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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안요진 님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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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3 03:49
당진시 안요진 님의 공약
작성자: admin
원스톱 경로당 구축
아동·청소년 지역돌봄센터 확대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지원 강화
AI 윤리·리터러시 교육 강화 및 AI 교육시간 확대
농어민수당 인상 추진 및 여성농업인 바우처 지원 부활
철강산업 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 추진
송악읍 생활인프라 대폭 확충
신평면 해양관광 및 정주여건 개선
송산면 수소산업 클러스터 조성

이 글은 AI 가 수집 요약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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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안철수의 멘토’에서 ‘문재인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외교ㆍ안보를 제외한 새 정부의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 자리다.

1990년대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개혁적 학자로서 대중적 명성과 지지를 쌓아온 그가 공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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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추가 인사 명단을 발표한 후 장하성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文 대통령 삼고초려… 안철수 멘토서 새 정부 정책실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장 신임 정책실장을 모시기 위해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廬)였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개인적 인연이 없던 장 정책실장에게 “경제 정책 설계를 맡아달라”고 캠프 참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장 정책실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고 경쟁 관계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 국민정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4ㆍ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장 정책실장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후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진 탈당 사태로 내홍에 휩싸였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장 실장의 생각이 컸던 때문에 허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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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안철수, 천정배, 장하성의 위기의 대한민국, 공정성장으로 길을 찾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당시 안철수 공동대표와 장하성 교수.

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장 정책실장의 마음의 문을 두들겼고, 영입에 성공했다.

장 정책실장은 지난달 21일 인선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감동했다”며 “문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서 뭔가 변화를 일으키고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것을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있구나 (하는) 그것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인선 발표가 있을 때까지 장 정책실장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장 정책실장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 보인다.

2015년 펴낸 자신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진보적 정부였다고 평가 받는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구성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할 정도로 재벌에 의존적이었다”고 비판했던 정 정책실장이 문 대통령과 손을 잡고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주목된다.

독립운동가ㆍ정치인ㆍ학자… 3대를 이어온 뿌리

장 정책실장이 그려 낼 새 정부의 모습을 짐작해 볼 때 그의 집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5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호남의 대표적 명문가 품 아래였다. 할아버지 세대는 독립운동가로,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로 이름을 떨쳤다. 장 실장을 포함한 3세대는 내로라하는 학자가 여럿 배출됐다.

장 정책실장의 증조부는 구한말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일대에서 손꼽히는 만석꾼 부호였다. 증조부 슬하 형제가 나란히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작은 할아버지 장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뒤 고문 끝에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큰 할아버지 장병준씨는 일본 니혼대를 졸업한 뒤 김구 선생 곁을 지키며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외부무장을 지냈다.

막내 할아버지 장홍렴씨는 중국 베이징국민대를 다닌 뒤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들어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장 실장의 할아버지 장병상씨가 철도공무원으로 집안을 건사하며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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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tstory.tistory.com/113)

장 실장의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가 주축이다. 아버지 장충식씨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도의원을 지냈다.

작은 아버지 장영식씨는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막내 삼촌은 3선 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부 장관이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할아버지 세대에 이어 아버지 세대 4형제 모두가 6ㆍ25 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 장씨는 압록강 전투에서 기관총탄에 맞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장 실장 세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수가 여럿 있다.

장 실장의 친누나는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막내 동생은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다. 나란히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몸담고 있는 장하준ㆍ장하석 교수가 사촌동생이다.

소액주주 운동ㆍ기업 지배구조 개선 앞장서 온 개혁성향 학자

물론 장 정책실장은 개혁 성향의 학자로서 더 이름이 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90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임한 27년차 학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하며 재벌ㆍ대기업 등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주창해 왔다.

장 정책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에 몸을 담으면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경제민주화를 시민운동을 주도하며 참여연대에 ‘경제민주화 위원회’를 만들었다.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13시간 17분간 계열사간 부당거래 문제를 집요하게 따져 물어 ‘삼성 저격수’ ‘재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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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당시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장하성 정책실장이 삼성전자의 책임경영 체제가 미흡하다며 성토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 받은 100만여주(지분율 1.05%)가 유일한 무기였다. 2006년 제일모직 소액주주 2명과 함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게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30억여원의 배상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가(家) 편법승계의 핵심 고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이끌어낸 사건이다.

시장의 힘을 빌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를 바꿔내겠다는 게 장 정책실장의 목표였다.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장 정책실장과 함께 했었다.

2006년에는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편드’(KCGFㆍ일명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다시금 화제를 뿌렸다.

