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이사장, 부산센터에 고등학교 동창의 딸 보내
국회 보좌관 윤 아무개는 광주센터에 조카 부탁한 듯
재단 지역센터에 파견되려면 든든한 뒷배경 있어야 해
시청자미디어재단(이사장 이석우)의 파견직 채용 과정이 복마전을 이뤘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에 남편 친구 아들을 채용하게 연거푸 부탁한 의혹을 샀던 무렵에 이석우 이사장 고교 동창의 딸이 파견직으로 채용돼 올 3월부터 7월까지 4개월 동안 부산센터에서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센터에서는 이석우 이사장의 친구 딸을 채용하느라 올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일하기로 이미 계약한 천 아무개 씨를 “예산이 없다”는 핑계를 들어 6개월 만에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그때 이석우 이사장의 지역센터 파견직 인사를 두고 ‘2016년 10월 울산센터 정규직 채용에 대비한 파견 경험 만들어 주기’라는 얘기마저 돌아 어수선했다는 게 재단 관계자들 전언이다.
같은 시점에 국회에서 19년째 보좌관으로 일하는 윤 아무개 씨가 조카를 광주센터 파견직에 채용되게 부탁한 정황까지 나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인사 비위 의혹에 무게를 더했다.
부산센터에 간 이석우 이사장 친구의 딸
이석우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은 올 3월 유승희 의원과 윤 아무개 보좌관의 지인 채용 부탁 의혹이 일었을 때 자기 고교 동창 딸인 엄 아무개 씨를 부산센터 파견직 자리에 끼워 넣었다. 엄 씨 아버지는 이 이사장과 같은 해 K고교를 졸업한 뒤 대구에서 오랫동안 부동산중개업을 한 사람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8월 22일 재단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이런 사실을 스스로 털어놨다.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 동기의 딸이 작년에 시청자미디어재단에 지원했는데 떨어졌고, (친구에게)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는 건 파견직이라고 제안했더니 ‘(그리)해 주면 좋다’고 해 부산센터장에게 추천했다”는 것.
재단 인사팀과 직원 파견 대행업체는 이석우 이사장의 뜻에 따라 올 3월 엄 아무개 씨를 뽑아 부산센터로 보냈다. 그때 부산센터에는 2015년 11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2개월 동안 파견직으로 근무한 뒤 201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동안 더 일하기로 재계약한 천 아무개 씨가 있었다. 천 씨는 그러나 이 이사장의 친구 딸이 오는 바람에 지난 6월 말 부산센터를 떠나야 했다. 관련 예산이 부족해 천 씨에 지급할 임금의 절반(2016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치)으로 엄 아무개 씨 임금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갓 졸업해 처음 가진 직장이었습니다. 사회의 문턱에 발을 딛자마자 제가 알게 된 건 ‘역시 백(back) 없으면 힘들구나’였네요.
이석우 이사장의 친구 딸에 밀려 부산센터를 그만둬야 했던 천 아무개 씨가 기자에게 보내온 편지 속 한숨. 그는 올 7월부터 12월까지 계약 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부산센터를 그만둬야 했던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냥 예산이 없어서 인원을 줄여야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전해 들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계약해지) 정확하게 들은 건 없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원래 (지역센터) 파견직을 이사장이 (뽑아) 보내는 경우는 없었고, 결원이 생기거나 필요할 때 해당 부서장이 센터 주변 대학 등에서 추천을 받아 채용하고는 했는데 (올해 들어) 달라졌다”고 전했다. 이석우 이사장이 취임한 뒤로 국회의원처럼 힘 있는 사람과 가까운 이의 아들딸을 데려다 놓는 자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광주센터엔 국회 베테랑 보좌관의 조카
광주센터에는 국회 베테랑 보좌관인 윤 아무개 씨의 조카 백 아무개 씨가 파견됐다. 부산센터로 간 이석우 이사장 친구의 딸처럼 올 3월부터 7월까지 4개월 동안 일했다.
윤 보좌관은 기자의 취재가 시작되자 몇몇 지인에게 자신의 추천을 통해 조카가 광주센터에 채용됐던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센터 파견직을 가벼운 아르바이트 자리로 알았고, 시청자미디어재단의 국회 담당자가 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제안해 와 자기 조카를 소개했다는 것. 윤 보좌관은 그러나 이런 정황을 확인하려는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로 “부정한 청탁이나 부적절한 행위가 없었다”며 “이후 더 이사장 취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내 회피했다.
윤 보좌관이 2010년 7월부터 올해 초까지 몸담았던 모 국회의원실에서는 백 아무개 씨에 대한 광주센터 채용 부탁 여부와 관련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밝혀 왔다. 백 씨를 알지 못하며 광주센터에 채용 부탁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올해 초에는 윤 보좌관과 결별한 상태였음을 강조했다.
지역센터 파견 조건은 ‘든든한 뒷배경?’
시청자미디어재단 지역센터 파견직은 국회의원이나 재단 이사장 같은 든든한 뒷배경 없이 가기 어려운 자리가 됐다. 힘 있는 사람의 지인이 복수 후보 면접 같은 절차조차 없이 채용된 것.
특히 올 3월 14일부터 7월 13일까지 4개월 동안 서울센터에 파견된 뒤 7월 25일부터 9월 말까지 2개월 더 일한 신 아무개 씨는 뒷배경이 거듭 작용한 정황이 농축됐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을 감사하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유승희 의원의 남편 친구인 신 아무개 씨 아들이 파견됐기 때문. 신 씨는 서울센터가 있는 유승희 의원의 지역구 사무소에서 특별보좌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관계에 힘입어 신 씨 아들이 부산과 광주센터에 파견됐던 이들과 달리 2개월 더 채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몇몇 재단 관계자는 제19대 국회 때로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던 이석우 이사장이 지역센터 파견직을 20대 국회 국정감사에 대비한 보험으로 삼으려 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국정감사 지적과 재단 파견직 자리를 맞바꾸려 했다고 풀어냈다. 이석우 이사장은 청탁을 물리치기는커녕 자신의 친구 딸까지 부산센터에 파견해 채용 인사의 공정성을 스스로 깨뜨렸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시청자미디어재단지부는 성명을 내어 “(뉴스타파의 재단 지역센터) 파견직 채용 청탁 보도에는 이사장이 개입한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됐고, 이사장 또한 간부 및 직원들에게 본인의 실수를 일부 인정했다”며 “이사장은 각종 의혹과 (내부 제보자를 찾겠다며 밀어붙인) 직원 고발 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