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당황스러움이라고 할까요?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여주었던 문재인 후보가 맞나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임 일주일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지난 9년간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기념곡으로 제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인천공항을 방문해 좌고우면 없이 비정규직을 단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패한 검찰에 대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백미는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족을 껴안고 모두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이었습니다.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검찰 개혁 등은 재정을 투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겠지만, 대통령이 결심하면 추가적인 재원이 들지 않고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어떤 복지국가로 만들어갈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정치의 핵심은 그 사회가 생산한 잉여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다양한 이념적 지향을 5개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놓고 치열하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취약계층에게 공적 복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후보부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후보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 후보들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4년 동안 입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들은 마땅히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수반되는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제시된 대통령 후보들이 지향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상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GDP 대비 사회지출을 OECD 평균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후보들 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속도를 어떻게 할지는 후보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는 공적 사회복지의 지출을 매년 70조 가까이 늘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사회복지지출을 확대를 통해 만들어가야 할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적 복지의 양을 확대한다는 것이 곧 한국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GDP 대비 사회지출은 27.0%로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25.1%보다 높고, 스웨덴의 27.1%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그리스의 지내계수는 0.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데 반해 스웨덴은 0.27, 노르웨이는 0.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빈곤율은 15%인데, 반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빈곤율은 8%, 9%에 불과합니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이 10.4%에 불과한 한국의 지니계수가 0.31이고, 빈곤율이 1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 복지지출의 확대가 반드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지출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지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복지국가는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적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노인 빈곤 문제가 워낙 심각하고,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수당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금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고, 이점에서는 모든 후보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만큼이나 확대된 공적 복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계하고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것을 옮기면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정당도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유럽의 사민당도 아닙니다. 굳이 민주당의 이념적·정치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제도권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한 복지정책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후보였던 유승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조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여건을 고려해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유승민 후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중도적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게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 시민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던 노무현 정부의 재림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게 좌파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슴을 말이라고 해서도, 말을 사슴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기능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한 ‘진보 어용 지식인’이란 지식인과 시민사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어용 지식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는 지식인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에 진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진보 정권을 보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지식인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불의한 전쟁에 파병한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약화시킨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려는 정권에 대한 보수의 공격에 맞서 지식인, 시민사회와 정권이 함께 할 수 있지만, 민주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를 위협하고, 훼손한다면 설령 좌파 정부라 하더라고 우리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슴은 사슴이고, 말은 말입니다.
1) 본 글은 한국사회복지학 제69권에 실린 편집인의 글 "어떤 기대를 해야 할까?"를 기초로 수정·보완해 작성한 글임
지난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기여자’ 378명이 한국에 입국하였다. 선진국에 걸맞은 책임 있는 대응이라며, 대체적으로 환영하고 있고 감격해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그러나 바로 며칠 전의 국내 미군기지에 ‘난민’ 수용 가능성 기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우려와 반대를 나타냈다. 혐오표현과 차별언어가 난무했다.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인데도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주민에게는 성과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기여도나 생산성이 기대되는 이주민에게는 너그러워지는 편이나, 인도주의적 조치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고 불관용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아일란이라는 시리아 난민아동이 해변에서 사망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지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시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인간의 패러독스는 이주민의 사회권 보장 이슈에서도 드러난다. 사회보장협정을 통해 내가 외국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이주민이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은 껄끄러워 한다. 한국 국적자와 이주민 모두 코로나19를 겪고 있고, 차별과 배제 위험으로 이주민의 재난피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1~4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재난지원금 대상을 국민으로 경계 짓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5차 재난지원금의 대상에서 200만 외국인 중 170만 명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재외국민이 외국에서 이러한 대우를 받는다면, 재난에 국적이 어디 있냐며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는 이주민이 약 4~5%로 소위 ‘단일민족사회’에서 벗어난 지 꽤 되었고, 앞으로도 초연결사회구조에서 이주민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권은 인간의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 속에서 ‘국민’이라는 경계 내에서 논의되어 온 편이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는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복지체제에서 사회권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이주민 권리에 대한 논의가 주로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이주아동, 북한이탈주민 등 이주민의 세부집단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번 호에서는 이주민의 사회권을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체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김규찬 교수는 복지국가에서 이주민의 사회권이 보장되기 위해 필요한 논리와 구조를 살펴보고,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권의 발전 과제를 원론적 차원에서 논의하였다. 다음으로는 김기태 박사와 곽윤경 박사가 노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보험이 이주민의 사회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고, 사회보험의 차별적ㆍ배제적 요소와 정책과제는 무엇인지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옥녀 교수는 이주민의 사회서비스 이용권 현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이주민의 세부집단에 편중된 사회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해결과제를 제안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복지계에서 관련 논의에 이주민을 배제해 왔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복지국가 및 사회권 논의와 사회보장정책 및 서비스 대상에 이주민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주민이 시민으로서 생산, 소비, 납세 등을 이행하고 있는데 사회권 보장체계에서 배제되어 있는 현실의 부당함을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한, 이주민도 한국사회구조가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주민도 증명할 필요 없는 사회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를 멈추고 이들에게도 사회권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지난해 6월 필자는 본지에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의 전망과 과제에 대한 짧은 글을 쓴 바 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소득보장 부문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정부 출범 후 제시한 국정과제를 비교하였다. 굳이 요약하자면 지난 정부에 비해 새로울 것 없이, 팬데믹 시기 소득 위기를 타개할 청사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현 정부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우려였다. 어느덧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최근까지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일부 제도조정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윤석열 정부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정부는 국정과제 발표한 지 1년 넘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정부 씽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정책기획위원회가 폐지된 상태에서 정부의 공식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성과는 제한적이다. 이 가운데 올해 초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에 출범했으니 이번 복지부 업무보고는 사실상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윤석열 정부만의 고유한 세부 플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내 소득보장 분야의 진행 상황을 복지부 업무보고를 통해 점검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앞서 개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와 칼럼, 정부보고서에서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라는 개념을 활용하지만,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득보장제도에 포괄되는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합의는 없다. 통상 소득보장은 통상 질병, 실업, 사고 등으로 인한 소득의 중단 혹은 상실이 발생할 경우 시장에서의 일차분배를 재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일부 혹은 그 기능을 일컫는다. 따라서 소득을 보장하는 정형화된 제도나 정책프로그램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기보다 다양한 노동-경제사회정책들이 소득을 정책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과 성과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소득보장‘제도’를 사회보장(통상 개념적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의 총체)과 혼용하여 쓰기도 하고, 연금과 각종 수당 및 현금성 급여(대표적으로 생계급여)만을 소득보장‘제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시중의 사회보장 관련 교과서에서도 김태성 서울대 교수의 기여와 소득/자산조사 여부를 활용한 소득보장제도 분류법 정도가 소개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또한 개념적 엄밀성이나 역사성, 학계의 통상적 인용 등을 가진 설명은 아니다(이에 따르면 다양한 보편적 수당제도, 사회보험, 공공부조가 이에 해당된다). 필자도 작년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를 전망하면서 개념적 엄밀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금 정도를 소득보장으로 ‘퉁’쳤음을 고백한다. 향후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의 이론적 개념화, 세부 구성, 범위, 타 제도와의 관계 등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소득보장’을 어떤 제도로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많은 문서들이 있지만 그나마 가장 확실한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정부가 법률에 근거하여 작성한 ‘사회보장기본계획’이 아닐까 한다. 2014년 발표한 1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소득보장은 국민연금, 사적연금, 그리고 기초연금(구 기초노령연금)으로 달성되는 것으로 보았고 주로 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 관계정책과 일부 농어촌 주민들 대상 소득보조 사업이 언급되는 수준에서 논의되었다. 2019년 2차 기본계획에서는 소득보장을 노후소득보장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으로 더 세분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노후소득보장은 공적연금, 퇴직연금, 기초연금, 생계급여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보험, EITC,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자활급여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편찬한 보고서에서 소득보장분야를 ‘취약계층대상 소득보장’(생계급여, 자활급여, 장애인연금 및 장애(아동)수당)과 ‘노후소득보장체계’(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역연금, 퇴직연금, 농지연금)로 소득보장의 범위를 재조정하였다(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 분야 분석으로 이관). 다만 여기서 일부 재정사업들(출산크레딧, 실업크레딧, 농어업인 보험료 지원, 공무원 및 군인연금의 국가보전금 등)도 소득보장에 포함하였다. 확고하다고 볼 수 없고 다소 불명료한 점은 있지만 필자는 최대한 정부의 이러한 분류법에 기초하여 출범 2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제도의 성과와 과제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소득보장 관련 국정과제의 성과는 고사하고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문제점은 없었는지, 향후 어떤 구체적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2023년 복지부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살펴보자.
일단 그간의 추진 성과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작년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문재인 정부 기간 새로운 소득보장제도(아동수당 도입,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노인 및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를 도입하고 대상 및 보장 수준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시장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복지부는 소득보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요 정책성과로 약자 복지 기반 마련과 생애주기별 취약 대상맞춤 돌봄을 확대하였고,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 코로나19 대응, 바이오헬스 글로벌 도약 가능성 확인을 제시하였다. 다른 많은 성과가 있어도 굳이 넣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복지부가 밝힌 윤석열 정부 보건복지 주요 성과는 이게 전부다. 그나마 작년 9월 안상훈 사회수석이 발표하여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약자복지’도 긴급복지 및 자립수당 확대,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및 시간제보육개편, 노인재택의료센터 도입, 발달장애인돌봄대책 마련, 부모급여 도입 정도다. 이 가운데 소득보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양육수당을 확대하여 만 2세 미만 보호자에 매월 최대 70만원을 추가로 지급(단 보육료 바우처만큼 감액)하는 부모급여 도입 정도인데, 이마저도 아동수당법이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어 실제 집행이 될지, 언제 어느 정도 될지는 미지수다. 역대 최대 인상폭(5.47%)이라고 홍보한 기준중위소득도 사실상 그간 기재부 반대로 매번 무산됐던 것을 이번 정부 들어 ‘21년 합의한 로드맵대로 이행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상병수당 도입논의는 ‘시범사업 중’(25년 6월까지 예정)이라는 말 하나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사항이 없다. 생계급여 선정기준도 현행 기준중위소득 30%를 35%로 상향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고, 재산기준 완화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개선도 올해 8월에 나올 예정인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4~‘26)’에 반영하겠다는 정도의 계획을 제시한 정도다. 실업급여와 육아휴직 급여확대에 대해서는 일부 논의가 진행되었을 뿐 검토단계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특히 저소득계층의 소득 위기를 어떻게 보호했는지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성과조차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계획과 검토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기초연금을 최대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국정과제는 매년 물가상승률만 반영해도 몇 년 안에 달성될 것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임기 말까지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가장 왕성한(?) 소득보장 개선 노력은 국민연금개혁 논의로 모아질 것으로 보이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논의가 지배적이다. 현 정부의 연금개혁에는 기금(돈) 운영만 있을 뿐 정작 국민의 안정적 노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신의 연금개혁의지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혔으나, 국정과제에서는 국회 설치로 선회하여 논란의 중심에서 피해가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에 현재 4월 종료 예정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일부 조정안이 확대 보도되는 등 논란만 확산되었을 뿐 정작 연금개혁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론화위 활동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최근 기업범죄 전문 검사 출신을 연기금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노동계 기금위원을 특별한 사유 없이 해촉하였고, 찬반토론을 무시하고 안건을 상정하여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을 줄이고 이를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겠다며 표결처리를 강행하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 합병사건을 계기로 2020년 이후 기금의 거버넌스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단 3년만에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프랑스가 엄청난 대중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을 강행한 바를 배워 우리도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연금개혁을 달성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비교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는 정년을 연장하여 수급개시연령을 늦추자는 것으로, 사실은 수급개시연령이 아니라 정년연장, 즉 보다 오래 일하라는 정부의 개혁안을 대중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실질은퇴연령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지만, 근속연수는 가장 짧은 국가이다. 젊을 때부터 다닌 안정적 직장에서 빨리 퇴직하면서 부득이 노인이 되어서 저임금 일이나마 놓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당해연도에 걷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당해에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연금보험료 28%를 걷어 소득대체율 60%(우리는 각각 9%, 42%)의 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의 연금개혁을 보고 우리도 개혁하자는 것은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더 하라는 걸 보고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의 음식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기만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연금기금의 기본 목적은 가입자의 안정적인 노후연금 지급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지속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적정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재정운용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와 같은 인식의 흐름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적정 노후에 대한 고려 없이 연기금 고갈과 재정안정화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할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연금의 제도적 기반이 훼손되거나 불안하다고 인식될수록 기금운용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지려고 욕망하는 기재부 등 재정권력과 민간 금융권은 반사이익을 얻는다. 실제 민간 금융회사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일부 연구집단들은 지속적으로 연기금의 고갈을 강조하고 국민연금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도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것을 보면, 정부와 재정안정화론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활용 가치가 낮아 소위 경제 전체에 사중손실을 유발하는 수괴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연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논의는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이 아니라 재정안정이 목적이라고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하지만 연기금 및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기금투자수익률이나 보험료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구구조와 노동시장의 문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전세계 가장 낮은 출생율과 그에 따른 빠른 속도의 고령화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기금의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의 역할을 방관한 채 기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재정 관료들과 재정안정화론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국민연금제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기금고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연금논의가 세대갈등으로 번져가는 지금의 상황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도 어김없이 기금재정재계산이 발표되었고 상당한 사회적 논란만 가중된 채 뚜렷한 해법이나 논의의 진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연금과 노동시장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일부 양분삼아 집권에 성공한 현 정부는 정작 논의를 국회로 넘긴 채 위원회의 민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자기 사람 심기에 바쁜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글은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불안한 삶을 어떻게 얼마나 보호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쓴 글이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글은 성과의 과오를 판단하고 더 나은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 성과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평가할 내용이 부족하다. 무엇인가를 했다면 그걸 평가하면 될 일이지만, 뭔가를 별로 하지 않은 상태라면 평가도 궁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 초기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최대의 우려는 무능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대통령 개인의 정치 및 국정운영 경험 부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정권 자체의 무관심이 문제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약자복지라는 이상한 용어를 내세웠지만 정작 긴급복지, 자립수당, 기준중위소득에서 소폭 인상하고 기존 양육수당을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어느 정부 때나 그랬지만 정권이 바뀌면 취약계층들은 일말의 희망을 갖는다. 특히 소득과 건강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기가구라면 그러한 희망만이 거의 유력한 탈출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희망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그나마 미약한 계획만이 있을 뿐이다. 남은 집권 기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과 밥을 굶는 아이, 단칸방에서 맞는 고독사, 병원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 경제적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뼈아픈 사례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휩쓴 가계의 불안은 과거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던 자녀살해, 가족살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모든 정권이 동일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유사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하여, 정부가 국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데 능력이 부족할 수는 있다. 이는 다른 많은 정책자원들을 활용하면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관심은 다른 문제다. 부디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기를, 그리하여 남은 집권기간 동안 말잔치로 끝나지 않고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는 국정을 펼치기 바란다.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복지동향』 지난 2022년 6월호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한 진단과 평가를 다루었다. 여기서 남기철 교수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경우, 통상 과거 정부의 정책은 폐기되거나 새로운 브랜드로 덮여지는 일이 많지만 사회서비스 정책에 있어서 새 정부의 국정과제는 사실상 큰 변화가 없음을 지적하였다(남기철, 2022). 급증하는 돌봄·복지 수요에 대응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하고, 사회서비스 산업 발전을 통해 복지와 고용성장의 선순환을 구현한다는 정책방향은 2000년대 중반 사회서비스 정책이 도입된 이후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시각으로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별화된 철학과 비전이 있다. 공공성 강화와 좋은 공공일자리 확충을 추진하였던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를 현금급여의 대체재 그리고 민간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와 동일하다 볼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예외적 노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사회서비스 정책의 산업화 방향은 흔들림 없이 견고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새 정부 출범 1년의 시점에서 우리는 사회서비스 정책의 솔직한 속내를 보게 되었다. 사회서비스 혁신이란 절실한 수요의 변방에서 산업적 진흥을 위한 것이고, 공공의 규제는 최소화되어야 자율적 시장이 형성되며, 노인·아동·장애인의 ‘돌봄을 받을 권리’에는 관심이 없다.
