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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전쟁 막는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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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전쟁 막는 일 아닙니까?”

익명 (미확인) | 목, 2017/10/05- 20:58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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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진영에서 이승만 국부론을 내세우며 48년 건국설을 밀어붙일 때 역사학자 조한성은 책『한국의 레지스탕스』를 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비밀결사 단원들이 목숨과 맞바꾸면서도 소망했던 새로운 조국 꿈을 추적했다. 그들의 투쟁은 때론 성공하고 많은 경우 패배했지만 그들이 흘린 선혈에서 대한민국이 비롯되었다고 조한성은 말한다. 이후 그는 『해방 후 3년』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해방 후 역사가 미소 양국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 민족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분단도, 전쟁도 모두 외세 탓인가?”

역사학자 조한성을 만났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이유는 그의 저술이 우리 사회에 던졌던, 그 참신한 질문 때문이다. 43세의 이 역사학자는 늘 치밀한 사료분석으로 새로운 관점과 상상을 선사했다. 인터뷰는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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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부터 ‘해방 후 3년’ ‘한국의 레지스탕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이다. 이중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 공저다. 그의 저술은 때로 모래알처럼 작게 보였던 것도 크게, 보편적 인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보게 한다.ⓒ출판사 생각정원 캡처

현대 사학의 원로이신 서중석 선생님께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현대사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한성: (웃음) 이제 서중석 선생님 그만 팔아먹어야 하는데…. 대학 1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당시 영상을 접하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세대는 한국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 충격이 컸죠. 돌베개에서 나온 『5.18 광주민중항쟁』을 보고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시절 체험이 저를 현대사로 이끌었어요.

지도교수님은 현대사 박사 1호이신 서중석 교수님과 근대사 1세대 연구자이신 임경석 교수님이셨어요. 서 교수님은 한 강의에 20개 정도의 주제가 나오는데 이를 학생들을 나눠 조사를 시키셨어요. 역사연구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행연구’에 대한 파악이었죠.

연구사 정리는 역사연구의 기초공정이에요. 현대사는 아직도 공백이 많은 분야거든요. 그 공백을 찾아 연구하고 새로운 문제 인식과 질문을 던지게 돼요. 서중석 선생님은 지금 은퇴 후에도 박정희 시대를 계속 정리하고 계시거든요. 개인적으론 힘이 드시더라도 80년대까지 쭉 정리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임 교수님은 사료를 다루는 방법을 세밀하게 가르치셨어요. 서중석 선생님 안식년일 때 임 교수님께 배웠거든요. 사료 가운데 한국 근대사 자료는 일제 생산문서가 상당히 많아요. 이 문서들은 일제의 관점으로 쓰였기에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독립운동가가 쓴 자료라 해도 그 문서들은 작성자 중심으로 작성되었기에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내용으로 쓰인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엔 사료를 꼼꼼히 읽고 분석해 참과 거짓을 읽어내야 합니다. 임경석 선생님은 그 방법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성균관대 사학과를 선택하셨습니다. 예전부터 역사학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지요.

조한성: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사 선생님 수업이 재미도 있고 진지했어요. 전 좋은 스승님을 만나면 힘을 내는 스타일인가 봐요. 그때부터 역사에 흥미를 느꼈어요. 어머닌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길 원하셨는데 제가 막내라 그런지 진로를 강요하진 않으셨어요. 나중 문제가 있으면 곁에 끼고 함께 살려고 그러셨는지는 몰라요. (웃음)

석사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료와 자료를 봐야 하고, 이때부터는 역사학자로서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야 해요. 대단한 은사님들께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굉장한 경험이었고 지금도 저의 이야기를 책이나 강의에 담아 알리는 작업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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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인터뷰하는 조한성ⓒ민중의소리

돈벌이 걱정은 없었습니까?

조한성: 처음 이 일을 선택할 때부터 돈 버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웃음)

전 고등학교 시절 역사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사학과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선배들이 사학과 들어가면 죽으라고 한문공부 해야 한다고 해서요. 실제로 사료분석에 한문은 필수인가요?

