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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스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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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스님의 고백

익명 (미확인) | 월, 2017/07/17- 11:57

老僧告白(노승고백)

 

在監三十載(재감삼십재)

晩覺佛欺余(만각불기여)

已老焉還俗(이로언환속)

撞鐘打木魚(당종타목어)

 

老스님의 고백

 

감옥에 있은 지도 어느덧 삼십 년

佛이 날 속인 걸 늦게사 깨우쳤소

이미 늙은 後니 어찌 還俗할 건가

鐘을 치며 또 木魚나 두드릴 밖에.

 

<時調로 改譯>

 

在獄 어언 삼십 년 저 佛이 날 속였소

이미 늙어 버렸으니 어떻게 還俗하랴

梵鐘을 치기도 하며 木魚도 두드리오.

 

*在監: 재옥(在獄).  재소(在所).  징역형,  금고형,  구류 처분  따위를  받은

사람이 교도소  안에  갇혀  있는 일 *晩覺: 늙어서야  지각이  남.  뒤늦게

깨달음  *還俗: 퇴속(退俗). 승려가 다시 俗人이 됨. 또는 그런 일 *木魚:

나무를 잉어 모양으로 만들어 매달고 佛事를 두드리는 기구. 魚鼓.

 

<2017.5.12, 이우식 지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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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장준하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취소되어야 한다>
김종필이 죽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수를 누리다 갔다.  법적 단죄도, 역사의 단죄도 없이 편히 살다 고이 눈을 감았다.  이 나라와 국민에게 지은 죄악이 얼만데, 그 죗값을 한 푼도 치루지 않고 갔다.  그래서 애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을 단 한명도 단죄하지 못해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위에 두텁디 두터운 한 켜의 부끄러운 역사가 또 쌓인다.

김종필의 죄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으나, 그는 4.19 민주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으며 이 나라에 군사독재라는 포악한 괴물을 풀어 온 나라를 수십년 피맺힌 고통의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포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으로서 공작정치, 정보정치를 펴며 지식인, 학생 등 각계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 탄압하며 불구로 만들거나 저승으로 보냈던 장본인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의 품격도 자존도 흥정대상으로 삼았던 용서받지 못할 자이다.

그와 박정희로 인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맹아기부터 훼손되고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해 아직도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반민주 세력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구부러지고 더러워지고 퇴행했는가?

그런 자의 죽음을 슬퍼한다면 살아가며 슬퍼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정부가 그런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돈다.  ‘국민’훈장이라니?  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하자는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더구나 민간인 최고훈장인 ‘무궁화장’이라니?  나라꽃 ‘무궁화’가 그에게 어울리는가?

일각에서는 ‘족적’과 ‘예우’를 말하는 모양이나 ‘족적’도 어떤 족적인지가 중요하고 예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고통속에 몰아넣은 그의 족적을 기려 예우를 하려면 차라리 타인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며 살다간 이름 없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족적을 기리고 예우하라.

우리 ‘국민’에게는 죽으면 모든 죄를 사해주려는 DNA가 있는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도 사후에 면죄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세상 사람이 본다면 굳이 선행을 하며 살려고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니 살아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추상같은 ‘한국인의 율법’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친일청산도 못했는데 반민주 청산도 못한다면 어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사거와 함께 그의 죄명이 다시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무한 스크롤 되는 마당에 그런 자에게 최고의 훈장을 준다는 건 과거에 그에 대항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키려 목숨 걸고 투쟁했던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국민을, 그리고 역사를 얕보는 행위다.  거기에 ‘촛불’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부디 한평생 ‘허업’을 좇으며 살았던 한명의 기회주의적 정치인의 사거에 정치적 저울질을 함으로써 이 정권의 정체성이 무언지,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그리고 역사의식이 어떤지 의심받을 짓 하지 말고,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들이 이 정권에 무엇을 원했는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펴서, 한눈팔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라.  ‘촛불’의 명령대로 강단있게 가라.

2018. 6. 25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김범태,  여인철

(어제 제가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입니다)

화, 2018/06/2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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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회원의 권리는 어디로 사라졌나?》

●민문연 회원은 단 10명?

 

우리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대강 1만3천여 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은 단 10명이라고 말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녀. 정신 나갔나봐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신 나간자의 말이 아니고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등록된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민문연의 총회회의록에서 놀랍게도 사실로 들어났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회의록.

