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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주민참여예산제_마주하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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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주민참여예산제_마주하는학교

익명 (미확인) | 화, 2017/07/25- 13:53

 

마포FM의 주민강좌 마주하는학교의 프로그램에 정치발전소가 함께 합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다룰 <생생주민참여예산제>라는 강의인데요,
최근의 여러 사건을 거치며 시민들의 높아진 정치참여의 요구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주민참여제도인 주민참여예산제를 시작으로 참정권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상상을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 강의신청방법
– 온라인 신청 : http://www.majuschool.com/ 에서 강좌 신청
– 페이스북 : @majuschool 검색 후 강좌 신청링크 클릭
– 신청링크 : https://goo.gl/forms/ALBctQLLWk91Xypx1
– 전화 접수 : 02 – 332 – 3247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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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폭넓게 대표하는 적정한 의원 규모는 민주주의 체제의 오랜 고민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민주주의란 ‘시민이 만든 법에 시민이 복종하는 체제’를 가리킨다. 소수의 귀족이나 군주가 정한 법에 따르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듯이, 정치체제 유형을 구분함에 있어서 ‘누가 입법자인가’ 하는 기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물론 민주주의라고 해서 모든 시민이 입법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자신들 가운데 누구를 입법자로 선발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경우 시민 누구나 입법자가 될 수 있었지만, 실제 그 자유를 행사한 시민은 6분의 1 정도였다. 이뿐만 아니라 민회에서 다룰 의제를 미리 준비하는 500명의 평의원을 사전에 선발해 운영해야 했고, 다양한 형태로 시민 대표를 뽑아 행정과 법정을 맡겼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입법자 혹은 체제 운영자로서 시민 대표를 선발하는 문제는 모든 민주주의의 중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도 입법자의 규모, 즉 국회의원 정수 문제는 늘 논란이 되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안철수 유승민 후보에 의해 의원 수 축소 주장이 어김없이 제기되었다. 국회의원의 수는 몇 명이 적당할까? 너무 많은가 혹은 너무 적은가? 지금 우리는 ‘대표의 규모’, 즉 의원의 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초창기 민주주의 시대에는 고민의 초점이 달랐다. 당시 민주주의자들은 한 명의 의원이 몇 명의 시민을 대표해야 하는가, 즉 ‘피대표자의 규모’를 둘러싸고 논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걱정했던 것은 대표(입법자)와 피대표자(시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어쩌나 하는 데 있었다. 주권을 가진 시민의 이익과 열정을 입법자가 대표해야 하는데 그들이 대표하는 시민의 규모가 너무 크면 ‘시민의 지배’가 아닌 ‘정치가의 지배’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따라서 그들은 대표의 원칙으로서 ‘시민과의 유사성 내지 닮음(closeness/resemblance)’을 강조했고, 한 명의 입법자가 시민 10만 명 이상을 대표하게 된다면 그 원칙은 실현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만약 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 5000만 시민을 300명의 입법자가 대표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시민의 다양한 감각을 담기에는 입법자 수가 지나치게 적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혹자는 정치가를 줄일수록 민주적이 된다거나, 정치가 대신 시민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아니냐며, 초창기 민주주의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대개 그런 논법은 정치가를 시민의 대표가 아닌 ‘시민에 반하는 지배자’ 혹은 정치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는 특권계급으로 치환해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 독일을 대표한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이해 방법은 흥미롭다. 그는 민주주의를 가리켜 시민 대표들이 정치라는 일을 통해 경제적 소득을 얻는 체제로 정의했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란 ‘직업 정치가들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라는 것이다. 정치하는 일이 직업이 아닌 부업이 되는 체제, 정치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치가 개인 혹은 그 가문이 감당하는 체제는 귀족정이라고 정의했다. 정치하는 일이 세비 없는 명예직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럴 때 정치는 돈과 시간적 여유를 갖는 자들에 의한 ‘신종 금권정’이 된다고 베버는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정치하는 일을 ‘세비도 특권도 없는 봉사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경멸하면서, 민주적 과업이란 정치를 생업으로 삼는 정치가들이 수많은 윤리적 도전을 딛고 직업적 소명 의식을 발휘하는 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직업 정치인들이 입법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관료제를 지휘해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져야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20대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시작되는데, 이번에도 의원 수 문제는 선거제도의 향배를 결정할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어떤 토론이 전개될까. 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적절한 시민의 규모를 고려하는 민주적 기준이 중시될 수 있을까. 시민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양을 폭넓게 대표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에 대한 것으로 의원 수 문제가 토론될 수 있을까. 정치가(시민 대표)에게 민주주의를 맡길 수 없다거나 ‘누구 좋으라고 의원 수를 늘려!’ 등의 비민주적 논리가 이번에는 절제될 수 있을까.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718/85401440/1#csidx6b7e00a1effad2d8a64b3a8c2536d98

화, 2017/07/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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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치지도자는 ‘경상도사투리 쓰는 남자’ 몫인가?

