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대한의사협회, 사회적 합의·소통 부정하나


자신들과 의견 다른 것이 ‘이념적 편향’인가

색깔론 덧씌우는 이유 뭔지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으로 항의공문을 보냈다. 포괄수가제 시행을 앞두고 심평원이 건강세상네트워크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자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한 것을 두고서다. 의협은 “이번 간담회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이런 ‘부당한 요구’가 또 있을까 싶다. 무엇이, 왜 부적절하다는 것인지. 심평원이 의협을 먼저 부르지 않아 ‘전문가적 자존심’이 상처받은 것인가.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와 소통조차 부정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시민참여를 확대함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적 조정(협치) 구조가 제도로 정착되어 온 지 오래다. 정부부처가 정책추진 단계에서 시민단체, 환자단체,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좋은 모범으로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절차다. 참여와 시민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채택하고 있는 룰인 것을 의사협회는 정작 모르는가. 이는 이제껏 십수년이 넘게 자신들도 참여하여 주요 보건의료정책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의해 온 자기 역사조차 부인하는 꼴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의협이 “정책간담회에 초청된 시민·환자·소비자단체가 시민소비자, 나아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이 있는 단체들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참여한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역시 대단히 감정적인 대응이다. 정작 그들에게 묻고 싶다. 경실련, 환자단체연합, 녹색소비자 시민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어떤 점에서 대표성에 문제가 있는지. 대표성이 있는 단체, 더욱 공신력 있는 단체는 어디인지 밝히라. 이에 대해서는 지면 논쟁을 해도 좋다.

 그들은 이들 단체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된 단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건 거의 명예훼손감이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의협과 정책적 소견이 다르다고 해서 이들 단체에 이런 ‘색깔론’을 씌우면, 의사협회는 이들 단체와 대화와 토론, 정책협의를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아도 되는가. 의협의 공식적인 입장이 이런 수준이라면 참으로 민망할 노릇이다. 위의 시민단체들을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다’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이념적’으로 매우 편향되고 협소한 ‘무지의 소치’다.

 더욱이 심평원 시민단체간담회 이후 의협은 지난 16일 이들 단체를 초청해, 의협 내부간담회를 진행했다. 의협 스스로 ‘이념적으로 편향된 단체’로 지목해 놓고, 자신들이 주관하는 정책간담회에 선별적으로 몇몇 단체를 지정해 초청했던 것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경실련, 환자단체연합, 녹색소비자 시민연대 등에 간담회를 요청한 것을 과연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의협의 최근 무리한 행태는 결국 그들의 주장에 대한 공신력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앞뒤에서 언행이 다른 이들의 행보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 품격도, 명분도 쉽게 내팽개치면 ‘상술’로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전문가로서의 신뢰와 존경심을 얻을 수는 없다. 환자이자 시민인 우리는 그들이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보고 ‘돈도 더 내고, 의료인에게 존경심도 요구하고, 장인으로서의 권위도 인정하라’고 강변하진 말라는 것이다.

박용덕/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

이글은 한겨레 [왜냐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