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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바깥 세상을 변호합니다_김종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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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바깥 세상을 변호합니다_김종휘 변호사

익명 (미확인) | 목, 2017/06/29- 20:56

표지

한강의 지류인 중랑천이 흘러가는 성동교 부근. 햇살이 하얗게 들이치는 근사한 사무실이 김종휘 변호사의 사무실이다. 문화계 불공정행위를 조력하다 민변에 가입하고, 가입 1년 만에 신인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김종휘 변호사. 만화와 웹툰을 추천해주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이 사람, 김종휘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부산 소년이 서울에 가기까지

누구나 그를 만나보면 말씨에서 짐작할 수 있듯, 김종휘 변호사의 고향은 부산이다. 25살에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쭉 부산에서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17살부터 일을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각종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친구와 동업으로 음식 장사도 해봤다. 당시 부산에서 유행하던 ‘한판 삼겹살’을 벤치마킹해서 해물탕을 팔았다. “다시는 동업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사소한 것 하나도 예민해지게 되니 친구사이에 괜히 오해가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21살에 검정고시를 보고, 22살에 방위산업체 근무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방송통신대를 다니다 서울로 올라와 학사편입을 했다. 26살 때 일이었다. “중앙동아리에서 신입생 모집하면서 학생회관 같은 데서 신입생 붙잡고 막 홍보하고 그러잖아요? 혹시 신입생처럼 봐줄까 기대했는데, 지나가는 다른 사람은 붙잡아도 저는 안 붙잡더라고요(웃음). 얼굴에서 확 표가 났나봐요.”

남과 다른 방식으로 대학에 간 후로는 모아놓은 돈과 고시 반 장학금으로 생활했다. “고시 반에 입실하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다 공부를 잘 하면 학비가 공짜잖아요.” 어릴 때부터 생활을 해결하는데 뛰어들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법 공부의 계기가 됐다. “나중에 보니 ‘충분히 형사 처벌 대상인데도 내가 몰라서 당했구나’ 싶은 일이 많더라고요. 집주인의 횡포에 당하기도 하고.” 좀 더 알았다면 내 권리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뭐든 배워야겠구나.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기간에 집중해서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법을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서재 안의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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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불공정 행위에 집중하게 된 것을 김종휘 변호사 스스로는 “우연히 연이 닿았다”고 말하지만, 따지고 들면 그냥 ‘어쩌다보니’는 아닌 듯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보통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종휘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 만화와 판타지 소설은 안 읽어본 게 없고, 지금도 TV 드라마 기다리듯 연재 웹툰을 요일별로 챙겨 읽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게 좋았다. 김종휘 변호사의 형도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형이 사다놓은 책을 같이 읽었다. 베란다는 형의 서재였다. 만화책이 꽉꽉 차 있었다. ‘슬램덩크’는 김종휘 변호사가 열 번 넘게 읽은 ‘인생만화’다. 처음 접한 후로 완결이 날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창작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요. 솔직히 공부는 앉아서 집중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창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지?’ 하는 경외심이 기본적으로 드는 거죠.”

서재 밖에서 필요한 것은 변호사

로이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예능과 드라마에 삽입되는 오리지널 스코어(original score, 작품을 위해 새롭게 작곡되는 음악, 특히 가사가 없는 연주곡)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의 사장 김한조는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들에게 저작 권리를 영구적으로 양도할 것을 요구하는 불공정 계약을 강요했다. 만들어진 음악은 회사가 헐값에 가져갔고, 작곡가들에게는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돈만 남았다. 저작권자의 명의까지 회사가 통째로 가져갔으니 작곡가들에게는 경력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가 만든 음악이 어떤 작품에 삽입되는지도 모르는 채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소위 ‘유령작곡가’ 사건이다.

변호사 개업 직후 이 ‘유령작곡가’ 사건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김종휘 변호사는 문화계 내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작은 페이스북이었다. 손아람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가 손 작가와 고등학교 동문이라며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특별히 소명의식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쪽 분들은 어려움에 처해있고 저는 막 개업한 상태라 시간이 많았어요.”

