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6차 핵실험 이후 천하의 여론방·토론방이 뜨겁다. 의견백출, 백가쟁명이 나쁘지는 않지만 어쩐지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문제가 큰 데다 워낙 변수가 많고 그조차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기 (또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문제를 보는 시각과 주목하고 강조하는 지점이 백인백색이다. 국제적으로도 관련 당사국마다, 또 그 내부에서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강조점이 크게 다르다.
‘양국체제’는 중성미자와 같은 전혀 새로운 발상
이럴 때 전혀 새로운 착상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어질러진 테이블을 싹 밀치고 백지 위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중성미자’의 발견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줄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중성미자처럼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생각하지 못해왔던 것이 한반도 양국체제 아닐까? (이미지: 인터넷 캡처)
일례로 물리학에서 ‘중성미자(neutrino)’의 발견이 그렇다. 방사선 방출로 원자의 성격이 변할 때, 기존 입자와 새로운 입자의 에너지 합이 일치하지 않았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위배되는 골치 아픈 현상인데,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전혀 새로운 발상이 나왔다.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는 미세입자가 이 변환 과정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역사적으로 뛰어난 착상들이 종종 그러했듯 이 생각도 처음에는 황당하다고 조롱받았다.
그러나 이 착상에 몰두한 이들이 결국 그 존재를 입증해냈다. 애초에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는다’고 하였던, 그래서 조롱을 받았던 이 입자는 이제 물리학·우주론의 최대 총아가 되었다. 지구와 태양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가 하면,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줄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보이지 않기는커녕 알고 보니 가장 많은 입자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을 수조 개의 중성미자가 투과하고 있다. 다행히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양국체제’가 중성미자 같은 것 아닐까?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생각하지 못해왔던 것,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았던 것’이 한반도 양국체제 아닐까? 반드시 하나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문제 해결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닐까? 실은 하나가 아니라 둘인데 말이다. 그 70여 년 간 좌든 우든 남이든 북이든 통일을 말해왔다. ‘분단’은 일시적이고 ‘통일’은 항구적이다 라고. 오직 하나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만 알면 곤란하다. 둘을 생각해 볼 때다.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가 남북의 독재 불러
반드시 하나라고 하니까 70년 동안 피차 죽기로 악착같았던 것 아닌가? 먹히지 않으려고 말이다. 서로 인정하고 제각각 잘 살아보자고 하면 안 되나? 절대로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도돌이표다. 피차 사생결단, 죽기로 악착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남이든 북이든 독재가 판쳤다. 독재를 끊어 보자고 4·19를 하고, ‘서울의 봄’을 하고, ‘광주항쟁’을 하고, ‘6월 민주화 대항쟁’을 했지만, 결국 다시 독재가 되돌아 왔다. 다이하드(die hard)였다. 잡초보다 끈질겼던,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였다. 이제 위대한 촛불이 또 한 번 독재를 끊었다. 이번에는 영영 끊어야만 하겠다.
그 지긋지긋했던 ‘독재의 순환고리’가 먹고 살았던 것이 ‘분단체제’다. 통일을 해야 하는데 저기 휴전선 너머 남에, 휴전선 너머 북에, 불구대천의 원수, 적이 있다. 이 흉악한 적과 맞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독재자들은 이야기해 왔다. 그것을 유신 독재라 하든, 인민 독재라 하든, 이름을 뭐라 그럴 듯하게 붙이든, 그것은 그냥 적나라한, 창피할 정도로 아주 지독한 독재였을 뿐이다.
한반도 양국체제란 간단하다. 한국(ROK)과 조선(DPRK)이 수교하여 공존하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것처럼, 조선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正常)이다. 이미 다 유엔 회원국들이다. 유엔헌장에 회원국들은 서로 주권을 인정한다고 되어 있다. 유엔 회원국들끼리 수교를 안 하고 있는 게 비정상일 따름이다.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룬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멀쩡히 잘 살고 있다. 옛적 통일신라와 발해도 멀쩡히 잘 살았다. 서로 하나라고,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둘이라고 오가지 못하나?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진다. 서로 비자 받아 오가면 된다. 경제 협력이 안 되나? 이거야 지금보다 안 될 수는 없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다.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룬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그렇지만 우리 민족도 옛적 통일신라와 발해가 멀쩡히 잘 살았지 않은가. 서로 하나라고,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양국체제일 때 남북협력 오히려 더 증진될 것
둘이 되더라도 초반에는 관계가 안정되기까지 덜컹거림이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잠시 동안의 물리적 상수일 뿐이다. 시작이 반이다. 남과 북이,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인정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굳히는 것, 그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하다. 이 결심이 진실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면 된다.
하기로 하면 남 탓할 일이 많기는 하겠다. 그러나 남 탓 이전에 우리 내부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과 조선이 이렇게 움직여 갈 때, 주변 어느 나라도 이 길을 대놓고 반대하거나 방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그럴 권리와 명분이 있다고 나서겠는가? 세계가 축하할 것이다. 세계를 평화롭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북은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 이어 1월 23일에는 신년사 관철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4개항의 <전체 조선민족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고, 그 중 4항이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자!”였다.
그래서 이 글은 그 화답의 의미도 있지만, 그런 북의 호소가 아니더라도 한반도에서의 통일문제는 시급한 문제이다. 비정상성의 분단 70여년이라는 그 세월과, 또 그런 상황을 극복해야 될 (역사적) 소임이 촛불정부(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분명히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평화’ 프레임에만 갇혀 통일의 ‘통’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이 글은 문재인 정부가 다시 궤도지표를 재설정해내기 위한 그런 강제의 역할과 촛불민심의 통일열망을 재구축하기 위한 시론성격으로 구성되었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정부, 시민사회, 해외가 함께하는 통일방안 합의에 작은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통일은 운동권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담론이 지금은 진보든, 보수든 누구나 다 통일을 얘기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만큼 진화해왔음을 상징하고, 국민적 동의도 확산해왔음이다. 그렇게 통일 단어 그 자체가 금기시되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문제는 보수는 통일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진보는 통일담론을 보다 성숙하게 진전시키는 힘을 상실했고, 이후 통일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미래 삶과 직결된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 통일 문제는 이렇게 다른 양상으로 논쟁의 지점을 양산해내고 있다.
해서 보수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당신들은 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궁금하다.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통일할 생각이 있는지? 통일을 다 외치고 있다고 하여 다 같은 통일의 모습은 아닐 것이며, 정략적이지 않다고 할 보장도 전혀 없다. 억울하다면 곰곰이 한번 생각해보시라. 통일을 하자면서 북과 적대관계를 청산할 생각은 전혀 없고, 더 나아가 북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것이 통일할 의사가 있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없다고 봐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당신들은 분명 대답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낙인일지는 모르나, ‘사실상’통일을 원치 않는 그런 정치적DNA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을 현혹하고, 집권을 위한 표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정략적 위장을 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이해가 된다.
그러니 그 어찌 그들에게 통일을 기댄다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와도 같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들의 정치적 생리와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고, 그 상황에서는 그들의 통일문제는 언제나 정략적일 수밖에도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의 ‘통’자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이유도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그들의 길을 봐서도 그러하고[전국적 범위(한반도 전역)에서 자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 통일이라 했을 때 사대에 찌 들릴 대로 찌 들리고, 반북·종북·반공소동을 밥 먹듯 일으키는 그런 세력이 과연 통일을 감당해낼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볼 수 없어서 그렇다.], 통일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민족적 관점에서 이행되는 통합과, 외세에 의해 분단된 상태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 즉,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실현하는 민족적 쾌거인데, 이를 보수수구세력들이 정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겠는가?
단연코 역량은 모자라고, 문제를 풀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는 백번 양보하여 보수수구세력이 통일운동 본령 상 전민족인 대단합과 단결의 일 주체인 것은 분명 맞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과거의 시각에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는 한, 그들은 절대 통일운동에 있어 ‘진정성’있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그런 태생적 한계가 극복되지 않는 한.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그들에 의해 마련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진정한 통일방안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허위’방안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불편하지만 UN 가입국 중 유일한 분단국으로는 남(대한민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고, 또 남과 북에는 통일업무를 관장하는 정부부서를 두고 있기도 하다. 남은 통일부라고, 북은 통일전선부(약칭, 통전부)라 부른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망각하는 것이 하나 생겼다. 착시하는 것이 하나있다는 말인데 다름 아닌, 국가가 ‘통일’자가 들어가는 그런 부서를 두고 있으니, 그 어느 정부부처보다도 ‘통일’을 열심히 추진할 것이라고 보는 그런 시각이다.(북도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통일부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그런 기대와 실재는 같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통일부가 전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말인데, 일례로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지금의 문재인 정부조차도 통일부는 ‘통일’을 얘기하지 못하고, ‘교류·협력’만 말하고 있으니 그렇지 못한 정권하에서는 두말하면 잔소리이지 않겠는가.
그 전제하에 좀 더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예를 들어보자.
그 첫째에 문재인 정부의 국정슬로건에 따른 제한성부분이다. 연동은 통일부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정과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에 갇혀있으니, 통일부가 통일의 ‘통’자를 꺼내기가 여간 버급을 수밖에 없다. 결과도 통일부는 통일부 고유의 역할인 ‘평화적 통일을 진전’시키는, 즉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통일방안이나 활성화 대책 뭐 그런 것을 논의하고 이행시키기보다는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그런 교류·협력에만 시름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논의의 취지를 그렇게 왜곡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이 정부-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벅찰 수도 있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고, (이글을 쓰고 있는)현재까지도 미국은 대북정책 통제장치인 한미워킹그룹을 두고 간섭하고 있어서 그렇다. (‘통일’을 얘기하지 못하는) 그 두 번째 이유가 그렇게 발생한다.
분명한 예도 있다. 제아무리 많이 양보하더라도 통일의 문제가 분단 그 자체는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은 맞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민족내부의 역량문제를 그 본질로 하여 풀어나가야 할 그런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하나하나 다 간섭한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 과연 주권국가가 맞나할 정도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의 3월 13일에 정례브리핑을 한번 들어보자. 그날 그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한미워킹그룹 논의 후 결정”이란다. 그렇게 민족내부의 문제, 그것도 경협과 관련되어 방북하는 것조차도 워킹그룹의 승인이 이뤄져야 방북할 수 있다니 다른 것(사안)들은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이것이 주권국가 대한민국을 자임하는 현주소다.
