘실패한 바둑’으로 본다면(촛불혁명은 새로운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그 결정적 패착점들은 무엇이었을까? 두 점, 87년 양김의 분열, 그리고 92년 북방정책의 역전이라고 본다.
87년 분열했던 한 세력이 냉전대결 세력에 합류하여(1990년 YS의 3당 합당) 이후 오히려 북방정책 역전의 주역이 되었다. 92년 대선 국면에서 양김 간의 경쟁이 북방정책, 남북화해정책에 제동을 거는 방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YS는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 기조의 지속이 DJ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87년의 패착, 92년의 패착은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다.
1988년 7∙7 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 경제교류가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북한의 연형묵 총리를 만나는 노태우 전 대통령.
3. 1국가2체제로는 남북문제 풀리지 않아
만일 87년 민주세력의 분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민주통합정부의 북방정책은 남북의 더 깊은 신뢰 속에 진행되었을 것이고, 유엔동시가입은 필시 양국체제로 결실을 맺었을 것이다. 유엔동시가입 체제란 2국가체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정상화하는 것이 양국체제다. 양국 간 수교가 그 핵심이다. 물론 주요 주변 국가들과의 교차승인이 병행된다. 이러한 상태가 되었다면 북핵 위기가 현재와 같은 정도로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북핵 위기에 오히려 신이라도 난 듯 기세를 올리고 있는 세력도 일찍이 사라졌을 것이다.
혹시 양국체제가 아닌 1국가 2체제(일국양제)와 같은 것은 어떠한가? 그러나 이런 방식은 중국-홍콩처럼 어느 한쪽의 규모와 힘이 압도적으로 클 때나 가능하다. 오늘날도 1국양제를 주창하고 있는 중국은 대만의 유엔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남북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풀리지 않는다. 통일의 지향이 있다면 오히려 이를 깊이 묻어두어야 한다. 그럴수록 통일은 살아난다. 반면 통일을 꺼내놓고 목표로 하면 할수록 통일은 요원해진다. 이러한 기막힌 사정은 이 땅에서 살아본 사람들만이 안다.
한반도 상황에서 당장 1국가 2체제를 하게 된다고 하면 통일을 목전의 목표로 두는 여러 구상들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30년 전 당시 남북의 상태에서도 통일을 당면한 목표로 하는 것은 무리였다. 만일 그런 방향으로 실제로 진행하려 하였다면 남북 모두에서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을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화해 정책이 결국 후폭풍에 휘말려버린 데는 1국양제냐 양국체제냐의 전략 판단이 분명치 못하고 애매했던 이유도 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상황은 이미 양국체제를 실현시킬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 이전 87년 이후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 있던 탓이다. 90년 3당합당으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돌이키거나 바로잡을 만큼의 힘이 당시의 두 정부에는 없었다. 오직 2016-2017년의 쓰나미와 같은 촛불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이번 촛불혁명 이전에 그럴 수 있었던 역사적 가정은 오직 87년 민주세력이 단합된 힘으로 민주통합정부를 구성했다고 생각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 당시 남북 두 국가가 수교하여 공존하는 양국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한반도는 오늘날의 위태로운 상황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큰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남북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더욱 안정된 상태에 있을 것이다.
이 길을 우리는 30년 전에 놓쳤다. 딱 한 걸음을 떼지 못해서 말이다. 양국체제란 전혀 없던 목표를 갑자기 인위적으로 만들어 달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30년 전에 눈앞에서 놓쳤던 기회를 이번에는 꼭 잡아 반드시 이루어내자는 것이다. 미처 떼지 못했던 그 한 걸음을 이제 마저 가자는 것이다.
4. 여전히 강고한 촛불의 힘, 남북위기 돌파 동력으로
현재의 상황을 보면 30년 전에 비해 좋아진 점도 있고, 나빠진 점도 있다. 87년 후 30년만의 새로운 범민주항쟁, 즉 촛불혁명은 민주세력의 분열을 허용하지 않았다. 촛불혁명은 촛불정부로 이어졌다. 탄핵찬성-적폐청산으로 모아진 촛불의 동력은 여전히 강하다. 이 단합된 힘을 유지해 갈 때, 촛불혁명은 반드시 완수될 수 있다. 촛불혁명의 내적 동력을 견실하게 유지해가기만 한다면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킬 계기가 반드시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적 환경은 30년 전과 비교해 더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30년 전에 비해 미국은 중국을 훨씬 더 경계하고 있다. 또 30년 전에 비해 북한은 더 공세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한 나라가 되었다. 아울러 큰 합리성 위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기 어려운 정부가 미국에서 집권 중이라는 사실도 우리에게 핸디캡이다. 이런 조건들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고 외적 변수가 모두 나빠진 것은 아니다. 30년 전에 비해 세계 상황에 대한 일반의식은 오히려 우호적인 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과거의 냉전체제, 또는 90년대 미국 일극주의는 확실히 과거의 일이 되었다. 학자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세계에 벽이 없다. 이제 오히려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나 유럽의 극우파 정도만이 세계에 벽을 새로 세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자연스럽다거나 보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세계인들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북미간의 막말 전쟁은 가장 불미스러운 현상에 속한다. 보기 딱할 뿐 아니라, 한반도 남북 모두에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 현실적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돌출 현상의 원인 해소에 대중적 관심, 세계인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돈을 나눠주는 진짜 이유는, 그래서 얻는 이득은 뭐냐고요? 왜냐하면 이게 우리 삶이니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일을 하는 것이며 세계의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역할을 하는 것”, “우리는 이렇게나 많은 부를 소유한 반면 다른 수십억명이 그렇게나 적게 갖고 있다는 건 불공평한 일”, “우리의 부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닫힌 문을 연다는 사실도 불공정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어떤 영향력이든 행사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전 세계의 공정함을 개선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 (‘자선가’ 게이츠 부부의 고백…”우리가 베푸는 이유는”, http://news1.kr/articles/?3236871)
세계 최대 부자이자 최대 자선사업가인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 이 같은 기부에는 자신들이 이룬 성취와 부는 인류가 함께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에 기대고 있어서 부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위의 발언들은 세계 최대 자선사업가인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가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발표한 2018년도 연례 공개 편지를 통해 지난 18년간 지속해온 거액의 사회환원 뒤에 숨은 속내를 밝히면서 한 발언들 중 일부다. 세계 최대의 거부이자 세계 최대의 기부자다운 인식이고 발언이다.
빌 게이츠 부부의 선행을 보면서 문득 빌 게이츠 아버지의 발언에 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하진 않지만 빌 게이츠 아버지가 아들의 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아들이 이룬 성취와 부는 인류가 누대에 걸쳐 축적한 지식과 기술에 압도적으로 기대고 있어서, 아들이 부의 대부분을 기부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천만번 지당한 말이다.
나는 우리가 정의의 원리에 입각해 과세의 원리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과 인간이 만든 걸 구분해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 등 천연자원의 가치는 사회화 하는 것이 맞다. 토지 등의 천연자원은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이며, 공급이 한정된 토지 등의 천연자원을 특정인이 소유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약하고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따라서 토지 등의 천연자원은 공공을 위해 사회화되는 것이 정당하며 효율적이다.
그 다음 인간이 만든 가치 중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금융과 인프라망, 특수직역 같은 것들과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만든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 인간이 만든 가치 중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금융과 인프라망, 특수직역 같은 것들의 경우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 등의 천연자원만큼은 아니지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사회화하는 것이 맞다.
한국의 조세체계는 소득불평등 개선효과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이미지:매일경제).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가치 이외에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만든 가치는 온전히 사유화하는 것이 옳을까? 결단코 그렇지 않다.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이룬 성취는 크게 인류가 누대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그 중 정부가 기여한 몫이 크다), 운(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 등이 운의 영역인데 이 영역은 통제할 수 없지만 규정력이 압도적이다), 노력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인류가 누대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 운, 노력 가운데 어떤 요소가 법인, 단체, 개인의 부 창출에 얼마만큼 기여하는지를 계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요소가 인류가 누대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 운의 합보다 크다고 강변하는 게 어리석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인이나 단체, 개인이 이룬 성취와 사회적 부조차도 크게 인류와 운에 빚지고 있는 셈이며, 따라서 고율의 법인세와 소득세가 정당화된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변수가 있으므로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창출한 부에 대한 사회화의 강도는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가치에 대한 사회화의 강도보다는 약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가치의 사회화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가치의 재분배 도구인 과세의 일반원리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것에 가장 무겁게 과세하고, 공공이 만들거나 부여한 것이 그 다음이며, 법인이나 단체나 개인이 만든 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리고 과세의 일반원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대(특권)가 가장 적확하다. 지대 혹은 특권의 성격이 짙은 순서대로 과세하는 것이 가장 정의롭고, 공정하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DC –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본인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며,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너희를 도울 수 없다. 아무도 너희를 돕지 못 할 것이다.”
때는 2000년 6월이었고,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 깊은 대화를 나누던 시기였다. 미국과 북한의 기본 합의가 마련된 지 거의 6년이 지났고, 각 동맹국은 북한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동시에 남한 및 국제사회와의 점진적 경제교류 확산으로 북한을 이끄는 중이었다.
4개월 후 조명록 장군이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했고, 양국 정부는 “어떠한 적대 의사도 없으며 …… 향후에는 과거의 적대감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당시 북한에는 핵무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있었다.
18년 후 무언가 가능성과 기회를 창출하는 데 남한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탐색하기 위하여,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특사를 보낸 일은 타당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 상대인 북한으로부터 의미 있는 제스처를 끌어내어, 북미 대화가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또한 남북 대화와 동시에 관계 회복의 심화에 필요한 국제 사회의 단결을 자신이 이끌어야만 한다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위치 뒤바뀔 것인가
그러나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다면, 문 대통령은 마침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운전석”에 비집고 들어가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아베 신조와, 한반도 정책이라는 자동차의 트렁크 속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까지 있던 자리에 말이다.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은 앞 다퉈 뒷자리로 물러나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옆 자리 조수석에 앉는다. 차에 오른 사람들 모두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일이다.