음악은 작품을 완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남은 히치콕의 <싸이코>를 떠올려보자. 신경을 긁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공포는 영화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영화 <죠스>를 생각하면 그 음악부터 생각이 나잖아요? 그게 음악이 중요한 이유인 거죠. 이러한 콘텐츠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받고 있으니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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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변호사는 로이엔터테인먼트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이와 별개로 형사 고소도 진행했다. “형사 고소 건은 검사가 바뀌기 전에는 거의 결론 나기 직전인 상태였는데, 담당 검사가 바뀌면서 정체되고 있어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도 이제야 신고서를 검토하고 있고요.” 사건이 이렇게 느릿하게 처리되는 사이 로이엔터테인먼트가 수많은 반대와 문제제기에도 JTBC 드라마 <송곳>의 음악을 맡으면서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창작자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아야 좋은 문화콘텐츠가 더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미천하게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히 로이엔터테인먼트에서 한 달 100만 원을 받으며 이름도 빼앗긴 채 음악을 만들던 김인영 작곡가는 지금 KBS 드라마의 음악감독을 하고 있다. “김한조 사장은 원래 예능에 삽입되는 음악을 하다 드라마에 손을 뻗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였어요. 다행히 드라마 쪽 일은 완전히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서울시를 통해 레진코믹스와 만화가 간의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는데도 참여했다. 레진코믹스는 작가와 계약을 맺을 때 2차 저작권에 해당하는 해외 판권까지 한꺼번에 양도받는 식으로 계약을 해왔다. 또 주간 연재되는 웹툰에 원고료는 한 달 단위로 지급하면서 4회 연재되는 달이나 5회 연재되는 달이나 똑같은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도 문제였다. 서울시가 레진코믹스 측에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외 판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김종휘 변호사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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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는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서재 안의 세상에 경탄했던 부산 소년은 자라서 이렇게 서재 밖의 창작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됐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유령작곡가’ 사건은 김종휘 변호사가 민변에 가입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제가 연수원 때 인권법학회 회장을 했어요. 학회를 같이 했던 분들이 민변에 많이 가입했었죠. 저는 ‘언젠가는 가입하겠지만,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미뤄왔었고요.” 유령작곡가 사건 대응 회의에서 김종보 변호사와 강신하 변호사를 만났고,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입을 미뤄왔던 민변에도 가입했다. “이 사건을 맡으면서 ‘혼자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입법운동 차원으로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생경제위원회 공정경제팀에서 한경수 변호사님이 강의하시는 공정거래법 강의도 듣고, 많이 배우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어요,”

공정경제팀에서 김종휘 변호사는 문화콘텐츠 쪽 이슈를 주로 분석하고 알리는 일을 맡는다. 팀 간사도 맡았다. “사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팀 활동을 하면서 여러 변호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공정경제팀은 유난히 관여하는 분야가 넓은 팀이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바가 크다.

김종휘 변호사가 최근에 관심을 갖는 사례는 임상심리사들의 노동 문제다. 임상심리사들은 수련과정을 3년 거쳐야 자격증이 나온다. 그 3년간의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의 문제가 많다. 임상심리사의 근무를 관리 감독하는 ‘슈퍼바이저’가 사실상 임상심리사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태인데, 초과근무를 해도 초과근무수당도 안 나오고, 오히려 성희롱 같은 문제에 노출되어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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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웠다. 상담을 해준다고 해도 연락하는 사람은 적고, 자세히 듣고 싶어 연락처를 남겨둔 걸 보고 전화해오는 사람은 더 적었다. 최근에는 ‘이슈화 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실태조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 문제에 관심 갖는 기자가 있어서 실태조사 등을 준비하려고 해요. 민변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있으니까.(웃음) 일단 ‘절차적으로는 이런 순서로 진행해야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죠.”

민변의 신인상신입모범회원

민변에선 흔한 이야기라 진부할지도 모르겠다. 김종휘 변호사는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 변호사가 됐고, 앞으로도 연수원 수료할 때 했던 ‘돈만 쫓지는 말자’는 다짐을 지켜가고 싶다. 연수원에서 인권법학회에 들어갔던 것도 ‘내가 어떤 부분에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김종휘 변호사에게 민변 활동은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유령작곡가 사건으로 지난해 민변 가입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김종휘 변호사는 하반기에는 민변에서 급하게 꾸렸던 ‘미르·K스포츠 재단 대응팀’에서도 활약했다. 뉴스가 한창 쏟아져 나오는 틈바구니에서 일을 하려니, 새로운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이미 써놓은 고소장 초안을 고쳐야 했단다. “이 팀이 ‘박근혜정권퇴진특위’에 자연스럽게 흡수된 뒤에는 다른 분들보다 열심히 활동하지 못했어요. 매일매일 들어오는 정보를 습득하기도 바빴어요.” 그러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폭로됐다. 김기춘, 조윤선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 특검에 제출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날이 특검이 대치동 사무실에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어요.”