참으로 딱하지 않다고 할 수 없고, 지금의 통일부가 이 정도이니 과거의 통일부는 말해봤자 뭐 하겠는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통일부는 이렇듯 통일부라는 명칭을 달고는 있지만,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의 눈치는 물론이고, 국내 정부부처 중에서도 외교부와 국방부 사이에서 그 뒤치다꺼리나 하는 그런 청소역할과 독자적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식물부서에 다름 아니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기껏 한다는 것이 종북논쟁이나 유발시키고, 통일을 하자면서도 사실상은 그 길을 가로막는 반북·반공이념의 전파에 혼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류·협력을 얘기하면서도 흡수통합 그 실현을 위해 북을 고립·압살시키는데 앞장섰다. 이렇듯 부서의 정체성 훼손은 비일비재했다. 통일부의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그렇게 통일부가 스스로 만들어왔던 것이다. (이 정부 하에서는 제발 좀 달라야 할 텐데…)
2.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비롯한 역대정부의 통일정책, 과연 그 진정성은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그 어떤 정부도 진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또한 문재인 정부의 사례를 확인해보면 금방 그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 어렵지 않는 문제이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올해는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 답방이 이뤄지면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된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회담이 주권국가의 정상회담이라는 성격과, 민족관계로서의 최고위급회담(민족대회합)이라는 그런 측면에서의 성격이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면 그런 회담을 북미회담의 종속회담 그런 회담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남북이 풀어나가야 할 근본문제,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논의뿐만 아니라 분단의 비정상성을 통일의 정상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논의도 함께 병행해야 되는 것이다.
누가 봐도 그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분명 쉽지만은 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우려이다.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보수수구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비핵화문제와 통일문제를 전면화하는 데는 매우 신중하고도 접근 그 자체를 꺼려하고 있어서 그렇다.
특히, 그 연상선상에서 통일문제는 ‘사실상의’ 통일정책이 전무해서도 그렇고, 굳이 있다면 평화정책만 있고, 백번양보 하더라도 남북교류협력정책만 있으니 그 어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도 철도와 도로연결사업,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에만 관심이 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합리적 포장이 신한반도(경제)체제이다.
물론 고충이 있고, 또 그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확고히 구축해놓고, 통일의 문제를 그 다음 정권에서 시작하려는. 하지만, 그것과 통일담론 그 자체를 아예 봉쇄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논외여서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여기에는 시민사회의 책임도 참으로 크다는 말만은 분명히 남겨놓고자 한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런 담론의 공론화과정을 거쳐 성숙해나가고 시민의식으로 정립된다. 그러다보니 그 통과의례에는 시끄러운 것이 정상적이다. 해서 이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두려할 필요도 없다. 그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발전되고 성숙해나가니까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명명백백하게 정부는 정부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주어진 헌법적 책무방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제4장 제1절 66조 ③항에는 대통령의 의무를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무조건적인’ 눈치 보기와, ‘과도한’ 남남갈등에 대한 우려, 보수수구세력의 공격 등에 대한 두려움 등이 맞물려 통일의 ‘통’자도 꺼내지 못한다? 말로는 정치를 국민중심(촛불민심)에 놓는다하였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고, 정략적이고 외세에 의해 가름하려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어찌 보면 이 정부가 그것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민주당정부에로의 정권재창출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그런 (정치적)셈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즉, 민주당정권을 넘어서는 그런 촛불정부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이 정부 하에서도 제대로 된 통일정책은 부활하지 못할 것 같다. 햇빛보기가 다 글렸고, 그 상황과 비례하는 만큼-민주정부 하에서도 그러니 보수정부 하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통일정책은 헌법에만 갇혀있는 그런 ‘사문화’과정과 똑같다. 백번 양보하여 통일의 ‘통’자를 설령 꺼냈다고 하더라도 이는 철저한 정파적 이해관계 반영뿐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역사의 파편들』(주한 미대사를 지낸 그레그 지음; 창비, 2015)이라는 책의 내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난 정부(보수, 민주정부 둘 다)는 공히 ‘보고 싶은 것만 보는’희망적 사고와 ‘우리가 보다 민주적이고, 잘 산다’는 체제 우월적 사고에 빠져 한쪽에서는(보수정권) 북한붕괴론에 빠지게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민주당정권) 교류·협력을 전개해 나가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오류’에 매몰된다.
특히, 앞서 강조하였듯이 임기 내내 북한붕괴론에 취해있는 정부 하에서 제대로 된 통일정책을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 한다’라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와 전혀 다르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가장 최근의 사례라 할 수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사례는 보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0년(이명박 정권 때) 11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비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 붕괴를) 기다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기록되어있다. 2010년 2월에는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한 걸로 나타나 있다.
또한 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사례도, 이 또한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이명박 정권 때보다 못하지 않다. 아니, 거의 신앙적 수준이었다. 여러 증명자료들이 있겠으나 가장 단적인 예가 2013년 12월 21일 국가정보원 송년 모임에서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2014년 벽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터뜨렸고 곧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3.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및 문 대통령의 통일관에 대한 비판적 접근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3단계 통일방안)이다. 이는 1994년 8.15기념사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9.11)을 계승 발전시켜 자주, 평화, 민주를 기본원칙으로 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제시되면서 공식화되었다. 이후 역대정부가 이 통일방안을 계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는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없다.
해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으로는 이 연장선상에 있다할 수 있을 것이고, 다만, 민주당정권을 계승해간다는 측면에서는 화해·번영의 한반도정책이 DJ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남북연합 → 연방제 → 완전통일)과 참여정부의 4단계 통일방안(평화구조 정착단계 → 교류협력 발전단계 → 국가연합 단계 → 통일단계)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본다면 참여정부를 더 많이 계승하려 할 것이라는 짐작정도는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6.15남북 공동선언 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를 계승하려 한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보수· 민주정부가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통일방안의 기본골격은 전체적으로 통일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그런 기조 하에 정립된 것이 분명하다. 평화구조 정착단계와 화해협력단계(혹은, 남북연합단계)를 거처 궁극적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해 나간다는 그런 3단계(혹은, 4단계) 통일과정을 설정하고 있으니 이는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를 큰 틀에서 보면(넓게 확대해서 보면) 화해협력단계(1단계)→ 남북연합단계(2단계)→1민족1국가 통일국가 완성단계(3단계),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 화해협력단계는 남북 간의 적대와 불신을 줄이기 위해 상호협력의 장을 열어가는 단계이다. 분야별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 하면서 남북이 각기 현존하는 두체제와 두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2단계인 남북연합단계는 화해협력단계에서 구축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활발해지고 제도화되는 단계를 일컫고, 이 단계에서 남북은 상호신뢰를 구축하면서 평화정착과 민족의 동질화를 촉진해 다가가게 설계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단계에서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 하에서 통일지향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통합과정을 관리해 나가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마지막 3단계인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 완성단계는 남북연합단계에서 제정한 통일헌법에 따라 남북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통일국회를 구성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해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그런 단계이다.
문제는 과연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다.
가장 절대적으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흡수통합을 그 전제로 하니 절대 남과 북이 합의할 수 없는 그런 통일방안이어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손 치더라도, 백번 양보하고 선의로 해석하여 민주정부의 통일방안은 좀 긍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건덕지라도 좀 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분단체제에서 통일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유엔에 각각 가입해있다는 것에 기초해 국가연합단계를 장기간 설정하는 것을 그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 했을 때 이 또한 양국체제론의 변형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되어 그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6.15공동선언을 내오기는 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폐기하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 방안은 일명 ‘평화공존 논리’로 표장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고민이 깊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존재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남북은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며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기로 한 합의(일명, 연방연합제)가 있고, 거기다가 북은 그 합의에 대해 2014년 7월 7일 공화국 정부성명을 통해 남과 북은 “온 겨레가 지지하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담보하는 합리적인 통일방안을 지향해나가야 한다”면서 “련방련합제방식의 통일방안을 구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까지 했으니 이 어찌 고민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가 분단적폐 청산과 전 국민적인 통일방안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촛불정부로서의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통일정책 형태에는 기간 문재인 정부의 행보와 태도로 봤을 때는 결코 쉽지 않는 딜레마가 놓여있어 더더욱 고민은 깊고 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직, 평화담론정책에만 그 필이 꽂혀있어 ‘통일’의 ‘통’자도 이제까지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실증의 한 예다.
2019년 신년사에서도 ‘통일’의 ‘통’자 한자도 꺼내지 않았고, 여전히 ‘평화’에만 시선이 고정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평화의 흐름이 되돌릴 수 없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도록”했을 뿐이다. 1월 10일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경제이야기를 2/3정도 할애하다가 결국 ‘평화’얘기만 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고 평화가 완전히 제도화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습니다. 평화가 곧 경제입니다.”[이와 관련한 비판 글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본인의 <통일뉴스> 기고 글(2018-04-0), “2018 남북정상회담: 못다 쓴 ‘판문점선언’ 내용 채우기” 참조]
더 과거로는 문 대통령께서 2018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해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는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도 말했다. 전형적인 평화공존론 인식이다. (이를 백번 양보하여 해석하면 발언의 앞뒤 맥락상 문재인 대통령께서 통일을 반대한 건 분명 아니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해야 하지만 당장은 평화부터 실현하자”는 정도의 발언이 더 정상적이다고 했을 때 굳이 평화공존론, 양국체제론으로 비칠 수 있는 그런 발언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냐는 그런 측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상황이 이러함으로 통일방안 논의를 대국민적으로, 또 제4차 정상회담 때 당국자 간 논의를 진행시켜낸다 하더라도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담아낸 ②항보다 좀 더 진일보된 합의문을 내와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까? 하는 그런 의문이 있다. 이른바 ‘연방연합(혹은, 연합연방)제로 합의하였다’로 명문화하고, 이를 대국민 설득해내어야 할 텐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그런 문제 말이다.
4. 나오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평화번영정책에 포박당해 있어서는 그 답이 없다
해서 촉구하고자 한다. 본인이 <다른 백년>, 2019-01-23일자 “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2): 남북문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대한민국 정부나 정계가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고 그저 지금은 평화유지냐 적대냐, (경제)제재냐 (경제)협력이냐 하는 그런 정도의 대립과 갈등만 생각하고 그렇게 날을 지새우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염없이 ‘보내진’ 분단 70여년의 긴 시간과 세월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이제는 통일해야 된다고 울부짖는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든, 민주정부의 3단계(혹은, 4단계)통일방안이든 그 호소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해낼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통일정부수립과 주한미군과의 관계설정부분도 진지한 성찰이 꼭 필요하다. 즉, 두 관계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그런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는 과거정부가 그러하였듯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마냥 무시하고 대충 얼무버린다면 진지한 통일논의와 통일정책을 펼쳐나가기가 참으로 난망하다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결론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통일정부수립에 찬성하더라도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또 한미동맹 해체반대와 주한미군철수 반대를 주장하는 그런 보수적 시각을 쉽게 넘어설 수 있느냐?하는 그런 문제가 노정되어 있으니 그 어찌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통일문제의 본령이 외세와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함의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정면, 혹은 우회적인 돌파구만은 반드시 열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유도 분명하다.
그 첫째, 분단이 외세(미국)의 개입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면 그 장본인인 외세의 장벽이 철거되어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정당하다. 둘째이유는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주둔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협정은 주한미군 완전철수를 강제하게 되고, 그렇게만 된다면 주한미군 없는 통일은 상상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다만, 이 글에서는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를 통해 가칭)동북아평화유지군과 같은 형태로 주둔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일각의 논의와 주장은 논외로 한다.)
이렇듯 조국통일의 본령은 외세에 의한 분단과 그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체제, 제도를 (창의적으로) 통합하는 그런 창의적인 문제이다.
