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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기 후기] 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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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기 후기] 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익명 (미확인) | 화, 2017/07/25- 14:02

참여연대 20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7년 7월 3일(월)부터 8월 10일(목)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24명의 20대 청년 분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 6주 동안 우리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후기는 최선경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비폭력 직접행동 워크숍 후기>

 

워크숍은 엄지손가락 누르기 게임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서로 상대방의 엄지를 누르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 게임이 종료된 후 강연자는 상대방의 엄지를 30번 이상 누를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 비법은 상대방과 타협한 후 서로 번갈아 가며 엄지를 누르는 것이었다. 이 조용하고 평화적인 플레이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경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싸워야 할까? 대화와 나누기를 통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을까?

 

20170725_[워크숍]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8)   20170725_[워크숍]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5)


비폭력 직접행동은 폭력이 아닌 소통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세 가지 방법으로 ‘정치인이 되기’, ‘투표’, ‘직접행동’에 대해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에 대해 조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론을 통해 나 혼자서는 생각해내지 못할 것들을 알게 되었다. ‘정치는 빠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지만 직접행동은 권력의 원천을 파괴시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직접행동이 없다면 정치는 타협하게 된다’는 강연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직접행동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직접 운동을 기획, 추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 샤프가 비폭력 행동 방법을 198가지나 나열했을 정도로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직접행동이 가능하다. 그중에서 우리는 ‘대규모 집회’, ‘서명운동’, ‘점거농성’, ‘행정기관에 전화’라는 4가지 방법이 각각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되어야 효과가 극대화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했다. 논의 중 불과 몇 개월 전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20170725_[워크숍]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4)   20170725_[워크숍]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3)


직접행동의 사회 변화 작동 방식으로 전향, 조정, 강제에 대해 배웠다. 직접행동은 인식과 태도를 모두 바꾸는 ‘전향’을 최종적으로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과 ‘조정’이 가장 흔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행동의 포괄적인 방법으로는 ‘항의와 설득’, ‘비협조/불복종’에 대해 배웠다. 홀로그램 시위, 기본소득 게임, 교복 치마를 입은 영국소년들, 불매운동과 보이콧 등 각각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사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탄핵 반대 의원에게 문자 테러하기, 무기 녹여 생활품 만들기 등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비폭력 개입’에 대해서도 배웠다.


역사적 직접행동(사회운동)으로 무함마드 알리의 세계 평화운동, 5·18 민주화, 평택 미군 기지 반대 운동 등에 대한 자료를 보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여성 참정권, 장애인 교통수단 이용 보장, 흑인의 법적 평등 등이 과거 많은 이들의 커다란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 마지막 주차 프로그램은 우리의 직접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직접행동의 주제, 내용, 방식을 직접 정하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오전에 함께 감상했던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처럼 대규모로 치밀하며, 기발하게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토론과 PPT 강연이 끝난 후 우리는 모두 일어나 ‘평행선 게임’이라는 것을 했다. 평행선 게임은 직접행동을 하는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상상하며 우리가 각각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해보는 것이었다.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보수 기독교인 혐오 세력이 몰려와 현수막을 떼고 고함을 지르며 방해’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우리는 각각 행사 운영 담당자 또는 혐오 세력 행동대장으로 연기를 했다. 또한 ‘어느 온라인 취미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한 유저가 내년도 최저임금과 관련한 글을 쓰고 이에 대한 댓글 논쟁’이 붙는 상황을 상상하며 각각 게시물을 올린 유저 또는 정치 글을 반대하는 유저가 되어 실제 카톡으로 대화해보기도 하였다. 연기를 하자니 조금 어색했지만 재미있었고 맡은 역할의 입장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런 다양한 상황들을 직접행동 중 실제로 맞닥뜨린다면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좀 더 침착한 대응을 위해 이렇게 예상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는 것이 직접행동에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직접행동 행위자들 모두가 왜 여기서 이 행동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것, 모든 대상자들은 지지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직접행동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닌 수단이라는 것 등 비폭력 직접행동 행동 원칙에 대해서 배웠다. 또한 어떤 메시지를 언제 누구에게 전달할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메시지와 방식이 일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 직접행동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러한 공부는 우리가 직접행동을 준비하고 행할 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었다.


강연자는 우리가 세상을 바꾸려고 할 때 막막함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제도와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는 분명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행해진 수많은 직접행동들처럼 사람들이 모여 연대를 이루고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행동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20170725_[워크숍]세상을 바꾸는 힘, 비폭력 직접행동 (2)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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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제보자가 폭로한 은밀한 부당거래 <1급기밀>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2018. 1. 10(수) 18:00 국회대회의실

 

 

 

<1급기밀>은 故 홍기선 감독의 유작으로 <이태원 살인사건>, <선택>에 이은 ‘사회고발’ 3부작 마지막 작품입니다. 

 

<1급기밀>은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와 2009년 MBC [PD수첩]을 통해 해군 방산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소령의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김영수 소령은 2009년 MBC [PD수첩] 제보에 앞서 그해 5월 참여연대에 해군의 방산비리를 제보하였고, 참여연대는 김영수 소령과 함께 관련자들을 대전지검에 고발했습니다. 김영수 소령은 참여연대가 선정한 2010년 의인상 수상자입니다.

 

 

[관람신청] 영화 '1급기밀' 무료시사회

 

일시 2018. 1. 10(수) 오후 6시

장소 국회 대회의실(의원회관 2층)

주최 참여연대 김해영의원(더불어민주당) 이철희의원(더불어민주당) 

프로그램

       18:00 GV(관객과의 대화)

               배우소개 및 행사 주최 측 인사

       18:30 영화 상영 (101분)

 

 

[영화소개] 

<1급기밀> 2018 .01.24 개봉 ❘드라마 ❘ 한국 ❘101분 ❘12세 관람가

감독 홍기선 ❘ 출연 김상경(박대익), 김옥빈(김정숙), 최무성(현석)

 

공군 전투기 추락, 올해만 3번째 “또 조종사 과실?”그들이 감추려 했던,

모두가 알아야 하는 대한민국 현재 진행 중인 실화!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부임한 박대익 중령(김상경)에게 어느 날, 공군 전투기 파일럿 강영우 대위가 찾아와 전투기 부품 공급 업체 선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익이 부품구매 서류를 확인하던 중 유독 미국의 에어스타 부품만이 공급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편 강영우 대위가 전투기 추락 사고를 당하고, 이를 조종사 과실로 만들어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을 지켜본 대익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은밀한 뒷조사 끝에 차세대 전투기 도입에 관한 에어스타와 연계된 미 펜타곤과 국방부 간에 진행되고 있는 모종의 계약을 알게 된다.  딸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지만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군인으로 남고 싶은 대익은 [PD25시]의 기자 김정숙(김옥빈)과 손잡고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군복 뒤에 숨은 도둑들의 만행을 폭로하기로 결심하는 데…  그들이 시작한 전쟁,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관람신청 https://goo.gl/usf1SC

200석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습니다.

영화 한편 당 신청자 1인의 예매좌석수는 4석(본인 포함)까지 가능합니다.

많은 분의 참여와 관람을 위한 배려 부탁드립니다.

 

예매안내

1. 반드시 사전신청 해주세요.

2. 신청하신 분께는 영화 상영전 안내 문자를 발송해 드립니다.

3. 신분증이 없으면 국회 의원회관 출입이 불가하오니

    행사 당일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4. 자리배정은 선착순입니다.

5. 영화 상영 전 GV(관객과의대화)가 약 30분 간 진행됩니다. 

6. 신청취소는 참여연대 02-723-4251로 문의해주세요.

 

 

 

 

 

화, 2018/01/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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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특별대담 

종교, 사회와 만나다

 

사회. 성해영 종교학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패널.

법인스님 참여연대 공동대표, 대흥사 일지암 주지

박기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마을 지도신부

이정배 현장아카데미 원장, 전 감신대 교수

 

정리.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사진.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팀장 


 

지난 2017년은 촛불시민의 힘으로 부패정권의 퇴진을 이뤄내며 그 안에서 다양한 사회진보 가치를 재발견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의미 있는 한해였다. 동시에 맞이한 ‘종교개혁 500주년’은 인류의 오랜 스승이자 치유자로, 때로 사회 변화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오늘날 종교의 의미와 역할에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회복하고 개인의 삶을 넘어 더 나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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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

 

성해영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는데 종교가 변하는 사회에 제대로 조응하거나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 전에 종교가 바라본 한국 사회라는 측면에서 현대사회가 인간의 내면 또는 정신과 연결되는 질병이 늘고 있는데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요즘 세상,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힘든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법인  인류 역사에서 병들지 않은 역사는 없지만 문화인류학자 유발 하라리의 진단에 의하면 인류 역사에서 기근, 전염병, 전쟁 세 가지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도 거론되고 있지만 사회가 다원화, 세분화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물질의 총량과 자주적인 목소리는 늘었지만 동시에 소외감, 질병, 양극화와 같은 어두운 그늘도 많아졌는데요. 결국 개개인의 정신적 감성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꼭 권력기구에만 있는 게 아니고 개인의 삶에도 소규모 집단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많은 것 같아요.  

 

박기호  노상 세상이 걱정이라고 말하지만, 기술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변화가 유구한 인류 역사에서 굉장히 짧은 시간에 이뤄진 거잖아요. 그 변화의 기간이 오랜 인류 역사의 아주 끝자락에 불과한데 제일 우려스러운 문제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현상을 드러내는데도 불구하고 진보하고 있는 삶인 양 착각하고 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겁니다. 

 

특히 건강문제, 섭생을 보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먹거리인데, 완전한 생명의 먹거리가 아닌 공장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먹는 문제, 분명히 가족은 있는데 가정이 없다거나 모두가 다 고학력을 갖고 대졸자가 넘치는 시대인데 그 속에 교육은 없다거나, 그렇게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없는 현상을 보면 우리 시대가 정말 병든 것인가, 뭔가 다른 몸으로 이미 바뀌어버린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모습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이걸 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배  저는 지난 12월 20일, 안산에서 세월호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왔는데요. 세월호 유족인 예은이 엄마가 기도하기를, 인류가 예수님 탄생을 의미있게 기억하듯,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각자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얼마나 허상인지, 얼마나 거짓된 욕망에 추동되어 생명을 경시하는지, 빈익빈 부익부의 가치관 속에서 가난을 함부로 대하고 비웃어 왔는지 말이죠. 

 

그런데 종교마저도 ‘천국신앙’이라며 종교적 포장을 하고 정작 사회의 병폐를, 성장의 그늘 속에 가려진 슬픔과 고통의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종교가 사회를 바라본다는 말 자체도 지금 종교는 이런 말 할 자격이 없죠. 종교가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려면 세월호참사 이후 무엇이 밝혀지고 드러났는가에 대해 정확한 성찰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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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해영 

 

성해영  사회가 전체적으로 나아진 것도 분명히 있는데, 예전에 미처 겪지 못한 새로운 고통들도 생겨났고, 우리나라는 그동안 해결되지 않고 곪아 있던 문제들이 터져서 겪고 있는 데다가 변화가 너무 빨라서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들까지 중첩적으로 겪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의 중심을 잡든 여유를 찾든, 그런 것의 부재 속에 종교가 숨 고르는 것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데요. 과연 종교가 어떻게 이런 시대에 그런 내적 여유를 찾아줄 수 있을까. 예컨대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수행이 됐든, 이 복잡하고 힘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종교만이 줄 수 있는 위안과 힘을 얻게 되는 그 부분은 가능할까 말씀해주시지요. 