“블랙리스트 사건을 맡으면서 ‘아, 이런 게 진짜 이뤄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블랙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도 진술 과정에서 비슷하게 털어놨다. 농담 삼아 “아, 나 찍힌 거 아냐?” 하긴 했지만, ‘내가 뭔가 부족했던 게 있었겠지’라고 생각했던 문화예술인들이 “혹시 블랙리스트 때문에 떨어진 거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블랙리스트라고 의심하기보다 ‘위에서 싫어한다’ 차원으로 이해했던 거 같아요. 문체부 직원들이 와서 ‘지원을 포기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까. 그래서 ‘이 정권 하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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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김종휘 변호사는 올해 총회에서 신인모범회원상을 수상했다. 수상의 기쁨보다 ‘나보다 열심히 하시는 회원도 많은데 내가 타도 되는 걸까’하는 망설임이 앞섰다. “신인모범회원상 진짜 부담스러웠어요. 이수연 간사님이 총회 참석 요청했을 때 신혼이라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수상자이기 때문에 꼭 오셔야 한다’고 설득하시더라고요.” 원래 총회 참석이 어려웠지만, 당일치기로 짧게 참석해 상을 타고 돌아갔다.

“이런 상을 주시면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겠죠. 그렇게 알고 더 열심히 하려고요. 다음 총회 때는 꼭 뒷풀이까지 참석하려고 해요. 이번에는 상만 받고 가서 좀 아쉬웠거든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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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0623

금, 2015/06/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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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10월 월례회 후기 (2016. 10. 29.)

서울숲 그리고 청계광장 촛불집회

-전홍근 회원

 

한 여름의 서울숲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숲이 주는 여유로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만,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는 이 맘 때의 서울숲은 한결 여유로운 느낌을 줍니다.

서울숲이 막 개장한 직후 방문했을 때는 어린 묘목과 채 자라지 못한 나무들이 많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나무들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았고, 상당히 풍성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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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2개 정도는 찾을 수 있는 양의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공지와 함께 보물찾기를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저를 비롯하여 몇몇 회원들이 4~5개의 보물을 찾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것의 상당수는 다른 어린이 집에서 숨겨놓은 그러나 아이들이 찾지 못해 버려진 보물이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0분여 간 열심히 보물찾기를 한 후 보물을 많이 찾은 사람들이 늦게 오거나 보물을 적게 찾은 사람들과 보물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작은 것이지만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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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숲해설사님과 함께 서울숲을 돌아다니며 숲 해설을 들었는데, 나무들의 형태, 나무 잎사귀의 모양 및 색깔 어느 하나 허투로 만들어 진 것이 없이 제각각의 사연과 치열한 진화의 산물인 것을 다시 한 번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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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붉어져 단풍이 들어버린 나무들의 잎사귀를 보고 있자니 저게 저절로 붉어졌을 리 없다는 시인의 시구가 생각났습니다.

대추 한 알나태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 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무릇, 나뭇잎사귀 하나, 대추 한 알조차 저절로 붉어지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의 순리에 순응하며 생명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고,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서울숲을 떠나 청계광장으로 향하였습니다.

2016. 10. 29.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첫 번째 대규모 주말집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이미 가득찬 인파들.. 7살이 된 어린 제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세상과 소통하고 이 땅에 반듯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를 열망하며 모였고, 이들의 마음이 곧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제 아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왜 화가 났어?”.. 대통령이 잘못하기 때문이지…. 제 아들 “대통령 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놀지도 못하고 힘들다” 이렇게 살짝 투덜대기는 했지만 함께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어느 때 보다 즐겁고 특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국민들의 민의에 따라 반듯한 민주주의가 이 땅에 다시 한 번 서기를, 그 과정에서 민변이 어느 때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국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면 후기를 마칩니다.

화, 2016/11/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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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문제연구위원회 활동소식

1. 9회 평화교류회,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으로!!