조한성: 아, 너무 안타까워요. 한문을 피해갈 방법이 있는데, 실제로 한국 고대사, 한국 중세사, 동양사 연구에는 상당한 수준의 한문 실력이 필요해요. ‘지곡서당’ 같은 곳을 다니면서 한문을 공부하는 분들도 많아요. 서양사는 영어가 필수, 한국근대사의 경우 한문과 일어가 중요해요. 한국 현대사는 오히려 영어가 더 중요해요. 전공에 따라 영어, 러시아도 필요하죠. 해당 언어를 알면 더 다양한 사료를 볼 수 있으니까 유학을 가는 친구도 많아요. 다만 현대사의 경우 국한문 혼용이 많아 한문의 자구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조금 설렁설렁해도 가능해요.

일제의 공적조서, 해방 후엔 명백한 친일파 증거

그래도 한문의 자구 정도는 다 읽을 수 있어야 하는군요? (웃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을 하셨습니다. 그때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조사를 하다 보니 자료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래도 큰 성취감을 느낀 조사 활동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조한성: 아시겠지만 친일파와 관련한 조사는 당대에 해야 했던 작업이죠. 하지만 이승만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해산되면서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지금은 증인을 채택할 수가 없죠. 만일 해방 후 철저히 조사했다면, 친일행위를 목격하고 들은 이들의 증언, 당사자의 증언이 결정적 증거자료가 다 남아있었겠죠.

제가 ‘관료팀’에 배치되어 도지사, 군수들 조사했어요. 거물급들은 관련 텍스트가 남아있는데 지방은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어요. 4년 반이라는 시한으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내는 것도 불가능했고요.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 사상범 검거 실화집』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알려지지 않거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자료들이 많이 있을까요?

조한성: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가 남긴 ‘지나사변 공적조서’라는 자료가 있어요. 중일전쟁 시기 일제가 관료들의 공적을 조사해 훈‧포상을 해줬는데 당시엔 공적을 적은 조서였지만 지금은 친일 행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 것이죠. 어떤 후손이 선조의 친일행적을 숨기고 지방에서 선조를 미화하고 기념사업을 하려다 이 자료 때문에 친일행위가 명확히 드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적이 있어요.

이 자료는 위원회가 일본에서 직접 수집한 자료인데 이 자료 때문에 3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관료들의 친일 행위가 많이 드러났어요. 위원회가 천 명 정도의 친일파를 선정했는데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새로운 자료를 발굴한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자료의 수집은 시간과 노력, 자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위원회가 좀 더 오래 유지가 됐더라면 아마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제강점기 거상 巨商으로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하는 등 친일행위를 하다 해방 후 독립운동가와 손잡고 좋은 일을 한 이들도 있어요. 이들의 후손은 자신의 부친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 것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더라고요. 친일파 분류는 어떻게 합니까?

조한성:  친일파 분류는 대개 1904년 러일전쟁 시기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의 행위를 바탕으로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사례처럼 해방 후 행위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실 해방 후에는 누구나 우리 민족을 위해 일하지, 일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죠? 일제 강점기 친일을 하다가 독립운동을 한 경우는 친일파 선정에서 제외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해서 친일행위를 한 경우는 친일파로 선정합니다.

‘밀정’의 압권, “동지는 어느 역사 위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암살’ ‘밀정’ ‘군함도’ 등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흥행입니다. 모두 보셨는지요?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한다는 긍정성 이면엔, 또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준다는 주장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조한성:  저 역시 언급하신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어요. 역사학계에서도 굉장히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영화 ‘밀정’은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거든요. 작가나 감독이 공부를 상당히 많이 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가 대사 하나하나를 많이 생각하고 썼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김원봉이 황옥(기자 주:황옥은 실제 인물이다)을 끌어들이기 위해 동료를 설득하는 대목의 대사를 보세요.

“이중첩자에게도 조국은 하나뿐이오. 그에게도 분명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요. 그걸 열어주자는 겁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게 아니겠소?”

