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SCN8946(검은머리물떼새알)

검은머리물떼새·괭이갈매기 등 산란, 저어새도 정착 가능성

농섬 개발 계획 백지화해야

 

 

54년간 미군의 사격 훈련으로 화약 냄새만 진동했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농섬이 생명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61175" align="aligncenter" width="640"]농섬과 웃섬 54년간 미군의 해상 사격 표적으로 수많은 포탄을 받아내야 했던 농섬. 모든 생명이 사라진 듯한 농섬에 생명이 다시 싹트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6일 민물도요 무리가 앉아 있는 매향리갯벌을 배경으로 찍은 농섬(왼쪽)과 웃섬.ⓒ 정한철 농섬과 웃섬 54년간 미군의 해상 사격 표적으로 수많은 포탄을 받아내야 했던 농섬. 모든 생명이 사라진 듯한 농섬에 생명이 다시 싹트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6일 민물도요 무리가 앉아 있는 매향리갯벌을 배경으로 찍은 농섬(왼쪽)과 웃섬.ⓒ 정한철[/caption]

화성환경운동연합이 지난 5월 26일 매향리 농섬(웃섬 포함) 물새 번식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괭이갈매기 네 쌍과 검은머리물떼새 세 쌍의 번식을 둥지와 알로 확인했다. 흰뺨검둥오리의 산란 둥지는 총 26군데서 발견했다. 흰물떼새의 '알자리'도 포착했다. 며칠 후면 알을 낳을 것으로 예상한다.

[caption id="attachment_161176" align="aligncenter" width="640"]농섬의 검은머리물떼새 알 보통은 3개를 낳는데 4개를 낳았다.ⓒ 정한철 농섬의 검은머리물떼새 알 보통은 3개를 낳는데 4개를 낳았다.ⓒ 정한철[/caption]

이번에 번식이 확인된 검은머리물떼새는 멸종 위기(2급) 야생 생물이며 천연기념물 326호이다. 갯벌이 매립되고 오염되면서 서식지와 먹이원이 사라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검은머리물떼새의 번식 둥지는 세 개였지만, 동행 조사한 조류 전문가 서정화 대표(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는 총 7쌍까지 번식하는 것으로 보았다.

[caption id="attachment_161177" align="aligncenter" width="640"]검은머리물떼새 알 발견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가 화성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함께 농섬에서 발견한 검은머리물떼새 알의 크기를 재고 있다. ⓒ 정한철 검은머리물떼새 알 발견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가 화성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함께 농섬에서 발견한 검은머리물떼새 알의 크기를 재고 있다. ⓒ 정한철[/caption]

괭이갈매기 번식 확인 역시 뜻깊은 수확이다. 갈매기가 흔한 텃새임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저어새가 번식할 가능성을 점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정화 대표는 마을에서 이렇게 가까운 섬에 갈매기 번식 사례가 많지 않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높이 샀다.

[caption id="attachment_161178" align="aligncenter" width="640"]괭이갈매기 알 괭이갈매기 알이 두 개 있다. 서정화 대표는 괭이갈매기의 집단 번식이 안정되면 저어새도 번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한철 괭이갈매기 알이 두 개 있다. 서정화 대표는 괭이갈매기의 집단 번식이 안정되면 저어새도 번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한철[/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61179" align="aligncenter" width="640"]알 품는 중 괭이갈매기 암컷이 꿈쩍 않고 알을 품고 있다. 멀리서 망원 카메라로 찍었음에도 다른 갈매기들은 섬 위를 빙빙 돌며 우리를 경계했다. 역시 미안했다. ⓒ 정한철 괭이갈매기 암컷이 꿈쩍 않고 알을 품고 있다. 멀리서 망원 카메라로 찍었음에도 다른 갈매기들은 섬 위를 빙빙 돌며 우리를 경계했다. 역시 미안했다. ⓒ 정한철[/caption]

저어새는 보통 갈매기 번식지를 일부러 찾아 곁에 보금자리를 튼다. 종종 자신의 알을 훔쳐 먹는 갈매기의 습성을 알면서도 공생하는 것은, 그들이 천적과 싸워 주는 강력한 동맹이 되기 때문이다. 저어새는 전 세계 2700여 마리만 남은 국제적 멸종위기종(1급)이자 천연기념물 205호다. 번식 환경이 약간 다르지만 천연기념물 361호 노랑부리백로도 농섬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뜻 있는 결과를 위협하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 이를 살피기 위해 매향리와 농섬의 아픔을 간단히 소개한다.

