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사원을 밝히는 눈빛들
이덕규(시인, 화성환경운동연합 회원)
[caption id="attachment_172046" align="aligncenter" width="800"] ⓒ환경운동연합[/caption]
사월 십육일 이후 나는 기도를 버렸습니다
꽃잎을 시새우는 사월의 싸늘한 바람 한 자락을 붙잡고 엎드려 막무가내 매달리던
‘희망’이라는 허망한 단어를 수습해 장사지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캄캄한 사월의 바다 밑 거센 조류 한 가운데로 침몰한 절망의 사원으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사월 십육일 이후, 거기에는 전 국민이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이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공포와 고통과 분노의 시퍼런 칼날 위에서
전 국민이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이 뛰고 있습니다
사월 십육일 이전의 대한민국과
사월 십육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같은 나라입니다
그런, 사월 십육일 이전의 국민과
사월 십육일 이후의 국민은 다른 국민입니다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시키는 대로 얌전하도록 수시로 맞아온 자본과 권력의 달콤한 백신 주사를 이제 거부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권력과 자본의 온갖 협잡과 음모와 폭력이 횡행하는
이 나라의 온갖 부조리를 저 거센 맹골수도에 처박아 침몰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침몰하는 나라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만 감쪽같이 탈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런 나라는 우리도 더 이상 구조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국가는 영원히 바다 밑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게 하겠습니다
이제 먼저 간 우리 아이들이
가만있지 않고 그런 파렴치한 어른들의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추운 바다 밑으로 유인할 것입니다
이제는 살아남은 아이들이 자라서
그런 고장 난 국가는 고장 난 ‘세월호’에 태워 망망대해로 밀어낼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가만히 있는 동안
그 광포한 이윤 주구(走狗)의 바람에 떨어진 그 여린 꽃잎 한 장 한 장의 공포와 고통과 비명의 생생한 기록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전 국민의 가슴팍에 꽂혔습니다 밤마다,
밤바다 전 국민이 그 책을 꺼내 아리고 쓰린 목숨의 페이지를 넘기며 소리죽여 웁니다
이제 울지 맙시다
음습한 권력과 자본의 그늘에 가려진 불감과 적폐의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갑시다
각자, 눈에 불을 켭시다
각자, 청맹과니 눈을 떠, 각자, 일만 촉광에 빛나는 의식의 불을 켜고 이 나라 어두운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핍시다
하여, 생명의 안전보다 이윤을 먼저 고려하여 인간에 대한 존엄과 자존을 겁박하는 장사치와,
그들과 담합하여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관료사회와,
그들 곁에서 사실을 의견처럼, 의견을 사실처럼 날조하는 어용 언론들의 거짓선동을 낱낱이 밝혀내 단죄합시다
그리고 그동안 소외되고 버림받아 지쳐 쓰러진 노숙의 진실들을 일으켜 세웁시다
그 어두웠던 진실의 맨얼굴들을 찬물에 말갛게 씻겨 사람이 우선인 나라의 누리를 밝히는
등불로 씁시다 그리하여 오늘, 긴 울음 끝에
비로소 유월 숲속 깊은 샘물처럼 형형해진 우리들 눈빛들이
저 아우성 끝에 지쳐 누운 절망의 사원을 밝히고 나아가 먼먼 사람의 미래를 비추는 불빛들이 됩시다
[caption id="attachment_172048" align="aligncenter" width="800"] ⓒ환경운동연합[/caption]
이덕규 시인은 화성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로 현재까지 화성환경연합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우수회원이자 농부이자 시인이다.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