회의일시: 2018년 3월 8일

회의장소: 민족문제연구소 3층

회원총수: 10명(함, 윤, 임. 조. 신. 김, 박, 박, 방, 이)

임원총수 : 5명 (함, 윤,………)

출석회원 : 9명( 함 . 윤. 임……….)

정관규정에 따라 위와 같이 법정수에 달하는 회원이 출석. 본 총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음을 밝힌 후 개회를 선언하고….라고 기록.

 

●민족문제연구소 임시총회회의록

회의일시: 2018년 4월 24일

회원총수: 10명(함, 윤, 임…..)

임원총수: 5명(함, 윤. 임 ….. )

출석회원: 10명

논의사항 : 감사선임.(최ㅇㅇ 감사)

법정수에 달해 본 임시총회가 적법하게 성립되었음을 …

 

회원 총수가 10명이고 적법하다고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못 들은 말이겠지 정신 나간 소리이길 바랐던 두려움이 정확한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민문연의 1만3천명의 회원은 어디로 가고 단지 10명만 회원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늘 회원이라고 말해오던 1만 3천여 회원, 우리는 무엇입니까?

회원이 아니라면 비회원? 후원회원? 유령? 그런데 유령들이 회비를 내다니 돈 나오는 “자동출금기’ 란 말 인가요? ㅇ이사님의 말씀은 나머지회회원은 모두 후원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비회원이나 후원회원도 다 의무와 권리를 가지지 않습니다. 후원회원이란 권리와 의무는 가지지 않고 다만 그 뜻에 찬동하여 후원금을 내는 회원을 말합니다. 권리가 없으니 총회에 참석해 주장이나 의견을 말할 수도 없고 어떤 요구나 이의도 제기할 수 없으며 선거권, 피선거권도 없으니 지부장, 운영위원장을 선거도 못하고,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회비를 내고 싶으면 내고 꼭 내야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관에는 후원회원이란 말이 없습니다.

 

1만3천여명이 비회원, 후원회원이라면 회비를 꼭 내야하는 의무가 없어 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만일 1만3천비회원(후원회원)이 회비를 안낸다면 민문연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30여명의 상근자 급여를 어떻게 지불할 것이며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비용, 운영비는 어떻게 쓸 수 있겠습니까?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 당당한 회원 10명이 다달이 1억여원을 내게해서 상근자 급여를 주고 경비를 쓰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빌딩 매입 시 빚진 22억도 회원이 갚아주어야 한다고 했으니(3.24.총회서 임소장) 그 회원10명이 갚아주시겠습까?

 

회원 10명이 불가능하다구요?

당연히 벅차서 불가능 하겠죠?

 

그걸 몰라서 회원 10명으로 축소요술을 부렸나요? 지금까지 민문연을 든든히 지켜온 주인을 밀쳐내고서 권리는 그 10명 회원이 독점하고 “돈내는 의무는 1만3천 비회원?(후원회원?)이 져라“ 이런 염치없는 말을 할려구요?

아니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네요

회원총수가 해가 다르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1997년엔 106명.

1999년도에는 100명이었다가

2003년 3월15일 총회 회의록에는 10명

2003년11월 임시총회:20명.

2018년 3월 8일 10명 정기총회

회원총수가 이렇게 정신없게 늘어났다 줄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정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믿었던 민문연이 이러하다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민문연을 지탱시키는 근본 뿌리

만문연이 운영되는 근본 힘은 무엇입니까? 돈 아닌가요?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민문연을 지탱시켜 왔습니다 든든하게 민문연을 떠받쳐 온 주인이요 근본 이었습니다 대체 왜 이 주인을 의무도 권리도 없는 비회원(후원회원)으로 강등시켰나요? 단 10명만 남겨두고.

민주주의 이 나라에서 가장 숭고한 뜻과 높은 가치를 자랑했던 민문연이 가장 비 민주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숨기고 기망해도 숭고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회비는 믿음이고 정성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매국을 청산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뜻이 숭고하고 정의로와 어느 단체보다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창립 때부터, 10년 20년을 꾸준히 기쁜 마음으로 회비를 내어왔고 역사박물관 건립 기금도 내 형편으로는 벅찬 금액이라 월부로 나누어 내면서도 가슴 뿌듯하고 기뻣습니다.