당시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지분은 인수한 뒤 주주총회를 통해 불투명했던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으로부터 1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남양유업ㆍ일성신약 등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좋은 기업지배구조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운영위원과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는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대중들에게는 ‘재벌 저격수’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학자로서 장 정책실장의 관심은 항상 ‘소득 양극화 해결’에 닿아 있었다.

문 대통령도 인선 결과 발표에 직접 나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오신 경제학 분야 석학이자 실천운동가”라며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중심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사회 정책으로의 변화와 경제 민주화, 소득주도 성장과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장 정책실장은 최근 잇따라 펴낸 ‘한국 자본주의’ 등의 저서에서 소득양극화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 정책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두는 내부유보금과 관련한 초과 내부보유세 도입, 소득세 누진 강화, 법인세 개혁,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배상제 도입 등을 언급했다.

이명박ㆍ박근혜 보수정권 10년 동안 강조해 온 성장 중심의 ‘낙수효과’가 아닌, 분배구조 개선을 통한 ‘분수효과’과 실현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정책들이다.

이러한 클 틀에서 재벌개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장 정책실장은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벌 때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재벌 개혁에 ‘두들겨 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재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 등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장 정책실장이 쓸 칼은 크게 두 자루다. 참여연대에서 손발을 맞춰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한 손에,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테크노크라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한 손에 쥐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추게 될 장 정책실장의 칼춤이 춤사위로 이뤄져 있을지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목, 2017/06/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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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윗물이 아랫물을 밀어내는 것은 자연현상(現狀)이고, 이러한 물의 성질들을 소상히 이해하는 것을 수리(水理)라고 하고, 성질을 잘 터득하여 우리 생활에 활용하는 것을 치수(治水)라고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최저임금 액수와 인상률에 대하여 사회적 논쟁과 불협화음이 정도를 넘고 있다. 대부분의 논쟁은 매우 지협적이고 한정된 예를 일반적인 것으로 과장하고, 자신만의 위치를 고집하는 좁은 시각에서 상황을 해석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말 악의적인 것은 수구적 지식인과 언론이 중심이 되어 최저임금이라는 주제를 을과 을, 즉 저임노동자와 자영업자/중소상공인 간의 이해충돌로 몰아가면서 갈등과 불안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¼¼¼Á¾=´º½Ã½º¡½°­Á¾¹Î ±âÀÚ =³»³âµµ ÃÖÀúÀÓ±Ý 7530¿øÀ¸·Î È®Á¤µÆ´Ù.  15ÀÏ ¹ã Á¤ºÎ¼¼Á¾Ã»»ç °í¿ë³ëµ¿ºÎ¿¡¼­ ¿­¸° ÃÖÀúÀÓ±ÝÀ§¿øÈ¸ Àü¿øÈ¸Àǽǿ¡¼­ »ç¿ëÀÚ-±Ù·ÎÀÚ-°øÀÍÀ§¿øµéÀÌ Ç¥°áÇÑ ÃÖÀúÀÓ±Ý Àλó¾ÈÀÇ °á°ú°¡ ÀûÇô ÀÖ´Ù. 2017.07.15.   ppkjm@newsis.com
지난 15일 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사용자-근로자-공익위원들이 표결한 최저임금 인상안의 결과가 적혀 있다. 이날 표결로 내년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확정됐다.

최저임금에 대한 악의적 주장들

최저임금 논쟁은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고백적 접근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개혁적 관점과 이를 과제적 상황으로 설정하면서 우리사회를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노력의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시급 7,540원, 지난해 대비 16.4 % 인상에 대한 결정은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문재인 정권에 참신한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고, 다중다층의 이해관계 속에 한국도 이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대의 쾌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을 비판하는 핵심적인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의 현실에서 시급 일 만원 수준의 최저임금은 지나치게 과도하여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산업활동을 위축시키며 경제활동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가능성 매우 높으며, 최저임금 이하의 저소득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중소 상공업과 자영업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고용을 축소시키거나 폐업을 하면서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증가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지역적 업종별 편차가 큰 현실적 조건에서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위법자를 양산시키는 매우 비현실적 조치이며, 정상적 노동조건을 적용할 수 없는 노령층과 장애우 등에게는 오히려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는 역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위의 주장은 한마디로 헬조선 같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무리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적당히 대처해 나가자는 것(status quo)이 요지이다.

엘버트 허쉬만은 보수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 국역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입장을 허구적이거나 과장된 ‘역효과와 무용론과 위험이론’으로 포장한 수구적 논리라고 명쾌히 혁파한 바 있다.

유럽의 18세기 역사를 들여다 보면 당시에 보편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우 불순하고 위험한 인물로 취급한 황당한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그 나라 복지수준 고려해야 

우선 최저임금의 인상이 과다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전개 해본다.