북한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스처는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세 명의 미국인을 석방하는 일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향후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한다는 선언이다. 북한의 이 같은 제스처가, 안전보장과 경제개발 이슈를 무시하고 오로지 핵무기 프로그램에만 집중해 온 미국의 공허한 입장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스처를 통해, 남북의 두 지도자는 다가올 4년 동안 가능한 일들을 탐색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제 정의용 안보실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미국과의 조율을 담당했던 정의용 실장은 이제, 미국을 달랠 제스처와 상징적 표현을 찾아내고 미국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세심한 작업을 맡게 되었다. 한편 서훈 국정원장 역시, 10년에 걸친 보수 정권의 무관심 속에 위축되어 온 남북의 경제 및 정치를 다시 연결하는 민감한 역할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개월 동안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고자 했지만 혼자서 이를 이루어 낼 수는 없었다. 문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두 명의 파트너는 시진핑과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될 것이다. 남한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는 언제나 시진핑과 문 대통령의 관계이다. 무엇이 되었든, 이번 주 이루어진 청와대의 평양 특사 파견에서 도출되는 어떠한 추진 계획이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일이 이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가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있다. 뒤로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보인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문 대통령과 구테헤스의 대화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거나, 아니면 두 사람은 트럼프를 진정시키기 위해 매우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이 보다 현실적인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말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최대의 압박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 들였다”라는 대단히 해로운 (그리고 십중팔구 틀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여 왔다. 미국의 최대 압박과 이를 실행에 옮긴 다양한 수단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대단히 설득력 있게 제기될 수 있다. 미국의 최대 압박이 지난 10년간 생산적 외교를 가로막아 왔다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이다. 다각적인 제재와 미국의 어마어마한 군사 위협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의미 있는 양보를 내놓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제재들을 조속히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문 대통령은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난달 평창에서 두 사람이 이 문제에 관하여 논의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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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게 주어진 기간은 약 3년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국내 정치 갈등이 한반도 정책에 관한 이슈를 덮기 전까지 말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에 묶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내 트럼프의 백악관을 상대해야 한다고 가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여유가 없다. 문 대통령이 이전에 보좌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허약했고, 지금보다 훨씬 유능한 미국 정부를 상대해야만 했다. 두 요인으로 인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성과는 치명적으로 제한되었다.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큰 도전은, 기존에 서울과 워싱턴의 진보적인 시도를 좌절시켰던 그 장애들을 회피하는 일이다. 왜 진보적 시도를 콕 집어서 지목하는가? 북한의 비핵화와 안전보장 및 경제개발, 남한의 중견국가 역량 확보 등 상호 연관된 이슈들이 근본적으로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정치적 편의에 의하여 이들 이슈가 이데올로기와 정파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서울과 워싱턴 모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외교에 반대하고 강압을 지지해왔다. 결과는 한 세대에 걸쳐 벌어진, 다양한 수준의 정책적 재앙이었다. 이 재앙은 주로 동북아시아에 해당되지만 미국의 국익에도 마찬가지 결과였다.
양국 정치권에서 외교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외국 정부 및 국제기구와 맺은 협상결과,그리고 이들과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오랫동안 보수 정당이 지녀 온 단순한 세계관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 보수정당이 명확하고 일관된 세계관, 혹은 전략적인 모든 세계관으로부터 동떨어져 왔다는 사실 역시 우연이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오바마의 민주당 백악관이 보여주었듯이, 전문성을 무시하고, 기대 수준을 낮추고, 전략적 기회보다는 눈앞의 국내 정치를 우선하는 결정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의 혼동을 17년 동안 겪은 결과, 대부분의 주류 정책결정자 사회에서는 지금 가용한 현실적인 대안들이 혼란스럽다. 학자와 싱크 탱크, 대학 연구소, 전통 미디어와 최근 확산되는 디지털 미디어 모두가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와 정책 시스템의 극단적인 양극화 및 와해를, 선택 가능한 현실의 전략 전술적 기회로부터 구분하라고 이들에게 요구하는 일은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이들이 해야 할 일임은 당연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지독한 비극을 목격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주제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두고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에서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애써 외면된다.
서울의 모든 동네에서 가족이 운영하는 식료품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해 왔는데 대단히 걱정스럽다. 이전에 동네에서 빵집을 시작하려고 했던 용기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 했고, 가족이 운영했던 빵집들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무엇을 사고팔아야 할지, 공간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가게들은 최후의 기댈 언덕이다. 이런 사람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중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민주주의의 종말이다. 이제 지역사회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가게들이 왜 이리도 빨리 문을 닫고 있는지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사정을 알고 있는 분들이 논의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유통 시스템이 이들을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청난 자본을 배경으로, 경쟁 상대를 시장에서 몰아내기까지 수개월에서 수년간 적자를 견딜 수 있는 편의점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는 아마존 모델이자 구글 모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오래된 모델이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 게임이 과거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 게임을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결과는 뻔하다.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택시를 몰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일을 하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관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고 위에서 시키는 규칙을 그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수입 수준이라는 면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웃 문화의 상실이라는 면에서도, 그 결과가 빈곤이 될 것이란 점은 명확하다. 도시가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과 은행의 멋지고 깔끔하며 널찍한 내부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대기실의 호화로운 좌석이 많이 비어 있는 일이 자주 있다. 일반 계좌를 가지고 외국에 송금하기 위해서 길게 줄 서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바로 옆 사무실에서는 상냥한 젊은 여직원이 이른바 VIP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다. 어쩌다 한 번 들르는 기업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은행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은행들은 몇몇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가.
상위의 중산층에게 경고하고 싶을 뿐이다. 엄청난 경제적 균열을 만들어 낸 금융 중심의 우리 경제 속에서, 자신의 경제생활은 결코 똑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상위 중산층에게 말이다.
이윤이 좌우하는 경쟁적 시장경제에는 한계가 없다. 주식시장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자신이 너무 나간 것은 아닌지 곰곰 돌이켜보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사회의 철저한 붕괴가 훨씬 빨리 다가올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국군 뒤통수를 치는 ‘국군 뒤통수권자’라고 한다. 청와대 주사파 물러가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냐, 북조선 인민민주주의 김정은의 친구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유한국당은 지난 2월26일 오후 3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김영철 방남 규탄집회’를 열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비난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을 향한 두 사람의 발언은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지난해 12월12일 ‘친홍계’ 김성태 국회의원(3선·서울 강서을)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108표 중 55표를 얻어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당선 뒤 “대여 투쟁력을 강화해서 문재인 정권의 폭정과 전횡, 포퓰리즘을 막아내는 전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거친 말로 투쟁력을 높였다. 1월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이면계약 논란을 두고 “UAE 게이트는 본질은 문재인 정권의 과도한 정치보복이 초래한 외교적 위기”라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정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2월21일 권성동·염동열 의원에 대한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로 자유한국당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실랑이를 벌이던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전사’로서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이 청와대에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자신의 말에 청와대 실무자가 웃었다며 따지다가, 임 비서실장에게 “발언대에 서 보십시오. 발언대에 서세요!”라고 호통을 쳤다. “최대한 시간을 달라. 화를 왜 저한테 푸는지 모르겠다”던 임 비서실장에게 김 원내대표는 “국회를 무시하고 협조 안 한다면 심각한 상황으로 본다”, “여기는 국회다”라고 답했다.
2월26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을 재차 비판하며 “상황이 이토록 엄중하고 국민적 갈등이 깊어지는 마당에 컬링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는 딴 소리를 하는 대통령을 보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컬링이 그렇게 재밌는지 몰랐으면 감당 못할 나랏일을 덮어두시고 이참에 컬링을 배우는 건 어떤지 권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 탄핵 반성했던 한 새누리당 의원
대통령 견제는 야당의 권리이자 의무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대여 투쟁력을 강화하겠다”던 지향 자체를 비판하긴 어렵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김성태 원내대표의 투쟁법은 홍준표 대표와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제기됐던 때 그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 시절 2016년 11월17일부터 2017년 1월15일까지 60일 동안 활동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최순실씨, 최순득씨,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무더기로 국정조사에 출석하지 않자 “인권이란 명분 속에 서슴없이 몸을 숨기는 행위야말로 국정농단 인물들이 얼마나 후안무치·안하무인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증인으로 채택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잠적’하자 <TV조선>에 출연해 100만원 현상금을 내걸었고, 국정조사에 출석하고도 자세가 나빴던 우 전 수석에게 “자세가 그게 뭐에요! 자세 똑바로 하세요”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여당 의원이었지만 국정조사에서 보여준 속 시원한 모습에 ‘MC성태’, ‘호통성태’라는 ‘애칭’도 생겼다.
그의 쓴 소리는 국정농단의 최종 책임자인 박 전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2016년 12월9일 그는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드린다’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역사의 죄인으로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소멸되어야 할 것임을 천명한다. 새누리당은 해체하고 박근혜 정권의 구태는 역사 속으로 소멸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같은 해 12월27일 비박계 의원 29명과 함께 “진정한 보수 구심점이 되겠다”며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 창당까지 선언했다. 2017년 1월24일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과오를 사죄드린다’면서 무릎 꿇은 의원들 중에는 김 원내대표도 있었다.
■ 돌아온 탕자? 개혁보수 코스프레였나
하지만 김 원내대표가 탈당 126일일 만인 2017년 5월2일 ‘친북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대동단결해야 한다’며 바른정당을 버리고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수많은 정치인이 앞서 걸었던 ‘철새’, ‘박쥐’의 길을 택했다. 김 원내대표 등 바른정당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그리던 ‘새로운 보수’, ‘보수의 새 가치’를 126일 만에 찾았을 리 없었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7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었다.
2017년 5월1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 원내대표는 “병든 보수,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유한국당을 나름대로 고쳐보겠다고 뛰어들었다”고 ‘자유한국당 회군’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지방선거도 얼마 안 남아서 하부조직이 무너져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 이게 훨씬 명쾌한 답변 아닌가요”라고 묻는 김어준씨에게 “그런 답변을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고 에둘러 인정했다. 그렇게 그는 1년간의 ‘개혁보수 코스프레’를 마치고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가 돼 홍준표 대표와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김 원내대표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195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83년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건설노동자로 2년간 일했다. KT 자회사에 1985년 입사한 뒤 노조위원장을 거쳐 1994년 전국정보통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에 당선됐고,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임기를 마치고 2002년부터 한국노총 사무총장,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근로자위원 등을 맡으며 노동운동을 이어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2007년 대선에서 한국노총이 ‘친기업·반노동’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공식 지지해 노동계 안팎의 비판을 받은 직후였다. 한국노총은 18대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한나라당을 지지했는데, 김 원내대표는 이 선거를 시작으로 2016년까지 서울 강서을에서 계속 당선됐다.
