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리>

 

봄의 소리는 가까워져 가는데 동물들의 신음소리는 끊이질 않고 들려옵니다.

날개가 있는 동물에겐 조류독감이 두 갈래의 발굽이 있는 동물에겐 구제역이 힘들게 합니다.

모두 생산만을 강요하며 최소한에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한 인간의 탐욕이 부른 슬픔입니다.

자연은 이런 탐욕을 경계합니다.

생존을 위한 먹잇감은 탐욕이 아닌 공생으로 생태계는 유지되어 갑니다.

그 지역 생태계에 맞는 공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명은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되어 인위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그 지역 생태계를 크게 보면 지구와 비슷합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인간은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져갑니다.

무심천에도 먹잇감에 대한 탐욕이 강한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끄리라는 물고기입니다.

끄리는 이름이 생소한 물고기입니다.

어릴 때 모습이 피라미와 닮아서 보통 피라미라고 부르기도 하다가 다 자라면 20cm가 훨씬 넘어서는데 그때 끄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습니다.

끄리는 방언으로 치리, 칠어, 날치 등으로 불리는데 서유구(1764~1845)의『난호어목지』나『전어지』에는 칠어로 소개되어 있으며 치리라는 물고기 이름에서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도감에는 치리는 끄리와 닮은 다른 물고기입니다.

날치라고 불린 것은 물 위를 뛰어 날아서 다닐 정도로 날쌘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끄리의 영명은 Korean piscivorous chub입니다.

여기서 ‘piscivorous’는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라는 뜻으로 한국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잉어과의 물고기로 해석됩니다.

끄리의 몸은 은백색에 유선형으로 물을 가르며 유영을 하기에 최적의 몸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활발히 헤엄을 치며 먹이를 잡을 수 있습니다.

끄리를 다른 물고기와 구분하기 쉬운 특징은 바로 턱에 있습니다.

턱이 다른 물고기에 비해 크기가 큰데 특히 아래턱이 무척 큰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아래턱이 얼마나 큰지 눈 바로 밑에까지 아래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 입을 다문 턱의 모양은 뫼 산(山)자로 생겼는데 톱니 모양으로 악어의 턱처럼 딱 맞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 번 물린 먹잇감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중국에서는 마구어[馬口魚]’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끄리는 사냥을 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 같다는 착각을 들게 합니다.

끄리의 포악할 정도로 먹잇감을 사냥하는데 곤충, 갑각류, 실지렁이와 같은 작은 동물부터 작은 어류부터 대형 어류까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사냥을 합니다.

그래서 가짜 먹이를 끼고 잡는 루어낚시에 끄리가 쉽게 잡히곤 합니다.

무심천에는 하류인 물이 많이 고인 잔잔한 곳에서 많이 서식하며 수영교 일대에도 개체 수가 많이 서식합니다.

끄리는 먹잇감을 포악스럽게 사냥하지만 실제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치어일 때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며 성어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육식을 하는데 자신이 먹을 양만큼 사냥하며 먹잇감의 개체 수를 항상 유지하며 함께 공생해 갑니다.  또한 식탐은 있으나 탐욕을 부리며 다른 생명을 빼앗거나 채워놓지 않습니다.

탐욕은 사전적인 의미로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뜻합니다.

여기서 ‘지나치게’는 생명들이 한 곳에서 공생하지 못하게 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감정을 다룬 스피노자의『에티카』에서는 “탐욕(avaritia)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무절제하게 부를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탐욕이란 감정의 실체라고 합니다.

우리가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많은 생명들은 실제 먹잇감이 아니라 바로 ‘부’에서 시작하는 지나치고 무절제한 욕망을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그 생명들을 보는 입장이 우리보다 하등 한 생명이라는 인식이 더욱 기본적인 예의를 없게 만듭니다.

‘치느님’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치킨을 신처럼 받들어 표현한 말입니다.

하지만 치느님은 닭이 아닌 튀긴 닭이 되어야만 신(神) 적인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조류독감이 아니어도 치느님이 되기 위해 그 작은 케이지 안에서 35일 정도만 살다 가는 닭님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도 무심천에 사는 끄리처럼 매일 먹는 먹잇감에 대한 욕심은 갖되 탐욕이 되지 않기를 또한 하등 한 생명이 아니라 공생을 위한 생명이라는 인식을 갖기를 바라봅니다.

그래야 인간이 지구생태계교란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