이 글에서는 폭증하는 돌봄 수요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보장이 아니라 신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로적 왜곡이 점철된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새 정부의 사회서비스 국정과제는 민간 주도 사회서비스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혁신이란 산업화를 통한 ‘복지·돌봄 서비스 고도화’이며, 지속가능이란 ‘개인의 부담 능력에 따른 소비’를 의미한다. 국정과제로는 규모화와 다변화를 통한 수요·공급의 확대, 혁신 기반 구축, 종사자 처우 개선의 세 가지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추진 방향과 동일하다. 문재인 정부 사회서비스원으로 대표되는 공공성 강화는 열악한 서비스 질로 수요가 낮고, 고용안정으로 혁신이 저해되며,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일자리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할 뿐이라는 기존 비판에 따른 것이다. 물론 지난 정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모델의 실패가 뼈아프다. 그러나 새 정부의 사회서비스 전략은 문제를 제기한 영역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사회서비스의 범주와 목적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성 강화는 한국형 돌봄국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보편적 돌봄의 보장성 강화와 돌봄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주로 다루었던 반면, 새 정부의 혁신과 고도화 방향은 사회서비스 산업 육성을 염두에 두고 상품성이 있는 서비스 창출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막대한 재정투입에도 미충족 수요가 광범위한 노인요양과 장애인돌봄 등 보편적 사회서비스 몸통은 보지 않고,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정책과의 주무사업인 전자바우처 사회서비스 사업이 혁신을 대표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한 동상이몽 : 보편적 공공서비스 vs 수요자 중심 민간서비스
사회서비스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이전까지 사회서비스는 취약계층 대상 생활시설과 이용시설 복지서비스에 한정되었으나, 복지국가 패러다임이 개인의 역량을 지원하는 이른바 사회투자국가로 선회하면서 보편적 사회정책이 되었다. 2006년 정부는 국가의 장기종합전략으로 『비전 2030』을 선포하면서 5대 전략 중 성장동력확충 전략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를, 그리고 사회복지선진화 전략으로 보육, 요양, 방과후 돌봄, 주거복지 확충을 선언하였다. 후속 조치로 91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하여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을 발족시켰으며, 사회적기업, 노인장기요양,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이 제도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사회서비스 분야의 재정지출 확대를 원하지 않았다. 반면 복지의 체감도와 효율성에 주목하였고, 주요 개선과제로 찾아가는 서비스, 통합전산망 운영, 시장 중심 서비스 창출을 제시하였다. 사회서비스는 시장기능을 강화하여 민간기관이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보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었으며 이러한 성격에 부합한 제도인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에 주목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 정책은 10대 유망사회서비스 발굴 및 지원이다. 아동정서발달서비스, 노인맞춤형 운동처방서비스, 정신장애인 토탈케어서비스 등 사회서비스 모델을 발굴하고 바우처 방식으로 구매력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확대되었다. 이 사업은 사회서비스 비활성화 이유가 사회서비스 미개발, 영세한 공급기관, 인지도 있는 브랜드 부족 문제로 인식하였고, 따라서 2011년 예산 253억 원을 시작으로 1,353억 원을 10대 유망사회서비스 기관에 집중 지원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사회서비스도 산업 육성에 초점이 주어졌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고용·복지는 보육에 대한 국가책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전달체계 효율성과 민간자원 활성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하였으나, 사회서비스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와 연결되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일자리 창출방안’을 발표하였고, 구체적으로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R&D, 세제혜택, 정책자금 지원을 사회서비스 부문에 적용하여 시장형 일자리를 확충하고 민간진출 사업으로 육성하고자 하였다.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제공기관의 규모화·전문화 추진,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의 창업·육성, 고객관리시스템 개발, 유망 사회서비스 R&D 투자 등이다. 무엇보다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진입규제 완화를 위해 바우처 사업을 지정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고,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률을 달리하여 가격규제를 완화하고, 사회서비스 이용자 인정기준 완화로 유망 사회서비스 수요를 개발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는 양적 확충보다는 수요자 측면에서의 보장성 강화와 공급자 측면에서의 공적 책임성 강화를 제시하였다. 재정만 국가가 부담하고 민간에 맡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개선 없이는 아무리 보장성을 높인다 해도 국민 체감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범부처 사회서비스 발전 방향’하에 6대 추진 과제로 생애주기별·분야별 사회서비스 확충, 지역 사회서비스 균형 발전,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 및 내실화,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통합적 사회서비스 제공 체계 구축,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의 사회권 실현을 제시하였다(관계부처합동, 2018). 더 나아가 지역사회 통합 돌봄, 아동 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 대책 등 포괄적 서비스 제공을 통해 서비스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노무현 정부와 이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보장성 강화로 보편적 돌봄을 제도화한 방향은 동일하였으나 방식에서는 시장형 일자리 창출과 전달체계의 국가책임 강화라는 측면에서 다른 경로를 형성하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보장성 확대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직접 부담하는 방식으로, 일명 미국식 사회서비스 상품 개발에만 관심을 가졌다. 정작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은 외면하는 방식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무상보육을 통해 돌봄제도 확충에 기여하였으나 여전히 사회서비스는 고부가가치 상품시장이라는 전략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로를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 보건복지부의 산업부화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44번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서비스 고도화’를 제시하였고, 목표는 ‘다양한 주체’가 ‘질 높은 서비스’를 ‘누구에게나’ 이용하게 하는 보편적 복지·돌봄 체계이다. 새 정부의 사회서비스 방향은 2022년 8월과 2023년 1월 보건복지부의 업무계획에 다음과 같이 구체화되었다. 이른바 사회서비스 고도화란 이제껏 없던 소비시장을 개발하고, 산업 육성을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는 사회서비스원을 사회서비스진흥기관으로 바꾸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전부처의 산업부화’가 충실히 반영된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산업화는 박근혜 정부의 사회서비스 전략과 동일하다. 용어도 그대로이다. 업무계획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으로 “복지-고용-성장” 선순환을 이루고, 그 근거로 사회서비스 산업의 높은 고용유발계수를 제시하고 있다. 과거 반복된 사회서비스 시장창출 실패에 대한 분석이나 새로운 정책 수단도 없다. 첫째, 정부는 사회서비스 수요창출을 위해 사회서비스 신상품을 개발·공급하고, 이용가격은 제공기관이 탄력적으로 조정함과 동시에 본인부담도 차등화하고, 제공기관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서비스를 통합하여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 예시로는 가사서비스, 병원동행서비스, 심리상담 등을 추가하고, 융합으로 보육·아이돌봄+놀이교육·예체능+청년사회서비스사업단 등 개별사업을 함께 제공할 수 있게 하여 보편적 사회서비스 시장 형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둘째, 양질의 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영세한 민간 기관을 규모화·조직화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소셜프랜차이즈나 사회적협동조합 전환, 기업·종교계의 사회공헌, 사회적기업과의 파트너십 등이 제시되었다. 혁신펀드(140억 원)를 조성하여 영세한 기관의 규모화를 지원하고, 시장진입의 규제를 완화하여 사회서비스 기술개발(스마트 R&D)과 고령친화산업, 돌봄로봇, 보조기기, 스마트서비스 등 첨단기술이 사회서비스 상품에 연계되도록 하였다. 셋째, 지원·육성을 위한 제도로 「사회서비스지원및진흥법안」 을 제정하고 사회서비스원을 공공서비스 제공기관이 아닌 산업진흥기관으로 역할을 바꾼다. 이 밖에 사회서비스 보장성 강화로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 확대, 보호종료아동 자립준비, 영케어러 가족돌봄, 고립은둔청년 고독사 대응도 포함되었으나, 이는 기존 종합계획의 극히 일부 실행 또는 사회서비스 예산으로 보면 매우 미미한 주변적 사업이다. 세부 내용은 박근혜 정부 당시 사회서비스 발전포럼에서 다룬 바 있고, 또한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 육성 방안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인구고령화로 인한 돌봄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사회서비스 제공체계에서 개인화, 통합화, 특히 코로나19 이후 긴급한 공공돌봄 대응 요구가 가중되어 왔는데, 처방은 과거로 회귀하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회서비스
지난 동안 사회서비스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발굴 및 확충, 사회서비스 시장 형성 및 산업화, 사회서비스 품질 제고를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면, 이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개념 오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동안 사회서비스 개념은 광범위하고 모호하여 어떤 사무가 있고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보장기관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정책의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다. 사회서비스는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에 명시된 사회보장급여이지만, 노인·영유아·아동·장애인·저소득층 등 다양한 대상을 중심으로 개별 정책 사업을 아우르고 있어, 각 사업부처가 사회서비스의 전반적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정책 방향의 혼선을 가져왔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전략에 있어서 산업화가 주요 의제가 되는 이유는 돌봄국가의 서비스보장 체계에 총체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유망사회서비스를 발굴하는 전자바우처 사업이 과대 대표되기 때문이다. 2022년 예산기준 사회서비스 정책의 주요 세부사업은 노인, 아동, 장애인 돌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인장기요양보험 그리고 영유아보육, 그리고 장애인활동지원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면서 이 사업이 사회서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22년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예산은 13조 3,467억 원(보험료 수입 8조 8,010억 원, 정부지원금 4조 4,967억 원) 규모로 성장하였고(국민건강보험공단, 2022), 영유아 무상보육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4조 8,908억 원(영유아보육료 지원 3조 2,028억 원, 보육교직원 인건비 운영 지원 1조 6,880억 원) 규모를 차지하며, 장애인활동지원은 1조 7406억 원을 차지한다(보건복지부, 2022). 이용자 수는 2021년 기준 노인장기요양 급여이용 수급자수는 90만 명, 영유아보육 이용자 수는 118만 명, 그리고 장애인활동지원이 10만 명이다. 반면 8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의 예산 규모는 2009년 3,228억 원에서 2018년 1조 986억 원, 그리고 2021년에는 2조 7,744억원으로 증가하였으나, 이 사업의 절대 부분을 차지하는 장애인활동지원을 제외하면 전자바우처 사업의 예산은 6천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유망사회서비스 개발을 추진하는 지역자율형사회서비스투자사업은 2022년 예산 2,100억 원과 1,770억 원(균특)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사회서비스 고도화가 신규 수요 창출이고 상품시장을 창출한다는 영역에서 정부예산 규모는 아주 미미하다. 정부의 수요지원 없이 이용자가 부담하는 민간 시장의 자율적 창출을 기대할 뿐이다. 정작 사회서비스 몸통의 혁신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분야의 수요는 공공시장의 규모, 즉 사회서비스 보장성에 종속되어 있다. 노인·영유아·장애인 돌봄의 사회서비스는 정부가 이용자 지원 방식으로 급여를 지출하는 공공시장의 사회서비스다. 따라서 수요 창출의 중심은 주요 사회서비스 제도의 보장성과 전달체계다. 주요 사회서비스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급여자격 및 급여수준을 정하는 제도로서 시장이 형성되며, 전달체계는 주로 지자체 관리하에 민간 개인 시설들에 의해 제공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보장성에 대한 확대 없이 그리고 공급기관의 구조변화 노력 없이 사회서비스 시장의 고도화는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사회서비스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보편적 욕구를 가지고 있어, 본인부담의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보조금 없이 창출되지 않았던 수요가 갑자기 형성될 리 만무하다, 정부의 지불보조 없이도 산업적 수익성이 있었다면 영리 기업이 이미 진출하였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현재와 같이 요양과 보육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 산업이 형성된 것은 각각 장기요양보험과 무상보육 정책의 결과이지, 산업화 추진의 결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산업화는 일자리 창출의 방법이기는 하나,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상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며, 스스로 사회서비스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 추진 동력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화라는 공급 방법론은 사회서비스 제도 노동자의 처우문제, 수가 중심의 과도한 수익 규제, 서비스 품질의 저하, 그리고 사회보장 수급권 훼손 등의 문제를 야기해 왔다.