 

박기호  삶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본성적인 삶에서 이성적인 삶으로 진보하는 것인데, 이를 영적인 삶으로 열어주고 이끌어주고 삶의 고통이나 번뇌, 상처를 보듬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아픔과 상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현대사회는 아파해야 할 사람, 상처 입는 사람, 고통스러워해야 할 사회가 그걸 제대로 못 느끼고 지나간다는 거죠. 아프다는 걸 인정해야 처방이 제대로 나올 텐데,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한다는 거죠. 돈만 있으면 부족할 것이 없고 지상낙원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느끼는 행복이 정말 행복이냐?” 반문하고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종교이고, 실체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정배2

>이정배

 

이정배  얼마 전 고려대에서 경제학과 다니는 대학교 3학년 여학생의 대자보가 논란이 됐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지독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과에 갔고 대학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학점을 받았고,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남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겠다, 이런 노력에 대한 대가로서 차이가 존재하고 차별이 생기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그런 내용이었거든요. 이 학생뿐 아니라 대부분이 개인주의적인 논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사회 대다수인 것 같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가 내 삶에 친구도 있었고 부모도 있었고 사회적 희생도 있었고 이런 것을 볼 수 있고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교적으로 말하면 연기(緣起)적 존재인 거죠. 나 외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약자를 향하도록 하면 좋은데, 그게 점점 퇴색하는 현실이 안타깝죠.  

 

법인  종교가 영성, 어떤 위로를 준다고 할 때 피상적 이미지는 기도, 명상, 템플스테이 이런 거잖아요. 저도 템플스테이 운영하면서 느낀 게 참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더라고요. 홈쇼핑에 중독된 한 직장인이 템플스테이에 왔는데 물건을 계속 사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거예요. 저녁 되면 술 먹고 놀고 그러다가 마음이 헛헛하거나 복잡해지면 절에 와서 2박 3일 있다가 가는 거죠.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다가 한 달 지나면 또 찾아오는 거예요. “얘야, 윤회라고 하는 것이 죽어서 윤회하는 게 아니고 그런 반복이 윤회다.” 삶의 가치가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고 내 삶의 규칙과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보는 시도를 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회나 사찰들이 자본과 물질문명, 복잡한 것에 길들여 사는 속에서 잠시 피로회복제가 되는 것 외에는 되어주지 못하는 거죠. 오히려 종교인이라면 지적과 시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못 살고 있는데 “괜찮아, 괜찮아” 할 게 아니라, 다른 쪽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사회에 제시해주는 것이 종교 영성일 것 같아요. 

 

 

자본주의와 결탁해 타락하는 종교 

 

성해영  불교에 ‘정견(正見)’이라는 말이 있고, 기독교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서 사물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죠. 그런 점에서 종교의 역할은 삶을 올바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사회의 시선에서 과연 한국종교가 영성, 행복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가,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통렬한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이정배  종교가 사회의 문젯거리,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죠. 근대 종교개혁과 더불어 자본주의도 싹이 텄는데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기독교화 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가 오히려 기독교를 자본주의화 시켰다고 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자본종교뿐이죠. 빚이 없으면 자본주의가 굴러가지 않듯이 죄가 없으면 종교가 돌아가지 않거든요. 둘이 아주 교묘하게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굴러가는데, 목사님들이 더 이상 신도들에게 윤리적으로 살라, 도덕적으로 살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그냥 멋대로 살라고 내버려 둡니다. 그래야 죄를 짓고 마음이 헛헛해져서 교회에 많은 헌금을 갖다 바친다는 거죠. 

 

성해영  의사들이 건강 챙기지 말고 마음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네요. 

 

법인

> 법인스님

 

법인  종교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부분은 대형교회 세습, 돈 문제, 성직자 스캔들도 있지만 그중에서 한국 종교가 신도를 볼모로 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신도 수를 늘려서 하나의 권력이 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대형교회나 대형사찰, 대형불교 종단이 정치에 압력을 넣고 한국 사회를 나름대로 흔들어보려는 거죠. 그렇다보니 소위 영성이라는 것, 인간이 가진 지고지순한 고운 심성들을 종교가 보이지 않게끔 자본과 권력의 그물망을 쳐서 신도의 영성까지 마비시키는 문제가 심각하죠. 지옥은 누가 갈지 뻔합니다. 

 

성해영  세속사회와 종교가 어떻게 구분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구분은커녕 오히려 한국 종교가 세속사회보다 더 강력하고 무서운 테크닉으로 권력을 쥐고, 그 밑바탕에는 사람들의 영적 열망이나 욕구나 희망을 거둬들여서 에너지를 바꿔나갔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박기호  저는 종교와 속세가 구분이 안 되는 것은, 교회의 정체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을 생활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소비문화를 말하고 싶습니다. 중미 중심의 해방신학이 여성신학으로 발전하고, 다시 생태환경신학으로 발전하는데 90년대 들어서 미국의 존 카바나 같은 신부님이 진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소비문화 마케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행복이 곧 소비로 표현되는 것을 일종의 소비문화 바이러스 ‘어플루엔자’라고 명명합니다. ‘풍족하다’는 뜻의 Affluent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예요. 그런데 이러한 일반인들의 소비문화, 마케팅에 종속된 삶과 종교가 전혀 분별이 없다는 거죠. 일반인들 방 안에 있는 것이 신부들 방 안에, 목사님 방 안에, 종교인들 방 안에 다 있다는 거예요. 살아가는 방식도, 놀러가는 것도 차이가 없죠. 사회와 종교 사이의 대조성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비문화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법인  예전에는 어린 새내기 스님들도 선배 스님들이 부유하고 사치스럽게 살면 그걸 비난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걸 동경해요. 그리고 가난하고 검소하게 사는 스님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자본주의 영향력은 종교인들의 의식마저도 변질시킨다는 것을 많이 느꼈죠. 

 

이정배  사람들 의식 속에 교회의 크기가 목사의 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성해영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종교와 사회가 만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속에서 영성을 회복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종교는 어떻게 판을 바꿀 수 있을까요. 

 

박기호

> 박기호

 

박기호  교회의 기능을 ‘어머니’와 ‘교사’라고 표현합니다. 종교가 가진 모성성, 상처받고 고난 받는 모든 이를 끌어안는 것이 ‘어머니’라는 표현이고, ‘교사’는 문자 그대로 가르침, 예언자적인 가르침을 말합니다. 교회가 두 모습을 분명하게 자기 정체성으로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종교와 사회의 만남의 접선을 ‘선교’라고 표현하는데요, 전통적인 선교의 방식을 말하자면 선교사의 가방에 빵과 청진기와 분필이 있다고 해요. 개화기 이후 이러한 복지, 의료, 교육 사업이 좋은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GDP가 올라가면서 정부와 국가의 몫이 됐거든요. 성모병원이나 가톨릭재단이라고 해서 차별점이 있지도 않고요. 그래서 이제는 교회와 사회가 만나는 매개가 바뀌어야 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의식세계 또는 인문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하는 만남으로 변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인  저는 종교가 사회에 이바지해야 할 것은 ‘공동선’이라고 생각해요. 성평등, 환경, 동물권 같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이 결국은 다 ‘공동선’이거든요. 종교에서 공동선의 가치를 추출해서, 보편윤리화 시키고 그것을 다시 구체적인 삶의 규칙으로 제시하는 일에 많이 관여해야 하고 그러려면 한 사람의 힘, 가정의 힘, 소수 집단의 힘들이 가장 중요한 시대라고 봅니다. 

 

이정배  미국의 존경받는 목회자이자 과정신학자 존 캅이 쓴 『영적인 파산』이라는 책이 있어요. ‘영적 파산’이는 것은 미국 교회가 다 상담학으로 빠지고 ‘사회적 영성’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사회적영성’은 곧 종교와 사회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말과도 같은데요, 이 개념을 차용해서 정리하자면 저는 한국 교회를 자본주의에 정신 팔려서 예수의 근본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영적 치매’, 자기들끼리의 언어로만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잃었기에 ‘영적 자폐’, 그리고 거룩의 이름,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화 되었기에 ‘영적 방종’ 이란 말로 다시 표현하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복음의 기쁨』이라는 책에서 말씀하시길 교회가 가난의 문제와 어떻게 접촉할 것인가, 그 속에서 진짜 복음이라는 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무조건 가난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존재 양식 자체가 가난해야 한다는 거죠. ‘벌어먹지 말고 빌어먹어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에 대해서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복음의 요건이라 하였지요. 절대 배타적인 독선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가난과 문화, 두 가지가 존재할 때 교회 안에 복음이 있는 것이고 세상이 복음화가 될 것이라는 가톨릭 수장의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성해영  마지막으로 2018년 새해를 맞아, 종교인으로서 독자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한마디씩 전해주시죠. 

 

박기호  종교 간 갈등, 배타성 이런 것들에 대해 저는 종교를 초월해서 공동고백 같은 것을 도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신이 하나뿐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자기 신만이 오리지널이고, 다른 신은 하급신인 것이 아니라 한 하늘 아래 여러 대륙, 한 아버지의 여러 배다른 자식으로서 신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는 작업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돌이켜보면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하고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것은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들의 전쟁이지, 신은 전쟁하지 않잖아요. 사랑과 평화로서 신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한 해가 되면 좋겠고, 또 한 가지는 지금 종단들이 많이 위축되고, 사회로부터 폄훼되기도 하고 신도들이 줄어들 교회의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들이 있는데요. 그런 것에 괘념치 말고 소수라도 교회의 정체성, 존재 이유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법인  종교인이든, 시민이든 모두 사회에 속하기 때문에 결국 제 화두는 개인의 힘, 나 스스로의 삶이 심사숙고 대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금 나는 어떠한가 라는 자기성찰과 더불어 늘 내 곁에 함께하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이정배  2017년은 촛불혁명의 힘으로 사회가 조금씩 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에 대해 ‘그래도 나라처럼 되어간다’라고 한다면, ‘이게 종교냐’라는 물음에 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 500년을 맞아서 참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이렇게 타락했는데도 개혁이 안 일어나면 하나님이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상황까지 됐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불교, 천주교, 개신교 세 평신도 재가그룹들이 원효 탄생 1400년, 루터 종교개혁 500년 그리고 가톨릭 전래 233년을 기념하여 다시금 종교개혁 선언을 준비 중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이게 종교냐 라는 물음에 대해 ‘종교란 이런 것이다’라는 답이 보이는 한 해가 되면 좋겠고, 시민사회가 자정능력 없는 교회에게 더 많은 충격과 압박, 좋은 격려를 보내주길 바랍니다. 

 

성해영  저는 작년 촛불집회를 보면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모여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했고 에너지를 모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종교를 넘어선 종교의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체로 ‘사회적영성’, ‘공동체영성’의 상징이 아니었나합니다. 오늘 세 분 말씀 감사합니다.  