개혁을 버리고 김 원내대표가 선택한 자유한국당은 10%대 초반 지지율에서 고전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800명을 대상으로 2월27~28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이 44%, 자유한국당이 13%, 바른미래당이 8%, 정의당이 6%를 차지했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은 5일 “여론조사가 아닌 여론조작”을 한다며 한국갤럽 불신 캠페인을 하겠다고 밝혔다. 탄핵 때는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버리고, 대선 때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왔던 김 원내대표는 3개월 뒤 지방선거 결과엔 어떤 리액션을 내놓을까.
지난 3년간 적자에 시달리던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장의 노동자와 지역경제가 시름에 잠겼다.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예고된 수순이라는 분석과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이런 일이 대개 그렇지만,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가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잠시 뒤로 넘기고, 과거 GM이 경험했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번 사태를 곰곰이 곱씹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GM의 창업과 전성기
1908년 창업 이후, GM은 앨프리드 슬론(Alfred Sloan, 1875~1966)이 회장을 맡으면서 당시 업계의 최강자였던 포드를 뛰어넘게 된다. 이후 포드는 한번도 GM을 능가하지 못했다. 슬론 회장은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기능별 조직(U-form Organizatio)을 사업부제 조직(M-form Organization)으로 새롭게 개편하는 혁신을 선도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경영대학원(슬론 스쿨)이 MIT에 설립되어 있다.
초기의 GM은 기업 규모의 확대에만 관심을 두고 방만하게 운영되었는데, 1923년 슬론은 회장이 되자마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던 것이다. GM의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체제를 뜯어고치고, 분권화된 경영방식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사업부간 상호협력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최대한의 분권화와 적절한 중앙통제를 가미한 혁신적인 경영실험이었다. 이를 통해 GM은 자동차산업의 일인자로 등극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미국은 세계 산업생산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른바 빅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미국 전체 자동차시장의 90%를 점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이후 GM은 손익계산서에만 매달리는 재무 출신의 경영자들이 지배하는 회사가 되었고, ‘GM은 실패할 수 없다’는 오만한 인식에 젖은 채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1970년대의 위기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이미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 된 일본과 독일의 폴크스바겐 등 소형차들이 미국의 자동차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73년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미국 소비자들도 작고, 연비가 높은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GM은 여전히 대형차에 집착함으로써 작고 경제적인 세컨드 카를 원했던 소비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내부적으로도 노동자들을 로봇으로 대체하여 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고 말았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될 문제에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의 인간적 측면을 소홀히 하고, 기술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그 기술의 효율성마저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에서 정립된 이론인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은 이처럼 기술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의 문제와 조직내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그 대상으로 함으로써 노동의 인간화(Humanization of work)를 실현하려고 했던 이론이었다. 그러나 당시 GM에게는 대서양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GM의 변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GM은 일본 자동차회사의 눈부신 성공(값싸고 품질 좋은 차)이 무엇에 기인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술우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대한 접근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계에서도 일본계 미국인 3세인 윌리엄 오우치 교수가 미국기업과 다른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여 ‘Z 이론’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일본기업은 종신고용을 통해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심어서 충성심을 유도하고, 품질분임조(QC)를 통해 작업의 구성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품질개선을 위한 공동작업을 하고, 자신과 회사를 위한 개선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우치는 미국기업과 일본기업은 조직관리와 경영관리방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 일본기업의 장점을 채용해서 미국기업에 적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결국 GM은 소형차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면적인 조직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1983년 GM은 도요타(Toyota)와 합작하여 ‘누미(NUMMI; 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라는 이름의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소형차를 생산하기 위해 경쟁자로부터 배울 건 배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새턴(Saturn) 프로젝트
경쟁력있는 소형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GM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혁신적인 회사를 설립하는 새턴 프로젝트가 계획되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이 계획에 따라 1985년 GM의 독립자회사인 새턴(Saturn Corporation)이 테네시주 스프링힐에 설립되었다.
새턴의 설립에는 공장관리자, 생산노동자, 숙련기술자, 노조대표, 그리고 GM과 UAW(전미자동차노조)의 스탭들로 구성된 ‘99인 위원회’라는 노사공동 프로젝트팀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다른 기업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50개에 달하는 GM의 다른 공장들과 60개의 다른 기업들을 방문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의 성공요인을 나름대로 정리하였다.
1985년 GM과 UAW 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에는 이러한 새턴의 혁신적인 경영철학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압축해서 말하면, 인간공학적이고 원가 효과성(cost effectiveness)을 가진 최첨단기술을 통한 생산, 새로운 인간관(인간에 대한 열린 태도)을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 통합적인 경영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혁신적인 소형차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사회기술시스템에 경영시스템이 가미된 신사회기술시스템, 즉 인간-기술-경영시스템에 의한 공동 최적화(Joint Optimization)를 이루어 혁신적인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새턴에서는 공동결정제도의 원조인 독일보다도 어쩌면 더 높은 수준의 노사파트너십에 의한 노사관계를 형성하였다. 현장자율 경영팀에 의한 노사 공동경영을 통해 새턴은 자동차 판매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993년에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하게 된다. 프레데릭 테일러(F. W. Taylor)에 의해 분리되었던 구상(Thinker)과 실행(Doer)이 GM 새턴 공장의 현장자율 경영팀에서 다시 통합된 것이다. 과학적 관리법이 출간된 1911년부터 계산하면 햇수로 74년 만이 된다. 세계 곳곳의 공장조직에서 여전히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기법이 대세를 이루는 점을 감안하면 새턴의 혁신작업은 가히 혁명적이라 부를 만하다.
그 후의 GM, 그리고 군산
2009년 파산신청까지 했던 GM은 이후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겨우 회생했다. 생존을 위한 글로벌전략을 수립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GM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인수했던 영국의 복스홀(Vauxhall), 독일의 아담 오펠(Adam Opel), 그리고 호주의 홀덴(Holden)을 최근에 모두 매각, 폐쇄했다. 굳이 구조는 전략을 따른다는 앨프리드 챈들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GM의 글로벌 사업구조는 글로벌 사업전략을 따른 것일 것이다. 그리고 하버드 사회학 교수인 탤컷 파슨스의 말처럼 사업구조는 또 그 기업의 목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의 사태가 모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결과인지, 혹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결말인지는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아마도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군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로운 노사파트너십의 탄생을 상상하며
나는 군산에서 1985년 테네시주 스프링힐에서 벌어졌던 극적인 노사파트너십이 재탄생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인간과 기술, 그리고 경영시스템이 통합된 신사회기술시스템(new socio-technical system)에 지역의 이해관계가 모두 통합된 새로운 개념의 사회기술시스템이 한국의 군산에서, 그것도 위기의 벼랑 끝에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통합 신사회기술시스템’에서는 아래와 같은 사항들이 주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중장년층의 고용연장과 기업의 비용 절감이 무모순적인 관계가 되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하고, 이를 위한 연결고리가 생산성 향상임을 직시하고, 교육훈련에 적극 투자한다.
연공급이 우리사회의 구조에 적합한 임금체계였으나, 연공급의 전제인 근속기간 증가에 따른 숙련향상, 이를 위한 교육훈련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못함으로써 연공급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던 측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져온들 운용에 실패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니 그 제도의 전제와 내용을 철저히 분석하여 파악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도입’보다 더 중요하다. 이는 독일식 직업학교제도와 공동결정제도(노동자대표이사제)를 도입할 때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노동조합은 정치적조합주의, 경제적조합주의를 넘어 국민적조합주의로 나감으로써, 노사관계를 공동이해를 가진 사회적 파트너 관계로 만들어야 하고, 생산성 향상의 주체로서 회사의 하이로드 전략(고숙련-> 고부가가치 -> 고임금)에 파트너로서 참여해야 한다.
노동의 목표인 임금인상과 경영의 목표인 생산성향상을 무모순의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trade-off 관계가 아니다. 노동의 합리화(사측)와 노동의 인간화(노측)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노사간 파트너십의 형성이란, 각 동업자(파트너)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서로 제휴하여 협력할 때, 각자가 따로 했을 때보다 더 큰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의 글로벌 경영에서는 해외에 값싼 노동력이 항상 대기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원하청간 노동조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지역의 이해관계를 기업의 사회기술시스템에 통합시키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공포에 의한 관리(Management by Fear), 테일러식 과학적 관리법에 따른 구상(Thinker)과 실행(Doer)의 분리 등 한물간 경영방식에 따르는 필연적인 노사갈등 대신에, 조직내 기술체계와 사회체계(인간)가 공동 최적화를 이루고, 여기에 TPS(도요타생산시스템)와 같은 첨단 경영시스템과 새로운 차원의 통합적 이해관계자모델을 접목하여 한국형 노사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기업은 지나간 산업화모델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람=비용이라는 협소한 인간관을 수정하여 사람에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자율성, 창의성이 창발되고, 이것이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영관리방식을 만들고, 작업방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결국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일대 각성을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없는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 전환부터 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이를 체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선진사례들로부터 배운 새로운 노사관계와 새로운 경영 혁신안들을 우리 방식으로 맞추어 나가야 한다. 한방에 이루겠다는 기대부터 접어야 한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야말로 흔들림 없는 우리만의 제도와 규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한국GM 사태가 가리키는 곳이 여기가 아닐까? .