제공기관 규모화를 통한 사회서비스 고도화에 대한 오해
사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공급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은 윤리적으로 합당하고, 민간 시장의 활성화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다만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서비스는 복지혼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비스 제공에 민간이 참여해야 효율적인 전달체계가 마련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혼합은 재원조달, 의사결정권, 이용권한과 규제라는 다차원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 사회서비스의 혁신과제는 공급 주체의 다원화, 이용권한에 있어 수요자 중심주의, 그리고 정부의 규제역할 모두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서비스의 고질적 문제는 영세한 영리 제공기관이 과도하게 시장을 차지하고 있고, 수요자가 원하는 고품질의 사회서비스가 없다는 질 저하 문제가 지적된다. 이에 영세사업체의 성장지원을 통한 규모화와 비영리 사회적경제의 시장진입 활성화 방향은 타당하다. 문제는 정책수단이다. 규제를 철폐하는 정책이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사회서비스의 해결책이기 어렵다.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의 성장을 장려해야 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규제와 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정책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규모화와 관련하여, 주의 깊게 참고할 만한 연구 결과가 있다(Harrington, C. et al., 2017). 영국과 미국의 요양서비스 경우 규모화된 프랜차이즈 기업의 비중이 전체 공급의 5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사회서비스가 영리기업을 중심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프랜차이즈로 활성화되었다. 미국의 요양원의 경우, 5개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5개 기업은 모두 미국 내 조세 피난처로 알려진 델라웨어 주에 본사를 두고 있고, 모두 최근 미국 법무부(USDOJ)에 의해 사기행위로 기소되어 소송이 진행된 바 있다. 이유는 계약된 서비스 미제공, 부당청구, 사기, 서비스 남용, 적정인원 미배치 및 품질 위반, 부당청구이다. 정부의 서비스 모니터링 결과 서비스 질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요양원도 5개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한 곳은 다국적 민영보험회사이고, 네 곳은 민간 유한회사로 조세 피난처에 등록된 개인투자 그리고 사모펀드 그룹 소유다. 영국의 규모화된 프랜차이즈 요양기관은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의 재정안정화 조치로 지방정부 돌봄서비스 시설들을 인수 합병하면서 성장하게 되었는데, 서비스 질은 오히려 저하되었다.
캐나다의 요양원도 5개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시장의 23.8%를 차지한다. 그러나 두 번째로 큰 규모로 76개의 요양원을 운영하는 Revera Inc는 공적연금기금(Canadian Public Sector Pension Investment Board)이 100% 소유한 회사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경우도 돌봄시설이 다수 공공기관 운영이나, 영리와 비영리 민간 소유의 경우 프랜차이즈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지방정부가 돌봄을 제공하고 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구매자와 공급자를 분리시키고, 소비자 선택권 강화 차원에서 일부 지방정부가 요양시설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즉 지방정부가 조직과 민간 공급자와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민간의 서비스 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규모화된 프랜차이즈의 서비스 질은 당연히 미국 그리고 영국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규모화된 영리목적 사회서비스 제공기관들은 낮은 서비스 품질, 부족한 인력배치, 품질 위반 등의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 특히 고수익을 올리는 대형 프랜차이즈는 비용절감을 통해 조직 생존율을 높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대형 민간회사와 사모펀드에 의해 소유되면서 전반적으로 서비스 양, 종류, 질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김형용 외, 2021).
따라서 한국적 상황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시설은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회적경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규모화하거나 법인화하는 노력이 바람직하지만,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위험성은 경계해야 한다. 제공기관의 규모화가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규모화는 사회서비스 공급 주체의 다원화와 함께 설정될 필요가 있다. 유럽의 경우, 사민주의 북유럽국가(노르웨이, 덴마크)의 장기요양 제공기관의 90%에 가까운 시설이 공공부문에 속하며, 일부 동유럽과 발칸반도 국가들(라트비아, 폴란드, 체코)도 공공부문이 70%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자유주의 유럽국가들(영국, 아일랜드)만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영리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공공이 20% 내외, 그리고 비영리민간이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2021년 기준 총 2,076개의 장기요양시설이 있으며, 공공 46%, 민간이 54%(영리 29%, 비영리 23%)이며, 미국의 경우도 공공은 1.3% 정도에 불과하지만 비영리부문이 14.8~50.8% 사이에 머물고 있다. 즉 우리나라와 같은 극단적인 영리민간 비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김형용 외, 2021). 따라서 규모화는 신규 수요를 개발해서 형성되는 시장이 아니다. 돌봄에 막대한 재정이 이미 투입되고 있다면 이 부문에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며, 다변화된 공급주체로서 비영리나 공공의 규모화를 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장기요양, 영유아보육, 장애인활동지원의 공급체계 혁신이 중요하다. 단순히 140억 원으로 펀드를 구성한다고 해서 새로운 제공기관의 진입구조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폐기된 아이디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국민연금기금 연계투자 정도의 규모화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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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2022). 장기요양 수입/지출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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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ngton, C. et al. (2017). Marketization in Long-Term Care: A Cross-Country Comparison of Large For-Profit Nursing Home Chains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제 1년이 지났다. 출범 초기 ‘취임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낮은 지지율로 인해 가장 왕성해야 할 집권 1년 차에 정책 추진력이 미약해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평가할 만한 정책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 1년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는 정책 성과가 아닌 정책 지향과 추진 동기를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토대로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먼저 고용현황이다. 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와 노동시장 모두 침체기를 겪다가, 22년 초반부터 코로나 감염확산이 정체 또는 감소하고 각국이 팬데믹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양태를 보여줬다. 특히 급격히 침체되었던 노동시장의 경우 침체로 인한 기저효과와 포스트코로나에 따른 노동수요 증가로 일부 국가 또는 산업의 경우 노동력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수요가 증가해 고용량이 늘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23년 2월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 고용 규모가 전년 대비 35.7만 명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는 1여 년간 지속돼 왔고, 증가 추세만 따지면 노동시장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증가 규모가 코로나 이전 수준의 회복에 그치고 있으며, 여전히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고용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21년 기준(OECD 통계, 통계청 제공) 한국의 고용률은 66.5%로 OECD 평균 69.7%에 비해 3%p 이상 낮다. 고용 규모로 따지면 대략 85만 명 정도가 추가 취업되어야 OECD 평균과 유사해진다.
다음으로는 한국 노동시장의 오랜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2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해 추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90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1.4%에 해당한다. 간접고용 일부를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정부 추계로는 37.5%에 달한다.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나라마다 편차가 심해서 국제비교를 위해서는 대표적 지표인 임시직(Tempo-rary workers, 쉽게 말하자면 계약직) 규모를 비교하는데, 한국의 경우 2021년 임시직 비중은 28.3%(정부 공식 통계)로 비교국 중 2번째로 많고, 일본(15.0%), 독일(11.4%), 영국(5.6%) 등과 비교할 때 심각히 높은 수준이다.
노동시간 역시 여전히 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못 벗어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의존적 취업자(노동자+특고+무급가족종사자)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으로 OECD 평균인 1,617시간에 비해 3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1,300시간대에서 1,500시간대에 분포한 유럽 주요국에 비하면 최대 600시간까지 더 일하는 셈이다. 이를 주 40시간으로 환산해 계산하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1년에 7.5주(1.5개월) 이상을, 유럽 주요국에 비해 10~15주(최대 3개월) 정도 더 일한다.
노동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한국의 산재 치명률(산재 발생 후 1년 내 사망자 비율)은 10만 명 당 4.3명이다. 이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OECD 가입국 중 멕시코, 튀르키예, 라트비아 다음으로 높다(2021년 ILO 통계). 산재 통계는 각국마다 산출 방식이 달라 ILO 통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대 산업재해가 여전히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주요국의 10만 명당 산재 치명률은 프랑스 2.5명, 스페인 2.1명, 일본 1.5명, 스웨덴 0.8명, 독일 0.7명 등이다(프랑스, 스페인, 독일은 2020년 자료).
노동시장 소득 격차도 심각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미국 다음으로 크다. 임금 10분위 배율(하위 10% 대비 상위 10% 임금수준)로 보면, 미국과 한국은 각각 4.84배와 3.60배에 달한다(2020년 기준). 비교대상 국가들 가운데 이 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스웨덴으로 2.14배에 불과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34% 수준으로 OECD 평균 13%의 2.5배 수준으로 가장 심각하고, 다른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 불평등은 OECD 국가 중 7번째로 크다(「OECD 한국경제보고서, 2020」).
거꾸로 가는 노동정책, 현실이 아닌 이념과 이해관계에 기반한 정책 추진 탓
요약하자면 세계 10위권의 경제 수준을 달성한 한국 노동시장의 고용안정, 노동시간, 산업안전, 임금 불평등 등 주요 노동시장 지표가 모두 매우 처참한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 교육과 더불어 노동개혁을 3대 개혁의 하나로 지목했다. 앞서 살펴본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노동개혁을 주요 개혁 과제로 선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주요 노동정책으로 제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직무성과급 도입 그리고 노조회계 투명성 제고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근로시간 제도개편의 핵심은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한 연장노동 상한제의 단위 기준을 주 단위에서 월이나 분기, 반기, 연간으로 다양화한다는 것이다. 주 단위 연장노동 상한을 월 단위(=약 4.3주)로 환산하면 총 52시간이 된다. 그런데 단위 기준을 변경한다는 것은 그 기간 내에서 연장 노동시간 배분을 임의로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간 총 연장 노동을 한 주에 몰아서 하게 한다면 현행 52시간(40+12)이던 주간 노동 상한이 최대 92시간(40+52)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연속 휴게시간 11시간 보장, 4시간마다 30분 휴게시간 부여 등을 가정하여 계산한 것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간 69시간 노동이다. 이 69시간을 두고 극단적인 가정이다, 아니다 논란을 하고 있고, 대통령은 갑자기 60시간 이상은 너무하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떤 계산이 맞는지, 더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왜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은 이미 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 중 하나다. 세계보건기구는 야간노동을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고(DDT 살충제가 야간노동과 같은 2군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한국정부는 과로사 인정 기준을 12주 평균 주당 60시간으로 설정하고 있다(이는 당연인정기준으로 이보다 적게 일하다 사망한 경우에도 관련성에 따라 과로사가 인정된다). 따라서 필요한 정책은 노동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국제적 추세에 맞춰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시간제도 개편은 오히려 반대다. 도대체 왜?
직무성과급제 역시 마찬가지다. 직무급제의 장점은 같은 일에 대해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같은 임금체계가 장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산별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기업규모, 고용형태,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심각한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현재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는 기업 내 직무에 따른 별도 임금체계 적용을 의미한다. 이 경우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 축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아래 그림과 같이 기업 내 직무 간 임금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근속에 따른 보상(즉, 호봉제적 성격)이 줄어들고 성과급 요소가 강화되면,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유일한 격차 해소 효과는 근속에 따른 격차 축소다. 하지만 이 역시 착시 현상일 수 있는데, 당장은 연령에 따른 격차가 축소되는 것처럼 보여도, 거꾸로 보면 신규 입사자의 향후 임금 인상 폭이 크게 제한되는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판 조삼모사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위반하지 않는 한에서 임금체계에 대한 결정은 노사 자율에 맡겨 온 것이 근대적 노동법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역시 이러한 노사 자율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임금체계 변경을 강요하고 있다. 도대체 왜?
현실 진단과 상관없이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변경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미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파산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고자 하는 지향이 담겨 있다. 자본은 언제나 시장 상황에 따라 노동을 유연화하고 싶어한다. 노동 유연화를 극단적 정책으로 추구한 이념이 바로 신자유주의고, 그 대표적 방법이 비정규직 양산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매우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보이고 있고, 20년째 그 비율이 정체돼 있다. 고용 유연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졌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노동시간과 임금 유연화다.
자본의 입장에서 극단적 고용 유연화는 경기 하강기 인력 조정에는 유리하지만 시장 수요가 증가하는 경기 상승기에 숙련 노동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남긴다. 그런데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여지가 커진다면, 정규직 숙련노동자를 지속 채용하면서도 비정규직 사용과 같은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직무별 별도 임금체계 적용과 근속에 따른 임금상승 효과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별 직무성과급 역시 마찬가지다. 요컨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철 지난 신자유주의 실험을 지속하고, 자본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지난 40년간 전세계가 목격한 불평등 확대와 사회적 분열의 심화가 바로 그것이다.
분열을 정치 자양분으로 삼는 노조 적대화 노동정책
윤석열 정부가 주요 노동정책으로 제시하는 세 번째 과제는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정부가 자주적 결사체인 노동조합의 회계를 강제로 공개시키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도 이해가 안 되지만, 노동조합 회계를 공개해서 해결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 어떤 노동정책 교과서에도 이와 같은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이 듣도 보도 못한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취임 초 각종 인사 실패, 잦은 말실수로 인해 취임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윤석열 정부의 이례적인 리더십이 놓여 있다. 정부에 대한 주요 비판 세력인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진영논리를 강화해서 지지율 반등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정부가 3대 개혁 중 하나로 선정한 노동 개혁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관철하고 노동조합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권의 안위를 모색하겠다는 정치 공학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얄팍한 정치 공학으로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민생을 챙기고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할 정치적 의지와 정책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정권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어떤 판단과 행동을 보여 왔는지를 잊었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그 행동과 결단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행동에 각인된 역사는 결코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1) 산재통계는 10만 명당 산재발생 수를 비교하는데, 국가마다 산재발생을 ‘보고’된 재해건수로 보는 경우와 ‘보상’된 재해건수로 보는 경우가 있고, 비교 대상을 전체 취업자, 전체 노동자, 전체 보험가입자, 준상용노동자 등으로 보는 경우가 달라 10만 명당 발생건수로 정확한 비교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긴축과 민영화로 공공의료를 공격하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의료정책을 폈다. 대통령 자신이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사회 서비스 산업부로 봐야”한다고 했고, “복지는 돈 쓰는 문제가 아니고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 해야”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팬데믹이 한창인 5월에 집권했다. 한국 당시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2~4월 초과사망자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많이 발생한 직후였다1)긴축과 맞물린 방역 완화 때문이었지만 열악한 공공의료가 낳은 재앙이기도 했다. 향후 심각한 팬데믹이 더 빈번하게 닥쳐올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새 정부는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반대였다. 인수위 국정과제에서부터 공공병원 설립이나 인력확충이 아니라 ‘민간병원 육성’을, 국민건강보험은 보장성 강화가 아닌 ‘지출효율화’와 ‘재정관리 강화’를 내세웠다. 반면에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개인의료정보 상업화, 의약품·의료기기 규제완화, 원격의료 등 의료민영화 정책들을 제시했다.2) 이런 기조가 지난 1년 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했고 생태와 경제 등 다중위기에 시민들의 생명을 근본에서 위협했다.