수, 2018/01/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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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재발견

정헌원 회원

 

글.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사진. 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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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금요일. 참여연대 회의실에 오전부터 낯선 이들이 모여 있었다. 4~50대 혹은 그 이상, 나이를 쉬이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과 밝은 표정들. 밤사이 냉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그 공간만이 온화하고 정겨운 공기를 내뿜는다. 그 속에 잠시 후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 모임의 이름은 ‘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서클’이라고 했다. 내가 가닿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그 이름 ‘노년’. 그것도 ‘새로운 노년’이라니,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그를 만나러 카페통인으로 향했다. 4~50대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앞자리 수 7을 바라보는 명실상부 ‘노년’이었다. 이제 겨우 앞자리 수 3을 넘어온 내가 과연 그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일곱 번이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물색없이 그에게 나이 얘기부터 꺼냈다. 

 

“나이 먹는 게 저한테는 별로 큰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사는 동안 내가 가고자 하는 그런 방향으로 살면 족하지. 그래서 저는 칠십 되면서 머리 염색을 안 하기로 했어요. 칠십 살이면 머리가 하얘지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매만졌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자연스러움을 얻기까지 그는 어떤 삶을 걸어왔을까.

 

두 번의 터닝포인트 

조숙했던 사춘기 시절, 우연히 배운 자동차정비기술이 평생직업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동차정비라는 직업 자체가 워낙 험했고 관리자가 되고부터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도 늘어났다. 그러다가 인생의 큰 시련이 찾아왔다. 

“40대 전후로 한 번의 큰 시련이 있었어요. 사업하면서 힘든 과정을 겪다 보니까 정신적으로도 많이 부담이 됐고 그러다 보니 눈이 고장 난 거죠.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모든 게 영향을 받게 돼요. 그렇게 2년 가까이 시련을 겪으면서 회사에서도 조금씩 내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됐고요. 그러던 중 산업연수원에서 2박 3일간 기업체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받았는데 그중에 심리학 강의가 있었어요. 시련을 겪는 와중에 강의를 들으니까 더 강하게 와 닿았던 거 같아요. 그때 나를 엿볼 수 있었죠. 내가 얼마나 생을 무지하게 살고 있는지…. 처음으로 부끄러워진 거죠. 삶의 정신적 전환기, ‘터닝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시련이 지나가자 감동도 점차 잊히고 희미해졌다. 게다가 당시 막내의 나이가 겨우 8살, 아직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살다 보니까 삶은 다시 척박해졌고, 욕심이 생기고, 돈도 더 벌고 싶어졌다. 그게 가장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은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죠.. 퇴근길에 운전하면서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는데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었죠. ‘아, 이런 목소리도 있구나’ 책도 읽어주고 정목스님 만나는 게 너무 즐겁고 좋은 거예요. 저녁 7시만 되면 그게 기다려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40대에 느꼈던 감동들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아, 내 삶이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살리라 마음먹은 그는 곧장 퇴사를 결심했다. 막내도 다 큰 성인이 되었기에 걱정은 덜었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한 5시가 되면 눈이 떠지더라고요. 아침에 한겨레신문을 두 시간 읽으면 그날의 중요한 것은 다 보거든요. 신문 읽고, 산에도 다니고 그러다가 서울도서관에도 가보게 됐어요. 정말 잘해놨더라고요. 지하에 시민청이 있잖아요. 강의를 많이 하더라고요. 전부 무료니까 청강도 하고 자연스럽게 다니게 됐죠. 항상 지적 갈증을 느끼며 살아왔으니까요.”

 

그것은 40여 년 만에 처음 맛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동안 쌓인 갈증이 한 번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는 뒤이어 서울시청과 중랑구 평생학습관에서 글쓰기 강좌와 지역평생교육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했고 비슷한 시기, 운명같이 ‘그 모임’을 만났다.

“참 좋은 세상이다 싶었죠. 그런 거에 흠뻑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참여사회』에서 봤나,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하는 ‘새로운 노년을 위한 배움의 공동체’ 모집 공고를 봤어요. 한번 가봐야겠구나, 그렇게 해서 공동체에 참여하게 됐어요.”

 

나의 인생사를 돌아보다 

2015~2016년 봄,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운영한 <푸른시니어학교> 1~3기 과정이 2016년 가을부터는 참여자들의 자발적 서클로 4~6기가 이어졌다. 노년의 부모와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자녀, 노년의 삶과 죽음을 공부하는 연구자, 새로운 노인의 삶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사회복지사, 상담치유활동가 그리고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인 이 모임에서 그는 원년멤버이자 가장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해왔다. 그렇게 형성된 작은 관계망이 지난 10월, 또 하나의 씨앗을 싹틔웠다. 바로 이름도 거창한 ‘인생사 전시’. 

“정애자 선생님이 마침 이사를 하신다고 해서 댁에 가서 짐 정리를 함께 했어요. 짐이 너무 많은데 가져갈 수도 버릴 수도 없고 이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주은경 원장님이 전시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을 해주셨죠. 정애자 선생님의 인생사뿐 아니라 각자의 삶도 한번 정리를 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인생사 전시를 하게 됐어요. ”

 

그는 글쓰기 강좌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직접 여러 편의 글과 사진으로 인생사를 정리했다. 한 번에 정리하기 어려운 것들은 직접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조금씩 글을 쓰고 콘텐츠를 쌓았다.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어떤 전시회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전시는 전문가나 유명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무모할 정도로 힘들고 어렵게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도 새롭게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 삶의 기록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거죠. 인생사 전시라는 게 아프고 슬픈 자기 고백이고, 하나의 자화상이고 자서전이구나. 언감생심 배워가는 마음으로 작품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삶의 기록을 전시하는 것에 용기를 내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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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열린 배움의 공동체 서클 ‘새로운 노년 교육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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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에 열린 '나의 인생사 전시'

 

작은 관계망이 싹틔운 씨앗

“공동체 모임 자체가 우리 사회가 갖추어야 할 하나의 작은 관계망이에요. 그래서 꼭 공부 이런 것보다 서로 소통하고 관계 맺고 견학 다니고, 그런 것들이 너무 좋으니까 계속 모이고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좀 나누고 싶고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는 작은 관계망에서 멈추지 않고 씨앗을 가능한 한 더 멀리 퍼뜨리고 싶었다. 지난 40년간 살아온 망우동 지역에서부터 그 변화를 이끌어내 보자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생각에 멈추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가장 먼저 아파트 단지에 직접 꼬리표를 잘라서 모집 공고를 붙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세 사람 모아서 공부모임 하나 만들어보자는 심정이었어요. 원래 경로당이 있었는데 한 3~4년 전인가 구성원들 간에 싸움이 나서 폐쇄됐었는데 시설이 굉장히 좋거든요. 노인회관이 있고 그 안에 독서실도 있고요. 그걸 새로 해보자 생각한 거죠. 공간을 재구성해서 노인들이 많이 오도록 해보자, 그래서 아파트 관리단에 들어가서 설득하고 제안해서 만들게 됐죠. 그러다가 젊은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웃만들기지원사업에 응모했죠. 거기서 받은 100만 원으로 노인회 구성도 새로 하고, 읽을 만한 책도 갖다 놓게 됐어요. 다들 굉장히 좋아해요.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친구가 되고 이름도 알아가니까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단지 내 경로당을 재건한 지 벌써 1년째. 얼마 전부터는 ‘경로당’이라는 이름 대신 ‘문화관’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노·장년 간 관계망 형성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단지 내 주민들끼리 친목도모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새해에 그가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하나 있다고 했다. 

“새해엔 문화관이 좀 더 질적으로, 내용적으로 향상되기를 바라요. 그 안에서 좀 다른 것들이 꿈틀거리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대로 살면 안 된다, 하는 작은 불씨가 생겨나서 삶의 하나의 작은 모델이라도 되어줬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새로운 노년’의 의미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중에서도 ‘습(習)’은 배우는 것을 몸소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제야 알겠다. ‘새로운 노년’이라는 것은 배움을 실천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게 하나의 인생철학이기도 해요. 살면서 세상에 교육이 아닌 게 없죠. 특히 노년에게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노년들이 자기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느낀 대로만 세상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걸 부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노인들을 어떻게 교육의 장으로 나오게 할 것인가가 하나의 숙제죠. 100세 시대라고 하면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노인들이 소외되고 외로워지는 건 뻔하잖아요. 그럴수록 개척하고 떨치고 일어서야죠. 노인이라고 주저앉아서는 안 되고, 의식을 바꿔야지. 세상을 더 보고. 우리 공동체 모임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세상에 통째로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사는 모습이 세상에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 그와의 만남이 특별히 뜻깊은 것은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좋은 어른은 존재 그대로 나 같은 젊은이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삶의 본보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하고 큰 힘이 되는가. 그를 비롯해 수많은 ‘새로운 노년’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유다. 그의 인생사 전시에 걸려 있던 글 중에 이런 문장을 하나 건져 올린다.

“노년에 이르러 배움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참으로 메마르고 삭막했을 것이다.”  

 

수, 2018/01/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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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2018.1-2

 

182,500일 넘게 보호한 원시림을

17일, 정확히 말하면 3일의 즐거움을 위해 파괴합니다.

적어도 간단한 산수는 가능하다 믿었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  atopy

 

04 여는글 새해 희망의 말, 파사현정 하태훈

06 아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김균

 

특집.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08 올림픽 120년史의 민낯 고광헌

11 올림픽의 정치경제적 목적성 최동호

14 시민이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려면 이경렬

17 위기의 올림픽,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하다 정용철

 

사람

22 통인 신년대담 - 종교, 사회와 만나다 이한나

28 만남 노년의 재발견 - 정헌원 회원 이한나

 

기획

34 기획 서촌, 근대를 넘어 황평우

 

칼럼

38 경제 EITC제도는 차상위계층, 근로빈곤층 위한 복지제도의 핵심 이상민

40 환경 생태민주주의의 꿈 장성익

 

만화

42 만화 이럴 줄 몰랐지 <말을 한다> 소복이

 

살맛

44 읽자 올해에도 목표는 읽기와 쓰기 박태근

46 듣자 2017 ‘올해의 음반’과 음악에 가까이 가는 방법 서정민갑

48 떠나자 눈 위에 그려보는 새해 계획  정지인

 

뉴스

52 현장 개혁입법 가로막는 자유한국당 규탄한다! 이영미

53 공유 이달의 참여연대 박근용

58 심층 다스 비자금 의혹에 대한 관계당국의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김은정

60 참여 2017년, 우리 참 멋있었어요! 이영미

62 참여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시민참여팀

 

알림

64 투명회계 2017년에도 회원님들 덕분에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김현정

66 튼튼날개 참여연대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박효주

 

수, 2018/01/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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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의 말, 파사현정

 

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형법학자다. 참여연대 초창기부터 사법을 감시하고 개혁하는 일에 참여했다.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이라는 이미지가 한결같도록 애써야겠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서초구에 살고 있다.

 

 

파사현정

ⓒ교수신문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새해가 밝았다. 붉은 해 솟아오르듯 희망 가득한 새해의 힘찬 출발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쉬움 없이 떨쳐 보냈어야 할 묵은해가 잔상으로 남아 새해의 첫 발걸음이 무겁다. 청산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진척이 없는 적폐와 과거사가 마음에 걸려서 그렇다. 오히려 ‘용서와 화해’, ‘국민대통합’, ‘개혁피로감’, ‘과거보다 미래’ 등의 언어 구사로 개혁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하다. 여전히 옛것을 고수하려는 자들이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부를 흠집 내는 데 골몰하고 있어 조바심이 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났는데 빈손으로 새해를 맞이하니 더욱 그렇다.  