김원봉이 황옥을 설득하는 방면도 압권이거든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려야 할지를 정해야 할 때가 옵니다. 동지는 어느 역사 위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이 영화의 백미죠. 실제 역사에서도 황옥이 밀정인 것을 알면서도 동지로 받아들이는 장면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에요. 아마 작가의 상상이 사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는 영화로 봐야죠.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역사 왜곡’이라고 하면 과한 비판이죠.

중요한 것은 ‘영화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느냐’인 것 같아요. 과도한 설정이 있으면 왠지 손발이 오그라들고 어색하잖아요? 그런 건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자연히 느끼게 되죠. 반대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고 설득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역사적 사실과 장면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면 그 역사적 팩트의 무게에 눌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설득력을 잃는 경우도 있거든요. 최근 영화 ‘군함도’가 흥행에 실패한 건 아쉬워요. 흥행의 실패로 군함도의 역사나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거대한 축인 건 맞지만 그것이 독립운동의 다양한 계열을 모두 수렴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뉴라이트의 공격에 대한 반정립으로 흐른다는 느낌이 있어요. 임정 법통계승을 따지다 1919년 건국절로 가거든요. 역사적 맥락에 비추면 굉장히 부자연스럽거든요.

조한성:  우선 48년 건국절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어요. 이승만과 친일세력의 공로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죠. 반면에 1919년 건국절 주장도 한계가 분명해요. 건국절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서 걱정스러워요. 건국절 논란 자체는 소모적이에요. 애초 뉴라이트 진영의 정치적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온 주장이거든요.

그런데 임시정부가 모든 독립운동세력을 압도하진 못했어도 여타 독립운동세력과는 구분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1919년~21년까지 대부분 독립운동세력을 하나로 묶었고, 그 이후에는 세력이 약화하지만 40년 이후 중국 국민당 장개석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광복군도 만들고 좌우합작도 하면서 다시 세력을 키웠죠. 다만 여타 세력을 압도하진 못했기에 안타까움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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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로서의 특징이랄까. 조한성 작가는 인터뷰 도중 역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질문에선 관련 자료를 다시 꼼꼼히 보고 말을 다듬었다.ⓒ민중의소리

“독립선언 33인 중 단 한명이라도 민중과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요?”

최근 ‘어쩌다 어른’과 같은 TV 프로그램을 비롯해 참 맛깔나게 우리 역사를 소개하는 스타강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올해 설민석 강사가 3.1 운동 관련 ‘민족대표들의 태화관 술자리 발언’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어요. 그런데 당시 현장을 술자리로 폄하하고 ‘태화관 마담’ 발언 문제는 그렇다 쳐도, 자칭 ‘민족대표’라는 분들이 독립선언문을 내고 자수한 건 당시 목숨 걸고 항쟁을 이어갔던 민중과 대비하면 투항주의, 내지는 명백한 제한성이 아닌가 생각해요.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지도자의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조한성:  

저도 개인적으론 설민석 강사의 강의를 좋아해요. 이분 때문에 우리 역사에 재미를 붙이신 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과장하거나 재미있게 하려다 실수할 수 있거든요.

책은 출판 전 단계에서 거를 수 있지만, TV는 그렇지 않죠. 미디어 환경의 특성상 ‘스타강사’들은 자신의 역량 그 이상의 것을 요구받거든요. 방송국에선 시청률을 생각해 더 자극적인 멘트를 끌어내려고 하고요. 그래서 전 역사의 영역에선 강사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인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봐요. 요릿집에서 했다고 독립선언 그 현장을 술자리라고 하는 건 엄청난 왜곡이죠.

독립선언 33인의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사학계에서도 존재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역할 즉, 국내 3.1 운동을 기획하고 자금을 준비하고, 조직을 확장해 이 운동을 전국화한 공로는 분명히 평가해야 한다고 봐요. 33인의 ‘서명’은 당시 일제의 ‘무단통치’상황에선 목숨 걸고 한 겁니다. 실제로 일제는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이런저런 법령을 끌어 모두 적용하려고 했고요.