코로나19, 각자도생 강요하며 국가책임 방기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윤석열 정부는 혹독한 각자도생 정책을 추구했다. 집권하자마자 ‘긴축재정’을 표방하더니3)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 지원범위를 축소하고 재택치료비 지원을 중단했다. 돈을 아껴 감염병 고통을 서민에게 전가한 것이었다. 이는 ‘숨은 감염자’를 더 많이 늘렸다. 격리의무는 유지하면서 생계지원이 줄어 진단검사를 회피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컨대 공식 확인된 확진자는 크게 늘지 않는데도 위중증 환자가 크게 늘어 응급실이 코로나19 의심환자들로 적체되는 등 의료가 마비되었다.
정부는 의료대응역량도 축소했다. 6월부터 전국의 모든 생활치료센터 문을 닫아 고시원이나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는 확진자는 격리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보건소에 연락해도 “알아서 민간 숙소를 찾으라”는 답을 듣게 되었다. 또 정부는 ‘자율입원’을 확대했다. 국가의 병상배정 책임을 스스로 면제했다. 이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알아서 병상을 찾아야 했고 민간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 입원거부를 해도 막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정부는 그간 전담병원에 보상했던 지원을 아꼈다. 행정과 재정을 축소한 긴축대응이었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7월부터 6차 유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백경란 질병청장은 “국가 주도 방역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책임있는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유행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개인의 자발적 방역 참여만을 강조했다. 시민들은 ‘질병구경청’, ‘국가 도주 방역’이라는 조롱을 퍼부었다. 그 결과 8월에는 하루 사망자가 83명으로 급증해 100여 일 만에 최대를 기록했는데, 정부는 “독감처럼 받아들이라”면서 “입원해도 할 게 없다”는 식의 대응을 했다. 코로나19를 독감과 비교하는 것도, 입원치료가 의미 없다는 주장도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정부는 국민과 제대로 위험소통을 하지 않으며 방역을 포기했다. 사망자 증가에도 “일희일비 않겠다”고 하는 등 국민들의 삶과 죽음에 무감각했다.
공공의료 공격하며 민간병원 배불리기
후보시절부터였다. 2021년 1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자 윤석열 선대위는 “국립중앙의료원의 모든 병상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언론과 함께 “정부가 민간병원만 쥐어짜고 공공병원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마타도어에 나선 것이다. 실상은 10%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70∼80%를 치료하고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진료를 제외하면 모든 병상이 코로나19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반면 민간병원들은 돈벌이 진료를 멈추지 않으려고 고작 1.5~ 3% 정도의 병상만 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수언론과 윤석열 후보는 이런 민간병원 돈벌이를 비호하면서, 공공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내쫓으라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이 관철돼 이듬해 1월 초까지 80여 명의 저소득층, 행려·노숙인, 이주노동자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전부 쫓겨나게 되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 후 국립중앙의료원을 공격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사업비를 삭감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요구한 1,050병상을 760병상으로 규모를 축소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서민들의 생명과 건강의 보루이자 공공의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내원하는 환자 중 의료급여 환자 비율은 2019년 25.9%에 달하고 응급, 중증외상, 감염병, 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 의료 중앙센터 역할도 한다. 이런 병원이 제 기능을 하려면 적어도 1,000병상은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기재부는 615억 원을 더 쓰지 않아 상징적 국가 병원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부자와 기업들에게는 향후 5년 간 수십~수백조 원을 감세하기로 했다.
정부여당은 지방의료원 민간위탁 민영화도 추진했다. 공공병원이 민간에 위탁되면 수익성 중심 의료행위를 강요받을 것이라는 점은 역사적 경험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고 국민의힘 지자체장들이 앞장섰다. 경북 포항·김천·안동의료원, 대구의료원, 서산의료원 등이 그 대상으로 언급되었고, 가장 우선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성남시의료원이었다. 경영이 어렵고 시 재정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성남시의료원 경영 문제는 지난 3년 코로나19 치료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성남시의료원 뿐 아니다. 많은 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의사 인력, 진료건수, 수술건수, 필수진료과 개설률, 의료수익 등이 크게 감소했다.4) 윤석열 정부는 공익을 위해 나섰다가 위기에 처한 공공병원 재정을 책임지고 지원하기는커녕 이를 핑계로 민간위탁하려 한다. 성남시의료원은 그나마 노동조합들과 시민운동의 만만치 않은 저항 때문에 민간위탁이 잠시 멈춰지게 되었지만 불씨가 여전하다.
새로 설립하기로 약속되거나 예정되었던 공공병원들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되었다. 제2대구의료원은 코로나19 첫 유행지인 대구에 짓기로 전 시장이 약속도 했지만, 윤석열 정권 등장과 홍준표 새 시장 당선 직후 무산되었다. 광주와 울산에 지어질 지방의료원도 기재부가 타당성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경제성’ 평가에 발목을 잡힐 것이 우려되고 있다. 지방의료원이 하나도 없는 몇 안 되는 대도시들에도 이토록 공공병원 설립이 불투명한 것은 경제논리에 생명과 건강을 종속시키는 정부 기조 때문이다.
한편 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내용은 공공기관 예산절감, 인력감축, 민간과 경합하는 기능축소, 자산매각을 포함하는 민영화 종합세트였다. 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는 국립대병원 정원을 감축하려 했다. 공공병원 간호사를 비롯한 인력은 평소에도 늘 부족해 허덕이고 과로하다 사직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았다. 코로나19 상황에도 그런 부족한 인력으로 감당하며 피눈물을 쏟았는데도, 정부는 인력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냉혹하게 줄이려 했다. 이에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공동파업으로 맞섰다. 투쟁의 성과로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들 중 정원 감축 대상에서 예외가 된 두 기관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의 시장주의 공격을 대중운동으로 막아낸 사실상 유일한 사례였다.
오랜 시장주의 의료정책이 누적된 결과, 한국의 필수의료는 지난 한 해 심각한 붕괴를 보였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이 발생했는데도 긴급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서 사망했다. 2023년도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10%대였다. 길병원은 전공의가 없다며 소아청소년과 병동을 폐쇄해 충격을 줬는데, 연달아 여러 병원들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대로 정부는 수가 인상책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는 환자 의료비와 건강보험료를 올려 95%가 민간인 병원수익만 올려줄 정책이다. 병원이 돈을 더 번다고 전문의 고용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지난 십수 년간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의 강화이지만, 정부는 불평등과 시장주의를 강화할 오답만 내놓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대책을 내놓는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과잉진료를 유발하여 재정 건전성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재정 건전화를 위해 기존 보장 항목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MRI와 초음파를 재검토 사항의 예로 들었고, 본인부담 상한제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했으며, 산정특례제도 혜택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5)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치에 맞지 않다. 우선 한국의 건강보험 지출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적어 보장성이 낮은 것이 문제이지 ‘재정 건전성’을 운운하며 긴축할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 국가가 지출하거나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이 OECD 평균의 약 1.5배 적고,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거나 본인부담 의료비로 지출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은 거꾸로 약 1.5배 많은 나라다. 공적 지출이 적어 개인 부담이 높은 것이다. 입원비 건강보험 보장성이 67%로 OECD 평균 87%보다 매우 부족한 것으로도 나타난다. 또 과잉진료의 원인은 정부가 주장하듯 ‘환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민간 의료공급자들의 과잉진료 때문이다. 한국은 일인당 의사 진찰 건수가 OECD 국가들 중 압도적 1위인데 이는 OECD가 행위별수가제 때문이라고 해설한 바 있다. 높은 보장성이 과잉진료를 낳는다면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유럽 국가들은 그 문제가 심각해야 할테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한국은 민간병원들이 무분별하게 병상을 늘리고 CT, MRI도 OECD 평균의 1.7배를 보유하면서 갑상선, 무릎, 척추 수술을 외국의 몇 배나 하기 때문에 과잉진료가 많은 것이다.6) 또 실손보험이 비급여 확대와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정부가 민간병원과 보험을 통제하지 않고 불필요한 의약품·의료기기를 규제완화로 무분별하게 시장진입시켜 비급여를 양산하면서 과잉진료 책임을 환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의 태도이다. 이는 철저히 기업주들의 주문에 따른 정책으로, 건강보험을 약화시켜 공공부문의 기업 지출을 줄이고 민간의료시장을 확대하려는 것이다.7)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개인의료정보 상품화
이렇게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하면서 정부가 애쓰는 것은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넓혀주고 나아가 직접 치료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라는 이름의 정책은 영리회사의 의료행위를 금지한 한국 의료체계의 공적 안전망을 허물고 보험사에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것이다.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로부터 시작해 의료서비스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식 의료민영화(HMO)로 나아가는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12개 업체에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 인증을 부여했다. 여기에는 삼성생명 가입자 대상 서비스, KB손해보험 자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 등이 포함됐다. ‘비의료’라는 건 말 뿐이고 사실상 민간보험을 중심으로 영리기업의 의료행위를 허용한다. 건강증진, 예방, 재활은 WHO가 규정한 일차보건의료의 일부이며 만성질환은 관리가 다름 아닌 치료다. 정부는 아예 노골적으로 민영보험사에게 만성질환은 ‘직접치료’ 목적으로도 허용하겠다고 했고, 사업범위는 ‘포괄적’으로 확대해주었다.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사가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를 담당하면서 병원을 알선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8)
민간보험사에 환자 의료정보를 전자전송하는 정책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이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험사들이 환자 보험금 지급을 편하게 해 더 많이 지급하려고 이 정책에 혈안일 리 없다. 실제로는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 80%의 모든 진료자료를 실시간으로 보유하기 위한 것이다. 소액진료 뿐 아니라 공보험 진료를 포함한 모든 의료정보를 전산화·표준화된 형태로 축적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이 통과되면 환자들은 보험금 지급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적게 받게 될 것이다. 보험사들은 지금도 어떻게든 환자 개인 건강정보, 의료정보를 수집해서 환자를 선별하고 등급을 매겨서 보험료에 차등을 두거나 보장범위를 줄이려 한다. 정부가 정말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지급을 늘리고 싶다면 보건당국이 나서서 보험사들의 최저 지급률을 법제화하면 된다. 카지노와 로또에도 최저 지급기준이 있는데 민간보험은 그런 하한도 없이 완전히 무규제 시장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으로는 비급여를 양산하고 그 비용을 천정부지로 올리며, 과잉진료를 일으키는 실손보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충분히 올리면 애초 국민들이 실손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개인의 건강정보·의료정보를 민간보험사 등 영리기업에 제공하려는 규제완화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심평원의 가명정보가 민간 보험사들에게 팔려나간 일도 폭로된 바 있다. 가명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되면 개인 식별이 충분히 가능한 정보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가명정보의 기업활용을 더 용이하게 하도록 법도 만들려 하고 있다. 소위 ‘디지털헬스케어법’을 통해서다. 이 법에는 개인의 실명 의료정보를 기업에게 넘기는 ‘고속도로’를 뚫겠다는 내용도 있다. 각자에게 자신의 정보 통제력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클릭 한 번에 민감한 의료·건강정보를 기업에 통째로 넘길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의료 마이데이터’라고도 부른다. 온갖 군데 흩어진 정보를 한 번에 기업에 넘길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나서 질병청,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의료기관, 웨어러블기기 등에 있는 정보를 한데 모으는 작업도 이미 해두었다. 현행 의료법은 아무리 개인이 동의하더라도 제3자에게 함부로 전자정보를 전송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기업과 개인 간 권력격차가 있는 사회에서 민감한 의료정보를 보호하려는 취지일 것이다. 정부는 개인 정보인권에 대한 이런 안전장치를 허물어 기업 돈벌이를 장려하려 한다.
플랫폼 민영화 원격의료 추진, ‘혁신’이라는 신기루로 규제 완화
올해 상반기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의료민영화 하나를 꼽자면 원격의료일 것이다. 원격의료는 단순히 의료를 대면으로 하는지 비대면으로 하는지에 관련한 사안이 아니다. 비대면 의료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다는 명목으로 영리기업에 의료시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영리기업에 원격의료 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며,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재난자본주의’의 보편적 재현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 정부는 팬데믹을 맞아 영리기업에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그 결과 캐나다는 원래 의료를 공공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원칙의 붕괴를 경험했다. 의료서비스가 유료화되어 환자 부담이 늘었고 민간의료보험 적용대상이 되었다. 또 원격의료 제도는 공공 보건의료자금이 영리기업으로 흐르는 통로가 되었다. 과다청구도 늘었다. 공공적 무상의료하에서는 불필요했던 돈벌이 과다청구가 자행되었다. 기업이 민감한 개인의료정보를 다루니 유출 사건도 더 쉽게 발생했다.9)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반복될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에도 이미 ‘닥터나우’같은 플랫폼 업체들은 의약품 오남용과 과잉처방을 부추겼다. 전문의약품이 버젓이 광고되었고, 의약품 선택서비스가 제공됐으며, 탈모약·여드름약 ‘성지’ 병원들이 생겨났다. 95%가 민간의료기관이라 안 그래도 과잉진료와 과잉처방은 더 늘어날 것이다. 또 복지부 2차관은 플랫폼 돈벌이는 수가 인상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환자 부담과 건강보험료가 인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에는 의료로 돈벌이를 할 수 없었던 자본들은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 택시’와 마찬가지로 의료로 영리를 추구할 것이고 그러면서 의료 생태계 자체를 상업적으로 왜곡시킬 것이다.