<프레시안>의 성추행 의혹 보도를 두고 당사자인 정봉주 전 의원(58)과 <프레 시안>의 공방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정정보도와 사과가 없다면 프레시안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레시안이 가짜 뉴스를 서울시장 출마 선언식 1시간 반 전에 보도함으로써 출마를 못하게 하고 정치생명을 끊어놓으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기자회견 직후 <프레시안> 홈페이지는 일시적으로 접속 불능까지 됐다. 정 전 의원의 지지자들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여성이 누구인지 밝히겠다며 엉뚱한 사람을 지목해 ‘신상털이’에 나섰다가 60여명이 무더기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을 비롯해 <프레시안>과 관련 인물들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프레시안>은 후속 보도로 반격했다. 정 전 의원의 팬클럽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카페지기였던 닉네임 ‘민국파’가 “당시 정 전 의원을 (피해자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렉싱턴 호텔로 데려다줬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국파’는 정 전 의원과 이미 사이가 벌어진 상태이고 미권스 카페에서도 문제가 된 인물이어서 증언의 신빙성이 없다는 반박도 나왔다. 정 전 의원 역시 “민국파는 수행 비서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해당 보도를 한 <프레시안> 기자를 비롯해 몇몇 언론사 기자를 검찰에 고소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민국파’는 “피해자도 모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렉싱턴 호텔에 간 사실을 양심에 따라 진술했을 뿐”이라며 “저에 대해 각종 음해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미 정 전 의원이 먼저 도와 달라 제안해 화해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 7일 <프레시안>이 현직 기자 A씨가 기자 지망생이던 대학생 시절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 카페 룸에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이 보도로 정 전 의원은 당일 예정돼 있었던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까지 뒤로 미뤘다. 정 전 의원은 이틀 뒤 보도자료를 통해 “그 날 렉싱턴 호텔을 간 사실 자체가 없고 A씨를 만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프레시안>은 피해자 A씨의 당시 남자친구였던 K씨가 사건이 벌어지고 2주 뒤 A씨로부터 받았던 e메일에서 이미 피해 사실을 밝혔을 뿐더러 이외 다른 지인들 역시 당시 피해 사실을 들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다만 이 e메일에서 사건 날짜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표현됐는데, 이를 두고 정 전 의원은 최초 2011년 12월23일이라고 보도했던 성추행 날짜가 24일로 바뀌는 등 보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공박했다.
정 전 의원은 당시 대법원 확정 판결과 수감을 앞두고 정신없는 와중에 모친까지 쓰러져 병원에 가야 했고 이후 명진 스님을 만나는 등 A씨를 만난 여력 자체가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동시간대 찍은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있다. 피해자 A씨는 <프레시안>을 통해 입장을 밝히면서 “사적인 e메일에서 잠시 날짜를 혼동해 썼을 뿐 날짜를 번복한 적 없다”며 “2011년 12월23일 렉싱턴 호텔 1층 레스토랑에서 성추행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 잘난 척을 밉지 않게 하는 정치인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17대 전 국회의원,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위대한 정치인,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정봉주 전 의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주었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의 자기소개는 한때 가수 이승환까지 방송에서 따라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지역구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1960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당시 경기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봉화 정씨로 정도전의 후손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경찰서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집안 환경은 넉넉한 편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고교생 때는 복싱을 했는데 ‘전설의 일진’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 선수가 절친한 후배인데 지금도 “아마추어 대회 나가면 챔피언 먹는다”고 대회 나가자고 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외대 영어과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참여해 총학생회장과 민주화추진위원회 회장을 지냈다. 1983년에는 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6개월 형을 살았다. 당시 ROTC 22기 후보생 신분이었지만 임관을 앞두고 제명됐다.
1985년 대학 졸업 뒤에는 도시빈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운동권에서 ‘마당발’로 통했다고 한다.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이 됐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간사와 월간 <말>지 기자로 활동했다. 민주 운동단체의 전국 통합 조직이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과 그 후신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전민련)의 기획차장으로 활동했다. 민통련 의장이었던 문익환 목사를 4년여간 수행·보좌하기도 했다. 훗날 BBK 사건 의혹 제기로 수감되기 직전에 문 목사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한 이유다.
영어과 출신이기도 한 그는 ‘영어’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았다. 재야 단체의 각종 외신회견에 단골 통역을 맡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도 영어학원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1989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교사 양성 과정인 TESOL 과정을 마쳤다. 1991년에는 서울시 의원 선거에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이후 모교인 한국외대와 손잡고 프랜차이즈 영어 학원인 외대어학원을 운영했다. 전국적으로 20여개의 분원까지 둘 정도로 성공했는데 이 시기에 “빌딩 한 채를 샀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했을 정도다.
정치권에 입문해서는 김근태 계열의 인사로 분류됐다.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도 김근태 캠프에 참여했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서울 노원구 갑에서 국회의원에서 당선됐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 사건’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결국 이 때 활동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뒤에 징역형까지 치르게 된다.
2008년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그가 진짜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우주는 나를 기준으로 돌아간다”며 모든 것을 자기자랑으로 마무리하는 ‘깔때기’ 화법은 거부감을 주기보다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꼼수다>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부각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의 인지도와 인기도 수직 상승했다.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의 회원 수는 10만을 가뿐히 넘었다. 그러나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 BBK 사건 의혹 제기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되면서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감옥에서도 그는 ‘식스팩’을 만들어 나올 정도로 열심히 운동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미리 트레이너에게 맨손으로 운동하는 법을 배우고, 좁은 감옥에서 자는 연습을 미리 하기 위해 집 한켠 파우더룸 바닥에 쭈그리고 잤다고 한다. 수감 중 모범수로 선정됐지만 가석방은 되지 못하고 ‘정치인 최초’로 만기출소했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대한문 쌍용차 농성천막과 한진중공업 고 최강서 노동자의 장례식장, 한상균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올라가 있던 평택 송전탑 등을 찾았다. 이후 오프라인 정치강좌를 이어가기도 했고, 경북 봉화로 내려가 살면서 봉봉협동조합을 창립하기도 했다. 진보 진영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부수고 싶었다고 했다. ‘미권스’ 회원들을 참여시켜 협동조합이든 농촌공동체든, 사업이든 시작해 보겠다고 했다.
‘정치 본능’은 버리지 못했다. 2014년 1월부터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를 시작하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청담동에 오프라인 문화공간 ‘벙커’를 만들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종합편성채널의 방송프로그램에 패널, 진행자로 출연하면서 보폭을 넓혀갔다. 선거법 위반 실형 선고로 2022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였지만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관리를 해 온 셈이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통한 복권은 그에게 있어 ‘화룡점정’이었을 것이다. 선거 출마 기회를 얻은 그는 서울시장 출마선언까지 거침없이 내달렸다.
■ 최고의 순간에 위기를 맞다
정 전 의원은 새벽 4시까지 자료를 읽다가 잠들고, 오전 5시50분에 일어난다고 한다. 체육관에 가서 2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각종 프로그램 녹화를 진행한다. 부족한 잠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채우는데 하루 3시간 남짓 잔다고 한다. 그의 열정은 놀랍다. 기자회견을 저지하려던 조계사 여신도를 폭행한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다혈질’이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와 동시에 “단군 이래 최초로 휴대전화 번호를 명함에 찍어서 공개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화끈하고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전에 문익환 목사는 정말 쉬운 표현을 썼다. 구어체로 글을 썼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설득력이란 쉬운 데서 나온다.” 정작 정치인으로서 크게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정치를 일상생활로 불러 내리는 데 그는 큰 역할을 했다. 배운 사람들일수록,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보통 대중들이 어리석어서 일이 안 된다고들 한다. 그것이 진정 대중을 움직이지 못한 아쉬움의 토로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틀이나 수사를 정당화시키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 전 의원은 그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패배에 대해서도 “실패가 아니다. 48%를 우리가 언제 얻은 적 있냐. 그걸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수감된 직후 ‘정봉주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를 옭아맨 허위사실 공표죄가 선거 과정에서 검증과 의혹제기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취지에서 ‘허위임을 알고도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공성에 부합한다면 처벌도 면책되도록 하는 조항도 넣었다. 결국 개정되지는 못했지만 감옥을 가면서까지 그가 걸었던 길이 의미 없지는 않았다는 방증이다.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진실을 폭로했다가 감옥살이까지 한 그처럼, 2018년 오늘에는 많은 이들이 성추행 피해 경험을 어렵게 털어놨다가 신상털이와 인신공격, 심지어 무고죄까지 뒤집어쓴다. ‘가카의 비행’을 폭로하는 일과 ‘미투 운동’은 서로 경중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광범위한 사회 변혁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가 받고 있는 성추행 의혹은 뼈아프다.
정 전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수감 중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15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울었어요. 가족이 보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어도 제 양심에 비춰 잘못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요. 어저께 잘못한 거, 그저께 잘못한 거, 한 달 전에 잘못한 거, 1년 전에 잘못한 거. 이게 어디까지 올라가냐 하면 5살 때 잘못한 것까지 기억이 나면서 멈춰요. 그게 150일 걸린 거죠.”
정 전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라고 밝혔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투견 ‘핏불테리어’가 가장 좋아하는 상징물이라고 한다. 그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가카’는 검찰청으로 소환됐고, 구속에 사법처리까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던 그의 외침이 이제 서서히 거대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려 할 무렵, 역설적으로 그는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16일 정봉주 전 의원은 성추행이 있었다고 지목된 당일 하루 종일 1~5분 단위로 자신의 행적을 찍은 사진 780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프레시안>을 제외하고 고소를 모두 취하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프레시안>은 정 전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하겠다고 대응했다. 양쪽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모양새다. 진실이 어떻게 밝혀질지 주목된다.
■ 참고자료
[경향신문 2018-01-19] 정봉주 인터뷰 “MB, 법의 심판대에 서면 더 끔찍한 비리들 드러날 것”
대통령자문 국민개헌특별위원회의 개헌초안이 지난 13일 발표된 뒤 정치권을 중심으로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 4년 중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 일치와 총선 시기의 2년 교차 등이고, 보도자료의 내용 첫 번째 제안은 선거제도 비례성 강화이다. 이외에 기본권 강화, 직접 민주주의 요소 강화, 자치분권 강화, 대통령 권한 분산, 국회 권한(법률안, 예산안 심사권) 강화를 위한 제안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앞의 권력구조 관련 개헌안의 예상되는 효과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보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산하 국민헌법자문특위 정해구 위원장이 개헌 자문안 초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 확대는 다당제 경향을 강화시킨다. 현재도 그렇지만 어느 한 정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선과 총선 시점 2년 교차는 총선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정부여당에게 불리한 총선결과를 초래하여, 상시적 여소야대 국회의 분점정부 가능성을 높인다. 다당제와 상시적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타당의 협조가 절실해지며, 안정적인 협조를 위해 연립정부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반면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집권1기 동안 대통령의 집권당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조건이다.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에 집권당은 대통령 중심으로 응집성을 유지하기 쉽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선거를 치루는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의 동반 당선 가능성도 대통령의 권력 안정성에 도움이 되는 요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인이 대선 결선투표제나 비례대표제 강화 효과를 상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집권당내 차기 대권 후보자들은 당내 경선 승리가 힘들 때 탈당해도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선거나 국회심의 과정에서 3, 4위 정당(후보)의 영향력이 강화된다. 연립정부 구성이나 국회협조를 위해 장관직, 일부지역 공천, 정책 혹은 특정 지역 예산지원 등이 거래될 수 있다. 연립정부 하에서 정당간 협상은 국회뿐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전개된다. 정책조정은 행정부처 간에도 필요하지만, 단일 정부에서 대통령은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연립정부 내부의 조율이 되지 않는 경우 대통령은 연립정부 파트너 정당 대표에게 양보를 하든가, 아니면 레임덕을 감수해야 한다.
