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금지구역에서 줄줄이 나오는 사람들..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등산복을 걸친 남녀 중늙은이들이 출입금지 구역을 빠져 나오며 떠들고 웃고 하는 소리들.. 

산에서 여자들이 단체로 웃는 소리는 정말이지 별로다. 웃음소리가 전혀 유쾌하지 않다. 

남자들의 굵직한 소리는 웅웅대며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뒤에서 개가 따라오는 줄 알았다. 뒤에서 소가 따라오는 줄 알았다. 딸랑딸랑 계속해서 방울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배낭에 단 방울에서 나는 소리였다. 흔히 유원지에서 흘러나오는 쿵짝쿵짝 소리가 기계음으로 들린다. 

역시나 배낭에 라디오를 달고 지나간다. 와.. 진짜.. 환장하겠다.

두 남자가 바위 구간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낮게 읊조리듯 이야기한다. 

광화문 집회 끝나고 집에 가서 TV를 보는데 딴 세상 같았다고...


새 풀들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개구리가 알을 세상에 내놓듯 사람들도 하나 둘 밖으로 나온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에게 봄은 세상으로 나오는 시기다. 그러나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세상에 나와 

짧고 굵게 생을 살다가는 동식물에 비해 인간의 삶은 길고 요란하다. 그래서 미련도 많다.


북한산국립공원 대호아파트에서 족두리봉지나 향림담으로 해서 불광사로 내려가면서 2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무수한 말을 들었고 대책 없는 한숨을 쉬었다. 봄바람은 너그럽게 부는데...


↓ 대호아파트에서 족두리봉으로 올가 가는 도중 앞에 가던 할아버지 두 분이 멈춰 서서 바위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이거봐라. 이런걸 여기다 버리고 가네’ 한다. 그래서 나도 가던 길 멈추고 무엇 때문에 그러나 그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바위에 꽂혀 있던 것은 산신제 지낼 때 사용했던 북어였다.

‘가지고 올라가서 산에 개들 있으니까 개 먹여 야겠어’ 한다. 그래서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이거 개에게 먹이면 안돼요. 개와 고양이가 먹을 것이 없으니 다람쥐나 새들 잡아먹고 그래서 개와 고양이 

잡아서 안락사 시키고 그러거든요. 그냥 집으로 가져가세요.’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들..  처음에는 내 말을 안들을 것처럼 

하다가 ‘그럼 아줌마가 가져가요’ ‘가져가서 먹든가’ 한다.  이런 나쁜..  사실 가방에 그 북어를 넣기가 싫었지만 

꾹 참고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앞서 가면서 내내 망할 할아버지들.. 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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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아저씨들 서울 북한산국립공원에 놀러 왔다. 족두리봉 뒤쪽 가파르고 아직 녹지 않은 얼음으로 

미끄러운 돌계단을 내려가며 여기는 우리 동네에서 다니던 산에 비해 급이 다른 것 다며 연신 급 타령을 하며 내려간다. 

몇 번이고 알려주고 싶었다. 여기는 ‘국립공원’이예요~ 그들의 대화는 이랬다.

아저씨1: ‘너 아들 애인이 순천 애라며? 결혼한대?

(여기서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내게 허락된 청력을 다 모아 귀를 세웠다. 혹시 지역감정의 발언이 나오지 않을까.. 전라도 어쩌구.. )

아저씨2: 글쎄.. 아들하고 순천댁하고 사귄지 3년이 됐거든. 그래서 결혼 안하냐고 물었는데 녀석이 사귄다고 다 결혼하냐고 그러대.. ㅎㅎ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갑자기 둘이 바짝 붙어 귓속말을 한다. 무슨 말을 했을까..

너무 신경이 쓰여 혹시 나도 모르게 아저씨들 대화에 끼어들 것 같은 주책이 감지되어 가던 길을 멈추고 뒤에 오던 아저씨들을 먼저 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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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두리봉에서 향로봉 분기점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휙 지나간다. 

앞서 가던 부부가 놀라서 아이고 아이고 한다. 나야말로 심장이 벌렁거렸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에도 이 길에서 개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한참을 지나가지 못하고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적이 있다. 

나는 전생에 개였을까... 왜 이렇게 개를 무서워하는지.. 