 

며칠전 광주의 지인들과 대선 후 호남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가 파할 무렵 한 지인은 “지난 대선에 나온 유력후보 4명이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라며 “DJ 이후, 호남 출신의 좋은 정치지도자는 이제 씨가 말라버린 것 아닌가 싶다”고 푸념하듯 말했다. 처음에는 지인의 그런 생각이 좀 생경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지인의 의문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의 중요한 문제와 연관된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만 예외적으로 경기도 출신의 여성 후보가 출마했을 뿐,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전부 영남출신이었다. 대선을 당대 정치지도자들이 자웅을 겨루는 정치 경쟁의 장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정치자도자의 평균적 인물상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라고 한들 틀린 말이 아니다.
호남은 민주화 이후 민주파와 진보파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지역적 기반이자 정치적 자원의 화수분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호남 지역구를 상당부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소속 현역의원의 다수는 호남 출신이다. 국민의당은 소속의원의 거의 대부분이 호남이다.
우리 민주주의에서 호남이 가진 중요성과 역할은 쉽게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의미 있는 호남 출신 정치지도자가 어느 당이냐를 떠나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물론, 정치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출신 지역이 어디냐 보다는 그가 추구하는 정치의 내용과 비전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치지도자의 이와 같은 지역적 편중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호남에서 왜 변화를 만들어 낼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성장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하다보니 지난 총선과정에서 만난 한 전주 시민의 말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지난해 4.13 총선은 호남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함으로써 기존 민주당 일당 체제가 경쟁적 정당체제로 전환된 계기였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만난 한 전주 시민은 호남의 경쟁적 정당체제가 불러온 변화를 다음과 같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다.
“과거 민주당만 있을 때는 정치인들이 위만 바라봤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인들이 아래를 보기 시작했다.”
말인즉, 공천만 받으면 작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1당 지배체제에서는 지역 정치인들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 지도부나 지역 유지들만 쫒아 다녔지만, 유력한 복수의 정당이 경쟁하는 정당체제에서는 표를 주는 유권자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정치지도자인 사람은 없다. 정치지도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던 간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가치를 위해 일관되고 완강하게 투쟁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다. 일정한 시간, 경력, 고난과 단련의 과정을 통과하며 대중의 신뢰와 지지뿐만 아니라 정치지도자로서 다른 정치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은 개인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조직적으로 체화한 정당에 기반해 다른 정당의 정치인과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유권자 속에서의 정치적 경쟁이 정치지도자를 만드는 단련의 과정이라 한다면, 경쟁적 정당체제야 말로 정치지도자 형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 전제이자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호남의 정치가 지도자 없는 정치로 정체되고 있는 것의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호남에서 경쟁적 정당체제가 형성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과 관련이 깊다.
호남에서 경쟁을 배제했던 과거 민주당 일당체제는 중앙에 의존하고, 중앙만 바라보는 참모형 정치인들에게는 기회의 장이지만, 다른 정치인들과 차별화된 새로운 정치적 목표와 가치를 위해 유권자들 속에서 분투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미래의 정치리더에게는 매우 가혹한 조건이었다. 다시 말해 유권자 없는 정치가 지도자 없는 정치를 낳았다.
호남 유권자들은 이제 경쟁적 정당체제가 주는 이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이 민주당 일당체제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심판이었다면, 이번 대선은 과거 민주당과 다를 바 없이 호남에서 군림하고자했던 국민의당식 낡은 정치에 대한 심판인 면이 있다.
또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호남에서의 득표율은 민주화 이후 집권한 역대 어느 민주파 정부보다 낮았다.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며, 호남은 무조건 민주당이라거나, 될 사람 밀어주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는 식의 통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호남도 사람 사는 곳이다. 호남 역시 어느 사회와 똑같이 기득권 질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과 고통을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호남에 경쟁적 정당체제가 자리 잡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이해가 다양한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안정화될 수 있다.
앞으로 어느 정당이 호남의 경쟁적 정당체제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될 수 있을까? 호남 유권자들이 다시 국민의당에게 기회를 줄까? 그것은 불분명하다. 국민의당은 대선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에 대한 선언적 강조 외에 민주당과 구별되는 정치적 가치나 대표하고자 하는 사회경제적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기존 체제와는 다른 선택지를 주지 못하는 정당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존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대표한다고 말하기에 앞서, 국민의당이 우리 사회에서 왜 있어야 하는지에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호남의 경쟁적 정당체제를 만들어가는 주역은 이제 호남만의 정치에 침잠하거나 호남의 충성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호남이 가진 보편적 고통에 주목하는 정치인이자 정당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의 demo는 민중이라는 의미와 함께 ‘지방민’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지방, 역시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이며, 정당이 지방에 뿌리내리지 않고는 민주정치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호남이 경쟁적 정당체제를 수용한 것을 계기로 지금과 같은 5당체제 내지 다원적 정당 체제가 형성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 스스로 새로운 선택지가 되어 그동안 적대적 양당체제에서 대표되지 못했던 유권자들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종류가 다른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면, 모처럼 주어진 다원적 정치질서의 가능성도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수 있다.
언제나 그랬지만, 호남이 다시 한국 정치에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었다. 기회는 어느 정당, 정치인에게나 있다. 다만 누가 무엇을 통해 분투하고, 헌신할 것인지만 남아있다.