돈은 많다고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곧 정성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 벅차게 돈을 냈을 지라도 마냥 즐거운 것은 그만큼 만문연이 자랑스러웠고 정의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보람과 긍지가 배반과 배신으로 돌아와 아무 권리도 없는 후원회원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십 수년의 열정이 회원권리 박탈로 돌아올 줄이야.

 

●회원의 권리

고작 회비 1〜2만원 내고 무슨 권리를 얘기 하느냐고? 회원의 권리 의무는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등합니다 마치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나 적게 내는 사람이나 평등하게 투표권이 하나이듯이.

 

우리가 성의껏 회비를 내는 것은 자랑스런 민문연이 잘 되기를 바라며 낸 것이지 권리만을 위해서 낸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도 몰래 회원의 권리가 전부 박탈당하고 후원회원이나 비회원으로 강등시키 버렸다면 어느 회원이 분노하지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입회할 때 분명히 회원입회서(가입서) 썼습니다. 이사장님 귀하께. 그동암 회비를 내었으니 이사회 인준을 받은 권리 의무를 함께 가지는 민문연의 당연한 회원이었음을 떳떳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적인 절차도. 공적인 동의도 받지않고 비밀리에 회원의 자격을 박탈한 일이 정당한 일인가? 오랫동안 회원들을 속인 일이 정의로운 일인가요

회원의 권리는 단순 개인의 권리보다 전체의 권리가 참으로 중요힌 것입니다. 그것은 민문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기 때문입니다.

민문연이 부정 부폐하지 않도록 감시 제어하는 동력인 것입니다. ‘제어 받지 않는 권력은 부폐하기 쉽다’ 는 말을 상기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문연을 지탱시켜온 근본이요 주인이며 정당하도록 지킬 수 있는 최후 보루를 깡그리 없애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심히 두렵습니다. 회원이 이 사실을 일고 분노해 회비을 안내게 된다면 민문연이 지탱 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무서운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예상 못할 만큼 아둔한 것인가요 아니면 바보같은 회원들이니 영원히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민문연의 회원이 권리가 하나도 없는 후원회원이면 민문연음 주인 10명의 것이라 우리는 법적으로는 아무말도 못하는 외인이고 55억 빌당도 10명 이사님들이 주인이라 빌딩을 사고 팔아도 법적으로 권리 전무함으로 아무말도 못하는 유령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우민화 시켜 아무말도 못하게 해놓고 마음대로 끌고가는 경우와 똑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맑고 투명해야 할 단체.

정의로운 단체라면 그 경영도 정직하고 투명해야 한다 주인인 회원의 동의도 없이 정당한 민주적 절차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자격을 박탈하는 기망행위가 정의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회원을 헌 신짝처럼 취급하는데도 계속 믿음을 가지고 좋아라 할수 있을까요?

 

●이중정관/ 한 달에 두 번의 정기총회

 

지난 2018년 3월24일 정기총회는 미리 모든 회원에게 공고 되었고 숙대강당에서 전국에서 2백여명이 참석해 총회를 했다

당연히 공고도 했고 전국 각지서 200여명이 참석한 24일의 총회가, 적법하고 정당한 총회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지도관청에 총회회의록을 제출한 것은 3원 24일의 총회회의록이 아니고 3웡8일 9명이 모여한 회의록을 제출했다. 이건 사실과 배치되는 것이고 분명한 허위 사실을 보고한 허위보고요 확실항 범법행위다.

3월 8일 9명이 모여 명색이 정기총회라고 회의록까지 보고까지 해 놓고 16일 후에 또 정기총회를 연다고 공고를 하고 정기총회를 여는 것을 무슨 짓인가?. 한 달에 두 번의 정기총회라

 

이건 가짜 총회?! 회원을 속이는 면피성 가짜총회란 말인가?

 

그것도 모르고 총회에 참석하려고 지방에서도 기차로, 버스로 헐레벌떡 참석한 회원들을 이렇게 속여도 되는 것인가?

운영용 정관과 신고용 정관 두개의 정관을 두고 이리왔다 저리 갔다 이중 플레이를 하며 회원을 속여 온 것도 적법하고 정의로운 일입니까?