9년 동안 피곤했던 국민

참회하고 반성해도 모자랄 보수 세력인데 실체도 없는 ‘개혁에 피로한 국민’을 들먹이며 개혁저지에 헛심을 쓰고 있다. 보수야당은 정치보복, 보수언론은 적폐 수사 피로감으로 대립구도를 형성하려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입에 올린 국민은 누구인가. 촛불광장에서 적폐청산을 외친 국민이 누구인가. 수년 동안 억눌렸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함께 모여 외치고 싶어도 공권력의 위력 앞에 위축되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물대포와 차벽으로 저지당했던 그들이었다. 우리도 국민이라며 포용과 관용을 외칠 때 보수정권은 자기편만 거들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9년 동안 내내 피곤했다. 피로도로 치면 정점에 달한 국민이었다. 힘들다며 편안한 삶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내어도 들은 척 하지 않아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이다. 

 

인권침해, 국가폭력과 공권력 남용에 반기를 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기본권 침해와 자유 제한이었다.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형벌로 위협했다. 그렇게 국민은 피폐해지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얼마나 공정과 정의를 갈구했으면 2012년 희망의 사자성어가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감에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근혜 정부에 거는 기대였다. 공익과 정의로부터 멀어져 간 이명박 정부를 보내며 걸어 본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사자성어는 박근혜 정부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실 없는 용서와 화해는 반쪽이다

그 세력이 이제 와서 정치는 포용과 관용이어야 한다며 적폐청산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안보의 엄중한 위기상황에서 과거를 뒤엎어 보는 것은 한가한 일이라고 비틀고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그대로 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다. 국가권력의 오남용이 드러나는데도 국민통합과 미래를 위해 불법과 부정의를 덮어두자고 한다. 가해자, 불법한 자, 적폐세력에 가담한 자들이 만델라를 거명하며 용서와 화해를 구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용서와 화해도 진상규명이 전제되어야 한다. 진실 밝히기가 정의 세우기의 선결과제다. 국민통합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국가권력을 남용하거나 오용한 불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진상규명을 통한 진실 밝히기 없이, 용서와 화해는 반쪽일 뿐이다. 

 

파사현정은 진행형이다

교수들이 선정한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파사현정’이다.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국정을 농단했던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정법正法을 드러내야 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부정과 부패를 밝혀내고 그로부터 단절을 꾀하는 것이 ‘파사’고, 공정과 정의를 드러내는 것이 ‘현정’이다. 촛불광장에서 국민이 외쳤던 적폐청산과 다르지 않은 말이다. 파사현정은 증오나 복수심의 발로가 아니다. 과거 들추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교훈을 얻고 다짐하는 일이며 예방조치다. 따라서 ‘현정’은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촛불혁명이 진행형이듯 파사현정도 진행형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포함한 검찰개혁, 국정원 개혁, 정치개혁, 언론개혁에 나서지 않으면서 오히려 실체를 알 수 없는 ‘국민 피로감’을 들먹이며 적폐청산에 반기를 드는 세력은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았듯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국민을 더 이상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 촛불광장에서 요구한 개혁에 동참하는 것이 9년 동안 피곤했던 국민에게 청량제이자 피로회복제가 될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장악한 보수 야당이 틀어쥐고 있는 개혁입법을 풀어주어야 용서와 화해를 언급할 자격이 생긴다. 개혁입법으로 촛불시민혁명이 완성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수, 2018/01/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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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올해 2월 초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니 일견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의외로 걱정도 많습니다. 아름다운 강원도 산하를 파헤친 심각한 자연환경 파괴, 엄청난 적자 규모, 사실상 전무한 사후 활용방안 등등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신년 호 <특집>은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입니다. 120년 올림픽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했던 올림픽의 이상이 정치와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논리에 얼마나 오염됐는지, 평창동계올림픽의 득과 실은 무엇인지, 부패한 올림픽을 되살릴 대안이 있는지 등을 한번 살펴봅니다. 

 

이번 호 <통인>은 새해를 맞아 특별대담 ‘종교, 사회와 만나다’로 대체합니다. 법인스님, 박기호 신부님, 이정배 목사님, 성해영 교수님의 새해 덕담을 듣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지나친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라는 한국사회에 대한 조언, 그리고 한국 종교는 권력과 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세 분의 자기비판은 귀를 씻고 들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만남>에서는 정헌원 회원님을 모셨습니다. 정헌원 회원님은 아카데미느티나무가 운영하는 푸른 시니어학교를 수료하고 지난 10월 ‘인생사 전시’ 참여, 아파트 공동체 ‘문화관’ 재건 운동 등 활발한 활동을 하시면서 ‘새로운 노년’을 개척해 가시는 분입니다. 

 

이번 호는 1~2월 합본호입니다. 그래서 2월호는 발간되지 않습니다. <기획> ‘서촌역사기행’ 3부작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그간 좋은 글을 보내주신 황평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12월호를 끝으로 <경제>의 전성인 선생님, <역사>의 이신철 선생님, <여성>의 손희정 선생님 세 분의 칼럼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특히 전성인 선생님은 특유의 명쾌한 논리로 2년여간 경제 칼럼을 맡아주셨습니다. 세 분께 고맙다는 인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참여사회』 독자 여러분, 큰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듯 올해도 여유롭고 꾸준하게 전진하는 한 해를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김균

수, 2018/01/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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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_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올림픽 120년史의
민낯

 

글. 고광헌 평창올림픽분산개최시민모임 상임대표

 

 

초대장을 받지 못한 여성과 유색인종

이 글을 쓰기 위해 올림픽 120년사를 돌이켜보는데 어느 순간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기차 맨 뒤 칸에 최하층민이 타고 앞으로 갈수록 서열이 높은 계급을 태움으로써 현실의 모순을 보여주려는 듯한 설정이, 불평등과 과잉성장 속에서 온갖 문제를 싣고 달려온 올림픽 역사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1896년 출범한 올림픽은 ‘칸칸’마다 여성 ·인종차별, 민족주의와 이데올로기, 극한경쟁과 금지약물, 프로화와 상업주의, 테러와 환경파괴 같은 비등하는 ‘폭발물’을 싣고 질주해온 열차였다. 근대올림픽은 남성적 쇼비니즘(chauvinism)에 경도된 쿠베르탱의 창조물이다. 그는 소년 시절 프랑스가 프로이센 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는 것을 목도했고, 이 원체험의 트라우마는 그의 쇼비니스트적 삶을 관통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이상은 백인 남성에 시민계급 중심의 고대 올림픽에 닿아 있었다. 

 

마침 독일의 고고학자 쿠르티우스가 고대 올림피아 유적 발굴에 성공하자 여기에 고무된 쿠베르탱은 서둘러 근대올림픽을 기획했다. 그러나 부활한 올림픽은 반쪽의 재현에 그쳤다. 대항해와 산업혁명을 거쳤지만 백인남성 중심의 세계관은 꿈쩍하지 않았다. 여성과 유색인종은 초창기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아들이 스포츠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게 여성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처음부터 정치를 끌어들였다. 올림픽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국가가 대표선수 선발권을 가지며, 올림픽 메달 순위를 나라별로 매기도록 해 정치가 개입할 틈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뒤에는 상당수 IOC위원들이 자국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IOC의 독립적 위상을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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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정치화, 이념과 자본의 대리전쟁터

나치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비정치적인 스포츠는 없다’며 올림픽을 정치도구화한 히틀러를 비판했다. 그때까지 여성 참여 문제 등이 쟁점이었던 올림픽은 베를린에 와서 본격적인 인종차별과 배타적 민족주의의 폭력에 오염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보였으나, 논란 끝에 모두 참가했다.

 

나치정권은 유태계 독일 선수들의 참가를 막고 육상 4관왕 제시 오언스를 비롯해 유색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저질렀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 고대올림픽 영웅들의 동상을 세우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보급을 통해 상징조작에 나섰다. 쿠베르탱은 올림픽 폐막 뒤 <르 주르날>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선전에 올림픽의 이념이 이용됐다고 하는데, 베를린의 성공으로 올림픽의 이상은 더 숭고해졌다”고 말했다. 히틀러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쿠베르탱을 추천했다.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으로 두 차례 중단한 뒤 1948년 런던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쟁 뒤 재편된 국제질서는 올림픽을 냉전의 인질로 붙들었다. 미-소를 정점으로 한 동-서 간 대결구도에다가, ‘검은 구월단’ 사건과 남아공 추방처럼 국제정치와 이념대결, 인종차별과 종교적 편견, 테러와 보이콧으로 얼룩졌다.

 

냉전 시기 IOC를 이끌어온 브런디지 위원장은 올림픽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순수성은 멕시코올림픽 남자육상 200m 시상식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해 ‘침묵의 제스처’를 펼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이들과 연대한 피터 노먼의 행동을 아마추어 규정 위반으로 보고 징계할 때만 빛났다. IOC는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했다. 얼마 전에는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미국은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하지 않았다”며 올림픽운동과 IOC를 뒤흔드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지만 비판 성명 한 줄 내지 못했다. 

 

이념의 대리전은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LA올림픽 때 극에 달했다. 1979년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자 지미 카터는 모스크바 보이콧을 제안해 반쪽올림픽을 만들었다. 영국의 대처는 5천만 파운드를 기부하겠다며 개최지 변경을 압박했다. 64개 국가가 불참했다. 4년 뒤 LA올림픽 때는 소련이 14개 국가와 ‘동맹휴업’했다. 동-서 패권국이 힘없는 동맹을 꾀어내 ‘동굴’에 가두고 마을잔치에 얼씬도 못 하게 한 셈이다.

 

냉전 이후 올림픽은 미디어를 틀어쥔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노리개가 된 올림픽을 성찰하고 가치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IOC는 혁신안 ‘어젠다 2020’을 내놨으나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브라질 정부는 올림픽 성공 명분으로 리우 시 인구의 23%가 사는 파벨라를 철거한 뒤 7만7천여 명을 강제 이주시켰으며, 치안유지를 이유로 2015년 한 해에만 645명을 숨지게 했다. 희생자는 주로 빈민 출신의 흑인 남성들이었다. 

 

올림픽 ‘설국열차’는 멈춰야 한다

올림픽을 위협하는 최대 악재는 금지약물이다. 얼마 전 IOC는 금지약물 복용 선수들의 책임 물어 평창올림픽에 러시아의 참가를 금지했다. 더 큰 문제는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탐지되지 않는 금지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2017년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우사인 볼트를 꺾은 저스틴 게이틀린이 금지약물 복용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게이틀린은 당시 도핑검사는 무사통과 됐으나 예기치 않은 전 에이전트의 폭로로 알려졌다.

 

게이틀린의 사례처럼 의학기술 수준은 도핑테스트를 쉽게 피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스포츠 공정성을 파괴하고 선수의 육체에 치명적인 해악을 입히는 기술범죄를 적발기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메달 색깔을 약물이 결정한다고 해도 반박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게 120년을 달려온 올림픽의 민낯이고 속살이다. 물론 책임은 ‘올림픽 동맹’인 IOC와 자본에 있다. 이들은 인간의 생리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의 기술’을 욕망하고 부추겨왔다.  