2007년 10월,  설레임과 수줍은 인사로 시작했던 평화교류회가 매년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선사하며 어느덧 그 아홉 번째 가을, 아홉 번째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는 매년 교류회를 통해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보듬고, 한국과 오키나와의 평화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이어 오며 돈독한 연대의 정을 쌓아왔습니다. 또한 민변 소속 변호사의 징계청구에 대한 연대 항의성명 발표 및 한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 대한 연대 항의성명 발표까지 이어지며 보다 질높은 일상적 연대로의 도약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미군1   <사진 : 이시가키 섬 풍경>

이번 9회 평화교류회는 오키나와 최남서단에 위치한 ‘이시카키’ 라는 아름다운 섬에서 진행되며, 2015년  동북아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과  SOFA 민사청구권을 중심으로 열띤 발제와 토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교류회 장소인 이사가키섬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의 방어진지 역할을 했던 곳인만큼 섬 곳곳에 자리한 전쟁의 상흔과 ‘위안소’ 등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와 고민을 전달해 줄 것으로 기대되구요, 방문지 중 하나인 타케토미 섬은 아오이 유우 주연의 “아오이 유우의 편지”(원제 : ニライカナイからの手紙) 촬영지로 하얀모래와 빨간지붕, 잿빛돌담이 신비로운 곳이라 벌써부터 참가단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울러 9월 미군위 월례회에서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하고 제주대학교 SSK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영신 박사님을 초청하여 “오키나와 현대사”에 대한 특강을 들을 예정이니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도 요청드립니다.
 

2. 탄저균 반입, 그 후….

치명적인 생물무기인 탄저균이 살아있는 채로 오산 미공군기지에 반입된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미 국방부는 ‘미국 국방부의 의도하지 않은 살아있는 탄저균 포자 배달’이라는 제목의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조사 결과의 내용을 요약하면, 탄저균이 왜 살아있었는지와 관련하여 그 ‘근본원인(Root Cause)’를 밝힐 수 없었으며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완벽한 탄저균의 비활성화 처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미 국방부는 미국 내에 탄저균을 통제하기 위한 일관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의 조사 결과 공개 직후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쥬피터 프로그램 등 한미간의 생물무기 방어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백승주 국방부 차관 역시 북의 생물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험과 연습을 필요하며 이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탄저균 비활성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와 같은 한미 군당국의 입장과 태도는 많은 국민들에게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1일, 한미 당국은 탄저균 반입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한・미 합동실무단(Joint Working Group : JWG)’을 구성하고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된 오산 미공군기지에 대한 현장조사까지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조사가 이루어진지 20여일이 지났으나 아직도 조사 결과와 관련한 아무런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군2

이에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에서는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 규탄 시민사회대책회의 및 시민 8704명을 대리하여 주한미군 사령관과 주한 미7공군(오산기지)사령관에 대해 국민 고발장을 제출하여 사건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변 내에 구성된 탄저균 대응팀과 함께 생물무기금지협약(Biological Weapons Convention) 관련 모니터링 및 국내법 모니터링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님들과 함께 실험중단 및 실험실 폐쇄 가처분, 형사고소를 추진하고 있으며, 올 가을 국정감사를 적극 활용하여 탄저균 반입․실험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계기를 마련코자 합니다. 
 

화, 2015/08/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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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함께 하는 세상을 꿈꿔요"

 

아카데미 느티나무 자원활동가 최경아님

 

참여연대 자원활동가_최경아

아카데미 느티나무 자원활동가 최경아님 ⓒ참여연대

 

같은 공간에 앉아 있었으면서 서로를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박영민’이란 이름이 남자가 주로 쓰는 이름이라 인터뷰어가 남자일 것이라 생각했던 탓도 있고, 인터뷰이가 외국에서 공부를 오래한 사람이라 해서 나이가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한 탓도 있었다. 다행히 전화통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봤고, 어색한 기류를 헤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A. 저는 특별할 게 없어요. 그냥, 지금은 주부예요. 많은 걸 고민하고 있는 주부죠. (웃음)

 

Q. 주로 어떤 걸 고민하고 있나
A. 가장 큰 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에요. 최근까지 공부를 했어요. (독일에서 하셨다고) 네, 독일에서 공부를 했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논문 작업을 나름대로 했는데, 아무래도 지도 교수님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여러 문제들이 생겨서 지금은 중단한 상태에요. 앞으로 다시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할지, 한국에서 마무리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제 2의 삶을 살지 고민하고 있어요.