33인이 선언서에 서명하면서 ‘조선민족대표’라고 밝혔어요. 이를 이후 그대로 인용하면서 그들을 ‘민족대표’라고, 즉 민족지도자 33인으로 과대평가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33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을 한정했어요. 독립선언서를 작성해 일본 정부, 조선 총독부, 각국 영사관에 알리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통고’를 한 것이죠. ‘자수’라고 하면 너무 폄하한 것이고, 자신들의 표현대로 독립선언을 통고한 것입니다. 딱 여기까지가 이 33인의 역할이었죠.

28일 최종회의에서 군중과 함께하지 않기로 했는데, 군중시위가 폭력화할 것에 대한 우려였어요. 일본 경찰에게 잡히면 피하지 않고 체포되어 독립선언의 경과를 주장하기로 한 것이죠. 애초 33인은 군중을 지도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이것이 한계죠.

만약 33인 중 단한명이라도 민중과 함께 투쟁하며 체포될 때까지 지도한 지도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 사람은 안창호, 이승만에 버금가는 민족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3.1 운동 주역 중 천도교, 기독교 못지않은 세력이 있었는데요. 바로 학생이에요. 한국 학생운동의 시초지요. 이들이 3.1, 3.5 서울시위를 실질적으로 지도했고 각 지방의 시위에서 활약했어요. 29년 광주학생운동에서 45년 이후 4.19, 6월 항쟁 등 한국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되었죠. 전 학생운동에 대해 더 적극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 독립 운동사를 보면 무슨 단체니 계파니 하며 반목하는 대목이 꽤 많습니다. 어떤 큰 줄기가 없이 오밀조밀하게 흩어져 분열하는 것으로 보여 흥미를 잃을 때도 있습니다. 유독 우리나라 독립운동이 그런 것인지요? 당시 식민지 나라 독립운동의 공통적인 모습이었는지요?

조한성: 사실 나라를 빼앗기고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다른 나라의 사례는 연구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비슷할 겁니다. 다만, 우리 독립운동의 약점은 하나로 수렴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다들 고만고만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우리 민족의 진짜 불행은 해방 시기가 바로 치열한 냉전의 시작 시기였다는 것이죠. 미소 대결이 첨예화된 곳이 한반도였어요.

“내부의 힘이 강대국의 ‘규정’을 충분히 바꿀 수 있어요”

저서 『해방 후 3년』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우리 역사는 강대국의 강력한 힘에 압도되어 규정된 결과물이라는 인식에서 민족 내부의 통합된 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이는 지금의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일종의 경각심을 준다고나 할까요? 선생님의 관점은 ‘역사에 대한 가정’,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 분단의 길목에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목은요?

조한성: 해방 후 3년의 역사를 보면 미·소의 규정력이 너무 강해 어쩔 수 없이 미소 양국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소 공동위원회죠. 한반도를 미래를 다루는 회의인데 정작 우리는 거기에 참여하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수동적인 역사의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이 외부의 힘만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내부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느냐는 것도 미소의 규정력만큼이나 크다는 것이죠. 그럼 분단이 되지 않으려면 어때야 했을까. 그것은 좌우가 하나로 뭉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해지는 것이 좌파의 역할입니다. 남쪽에는 여운형이나 김규식처럼 좌우를 묶으려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북쪽에 이런 세력이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자연히 박헌영이나 김일성이 좌우합작을 할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북한의 경우 소련의 영향으로 하나의 세력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은 남쪽이 훨씬 진지했어요. 여운형의 경우 수차례 북으로 가서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을 했거든요. 김일성은 단 한 차례도 내려오지 않았죠.

『해방 후 3년』을 읽다가 든 생각입니다. 남로당의 단정 반대 투쟁이나 4.3 항쟁, 지하 총투표 조직이 진지한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 식 , 좌경 모험주의로 보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의 희생을 요구했던.

조한성: 남로당의 모험주의가 큰 영향을 주었어요. 박헌영은 지하 선거를 위해 모든 조직을 동원해 투표용지를 옮기고 주민을 모아 투표를 시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조직이 노출되고 파괴돼요. 한국전쟁 이전에 남로당 조직이 모두 깨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죠. 당시 참가했던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 투쟁이 얼마나 졸속이고 많은 희생을 불러왔는지를 알 수 있죠. 김일성과의 경쟁을 의식한 박헌영의 야심이었다고 밖엔 해석이 안 돼요.