 

늦었지만 멈추고 돌아 봐야 한다. IOC는 자본과 거리두기에 나서야 한다. 탐욕을 버리고 올림픽의 몸피를 줄여야 한다. 메가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스몰스포츠 이벤트에 가치를 둔 제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영화 <설국열차>는 구질서의 죽음이라 할 폭발에 이어 두 명의 아이와 곰 한 마리를 살려 희망을 이어간다. 올림픽! 한 번 더 부활할 때가 왔다. 

 

 

특집.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2018_1-2월 합본호 월간 참여사회 

1. 올림픽 120년史의 민낯 고광헌

2. 올림픽의 정치경제적 목적성 최동호

3. 시민이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려면 이경렬

4. 위기의 올림픽,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하다 정용철

수, 2018/01/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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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_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올림픽의
정치경제적 목적성

글.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평화와 화합의 무대’, ‘세계인의 평화축제’. 올림픽을 나타내는 일상적인 표현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표현도 있다. ‘스포츠에 관한 모든 환상의 심리적 투영체’(마르크 페렐망), ‘정치엘리트와 거대 자본의 정치적, 경제적 재생산 과정’(이강우·김석기), ‘광범위한 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스펙터클로서의 상품’(김상환) 등이다.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기도 하고 ‘메가스포츠이벤트’, ‘쇼스포츠’, ‘Televised Sports’라는 개념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일상적 표현인 ‘평화’, ‘화합’, ‘세계’, ‘축제’는 관념적, 추상적, 상징적이지만 비일상적인 표현은 올림픽의 작동원리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낸다. 추상과 상징이 신화라면 구체적 분석은 신화 속의 진실에 닿아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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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한계, 민족주의와 정치경제적 목적성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발생한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독립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경찰과 공안의 발포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올림픽 평화. 중국 지도부에겐 올림픽 기간 중 어떠한 시위나 분쟁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8월 베이징은 평화로웠지만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는 공포에 짓눌렸다. 올림픽을 위해 티베트와 위구르는 죽어야 했다. 위장된 평화였다. 문제는 IOC가 중국의 하수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IOC는 중국이 원했던 ‘평화’를 위해 유혈사태를 외면했다. 올림픽 성공은 IOC에게도 중요하다.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G2 등극’이라면 실제로 베이징올림픽은 G2 등극의 화려한 무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올림픽의 효용성이다.

 

IOC는 개최국이 정치경제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협력해 왔다. 바꿔 말하면 IOC는 스스로의 지속 가능을 위해 올림픽의 효용성을 입증해 온 것이다. 올림픽을 명분으로 인권 탄압과 폭력을 자행해도 IOC는 언제나 개최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해왔다. 베이징올림픽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자주 인용된다. 베를린 올림픽이 준비된 시기 독일에선 인종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탄압이 거행됐다. 올림픽을 내걸고 전쟁준비를 하는 나치의 악마성에 항의해 베를린올림픽 보이콧 운동이 일었지만 IOC는 이 또한 외면했다. 올림픽 창시자라 불리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베를린올림픽 폐막 직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건가요. 올림픽이 너무나 왜곡됐다, 정치선전을 위해서 올림픽의 이념이 이용됐다는 말씀들을 하시는 건가요? 전적으로 틀린 말씀들입니다! 베를린올림픽의 성대한 성공으로 말미암아 올림픽의 이상은 더욱 숭고해졌습니다. 이렇게 개최국의 국민이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4년 동안 공들이고 계획한 대로 올림픽이 성사된다는 건 정말 바람직한 일입니다.” 

- <르 주르날Le Journal> 1936년 8월 27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중국몽’, 2014년 소치올림픽의 ‘위대한 러시아’, 2020년 도쿄올림픽의 ‘일본재생’처럼 모든 올림픽은 저마다의 정치경제적 목적을 내포한다. 올림픽 헌장을 살펴보자. 올림픽 헌장 6조 1항은 ‘올림픽 경기는 개인 및 팀 간의 경쟁이며 국가 간 경쟁이 아니다(Olympic Games are competitions between athletes in individual or team events and not between countries)’, 5장 57조는 IOC와 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OCOG는 어떠한 국가별 랭킹도 작성해서는 안 된다(The IOC and the OCOG shall not draw up any global ranking per country)’고 규정한다.

 

그러나 IOC는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 시상식부터 국가를 연주했고 국기 및 국가별 선수단 입장을 허용해 올림픽의 국가적 정체성을 의식화했다. 누구보다 IOC가 잘 알고 있다. 국가대항전이 아니라면, 민족주의를 배제한다면 아무도 올림픽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민족주의와 정치경제적 목적성. 이것은 21세기에도 변함없는 올림픽의 심장이다. 평화의 제전? 올림픽 신화는 애초부터 없었다. 고대올림픽에서도 도핑, 심판 매수, 프로페셔널리즘, 민족주의는 횡행했다.(데이비드 클레이 라지) 그 유명한 올림픽 휴전은 올림픽 축제 기간에 모든 전쟁이 금지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위해 오가는 참가자들에 대한 공격이 금지된 것이었고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다.

 

새로운 권력, 자본과 미디어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에 치중했던 올림픽은 한계에 봉착한다. 재정문제다. 1972년 IOC는 운영비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IOC 제5대 위원장 에이브리 브런디지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IOC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1980년 IOC의 자산규모는 200만 달러였지만 은행 잔고는 20만 달러에 불과했다.① 1980년 제7대 IOC위원장으로 등장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는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TOP프로그램올림픽 스폰서십 판매, TV중계권료 인상, 프로선수 올림픽 참가 등으로 올림픽 상업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올림픽은 상품과 로고의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자본이 올림픽에 종속되지 않고 올림픽을 움직이는 권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올림픽의 상업화가 이루어지던 시기 IOC는 광고와 홍보를 위해 올림픽을 재조직했다. 평창 롱패딩이 화제가 됐듯 올림픽 로고의 상품화가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지며 1984년 LA올림픽은 ‘햄버거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 ‘코카콜라올림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올림픽의 효용에 스폰서십 효과가 추가된 것이다. ‘국가나 지방정부가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관장하는 데 있어 자본의 이익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당하지 않는다’(송해룡, 최동철)는 문구처럼 IOC는 후원기업의 이익이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받지 않도록 올림픽을 철저히 통제한다. 실질적으론 자본이 IOC를 움직이는 것이다.

 

2016년 리우올림픽 수영, 육상 경기는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에 열렸다. 88서울올림픽에선 서머타임제가 실시됐고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녀 싱글 경기는 한국시각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프라임타임인 동부기준 오후 8시에 맞추기 위해서다. IOC가 미국 방송사의 시청률, 광고수익을 위해 경기시간까지 배려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돈이다. 

2016 IOC 마케팅 보고서에 따르면 올림픽 5대 수입원인 방송중계권, TOP프로그램, 라이센싱 사업, 티켓 판매, 개최국의 로컬 스폰서십에서 방송중계권 판매가 차지하는 부분은 전체 수입의 50%에 가까웠다. NBC는 2014년 소치, 2016년 리우, 2018년 평창, 2020년 도쿄올림픽의 미국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해 43억 8,200만 달러, 한화로 약 4조 7000억 원을 지불했다. 방송사도 기업이다. 천문학적 금액을 중계권료로 투자한 이상 그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 그 결과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올림픽 영상은 이미 스타디움의 현실을 뛰어넘은 판타지를 제공한다.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실재지만 절대로 스타디움에선 볼 수 없는 장면, 교묘한 반칙, 찰나의 표정, 선수의 땀방울, 관중의 반응, 부감샷② 등으로 구성된 올림픽 영상은 쇼스포츠의 절정으로 시청자를 미혹한다. 

 

문제는 방송사가 영악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감성과 자극적인 선정성을 강조함으로써 올림픽의 숨겨진 코드를 교묘히 활용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방송사의 올림픽 영상엔 민족주의와 성상품화가 함께한다. 오늘날의 올림픽에선 스타디움보다 더 스타디움 같은 환상을 다양한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미디어가 새로운 권력이다. 아래는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육성이다.

 

“몽골의 우란체제크 문크바크 선수는 야들야들한데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르는 선수입니다.” 

- 2016리우올림픽 SBS 중계방송

 

“해변엔 미녀, 바닷가엔 비키죠. 해변에는 여자와 함께 가야 합니다.

남자와 함께 가면 삼겹살밖에 더 먹겠습니까?”

- 2016리우올림픽 KBS 중계방송

 

“야, 바보야, 방심하지 말라고 했잖아!” 

- 2008베이징올림픽 SBS 중계방송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을 창설하며 신에 대한 제례로 시작된 고대 올림픽을 차용했다. 올림픽 정신, 올림픽 헌장, 올림픽 운동으로 각색된 올림픽 이상은 시처럼 아름다울지 몰라도 올림픽 신화의 진실은 산문처럼 복잡하다. 올림픽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정치경제적 목적성을 은폐한 채, 민족주의에 기대 자본과 미디어의 의도대로 작동되고 있다. IOC는 대리인이자 조정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① 데이비드 밀러, 『올림픽 혁명』

② 공중에서 피사체를 촬영한 영상

 

 

특집.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2018_1-2월 합본호 월간 참여사회 

1. 올림픽 120년史의 민낯 고광헌

2. 올림픽의 정치경제적 목적성 최동호

3. 시민이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려면 이경렬

4. 위기의 올림픽,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하다 정용철

 
수, 2018/01/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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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_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시민이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려면

 

글. 이경렬 평창동계올림픽시민모니터링단

 

 

열리지 말았어야 했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기에 척박한 환경인 나라가 온갖 억지를 부려 개최를 하다 보니 재정낭비, 환경파괴, 경기장 사후활용 문제가 심각하다. 그간 시민단체에서는 올림픽 유치과정과 유치 후 준비과정에서 꾸준히 비판과 대안의 목소리를 냈었다. 허나 눈으로 바위치기였다. 조선시대부터 500년간 보호된 극상림(極相林)인 가리왕산을 중심으로 환경보호와 재정낭비를 막기 위해 대안을 제시했던 분산개최 운동이 대표적이다. 결국 가리왕산은 처참히 파괴됐다. 올림픽이 끝나면 가리왕산 자연 복원 전제하에 공사가 승인된 스키장이지만 현재 강원도는 복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일관한다. 

 

가장 큰 논란이었던 가리왕산 사안도 이 지경이니 다른 사안들은 오죽하겠는가. 강원도는 올림픽 적자 해결방안과 사후활용 비용을 모두 국가가 책임지게 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호시탐탐 노린다. 이에 들어가는 재원은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를 관객들이 베팅 거는 경빙사업과 스포츠토토에 아이스하키를 신설하여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충당하겠다는 속셈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대안은 ‘대안이 없다는 게 대안’이라는 말이 위로가 될 정도다. 정말 올림픽은 유치하지 말았어야 했고 열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민주적 의사소통 부족한 올림픽 유치

한국은 동계스포츠 저변이 취약한 국가다. 생활체육 참여율의 중요한 척도인 생활체육동호회가 이를 증명한다. 2016년 체육백서를 보면 스키, 스케이팅, 빙상, 컬링 동호회를 합한 인원은 24,313명이다. 반면 가장 많은 종목인 축구는 동계스포츠에 20배가 넘는 596,939명이다. 생활체조 388,735명, 게이트볼 367,006명, 배드민턴 338,155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① 동호회가 아니어도 겨울 레저스포츠로 스키를 즐기는 인원도 점점 줄어든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스키장 이용객이 11~12년 시즌 686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12~13년 시즌 630만 명(-8%), 13~14년 시즌 558만 명(-12%), 14~15년 시즌 511만 명(-8%)으로 3년 연속 10% 가까운 감소를 나타냈다.