[email protected]
금, 2017/06/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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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강의노트2 <정당의 발견>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앞서의 <정당의 발견>에 담겼던 내용 중 현실에 비추어 해석을 돕기 위한 부분을 추가하고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야 하는 부분은 별도의 책을 준비하기 위해 내용을 줄였습니다.

개정판이 나왔으니 새로 책을 사야하나를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텐데요,
후마니타스에서 앞선 <정당의 발견>을 갖고 계신 분들을 위해 개정판에서 새로 추가된 내용을 받아볼 수 있도록
정리를 했다고 합니다.

다음 링크에서 새롭게 추가된 <정당의 발견>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http://humabook.blog.me/220954196184

금, 2017/03/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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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와 박상훈 학교장님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협치’를 키워드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박상훈 학교장은 “다당제가 잘 되려면 서로 차이를 드러내 놓고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정치발전소>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4박5일간의 독일 순방을 마치고 10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 앞에 놓인 국내 현안은 수두룩하다. 야3당의 반대로 멈춰버린 추가경정예산 심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때와 철회할 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해보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치적 지혜도 짜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이 협치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이면서 정치 지도자이기도 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고 여야관계의 초월자처럼 생각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박상훈 학교장은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여야관계, 집권당 등 입법부 범위 안에서 익숙해지지 않고 청와대를 통해서 내각을 관리만 하려고 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정치발전소에서 진행했다. 인터뷰는 협치가 안 되는 근본적 이유를 찾는 것으로 시작해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당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 방법을 찾는 것으로 끝냈다.

– 협치가 잘 안되는 것 같다.
“협치라는 말 자체가 다른 의견이나 갈등 속에서 일하는 걸 어렵게 만드는 점이 있다. 협치라는 말은 그냥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 갈등과 차이를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협력하라 이것만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갈등과 차이를 숨긴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큰 텐트를 친다고 하면 폴대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각자의 폴대가 비슷해져 가운데로 몰리면 천막이 좁아지거나 무너져버린다. 정치에서도 정당이나 정치세력들이 무엇을 왜 어떻게 지향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공통의 요소를 찾고 협력할 방법을 찾아야 되는 것이다. 협치가 안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각 정당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 5당 구조, 다당제에서는 차이가 드러나지 않나.
“다당제는 좋다. 다당제가 잘 되려면 서로 차이를 드러내 놓고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은 법률적 의미에서 다당제다. 사회적 의미에서의 다당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당은 민주주의 체제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수준이다.”

– 인사청문회, 추가경정예산 문제가 꼬인 게 차이가 없어서 그런가.
“내 눈에는 인사청문회 정책이 있는 정당이 안 보인다. 그냥 과거처럼 여당일 땐 여당스럽고…왜 더불어민주당인지 한국당인지 모르겠다. 차이가 없다. 일관된 비전이나 정책이 없다.”