연립정부 구성 파트너는 선거결과에 기초하여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 간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정치 지도자들은 후보단일화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자율성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조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정치인들의 자율성이 커지는 만큼 이들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집권당뿐 아니라 연립정부 참여 정당 그리고 야당 등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성 제고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부개헌안은 국민들의 대통령제 선호와 진보진영의 비례대표제 선호를 조합한 것으로 보이며, 예상되는 효과는 미국보다 브라질의 권력구조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권력구조 측면에서 미국이 브라질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지만, 예상되는 효과를 고려할 때 브라질이 겪는 정치적 문제점과 미국 사례의 장점을 좀더 고려할 필요는 있다. 미국은 의회의 심의기능이 강한 사례라면, 브라질은 의회의 심의기능이 취약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브라질의 경우 행정부의 입법권이 강하고, 의회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입법교착이 정쟁의 수단보다 숙의의 계기로 활용될 수 있어야
또한 미국 정치에서 우리가 참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대통령 권력보다 연방의회의 심의과정이다. 미국도 최근 정치적 양극화와 입법교착상태가 심화되었지만, 연방의회는 한국 국회에 비해 숙의에 충실하다. 대통령제에서 입법교착상태는 딜레마이지만, 다른 한편 이것은 야당이 입법부를 통해 정부를 견제하는 방법이자, 국민들의 입법심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제고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입법교착이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보다 숙의의 계기로 활용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개헌안 보완을 위해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국회의원 임기 2년제이다. 4년에 비해 2년 주기 총선은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와 유권자에 대한 정치인의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또한 2년 임기는 총선을 한번은 대선과 비슷한 시기, 다른 한번은 대통령 중간평가의 시점에서 실시하게 되어, 상시적 여소야대 분점정부의 입법교착상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 임기 2년은 여소야대 하에서 정당간 합의가 중단되는 경우,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입법교착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는 의미를 지닌다.
현재의 개헌 논의는 대통령의 권한 측면으로 편향되어 있다. 이 글에서 다루기는 힘들지만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론은 제도적 권한과 이를 벗어난 권력행사를 구분하지 않은 채 그 대안을 개헌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권한행사는 제도적 요인보다 안보와 성장 위기라는 과거 담론이 국회와 언론의 견제와 비판 기능을 마비시킬 때 강화된다. 역으로 국회와 시민사회에서 숙의가 존중되고 언론이 이를 뒷받침할 때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행사는 통제되고, 국회 신뢰가 제고되어 한국 민주주의 질적 수준이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들 거의 전부가 한국의 주요 언론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되거나 피상적이고 하찮게 다루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10년간 점차 심해져서, 이제는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재 한국은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이웃과 지역, 국가와 세계에 관하여 믿음직한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해 버리는 어마어마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외국과 국제금융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이 어떻게 한국을 조종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면 작금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하는지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안보 위기이다. 저널리즘의 붕괴는 민주적 절차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 정책에 관하여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정치인의 됨됨이나 개인적 스캔들에 대한 선정적 기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강요된다면, 국민은 의미 있는 투표를 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정책에 관해 신중하게 논의하고 가장 중요한 이슈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대신, 한때 시민이었던 사람들을 부추겨 선거 직전에 길거리 댄스나 지켜보며 자기만족을 앞세우게 만들고 일시적 기분과 충동에 휘둘리도록 하는 상황에서, 선거는 요식 행위로 전락한다.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이슈들을 들여다보자.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극소수 부유층에 유례없이 집중된 부(富).
급격한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감당하기 힘든 위협. 이는 지금부터 향후 20년간 철저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기록될 것인데, 눈앞에 닥친 결과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반 건조 기후 상황의 증가. 이는 향후 10년간 계속 악화될 극심한 물 부족과 함께 오는데, 남한도 그렇지만 북한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을 것이다.
해수면의 상승 및 해수 온난화에 따른 해양생물의 황폐화.
기온 상승이 가져올 새로운 질병, 농업 생산성의 감퇴, 수입 농산물 가격의 상승.
석탄 발전의 증가에 따른 질병의 급격한 확산. 공해 산업의 자체 규제로 정부와 국민은 공장이 어떤 공해 물질이 내보내는지 모르는 상황의 발생.
점증하는 미국의 군사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러시아 혹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려는 충동의 증가. 미국 외교의 소멸 그리고 기존의 이상주의 외교가 국제협력에 기여했던 바의 종언.
동중국해에서의 충격적인 기름 유출. 한국 연안의 물고기 오염과 제주도 및 여타 지역에서 예견되는 피해.
지역 경제, 특히 소도시 경제의 붕괴. 가족경영 사업체, 특히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의 전국적인 폐업.
스마트폰, 자동차, 철강, 그리고 선박 등 수익성 좋은 시장의 임박한 붕괴. (그리고 이를 대체할 만한 시장의 부재)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여겨졌다.
모든 혜택이 부여되는 장기 고용의 종료. 한국 청년층의 미래는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일부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핵심 이슈에 관한 언급을 한국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찾으려면 자세히 살펴봐야만 한다. 모든 신문의 1면을 매일 장식해야 할 이들 이슈 중 일부가 일회성 기사로 가끔 실리기도 하지만, 문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현재 무엇이 연관되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탐사보도는 거의 없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자들은 당장의 소비를 위한 피상적 일회성 기사를 써내야만 하는 압박에 처한 나머지 진정한 저널리즘에 빠져들 여력이 없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한국의 주요 언론들에서 얼마나 제대로 다뤄지고 있을까. 한국의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신년호의 1면 하단 광고는 10여년째 삼성전자의 차지다(사진:미디어오늘).
무엇보다 저널리즘이란 비즈니스가 아니며 저널리즘의 목적이 돈벌이가 아님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언론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하며 국민으로 하여금 사회와의 지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접촉면을 넓히도록 장려해야만 한다. 음식이나 섹스에 관련된 사람들의 원초적 본성에 호소하여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저널리즘과 미디어는 판매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 윤리, 예술과 문학 표현, 그리고 지역과 국가 및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당대의 중요한 이슈로 국민을 이끄는 교육의 한 형태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소비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이슈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사람들을 보다 사려 깊게 사고하고 사회적 의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할 수 있는지가 본질이다.
모두가 눈 감고 있는 명백한 진실을 먼저 대면해야만 한다. 미디어의 광고 의존이다. 광고는 필연적으로 저널리즘을 왜곡한다. 진실과 윤리적 책임의 추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광고주의 경제적 이익에 보도를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의 뻔한 결과는 끊임없이 사회를 행복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각한 위기들은, 보도 과정에서, 자연의 어쩔 수 없는 변덕으로 치부된다. 위기의 역사적, 문화적 원인을 한걸음 물러서서 천착하지 못 하도록 하고, 위기를 시스템의 문제이자 경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신문과 잡지, 특히 텔레비전의 모든 뉴스는, 사회나 국가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기만족과 이기적 행동 속에 자신의 욕망을 소비하고 충족하는 사람들의 이미지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광고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광고가 저널리즘이 아니기는 하지만, 광고는 독자들에게 보도와 비슷하거나 오리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광고에 들어간 그래픽은 보도에서 사용되는 그래픽에 비해 훨씬 질이 높으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광고 이미지와 한국 사회의 현실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희생과 절제 그리고 겸손의 가치에 대한 언급, 자신에 대한 광적인 숭배를 넘어서는 이상의 추구에 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광고는 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뚜렷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로지 호화로운 집에 사는 부자들의 이미지만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광고에 숨은 전제는, 타인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해야 하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광고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층이 겪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의 엄청난 부의 양극화란, 값비싼 커피숍들 사이를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더욱 부러워하고 추앙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 숨은 전제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슬픈 일이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저널리즘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다. 문자해독이 가능한 사람들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학교육 이상을 이수한 비율 역시 높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많다. 한국 기자들의 수준도 대단히 높다. 많은 기자들이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한국의 대학에는 해외 유수 대학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고, 중요한 주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이를 일반 시민에게 설명하는 훈련을 받은 교수와 강사가 많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는 그들의 전문지식을 동료 시민을 도와야 할 책무가 아니라 계급적 지위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문화 전통이 있다. 이러한 관습은 긴 역사를 지닌다.
그러나 구조적 이슈가 훨씬 중요하다. 대규모 중앙지와 지방 신문사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수천 명의 기자들이 일하는데, 이들은 정부 관료나 기업이 내놓는 발표를 취재하며 하루를 보내고 신문사로 돌아와서는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찍어낸다. 고등교육을 받은 기자들이,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고 몇 주 혹은 몇 달이 소요되는 탐사보도에 매진하여 의미 있는 분석과 보다 나은 정책을 위한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기보다, 다람쥐 쳇바퀴에 갇혀 기사 작성에 급급한 현실이다.
교수들의 사정도 별반 낫지 않으며 이들의 상황 역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등 보통 사람들을 위한 어떠한 활동도 권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억제된다. 대학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글쓰기란 오로지 사회과학인용지표(SSCI)에 들어갈 수 있는 학술논문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회과학인용지표에 등재된 논문을 읽어보는 일이 전혀 없으며, 만약 읽어보고자 할 경우에는 요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정부가 인용지표의 발간 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도 말이다. 교수들이 학술 잡지에 글을 쓰는 일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논문이 어떠한 실질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혹은 교수가 일반 대중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지에 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그저 학문적 글쓰기가 요구된다.