새로운 기술 도입을 명목으로 규제를 우회하는 다른 예는 의료기기·의약품 규제완화다. 정부는 새로운 의료기술에는 기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면서 제대로 된 안전·효과 평가를 생략하거나 유예하는 방식을 채택하려 한다. 이런 디지털 예외주의(digital exceptionalism)는 세계적 추세이나, 한국은 결코 다른 나라들에 못지않다. 윤석열 정부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기술 같은 ‘혁신 의료기술’은 기존에 잠재성 같은 별도 기준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선진입-후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10) ‘혁신’이란 안전과 효과가 명확히 입증돼 시민들과 환자들에게 분명한 효용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정부는 단지 ‘새로운 것’이면 다 ‘혁신’이라는 엉터리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최근 과방위를 통과한 ‘인공지능산업육성법안’에서는 인공지능 관련 의료기술에 대해 선진입-후평가를 허용했고,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논의될 ‘규제과학혁신법’은 식품·의료기기·의약품·건강기능식품 등을 총망라해 ‘예외주의’를 실현하려는 내용이다. 이런 규제완화는 공통적으로 기업 돈벌이를 위해 환자를 마루타 삼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며
윤석열 정부는 겨우 집권한 지 만 1년이 됐을 뿐인데도 이처럼 공공의료를 공격하고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전방위적이었다. 긴축과 민영화가 고통과 죽음을 낳는다는 연구와 저서들은 이미 차고 넘치지만, 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들이야말로 그 구체적인 현실의 표본들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강력한 사회운동의 부재다. 이 정부 4년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반복될 팬데믹·기후 재난과 경제위기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겪을 재앙과 죽음을 방치하는 것이다. 연대와 저항이 실로 절실한 이유다.
1) Our World in Data – Statistics and Research. Coronavirus(COVID-19)
2)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2022.5
3) 기획재정부,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 2022.7
4) 이흥훈, 감염병 전담 공공병원의 현황과 회복을 위한 과제, 공공보건의료 회복과 필수의료 국가책임 강화를 위한 토론회, 2022.9.26
5)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 2022.12.8
6) OECD health at a Glance 2019
7)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보험 국민부담 현황과 새정부 정책 혁신과제, 2022.4
8) 보건복지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 2차, 2022.9
9) Canadian Health Coalition, NUPGE report warns against privatization through virtual health care, 2022.1.26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여성이 평생동안 아이를 낳는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에 0.78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회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결혼과 출산 결정은 한 개인의 생애과정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반해, 현재 주요하게 나타나는 관련 정책들은 출산 시기나 그 이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경향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이 글은 출산에 맞추어진 초점을 그 이전의 단계, 즉 성인 이행기(the transition period to adulthood)에맞추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고, 여기에 가중된 자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의 접근이 실제 결혼과 출산 결정 유보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면, 합계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은 비단 출산과 그 전후 시점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성인 이행기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서는 오늘날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나아가는 과정, 즉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길어진 성인 이행기: 교육기간, 혼인연령, 출산연령의 예
성인이 되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만19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만, 이 연령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성인 자각을 조사하였을 때 20대 초반의 성인 자각은 매우 낮은 편이었고,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절반 이상이 자신을 ‘가끔’ 혹은 ‘항상’성인이라고 느낀다고 하였다(유민상 외, 2022). 이는 이 시기가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기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전환기 혹은 이행기(transition period)가 나타나고,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선진국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아네뜨(Arnett, 2000)는 이러한 시기를 새로운 성인기 혹은 발현 성인기(emerging adulthood)라고 불렀는데,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시기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안정된 직업을 탐색하는 시기가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법적으로 성인 연령이 되면 바로 노동시장에 나가거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시기가 근래에 들어 대학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직업생활을 하고 조금 늦게 결혼과 출산을 하는 시기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성인 이행기의 자립을 지원하는 국가 수준의 청년 정책의 출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길어진 교육 기간
현대 산업사회는 과거에 비해 긴 교육이나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오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는 대학원 학위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는 직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학 입학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 10% 남짓하던 대학진학률(고등교육 진학률)은 2020년대 70%를 넘어서고 있다. 그 이상의 역량을 쌓기 위해 방학이나 휴학 기간 중 추가적인 경쟁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휴학과 졸업 유예 등으로 이러한 시기를 더 늘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2) 늦어진 혼인 시기
혼인 시기도 점차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1990년에 여성의 평균 혼인 연령은 24.78세였으나 2021년에는 31.08세로 높아졌고, 2022년에는 31.3세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연령별 혼인율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 잘 눈에 띈다. 1990년대 여성의 혼인은 20대 후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2022년에는 30대 초반의 혼인율이 가장 높아졌다.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가 주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연령 규범의 부담을 안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전보다 늦게 혼인을 하거나 아예 혼인을 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탈표준화되고 있다. 이러한 탈표준화의 방향에 결혼이나 출산을 빨리 하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있고, 반대로 결혼과 출산의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3) 늦어진 출산 시기
혼인 시기가 늦어지면서 출산 시기도 함께 늦어지고 있다. 2000년에만 하더라도 여성은 평균적으로 20대에 결혼하고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가장 많아지고 있다. 다만 이 시기의 다른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상태로 인생 경로의 탈표준화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4) 성인 이행기 지연 요인으로서의 높은 니트 비율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단계로의 시간이 연장된 이유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가 더 험난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주 경험하게 된 니트 상태(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표준화되는 인생 경로
지금까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보았다.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중요한 단계이며 개인이 따라야 하는 사회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많은 이들이 결혼이 적합하다는 사회적 시기에 따라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동기 혹은 추동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 단계 혹은 표준화된 단계는 점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적인 생애 과업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과업으로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2020년에 시행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13-24세의 청소년들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에 대해 39.1%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2017년 51.0%에 비해 12%p 가량 하락한 수치이다. 특히 남자는 42.9%, 여자는 34.8%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나타나는 변화라는 걸 보여준다.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에 대해서는 60.3%가 동의하였다. 이는 2017년 조사 결과인 46.1%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이 ‘반드시’ 결혼이나 출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점차 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점차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역시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16년~2021년까지 시행한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16년 결혼과 출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전체의 50%가 넘었으나, 2021년 조사에서는 30%대로 줄어들었다. 대신 결혼과 출산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청년들의 비율이 가장 많아졌다. ‘결혼할 필요 없음’과 ‘자녀를 가질 필요 없음’은 각각 6.6%와 7.3%로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혼과 출산은 반드시 해야 할 인생 과업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여전히 선호되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원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이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지만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표준화된 인생경로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인생경로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의 질 지원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
이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저출산 정책은 더 생애주기적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성인 이행기 동안의 자립 지원을 통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성인 이행기에 있는 청년들이 자립을 하고, 그 이후 새로운 사회적 결속과 재생산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련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이는 청년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고 저출산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으나, 이제는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정책 영역이 된 것이다. 청년 정책에서 성인 이행기 자립을 지원하고, 저출산 정책에서 그 이후의 재생산과 관련된 지원을 담당하되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청년 정책에서 모호하고 상징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성인 이행기 자립에 대한 개념적 명확화와 실행 방안 정책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책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 첫째, 성인 이행기 니트 청년의 지원이 필요하다. 성인 이행기가 지연되는데 일조하고 있는 니트 상태와 관련하여, 청년들이 니트 상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 더 확대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니트 상태에서 벗어나는 정책은 개인이 가진 권리 차원에서 제공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권리적 차원의 정책지원은 유럽의 청년 보장(youth guarantee)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성인 이행기 자립 시기를 앞당겨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그리고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길어지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학자금 상환을 위해 긴 시간을 쓰는 청년들을 위해 보편적인 무료 대학 교육을 상상해볼 수 있고, 교육 시기의 장학금과 생활비와 같은 지원금(stipend), 주거비 지원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고등교육으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을 상환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앞당겨줄 것이다. 셋째, 성인 이행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개인과 가족의 지원에 의해 지원되고 투자되었던 교육, 결혼, 출산에 대한 부담을 사회적 부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불균등하게 가족의 투자와 지원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던 성인 이행기의 자립이 사회적 지원을 통해 보편적으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 청년세대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갖기 위해 고려해야 할 장기적 부담(자녀에 대한 교육/취업/결혼 지원)을 줄여주는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길어지는 성인 이행기는 단순히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이다. 이는 특정 세대를 탓하고 출산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힘든 성인 이행기를 경험한 청년들, 그리고 그 이후 단계를 위해 노력하지만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청년들에게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캠페인은 의미 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사회정책적 함의는 “사회정책이 국가적 이익과 사회적 효용을 위하여 개인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도록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선택한 경로에 대해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되길 기대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이 글은 2023년 2월 22일 보건복지부 ‘제1차 미래와 인구전략 포럼’에서 발표된 ‘성인 이행기 청년의 결혼, 출산 인식과 함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해당 발표는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김기헌, 유민상, 배정희, 신동훈, 정지운(2021). 니트 등 비경제활동 청년층의 노동시장 유입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세종: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2020). 2020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서울: 여성가족부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Arnett, J. J. (2000). Emerging adulthood: A theory of development from the late teens through the twenties. American psychologist, 55(5), 469
이 글에서는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을 가르지 않고, 모두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비인간 동물의 수를 셀 때 ‘마리’가 아닌 ‘명(命)’을 사용합니다.
현 사회에서 비인간 동물의 위치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들과 맺는 관계는 각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건1)이란 개념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비인간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해나가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는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법적으로 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에 준하는 존재로 다뤄졌다. 그렇기에 학대 사건이 벌어져도 가해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죄목은 타인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범죄인 재물손괴죄였으며, 동물 학대에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동물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향상과 시민 사회의 노력으로 한국 법무부는 지난 2021년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며 국회에 계류 중이다.
종차별주의
동물 학대를 강력히 처벌하고, 다른 종에게로 공감을 확대해나가고자 하는 흐름은 반길만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동물을 종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종차별주의(speciesism)2) 가 만연하다. 특정 종의 동물들, 구체적으로는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소위 ‘가축’으로 분류되는 동물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이들은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미약한 법규가 있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들 동물들이 번식되고 사육되며 죽임당하는 모든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은 관행이자 합법으로 널리 인정된다.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이용하는 산업의 규모는 지난 어느 시대보다도 거대해졌고, 그만큼 산업에 이용되는 동물들에 대한 처사도 잔혹해졌다. 비인간 동물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과 감정을 느끼는 생명이 아닌 이윤을 위한 도구로 대해진다.
우리 인간은 필요와 상황에 따라 비인간 동물들을 크게 ‘반려동물’, ‘농장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로 분류하여 극도로 다르게 대우해왔다. 종차별주의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구분하고, 비인간 동물 중에서도 특정 종의 동물만을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보호할 가치는 오로지 인간의 기준이며, 인간의 이익을 침범한다고 여겨지면 ‘보호할 대상’에서 ‘유해조수’로 전락하기도 한다.
새벽이생추어리의 탄생
2020년 5월 국내 최초로 설립된 생추어리인 새벽이생추어리는 뿌리 깊은 종차별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물권 단체이다. 생추어리(sanctuary)란 사전적 의미로 ‘안식처’, ‘피난처’를 뜻하는데,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장식 축산업에서 병들고 버림받은 동물들을 구조하여 돌보는 시설이 생겨나면서 지금과 같은 의미의 동물 생추어리가 확산되었다. 인간이 만든 시설 중 가장 동물권에 입각한 공간인 생추어리는 다른 어떤 목적보다도 그곳에 거주하는 동물의 안온한 삶을 가장 우선시하며,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의 자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들의 돌봄을 책임진다. 동물보호소나 동물원과 다르게 동물을 사거나 입양 보내지 않고, 더 이상 동물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시키지 않으며, 동물을 전시하거나 체험에 동원하는 등 인간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동물 한 명 한 명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습성과 욕구에 맞춘 환경을 제공하며, 아플 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현재 새벽이생추어리에는 종돈장에서 공개 구조(open rescue)3)된 돼지 새벽이와 실험동물로 태어나 쓸모를 잃자 안락사 위기에 처했다 구조된 돼지 잔디가 산다.
우리 사회에서 ‘가축’으로 불리는 종인 돼지는 고기를 생산하는 것과 동물실험을 목적으로 주로 이용되며 각각 공장식 축산과 동물실험 산업4)에서 막대한 규모로 희생된다.
돼지도 반려동물로 불리는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 인간과도 다를 바 없이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지닌 존재이지만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렇게 해야만 거대한 자본이 계속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이생추어리는 그렇게 외면당하여 잊혀지고 가려져 온 동물들의 삶을 드러내는 활동을 한다.
돼지다움 그 너머 새벽이답게, 잔디답게 사는 삶
새벽이생추어리는 새벽이와 잔디가 살아가는 ‘돼지다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지를 알리며 우리 사회가 비인간 동물들로부터 어떤 삶을 빼앗아 왔는지를 보여준다. 새벽이와 잔디는 돼지 본연의 습성대로 부드러운 땅을 코로 파며 탐색하는 것을 즐기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감정표현을 한다.
축산 농가에 사는 돼지들은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기에 한 공간에서 먹고, 자며 배변 활동을 한다. 땀샘이 없는 돼지는 본래 진흙을 몸에 묻혀 체온조절을 하는데, 축산 농가의 돼지들은 자신의 오물을 몸에 묻혀 체온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새벽이와 잔디는 스스로 자는 곳과 배변 활동을 하는 공간을 분리하여 생활하며, 더운 여름에는 진흙목욕을 하며 살아간다.
같은 돼지 종이지만 새벽이와 잔디는 서로 체격뿐 아니라 취향과 성격이 달라 단순히 ‘돼지’라는 하나의 분류로 묶일 수 없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인간들 사이에도 ‘너’와 ‘나’가 분명히 구분되듯이, 새벽이에게는 새벽이다움이 있고 잔디에게는 잔디다움이 있다. 그들은 각자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새벽이생추어리는 새벽이와 잔디가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알림으로써, 어떤 인간 동물권 활동가보다도 강력한 목소리를 지닌 새벽이와 잔디를 대변해왔다.
폭력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새벽이와 잔디
생후 2주차에 구조되었음에도 새벽이의 몸엔 종돈장에서 겪은 여러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다. 열악한 종돈장 환경 탓에 새벽이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치료가 필요했다. 새벽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꼬리가 잘리고 송곳니를 뽑혔다. 이는 새끼 돼지들이 변변한 환경적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의 귀와 꼬리를 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남성으로 태어난 새벽이는 고기에서 나는 웅취를 없앤다는 이유로 거세당했다. 이 모든 일들은 축산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관행으로 마취 없이 진행된다.
