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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408] 지식인들과 시민들,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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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408] 지식인들과 시민들,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익명 (미확인) | 목, 2017/06/01- 17:42

'한경오' 사태, 지식인의 성찰이 필요한 때다

 지식인들과 시민들,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2017년 5월,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한경오(한겨레신문‧경향신문‧오마이뉴스)'라 불리는 진보매체들의 보도 태도를 둘러싸고 조금은 예상치 않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 논쟁의 사실 관계를 일일이 따지며 점검하는 것은 이 짧은 글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다만 이 논쟁에서 나온 두 가지 문제 제기는 짚어볼만 하다. 우선 한경오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제기한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의 평범한 시민들을 향한 태도 문제. 다음으로는 이 문제 제기를 둘러싼 '정치 팬덤' 현상의 문제이다. 이 시평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두 현상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한다. "지식인들과 시민들,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누가 지적 평등을 두려워하는가? 

 

'한경오'라는 진보매체들을 둘러 싼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좀 넓게 확장시켜 해석해보면, 정치엘리트들과 지식인들이 일반적인 시민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가 단순히 최근의 진보매체의 보도 태도를 둘러싼 문제 제기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어쩌면 언론매체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엘리트들이라고, 혹은 지식인들이라고 표방한 이들에게 품어오던 오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계몽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표방하면서도 은연중에 여전히 계몽자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 특히 진보세력의 모순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이라 여겨진다. 진보적 엘리트들이, 그리고 지식인들이 얼마나 세상을 변하게 하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긴 변명은 접어두자.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대중의 무지나 무관심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엘리트들과 지식인들이 무능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선 엘리트보다는 지식인들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필자가 '엘리트들은 권력의 편에 서지만 지식인들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다'고 구분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양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엘리트 행세를 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월터 리프먼은 <여론>과 <유령 공중>에서 어떤 이론이 "중요한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가 공중"이라는 견해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그 이론은 환상이나 다름없다며 독설을 날렸다. 그에겐 공중을 믿는 일은 신화 속 내용을 믿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반면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지식인들을 향해 '지적 능력의 차이를 위계 차이로 변질시켜선 안 된다'고,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능력이 있으며, 그렇기에 이들과의 지적 평등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필자는 이 양자의 차이가 엘리트들과 지식인들의 차이라고 본다. 혹 지식인들은 시민들과의 지적 평등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더하여 지식인들도 때로 혹은 많은 경우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치인들을 사랑한다는 것, 때로 정치를 지우게 되는 것 

 

반면 '한경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선을 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정치의 '팬덤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팬덤'이라는 말은 연예인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나친 팬덤 현상이 연예인들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공적 시스템에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정치'에서 '팬덤 현상'은 때로 정치 그 자체를 지우게 된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왜 팬덤 현상이 때로 정치 그 자체를 지우게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정치의 본질을 '사랑'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처럼 근본적으로 "사랑은 두 개의 몸에 머무는 하나의 영혼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사랑의 본질에는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가 없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가 정치를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본다면 이런 객관적인 거리는 필요가 없다. 반면 정치를 평등한 자들 간의 관계를 다루는 일이라고 본다면 이 객관적인 거리는 필수적이다. 이 거리가 없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정치 지도자를 지지하는 행위는 더 없이 좋아 보이고 반대하는 행위는 더 없이 미워 보이기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고 그 지도자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두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대신해 줄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면, 정치에 대한 반응은 지지하는 자들의 열광이거나 반대하는 자들의 냉소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때 사람들이 집중하는 대상은 지도자의 결정과 행위다. 반면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시스템과 절차, 제도를 통해 권력을 제한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 개인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팬덤'의 본질은 사랑하는 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지도자를 대체해줄 또 다른 지도자를 찾을 수 있지만, 지속적일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자 한다면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정치라는 영역 그 자체'가 아닐까? 

 

연대를 위한 성찰의 지점, '우리는 얼마나 민주적인가?' 