농촌의 상황이 특히 열악하다. 농촌에서 지적 탐구의 장으로서 유일한 대학들이 빠른 속도로 폐교하고 있으며, 지역 이슈에 관하여 철저하게 탐사 보도하는 저널리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유권자 그룹, 특히 노년층 유권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른바 보수화 경향은 이들이 의지하는 지독한 저질 언론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들 유권자가 본래 편향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언론보도에 관한 작금의 접근법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측면은 기술을 필수적인 해결책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이, 보다 발전된 기술 형태로의 이행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이 어떻게든 저널리즘을 본질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막연히 가정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의 잡지를 살펴보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연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관하여 오늘날의 저널리즘에서보다 훨씬 자세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잡지는 오로지 인쇄에 의한 것이며, 이후 우리는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기술 기반의 미디어는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매달리며 따라서 피상적인 읽기를 권장한다. 뇌를 자극하여 신경화학물질 도파민을 방출시키기 위해 이미지를 사용하고, 이에 따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행위 속에서 감각적 충만함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행위의 반복은 습관화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자를 설득해야 할 시민의 한 사람이 아니라 속임수로 유혹해야 할 소비자로 보는 숨은 전제로 인하여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스마트폰과 경박스런 소셜 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이들 수단이 현재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건강한 활동에 주로 활용되도록 해야만 한다. 기술을 긍정적인 공동체 형성이라는 보다 커다란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곁들인 카페 라테나 살찐 고양이 사진을 게시하는 대신 중요한 이슈에 관한 가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데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명력 있는 미디어를 창조하는 작업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미디어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사람들이 확고하게 이해하고, 어려운 이슈를 거부하고 회피하려는 오늘날의 문화를 넘어설 수 있어야만 이 프로젝트가 추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미디어를 통해 우선적으로 정보를 취득한다면 이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건강하고 유용한 저널리즘 창조로 향하는 첫 걸음은 지역 수준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역 주민에게 관련 뉴스를 제공하는 지역 신문을 만들어야 하며, 이는 모든 주민에게 개방되는 지역 수준의 세미나와 결합되어야 한다. 세미나에서는 지역과 국가 및 국제적으로 중요한 경제사회 이슈가 분석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논의에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뉴스를 다시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세대에 걸쳐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에 바탕을 두는 광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는, 집중하는 방법과 자신의 삶에서 저널리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시민들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신문 기사를 어떻게 읽고 공유할지에 관한 교육으로 가능하다.
자신이 보는 바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지역의 현안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사회에 제시하는 글쓰기를 초등학교부터 가르쳐 시민을 기자로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이를 기술하며 모든 시민의 편에 서서 활발하게 개선책을 제시하는 행위는 보다 커다란 저널리즘 공동체의 창조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미래의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를 스스로 배우도록 장려해야 한다. 주변 세계에 대한 탐사 보도와 사려 깊은 분석은 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교과서의 내용은 지역과 국가의 이슈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양질의 저널리즘으로 가는 열쇠는 선정주의와 흥미위주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세계에 관한 과학적 접근법을 채용하며 동료 학생들과 협력하여 분석에 나서는 일이다. 이것이 교육 시스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중, 고등학교가 신문을 발행해야 하고, 신문기사 작성이 시험 성적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사회 수준에서 자기 각성과 적극적 행동의 새로운 문화가 장려되어야만 한다. 이는 저널리즘 르네상스를 뒷받침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습관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는 없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행기에 열리는 지역 수준의 세미나에는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정책과 분석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유의미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면, 생각을 현실로 전환하는 일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사진:미디어오늘)
시민 저널리즘을 뒷받침할 지역사회 공동체는 현재 거의 전무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의 이름을 알지 못 하며, 당면한 사회, 경제, 문화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웃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이들은 제3자가 생산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 심리에 사로잡혀 있다. 정보 생산자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하여 분석하고 설명하며 철저하게 의문을 제기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대학과 언론인, 지역 사업가와 정부 관료들에게 중요한 이슈에 관한 논의를 이끌도록 하여 지역 사회 주민들이 활발한 지적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일단 시민들이 저널리즘을 생산하기 시작하기만 한다면, 글쓰기가 습관이 되고 (비판적 시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신문이 죽어가는 이유는 온라인 콘텐츠와의 경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문의 비 참여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신문의 콘텐츠가 일상의 삶에 유용하다고 생각할 때, 신문 보도가 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활기 있는 일부라고 생각할 때 시민들은 그들의 지갑을 열 것이다. 스스로 제작한 책장이 돈을 주고 구입한 책장보다 더 소중하다. 저널리즘 역시 마찬가지이다.
광고 의존과 이윤 창출 저널리즘에서 벗어난 저널리즘 협동조합
한국은 광고 의존과 이윤 창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분석과 보도를 위한 협동조합 결성이라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다. 여전히 광고 수입에 중독되어 어려운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 하는 가짜 진보 미디어가 존재한다. 회원으로 뒷받침되는 저널리즘 공동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이슈를 다룰 수 있다.
보도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의 회원이 되기 위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이 염려하는 이슈를 다루는 세미나에 종종 참석한다면, 시민들은 그런 협동조합을 지원하고자 하는 진정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런 조직이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진보적인 비정부단체 세 곳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자면 이 주장은 현실이 아니다. 한 달에 1만원을 지불하면 비정부단체의 회원이 되어 가끔 이메일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단체가 개최하는 세미나의 주제를 제안할 수도 없고, 글을 기고하기도 쉽지 않으며, 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회원의 의견을 물어오지도 않고, 정기적인 회의에 초청하여 이웃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관해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회원이 고객이라는 식의 태도는 반드시 중지되어야만 한다.
향후 수년 안에 깊은 경제적 난관에 빠지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고, 지역 수준의 협동조합으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언론사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른바 진보 미디어들은 그들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나는 예견한다. 왜 그런가? 문제는 미디어의 소유권과 관계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유자가 개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시장의 힘에 대응해야만 하는 압박 때문에, 가장 비판적이고 좋은 의도를 지닌 언론이라도 선정적인 글쓰기라는 뻔한 처방에 빠져든다.
가끔 기부를 함으로써 대안 언론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일부 부자들의 시혜에 의존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점점 신문을 아예 읽지도 않는) 일반 근로자들이 거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 이슈들, 진보적 태도를 지닌 엘리트의 관심사만 다루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접근법은 새로운 미디어를 위한 미크로 주식 제도의 도입이다. 신문사의 소유권이 주식과 미크로 주식(주식을 쪼갠 일부)으로 나뉜다. 시민기자와 전문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에 대한 미크로 주식으로 보상받는다. 시간이 흘러 열 개나 스무 개 혹은 그 이상의 기사를 쓰면 그 회사의 상당한 지분을 갖게 되고, 기자들의 노력 덕분에 지분의 가치가 점차 증대된다. 신문사의 주식을 보유한 외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들은 신문사로부터 급여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효율적이고도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한국에서 창출할 수 있다. 주요 신문사의 많은 언론인들이 이러한 접근법을 환영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유의미한 저널리즘의 발전에 핵심적인 정부의 역할
저명한 언론인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McChesney)가 자신의 글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유의미한 저널리즘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광고비용을 지불하는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분위기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일반 대중이 활용할 수 있는 객관적 저널리즘이 되도록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일정한 형태의 정부 지원이 있을 때뿐이다.
언론 협동조합을 통한 시민의 기부가 정부의 자금 지원과 결합해야, 시민이 언제나 충분한 정보를 제공 받아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중대한 이슈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탐사보도를 펼치는 언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 지원은 신문사들로 하여금 합리적 분업에 따른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똑같은 기자회견에 몰려가 신문에 동일한 기사를 써대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자금지원으로 기자들은 특정 분야에 집중하여 진상을 파헤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자금지원과 이로부터 발생할 정치인의 언론 통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엄격하게 통제된 관제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던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했던 한국의 역사에 비추어, 이러한 우려는 전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당연히 언제나 조심스러워야만 한다.
그러나 공교육과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은 이미 신뢰받고 있다. 이들 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완벽하게 성공적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육을 과격하게 민영화한 결과 문맹률이 치솟고 다수의 근로계층 주거지역에서는 학교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훨씬 낫다. 초등과 중등 및 고등교육기관을 통한 장기 교육으로 시민이 세계에 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는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저널리즘은, 사회에서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벌어지는 상황 전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교육기관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과학적 방법론에 바탕을 두는 탐사보도를 통해 세심하게 생산된 정보를 제공한다.
교육과 언론은 민영화되거나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관하여 객관적이고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서비스로 운영되어야만 한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통해 저널리즘이 포괄적이고도 장기적으로 공공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련의 견제와 균형을 도입하는 일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이런 시도는 가장 중요한 목표, 즉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이슈에 대한 분별 있는 논의에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정부는 장기 보조금을 통해 탐사보도를 수행하는 기자들의 급여를 지원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자들에 대한 보조금의 분배 역시 전문가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결정하면 된다. 어쩌면 시민 대표가 정기적으로 모여 이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겠다. 지원금의 규모는 작지 않고 장기적으로 제공되며 심사를 받아야 한다. 현안에 관하여 광범위한 조사를 수행하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요약 보고는 물론 심층 보고를 제공하는 시민기자들의 급여와 사무실 및 장비에 정부자금이 제공된다.
이러한 제도가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 탐사보도에 대한 새로운 문화가 확산되고 전문기자들의 탐사보도를 통해 이 문화가 강화될 수 있다면, 유의미한 저널리즘에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기회로서 충분하다.
오늘날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부터 깨달아야만 한다. 저널리즘의 본질 자체를 바꾸는 폭넓은 개혁 외에 달리 선택할 방안은 없다. 시민들이 공상소설 같은 뉴스만 접한 나머지, 한국이 중국과 미국의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및 대학에서의 강의는 시민기자들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이는 기사작성만큼이나 중요하다. 시민회관 등의 장소에서 일반인들에게 경제와 문화, 기술과 사회 같은 복잡한 주제를 소개하는 일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극히 중요하다. 이는 또한 기자들이 주제와 청중 모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기자와 언론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핵심일 수밖에 없다.
저널리즘과 글쓰기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인 언론보도에 그리고 일반인은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 깊이 좌절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중대한 전환이 시작될 것이다. 심지어는 대안언론마저 전혀 투명하지 않고 접근불가인 경우도 있다. 탐사보도의 수행과 함께 현안에 관하여 시민교육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급여를 제공하는 강력한 미디어 플랫폼 몇 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글쓰기와 읽기 및 토론에서 새롭고 진지한 문화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우리 사회 전체에 확산시킬 수 있다.