잔디는 실험동물로 쓰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체구를 작게 만들고 피부색을 희게 만든 종의 돼지이다. 잔디가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 고개를 허우적거리는 행동을 자주 하는데, 수의사에 따르면 잔디 코의 모양이 선천적으로 기형이고 이는 근친 교배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은 원하는 특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인간 동물을 선택적으로 교배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개변했다. 이 과정에서 비인간 동물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나 해당 종의 복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젖소의 유방은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생산하도록 개변되었고, 닭과 칠면조는 거대한 가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주저앉는다. 고기로 키워지는 돼지들은 평균 6개월령에 도살되는데, 단기간 빠르게 살찌우기 위해 성장촉진제가 사용된다. 인위적으로 비대하게 커진 몸을 버티기에 돼지의 관절은 너무 약하다. 새벽이 또한 관절 건강을 위해 평생 식단 조절을 해서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이와 잔디는 이미 인간에 의해 장애를 입고 기형으로 태어났다. ‘고기’와 ‘실험동물’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강제로 몸을 개변시킨 결과, 다양한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삶은 인간이 행한 폭력을 가감 없이 증언하며 성찰하게 만든다.
축산업의 가려진 비용
축산업에서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메탄, 이산화질소가 배출되며, 가축을 키울 공간 및 가축 사료를 재배하기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대규모 벌목이 이루어진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1/3은 가축의 먹이로 이용된다. 누군가는 고기를 그 어느 시대보다 쉽고 값싸게 소비하고 함부로 버리기까지 하는 현실이지만, 이 세계에는 여전히 굶주리고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비좁고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건강 문제를 예방하고자 더 많은 항생제와 살균제가 사용된다. 그리고 항생제 남용은 내성 있는 병원균을 만들어낸다.5)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에는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고 있다. 밍크, 수달, 여우 등의 포유류가 감염되어 집단으로 죽은 것이 확인되면서 ‘조류발 팬데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6)
공장식 축산은 바이러스의 변이와 확산을 용이하게 만드는 밀집된 환경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을 높인다. 매년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수많은 비인간 동물이 살처분7)되었다. 2022년 10월 기준으로 2019년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농가에서는 총 6만 5,404명의 돼지가 살처분되었는데, 확산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감염 여부에 대한 확인 없이 예방적으로 살처분된 인근 농가의 돼지는 그 5배가 넘는 34만 3,13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 동물들이 산 채로 매장된 땅에선 침출수가 흐르고, 이는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킨다.
동물권은 비인간 동물만을 위한 것일까
2017년 경북의 한 돼지 농장에서는 이주 노동자 두 명이 돼지 분뇨로 막힌 구멍을 뚫기 위해 집수조에 들어갔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었다. 사장의 지시로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일을 진행하다 발생한 인재였다.9)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후 과로사, 자살 등으로 공무원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정부는 살처분 인력을 외주화하여 용역을 주고 일용직 노동자로 대체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불안정한 신분에,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왔다.10)
축사 인근 주민들은 축사 악취와 소음 피해를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혐오 시설인 축사는 땅값이 싸고 사람이 적은 지방에 위치하며, 도시의 사람들은 돼지, 소, 닭을 평생 마주치지 않고도 깨끗하게 손질된 고기를 마트에서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로만 남는다. 지금과 같은 지나친 육식 소비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 누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지는 가려진다. 공장식 축산은 종차별주의뿐 아니라 도시와 지방 간 불평등과 빈부격차로 지속된다.
축산업으로 인한 환경 오염 피해를 가장 먼저 받는 자들은 비인간 동물과 인간 구분 없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일 것이다. 동물권의 문제는 비인간 동물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권은 인간 사회의 빈곤, 생태, 공공 보건, 노동자들의 권리 등 인권을 포괄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맺는 대안적 관계를 제시
새벽이생추어리에서는 정기적으로 소수의 돌봄 활동가(‘보듬이’)를 모집하여 일정 기간 매주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 돌봄하며 관계를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 살아있는 돼지를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사회에서 새벽이와 잔디를 직접 만나 그들의 고유함을 알아가는 경험은 특별하다.
우리는 인간을 위해서라면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는 사회에서 평생 살아왔다. 새벽이와 잔디가 봄을 맞아 푹신하게 녹은 땅을 밟으며 신나게 뛰는 모습, 햇볕 아래 따사로움을 느끼며 평온하게 잠든 모습은 그들이 고기로 당연하게 태어난 것이 아님을, 그들 또한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주체적인 생명으로 태어났음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절되었던 비인간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대안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된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새벽이와 잔디는 생추어리의 주인이고, 방문하는 인간은 손님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이기에 생각과 달리 실패하기도 하고, 자신 안의 뿌리 깊은 종차별을 마주하는 날도 많지만, 더 나은 태도와 관계맺음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인간은 비인간 동물을 불쌍한 존재로 여기는 시혜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새벽이와 잔디를 동물해방운동을 함께 하는 동료로 여기며 돌봄이란 방식으로 연대하고자 한다.
돌봄 활동은 직접 몸을 움직여 생추어리의 거주 동물을 보듬는 활동이기 때문에, 글이나 말, 교육으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돌봄 활동에서 얻은 여운은 도시로 돌아온 일상에서도 지속되어, 당연하게 여겨온 관념들에 더 많은 균열을 내고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모든 동물의 해방을 꿈꾸는, 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는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 동물이 다른 종의 동물, 자연과 맺고 있는 착취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 없는 비거니즘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만들어낼 것이다. 새벽이생추어리가 말하고자 하는 동물권은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지 않고 그 누구도 고통 속에서 생식 능력을 착취당하며 번식 당하지 않을 권리, 죽임당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을 권리, 평생의 자유를 억압당하며 구속당하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말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삶을 통해 단절되었던 존재들과 연결되는 충만함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변화에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1) 비거니즘(Veganism)을 실천하는 사람. 비거니즘을 완전 채식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식(食)에만 한정된 개념은 아니다. 동물을 착취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치관이자 철학으로, 의식주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말한다
2) 특정 종에 속한 개체가 다른 종에 속한 개체보다 더 우위에 있거나 열등하다고 판단하고 그에 기반하여 차별을 가하는 일체의 행위
3) 활동가들이 신원을 감추지 않고 농장에 들어가 동물들이 겪는 폭력적인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구조하는 직접행동을 말하며, 폭력으로 고통받는 동물의 ‘구조할 권리’를 확립하려는 활동이다. 새벽이는 2019년 7월 디엑스이코리아(DxE Korea) 활동가들에 의해 종돈장에서 공개 구조되었다. DxE(디엑스이)는 전지구적 동물해방 풀뿌리 네트워크로 알려진 동물권 운동 단체이다. 디엑스이 미국 활동가들은 미국 내 이뤄진 초국적 거대 축산 기업을 상대로 한 공개구조에 대해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22년 10월과 2023년 3월 각각 소송에서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가 선고되었다(※출처①: ‘학대’ 새끼돼지 구조해 절도죄로 기소… 배심원단이 내린 결론, 오마이뉴스, 손가영, 2022-10-10, ※출처②: dxekorea 인스타그램)
4) 잔디가 태어난 2020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희생된 실험 동물의 수는 4,141,433명이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잔디만이 생추어리에서 세 번째 생일을 맞았다(출처: 2020년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실적 및 실험 동물 사용실태)
5) 【공장식 축산을 고발한다②】 가축이 병들 때 사람만 건강할 수는 없다, 뉴스퀘스트, 박민수, 2022-09-20
6) [기후환경 리포트] 코로나19 다음은 H5N1? 조류발 팬데믹 인간 위협, MBC, 현인아, 2023-02-27
7) 가축 살처분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동물을 죽여 없앰으로써 전염병의 전파를 막는 일종의 예방법이다. 한국의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 기준에 대해서는 축산 농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예방적 살처분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비효율적인 과정이며, 살처분 현장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게 강도 높은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내부고발자 퇴출 프로그램에 강한 제동이 걸렸다. 겉으로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것이라면 해고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제주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KT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간 사건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에 의미 있는 판결을 내 주목받고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면 그 불이익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한 것으로 추정한다. 추정의 효과는 회사로 하여금 정당한 징계라는 점에 대해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만큼 공익신고자 보호는 힘을 갖게 된다.
KT 소속 직원 이해관씨는 KT가 제주 7대 자연경관 지정에 대한 전화투표 이벤트에서 소비자들에게 국제전화가 아님에도 국제전화라고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다. KT는 이씨를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지사로 전보발령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했다. 이에 권익위는 KT에 해고를 취소하고 원직에 복귀시키도록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을 했다.그렇다면 회사 내 조직적인 문제는 모두 공익 침해행위에 해당해 신고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이라는 5가지 사유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로서 권익위에 보호 요청을 하려는 사람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요건이 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은 언제로 봐야 할까? 공익신고를 할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공익신고가 이루어지면 통상 공익 침해행위가 공정거래법 등에 위반되는지 살펴 고발 조치하거나 수사 의뢰하는 일이 발생한다. 법률 위반 여부는 해당 법률의 구성요건에 따라 엄격히 그리고 사후적으로 판단된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더 엄하게 볼 것이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해당 법률에 위반됐는지 여부만을 놓고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를 보게 된다면 그 범위는 매우 좁아질 수 있다.
KT는 권익위가 보호조치 결정을 할 시점에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점을 들어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공익 침해행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나 최종적으로 법원 등에서 공익 침해행위로 확인된 행위만 공익신고 대상으로 본다면, 조사권한이나 법률의 해석권한이 없는 권익위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보았다. 공익신고자 역시 공익신고에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공익신고는 위축되고 공익신고 범위는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있다.
왜 공익신고자 보호를 얘기하는가? 공익신고는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영역에 있다. 공익 침해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다수의 문제점은 요즘 특히 빈발하는 안전사고에서 아프게 확인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사고 이전에 안전 등 운항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제보한 사람이 있었지만 인사문제만 다루고, 나머지는 덮어 결국 뒤에 큰 사고로 이어졌다. 기관의 관리감독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문제는 공익신고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반면 회사의 보복조치는 집요할 뿐 아니라 겉으로는 그럴 듯한 징계 사유도 갖추곤 한다. 공익신고를 이유로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난다면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의 개인적인 희생을 눈감아 버린 것이 된다. 용기를 의미 있게 해주는 제도적 뒷받침과 법원의 해석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 이 글은 2015년 5월 26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아직 당선이 된지 나흘정도 된 따끈따끈한(?) 위원장입니다. 지난 6월 26일에 선거를 마무리하고 첫 당무가 2015년 정기당대회였습니다. 마침 우연히도 당대회 장소가 강서구민회관이었는데, 수십명의 동지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축하해 주신 동지들, 그리고 단상에서 축하 말씀을 해 주신 나경채 대표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노동당 이전에 당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진보신당을 지지했었고, 노동당이 된 이후 강령을 읽어보고 입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입당을 하고 며칠 멍하니 지내다가, 지방선거 특별당비를 내 달라는 당의 전화를 받고 ‘당 활동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제주도당 당사를 찾아갔습니다.
서울에 와서는 강서당협으로 이동을 신청했는데, 승인은 되고 연락은 없고 당 게시판에 물어보니 사고당협이라고 해서 시당에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강서의 당원들을 만난 이후에도 모임이 있다고 하면 가끔 나가고, 당 행사가 있다고 하면 가끔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상철 당시 후보를 만나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몇 군데 집회를 다니면서 서울시당의 깃발을 빌려 썼고, 나중에는 지난 목요일에 시당에 반납하기 전까지 아예 제가 가지고 다니면서 연대를 했습니다. 4월 18일 세월호 투쟁에서 경찰 벽을 뚫고 광화문 현판 앞에 섰고, 차벽 위에 올라가 노동당의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당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돈이 없으니 당비를 많이 내지는 못하지만, 활동으로 당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이 당이 잘 되는 것이 제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당협위원장으로서 당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솔직하게 아직 어떻게 지역활동을 꾸려나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원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며 배워보며 시작하려고 합니다. 선거를 치르면서 당원들께 했던 약속인 “직접 찾아 뵙고 이야기를 듣겠다”는 말, 지금부터 실천하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위원장, 당원동지들께서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지난 3월21일 세계 굴지의 GMO(유전자조작) 종자 및 농약회사인 몬산토社가 1974년에 개발하여 자사의 GMO 제초제 “라운드업”을 비롯, 전 세계 750여종의 제초제 상품에 이용되고 있는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성분을 발암성 물질 “2A” 등급으로 분류 발표한 바 있다.
反GMO, 反몬산토 행군의 세계적 물결
사람에게 림프종양과 폐암을 일으키고 실험용 쥐등 동물 실험결과 발암관련 증거가 확실하다는 WHO 발표에 대하여 몬산토사는 항상 그러하듯이 강하게 저항하면서 취급방법 여하에 따라 글리포세이트 제초제 사용은 인체에 안전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환경보호청(EPA)마저 WHO의 결정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반박은 끝났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프랑스 정부당국마저 네덜란드, 버뮤다, 스리랑카 등에 이어 몬산토사의 총아인 발암성 제초제 성분 “글리포세이트”의 국내거래를 금지조치 하였다. 그리고 각종 암을 비롯 질병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구명할, 그러면서도 대기업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을 독립적인 연구를 권장하겠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GMO와 몬산토사에 반대하는 범소비자시민운동의 물결이 해마다 GMO 본거지인 미국(판매식품의 80%가 GMO유래 제품임)은 물론 전 세계 250여개 대도시에 퍼지고 있다. 이제 그만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이제 그만 인체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멈추라며, ‘몬산토사를 점령하라!’ 몬산토사로 행군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제 그만 학계와 정부와 정계 그리고 언론계를 ‘과학이라는 탈’을 쓴 거짓 사실과 돈으로 흔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농업기술 진흥 및 농약 제조 판매허가권을 쥔 농림당국과 농촌진흥청은 아직까지 글리포세이트 성분 제초제가 안전하다고 분류하며 판매금지 조치는커녕 발암성 물질로도 지정하지 않고 있어,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 길이 없다.
망신살 뻗친 GMO 장학생들
세계 제1, 2위의 유전자조작식품 수입국인 우리나라에는 공식, 비공식 GMO 장학생들이 각처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은 GMO를 반대하는 행위마저 이념대결로 몰아붙이려 든다. GMO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대안농업인 친환경 유기농업을 폄훼 내지는 해하려는 직간접적인 공공행위마저 서슴치 않는다.