양측
내년도 최저임금 상승률은 역대 최고인 16.4%이다. 이러한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단순히 최저임금 액수만을 떼어놓고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더불어 사회이전 소득과 공공서비스 수준 즉 사회안전망의 질적 수준이 고려된 종합된 내용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수준은 당연히 소속사회에서 인간적인 삶이 지속가능한 필요조건인 생활비용에 대응하여 설정되어야 하며, 생활비용은 소속사회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의 수준과 질적 내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의 경우 2016년 현재 GDP의 9-10% 수준이 사회안전망과 공적 서비스비용으로 지출되고 있으며 이전소득효과는 3-4% 수준에 불과한 반면에 OECD 평균으로 보면 GDP의 22-25% 수준이 공적 서비스비용으로 지출되면서 사회이전소득 효과가 10%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국가의 복지기능 결핍으로 한국시민들의 가계비에서 차지하는 주거, 교육, 의료, 통신 등 비용이 상대적으로 과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 최저생계비 수준의 편차가 매우 큰 조건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외국의 예로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통계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2017년 현재 시점의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의 신속한 인상을 요청하는 것은 그 동안 발생한 국가의 실패에 대한 보상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의 수준은 소속사회의 복지정책과 공적 서비스의 수준과 상대적이며 반비례적인 함수관계를 지니게 된다고 할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으로 발생하는 최저임금의 앞에 붙는 인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버리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다움 또는 존엄은 기업의 비용문제를 넘어서서 현대국가가 존재하는 제1의 근거이다. 만약 국가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하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고, 시민들 입장에서는 국가에 의무를 다하고 공적 강제력에 승복해야 할 근거가 사리지는 것이다.

국가의 선택권이 자유롭지 못한 조건에서 소속국가에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로서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이기도 하며, GDP 규모에서 10위권을 형성한 한국에서는 국가의무적 사항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정책의 2차적 영역인 복지영역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조밀하게 구성하여 미시적 가계소득에 실질적 증대효과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20년간 궤도를 이탈한 (rush to bottom) 한국의 현실에서는 단기적으로 산업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차적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최저수준의 임금을 신속히 인상하여 보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적정임금은 오히려 경쟁력 제고

양질의 노동력이 공급 가능한 조건에서,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은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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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인상의 범위는 노동생산성 내로 제한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노동생산성이 임금인상의 근거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임금인상으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향상도 있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후자의 효과를 고려한 측면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mediapen.com/news/view/67320)

적정한 임금인상은 기술개발과 산업혁신에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임금과 경쟁력과의 관계는 역 포물선적인 상관성을 가지며, 일정수준의 임금인상은 해당기업과 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포물선의 극점을 넘어서면 급격한 부담을 주면서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포물선의 극점을 넘어서는 위험은 최저 임금의 인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밥통인 공공기업과 재벌수준의 대기업의 과다한 임금부문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기업을 파산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한국경제의 실력을 넘어선 과다한 임금분야에 있는 것이지, 기본생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산업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필자는 매우 중요한 제안을 던지고자 한다. ‘일시적인 최저임금 인상에서 오는 한국경제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평균임금의 두 배 이상 받는 영역의 임금을 5년간 동결 또는 억제하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구조는 수직하방적 삼각형 구조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주장하는 낙수효과와의 정반대방향으로 대부분 경제활동의 성과가 상층부를 향해서 이동하는 빨대의 경제이다.  

양질의 노동력을 생활수준 이하의 최저임금으로 고용하면서 발생하는 잉여와 혜택을 상층부의 재벌기업과 공공기업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는 전문가 집단이 배타적으로 즐기고 있는 구조이다.

당연히 개혁정부로서 문재인 정권의 역할은 최저임금, 연대임금, 복지정책 등을 통하여 이러한 수탈적 빨대구조를 혁파하고 선순환적 재분배구조로 이동하여 한국 산업과 경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을’과 ‘을’의 싸움이라고? 장기적으로 내수 확대, 단기적으로는 보완대책 필요

이런 맥락에서 최저임금인상이 중소상공업과 자영분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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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알바천국의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오를 경우 60% 가량이 알바생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은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의 비용 증가를 초래해 궁극적으로 고용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섬세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pollmedia.net/news/articleView.html?idxno=174)

최저임금인상을 포함한 종합적 소득주도 성장론의 배경에는 위축될 대로 위축된 내수시장 수요을 확장하여 내수에 기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정상화하고,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두 분야에 시장의 적정규모를 기반으로 기술혁신과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데 있다. 