이는 일제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민족적 역량결집이 필요했듯이, 분단 역시 남북해외 전 민족적인 역랑이 총결집하여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내와야 하고, 그 힘으로 전국적인 범위에서 외세를 몰아내어 민족의 통일정부를 세워내어야 하는 그런 문제이기에, 1948년 남북연석회의 때와 같은 그런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ver.2의 남북연석회의, 혹은 전민족적 정치대회합과 같은 그런 통전개념의 전선개념이 필요하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통일추진정책과 시민사회의 48년 남북연석회의를 계승하겠다는 그런 운동적 의지에 의해서만 돌파 가능하다. 그 중심에 문재인 정부를 때로는 비판, 때로는 견인하는 그런 노숙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 한해가 꼭 되게 하자.
【보론】 문재인 정부의 제대로 된 중재가가 되기 위해서는?
순항하던 북미관계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그 시계가 다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은 그런 제로섬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와 비례해 문재인정부의 역할은 극대화되길 원한다. 이른바 제대로 된 중재자(론)인데, 이에 대한 답이 의외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평양에서 외신들과 한 기자회견(3월 15일)에서 나왔다. “남한 정부는 중재자(arbiter)가 아닌 플레이어(player)”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정리하면 그 첫째에, 어설픈 중재자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른바 중재자적 관점에서 미국에도 양보를 요청하고, 북에게는 더 큰 양보를 요청해 그렇게 만들어지는 접점, 절충점에 대해 미리 경각심을 내보였다 할 수 있다.
그 둘째에, 그럼 어떻게?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그런 플레이어가 되란 말이다. 그리고 그 뜻은 금강산 관광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을 미국이 그어놓은 선, 거기서 움츠려들지 말고 그 대북제재의 선을 넘어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요청은 사실 뭐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다. 뜻있는 법률전문가들, 정치인, 시민사회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법률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이 선은 대북제재 선과 관계가 없는 것이니,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을 믿고 용기를 내어 그렇게 계속하여 (동맹국인) 미국의 눈치만 계속 볼 것이 아니라, 과감히 넘으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만이 아니라면 못 넘을 이유가 하등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셋째에, 정권의 속성상 한미동맹 그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더라도 한미동맹 관계의 정상화 관점에서 미국을 설득하라는 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와도 상통한다. 국익이 때로는 동맹의 이익과 상충할 때도 있고, 그럴 때는 제아무리 한미동맹이라 하더라도(엄청 불편하더라도) 국익관점에 서야 함을 안내해내어서 그렇다.
그 넷째에, 현상보다 본질에 입각해 중재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전략이 벽에 부딪쳤으면, 그 결과이자 본질인 평화를 통한 비핵화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비핵화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과정이기도 하다면 비핵화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수단이 되는 그런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해소와 불가침, 군축 등 적대관계 해소를 통해 평화를 불러오고, 또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진전이 신뢰를 쌓고,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그 신뢰의 힘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해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역발상, ‘평화가 비핵화를 추동한다.’ 필요할 때다. 그러면 미국을 역(逆)포위하는 그런 전략도 가능하다. 한반도평화에 동의하는 주변국, 즉 일본을 제외한 중국, 러시아와 평화협력을 강화해 미국을 설득해나가는 것 말이다.
통일뉴스, 2019년 3월 2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와 협의하여 일부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여러 나라, 특히 한국에서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던 2019. 2. 27. ~ 28. 하노이 정상회담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과 달리, 트럼프와 김정은은 준비된 오찬도 먹지 않은 채 각자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사실상 미국과 북한이 거의 의미 있는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하노이 실패는 사실상 처음부터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노이 회담이 끝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걱정, 그리고 우려감과 긴장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은 앞으로 북핵 문제에서 아무 진전이 없을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타협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제는 이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관계 국가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는 대신에 쉽지 않은 현실을 잘 인식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약 1년 만에 낙관주의 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현실주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
사진: KBS뉴스
지난 2018년 4월 말, 거의 모든 한국 언론은 ‘낙관주의 쓰나미’에 덮혀졌다. 특히 진보경향 언론이 더욱 그랬다. 기자들은 한반도에서 영원한 평화시대가 도래하고, 악명높은 분단체제가 드디어 무너지고, 이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한반도를 만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주말에 묘향산으로 가서 현지의 아줌마가 파는 군옥수수를 먹으며 산에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기자들은 개성과 평양을 통과하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때가 멀지 않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필자는 이 주장을 보면서 웃음을 짓거나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의 자료들을 잘 정리하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수많은 한국 기자와 학자들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증거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람들이 믿고 싶은 착각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봄에 피어났던 많은 희망은, 근거가 별로 없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을 비롯한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낙관주의가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관광객들이 금강산 여행 준비를 위해 가방을 싸고 있다고 하더라도, 2018년 봄에 넘쳐났던 꿈은 현실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도 불가능하고, 남북한 자유왕래도 불가능하며, 남북한의 협력 강화에도 매우 강력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어떤 사람 혹은 정치세력의 나쁜 의도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를 희망대로 될 수 없게 하는 이유는, 사실상 바꿀 수 없는 구조 그리고 여러 관계 세력의 이익의 장기적인 모순과 충돌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측이 믿을만한 안전보장을 받는다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핵을 포기한 북한이 너무 큰 경제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누군가는 북한측이 경제건설을 위해 핵 포기 의지가 있다고도 하는데, 모두 다 틀렸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당국자’들이 아니라 실제 ‘북한 당국자들이 가진 생각’이다. 제일 먼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조차 없다. 북한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할 필요가 생길 수 있지만, 북한을 이끄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들은 미치광이들이 아니라, 그들은 매우 합리주의적이며 냉정한 사람들이다. 최근의 세계 경향을 매우 냉정하게 분석하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에 핵개발을 하지 못한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을 당했다. 결국 이라크 통치자였던 후세인은 처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라크 엘리트계층 사람들이 죽었고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에도 고급외교관으로 지내던 존 볼턴의 말을 잘 듣고, 핵개발을 포기했던 카다피 대령은 나토의 간섭 때문에 혁명군을 힘으로 잘 진압하지 못했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1994년에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의 국경보장 약속을 믿은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내의 소련시대 핵무기를 양도했다. 그들은 2014년에 부다페스트 각서 당사자인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자신들의 보석으로 여기던 크림반도를 영원히 상실했다. 이것을 잘 본 북한 엘리트 계층은, 비핵화를 할 생각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다면 그들이 기꺼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의하기 매우 어려운 주장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야당이 여당이 될 때’마다 과거의 정책을 매우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매우 어렵게 이룬 이란 핵합의를 하루아침에 취소해 버렸다. 미국에서도 차기 민주당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 북한과 맺은 체제보장이든 기타 합의이든 이와 같이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근거는 어디 있을까? 그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를 관리할 수도 어느정도 감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반드시 몇 기의 핵무기를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자신의 생존을 다른 아무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제일 합리주의적인 태도이다. 그들은 자살가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해외에서 지원을 많이 받을 수도 없으며, 투자를 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거의 확실히 사실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70-80년대 남한이나 80-90년대 중국과 같은 고도경제성장을 자랑하는 개발독재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엘리트 계층의 입장에서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결정적인 걱정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통치자들은 당연히 자기 나라가 빨리 발전하고, 잘 사는 이웃나라들을 따라잡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못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닌 체제유지이다. 그들은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면, 자신의 생존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을 초래할 것 같은 정책을 하지 않을 것이다. 死者는 富者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이라크나 리비아와 같은 체제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조치는, 그들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비핵화 없이 고도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것을 잘 알더라도 ‘자살’과 같은 비핵화를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희망하는 남북한 자유왕래도 꿈 뿐이다. 지난 2018년에 북한은 오랜만에 1인당 GDP 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북한 경제학자들은 2018년 북한의 1인당 GDP를 1214달러로 발표했는데, 이것은 남한보다 25배 작다. 이 세상에 남북한만큼 생활수준, 소득격차가 심한 이웃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북한 엘리트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실이다. 인민들이 남북한 격차를 잘 알게 된다면 당연히 만성적인 위기를 야기한 체제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질 것이고, 서울 주도 흡수통일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은 당연히 환상이지만, 인민들은 열심히 믿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인민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외부생활에 대한 지식이 많이 확산된다면, 김씨일가 그리고 엘리트계층은 나라를 통치하고 국내 안전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문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나라의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임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다수의 경우 그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엘리트 계층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그 자리에 있는데, 그들이 자신의 先代들을 비난하고 격하할 경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해진다. 先代에 대한 공격은 북한 엘리트계층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북한의 쇄국정책은, 북한 엘리트 계층이 편집증 환자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쇄국정책은 북한 국가의 생존조건, 북한 국내안전의 유지조건이다. 북한 백성들이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잘 알 수 없어야 체제유지가 가능하다.
쇄국정책은 북한의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이다. 등소평의 중국과 박정희의 한국이 잘 보여주었듯이, 해외로부터 투자와 기술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민간 등의 교류를 많이 할 때 경제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 계층이 이 사실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개방’을 비핵화만큼 ‘자살’로 여길 이유가 이미 충분히 있으므로, 그들은 쇄국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바깥사람 전용’공간을 마련할 수 있지만, 평양역이나 개성역에서 서울발 파리행 여객열차의 남한 사람들이 하차해서 역 주변을 관광하는 것도, 서울의 어떤 교수가 아무 때나 묘향산에 가서 자유롭게 등산하고, 인민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이것은 북한 집권세력이 사악하다거나 나쁜 의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나 집권세력은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엘리트계층은 정권교체의 경우에도 권력을 뺐긴 사람들은 출구가 있다. 그들은 대학이나 기업으로 가거나, 아니면 야당 활동을 할 수 있다. 북한 엘리트 계층은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옛날 인권침해 때문에 감옥으로 가지 않는다고 해도, 특권과 재산을 전부 잃어버릴 것이다. 즉 그들은 비상구가 없다.
그 때문에 2018년 봄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아름다운 한반도의 미래’는 꿈 뿐이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집권세력은 내부적인 구조의 한계 때문에 비핵화도, 개방도, 남북한 자유왕래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유감스러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아름다운 꿈에 대해서 계속 주장할 수 있지만, 마음 속에서 진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평화체제’의 꿈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남북한의 장기적인 평화 공존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목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북핵의 동결이나 감축은 가능한 일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측의 공식 발표를 보면, 그들은 앞으로도 회담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노이에서 미국측이 거부한 북한의 제안은 매우 심각한 착각과 잘못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측도 타협을 희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북한은 어떤 조건이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측은 영변을 비롯한 핵 시설의 일부를 철거하거나 폐기할 수 있고, 조건이 좋을 경우에는 이미 생산된 탄두, 무기용 플루토늄 또는 HEU의 일부를 반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공짜는 없으므로, 북한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에 막대한 보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적어도 대북제재를 완전히 완화하고,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미국(또는 남한)의 경제적인 양보는 정치적인 양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북한측은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또는 수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수십억 달러 이상의 보상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한 현실주의자들인 북한 결정권자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력뿐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측과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한 엘리트계층이 세계를 보는 의식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남한측이 북한과 교류를 할 때 거의 불가피하게 직간접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수파 박근혜 대통령도, 진보파 문재인 대통령도 통일이나 남북협력이 큰 이익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아주 먼 낙관주의이다. 하지만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적이니까, 이 목적을 이루는 데 투자하는 돈을 그저 낭비된 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남북한 경제협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남한 납세자들의 돈이다. 보수파 일부의 주장과 달리, 남북한 경제협력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퍼주기가 아니다.