GMO 의 본산지인 미국의 경우 한 술 더 뜰 것은 자명하다. 노골적으로 GMO/농약회사들의 장학생들이 판을 친다. 그것이 모두 합법을 가장한다. 예컨대, 미국의 차기 유력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여사는 그동안 GMO(기업) 옹호 연설을 하고 지지한 대가로 몬산토, 다우화학사 등으로부터 클린턴재단에 수백만달러를 받은 사실과 그의 최고위 선거참모가 과거 몬산토사의 로비스트였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대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사람들이 그녀를 “프랑켄식품의 여왕(Bride of Frankengoods)”이라 부르며 기자들이 다투어 취재에 열을 올리자 힐러리 여사는 기자들을 따돌리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 소비자의 7할 이상이 GMO를 반대하는데도 GMO 완전표시제가 실시되지 않아 주(州) 곳곳에서 입법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이러할 때, 2013년 이맘때 우리나라 모 친GMO 단체의 초청을 받아 프레스센터에서 “GMO의 과학적 진실”이라는 GMO 찬양 일변도의 연설을 행했던, GMO 대기업의 끄나풀로 알려진 마크 라이너스라는 영국 출신의 과거 反GMO 전향인사가 4월24일자 뉴욕타임즈에 “내가 어떻게 GMO식품 옹호자로 전향했는가”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를 했다. 그 가운데 방글라데시의 한 소농, 마호메드 하미누르 라만의 GM 생명공학 가지 농사 성공이야기를 과장하여 소개했다가 지금 연일 항의서한을 받고 세인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습기가 많은 땅에 유전자조작 가지를 심었더니 생산성이 두 배나 되고 10번이나 수확을 하여 “무농약” 농산물이라는 이름으로 값도 더 많이 받고 팔려나가 졸지에 그 가족들을 가난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었다.
이 칼럼이 보도되자 그 기사내용은 허위 사실에 근거하였다고 새로운 사실이 연달아 밝혀지고 있다. 즉, 그 이듬해의 GM 가지 농사는 모두 병들어 죽거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여 연이어 흉작(반타작 이하)이 됐고 더욱이나 주변 토종 가지 농사에 까지 몹쓸 병마저 감염시켜 온 동네 가지 농사를 망치게 됨으로써 그 지역 농가의 주요 수입원이 붕괴되었다는 사실이 파다하게 알려진 것이다. 말과 글 솜씨가 유창하기로 소문난 마크 라이너스는 지금껏 꿀 먹은 벙어리 신세이지만 그의 후속 변명이 자못 기다려진다.
데자뷰: GMO가 안전하니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 무렵 대한민국에서는 농촌진흥청의 차세대 바이오 그린 21 사업 GM 작물개발사업단장을 제1저자로 한 「GMO 바로알기(2015. 4.30)」라는 책이 출간되어 우리나라 사회각계 지도층에 적잖이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생명공학으로 만들어진 GMO가 인체, 환경, 생명에 절대 안전하며 식량안보에 도움이 되므로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 하는 “창조농업”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취지이다. 그래서 정부나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생명공학 GMO 기술에 투자하여야 하고, GMO의 안전성과 유용성에 대한 국민교육을 적극화해야 하며, 소비자 시민단체들에 의한 GMO 식품의 완전표시제 확대논란을 조기에 잠재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GMO 곡물수입량이 매년 1천만톤을 상회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고 식용 GMO 수입량은 최고 수입국(1인당 평균 38㎏)인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표시제가 시행되지 않고 있어 국민의 80%가 넘는 소시민들이 마켓에 즐비한 GMO 가공식품과 콩나물 두부 된장 고추장 간장 식용유 아스파탐, 올리고당 등 첨가제와 비타민C 마저도 GMO투성이 인줄 알지 못하고 매일 사먹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소비자는 그 고유의 “알 권리, 안전할 귄리” 마저 거부당하고 하루 세끼 GMO 함유사실을 모른체 메르스, 독감 정국하에서 하루하루를 면역 무방비로 연명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데자뷰(旣視感)인가. 몬산토사나 다우, 듀퐁, 신젠타 등 GMO 와 제초제 농약 대재벌회사들의 셀프 선전소리를 정부 과학자를 통해 다시 듣는 것 같다.
그렇다면 소비자 국민들은 묻는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이라도 정부당국이나 독립연구자에 의해 GMO 식품 소비가 인체에 미치는 임상실험을 제대로 해보았는가.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그 흔한 실험용 쥐나 돼지 등 포유류 동물에 장기간(최소 2년 이상) GMO 곡물을 급여, 관찰 실험이나 해보고 하는 소리인가. 환경생태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실제 상황을 연출하여 광범위하게 실험 관찰해 보았는가. GMO 식품을 오래 먹은 미국 사람중에 아직 그것 때문에 죽은 사람이 보고되지 않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GMO 장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대식품(수입가공)회사나 다국적 GMO 또는 제초제 농약 개발회사들의 셀프실험 홍보자료나 베껴서 앵무새처럼 안전하다고 되뇌는 것은 아닌가. 아무튼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왜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 80% 이상이 GMO를 무서워하며, GMO인줄 알면 구매 소비를 기피하는지 그 원인과 배경부터 독립적으로 다시 공부하여 연구, 홍보하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回勅)이 의미하는 것
내추럴뉴스 닷컴 2015년 6월30일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GMO와 화학회사들에게 기업이윤 최대화를 위해 사람 건강과 환경을 파괴한다고 꾸짖다.”라는 기사를 보도하여 바야흐로 세계 카톨릭 신자들은 물론 세인들에게 크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바티칸 당국이 곧 공표하게 될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내용을 사전에 입수하여 보도한 것으로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업 산업적인 과학기술이 환경생태계의 손상을 악화시키고 지구 기후 패턴을 변동시키며 생명체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GMO(유전자조작 생물)와 제초제 등 농약의 위해성에 대하여 그 기술이 스스로 그 권력(이윤)을 제한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므로 그 유해성과 효과에 대한 여러 갈래의 보다 포괄적이며 독립적이며 학제적(學際的)인 실험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교황은 GMO 농업이 대기업 대농장을 제외한 가난한 농부와 독자적인 소농 및 비정규직 농업노동자들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 즉 비참한 이농과 도시빈민화 촉진현상에 대하여도 질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도과학(화학) 기술만능주의는 많은 조류와 곤충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생태계를 해쳐 그로인해 농업에 발생하는 악영향을 다른 새로운 기술로 메꾸는 이른바 악순환에 빠뜨리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GM 작물의 보급은 환경생태계망의 붕괴와 생산에 있어서의 종의 다양성 감소를 초래하고 종자산업의 독과점화 진행으로 지역경제와 농가경제의 위축을 불러들인다. 요컨대 교황 회칙은 세계의 재원이 소수집단에 집중되어 이 지구상의 생명체들과 경제사회 조건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음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함축적인 회칙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사회가 직면한 제반 생명과 환경, 사회경제의 위기 문제에 대한 진단이다. GMO 등 유전자조작 및 화학적 기술과 그 남용으로 빚어질 장차 지구촌의 미래까지 통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유전자조작, 화학농법식품의 안전성, 환경생태계 붕괴, 종의 다양성 감소, 지구온난화 문제 등은 따지고 보면 대기업 이윤 제일주의와 양심과 영혼이 없는 과학기술 맹목주의 때문이다. 농업과 식량문제에까지 신자유주의의 망령인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은 무언가 그 종말이 아주 깨름직하다.
안녕하세요? 노동당 서울 종로중구당협 당원 윤자형입니다. 저는 2009년부터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G, 持志)에서 활동해왔으며, 성노동자의 시민권‧건강권‧노동권 등 삶의 기본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전 세계의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합니다. 저는 다른 생산직 혹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성노동자가 일터 안에서든 밖에서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공장에서 일하건,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일하건, 집창촌 혹은 안마방에서 일하건 간에 한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에 제가 다니던 대학의 총여학생회는 학내 성폭력과 ‘양성평등’ 문제에 집중했었고, 총여학생회 선거의 최대 이슈는 여학생 휴게실 확충과 생리 공결제도 도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학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저 역시 성폭력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내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비싼 등록금 및 취업난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을 성매매 문제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양성평등’보다 여러 성정체성을 포함할 수 있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써야겠다는 반성, 이웃 대학의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모두 양성쓰기와 ‘포르노 안 보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 대학에도 이 운동을 제안하자는 의견, 성매매와 성산업은 성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니 여성주의자로서 이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학내 활동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논의의 전부였습니다.
성매매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더욱 쉽게 비하하고 대상화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성매매 여성 스스로가 알든 모르든 성매매 여성은 성차별적 구조의 ‘피해자’라고 믿었던 저에게,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다소 낯선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가 시켜서 거리에 나온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제정신인 피해자들이라면 업주에게 강요받지 않은 이상, 성매매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데모까지 할 리 없다는 것이었지요. 저도 한동안은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가 포주의 강요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친구로부터 “손가락을 사용해서 안마를 해주고 돈을 버는 것과 성기를 사용해서 섹스를 해주고 돈을 버는 것의 차이점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명쾌한 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성행위는 돈을 받고 하면 안 되는 것이지? 성이 나쁜가, 돈이 나쁜가?’ ‘다른 노동과 성매매가 다른 점은 무엇이지?’ ‘도덕주의자와 여성주의자의 반성매매는 어떻게 다르지?’ ‘성매매 여성의 존재는 정말로 여성의 지위를 악화시킬까? 그럼 남창(男娼)의 존재는?’ ‘성매매 여성이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는 이유는 무엇이지?’ ‘생계를 유지하려고 자발적인 성매매를 하는 것은 왜 범죄지? 더 나쁜 일들 중에도 합법인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명품가방을 사려고 술집에서 일하는 건 왜 나쁜 것이지?’
이런 질문들을 간직한 채 대학을 졸업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아는 선생님을 통해 한 통의 이메일을 전달받은 저는 ‘성노동’이라는 말도 ‘성노동자운동’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성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준비하는 모임이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고, 이곳에 참석하면 그 동안의 의문점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갔던 곳이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준비모임’이었지요. 지지는 6년의 활동기간 내내 무엇보다도 매춘에 대한 낙인을 가장 크게 문제 삼았고, 저 역시 여기에 동의합니다. 성노동이 불법인 것, 이로 인해 성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성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숨겨야만 하고 이로 인해 정당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매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노동자운동과 연을 맺고 지내는 동안 제가 단순히 성노동을 하는 당사자 활동가들 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노동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모든 이에게 필요한 이유는, 이 문제가 여성 및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기득권의 도덕 및 성적 억압, 계급, 장애인, 대학교육 등 온갖 주제를 포함하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지에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성노동자운동이 이야기하는 것이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이며, 성적인 억압을 느끼며 살아왔고, 돈 없는 계급에 속해 있으며, 달마다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각자만의 이유로 성노동자운동에 관련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지의 《똑바로 나를 보라 2》는 예전에 저도 했었던 질문들을 무대와 객석에 올리고, 관객과 배우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준비한 토론 연극입니다. 대본을 쓰신 노동당원 사미숙 씨는 “제가 지어낸 대사는 하나도 없어요. 전부 성매매를 반대하는 사람들 글이나 발언에서 나왔던 건데 그대로 정리만 한 거예요”라고 합니다. 어떤 대사들인지는 공연에 오셔서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매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신 적이 있다면, 공연 날 데자뷰를 체험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끝으로,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활동가 도균의 글을 소개하며 제 글을 마칩니다.
<성노동자 활동가 도균의 글>
《똑바로 나를 보라 2》 제작이 결정될 때만 해도 나는 굉장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작년에 연극 제작에 처음 참여해본 초짜 중의 초짜지만 나는 자신만만했다. 어쩌면 연극 제작 경험도, 연극 관람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2014년 인권연극제 참여작 《똑바로 나를 보라 1》과는 달리 《똑바로 나를 보라 2》가 토론극 형식으로 바뀌고,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면서 나는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나를 가장 멘붕하게 만든 것은 즉흥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니었다.* 과거에 성노동을 했었고, 지지에 가입해서 1년 넘게 활동해온 당사자 활동가인 나는 나름대로 성노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토론 파트 연습을 할 때마다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거나 같은 문장만 반복하곤 했다. 토론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다. 다른 활동을 할 때 당사자‧활동가라는 정체성이 그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보하지도 않고 내가 그 운동, 그 집단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고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에 대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성노동자니까, 지지의 활동가니까 섹스와 성노동에 대해 잘 알고, 금기나 혐오로부터도 자유로울 거라는 막연한 환상. 그리고 이 연극이 성노동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가 이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계몽하는 수단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성노동자라고 커밍아웃하고 활동을 하는 것은, 결코 내가 성노동에 대한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서가 아니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활동하는 것은 성노동에 대한 이 세상과 나 자신의 혐오를 똑바로 보고 그에 맞서기 위함이다. 성적 엄숙주의와 매춘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20여 년을 살아왔고, 이곳에서 훈육된 것들을** 내가 성노동을 한다고 해서, 활동을 한다고 해서 바로 털어낼 수는 없다.
이번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하는 분들과 서로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나도, 지지의 다른 활동가들도, 관객들도, 단지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이 연극을 연습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나는 《똑바로 나를 보라》라는 연극의 제목을 오로지 주인공 나용자(성노동자)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만 해석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똑바로 나용자를 보는 것 외에도 똑바로 마주봐야할 “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질문이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똑바로 “나”를 볼 수 있나요?
* 물론 내가 디테일하게 연기를 잘하거나 즉흥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다 정 안되면 포기하면 편하다.
