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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4-1화] [정치있슈] 정치인 팬덤, “네 삶을 바꿀 사람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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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4-1화] [정치있슈] 정치인 팬덤, “네 삶을 바꿀 사람 나야 나!”

익명 (미확인) | 월, 2017/06/19- 12:00

‘문팬’, ‘박사모’, ‘유심초’… 거대해진 정치인 팬덤, 그 정체를 파헤칩니다.
‘노사모’가 정치인 팬덤 문화에 시초?? 왜 ‘문빠’는 있는데 ‘박빠’는 없을까??
종교적 현상과도 같은 정치인 팬덤??
참여의 민주주의가 팬덤 문화를 어떻게 확장시켰나!

서복경 선생님이 진행하고, [정치있슈] 제작진 김우준PD, 송유정PD, 이지성PD, 조재원PD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지금 들어보시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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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참여연대)
  • 고정출연 : 정태인 소장(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 이슈손님 : 황진미(의사,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트위터매거진] 새가 날아든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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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 45회 /  팟캐스트의 스타, 영화평론가 황진미와 유쾌한 수다

 

참팟 45회는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본업은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로 문화평론과 팟캐스트 진행으로 유명한 황진미 씨입니다. 그의 트위터 프로필에는 ‘영화평론가, 강정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팟캐스트 새가 날아든다 진행자, 박정수의 아내, 매이엄마, 애견인, 코미디 애호가, 공공도서관 이용자, 저질체력, 육식동물, 커피 중독자, 2급 길치’라는 다양한 수식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일과 사랑, 그리고 한국사회의 개혁을 위해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쓴소리 까지, 지금 들어보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2011292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fg6alI

* 유튜브로 듣기 : https://youtu.be/Rj08b789D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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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7/0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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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참여연대)
  • 고정출연 : 한상희 교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 이슈손님 : 장유식 변호사(행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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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 21회 / 테러방지법? 국정원 날개법일 뿐!

 

지난 11월 13일에 있었던 파리 테러 발생후, 국회에서 다시금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느닷없이 "복면 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는 발언으로 마스크와 후드가 복면으로, 시위참가자를 IS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다가는 '집시법'에 '얼굴을 가리고 참가하면 안된다'는 웃지 못할 조항까지 들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테러방지법' 제정안이 담고 있는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들여다 보면 '테러의 규정에 대한 자의적 해석', '국정원의 권한 강화', '쉽게 국민 감찰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사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인해 테러 대상국이 될수 있다고 해도 국정원의 주된 활동방향은 내국인 사찰이 아니라 해외 정보 수집입니다. 쓸데 없이 선거 개입, 정치 사찰, 국민 사찰 하는 인력을 그들이 말하는 '대테러 정보' 수집에 쏟는다면 충분히 지금의 국정원으로도 테러방지가 가능 할 것입니다. 

 

테러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미국과 유럽의 서방 국가들이 '법'이 없어서 테러를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그렇게 국민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쓸데 없는 비밀주의에 묻혀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국정원을 제 위치로 돌리는 일 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참여연대 팟캐스트에서 '국정원 날개법'일 뿐인 테러방지법의 숨겨진 속셈을 확인하세요.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833322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CAQVx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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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11/2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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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된장녀, 김치녀, 맘충’이라는 낙인 | 여성혐오

 

된장녀, 김치녀, 맘충.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목격되고, 미디어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일상영역의 용어로도 진출했다. 일상을 즐기는 여대생은 ‘된장녀’로, 육아부담을 혼자 짊어지게 된 엄마들은 ‘맘충’으로, 나아가 한국 여성의 전반이 뭉뚱그려져 ‘김치녀’로 치환되는 시대인 셈이다. 한 매체에서는 2015년을 여성혐오 폭발의 원년이라 칭하기도 했다. (△ 메갈리안···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시사인, 2015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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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연합뉴스)

 

여성혐오적인 단어들, 맥락들이 익숙해질 법도 했던 한국사회에 최근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가 등장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현재 존재하는 현상들 중 어디까지가 여성혐오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발굴해낸다. ‘김치녀’가 ‘김치남’으로, ‘맘충’이 ‘애비충’으로 뒤집히는 순간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전혀 새로운 담론의 장이 열렸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여성주의에 대한 담론이 오가고 있다.

