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준안 국회 제출했지만 공론화 부족

정부, 온실가스 감축방안 ‘원전 추가’ 제시 

전 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기후협정이 11월 4일 정식 발효됐다.

지난해 말 파리협정 체결 이후 미국, 유럽연합,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주요국이 이번 협정을 비준하면서 ‘55개국 이상과 배출량 55% 이상’의 발효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도 9월 1일 파리협정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사회적 공론화에 나서지 않으면서 비준안 동의는 불투명한 상태에 빠졌다.

세계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난해 12월 체결된 ‘파리협정’은 2020년 이후의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 지구적 방안을 담았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2℃ 이하로 유지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지구 온도 목표 달성을 위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공약이 부합하는지 검증하게 된다. 지난해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제출했다. 올해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 열린 ‘파리협정 발효 고위급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올해 안에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염자 부담 원칙’ 사라진 기후변화 정책

그렇다면 한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정 이행’에 얼마나 준비가 됐을까?

한국의 장기 온실가스 감축 방안은 산업계에 특혜를 줬다는 논란에 휩싸여왔다. 국가 전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37%로 설정한 가운데 정부는 산업 부문의 감축률에 대해선 “12% 수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유일한 예외 단서를 달았다. 산업 부문은 국가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54.4%로 최대 배출 비중을 차지한다. 산업계의 노력 없이 유의미한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해 6월 이와 관련해 “규제보다는 시장과 기술을 통해 산업계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지원제도를 개선하고, 규제를 과감히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철강·석유·자동차·에너지 등 업계는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으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에 따른 산업 공동화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산업계 부담의 추가 완화를 요구했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최종안을 확정하기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38개 산업협회는 공동으로 ‘경제계, 온실가스 감축목표 하향조정 요구’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결국 경제계의 요구는 산업계에 대한 부담 완화로 이어졌다. 가장 주요한 ‘오염 부담자’가 기후변화 정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

‘핵발전소 기후변화 대안론’ 부활하나?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축에서 산업계에 대한 특혜는 그만큼 다른 부문으로 부담을 전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배출 비중이 35%로 두 번째로 큰 발전 부문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 ‘원전 추가고려’를 공식 언급한 배경이다.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석탄발전소를 2025년까지 20기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강행하면서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여지는 더 좁아지게 됐다.

정부가 빼든 카드는 석탄발전소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도입하고 핵발전소의 추가건설을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환경단체들은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의 축소 대신 정부가 “불투명한 기술적 해법에 의존한, 값 비싸고 위험한 해법에 의존하기로 했다”며 이를 비판했다. ‘핵발전소가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는 핵 산업계의 논리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석탄이든 핵발전이든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회가 늦어도 22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11월 7일 이전에 ‘파리협정 비준 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는 부랴부랴 토론회를 열고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의견을 모으는 모양새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7위국이며 ‘저탄소 녹색성장’을 표방하며 기후변화 대응의 모델국가로 자처해왔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정책은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묘연한 채 산업계에 편향적인 대책으로 계속 기울고 있다.

이지언

이 글은 <탈핵신문> 2016년 11월호 (제47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