한나라에 두 개의 헌법이 있을 수 없듯이 정관도 하나여야 정상아닌가요 두 정관 어느것도 비정상입니다. 법적으로 신고도 하지않고 승인도 받지않은 운영정관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정관도 아니요 법젇으로 신고 했다는 신고용 정관도 총회의 인준도 받지 않은 것이 어떻게 정당한 정관인가요 불법이요 비정상적인 두개의 정관으로 이중 플레이를 한 것을 어떻게 정의롭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회원의 분노

정성스레 회비내고 모든 행사에 충실히 참석하던 회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믿었던 그 문민연이 감쪽같이 우리의 권리를 박탈해 버리고 기망해도 계속 믿고 사랑하리라 생각하는가? 열성껏 회비내고

권리와 의무를 지는 당연한 민문연의 회원이라 생각했던 회원들은 권리는 하나도 없이 돈만 내라는 후원회원으로 밀어낸 처사에 말 할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

후원회원이라면 아무 권리도 없는데 지부장은 무었이고 운영위원도 유령 일뿐이다 권리도 없는 휴원회원을 제명처분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참으로 코메디 같은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이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대체 누가 왜 이렇게 했을까

혹 다른 단체도 그렇게들 하니까 따라했다고 하거나 쉽고 돈이 적게 들어서 그랬다고 말할 것인가?

비록 다른 모임에 그런 경우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결코 따라 해선 안된다 왜냐면 민문연은 어느 단체보다도 정의로운 단체니까. 편리하게 쉽게 하려고 불법을 따라 해서도 절대로 안 된다 국법을 어긴 매국을 바로 잡으려는 민문연이 법을 어겨서야 되겠는가 이건 단순한 기망 사건이 아니라 확실한 범법행위다 지금 민문연의 이런 상황을 임종국선생님께서 보신다면 잘 했다고 하실까 통탄해하시며 얼마나 괴로워 하실지 가슴이 아프다

이제 우리는 속임, 비논리, 비정상, 비민주로 범벅이 된 민문연.

누가 왜 이렇게 했는지 밝혀 규명하고 불법 기망을 걷어내고 맑고 정명한 민문연이 되도록 반드시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착실히 회비내고 정성으로 도왔던 바보스런 회원일지라도 이제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12일자

이기자(서울동부지부)

통일염원시민회의 대표

 

 

 

 

금, 2018/10/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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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

Ids피해자입니다.

김성훈의 사기로 저희 가정은 한순간에 경제적 몰락만이 아니라

가정의 평화도 깨졌습니다. Ids사건으로 37명이 목숨을 잃으신걸로 압니다

피해자들에게 김성훈 파산은 또 하나의 깊은 절망입니다

사기꾼을보호하는 법과 사회에 솔직히 환멸까지도 느낍니다

민족연구소에서는 불의를 위해 싸워주시는 걸로 압니다

이 사건은 불의가 아니던가요

법을 모르는무지로 당하기만하는데 법을 아시는 변호사님께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주시면 안되는걸까요

파산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도 받고

희망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20여명의 투자자가 채권자라며 신청한 파산에 저는 동의한적이 없습니다

1만2천명의 피해자들의 의견을 다 수렴하시고

현재 진행중인 파산을 멈춰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김성훈 파산만큼은 막아야 피해자들이 한줄기 희망울 가지고

김성훈을 상대로 끝까지 싸워볼수 있지 않을까요?

화, 2017/12/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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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의 솔직한 대화를 하자고 한 그 슬로건을 폐지시키고 국민들과 소통하자고 합니다.

 

 

블로그 총방문자 4,107,166 명을 돌파하면서 네티즌 여러분들께 고합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7710

 

 

독립운동가의 묘지 표지석을 보고도 국가보훈처는 불인정을 하는가?

 

▲ 홍덕문 선생의 묘비를 살펴보는 일행

 

 

▲ 소요산 입구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 비각

 

동두천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중 고문으로 출소 직후 사망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천 신북면 계류리에서 발견됐다. 홍덕문 선생은 구한말 애국지사로 본명은 병준, 본관은 남양이며, 홍복영의 아들로 1864년(고종1년) 10월 1일 동두천시 걸산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000여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形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이런 선생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 1975년 동두천 노인회가 독립유공자추모회를 결성해 시민의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고, 1991년에는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이 건립되었다. 현재 비각은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서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홍덕문 선생의 묘지에 대한 사료가 없어 33년간 방치된 채 무연고 묘로 전락해 갔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20일 김정자 시의원, 이명수 향토학자, 동두천문화원 이계홍 사무국장 등과 함께 포천 신북면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찾아 나섰다. 이계홍 사무국장에 따르면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함된 임야가 경매에 의해 소유자가 변경되었고 해당 소유자가 사업장을 확장하려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순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판단이 들어 부랴부랴 묘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

