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여 아산의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기계를 이용한 벼들은 수확이 끝나 가지런히 누워있지만, 낫으로 베어야 하는 콩들은 아직 손길이 닿지 않아 무거운 몸을 바닥에 뉘이거나, 앙상하게 잎이 떨어진 채 서 있었다.

 

10월 31일, 성과퇴출제 저지를 위하여 장장 33일간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철도노동자들이 아산 음봉에서 농민-노동자 연대활동을 진행했다.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에 따르면 아산 음봉에 100여명, 대전 추동 취수장 인근과 천내습지 인근에 400여명등 총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이날 지역과의 연대를 위한 연대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10시경 아산 음봉 앞에 모인 100여명의 조합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은 ‘콩 수확’이었다. 낫으로 콩을 베어 뉘어놓은 후, 다시 이를 모아 콩을 털어내는 일이 오늘의 할 일이다. 100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다보니, 잠시 혼란도 있었지만,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인 만큼 일사불란하게 역할이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각자 오늘의 일터를 배정받고, 삼삼오오 낫을 들고, 콩을 수확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는 콩이 잘 자란 편이여. 다른데는 가보면 여기보다 안 좋은 곳도 많을걸, 돌아다니면서 한 번 봐바”. 제일 먼저 방문한 콩 수확 현장에서 농민분은 나름 자랑을 섞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그러면 뭐해. 쌀값도 콩값도 제 값을 못받고 있어. 21만원 만들겠다던 쌀값은 15만원도 못받은지 한참 되었고, 콩값도 예전만 못해” 농산물 가격이 널뛰어 종잡을 수 없어 고통스럽다는 농민분의 어깨는 익어가는 콩들처럼 추욱 쳐져 있었다.

 

이미 시기를 놓쳐 벌어져버린 콩깍지들도 많이 보였다. 옆으로는 수확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인지 모를 고추가 말라가고 있기도 했다. 일손이 없는 농촌의 현실을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들이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시름하던 농가에 노동자들의 연대의 손길은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오랜만에 안 쓰던 근육들을 쓰다 보니, 몸이 너무 아프네, 여기저기 쑤셔” 한참을 엎드려 콩을 수확하던 철도노조 조합원이 허리를 피며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노동하셔서 제대로 값도 못 받으면 얼마나 억울하시겠어요. 노동자들 또한 자신들이 일한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를 바꿔보고자 저희들이 파업 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파업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이야기가 되돌아온다. “성과연봉제라고 하지만, 실상은 성과 퇴출제일 뿐입니다. 성과를 평가할 지표도 마땅치 않고, 저성과자 일반해고제와 연결되면 결국 성과를 못내는 사람들을 해고하려는 수단으로 전락될게 뻔합니다. 내 일터를 지키고, 내 동료들을 지키기 위한 파업 투쟁입니다.” 철도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이들은 파업을 하고도 그렇게 함께 일하고 있고, 함께 일하기 위해 파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잠시간의 휴식은 막걸리와 함께 한다. “철도는 국민의 발이에요. 최고의 대중교통 수단이지요. 그런 철도가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이익을 내려고 한다면, 이는 결국 국민들에게서 더 많은 요금을 받고, 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비를 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요. 이는 결국 국민들의 불편과 불안전을 야기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파업에 나선 것이지요.” 막걸리를 마시며 노동자는 농민에게 파업에 나선 이유를 이야기 한다.

 

“그려. 잘 알지. 우리도 작년에 올해 계속 쌀값 보장하라고, 농작물 수입 줄이라고 데모도 하고 그려. 그런데 이 정부가 뭐 우리 같은 농민들 이야기를 듣나. 최순실이 이야기나 듣겄지. 허허” 주고 받는 막걸리 잔 속에는 노동자의 현실도, 농민의 현실도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몇 순배가 돌고, 그들은 다시 낫을 부여잡고 콩을 베기 위해 움직인다.

 

“성과 퇴출제 저지 뿐 아니라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목적도 있습니다.” 농촌활동에 나선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만희 수석부본부장(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은 이렇게 답한다. “사회공공성 강화라는 목적에 맞게 파업에 나선 만큼 시민들을 만나, 농민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전하려고 이렇게 오늘 지역으로 농촌으로 달려왔습니다. 파업이 30일이 넘었건만 언론에서는 철도 파업 이야기를 다루지도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직접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만나 철도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아산으로, 추동 취수장으로, 제원군 천내습지로 달려갔습니다. 앞으르도 기회만 닿으면 다른 곳도 한번 찾아가 보려고요. 직접 시민들을 만나서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철도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입으로만 사회공공성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이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그의 결심이 엿보인다.

 

철도노조의 파업 투쟁이 30여일 이상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언제 파업이 종료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고, 안전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또한, 파업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고통도 이어지고 있다. 철도노조는 지속적으로 정치권의 중재를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의 중재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시민들의 지지와 엄호 뿐이다. 주름이 깊게 팬 철도노동자의 얼굴 속에 웃음이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농촌/지역 봉사활동 나선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 조합원들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 조합원들이 작업배치를 받고 있는 모습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 조합원들이 봉사활동을 진행한 콩밭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 조합원들이 봉사활동을 진행한 고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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