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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살인노동의 무한루프 / 서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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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살인노동의 무한루프 / 서복경

익명 (미확인) | 목, 2017/07/13- 12:02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7월6일 한 집배원이 작업장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고 이틀 뒤 결국 생명을 잃었다. 한 언론은 이를 두고 ‘과로 자살’이라고 했다. 2016년 제출된 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중 과로로 인한 병사 비율이 11%를 넘는다고 한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고, 유럽연합의 5배에 달했다.

 

산업재해 사망, 과로 병사, 과로 자살. 이 죽음들의 상당수는 공직에 있던 누군가가 제대로 일을 했더라면, 벌써 오래전부터 문제가 된 제도가 바뀌기만 했더라면, 이미 있던 어떤 제도들이 법대로 작동하기만 했더라면, 누군가의 목소리를 틀어막지만 않았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저 ‘재해’가 아니고 ‘돌연사’가 아니며 ‘자살’이 아닌 사회적 ‘살인’이다. 죽음을 부르는 노동환경이 유지되는 메커니즘에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집배원들은 공공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산재사망대책 마련 공동캠페인단’의 자료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가 많은 기업 4위를 기록했다. 집배원들의 산재사망사고 소식은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언론을 장식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집배원 중대재해 해결을 위한 연대모임’을 결성했고, 2014년 서울지방노동청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우정사업본부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집배원들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은 ‘근로시간 특례제도’ 때문에 합법적으로 인정된다. 다른 기업에는 불법인 일이 우정사업본부와 몇몇 기업에는 합법이다. 1961년 근로기준법에 도입된 이 제도는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등에 대해 기업이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주는 제도다. 현재 26개라는 광범위한 예외 업종을 두고 있어 관련분야 노동자들의 살인적 노동시간을 합법화해준다. 법에는 ‘사업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합의를 한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기존 노조가 이미 합의한 상태에서 새로 고용된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할 방법은 없다.

 

우정사업본부 고용 노동자들은 ‘우정노조’에 자동 가입된다. 그런데 ‘우정노조’가 우정사업본부와 토요일 근무를 합의해버렸다. ‘근로시간 특례제도’를 악용해 노동시간을 더 늘려버린 것이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별도의 ‘전국집배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현행법상 복수노조는 합법이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집배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표적감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노조활동을 가로막았다. ‘우정노조’에 가입하든 ‘집배노조’에 가입하든 노동자들의 권리지만, ‘우정노조’ 활동만 인정하는 편파적인 조처를 취함으로써 ‘집배노조’ 가입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했다.

 

집배원들의 노동사망은 기업에 법정 노동시간조차 강제할 수 없는 잘못된 제도, 우정사업본부의 노조 결성권 및 단체행동권 침해, 고용노동부의 감독의무 방기가 결합되어 무한루프를 반복하고 있다. 이 무한루프를 끊어내려면 대통령, 국회, 고용노동부, 법원 등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노동’을 기업의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존과 행복의 문제로 접근하는 동료 시민들의 시각 전환도 절실하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일이라는 시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제도도 바뀌고 공직자도 바뀐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2546.html#csidx68ac7646ce82433abb55139bbc0a38b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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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여섯 번의 실패로 충분하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북한의 6차 핵실험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는 순식간에 화약 냄새에 휩싸였다. 수소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항모강습단, 전략폭격기 같은 전쟁 이미지가 이 땅을 뒤덮고 있다. 차원이 다른 조치, 더 강력한 대응, 군사적 옵션, 자멸, 최고의 적의, 최강의 무기, 최악의 언어가 좁은 한반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을 빼앗는 이런 소란과 불안에도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이 실패는 북핵 문제를 외면했던 오바마 때문만도 아니고, 남북관계를 단절한 이명박·박근혜 때문만도 아니다. 한·미 모두의 실패이자 트럼프·문재인 대통령 공조의 실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한국은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대화 거론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 트럼프도 해당된다. 그는 군사적 조치를 언급하는 사이사이 대화론을 불쑥 꺼내곤 했다. 진짜 대화를 했다면 다른 경로가 펼쳐졌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대화론은 건성이었기 때문이다.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 달리는 북한을 멈춰 세울 만한 것을 그는 내놓지 않았다. 그만큼 무책임했고 무능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인지 아닌지도 애매했고 그런 것조차 대화와 반대되는 신호들에 압도되었다. 보리에 쌀이 몇 톨 섞였다고 쌀이 되는 건 아니다. 북한도 보리와 쌀은 구별할 줄 안다.