– 방법이 없는가.
“인사청문회의 경우 여야가 합의할 수 방법은 많을 것이다. 청문회의 원래 목적은 일정기간 정부라고 하는 공적기관을 이끄는 통치 엘리트의 도덕성과 자질, 정책적 능력을 검증하고 평가해보는 것이다. 여당부터 ‘5대 기준을 첫 번째 내각 인사에 완전하게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야당과 향후 5년간 점진적으로 수준을 높여갈 수 있도록 성실하게 접근할 생각이다. 여야가 논의를 모아 음주운전 등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보자. 적어도 통치 엘리트가 되려는 사람은 이 정도의 법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우리 정치 규범이 되게 하자’ 이런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논문표절의 문제의 경우도 ‘학계의 도움을 받아 공정한 기준을 만들어보자’고 할 수 있다. ‘5대 기준을 지키니 안 지키니’ ‘너네가 하는 건 다 반대’ ‘너네가 팔았던 썩었던 생선보다 우리 쪽이 그나만 괜찮지 않나’ 이런 것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파괴하는 짓거리다.”

박상훈 학교장은 “민주정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배는 대통령과 몇 사람의 호위무사로 움직일 수 없다.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고 말했다.<정치발전소>

– 여야가 싸우면서도 서로 만나지 않나. 지난 주 금요일(7일)에도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만났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버벌(Verbal)정치, 말만 하는 정치다. 실제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가 아니다. 떠벌이 정치, 말로 하는 여론정치, 누구한테 잘 보이려는 아첨 정치다.”

– 해법이 안 보인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권의 길을 가는 게 아닌가 쉽다.
“박근혜 정부를 되돌아봐야 한다. 박근혜 개인의 이상한 행태에만 관심가질 것이 아니라 박근혜식의 정부운영이 왜 실패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 어떤 점이 실패했나.
“가장 큰 것은 현장을 무시한 것이다. 정당을 청와대 안으로 가뒀다. 집권당에게 책임감 있는 역할 주지 않았다. 정부를 쓰지 않고 액세서리 취급했다. 정부를 청와대의 통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실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위주의 정치를 했다. 민주정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배는 대통령과 몇 사람의 호위무사로 움직일 수 없다.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은 정당정부를 약속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청와대 중심의 기존 한국정치가 노정해왔던 방식보다 집권당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집권당의 정책적 능력이나 조직적 유기성 이런 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대통령이 책임을 가졌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당정부 약속했지만 애매한 점이 있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지금 인사 문제 포함해서 정책문제 보면 청와대 주도성이 강하다. 인사는 청와대의 완벽한 주도성, 정책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주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내각을 왜 만들었는지 애매해진다. 내각 옆에 여러 조직을 두는 건 문제다. 내 눈엔 내각의 자율성보다 청와대의 내각 통할권이 더 커 보인다.”

– 청와대의 국정 주도권 어떻게 분산해야 하나.
“가장 기본은 당정협의다. 장기적으론 당정협의를 강화해야 한다. 중기적으론 당정청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 당정청 관계도 장기적으로 당정관계로 가야 한다. 정당과 정부를 운영하는 내각사이의 관계가 중요한데, 지금은 당정청도 당정관계도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되면 책임정부는 어렵다.”

–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할 것 같다.
“대통령이 지금 시점에서 당정청 관계부터 제도화하면 정당이 발전할 수 있다. 다만 바꾸는 게 핵심은 아니고 정당을 기반으로 내각을 책임 있게 운영하겠다는 방향으로 가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집권당은 무엇을 해야 하나.
“만약 청와대가 그렇게 안 한다고 했을 때 청와대 핑계대면 안 된다. 정당 스스로도 정책적 유기성 만들려는 의지와 행동을 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 지도부와 추미애 대표는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만 관심이 있다. 정당을 제대로 만들겠다는 문제의식 가진 사람이 잘 안 보인다. 이게 민주당의 비극이다. 지금은 청와대 쳐다볼 게 아니다. 민주당을 집권당으로 어떻게 만들 건지 문제 제기하고 당풍운동을 벌여야 한다. 우리는 정의당과 국민의당과 같은지 다른지, 우리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당내 의원들을 어떻게 조직화할지, 상위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

– 대통령, 청와대, 민주당의 유기적 관계가 중요할 것 같다.
“만약에 청와대가 절대적으로 옳은 인선을 한다면 그들이 주도권을 갖고 해도 되겠지. 그런데 과연 지금 인사가 최선이라고 할 수 있나. 또 그렇게 보나. 청와대는 당이 인사나 정책에 책임감 있는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당이 발전한다. 반대로 당도 개별적으로 당 자체를 바꾸는 것이 최고의 개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정운영을 당 주도로 가면서 특정 정책에 공통점이 있으면 다른 정당에 가서 협력도 제안하고. 그렇게 하면서 협력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당이 하나의 팀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누가 봐도 지금 민주당을 원팀으로 보기 어렵다. 팀을 만들어야 한다. 의원들도 청와대만 보면 안 된다.”