김구는 일관되게 ‘충칭 임정’으로의 권력 이양을 주장했고, 미 군정을 엎기 위한 2차례의 쿠데타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좌우 합작 절호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충칭 임정세력이 주요 내각을 구성하고 나머지 3석 정도를 상대에게 양보하는 수준의 안을 제시해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완고한 고집과 배타성’, 지도자로서는 치명적인 약점 아닌가요? 김구가 해방 이후 나라의 전면적인 개혁의 측면에서 좌익세력과도 진지하게 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의 반공의식의 기원이 궁금합니다.

조한성: 제가 연구 하면서 가장 복잡한, 그러니까 어떤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 바로 김구 선생입니다. 김구 선생은 이승만과 달리 개인적 권력욕은 없어 보여요. 그런데 임정에 대한 열망은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20여 년간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임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확실히 김구 선생은 반공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활동하면서 쌓인 것들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갈등은 20년 무렵 레닌자금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 김립을 암살하는데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선생님께선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 즉 ‘5년 신탁통치 후 통일 정부 수립방안’에 진정성이나, 현실성이 있었다고 보시는지요? 가령 동아일보의 치명적 오보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조한성: 모스크바 3상 회의는 한국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무이한 국제적 합의였으니 결의안대로 되었다면 통일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겠죠. 문제는 반탁운동이 일어나면서 결의안대로 하는 것이 어렵게 돼버렸다는 겁니다.

당시 오보를 동아일보만 꼭 찍어서 얘기하면 동아일보측이 굉장히 섭섭할 거예요. 당시 다른 신문들도 대부분 똑같이 보도했으니까요. 당시 오보는 사실상 미 군정이 유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련의 입장에서 반탁운동이 일어났을 때 큰 충격을 받은 건 그 뒤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이 소련을 경직화시켰고, 이후 3상회의 원안 고수만 주장하게 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두고 미국이나 소련이나 그 대처 방안이라는 것이 참 문제가 많았습니다.

“한국 대통령의 역사적 소임, 전쟁 막는 것입니다.”

역사학자가 보는 지금의 한반도, 남북 상황.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 대통령의 안보행보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조한성: (한숨) 우선 답이 없어 보일 만큼 깜깜하죠. 북한은 당분간 핵무장의 완성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이고요. 그 후 북미협상에 나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가 아닌듯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해방 후 3년의 경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외부의 상황에 끌려만 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내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참혹한 실정이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외교력과 상관없이 48년도엔 누가 봐도 전쟁이 확실했어요. 이승만은 대책도 없이 북진통일을 외쳤고, 이런 이승만이 불안했던 미국은 한국군을 위한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죠. 결국 전쟁에 이길 힘도 준비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쌍방 간의 도발을 이어가다 남침을 맞잖아요? 만약 이승만이 북진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면 김일성이 그렇게 쉽게 남침을 했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을 막는 일’입니다.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우리 정부는 북한과 계속 대화를 시도하며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사인을 계속 주면서 북‧미간 협상을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쟁을 억지하는 것은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당사자 아닙니까?

역사연구자로 살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조한성: 제 관점으로 대중에게 역사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아직 한국 학계에선 ‘논문’은 인정받지만, ‘대중저술’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역사학자들이 대중저술을 선호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대중에게 역사를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한 작업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작가들이 오히려 역사 관련 책을 써요. 재미있죠. 하지만 작가들의 작업엔 늘 ‘오류’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전 이런 오류 없이 대중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한국의 레지스탕스』 , 『해방 후 3년』, 민족문제연구소 공동 저술인 『군함도 – 끝나지 않은 전쟁』모두 재미있게 봤습니다. 힘 있는 문체가 당대 상황으로 몰입하게 만들더군요.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조한성: 지금은 ‘3.1 운동’에 대한 책을 구상 중이에요. 자료가 굉장히 많은데, 그래서 오히려 잘 정리가 안 되는 경우에요. 일반인들이 200만 명이 참가했는데 그분들의 자료가 모두 남아있지는 않지만 ‘심문 조서’같은 형식으로 많은 분의 자료가 남아있어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쓰고 싶습니다.