GDI 50% 미만인 800조에도 못 미치는 내수시장규모를 OECD 평균인 65% 이상인 1000조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면, 다른 어떠한 경제적 수단과 정책보다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2-3년 이상 잠복기간이 필요할 터인데, 이 기간 동안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기와 자영업이 잘 버티어 내서, 잠복기간 이후 나타날 선순환적 성과와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여하히 필요한 과정과 절차를 적정하고 효과적으로 설계해 내야 하는 점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임금인상에 따른 제품과 서비스비용의 인상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저임금인상의 적용혜택을 받는 250-400백만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하여 5천만 시민들이 연대적으로 물가인상의 부담을 공유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경험을 할 것이고, 현재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이 이루어 질 것이다. 정부는 당연히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와 절차가 이루어지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 도입하고, 필요하면 강력한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

자영업 분야에 대해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까지 2-3년정도의 일정기간에 한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정부분을 국가가 보조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EITC처럼 보상적 방식도 가능할 것이고, 고용에 대한 개별적 직접적 지원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10조원 이상의 재정투입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半)실업자 영역으로 머물고 있는 자영업 분양에 일대의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사회적 경제라는 주제를 결합시켜 지역단위의 협력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면서 재구성하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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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인건비라기 보다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자영업 비중, 이에 따른 경쟁격화라는 분석이 있다. 따라서 최조임금 인상을 억제만 할 것이 아니라, 자영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과 혁신이 필요하다. (자료: 민주노총)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매우 복합적인 내용이 서로 얽혀져 있다. 우선 대기업과의 거래 또는 시장에서의 경쟁 관계에서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거래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한국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양질의 인적 재무적 자원을 대기업과 공공영역에서 싹쓸이 해나는 조건에서 독자적으로 생존의 기반을 닦아나가야 하는 이중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역차별적으로 중소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공정거래의 환경을 조성해 주고, 중소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영역에 보호막을 쳐서 중소기업 영역에서 발생한 부가가치가 삼각형 빨대 구조로 상층부에게 일방적으로 흡수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책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잘 지적하였듯이, 중소기업 영역에도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원과 함께 혁신과 변화를 위한 촉매적 자극이 매우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제고 없이는 한국경제에 미래는 없다.

환경적 일반적 지원제도와 정책은 강화할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개별적 직접적인 지원은 오히려 독약이 되고 정치적 부패의 요인을 제공한다. 부득이 직접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면 사전적인 방식이 아닌 사후적으로 엄격하게 평가하여 집행되어야 한다.

경영을 잘못하거나 시대에 뒤쳐진 기업은 자연스레 퇴출되어야 한다. 썩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새살이 돋는 법이고, 장기적으로 최저임금을 지불할 수 없는 기업은 문을 닫는 것이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향후 2-3년간을 유예기간으로 설정하여 가능한 세제적 재무적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失보다 得 많을 것

일부에서는 업종별 지역별 편차에 따라서 최저임금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일리가 있는 듯하나 동시에 함정일 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예컨대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 또는 개별적 국가주권이 여전히 유효한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현지 조건에 맞는 차별적 적용이 가능한 반면에, 헝가리 만한 조그만 국토 안에 도시와 농촌 그리고 지역단위의 편차가 심각한 한국 현실에서 편차에 따른 차별적 적용을 허용하는 순간에 기존의 격차는 굳어지면서 오히려 더욱 벌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과 업종에 관계없이 혁신과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오히려 예외가 없는 적용을 통하여 격차를 점차적으로 좁혀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 보다 심층적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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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에 근거해 최저임금 상승이라는 정책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시도가 목표한대로 바람직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정책 당국의 섬세한 모니터링과 보완책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분야에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시장의 조건이 작동되는 영역에만 최저임금이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 온다.

노령층과 장애우 같은 영역은 임금을 비용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노동시장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접근하여야 한다. 예컨대 65세이상의 노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는 인생 이모작이라는 새로운 경험과 사회적 봉사와 참여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노령층 생활비용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복지적 정책으로 풀어가야 할 사항이다.

장애우 문제 역시 주체적 참여적 사회활동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면서 이에 대한 보수는 정부의 지원정책과 연동하여 보상적 방식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순리적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최저임금정책을 노동시장이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법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일체의 예외가 없이 적용되도록 해야 하지만, 적용이 불가한 예외적 영역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명하게 합의되지 않은 예외가 묵인되는 정책과 법규는 더 이상 실행해야 할 의미가 없어진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임금이 비용이라는 사실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현상에 얽매여 규정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잘 이용하고 극복하여 자유의 확대라는 역사 이야기를 형성하여 왔듯이,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의 잘못된 현실과 대립하는 장애물적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고자 하는 세상을 위한 견인적 조건으로 작동해야 한다.