 
물어물어 찾아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는 관리가 전혀 안된 듯 잡초와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또렷한 비문이 없다면 도저히 누구의 묘지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을 정도로 세월의 풍파를 홀로 맞이하고 있었다.
향토학자 이명수 씨는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속히 이장해야 하는데, 선생의 직계후손들이 거의남아 있지 않아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에서 이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후손된 도리를 망각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정자 시의원은 “이번에 묘지이장은 물론 홍덕문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홍덕문 선생의 얼을 되살리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기 위해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 애향단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덕문 선생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동두천시와 사회단체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천군에 거주하는 이희빈 씨는 홍덕문 선생과 대고모부(고모할아버지) 관계로, 홍덕문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매번 자료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희빈 씨는 “보훈처가 요구하는 증거를 찾으려면 국가기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가보훈처가 요구하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한편, 이장과 관련해 남양 홍씨 종문인 홍운섭 의원은 “근 시일 내에 종문회에 묘지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알리고 종문회 차원의 도움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으며, 비각 세우기를 주관했던 애향동지회 김승희 회장은 “애향동지회 측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 내부 중지를 모아 홍덕문 선생 유해를 동두천시로 이장하는데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뜻을 피력해 동두천시로의 유해 이장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홍승철기자([email protected])

 

 

양주.동두천신문& yangju.newsk.com 콘덴츠,정보 전재할 경우 출처를 명기하여 주십시오
Copyright by yangju.newsk.com

 

 

현충일 추념식 동영상입니다.

http://asx.kbs.co.kr/player.html?title=특집&url=1TV$20100606$special20100606_01_00_00_m&type=201&chkdate=20100607003324&kind=300_2week

 

위애서처럼 언론에서는 아니 국가에서는 이렇게 현충일이라고 추념식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추념사를 하셨는데

아래의 내용들은 어찌하여 그렇게 내동댕이 치고 계신지? 이 글을 보시는 전국민들께서 객관적인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이래도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가 있는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아 래 ———————

 

 

언제까지 이 치욕의 역사를 그렇게 방관만 하고 계시렵니까?

 

또다시 이 땅에서 이렇게 국회에 이렇게 일장기 걸리는 모습을 보시려고 그러십니까?

 

이 민족의 그 처절했던 과거를 잊으면 결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짜 유공자를 배출해 온 국가 보훈처
http://blog.daum.net/56dhyoon/15846428

윤덕호 감독 님께서
‘ 동두천시 명예가 걸린 독립투사 홍병준(덕문) 선생
서훈을 정부에서 인정하게 하는 일 ‘ 이라고 하시면서
과거의 그 오욕의 역사를 재조명하시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행여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이 억울한 사연을 꼬오옥 인지하시고
아래 동영상을 한 번 보십시오!
동영상 자료를 올립니다!

 

본 동영상 자료는 민족반역자 처단협회의 도움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1461

 

 

 

 

그 언제나 밝고 명랑한 국민들의 웃음과 희망을 보게 될려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경기북부일보 기사내용입니다.

http://www.kgbnews.kr/sub_read.html?uid=3518

 

 

동두천문화원에서는 지난 10일 10:30 구한말 애국지사인 홍덕문 묘(포천 신북면)를 화장하여 소요산입구 지사각에 안장하고 중요무형문화제104호 새남굿 주관으로 위령제를 지냈다.

홍덕문선생은 1864년 동두천 걸산동에서 출생, 구한말의 애국지사로 자는 덕문(德文),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복영(福永)의 아들로 일제시대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형독(刑毒)으로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한 애국지사 홍덕문선생의 빛난 얼을 되새겨 의열(義烈)의 감(感)을 후세에 지표로 삼기 위하여 시민의 성금으로 추모비를 동두천상봉암동 산32-1번지 세웠으며, 홍덕문 추모비는 1986.4. 28 동두천시 향토유적지 제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출처:동두천시청<콘덴츠는 해당기관의 홍보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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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hblee9362/11304072

 

 

 