역사학자를 꿈꾸거나 역사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이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하며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붙잡는 방법이랄까요? 조언 해주신 다면요?

조한성: 역사 속 인물이 되어, 실제 주인공으로 분해서 인터뷰 형식이든, 신문기사의 형식이든 자신의 글로 써보시면 어떨까요? 수업시간의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훨씬 재미있거든요. 역사는 정말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더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개발했으면 해요.

<2017-10-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전쟁 막는 일 아닙니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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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 부탁드립니다.

29명이 1만명의 생각 몫까지 생각해 파산을 신청한다는건 김성훈에게 면죄부를 주는일은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일이고, 잘못된 일인줄알면서 했다는건 더 그죄가 악질입니다.

많은 변제안으로 사람들을 현옥시켰고

서민들이 피땀흘려 번것들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사측에서의 장난

목, 2017/12/07- 00:37
96
0

정만순 변호사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고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문이라면 ‘어떤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품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제시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고문으로서

29명이 1만명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산을  대신한다는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발 다시 한번 생각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온갖 비리가 다 걸쳐져 있는 ids !

이건 아마도  더이상 유사수신등 의 건으로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록

법을 개정하도록 힘을 주세요

이건 아마도

 

목, 2017/12/07- 00:51
109
0

정만순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의 김성훈 사기사건으로 매일 밤잠 설치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는 피해자입니다.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무허가 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 2천여명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을 챙긴 나쁜 사기꾼입니다.

김성훈과 일부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은 또 다른 사기로 투자자들을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저의 목숨과도 같은 피 같은 돈입니다.

부디  피해자들의 고통을 혜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수, 2017/12/06- 23:32
16
0

안녕하세요

저는 IDS피해자입니다

이번에 채권자라는 20여명이 신청한 파산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저희 가족의 피같은 돈을 이렇게 사기당한것도 억울한데 다른 피해자들의 대표도 아닌 사람들이 변호사와 함께 파산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잠도 못자고 정말 자멸감이 뭔지 느끼고 있습니다

정만순 변호사님

정말 이게 옳은 일인지 생각하시고 돕고 계신지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로 인한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시는데 앞장서서 훌륭한 일을 하시는데 어찌하여 김성훈 사기범을 돕는 일을 하시는지요

파산을 김성훈은 쌍수를 들며 환영하고 있습니다

공평..말이 공평이지 피해자들은 또 파산이후 돈을 들여 법정싸움을 해야하고

김성훈은 파산됐으니 홀가분하게 지낼텐대.. 변호사님께서 이 일을 전체에게 좋은일인지 몇명에게 좋은 일인지 판단하시여 파산을 멈춰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목, 2017/12/07- 19:18
41
0

정만순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 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은 1조원대 사기범이고 피해자가 1만2천명입니다

1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사기 당하고 하루라도 빨리 변제가 이루어 지기만을 소망하는 피해자로 현재 파산절차를 보면서 깊은 절망속에 있습니다

이 파산은 1만명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니며 단 20여명이 신청하였고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써 김성훈에게 파산은 결코 용납 할 수 없습니다.

김성훈 파산이 이루어지면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게 공평한 재산 나눔일까요

파산이 이루어지면 김성훈과 동조했던 이들이 월급이라며 받아가고

직급자들도 투자사실있으면 받아가고.. 현재 피해자별지에

누락된 피해자들은 또 법정싸움을 해야합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생각해주십시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죄없다며 상고중에 있는 김성훈을 돕는 파산 진행은 되지 않도록 도움 부탁 드립니다.

목, 2017/12/07- 18:26
58
0

 

ids홀딩스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입니다.

제2의 조희팔 사건..

제가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될 거라 생각도 못했었답니다.