현 단계에서 북한측은 핵 동결(내지 감축)에 관심이 있는데, 문제는 미국측의 태도이다. 미국측은 이와 같은 부분적인 해결 방법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지 벌써 몇 년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포용정책도, 강경정책도 북한의 비핵화를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구조를 감안하면, 핵 관련 전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중급이나 하급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아니다.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백악관, 의회, 국무성, 국방성 등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도, 미국 여론도 아직 착각을 극복하지 못 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힘이 많은 주류 의견인 강경론은, 이와 같은 타협이 비확산체제를 위반한 파렴치한 국가에 대해서 보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북동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보다 전세계에서의 핵 비확산 체제 유지를 더 중요시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동결(내지 감축)에 대해서 반대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 동결은 전 세계 핵확산의 대문을 여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우려감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남한 외교관들은 미국측도, 북한측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북 양측 모두 불만이 없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이 없다면, 한반도에서의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때문에 여전히 걱정이 많은 미국은 2017년과 비슷하게 가끔 대북 압박 정책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측도 핵동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핵, 미사일 능력을 더욱 열심히 개발하고 가끔 위기를 도발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미 관계에서 위기를 예방하려 중개인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양측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북한 관리’는 값싼 일이 아니다. 북한은 물질적인 보상 없이는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고, 미국측은 ‘비핵화’를 포함하지 않는 모든 타협안에 대해서 반대감이 있는 조건 하에서 필요한 비용을 낼 수 있는 세력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노선을 보면 ‘개방이 없는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2012년부터 김정은 정권은 1980년대 초 중국과 매우 유사한 경제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북한 경제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 2016년부터 많이 엄격해지기 시작한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성장의 길을 가로막았지만, 이 제재가 완화된다면 북한 경제는 다시 활기를 찾고 빠르게 성장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2012-16년까지 김정은의 경제개혁 시기 북한 성장률이다. 당시에 시장화를 시작한 북한에서 성장률은 최소 3%에서 최대 7%로 추정되었다.
북한 경제 정책은 시장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시장 중심 정책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해외 유학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현대세계를 잘 관찰한 김정은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등소평시대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을 비교해보면, 공통점뿐만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1980년대 등소평 시대 중국과 달리 북한에서 정치자유화와 개방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여전히 쇄국정치를 엄격히 실시할 뿐만 아니라, 김정일 시대보다 일정 수준 더 강화했다.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완화하기 시작할 조짐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 집권세력은 개방을 시작한다면 체제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방은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세계 역사에 전례가 없는 김정은 정권의 ‘개방이 없는 개혁’ 시도가 성공할 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관찰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외부투자를 유치하지 못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2010년대 초 상황을 고려하면 ‘개방이 없는 개혁’의 시작은 어느 정도 북한경제의 성장을 초래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개방이 없어도 북한은 보다 더 열심히 시대착오적 중앙계획경제를 없애고 시장경제를 도입한다면,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남한측은 북한의 개혁을 환영해야 한다. 북한 경제가 많이 개선된다면 북한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의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매우 위험한 벼랑끝 외교를 할 이유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북한式 개방이 없는 개혁 정책을 많이 도와주면 좋다.
남한은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북한 엘리트 계층의 특수성과 우려감을 감안하여, 북한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햇볕정책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 북한은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을 몇 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금강산관광과 같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제한된 관광’에 동의할 수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러한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러한 제안에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북한측은 관광지역이든 공업지구이든 모든 것을 감시, 통제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교류사업을 허가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묘향산에서 ‘특별관광지역’이 생길 때에만 서울의 교수는 묘향산으로 등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교수와 함께 군옥수수를 먹을 사람들은 현지 할머니들 대신에, 안내원으로 위장한 국가보위부 요원들 뿐이다. 공업지구도 비슷할 것이다. 북한측은 모든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남한측 관리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한 노동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하지 못한다면, 공업지구 계획에 동의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남한 입장에서 관광사업, 특히 공업지구는 가치가 많은 사업이다. 이것은 북한 경제발전을 많이 도와주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매력이 많은 ‘자유롭고 잘 사는 남한’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혁명적인 반체제 감정이 솟구칠 수도 있지만, 체제의 단계적인 변화에 대한 많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희망은 북한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바뀌도록 북한 통치권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현 단계에서 제일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비롯한 농축우라늄 생산시설과 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시설 대부분을 폐쇄하고, 그 대신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측이 경제개발 또는 인프라 개발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 이와 비슷한 특구가 몇 개 더 생기면 좋을 것이다. 남한은 북한 철도, 포장도로 건설 등에 많이 투자할 수도 있다.
벌써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은 이와 같은 타협에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미국측은 북한이 어느 정도 핵무기를 유지한다고 해도, ICBM 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도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환영할 이유가 있다. 다른 입장에서 미국은 북한측이 외부에서 알 수 없는 지하시설에서 수십기의 핵무기를 여전히 보유하며, 규모가 작더라도 여전히 핵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환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착각을 극복하지 못하는 미국 언론, 여론 그리고 전문가들이 아닌 정치인들은 반감이 많을 것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반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이 사실적인 핵 보유국이 되더라도 겉으로 북핵의 동결 및 감축이 ‘핵동결(내지 감축)의 완성’이 아니라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북한측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핵동결이나 감축을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로 공식적으로 널리 알리며, 북한과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회담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회담은 별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적으로 선전한다면,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타격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한다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 대신에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비핵화를 하고 있는 나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개념은 아무 차이가 없지만, 후자는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좋으며, 북핵이 국제 핵 비확산 체제에 만든 구멍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는 담론이다.
이와 같은 해결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문제의 완벽한 해결을 이루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며, 덜 나쁜 시나리오나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보통 있는 일이다.
한편으로 남한 입장에서 이와 같은 타협과 장기적인 평화공존은 윤리적인 문제가 없지 않다. 남한 진보파도, 보수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문제는, 이러한 핵동결과 개방이 없는 개혁을 열심히 하는 ‘개발독재 북한’에서 여전히 큰 문제일 것이다. 물론 남한측은 이런저런 부문에서 인권침해 완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그 효과도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북한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는 김정은이나 북한 통치권자들의 惡意의 결과보다도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자유가 많으며 잘 사는 남한이 있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가 있을 수조차 없다.
이와 같은 타협을 이루기 위한 조건은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바로 지금 그 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는 매우 특수적인 미국 대통령이다. 한편으로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과 다르게 대북 선제공격을 하고, 한반도와 북동 아시아에서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그는 보통 미국대통령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해결방법과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특수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장기적인 위기와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아래의 글은 호주국립대학이 주관하는 EastAsiaForum에 기고된 칼럼을 번역한 것이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패권국가들(미,중,러)에 이어 유럽강국들과 캐나다 호주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중견국가로 평가 받고 있었다고 한다. 필자인 로버트슨 교수는 연세대에서 근무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한국 외교가의 관료적 형식주의와 폐쇄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에 대한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민족의 역사적 흐름에 부응하여 중견국가로서 외교적 역할과 위상을 찾아 가야 한다.
오늘날 한국이 외교적으로 강력한 중견국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반향으로 돌아올 최선의 결과는 논란거리이고, 아니라면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캠페인에 힘입어, 한국이 중견국가라는 학술적 언론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 국제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세심히 살펴본다면 현재 한국이 취하고 있는 대외정책의 취약점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최근 북한 관련 이슈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노력들을 살펴보면 확실하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은 당시 맞붙고 있던 미국과 북한간의 설전 속에서 정세에 알맞은 위기 외교를 펼쳤다. 이는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 능력과 동반자 및 동맹들과의 긴밀한 공조, 명확한 메시지 전달, 제한적이고 실제적인 목표, 그리고 타협에 대한 의지를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위기관리 외교는 큰 성공을 거뒀고, 북미간의 지나친 긴장 조성을 억제하면서 오판과 갈등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관리 외교의 효과는 시간에 제한을 받는 것이었고, 긴장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을 바꿀 수는 없었다.
중견세력(middle power)의 행위기반 이론에 따른다면, 한국의 위기관리 외교는 곧바로 중견세력의 외교로 이어졌어야 했다. 안보에 대한 긴장이 줄어드는 즉시, 중견국가로서 주도권을 행사했어야 했다.
한국에겐 다른 중견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협상에서의 영향력을 늘리고 (연합형성),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외교적 장치들을 이용해 목표를 달성할 기회가 있었다 (행동외교). 또한 한국에는 비교우위를 제공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할 기회가 있었고 (틈새외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스스로의 노력을 홍보할 기회도 있었다 (세계시민의식).
그러나 중견국가로서 외교를 상실한 상태에서, 한국은 북한과 미국이 벌리는 예측 불가능성에게 대외정책 방향의 운전자석을 내주었다. 미국은 막무가내이고 예측이 불가하며, 다른 한 쪽은 구제불능에 이해가 불가능했다 (사실 이러한 비판들은 상대를 바뀌어 평해도 유효하다). 한국은 상대해야 할 두 행위자들에 대해 협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그들의 행동을 억제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남한은 스스로의 주도적 행위성을 양측의 관계 안에 종속시켜 버렸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을 보도한 서방언론의 취재는 이 점을 부각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북미간의 비핵화 협상은 미국, 북한, 그리고 주최국인 베트남의 문제처럼 보였고, 한국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에게는 이제 추후 협상 개최 여부, 관련된 제도와 기구의 내용을 만들어 갈 힘이 없다. 이는 고위급 회담에 기반한 현재의 외교적 노력들에 유연성이 자리잡을 공간을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시점에서 어떤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그 성공은 2년(트럼프1기), 3년(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혹은 6년(트럼프2기)뒤에 있을 정권 교체와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설정한 중기적 목표인 경제제재 완화를 외부적 제재의 해지라는 장기적 계획과 관계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협상 실패의 책임은 협상 상대국들의 정책 변화에 전가할 수 있고, 똑같은 정치적 게임을 미래에 다시 한 번 재개할 수도 있다.
북한 관련 이슈를 다룰 때의 한국이 중견국가로서 외교를 쓸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배경들이 있다.
한국의 대외정책 형성은 철저한 위계중심형이다. 아이디어와 이니셔티브들은 대통령 보좌관들에게서 시작되어 외교부로 전해져 내려와 시행된다. 외교부처 내부에서 핵심적인 이니셔티브가 시작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말은 대통령의 외교 보좌관 그룹이 중견국가 외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필요한 아이디어가 부처로 흘러내려 간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중견 국가 외교는 부재하게 되는 것이다.