놀랄 만한 객관성으로 잘 알려진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의 저널리즘 개혁에서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통해 뛰어난 저널리즘을 구현했던 성공 사례가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BBC와 NHK가 좋은 사례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방송(KTV)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이 방송국이 중대한 주제에 관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자와 학술인 및 시민기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겠다. 국민방송을 한국의 대표적 언론사로 만들 수도 있다. 이와 동시에 연합뉴스 및 여타 방송사의 콘텐츠 개발을 감독하는 전문가 및 시민 위원회를 도입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의 실질적 중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리랑TV의 사례가 가장 흥미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 영어 방송인 아리랑TV는 일상 뉴스를 가볍게 소개하고 CNN이 그러는 것처럼 가벼운 뉴스거리를 압축적으로 송출하여 왔다. 그러나 알 자지라 TV, 러시아 투데이(RT), 혹은 BBC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 있는 탐사보도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자금지원과 보다 높은 수준의 독립성이 보장된다면, 아리랑TV는 탐사보도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사가 될 수 있다.
자국의 문화적 뿌리를 찾아 나서고 앞날을 밝혀줄 전통을 재발견하기만 한다면, 한국은 저널리즘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저널리즘 개혁에서 최고의 모델은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놀랄 만한 객관성으로 잘 알려져 있고, 기록과 편찬에 종사하는 사관들이 군주에게 그들의 가치를 끊임없이 입증할 필요 없이 급여를 받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일련의 세심한 보호 장치 속에서 편찬되었다. 진실한 기록의 편찬을 담당했던 춘추관은 사료 편집에 관여하려는 왕이나 고위 관리의 시도에 저항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한국 저널리즘의 생태적 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조선의 진실한 역사 기록에 대한 근본적인 재조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에 관한 영감을 탐색할 장소로서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일 수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언론조작에 앞서, 공공선을 위한 객관적 역사 서술의 어마어마한 전통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언론인들은 새로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일년 내내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필자의 화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었다. 북미 양국의 지도자간에 오고 가는 말폭탄의 수준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위의 단어, 즉 사태가 극점에 이르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평화를 향해 전개되는 절묘하고 긴박한 상황에 대하여 노련한 사회 원로는 문대통령에게 ‘신이 역사 속을 지나는 순간,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매번 배움과 성찰의 글을 올려 주는 북한 전문가 인제대 김연철 교수는 ‘설레이는 희망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이중적 변주의 위험을 암시한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철부지들의 조급함이 설치는 가운데, 배달민족의 소망인 한반도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e for Peace process))이 마치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듯 착각하는 글들이 난무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날이 선 칼끝 위에서 춤을 추는 위험한 곡예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라는 저술 속에서 하늘이 기회를 내렸을 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재앙이 뒤따른다는 말씀을 주셨다. 지금부터 정신을 다시 바짝 차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 사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비록 쌍방의 체제와 권력을 강고히 하기 위해 악용되었던 1972년 7.4 공동성명에서 비롯하여 6,15 선언과 10.4 합의로 이루어지는 연장선상에서 공히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상호 불간섭과 공존공영하는 원칙을 수십 년 간 유지해 온 셈이다. 다만 지난 9년간 어리석고 사악한 이명박근혜의 반민족적 수구집단에 의해 남북간의 갈등이 조장되고 대화가 단절되고, 이전의 김대중 정부 시절에 애써 시작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협력사업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고 새로운 계기가 주어지면 오히려 지난 9년간의 뼈아픈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보다 확실한 신뢰관계 속에서 전면적인 협력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이미지:연합뉴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가능한 모든 인도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엔 제재의 근본 취지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전쟁물자에 전용될 수 있는 통상과 거래를 금지하고자 한 것일 뿐, 같은 유엔 내 인권 부처에서는 북한을 위해 1억불이상의 지원금을 모금하면서 인도적 조치는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각종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과 의료시설의 태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한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천만 명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에 있으며, 특히 십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아사 직전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다. 4월말 이루어질 남북 정상회담은 전세계인들을 향한 동아시아 역내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확고부동한 선언이어야 하며, 회담 이후에는 즉각적으로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 더불어 유엔 제재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의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 위기해결과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장애는 남북간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전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 내부의 혼선과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 지점에 현실적인 어려움과 심각성이 있다. 미국인들보다 미국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중앙대 이혜정 교수는 3월21일자 프레시안 기고문 ‘(한미)동맹파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를 통해서 미국 내 복잡하게 얽힌 내막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아래의 글을 통해서 이를 보다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국 주류사회의 흐름과 분위기이다.
‘미국의 주류사회는 한반도에서 이루지고 있는 평화의 흐름에 불안을 느낀다(Liberals, Conservatives Worry About Korean Peace Threat)’는 미국내 진보인사의 기고문이 상징하듯이, 대부분 미국인들에게는 북한은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제법을 어기고 합의를 해놓고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비밀리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하여 온 불량국가, 거짓말투성이의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 주류 언론들조차 지난 20여 년 동안 북미간에 진행되어 온 비핵 협상의 과정이 북한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로 악용되어 온 것으로 보도하면서 북한을 결코 정상적인 국가간 일대일의 대화상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연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국무장관 출신이자 지난 대통령선거 경쟁상대였던 힐러러는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하는 트럼프의 외교적 미숙함을 비난하면서 경험과 전문성의 결여(lack of dossier & experts)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정치상황이 11월 초 예정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거나 또는 가까운 시일 내 트럼프가 탄핵을 당하는 모습으로 급반전하면, 미국 주류 정치인들이 트럼프에 의해 이루어진 북미정상회담의 주도적 성과를 손쉽게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차기 대선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 개혁파 정치인사들은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를 첨언하면, 1994년 제네바협정 이래 북미간 비핵화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시한 측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 자신이었다. 이는 미국 내 양심적이며 소신이 있는 진보적 학자들과 합의과정에 실제 참여하였던 책임있는 인사들이 고백하고 인정하는 분명한 팩트이다. 협상과정에 임했던 미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기만적이었으며 ‘수 년 내에 예상되는 북한붕괴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과는 다르게, 반드시 붕괴되었어야 하는 북한정권이 1995-1998년간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최소 수십만 내지 최대 이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통과 희생 위에서 재기한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내 보수집단입장이다.
공화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집단에게는 북한은 냉전구조의 마지막 연장으로서 상징 조작의 대상이다. 국방예산을 증액하고자 하는 구실과 근거로 북한은 언제나 호전적인 집단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각색되어야 했고, 태평양 너머로 대 중국과 대 러시아의 봉쇄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전략의 핑계로 활용되어 왔다. 격대로 집권한 부시 부자 정권 기간 동안에는 북한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 나오는 악의 제국, 악의 축으로 존재하여야만 했고, 이는 마치 전래의 신화처럼 보수 집단 내에 확고한 신념으로 굳혀져 왔다. 트럼프가 지난해에 발언한 ‘분노의 화염(fury & fire)’ ‘확실한 파괴(totally destroy)’ 그리고 최근에 검토되었다는 코피전략과 비핵국가에게도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Mini-Nuke 개념 뒤에는 항상 이들 호전적 집단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며, 영어로 표시된 위의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여전히 유효한 옵션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언제라도 핑계와 기회가 주어지면 북한에게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집단들이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조석지변하는 트럼프의 변덕에 이들이 항시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더구나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급격히 퇴조하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그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주적으로 명백히 명시하면서 신냉전체제의 도래를 암시했다. 한편에서는 외교적 통상적 분야에서 이미 이들과 전면적 상황으로 돌입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시절 몇 년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유지를 위해 작동하였던 6자회의 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증할 수 있는 하나의 구도, 기존의 틀이 사라진 셈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인사들의면면이다.
최근 미국무장관의 교체, 그나마 트럼프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던 매티스 국방장관의 발언권 후퇴, 테러범에 대한 잔인한 고문과 전쟁범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여성인사의 중앙정보국장 발탁,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을 극단적 호전주의자이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던 전 유엔대사 볼턴으로 교체하는 등 일련의 백악관 인사의 변동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반영한다. 한국정부와 언론들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정상회담의 진행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속을 가늠할 수 없는 호전적 인물들의 가연성(可燃性)을 그저 눈가림으로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준비작업 과정부터 잘 작동하고 있다는 서훈과 폼페이오 라인이 회담의 성공적 진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안이한 기대는 오히려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고, 만약의 악화되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 변동 상황. 예측 불가능성과 함께 강경파들이 늘고 있는 것이 북미회담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이미 이란 핵합의를 무력화하고 파기하는 수순으로 들어간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기고를 통해서 이러한 인사변동의 성격을 ‘시온주의자와 극우호전주의자로 채워진 완결적 구조(has closed the grip of WH inner group with Zionists & Neoconservatives)’ 라고 평했듯이, 더 이상 트럼프 주위에는 보수이나마 합리적인 논리와 판단을 구사할 수 있는 인사들이 모두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대체로 이들 인사들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취할 입장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시대역행적 패권의 전략구도에 북한이 투항해 들어오는 것을 요구하면서 당연히 그러한 방향으로 북한을 고강도로 압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은 북미정상 회담 이후에 전개되는 예상경로에 관한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중앙일보 기고를 통해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40%, 성사가 되더라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확률을 40%, 합의에 이르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가능성이 18% 라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혜정 교수도 정상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이런 경우에도 전쟁을 회피하고 불편하지만 ‘핵억제의 평화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소망하건대, 트럼프가 여하간의 여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평화를 향한 프로세스에 합의를 한다면, 다음의 문제는 이러한 합의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실천으로 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확실하고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치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대선과정에서 벌어진 러시아 게이트와 폐북을 통한 데이터 누출, 전 중앙정보국장 해임과정의 적절성 여부, 특별검사인 뮬러 등과의 극한적 반목, 공화당내에서조차 누적되는 피로감, 백악관 내의 측근참모들 사이 그리고 가족들과 권력투쟁설에 더하여, 최근에 봇물 터지듯 등장한 여러 여성들과의 성스캔들 등 트럼프의 장래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며, 설령 탄핵을 면한다 하더라도 향후 그의 주도하에 결정된 정책을 책임 있게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가 이후 연방의회의 다수를 장악한 공화당 보수집단들에 의해 지연되고 무력화가 된 사례가 있듯이, 어렵게 합의에 이른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이 실행단계에 들어가기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예상된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이를 이미 염두에 두었다는 모양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미 삼자 정상회담을 추가로 제안하였다. 합의된 내용의 실행을 분명히 강제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의 서보혁 교수는 과거처럼 선언(announcement)과 합의(agreement) 만으로는 실행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제법 수준의 조약(treaty) 또는 이에 준하는 강제적 조항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6자회의 구조는 미중과 미러 간 점증하는 갈등으로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정부가 움직이고 있듯이 한중, 한러, 한일 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을 동시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의 회담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의 개별적 2자 또는 3자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에서 깊이 협의했음직한 주제로 평양에 신속하게 미국의 임시대사관을 개설하여 양국 관계정상화 과정에 비가역적인 속도를 보태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유럽연합도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유엔 역시 모든 역할과 지원을 다할 것을 공언하고 있는 현재, 유엔이 중심이 되어 가칭 세계(또는 한반도)특별평화위원회를 사무총장 직할로 편성하고 이의 위상과 기능을 안보리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요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평화위원회의 구성에는 안보리를 입맛대로 좌지우지 하는 주요 패권 국가들인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을 배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반도 상황의 향후 전개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기대 또는 신뢰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다만 선제공격 등 예상되는 극단적 위험행위를 막아야 하는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관점과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북한을 이제 대한민국은 당당한 형제적 주권국가로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흐름 속에 민족적 사명과 동포애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 당국은 북한의 붕괴론을 포기하고 동시에 군사적 협박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북한 핵무장의 구실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예의와 책무로 반드시 실행하여야 하는 사항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재미교포들은 미국 내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와 함께 손잡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일차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는 국제적 여론 작업에 불을 힘껏 댕겨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한다고 하니까 비대언론과 자한당과 일부 학자 등이 ‘토지공개념이 사유재산제와 재산권의 근간을 흔든다’는 말들을 쏟아내는 모양이다. 무지의 소산이거나 악의적인 왜곡이다. 문제는 선량한 주권자들이 비대언론 등의 곡학아세에 현혹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이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것도, 재산권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강하게 있다.