한국에는 2012년에 왔어요. 언제부턴가 공부하면서 시민단체나, 운동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어요. 물론 생각은 독일에서부터 했어요.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요. 저 같은 경우에는 뭐, 좋게 얘기하면 반듯하게? 나쁘게 얘기하면 정말 재미없게 살아온 사람 중에 하나인데, 딱 틀 안에서 교육 잘 받고 사회에서 정해준 대로 그렇게 규격화되어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사실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사회구조 안에 감춰져 있는 이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아주 늦게 시작한 거죠. 대학 때도 별 생각 없이 다녔고요(웃음). 독일에 가서도 저에게 주어진 일들, 그곳의 삶에 적응하기 바빴고, 살아남는 일이 급급했어요.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들은 독일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외부에서 한국을 봤을 때 속상할 때도 있었고, 불편하고 안타깝기도 했어요. 그러다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을 했고,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살다보니 사회의 어두운 모습들이 더 보이게 되었어요. 공부를 하면서도 고민은 있었지만 당면한 과제들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휴식기를 갖게 되니 고민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저의 삶을 다시 정돈하고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 참여연대도 와보게 됐고, 이런 저런 활동들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직 저를 점검해보는 시간인 것 같아요. 어떤 방향,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 수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고. 재밌어요. 완전히 저한테 새로운 세계니까요.

 

Q. 밖에 나가보니 한국이 보이게 되는 그런 케이스인 것 같네요.
A. 네. 그리고 제가 외국에 가니까 엄청난 소수자가 되더라고요. 외국인, 이방인, ‘너 뭐냐’ 이렇게 되는 거죠. 외국인들은 한국이란 나라에 특별히 관심도 없고, 내가 정말 소수자일 수 있다는 경험. 또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공부도 잠깐 쉬게 된 경험도 영향을 미쳤어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고 인생의 힘든 순간들이 올 수 있구나, 나만 안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 참여연대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A. 오다가다 많이 보긴 했어요. 참여연대 근처에 올 일이 많았어요.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나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죠. 세계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고요. 시민활동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게 있었죠. 그래서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하겠다고 마음먹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내적 갈등도 있었고요. 그런데 와보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Q.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는지.
A. 저는 대학교 학부생일 때, 약간 과도기에 있던 학번이었어요. 제 학번을 앞뒤로 해서 학내에서 집회를 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1,2학년 때 까지만 해도 가끔 있었는데 말예요. 그래서 그런지 저보다 한참 앞선 선배들과는 괴리감 같은 것이 있었죠. 그 당시에 운동하는 선배들을 봤을 때, 첫 번째로는 무서웠어요. 근엄하고. 늘 우수에 차있거나 까칠하고. 시니컬하고. ‘너는 인생을 잘못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어요. 그리고 같이 놀면 나를 집회에 데려갈 것만 같았고요(웃음). 물론 대학 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내가 그래도 대학생인데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은 있었죠. 한편으로는 지금 저렇게 거리에 나가는 것보다 내가 성공하고 힘을 가진 사람이 돼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졌을 때 목소리를 내는 게 더 효과적일 거야, 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운동했던 선배들이 나이를 먹고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한때 참 뜨거웠던 선배도 운동에 회의를 가지고 떠나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다 편한 거 좋아하는 것만 같고...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참여연대에 와서 보니까 간사님들 너무 좋으세요. 참, 저래서 무슨 투쟁을 하시나!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사람이 다르지 않구나, 사람의 감수성이라는 건 비슷비슷하구나,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일 뿐이고 생각 하나하나에 가치가 있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고민에서 더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고요.

 

Q. 물론 이런 활동이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생각을 하는 게 옳은 삶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른 삶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돌아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사회문제에 뛰어든 사람보다 생각이 더 탄탄하고 고민이 깊다는 생각이 든다.
A. 어떻게 보면 ‘돌아왔다’는 느낌이 저한테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어요. 오랫동안 이런 활동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도 더 조심스러워지고, 그렇기 때문에 깊어졌어요. 어렵게 선택한 길이기에 앞으로 어떤 삶을 살더라고 지금 고민하고 있는 가치의 방향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실제로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물론 주변에서 우려는 많지만요.