외교부처 내부의 조직 문화 또한 극히 보수적이고, 관료적이며, 위험을 극도로 피하려고 하는 편이다. 새롭고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음을 열고 비전통적인 대외정책 행위자들과 교류하려는 의지도 적다.
해당 용어(중견국가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 중견국가 외교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한국에서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아직도 (패권중심의) 현실주의이며, 강대국간의 패권경쟁이 가장 유명한 소재이다. 국제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들이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의 중견국가 역할을 다루는 일은 거의 없다. 학술지에서 “중견국가”라는 용어의 사용이 급증하긴 하였으나, 용어의 개념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는 아직 널리 보급되지 못한 상태이다.
한국은 아직 중견국가로서 외교를 실행하고 있지 않다. 중견국가로서 외교의 시작을 위기관리 외교로 시작하긴 하였으나, 스스로 그 방향을 설정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중견국가다운 외교를 상실한다면, 결국 한국의 대외정책은 북한 문제를 다루려고 했던 이전의 시도들만큼 처참히 실패하거나, 혹은 더한 실패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적용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것이 중견국가로서 자주적인 외교는 아닌 것 같다.
Jeffrey Robertson(제프리 로버트슨)
호주 국립대학교의 아시아-태평양 외교 학부 객원 연구원
연세대학교 조교수
“Diplomatic Style and Foreign Policy: A Case Study of South Korea” (Palgrave 2016)의 저자
2023년 1월 10일(화) 10:00, 한국YWCA연합회 4층 강당 (서울시 중구 명동길 73 페이지명동 건물)
전쟁의 불안감으로 가득한 새해입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출구 없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북 사이의 대화 채널이 모두 끊긴 채 긴장이 격화되는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무력 충돌을 예방하고 다시 대화 여건을 만들어낼 현실적인 해법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확전 각오’, ‘압도적인 전쟁 준비’, ‘9.19 군사 합의 효력 정지 검토’ 등의 발언을 이어가며 불안을 더욱 조성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평화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입니다.
202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을 비롯한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올 한 해 한반도의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집중적인 평화행동을 펼쳐갈 예정입니다. 전국에서 시민들을 만나 평화의 목소리를 단단하게 조직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과도 함께 연대하여, 전쟁 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이에 기자회견을 통해 현 위기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요구를 밝히고, 모든 군사적 위협을 즉각 중단할 것과 적대를 멈추고 평화협상을 재개할 것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올해 계획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알리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할 예정입니다.
2023.01.10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제안 기자회견 (사진 =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제안 종교·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함께 합시다
2023년 1월 10일(화) 10:00, 한국YWCA연합회 4층 강당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2023년 1월 10일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제안 기자회견 :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함께 합시다>를 개최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현 위기에 대한 우려를 밝히고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킬 모든 군사적 위협을 중단할 것과 자극적인 행동을 멈추고 다함께 위기 관리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 그리고 전쟁 위기가 우리의 삶을 한꺼번에 위협하고 있습니다.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평화의 희망을 다시 찾아야 하는 절박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6.15 남측위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올해 정전협정 체결 70년을 맞아 <(가) 2023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며, 평화를 원하는 모든 시민들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전쟁의 불안감으로 가득한 새해입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출구 없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북 사이의 대화 채널이 모두 끊긴 채 긴장이 격화되는 위험한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무력 충돌을 예방하고 다시 대화 여건을 만들어낼 현실적인 해법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확전 각오’, ‘압도적인 전쟁 준비’, ‘9.19 군사 합의 효력 정지 검토’ 등의 발언을 이어가며 불안을 더욱 조성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역시 확성기 설치나 전단 살포 허용 등 접경 지역에서 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조치들을 언급하며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팽팽한 긴장 속에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어떤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한반도에서 치킨 게임 형식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한·미·일, 북·중·러의 대결 구도도 심화되는 가운데 동북아시아는 점점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킬 모든 군사적 위협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자극적인 행동을 멈추고 다함께 위기 관리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적대 정책과 무력시위는 악순환을 심화할 뿐, 결코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적대 정책이 계속된 끝에 협상이 실패하면서 신뢰가 무너진 결과입니다. 2018년 어렵게 이룬 남북·북미 합의는 이행되어야 합니다. 긴장 완화와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과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특히 대규모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중단은 관계 개선과 대화 여건 조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위기를 걱정하면서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평화를 말하기 어려운 시기일수록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합니다. 올해 202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70년 동안 이어져 온 불안정한 휴전 상태조차 앞으로는 이대로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을 외치는 목소리가, 각계 시민사회의 비상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입니다.
쉽사리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촉즉발의 긴장 앞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가)2023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며 평화를 원하는 모든 시민들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올 한 해 한반도의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반도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을 위한 집중 서명운동 상반기 한미연합군사연습과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촉구 활동 국내 200개 시군구를 비롯한 전 세계 300곳 동시 평화행동 7월 22일(토) 대규모 평화 집회와 행진 8월 15일 즈음 대규모 평화행동
등 다양한 계획들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을 만나 평화의 목소리를 단단하게 조직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과도 연대하여, 전쟁 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늘 제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 지혜와 마음을 모아나갈 것이며, 다가오는 2월 14일(화) <(가)2023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을 출범하여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것입니다. 각계각층의 종교·시민사회에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에 동참해주시기를,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함께할 수 있는 행동들을 논의하고 모색해주시기를, 평화를 원하는 강력한 시민의 힘을 보여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지금껏 없었던 전쟁 위기를, 지금껏 없었던 넓고 단단한 연대와 공동의 행동으로 극복하고 다시 평화의 길을 열어냅시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지난 2005년부터 남북 합의 이행, 한반도 자주와 평화번영, 통일을 위해 남북해외 공동의 민족공동행사와 각계각층 교류협력 사업, 평화통일 의제에 대한 캠페인과 집회 등 다양한 민간통일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이었던 지난 2020년부터 ‘한국전쟁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 군비 경쟁의 악순환 중단과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 등을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국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70년을 맞는 올해, 한반도 정세가 밝지 않습니다. 군사적 위기가 출구 없이 악화되고,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위험도 매우 높아진 상황입니다. 70년 동안 이어져 온 불안정한 휴전 상태조차 앞으로는 그대로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분명한 메시지, 평화적 해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입니다.
이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올해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을 시작하여, 시민사회 공동으로 집중적인 서명운동과 다양한 평화행동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현 위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한반도·동북아 평화를 위한 국내외 여론을 만들어내며, 최근 급속히 추진되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모아낼 예정입니다.
2월 14일(화)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출범대회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End the Korean War, Let Us Peace!>를 개최합니다. 당일 출범대회에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곳곳에서 노력해온 다양한 종교·시민사회 대표자들이 참여하여 ‘전쟁 위기를 넘어 다시 평화의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의지를 모을 예정입니다.
출범대회에서는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소개, 참여 단체 대표자 발언, 접경 지역·국제 단체 연대 발언, 출범선언문 낭독, ‘평화의 문을 열자’ 퍼포먼스 등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보도협조 보기 당일 오전 10시 대표자회의에 이어 오전 11시 출범대회를 진행합니다. 언론 취재는 오전 11시 출범대회부터 가능합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다가오는 3월 13일부터 23일까지 한미연합군사연습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FS)’를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사의 방패(Warrior Shield, WS)’로 명명된 대규모 야외 실기동 연합훈련이 집중적으로 실시되고, 미군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도 대거 참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이달 말 한미일 미사일경보훈련 등도 예고된 상황입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매우 높은 가운데, 대규모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전쟁 위기를 더욱 심화할 것이 우려됩니다. 이미 1월부터 다양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고, 미사일 훈련 등 북의 대응도 높은 수위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충돌을 방지할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대강의 군사행동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는 올해, 정전체제마저 위태로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은 3월 7일(화)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중단이 남북·북미 간의 대화와 외교의 장을 다시 여는 결정적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더 큰 위기로 이어지기 전에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각계 단체 발언과 대형 피켓팅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기자회견 이후 대통령실과 주한 미국 대사관에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와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한국·미국·국제 단체 성명>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올해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은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 실현 서명운동(Korea Peace Appeal) ▷한미연합군사연습과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촉구 활동 ▷6~7월 전 세계 300곳 평화행동과 7.22 평화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목소리를 모아내고, 시민의 힘으로 평화의 길을 열어내고자 합니다.
한미 정부가 3월 13일부터 대규모 한미연합군사연습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FS)’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언론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한미 연합군은 북한 지도부 참수, 지휘부 축출 및 안정화 작전 등의 시나리오를 연습하고, ‘전사의 방패(Warrior Shield, WS)’로 명명된 대규모 야외 실기동 연합훈련도 집중적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번 연습에 미군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도 대거 참여할 예정이며, 이달 말 한미일 미사일경보훈련 등도 예고된 상황입니다.
이에 2023년 3월 7일,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 해소,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매우 높은 가운데, 충돌을 방지할 대책도 없이 강대강의 군사행동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 큰 위기로 이어지기 전에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은 남북·북미 간의 대화와 외교의 장을 다시 여는 결정적 조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공동성명은 한국의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미국의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가 함께 제안한 것으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745개 국내 단체와 99개 미국·국제 시민사회단체가 연명에 동참했습니다. 성명은 대통령실과 주한 미국 대사관에도 전달되었습니다.
한국과 미국, 세계 곳곳에서 평화 운동을 펼치는 우리들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것에 깊이 우려하며, 한미연합군사연습을 비롯한 일체의 군사행동을 모두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지난 2018년 남과 북, 미국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의 길을 열었지만, 중단되었던 한미연합군사연습은 1년만에 재개되었으며 남북·북미 관계는 날로 악화되어 왔습니다. 북은 지난 해 미국의 적대 정책과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핵 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유예하겠다던 4년간의 공약을 철회하였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를 확대하고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5년 만에 한반도 역내에서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군사훈련을 재개하였습니다. 북 또한 상응하는 군사 대응을 선언하며 군사훈련에 나섰고, 비록 공해상이지만 남북의 미사일이 해상 경계선을 넘나드는 등 유례 없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강릉에서는 남측 미사일이 오발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하여 시민들이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 모두 군사분계선 넘어 무인기를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는 올해, 정전체제마저 위태로운 것이 현실입니다.
한미 당국은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유사시 대북 선제공격과 지도부 제거 작전, 전면전을 가정한 대규모 미 병력 및 전략자산의 증원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작전계획을 연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연습에 핵무장이 가능한 B-1B, B-2, B-52 전폭기나 핵추진 항공모함, 핵추진 잠수함, 대규모 한미 병력 등이 동원되었습니다. 그 규모와 성격으로 인해 한미연합군사연습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격화시켜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한미 정부는 오는 3월, 역대 최대 규모의 병력과 전략자산을 동원하여 최대 규모의 실기동훈련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하였고, 이미 1월부터 다양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미일 군사협력도 군사동맹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북 또한 “매사 상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사일 훈련 등 군사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충돌을 방지할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대강의 군사행동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실전 무기를 동원하는 대규모 군사행동은 우발적인 충돌 위기를 높일 뿐입니다. 숱한 무력시위가 전쟁으로 비화되었던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군사 위기, 전쟁 위기가 도래할 것은 자명합니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전쟁연습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고립, 군사적 압박, 제재 정책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기는커녕 북의 반발만을 불러온 실패한 정책임을 인정하고 적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는 기후 위기와 감염병, 식량난과 경제 위기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진영 대결과 군사적 대결을 멈추고 협력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전략폭격기 전개 등 대규모 군사훈련과 전쟁 준비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통제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과 지구를 모두 위협하는 군사훈련은 중단해야 합니다.