[caption id="attachment_161180" align="aligncenter" width="480"]저어새 매향리갯벌과 화성호에서는 저어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진은 화성호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저어새들(노랑부리저어새 포함)ⓒ 정한철 저어새 매향리갯벌과 화성호에서는 저어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진은 화성호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저어새들(노랑부리저어새 포함)ⓒ 정한철[/caption]

 

미군 폭격이 파괴한 '물새알 가득' 농섬의 생명

매향리 농섬은 본디 생명의 땅이었다. 한국전쟁 이전 농섬은 수많은 알과 둥지가 있던 섬이었다. 소나무와 매화나무 숲이 바위 절벽과 어우러지고, 매립된 적 없어 먹이가 풍부한 갯벌과 바다를 끼고 있던 무인도 농섬은 하늘이 내린 물새의 집이었다. 아마도 갈매기와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이 번식했을 것이다.

그랬던 섬은 죽음의 땅이 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군은 매향리(고온리)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농섬에 시험 삼아 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1954년 미군 주둔 이후엔 본격적인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 1년 250일, 1일 평균 11시간, 15~30분 간격으로 중형폭탄을 투하했다. 227kg짜리 연습탄 'NK-82'와 12kg짜리 BDU-33(방망이탄)이 주였다.

거기 살던 생명은 파괴되었다. 갈매기와 저어새 따위의 새들은 피할 틈도 없이 온몸이 찢겼다. 알을 품던 암컷들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알과 함께 산산조각 났고, 먹이를 물고 돌아온 수컷은 흔적조차 사라진 아내와 새끼 앞에서 허망했을 것이다. 엄청난 폭발과 날아오는 파편을 피해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해도, 감당할 수 없는 폭음에 귀가 멀고 눈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61181" align="aligncenter" width="480"]농섬에 박힌 포탄. 농섬은 죽음의 땅이었다. 환경정화작업을 했고 계속적으로 예정되어 있지만, 54년간 받아낸 포탄은 아직도 곳곳에 박혀 있었다. 풀과 꽃이 자라고 물새가 번식함으로 이젠 생명을 품은 땅이 되었다. 사진의 꽃은 농섬에 피어난 자주개자리꽃.ⓒ 정한철 농섬에 박힌 포탄. 농섬은 죽음의 땅이었다. 환경정화작업을 했고 계속적으로 예정되어 있지만, 54년간 받아낸 포탄은 아직도 곳곳에 박혀 있었다. 풀과 꽃이 자라고 물새가 번식함으로 이젠 생명을 품은 땅이 되었다. 사진의 꽃은 농섬에 피어난 자주개자리꽃.ⓒ 정한철[/caption]

나무와 풀, 거기 살던 곤충과 각종 벌레들도 사라졌다. 갯벌의 조개와 게류의 딱딱한 껍질도 포탄을 이길 순 없었다. 바위와 흙조차 숨을 잃었다. 농섬은 폭격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고통 속에서 부숴져야 했다. 급기야 이전의 1/3 크기로 줄어들었다.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농섬 옆 귀비섬(구비섬)은 자취만 남았다.

사람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해상 표적 농섬과 더불어 육상 표적을 끼고 있던 매향리는, 불시에 마을과 갯벌로 날아드는 포탄과 파편으로 불안한 삶이 이어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격장이 생긴 이래 피해를 입은 주민은 모두 713가구, 4000여 명이다. 8개월 임신부를 포함해 오폭 및 불발탄 사고로 13명이 사망했고 손목 절단 등의 중상을 포함해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음 피해도 크다. 지속된 폭격 소리로 주민들은 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32명에 이른다.