‘메갈리아’는 정치적이다. 집단적으로 혐오에 대항하고, 논쟁을 만들어냈으며, 이제는 여성 문제를 다루는 국회의원에게 후원금까지 보낸다. (△ 메갈리안들, 경찰청장에 ‘소라넷’ 엄격한 수사 촉구 진선미 의원에 십시일반 후원 1000만 원, 여성신문, 2015년 11월 26일) 20대가 만드는 정치 팟캐스트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가 여성혐오와 메갈리아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작진은 약자에게 낙인을 찍으며 개인을 억압하는 것은 정치의 불능이라고 진단한다. 문제를 개인이나 한 집단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회가 나아지게 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정치의 영역에서 약자에 대한 문제를 끌어안아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성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혐오’ 시리즈의 2편인 ‘지금, 여기의 여성혐오’ 방송은 여성혐오의 언어가 함의한 정치적 효과와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한국정치가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방송에는 젠더정치연구소 이진옥 대표,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손희정 연구위원, 남자 대학생 단청이 함께 했다.

 

여성혐오 언어의 변천사

여성혐오에 대한 표현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손희정 연구위원은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가 가시화된 계기를 1999년 군가산점제 폐지 논란에서 찾는다. 이후로 2005년 개똥녀, 2006년 된장녀, 2007년 군삼녀, 2009년 루저녀 등의 단어가 해마다 등장했다. 이 단어들은 하나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자가 그랬다’며 여성 일반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이 단어들은 ‘김치녀’로 모아진다. 특정 발언이나 특정 행동을 하는 여성들을 향했던 혐오가 이제는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로 번진 것이다.

‘○○녀’와는 다른 맥락의 단어들이 있다. ‘맘충’과 ‘이대녀’가 그렇다. ‘맘충’은 자기 자식만 귀하게 여기고 민폐를 서슴지 않는 엄마들을 일컫는 말이다. 방송은 ‘맘충’ 너머의 사회를 짚어본다. 육아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며 아이들을 맡길 공적 대안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맘충’이라는 말은 이러한 사회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엄마들의 잘못으로 떠넘긴다.

‘이대녀’는 조금 더 복잡하다. 혐오와 선망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진행자인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했다.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시사인, 2015년 9월 17일) 통계청의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5년을 더해 보면 대략적인 현재의 인구를 확인할 수 있는데, 20~34세 구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47만 명 더 많다. 성비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연애·결혼을 하려면 남성들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이 혐오로 나타난다. 또한 서 교수는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을 고용시장에서의 경쟁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도 혐오감정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대녀’는 이런 사회구조의 상징과도 같은 언어다.

여성혐오의 언어들을 정확하게 뒤집어서 사용하는 곳이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이다. 미러링의 방식을 주장하는 메갈리아는 이제껏 존재했던 여성혐오적 언어와 명제의 주어만 바꾸어서 사용한다. ‘김치녀’를 ‘김치남’으로 바꾸는 식이다. ‘김치녀’는 얼마든지 허용했던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는 ‘김치남’류의 단어들을 금지시켰고 페이스북에서는 16만 명이 좋아요를 누른 ‘김치녀’ 페이지는 건재하지만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페이지는 삭제됐다. 단청은 이제껏 자신들(남성)이 써왔던 단어, 행동들이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의 여파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을 꿰뚫는 능력담론

한국의 남성들이 여성혐오 담론에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유인은 무엇일까. 서 교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 담론이라고 답한다. 능력 담론은 사회구조적으로 발생시키는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한다. 능력담론 아래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약자가 된다. 능력이 없는데 소비를 하는(것으로 짐작되는) 여성, 능력이 없는(것으로 짐작되는)데 좋은 곳으로 시집가고 싶은 여자가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좋은 혼자리가 아닌 남성들도 쉽게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또한 능력담론은 개인을 원자화시킨다. 불평등에 직면한 개인들에게 능력담론은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노오력’을 하라고 강요한다. 능력담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들은 무임승차자들이며 혐오의 대상이다. 이진옥 대표는 문제를 공동체의 영역에서 풀지 않고 약자에게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정치의 불능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서 교수는 이에 “한국 사회의 현재는 열악한 노동조건, 해체되어버린 공동체, 건강한 정치의 목소리를 표출할 공간의 부재가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답한다.

여성 문제를 비롯한 약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정치가 좋아져야 한다는 점에 진행자와 게스트 모두가 동의했다. 또한 어떻게 해야 정치가 나아질지, 차별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고민했다. 이진옥 대표는 여성이 정치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사회에서 차별과 약자, 혐오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청은 메갈리아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http://www.podbbang.com/ch/9418)

글 | 정치발전소 팟캐스트 팀원 신승민, 이은빈

 

기사 링크: http://goo.gl/hkxb5x

 

월, 2015/11/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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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강령은 정당의 정체성이자 지향을 보여주는 문서입니다.
정당이 어떤 정당인지는 그 강령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작년 정치발전소의 ‘여성과 정치’ 책읽기 모임에서 유럽 정당들의 강령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 당시 공부했던 자료들을 올립니다.