저의 욕심이 이렇게 힘든 생활의 연속이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29명이 12000명을 대표하여 파산신청을 진행한다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어렵게 모으고 모은 돈을 기다리면 준다하여 1년반을 넘게 기다렸는데 단 한푼의 변제도 받지 못한 상태인데

이제는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니요…

제발 간혹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훌륭한 곳이고 이런 곳의 고문변호사이신 분께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목, 2017/12/07- 17:01
61
0

 

“제2의 조희팔” IDS홀딩스 사건의 피해자의 한사람으로

하루하루 절망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제해준다는 말만믿고 기다렸지만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않고

단한푼의 변제도 받지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12,000명의 피해금에 대한 파산을

극히 일부인 29명의 파산신청인이 대표하여 진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29명이 만명을 대신할수는 없습니다

파산이 받아들여진다면

만명의 피해자들이 또한번의 절망적인 일을 겪는것입니다

더이상의 피해를 보지않도록 파산을 막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목, 2017/12/07- 21:25
79
0

정만순 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 피해자입니다

이번 사기사건으로 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정도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있습니다. 정말 김성훈이 피해자들을 기만하며 변제한다 떠들기만 할뿐 실제 1원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성훈은 피해자들에게 파산을 하면 돈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며 편지글을써서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정의가 살아있나 싶을정도로 사기범이 자기 파산하니 찬성해달라하니.. 어느 사람이 이해하며 받아들일까요

 

정만순 변호사님께서 만일 제 입장이시라면 파산 좋으니 동참하세요 하실수 있으실까요? 민족문제연구를 이번에 처음알고 친일파를 바로 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좋은 일을 하는 곳이란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김성훈의 파산을 도와 1만가정의 결제를 파탄내는 일을 도우신다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만순 변호사님

1만명의 목소리와 피맺힘이 들리시는지요?

김성훈에게 파산이라니.. 이걸 채권자라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돕고 있으니 정말 1만명의 피해자 대표도 아닌 그들이 나서서 김성훈을 돕는 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제발 !! 올바른 길이 무엇일까 생각해주십시요. 저는 김성훈의 파산을 절대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부디 파산을 막아주십시요

목, 2017/12/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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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남의 돈을 가지고 가서

호의호식해놓고…

지금 깐빵에 있는 인간!

죄를 뉘우치고 돈을  갚을 생각은 커녕

파산으로 배째라 하는 인간!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닌 행동을 하는 인간!

그리고 많은 서민들은 눈물과 괴로움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목, 2017/12/0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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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안녕하세요 Ids홀딩스 피해자 입니다.

김성훈 대표는 피해자들의 돈을 훔쳐가고 변제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본인이 죄를 뉘우친다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변제를 해야하는데

그런행동도 없이 파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김성훈의 파산를 막아주세요

 

목, 2017/12/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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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서정주를 비롯한 친일문인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일본의 침략에 의해 36년 간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일제를 적극 옹호하고 일본국 천황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자고 했던, 적국의 편에 서서 민족을 배반한 부역자들이다.

이들은 단지 문화예술을 통한 일본에 협조한 행위를 넘어서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의 앞잡이 노릇을 한 ‘전범들’이었다.

중앙일보는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미당문학상 운영과 수상자 선정을 즉각 중단하라!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미당문학상 폐지하라!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은 역사의 무덤 속으로!

2017년 12월 5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민족문제연구소 / 역사정의실천연대 / 친일문학상 폐지를 위한 학생시민연대

금, 2017/12/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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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은평구에 거주하는 결혼7년차 평범함 주부입니다

 

결혼할때도 최대한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마음에 결혼전 쓰던 저의 대부분의 물건을

 

가져와서 신혼살림을 차렸을만큼 아끼고 아껴서 돈을 모아놓았고, 결혼후에, 저없이 혼자살게될 어머님도

곰팡이 나는 집에서 이사시켜드리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절약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IDS홀딩스에 투자한 돈은 결혼 전 밤낮을 일하며 어렵게 모은돈과 친청어머니에게 생활비의 도움을

드리고자 친정어머님집에 대출을 받아서 ids에 투자하여, 어머님께 용돈 및 대출 이자를 갚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69ids사태가 벌어지고 어머님께 드리는 용돈은 물론이거니와 그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의 이자까지 너무 힘겹게 매달 갚아내고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해서 저는 건강도 많이 안좋아지고, 결국 몇 달몇 버티다