[caption id="attachment_161182" align="aligncenter" width="480"]하루에 두 번 길 열리는 농섬과 웃섬. 간조가 가까워지면 농섬에서 웃섬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간조에 좀 더 가까워지면 웃섬에서 육지로 가는 길도 열린다.ⓒ 정한철 하루에 두 번 길 열리는 농섬과 웃섬. 간조가 가까워지면 농섬에서 웃섬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간조에 좀 더 가까워지면 웃섬에서 육지로 가는 길도 열린다.ⓒ 정한철[/caption]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움트는 생명을 짓밟을 농섬 전망대

이러한 매향리의 아픔을 씻기 위한 보상이자 기념의 뜻으로 매향리평화생태공원이 세워진다. 환영할 일이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자연이 만들어 가고 시간이 완성하는 공원'이라는 기본 철학으로 공원을 구상 중이다. 구상엔 몇 가지 주요 방향이 있는데 그 첫째가 "장소성을 존중하는 공원"이다. 구상을 실현할 제1전략은 이렇다. "농섬과 염생습지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안타깝게도 이 전략엔 모순이 있다. 평화생태공원 구상안은 농섬에 '폴리(Folly·360°전망대)와 데크'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면서 회복을 방해할 인공 시설물을 농섬에 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공사 시작과 동시에 새들은 떠나고 둥지와 알은 짓밟힐 것이다. 뒤늦게 가치를 알고 복원한다 해도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저어새가 올 가능성도 멀어진다.

[caption id="attachment_161183" align="aligncenter" width="640"] 검은머리물떼새는 포란 중 농섬과 이어진 웃섬에서 검은머리물떼새가 알을 품고 있다.ⓒ 정한철 검은머리물떼새는 포란 중 농섬과 이어진 웃섬에서 검은머리물떼새가 알을 품고 있다.ⓒ 정한철[/caption]

단순히 멸종위기종이고 천연기념물인 '새'를 지키자는 게 아니다. 지역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매향리의 가치를 올리자는 것이다. 그동안의 매향리 역사와 문화, 사람들, 자연 이야기... 거기에 멸종위기종을 살려낸 주민과 화성시의 노력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함께 미소 지을 것이다. 매향리를 평화와 생태를 중시하는 명품 마을이라 칭송할 것이다.

농섬을 살릴 것인가 다시 죽일 것인가. 멀리 보아 농섬을 보존하고 가치를 높일 것인가, 가까운 앞만 보아 일단 전망대를 짓고 볼 것인가.

[caption id="attachment_161184" align="aligncenter" width="480"]흰뺨검둥오리 알 흰뺨검둥오리 알. 둥지가 풀 사이에 숨겨 있다.ⓒ 정한철 흰뺨검둥오리 알. 둥지가 풀 사이에 숨겨 있다.ⓒ 정한철[/caption]

풀이 돋고 나비와 벌이 찾아오며 흰뺨검둥오리 20~30쌍, 검은머리물떼새와 갈매기가 보금자리를 차린 농섬의 회복을 기다려 주면좋겠다. 내년 식목일 농섬에 소나무와 매화나무를 심으면서(나무와 풀은 갈매기와 저어새 등이 번식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든다) 농섬의 갈매기 번식이 안정되고 저어새까지 둥지를 트는 그날을 함께 기대하면 좋겠다. 지역민과 화성시, NGO가 결합한 매향리평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가 지혜롭게 풀어나가기를 바란다.

[caption id="attachment_161185" align="aligncenter" width="640"]농섬 물새 번식 조사단 5월 26일 화성환경운동연합이 검은머리물떼새와 갈매기 등 농섬의 물새 번식 현황을 조사했다.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가 동행하고 지도했다.ⓒ 정한철 농섬 물새 번식 조사단 5월 26일 화성환경운동연합이 검은머리물떼새와 갈매기 등 농섬의 물새 번식 현황을 조사했다.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가 동행하고 지도했다.ⓒ 정한철[/caption]

 

[관련영상보기 ]

갈매기와 검은머리물떼새의 飛上 "非常!" 갈매기와 검은머리물떼새가 자신들의 알과 둥지를 지키려고 섬 위를 빙빙 돌고 있다. 삑삑 거리는 소리가 검은머리물떼새의 울음이다. 잠시나마 불안에 떨게 해서 새들에게 미안했다.ⓒ 김미경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