물의 성질을 이해하고(水理) 이를 활용하여 삶을 풍요롭게 이어온 것(治水)이 자유를 향한 인류의 기록인 것처럼,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끌어낸 최근 최저임금의 합의 과정은 한국사회를 보다 성숙한 미래로 이끌어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금, 2017/07/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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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역자 : 김종철 옮김
출판사 : 녹색평론사

올해 첫 “꿈꾸는 책방” 모입니다.
첫 책방 모임이니 만큼 부담없이 읽고 오실수 있도록 두께도 얇고(212쪽) 책 자체도 조그만(A5)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선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환경에 대해 고민 있는 사람이면 한번쯤 고민하게되는 “경제성장”이라는 중요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환경에 대해서 혼자서 이러저러한 고민하시던 분들~ 오셔서 가볍게 책읽고 고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시 : 3월 27일(월) 7시
장소 :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294-8 도광빌딩 4층)
도서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참가자 : 청주충북환경연합 회원님 누구나 가능, 회원 아니어도 오셔도됩니다
준비할것 : 책만 읽고 오시면 됩니다.
신청 : 010-8875-2466(청주충북환경연합 업무폰)으로 문자 신청
문의 : 043-222-2466(이성우)

 

 

화, 2017/03/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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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본 분권지상주의의 문제와 과제

 

신진욱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방분권지상주의

1700만 시민의 수개월에 걸친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개헌안의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면서 오늘날 국가대개혁의 핵심을 ‘지방분권국가’로 압축했다. 지방분권을 지지하느냐의 문제와 전혀 별개로, 지방분권이 한국사회의 최상위의 법규범과 국가정체성을 표현하는 헌법 1조의 반열에 오를 만큼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엄밀한 의미의 지방분권, 즉 입법․행정․재정의 측면에서 중앙과 지역의 권력불균형을 완화하는 과제가 긴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한국의 헌법, 지방자치법, 사회보장법 등은 지자체 조례 제정을 법령의 허용 범위 내로 묶어두고 있고, 중앙정부가 지역 입법에 개입하여 통제할 수 있으며, 세입 면에서 지방세 비율이 여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면서도 세출의 절반 이상을 지자체에 떠맡김으로써 지역의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권한과 독립성을 확대하고 중앙-지역 간 관계를 명료히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문병효, 2015; 최봉기, 2010). 

 

그러나 한 사회의 문제와 과제는 다차원적이다. 국가기관 내의 권력분립, 시민적 자유의 보호, 평등과 연대를 위한 국가능력의 증대, 경제권력으로부터 국가의 자율성,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부와 삶의 질, 주민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지역정치 등 제각기 중요한 여러 목표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지방분권’의 이름하에 뒤섞는 것은 정확한 현실인식과 대안모색을 가로막을 뿐더러, 지역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글은 지방분권으로 통칭되고 있는 여러 문제와 과제를 분별하고, 국가와 지역을 함께 개혁하기 위해 고려할 쟁점들을 고찰한다. 

 

민주화에서 분권국가 선언까지

출발점은 1987년이다. 독재종식과 더불어 일련의 민주적 기본권과 정치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된 극도의 중앙집중적 권력구조의 유산을 개혁하는 과제가 남았다. 여기서 두 갈래의 문제틀이 생겨났다. 그 하나의 축은 국가개혁이다. 대통령․청와대 권력의 분산, 정당정치의 실질화, 선거제도 개혁, 참여민주주의 확대 등이다. 이것은 이른바 ‘87년 체제’의 중대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다른 하나의 축은 지역개혁이다. 1991년 지방자치 개시와 1995년의 제1회 동시지방선거 실시 이후 ‘지역’의 정치적 중요성이 커졌다. 1990년대 내내 시민단체들은 지방자치, 지방분권 운동을 벌였고, 1990년대 후반부터 대선 후보들은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서울․수도권 집중 경향이 심해지면서 지역 간 격차를 완화시켜야 할 숙제가 더해졌다. 여기서 지방분권과 민주화의 문제틀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역 수준의 권위주의와 권력집중도 가능하며 지방권력이 지역 경제권력에 종속되어 사회경제적 집중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곧 민주화와 권력분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을 모든 좋은 것의 대명사로 간주하는 믿음이 고착됐다. 그것이 분명해진 계기가 2003년의 ‘지방분권 3대 특별법’ 제정이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은 수도권 집중 완화, 중앙사무의 지역 이양, 지방정치의 책임성 강화, 주민참여 촉진 등 다양한 목표를 담고 있었는데 모두 ‘지방분권’으로 간주됐다. 이어 2005년에 노무현 정부는 복지사업을 중심으로 중앙사무의 많은 부분을 지방으로 이양했다. 이 과정은 ‘지역’에 관해 많은 혼란을 안고 있었지만 이를 봉합한 채 성급하게 진행됐다(김태일, 2007).

