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광장에는 늘 청소년들이 먼저 있었다. 헌법 조문을 외우고,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현실을 정확히 꼬집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18세 선거권이 실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소년들은 광장, 국회, 거리를 다니며 선거권을 외쳤다. 그리고 문제가 선거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질곡 돼 있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칠 때,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뭣도 모르는 어린 것들’ 혹은 ‘기특한 학생’ 그 어디쯤 있다고 느낀다.
10대는 공부만 하는 존재?
지난해 한국청소년재단과 비영리여론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실시한 청소년 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5.5%가 선거연령 18세 하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보기) 이유로는 ‘정치적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 5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기 때문’이 29.7%로 뒤를 이었다. 또한, 청소년들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응답이 82% 넘게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이 청소년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92%에 달했다. 청소년과 정치권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18세 선거권 문제만 하더라도, 청소년들은 자신 스스로 사회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치권이나 학교는 이들을 사회적 존재로 보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청소년들이 광장에서 외치고 실현하려는 것들은 가정이나 학교로 돌아가면 무색해지고 만다. 그들은 여전히 훈육의 대상이다. ‘10대=학생(공부하는 존재)’이라는 강력한 인식의 프레임은 도통 변하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가 들어서고 촛불정국 속에서 선거연령 18세 하향 운동이 진행됐다. 이는 2000년 이후 계속돼 온 청소년 및 시민사회계의 선거연령 하향 운동의 맥락 속에 있다. 만 20세에 머물러 있던 선거연령은 2005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19세로 하향되는 데 그쳤고, 19대 국회 정개특위에서는 정치적 이해득실로 인해 18세 선거연령 인하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
참여민주주의 확대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선거연령 하향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18세 연령의 독자적 인지능력과 정치 의식 수준 인정, OECD 34개국 중 한국 제외 33개국 선거권 18세 이하, 타 법률과 형평성 문제, 국가인권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18세 선거권 확대 공식 표명, 민주주의 선거권 확대의 타당성 등… 이러한 당위에도 불구하고, 선거연령 인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표 의견은 청소년의 미성숙이다. 공부해야 할 나이인 청소년들이 부모나 교사에 의해 정치적으로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 라면, 청소년은 18살에서 19살이 되면서 1년 사이에 미성숙이 성숙이 되고 어떤 연습 없이 교육대상에서 정치 주체가 되는 절대적 분리를 극복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보이지 않는 경로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 왔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18세 선거권 운동은, 자발적인 청소년 당사자 운동과 함께 18세선거권국민연대, 18세선거권공동행동네트워크, 한국YMCA전국연맹 등이 활동을 주도해왔다. 20대 국회 개회 이후에는 선거 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법안 발의, 피선거권 하향 조정 및 당원 자격연령 하향 등의 법안발의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16년 하반기부터 토론회, 캠페인, 축제 등 청소년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18세 선거권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대국민 캠페인, 국회 선거법 개정 청원 등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됐다. 2016년 11월에는 국회의원실에 18세 선거연령 인하 현판 부착식을 시작했고, 2017년 1월에는 18세 선거권 국민연대 창립, 대선 후보자 간담회, 정세균 국회의장 및 3당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18세 선거권 보장을 위한 국민대회 및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또한 2017년 2월까지 ‘18세 선거연령 인하 선거법 개정 통과 촉구’ 국회 릴레이 피켓시위와 기자회견 등이 계속 이어졌다.
학교가 정치 참여의 공론장 되어야
2017년 2월부터는 청소년 참여권 보장을 위한 연속토론회 ‘청소년 참여를 허하라!’(관련내용 보기), 2017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 18세 참정권 확보 특별위원회가 주관한 5개 정당 청년당원 초청토론회 ‘18세 참정권 확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실제로 반영하는 기구나 조직,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덧붙여 18세 선거권뿐만 아니라 피선거권을 포함한 참정권 확대 논의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또한 청소년이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전국 청소년 선거인단 20만 명을 모집하여 모의투표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이 좌절되면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18세 선거권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는 더 큰 참정권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장에 모인 청소년들의 모습은, 더는 미성숙을 이유로 그들을 학교와 교과서 안에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떤 이는 청소년의 사회참여 혹은 참정권을 위해 그들의 일상인 비인권적인 학교 현실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을 더 이야기해야 한다. 18세 투표가 학교에서 참여와 학생 인권 실현의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투표를 이야기하고, 후보를 평가하고,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정책과 공약을 논할 때야 비로소 학교가 정치 참여의 공론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확보된 권리를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학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그 자체가 민주시민교육과 체험의 장이 되는 것이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시작으로 그들을 문제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온전히 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월호 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이야기한다. 그만 미안해하고, 그냥 기회와 권리라도 달라고…….
– 글 : 하성민 홍은청소년문화의집 관장·한국청소년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