먼저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사유재산권 보장, 재산권 행사의 사회적 구속성, 토지재산권의 특수성 등을 살펴봐야 한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3월 20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전문과 기본권 부분의 내용과 조문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은 사유재산제와 재산권을 보호,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토지재산권은 다른 재산권에 비해 공공복리 적합의무가 높아
대한민국 헌법은 제23조 1항 1문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해 사유재산제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동조 동항 2문에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여 사유재산의 구체적 내용과 범위를 입법자인 국회에 위임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23조 제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법률로써 내용과 한계가 이미 확정된 구체적 재산권도 이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를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이라 한다.
토지재산권도 분명 재산권의 일종이다. 하지만 토지재산권은 본질적 속성과 사회적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에 비해 무거운 사회적 구속을 받아왔다. 헌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토지공개념은 토지재산권에 대해 가중된 사회적 구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내용과 한계를 정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데, 법률로 정해진 사유재산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행사하는 건 용납되지 않고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재산권 중에서도 토지재산권은 재산권의 속성이나 재산권 행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 다른 재산권보다 훨씬 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사회적 구속성이 높은 토지재산권이라 해도 제한에는 엄격한 요건과 한계가 따라
이렇게 다른 재산권에 비해 사회적 구속성이 높은 토지재산권이라 해도 제한에는 엄격한 요건과 한계가 따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토지재산권을 넣어 설명하면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국가가 토지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국가안정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라는 단 세 가지 목적만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여기에서 수단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구성요소로 하는 과잉금지원칙이 도출된다), 반드시 법률(즉 의회가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이라는 형식으로 제한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해도 토지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헌법재판소는 재산권의 경우 사유재산제도의 전면적인 부정, 재산권의 무상몰수,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박탈 등을 본질내용침해의 예로 들었다)을 침해한다면 허용될 수 없다’
즉 문재인 정부가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수준의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하더라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률의 형식으로 명문화된 토지공개념을 제도화하여야 하고, 그렇게 제도화된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도 헌법재판소에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데 이때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원칙과 본질내용침해금지원칙 등을 기준으로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야당이 토지공개념 법안을 지지한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린 동아일보 1989년 9월 6일자 지면.
위에서 살핀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토지공개념 명문화는 사유재산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과는 아예 관계가 없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명시되면 고율의 보유세 및 각종 개발이익환수장치의 헌법적 근거가 명확해지고, 이를 통해 토지불로소득 환수에 대한 입법자의 입법재량의 범위가 한결 확대될 가능성은 높다.
또한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토지공개념안이 헌법에 명문화되면 기존 토지공개념 관련 각종 입법 가운데 유독 과세와 관련해 엄격하게 심사했던 헌법재판소의 관점과 태도도 전향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북쪽 경계로 삼고, 군사분계선 이북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남에는 대한민국이 있는 반도의 이름은 무엇일까?
매우 간단하다. 영어로 Korean Peninsula [코리언 페닌술라], 프랑스어로 Péninsule de Corée [뻬냉쉴 드 꼬레], 에스파냐어로 Península de Corea [뻬닌술라 데 꼬레아], 로씨야어로 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까례이스끼 빨루오스뜨로프], 아랍어로 شبه جزيرة كوريا [쉽 자지라 쿠리야]라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반도의 두 이름: 한반도와 조선반도
반도는 이름이 둘이다. 남한에서는 한반도, 북조선에서는 조선반도라 부른다. 반도 밖으로 나가보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대부분 朝鮮半島라고 쓴다. 베트남에서는 Bán đảo Triều Tiên이라고 하는데,漢字로 옮기면 Bán đảo는 半島, Triều Tiên는 朝鮮이니 역시 朝鮮半島라고 부르는 셈이다. 이렇듯 반도 밖에서 조선이라고 많이들 부르는 이유는 그 이름이 50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도의 명칭 문제는 정통성과 직결된다. 남한과 북조선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반도 전체를 부름으로써 각자 정통성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스레 상호지칭과 이어진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 입장에만 좋을대로 ‘북한’과 ‘남조선’으로 부른다. 물론 이런 이름은 저편을 반드시 지우고 자기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을 보자.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면서 그다음 조항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했다. 누가 봐도 모순이다. 진짜로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 영토라면, 왜 굳이 통일을 해야겠는가? 이는 한국이 조선을 나라가 아니라 ‘대한민국 북반부를 점령한 반국가단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는 영토를 명시해두지는 않았지만, 제9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라고 했다. 이 조항은 남반부, 곧 한국이 ‘미제와 괴뢰당국’이 지배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전제 위에 성립한 것이다.
이는 남한과 북조선 모두 엄연한 주권국가이며,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는 현실과 아주 크게 괴리된다. 1991년 9월 18일에 쌍방이 국제연합에 동시가입했지 않은가? 뉴욕 국제연합본부에서는 두 나라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유엔본부 앞에 게양된 태극기와 인공기(사진 출처: 경향신문)
기실, 한국과 조선 모두 아메리카와 소비에트가 마련한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정통성’을 고수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완전한 정통성을 온전한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지사와 열사가 과연 토막난 ‘조국’을 위해 싸웠을까? 물론 이승만이나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것까지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과 소련이 지지했기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 이력은 그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을 뿐이다. 그런 ‘정통성’은 전쟁과 대결을 통하여 합리화되었다. 상대편을 적대하고 이기적 통일을 지향함으로써, 이쪽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정권을 존속한 것이다. 결국 한국과 조선 각자의 ‘정통성’은 오로지 분단체제에서만 있을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면 지금 반도는 차라리 ‘無統(무통)’이라고 해야겠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통성에 매달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정통성’의 한계가 나날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방으로 수렴되는 통일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일통(大一統)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할 뿐이며, 이룩한들 그 폐해는 심각할 것이다.
양국평화체제와 고려반도
현실부터 직시하자! 반도는 하나였기에 하나가 되어야하지만, 지금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서로를 국가로 승인하고, 상대방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해야 한다. 그 행동으로서, 한국은 미국과 연합훈련을 축소해가고, 조선은 핵을 동결해가야 한다. 물론 이는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서두르면 안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외교적 노력도 따라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게 양국평화체제를 세운 뒤에 더 깊은 차원의 교류와 대화를 통해 국민국가라는 틀을 넘어서는 대일통을 이루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새 정통, 새 중심을 세우고, 그 일환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새 이름을 지어야겠다. 이에 나는 ‘고려’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한반도와 조선반도를 ‘고려반도’로, 한국인과 조선인을 ‘고려인’으로, 한국어와 조선어를 ‘고려어’라고 대체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내가 고려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그나마 중립적인 이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대에 걸맞을 이름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서방은 화석연료의 힘으로 잠깐 강해졌다. 방자해진 서방은 국가간체제를 강요하였고, 제멋대로 천하를 ‘나누고 지배’하여 어부지리를 취하였다. 반도의 분단도 그런 횡포였다. 그러한 전국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난세의 적폐를 청산할 때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전통이 근대화되고 교류와 융합이 넘실거린다. 동과 서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和平合作(화평합작)[1]、開放包容(개방포용)[2]、互學互鑑(호학호감)[3]、互利共嬴(호리공영)[4]의 ‘絲路精神(사로정신)’이 곧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독선과 아집 뿐인 헛된 세계화가 아니라 관용과 소통의 참된 세계화가 이루어질 시대이다.
그 점에서 13세기는 21세기가 갈 길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몽골은 정복으로 거대한 제국을 세웠고, 종전까지 산발적이고 불안하던 비단길을 통합하고 안정하여, 세계화를 눈부시게 꽃피웠다. 바로 그때 고려가 있었다. 고려는 몽골 제국이 엮어낸 ‘비단길’이라는 그물의 가닥이 되었다. 무슬림 상인은 고려를 오고가며‘كوريا [쿠리야]’라고 불렀고, 그런 연유로 몽골어 Солонгос [설렁거스] 같은 경우를 빼면 많은 세계인이 우리를‘고려’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부른다. ‘고려’는 이러한 역사를 되살리며 인류(人流)와 문류(文流)、물류(物流) 등 온갖 교류를 크게 일으키기를 다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이름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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