이번 핵실험이 분명하게 드러낸 것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8월22일 트럼프는 말했다. “김정은이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북한을 유인할 만한 어느 것 하나도 내놓지 않은 채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편 것이다. 13일 뒤 긍정적인 일이 아니라, 수소폭탄 실험이란 부정적인 일이 일어났지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 정부는 그런 트럼프와 발을 맞추고 때로는 한발 더 나아가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사드 조기 배치, 독자적 대북 제재, 핵잠수함 도입,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 전술핵 검토와 같이 군사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보유국의 목표에 다가갈수록 대북정책 목표를 비현실적으로 높게 잡았다. 핵실험 유예도 어려운 판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하자고 트럼프와 합의했다. 중국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한·미·일 협력을 강조, 중국을 자극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해명했다.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일관성 있게 한길로만 갈 순 없다. 전술적으로 다양한 변화들이 다 전략적 목표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부의 전략적 목표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핵동결이라고 하자. 그동안 정부가 한 것은 북한 도발 때마다 눈에는 눈식의 일대일 대응이었다. 그게 대북정책의 실체였고 전부였다. 그 때문에 전략적 목표는 하늘 높이 사라져 보이지 않고, 임기응변적 조치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전략적 목표가 없었던 게 아니다. 북한의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 충실하다 샛길로 빠지고, 목표에서 멀어지는 줄 몰랐을 뿐이다. 몸통이 꼬리를 흔든 게 아니라,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두 정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중요한 순간에 전략적 목표를 놓쳤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중요한 순간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핵실험하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다. 실현가능한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천적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그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전쟁위기, 중첩된 안보위기의 수렁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않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코앞에 닥쳤다. 전술적 변화라는 이름으로 우회할 시간이 없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올바로 학습하고 김정은을 잘 다룰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친 위기에 솔직해져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낡은 명분, 비핵화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버려야 한다. 선제적인 한·미 연합훈련 중단으로 대화 국면을 조성,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유도하고 핵동결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훈련은 이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핵 문제 해결 기회를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어떤 숭고함이 훈련에 있는 걸까?

6차례나 실패를 반복한 대북정책이 있다면 그건 ‘실패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7번째 실패를 각오해야 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북한 정부 수립 기념일인 9월9일 경험할 수 있다. 완성된 ICBM 발사일 수도 있고, 7차 핵실험일 수도 있다. 그것도 끝이 아니다. 8번째 실패가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52101005&code=990100#csidx8a1c952990e4b528e1f45a31e801119

수, 2017/09/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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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6,000을 만들어주세요”

#. 소박한 것에 집착한다
정치발전소 페이지에 들어온다. 그새 <좋아요> 두 개가 늘었다. 좋다.

#.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정치, 좋은 정당, 좋은 정치가, 좋은 보좌관,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유쾌한 정치실험 공동체, 시민 정치교육의 장” 정치발전소를 설명하는 한줄 문구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누구와 함께?” 이 비전을 이루고 싶다면, 우리는 방법을, 길을 찾아야 한다.

#. 구현력
요 몇 주, 아침에 눈을 뜨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말이다. 머리 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컴퓨터에 옮겨 담는데 수 시간이 든다. 그 글을 강좌로, 프로젝트로 실체화하는데 다시 수 시간이 든다. 마음과 머리, 머리와 컴퓨터, 컴퓨터와 현실 속에 간격을 좁히고 싶다. 하지만 급하게 좁히고 싶지 않다. 잘 좁히고 싶다. 서두름에서 늘 실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급하지 않되, 치열함을 놓치지 않는 것. 여기에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의 실력이 필요하다. 이 실력을 키워내는 것, 우리의 과제이다.

#. 사람들이 웃는다
강의를 연다. 사람들이 웃는다. 어떤 이는 위로를 받는다. 어떤 이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겠다 한다. 누구는 정치적 언어를 얻는다. 누구는 친구를 만난다. 누구는 선생을 만난다. 누구는 함께 할 팀을 만난다. 사람들이 모인다. 모여서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장을 만들어낸다. <청사과: 청소년 정치 책읽기 모임>, <정치 팟캐스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 <좋은 정치기사 모니터링팀>, 이외에도 수강생들 간에 다양한 모임이 만들어진다.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힘이 있음을 본다.

#. 다시 소박한 것에 집착한다
정치발전소 강좌와 활동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이 미약하다. 페이스북 페이지와 회원과 기 수강생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 외엔 아직 뾰족한 수가 없다. 더 많이 알리고 싶고, 더 많은 이들에게 찾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 시작이 우리와 얼굴과 얼굴을 마주했던 이들의 추천이 되길 바란다. 이유는 느리게 가더라도, 오래 가는 만남,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만남이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드리고픈 부탁이 하나 있다. 지인들에게 정치발전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누르기를 추천해주시라(https://www.facebook.com/politeia.kr). 정치발전소 회원이 되어달라 권해주시면 이보다 기쁠 수가 없겠다(http://bit.ly/join_powerplant). 6월 3일, 현재 정치발전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는 3,043개이다. 다음 뉴스레터가 발행될 7월엔 <좋아요> 6,000개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 생태계, 좋은 시민 정치교육의 장을 만들어가는데,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원기옥

토, 2015/05/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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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택배물량 늘어 허리 다친 집배원…法 “공무상 재해로 봐야”(이데일리)