 

2018년의 대통령 개헌안은 이제 지역발전에 관련된 제반 목표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핵심 과제가 된 국가 권력구조의 개혁까지 ‘지방분권국가’라는 지향으로 압축하면서 혼돈에 정점을 찍었다. 이로써 국가 권력구조의 개선, ‘촛불’이 상징하는 시민권력의 구현, 지역균형발전, 지방권력 강화, 지방정부의 책임성과 주민참여 확대 등 모든 과제를 ‘지방분권’이라는 하나의 개념이 대표하게 됐다. 이것은 규범적 구속력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개헌안에서 지역 권한 강화에 관한 세부 조항은 ‘지방분권국가’라는 엄청난 선언에 비하면 온건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는 지역의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안이 과도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방분권’이 현 시대의 여러 개혁과제를 상징할 수 있다고 믿는 인식의 혼란이다. 이 혼란을 교정해야 지방분권과 지역정치, 지역의 복지와 균형발전을 제대로 이룰 수 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

먼저 그동안 ‘지방분권’이라는 이름으로 혼동되어 온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의 상이한 문제와 과제를 분별해야 한다. <표 1-1>은 세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문제시되는 현실과 그로부터 도출된 즉각적 과제를 정리한 것이다.

 

⒜ 지방자치의 일차적 문제는 중앙정치가 지역정치를 좌우하는 현실이다. 권위주의 시기 동안 독재권력은 단체장을 중앙에서 임명하고 통제했다. 그런 만큼 지방자치 시대의 최대 의의는 지방정치를 활성화시키고 대표성을 높이는 것이다. 2006년과 2010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참여와 정당정치를 확대하는 일련의 법 개정으로 지방정치는 크게 활성화됐다. ⒝ 지방분권의 강화를 요구하는 문제는 지자체의 자율성과 입법적, 재정적, 행정적 역량이 약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인데,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자율과 책임이 주어졌을 때 그것이 지역 경제와 재정의 자립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문제를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다. 중앙에 대한 ‘지역’의 강화와 수도권에 대한 ‘지방’의 강화는 분명히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셋 중 하나의 문제해결 노력이 자동적으로 다른 쪽의 문제해결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20여 년 동안 지방분권이 진전되지 않았듯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지역균형발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지역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은 지역 간의, 특히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늘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역분권이 지역 간 격차 완화와 함께 가려면, 지역권력의 강화에 준하는 강도로 지역균형을 위한 중앙의 개입능력을 확보하고 지역 상호간 연대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권이 이런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분권의 과제와 정치경제적 균형발전의 과제는 같지 않으며 자동적으로 상호강화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의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과제를 ‘따로 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중앙과 지역의 동시적 개혁과제

다음으로 우리는 중앙과 지역 수준을 아우르는 범위로 시야를 넓혀서, 촛불과 탄핵 이후의 국가개혁과제를 ‘지방분권국가’로 집약하게 만든 혼란을 풀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겪으면서 제기된 핵심 개혁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앙집중적 권력구조를 분산시켜 국가기구 내의 권력분립과 상호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정치․사회적 기본권을 보호하며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은 각각 행정부/입법부 간의 수평적 관계와 정부․정당/시민 간의 수직적 관계에 관련된다. 한편 지역에 관련되는 개혁과제는 일차적으로 중앙-지역 관계에서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는 개혁을 지역 수준에 적용시켜 보면 다른 많은 개혁과제가 분명히 보인다. 

 

<표 1-2>는 정치제도 내의 수평적 관계와 정부․정당과 시민 간 수직적 관계에 관련된 개혁과제를 중앙-지역 관계, 중앙 수준, 지역 수준에서 함께 고찰하기 위한 메타도식이다.

 

먼저 ⒜와 ⒝에서 출발해보자. ⒜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남용으로 명백히 드러난 권력구조의 과잉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권력분립과 상호책임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긴급해졌다. 이와 달리 ⒝는 국가기구 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관련된다. 2000년대에 여러 차례 일어난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의지는 대통령제를 못 믿겠으니 국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정부․의회․정당 등 ‘모든’ 정치제도를 시민의 감시와 참여, 압력 하에 두길 원했고, 또한 정치계급에 의해 사유화된 국가가 아니라 시민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공적 국가를 갖길 원했다. 중앙정치 개혁은 ⒜와 ⒝를 함께 담아야 한다.