 

Q.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에 자원활동이 도움이 많이 되는가.
A. 굉장히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일단 시민운동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을 많이 낮춰줬다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간사님들을 뵙고 그 분들 활동하시는 것들을 보면서 심리적인 장벽이 많이 낮아졌어요. 또 원래 공부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사실 공부의 범위를 점점 좁혀가는 연습을 하며 살았는데요, 자원활동하면서 여러 강의도 듣고 공부를 핑계로 미뤄왔던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읽고 하면서 생각하는 범위가 늘어나고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나 되게 멍청하다’ 이런 생각들 되게 많이 했거든요(웃음). 좁은 것밖에 모르고, 좁혀 나간 그 분야도 완벽하게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어휴(웃음)

 

Q. 마지막으로 꿈은 무엇인가? 막연해도 좋다.
A. 자원활동을 시작하면서 사진하고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멘트를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뭐라고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꾼다.’ 이런 식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그게 제 꿈인 것 같아요. 내가 뭘 하든,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든. 소수자로, 소외된 사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인터뷰 말미에 ‘영민 씨는 무얼 하는 사람이냐’라는 질문을 하며 서로의 활동과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혀 다른 환경과 생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서로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고 응원했다. 이제 막 자원활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많은 상처나 문제들을 걱정하고 또 겁먹었지만 그 때가 오더라도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이유와 방향을 잊지 않으려한다는 그의 다짐에 필자 역시 굉장한 힘을 얻었다. 인터뷰 중 ‘나이가 너무 많아서’라는 말을 종종 하며 민망해했는데, 걱정 마시라. 여전히 누구보다 빛나는 청춘으로 충분히 다가오니. 

 

작성 자원활동가 박영민 (활동가를 위해 활동하고 싶은 대학생)

수, 2015/10/2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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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3월 월례회 ‘탄캐스트’ 공개방송 후기

이두규 회원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 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부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마음을 졸이면서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말. 수많은 사람들이 듣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노력 했던 그 말. 한국 사회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게 만든 그 말. 2017년 3월 10일은 그 많았던 문장들을 뒤로 하고 저 짧은 세 문장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 같습니다.photo_2017-03-30_17-01-06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를 열어내던 그 날 이후로 6개월 동안 시민들은 광장에서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상황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제도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제도 내에서 해결되었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아직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살고있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를 또 끼워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민변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퇴진 특위에서 노력해주신 변호사님들, 탄캐스트, 탄캐스트의 진행자 김준우 변호사님과 오민애 변호사님, 집회를 개근하신 사무총장 강문대 변호사님, 직접 대통령 탄핵소추 대리인단에서 전 대통령을 겨눈 창이 되신 탁경국 변호사님이 계셨습니다. 저마다 계신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다한 민변의 1000명 넘는 회원님들과 간사님들이 계셨습니다. 탄핵을 만들어낸 것은 그 모든 분들이었습니다.photo_2017-03-30_16-59-54

월례회는 탄핵을 축하하고, 탄핵을 이뤄낸 시민들의 힘을 경외하며, 그 안에 민변이 있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특히 민변이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탄캐스트가 공개방송으로 이루어져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주셨던 점, 마지막 탄캐스트의 마지막 게스트가 이번 탄핵의 주역들이었던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님과 노승일씨였다는 점이 시민 속의 민변, 시민들과 함께 하는 민변을 보여주었습니다.

탄캐스트 마지막 방송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탁경국 변호사님께서는 탄핵소추인 대리인단에서 활동하셨음에도 모든 공을 광장으로 넘기는 겸양을 보여주셨고, 강문대 변호사님께서는 탄핵 결정이 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담담하게 앞으로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김덕진 사무국장님께서는 집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랬음에도 퇴진행동이 현재 얼마나 많은 채무를 안고 있는지 말씀하셨고 노승일씨께서는 자신이 가진 자료들을 공개했던 이유는 누군가는 이 일을 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동은 어떤 마음가짐에서 나오는지, 그 마음들이 어떤 행동을 만드는지 들으며 이 수많은 노력들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photo_2017-03-30_17-00-52

이어진 뒤풀이에서는 조금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용민 변호사님과 노승일씨가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고 김덕진 사무국장님의 민변에 대한 애정(“내가 변호사 술 사주는 사람으로 유명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준우 변호사님께서 탄캐스트를 만들며 느꼈던 고충도 들었습니다. 문득 ‘민변의 변호사님들이 어떻게 자라오셨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실 예정인지 알려주는 그림의 한 조각을 보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hoto_2017-03-30_16-59-43

민변이라는 이름은 저에게 늘 부모님의 등과 같습니다. 제가 따라가야 할, 언젠가는 그 길의 끝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멀리 내딛어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아름답고 넓은 길입니다. 그래서 모든 계절과 모든 걸음을 함께 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부모님의 등이라는 건 왠지 언제나 가까이서 볼 기회가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의 등을 가까이서 보는 건 뭉클하고 따뜻한 경험입니다. 월례회는 저에게 그런 따뜻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민변의 이름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저도 선배님들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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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3/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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