 

오래 전 나에게 자유주의를 가르친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논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의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진리를 내세우는 자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력하고 단호한 말들이 '진리'처럼 힘을 얻는 세상에서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는 필자의 모든 말은 의견에 불과하다. 지식인들이, 시민들이 지금까지의 내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필자가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규정하는 이로서 필자 자신이 어떻게 시민들과 연대할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무지한 이'이라고 불렀다. 다만 자신이 전문가를 자처하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그는 길거리에서 '무지한 스승'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나를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이런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자신을 시민으로 규정하는 이로서 지식인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답해본다. 2500년 전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에서 가장 빛나는 현자에게 독배를 내리는 결정을 했다. 때로 지식인들은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도 내어놓기 마련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통치하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테네의 시민들은 뛰어난 공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역사가 기억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집단적 지성이 연대할 수 있는 그 시작은 '성찰'이라는 생각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분주하다. 하지만 이 분주함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할 지점은 스스로의 행위를 돌아보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자라면 지식인이든 시민들이든 우리는 이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민주적이란 것의 실체가 단순다수결이 아님을 밝혀둔다. 오히려 여기서 민주적이라는 말은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평등한 주체로서 대하고 있는가라는 의미다. '평등한 주체로서 우리는 얼마나 민주적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함께 하는 성찰의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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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09/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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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다른백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권자전국회의, (사)국민주권연구원과 함께 오는 12월 5일(수) 오후 2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10호에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지난 1년 반의 추진내용을 평가하고, 올바른 경로를 제시하고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주제로 진행합니다. 김태동 전 경제수석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주 발제는 전성인 교수(홍익대)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전반의 성과에 대한 평가”와 조영철 교수(고려대)의 “조세 및 재정운영에 대한 평가”이며, 특별발제로는 최배근 교수(건국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추진과정에 대한 평가”와 남기업 박사(토지+자유연구소장)의 “보유세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 순으로 진행됩니다.

 

일시: 2018년 12월 5일(수) 오후 2시 ~ 5시

장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10호(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9)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참가신청서: https://goo.gl/cPUh1a (클릭)

다른백년-포스터-20181120(최종) fx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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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코, 개혁에 대한 국민 염원 실현할 문재인 -2위 안철수 크게 앞선 당선 유력 후보 -부패, 불평등, 청년실업 해결이 과제 -이전 정부와 다른 대북 정책 찾을 것 프랑스 최대의 경제 일간지 <레제코>는 ‘최순실 박근혜 국정농단 스캔들’의 여파로 대선이 코앞에 다가 온 한국의 상황을 보도했다.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 및 대북정책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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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7/05/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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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의 유럽방문 평가.

유럽에서의 문대통령의 메시지는EU정치 지도자들에게 혼란스럽고 초점이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문대통령은 부시정권 이후 일관된 미국의 ‘입증가능하며 완전하고 최종적인 북핵폐기 정책(CVID)과 최대 압박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북한에 대한 입장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17년간 미국의 로비에 휘둘려 왔으며, 그 중 몇몇은 매우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문제를 대해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역사인식, 잘못된 전략, 잘못된 정치는 역사적 뿌리가 매우 깊다. 이에 대응하여, 문대통령은 그들에게 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명백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그들이 요청하지 않았어도 단호히 이야기했어야 했다. 유럽인들은 문대통령이 트럼프나 미국의 청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말할 담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판단하지만, 그럼에도 문대통령은 유럽인들이 트럼프와 워싱턴의 이해에 반하여 행동하기를 기대하였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칼럼_181031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이번 유럽 방문의 상황처럼 이미 지난 9월의 국제연합총회에서도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었다. 그곳에서도 한국의 메시지는 불명확했고 모순적이었다.  당시 외교관계 위원회에서는, 그 누구도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어떻게 가능하게 될지 명백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심지어 구테헤스(Guterres) 유엔 사무총장마저도 트럼프 행정부를 두려워한 나머지 문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단 한마디의 지지발언도 못한 것이다. 

문대통령이 처한 입장은 대단히 굴욕적이고 완전히 비효과적인 것이었다. 한발 물러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시해보자. 문대통령은 미들파워를 지닌 프랑스나 영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 및 기타 유럽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한국의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지지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 미치는 남한의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능력은 상당하며, 이에 상응하게 이들 국가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다. 한국은 지난 9개월 동안 미국 그리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라는 동북아의 사회주의국가 3국과 함께 험난하기 짝이 없는 다자간 외교를 주도적으로 잘 이끌어 왔다.