 

그럼 이 관점에서 지역의 문제를 보자. ⒞와 ⒟는 중앙과 지역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관계를 대하는 이제까지의 지배적 프레임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핵심어로 했다. 그러나 정치제도와 정치-시민 관계의 개혁이라는 문제틀과 중앙-지역 관계의 문제틀을 교차해보면 빈 칸에 물음표가 생긴다. 양자의 연관이 명백하려면 지역이 중앙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와 분배정의를 보여주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 어떻게 하면 지방정부와 의회가 서로 건설적으로 견제하고 협력하면서, ⒡ 주민들의 감시와 참여를 보장하고 모든 계층의 고른 행복을 위한 복지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게끔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과제

그렇다면 바람직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표 1-3>의 왼쪽 열이 중앙과의 관계에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과제라면, 오른쪽 열은 중앙뿐 아니라 지역 수준에서도 실현되어야 할 몇 가지 실질적 과제를 열거하고 있다.

 

⒜에서 지방정치의 형식적 대표성과 선거경쟁의 활성화는 분명 지방정치 발전의 한 측면이지만, 선거정당성만으로 민주주의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보여줬다. 지방정치 민주화를 위해서는 추가적 과제가 달성되어야 한다. 지방선거가 각 지역의 의제와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고, 단체장과 의회 간의 권력분립과 상호책임성이 실현되어야 하며, 선출된 권력의 정책이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에 반응해야 하고,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과오에 대해 주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정치권력이 지역의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에서 현재 극도로 낮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되, 강화된 지역권력이 어떤 정부, 어떤 정치를 실현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지방정부가 토건․성장주의 정책으로 재정을 확충하려는 경향, 지역 간 입지경쟁 속에서 감세와 각종 탈규제 등의 유인을 사용하는 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지자체의 자율적 복지 노력을 강제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존재해야 한다. 더불어 중앙정부의 정치개혁이나 복지확대 노력에 대해 일부 지방정부가 비토를 행사하여 개혁을 저지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정치·경제·복지 등 여러 면에서 지방분권이 지역 간의 불균등 발전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제도 개혁을 설계해야 한다.

 

이처럼 ‘좋은 분권’은 ‘좋은 국가’ 만큼이나 많은 문턱을 가진 길이다. 일단 지방분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사회변화에서 ‘시점과 순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다(신진욱·서준상, 2016). 지역정치를 민주화하고 친복지세력을 강화하는 과제는 지방분권 못지않게 긴급하다. 이것 없는 지역권력의 강화는 곧 지역의 정치엘리트와 경제권력의 강화를 뜻한다. 

 

지방분권국가와 복지국가

끝으로 국가적 수준에서 분권과 복지의 관계를 보자. 그 핵심 질문은 “지방분권국가는 복지국가를 촉진하는가?”, “선진적 복지국가들은 지방분권국가인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지방분권국가는 모호한 개념이다. 지역분권적 국가는 반드시 국가형태상 연방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연방제 국가도 중앙-지역 관계가 위계적일 수 있고, 단일형 국가도 분권적일 수 있다. 

 

먼저 연방국가 체제는 복지국가 발전을 촉진하는가? 이에 관해 그동안 찬반이 있었지만 오늘날 다수의 견해는 양자가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 오스트리아와 같은 유럽의 연방제 나라들은 발전된 복지국가를 갖고 있지만, 미국에선 연방제 국가형태와 복지국가 저발전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미국에서 연방제 체제는 자본이동을 용이하게 하여 주정부들은 종종 재원확보를 위한 입지경쟁을 하면서 감세, 탈규제 정책을 펼쳤다. 연방제는 또한 대법원을 통해 연방의 권한을 제약하고 제도개혁을 비토하는 헌법적 기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국가체제를 설계하던 시기에 부르주아 세력은 바로 이런 효과를 내다보며 연방제를 강력히 주장했고 관철했다(알레시나·글레이저, 2012). 

 

다음으로 강조할 것은 모든 연방제 국가에서 지역이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연방과 주의 권한 및 책임이 분명히 분리된 이중적 연방제 모델이며, 주는 입법과 재정 면에서 강한 자율성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연방제지만 연방이 포괄적 입법권과 감독권을 갖고 있고 주정부는 주로 집행을 담당하여, 연방과 주 사이에 위계적 관계가 강하다. 그 대신 독일은 연방상원(Bundesrat)이 각 주의 현직 대표자로 구성되는 유일한 국가다. 상원은 주에 관련된 입법에 참여하며 헌법재판소에 대해 강력한 선출권과 제소권을 갖는다. 독일은 이러한 결합형 연방제(Verflechtungsföderalismus) 혹은 협력형 연방제(kooperativer Föderalismus)를 통해 권력구조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 추구해왔다.  

