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기 원전 수출 환상에 사로잡힌 정부가 안쓰럽다

○ 어제(13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울산 신고리 원전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원자력발전 수출산업화 전략’이 발표되었다. 이번 전략에는 2012년까지 10기,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 수출을 위한 전방위 지원책이 담겨있다.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수주 건이 성사되고 나서 현 정부는, 한국 경제를 구출할 동력으로 한 손에는 4대강 대규모 토목공사를, 또 한 손에는 원전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형상이다.

○ 하지만, 자연파괴를 담보로 하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반짝 경기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경제적, 환경적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다국적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레드오션인데다가 사양산업인 원전산업에 막대한 세금을 들이는 것은 후진적인 선택이다.

○ 원자력르네상스는 허구다. 세계는 원전사고를 경험하면서 안전성 관련 기술이 발전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관련 규제는 까다로워졌고 사회적 수용성도 떨어지고 있다. 원자력산업계의 전성기였던 80년대에 세계원자력협회는 2000년이 되면 수천 개의 원전이 건설, 가동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가동 중인 원전은 2002년 444기를 정점으로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현재는 437기가 가동 중이다. 폐쇄된 원자로가 123기에 이르며 평균 가동연수는 25년 정도며 수년 안에 폐쇄될 원자로도 300여기에 이른다. 하지만 원전 선진국인 북미와 유럽에서 폐쇄될 원전을 대체할 계획은 좀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일부 동유럽과 러시아, 아시아 국가들이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정도라서 80년대 이후로 축소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80년대 11개에 이르던 원자력발전소 메이커 업체들은 축소된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수, 합병이 거듭되어 아레바-미쯔비시, WH-도시바, 히타치-GE 로 재편되었고 이들은 고유의 설계 코드를 가지고 있는, 원천기술 보유 업체들이다. 2030년까지 80기의 신규원전이 건설될 지도 미지수지만 원천기술이 없는 한국전력공사가 독자적으로 수주를 할 가능성은 더 적어 보인다.

○ 선진국들은 손 떼고 있는 시장에 한국은 국가가 앞장서서 막대한 세금을 들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1, 2차 오일쇼크 이후에도 일어났다.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다소비 산업을 정리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재생가능에너지와 효율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이들은 고부가가치 미래형 블루오션 산업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들이 포기한 에너지다소비형 산업을 받아들였고 현재의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체제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 2001년에서 2006년 사이에 풍력산업은 27.5%, 태양광산업은 60%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원자력산업은 1.6%에 불과했다. 우리는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효율산업에 유리한 반도체와 IT 기술에서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관되지 않은 정책과 부족한 재정지원으로 국내 시장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효율산업은 리스크가 없다. 하지만 원전산업은 골치 아픈 핵폐기물 처분뿐만 아니라 새로운 원전 개발에 따른 사고 리스크가 뒤따른다. CE사의 100만kW급 설계도를 변형한 한국형원자로는 실험로 단계에서 실증로 없이 상용원자로로 바로 가동했다. 영광과 울진 3, 4, 5, 6호기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 이유가 변경된 설계도와 재질로 인한 문제점을 실증로에서 수정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들 영광과 울진 한국형 원전이 결국 실증로가 된 셈이다. WH사의 140만kW급 원자로를 변경한 한국형 APR 1400 역시 실증로 단계가 생략된 상태에서 신고리 3, 4호기를 건설, 가동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로 수출될 예정이다.

○ 원전은 단 한 번이라도 큰 사고가 발생하면 환경적인 재앙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구소련의 붕괴의 시작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지금, 정부가 환상을 심고 있는 원전산업이 경제를 부흥시킬 동력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발목 잡을 복병이 될 수도 있다.

2010년 1월 14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김석봉․이시재․지영선 사무총장 김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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