 

외국 사례와 비교해보면 문제가 더욱 드러난다. 2012년 강원도연구원에서 발간한 연구서를 보면 독일은 동계스포츠클럽 회원수가 66만8천명에 달한다. 피겨스케이팅만 해도 19만 명, 봅슬레이 루지가 7천명이 넘는다. 독일 인구가 8,267만 명이고 우리나라 5,125만 명인걸 감안해도 독일은 한국의 배드민턴 동호회보다 많은 인원이 동계스포츠동호회에 참가 한다.② 

 

독일은 1936년 나치올림픽의 예고편인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을 한 번 개최했을 뿐 2013년에는 되려 주민투표로 2022뮌헨올림픽 유치신청을 철회했다. 올림픽 신청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산더미처럼 쌓이게 될 부채 문제였다.③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종합 2위, 2006토리 동계올림픽 1위,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2위, 2014소치동계올림픽 6위를 차지한 명실상부 동계스포츠 세계최강국 독일조차도 올림픽은 열리면 안 되는 메가스포츠이벤트였다. 

 

이에 반해 2000년 2월 당시 김진선 강원도 도시사의 올림픽 유치표명으로 시작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민주적 의사소통은 철저하게 배제됐다.④ 일례로 2008년 강원도의회에서 세 번째 올림픽 유치동의안 통과 안건을 다룬 강원도의사회록이 인상적이다. 어느 의원이 강원도 국제스포츠정책관에게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 도민들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는지 질의하자 정책관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주민참여 공청회나 토론회를 개최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⑤

 

그 많다던 경제효과는 어디 가고 

올림픽 유치의 절대적 논리였던 경제효과부터 ‘눈 가리고 아웅’, ‘거짓말의 결과는 빈곤’뿐이라는 속담의 전형을 낱낱이 증명했다. 2011년 올림픽 세 번째 도전할 시기 강원도는 평창동계올림픽 경제효과 65조 원을 공익 캠페인처럼 외쳐댔다. 사실 경제효과가 아닌 경제영향이었지만 강원도를 비롯하여 정부, 언론 등 여기저기에서 이를 숭배하고 찬양했다. 최면술이었다.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인한 기대 효과’ 항목에서도 ‘경제발전’이 42.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집

 

그런데 요즘은 강원도마저 최상의 경영으로 운영을 해도 스피드스케이팅, 강릉하키 센터, 슬라이딩 센터, 스키점프경기장에서만 연간 58억 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분석 자료를 내놓는다.⑥ 강원도와 강원도 지역구 국회의원, 조직위원회가 국민을 향해 더치페이하자고 내민 계산서다. 여론조사에서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낮아지는 ‘올림픽 직접 관람 문항’ 결과와 저조한 입장권 판매율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지난 12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제5차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서 직접 참가 의향이 고작 5.2%로 나타났고, 정부와 관주도로 거의 강매 수준에 가까운 단체 구입에 이제야 입장권 판매율이 60%를 넘는 실정이다.

 

올림픽 성공적 개최가 새 정부 핵심과제가 된 상황에서 강원도청과 강원도 지역구 국회의원,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성공은 국민적 관심과 성원에 달렸다는 말을 강조한다. 올림픽에서 일어난 문제를 국민에게 책임전가를 하여 올림픽 사후관리의 모든 비용을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충당시키려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을 노린 수작이다. 올림픽 개최에 혈세를 14조 원이나 사용했음에도 말이다.

 

염동열 의원은 2014년 3월 「국민체육진흥법」 36조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시설관리를 ‘올림픽국민체육진흥공단’을 통해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관리하자는 게 골자다. 체육학계에서도 여기에 동조하여 논리를 생산한다. 관동대학교 체육정책 전공 교수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G-1년 기념 국회 토론회에서 사후활용 방안으로 평창올림픽 시설의 관리 주체를 강원도가 아닌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지목하면서 올림픽 관련 법 개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아가 올림픽 폐막 후 경빙사업과 스포츠토토 사업를 포함시켜 수익금으로 평창올림픽 사후 관리 운영비로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⑦

 

그 결과 경빙사업에 눈독, 돈독이 오른 곳이 등장했다. ㈔동계올림픽을 사랑하는 모임 조직위원회는 올해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원 아이스더비 도입 공청회’를 열었다. 아이스더비는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접목하여 220m의 트랙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면 관객들이 베팅을 거는 사행성 사업이다. 사회문제, 특히 청소년 도박중독에 핵심 요인인 스포츠 사행성 사업을 축소하기는커녕 증가시키겠다고 난리법석이다.

 

제대로 평가하여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체육진흥법」 36조 개정안이 통과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막아야 한다. 이제는 올림픽 사후 평가와 대책을 더 이상 관주도가 아닌 시민참여가 중심이 되는 민주적 의사소통 과정이 필수적인 시대다. 그간 국제대회 평가는 해당대회 조직위원회가 전담했다. 조직위원회가 대회 종료 후 6개월 안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평가서를 제출하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 조직위는 평가를 내면 곧바로 모든 자료를 해산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 평가서 작업은 조직위원회 뿐만 아니라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 여러 단위가 참여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평가 기간도 최소 2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

 

적자 문제는 강원도에 올림픽 세금을 따로 걷는 ‘올림픽세’가 하나의 방법이다. 실제로 1976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행했던 정책이다. 강원도에 도민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게 아닌 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성 내지 이익구조를 개별화하는 구조를 구축하자는 뜻이다. 정치적인 성과로 활용하려는 정계와 개발이득을 노리는 재계가 더 이상 메가스포츠이벤트에 군침을 흘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음부터는 열리지 말아야할 올림픽은 말 그대로 절대 열려서는 안 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체육백서2016, 2016

강원발전연구원, 강원도 동계스포츠 육성방안, 2013, 70쪽 

오마이뉴스 <2천억 아끼자는데 안 된다니... 최문순 도지사는 왜?> 2014.9.6

한승백, 지방정부 스포츠이벤트 정책에 대한 비판사회학적 분석, 2009

강원도의회의사록, 상임위원회-7대-185회-2차, 2008.6.23

강원연구원, 동계올림픽 완성과 시설의 유산Legacy 활용, 2017

안민석·황영철·이동섭, 평창동계올림픽 G-1년 기념-최순실의 체육농단으로 일그러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17

 

 

특집.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2018_1-2월 합본호 월간 참여사회 

1. 올림픽 120년史의 민낯 고광헌

2. 올림픽의 정치경제적 목적성 최동호

3. 시민이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려면 이경렬

4. 위기의 올림픽,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하다 정용철

수, 2018/01/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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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_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위기의 올림픽,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하다

 

글.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기억들 하시는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말미. 까만 양복에 기름 발라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분들이 새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몸을 비비 꼬며 불렀던 그 노래. 서울 올림픽 공식주제가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다. 가사의 절반이 영어라 당시 논란이 있었으나 독일과 일본을 비롯해 무려 17개국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동서로 갈려 두 번의 올림픽을 반쪽짜리로 치른 세계인에게 다 함께 손을 잡고 냉전의 벽을 넘자는 메시지가 큰 위로로 다가왔으리라. 

 

그날 오후 잠실벌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 때문인지 인류는 벽을 넘고 또 넘다 이듬해 마침내 벽을 무너뜨린다. 1989년 동독시민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뜨리고 냉전 시대의 마무리를 찍었다. 손에 손을 맞잡고 담치기를 하다가 벽을 허물고 다다른 곳은 과연 어디일까? 차가운 이념의 갈등과 반목이 사라진 따뜻한 봄날 같은 세상? 천만의 말씀! 냉전이 끝나고 곧바로 인류가 돌진한 시대는 자본의 욕망이 활활 불타오르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냉전에 얼어붙었던 올림픽은 이제 시장논리에 충실한 메가이벤트로 본격적인 변모를 시작한다. 

 

마침 당시 IOC 위원장이 그 유명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가난한 IOC를 국제 졸부로 승격시킨 장본인이다. 프로 선수들에게 올림픽을 개방해 시청률을 확보한 후 방송 중계권료를 챙겨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올림픽이 처음 전 세계로 중계된 1960년 로마 올림픽의 중계권료는 117만 8천 달러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비교하면 반세기 동안 자그마치 1600배가 치솟았다. 거기에 라이센싱 사업과 스폰서십까지 더하면 IOC에 올림픽이란 4년에 한 번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지속가능 올림픽을 위한 고육지책 ‘아젠다2020’

평창동계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냉전시대 긴장의 최고조에서 종지부를 찍었듯 꼭 삼십 년이 지나 2018년에 열리는 평창은 신자유주의 시대 욕망이 올림픽에 발현되는 마지막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올림픽 개혁안으로 불리는 ‘아젠다2020’ 때문이다.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드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5억 600만 불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한 소치 올림픽을 선두로 올림픽을 유치하고 나서 나라제정이 휘청거렸던 아테네 올림픽을 기억한다. 오죽하면 IOC에서조차 개혁안을 만들어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의 부담을 줄이려고 했을까? 

 

2014년 12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유치비용을 줄이고 분산개최를 허용하는 ‘아젠다2020’을 발표한다. 여기서 ‘2020’은 2020년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혁안 전체가 총 40개의 제안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발표 당시 이 개혁안은 2020년부터 적용된다고 분산개최가 불가하다는 루머도 돌았다. ‘아젠다2020’의 출현으로 평창을 포함한 미래의 올림픽 개최국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올림픽 유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상 202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뛰어들었던 유럽의 여러 나라가 주민들의 반대로 유치포기를 선언하자 지속가능한 황금알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IOC가 내놓은 개혁안이다. 

 

‘아젠다2020’을 발표한 IOC의 속내를 잘 들여다보면 앞으로 올림픽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는 빤한 속셈이 곳곳에 보인다. 겉으로는 올림픽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세련된 언어로 포장했지만 결국 개최를 할 때마다 생기는 이익을 오래오래 챙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인 것이다.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평창 다음 올림픽 개최도시인 도쿄와 베이징은 이 제안을 충실히 받아들여 비용을 차곡차곡 절감하고 있는데 유독 평창은 원래의 계획①대로 꼭 지어야겠다는 몽니를 부렸다. 

 

18쪽사진교체

500년 동안 보존된 원시림 가리왕산에는 현재 알파인 스키 경기장이 들어섰다.