남편에게 이실직고후엔 부부사이는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당시 모집책은 김성훈대표의 계좌동결만 풀리면 원금 회수를 할 수 있다하였고,

 

저는 그 말만 믿고 몇 달을 기다리다가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모든것이 거짓임이 밝혀진 지금에도, 이들은 아직도 피해자들에게 ids가 변제를 해줄것이라며 합의서와

함께 지점장 처벌불원서를 받고 있으며 본인들도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태를 늦게 파악한 저는 원금 손실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결혼한지 7년이 되었지만 아이를 가질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입니다..저는 그동안 돈을 아끼느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돈 때문에  밤잠을 설쳤을 때

피해자들의 돈으로 수당을 받아 호의호식한 이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피해자들이 대형 보험사의 FC나 재무설계사, 자산운용가를 통해 IDS홀딩스에 가입하였습니다.

이들 모집책은 금융전문가들로써 IDS홀딩스가 불법 유사수신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이득을 위하여 원금 손실이 없는 월이자식 금융상품인양 안내하여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였습니다.

이에 ids홀딩스를 신고합니다.

 

 

 

 

금, 2017/12/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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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모텔주인은 여석가구로…

적십자희비

마는세종대왕… 그라고….$$$$$…..%%%%%시민역사관 낸다고….

집현전열장

사임당두장                   $약속%

그러나

그인력노동자는  그약속이

일부 달방세입자와나 ……..그리고  ……주인으런의  횡포라고

볼수 있는 ……..그러나

백이호실의 몽문일부

 

부분파손(기물폭행)그리고수갑

그인력노동자의 저녹서 출소날이

십유길

그복직된  화면목탁에게  하소연 하는가?

니는 일마야  최소한  삼육오라는  그팀장형사!

섣딸양력에 이사도  자라는데,

이게  무슨  인심고!?(참고사진경남민언련)

 

금, 2017/12/0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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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임을 하시려거든 그래도 말이 되는 수임을 하시지.. 여기저기 깨끗한 이름이 더럽혀 질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본인도 아시리라 봅니다. 속히 돌이키시어 정의를 지켜주시는 변호사님으로 남아주세요

금, 2017/12/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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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독립군·광복군 정신 계승, 국군 역사에 편입 검토” 학술대회 개최 이례적

육군사관학교가 “독립군·광복군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특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관련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군의 기원을 독립군·광복군에서 찾는 내용의 세미나 등을 개최했으나, 육사가 직접 이 같은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육사가 그간 독립군·광복군 역사 계승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육사는 11일 서울 노원구 학교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특별 학술대회를 연다고 7일 밝혔다. 김완태 육사 교장(중장)은 학술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에 게재된 초대 말씀에서 “현재 군이 일제강점기에 독립군과 광복군이 수행한 독립전쟁을 국군의 역사와 연계 및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육사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하려 한다”고 말했다. 육군의 뿌리를 독립군·광복군에서 찾는 움직임을 이번 학술대회 개최를 계기로 공론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신흥무관학교와 무장독립투쟁’ ‘독립군·광복군과 육군의 기원’ ‘육사의 효시에 대한 연구’ 등 3가지 소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 독립기념관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등 다수의 독립운동 관련 전문가들이 토론과 발제에 참여한다.

신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축사를 할 예정이다.

육사의 이런 움직임은 과거와 뚜렷이 대조된다. 육사는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2011년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100주년 기념식을 육사에서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하는 등 독립군 역사 계승에 소극적이었다. 육사 홈페이지에 나오는 주요 연혁을 봐도 육사는 1946년 5월 개교한 국방경비대사관학교를 모체로 삼고 있다.

육사의 이런 태도 변화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방향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장은 지난 9월26일 단행된 군 인사를 통해 임명됐다.

정희완 기자 [email protected]

<2017-12-07> 경향신문

☞기사원문: 정권 바뀌니 달라진 육사…‘임시정부’서 뿌리 찾는다

※관련자료

육사학술회의 –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歷史”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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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7/12/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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