 

한편 단일국가 체제인 복지국가에서 지역정부의 역량과 역할이 연방제 국가에 비해 더 작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남찬섭, 2016).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구 나라들은 단일형 국가체제지만, 영미권 연방제 국가보다 훨씬 강한 지역정부의 복지행정 능력과 복지정치 기반을 갖고 있다. 북구에서 전체 공공지출․세입 중 지역의 비중은 30%~40%대로 10%~20%대인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연방제 국가보다 상당히 높고, 전체 공공부문 고용 중 지역정부의 고용 비중 역시 북구에선 70% 내외로 10%대~50%대에 걸쳐 다양한 영미권 연방제 국가보다 훨씬 높다. 이에 반해 미국에선 일찍부터 지역 수준까지 선거정치의 힘이 커져서 공공기관의 독립성과 지속성이 약했고, 정치-사회 간에 후원주의 관계가 발전하여 사회정책의 미발달을 초래했다. 

 

끝으로 지방분권의 강화 또는 약화가 복지국가의 발전과 후퇴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맥락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선 다층적, 분권적 권력구조가 1980~90년대에 급격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했지만, 2000년대 하르츠 개혁에 포함된 지방분권 조처들은 복지국가 축소로 가는 수단의 하나였다. 일본에서 지역정치의 양가성은 더 극적이다. 1970년대 일본 복지국가의 도약은 혁신지자체가 자민당 지배의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이끌어가는 경로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엔 중앙 역할을 지역으로 이양하고 국고보조를 축소하는 것이 복지국가 축소의 수단이 되었다(타다, 2008; 미야모토, 2010). 나아가 지금은 아베 자민당의 기반이 바로 지역이다. 대도시의 강한 반(反)아베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의 선거승리를 가능케 한 것은 지역의 견고한 보수권력이었다. ‘지역권력’의 정치적 의미는 근본적으로 양가적이고 불확정적이다. 

 

결론

전체를 관장하는 힘을 부분으로 분산시켜 각각에 자유를 주면 모든 부분이 행복한 전체가 생겨나리라는 믿음은 아주 오래된 자유주의의 근거 없는 믿음이다. 중앙-지역 관계에서의 분권은 계급적 관점에서 봤을 때 결코 그 자체로 더 많은 평등과 정의, 복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방분권국가로 접근해가는 것이 복지국가라는 또 다른 국가이상의 실현을 선도하거나 촉진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지방분권과 복지국가 발전 간의 관계는 불확정적이며, 따라서 양자의 상생적 발전을 위한다면 두 문제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분권주의자가 지방분권의 대안을 마련하고, 복지전문가가 복지국가의 대안을 마련하는 식의 단순한 분업은 양쪽 모두에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상적으로 지방분권은 복지국가의 기초를 지역에서부터 탄탄히 쌓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이고 당위일 뿐, 단지 의지와 노력으로 실현할 수 있으리라 낙관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산업발전, 선거정치, 시민권력, 복지국가 등 다양한 사회변동의 시점과 순서, 그들 간의 특정한 결합관계는 이후 사회 전체의 발전궤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복지국가 발전의 초창기에 있는 한국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복지정치 기반의 성장을 골고루 이뤄갈 수 있게끔 중앙과 지역의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며, 특히 중앙 권력의 단순 이양이 아니라 지역복지의 임파워먼트를 위한 중앙-지역 협력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지방분권을 절대선으로 숭앙하는 관념이 탄생한 계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지역’의 정치적, 계급적 의미는 역동적으로 변했다. 2004년에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후에 정권의 지지율은 다시 추락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모든 지자체장을 석권했다. ‘풀뿌리 지역보수’에 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이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패배로 중앙과 지역의 행정·입법부를 모두 보수에 장악당한 진보적 유권자층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에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지배구조에 균열을 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기 동안 진보층에게 ‘국가’가 혐오의 대상이었다면 ‘지역’은 희망이었다. 이것이 지방분권지상주의의 얕은 뿌리다. 그러나 뿌리가 얕은 현재는 영속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지역의 민주적, 진보적 역량은 북구나 대륙유럽의 몇몇 나라처럼 두터운 토대를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의 지역정치는 많은 부분 중앙정치의 확장이며, 중앙정치의 급변은 지역의 판도를 쉽게 바꿔놓을 수 있다. 진보주의자의 지향은 강력한 지역권력이 아니라 평등한 지역사회다. 오는 지방선거의 모토는 ‘지역에게 분권을!’이 아니라 ‘지역부터 복지국가를!’이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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