남한의 입장에서, 현재 문대통령의 임기 하에서 향후 몇 달간이 결정적이다. 제한된 시간표에 모든 것이 걸려있다. 북한의 지도자와 인민 모두는 제재의 해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은 북한의 제재가 해제된다면 남한을 새로운 시각에서 존경하게 될 것이다. 오직 문대통령만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하려고 한다 해도 실패할 것이다. 볼튼이나 폼페이오 그리고 미국 정부의 다른 인사들은 제재의 해제에 반대하고 있다.

 

전략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는 문대통령과 김위원장이 트럼프를 판에서 배제한다든가 혹은 지지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득시킨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선택지임을 보여준다. 대신 트럼프는 가짜 위기를 만들어 내고 또 그것을 “해결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공을 주장할 것이다. 트럼프는, 개인적 통찰이나 이해력으로, 미국 정부가 추구했던 지난 17년 간의 극단적인 제재와 잘못된 전략적 선택지들을 클린턴 시대처럼 방향을 바꾸어 미국의 이해관계들을 제대로 이해시킬 만큼 되돌릴 만한 어떠한 관료제적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기억하는가 ?  클린턴은 자신의 정부와 의회의 핵심을 통제할 수 있었고 워싱턴이 정한 외교정책을 민주당의 최전선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국제문제에서 극단적인 공화당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북한과 합의할 여지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외교는 북한에 대한 이지메와 협박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볼튼(Bolton)은 멋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비록 청와대는 미들파워로서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자산을 과시하기를 주저하고 있으나, 미국과 유럽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지지하게 하거나 아니면 지켜보게 하는 식으로 유도할 수는 있다. 

 

마침내 제재는 사태의 진전을 위한 주된 열쇠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거의 2년간 줄곧 주장해 왔다. 이전부터 북한 제재의 중요성은 명확한 것이었다.  문대통령과 주변 조언자들은, 북한의 특정행위에 대한 대가로 특정제재의 해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어야 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트럼프와 미국행정부에게 사적인 내용을 포함하여 주요한 공적인 성과의 일부로서 제공했어야 했다.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일은 아마도 미국의 국가안전 보장회의(NSC)의 전 보좌관 맥매스터(McMaster)의 용인 하에서 벌어질 수도 있었다.

대신, 문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압박”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렀다”는 거짓말을 용인하면서, 미국의 “북핵폐기정책”과 “최대압박”을 수용하였다. 문대통령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임기 초부터 그렇게 했다. 이러한 배경은 모두 비생산적이고 잘못된 입장으로서, 한국의 외교적 유연성과 일관성을 제한하고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위에 언급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하면서 미국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돌파구를 찾아서

과거 몇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외교적 교착을 타파하기 위한 한가지 타개책이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한국 정부는 충분히 검토하여 잘 준비된 그리고 현실적이며 명확한 “플랜B”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칼럼_181031(1) 연합뉴스

 

고려해야 변수들

트럼프는 정부를 통제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싱가포르 합의라든가 향후 정상회담의 어떤 합의도, 설사 그가 이행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이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이다. 첫째는 트럼프와 주변인들에게 싱가포르 합의가 무엇이었는지 상기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랜 기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무기 실험이 없기 때문이 자신이 이겼다고 느끼고 있다.

트럼프가 행정부를 장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두 번째 점은 한국의 전략으로 미국이 문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혹은 지켜보도록 유도하고 관망하도록 묶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자신이 성실하게 임한다 하더라도 그가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문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합의하여 영변시설의 해체,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일차보고서 제공, 조사관의 실행 착수를 진행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해 미국정부로부터 어떠한 입장도 확인을 받은 바 없다.

따라서 김위원장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가장 최선의 선택지는 트럼프/문의 재임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후로는 워싱턴이나 서울로부터 진보적이고 현명한 대통령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것을 기대한다면 김위원장이 어리석은 것이다. 향후 2-3년이 남북한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남북한이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