신영호 기자  [email protected]

 

원문보기 : 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4048

화, 2017/07/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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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안철수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적폐가수’로 몰려 곤욕을 치른 가수 전인권 씨.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박근혜 정부의 몰락 이유를 꼽으라면, 나는 이견과 비판을 적대하고 증오한 것을 들겠다. 그런데 같은 잘못을 다음번 정부도 쉽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짧은 정의는 ‘야당이 있는 체제’이고, 이때 야당이란 반대당(opposition party)을 뜻한다. 반대가 없는 체제란 곧 비민주주의 체제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곧 정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야당 또한 자신들에 대한 반대는 용인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정권 교체의 의의는 무엇이 될까.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연기자이자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위한 지지 연설을 하면서 당시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를 ‘존재감 없는 무능 대통령’으로 비하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이틀 뒤 오바마는 이스트우드 연설 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가 그 정도에 모욕을 느낀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스트우드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과 무관하게 “이스트우드는 훌륭한 배우이고, 감독으로서는 더 훌륭하다”며 자신은 여전히 이스트우드의 팬이라고 밝혔다.

미국 유권자 가운데 흑인은 8분의 1에 불과하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도 매우 심하다. 그런데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재선에 성공하고 퇴임 후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에 대해 그가 보여준 민주적 자세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19일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판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대해 민주당의 송영길 총괄본부장이 보인 반응을 보면서 참혹한 기분이 들었다. 문 후보를 비판한 심 후보를 그가 재비판한 것 때문이 아니다. 다른 후보를 비판할 수 있고 또 그게 그의 역할 가운데 하나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비판의 이유나 근거 없이 비판 그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그의 태도였다.

누가 보더라도 문 후보에 대한 심 후보의 비판적 질문은 합당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진보적인 정당으로서 물을 만하고, 아니 당연히 물어야만 하는 사안들이었다. 그런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 없이 송 본부장은 심 후보가 “정의가 아닌” 일을 했고, “온몸에 화살을 맞으며 버티는 문재인에게 칼질”했다고 말했다. 정의당을 작지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지하는 동료 시민에게 모멸감을 갖게 하는 일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그는 어떤 ‘정의의 정치’를 지향하는 것일까. 정의당이 그간 민주당과의 야권 연대에 의존해 당세를 유지하려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럴 수 있느냐는 ‘공정 보상의 원칙’을 이야기한 것일까. 아니면 민주당이 집권하면 연정을 통해 장관직을 얻으려는 속셈을 갖고 있는 주제에 이러기냐 하는, ‘미래 소득을 둘러싼 거래의 원칙’을 상기시킨 것일까.

혹시 정의당과 다르지 않은 개혁적 본심을 갖고 있는 문 후보가 보수 세력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애써 그 개혁성을 감추고 있는 것을 몰라주느냐는, ‘동업자의 숨은 계획’을 알아달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문 후보를 지지하면 선의이고, 비판하면 적폐세력’이라는 비이성적 신념에 따른 것일까.

송 본부장의 발언과 뒤이은 정의당에 대한 댓글 공격을 보면서 ‘친문은 친박과 과연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여겨진 일이 있었다. 그것은 가수 전인권 씨가 안희정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적폐가수’로 공격받은 것과 관련해 문 후보가 보여준 자세였다. 그는 적폐 청산을 위해 자신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 다른 후보를 지지하냐고 문제 삼지도 않았다. 가수로서의 자질을 잃었다는 비난은 더더욱 안 했다. 단지 “그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저는 그를 가수로서 좋아하고, 그의 애국가에 국민으로서 감사하고, 촛불집회에서 노래했던 그의 진정성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전인권 씨, 고맙습니다.”

이견과 비판을 상대하는 민주적 태도로서,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할까. 극성 지지자나 조력자들보다 후보가 낫다는 것은 민주당의 큰 복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ISSUE/2017president/News?gid=84050641&date=20170425&path=#csidx817dacd5c06c2ceb30b8da0848fbdfe

화, 2017/04/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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