 

http://blog.daum.net/hblee9362/11304073

 

 
http://blog.daum.net/hblee9362/11304074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위령제를 지낸다 천도제를 지낸다 하면서
행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렇게
이 분의 독립운동사실을 불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요산 관광 안내도에 홍덕문 선생 추모비 안내

동두천시 노인회에서 노인들께서 직접 목격하신 분들이 성금으로 세운 추모비 입니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그 분의 넋을 기리고자 사비를 털어 세운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등 파기시켜 버렸는지 기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데다가 감추었는지 알 수도 없는 기록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목격자의 진술을 무척 심도있게 다루면서 어떻게 그 때 목격하시고 그 고문을 당하시고 그렇게 결국 돌아가시게 된 그 분의 모습을 보신 분들이 그렇게 국가에 상정을 하였어도 아니라고 들어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니라고 우기는데 현충일을 맞이 한다고 행사를 기념한다고 공휴일로 지정하여 숭고한 애국애족을 기리자!

고, 하면서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의 비문도 거짓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동북공정을 하여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고구려의 옛 땅도 우리나라의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생각으로는 도저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동두천시 사적자료입니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적자료로 보관하고 있는 역사가 허위란 말입니까? 만약에 허위라면 이렇게 기록하고 관리해서는 아니될 것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에게 ” 거짓말 하라! ” 고, 가르치는 꼴이 될 것이니까요!

지금이라도 꼭 밝히십시오! 그 오욕의 역사를 말입니다!

그 일가붙이들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하다못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던 그 때에 그래도 이 민족의 등불이 되겟다고 그 일본의 만행을 보다못해그렇게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다가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던 댓가가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데도 아니라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동두천시에서는 향토문화유적 제 3 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유적이 국가보훈처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런데 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 분께서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기록하여 자랑하는 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버젓이 내세워서 붙여놓고 여기를 보라는 듯이 경기도 동두천시민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닌가 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동두천시민들께서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분의 독립운동 사실을 꼭 밝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요산 역에 광장에 그렇게 광고를 하실 수 없지요!

그 분의 집안과 일가붙이들은 일본놈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하였는데도

국가에서는 인정은 고사하고 그 분의 명예마져 회복시키려 하지 않는데

왜? 광고를 하면서 동두천시 자랑을 하십니까?

 

삼일절은 태극기가 부끄러운 국경일입니다.
홍덕문선생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추모서명을 받습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3119

토, 2018/01/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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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정부 위탁으로 고려대 연구팀이 작업중…2019년 완성본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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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이 소녀상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현재까지 발견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국내외 공문서와 언론 기사, 피해자들이 남긴 기록을 망라해 통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정부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4일 학계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2012년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팀(책임자 정태헌 교수)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사료 DB화 사업’을 위탁했으며 현재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각종 문서와 유물, 연구 성과, 보도된 기사 등 총 8만여 건을 조사·수집하고서 이들 자료에 유형·생산자·생산 시기·소재지·소장자 등 항목을 부여해 목록을 작성해왔다.

연구팀은 현재 자료 목록 중 중복된 것들을 추려 내고 오류를 수정하는 검수 작업을 진행 중이며, 2019년에는 완성된 DB가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들을 통합해 DB화하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가부는 DB가 완성되면 이를 웹사이트에 공개해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학술·교육 등 목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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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자료 DB를 위한 과정 (서울=연합뉴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팀(책임자 정태헌 교수)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사료 데이터베이스(DB)화 사업’을 위해 분류한 자료들의 모습. 연구팀은 8만여 건의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목록을 작성해왔다고 밝혔다. 2017.12.24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DB화가 완료되면 학술 역량 확대는 물론 교육이나 시민단체 활동 등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키워드로 검색이 가능한 DB의 특성상 필요한 자료를 찾기 쉬워지고, 정보의 종류나 출처도 빨리 파악할 수 있다.

통합 DB 구축 외에도 연구팀은 중요 공문서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키워드를 추출했으며 일부 중요 문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해석·번역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자료의 순서나 오기, 누락 등 기존 공개된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박한용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는 관련 자료를 보유한 국내외 단체와 연구자들을 꾸준히 만나 설득한 끝에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DB화라는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여러 관련 단체들과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7-12-24>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자료 한눈에…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한다

※관련기사

☞매일경제: 여가부, 일본군 위안부 자료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한다

화, 2017/12/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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