스웨덴 사민당 강령은 박원석 전 국회의원실에서 번역한 자료라고 합니다.
다른 자료들은 검색을 통해 번역된 자료를 구한 것이고요.

좋은 자료를 볼 수 있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네델란드 사회당 강령

독일 사민당 강령

새로운_프랑스_사회당_강령

스웨덴 사민당 강령(원문,번역문)

스웨덴 사민당 청년위원회 강령(원문,번역문)

스웨덴 사민당 청년위원회 정관(원문,번역문)

월, 2017/03/0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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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오후 11_17_00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민주주의 좀먹는 ‘콜센터 정치’
[조성주의 생각] 민원의 정치

관료 조직과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짧은 행정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민원(民願)’이었다.

업무의 담당 공무원들에게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은 특이사항 없이 오로지 매뉴얼대로 일이 처리되며 돌아가기를 바라는 관료 조직에게 추가로 신경 쓰고 고민해야 할 과제들을 만든다. 특히 최근에는 개별 관료 조직이나 공무원들이 시민들을 판매자가 고객을 대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까지 강조되다보니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더욱더 힘들고 그만큼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행정 기관이나 공공 기관을 가더라도 1층에는 ‘민원실’이 있고 행정 기관들은 민원 서비스를 더 친절하고 간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혹자들은 그런 서비스의 친절함과 상세함을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행정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민원’이라는 말만큼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각자 행정 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임금 계산이 잘못되어 체불 임금이 발생하였고 계약 기간 만료와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가 겹쳐서 복잡한 문제로 비화되었다. 담당 부서와 공무원은 1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잡한 임금 문제와 계약 기간 문제 등을 일일이 찾아보고 응대하느라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차라리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존에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으로 안내하여 해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냐”는 항의를 받아야 했다.

결국 이 노동자들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거친 항의를 반복하는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했고 수개월 동안 담당 부서는 이 문제를 두고 씨름하며 노동자들과 싸우다가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채 몇몇 개인들이 알아서 행정 소송을 진행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행정 조직도 노동자들도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서로 극심한 감정과 비용의 손해만 입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처음부터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협상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처한 개별적 상황들은 모두 다르지만 조직으로 통합되는 순간 이 개별적 상황들은 자연스레 정리된다. 행정 조직 역시 개인들을 상대하며 일일이 설명을 반복하고 민원 처리를 하는 것보다 노동조합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단순화하고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결사의 자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인권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앞선 사례처럼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시민들이 조직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조직화되면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걱정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결사하고 조직함으로서 개인으로 있는 순간에 발생하는 갈등의 수와 강도를 줄이고 그 비용을 적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주의의 엔진’은 ‘갈등’이다. 한 사회의 주요한 갈등들이 확대되고 또 통합되면서 그 갈등들을 조율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고 또 시민성도 더 좋아진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민원’이라는 말이 ‘갈등’과 비슷하게 쓰이지만 그 지향하는 바와 결과가 분명히 다르다. ‘갈등’은 비슷한 문제에 처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그 힘을 통해서 사회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민원’이란 철저하게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권력의 공정함과 선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봉건영주나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선의를 베풀 것을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시민으로서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동정심이나 특별한 호의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 많은 동정심을 자아낼 수 있는 특별한 처지의 개인이나 개인으로도 충분히 유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명망이 있는 지식인, 유명인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더 많이 반영되고 별다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은 소외된다.

물론 개별의 민원으로 존재할 때 보다 큰 규모의 갈등으로 문제가 확대될 때 들어가는 비용이나 부담도 있게 마련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면 이 갈등 비용을 국가가 대신 해결해주었다. 그것은 대개 공권력을 동원하여 집단으로 결사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거나 개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갈등을 다루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갈등을 다루는 비용은 곧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비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행정은 과거의 권위주의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방식은 도외시한다. 여전히 시민들이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라 ‘민원인’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쏟아지는 민원에 대한 대안으로 찾아낸 것은 시장의 방식이다.

언제부턴가 ‘민원’에 대한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이 바로 수많은 ‘콜센터’들이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부여받은 책임의 방기이자 민주주의의 시장화와도 같은 것이다. 시민들에게 위임받은 권력이 ‘결사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갈등의 사회적 조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친절한 서비스와 감정 노동을 강요하며 책임들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현실은 아닐까?


▲ 정부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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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7/2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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