 

끝나지 않은 올림픽 재앙 

곧 닥칠 올림픽 재앙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지난 3년 간 분산개최를 진지하게 논의하자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문을 활짝 열고 출발한 기차와 같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는 개최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손에 손 잡고 벽을 향해서’ 돌진 중이다. 그동안 가리왕산 중봉에 스키 활강장을 짓는다고 500년 동안 보존되어 온 원시림이 사라졌고 사업타당도가 기준미달이라 정상적으로는 인가가 나지 않을 고속철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인부들의 임금을 주지 못해 국제 노동 기구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당초 계획에 없던 개폐회식장은 사각형에서 오각형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바람에 팠던 땅을 다시 메우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후활용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경기장들이 들어서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비용은 대부분 국민의 혈세로 충당될 것이다. 

 

1998년 동계 올림픽을 치룬 일본의 나가노 현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여전히 올림픽 후유증으로 허덕이고 있다. 당시 준비된 동계올림픽 개최지라고 칭송받던 나가노는 이제 퇴물이 된 시설과 함께 주저앉았고 회복의 길은 요원하다. 평창의 무분별한 경기장 건설과 자연파괴를 경고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나가노의 한 시민단체 회원은 지금까지 겪은 그들의 경험을 ‘추운 겨울에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 고통스러운 자리에 앞으로 꽤 오랫동안 우리가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음울하고 비극적인 미래상으로 글을 맺으려고 하니 왠지 찜찜하다. 정녕 근대 올림픽의 미래는 없단 말인가? 혹시 우리가 아직 상상해 보지 못한 대안이 있지 않을까? 확실한 건 현재와 같이 광란의 스펙타클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한 올림픽은 막다른 절벽을 향해가는 파국열차가 될 것이다. 이제 올림픽을 개최하느라 천문학적인 지출을 감행할 나라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원래 지어놓은 경기장을 재활용하거나 아예 올림픽을 같은 곳에서 개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시점이다. 무엇보다 국가 간 유치한 경쟁보다는 인류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모여 어우러지는 축제의 올림픽이 되면 좋겠다. 모든 인류가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축제,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해 본다. 

 


① 올림픽 경기장들이 20분 거리에 몰려있는 클러스터를 제안했었다.

 

 

특집. 누구를 위하여 올림픽은 열리나 2018_1-2월 합본호 월간 참여사회 

1. 올림픽 120년史의 민낯 고광헌

2. 올림픽의 정치경제적 목적성 최동호

3. 시민이 참여하는 올림픽이 되려면 이경렬

4. 위기의 올림픽, 올인픽(All-人-pic)을 상상하다 정용철

 

수, 2018/01/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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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보편요금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일시 및 장소 : 1월 3일(수) 오후 2시, 국회 정론관

 

20180103_보편요금제도입촉구

<보편요금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는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1.  2018년 1월 3일(수) 오후 2시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소비자시민모임 ‧ 참여연대 ‧ 한국소비자연맹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2. 기자회견에서 참가자 일동은 보편요금제 도입을 촉구하며 기본 제공량이 더 확대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통신사에게 요금인하 경쟁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보편요금제 도입에 반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3.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기자회견문

현재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보편요금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보편요금제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국민들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공공 서비스로서 최소한의 사용권을 보장하고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보편적 통신권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보편요금제로 월 요금 2만원, 음성 200분, 데이터 1GB을 제안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국민들에게 보편적 통신권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기존 요금제의 순차적 인하를 유도하기에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는 기본 제공량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통신사들도 보편요금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철회해야 합니다. 보편요금제가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통신사들이 요금인하 경쟁 없이 고착화된 통신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만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저가 요금제 사용자들은 역차별을 받아왔고, 고가요금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과도한 통신비 부담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통신사도 책임을 통감하고 보편요금제 도입에 적극 협조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께서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통신권을 보장하고 소비자 기본권 확립을 위하여 보편요금제 만큼은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원만히 합의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국회에서도 신속하게 보편요금제 법안을 논의하여 통과되기를 바랍니다. 

 

2018. 1. 3.

 

정의당 추혜선 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소비자시민모임‧참여연대‧한국소비자연맹

 

▣ 붙임자료 

 붙임.1) 정의당 추혜선 의원 발언 자료

 붙임.2)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철한 국장 발언 자료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수, 2018/01/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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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역사기행 3

서촌, 근대를 넘어

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조선왕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서촌은 또렷하게 관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타의와 자의로 변화된 현실 속의 대한제국 아래 서촌 역시 급격한 도시변화가 일어난다. 경복궁 옆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터를 잡았던 사대부 집안의 대저택이 사라지고 분할되어 작은 형태의 한옥과 집단주거지 형태의 상업적(집장사) 한옥 건축이 발생한다. 이 시기 서촌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이사, 구직 등의 필요에 의해 많은 서민들이 이주하게 된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산 토박이들과 서울로 이주한 주민들이 혼재된 삶의 방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일제는 일본인들로 하여금 조선 땅은 엘도라도(El Dorado,낙원)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일본인 이주정책을 펼치게 된다. 철도, 광업, 은행업, 어업, 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인들의 이주를 독려하며 당근을 제공한다. 즉 철도를 건설하며 자본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한편으론 수탈을 용이하게 하였다. 광업권을 가져가서 조선 땅 곳곳을 파헤치고 수탈해갔다. 근대적 은행업도 최대 주주는 일본인들로 조선의 자본까지 독식했으며, 독도의 강치 멸종사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이 되는 어업권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 질 좋은 쌀 수탈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겠다. 

 

이러한 수탈과정에서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거주지를 형성했는데, 지금처럼 명동 회현동이 일본인들의 영역에 들어간 이유는 종로처럼 구 도심권은 아직까지 조선인들의 자본과 힘의 영역에 있기에 명동 쪽이 그만큼 저항이 덜 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사직단의 변천사 

또한 서촌부터 서대문, 아현동일대에 광업, 철도, 은행업, 증권 등 상업경제인들의 거주지를 형성하면서 경복궁 옆 효자동 백송 주변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의 관사가 들어오면서 한옥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관사에는 고급관리들의 저택이었던 칙임관(勅任官)① 저택과 일반 직원들의 주임관(奏任官) 건물들로 나뉜다. 현재도 칙임관 건물 한 채와 주임관 건물 수십 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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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척식주식회사 칙임관 관사 ⓒ황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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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동양척식주식회사 주임관 관사 ⓒ황평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당연히 교육시설이 필요했다. 일제는 필요한 공간이 부족할 때 조선왕실의 재산과 토지를 이용했는데 이용이라기보다는 강제 처리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선왕조는 건국과 동시에 사직(社稷)과 종묘(宗廟)를 세웠다. 종묘는 조상에게 감사하고 조상들로 하여금 후손을 지켜달라는 의미이며, 사직은 전통적인 농경국가였음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이에 따라 땅 신과 농사를 관장하는 신에게 항상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을 올렸던 곳이다. 즉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은 정권의 안위인 위계질서와 최대의 산업인 농업에 대한 국가적 예의와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일제는 종묘와 창덕궁의 맥을 끊어버리고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로를 내버렸다. 현재 후손들은 이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무진 고생을 하고 있다. 또 사직단을 이리저리 도려내서 공원처럼 놀이 공간을 만들어 버렸다. 또한 반드시 일제가 행한 행위라고 볼 수 없지만, 1895년 공립 보통학교인 매동초등학교를 세운다. 일제는 1920년 사직단 뒤 언덕에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도서관인 종로도서관을 세운다.

 

배화여고도 마찬가지다. 근대 시기 여성교육이 필요했는데 1898년에 개교한 후 1916년에는 생활관도 지었는데 이 건물은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이 건물은 원래 선교사들의 숙소였다. 붉은색 2층 벽돌집에 기와지붕을 얹은 모습, 정면 가운데 현관 바로 위에 발코니를 꾸민 모습이 이색적이면서 아름답다.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숙소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사직단! 패망한 조선에서 백성을 생각했다는 권력자들의 자기만족이라고 비하할 수도 있겠으나, 종묘와 사직은 한 국가의 자존심과 같은 공간이었다. 이러한 엄숙한 공간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파괴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화여고

배화여고 생활관 ⓒ황평우

 

도서관

사직단 터를 침범한 옛 사직동팀 건물. 현재 어린이도서관 ⓒ황평우

 

사직단은 권위주의 정권 때는 청와대 민정실의 부속기관인 사정기관으로 있으며 온갖 폐악질을 다했었다. 이른바 ‘사직동팀’은 온갖 권력의 잔심부름을 맡았던 곳인데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폐지되었다. 사직동팀이 사용하던 건물에는 현재 ‘어린이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터도 사직단 경내에 들어가 있는데, 사직단을 복원하며 지역주민들과 갈등이 있었다. 사직단 복원 전에 어린이 도서관의 새로운 자리를 먼저 만들고 사직단을 복원한다고 했으면 갈등이 없었을 텐데 문화재청, 서울시, 종로구의 안일한 태도가 아쉬울 뿐이다.

 

근대 예술가들의 산실, 서촌

또한 서촌은 화가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추정되는 곳과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을 다니며 잠시 하숙했던 집도 존재한다.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건축가 이상(1910~1937)과 행적과 작품에 논란이 있는 시인 모윤숙, 한국화가 이상범(1897~1972)의 집과 작업실도 서촌에 있다. 옥인동에는 한국화 분야의 원로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남아 있다. 박노수 가옥은 1937년 지은 한옥과 양옥의 절충형으로, 벽돌로 지은 1층은 온돌 마루 응접실 등을 두어 프랑스풍으로 꾸몄고 나무로 지은 2층은 마루방 구조로 만들었다. 현재 이 짐은 종로구청에 기증되어 미술관으로 일반 시민을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서촌은 조선조의 문화유산과 근대의 문화예술인들이 기거하거나 칩거하며 작품 활동을 한 산실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과 윤덕영은 서촌의 지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친일파 이완용이 700평이 넘는 대저택을 지었고 현재는 양옥이 건축되었는데 부지면적은 그대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대문 “독립문”의 현판은 이완용의 글씨다. 즉 중국의 예속하에 있던 조선이 독립하라는 의미로 친일파인 이완용이 독립문 건설에 가장 돈을 많이 내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친일파 윤덕영이 건축했던 프랑스형식의 대저택은 1975년까지도 존재했으나 도로 건설과 화재로 철거되었다. 다만 윤덕영이 딸의 집으로 건축했던 한옥과 일식, 서구양식이 결합한 집을 현재 화가 박노수가 소유했었다.

 

친일파 윤덕영의 집터는 현재 서촌의 20% 이상(옥인동의 50%) 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대저택이었다. 후손인 윤평섭 씨가 당시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한 도면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윤평섭

1940년대 윤덕영 저택 ⓒ윤평섭 

 

윤덕영

사친일파 윤덕영은 옥인동당의 절반을 매입해서 송석원 터에 벽수산장이라는 대저택을 꾸몄다.

 

대저택

옥인동 윤덕영의 대저택 ⓒ김영상(서울 육백년)

 

소통의 공간, 통인시장과 마을 정자

시장은 옛 우리말로 ‘저자’라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시(市), 시사(市肆), 장시(場市) 등의 용어로 기록되었고 시장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으나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시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널리 사용되면서 오늘날 ‘시장’이라는 말로 자리 잡았다.