반대방향으로 가던 무리 중 한 남자가 개를 보더니 ‘형님, 형님 진돗개야, 형님, 잡아서 발를까? 하면서 키득거린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왠지 화가 난다. 속으로 ’연신 너를 발르고 싶다 이 미친X야..‘ 

마음이 이러니 발걸음도 흥분을 해서 속도가 빨라진다.


너른 바위에 잠시 쉬며 바나나 두 개를 까먹고 있는데 아까 언뜻 보았던 부부가 지나간다. 

천천히 가고 있는 아내에게 빨리 따라오라며 쓸데없이 구박을 하는 남편.. 

아내가 이번에도 천천히 가며 계곡에 두껍게 얼은 얼음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아주 화난 표정으로 빈정대며 ‘따라 오지도 못하면서 별 걸 다 참견하고 있네.. 

빨리 빨리 따라오기나 해’ 한다. 아내는 찍 소리도 못하고 순하게 남편을 순종한다. 

아니 산에는 왜 이렇게 미친X가 많을까.. 또 화가 난다.


아내를 쓸데없이 구박하는 그 남자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내가 앉아 있는 위쪽 출입금지라 

표시된 곳 밖에 여자 한 명이 서 있고 출입금지 안쪽에서 여자 한 명이 나타난다. 

그러더니 교대를 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 둘이 바지춤을 다시 여미고 바위를 내려오며

‘아 시원하다’ 한다. 그 순간 봄바람이 내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단체 산행객이 많다. 그러니 산이 매우 시끄럽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로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와 있는 느낌이다. 산에 오면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내 바로 뒤에서, 혹은 앞에서 하는 소리들이 

다 들리고 그 소리들은 하나같이 하나마나한 소리들...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말을 하고 산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말은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고 했다. 

그래봤자 후회막급이고 공허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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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동물의 발자국같은 스틱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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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봉분기점에서 향림담으로 내려가다 보면 계곡을 만난다. 

물이 고여 있는 곳에 몇 년 전만해도 개구리알, 도룡뇽알이 제법 있었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큰 바위 밑을 유심히 살펴보니 바위 깊숙이 도룡뇽 알 한 덩이가 보인다. 

살아 있었구나..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 몇 분이 지나가면서

‘지금쯤 도룡뇽 알이 보일텐데 없네..’

‘지율스님인가 뭔가가 가져갔나.. ㅎㅎ’

‘그 미친X 어디로 도망갔나 안보여..’

쫒아가서 따지고 싶었다. 이 날 이 순간이 최고로 신경질이 났다. 

그러나 나는 요즘 자주 불의를 보고 참는다. 속만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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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졸졸졸~ 

향림담 작은 연못 귀퉁이에 개구리 알 한 덩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드디어 나왔구나.. 

경칩을 하루 앞두고 개구리가 알을 낳은 것이다. 

늙으니까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 치듯 눈에 들어온다고 김훈은 이야기했다. 

그렇다. 나도 늙으니까 개구리가 알을 낳았는지 궁금하고 그 개구리 알이 어느 보석보다 이쁘고 반갑다. 

개구리 알을 찍고 일어서서 주변을 보니 향림담 계곡 군데군데 남자 2명, 아까 그 부부, 또 부부가 아닌 것 같은 남녀 

이렇게 세 쌍이 봄 햇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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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알도 봤으니 이제 더 이상 내가 볼 것도 들을 것도 없겠다 싶어 무심하게 발길을 재촉한다. 

향림담 폭포를 지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매끈한 바윗길을 올라간다. 출입금지구역이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하고 싶은데 종일 불의에 참았으니 마치 유정의 미를 거두듯 꾹 참는다. 

그런데 멀리서 ‘내려오세요.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찌나 반갑던지.. 허나 그들은 듣지 않는다. 비겁한 자는 그나마 이럴 때 역할이 있다.

‘ 저 분 공단 직원이예요. 안 내려오면 딱지 끊을 텐데...’ 말끝을 흐리면서 협박 비슷한 것을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낭랑한 목소리가 폭포주변을 울린다. 그때서야 말을 듣는다. 

하...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운 말을(김훈)...

(낭랑한 목소리의 여성은 북한산국립공원 지역협력위원회 위원으로 그 날 산행을 하며 쓰레기를 줍고 불법 행위를 계도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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