70여 년간 한반도 구성원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 전쟁을 끝내고, 파괴적인 무기에 소모되는 비용을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돌려야 합니다. 적대와 대결을 멈추고,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매진해야 할 때입니다.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중단은 남북, 북미 간의 대화와 외교의 장을 다시 여는 결정적 조치가 될 것입니다. 한미 정부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Action One Korea American Peace Information Center Answer Coalition Atlanta Civic Action (애틀란타 행동) Channing and Popai Liem Education Foundation China-US Solidarity Network Coalition of Koreans in America (CKA) (미주희망연대) CODEPINK Education Center for Tomorrow (LA 내일을 여는 사람들) Environmentalists Against War Friends Peace Teams-Asia West Pacific GA Peace Forum (조지아 평화포럼) Gandhi Alliance for Peace Global Network Against Weapons & Nuclear Power in Space HOA–Hawaiʻi Okinawa Alliance 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Korea Peace Now! Korea Policy Institute 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Inc. (재미동포전국연합회) Korean American Public Action Committee (KAPAC) Korean Americans for the Progressive Party of Korea (KAPP) (진보당연대 재미위원회) KPNGN PNW Maine Natural Guard Massachusetts Peace Action Military Poisons MinKwon Center for Community Action (민권센터) New England Korea Peace Campaign (뉴잉글랜드 한반도 평화 캠페인) NH Peace Action Nodutdol for Korean Community Development (노둣돌) Parallax Perspectives Peace Action Peace Action of San Mateo County Peaceworkers Phil Berrigan Memorial Chapter Veterans For Peace Presbyterian Peace Network for Korea Proposition One Campaign for a Nuclear-Free Future RootsAction Seattle Evergreen Coalition (시애틀늘푸른연대) Show Up! America The Least of These Church Justice & Peace Committee (작은자공동체교회 맨하탄) Utah Campaign to Abolish Nuclear Weapons (UCAN) Veterans For Peace, Spokane Chapter #35 Veterans For Peace’s Korea Peace Campaign Washington Butterfly for Hope (워싱턴희망나비) Women Against War Women Cross DMZ (위민크로스디엠지) Women for Genuine Security 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WILPF) US
국제 시민사회단체 (총 51개)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6.16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재일한국민주여성회 재일한국민주통일일연합 도쿄본부 재일한국민주통일일연합 중앙본부 한민족유럽연대 1923 Korea-Japan Citizens’ Solidarity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Blue Banner, Mongolia Canadian Union of Public Employees (CUPE), Canada Center for Peace Education, Philippines Centre for Peace and Conflict Studies (CPCS), Cambodia Commission 4 of the ILPS, Canada Coop Anti-War Cafe Berlin, Germany Freante Antiimperialista Internacionalista, Spain German East Asia Mission (DOAM), Germany Ingenieurkonsulent für Kulturtechnik und Wasserwirtschaft, Europe International Peace Bureau (IPB), Germany International Women’s Network against Militarism Northeast Asia Regional Peacebuilding Institute (NARPI) Peace Boat, Japan Peace Depot Inc. Japan Peace for East Asia (PEASIA), Canada Peace Treaty Now (PTN)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 Peace Women Across The Globe (PWAG), Switzerland Peace Women Partners, Philippines Prutehi Litekyan Save Ritidian, Guam Queen’s Collegiate, Canada Stop the War Coalition Philippines The Hwamok Fellowship The United Church of Canada Unity of Women for Freedom – Philippines (자유를 위한 여성의 단결) Women Against Nuclear Power, Finland Women for Peace, Finland 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WILPF) (자유평화국제여성연맹) 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WILPF) Kyoto World Beyond War 福岡県日朝協会 原水爆禁止日本国民会議 日本朝鮮学術教育交流協会 日朝友好連帯群馬県民会議 日朝友好連帯埼玉県民会議 日朝友好連帯千葉県の会 日朝友好神奈川県民会議 朝鮮女性と連帯する日本婦人連絡会 朝鮮学校「無償化」排除に反対する連絡会 朝鮮の自主的平和統一支持する京都委員会 朝鮮の自主的平和統一を支持する日本委員会 朝鮮の自主的平和統一を支持する長野県民会議 平和憲法を守る荒川の会 戦争への道を許さない北・板橋・豊島の女たちの会 フォーラム平和・人権・環境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올해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실현을 위해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은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 실현 서명운동(Korea Peace Appeal) ▷한미연합군사연습과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촉구 활동 ▷6~7월 전 세계 300곳 평화행동과 7.22 평화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목소리를 모아내고, 시민의 힘으로 평화의 길을 열어내고자 합니다.
다산인권센터에서는 4월 7일부터 부터 5월 13일까지 6주에 걸쳐 '오래된 상처, 분단된 땅'이라는 주제로 인권공부방 봄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의 강의인지 대충 감이 오시죠? 바로 한반도의 분단체계와 북한문제에 대한 강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위상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한반도의 분단체계라는 특수 상황이라는 맥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마련된 이번 강좌는 세 개의 주제(평화 체제,북한문화,북한인권)별로 두 강의씩 총 6개의 강의로 구성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4강이 진행되었고 '북한 인권'에 대한 2강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강의 스케치 겸 간단한 후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강의를 해주신 한상진 강사님은 참석자들에게 왜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는데요. 흠~ 뭐랄까... 허를 찔린 느낌 같은게 들었습니다.
'아, 맞다. 통일... 통일 해야지... 근데 왜 통일을 해야하지?' 제 스스로도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습니다. 강좌를 들으러 오신 분들도 선뜻 대답을 내놓으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우리가 통일을 당위의 문제로만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다보니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유하고 고민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강사님은 통일에 대해 우리가 구체적인 상과 계획을 가지고 다가갈 때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현실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의에서는 그 구체적 방법 중의 하나인 '평화협정'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요점은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해야지만 통일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듣다보니 우리나라가 아직 정전상태라는 것을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더라구요.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중단된 상태.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반쪽짜리 평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채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통일에 대한 감수성도 떨어지고 서로에 대한 관심도 떨어진다는 점에서 남북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교류(양훈도 선생님이 제안하신 것처럼 가장 논쟁이 적을 문화 부문 같은 것에서부터)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10여년 전만 해도 금강산 관광도 가고 여러 부분에서 교류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잖아요.
통일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말로는 통일에 찬성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실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분단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겠죠.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은 한반도의 평화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문제들이 제대로 논의되고 해결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종북'으로 몰면서 논리적 주장이나 대화 일체를 단절시키고 무력화 시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증상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몰지각한 현상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주변에서 통일에 대해 좀 더 자주, 많이 말하고 구체적인 상상과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상짐 선생님의 말처럼 통일을 향해 갈 길은 멀지만 그런 상상과 고민들이 밑으로부터 모일 때 우리가 바라는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요.
2015년 평화기행은 안산과 서울 일대의 국가폭력(인권탄압) 현장과 화천·철원의 비무장지대와 동두천의 주한미군 피해현장을 찾아간다.
화천·철원·동두천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는 비극적 현장이자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냉전의 최전선’이다.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의 깨어진 조각상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인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끊어진 금강산전기철도교량·평화전망대·승일교·노동당사를 둘러보는 길 위에서는 해방의 꿈을 산산히 부셔버린 분단과 전쟁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폐허로 버려져 있는 기지촌여성 성병검사소,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진 나무 묘지석이 줄지어 늘어선 초라한 기지촌여성 공동묘지, 미선이 효순이 참사현장에 새워진 미군추모비는 동두천과 양주 지역에 저마다 간직하고 있던 억울한 사연을 들려줄 것이다. 또한 분단현장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통선마을 사람들과 지뢰피해주민들, 현장 활동가들의 가슴 아픈 사연도 듣게 될 것이다.
평화기행은 국내외 연구자와 활동가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 분단과 전쟁의 비극적 현장을 둘러보며 분단 극복과 한반도 평화운동의 방향을 고민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 세션 1 10:00-12:00 동아시아 전후 질서와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역사전쟁
사회 : 양미강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발제1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한반도 - 이삼성 한림대 교수
발제2 : 역사교과서 논쟁과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발제3 : 북조선의 분단체제와 조선(한국)전쟁 – 수지김 럿거즈 대학 교수
12:00-13:00 점심식사
● 세션2 13:00-15:00 해방·분단 70년,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사회 : 유영주 미시간 대학교수
발제1 :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군사갈등 – 서재정 교수
발제2 : 한국 정치의 우경화와 대중적 극우단체의 등장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발제3 : 남한의 평화운동과 통일운동 - 참여연대 박정은 협동사무처장
● 세션 3 15:30-17:30 분단 그리고 전쟁을 거부하는 이들
영상 : Women Cross DMZ 기록 영상
초대 : 임재성(병역거부자), 제인진 카이젠(영화감독), 리정애(조선적 재일교포)
* 한영 동시통역 제공됩니다. 프로그램 중 일부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8.09 - 11 평화기행
1일차 8월 9일(일) : 안산, 서울
2일차 8월 10일(월) : 철원, 화천
3일차 8월 11일(화) : 철원, 동두천, 양주
※ 평화기행 코스 안내
● 1일차 8월 9일(일) 안산·서울
서울 경복궁역 집결 → 안산 단원고 → 기억저장소 → 안산합동분향소 방문(유가족과의 만남) → 의릉 전 중앙정보부 강당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해산
● 2일차 8월 10일(월) 화천·철원
서울 경복궁역 집결 →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 → 화천 꺼먹다리 → 철원 승일교 → 철원 금강산전기철도교량 → 유곡리 통일촌(민통선마을 주민과의 간담회) → 철원 두루미평화관(지뢰피해자와의 간담회)
2015년 평화기행은 안산과 서울 일대의 국가폭력(인권탄압) 현장과 화천·철원의 비무장지대와 동두천의 주한미군 피해현장을 찾아간다.
화천·철원·동두천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는 비극적 현장이자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냉전의 최전선’이다.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의 깨어진 조각상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인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끊어진 금강산전기철도교량·평화전망대·승일교·노동당사를 둘러보는 길 위에서는 해방의 꿈을 산산히 부셔버린 분단과 전쟁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폐허로 버려져 있는 기지촌여성 성병검사소,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진 나무 묘지석이 줄지어 늘어선 초라한 기지촌여성 공동묘지, 미선이 효순이 참사현장에 새워진 미군추모비는 동두천과 양주 지역에 저마다 간직하고 있던 억울한 사연을 들려줄 것이다. 또한 분단현장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통선마을 사람들과 지뢰피해주민들, 현장 활동가들의 가슴 아픈 사연도 듣게 될 것이다.