** 굳이 낙태 비디오를 틀어주던 고등학교 때의 성교육뿐만 아니라 내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에는 성노동에 대한 혐오가 당연하고 그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이라는 전제가 깔여있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너희 엄마 창녀는 가장 심한 욕이었고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우리 엄마를 창녀다(a.k.a 엄창)가 또래들 사이에서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2013년 당기 순이익 900억 원대, 2014년 1,068억 원, 가입자수 320만, 케이블방송업계 2위. 태광그룹 산하의 주식회사 티브로드홀딩스의 모습이다. 2014년 1,068억이라는 당기 순이익은 업계 1위인 CJ 헬로비전의 당기 순이익 260억 원, 3위 씨앤앰의 당기 순이익 390억 원과 비교해 볼 때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 58시간, 월 평균 휴일 2.3일, 평균 급여 171만원, 평균 근속연수 6년,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노동자 82%, 정해진 휴일이 있는 노동자 21%, 시간외 근무수당이 아닌 당직수당으로 지급. 케이블방송 티브로드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2013년까지의 모습이다. 그런 삶을 어떻게 바꿀까 노심초사 고민하던 때 희망의 빛이 보였다. 같은 업종, 같은 처지의 씨앤앰 협력업체에 노동조합이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케이블방송과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 시도를 무수히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유지보수(AS), 개통(설치), 기술·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역 단위로 외주하청업체로 분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업체나 한 지역에서 몇 개 업체의 노동조합 결성 시도는 원청사용자의 탄압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회유와 협박, 폐업과 업체 교체과정에서 선별고용 등으로 인해 실패를 반복했다. 이처럼 케이블방송과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규모 하청업체로 산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 별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 씨앤앰 24개, 티브로드 48개, SK브로드밴드 96개, LG유플러스 70개 센터
그러던 와중에 2013년 2월 13일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이하 케비지부)를 건설하였고 3월 24일에는 티브로드홀딩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이하 케비티지부)를 결성하였다. 케이블방송 노동자의 조직화는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영향을 주어 2014년 3월 30일에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이하 SK비지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이하 LG비지부)가 동시에 결성되었다.
노동조합 파괴로 악명 높은 태광그룹의 탄압은 녹록지 않았다. 2013년 노조결성 후 37일간의 전면파업, 2014년 123일(노숙농성 91일)간의 전면파업 끝에 그동안의 노예같던 삶을 깨고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왔다. 그런데 2015년 올해 또다시 티브로드홀딩스 원청과 하청(협력사협의회)은 그동안 이뤄온 임단협의 성과를 다시 예전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티브로드 케이블방송이 다른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에 비해 더 높은 당기 순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티브로드 케이블방송의 A/S와 설치를 담당했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의 위기를 버텨온 유일한 생산성은 바로 A/S와 설치담당 협력업체 노동자들이었다. 티브로드의 계열사인 티브로드 한빛방송의 2014년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이 1,212억 원으로 티브로드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티브로드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3% 감소한 태광산업 전체의 영업이익 손실을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협력업체의 A/S와 설치 노동자들은 유료방송 사업자와 가입자 사이의 매개 역할을 담당하는 티브로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처럼 티브로드 케이블방송 가입자들을 직접 대면하며 회사를 대표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기업이익 이익을 위해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티브로드 원청의 처사는 그동안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토사구팽 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티브로드의 반사회적이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 행태는 부당한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이용자들에게 강요하는 등 무리한 영업으로 이어져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인 가입자들에게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티브로드 원청의 반사회적인 기업행태가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이어져 노동자들에게 불법적이고 부당한 임금삭감 및 구조조정, 4대보험료 미납 및 횡령, 다단계 도급기사 확대로 이어지는 등 티브로드 원하청 가리지 않고 반인권적이고 반사회적인 작태가 기업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올해 케비티지부의 투쟁은 임금은 물론이고 고용 자체를 지켜내는 투쟁이다. 이미 몇몇 협력사에서는 폐업 협박과 더불어 실제로 인원삭감을 실시하면서 조합원들을 해고하려 하고 있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임금을 삭감하라고 협박하고 있다. 작년 4개월이 넘는 전면파업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조합원들이기에 쟁의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면파업에 쉽게 나서지 못하리라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하기도 쉽지 않고 승리하기도 쉽지 않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이다. 조직화와 승리의 사례로 다른 수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었던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올해도 승리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많은 동지들의 연대와 응원이 절실한 때이다.
지금은 세계 3대 GMO 콩 수출국이 된 아르헨티나의 한 시골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삼류 배우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퍼스트레이디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의 권좌에 오른 에비타(본명: 에바 페론)는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 여성들의 복지를 위해 힘쓰다가 비참한 병마에 걸려 33세라는 짧은 인생을 1952년 마감하였다. 그녀의 일생을 뮤지컬로 극화한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서 울지 마오!)”가 1996년 맨처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올려졌을 때 전 세계인들은 흥분과 전율의 도가니에 빠졌다.
부자들과 대기업에 빌붙어 사는 일부 우파 언론과 지식인, 정치가들은 에비타의 포퓨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아르헨티나의 경제파탄 주범이라고 저주하는가 하면, 대다수 시민들은 그녀를 가난한 사람, 노동자, 여성들의 천사로 회고하며 그녀의 요절을 애통해 했다.
GMO(유전자조작 생물체) 콩의 천국, “차코”의 눈물
그 유명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눈물의 바다로 적시고 있을 무렵, 몬산토사를 비롯한 GMO/제초제 농약회사들이 개발한 항제초제, 항살충성 유전자변형(GMO) 콩 종자들과 고독성 농약들이 아르헨티나의 외진 산골 차코주(州)를 뒤덮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초기 증산효과와 인체 건강에 무해함을 역설하는 정부 농림당국의 적극적인 권유를 따랐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차코주는 GMO콩 재배 천국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 세계 3대 GMO 콩 수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연간 수출액의 50%가 GMO 콩이 차지할 만큼, 일견 GMO 콩 재배는 아르헨티나의 효자산업이 되었고 그 가운데 차코주는 GMO의 메카로 축복받는 성지로 우뚝 떠올랐다.
차코에 GMO 콩이 도입된지 20년이 지난 9월 20일 일요일 대한민국의 MBC 방송국은 황금시간대에 놀랍게도 “차코의 눈물”편을 르포(현지보고) 형식으로 10여분간 방영하였다. AP 통신기자 나타샤 피사렌코가 맨 먼저 카메라를 들이 대었다. ‘아이샤 카노’라는 죽어가는 어린 소녀가 얼굴과 온 몸 곳곳에 검은 반점과 검은 털로 뒤덮여 눈망울만 원망하듯 빤히 올려다보는 장면이 자세히 클로즈업 되었다. 그리고 연달아 수많은 차코 지방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뇌성마비, 종양, 암 등 신체 곳곳에 중증장애와 각종 이상(異常) 질병으로 스러져 가는 장면들이 소개되었다. 특히 신생아의 30%가 기형아로 태어나 죽었고 차코 일대의 가축 떼들이 이상질병으로 죽어갔다. 무시무시한 ‘지옥도’와 같은 풍경들이 차코 지방에 펼쳐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CNN과 BBC 방송국들이 일찍이 현장르포로 방영한 내용이었다. 흥분한 주민들은 지방 농정 주무당국자를 찾아가 항의 시정을 요구했으나, 신임 책임자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며 아르헨티나 수출의 주종인 GMO 콩 재배를 중단할 권한이 없음을 되려 설득하려 든다. 어디서 이미 많이 보고 들은 장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안드레스 카타스 교수는 CNN, BBC 방송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차코 지방의 참상은 몬산토사의 라운드업 레디(RR) 콩 GMO종자를 심으면서부터 해마다 제초제⦁농약에 내성이 강화된 수퍼잡초와 수퍼곤충들이 생겨나 이를 제압하려 더 쎄고 더 많은 제초제와 살충제 농약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땅이 오염되고 강과 들이 오염돼 모든 생물체와 인간의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한다.
사실 프랑스 등 많은 다른 나라들이 일찍이 여러 독립적인 동물실험 연구에서 이미 보고했던 현상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인간과 유전자조직이 유사한 쥐나 돼지 등에 2년 이상 GMO 사료를 급여하는 실험을 한 다음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GMO와 그 필수 동반자 글리포세이트 성분의 제초제 또는 니노익 성분의 제초제는 실험 포유류 동물들에게 종양, 유방암, 불임증, 난임증, 자폐증까지 일으킨다고 증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세상에서 벌들이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코의 경우는 실험용 쥐 대신에 실제 주민들과 가축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GMO 개발사의 이윤과 국가 수출 이익만을 위해 GMO 콩 재배를 처음 도입한 1996년에는 약 2만여톤의 라운드업 제초제(세계보건기구 WHO는 올해 3월 공식으로 그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를 발암성 농약으로 규정하였다.)를 사용했으나 2008년엔 그 10배나 되는 23만톤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업보가 다름아닌 바로 “차코 지방의 눈물”인 것이다. 에비타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가련한 백성들의 앞날을 위해 울어 달라고 노래한 뜻이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한국 농업의 막장: GMO 쌀, 고추, 잔디 등의 상용화 시도?
MBC의 아르헨티나 GMO 콩 농사의 비극적인 참상이 보도되기 10여일전 지난 9월8일 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박수철 GMO개발사업단장은 서울의 한 공개 세미나에서 “올해 안에 GMO 벼(쌀)에 대한 안전성 심사를 신청할 계획”임을 밝혔다(2015. 9.14, 농민신문). 다만 아직 GMO 작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식인 쌀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가 민감한 것을 고려하여 일단은 밥쌀용이 아닌 산업용 쌀로 안전성 심사를 받을 계획이다. 일단 화장품 원료(미백 기능성 원료)로 GMO 쌀 재배 허가를 2016년 7월경 먼저 받고, 수요와 소비의 확대추이를 봐가며 국민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다린 다음 “밥상용 GMO 쌀”의 본격적인 상용화 계획을 착수할 것이라고 전략까지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GMO 단장이라는 고위 농업관료가 감히 윗 인사 및 결재 라인의 허락과 강력한 뒷받침이 없이는 이러한 경천동지할 정책을 공공연히 세상에 밝힐 수 없다고 볼 때, 이번 발표는 모르긴 해도 대한민국 최고 농정수반 아니면 그 윗선의 분까지 보고되어 승인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GMO 사업단은 산업용 GMO 쌀에 이어 GMO 잔디 개발과 바이러스 저항성 GMO 고추에 대해서도 곧 안전성 심사를 청구하고 가뭄 저항성 벼(식용쌀?)를 비롯해 그간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 GMO개발사업단이 이미 개발해 놓은 200여가지 GMO 작물 다수를 물실호기(勿失好機), 안전성 심사 대열에 합류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충 270여일 간의 심사기간만 지나면 상용재배가 허가된다.
그리하여 내년부터는 우리나라에도 GMO 쌀과 고추, 잔디 등등이 곧 상용화(재배)될 전망이다. 1998년 이래 농림부와 농진청의 불문율로 지켜져 왔던 전국 소비자단체와 생산자단체들의 사전 동의절차도 거치지 않고, 묻지마 실용화(전국 재배)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그 안전성 심사절차와 과정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전혀 신뢰성이 없다. 사전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실험연구가 없이 오로지 서류심사 즉 말 뿐인 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그 안전성 심사위원들이란 분들이 다 그렇고 그런 분들이 뽑힐 것이다. 널리 알려진 GMO/농약/식품회사 장학생일지라도 “묻지마라. 갑자생이다.” 270일이라는 심사기일이 아까울 만큼 그들 대부분은 이미 친 바이오 유전자 변형 찬성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심지어 일부학자는 “농약은 과학이다.” “GMO 농산물 없인 77조원의 식품산업은 없다.”라고 평소 공공연하게 농약산업, 식품산업 찬미의 노래를 부르던 분들일게 뻔하다.
그리하여 식량 자급률 23%대인 우리나라에서 이젠 국산 GMO 농산물마저 출현하면 그렇지 않아도, 생산비와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없는 우리 농업은 안전성면에서의 차별성마저 사라져 박근혜 정부들어 완전히 개방된 국제 쌀시장에서 경쟁력이 거의 없어진다. 게다가 농촌 산내들의 환경생태계가 오염, 파괴되면 아르헨티나 “차코州의 눈물”과 같은 비극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가뜩이나 WTO/FTA 공세 앞에 풍전등화격인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들에게 이같이 막장을 고할 GMO농업이 하필이면 농업 농촌 진흥을 담당하는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에 의해 앞장을 섰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내년부터 봄과 여름이 오면 GMO 쌀, 고추, 잔디의 화분이 바람에 흩날려 산내들과 논밭이 유난히 좁고 밀집된 대한민국 농토를 순식간에 GMO 천국으로 바꿔 놓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보통의 농민들은 캐나다의 카놀라 농민처럼, 자기는 GMO 종자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GMO 보급사로부터 무허가 GMO 재배를 했다고 억울하게 특허법 위반으로 고소당해 막대한 벌금을 배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국제적으로 가격경쟁력이 낮은 우리나라 농업은 유일한 차별점인 안전성과 환경생태계 건전성 면에서 마저 더 이상 국산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 자명하다.
막상 GMO로 죽어갈 사람은 애궂은 농민 농촌 농업이며 소비자 국민들이다. “한국농업의 막장”이나 다름없는 GMO농업의 보급으로 이익을 보는 측은 외국사례로 볼 때, 초국경 다국적 제초제 및 농약회사와 GMO 종자회사, 대규모 식품가공업체, 그리고 그들에 빌붙어 떡고물을 즐기는 정치권, 농정관료, 언론사 그리고 나팔수 장학생 교수, 학자들뿐이다.
한 가닥 희미한 불 빛, 착한 농부 소비자 선구자들의 자구책
90년대부터 우리밀 우리콩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을 벌였던 시민, 종교계, 소비자, 농민들과 복음을 농촌에 외로이 전파해온 성직자들이 누가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자구책을 들고 나왔다. 정부, 국회가 아니하면 우리라도 우리 농산물을 Non-GMO(GMO 아님)라는 선언을 하는 식품표시제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아이쿱, 한 살림, 두레 생협 등도 모든 자가식품과 가공식품에 Non-GMO(비 GMO) 표시를 하겠다고 결의하고 나섰다. 카농, 전농 등 농민단체들도 하나둘 이들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우리 농산물의 생명체 유전형질(DNA Gene)을 절대 조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소시모, 경실련 등 소비자단체들은 이미 식품완전표시제 운동을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성경의 창세기에 창조주가 사람과 모든 동물을 창조한 다음, 에덴동산에 나시어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농산물을 가리키며 이를 먹고 자손을 번성케 하라는 뜻대로 농산물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산하고 가꾸겠다는 사람들이 숱하게 늘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이들이 장차 현 정부의 GMO 상용화사업단장을 포함 지휘체계상 결재라인에 있는 윗선의 책임부서장들에게 미리 닥쳐올 피해와 재해에 대해 항구적인 연대책임과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라고 법적 대응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동필 장관이 장차 GMO 폐해를 책임져야 할 날이 결코 일어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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