집배원이 명절기간 급격히 늘어난 배송물량을 처리하다 허리를 다쳤다면 이를 공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추석택배가 몰린 2015년 9월 박씨의 잔업시간이 62시간에 달한 점, 업무 외에 허리통증을 급격히 발병·악화 시킬 만한 사유를 찾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허리 디스크를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G41&newsid=0124312661579…

월, 2017/01/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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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체스네 아이들(오스카 루이스, 이매진)

 

2015.8.29

 

‘타임’지는 책이 나온 이래 10년간 최고의 책 리스트에 올려놓았고, 피델 카스트로는 “5만 편의 정치 팸플릿보다 가치 있다”고 평했다. 르포르타주의 고전이라 불리지만 이 책은 무려 790쪽이다. 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읽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산체스네 아이들>은 1960년대 멕시코시티 빈민가의 가족이야기다.

오십대의 아버지와 네 명의 자식들이 생애사를 털어놓는다. 일종의 집단 자서전이다.

각자의 시각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게 정말 지나치리만큼 솔직하다. 일상과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황당하리만큼 성적으로도 자유롭다. 무지하고, 감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러면서 소박하고, 진지하다. 누군가의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개인은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빈곤의 덫에 갖히면 옴짝 달짝 할 수가 없다.

정부가, 정치가,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삶은 제자리걸음이다. 심지어, 나빠진다. 더 나빠질 것이 없어 보이는 데 나빠진다. 빈곤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평생 가볼 것 같지 않은 나라 멕시코의 60년대 이야기에서 2015년 한국사회를 떠올리는 이유다.

 

역자 후기를 옮긴다. “내년이면 이 책을 번역해서 낸지 20년이 된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중략) 전 세계적 보수화의 물결 속에 자꾸만 감춰지고 움츠러들 뿐 빈곤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중략) 가난을 선택한 적도 없고 가난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다시금 조명돼야 한다.” 역자후기가 쓰인 날짜는 ‘1997년 6월’이다. 이 책은 번역 된지 거의 40년이 되었다. 깜짝 놀랄 만큼 변한 게 없다.

역자가 오스카 루이스의 입을 빌러 인용한 C.P 스노의 말을 곱씹어 보는 것으로 후기를 맺겠다. “사람들이 이제는 빈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잊어버려 불우한 사람들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도 못하게 돼버린 게 아닐까?”

수, 2015/09/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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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사실 난 공룡이 지구상에서 왜 사라졌는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훅’ 사라졌다는 정도만 안다. 문외한인 내가 이 낯선 동물을 떠올린 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때문이었다. 지난 17일 그는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설거지, 빨래는 하늘이 정해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순간 공룡이 이렇게 사라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거부하다가 어느 날 집단적으로 멸종에 이르렀던 경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내가 그의 발언을 듣고 공룡을 떠올린 건 꼭 여성비하 발언이라서만은 아니다. 물론 일을 하면서 가사노동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여성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사노동을 100% 감당하도록 요구받는 여성들이 들으면 기가 찰 말이긴 하다. 가사노동이 성별 분업이고 게다가 하늘이 내린 일이라는 이 고색창연한 논리를, 2017년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선 이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다니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2017년의 한국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구 넷 중 하나가 1인 가구라는 통계가 나온 지도 벌써 여러 해다.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1인 가구가 계속 증가한다. 당연히 여성 1인 가구만이 아니라 남성 1인 가구도 늘어난다. 한 부모 가정도 늘고 ‘싱글대디’ 가정도 점점 많아진다.

 

그런데 그의 발언에는 어떤 형태로든 여성을 포함한 가정 이외의 가정은 존재하지 않거나, 고려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되고 남성이 경제활동을 전담하며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형태의 가정이 기준이다. 여성이 가정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 남성은 10명 중 2명으로, 여성 17%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2017년 3월8일 발표 국제노동기구 보고서). 그는 2017년을 사는 한국 유권자 10명 중 2명의 생각만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 고령자 중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게 있다. 그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고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갑자기 바뀌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분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는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정책에는 1인 가구, 한 부모 가구, 맞벌이 가구뿐 아니라 전업주부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없거나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93석을 가진 대한민국 국회 원내 제2당이 경선을 거쳐 선출한 그 당의 공식 후보다. 그 당은 2017년 3월10일 이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었고, 2016년 10월 이전까지 정당 지지율만 놓고 보면 30% 이상의 안정적 지지를 받는 유일한 원내정당이었다. 불과 1년 전 20대 총선 무렵, 그 당은 150석은 충분하다고 자신만만했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1당이었다. 뿐인가. 지난 30년간 온갖 정당들이 명멸해가는 동안에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름만 바꾸며 굳건히 자리를 지킨 역사적인 정당의 후예이기도 하다.

 

지금은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과 책임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지지율이 10% 근처에서 맴돌고 있지만, 옛말에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 당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적응을 거부해온 시간이 꽤 오래되었다는 걸, 그 당의 공식 후보가 이렇게 확인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1420.html#csidx4c6319d26f6664b90ac2edead08b39a

수, 2017/04/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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