평화기행은 국내외 연구자와 활동가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 분단과 전쟁의 비극적 현장을 둘러보며 분단 극복과 한반도 평화운동의 방향을 고민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 세션 1 10:00-12:00 동아시아 전후 질서와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역사전쟁
사회 : 양미강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발제1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한반도 - 이삼성 한림대 교수
발제2 : 역사교과서 논쟁과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발제3 : 북조선의 분단체제와 조선(한국)전쟁 – 김수지 럿거즈 대학 교수
12:00-13:00 점심식사
● 세션2 13:00-15:00 해방·분단 70년,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사회 : 유영주 미시간 대학교수
발제1 :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군사갈등 – 서재정 교수
발제2 : 한국 정치의 우경화와 대중적 극우단체의 등장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발제3 : 남한의 평화운동과 통일운동 - 참여연대 박정은 협동사무처장
● 세션 3 15:30-17:30 분단 그리고 전쟁을 거부하는 이들
영상 : Women Cross DMZ 기록 영상
초대 : 임재성(병역거부자), 제인진 카이젠(영화감독), 리정애(조선적 재일교포)
* 한영 동시통역 제공됩니다. 프로그램 중 일부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8.09 - 11 평화기행
1일차 8월 9일(일) : 안산, 서울
2일차 8월 10일(월) : 철원, 화천
3일차 8월 11일(화) : 철원, 동두천, 양주
※ 평화기행 코스 안내
● 1일차 8월 9일(일) 안산·서울
서울 경복궁역 집결 → 안산 단원고 → 기억저장소 → 안산합동분향소 방문(유가족과의 만남) → 의릉 전 중앙정보부 강당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해산
● 2일차 8월 10일(월) 화천·철원
서울 경복궁역 집결 →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 → 화천 꺼먹다리 → 철원 승일교 → 철원 금강산전기철도교량 → 유곡리 통일촌(민통선마을 주민과의 간담회) → 철원 두루미평화관(지뢰피해자와의 간담회)
한국에 살면서 의아한 점이 하나 있다. 서울에는 훌륭한 고등교육을 받고 하버드와 예일, 스탠포드 등에서 유학한 사람들과 함께 기계공학부터 공공정책, 외교 등에서 뛰어난 지식과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한국은 국제이슈에 관해 자국만의 비전과 시각을 제시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한국 인재들은 북한 및 동아시아 이슈에서 훨씬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프린스턴 대학의 존 이켄베리 등 미국 전문가가 쓴 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데 온 힘을 쏟는다.
미국 싱크탱크 중 하나인 CSIS에서의 발언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외신’이라는 외피를 쓰고, 국내에 들어와 국내 정치와 외교 정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진은 CSIS에서 열린 북한인권 관련 세미나 장면.
지금 미국 정부가 어떤 정책도 제시할 능력이 못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라도 이 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대통령직을 떼돈 버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억만장자 무리와 이들의 충성스런 부하, 국익보다 금융자본을 위해 일하는 전문 공무원과 정치인 사이에서 미국은 정국 마비를 겪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 미국은 일본과 중국, 북한 상황 변화에 대해 유의미한 대응은 고사하고 자국을 위한 장기계획조차 구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베 정권의 권위주의 확대를 미화하고, B급 영화에 나온 김정은의 희화화된 이미지를 내보내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의 추격에 대해 어두운 암시를 던지는 게 현재 미국 정책의 기조다. 여기에는 미국의 제도 쇠락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실 부정이 깔려 있다.
외국에 의존하는 한국의 지식인들
한국의 대통령은 전세계 어느 정부보다 확실한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독립적 정책 구상 및 동아시아 미래 제안을 위한 전문성과 노하우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장점을 활용하지 않고 미국과 일본에 의존해 방향을 찾으려 한다면, 오히려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경제와 거버넌스, 안보 및 외교에서 미국보다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은 서구, 그 중에서도 미국에 그렇게 의존하는 걸까?
중국과의 관계개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중국어를 할 줄 알고 중국 정치 및 경제를 심오하게 이해하며 고등교육까지 받은 인재가 훨씬 더 많다. 고립주의를 신봉하며 철저하게 반-지성적인 트럼프 정부가 워싱턴에 자리를 잡고 앉은 만큼,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쪽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한국 지식집단의 대미종속은 대다수가 미국 유학파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미국 유학을 했다는 것은 문제될 게 없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미국의 지식을 국내로 수입하는 오파상에 그칠 뿐,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제에 대해 전혀 독립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 대학의 소장파 교수들을 보면, 오로지 SSCI 저널에 논문을 기고해야만 평가 받는 가혹한 시스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잘못된 가정 속에 수립된 미국의 외교정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깨달은 것 같다.
스스로도 핵확산방지조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만 강조하는 미국의 모순은 미국 학자들의 논문에서 결코 언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국 교수들은 이들의 논문을 인용해야 한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보고 행동하면서도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미국의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받아들여야 한다.
미사일과 항공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기후변화를 비롯한 지구적 위협에 대해 논의하도록 새로운 장을 열어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안보 정책을 만들어낼 여지는 충분히 있다.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실질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주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이론을 구축할 능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서글픈 수동성이 한국의 정책 입안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식민지 문화의 사고 습관
물론 별다른 능력 없이도 높은 자리로 올라온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 소수가 미디어와 정책을 장악한 상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체계가 쇠퇴하고 지적 탐구 대신 물질적 소비를 우선시하는 전지구가 겪게 된 현상이다.
그래도 이 문제는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다.
필리핀을 살펴보자. 한국보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훨씬 낮은데도 미국을 상대로 솔직하게 자기 주장을 한다.
수빅만 해군기지를 폐쇄했고,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에는 미국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평도 했다. 미성숙한 행동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가 끝나지는 않았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좌충우돌은 필연적으로 둘 사이의 설전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필리핀과 미국의 관계가 파탄나는 건 아니다. 모두 국익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발언을 하는 것이다.
한국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내세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오랜 식민지배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겉으로는 ‘문화통치’를 내세우며 유화정책을 펼쳤던 일본은 이면에서 무서운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부드러운 가죽장갑 안에 쇠주먹을 감춘 일본 식민당국의 지시에 따라 한국의 지식인과 공무원은 우선순위와 생각을 조정해야 했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의 문화와 지시를 과도하게 존중하는 자세가 한국인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미국 지식계급의 심각한 쇠락과 정치문화의 대대적 후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미국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확실히 이런 선입견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나 독일, 일본,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 심지어 영국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나라, 그런 ‘천조국’은 더 이상 없다. 그런데도 한국인들,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환상 속에서 미국을 추종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이 글의 필자인 페스트라이쉬 교수와 김기도가 함께 디자인한 것이다.
그런데 뛰어난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의 지식계급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미국의 터무니 없는 요구를 따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를 식민시대 사고방식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다른 원인으로는 (강대국을 섬기는) ‘사대의 예’ 관행이 있다. 이는 과거 한국과 중국의 관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는 사신을 중국에 보내 중국 황제에게 공물을 바쳤다. 유교의 예에 의거해 중국의 천자만이 천제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왕은 자국 영토에서조차 천제를 지낼 수 없었다.
분단국가의 사고 습관
또 다른 문화적 원인이 있다. 두 개의 정치∙이데올로기 체제로 나뉘어진 분단 국가라는 현실이다.
서울 도심을 별 생각 없이 걸을 때에는 북한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북한에 관한 언론 보도는 많지 않고, 대화 중 북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한국의 문화에 분명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말로 꺼내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북한은 다른 방식으로 ‘한국스러움’을 만들어 내며 다수의 한국인을 지배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한국의 문화구조를 미묘하게 뒤틀고 한국인의 사고를 은밀하게 왜곡시킨다. 한국이 부자연스러운 분단국가로 남고 북한의 존재를 계속 부인하는 한, 이런 왜곡 또한 지속될 것이다.
북한의 존재를 집단적으로 부인해도 분단의 비극이 한국에게 엄청난 정신적∙심리적 부담을 준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뭐가 잘못됐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분단이 한국이란 국가의 핵심을 구성하기 때문에 한국민은 한국의 교육과 경제력, 오랜 문화적 전통을 하나로 모아 온전히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분단은 한국인의 사유를 제약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이다. 한국의 좌우가 사회경제적 입장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태도로 결정난다는 점을 보더라도, 한국인의 사유에서 분단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60~70대 한국인들은 한국의 급격한 경제적 성장을 최고 업적이자 자부심으로 꼽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조선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독재적인 양반 계급의 지배를 받으며 추상적 유교 철학에만 집착했다. 이들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결국 나라는 구제불능의 수준으로 뒤처졌다.
다행히 이후 비전과 의지를 갖춘 유능한 지도자들이 나와서 서구 기술과 노하우를 한국에 도입했다. 이들은 국민의 힘을 한데 모아 1960~70년대 한국의 현대화와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내러티브는 한국 고유의 문화가 가진 뛰어남을 완전히 무시할 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을 쓸데없이 슈퍼맨급 영웅으로 미화시킨다.
중요한 건 이런 주장이 식민시대 정당화를 위해 사용했던 논리와 동일한 흐름을 가진다는 점이다. 주체와 연도 등 세부 내용만 약간 고친 정도다.
1930~40년대 한국의 ‘현대화를 돕기 위해’ 일본이 개입한 것처럼, 1960~70년대 한국의 ‘현대화를 돕기 위해’ 박정희 등이 나섰다고 말하고 있다. 잘못된 역사관을 고치지 않고 국가 발전을 위해 기울였던 17~18세기의 수많은 노력을 한국 역사에서 삭제한 채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내보이는 것이다.
문화 전통을 완성하지 못하고 공백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서구문화를 비이성적 수준으로 미화하고 개발과 외교, 안보뿐 아니라 도시계획과 설계에서까지 자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게 힘들어졌다.
그 결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을 졸업한 고학력 지식인들은 한국에 대해 자신보다 잘 알지 못하고 유능하지도 않은 미국 정책입안가의 잘못된 가정을 기반으로 신문기사를 쓰고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제안한다.
제국 운영 경험이 없는 ‘좁은 세계관’
마지막으로, 19세기 식민주의의 진정한 본성을 파악하고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찰해야 한다.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한국의 야망은 19세기 국가 건설에 사용됐던 제국주의적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산업 경제력과 자연자원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원리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열강들의 치열한 경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제국주의적 역학관계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증가 추세에 있는 갈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현대 한국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다.
한국이 뛰어넘고 싶어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은 20세기 복잡한 제국주의 체제를 완성한 바로 그 국가들이다. 미국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제국주의 야욕을 자제한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제국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제국을 운영했던 경험은 그들에게 세계적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시각을 갖도록 했다. 제국주의의 일방적 피해자였던 한국에게는 그런 제국 경영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세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세계시민적 관점이 부재하다.