 

시장은 사람들이 모여서 갖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으로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생활 부대이다. 흔히들 ‘재래시장’이라고 폄하하는데, 이는 현대의 대형쇼핑몰과 백화점이 등장하며 만들어진 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다. 오히려 요즈음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도 매장 안에서 왁자지껄 호객 행위를 하는데 이는 전통시장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시장의 핵심 기능은 유통과 교환이다. 그 대상은 물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장은 한 날 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므로 여기에서 인적 교환과 정보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와 같은 소통으로 인해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므로 장터는 언제든지 축제의 장소로도 이용된다. 또한 씨름대회, 윷놀이 등과 같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서촌의 ‘통인시장’은 언제 개장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구전(口傳)으로 전해오기로는 17세기 서촌에 형성된 양반과 중인들이 생활부식과 의료제인 한약을 매매하면서 형성된 상설시장이라는 설이 가장 있다. 일반적으로 장은 3, 5, 7일을 기준으로 서지만 한양에는 육의전과 같은 시전이 연중 개설되었다. 육의전까지 갈 수 없는 틈새를 이용해서 통인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초기는 한양에 인구가 증가하며 성내 여러 곳에 매일장이 형성되었는데 관철동과 장교 일대인 장통방(현재 청계천 입구)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고 도성 내 문 인근에는 장이 형성되었는데 통인시장 인근에는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이 있어 세검정, 구기동, 고양군 일대에서 도성으로 진입하는 통로이기에 시장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 시대 장의 점포는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긴 집(場屋,장옥)에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팔기도 하며 공터나 길가에 자리를 잡고 파는 영세 노점상이 있었다. 세는 한 달에 한 번 내는 장옥세와 매 장마다 걷는 노점세가 있었는데 노점세가 더 비쌌다.

 

통인시장은 현재 장옥 형태에서 각 점포마다 독립공간에 매장이 존재하는데 이는 근대 이후 개인주택과 점포들이 들어섰기 때문이지만 긴 통로를 이용해 시장이 형성된 것은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현대의 대형마트나 백화점처럼 기계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감정이 있다. 이를 소통이라고 말하며, 인위적이지 않다. 시장에는 사람이 모이고 거래가 있고, 흥정이 있다. 돈은 벌지만 매정하게 벌지는 않는다. 서양에도 시장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앉아서 음식을 사먹거나 나누지 않는다. 나눔이 있다는 것도 서양시장과 우리 시장이 다른 점이다. 시장은 일방적인 상품의 거래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나눈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소통의 인간미가 있는 곳이다. 

 


① 조선 말기 관료의 최고 직계, 현재 기준으로 장차관급 이상이다. 

 

수, 2018/01/0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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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TC제도는 차상위계층,
근로빈곤층 위한 복지제도의 핵심

 

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활동가 출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활동.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에 기거 중. 조세제도, 예산체계, 그리고 재벌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많음.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 공저.

 

 

한밤중에 자루를 둘러메고 몰래 가정집에 침입하는 사람이 있다. 누굴까? 물론 도둑이 제일먼저 연상된다. 그러나 물건을 가져가는 도둑이 아니라 오히려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클로스도 있다. 그렇다면 세금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뭘까? 마른 세금도 쥐어짤 수 있다는 무서운 국세청이 떠오른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금은 죽음만큼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산타클로스처럼 돈을 주는 세금도 있다. 바로 ‘근로장려세제’라는 이름을 가진 EITC(Earned Income Tax Credit)는 돈을 주는 세금이다. 

 

우니라라 복지제도는 주로 사회보험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국민연금, 고용보험처럼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돈을 보태서 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중산층 이상 정규직이나 되어야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또한, 소득 최하계층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권리를 누릴 수도 있다. 결국 4대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중산층 이하 차상위 계층은 복지의 사각제도에 방치되어 있다.

그래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4대보험 둘 다 빗겨간 차상위계층을 위해 EITC가 존재한다. EITC제도는 소득최하계층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중산층의 사회보험 형식의 복지제도 사이의 중요한 가교가 된다. 

 

EITC가 무엇일까. 근로소득 금액이 크면 세금을 많이 낸다. 근로소득 금액이 적으면 세금은 줄어들다가 면세점 이하의 소득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근로소득 금액이 면세점 이하보다 더 적을 경우에는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돌려받게 된다. (그래서 마이너스 세금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노동소득에 국가가 마이너스 세금을 보태 주는 형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가 적절한 노동을 통해 가처분 소득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은 돈을 벌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EITC제도가 필요하다. 저임금 노동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액 대신 마이너스 세금인 EITC를 받으면 된다. 따라서 마이너스 세금 형태로 현금을 지급하는 EITC제도는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빈곤층(working poor)에게 꼭 필요한 제도다.

 

경제

 

20대 청년만 차별하는 EITC제도

그런데 우리나라에 EITC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는 자녀가 있는 가족만 해당되었다. EITC는 근로빈곤층을 위한 제도이지, 저출산 예방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만 지원될 논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단순히 예산 제약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EITC제도가 성숙되고 관련 예산이 확보됨에 따라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까지 대상이 확대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나이든 부부 중에 사별 등의 이유로 단독가구가 되어 EITC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지난 2014년부터는 60세 이상의 단독가구도 EITC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2015년도에는 50세 이상, 16년도엔 40세 이상, 17년도는 30세 이상 단독가구까지 확대 되었다. 즉, 지난 정부에서도 근로빈곤층을 위한 EITC제도의 취지에 맞춰 매년 10년 씩 꾸준히 확대되었다. 

 

경제1

그렇다면 2018년도는 20세 이상 또는 연령제한 폐지가 정상적인 EITC제도의 발전 방향이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2017년도 정부 세법개정안에 EITC 연령제한 폐지가 빠져 있었다. 그리고 2018년 예산안 부수법안인 「조세특레제한법」 국회 의결에도 EITC 연령제한 폐지는 소외되었다.

 

현 청년세대의 별칭은 ‘88만 원 세대’다. 알바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88만 원밖에 벌지 못한다는 의미다. 즉, 근로빈곤층의 핵심은 청년세대다. 그리고 근로빈곤층을 위한 핵심제도는 EITC제도다. 그런데 근로빈곤층을 위한 핵심제도가 근로빈곤층의 핵심인 20대 청년만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기득권층은 ‘개천에서 용 나지 못하는’ 청년 세대를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래서 청년창업 관련 예산이나 중소기업 정규직 청년이 저축하면 돈을 보태 목돈을 만들어 주는 ‘내일채움공제’ 같은 예산을 급격히 늘렸다. 그러나 지금 청년의 현실은 ‘개천에서 용 나기’ 보다 ‘헬조선에서 살아남기’가 더 시급한 문제다.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는 마이너스 세금, EITC제도가 20대 청년만 차별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수, 2018/01/0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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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민주주의의

 

글. 장성익 환경저술가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존 민주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오늘날 기후변화를 비롯해 갈수록 깊어가는 환경 위기는 정치와 민주주의에도 새로운 방향 전환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환경문제와 정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환경 위기에 민주주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환경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응답하고자 하는 것이 이른바 ‘생태민주주의’다. 생태민주주의는 환경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서 기존 정치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성찰에서 비롯했다. 동시에, 정치주체인 우리 인간이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자연과 인간 이외 생명체들을 포괄하는 생태적 차원으로까지 정치적 인식과 실천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기존 민주주의와 정치의 골간을 이루는 것이 선거 중심 대의민주주의라는 점이다. 이런 민주주의는 환경문제를 제대로 다루거나 해결하기 어렵다. 우선, 선거 중심 대의민주주의는 정치적 소수자나 약자 집단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선거라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소수의 주류 기득권 엘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민주주의는 ‘비주류 가치’를 충분하거나 적절하게 대변하기 어렵다. 잘 알다시피 환경 위기는 경제성장, 산업화, 개발, 경제적 풍요, 이윤 극대화, 생활의 편리와 안락 등을 무분별하게 추구한 결과로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것들의 바탕에 공통적으로 깔린 것은 물질적 가치 숭배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지배적 주류 가치다. 그러니 자연이나 생명의 가치, 다시 말해 비물질적 가치와 연결돼 있는 환경 이슈가 제대로 다루어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기존 대의민주주의는 시간과 공간, 생물종 등의 측면에서 중대한 ‘대의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 인간 이외 다른 생명체, 국가 범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기존 정치 시스템이 미래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가? 미래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 세대의 자비심이나 아량에 기대는 것밖에 없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 곧 ‘말 못하는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기존 정치 시스템은 대개 국경으로 구분되는 국민국가 체제를 바탕으로 한다. 때문에 기후변화, 방사능 오염, 황사처럼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다루기 어렵다. 요컨대, 기존 민주주의는 인간이라는 생물종만의 이해관계를, 그것도 현 세대의 욕구나 필요만을, 그마저도 국가라는 협소한 틀에 갇힌 채 대표하고 대의할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정치적 지혜’를 찾아서

대의민주주의와 함께 기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자유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형태 또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라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이념 또는 사상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자유민주주의와 환경문제의 관계는 어떠할까? 자유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한다. 이것 자체는 소중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중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사적인 것’을 지나치게 중시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근대화를 ‘사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공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는 위축돼온 과정’이라고 요약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전개과정이 바로 이러했다. 하지만 자연과 생명, 미래세대 등은 ‘공적인 것’이다. 공적 가치와 공적 원리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환경문제다.

 

더 깊은 차원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인 서구 근대 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도 지적해둘 만하다. 자유주의 철학은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인간을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 상정한다. 그렇기에 자연은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지배하고 정복하고 착취해도 되는 객체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을 경제성장의 도구, 개발 대상, 자원 저장 창고쯤으로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현대 환경 위기의 중요한 철학적 뿌리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민주주의를 단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건 짧은 생각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의 창조적인 결합을 통해 민주주의의 혁신과 재구성을 이루어내는 일이다. ‘생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만남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생태학적 물음’과 ‘생태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물음’ 모두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 이것이 생태민주주의의 문제의식이다. 생태민주주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감과 소통을 촉구한다. 그 토대 위에서 조화와 공생의 관계를 맺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번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생태민주주의는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삶의 전환과도 깊이 잇닿아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성장 신화와 물질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탓에 생태주의의 목소리를 낯설어하거나 불편해한다. 사람들 사이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못하는 판국에 사치스럽게 무슨 자연까지 배려하는 민주주의를 들이대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생태민주주의는 환경문제 해결을 넘어, 오늘날 깊은 위기와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기존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데도 뜻 깊은 구실을 할 수 있다. 생태민주주의는 ‘완결된 답변’이 아니라 ‘끊임없는 물음’이다. 생태민주주의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풀뿌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추첨민주주의, 직접행동 등과 같은 다양한 대안적 시민참여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때 생태민주주의의 수레바퀴 또한 힘차게 굴러갈 수 있다. 우리네 문명과 삶의 뿌리를 깊이 성찰하고 그럼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는 것이 생태민주주의다. 그래서다. 혹시 생태민주주의에서 새로운 정치적 지혜의 광맥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무릇 ‘깊은 성찰’과 ‘다른 사유’야말로 지혜의 오랜 원천이지 않던가. 

 

기후

 

수, 2018/01/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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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복이

혼자 살다가 짝꿍과 살다가 아기까지 셋이 사는 이 생활이 어리둥절한 만화가입니다.

이럴줄몰랐지018_01 

이럴줄몰랐지018_02

수, 2018/01/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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