 트럼프와/문의 재임기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김위원장은 트럼프에게 주려고 했던 것을 문대통령에게 줄 수 있다. 문대통령에게 건넨다면 문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몇 가지 유엔의 제재해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대통령은 김위원장으로부터 넘겨 받은 것을 유엔이나 트럼프에게 다시 전달할 수 있으며 몇몇 제재가 해제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김위원장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다음 몇 가지가 될 것이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핵실험금지기구( CTBTO)의 감찰 하에 영변시설의 해체이다.
제재가 해제되고 안전 및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동시에, 향후 핵시설에 대한 추가 리스트가 있으리라는 명확한 설명과 함께, 곧 모든 핵시설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질 때까지, 핵시설에 대한 일차 보고서의 공개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때의 언술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초의 보고서”는 두 가지를 확인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북한은 보고서가 불완전하다는 비판에 직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고서가 불충분하리라는 점이다. 둘째로, 이후의 보고서는 미국의 조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와 포괄핵실험금지기구의 조사관들은 비핵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미국의 조사관들도 함께 체류하겠지만, 이들이 다른 조사관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미국/남한의 군사연습의 관한 중단에 대한 중기적인 합의가 이루어 지고 아울러 외교적 노력이 지속된다면, 미사일의 발사나 핵실험은 중단한다는 공개적 서약에 대한 합의는 지금이라도 협상 가능하다.

 

어떠한 제재가 해제될 있을 것인가?

 남한-북한의 경제적 상호교류에 관한 유엔의 제재가 풀릴 것이다. 중대형 규모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조사, 미사일이나 핵 혹은 대량살상무기에 직접 사용되지 않는 하드웨어와 부품들의 거래, 국제금융 기구(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e,IFI)들에 대한 북한의 가입을 타진하는 초기 수준의 회합과 상호 방문 등이 가능할 것이다.

문대통령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트럼프/문의 재임기간을 이용해야 한다.  이곳 워싱턴의 노련한 전문가는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의 한국정책을 개선시키리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모든 정황들이 힐러리 클린턴이 제대로 된 교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트럼프의 재임기간이 문대통령에게는 한조각 행운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문대통령은 대단히 훌륭한 뛰어난 일들을 해왔으며, 트럼프 시대의 잇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남한 정부는 위에서 말한 제재해제의 교섭을 제안하기 위해 김정은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한의 행동이나 유엔의 제재해제 등 각 단계에서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 가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세부사항이 확실해지면, 합의는 미국에 설명되어야 할 것이고(“허락”이 아닌 설명이다), 그런 다음 중국과 러시아 일본 유럽 그 외 국가들에게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남한의 외교적 접근은 남북간 합의로부터 어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각국 나라 마다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후에 남한은 “유엔으로부터 전면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지 또 유엔 역시 남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청”이 아닌“기대”이다. 그리고 마침내, 남한은 “동의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합의는 유엔에 보고되고 발표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를 지지하거나 지켜볼 것이다. 발표가 끝나면, 단계별 일정이 잡힐 것이고 북한은 이와 관련한 첫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정책을 위한 조언에 관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다른 기업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현대를 북한에 들이고자 한 정주영의 최후의 계책으로 얼마나 심한 지경을 당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북한에 대한 남한투자가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요한 일을 하는데 부패한 협상은 필요가 없다.  

일찍이 국제사회와 미국은 1991년 소련의 붕괴를 망친바 있다. 일종의 쇼크치료 혹은 카우보이 자본주의 환경이 조성되어, 소련의 국가자산은 과두집단(oligarchs)과 정치인에 의해 탈취당했으며 국민들은 완전히 기만 당했다.

이로부터 한국이 얻을 수 있는 한가지 교훈은 미국과 국제기구는 북한을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분야의 역량있는 전문가들을 모아야 하며, 이들이 북한과 함께 근본적인 원칙들을 도출해 내야 한다.

한국은 최고의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그들의 조언을 구하여, 평양과 함께 서로 상이한 두 가지 경제체제간의 경제정책에 관한 지난 이십 년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최근 많은 이들이 이에 관련된 연구들을 해왔으며 남한정부 또한 자체의 북한경제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으나, 외부의 전문적인 조언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 이다.  

가능한 두 가지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북한의 역량강화(Capacity-building)가 모든 새로운 인프라 투자와 경제구조 건설의 중심적 부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관련하여 브래들리 밥슨 (Bradley Babson)의 논문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더해서, 적절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에너지와 통신 시스템이 주도 면밀하게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수, 2018/10/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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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북핵 목록 신고 요구 ‘막다른 길’로 가는 것 -美 핵물리학자 ‘38노스’ 기고, 北에 항복 요구와 같아 -북핵 리스트, 미 군사기획자에 표적목록 제공, 체제전복 가능성 미국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의 기고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 기고문은 북에게 완전한 핵 목록을 요구하는 것은 막다른 길, 즉 북한 체제의 전복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어 북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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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12/04-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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