식민지를 보유해야 하는 제국주의는 지난 150년간 프랑스나 일본 등의 정치 및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익에 영향을 주는 식민 영토가 해외의 먼 곳까지 퍼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국 문화의 가치를 해외에 널리 알리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복잡한 관료제를 구축했다.
이들 열강은 자국의 예술과 문화, 철학, 거버넌스, 역사가 가지는 우월성을 찬양하는 문헌으로 학문적 토대를 구축했다. 식민지 시민을 교육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
한국은 이런 식민화의 피해국이었다. 해외에 자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노하우를 구축할 시간도 없었다.
한국의 위대함에 대해 다른 문화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적인 신화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 물론, 다른 국가와 달리 자국의 문화를 번드르르하게 소개하지 않는 소박함이 한국의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제국주의적 전통이 없기 때문에 한국은 불리한 입장에 있다.
일본과 프랑스, 독일은 지난 140년간 끊임없는 편집과 보완을 통해 외국인을 위한 자국어 교재를 개발했고, 해외에서 자국의 ‘팬’을 키워내기 위해 장기적 계획도 수립했다. 문화를 통한 정치에 통달한 셈이다.
한국은 1990년대 와서야 문화를 본격적으로 해외에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도 내실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는 한국인들
앞선 세 가지 요소는 한국이 국제관계에서 자국 문화와 지정학적 입지에 기반한 고유의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일본과 미국 정계에서 자신의 이익만 지키려는 소수 군벌과 억만장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을 배제하고 혼란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국은 이 중대한 문제를 진중하고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한국이 안보 및 외교에서 고유의 역사∙문화 인식을 바탕으로 자국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어는 단 한 마디도 모르면서 자칭 ‘한국 전문가’라 주장하는 워싱턴의 학자 및 정치인이 강요하는 내러티브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지난 12월 13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신대 이일영 교수는 필자가 제안해 온 ‘한반도 양국체제론’이 오랜만에 제기되는 ‘국가 대전략 논의’라고 환영했다. 고마운 일이다. 필자 역시 이 논의가 진지하고 생산적인 ‘플러스 알파’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양국체제론이 나온 국제적 배경에 대한 이교수의 이해는 다소의 보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이일영 교수의 글은 아래 첨부)
양국체제란 한반도와 동북아에 점증하고 있는 위기를 근원에서 해결할 방안이다. 동북아 당사국 모두의 이익과 세계사 전환의 방향에 부합한다. 이교수가 칼럼에서 대안으로 제기한 동아시아 ‘지역-국가 네트워크 체제’도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돼야 본격화될 수 있다. 지면 제약 상 충분히 말할 수는 없다. 거두절미를 양해 바란다.
현재 한반도 전쟁 위기는 1994년 6월 이후 최고 수위에 이르고 있다. 94년 미 국방부의 전쟁 시나리오는 한반도 전역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의 국력과 전력(戰力)이 극저점에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번 전쟁은 그보다 훨씬 큰 사상자가 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위기도 94년처럼 요행히 봉합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심각한 상태로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일까? 북의 호전성일까? 북미 간의 치유불가능한 적대감일까? 혹자는 북미간의 협상에 한국은 끼어들어갈 틈이 없다고 말한다. ‘코리아 패싱’을 자인하는 말이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었던가? 사실과 크게 다르다. 휴전협상에서 한국이 빠졌던 건 전쟁에서 한국이 흘린 피가 적어서가 결코 아니다. 휴전 협상을 거부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었을 뿐이다.
북이 미국과만 협상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북은 미국의 군사력보다 한국의 발전상이 체제 유지에 더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열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욱 호전적으로 나온다. 양국체제란 북의 이러한 불신과 불안을 근원에서 해결하는 방안이다.
양국체제란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없는 걸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남북은 이미 1991년 유엔에 동시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유엔헌장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과 영토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이미 당시에 양국체제가 절반은 성립한 셈이다. 당시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했다면 남북의 수교도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남은 190개국, 북은 160개국과 수교 중이고, 그 중 157개국은 남북 모두와 수교상태다(외교부 『2016 외교백서).
왜 그 길로 가지 못했을까? 그 길로 갔다면 현재와 같은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부영 선생이 어디선가 지적한 데로 평양에 한국, 미국, 일본의 대사관 또는 대표부가 존재하여 상시 교류가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긴장 고조와 핵개발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양국체제=동아시아 평화공존체제가 완성되지 못하여 현재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 탓을 이제 누구에게 돌릴까? 우린 국제 문제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우리가 외교의 주동차가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문제 국제관계에서 주동적 움직임, 이니셔티브를 쥐어 본 경험이, 쥐어볼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87년에서 91년에 이르는 기간 대한민국에는 대단히 큰 힘이 존재했다. 87년 민주화의 동력이다. 그 동력을 온전히 모아냈다면 양국체제로 가는 길은 그때 획기적으로 단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분열된 민주세력은 이 길로 힘을 모을 수 없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87년 이후 30년만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주동력이 되살아났다. 촛불혁명이다. 촛불이 진정 ‘혁명’이 되려 하면 ‘체제전환’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체제전환은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될 것이다.
촛불은 4.19, 87년에 이은 30년의 민주분출의 세 번째의 거대한 파고다. 이번에 양국체제로의 전환에 실패하다면, 이 분출조차 그 이전의 두 번의 분출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시 어두움 속으로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동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1972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왼쪽)와 에곤 바르 특임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제 묻고자 한다. 과연 누가 한반도의 빌리 브란트가 될 것인가?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 평화공존을 이룩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독일형 복지국가, 사회국가(Sozialstaat)를 건설할 수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핵심은 동독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었다. 성급하게 통일을 앞세우지 않았다. 거꾸로 “통일을 원할수록 통일을 말하지 말자”고 했다. 1991년 동독의 흡수통일은 우연의 결과였을 뿐, 동방정책의 목표가 아니었다. 동방정책의 목표는 오히려 무리한 통일을 배격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통해 상호 번영하는 데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요체는 양국체제론과 같다.
브란트 동방정책은 총리 재임 중의 정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사회국가 노선은 서독의 새로운 국시(國是)가 되었다. 슈미트 총리가 충실히 이었고 이후 기민련의 콜 수상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브란트가 만든 평화와 복지의 양두마차가 없었다면 오늘의 독일은 없다.
다시 묻는다. 이 시점에 누가 한반도의 브란트가 될 것인가?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첫 해빙을 시도했지만 결국 미완으로 그쳤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완수해 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우리는 이 두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너무 조심스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 최소한 30년은 존속할 체제다. 우리는 이 정도의 호흡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간 동안 남북 서로의 불신을 줄이고 교류와 협력의 폭을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시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두 나라로 공존한다는 믿음이 생기면 남북수교와 북미·북일수교는 멀지 않다. 이로써 1991년 미처 다 이루지 못했던 양국체제는 정착된다. 브란트 당시 동서독 화해에 주변 강대국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역사적 이유가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을 했던 남북 두 당사자가 적대를 눅이고 화해와 공존의 주역으로 나설 때 주변국이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세계인의 보편적 여망과 다르지 않다. 칸트 ‘영구평화론’의 핵심은 국가 간 적대의 소멸에 있었다. 지독한 전쟁을 했던 한 민족 두 국가가 상호적대를 소멸시켜 간다면 이는 칸트의 꿈이 한반도에서부터 실현되어 가는 일이다.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반도체 경기는 뜨겁고 비트코인 투기는 광풍 수준이다. 그런데 얼마 전 김정은이 영하 22도의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보도사진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올해 많은 일을 겪어냈고, 나라 분위기도 얼마간은 수습이 되었다. 그래도 다들 찜찜해하는 구석이 있다. 최근 지인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은 물음이다. “우리 내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회 전체가 위기에 둔감하다. 불안의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체념상태가 만연해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그때그때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국가와 사회의 중장기 의제는 부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단지 정부나 정치권에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침 시민사회와 지식사회에서 국가 대전략에 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지난 12월7일 민간 싱크탱크인 (사)다른백년에서 김상준 교수는 ‘분단체제론’을 비판하고 ‘한반도 양국체제’의 해법을 주장했다. 반가운 일이다. 오랜만의 대전략 논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양국체제란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 ‘비상국가체제’가 남북 모두를 지배해 왔다. 이는 기존 분단체제론과 인식을 함께한다. 단 분단체제론은 세계체제론과 연결되지만, 양국체제론은 이를 비판한다. 둘째,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에 출구전략이 없거나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 중간과정·출구전략을 양국체제로 제시한다. 그리고 양국체제를 남북통일로 가는 중간역으로 못 박지 않는다.
양국체제론이 지닌 오해와 약점은 향후 수정·보완될 것으로 본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국가 대전략의 골격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조언하고 싶다. 양국체제론에서는 세계체제와 별도로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오히려 분단체제 출구전략으로서의 양국체제 성립 가능성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양국체제론의 첫 고리는 남측이 먼저 북측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헌법의 영토조항도 개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북핵 위기나 남북관계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북의 핵개발은 거의 완성에 가까운 단계에 와 있다. 지금은 남북의 군사적 역관계가 역동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국면이다. 이는 남북이 각각 적대·위협 관계를 체제작동의 원리로 삼고 있는 과정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남북의 국가체제, 동아시아 지역체제, 세계체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왔다. 남북 각각의 정치·군사·경제체제는 동아시아 지역체제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국가모델의 일종이다.
동아시아는 서구와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1980년대 말에는 고강도·저강도의 열전 속에서 급진적 산업화가 진행되었다(동아시아모델 1.0). 1980년대 말~2010년경까지는 동아시아 네트워크가 북한을 구조적 공백으로 남겨놓고 발전했다(동아시아모델 2.0). 북의 핵개발은 북을 제외한 네트워크화의 귀결이다. 2010년경 이후는 뉴노멀의 대전환 시대에 들어섰다. 미·중 간 세력전이, 저강도 공황, 4차 산업혁명 등이 진행 중이고, 북한은 이에 대응하는 생존방식으로 핵무기를 체제화하고 있다.
과연 한국을 중심에 놓는 일국적 접근방식으로 양국체제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체제혁신’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남북의 국가 간 대결관계는 네트워크관계로, 남북 내부의 권위적·명령적 국가체제는 분권적·수평적 네트워크 체제로 혁신해야 한다. 분단체제를 혁신하는 대안모델은 ‘네트워크형 국가·지역’이다.
그런데 당장 북·미 간 대결과 북핵 위기가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다. 전쟁 위기와 핵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중·일 간의 안보협력 대화를 실무선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각적·지역적 안보협력 체제를 논의하는 계기를 잡아내야 한다. 속초·강릉 일원과 서해안 연평도 일대를 글로벌 평화공원 지역으로 개발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하다. 정부·지자체·민간·국제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개발 프로젝트는 대북 제재 조건에서도 ‘평화 공유재’가 될 수 있다.
남북 양국체제는 현실에서 바로 작동시키기 어려운 아이디어이다. 분단체제 이후의 길은 국가·시장·네트워크가 혼합된 다양한 혁신의 방식으로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